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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19.06.28 조회 594 추천 10


 0.
 
 역사란 때로 소수의 천재들에 의해 쓰여진다.
 “아, 이건 힘들겠는데요.”
 세계 선수권 대회.
 다른 대회와는 달리 2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올림픽이 없는 당구계 내에선 가장 큰 대회였다.
 이름에 걸맞게 전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선수들이 초대를 받아 참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전.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까?
 젊은 한국 선수 한 명이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상대는 4대 천왕 중 한 명이자 당구 황제라 불리는 토브욘 브롬달.
 대진 운이 나쁘지 않았던 한국 선수에 비해 브롬달은 같은 4대 천왕인 야스퍼스와 2014년,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했던 한국의 최성원까지 이기며 결승에 올라왔다.
 그렇기에 모두가 브롬달의 우승을 점쳤다.
 저 젊은 한국 선수가 이긴다면 그것도 새로운 스토리가 되겠지만 아직 경험도 많지 않은 어린 선수가 브롬달을 이길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결승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운 선수는 아직 어리니까 기회가 많이 남아있죠.”
 30점 대 11점.
 한국의 이지운은 무려 19점이나 뒤처지고 있었다.
 전국 대회와 세계 대회에서도 우승 기록을 남기며 새로운 시대를 열지도 모르는 천재로 평가받았지만 역시 ‘황제’에겐 이길 수 없었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브롬달 선수도 아직 10점을 더 내야 하기 때문에 더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해설자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브롬달이라면 10점을 내는데 어쩌면 단 한 번의 차례만 돌아와도 끝낼지 모르는 선수였다.
 반면 이지운은 게임이 종료되는 40점까지 무려 29점이나 남아 있는 상태.
 자신이 플레이하는 한 이닝에 최대로 점수를 내는 하이런을 아무리 달성해도 너무 많은 점수였다.
 “이지운, 준비 자세에 들어갑니다!”
 “과연 브롬달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이지운의 초구.
 빠악!
 강한 힘으로 때린 공이 당구대를 크게 돌면서 먼저 쿠션을 3번 때리고 남아있던 2개의 공을 맞혔다.
 “아, 주눅 들지 않는 공은 좋네요.”
 “지금 공은 대회전이었죠? 쿠션을 먼저 맞추는 빈 쿠션으로 치다니, 기세가 좋네요.”
 “그게 이지운 선수의 장점이죠.”
 이지운은 담담하게 득점을 이어나갔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벌써 5점을 획득했지만 아직도 브롬달과의 차이는 14점이나 남아 있었다.
 모두가 이지운을 보며 처량한 혈투에 안쓰러워하고 있었지만 이지운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공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그것 외에 이지운이 생각하고 있는 건 없었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모두가 순교자를 바라보듯 이지운의 플레이를 관람했다.
 10점의 하이런.
 “대단하네요. 여기서 하이런이라니.”
 “보통의 선수라면 추격의 의지를 잃을 만한 점수 차이인데, 이지운 선수는 투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대단하네요!”
 모두 칭찬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패배자에게 보내는 위로와도 같았고 동시에 마지막 남은 한국 선수에게 보내는 처절한 응원이었다.
 장내에 있던 이들의 생각은 잘못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힘들 것이라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다만 이지운이라는 선수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을 뿐이었다.
 이지운의 하이런이 끊어지지 않고 길어졌다. 모두의 얼굴에 놀라움이 퍼져나갔고 해설은 점점 빨라졌다.
 무려 20점의 하이런.
 어느새 브롬달과 이지운의 점수 차이는 30점 대 31점으로 이지운이 1점을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20점! 20점의 하이런!”
 “지금 이곳에서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조용했던 장내도 점차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선수의 집중을 위해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20점의 하이런은 모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대기석에 앉아서 이지운의 당구를 지켜보던 브롬달도 이지운이 25점을 연속으로 득점했을 땐,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대기석에 앉아서 상대방의 이닝을 지켜보는 것이 경기 규칙이었지만 심판도 브롬달을 막지 않았다.
 이미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기립해서 이지운의 하이런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해설자가 운을 띄웠다.
 “현재 하이런 신기록은 일본의 주니치 고모리 선수가 1993년, 크리스마스 토너먼트에서 세운 28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선수도 깨지 못한 기록이죠.”
 “네. 지금까지 1998년 레이몽드 클루망 선수, 2012년 롤라드 포톰 선수 그리고 2013년 프레드릭 쿠드롱 선수만이 28점의 타이 기록을 세웠습니다.”
 “사실상 28점은 넘을 수 없는 벽과도 같죠. 그리고 지금, 한국의 이지운 선수가 벽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지운.
 당구의 종주국은 벨기에라고 하지만 쓰리 쿠션에 있어서만은 한국도 거대한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한국 선수들도 많았지만 이지운은 그렇지 않았다.
 체계화된 교육을 받은 선수도 아니고 동네를 전전하던 이름 없는 선수가 선발전을 통해 선수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전국 대회와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이미 한국에는 최성원, 김행직, 조명우 같은 걸출한 선수들이 많았기에 크게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저 잘 치는 선수 중 한 명이었고 그런 선수가 세계 선수권에 대표 중 한 명으로 참가했다.
 국내 여론은 좋지 않았다. 한 명이라도 경쟁력 있는 선수를 넣어야 하지 않겠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 선수가 어느새 27점을 기록했다.
 소란스럽던 장내가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지금까지 한국 선수 중에서 공식적으로 28점을 달성한 선수는 없었다.
 침 넘기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한 장내에 큐대가 공을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앙!
 40초의 준비 시간을 모두 사용한 이지운의 공이 기적적으로 이어졌다.
 28점.
 점수는 30점 대 39점.
 만약 여기서 이지운이 1점만 더 낸다면 하이런 세계 신기록을 달성함과 동시에 이지운의 개인 커리어에 가장 큰 대회의 우승 기록이 남게 되는 것이다.
 브롬달은 두 손을 모았다.
 땀이 질척했다.
 어느새 브롬달은 자신이 패배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지운의 신기록을 기원하고 있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대회였지만 자신의 패배로 새로운 천재가 역사를 써나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면 기꺼이 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큐대를 잡고 있는 이지운의 팔이 서서히 뒤로 당겨졌다.
 마지막 1점.
 26년간 한 번도 깨지지 않은 세계 신기록과 함께 새로운 역사로 향하는 이지운의 큐대가 마침내 공을 때렸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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