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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생존 1권 (1)

2019.07.02 조회 25,017 추천 126


 강자생존 1권 목차
 프롤로그
 Chapter 01. 능력의 각성
 Chapter 02. 생존하라!
 Chapter 03.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라!
 Chapter 04. 토벌과 보상
 Chapter 05. 안전지대
 Chapter 06. 좀비 잡고 레벨 업!
 Chapter 07. 득템하다
 Chapter 08. 파티 사냥
 Chapter 09. 강해지다
 Chapter 10. 새로운 능력
 Chapter 11. 또 다른 생존자들
 
 
 
 프롤로그
 
 “으아아아악!”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있던 재윤은 밖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에 깜짝 놀라 깨어 일어났다.
 
 ‘이게 무슨 소리?’
 
 무슨 큰 사고라도 난 것인가?
 재윤은 무심코 일어나 창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그런데 창문을 통해 보이는 장면은 실로 엽기적이었다.
 거리에서 웬 괴물이 사람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으적으적!
 
 잘못 봤나 했다.
 하지만 틀림이 없었다.
 늑대가 사냥감을 뜯어먹듯 정체불명의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다.
 
 ‘미친!’
 
 현실에서는 절대 벌어질 수 없는 끔찍한 상황.
 따라서 재윤은 지금이 꿈이라 생각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Chapter 01. 능력의 각성
 
 “사람 살려! 아아아악!”
 “으아! 이 괴물들 뭐야?”
 “사, 살려줘······ 아악!”
 
 순식간이었다.
 거리 도처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지 알 수 없는 괴물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커다란 입으로 살점을 마구 뜯어먹었다.
 
 촤각!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너무도 황당하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니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질 듯 엄습하는 피비린내.
 귀를 찢을 듯 들려오는 비명들.
 이건 꿈이다.
 현실이 아니다.
 아니, 꿈이어야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절대 현실이어서는 안 되니까.
 
 “꺄아악! 저, 저리 꺼져! 너희들 대체 뭐야? 아아아악!”
 
 그러나 현실은 부인한다고 부인되는 것이 아니었다.
 눈을 감고 외면한다고 지금 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이 없는 것이 될 수 없다.
 
 “사람 살려-!”
 
 사람들의 절규와 비명.
 재윤은 금세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멍하니 있다가는 그 역시 저 꼴이 되고 말 테니까.
 그는 빠르게 창문을 닫아 잠그고는 스마트폰을 살펴봤다.
 
 ‘미치겠네! 왜 안 켜지는 거냐?’
 
 어떻게 된 일인지 스마트폰이 꺼져 있었는데 켜지지 않았다.
 배터리가 나간 것일까?
 충전기에 연결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뭐야? 전기가 안 들어와.’
 
 TV는 물론이고, 냉장고도 꺼져 있다.
 전등도 마찬가지.
 지금이 밤이 아닌 낮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암흑 속에 갇혀 있어야 했을 것이다.
 
 ‘이게 대체?’
 
 재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이상하게 변했다.
 가족들은 어떻게 됐을까?
 평소처럼 일요일 아침 일찍 등산을 가셨을 부모님은?
 
 ‘설마?’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장면이 떠올랐지만 재윤은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일단 지금은 아무것도 속단하지 말자.
 그사이 빌라의 계단으로 괴물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재윤의 집이 있는 2층까지는 아니지만 1층의 현관문을 괴물들이 마구 두들겨 부수고 있었다.
 
 ‘이런 난리가 났는데 경찰이나 군대는 뭐 하는 거지?’
 
 물론 이런 위급 사태에서 경찰이나 군대가 놀고만 있지는 않겠지만, 지금 당장 재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괴물들은 곧 이곳 2층으로도 올라올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싸워야 한다.
 
 ‘목검은 도장에 있으니 망치라도.’
 
 재윤은 즉시 공구함에 있는 쇠망치를 꺼내 손에 쥐었다.
 
 콰아앙!
 
 “크르르르!”
 
 그사이 마치 수류탄이라도 터진 듯한 굉음과 함께 아랫집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으아아악! 저, 저리 나가!”
 
 뭔가가 깨지고 박살 나고 그러다 결국 울부짖는 소리.
 
 “아악! 아아아악!”
 
 비명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저토록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는 것일까?
 일순 비명이 그쳤고, 괴물이 으적으적 뭔가를 씹어대는 소리만 들려왔다.
 
 ‘젠장!’
 
 현관문을 부숴버릴 정도의 괴력이라니!
 그렇다면 역시나 재윤의 집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으아아악! 살려줘!”
 “크르르르!”
 “아악!”
 
 아랫집뿐 아니라 도처에서 들려오는 비명들.
 재윤은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후! 꿈이면 제발 좀 깨어나라!’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망치를 쥐고 있는 팔이 떨렸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고 숨 막힐 듯 엄습해오는 공포에 두 다리가 떨려 서 있기도 힘들었다.
 
 쾅!
 
 기어코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재윤이 있는 201호의 현관문을 뭔가가 세차게 후려치기 시작한 것이다.
 
 “크르르르!”
 
 괴물의 거친 숨소리.
 현관의 벽이 그대로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쾅! 쾅쾅!
 
 재윤은 망치를 움켜쥔 채 현관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침착해! 겁먹지 말자!’
 
 재윤은 검도(劍道) 공인 2단이다.
 검도 수련만 5년!
 솔직히 상대가 사람이라면 겁날 것 없지만.
 
 ‘이걸로는 승산이 없어.’
 
 총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곰보다 강해 보이는 괴물을 자그만 망치 하나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단번에 머리를 깨부수지 않으면 끝장이야.’
 
 어쨌든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 괴물이 들어오는 순간의 틈을 노려 머리를 후려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
 
 갑자기 시간이 멈춘 듯 사방이 고요해지더니, 어디선가 환한 빛이 일어나 재윤의 몸을 휘감았다.
 
 [특별한 각성의 빛이 당신을 비춥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알 수 없는 중성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음성이었다.
 
 ‘지금 누가 말을 하는 거지?’
 
 그 순간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눈앞에 환상처럼 뭔가가 번쩍임과 동시에 투명한 푸른 빛으로 이루어진 글자와 숫자들.
 
 [이곳은 시간의 틈새.]
 [특별한 행운이 작용해 당신에게 각성의 기회가 도래하였습니다.]
 [각성에 성공하면 당신은 각성자로서의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름】 강재윤
 【레벨】 1
 【생명력】 ??/??
 【파투스】 ??/??
 【스탯】 근력 ?? 체력 ?? 민첩 ?? 지능 ??
 【잔여 스탯 포인트】 0
 【능력】 없음
 【특성】 없음
 
 게임에서나 보던 상태 창이었다.
 현재 레벨은 1.
 능력은 없고, 각종 상태는 모두 물음표로 되어 있었다.
 
 [각성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시험을 통해 당신의 초기 스탯이 결정됩니다.]
 [초기 스탯들의 총합이 16 미만일 경우 당신은 각성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 경우 이곳에서의 모든 기억이 지워지고 평범한 상태로 돌아갑니다.]
 
 ‘각성을 위한 시험이라고?’
 
 저 상태 창은 대체 뭐고 시험은 또 뭐냐?
 현관 밖에서 괴물이 문을 부수고 있는 와중에 무슨 시험?
 
 [시험의 종목은 운명의 룰렛을 통해 무작위로 결정됩니다.]
 [그 종목은 당신에게 매우 유리할 수도 있고, 혹은 매우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건 당신의 행운에 달려 있습니다.]
 
 운명의 룰렛이라니?
 
 [먼저 당신의 근력을 시험합니다.]
 [운명의 룰렛이 돌아갑니다.]
 
 재윤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험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팔 굽혀 펴기]
 [턱걸이]
 [벤치 프레스]
 ······.
 
 마치 카지노의 슬롯머신이 돌아가듯 재윤의 시야에 갖가지 반짝이는 글자들이 적힌 카드들이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팔씨름]
 
 그러다 환한 빛과 함께 정지된 카드에는 팔씨름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신의 근력 시험 종목은 팔씨름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당신 앞에 나타난 인형과 팔씨름을 하십시오!]
 
 곧바로 앞에 웬 마네킹처럼 생긴 인형이 하나 번쩍 나타났다.
 마치 SF 영화에서 보던 로봇과 비슷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에 감정 없는 눈빛으로 재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
 
 설마 인형?
 대체 어떻게 집안에 들어온 거지?
 게다가 현관문을 부수고 있던 괴물은 왜 지금은 잠잠한 거냐?
 이런 와중에 근력 테스트를 한다니!
 
 ‘이거 진짜 뭐야?’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마!”
 
 인형이 다가오자 재윤은 망치를 위로 쳐들었다.
 그러나 인형은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팔씨름 자세를 취했다.
 
 “뭐 하자는 거냐?”
 
 재윤은 황당했지만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인형 반대편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어서 인형과 팔씨름을 시작하십시오.]
 [거부하면 기권패로 당신의 초기 근력 스탯은 0으로 확정됩니다.]
 
 음성이 경고했다.
 황당했지만 재윤은 왠지 기권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어디 해보자.”
 
 곧바로 팔씨름이 시작됐고, 재윤은 가볍게 인형의 팔을 넘겨버렸다.
 인형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어린아이 수준이었으니 이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단계 근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2단계 근력 시험이 시작됩니다.]
 
 인형이 다시 팔씨름 자세를 취했다.
 아까보다 세진 힘!
 그러나 재윤은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인형의 팔을 넘겼다.
 
 [2단계 근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3단계 근력 시험이 시작됩니다.]
 
 또다시 시작된 팔씨름!
 인형의 힘은 점점 더 강해졌지만 재윤은 여유롭게 이겼다.
 검도를 하며 꾸준히 근력 운동도 해온 덕분에 팔 힘에는 자신 있었다.
 
 [3단계 근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4단계 근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순식간에 네 판을 이겼지만, 5단계부터는 쉽지 않았다.
 4단계 정도가 평범한 성인 남성의 힘이라면, 5단계는 운동 좀 한 남성의 힘이랄까?
 
 ‘이놈! 제법 만만치 않네.’
 
 그래도 재윤이 힘을 주자 인형의 팔이 넘어갔다.
 
 [5단계 근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문제는 6단계였다.
 정말로 죽을 힘을 다해봤지만, 6단계는 역부족이었다.
 가까스로 버티던 재윤의 팔이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6단계 근력 시험 통과에 실패했습니다.]
 [당신의 초기 근력 스탯은 5입니다.]
 
 그와 함께 물음표로 되어 있던 상태창의 근력 스탯이 5로 변했다.
 그런데 숨 돌릴 사이도 없이 곧바로 다른 시험이 시작됐다.
 
 [각성의 빛이 당신의 체력을 시험합니다.]
 [운명의 룰렛이 돌아갑니다.]
 
 아까처럼 반짝이는 카드들이 또 나타나 요란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달리기]
 [당신의 체력 시험 종목은 달리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인형을 따라 달리십시오!]
 
 인형이 벌떡 일어나더니 조깅을 하듯 달렸다.
 어느덧 주변은 거실이 아닌 널따란 운동장과 같은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재윤은 마치 홀린 듯 인형의 뒤를 따라 서서히 달리고 있었다.
 그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뭔가에 의해 조종이 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별 이상한 꿈을 다 꾼다.’
 
 재윤은 지금 상황이 꿈이라 확신했다.
 그렇다.
 꿈일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질 거라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마치 그런 재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꿈이 아닌 현실입니다.]
 [각성자로서의 자격을 유지하지 못하면 당신은 변화된 환경에서 생존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살고 싶다면 최선을 다해 시험에 응해주십시오.]
 
 ‘미친!’
 
 재윤은 절대 현실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라면?
 그럴 리 없지만 정말로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면?
 
 ‘일단 뛰자!’
 
 [1단계 체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뛰다 보니 1단계 체력 시험을 통과했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곧바로 2단계 체력 시험이 시작되었지만, 방식은 동일했다.
 인형의 속도가 약간 더 빨라진 것 외에는 다름이 없었다.
 
 [2단계 체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3단계 체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4단계가 되자 인형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슬슬 벅차네.’
 
 재윤은 숨이 차올라 당장이라도 멈추고 싶었지만 기를 쓰고 뛰었다.
 
 [4단계 체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휴! 성공!’
 
 간신히 4단계 통과!
 계속해서 5단계로 넘어갔다.
 인형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으! 죽겠구나! 더 이상은 못 뛰겠어!”
 
 재윤은 결국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5단계 체력 시험 통과에 실패했습니다.]
 [당신의 초기 체력 스탯은 4입니다.]
 
 신기하게도 시험이 끝나자 언제 뛰었냐 싶었을 정도로 몸에 기운이 돌아왔다.
 
 【스탯】 근력 5 체력 4 민첩 ?? 지능 ??
 
 [각성의 빛이 당신의 민첩을 시험합니다.]
 [운명의 룰렛이 돌아갑니다.]
 
 [동작 따라 하기]
 
 [당신의 민첩 시험 종목은 동작 따라 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인형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세요.]
 
 그와 함께 인형이 앞에서 좌우로 움직이며 두 팔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동작이다 보니 재윤은 어렵지 않게 따라 했다.
 
 [1단계 민첩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1단계는 가볍게 통과!
 2단계가 되자 움직임에 리듬이 들어갔다.
 3단계는 마치 춤을 추듯 간단한 웨이브 동작까지.
 
 [2단계 민첩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3단계 민첩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이거 몸치인 사람들은 최악의 시험이겠네.’
 
 동작을 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특히 박자가 들어가게 되면 운동 신경이 나쁜 사람은 허둥대기 마련이었다.
 
 [4단계 민첩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5단계 민첩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다행히 검도를 꾸준히 해온 재윤의 운동 신경은 제법 좋은 편.
 게다가 어디 가서 춤 못 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을 만큼 수준급 춤 실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6단계가 되자 재윤은 인형의 동작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5단계도 간신히 통과했으니까.
 
 [6단계 민첩 시험 통과에 실패했습니다.]
 [당신의 초기 민첩 스탯은 5입니다.]
 
 재윤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근력 시험도 그러더니 6단계는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넘을 수 없는 것 같은데.’
 
 【스탯】 근력 5 체력 4 민첩 5 지능 ??
 
 ‘이게 지금 높은 거야? 낮은 거야?’
 
 숫자만 보면 왠지 한숨이 나오는 스탯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탯의 총합이 16 미만인 경우에는 각성자로서의 능력을 상실한다고 했는데?’
 
 현재까지의 총합은 14.
 그렇다면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다.
 이제 지능에서 2만 얻으면 각성자로서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설마 2는 얻을 수 있겠지.’
 
 장담할 일이 아니다.
 어떤 종목으로 시험을 볼지 모르니 말이다.
 
 ‘하긴 최악의 경우에 1이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잖아.’
 
 불현듯 재윤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여기는 시간의 틈새라고 했는데.’
 
 황당한 일이지만 그 말대로라면 시간이 마치 정지되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
 잠시 후 멈췄던 시간은 다시 흐를 것이다.
 여기서 각성자로서 뭔가 이능력을 얻지 못하면 재윤은 아까의 그 상황 그대로 돌아가 망치 하나로 괴물들과 싸워야 한다.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지능 시험에서 어떻게든 2단계는 통과해야 해.’
 
 [각성의 빛이 당신의 지능을 시험합니다.]
 [운명의 룰렛이 돌아갑니다.]
 
 마지막 지능 스탯을 결정하기 위한 시험!
 반짝이는 글자들이 적힌 카드들이 빠르게 회전했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종목은 뜻밖에도······.
 
 [장기]
 
 [당신의 지능 시험 종목은 장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인형과 장기를 두어 승리하세요.]
 
 놀랍게도 장기(將棋)였다.
 바둑 장기 할 때 바로 그 장기 말이다.
 
 ‘장기라고?’
 
 재윤의 두 눈이 일순 묘하게 반짝였다.
 다른 것도 아닌 장기라!
 그는 사실 장기광이었다.
 프로 기사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장기 못 둔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그런데 운명의 룰렛이 지능 스탯을 결정하는 시험 종목으로 장기를 결정할 줄이야.
 
 ‘그래도 운발이 따라주는 건가?’
 
 혹시라도 수학 문제 같은 걸 푸는 것이 나올까 봐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장기라면 2단계 통과는 무리 없을 테니까.
 
 [먼저 장기를 두는 방법을 설명하겠습니다.]
 
 곧바로 앞쪽에 장기판과 장기알의 환영이 나타났다.
 알 수 없는 음성은 장기를 두는 방법을 기초부터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장기를 둘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처음 장기를 배운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장기를 둬봤던 사람에게는 매우 유리한 상황.
 
 [1단계 지능 시험이 시작됩니다.]
 [인형과 장기를 두어 승리하십시오.]
 
 재윤은 차분하게 장기를 두기 시작했다.
 
 [1단계 지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1단계 시험은 아주 싱겁게 끝났다.
 
 [2단계 지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3단계 지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4단계 지능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재윤은 무아지경 속에서 장기에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4판을 내리 이겼다.
 
 ‘후! 막판은 운이 정말 좋았다.’
 
 재윤은 사실 4단계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더니 이길 수 있었다.
 인형의 장기 실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4단계는 꽤나 난전이었던 것이다.
 
 ‘이기긴 했지만 다음 판부터는 쉽지 않겠네.’
 
 아니나 다를까.
 다음 판에서는 초반부터 점차 밀리기 시작해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5단계 지능 시험 통과에 실패했습니다.]
 [당신의 초기 지능 스탯은 4입니다.]
 
 [당신의 초기 스탯 총합은 18.]
 [각성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찬란한 빛이 일어나 재윤의 몸을 휘감았다.
 
 [당신은 각성자가 되었습니다.]
 [스탯에 맞게 당신의 육체를 재구성합니다.]
 
 【이름】 강재윤
 【레벨】 1
 【생명력】 40/40
 【파투스】 18/18
 【스탯】 근력 5 체력 4 민첩 5 지능 4
 【잔여 스탯 포인트】 0
 【코인】 0
 【전투 능력】 없음
 【생활 능력】 없음
 【특성】 없음
 
 재윤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눈앞에 갱신된 상태 창을 쳐다봤다.
 각성에 성공한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도 지금 상황이 잘 믿기지 않았다.
 무슨 게임도 아니고 상태 창과 스탯, 레벨이라니!
 
 ‘게다가 몸도 좀 이상해진 것 같아.’
 
 딱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본래의 몸이 아닌 것 같은 상태.
 스탯에 맞게 육체가 재구성되었다고 하더니 혹시 그것 때문인 것일까?
 
 ‘아, 이게 진짜 현실 맞나?’
 
 [각성자가 된 당신에게 무작위로 고유 특성이 부여됩니다.]
 [운명의 룰렛이 돌아갑니다.]
 
 [몬스터 지식 획득(S)]
 
 곧바로 설명 창이 하나 나타나 반짝였다.
 
 *몬스터 지식 획득(S)
 -몬스터에 대한 지식 획득 확률 대폭 증가
 -몬스터에 대한 상위 지식 획득 확률 대폭 증가
 
 [적과 전투를 벌이거나 전투에서 승리할 시 일정한 확률로 대상에 대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얻으면 대상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여 전투를 유리하게 수행할 수 있으며, 상위 지식을 얻을수록 전투는 더욱 수월해집니다.]
 
 그렇게 재윤은 몬스터 지식 획득(S)이라는 괴상한 특성 하나를 얻었다.
 곧바로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각성자가 된 당신에게 전투 능력이 무작위로 하나 주어집니다.]
 
 ‘오! 전투 능력?’
 
 재윤의 눈이 빛났다.
 특성을 얻긴 했지만 그건 전투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이 아니다.
 현관 앞에 나타난 괴물과 싸우려면 그보다는 전투 능력이 훨씬 중요할 것이다.
 
 ‘드디어 각성자로서의 진정한 능력이 주어지는 건가?’
 
 주사위가 돌아가듯 무작위로 얻는 것이니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제발! 강한 능력이 나오길!’
 
 [운명의 룰렛이 돌아갑니다.]
 [능력 〈바람의 화살〉을 배웠습니다.]
 
 *바람의 화살(Lv1)
 -바람의 화살을 하나 소환해 단일 대상을 공격한다.
 -효과: 대상에게 〈20+지능 스탯의 100%〉만큼 피해를 준다.
 -유효 거리 1m
 -파투스 1 소모
 -시동어: 바람의 화살
 -재사용 대기 시간: 30초
 
 바람의 화살이라!
 판타지 소설에서나 보던 바람 계열의 마법!
 재윤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정말로 바람으로 화살을 만들어 적에게 날릴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거리가 1미터?’
 
 설명 창을 잘못 봤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진짜 1미터네.’
 
 고작 1미터 앞의 적에게만 타격을 줄 수 있다니!
 게다가 한 번 펼치면 재사용 대기 시간이 무려 30초!
 왠지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각성자 시험 통과 보상으로 100코인을 얻었습니다.]
 [코인으로 당신의 전투 능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바람의 화살
 -현재 단계: Lv1
 -Lv2로 강화 시: 100코인 소모
 
 [현재 당신의 코인 잔액은 100입니다.]
 [100코인을 소모해 바람의 화살(Lv1)을 Lv2로 강화하겠습니까?]
 
 이런 건 주저할 필요가 없다.
 
 “예! 강화합니다!”
 
 잠시 후면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괴물들과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꿈이라면 다행이지만, 진짜로 지금이 현실이라면 그 괴물들과 맞서 싸워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능력을 올리고 보자.’
 
 [1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바람의 화살이 Lv2가 되었습니다.]
 
 *바람의 화살(Lv2)
 -바람의 화살을 하나 소환해 단일 대상을 공격한다.
 -효과: 대상에게 〈40+지능 스탯의 200%〉만큼 피해를 준다.
 -유효 거리 2m
 -파투스 1 소모
 -시동어: 바람의 화살
 -재사용 대기 시간: 29초
 
 ‘좋아! 거리가 늘었네.’
 
 유효 거리가 1미터나 늘어났고, 재사용 대기 시간은 1초 줄었다.
 또한 대미지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재윤의 지능 스탯이 4이니, 바람의 화살을 펼치면 도합 48포인트의 대미지를 준다는 뜻.
 그게 과연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바람의 화살
 -현재 단계: Lv2
 -Lv3으로 강화 시: 200코인 소모
 
 [현재 당신의 코인 잔액은 0입니다.]
 [코인이 부족해 더 이상 강화할 수 없습니다.]
 
 [시간의 틈새가 곧 사라집니다.]
 [전투에 대비하세요.]
 
 갑자기 주변 공간이 환영처럼 일그러지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눈부신 빛무리가 시야를 가렸다가 사라진 순간.
 
 콰앙! 쾅쾅쾅!
 
 귀를 찢는 듯 엄습하는 굉음!
 현관문을 뭔가가 후려치는 소리였다.
 
 ‘미친! 진짜로 돌아왔어!’
 
 재윤은 현관문 바로 안쪽에서 자그만 망치를 오른손에 쥔 채로 서 있는 상태.
 제발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했는데, 역시나 현실이었다.
 
 콰아앙!
 
 그때 현관문이 너무도 무력하게 무너져내렸다.
 동시에 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2미터쯤 되는 신장.
 악어의 머리에 인간의 몸체를 가진 기괴한 형상.
 꿈에서도 보지 못했던 끔찍한 괴물이었다.
 
 “쿠오오오오!”
 
 괴물은 재윤을 보자 입을 크게 벌려 포효를 했다.
 
 ‘윽!’
 
 재윤은 하마터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각오는 했지만 막상 눈앞에 괴물이 나타나니 제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역시 망치로 저놈과 싸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어.’
 
 그러나 이대로 겁먹은 채 있으면 괴물의 간식거리가 되고 만다.
 지금 믿을 것은 하나뿐.
 바로 조금 전 각성하며 얻은 능력이었다.
 게임의 스킬과 같은 능력인 바람의 화살!
 
 ‘정말로 그게 될지 모르지만.’
 
 재윤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크게 외쳤다.
 
 “바람의 화살!”
 
 그러자 앞쪽에 녹색 빛의 바람이 모여들더니 투명한 화살 형상으로 변했다.
 
 [바람의 화살이 소환되었습니다.]
 [파투스가 1 소모되었습니다.]
 [파투스 17/18]
 
 ‘진짜로 되네.’
 
 정말로 바람의 화살이 소환되자 재윤은 신기했다.
 파투스라는 것은 능력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인 모양이었다.
 
 ‘근데 이걸 어떻게 발사하는 거지?’
 
 [왼손으로 타깃 포인트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오른손을 휘두르면 타깃 포인트를 향해 화살이 발사됩니다.]
 
 ‘타깃 포인트?’
 
 그러고 보니 괴물의 몸체 부근에 붉은 십자 모양의 포인트가 나타나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왼손으로 위치를 조종한다고?’
 
 황당하지만 지금은 머뭇거릴 때가 때가 아니었다.
 괴물이 달려들기 전에 일단 어디든 한 방 맞춰야 한다.
 경황 중이라 재윤은 괴물의 가슴팍에 타깃 포인트를 이동시켰다.
 
 “에잇!”
 
 이어서 망치를 쥔 오른손을 살짝 휘두르자 화살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가 괴물의 가슴에 적중했다.
 
 파악!
 
 쇠처럼 단단해 보이는 근육질의 가슴 일부가 퍽 터져나가며 시뻘건 피가 튀었다.
 
 “쿠어어억!”
 
 괴물이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생각보다 위력이 꽤 센데?’
 
 놀랍게도 바람의 화살은 총을 쏜 것 못지않은 위력이었다.
 괴물 역시 경악한 듯 두 팔로 상체를 가리면서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이때야. 한 방 더!’
 
 머뭇거릴 때가 아니었다.
 이 틈을 타서 놈을 완전히 해치우지 않으면 오히려 당하고 말 테니까.
 
 “바람의 화살!”
 
 [재사용 대기 중이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젠장!’
 
 그러고 보니 재사용 대기 시간이 있었다.
 바람의 화살(Lv2)을 한 번 펼친 후 다시 펼치기 위해서는 29초를 기다려야 한다.
 
 [재사용 대기 시간 29초 중 3초 경과.]
 [26초 후 사용 가능합니다.]
 
 앞으로 26초.
 재윤은 1초가 1분처럼 느껴졌다.
 
 ‘26초! 버틸 수 있을까?’
 
 단 몇 초면 괴물이 성큼 달려들어 재윤의 머리를 뜯어버리고도 남을 시간.
 
 “가까이 오기만 해! 죽여버린다!”
 
 재윤은 최대한 눈에 힘을 주고 괴물을 노려봤다.
 
 ‘쫄지 마! 위축되면 끝이다.’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면 괴물은 그 즉시 달려들 것이다.
 재윤은 망치를 번쩍 쳐든 채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며 괴물을 노려봤다.
 그러나 괴물은 재윤의 위협에 속지 않았다.
 놈은 기다란 두 팔로 상체와 머리를 가린 채 성큼 현관을 통과했다.
 
 “어딜 들어와! 죽엇!”
 
 재윤의 망치가 빠르게 괴물의 팔을 찍었지만, 놈은 마치 방패로 망치를 쳐내듯 한 팔로 막아낸 후 그대로 달려들었다.
 위아래로 쩍 벌어진 악어 형상의 입!
 재윤은 아슬아슬하게 뒤로 물러나 괴물의 공격을 피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그의 머리는 괴물의 입속에 있을 것이다.
 
 “크르르르!”
 
 그러자 괴물이 팔과 주둥이를 이용해 공격을 해왔다.
 재윤은 망치로 놈의 손과 머리를 있는 힘껏 치며 다시 뒤로 물러났다.
 
 ‘손목! 머리!’
 
 퍽! 퍽!
 
 쇠망치에 맞았으니 뼈가 부서질 만도 하지만 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거푸 날아드는 재윤의 망치를 손으로 후려쳐 날려버렸다.
 
 ‘으! 이런!’
 
 손에서 망치가 사라진 재윤은 다급히 주방으로 뛰어가 식칼을 집어 들었다.
 
 “죽어! 이 괴물 새끼야!”
 
 식칼을 마구 찔렀지만 괴물의 몸에 박히지 않았다.
 오히려 재윤의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미치겠네! 무슨 쇳덩이를 향해 칼을 찌르는 것 같아.’
 
 바람의 화살이 놈에게 중상을 입을 만큼 큰 타격을 준 것과는 달리 망치나 식칼 공격은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나마 놈이 부상을 입은 상태라 움직임이 느려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재윤은 이미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윽!”
 
 그사이 식칼 또한 괴물의 손에 날아갔다.
 맨손이 된 재윤은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바람의 화살!”
 
 [재사용 대기 중이라 사용할 수 없습니다.]
 [14초 후 사용 가능합니다.]
 
 쿨 타임이 돌아오려면 아직도 14초나 남았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재윤은 주방의 식탁 주위를 좌우로 돌며 괴물을 따돌렸다.
 무작정 도망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장애물을 이용해 시간을 끄는 게 최선이었다.
 
 “쿠오오오!”
 
 그러자 괴물이 화가 난 듯 포효를 지르더니 훌쩍 식탁을 넘어 덤벼들었다.
 
 “젠장!”
 
 재윤이 옆으로 뛰며 의자를 집어 던졌지만 괴물의 손짓 한 번에 부서졌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방안으로 피했다.
 
 콰아앙!
 
 방문을 닫았지만 괴물이 후려치자 그대로 부서졌다.
 하긴 현관문도 부순 괴물의 괴력을 목재로 만들어진 방문이 무슨 수로 버틸 수 있을까?
 괴물이 문을 부수고 방안으로 성큼 뛰어들었다.
 재윤은 문 옆 벽에 기대있다가 괴물이 안으로 들어가자 그 틈을 이용해 다시 거실로 뛰어나갔다.
 
 “쿠오오오!”
 
 괴물이 즉각 뒤따라오며 재윤의 등을 후려쳤다.
 
 “크윽!”
 
 재윤은 등이 그대로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앞으로 나가떨어졌다.
 
 ‘죽는 건가?’
 
 정말로 딱 죽는다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 환청처럼 들리는 음성.
 
 [바람의 화살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지났습니다.]
 [바람의 화살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크르르르!”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보니 괴물이 입을 쩍 벌린 채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달려들고 있었다.
 어디서 힘이 났는지 재윤은 필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려 피했다.
 
 “바람의 화살!”
 
 그리고는 바람의 화살을 소환했다.
 타깃 포인트는 괴물의 머리!
 소환된 바람의 화살이 괴물의 머리에 작렬한 순간, 놈의 머리가 마치 망치에 맞은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쿠어어억!”
 
 그것이 끝이었다.
 머리가 터진 괴물의 몸체는 잠시 난동을 부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크로거에 대한 E급 지식을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동시에 재윤의 몸을 신비한 빛이 휘감았다.
 
 
 
 Chapter 02. 생존하라!
 
 ‘후우! 죽다 살아났네.’
 
 재윤은 극적으로 괴물을 해치우고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괴물들이 사방에서 날뛰고, 그는 각성을 했다.
 그 각성의 능력으로 집안에 들어온 괴물과 싸워 간신히 이긴 것이다.
 
 ‘진짜 세상이 왜 이렇게 변한 거야?’
 
 이제 재윤은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닌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조금 전 등이 찢어졌을 때의 그 끔찍했던 고통.
 꿈이라면 수십 번은 더 깨어났을 것이다.
 
 ‘지금은 그 고통도 사라졌고.’
 
 괴물에게 맞은 등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흘러내렸는데, 레벨이 오르는 순간 언제 부상을 입었냐는 듯 말끔하게 나았다.
 정신 줄을 놓게 만들었던 끔찍한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
 
 “으아아악!”
 “아아악!”
 
 그때 밖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누군가가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소리였다.
 아까 봤지만 악어 머리 괴물은 한둘이 아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재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은 살아야 한다.’
 
 넋 놓고 있다가는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다.
 천만 다행히도 각성이라는 걸 했다.
 살아남으려면 그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름】 강재윤
 【레벨】 2
 【생명력】 40/40
 【파투스】 18/18
 【스탯】
 근력 5 [+]
 체력 4 [+]
 민첩 5 [+]
 지능 4 [+]
 【잔여 스탯 포인트】 1
 【코인】 1
 【전투 능력】 바람의 화살(Lv2)
 【생활 능력】 없음
 【특성】 몬스터 지식 획득(S)
 【보유 지식】 크로거(E)
 
 ‘보너스 스탯이 생겼네.’
 
 레벨이 올랐지만 보통의 게임에서처럼 생명력의 최대치가 오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생명력과 파투스가 모두 회복되었을 뿐.
 거기에 보너스 스탯이 1포인트 주어진 것이 달라진 점이었다.
 각 스탯에 [+]가 생긴 걸 보면 이 보너스 스탯을 분배할 수 있다는 뜻.
 
 ‘겨우 1포인트?’
 
 그러나 우습게 생각할 포인트가 아니었다.
 이 1포인트를 어디에 분배하느냐에 따라 생존의 여부가 결정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근력은 올려봤자 소용없고.’
 
 망치와 칼로 찔러도 대미지를 줄 수 없는 괴물들을 상대로 근력을 올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체력을 올리면 생명력이 올라가겠지.’
 
 무엇 때문에 게임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는지 모른다.
 어쨌든 이런 경우 일단 생명력을 최대한 높여두는 것이 생존에 유리할지 모르지만.
 
 ‘그냥 지능을 올려?’
 
 지능을 올리면 바람의 화살의 대미지가 올라간다.
 근력과 달리 지능은 전투력을 높일 수 있는 스탯인 것이다.
 
 ‘아니야.’
 
 재윤은 짧지만 깊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지능 1을 올려봤자 대미지가 크게 오르는 것도 아니고, 체력도 조금 올려봤자 괴물에게 맞으면 다 소용없어.’
 
 한 대 맞아봐서 안다.
 생명력을 조금 높인다고 해서 버틸만한 충격이 아니었다.
 
 ‘맞지 않는 게 최선이다.’
 
 맞지 않고 능력의 재사용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버티는 것!
 그러려면 잘 피하는 능력인 민첩을 올려야 한다.
 
 ‘민첩에 분배!’
 
 재윤은 상태 창의 민첩 옆에 있는 [+] 버튼에 손가락을 슬쩍 가져다 댔다.
 그러자.
 
 [민첩에 보너스 스탯 1포인트를 분배하겠습니까?]
 
 곧바로 음성이 들려왔다.
 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생명력】 40/40
 【파투스】 19/19(↑1)
 【스탯】
 근력 5
 체력 4
 민첩 6(↑1)
 지능 4
 
 그러자 민첩이 6이 되고, 파투스라는 것도 1이 증가했다.
 파투스는 전투 능력인 바람의 화살을 펼치는데 필요한 에너지.
 이로써 재윤은 바람의 화살을 19번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근데 파투스는 어떻게 회복하는 거지?’
 
 소모된 파투스가 레벨이 오르는 순간 회복되는 건 이미 경험했다.
 그것 말고 또 다른 방법으로 회복할 방법은 없는 건가?
 안타깝게도 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음성도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일단은 파투스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총알을 아끼듯 최대한 신중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민첩을 1 올렸더니 몸이 상당히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물론 실제로 괴물과 싸울 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직접 겪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그 밖에 또 하나 알게 된 내용.
 
 【보유 지식】
 -크로거(E)
 
 재윤이 쳐다보자 설명과 함께 악어 머리 괴물의 그림이 환상처럼 나타났다.
 
 *크로거
 -획득 지식 등급: E
 -크로거에게 주는 피해 5% 증가
 
 ‘조금 전 죽인 그 괴물이 크로거라는 놈인가 보네.’
 
 크로거에 대한 E 등급 지식을 얻은 덕분에 재윤은 앞으로 그놈들과 싸울 때 약간 유리해진 것이다.
 대미지를 5% 더 줄 수 있게 됐으니까.
 
 ‘지식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걸 의미하는 거였어?’
 
 한 놈을 죽였는데 이런 지식을 얻을 줄이야.
 재윤이 가진 특성인 몬스터 지식 획득(S).
 설명을 보면 지식 획득 확률이 대폭 올라간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 특성의 능력이 작용한 모양이었다.
 
 “크르르르!”
 
 바로 그때 크로거 한 마리가 또 나타났다.
 현관문이 부서진 상태라 놈은 곧바로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바람의 화살!”
 
 재윤은 미리 화살을 소환한 후 놈이 2미터 이내로 접근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붉은 십자 형상의 타깃 포인트가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이미 두 번 펼쳐본 경험이 있어 감을 잡았다.
 
 ‘침착하자.’
 
 사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바람의 화살이라는 능력을 얻었어도 괴물이 달려드는 빠른 순간 중에 타깃 포인트를 정확히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검도를 5년 이상 수련해온 재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왼쪽 눈!’
 
 재윤은 크로거의 왼쪽 눈에 타깃 포인트를 위치시켰다.
 동시에 오른손을 휘두르자 화살이 빛살처럼 날아갔다.
 
 파악!
 
 화살이 눈에 적중하자 크로거는 마치 거대한 해머로 머리를 맞은 듯 뒤로 나가떨어졌다.
 
 “꾸어어억!”
 
 그러나 그렇게 뒤로 넘어갔던 크로거는 곧바로 벌떡 일어났다.
 
 ‘역시나 한 방에는 안 죽네.’
 
 치명적인 급소 부위에 적중시켰으니 혹시라도 한 방에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아니었다.
 
 “크워어어!”
 
 크로거는 머리의 일부가 함몰되듯 엉망이 된 상태에서도 여전히 흉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어떻게 저런 상태로 살아있을 수 있는 건가?
 하긴 달리 괴물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29초만 버티면 돼.’
 
 재윤은 괴물의 공격을 피하며 거리를 벌렸다.
 다른 공격은 통하지 않고 오직 바람의 화살로만 타격을 줄 수 있으니 재사용 대기 시간까지 버티는 게 관건이었다.
 이것 때문에 보너스 스탯 1포인트를 민첩에 분배했다.
 그래서일까?
 약간이지만 놈의 움직임이 둔해 보였다.
 물론 놈의 한쪽 눈이 날아가고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탓도 있겠지만, 재윤의 늘어난 민첩도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29초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무사히 지나갔다.
 
 “바람의 화살!”
 
 크로거의 오른쪽 눈에 타깃 포인트를 위치시킨 후 발사!
 
 파악!
 
 화살에 맞는 순간 크로거는 오른쪽 눈뿐 아니라 남아있던 머리도 터지듯 날아가버렸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아까에 비해 훨씬 여유롭게 해치웠다.
 재윤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번에는 레벨이 그대로야.’
 
 왜 그런지는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게임의 방식대로라면, 다음 단계 레벨 업에 대한 요구 경험치가 그만큼 늘어서일 테니까.
 
 【파투스】 17/19
 
 파투스는 2포인트가 소모된 상태로 회복되지 않았다.
 바람의 화살을 앞으로 17번만 쓸 수 있다는 뜻.
 
 ‘두 방에 한 놈씩이니까 최소 여덟 놈은 잡을 수 있어. 설마 그 정도면 레벨이 오르겠지.’
 
 재윤은 일단 레벨을 하나라도 더 올려볼 생각이었다.
 
 ‘레벨을 올리려면 나가서 그놈들을 해치워야 한다.’
 
 어차피 현관문이 부서진 이상 집 안은 더 이상 안전한 장소라고 볼 수 없다.
 차라리 나가서 괴물을 몇 놈이라도 해치우고 레벨을 올리는 것이 오히려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레벨이 오르면 보너스 스탯을 얻게 된다.
 또한 바람의 화살을 쓸 수 있는 파투스의 최대치도 늘어나게 되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었다.
 능력의 재사용 대기 시간 때문에 지금 재윤은 한 번에 한 마리의 크로거만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으니까.
 
 ‘일단 이 건물에 있는 놈들부터!’
 
 재윤은 거실 바닥에 떨어진 망치를 주워 들었다.
 어차피 이 망치를 휘둘러봤자 크로거들에게 별 타격을 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맨손보다는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두 분은 무사하실까?’
 
 재윤은 문득 다시 부모님이 걱정되었다.
 계속 좋지 않은 예감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혹시라도 각성자가 되었다면 살아계실 수도 있겠지만.’
 
 과연 자신에게 주어졌던 그러한 행운이 부모님에게도 주어졌을까?
 지속적으로 엄습하는 불길한 예감!
 정말로 부모님이 괴물들에게 죽었다면?
 재윤은 그 상상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속단하지 마! 아무것도!’
 
 그래 봤자 지금 이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럴수록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제발! 괴물들을 피해 꼭꼭 숨어 계세요.’
 
 재윤은 망치를 꽉 쥐고 현관을 나섰다.
 그 순간 바로 옆집인 202호의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현관문이 부서진 것은 재윤의 집과 동일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거실에 두 명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는 것.
 그들은 최근에 이사 온 신혼부부였다.
 둘 다 가슴 부위가 심하게 훼손된 채로 죽어 있는 걸 보니 크로거들이 특정 부위 즉, 심장을 즐겨 먹는 것이 분명했다.
 
 ‘이 미친 괴물 새끼들! 다 죽여버린다.’
 
 재윤은 핏발 선 눈으로 202호 안을 살폈지만, 크로거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을 이 지경으로 만든 크로거가 재윤에게 죽은 두 마리의 크로거 중 하나일 수도 있었다.
 
 ‘위층들부터 살피고 아래로 내려가자.’
 
 재윤이 사는 집은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이루어진 다세대 주택 건물의 2층에 위치해 있다.
 각층마다 두 세 대씩 도합 10세대가 살고 있는 것이다.
 
 ‘비명소리도 없는 걸 보니 다 죽은 건가?’
 
 아까까지는 건물 밖은 물론 위아래 층에서도 살려달라는 비명이 계속 들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소리조차 없었다.
 
 “바람의 화살!”
 
 3층 계단을 오르며 재윤은 화살을 미리 소환했다.
 소환한 상태에서 오른손을 휘두르기 전에는 화살이 날아가지 않는다.
 그사이 터득한 요령.
 따라서 화살을 이렇게 미리 소환해두면 괴물이 나타났을 때 즉각 공격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3층에 오르자 301호와 302호의 내부가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양쪽 다 현관문이 부서진 상태이고 집 내부는 아수라장이었다.
 
 ‘다 죽었어.’
 
 크로거는 없었고 시체들만 있었다.
 재윤은 한숨을 내쉬고는 4층으로 달려올라갔다.
 그러다 막 4층 계단에서 3층으로 내려오는 크로거 한 마리와 마주쳤다.
 
 “죽엇!”
 
 재윤은 머뭇거리지 않고 타깃 포인트를 크로거의 머리에 위치시킨 후 오른손을 휘둘렀다.
 
 푸확!
 
 화살은 정확히 날아가 크로거의 머리를 꿰뚫었다.
 머리가 팍 터져나가며 크로거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곧바로 놈이 반격을 해올 것이라 예상해 잔뜩 긴장하고 있던 재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 방에 죽었네.’
 
 어떻게 된 것일까?
 하긴 크로거라고 다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 중에서도 신체 능력이 천차만별이듯 방금 죽은 크로거는 다른 놈들에 비해 체력이 유독 약한 녀석일 수도 있을 테니까.
 
 “쿠오오오!”
 
 문제는 그 뒤를 따라 모습을 드러낸 또 하나의 크로거였다.
 놈은 계단 위에서 마치 날듯이 도약해 재윤을 덮쳤다.
 놈은 빨랐다.
 크로거 한 마리를 가볍게 해치우고 잠시 안도하던 재윤은 놈이 지척으로 접근했을 때에야 비로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놈이 입을 쩍 벌린 채 재윤을 물어뜯으려는 순간이었다.
 
 “크르르르!”
 
 쩍 벌어진 입안의 위아래로 뾰족한 이빨들이 섬뜩하게 빛났다.
 
 “저리 비켜!”
 
 재윤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망치로 놈의 주둥이를 후려쳤다.
 타격을 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퍽퍽퍽!
 
 같은 지점만 삼연속 강타!
 눈 깜짝할 사이에 망치의 공세가 세 번이나 작렬했다.
 그러나 크로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쇳덩이를 후려치는 것 같은 반탄력에 재윤은 뒤로 밀려났고,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콰당!
 
 “으윽!”
 
 머리가 깨져 피가 흘렀다. 팔과 다리도 어딘가 뼈가 부러진 듯 숨막힐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그러나 재윤은 그런 걸 무시한 채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302호 안으로 뛰어들었다.
 
 ‘재사용 대기 시간! 조금만 버티자.’
 
 지금 생각은 오직 그것 뿐이었다.
 계단에 굴러 부상을 입었지만 지금 상황에는 오히려 기적같은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굴렀다면 재윤의 몸은 크로거의 입안에서 으깨져버렸을 것이다.
 
 “쿠워!”
 
 크로거가 포효를 지르며 뒤쫓아왔다.
 처참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낯선 집안.
 아무리 주인이 죽었다 해도 남의 집에 이런 식으로 뛰어드는 건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재윤은 소파와 탁자 등을 이용해 크로거를 따돌렸다.
 깨진 머리에서 새어나온 피가 사방으로 튀고 있었지만 재윤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필사적으로 크로거를 피해 움직이고 있을 뿐.
 
 [바람의 화살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능력의 재사용 시간이 돌아왔다.
 
 “바람의 화살!”
 
 험악하게 달려드는 크로거의 공격을 피하며 재윤은 화살을 소환했고, 그 즉시 놈의 쩍 벌어진 입안으로 화살을 꽂아 넣었다.
 
 퍼억!
 
 “꾸아아악!”
 
 크로거가 뒤로 넘어갔다.
 재윤은 기다렸다는 듯 302호를 바람처럼 빠져나가 계단 아래로 뛰었다.
 곧바로 넘어졌던 크로거가 일어나 ㅤㅉㅗㅈ아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재윤은 그사이 자신의 집인 201호에 들어가 숨을 죽인채 몸을 숨겼다.
 머리의 부상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져왔지만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
 
 물론 이렇게 몸을 숨긴다 해도 크로거는 금세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놈이 집들을 수색하는 그사이 재윤은 시간을 벌 수 있다.
 바람의 화살의 재사용 시간만 돌아오면 놈을 끝장내는 건 쉬운 일이니까.
 
 “크르르르!”
 
 그때 크로거가 201호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재윤은 안방으로 들어와 몸을 숨긴 상태.
 
 ‘젠장! 역시 금방 찾아냈어. 후각이 보통이 아니야.’
 
 재윤은 자신의 냄새를 크로거가 후각을 통해 감지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놈은 곧바로 안방을 향해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201호 거실에서 잠시 두리번거리던 놈은 이내 밖으로 나가버렸다.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보니 202호 쪽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그냥 나간다?’
 
 이는 놈의 후각이 생각처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재윤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데도 그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재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크르르!”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202호로 이동했던 크로거가 돌연 빠르게 뛰어 다시 201호로 들어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내 냄새를 맡은 게 분명해.’
 
 재윤은 긴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크로거는 뭔가 분한 듯 소리를 질러대며 밖으로 나가더니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재윤이 이곳에 있는지 모르고 엉뚱한 곳을 뒤지고 있는 것이다.
 
 ‘휴!’
 
 재윤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그의 표정은 매우 여유롭게 변해 있었다.
 그사이 능력의 재사용 시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바람의 화살!”
 
 곧바로 화살을 소환한 채로 느긋하게 안방을 나오며 외쳤다.
 
 “어이! 괴물!”
 
 그러자 아래 층에 있던 크로거가 그 소리를 듣고 후다닥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그 순간 재윤이 날린 화살이 놈의 머리에 작렬했다.
 
 파악!
 
 “꾸어어억!”
 
 머리가 터진 놈의 몸체는 뒤로 튕겨나며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크로거에 대한 지식이 E급에서 D급으로 상승합니다.]
 
 동시에 신비한 빛이 재윤의 몸을 휘감았다.
 
 화아악!
 
 그 빛이 휘도는 순간 재윤은 부상의 고통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이다.’
 
 적시에 레벨이 올라준 덕분이었다.
 그로써 신체의 모든 상태가 정상으로 회복됐다.
 
 ‘보너스 스탯은 계속 민첩에 분배하자.’
 
 【파투스】 20/20(↑1)
 【스탯】
 근력 5
 체력 4
 민첩 7(↑1)
 지능 4
 
 지능을 올려봤자 공격력은 쥐꼬리만큼 오를 뿐이다.
 민첩이 아니었다면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어? 지식 등급도 올랐네?’
 
 【보유 지식】
 -크로거(D)
 
 *크로거
 -획득 지식 등급: D
 -크로거에게 주는 피해 10% 증가
 
 재윤의 크로거에 대한 지식 등급이 D급으로 상승한 것이다.
 
 ‘피해량이 약간 더 늘었어.’
 
 E급에서는 5% 증가였는데, D급이 되자 10% 증가!
 올랐으니 나쁠 건 없지만, 고작 이 정도로는 크로거를 한 방에 보내기엔 부족했다.
 그보다 이제 아래층들을 살펴볼 때였다.
 건물 2, 3, 4층에는 크로거가 더 이상 없다.
 남은 건 1층과 지하.
 재윤은 바람의 화살 하나를 소환한 채로 계단을 내려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크로거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생존자 역시 없었다.
 특히 가장 먼저 크로거들의 공격에 노출된 101호와 102호의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하체가 사라진 시체들.
 조각난 내장이 거실 곳곳에 널려 있었다.
 재윤은 치를 떨었다.
 
 ‘다 죽었어. 이 건물에서 나 혼자 살아남은 거야.’
 
 모두가 다 죽고 혼자 생존해있다는 것.
 물론 이 건물에서만 국한되는 얘기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매우 끔찍스러운 현실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이 건물에만 국한되는 얘기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주변의 상황은 말 그대로 지옥 그 자체였으니까.
 어디서 생겨났는지 자욱한 핏빛의 안개가 피어 있어 먼 곳을 볼 수는 없었다.
 시야 거리는 고작 수십 미터 정도.
 집 주변 거리 곳곳에 심장을 뜯겨먹은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심장만으로는 양에 안 차는지 죽은 시체의 다른 부위를 뜯어먹는 크로거들의 모습도 보였다.
 재윤은 숨 죽인 채 밖을 살피고는 201호로 돌아왔다.
 그런데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사체가 사라졌어.’
 
 거실에 흉물스럽게 나뒹굴고 있어야 할 크로거의 사체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또 뭐가 있는 건가?’
 
 재윤은 바람의 화살을 앞세운 채 집안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것도 없었다.
 202호를 비롯한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된 일이야? 왜 사체가 사라진 거지?’
 
 그런데 사람들의 시체들도 어느 순간이 되자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핏자국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혹시나 싶어 바깥을 살핀 재윤은 놀랄만한 장면을 목격했다.
 
 ‘시체가 녹고 있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가 흐물흐물 녹아 액체로 변하더니 이내 증발하듯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공포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피범벅이 되어 있던 도로 어디에도 어느 순간 핏자국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부서진 차량이나 물건들만 그대로 어지럽게 널려 있을 뿐.
 한편 그렇게 시체들이 사라지자 그것을 먹고 있던 크로거들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새로운 먹잇감을 찾기 시작했다.
 재윤은 그것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창문 아래로 몸을 숨긴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미치겠네.’
 
 얼핏 눈에 띄는 크로거들의 숫자만 10마리가 넘는다.
 안개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뿐 그놈들 말고도 수두룩할 것이다.
 
 ‘목이 말라.’
 
 갈증에 목이 타는 것 같았다.
 허기도 졌지만 뭔가를 먹을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물은 마셔둬야 할 것이다.
 
 ‘이런!’
 
 무심코 컵을 들어 정수기의 버튼을 눌렀던 재윤은 비로소 전기가 나갔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단순히 이 집의 전기만 끊어진 것이 아니다 보니 수도 또한 작동하지 않았다.
 다행히 냉장고 안에 500㎖ 생수가 3병 보였다.
 그중 하나를 열어 벌컥벌컥 마셨다.
 덕분에 갈증은 풀렸지만 이제 남은 물은 생수 2병뿐.
 
 ‘이것들이 떨어지면 당장 마실 물도 없어.’
 
 정수기를 쓰다 보니 생수를 거의 사두지 않았다.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재앙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 물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 입맛은 없지만 살아남으려면 뭔가를 먹어야 한다.
 냉장고 안에 있는 냉장이나 냉동식품은 조만간 상해서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통조림이나 실온에서 유통기한이 긴 제품들을 확보해두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해. 다른 집을 찾아보자.’
 
 202호를 뒤져보니 2ℓ 생수 12병이 나왔다.
 재윤은 그것을 201호로 옮겼다.
 도둑질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의 주인들은 모두 죽었다.
 죽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당신들을 죽인 괴물은 제가 죽였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 가셨길 빕니다. 그리고 이 물은 제가 고맙게 마시겠습니다.”
 
 그래도 그냥 가져오기는 좀 그래서 짧게나마 명복을 빌어주었다.
 이제는 시체까지 사라져버린 202호의 신혼부부에게 말이다.
 계속해서 1층과 3층, 4층, 지하에 있는 집들을 모두 뒤져 생수병과 식량을 201호로 옮겼다.
 생수 2ℓ 80병에 500㎖ 120병.
 쌀을 비롯한 곡물은 물론이고 음료수와 과자, 통조림, 라면 등 혼자서 몇 달은 충분히 버틸만한 식량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날이 캄캄해져 왔다.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피어난 안개 때문에 실내가 어둑했는데, 날이 저물자 실내는 암흑으로 변했다.
 랜턴이 있어도 소용없었다.
 켜지지 않았으니까.
 
 ‘스마트폰도 안 켜지더니 랜턴까지.’
 
 전기가 안 들어와도 충전된 건전지로 작동하는 랜턴은 켜져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배터리가 방전된 듯 랜턴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가스라이터나 가스버너도 고장 난 듯 작동하지 않았다.
 
 ‘대체 어째서 안 되는 거야?’
 
 음식을 조리해 먹을 수도 없으니 황당했다.
 이대로라면 밥을 해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없으니 생쌀이나 생라면을 씹어먹어야 할 상황.
 
 ‘하긴 된다고 해도 지금은 할 수도 없겠지.’
 
 건물 밖에 크로거들이 득실거리고 있는데 조명을 켜거나 음식을 하며 주의를 끄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일 것이다.
 이럴 때 통조림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단 이거라도 먹고 기운을 차리자.’
 
 재윤은 참치 통조림 하나를 따서 먹은 후 밖의 동정을 살폈다.
 
 
 
 Chapter 03.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라!
 
 어느덧 날이 밝아왔다.
 벽에 기대 살짝 졸았던 재윤은 눈을 뜨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군대나 경찰들은 다 뭐 하는 거야? 괴물들이 나타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 오는 거지?’
 
 그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난리가 났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다니 이상했다.
 크로거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중무장한 군인이나 경찰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설마?’
 
 그러다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재윤은 크로거들에게 바람의 화살로만 대미지를 줄 수 있었다.
 망치나 칼로는 그것들의 몸에 흠집조차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혹시 총도 통하지 않는 건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총이 주는 파괴력은 망치나 칼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상식에 속한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펼쳐진 현실 자체도 상식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만약 파투스를 소모해서 펼치는 능력으로만 대미지를 줄 수 있는 식이라면?’
 
 정말로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지만, 만약 이 예측이 사실이라면 지구 전체가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놈들은 총이나 대포를 맞아도 멀쩡할지 몰라.’
 
 재윤과 같은 각성자가 없다면 경찰이나 군대가 동원돼도 크로거들을 죽이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핵이라도 쏘면 모를까.’
 
 그런데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핵도 소용없지 않을까?
 
 ‘그건 아니겠지.’
 
 크로거들이 아무리 괴상한 능력을 지닌 괴물이라고 해도 핵 앞에서 버티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러다 핵이라도 날아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러나 핵을 쓰게 되면 괴물들뿐 아니라 인간들도 죽는다.
 핵이 동원된다는 건 말 그대로 최악의 재앙.
 재윤은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운 좋게 살아난다 해도 그 이후의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하긴! 그러고 보니 핵이 있어도 쓰지 못할 수도 있어.’
 
 단순히 전기가 나가서가 아니다.
 가스라이터와 같은 것들도 작동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총이나 대포는 물론 핵을 쓰고 싶어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말 미친 현실이다.
 재윤은 왠지 맥이 빠졌다.
 군대나 경찰이 이 사태를 해결해준다면 본래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왠지 그게 쉽지 않아 보였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가?’
 
 목이 탔다.
 재윤은 생수병 하나를 열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우욱!”
 
 곧바로 입에 있던 물을 뱉었다.
 
 “뭐야? 물이 왜 이래?”
 
 물에서 악취가 났다.
 썩은 물에서나 나는 악취!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상한 물이라니!
 유통기한을 살펴보니 제조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제품이었다.
 보통 생수의 유통기한은 제조일자로부터 육 개월이지만, 보관만 잘 하면 일 년 가까이 마셔도 무방한 걸로 알고 있는데.
 
 ‘어딘가 구멍이 뚫려 있었나 보네.’
 
 재윤은 다른 생수병을 열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 냄새를 맡아보니 악취가 풍겨 나왔다.
 
 ‘뭐야? 이것도?’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다른 생수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재윤은 황당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이건 보관이 잘못된 게 아니야.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다고.’
 
 어제까지 신선했던 생수가 하루 만에 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뭔가 이상했다.
 
 ‘설마 그럼 음식들도?’
 
 재윤은 불안한 마음에 통조림을 따봤다.
 그런데 역시나 통조림 안은 완전히 썩어 있었다.
 쌀통에 있던 쌀도, 쉽사리 상하기 힘든 마른 음식들조차 먹는 즉시 식중독을 일으킬 만큼 철저히 상한 상태였다.
 심지어 라면과 과자들도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젠장!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어제 도둑질까지 감수해가며 다른 집들에 있는 음식들과 생수를 몽땅 가져다 쌓아놨다.
 최악의 상황에도 몇 개월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당장 오늘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미친다, 진짜!”
 
 재윤은 목이 탔지만 침만 삼켜야 했다.
 이 상황에 각성의 능력이 다 무슨 소용일까?
 이대로라면 갈증과 허기로 며칠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말 것이다.
 물이 없으니 목이 더 말라왔다.
 음식이 없으니 허기도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좀 많이 먹어두는 건데.”
 
 아껴야 할 것 같아 자그만 통조림 하나만 먹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이제 어쩌지?”
 
 밖에는 크로거들이 득실거린다.
 하지만 집 안에만 있다간 굶어 죽는다.
 밖으로 나갈 수도, 그렇다고 집 안에만 있을 수도 없는 상황.
 
 “이건 그냥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야.”
 
 재윤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창밖을 살펴봤다.
 
 ‘이 근처에 나 말고 살아있는 사람은 없는 건가?’
 
 그는 제발 각성자가 자신 혼자가 아니기를 바라고 있었다.
 각성자는 최대한 많아야 한다.
 그래야 괴물들을 빨리 몰아낼 수 있을 테니까.
 
 “뭐지? 왜 또 이상한 게 보여?”
 
 재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며 눈을 의심했다.
 어제와 달리 안개가 옅어진 상태라 시야 거리는 백여 미터 정도로 늘어났다.
 그런데 옆 건물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잘못 봤나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봤지만 틀림없었다.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형이 바뀌었다.
 본래는 이곳 건물과 양옆 건물들은 거의 붙어있다시피 가까웠다.
 또한 좁은 콘크리트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도 빌라 주택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언뜻 살펴봐도 이 건물을 중심으로 반경 100미터 안의 건물이 사라졌다.
 건물들이 있던 자리에는 정체불명의 숲이 생겨나 있었다.
 숲 외부로는 다른 건물들이 듬성듬성 보이긴 했지만, 본래의 지형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갈수록 가관이군.”
 
 하룻밤 사이에 주변의 지형이 바뀌어버리다니!
 더 이상 놀랄 힘도 없었다.
 
 “설마 나 혼자 이상한 세계로 들어와 버린 건가?”
 
 아니면 본래 세계가 이상하게 변한 것인가?
 뭐 둘 중 어느 쪽이든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 * *
 
 하루가 지났다.
 재윤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집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지만 물을 마실 수도 뭔가를 먹을 수도 없으니 그냥 참는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면 배가 고프니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했다.
 물론 그래봤자 조금 덜 배가 고픈 정도일 뿐 하룻밤이 지나자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새로 날이 밝으면 뭔가 다른 현실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은 있었다.
 
 ‘그래. 어쩌면 본래 세계로 돌아가 있을 수도 있어.’
 
 그러나 그것은 그저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날이 밝자마자 창밖을 살펴봤지만 어제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반경 100미터를 둘러싸고 있는 정체불명의 숲.
 
 ‘후! 이러다간 진짜 꼼짝없이 죽겠다.’
 
 뭔가를 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움직일 힘도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곧 죽음과 이어지게 될 것이다.
 
 ‘뭐라도 해야 해. 뭐라도.’
 
 재윤은 죽고 싶지 않았다.
 
 ‘나가 보자. 어딘가 마실 물이나 먹을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
 
 생수나 통조림이 하루 만에 썩어버린 괴상한 세상이다.
 과연 먹을 것이 있을까?
 그리고 밖에는 크로거들이 우글거린다.
 수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늘도 집안에만 웅크려 있다간 갈증과 허기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
 
 ‘굶어 죽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어차피 죽을 거면 못할 게 뭐가 있을까?
 
 “바람의 화살!”
 
 재윤은 화살을 소환한 채로 건물을 나섰다.
 
 “쿠워!”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가 밖으로 나서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크로거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재윤은 미리 대비하고 있던 터라 당황하지 않았다.
 잽싸게 바람의 화살을 놈의 머리에 박아 넣은 후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쿠오오오!”
 
 머리 한쪽이 박살 난 크로거가 분노의 포효를 지르며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지하부터 4층까지 도합 10개나 되는 집의 어디에 재윤이 있는지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사이 재윤은 29초나 되는 능력의 재사용 시간을 무사히 채울 수 있었다.
 
 “죽어라, 괴물!”
 
 무작정 101호와 102호를 뒤지던 놈의 뒤에 재윤이 나타나 바람의 화살을 날렸다.
 
 “꾸어어억!”
 
 [1코인을 얻었습니다.]
 
 한 놈을 가볍게 처지했다.
 긴장을 해서인지 조금전까지 죽을 것처럼 엄습하던 갈증과 허기의 고통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재윤은 알고 있었다.
 이런 상태가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빨리 뭔가를 먹지 않으면 기운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고 그때는 크로거 하나도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저 괴물 놈의 고기라도 먹는다.’
 
 그놈들이 인간을 잡아먹는데, 거꾸로 재윤이 그놈들을 잡아먹지 못할 것도 없었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예전의 상식이 통하는 세계가 아니다.
 강자생존(强者生存)!
 약육강식(弱肉强食)!
 오직 강한 자만 생존한다.
 약자는 강자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정글의 세계인 것이다.
 
 “젠장······!”
 
 그러나 그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재윤은 피범벅이 되어 널브러져 있는 크로거의 사체를 노려봤다.
 몇 번이고 놈의 살점을 뜯어 입에 넣으려고 했지만.
 
 ‘아직은 도저히.’
 
 못 먹을 것 같다.
 머리는 악어지만 몸체는 근육질의 사람 형체를 가진 괴상한 괴물.
 거기다 혈액에서 비린내 정도가 아니라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졌다.
 고기를 잘라서 구워 먹을 수 있다면 모를까 생으로 뜯어먹는다는 건 보통 역겨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재윤은 크로거의 생고기를 먹는 걸 포기한 채로 밖으로 나왔다.
 
 “차라리 풀을 뜯어먹고 말지 저건 못 먹겠다.”
 
 그러던 재윤의 눈이 돌연 반짝였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래. 풀!”
 
 본래는 없던 괴상한 숲이지만 온갖 종류의 풀들이 자라난 상태였다.
 잘 찾아보면 그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
 운 좋으면 열매라도 말이다.
 그렇게 잠시 풀들을 뒤지던 재윤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다.
 붉은 빛을 띤 타원형의 탐스러운 열매.
 
 “딸기 같은데?”
 
 왠지 맞는 듯했다.
 다만 그 크기가 주먹만한 것이 보통의 딸기에 비해 몇 배는 더 크다는 것이 특이했다.
 
 ‘심 봤다! 아니, 딸기 봤다!
 
 재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열매를 따 손에 쥔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거 먹어도 되는 거야?’
 
 신선한 향이 나는 것이 먹어도 상관없을 것 같지만, 한 가지 찜찜한 구석은 있었다.
 갑자기 생겨난 숲에 이런 큼직한 딸기가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
 
 ‘설마 독이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
 
 살짝 한 입 베어 씹어보니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지금은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허기로 쓰러지고 말 것이다.
 
 ‘딸기처럼 생겼는데 맛은 좀 다르네.’
 
 달콤하거나 신맛은 없다.
 과즙은 많지만 뭔가 밋밋한 맛.
 그래도 과즙이 목을 매우 시원하게 해주었다.
 
 ‘갈증은 확실히 풀리는걸.’
 
 으적으적! 쩝쩝!
 
 재윤은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열매를 먹어치웠다.
 갈증 뿐 아니라 허기도 사라지고 몸에 기운이 돌아왔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절망의 끝에서 기적을 만났다.
 물론 그래봤자 간신히 굶어죽지 않게 된 것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재윤에게는 큰 희망이었다.
 
 ‘열매를 더 확보해야 해.’
 
 지금은 배가 부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배가 고파질 것이다.
 그때를 위해 미리 식량을 구해두는 건 필수.
 동시에 근처의 크로거들을 해치우며 레벨을 올리기로 했다.
 
 ‘강해져야 조금이라도 살아날 희망이 있어.’
 
 하지만 무턱대고 크로거들과 싸우는 건 승산이 없었다.
 
 ‘건물로 한 놈씩 끌어들여 각개격파하는 거야.’
 
 그렇게 재윤의 크로거 사냥이 시작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건물 주변에 생겨난 괴상한 숲.
 나무나 풀 중에는 본래 지구에 있던 것이 아닌 생소한 것들도 보였다.
 
 ‘아무리 봐도 지구에는 없던 것들이야.’
 
 그러나 솔직히 속단할 수는 없었다.
 재윤이 지구의 모든 식물을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지구상 존재하는 식물이나 동물의 1%도 모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금 보여지는 것들은 너무나 특이했다.
 크기가 무려 1m 50㎝ 정도쯤 되는 괴상한 버섯도 보였으니까.
 
 ‘엄청 크네. 버섯이 아무리 커봤자 손바닥만 할 텐데 말이야.’
 
 먹을 수만 있다면 한동안 식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독버섯일 수도 있어.’
 
 주름진 진갈색 머리의 표피 곳곳에 백색의 외피들이 사마귀가 난 것처럼 징그럽게 분포해 있었다.
 물론 단순히 징그럽다고 독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왠지 느낌이 안 좋았다.
 딸기 모양의 열매를 찾아 먹으면 되는데 공연히 모험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버섯도 그렇고 풀들도 하나같이 크기가 커.’
 
 정말 이 숲만 따지면 말로만 듣던 이계에라도 온 기분이었다.
 지구가 다른 세계와 겹쳐지기라도 한 건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걸까?
 
 부시럭!
 
 그때 풀들을 헤치고 뭔가 접근해왔다.
 크로거였다.
 놈은 최대한 기척을 숨긴다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지만 재윤은 이미 풀들이 움직이는 기척을 보고 그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따라서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놈의 머리에 타깃 포인트를 이동시킨 후 화살을 날렸다.
 이미 바람의 화살은 소환해 놓은 상태였으니까.
 
 파악!
 
 화살에 맞은 크로거의 머리가 세차게 흔들리더니 퍽 하고 터졌다.
 놈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화살을 날리고 건물 쪽으로 냅다 뛰려던 재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방에 죽어?’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 한 방에 죽는 녀석이 나타났다.
 어떻게 화살에 맞았을 뿐인데 머리가 터지는 것일까?
 무슨 수류탄에 맞은 것도 아니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복잡하게 따질 필요는 없었다.
 이럴수록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
 
 ‘뭐 이놈도 체력이 약한 녀석인가 보네.’
 
 체력 즉, 생명력이 약하니 바람의 화살의 파괴력을 이기지 못하고 한 방에 죽은 것이다.
 그것도 머리가 터져서 말이다.
 말이 되는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재윤으로서는 반가운 일.
 모든 크로거가 지금처럼 한 방에 죽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크르르르!”
 
 그런데 그때 뒤쪽에 크로거 하나가 또 나타났다.
 
 ‘젠장!’
 
 아직 재사용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태라 재윤은 잽싸게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쿠워!”
 
 크로거가 빠르게 뒤쫓아 왔지만 재윤은 여유 있게 2층까지 놈을 유인한 후 그사이 재사용 시간이 돌아온 바람의 화살을 한 방 먹였다.
 
 “받아라, 괴물!”
 “쿠어억!”
 
 화살에 맞은 크로거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순간, 재윤은 잽싸게 3층으로 올라가 302호에 있는 방 중 하나에 숨었다.
 컴퓨터가 놓인 책상 하나와 침대, 그리고 붙박이 옷장으로 이루어진 작은 방.
 그런데 놀랍게도 놈은 즉시 302호로 들어왔고, 재윤이 숨어 있는 방을 정확히 찾아냈다.
 킁킁거리는 걸 보니 냄새를 보고 찾아온 게 틀림없었다.
 
 “쿠오오오!”
 
 분노한 크로거가 입을 크게 벌린 채 달려들자 재윤은 흠칫 놀랐다.
 
 ‘뭐지? 이놈은?’
 
 다른 크로거들과 달리 후각이 뛰어난 놈인 것일까?
 
 ‘젠장!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네.’
 
 어떤 녀석들은 근처에 있어도 냄새를 맡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녀석은 제법 거리가 있는 데도 찾아낼 만큼 후각이 예민했다.
 
 ‘상대하기 진짜 까다로운 녀석들이야.’
 
 물론 지금은 그런 푸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방이 비좁아 놈을 뚫고 다시 나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창문으로 뛰는 것도 불가능했다.
 방범 창살이 굳게 만들어져 있었으니까.
 
 “바람의 화살!”
 
 [재사용 대기 시간 중입니다.]
 [12초 후 사용 가능합니다.]
 
 급한 마음에 바람의 화살을 소환하려 했지만 아직 펼칠 수 없었다.
 
 ‘어쩌지?’
 
 이러다가 저 큰 이빨에 물리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피할 공간이 없어.’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죽는다.
 재윤은 컴퓨터 모니터를 집어 크로거에게 던졌다.
 
 “에잇! 꺼져, 이 괴물아!”
 
 쾅!
 
 모니터가 날아가 놈의 머리에 적중했지만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람의 화살이 아니면 놈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재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해.’
 
 재윤은 컴퓨터 본체를 던지고 서가에 꽂힌 책들도 빼서 마구 던졌다.
 그러나 크로거는 역시나 그것들에 맞고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놈은 그대로 성큼 달려와 주먹으로 재윤의 가슴을 후려쳤다.
 
 휙!
 
 재윤은 반사적으로 피했다.
 눈으로 주먹을 봤지만 몸이 따라주기란 쉽지 않은데, 민첩 스탯을 올려둔 덕분인지 몸이 알아서 반응한 것이다.
 
 ‘좋아! 조금만 더.’
 
 역시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민첩의 힘!
 
 ‘잘하고 있어! 피할 수 있다!’
 
 어떻게든 조금만 시간만 끌면 된다.
 재윤은 정신을 바짝 차린 채 크로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하지만 크로거가 바짝 다가선 채 주먹을 휘두르자 도무지 피할 틈이 없었다.
 
 퍽!
 
 “윽!”
 
 가슴을 강타당한 재윤은 뒤로 밀려나 벽에 부딪혔다.
 놈의 주먹이 날아오는 순간 몸을 비틂과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책으로 방어를 해 충격을 대폭 줄였지만, 그래도 갈비뼈가 부러진 듯 숨이 막혀왔다.
 
 “크르르!”
 
 쒸익!
 
 크로거의 주먹이 다시 날아왔다.
 현관문도 박살 낼 만한 가공스러운 괴력!
 제대로 맞으면 그대로 사망이었다.
 재윤은 사력을 다해 몸을 굴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했다.
 
 콰앙!
 
 놈의 주먹에 맞은 벽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크로거는 더 이상 재윤이 피할 틈을 주지 않았다.
 번쩍 몸을 날려 재윤을 넘어뜨린 후 입을 쩍 벌려 재윤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아니, 물어뜯으려는 찰나.
 
 “바람의 화살!”
 
 파악!
 
 크로거의 벌어진 입이 퍽 터져나갔다.
 
 “꾸어어억!”
 
 놈은 처참한 비명과 함께 뒤로 튕겨나듯 날려가 널브러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크로거에 대한 지식이 D급에서 C급으로 상승합니다.]
 
 재윤은 시뻘건 피를 뒤집어쓴 채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죽을 뻔했다.’
 
 놈이 입을 벌리고 달려들기 직전, 천만 다행히도 바람의 화살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끝났다.
 재윤은 즉각 바람의 화살을 소환해 날렸다.
 그 동작이 0.1초만 늦었어도 그의 머리는 크로거의 이빨 아래 찢겼을 것이다.
 
 ‘근데 지식 등급이 또 올랐네.’
 
 【보유 지식】
 -크로거(C)
 
 *크로거
 -획득 지식 등급: C
 -크로거에게 주는 피해 15% 증가
 -크로거 처치 시 아이템 획득할 확률 증가
 -크로거의 약점 파악 가능
 
 지식 등급이 오르면서 크로거에게 주는 피해가 늘어났다.
 그만큼 놈들을 상대하기 유리해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피해량 증가만이 아니었다.
 크로거를 처치한 후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도 증가한다고 했다.
 또한 약점 파악이라는 것도.
 
 [이후로 당신은 크로거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각 몬스터마다 약점이 존재하며, 약점을 적중시키면 치명타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약점은 푸른색으로 빛나는데, 타깃 포인트를 정확히 맞추면 치명타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치명타라면?’
 
 재윤은 비로소 머리가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한 방에 죽었던 놈들은 운 좋게 내가 약점을 공격해서 치명타가 터진 게 분명해.’
 
 치명타가 터지면 크로거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다!
 머리가 폭탄에 맞듯 터지는 것도 치명타의 강력한 파괴력 때문.
 그런데 이제 재윤은 크로거의 약점을 볼 수 있게 된 터라 손쉽게 치명타 대미지를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식이 오르면 이런 좋은 점이 있구나.’
 
 재윤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거실의 소파에 주저앉았다.
 전투에서 승리는 했지만 레벨이 오른 것이 아니다 보니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다.
 
 ‘숨을 쉬기가 힘들어. 진짜 갈비뼈가 부러진 건가?’
 
 움직일 때마다 가슴을 칼로 찌르는 듯 고통이 밀려왔다.
 제대로 맞은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스치듯 맞았을 뿐인데.
 
 ‘후!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이야.’
 
 스치듯 맞았으니 이 정도지 제대로 맞았으면 지금 재윤은 이 세상 존재가 아닐 것이다.
 
 ‘진짜 무식한 힘이다!’
 
 역시나 바람의 화살이 아니면 크로거와 정면으로 맞서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통제라도 찾아봐야 하나.’
 
 그러나 재윤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약이라고 멀쩡할 리가 없겠지.’
 
 생수는 물론이고 유통기한이 2년도 넘게 남은 통조림까지 상해버렸다.
 단순히 음식만 그렇게 됐을 리가 없었다.
 약도 당연히 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재윤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부상을 당했으면 한동안 완쾌될 때까지 쉬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식으로 쉬고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지금은 넋 놓고 누워있다간 탈진하고 말 테니까.
 
 ‘크로거를 잡아 레벨을 올린다.’
 
 그렇다.
 레벨을 올리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어떻게든 레벨만 올리면 신체 상태가 완벽히 회복되니 그보다 더 좋은 치료 방법이 없었다.
 재윤은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와 건물을 나섰다.
 민첩 스탯을 아무리 올렸다지만 지금처럼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크로거와 싸우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뛰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점 파악이 가능해진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침착하게! 한 방에 한 놈씩!’
 
 바람의 화살 한 방에 크로거 하나씩 해치울 수 있으면 굳이 도망갈 필요가 없다.
 한 번에 두 마리 이상의 크로거와 마주치지만 않으면 금세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쿠우어!”
 
 그때 수풀을 헤치고 크로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놈이 오는 기척을 느끼고 있던 터라 재윤은 차분히 놈의 몸을 살폈다.
 그러자 아까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이 보였다.
 
 ‘목에 푸른 빛이 있어. 저게 바로 약점인가?’
 
 두 번 생각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
 재윤은 그쪽으로 타깃 포인트를 위치시킨 후 곧바로 바람의 화살을 날렸다.
 
 푸확!
 
 화살이 크로거의 목을 관통했다.
 
 “꾸에엑!”
 
 놈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뒤로 철푸덕 넘어졌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됐어!’
 
 재윤은 쾌재를 불렀다.
 역시나 약점을 정확히 가격했더니 바람의 화살 한 방으로 크로거가 죽었다.
 
 ‘계속 이렇게만 하자.’
 
 재윤은 잠시 심호흡을 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기 위한 것도 있지만, 바람의 화살의 재사용 시간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29초가 지나자 곧바로 바람의 화살을 소환한 후 다음 목표를 찾아 나섰다.
 
 “크르르!”
 
 그러다 발견한 또 하나의 크로거.
 조금 전 해치운 녀석보다 덩치가 약간 크고 날렵해 보였지만, 재윤은 당황하지 않고 놈의 약점을 찾았다.
 
 ‘저놈은 약점이 오른쪽 눈이군.’
 
 크로거라고 다 약점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각각의 크로거마다 약점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크로거에 대한 C급 지식을 얻지 않았다면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쿠워어!”
 
 크로거가 빠르게 달려왔지만 재윤의 동작이 더 빨랐다.
 바람의 화살이 놈의 오른쪽 눈을 정확히 가격했다.
 
 파악!
 
 “꾸어어어억!”
 
 크로거가 뒤로 고꾸라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한 방에 적을 해치우게 되면 파투스도 그만큼 적게 소모된다.
 아직까지 레벨 업 외에는 파투스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 터라, 1포인트의 파투스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
 
 【파투스】 13/20
 
 다행히 아직 파투스의 여유는 있었다.
 한 방에 하나씩 처치한다고 볼 때 도합 13마리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13마리! 설마 그 안에는 레벨이 오르겠지.’
 
 다행히 13마리까지 잡지 않아도 되었다.
 그 후로 3마리를 더 해치우자 레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로써 재윤은 레벨 4가 되었다.
 동시에 죽을 듯 심하게 느껴지던 가슴의 통증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살았다······!”
 
 그야말로 눈물의 레벨 업!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통증도 없고 몸의 상태는 최상!
 딱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재윤은 한숨을 내쉬며 보너스 스탯을 민첩에 분배했다.
 
 【이름】 강재윤
 【레벨】 4
 【생명력】 40/40
 【파투스】 21/21(↑1)
 【스탯】
 근력 5
 체력 4
 민첩 8(↑1)
 지능 4
 【잔여 스탯 포인트】 0
 【코인】 12
 【전투 능력】 바람의 화살(Lv2)
 【생활 능력】 없음
 【특성】 몬스터 지식 획득(S)
 【보유 지식】 크로거(C)
 
 ‘어? 근데 저건 뭐지?’
 
 조금 전 해치운 크로거 옆에 뭔가 특이한 것이 하나 보였다.
 달력을 말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웬 종이 두루마리!
 분명 아까까지는 없었다.
 크로거가 쓰러진 이후에 새로 나타난 물건인 것이다.
 
 ‘설마 이놈이 드롭한 아이템 같은 건가?’
 
 크로거를 해치운 후 뭔가를 얻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C급 지식을 얻자 아이템 드롭 확률이 증가한다고 하더니 바로 그 때문인 모양이었다.
 
 ‘무슨 아이템일까?’
 
 재윤은 그것을 주워들었다.
 
 
 
 Chapter 04. 토벌과 보상
 
 [크로거 토벌 임무서(D)를 얻었습니다.]
 
 종이 두루마리를 주워드는 순간 들려오는 음성.
 
 [임무를 받기 위해서는 코인을 지불해야 합니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실패 시 당신은 코인만 잃게 될 것입니다.]
 
 ‘임무라고?’
 
 그게 뭘까?
 
 ‘퀘스트 같은 건가?’
 
 그보다 도대체 게임의 시스템 알림처럼 주어지는 이 음성은 누구의 것일까?
 어쨌든 두루마리를 펼치자 그 안에 웬 알 수 없는 문자와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치 한글을 읽는 것처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크로거 토벌】
 -임무 등급: D
 -자격 조건: 크로거 지식 등급 D 이상.
 -내용: 크로거 12마리 처치, 제한 시간 없음.
 -완수 보상: 100코인, 소정의 경험치
 -가격: 10코인
 
 ‘오!’
 
 경험치도 얻고 코인도 벌고!
 이런 건 무조건 해야 한다.
 
 ‘경험치도 경험치지만 10코인을 주고 100코인을 벌 수 있다니 대박이잖아.’
 
 코인이 많아지면 공격 능력인 바람의 화살을 다음 단계로 강화할 수 있다.
 한 마리 잡을 때마다 달랑 1코인씩만 얻고 있는데, 100코인의 보상은 놓칠 수 없는 기회인 것이다.
 어차피 크로거들은 이런 임무가 없어도 잡아야 한다.
 재윤으로서는 덤으로 경험치와 코인을 얻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수락!’
 
 두루마리 아래 【수락】이라는 버튼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재윤은 그곳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당신은 크로거에 대한 C등급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 이 임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습니다.]
 [현재 당신의 코인 잔액은 12입니다.]
 [10코인을 지불해 임무 【크로거 토벌(D)】을 수락하겠습니까?]
 
 “예. 수락합니다.”
 
 [임무 【크로거 토벌(D)】이 수락되었습니다.]
 
 그 순간 종이 두루마리가 사라지며 임무 창이 환상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그 모습은 게임의 퀘스트 창과 비슷하지만, 모니터가 아닌 현실 공간에서 반짝이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10코인이 지불되었습니다.]
 [당신의 코인 잔액은 2입니다.]
 
 ‘이런 임무가 많이 생겨나면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런데 이 숲에는 더 이상 크로거들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뒤져도 크로거는 한 마리도 없었다.
 
 ‘오늘은 좀 더 멀리 가볼까?’
 
 숲을 돌아다니다 보니 딸기 형상의 붉은 열매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맛은 별로지만 허기와 갈증을 면하게 해주는 필수 식량.
 
 ‘일단 하나만 챙겨두자.’
 
 하룻밤 만에 생수와 통조림이 모두 상해버리는 판이니 열매를 미리 잔뜩 따는 건 무의미한 짓이리라.
 
 ‘열매들의 위치를 기억해두고 그때그때 따서 먹는 게 좋겠지.’
 
 따지 않은 열매가 상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재윤은 열매 하나를 주머니에 넣은 후 조심스레 숲을 헤치고 나갔다.
 
 집 건물을 중심으로 반경 100미터 정도를 뒤덮은 숲.
 그런데 그동안 안개 때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을 뿐 숲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시야 거리가 제한되어 있어 다 볼 수 없지만 어디를 봐도 밀림처럼 숲이 우거져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냐?’
 
 그래도 무작정 숲만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건물들이 듬성듬성 숲 가운데 보였기 때문이다.
 각 건물들의 거리는 대략 100여 미터.
 설마 이런 식으로 끝없이 숲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그보다 나 말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 한다.
 
 ‘제발 누구라도 살아있기를.’
 
 재윤은 가장 가까운 건물 쪽으로 이동했다.
 물론 섣불리 건물로 접근하기보다 근처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크로거가 3마리나 있었다.
 2마리 정도면 먼저 한 놈을 해치우고 도주하며 재사용 시간을 기다려볼 수도 있겠지만, 3마리는 무리였다.
 
 ‘흩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재윤은 멀리서 몸을 숨긴 채 놈들을 주시했다.
 크로거들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방을 어슬렁거리는 터라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그중 한 놈이 재윤이 숨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온 것이다.
 
 “크르르!”
 
 재윤은 당황하지 않고 놈의 약점을 찾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뭐지? 어째서 안 보여?’
 
 약점은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파란색 점으로 표시되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앞에 있는 크로거의 몸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재윤은 크로거의 공격을 피하며 잽싸게 놈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역시나 뒤통수에 파란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쩐지.’
 
 그렇다.
 약점이라는 것이 꼭 전면에만 노출되어 있을 리는 없는 법.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찾는 게 중요해.’
 
 곧바로 뒤통수에 바람의 화살을 박아넣자 놈은 꽥 소리를 내며 맥없이 쓰러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최하급 생명력 회복 물약을 얻었습니다.]
 
 【크로거 토벌(D)】
 -임무 수행 중: 1/12
 
 ‘뭐? 물약?’
 
 그러고 보니 재윤은 쓰러진 크로거의 몸 근처에서 붉은색의 작은 약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파는 홍삼 드링크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평범한 물약이 아니었다.
 
 *최하급 생명력 회복 물약
 -복용 즉시 하락한 생명력이 40만큼 회복된다.
 -신비한 파투스의 기운이 깃들어 오래 보관해도 약효가 변하지 않는다.
 -재사용 대기 시간 10초
 
 ‘오!’
 
 말로만 듣던 포션이었다.
 부상을 당했을 때 이 물약이 있으면 빠르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재윤의 생명력은 40.
 그런데 이 회복 물약의 회복력도 40이다.
 이 말은 재윤이 죽기 직전의 처참한 부상을 입어도 이 물약 하나면 말끔하게 회복될 수 있다는 뜻.
 어떻게 보면 여분의 생명을 하나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유통기한이었다.
 설명대로라면 약효가 변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크로거가 이런 것도 드롭하는구나.’
 
 지식 효과로 아이템 획득 확률이 올라간다고 하더니 확실히 그런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물약을 얻었다고 좋아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사이 근처에 있던 다른 두 마리의 크로거가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일단 뛰자.’
 
 재윤은 약병을 주머니에 넣은 후 뒤로 미친 듯 뛰었다.
 물론 무작정 뛰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놈들을 유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숲에는 장애물들이 많아 두 마리를 따돌리며 시간을 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9초에 하나씩!
 1분 만에 두 놈을 가볍게 해치웠다.
 
 【크로거 토벌(D)】
 -임무 수행 중: 3/12
 
 ‘좋아! 잘하고 있어.’
 
 재윤은 이제 크로거 두 마리쯤은 동시에 상대할 자신이 생겼다.
 
 ‘이 근처에는 크로거들이 없는 것 같으니 저 건물에 들어가 보자.’
 
 곧바로 건물 입구 앞에 선 재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여긴 우리 집 옆 건물이잖아.’
 
 재윤이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 건물 옆에 위치한 또 다른 다세대 주택 건물.
 바로 옆 건물이니 그 형태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옆 건물이 무려 100미터도 넘게 이동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사이로 정체불명의 숲이 생겨나고 말이다.
 
 ‘어쨌든 들어가 보자.’
 
 재윤은 더 이상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온종일 그런 의문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이유는 언젠가 알 수 있겠지. 내가 살아남는다면.’
 
 그렇다.
 지금은 의문에 빠져 혼란스러워하기보다는 이 괴상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재윤은 바람의 화살을 소환한 채로 조심스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1층을 살피고 지하, 그리고 2층과 3층 4층을 모두 살폈다.
 심지어 옥상까지 올라가 둘러봤지만.
 
 ‘텅 비었어.’
 
 재윤은 탄식했다.
 
 ‘생존자가 한 명도 없어. 다 죽은 거야.’
 
 각 층마다 두 세대씩 도합 10세대가 살고 있는 건물.
 각 집의 내부는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모두 시체 상태에서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재윤은 맥빠진 표정으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멀리 보이는 다른 건물 쪽으로 향했다.
 
 ‘좌측에 크로거 둘, 오른쪽에 하나.’
 
 도중에 또 다른 크로거 무리를 발견했다.
 재윤은 오른쪽의 크로거를 먼저 공격했다.
 놈의 약점인 오른쪽 눈을 향해 바람의 화살이 날아가 적중했다.
 
 “꾸아악!”
 
 놈은 한 방에 고꾸라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항상 그렇듯 달랑 1코인만 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쓰러져 있는 크로거의 사체 옆에 한 장의 두루마리가 반짝였으니.
 
 ‘또 퀘스트인가?’
 
 재윤은 재빨리 달려가 그것을 주워 펼쳤다.
 
 [크로거 토벌 임무서(E)를 얻었습니다.]
 
 【크로거 토벌】
 -임무 등급: E
 -자격 조건: 크로거 지식 등급 E 이상.
 -내용: 크로거 5마리 처치, 제한 시간 없음.
 -완수 보상: 40코인, 소정의 경험치
 -가격: 4코인
 
 역시나 퀘스트였다.
 
 [현재 당신은 【크로거 토벌(D)】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같은 종류의 토벌 임무는 동시에 진행이 불가능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임무를 먼저 완수해주세요.]
 
 ‘어쩔 수 없지.’
 
 동시에 두 개를 진행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라 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웠다.
 그래도 또 하나의 임무서를 얻었으니 그게 어디인가?
 이런 임무서들을 많이 얻게 되면 코인을 대량으로 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머지 두 마리를 유인해 하나씩 쓰러뜨렸다.
 
 【크로거 토벌(D)】
 -임무 수행 중: 6/12
 
 이제 6마리만 더 해치우면 토벌 임무를 완료할 수 있다.
 그렇게 도착한 5층 건물.
 
 ‘여긴 우리 앞 건물인데?’
 
 1층에 편의점이 있고, 지하엔 PC방, 2층부터는 주택이었다.
 코앞에 붙어있던 편의점 건물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니!
 특히 편의점과 PC방은 재윤이 자주 애용하던 장소였다.
 그런데 지하 PC방부터 5층까지 다 뒤져봐도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도 텅 비었네.’
 
 하긴 생각해보니 각성자가 있었다면 건물 안에 웅크리고 있지 않을 것이다.
 재윤처럼 밖으로 나와 크로거들을 해치우고 있을 테니까.
 즉, 근처에 다른 각성자가 있었다면 이미 재윤과 마주쳤어야 정상이었다.
 
 ‘무슨 죽음의 도시도 아니고.’
 
 괴물들만 우글거리고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재윤은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 자신 말고도 각성자가 꽤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야 부모님이 살아계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테니까.
 
 ‘저쪽 건물도 가보자.’
 
 재윤은 또 다른 건물로 향했다.
 그러나 다시 두 채의 건물을 더 뒤져봤지만 생존자는 없었다.
 그 와중에 크로거들만 발견해 해치웠을 뿐.
 
 【크로거 토벌(D)】
 -임무 수행 중: 10/12
 
 그렇게 10마리의 크로거를 해치우는 순간.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업!’
 
 재윤은 환호했다.
 이로써 레벨5.
 이 기괴하게 변해버린 죽음의 도시에서 레벨 올리는 재미라도 없다면 정말로 미쳐버렸을 것이다.
 보너스 스탯 포인트는 계속 민첩에 분배!
 덕분에 민첩 스탯이 9로 올랐다.
 
 ‘몸이 더 가벼워졌어.’
 
 지금 상태라면 검도 실력도 크게 늘었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몸이 빨라졌으니 말이다.
 
 ‘어쩌면 사범과 대련해도 이길지 몰라.’
 
 심지어 점프력도 대폭 상승했다.
 한 번에 2미터 정도를 가뿐하게 뛰어오를 수 있었으니까.
 
 ‘계속 레벨을 올리자.’
 
 지금으로서는 이것만이 유일한 희망.
 올릴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레벨을 올리면 괴물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시를 누빌 수 있게 될 것이다.
 부모님을 찾아 나서는 것도 가능해질 테고 말이다.
 
 “쿠우우우!”
 “크르르!”
 
 그때 두 마리의 크로거가 재윤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재윤은 곧바로 바람의 화살을 소환했다.
 
 ‘좋아! 저놈들만 해치우면 임무 완수다.’
 
 그렇지 않아도 딱 두 마리가 남았는데 때마침 두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침착하게! 실수하면 끝이야.’
 
 앞서 달려온 크로거의 약점 부위는 목.
 재윤은 왼손으로 붉은색 타깃 포인트를 움직여 그곳에 위치시켰다.
 곧바로 발사!
 
 푸확!
 
 “꾸어어억!”
 
 그렇게 한 명이 고꾸라졌고, 뒤쪽에 있던 크로거가 달려들었다.
 그러나 재윤은 이미 빠르게 뛰며 거리를 벌린 후였다.
 이제 크로거 하나를 상대로 이런 식으로 29초를 버티는 건 장난과도 같은 일.
 
 “그만 죽어라!”
 
 재윤은 무사히 재사용 시간이 지나자 곧바로 바람의 화살을 날려 크로거의 약점에 적중시켰다.
 
 “꾸아아악!”
 
 크로거가 처참한 비명과 함께 널브러졌다.
 
 【크로거 토벌(D)】
 -임무 수행 중: 12/12
 
 [당신은 임무 【크로거 토벌(D)】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임무 보상으로 100코인을 얻었습니다.]
 [임무 보상으로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생각보다 임무 보상 경험치가 괜찮았다.
 재윤은 단번에 다시 레벨이 올라 Lv6이 되었다.
 
 【이름】 강재윤
 【레벨】 6
 【생명력】 40/40
 【파투스】 23/23(↑1)
 【스탯】
 근력 5
 체력 4
 민첩 10(↑1)
 지능 4
 【잔여 스탯 포인트】 0
 【코인】 114
 
 재윤은 망설임 없이 보너스 스탯을 민첩에 분배한 후 아까 얻은 임무서를 펼쳐 수락을 눌렀다.
 
 [당신은 크로거에 대한 C등급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 이 임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습니다.]
 [현재 당신의 코인 잔액은 114입니다.]
 [4코인을 지불해 임무 【크로거 토벌(E)】을 수락하겠습니까?]
 
 “예. 수락합니다.”
 
 [임무 【크로거 토벌(E)】이 수락되었습니다.]
 [4코인이 지불되었습니다.]
 [현재 당신의 코인 잔액은 110입니다.]
 
 곧바로 임무 창이 생겨났다.
 
 【크로거 토벌(E)】
 -임무 수행 중: 0/5
 
 이제 크로거 다섯 마리만 해치우면 경험치와 40코인을 얻을 수 있다.
 재윤은 곧바로 크로거들을 찾아 나섰다.
 
 ‘저기 한 놈 있네.’
 
 크로거 한 마리를 발견한 재윤은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그 뒤쪽에 또 한 마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무려 세 마리 아니, 그보다 더 많았다.
 
 “크르르르!”
 “쿠우우어!”
 
 다 합치니 언뜻 봐도 열 마리도 넘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크로거들이 떼로 나타난 거지?’
 
 그것들 또한 재윤을 발견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저렇게 많으면 승산이 없는데.’
 
 바람의 화살은 2미터 이내로 접근해야 유효 타격을 줄 수 있다.
 말이 2미터이지 사실 거의 지척이나 다름없었다.
 크로거가 한두 걸음만 접근해도 닿을만한 거리이니까.
 그렇다 해도 두세 마리 정도는 어떻게 요리해볼 수 있겠지만, 10마리도 넘는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섣불리 접근했다가 포위라도 당하면 끝장이었다.
 
 ‘일단 튀자.’
 
 계속 뛰다보면 크로거들이 흩어질 때가 온다.
 그때 각개격파를 하면 손쉽게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재윤의 착각이었다.
 크로거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쿠아아아아!”
 “쿠오오오!”
 “크르르! 쿠아아!”
 
 크로거들이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니 어딘가 있던 다른 크로거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몰려온 것이다.
 
 ‘저 놈들이 오늘 작정이라도 한 건가?’
 
 재윤은 정신없이 뛰었다.
 민첩 10의 위력 때문인지 뛰는 속도가 빨라져 크로거들에게 따라잡히지는 않았지만, 소리를 듣고 사방에서 몰려오는 녀석들이 문제였다.
 지금처럼 말이다.
 
 “크르르!”
 
 크로거 하나가 재윤의 앞에 나타나 입을 쩍 벌린 채 덤벼들었다.
 그러나 재윤은 피하지 않고 달렸다.
 이런 때를 대비해 바람의 화살을 소환해 두었으니까.
 곧바로 날아간 화살이 크로거의 목을 꿰뚫었다.
 
 퍼억!
 
 약점을 포착한 정확한 일격!
 크로거는 한 방에 쓰러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크로거 토벌(E)】
 -임무 수행 중: 1/5
 
 재윤은 크로거의 사체를 훌쩍 뛰어넘은 후 쉬지 않고 달렸다.
 혹시라도 뭔가 쓸만한 아이템이 드롭되었다고 해도 주울 틈이 없었다.
 크로거들이 바싹 뒤쫓아오고 있었으니까.
 고개를 돌려보니 언뜻 봐도 무려 30마리가 넘어 보였다.
 
 ‘젠장! 새까맣게 몰려오네.’
 
 어디에 크로거들이 이토록 많이 있었던 것일까?
 하긴 거리가 숲으로 변하기 전 크로거들이 사방에 득실거렸던 것을 보면 저 정도는 약과라 할 수 있었다.
 
 ‘최대한 멀리! 저놈들과 거리를 벌려야 해.’
 
 재윤은 죽기살기로 뛰었다.
 방향도 알 수 없었다.
 끝없이 앞을 가로막는 낯선 숲의 수풀을 헤치고 또 헤치고, 그저 최대한 뛰고 또 뛰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그사이 크로거들과의 거리는 좀 벌어졌지만 여전히 그놈들은 추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으! 대체 어디까지 쫓아올 생각이냐?’
 
 숨이 벅찼다.
 늘어난 민첩으로 인해 속도는 빨라졌지만, 민첩이 지구력까지 늘려주지는 않았다.
 
 ‘폐가 찢어지는 것 같아.’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그나마 간신히 거리를 벌려놨는데, 여기서 멈추는 순간 금세 다시 간격이 좁혀질 것이다.
 
 ‘이제 레벨이 오르면 보너스 스탯을 체력에 분배해야겠다.’
 
 크로거들의 공격을 피할 때는 민첩이 아주 유용한 능력을 발휘했지만, 지금처럼 오래 뛰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니 체력 스탯이 너무 아쉬웠다.
 그런데 이렇게 숨이 차는 건 재윤만이 아닌 듯했다.
 기를 쓰고 쫓아오던 크로거들도 하나둘 헉헉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있었다.
 
 ‘저놈들도 지친 게 분명해.’
 
 재윤도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뛰면 완전히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두고 보자. 조만간 다 죽여줄테니까.’
 
 그렇게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핏빛의 안개가 짙어지고 날이 어둑해질 무렵 재윤은 비로소 크로거들의 추격을 완전히 떨쳐버리는 데 성공했다.
 
 ‘으으! 정말 죽을 것 같아.’
 
 이제는 때려죽여도 더 이상은 못 간다.
 쉬지 않으면 폐가 말 그대로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재윤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주변을 살펴본 후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우! 후우!”
 
 한참 동안 숨 고르기를 하고나자 이번에는 갈증과 허기가 밀려왔다.
 다행히 이런 때를 대비해 아까 챙겨둔 열매가 하나 있었다.
 
 으적으적! 쩝쩝!
 
 ‘꿀맛이네.’
 
 먹다보니 이 밋밋한 맛에 익숙해진 건지 지금은 세상에 이보다 맛있는 음식은 없는 것 같았다.
 갈증과 허기가 금세 사라지고 몸에 기운이 돌아왔다.
 
 ‘휴! 이제 좀 살겠구나.’
 
 그사이 날은 더욱 어둑해져 있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현관문이 부서졌다고 해도 재윤은 자신의 집에서 쉬고 싶었다.
 잠도 자신의 방 침대에서 자고 말이다.
 그러나 크로거들에게 쫓기며 방향도 모른 채 뛰다보니 이제 집이 어느 쪽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안개까지 짙어져 시야가 좁아진 상황이라 설령 방향을 안다고 해도 돌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애써 따돌린 크로거들과 다시 조우한다면 골치 아플 것이다.
 
 ‘하긴 이제 집이란 게 의미가 없잖아.’
 
 모조리 다 죽어서 텅 비어있는 집들.
 남의 집에 들어간다고 주거침입죄로 잡혀갈 일도 없었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들도 다 죽었는지 모른다.
 그건 곧 국가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런 세상에서는 더 이상 헌법이나 민법, 형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원시 시대처럼 힘있는 존재가 모든 걸 지배하는, 악몽과도 같은 끔찍한 현실인 것이다.
 
 ‘모르겠다. 그냥 아무 곳이든 건물이 보이면 들어가 쉬자.’
 
 어디든 들어가서 쉬면 내 집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재윤은 조심스레 수풀을 헤치며 걸었다.
 그런데 그렇게 잠시 이동했을까?
 
 “쿠우우우!”
 
 전방에서 크로거가 포효하는 소리가 들렸다.
 
 퍽퍽퍽!
 
 동시에 뭔가를 마구 후려패는 소리까지!
 핏빛 안개에 가려 아직 시야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앞쪽에 크로거가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재윤은 즉시 그 자리에 멈췄다.
 물론 잽싸게 바람의 화살을 소환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앞에 몇 놈이나 있는 거지?’
 
 두 놈 정도까지도 크게 긴장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수십 마리가 몰려 있다면 무조건 튀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 또 다시 들려오는 소리.
 
 “다른 데 말고 머리만 노려요! 머리를 때려야 죽어요!”
 
 순간 재윤은 귀를 의심했다.
 
 ‘이 소리는?’
 
 크로거의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의 음성이었다.
 
 “겁먹지 말고 어서 스틱을 휘둘러요! 아이고! 이러다 제가 죽습니다. 오래 못버텨요!”
 
 잘못 들었나 했는데 아니었다.
 굵고 강력한 중저음의 남자 음성이 다시 들려왔으니까.
 
 ‘사람이야! 사람이 살아 있어.’
 
 귀에 왠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이 아니었다.
 그 뒤로 들려오는 남자의 음성들.
 
 “아, 이 새끼 더럽게 안죽네.”
 “민철이 형, 조금만 더 버텨봐요.”
 
 그들의 음성에도 뭔가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민철이라고? 설마 민철이 형?’
 
 순간 재윤의 안색에 반가움이 스쳤다.
 
 ‘어쩐지 목소리가 낯익더니 민철이 형이 살아있었구나.’
 
 재윤보다 두 살 연상인 동네 형 이민철.
 직업은 헬스 트레이너.
 그와는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냈다.
 PC방에서 게임도 같이 하고 성인이 된 후에는 술도 자주 마시고 그랬는데.
 
 “크윽! 빨리 좀 어떻게 해봐요. 저 스킬 깨지기 직전이라고요.”
 
 이민철의 다급한 음성이 다시 울렸다.
 
 ‘스킬? 지금 분명 스킬이라고 했어. 그럼 형도 각성한 건가?’
 
 어쨌든 지금은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민철이 크로거와 싸우고 있는 듯하니 당장 도와줘야 할 것이다.
 재윤은 안개를 헤치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민철이 형!”
 “어? 넌?”
 
 1미터 90센티의 건장한 체격.
 트레이너답게 전신이 근육질로 이루어진 20대 중반의 남자 이민철.
 선 굵은 외모로 인해 누가 봐도 위압적으로 생겼다.
 
 “재윤아! 너······! 너 살아있었냐?”
 
 이민철의 음성에 반가움이 묻어나왔다.
 재윤도 이민철을 보자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냥 자신 말고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었는데, 친한 동네 형을 만나자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 형.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야?”
 
 재윤의 눈앞에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민철은 몸을 웅크린 채 서 있었는데, 그런 그를 크로거 한 마리가 두 주먹으로 마구 후려치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맞으면서도 이민철이 멀쩡하다는 것.
 
 “으! 나, 나중에 설명할게. 지금은 상황이 좀 그렇다. 으윽!”
 
 이민철은 다급한 표정으로 크로거 뒤에서 골프 스틱을 휘두르고 있는 남자들을 향해 외쳤다.
 
 “빨리요! 저 지금 스킬 깨집니다. 어서 이놈을 죽여요.”
 
 한 명은 50대 초반, 다른 한 명은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두 남자.
 
 “지금 치고 있는 거 안 보이나?”
 “팔이 부러져라 휘두르고 있어요. 조금만 더 참아요!”
 
 그들 또한 다급한 기색으로 골프 스틱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저래 봤자 안 죽을 텐데.’
 
 만약 저걸로 타격을 주는 게 가능했다면 재윤이 망치로 내려쳤을 때 크로거의 머리가 깨졌어야 정상이었다.
 물론 각성해서 뭔가 능력이라도 얻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각성자는 이민철이었다.
 본래라면 그가 아무리 대단한 헬스 트레이너라 해도 크로거의 주먹 한 방 맞으면 멀쩡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퍽퍽퍽-.
 
 정말 보면서도 믿기지 않은 일.
 크로거가 작정하고 두 주먹으로 후려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입으로 물어뜯는 데도 상처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저 형도 뭔가 대단한 각성 능력을 얻은 것 같은데?’
 
 더 이상한 건 뒤에서 골프 스틱으로 후려치고 있는데도 크로거가 이민철만 공격하고 있다는 것.
 어쨌든 지금은 그런 걸 이상해할 때가 아니었다.
 다 죽어가는 표정을 보니 상황이 급박해 보였으니까.
 빨리 도와줘야 할 상황.
 
 ‘저놈은 오른쪽 옆구리에 약점 포인트가 있네.’
 
 재윤은 잽싸게 타깃 포인트를 그쪽으로 위치시킨 후 바람의 화살을 날렸다.
 
 푸확-.
 
 “꾸아아악!”
 
 그러자 골프 스틱으로 그토록 후려쳐도 멀쩡하던 크로거가 단번에 고꾸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이민철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의 앞에 있던 두 남자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재윤을 쳐다봤다.

댓글(15)

랜덤없냐    
정수기 전기 없어도 조금은 물 나옴
2019.11.04 23:00
어림없지    
꽤나 재미나게 봣던 작품
2020.08.31 10:10
진격운    
역대급 오타 발견 이걸 수정 안했다고? 대박 이다 쫒아오다 를 ㅉ ㅗ ㅈ 이래놨네 ㅋㅋ
2020.09.04 12:32
n8629_saens6237    
아니이사람은게임도안해봤냐?
2021.05.17 21:57
까망이단비    
중복구매방지
2021.05.25 00:28
rainy929    
생각보다 재미있음 중복구매방지
2021.06.02 15:55
folken2    
이거 진짜 재미있는거 맞나요? 10p만에 못버티고 탈락
2022.04.18 19:08
뵬돼    
변한세상이 아니라 그냥 게임인데?
2022.04.26 13:01
말해뭐해    
옛날엔 재밌게봤던 작품. 중복대여 방지 댓글.
2022.04.30 16:59
서금신    
볼만함 중복구매방지
2022.04.30 20:38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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