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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으로 요리왕 1권 (1)

2019.07.22 조회 1,669 추천 20


 # 착하게 살자
 
 
 
 어느 날부터인가.
 내 눈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
 [에잇! 불 조절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니까?]
 [······ 형편없군. 재료 손질이 아주 엉망이야.]
 [히끅! 이 시든 채소로 뭘 하려는 거에요오?]
 요정, 진짜 있는 거였어?
 
 
 노파는 복잡한 표정으로 바닥에 누워있는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의문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으며 측은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노파의 주름진 손이 청년의 이마를 짚었다. 노파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내가 잘못 생각했구먼.”
 눈을 감았다 뜬 노파의 표정에 드러난 감정은 희망이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기대해 볼 만하겠구나.”
 노파가 청년의 이마에 댄 손을 떼었다. 그녀가 허공에 손을 펼쳤다. 놀랍게도 그녀의 손바닥에 물방울이 톡 하고 생겨났다.
 “네가 이 청년을 도와줘 보거라.”
 또로록!
 물방울이 마치 노파의 말에 반응한 듯이 크게 출렁였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처럼 손 위에서 춤추었다.
 “이 청년이 세상에 어떤 발자취를 남길지 기대되는구나.”
 
 * * *
 
 “헉!”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팔다리가 제대로 달려 있는지 확인하는 것. 팔다리 멀쩡하고, 머리를 문질러 보아도 깨진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작은 땜빵이야 어릴 때 동생 놈이랑 놀다가 난 거고.
 “꿈이었나?”
 분명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니, 교통사고 나는 꿈을 꾼 건가? 아무튼, 나는 횡단보도에서 웬 할머니가 차에 치이려는 것을 목격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달려들어 할머니를 밀쳤고 트럭이 크게 확대되던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정의감을 불태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뭐랄까, 눈앞에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개꿈이겠지 뭐. 개꿈이라고 생각하기엔 조금 생생하고 더러운 기분이었지만.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그때 내 잡생각을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깨웠다. 명인 갈비 사모님이라고 쓰여 있었다. 웬일이시지?
 “세종 씨. 오랜만이에요.”
 “사모님? 안녕하세요.”
 명인 갈비는 내가 취업 준비를 시작하기 전 일했던 고깃집이다. 취업 준비 때문에 그만두기는 했지만, 참 좋은 곳이었다. 사장님, 사모님께 도움도 많이 받았고.
 “다른 게 아니라, 혹시······”
 사모님의 말에 내 눈이 크게 떠졌다. 사장님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원하셨다는 것이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아직 의식을 찾지 못했다고 하신다. 그렇다고 가게를 쉴 수 없는 상황이어서 급하게 일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별일 없으면 혹시 일주일만 도와줄 수 있을까요? 일급 넉넉하게 챙겨줄게요.”
 안 그래도 생활비가 조금 달리던 차였다. 일급으로 넉넉하게 챙겨준다고 하시니 ‘한번 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세종 씨.”
 “아니에요. 얼른 사장님이 회복하셨으면 좋겠네요.”
 사모님과 통화를 끝내고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8시. 단잠이 깨긴 했지만 어쨌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후 4시 30분까지 가면 되니까 넉넉하게 준비하면 되겠지.
 토익 공부 따위를 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아침, 점심을 다 라면으로 때운 탓인지 수험 서적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일하러 갈 시간이 된 것이 반가웠다. 준비를 마친 나는 든든하게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이십여 분쯤 걸었을 때 목적지에 도착했다.
 <명인 갈비>
 내가 일했던 가게다. 지하철역, 번화가에 있는 양념 갈비 전문점. 40평 규모에 20테이블, 총 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게였다. 이 근방에서는 이름만 대도 알아주는 맛집이다.
 가게 안에는 바쁘게 돌아다니는 수더분한 인상의 중년 여성과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통칭 규호 엄마라 불리는 박영신 아주머니와 가게의 부주방장이다. 박영신 아주머니는 전에 같이 일했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아들 혹은 딸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해 주시는 아주 좋은 분이다. 주로 찌개나 계란말이 같은 사이드메뉴를 전문으로 하셨다.
 “어? 아들?”
 “오랜만에 봬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사모님이 알아보신다고 하더니만 아들이 도와주러 온 거구나.”
 박영신 아주머니는 성격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부주방장에게도 인사했다. 내가 일할 때 계시던 부주방장님이 사정이 생겨 그만두셔서 새로 왔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정준화였다. 먹성이 참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닌 것 같다.
 “홀 청소만 하면 되는 거죠?”
 “응. 조금 있으면 다른 애들 올 거야. 연락해 봤어?”
 “아니요. 서프라이즈로 하려고요.”
 “애들이 좋아하겠네.”
 오랜만에 같이 일하던 녀석들 볼 생각하니까 색다른 기분이었다. 그때 가게 문을 열고 선남선녀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활기차 보이는 여자 알바생과 차분한 인상의 남자 알바생이었다.
 “어? 오빠?”
 “형!”
 여자 알바생은 심유정, 남자 알바생은 홍인기였다. 두 사람 다 1년 정도 같이 일해서 친한 동생들이다.
 “오랜만이야. 유정아.”
 “일하러 온 거예요?”
 “응.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셔서.”
 “잘됐다, 오빠.”
 유정이가 소리 높여 대답했다. 예쁜 목소리처럼 외모도 아이돌 뺨치게 예쁘다. 인기도 키는 조금 작지만, 여자처럼 흰 피부에 매력적으로 생겼다. 나야 키 큰 거 빼고는 그다지 내세울 게 없지만.
 오랜만에 해 보는 일이지만 몸이 기억했다. 홀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오픈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이 시간쯤 되면 손님들이 줄을 서고 있을 테니 빨리해야 한다.
 “그렇게 안 해도 돼요, 형.”
 “응?”
 그때 인기가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요즘 손님이 많이 줄어서······ 오픈 때 되어도 대기 손님 없어요.”
 “진짜로? 명인 갈비가?”
 “네. 사장님 입원하시고 나서 뭔가 맛이 바뀌었나 봐요. 손님이 팍 줄었어요.”
 나도 먹어봤지만 명인 갈비의 양념 갈비는 정말 환상적인 맛이다. 보통 갈빗집보다 다소 비싼 가격임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으니까. 그저 그런 맛이라면 비싸게 돈 내고 올 손님은 없을 것이다.
 “이건 그냥 알고만 계세요.”
 그래야지. 괜히 말해봤자 긁어 부스럼이니까.
 “식사 준비 다 됐어요!”
 유정이가 활기차게 말했다. 퍼뜩 정신이 든 나는 인기와 함께 식사를 테이블로 옮겼다. 직원 복지로 나가는 저녁 식사였다. 메뉴는 고추장찌개와 계란말이다. 나는 찌개를 옮겨 담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저절로 엄지가 척 올라간다.
 “역시, 아주머니 솜씨는 여전하시네요.”
 “금칠은.”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어머니보다 더 솜씨가 좋으신 것 같다.
 “사실 사장님이 알려주신 레시피대로 했을 뿐이야. 양념장이랑.”
 “역시 사장님.”
 그렇다면 또 수긍이 된다. 호텔 주방장 출신인 사장님 요리 솜씨는······ 정말 대단하니까. 솔직히 여기 요리 중 맛없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나저나 갈비 양념은 잘 되어가요?”
 한참 식사하던 도중 박영신 아주머니 물음에 부주방장이 탁! 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의 표정은 ‘어? 열 받네?’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을 의심하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혹시 모자랄지도 모르니까.”
 “제가 알아서 합니다.”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요.”
 아주머니와 부주방장의 사이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밥 먹느라 체하는 줄 알았다. 식사가 끝나고 오픈 준비도 모두 끝났다.
 “오픈할게요.”
 “내가 할게.”
 나는 가게의 팻말을 OPEN으로 돌려놓았다. 대기하는 손님은 없었다. 예전에는 오픈하기 전에도 줄이 늘어서 있었는데 저녁 시간인데도 손님이 보이지는 않는다. 길 건너 새로 들어선 무한리필 고깃집은 손님들로 붐비는 것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잠시 멍 때린 사이 심유정이 높은 톤으로 손님들을 반겼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너덧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내가 물을 나르는 동안 심유정이 주문을 받았다.
 “양념 갈비 4인분이랑 멸치국수 두 개 주세요.”
 안이 들여다보이는 주방에서 박영신 아주머니와 부주방장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부주방장이 주방 입구에서 떨리는 기색으로 손님들의 기색을 살피고 있었다.
 “부장님, 입맛에는 맞으십니까?”
 “음. 멸치국수는 맛있네.”
 부장이라고 불리는 중년의 남자는 정작 고기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멸치국수는 수시로 입으로 가져갔다.
 “갈비는 좀 어떠세요? 여기가 조은물산 최 대리가 추천해준 집이거든요.”
 “조은물산이 우리랑 거래하기 싫다는 뜻으로 이해되는데. 이렇게 비싼 돈 주고 먹을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
 대화를 들은 부주방장의 얼굴이 육개장 색깔처럼 빨갛게 변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는 주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그에 반해 멸치국수로 승리를 거둔 박영신 아주머니는 그러면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심유정이 소리 높여 인사했다.
 그 뒤로도 손님 몇 테이블을 더 받았지만, 매출이 좋지는 않았다. 오늘의 총 매출 50만 원. 사실 이 정도면 인건비 뽑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음식점이란 게 소문이 워낙 빨라서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도는 것 같았다. 나야 뭐, 사모님이 계좌로 일급을 넉넉하게 보내주셨으니 할 말은 없지만.
 일을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하며 노곤한 몸을 풀었다. 앞으로 6일 더 일해야 하니까 체력 관리는 필수다. 얼른 자야지 하고 머리를 말린 뒤 침대에 앉았는데 싱크대에 설거짓거리가 잔뜩 있는 게 보였다. 아침과 점심으로 먹었던 라면의 잔해물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휴, 이걸 언제 다 치운담.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싱크대로 섰다. 고무장갑을 끼고 수도를 틀었다. 맨손으로 설거지하다가 주부습진에 걸린 적 있어서 그 뒤로 꼭 고무장갑을 끼곤 했다.
 [······ 들려? 내 목소리 안 들려?]
 그때였다. 수도를 틀자, 어떤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다. 작았던 목소리는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주변을 휙휙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설마 귀신인가?
 [여기야, 여기!]
 그때 싱크대의 물이 크게 출렁였다. 싱크대에 눈을 돌린 나는 어떤 존재를 보고야 말았다. 내 입에서 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요, 요정?”
 
 
 # 물의 정령
 
 
 요정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사람이었다. 희디흰 피부와 신비로운 푸른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마찬가지로 푸른색의 눈동자가 특징이었다. 물 그 자체를 의인화하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싱크대에 있는 저 존재는 정말 요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움직일 때마다 물방울을 튀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연예인 뺨이라도 때릴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게 생겼다. 현실적인데 비현실적이었다. 마치 정교한 피규어라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여? 이제 보여? 보이는구나?]
 까르르 웃은 요정은 내 눈앞에서 요리조리 왔다 갔다 했다.
 [내가 보여?]
 보여, 보이는데.
 “뭐, 뭐야? 귀신인가?”
 사실은 요정이 아니고 저승사자나 그런 거 아니야? 나 방금 죽은 건가? 내 어리둥절한 반응에 요정이 코웃음 쳤다.
 [죽다니? 무슨 헛소리야?]
 “그럼 도대체 넌 뭐야?”
 [나는!]
 요정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쫙 튀며 화려한 시각 효과를 뽐냈다. 세일러문이야, 뭐야?
 [위대한 여왕님이 직접 ‘임무’를 내려주신 물의 정령이다!]
 “물의 정령”
 [그래. 물의 정령!]
 나는 요정, 아니 물의 정령이라는 존재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살면서 이런 게 실존한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애초에 정령 같은 건 동화책에나 나오는 것 아니었나? 이게 그 애니미즘(원시 정령 신앙)인가 그건가?
 [잘 못 믿겠으면, 봐봐!]
 물의 정령이 손을 휘둘렀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화들짝 놀란 나는 뒤로 물러났다.
 “헉!”
 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모습을 바꾸었다.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은 강아지 모양이다가, 고양이 모양이다가, 새 모습을 하더니 이번에는 돛단배 모양으로 바뀌었다. 계속해서 모양을 바꾸던 물은 잠시 후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신비하고 황홀한 모습이었다.
 정령, 진짜로 있는 거였어?
 그때였다.
 띠리리링~
 내 자취방의 문이 벌컥 열렸다. 집주인 아저씨였다.
 “어? 있었어?”
 알고 보니 부동산에서 연락받고 왔다는 것이다. 대학가 앞의 원룸 주인들이 으레 이러기는 한다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지금 시각이 자정인데 방 구하는 사람을 데리고 내 집으로 온다니. 하지만 원룸 주인은 뻔뻔한 얼굴로 내 방 이곳저곳을 보여주었다. 저 방을 구하는 사람도 정상인은 아닌 것 같았다.
 “아이고, 물을 다 틀어놨네. 이러면 물세 많이 나와, 학생.”
 그때 원룸 주인이 싱크대에 눈을 돌리며 말했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가 수도를 잠갔다. 나는 크게 당황했다. 저기에는 정령이 있는데! 심지어 정령은 싱크대에서 물장구치고 있었다.
 “설거지도 자주 하고 말이야. 벌레 안 나오게 하려면 조심해야 한다고. 내가 벌레 때문에 정말 환장해.”
 그러나 원룸 주인은 정령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저렇게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못 본다고? 정령은 이제 아예 싱크대에서 조리대로 올라가 돌아다녔다. 특이하게도 물 자국이 나지 않았다. 나는 곁눈질로 그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으로는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시뮬레이션 상황>
 “아저씨 저거 안 보이세요?”
 “응, 뭐?”
 “저기요, 저기. 물의 정령이요?”
 “······.”
 
 이렇게 되면 정신병 진단을 받을지도 모른다. 뭐,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정신병력 있으면 취업에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잖아.
 일단은 모른 척해야겠다. <시뮬레이션 상황>은 폐기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원룸 주인은 온 집안을 다 헤집고 돌아갔다. 한숨 돌린 나는 정령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너도 봤잖아? 어차피 나는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여. 정령들은 특별한 사람들 외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안 보이고, 목소리도 안 들리는 게 맞는 것 같다. 원룸 주인은 정령의 존재를 하나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네가 진짜 물의 정령인가 그거라고?”
 [그래. 내 목소리를 언제 들어줄까 하고 계속 소리 질렀다고.]
 “나를?”
 물의 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왕님이 인간, 너를 도우라고 임무를 내려 주셨어.]
 “여왕? 임무?”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구나.]
 정령이 훌쩍 점프하더니 내 이마를 한번 툭 하고 쳤다. 차갑거나 축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사람의 살이 닿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떤 이미지와 감각이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횡단보도, 할머니, 당황, 트럭, 굉음, 스키드 마크, 충격, 고통. 몸이 바스러지는 것 같은 감각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허억!”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고통은 순식간에 가셨다. 그게 꿈이 아니었단 말이야? 그럼 나는 진짜로 교통사고 당했던 거라고? 사실 죽은 사람을 여왕이 살린 거라고?
 “나, 진짜로 죽을 뻔했던 거야?”
 [응. 애초에 여왕님은 차에 치여봐야 상처도 안 나. 치일 리도 없고. 어쨌든 자기 때문에 사고가 난 거니까 네 상처를 치료한 거지.]
 “괜한 오지랖을 부렸네, 내가.”
 [오지랖은 아니지. 여왕님이 그러셨어. 너는 흔한 인간 같지 않아서 도와주고 싶다고.]
 “도와준다고.”
 [너는 쉽게 오지 않는, 아니 거의 없는 행운을 잡은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도 착하게 살아. 착하게 사니까 복이 오잖아?]
 갑자기 펼쳐진 상황은 매우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뜬금없이 정령이라니. 게다가 내가 구하려던 그 할머니가 정령들이 말하는 여왕이라고?
 기분이 묘하고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분명 대가를 원해서 할머니를 구하려고 뛰어든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서 정령이라는 존재가 나타났다. 살아가는 데 정답은 없다고는 하지만, 뭔가······ 내가 그동안 살아온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광으로 알아. 정령왕이 직접 인간을 도우라고 한 건 아마 처음일 거니까.]
 “돕는다고?”
 [그래. 나는 너를 도우려고 파견된 거야.]
 “어떻게 도울 건데?”
 정령은 자신만만하게 팔을 허리에 올렸다.
 [글쎄? 지금은 이런 것도 가능한데.]
 ‘어떤 거?’
 [이렇게. 얍!]
 정령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물줄기들이 마구마구 소용돌이치더니 알아서 설거지를 척척 하는 것이 아닌가!
 주방 세제 탄 물이 물줄기에 합류해서 거품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거품 소용돌이가 식기를 한 번 휩쓸고 나면 수도꼭지의 깨끗한 물이 세제를 싹 씻어냈다. 식기세척기가 아니라 식기세척기 할아버지가 와도 이렇게 깨끗하게 설거지 못 할 것 같다.
 “와.”
 심지어 물기 하나 안 묻어 있다. 원래 식기는 설거지를 해도 제대로 건조하지 않으면 물때 끼기 마련인데 이렇게 말라 있으면 물때 걱정에서는 해방인 것이다. 접시와 냄비가 엄청나게 뽀득거린다.
 [엣헴. 어때, 이 몸의 능력이.]
 ‘인상적이네.’
 매우 인상적이었다.
 [반응이 영 시원치가 않은데.]
 내 애매한 반응을 느낀 것인지 정령이 팔짱 끼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보였다.
 ‘아니, 좋아. 좋은데.’
 애매한 것은 맞지. 짜잔! 정령이 나타났습니다! 남들 눈에는 안 보여요! 네, 무슨 능력이 있냐고요? 설거지를 완벽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죠?
 [흐음.]
 정령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말고도 나는 여러 가지 엄청 많이 할 수 있어! 물에 관련한 거라면 네가 상상하는 이상의 것들을 할 수 있다고? 내 특기는 요리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요리는 내가 다 할 수 있어! 무한히!‘]
 “그래. 정말 대단하구나, 너.”
 정령은 무엇인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뭐, 차차 알아가면 되지 않을까?
 “너, 너 하는 것도 이상한데. 너 혹시 이름이 뭐니?”
 [없어.]
 설마 삐진 건가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그녀를 최대한 달랬다.
 “에이, 그러지 말고 알려줘.”
 [없다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대답이었다. 식은땀이 삐질 흘렸다.
 [진짜 없어, 이름.]
 “이름이 없다고?”
 [그래.]
 정령이 손바닥 위에 주저앉고 말했다. 왠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원래 이름있는 정령은 거의 없어. 나도 그냥 여왕님이 ‘아이야’ 하고 부르는걸. 이름은 여왕님이 붙여주거나 사람들이 붙여줘야 하는데 여왕님 주변에는 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많은 정령이 붙어 있어. 거기에 정령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한 나라에 한 명 있을까 말까이기도 하고.]
 상심한 듯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참으로 딱해 보였다. 그래, 결심했어.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김춘수라고 있거든? 그 사람이 쓴 ‘꽃’이라는 시에서 그랬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내가 너의 이름을 붙여줘도 될까?”
 나의 말에 정령의 파란 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감동한 걸까? 하긴 내가 한 말이지만 참 멋있기는 했다.
 [너······]
 정령이 말했다.
 [문과구나.]
 “······”
 [나는 이과를 좋아하는데. 너 수학이랑 과학 못하지?]
 말은 귀로 듣는 건데 왜 이렇게 명치가 아픈 기분이지? 문송합니다, 그래.
 [이름 지어주면 나야 고맙지! 이름이 있다는 건 더 높은 정령이 될 수 있다는 뜻이거든! 그냥 어디에나 흔하게 존재하는 정령이 아니라, 인정받은 정령이란 이야기야.]
 “역시 그렇지? 이름 중요한 거지?”
 [응응. 중요한 거야!]
 정령의 말에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신중하게 지어야지. 내 문과 감성을 듬뿍 담아서 말이지. 내가 문과를 간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다.
 정령이나 요정이라면 떠오른 것을 생각해보자. 요정이면 역시 컴미? 아냐, 이건 뭔가 표절 같은 느낌이잖아. 아니면 룰루? 아니야, 이것도 어딘가에서 태클 들어올 것 같아. 영감이 팍 떠올라야 하는데.
 “너는 물의 정령이라고 했지?”
 “응. 물의 정령.”
 물의 정령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도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은 세련된 이름이 없을까? 한참을 생각하던 중 머릿속에 툭 하고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수아(水娥).”
 수아. 물로 된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이다. 정령은 수아라는 이름을 여러 번 중얼거렸다.
 [수아. 좋은 이름인 것 같아.]
 “마음에 들어?”
 [응응. 수아. 나는 이제부터 수아야!]
 수아는 훌쩍 뛰어올라 나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나 수아는 이제부터 인간 윤세종, 너의 친구야. 정령의 친구!]
 “앞으로 잘 부탁해.”
 이것이 나와 물의 정령, 수아가 만들어갈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화, 화장실에 따라 들어오려고?”
 [왜? 안 돼?]
 “그게, 조금.”
 아침부터 실랑이가 이어졌다. 나는 샤워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려는데 수아가 자꾸 들러붙는다. 작기는 해도 완전한 여자의 모습을 한 수아한테 알몸을 보여주기는 좀 그렇잖아?
 [심심한데.]
 수아는 내 머리 위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그럼 이렇게 해줄게.]
 또르륵!
 싱크대 수도꼭지가 저절로 틀어졌다. 세차게 뿜어져 나온 물이 모이더니 나에게 그대로 쏟아졌다.
 촤악!
 “으악!”
 물이 나의 전신을 두들겼다. 심지어 귀와 콧구멍 속, 입안까지 물이 들어왔다가 빠져 나왔다. 이러다가 익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들 즈음 물은 다시 길게 꼬리를 남기면서 개수대로 빨려 들어갔다.
 “켁켁! 이게 무슨 짓이야?”
 [짠짜잔! 빨래, 아니 샤워 끝!]
 “뭐?”
 [이 정도는 나 같은 위대한 물의 정령에게는 껌이지. 네 몸에 묻어 있는 온갖 이물질을 죄다 씻어냈어.]
 진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몸 곳곳을 살펴보았다.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물에 젖은 기색 하나 없었다. 하지만 몸은 굉장히 개운했다. 머리도 방금 감고 말린 것처럼 잘 정돈되어 있었고 피부도 뽀송뽀송했다. 거울로 보자 개기름 하나 없이 깨끗했다.
 “대박이다.”
 [그치, 그치. 대박이지.]
 수아는 식기세척기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 세척기 기능까지 탑재한 것이었다.
 “또 다른 건 뭐가 있어?”
 [음. 옷도 깨끗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세탁기 기능까지! 이렇게 된 거 세탁소나 차려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아니면 불판 세척 사업에 뛰어든다거나······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수아가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용도로 쓰기는 힘들 거야.]
 “힘들어? 왜?”
 [나는 ‘주방의 정령’이거든.]
 “주방의 정령?”
 [여왕님의 주방에서 태어난 정령이야. 정령은 태어난 근원에 의해 능력이 결정돼. 그래서 나는 주방에서만 힘쓸 수 있어.]
 “아.”
 그런 거였어? 원룸이야 주방이랑 일체라 상관이 없는 것인가?
 [시, 실망했어?]
 “그럴 리가.”
 나는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실망했느냐고? 그럴 리가.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기적 같은 일인걸. 나에게만 보이는 특별한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로도 기분 좋은 일이다. 나의 말에 수아가 헤실헤실 웃는다. 마치 성격 좋은 고양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공부하는 거야?]
 “응. 취업준비 해야 하니까.”
 [취업, 취업이라.]
 내가 자리에 앉아 책을 펴는 것을 본 수아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나는 그녀를 위해 컵에 물을 담아 두었다. 마치 인어공주라도 되는 것처럼, 수아는 물컵 안에 퐁당 들어가서 몸을 담그고 있었다.
 [이게 네가 하고 싶은 거야, 세종?]
 “글쎄.”
 하고 싶은 거라.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뭐, 남들 사는 것처럼 똑같이 살면 되는 거 아니겠어?
 
 * * *
 
 오전에 공부를 마친 나는 가게로 향했다. 수아는 내 머리 위에 매달린 채로 잠자고 있었다. 정령도 힘을 많이 쓰면 자야 한다고 했다. 흔들리는 머리 위에서 접착제를 붙여놓은 것처럼 용케도 잘 누워있다.
 “오셨어요.”
 오늘은 다른 알바 녀석들이 더 빨리 와 있었다. 나는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인사했다. 검은색 티셔츠 유니폼과 앞치마를 두른 나는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인기가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오늘 단체 예약이래요.”
 “뭐? 단체? 몇 명?”
 “30명이요.”
 “하이고··· 어디 회식이라도 하는 건가.”
 차라리 일반 손님들로 30명이 차는 것이 낫지, 30명이나 되는 인원이 단체로 오면 정말 정신없이 바빠지기 때문이다. 단체 손님은 단체로 왔는데 더 좋은 서비스를 요구하고 다른 손님들은 자기들은 대접 안 해준다고 불평하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손님이 아예 발길을 끊는 것에 비교하면 훨씬 낫다.
 “힘내서 해보자.”
 “네, 형.”
 잠시 후, 오픈을 마치고 7시쯤 되었을까. 멀끔하게 생긴 한 남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예약하고 왔는데요. 조은물산이라고요.”
 “아, 단체 예약하신 분이시죠? 안쪽 단체석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남자를 시작으로 손님들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온다. 미리 인원수에 맞추어 세팅도 해 두었고, 고기도 준비해 둔 덕분에 나르기만 하면 됐다. 우리가 옆에서 고기를 나르는 동안 예약을 맡았던 남자가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여기가 제 단골집인데 양념 갈비가 정말 맛있습니다, 이사님. 후회 안 하실 겁니다.”
 “최 대리만 믿겠네.”
 가장 상석에 앉은 강퍅한 인상의 남자가 목소리를 깔면서 말했다.
 “저만 믿으십시오! 여기요, 테이블당 소주 2병, 맥주 5병씩 해주세요. 이슬이랑 까스로다가!”
 “네.”
 우리는 오래간만에 온 단체 손님에 최선을 다했다. 다소 무례한 태도의 사람들도 몇 명 있었지만 알바를 하다 보면 그 정도는 종종 겪는 일이었다. 그 정도는 익숙하다 못해 무덤덤하다. 그냥 옆집에서 짖는 개소리 같은 느낌이랄까. 사실 수아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장난쳤다. 음료를 바지에 쏟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나 혼자 알고 있는 비밀에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홀에 몇 손님이 더 왔기 때문에 바쁘게 여기저기를 오가야 했다. 그러면서 슬쩍 단체 손님 쪽을 봤는데, 최 대리라는 남자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이사라는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최 대리는 화장실 가는 척하더니, 주방 쪽을 기웃거렸다. 다급한 표정이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혹시 사장님 있습니까?”
 “사장님요? 몸이 편찮으셔서 가게에 안 계세요.”
 “뭐라고요?”
 최 대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어쩐지 갈비 맛이 이상하더라니! 왜 사장이 없다는 걸 말 안 한 겁니까?”
 “네?”
 나와 최 대리의 대화 소리를 듣고 부주방장과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도대체가 먹을 수 있을 만한 걸 음식으로 내야지! 이게 뭐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갈비가 무슨 고무를 씹는 것 같다고요. 간은 또 왜 이렇게 짠 거야?”
 최 대리는 나에게 한참 불평을 쏟아부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내기’ 스킬을 만렙까지 터득한 나는 별 감정 없이 그것을 받아냈다. 핵심은 이것이었다. 이 남자는 진급 관련 문제로 이사 라인을 타려는 데 오늘 일로 라인을 타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사가 상당한 미식가라나, 뭐라나.
 물론 내 사정은 아니어서 내가 받는 타격은 0이었다. 하지만 부주방장은 다른가 보다. 그는 창피한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고기를 양념에 재우는 것은 부주방장인 그가 하는 일이니까. 고기의 맛을 좌우하는 건 부주방장의 몫이었다.
 “저희가 서비스로 음료 하나씩 돌릴 테니 화 좀 푸세요.”
 보다 못한 박영신 아주머니가 나와서 최 대리를 달랬다. 최 대리는 그 뒤로도 한참을 X랄하다가 자리로 돌아갔다.
 “에구머니나, 이게 웬일이람.”
 “그러게요.”
 “내가 부주방장 일 건성으로 할 때 알아봤어.”
  아주머니는 부주방장한테 소리가 닿지 않도록 작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고기가 어떻기에 저런 말을 하는 거야? 때마침 홀에 있던 손님 한 테이블이 나갔다. 꽤 많은 양의 고기를 남기고 갔다. 나는 남은 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안 먹는 것 추천.]
 고기에 손을 대 본 수아가 말했다. 그녀의 표정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법. 나는 용감하게 고기를 입에 넣었다.
 “?!”
 엄청나게 짜다. 짜기만 할 뿐만 아니라 양념이 텁텁했다. 밥 없으면 도저히 삼킬 수가 없는 수준이다. 원래 우리 명인 갈비는 양념이 맛있는 것으로 소문난 집이다. 그런데 이런 양념이라니? 이건 사장님이 쌓아 놓은 명성에 대한 모독이었고 비싼 값 주고 먹으러 온 손님에 대한 모욕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최 대리가 상당히 신사적인 사람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고기를 뱉을까 삼킬까 고민하는 와중에 수아가 내 어깨로 폴짝 뛰어오르며 말했다.
 [이거, 합성 조미료 범벅해서 이렇게 된 거야.]
 “응?”
 내가 반문하자 수아가 대답을 내놓는다.
 [내가 말했지? 나는 물이 관련된 거면 네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요리에 들어간 성분을 다 잡아낼 수 있어. 어쨌든 양념도 수분을 포함하고 있는 거니까.]
 과연, 정령왕의 주방에서 태어난 정령은 다르다는 건가?
 [잡내를 잡고 맛을 낸답시고 합성 조미료를 과하게 넣은 거야. 그러니까 당연히 짜고 텁텁하지.]
 “대단해.”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마치 유명 셰프들이 요리를 한 입 먹고 그 안에 뭐가 들어갔는지 딱딱 알아맞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걸 부주방장님한테 말해볼까?”
 [안 하는 거 추천. 저 사람 성격상 네 말을 들을 것 같지가 않은데?]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가게에 피해 주는 꼴을 두고 보기는 조금 그렇다. 조심스럽게 아주머니한테 이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아주머니는 아주 손사래를 쳤다. 부주방장은 자기 권위를 해치는 일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했다.
 “사장님이 이럴 때가 있을까 봐 혹시 몰라서 양념장 샘플로 얼려뒀거든? 근데 도무지 맛보고 따라 해 볼 생각을 안 해. 자기가 어디 잘 나가는 집에서 배워왔다고 그대로 하더라고. 그러면서 뭐라고 하는 줄 아니? 사장님은 입맛이 구식이래, 구식. 참나. 어이가 없어서는. 사장님 없다고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변하니? 가게 매상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그 덕에 아주머니의 한탄을 잠시 들어주어야 했다.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니 부주방장의 행동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면 경쟁 업체에서 투입한 산업스파이 아니야?
 [아니면, 이건 어때?]
 “뭐를?”
 [네가 직접 만들어서 맛을 보여주면 되잖아.]
 “내가?”
 내 말에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맛보고 재료를 일러주면 되잖아. 네가 제대로 만들어서 맛을 보이면 저 부주방장도 뭐라고 말 못 할 텐데? 냉동해 둔 양념장 있다고 했잖아.]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일리 있는 말이다.
 명인 갈비 양념, 내가 한 번 만들어 봐?
 
 
 # 정령의 힘
 
 
 일이 끝날 무렵 나는 아주머니께 부탁해서 양념장 샘플을 얻을 수 있었다. 어차피 부주방장은 신경 안 쓰기도 했고 양도 꽤 넉넉하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양념장에 손을 대 본 수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꽤 정성 들이는 것 같은데?]
 “그래?”
 [응. 맛집이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
 “마감하면 재료 사러 가야겠다.”
 [필요한 건 여기서 몇 개 가져가자. 과일 같은 거는 밤늦게 구하기 어려우니까.]
 “응.”
 가게의 마감 시각은 11시였다. 보통 주방 마감을 먼저 하고 홀 마감은 그보다 조금 늦는다. 그 때문에 부주방장은 먼저 마감하고는 쌩하고 가버렸다.
 “아주머니, 혹시 남는 식자재들 몇 개 좀 챙겨가도 될까요?”
 “식자재? 뭐에다 쓰려고.”
 “양념이요. 제가 한 번 따라 해보려고요.”
 “아들이?”
 박영신 아주머니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럴 만도 하지. 주방 알바도 아니고, 홀 알바를 하는 내가 뜬금없이 양념을 해보겠다고 하니 미심쩍을 것이다.
 “사실 일 그만두고 자취하면서 종종 요리해서 먹었거든요. 한번 도전해 보려고요.”
 그럴 리가. 내 주식은 어디까지나 라면이다.
 “뭐, 아들이 한다는데 그 정도야. 사모님도 이해하실 거야. 이런 거에 인색하신 분도 아니고.”
 “감사합니다!”
 나는 수아가 일러준 재료 중 지금 쉽게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을 골라 담았다.
 “키위가 필요해?”
 [키위도 들어있던데.]
 창고에는 키위가 박스째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용한 흔적은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허락받았으니 가져가는 것은 문제없겠지. 이것저것 담다 보니 꽤 무게가 나갔다. 끙끙대며 바깥으로 나갔더니 심유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 안 했어?”
 “네. 가게 열쇠 나한테 있잖아요. 오빠가 준 거.”
 “아, 참. 그랬지.”
 유정이와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 와 있었다. 물론 유정이는 제 갈 길 곱게 갔지.
 [준비됐어?]
 “응.”
 수아의 도움으로 샤워를 마친 나는 가져온 재료를 모두 꺼냈다. 좁은 자취방에 늘어놓으려니까 방이 가득 차는 느낌이다. 수아가 양념에 필요한 재료를 불러 주었다.
 [진간장 2컵, 물 2컵, 멸치 7마리, 설탕 1컵, 맛술 1컵, 대파 1대, 양파 1개, 다진 마늘 3스푼, 참기름 1스푼, 다진 생강 1스푼, 키위 반 개, 배 반 개, 후추 2스푼, 다시마 2조각.]
 딱히 계량할 수 있는 도구가 없는 나를 위해서 수아는 철저히 우리 집의 기준으로 말해주었다.
 “다진 마늘은 없는데.”
 [네가 직접 다져야지, 그럼.]
 식칼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봤다. 일단 파는 어슷썰기로 썰었다.
 [너 칼질에 정말 소질 없구나.]
 “내가 그래서 껍질 있는 과일 잘 안 먹어.”
 [흐음. 그랬구나.]
 내가 잘랐지만, 파의 형태는 참혹했다. 끝부분이 죄다 뭉개져서 잘랐다기보다는 끊어낸 것 같다. 마늘 다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아가 무슨 조화를 부린 건지 눈물 나는 것을 막아줬다는 것이다. 수아가 만능 세탁기, 절대 미각, 만능 계량기에 더불어 안구 보호 기능까지 탑재한 정령으로 격상했다.
 “요리, 재미있는 거구나.”
 [재밌어?]
 “응. 재미있어.”
 한참은 재료를 가지고 씨름하던 중에 불현듯 드는 생각이었다. 매일매일 취업준비라는 똑같은 일상을 하던 나에게 요리는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하긴. 너 공부할 때랑은 얼굴이 달라. 공부할 때는 맨날 한숨만 쉬더니 지금은 웃고 있잖아.]
 “그런가? 뭐,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으니까.”
 [사람은 참 힘든 거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재료의 손질이 끝났다.
 “아. 근데 이것만 가지고 맛을 따라 할 수 있을까?”
 갑작스럽게 드는 생각이었다. 요리에서 재료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순서와 조리방법이라는 것은 나 같은 문외한도 잘 아는 일이었다. 똑같은 재료를 주더라도 조리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을 내는 것이다.
 [최대한 똑같은 맛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면 되잖아. 내가 그래서 일부러 더 많이 가져오라고 시켰어.]
 “아, 그렇지!”
 내가 멍청한 생각을 했다. 수학 문제로 치면 답을 이미 아는 상황에서 대입할 숫자만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원래 수학은 공식이나 머리가 아니라 노가다로 푸는 거랬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재료를 배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내 착각이었고, 나는 그날 밤을 새웠다.
 
 * * *
 
 다음 날.
 나는 간밤에 만든 양념을 유리통에 곱게 담아 가게로 가져갔다. 밤을 새운 탓에 일하는 내내 하품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오픈은 금방 끝났지만, 손님은 별로 없었다. 목요일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상 목요일은 손님이 별로 없었다.
 [지금이야.]
 “응.”
 부주방장이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 내가 박영신 아주머니에게 본론을 꺼내 들었다.
 “아주머니.”
 “응, 아들. 왜?”
 “그게요.”
 나는 몰래 냉장고 구석에 넣어 두었던 양념을 꺼냈다. 그것을 본 아주머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응? 이게 뭐야?”
 “이거. 양념장이요.”
 “양념장?”
 “네. 어제 만들어보려고 가져갔었잖아요.”
 “아. 그거. 진짜로 만들어 온 거야?”
 아주머니는 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자취생이 식자재를 얻어가려고 했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네. 만들어보려고 했다니까요.”
 “진짜로 만들어 올 줄은 몰랐지. 어디 한 번 봐봐.”
 박영신 아주머니는 내가 들고 있는 유리통을 열어보았다.
 “일단 보기에는 그럴듯한데? 간장 베이스로 만든 거야?”
 “네. 한번 맛보시겠어요?”
 아주머니는 나의 말에 양념장을 한 숟가락 퍼서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와! 이거 정말 아들이 만든 거야?”
 “네. 어때요?”
 “진짜 맛있는데? 사장님이 만든 거랑 맛 비슷한 것 같아.”
 그때 심유정과 홍인기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들어왔다.
 “너희도 한 번 먹어봐. 세종이가 갈비 양념 만들어 왔는데. 사장님 거랑 맛이 비슷한 것 같아.”
 “진짜요?”
 “오빠, 어제 재료 가져가더니 진짜 성공한 거예요?”
 둘은 반신반의한 상태로 양념을 맛보았다. 양념을 맛본 두 사람의 눈이 나에게 쏠린다.
 “응. 내가 만든 거야.”
 그 맛을 찾기 위해 어제 밤을 꼬박 새웠다.
 내가 재현한 명인 갈비 양념. 다시마를 넣은 간장을 베이스로 멸치 육수를 배합, 깊은 맛을 뿜는 짭조름함에다가 설탕의 단맛으로 감칠맛을 살려준다. 거기에 후추, 마늘과 대파가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는 향신료 역할을 한다. 배로 설탕의 모자란 단맛과 새콤함을 추가했고 고기의 연육 작용을 돕는 키위를 갈아 넣었다. 어떻게 아느냐고? 스마트폰이 있는 현대인이라면 모두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 황금 배합이 어떻게 되는지가 문제인 거지.
 “과장 안 하고 고기 없이 양념만 들이킬 수 있을 거 같아. 너무 맛있는데.”
 “그래? 다행이네.”
 “합성 조미료는 하나도 안 넣은 거지?”
 “응. 사장님 미X이나 X시다 같은 거 싫어하시잖아.”
 “대박이다, 진짜. 어떻게 따라 한 거야?”
 “오다가다 많이 봤지. 가끔 먹어보라고 주시곤 했으니까.”
 “이것만 있으면 손님들도 다시 좋아하지 않을까?”
 “그럴 거 같아?”
 “당연하지! 솔직히 말하면······ 없으니까 하는 말인데 부주방장님이 만든 것보다 100배는 맛있다.”
 유정이는 호들갑을 떨면서 좋아했다. 아무래도 알바를 오래 한 덕에 사장님의 양념을 맛볼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그 맛이랑 비슷하다고 하는 것이다.
 [어때?]
 ‘최고야.’
 수아가 공중에서 내 눈을 어지럽혔다. 아이고, 이 예쁜 것.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 뭐해요?”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문제는 다른 사람 눈에는 미친놈처럼 웃으면서 허공에 손짓하는 것으로 보였다는 거겠지.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다. 수아가 내 눈에만 보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어. 잠시 셋이서 수다 떠는 사이,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침투했다.
 “뭣들 하는 겁니까, 주방에서.”
 “앗, 부주방장님!”
 부주방장이 담배를 다 피우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는 매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기 주방에 다른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응? 그건 뭡니까?”
 부주방장은 미처 우리가 숨기지 못한 양념 통을 보았다. 잠시 통을 본 그의 안색이 사납게 변했다. 그도 바보는 아니다. 냄새와 색만 보고도 저게 무엇을 위해 가져온 건지 아는 것이었다.
 “이거, 설마 갈비 양념입니까?”
 “아니 저, 그게.”
 “아줌마! 여기 주방 상급자는 접니다. 지금 명백하게 월권행위를 한 거라고요.”
 불똥이 괜한 데에 튀었다. 부주방장은 아주머니에게 따박따박 쏘아붙이고 있었다.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내가 만든 상황은 내가 해결해야지.
 “부주방장님!”
 “뭐야? 주방 일에 끼어들지 마.”
 “그 양념. 제가 만들었습니다.”
 “뭐라고?”
 “아주머니가 아니라 제가 만들었다고요.”
 흥분한 부주방장이 대번에 내 멱살을 부여잡았다. 나도 꽤 큰 키지만, 부주방장 역시 큰 키에 덩치 또한 산만하다. 힘은 또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이봐, 알바. 너. 주제를 알아. 감히 한낱 알바 따위가 주방에 손을 대?”
 부주방장의 말과 표정이 험악해졌다.
 “네가 요리를 알아? 나처럼 정규 코스 밟아서 배운 적이 있어, 그것도 아니면 주방에서 일해 본 적 있어? 네가 허구한 날 욕 바가지로 먹어가면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버텨본 적 있냐, 이거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부주방장이 왜 저러는지. 부주방장은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인 것이다. 정규 과정을 밟고 유명한 가게에서 배워온 자신의 기술과 지식이 부정당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손님들은 고기를 남기고 매출은 계속해서 줄어든다. 그런 상황에서 일을 도우러 온 알바생인 내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을 아니꼽게 생각한 것이겠지.
 나는 멱살을 잡은 부주방장의 손을 털어냈다.
 “그래서요?”
 “뭐, 뭐?”
 “그래서요. 당신이 얼마나 힘들게 요리를 배워왔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아니, 할 말 많지!
 “당신의 그 배웠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가게에 피해 준다는 것은 생각 못 해보셨어요?”
 “이 새끼가!”
 “지금 가게 상태가 어떤지 아시지 않나요? 맨날 아주머니한테 뭐라고 하는데, 진짜 원인이 뭔지 스스로도 알 거 아니냐고요.”
 내 혀에서 나온 팩트가 부주방장의 명치를 때렸다. 부주방장은 더 못 참겠는지 나를 밀쳤다. 물기가 있는 바닥에 미끄러질 뻔했지만, 수아가 나를 받쳐주었다. 그 사이 부주방장은 조리대 위에 놓여 있던 양념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싱크대에다가 모조리 흘려보냈다. 아이고, 아까워라.
 “나가. 너! 나가라고! 그리고 다들 경고하는데 다시는 이딴 짓 하지 마십시오. 내가 가만 안 둘 겁니다.”
 그때였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죠?”
 주방 문을 열고 들어온 인기척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소란스러운 탓에 우리 모두 누군가가 들어오는 기척도 못 느낀 것이다. 한눈에 보아도 세련되어 보이고 단아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사, 사모님?”
 명인 갈비의 사모님이 등장했다.
 
 * * *
 
 그동안 통화만 했지 실제로 뵙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했어요.”
 사모님은 다소 다혈질인 사장님과는 다르게 단아하고 차분하시다. 내가 1년 정도를 일하면서 사모님이 화를 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전에 일하던 알바생이 실수로 사모님의 옷에 불똥을 튀게 해서 옷을 못 쓰게 만들었을 때도 전혀 나무라지 않았던 분이다. 물론 그 알바생이 나라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하지만 지금 사모님은 누가 봐도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그게······”
 부주방장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철저히 자기 위주로 본인이 피해자라는 식으로 포장했다. 그의 변명에서 나는 가게를 망치러 온 산업스파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뀌었다. 박영신 아주머니는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시어머니가 되었고.
 “그래서 세종 씨의 멱살을 잡은 건가요?”
 “헉! 그게.”
 “부주방장님의 말에 신뢰도가 상당이 떨어지네요.”
 하지만 사모님은 사건을 거의 처음부터 목격하고 계셨던 것 같다. 사모님의 말에 부주방장은 제 발 저린지 뒷걸음질 쳤다.
 “세종 씨.”
 “네.”
 “설명해 봐요.”
 나야 할 말 많지. 나는 내가 지난 3일간 본 사실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말했다. 사장님의 비법 양념 샘플이 있음에도 개무시한 것부터 부주방장이라는 지위로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까지. 거기에 결정적으로 바로 어제 있었던 조은물산 최대리 사건까지 전부.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사모님의 이마 핏줄이 도드라진 것 같다는 것은 착각일까?
 “정준화 부주방장님.”
 한숨과 함께 사모님이 부주방장을 호출했다. 부주방장이 잔뜩 얼어붙어 대답했다. 저런 모습은 처음 본다.
 “옙!”
 “직접 만드신 갈비 양념 가져와 보세요.”
 “네? 그게?”
 “얼른요.”
 사모님은 잠자코 가져와 보라며 채근했다. 부주방장님은 그 기세를 못 이기고 꼬리를 말았다. 그는 숙성 냉장고에서 양념을 꺼내왔다.
 “그리고 세종 씨가 만들었다는 양념도 가져와 보세요.”
 “예.”
 내가 설마 한 병만 만들어 왔겠나? 냉장고 구석에는 유리병 하나가 더 들어 있었다. 나도 혹시 몰라서 한 병을 더 만들어 왔다. 눈치보던 인기가 작은 종지에 양념을 옮겨 담았다. 왼쪽이 내 것, 오른쪽이 부주방장의 것이었다. 사모님이 내가 만들어온 양념과 부주방장의 양념을 번갈아 보았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두 양념에 별다른 점은 없어 보인다.
 “이게 부주방장님 것이란 말이죠.”
 사모님이 오른쪽의 양념장을 먼저 맛보았다. 한 숟가락 뜬 그녀의 표정은 당연히 일그러졌다. 당연하다. 엄청나게 짜고 텁텁할 테니까. 이런 양념에 고기 재우면 그냥 소금 덩어리를 불에 익혀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정 씨, 미안한데 물 좀 가져다줄래요?”
 “네!”
 그 모습을 본 부주방장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썩어들어 간다. 사모님은 유정이가 떠온 물로 입가심했다. 아니, 저 정도면 입가심이 아니라 가글 수준이다. 입가심한 사모님이 이번에는 내 양념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아!”
 사모님의 안색이 대번에 환하게 변했다.
 “이거, 세종 씨가 직접 만든 거예요?”
 “네.”
 “진짜로?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네. 사장님이 만드시는 거 본 적 있어서요”
 사모님은 감탄하면서 연신 양념을 떠먹었다. 저 정도면 아무리 양념이 맛있다고 해도 짤 텐데. 부주방장이 안절부절못하면서 손톱을 뜯어먹는 꼴이 볼만하다. 불안하기는 한가 보지?
 “대단해요.”
 “감사합니다.”
 “아니, 정말로 대단해. 이 정도면 거의 우리 그이가 만든 양념을 7~80% 정도는 따라 한 것 같아.”
 당연하다. 최대한 비슷한 맛을 위해 밤새도록 연구했으니까. 재료와 배합을 알려준 것은 수아의 몫이고, 그것을 통해 맛을 내는 건 내 몫이었다. 부주방장은 도대체 어떤 맛이냐며 내 양념을 떠다 먹었다. 그는 벼락 맞은 사람처럼 멈췄다. 당연하지. 솔직히 말하면 부주방장의 양념과 사장님을 따라 한 내 양념은 비교하는 것이 부끄러울 수준이니까. 하지만 부주방장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 때문인지 내 양념을 폄하했다.
 “흥! 어디 시중에서 파는 것 대충 사다가 조미료 붓고 한 거겠죠. 안 봐도 뻔해. 딱 그 맛이야.”
 “조미료는 부주방장님이 사용하셨잖아요. 발이 좀 저리시나 봐요.”
 “뭐?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나도 그렇게 순둥이 성격은 아니다. 당하면 그만큼 돌려줘야지. 하지만 과열되는 분위기를 사모님이 나서서 중재했다.
 “세종 씨.”
 “네.”
 “혹시 이거 지금 이 자리에서 만들어 볼 수 있어요?”
 “당연하죠.”
 나의 말에 사모님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뭐, 이 정도야 이제는 껌이지.
 [재료 일러줘?]
 ‘아니. 어제 하도 만들어서 외웠다. 외웠어.’
 자취방과는 다르게 이곳은 재료가 전부 잘 손질되어 있었다. 형편없는 손질 솜씨를 티 내지 않아도 되어서 참 다행이다.
 나는 어제 외운 순서대로 재료를 조합했다. 가장 먼저 간장에 다시마 조각들을 넣고 파와 마늘의 맛이 우러나올 수 있도록 잘 손질된 것들로 선별해서 넣었다. 내장과 머리를 딴 멸치를 끓는 물에 넣어 육수를 냈다. 손질된 재료들을 사용하니까 이렇게 편하구나. 키위 껍질은 어쩔 수 없이 내가 까야 했다. 모든 준비 과정에서 키위 껍질을 까는 것이 가장 오래 걸렸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사실 숟가락을 쓰면 키위 껍질 까는 것도 순식간이다.
 위이잉!
 믹서기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키위를 갈았다.
 “키위. 그래, 키위를 넣었구나.”
 “네. 부주방장님은 하나도 안 썼더라고요.”
 “키위가 들어가는 건 어떻게 알았대?”
 “오다가다 본 적이 있어서요. 창고에 있는 거 보니까 떠올랐어요.”
 내가 키위를 믹서로 가는 모습을 본 박영신 아주머니가 감탄했다. 물론 키위를 사용하라는 것은 수아가 알려준 것이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조리대 위에 앉아 있는 수아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키위를 잘못 넣으면 고기가 삭는다고. 어디서 요리를 알지도 못하는 놈이 키위를 함부로 양념에 넣어?”
 “그래서 고기가 질기다는 생각은 못 해보셨나 봐요? 키위가 연육 작용을 돕는다는 것은 상식이잖아요. 적당히 넣으면 되는 거죠.”
 부주방장은 내가 키위를 가는 모습을 보며 못마땅한 듯 한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서비스직 알바를 하면서 단련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스킬은 그의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냈다. 오히려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은근히 그를 지적했다. 그는 차마 사모님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하는 것 같았다.
 “흐음.”
 양념을 만드는 나의 모습을 사모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저렇게 보고 계시니까 상당히 부담스럽다.
 재료가 다 손질되어 있고 도구도 전부 있어서인지 양념을 만드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 했습니다.”
 “벌써요?”
 “네.”
 “어디 맛 좀 봐요.”
 양념을 맛본 사모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종 씨가 만든 게 확실하네요. 정말 잘 만들었어요. 조리 방법 자체는 그이랑 조금 다른데 맛은 비슷하네. 참 특이해. 우리 그이는 막 간장을 끓이고 그랬거든.”
 그러셨나? 하긴, 대가의 비법이 그냥 간장을 사용하는 것일 리가 없다. 미각이 예민한 사모님이 7~80%만 비슷하다고 느낀 이유겠지. 나는 어디까지나 최대한 똑같은 맛이 나올 수 있도록 재현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2~30%가 진정한 비법의 영역일 것이다.
 그러면서 사모님은 부주방장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부주방장을 호출했다.
 “부주방장님.”
 표정이 좋지는 않다. 당연히 다음 말도 좋지는 않겠지. 그때 부주방장이 돌연 쓰고 있던 조리 모자를 벗어 던졌다.
 “에잇! 됐습니다! 이딴 다 쓰러져가는 가게, 내가 더러워서 그만둡니다!”
 “뭐라고요?”
 “어디 한 번 저 없이 잘 해보십쇼. 잘 되나 두고 봅시다!”
 저 정도면 자존심이 뇌를 절여버린 거 아닐까? 부주방장은 역으로 성을 내며 주방을 아니, 가게를 나가버렸다. 저런. 한겨울에 자기 외투도 안 걸치고 나갔다. 나는 내심 그가 어색한 표정으로 다시 들어와 외투를 가져가기를 바랐지만, 그는 다시 가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갑자기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허, 참나. 뭐 저딴 사람이 다 있어?”
 박영신 아주머니가 부주방장의 뒷모습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아주머니가 대변하기는 했지만,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사모님이었다.
 “매출 떨어지는 것은 알았는데 거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어휴. 말도 마시라니까요. 사장님 안 계시니까 아주 저가 왕인 줄 알고 어찌나 사람들을 괴롭히던지. 가게 매상도 완전히 망쳐놨잖아요.”
 “제 불찰이에요. 고용하는데 신중해야 했는데. 그이 일로 너무 정신이 없었나 봐요.”
 “에이, 사모님이 잘못인가요. 저 사람이 이상한 거지.”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이가 오늘 의식을 회복했거든요.”
 “와, 축하드려요!”
 사모님의 말에 따르면 사장님이 아까 낮에 의식을 회복했다고 한다. 정밀검사 결과 뇌와 심장 기능 또한 멀쩡해서 보름 정도만 치료받으시면 완치 판정을 받으실 수 있다고 했다. 현대 의료기술은 정말 놀라운 따름이었다. 문제는 그동안 생길 주방의 공백이었다.
 “그이가 전담하다 보니 내가 주방 일은 잘 모르고 지금 와서 주방에서 일할 사람을 또 뽑을 수는 없고······ 참. 이걸 어쩌지. 혹시 규호 엄마가 아는 사람은 없어요?”
 “글쎄요. 손맛 좋은 사람들은 지금은 다 일하는 것 같은데, 어쩌죠.”
 “가게를 잠깐 닫아야 하나? 아, 급여는 당연히 챙겨 드릴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 참 성격도 좋으셔. 저렇게 직원 신경 쓰는 사모님이 몇이나 될까. 나도 챙겨주시려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듣고만 있던 인기가 손을 번쩍 들었다. 녀석의 다음 말에 나는 찬물을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얘는 또 왜 이래?
 “세종이 형이 부주방장 대신 일 하면 되지 않을까요?”
 “세종 씨가요?”
 “네. 급하게 다른 사람 섭외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사장님 양념을 재현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어차피 또 세종이 형이 나서야 할 텐데. 차라리 세종이 형이 전담해서 일하는 게 어떨까요? 저희도 그게 편하고요.”
 “확실히 그러네요.”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흐름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저기, 저는 잠깐 일 도와드리러 온 거라서요. 끝나면 다시 취업 준비해야 해요.”
 어차피 이건 잠깐 일어나는 해프닝에 불과하다. 나는 취준생 신분이고 본가에서는 부모님이 하루빨리 취업하라고 압력을 넣고 계신다. 괜히 시간을 끌면 안 된다.
 [정말 취업이 하고 싶은 거야?]
 수아가 내 머리 위에서 말했다. 취업? 하고 싶지. 얼른 취업해야 부모님 부담도 덜어드리고 동생 용돈이라도 한 푼 쥐여주지 않겠어.
 “한 달간, 주 6일. 월급은 250 드릴게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자본주의 앞에 안 되는 것은 없다.
 그렇게 나의 명인 갈비 주방 생활이 시작했다.
 
 
 # 불꽃
 
 
 부주방장이 뛰쳐나갔던 날, 사모님의 지시에 따라 그가 재워 둔 갈비를 전량 폐기했다. 그러고는 일찍 가게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사모님께서는 직원들의 일급을 챙겨주셨다. 버린 고기가 아깝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먹기 힘든 음식을 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취하는 유정이와 인기는 아깝다며 남은 고기를 몇 kg씩 바리바리 싸 들고 집에 갔다. 그리고 그날 밤늦게 유정이와 인기는 알바생 단체 톡에 고기를 전부 내다 버렸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그러게 괜히 음식물 쓰레기 들고 가지 말라니까.
 다음날이 되었다. 내가 주방에서 일하게 된 첫날이다. 나는 꼭두새벽부터 가게에 갔다. 지금 시각은 아침 6시다.
 [긴장돼?]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나는 그다지 강심장이 아니란 말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네 양념은 충분히 맛있으니까.]
 “부주방장이 양념만으로 맡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니잖아.”
 부주방장의 의미는 그냥 ‘부’가 붙은 주방장이 아니었다. 주방장에 다음가는 이인자라는 뜻이며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자리다. 그냥 양념 맛 하나 잘 따라 하는 것만으로 맡기에는 다소 벅찬 자리다. 솔직히 말하면 내 요리 솜씨는 일반적인 자취생의 흔한 요리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무를 수도 없잖아.]
 “그래서 문제라는 거지.”
 그렇다고 인제 와서 부주방장 자리를 사양할 수도 없다. 어쨌든 이번 사건의 중심에는 내가 있으니까.
 “어서 와요, 세종 씨.”
 “네, 안녕하세요.”
 사모님께서 나를 반기셨다. 오늘은 가게 휴무일이다. 왜냐고?
 “제가 운전할까요?”
 “그래 주면 고맙죠.”
 “어디로 가면 될까요?”
 “마장동 축산물시장으로 가면 돼요.”
 “네. 맡겨만 주십쇼, 사모님.”
 고기를 전량 폐기했기 때문에, 고기를 다시 공급받으러 가야 했다. 나는 능숙하게 트럭 핸들을 잡으며 운전을 시작했다. 군대에서 다 버리고 딱 하나 챙겨온 게 있다면 운전 경력이다. 운전병 짬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까. 내비게이션에 20분 후 목적지 도착이라는 알림이 떴다.
 “마장동은 한우만 판매하는 곳 아니에요?”
 “흔히들 소고기만 취급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사실은 다양한 축산물을 취급하는 대규모 도매시장이에요.”
 “그렇구나.”
 마장동 축산시장이나 육회 등에 관해 이야기만 들어보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처음 경험하는 곳이라 그런지 마음이 설렜다.
 잠시 후 나와 사모님은 마장동 축산물시장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시장은 수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트럭을 주차장에 주차하고, 트럭에서 수레를 꺼내어 아이스박스를 올렸다.
 “이쪽으로 오면 돼요.”
 “넵!”
 축산물시장은 시끌벅적했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간신히 몸을 비집으며 다녔다. 붐비는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상황이 익숙한 사모님과는 달리 나는 무척 낯설게 느꼈다. 그럼에도 수레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전전긍긍하며 따라 다녔다.
 “여기에요.”
 “아.”
 사모님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형제 1호집’이었다. 다른 곳과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은데.
 “여보세요?”
 이때 사모님이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나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제스처를 하시기에 엉겁결에 가게 안으로 홀로 들어갔다. 딸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가게에 들어서자 냉장고 안의 각종 고기들이 보였다.
 “누구쇼.”
 그때 가게 안쪽에서 천막을 걷으며 한 중년 남자가 등장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예전에 내가 보던 레슬링의 선수 중에 ‘헐크 오건’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딱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수염은 텁수룩하게 났으며 커다란 도축용 칼을 들고 있었다. 수아는 천막의 뒤가 궁금한지 쪼르르 날아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 고기 저장고와 정형실이 있는 곳이겠지.
 거대한 덩치와 커다란 칼을 보고 난 후 드는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 이러다가 인신매매 당하는 거 아닐까?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불효자, 먼저 이승을 떠납니다.
 “예약하고 왔수? 우리는 예약한 손님 아니면 안 받아.”
 다행히도 내가 생각한 인신매매는 아닌가 보다.
 “아, 그게.”
 그러나 내가 허둥지둥하는 것을 본 정육점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칼끝을 도마에 콱 찍었다. 칼이 도마에 딱! 하고 박혔다.
 ······ 취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신매매가 맞는 것 같다.
 딸랑!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마 이제 저 남자의 동료가 뒤에서 나를 덮치겠지. 제발 고통 없이 보내주세요. 그때 수아가 말을 걸어왔다. 천막 구경은 잘했니? 그 안에는 역시 시체들이 있니?
 [뭐 해?]
 ‘이러면 좀 덜 아플까 해서.’
 [그러니까 왜 아픈데?]
 ‘묻지 마. 이게 인간 사회의 더러운 면이다.’
 하지만 곧이어 내 귓가에 들려온 소리는 사모님의 목소리와 헐크 오건이 사모님을 반가워하는 목소리였다.
 “세종 씨, 여기서 뭐 해?”
 “아이고. 사모님! 오셨습니까. 핫핫핫!”
 “박 사장님. 오래간만에 뵙네요.”
 “이게 얼마 만입니까?”
  헐크 오건이 세정제로 손을 씻더니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사모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보니 사모님의 몸이 헐크 오건의 딱 1/2 사이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우리 그이 때문에 정신이 없었네요.”
 “아, 참. 사장님은 좀 어떠십니까?”
 “어제 의식 회복했어요. 아직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빨리 일하러 가야 한다고 아주 난리예요.”
 “핫핫핫! 그것참 다행이네요. 사장님께서는 워낙 호인이시니까 곧 회복하실 겁니다.”
 헐크 오건은 웃음소리가 참 특이했다. 나는 한참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그나마 수아가 눈앞을 떠다니며 재롱을 부려서 심심하지 않았다.
 “아, 참. 내가 깜빡했네. 임시로 우리 가게 부주방장을 맡은 윤세종 씨예요. 세종 씨, 이쪽은 우리 가게 고기 납품해주시는 박 사장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헐크 오건, 아니 박 사장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손이 과장 안 하고 솥뚜껑만 하다.
 “반갑네. 형제 1호집 박덕기 사장일세. 잘 부탁해.”
 “임시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핫핫핫! 남자가 손이 참 부드럽구먼! 핫핫핫!”
 박 사장은 명인 갈비 사장님만큼 열혈인 것 같다. 애초에 그래서 둘이 친해진 것 아닐까? 사실은 고기의 맛보다 그냥 죽이 잘 맞아서 거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게 아니라 부탁 좀 드리려고 왔어요.”
 “고기야 항상 최상급으로 납품해드리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물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박 사장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상대의 촙을 깡으로 받아내는 헐크 오건··· 아니, 프로의 자세다.
 “여기 우리 부주방장이 고기 손질을 해 본 적이 없어서 혹시 박 사장님이 고기 손질 좀 해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아니, 무슨 부주방장이 고기 손질을 못 한답니까?”
 사모님은 그간의 가게 사정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사정을 전부 들은 박 사장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쩐지 요리하는 사람치고 손이 보드랍다 싶더라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네. 우리 그이 회복해서 일할 때까지만 좀 부탁드릴게요. 당연히 맨입으로는 아니고, 기존 단가에서 20% 더 쳐드릴게요.”
 “흐음.”
 박 사장은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하더니 계산기를 가져와서 마구 숫자를 두들겼다. 나도 회계학 수업을 들어본지라 스스로 계산기를 좀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실전으로 단련된 사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뭐, 까짓것.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휴. 정말 고마워요.”
 “다음에는 요리 잘하고 성격도 좋은 사람으로 다가 구하시죠. 자네도 열심히 해. 저런 사모님 드물다고. 핫핫핫!”
 박 사장은 웃으면서 내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그는 웃었지만 나는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힘이 왜 이렇게 센 거야.
 “손질해야 하니까, 1시간 뒤에 다시 오십쇼. 깔끔하게 손질해 놓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거기, 부주방장 청년은 아이스박스 두고 가고.”
 “넵.”
 안 그래도 배고프던 차였는데 사모님이 아침이나 먹자고 하셨다. 마침 근처에 순대국밥을 맛있게 하는 가게를 안다고 하셨다. 순댓국이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건 정말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주문한 지 5분 만에 나온 순댓국의 맛이 이래도 되는 거야?
 눈처럼 뽀얀 국물에 깨소금이 솔솔 뿌려져 고소한 맛이 한층 더해졌다. 국물을 한 모금 마시자 육수의 풍부한 맛이 혀를 감쌌다. 각종 고기는 전혀 비리지 않고 국물에 풍미를 더하고 있었다. 새우젓의 텁텁한 맛은 부추와 대파가 잡아주었다. 국물에 만 밥을 숟가락으로 떠 그 위에 순대를 올리고, 그 위에 잘 익은 김치를 한 조각 올리면? 게임 끝이다. 투박한 뚝배기에 담긴 음식에서 세련된 맛이 느껴졌다. 곱빼기로 시키지 않은 과거의 나를 후회하게 만든다.
 순식간에 한 뚝배기를 비운 나는 마치 현자 타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에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진짜 많구나.
 요리에 관한 좁은 인식이 깨지는 것 같았다. 비록 임시지만 부주방장이라는 자리를 맡아서일까 요리를 대하는 태도가 한껏 달라졌다. 예전에는 단지 아무 생각 없이 ‘맛있네’, ‘맛없네’라는 평가가 전부였다면, 이제는 이 요리를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아무튼, 그렇게 순대국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커피까지 호로록 마신 나와 사모님은 무사히 갈비를 공급받았다. 잘 모르긴 몰라도 고기 때깔이 참 고와 보였다. 사모님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요리를 잘하는 것과 재료를 잘 아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니까.
 ‘또 보자’는 박 사장의 인사가 너무 무서웠다. 일단은 100인분의 고기를 공급받았지만, 가게가 다시 성행한다면 추가로 고기를 받으러 와야 한다. 가게가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박 사장을 또 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명인 갈비에 도착해 냉장실에 고기를 모조리 보관한 나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 30분이었다.
 “뒤는 잘 부탁해요. 규호 엄마 불렀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믿고 갈게요!”
 사모님은 사장님의 상태를 확인하러 병원에 가신다고 했다. 혼자 가게에 남은 나는 개수대에 물을 틀었다. 정확히는 혼자 남은 게 아니라, 수아와 함께였다.
 [좋다!]
 “물이 그렇게 좋니.”
 [당연하지. 나는 물의 정령이니까. 특히 여기는 주방이기도 하고. 집에 온 것 같아.]
 수아는 수챗구멍을 틀어막은 개수대에서 목욕이라도 하는 것처럼 들어가 있었다. 표정만 보면 동네 목욕탕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 아저씨 같다.
 재료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냉장고를 열자 고기가 보였다.
 [고기 엄청 많더라.]
 “원래는 이 만큼 고기를 하루에 다 팔았대.”
 [저걸? 하긴, 여기 잘 나갔었다고 했지.]
 “그러고 보니, 박 사장님도 참 대단하네. 이 많은 고기를 어떻게 그렇게 금방 손질하셨대.”
 진공으로 잘 포장된 고기를 한번 눌러보았다. 도축된 고기 주제에 탱탱하게 손가락을 튕겨낸다.
 자, 지금부터 이걸 어떻게 한담?
 
 * * *
 
 [간장 8L, 물 8L, 양파 13개, 대파 2단, ······, ]
 수아가 양념 재료를 하나하나 일러주었다. 그 전에 만들었던 양념은 갈비 2~3인분에 필요한 양이었다. 근데 지금은 100인분을 만들 재료가 필요했다. 나는 낑낑대며 재료를 전부 꺼냈다. 넓어 보였던 주방이 좁게 보일 만큼 많은 양이었다.
 “이걸 언제 다 하지.”
 [칼질 연습 좀 하겠는데.]
 내 머리 위에 있던 수아가 조리대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녀는 조리대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마치 작은 인형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귀여운 모습이었다.
 “칼질······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해봐야 얼마나 해봤겠느냐 마는 칼질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이고, 아들. 미안해. 조금 늦었지?”
 그때 주방으로 박영신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뛰어오셨는지 숨이 찬 기색이 역력했다. 해봐야 5분도 안 늦으셨는데, 뭐. 애초에 오늘은 모처럼 쉬는 날에 나를 도와주려고 나오신 것이기도 했고.
 “아녜요. 천천히 오셨어도 되는데.”
 “새로 오신 부주방장님한테 잘 보여야지.”
 “아이고, 영광입니다. 여사님.”
 아주머니는 복장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들어오셨다.
 “그래서 이게 다 손질해야 하는 재료라 이거지?”
 “네.”
 “확실히 그 도망간 사람이랑은 다르네.”
 “그래요?”
 “응. 사장님 레시피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재료만 보면 비슷한 것 같아.”
 아주머니의 말에 수아가 우쭐거린다.
 [내가 틀릴 리가 없거든.]
 맞아, 너 최고다. 수아를 격려한 나는 본격적으로 재료 손질로 들어갔다. 아주머니는 나의 옆에서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조언해 주셨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양파를 썰어놓는 일이었다. 망에 있는 양파를 전부 꺼냈다. 신선한 흙냄새와 함께 아릿한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눈 안 맵게 해줄게.]
 ‘고마워.’
 물론 수아 덕분에 눈이 매울 일은 없었다.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껍질을 까는 것조차 어설픈 나와는 다르게 아주머니는 순식간에 양파 껍질을 까버렸다. 나는 아주머니가 양파 껍질을 까는 모습을 살짝 지켜보았다. 칼로 뿌리 부분을 쓰윽 잘라내고, 단면을 통해서 껍질을 쓱싹쓱싹 벗겨낸다. 그 정도는 곧잘 따라 할 수 있었다.
 다음 단계는 양파를 써는 것이다. 양념에 들어갈 양파는 속살의 결 방향과 수직으로 채 썰어야 했다. 이렇게 잘라내면 양파는 동그라미 모양 조각이 된다. 사장님의 양념에 들어있던 양파 모양을 얼핏 떠올려 보고 잘라낸 방법이다.
 “칼 쥐는 방법이 틀렸어, 아들. 그렇게 하면 손목만 아파.”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주머니가 직접 주방 칼을 잡고 시범을 보여주셨다.
 “자, 이렇게. 엄지로 칼편 부분을 대고, 검지는 칼등을 누른 뒤 나머지 손가락들로 손잡이를 감싸 쥐는 거야. 이렇게 하면 적은 힘을 들이고도 쉽게 칼을 사용할 수 있어.”
 그동안 난 다섯 손가락으로 손잡이 전부를 쥐었다. 이렇게 칼을 쥐면 잠깐만 움직여도 금세 손목이 아팠었다.
 “그렇지. 그리고 왼손은 식자재를 고정해. 손가락을 펴지 말고, 말아 쥔 상태로. 그렇지, 그렇게.”
 “되게 미끄럽네요.”
 나와 아주머니는 묵묵히 양파를 썰었다. 조금 있자 아주머니는 눈물을 찔끔 흘리셨다.
 “너무 매우면 물에 담갔다가 쓰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 것도 알아? 근데 사장님은 물에 담갔다가 꺼낸 양파는 잘 안 쓰시는 것 같더라. 따라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긴 하네요.”
 “아들은 어떻게 눈물 하나도 안 흘려?”
 “체질인가 봐요.”
 사실은 수아 덕분이다. 수아가 양파들 사이에서 V자를 그리고 있다.
 양파를 써는 일은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일단 그립 자세를 잘 잡으면 잘 갈린 날이 속살을 헤집는다. 그 느낌이 상당히 경쾌했다. 하지만 양파는 속살 사이사이에 매우 미끌미끌한 막이 존재해서 하마터면 사고 날 수 있다. 나는 손가락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칼질 경력 하루밖에 안 되니까.
 “아얏!”
 불길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다. 예리한 칼날이 내 손가락을 베어버렸다. 양파의 미끄러운 결을 제대로 고정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런! 얼른 물에 씻어. 잠깐만 기다려봐.”
 놀란 박영신 아주머니는 얼른 사무실로 향했다. 나는 그동안 흐르는 물에 손가락을 씻었다. 붙어 있던 양파 조각 따위가 씻겨나갔다.
 [아파?]
 “엄청 따가워. 피가 안 멈추네.”
 피가 안 멈춰서 상처를 볼 수 없었는데 생각보다 깊게 베였나 보다.
 [그 정도는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지.]
 수아가 물을 조종하더니 내 손가락을 한 번 감쌌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피가 멎는다.
 “어떻게 한 거야?”
 [나는 정령이잖아?]
 수아는 식기 세척기이자 인간 세척기, 세탁기, 살아있는 계량기, 눈물 방지 기능에 이어 지혈 기능까지 탑재했다. 이 정도면 전천후 만능 정령이 아닌가? 아이고, 이 귀여운 것!
 상처는 생각보다 깊지는 않았다. 그냥 운이 나빠 피가 많이 났었나 보다. 이 정도면 꿰맬 필요도 없었다.
 “아들. 이리 와봐.”
 아주머니가 상비약 통을 들고 오셨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만능 빨간약으로 소독하고, 새살이 솔솔 돋는 연고를 치덕치덕 발랐다.
 “주방은 말이야 늘상 다칠 위험이 있어. 오늘이야 쉬는 날이라 손님이 없지만, 손님이 있을 때 다치기라도 하면 정말 정신없지.”
 “그러게요. 조심해서 한다는 게 그만.”
 “그럴 수도 있지, 뭐. 더 조심해.”
 응급처치가 끝나고, 아주머니의 처방 덕분에 나는 왼손에 조리용 라텍스 장갑을 꼈다. 갑갑했지만 그렇다고 상처가 난 손가락을 그대로 노출할 순 없으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장갑에 순응했다.
 우여곡절 끝에 재료의 손질이 끝났다.
 “계량 안 해도 되겠어?”
 “일단은요.”
 “요리의 기본은 계량이야, 아들.”
 아주머니는 내 말에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계량기보다 더 뛰어난 것이 있다. 바로 수아다. 수아는 재료들에 손을 대 보고, 가장 베이스가 되는 간장 농도를 체크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재료 상태 보니까 아무래도 비율을 좀 조정해야 할 것 같아.]
 ‘어떻게?’
 [잠시만.]
 양파에 따라 매운맛이 강한 놈이 있기도 하고, 단맛이 유난히 센 놈이 있을 수도 있다. 수아는 그것의 비율을 적정하게 조절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양파는 4/5만 쓰자. 다진 마늘은 한 숟가락만 더 추가해.]
 나는 수아의 말에 따라 간장에 양파를 쏟아부었다. 다진 마늘도 한 숟가락 추가해서 잘 섞이도록 저었다. 나는 맛보는 척하며 수아의 지시를 기다렸다.
 [배를 반쪽 더 갈아 넣어야 할 것 같아.]
 재빨리 배를 갈아 넣었더니 수아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하는 양을 본 아주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배를 왜 더 넣은 거야?”
 그 질문에 수아가 재빨리 답했다.
 [양파의 톡 쏘는 향에 매운맛이 너무 강해서 비율을 줄이고, 부족한 단맛을 커버하기 위해서 배를 넣었다고 해.]
 “······ 양파의 톡 쏘는 매운맛이 너무 강해서 비율을 좀 줄였어요. 그 대신 부족한 단맛을 보충하려고 배를 좀 더 넣었고요.”
 “어머.”
 아주머니는 더 놀란 표정이다.
 “그게 일일이 구별된단 말이야?”
 “······ 네. 어느 정도는요.”
 “역시 내가 아니라 아들이 하는 게 맞는 거였어.”
 “하하······”
 거짓말을 능숙하게 할 성격은 아닌지라 목에 뭔가 걸린 것 같은 기분이다. 특히나 아주머니가 저렇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보시니까 죄책감이 더 든다.
 [익숙해져. 내 능력이니까 네 능력이나 마찬가지야.]
 그때 수아가 내 불편한 기색을 읽고는 위로해주었다. 그녀는 내 손에 들러붙어 손등을 두드렸다. 흘깃 쳐다보자 그녀가 말을 잇는다.
 [나는 네 친구야. 네 삶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함께할 건데 뭐가 문제야? 내 능력은 너를 위한 거라고. 정령의 친구가 된 게 너의 능력인데 왜 그것을 네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야? 그러면 내가 섭섭해!]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분이 한결 가신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를 간질였다. 그녀가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웃음 지었다. 하는 짓은 초딩 같은데 이럴 때 보면 의외로 정신연령이 높을지도 모른다.
 양념은 금방 완성되었다. 애초에 아주머니가 밀착 마크를 해 주신 관계로 재료 손질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양념을 맛보았다. 맛있다. 잘된 것 같다. 양념 주제에 깔끔하고 개운했다. 수아도 잘했다며 방방 뛰어다녔고, 아주머니도 엄지를 척 들어 보이셨다.
 “맛있어. 이 정도면 사장님도 칭찬하실 거야.”
 그 모습에 무엇인가가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27살. 학원을 운영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엄격한 교육을 받아 자랐다. 학원도 사업인지라 부모님은 언제나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고 나에게 주입하셨다. 그것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간 형과는 다르게 나는 한 번 엇나가는 일 없이 공부에 매진해서 누가 들어도 좋은 대학교, 좋은 학과로 진학했다. 비록 고시 공부에서는 한 번 물을 먹었다고는 하나 취업 시장에서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스펙이다.
 하지만 나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대학에서 배운 것은 와 닿지 않는 숫자 놀음 같았고 두드리는 계산기는 공허한 울림만 남길 뿐이었다. 경영학? 경제학? 그게 다 뭔가. 결국, 배운 것은 사회의 톱니바퀴 하나가 되는 방법이었다. 정교한, 그러나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부품 같은 것이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나를 대신할 수 있다.
 고시 공부로 얻은 경험? 고시 공부는 내게 그냥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내가 나의 삶을, 내 영혼을 스스로 갉아먹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받아먹기만 하는 일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주방에 있다. 주방에서 나는 수아의 기분 좋은 표정 그리고 아주머니의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다.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무언가가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뺨이 벌겋게 상기된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충족감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먹고 좋아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들이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만족해하는 것을 보고 싶다.
 ······ 당당히 인정받고 싶다.
 가슴 속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 일어나라, 명인 갈비!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잠을 못 자?]
 “떨려서.”
 오늘 아침처럼 긴장감이 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분 좋은 설레임이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새삼스레 내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수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손가락으로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뭘. 친구잖아?]
 “그래. 친구.”
 수아와 접촉하고 있으니 뭔가 기분이 편해진다. 마치 어린아이들을 위한 애착 인형 같은 느낌이었다.
 [잠 안 오면 그거 봐봐. 유튜브였나? 그거 있잖아.]
 “그럴까.”
 나는 유튜브를 켜고 구독한 채널들을 이것저것 돌아보았다. 주로 게임 채널이었는데 공부를 시작하고 게임도 끊어서인지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 뜨는 영상’을 클릭해 보았다. 셰프들의 요리 영상 스페셜이었다.
 “와······”
 유튜브를 통해서 보는 셰프들을 모습은 정말 멋져 보였다. 국내 최고의 한식 장인이라는 김원호 셰프, 분자요리의 대가라는 황영조 셰프, 한국인 최초 미슐랭 3스타 셰프라는 케빈 박까지. 그들의 요리는 그야말로 예술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멋지다.”
 그렇게 그날 밤은 수많은 영상으로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피곤한 상태로 간신히 나는 여느 때처럼 샤워를 마치고 나와 자리에 앉았다. 아침에 일어나 공부를 하는 것은 내 루틴이나 마찬가지였다.
 ‘Coach Predrick has told us several times that the most important thing is ······’
 정답은 볼 것도 없다. 전형적인 빈칸 채우기 문제다. 당연히 3번이겠지. 나는 3번에 체크하고 답안지도 확인 안 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딱히 볼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그때 정답지를 뒤적이던 수아가 낑낑거리면서 빨간 볼펜을 들어 문제지에 빗금을 그었다.
 [4번인데, 정답?]
 “뭐? 그럴 리가.”
 나는 수아의 지적에 얼른 답지를 들춰보았다. 정답은 4번이 맞았다. 그 뒤로도 나답지 않은 실수를 몇 번 연속으로 저질러서 과목을 바꿔보았다. 하지만 똑같았다. 수아가 책상 위를 뒹굴면서 말했다.
 [집중을 영 못하는 것 같네.]
 “그래 보여?”
 [응.]
 수아가 정확히 본 것 같다. 나는 지금 정신이 다른 데에 가 있었다. 몸은 좁은 자취방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정신은 이미 명인 갈비의 주방으로 가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내가 만든 갈비를 선보이고 싶었다. 과연 그들은 수아와 아주머니처럼 맛있다는 평가를 해 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다 보니 도저히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종.]
 “응.”
 [너 공부 재미없지.]
 “그래 보여?”
 나도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재 수준은 아니었다. 내 동창 중에는 진짜 천재라고 불릴 만한 놈이 하나 있는데 그 녀석은 공부가 재미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외국으로 날아가서 무슨 연구원으로 일한다고 하던데. 그 정도 레벨이 아닌 이상 공부에 재미를 느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하물며 내가 지금 하는 것은 대단한 학문도 아니고 취업 준비용이니.
 [어제 식당에서는 기분 좋아 보였거든.]
 수아의 말을 들은 나는 더 참지 못했다. 벌떡 일어서서 외투를 챙기는 내 머리 위로 수아가 올라탔다.
 [어디 가게?]
 “가게.”
 [벌써?]
 “응. 안 되겠다.”
 이 두근대는 감정을 진정시키려면, 어쩔 수 없다.
 
  * * *
 
 이른 저녁 시간, 두 남자가 명인 갈비 앞에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여기야? 네가 말한 곳이?”
 “응. 왜?”
 “여기 별로 맛없어. 아니, 그냥 맛없어.”
 김동우는 친구, 이호식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명인 갈비는 알아주는 맛집인데 이곳이 맛이 없다니?
 “얼마 전에 회식 있었는데······”
 김동우는 이호식의 말에 피식 웃었다.
 “에이, 그 알바 말대로 사장이 아파서 잠깐 못 나왔던 거겠지. 내가 여기가 인생 맛집이야. 못 먹은 지 너무 오래됐어.”
 “네가 안 먹어봐서 그래. 입맛 버리기는 싫어.”
 김동우는 어쩔 수 없이 필살기를 사용했다.
 “거, 물주 말 좀 따르지?”
 “예예, 충성!”
 김동우는 이호식을 이끌고 명인 갈비의 문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쾌활한 인상의 알바생이 그들을 반겼다.
 “어?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게요. 요새 일이 바빠서.”
 “따뜻한 자리로 안내해드릴게요.”
 김동우는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는 알바생의 기억력에 감탄하며 자리를 옮겼다.
 “이상하게 한산하네.”
 “맛없어져서 그렇다니까.”
 “크흠!”
 김동우는 알바생 면전에서 독설을 내뱉는 이호식에게 눈알을 부라렸다. 이호식은 입만 뻥긋거리며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갈비 2인분이랑 소주 1병, 맥주 2병 주세요.”
 “소주는 처음, 맥주는 화이트 맞죠?”
 “어? 기억하시네요.”
 “그럼요. 단골이신데.”
 알바생이 곱게 눈을 흘기며 주문서를 가져갔다. 김동우는 헤실헤실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그의 친구가 김동우를 나무랐다.
 “너 제수씨한테 다 말한다. 다른 여자 보고 웃고 다닌다고.”
 그들이 투덕거리는 사이 어느새 다른 알바생이 화로에 숯불을 담아 가져왔다. 합을 맞추는 것처럼 순식간에 세팅이 끝났다. 격자 모양의 구리 석쇠가 고기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잘 손질된 갈비가 석쇠 위로 몸을 던졌다.
 치이익!
 고기가 불에 익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환상적이었다. 고기가 익어가는 훌륭한 냄새가 홀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김동우는 그 냄새를 안주 삼아 소주를 홀짝였다. 시원한 추임새를 뱉은 그가 휴대폰을 들어서 갈비의 사진을 찍었다.
 “뭐 하는 거냐?”
 “마님한테 보고한다.”
 “그나저나 너 아이 계획은 아직 없는 거야?”
 정신없이 휴대폰을 조작하는 김동우를 향해 이호식이 말을 걸었다. 김동우는 휴대폰을 집어넣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소주를 따랐다. 이호식이 맥주를 건네자 마침 잘 됐다는 식으로 소맥을 말았다.
 “돈이 있어야 애도 키우지.”
 “하긴, 돼지 갈비에 소맥이나 먹는 주제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야. 돼지 갈비가 어때서! 먹기나 해.”
 “예, 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갈비는 먹기 좋게 익어 있었다. 고기를 앞두고 머뭇거리는 이호식과는 달리 김동우는 망설임 없이 한 점을 입으로 삼켰다.
 “크, 역시 이 맛이지.”
 김동우는 감탄하면서 고기를 삼켰다. 먹자마자 술이 당기는지 방금 따라놓은 잔을 단번에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이호식은 망설임 끝에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곧 이호식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달짝지근한 양념의 맛이었다. 혀 겉만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맛이 아닌, 깊숙한 곳을 자극하는 맛이었다. 그러면서도 과일처럼 새콤한 맛이 툭 튀어나와 단순한 구성을 깨버린다. 잠시 혀 위에 고기를 올리고 음미하던 그는 고기를 씹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질감이 턱관절을 춤추게 했다. 이가 고기를 짓이기자 육즙이 터져 나오면서 양념과 하나가 되었다. 양념과 육즙은 서로의 존재감을 뽐내면서도 하나가 되어 독특한 풍미를 뽐냈다.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 맛있네.”
 맛있었다. 바로 며칠 전에 와서 먹었을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괜히 상사인 최 대리가 맛집이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던 게 아니었다.
 “거봐. 맛있잖아.”
 “그러게, 맛있네.”
 “어허. 이쪽은 내 영역이야. 침범하지 말라고. 어쭈? 젓가락 내려놓지?”
 “네 영역, 내 영역이 어디 있어!”
 경쟁하듯 고기를 집어 먹다 보니 어느새 불판 위에는 마늘만 남아 있었다. 눈이 마주친 둘은 씨익 웃었다. 김동우가 알바생을 불렀다.
 “여기 돼지 갈비 2인분, 아니. 3인분 더 주세요!”
 
  * * *
 
 “갈비 2인분 있어요.”
 유정이가 주문서를 넘기며 말했다. 나는 알겠노라고 대답하며 주문서를 받았다. 숙성고에 보관 중인 양념 갈비를 꺼내 참나무 접시 위에 올렸다. 내가 재워놓은 것이지만 참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손이 어찌나 떨리는지 박영신 아주머니가 와서 도와주셨다.
 [넌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
 수아가 내 얼굴에 물방울을 튀기며 말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평생 공부로 한길만 걷던 내가 팔자에도 없는 부주방장 일을 하는데 거기다가 첫 손님이다.
 “여기. 조심히 들고 가.”
 “왜 그래요, 형. 아마추어처럼.”
 인기 녀석이 피식 웃으며 갈비를 가져갔다. 손님도 없겠다, 나는 살금살금 주방의 입구에서 홀을 보았다. 불판 위에 고기가 올라가고 맛있는 냄새가 퍼졌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나는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조여 왔다.
 [걱정돼?]
 ‘응. 맛없다고 뱉어버리면 어떡하지?’
 [너도 네가 만든 것 먹어봤잖아? 먹고 바로 뱉을 만큼 형편없었어?]
 ‘당연히 아니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저길 봐봐!]
 조금 후덕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고기를 먼저 삼키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반대편에 앉은 남자는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고기를 집어 먹더니 둘은 순식간에 경쟁적으로 고기를 삼키기 시작했다. 뜨겁지도 않나?
 저 모습을 보니 멈춰 있었던 숨이 탁! 하고 풀렸다. 숨을 몰아쉬는 차에 나의 숨을 다시 한번 막히게 하는 한 마디가 들려왔다.“여기 돼지 갈비 2인분, 아니. 3인분 더 주세요!”
 아, 취소다. 다시 숨 막혀.
 [거봐. 내가 뭐랬어? 너는 자신감을 좀 지녀도 돼. 그 형편없는 양념이랑 너와 내가 함께 만든 양념이 같은 취급을 받을 리가 없잖아.]
 수아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네 말이 맞아. 고마워, 수아야.’
 [별말씀을!]
 그러던 차에 유정이가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들었죠, 오빠?”
 “응.”
 “어디 아파요? 얼굴이 빨개.”
 “아니, 아니야.”
 “반응 좋아요. 화이팅!”
 대답 대신 씨익 웃어 보인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었다. 몸은 후들거렸지만, 머리는 희열에 찼다.
 인정받았다. 내가 평생 해왔던 공부나 성적이 아닌, 전혀 다른 것으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았다. 저들의 맛있어하는 행복한 표정을 보니, 가슴속에 피어오른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불로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십시오!”
 마수걸이가 성공적이어서일까? 손님은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그래 봐야 사장님이 있을 때 기준으로 2~30% 정도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전 부주방장이 있을 때보다는 나은 수치다. 전 부주방장이 있을 때는 악평 때문인지 손님이 없었고, 한산한 가게를 본 손님들은 문 앞에 있다가도 나가버리곤 했다. 손님이 손님을 부르는 법이니까. 텅 빈 가게보다는 그래도 손님이 있는 가게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이다.
 마침내 오후 11시 30분, 모든 영업이 끝나자 두근거리는 정산이 남았다. 포스기를 통해 매출을 확인하는 박영신 아주머니에게 모든 이목이 쏠렸다. 모니터를 몇 번 터치하던 박영신 아주머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입이 열렸고,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어버렸다.
 부주방장 근무 첫날, 명인 갈비의 매출 총 46만 원.
 명인 갈비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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