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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치킨과 수련의 방 1권

2019.07.22 조회 2,175 추천 18


 먼치킨과 수련의 방 1권
 
 
 목차
 
 Chapter 1
 Chapter 2
 Chapter 3
 Chapter 4
 Chapter 5
 Chapte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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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1
 
 
 -수련의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난이도는 <먼치킨>입니다
 용효가 숙취를 느끼며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게 된 건 마치 게임의 상태창 같은, 또는 홀로그램창 같은 투명한 창과 그 창에 적힌 그 글자였다.
 “······뭐야, 아직도 꿈인가······.”
 벽에 빔프로젝트를 쏴서 만든 화면이 아니었다. 그냥 허공이었고, 그럼에도 너무도 선명한 글자가 옆으로 누운 직사각형의 창 안에 적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눈앞의 홀로그램 같은 창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가 아니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냐였다.
 자신의 집도 직장 상사나 부하 직원의 집도 아니었다.
 아예 가정집도 아니다.
 구조는 평범한 아파트로 보였지만 TV, 테이블, 소파, 식탁, 냉장고 등 사람이 사는 집에 있어야 할 물건이 단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가전제품이 하나 있긴 했다.
 아니······.
 “자판기는 가전제품이 아니잖아······.”
 부엌이 돼야 했을 공간에 자판기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용효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홀로그램창이 사라졌고, 용효는 그 자판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세 걸음도 떼지 못하고 용효는 멈춰 서고 말았다.
 “······.”
 벽에 걸려 있는 액자 때문이었다.
 마치 가훈처럼 글자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먼치킨만이 살길이다>
 
 “뭐야 이게······ 몰래카메라······?”
 웃기려고 걸어놓은 액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 그 액자가 걸린 벽에 낙서처럼 뭔가 글자가 적혀 있는 게 보였다.
 그 벽으로 걸어간 용효가 날카로운 쇠붙이로 긁어가며 새긴 듯한, 삐뚤빼뚤 엉망인 글자를 한 자 한 자 번역하는 기분으로 소리 내 읽었다.
 
 “웃어라······ 너나 웃어라······.”
 ······?
 “나 다시······ 돌아갈래······.”
 “술이 웬수지······.”
 “앞으로 51202년······ 남음······.”
 ······.
 
 잠시 얼어붙은 듯 굳은 얼굴로 마지막 낙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용효, 잠시 뒤 뭔가가 생각난 듯 용효가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반쯤 벌렸다.
 “우, 웃기지 마······! 그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고?”
 필름이 끊기기 전, 어젯밤 겪은 마지막 일이 떠오르며 파노라마처럼 용효의 머릿속을 흘러갔다.
 그러나 용효는 지금 떠올린 그 기억을, 그 당시엔 현실이라 생각지 않았다.
 이미 필름이 끊겼고, 잠이 들어 꿈속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상한 공간에서 날개를 단, 마치 천사 같은 여자가 하는 이상한 말에도 놀라지도, 이상하게 생각지도 않았고 평소의 그답지 않게 자신감 넘치게, 호기롭게, 남자답게 행동했던 것이다.
 무엇을?
 난이도 선택을······.
 그러나 그게 대체 무엇을 위한 난이도 선택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었다.
 술에 만취해 있었기에 기억이 흐릿했다.
 그러나 그때 시작된 장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뿐인 게 아닐까? 대체 무엇을 위한 장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용효는 이상한 액자와 낙서들을 보고 놀라 쪼그라든 가슴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일단 생각을 멈추고 자판기 쪽으로 갔다.
 “······어?”
 액정으로 된 자판기였다. 용효는 순간 당황했지만, 동전 투입구도 배출구도 있었다.
 틀림없는 자판기다. 일본 출장을 갔을 때 이런 식의 식당 자판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액정을 터치하자 떠오른 판매 물품들은 거리의 자판기나 식당 식권 자판기로는 볼 수 없었다.
 음식 카테고리에선 음식과 음료를 살 수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가전제품란, 가구란, 의류란, 영약란, 마법란, 스킬란, 병장기란, 성검란, 마검란, 사역마란, 아티팩트란 등 그야말로 만물상점이 들어 있다 해도 될 정도로 수많은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러나 공짜는 아니었다. 모든 판매 상품에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고작 장난이나, 몰래카메라로 생각하기엔 준비가 심하게 과했다.
 자신이 대체 뭐라고? 용효는 32살의 회사원으로, 남들보다 좀 더 일찍 결혼해 아내와 5살 된 딸이 있는 것 외엔 특별한 게 전혀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용효가 다니는 회사는 방송과 관련된 회사도 아니었다.
 소름까지 느끼며 무서워지기 시작한 용효, 방문을 열어보려 했으나 문에는 아예 문손잡이가 달려 있지도 않았다.
 그냥 문 모양을 한 벽이라 해도 될 정도로 작은 틈새조차 찾을 수 없었다.
 화장실은 있지만, 환기구는 없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현관문도 없고 창문도 없었다.
 완벽한 밀실.
 안색은 차갑게 식었는데 이마는 땀으로 흥건해진 용효가 다시 벽에 걸린 액자를 올려다봤다.
 
 <먼치킨만이 살길이다>
 
 이쯤 되자 어젯밤의 마지막 기억이 꿈이 아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용효의 시선이 이번엔 거실로 보이는 바닥에 떨어진 곰 인형, 테디베어로 향했다.
 딸 희진에게 주려고 산 선물.
 집으로 돌아가려면, 저 테디베어를 딸 희진에게 주려면, 정말 55000년의 수련을 이 수련의 방에서 끝마쳐야 한다는 걸까······?
 “그게 말이 돼······? 인간은 100살도 살기 힘들어······!”
 그러나 그때.
 기다렸다는 듯 용효의 눈앞에 다시 홀로그램창이 떠올랐다.
 용효의 상태창이었다.
 
 이름: 김용효
 직업: 수련생
 생명력: 10
 체력: 3
 근력: 5
 민첩: 2
 ······.
 
 그야말로 형편없는 수치.
 왠지 좀 부끄러워졌다.
 슬라임도 잡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 말라는 듯 이번엔 수련 퀘스트창이 용효의 눈앞에 나타났다.
 
 <수련 퀘스트-근력을 단련하라>
 팔굽혀펴기를 100,000,000번 하시오. 단, 완전한 자세가 아닐 경우 횟수에 적용되지 않음.
 [보상1] 근력+500
 [보상2] 천금화(天金貨)+100
 
 수련 퀘스트창이 사라지자 용효가 한 행동은······.
 당연히 팔굽혀펴기가 아니었다.
 죽지 않고 55000년의 수련을 하는 게 가능하다면 정말 매일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하면 100,000,000번의 팔굽혀펴기를 다 할 순 있을 것이다.
 100년 안엔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나······.
 팔굽혀펴기만 하다 인생이 끝나고 만다.
 용효는 이 방에 갇히기 전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병사, 백부장, 기사, 흑기사, 소드레귤러, 소드익스퍼트, 소드마스터, 그랜드소드마스터, 반신, 그리고 먼치킨······ 이렇게 10개의 난이도가 있다 했어······.”
 어젯밤 만난 천사의 기억, 그 기억은 천사가 해준 이 난이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시작된다.
 이 기억 이전에도 천사와 뭔가 더 대화를 나눴던 것 같지만, 또, 천사와 마치 우주 공간 같은 어둠 속에서 만나게 된 계기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건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확실해······.내 입으로 최고 난이도의 ‘수련의 방’으로 들어가겠다 했어······.”
 천사는 먼치킨 난이도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해줬다. 먼치킨 난이도의 수련 기간이 55000년이란 사실도. 진지했다. 장난기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은 같았던 게 아니라 정말 수많은 별이 반짝이던 우주 공간이었다.
 그래도······.
 “정말 장난이 아니야? 몰래카메라가 아니라고······?”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없었다.
 뭔가 카메라가 돌아가는 것 같은 기미도, 기척도 없다.
 용효는 다시 어젯밤의, 천사와의 기억을 더듬어갔다.
 자신이 왜 수련을 해야 하는지, 수련을 포기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중요한 질문을 한 기억은 없었다.
 그러나 천사로부터 수련생 칭호를 받고 수련의 방으로 이동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말은 기억이 났다.
 “먼치킨 난이도의 수련의 방에서 수련을 완수한 자가 있습니까?”
 난이도 선택을 하기 전에 해야 할 질문······.
 “없습니다.”
 “그럼 55000년의 수련을 끝내고 나오면 전 어떻게 되는 거죠?”
 “먼치킨이 될 수 있습니다.”
 기억은 거기까지······.
 용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넥타이를 풀고 양복 상의를 벗었다. 들고 있던 테디베어를 구석 벽에 기대놓고 거실 중앙으로 다시 가 섰다.
 바닥에 양 손바닥을 대고 팔굽혀펴기 자세를 취했다.
 정말 그 천사가 천사라면 55000년을 수련하게 해놓고 100년도 수련하지 못하고 늙어 죽게 하진 않을 것이다.
 또 몰래카메라라면 완전히 속아 팔굽혀펴기를 하게 되면 원하는 장면을 찍었으니 곧 끝이 날 것이었다.
 용효가 팔굽혀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팔굽혀펴기 횟수를 기록하는 카운트 홀로그램창이 생겨났다.
 수련 퀘스트창의 내용대로 적당히, 대충 팔굽혀펴기를 하면 카운트는 오르지 않았다.
 제대로 팔굽혀펴기를 하자 스무 번을 하기도 전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러나 용효는 계속했다. 더 이상 팔굽혀펴기가 되지 않을 때까지.
 
 * * *
 
 “하아······ 하아······ 우욱······!”
 수련의 방으로 오기 전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용효는 당연히 팔굽혀펴기를 1시간도 하지 못하고 지쳐 버렸다.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팔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이젠 1개를 하기도 힘들었다. 구토감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1시간 정도를 쉬자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됐고 용효는 다시 팔굽혀펴기를 할 수 있었다.
 쉬는 동안 몇 번이나 숨겨진 탈출구가 있는지, 카메라가 있는지 살펴봤다.
 없었다.
 이 방이 완벽한 밀실임을 거듭 확인했을 뿐이다.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갑도 스마트폰도 사라지고 없어 자판기에서 음료나 에너지바 같은 걸 사 먹을 수도 없었다.
 아니, 지갑이 있어도 못 샀을 것이다. 자판기에서 파는 물건을 사기 위해선 천금화란 게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천금화는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해야만 얻을 수 있었다.
 그림의 떡이었다.
 얼마나 걸릴까?
 100년? 빠르면 50년?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쉬다 하다를 반복하며 팔굽혀펴기를 100개 정도 더 했다. 그러나 그래 봐야 이제 300개를 조금 넘게 했을 뿐이다.
 1억 번을 해야 하는데 이제 300번······ 새 발의 피도 안 된다.
 그래도 용효는 1시간 정도를 쉬었다가 또 팔굽혀펴기를 했다.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방. 그냥 공포에 떨며 있는 것보단 몸이 힘든 동안은 공포도 불안도 잊을 수 있어 차라리 팔굽혀펴기를 하며 지치는 게 더 나았다.
 그런데 그때, 용효는 다시 오싹하게 무서워졌다.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이 방이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라는 뜻! 먹지 않으면 죽는단 뜻이었다.
 자판기는 이용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밥을 먹지? 배를 어떻게 채우지? 싱크대, 화장실에서 나오는 물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긴 했다. 그러나 물만 먹곤 살 수는 없다.
 그때였다.
 -12시!
 그런 글자가 적힌 홀로그램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홀로그램창이 사라지자 이번엔 거실 허공에 빛이 나는 구체가 생겨났다.
 그 구체가 거실 바닥에 내려앉았다. 팟! 빛이 사라지자 나타난 것은······.
 “치킨······!”
 치킨이었다.
 포장박스에 적힌 상표 이름은 먼치킨 치킨. 뚜껑을 열어보니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다. 생각지도 못한 배려심과 센스!
 이건 진짜다. 장난도 몰래카메라도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도가 지나치다. 이 정도로 장난을 치면 범죄다. 또 홀로그램창도 순간이동을 하듯 나타난 이 치킨도 눈속임이나 마술 같은 게 아니었다.
 꼬르륵!
 용효는 엄청나게 배가 고팠다. 이 정도로 허한 공복감을 느낀 게 얼마 만인가. 땀을 뻘뻘 흘리며 몇 시간을 팔굽혀펴기를 했으니 당연하다.
 주저한 것도 잠시, 먼치킨 치킨 앞에 앉은 용효가 먼저 프라이드 치킨의 다리를 집어 입에 넣고 와작 씹었다.
 ······맛있다!
 바삭함과 간이 아주 절묘했다!
 용효는 앉은 자리에서 후라이드와 양념치킨을 전부 먹어치웠다.
 그러자······.
 
 -체력이 회복됩니다.
 -근력이 회복됩니다.
 -피로도가 회복됩니다.
 
 그리고······.
 
 -근력이 1 오릅니다.
 -체력이 1 오릅니다.
 
 그냥 치킨이 아니었다······! 이름 그대로 먼치킨을 만들어주는 먼치킨! 점심만 식사를 주진 않을 것이다.
 하루 세끼, 먼치킨을 먹을 때마다 근력과 체력, 피로가 회복되고 수련을 한 만큼 스탯도 계속 오를 터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다.
 악마가 아닌 천사, 분명 55000년의 수련이 가능하도록 이 수련의 방을 설계해 뒀을 테고, 수련을 끝내고 수련의 방을 나갔을 때 밖이 55000년의 세월이 흘러있거나 하지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해보자······.”
 왜 자신이 수련해야 하는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몰라도, 자신의 입으로 하겠다 했고, 수련을 끝내는 것 말곤 이 방을 나갈 방법은 없는 듯했다. 다시 가족들에게 돌아가려면 해내야만 했다.
 용효가 벽에 기대놓은 테디베어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엎드려 팔굽혀펴기 자세를 취했다.
 
 -투지 스탯이 개방됩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하루 세 번 식사 시간이 되면 꼬박꼬박 홀로그램창이 눈앞에 나타나 시간을 알려줬지만, 그 알림창을 전부 세진 않았기에 용효는 이 수련의 방에 갇힌 지 며칠이 지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한 달은 지난 거 같은데······.”
 이제 19일이 지났을 뿐이었다.
 빨리 시간이 지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용효의 시간 감각은 실제 시간보다 많이 앞서 있었다.
 “아닌가······ 식사 알림창이 100개 넘게 뜨진 않았던 거 같아······ 날짜도 뜨는 걸로 시계가 있으면 좋겠는데······.”
 부엌에 있는 만물 자판기, 그 자판기에는 시계도 온갖 종류를 다 팔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시계도 사려면 천금화가 필요했다.
 “아니지······ 천금화를 시계를 사는데 쓸 순 없어.”
 그냥 탁상시계나 벽시계를 사는데도 천금화가 3닢이나 필요했다. 그건 낭비다. 천금화를 모아 무기와 갑옷, 무공서와 마법서, 사역마를 사야 되지 않나 싶었다.
 55000년의 수련이다. 맨몸 운동만 주야장천 시키진 않을 것이다. 나중엔 몬스터를 잡는 수련 퀘스트도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천금화가 넉넉히 있고 만물 자판기에서 강력한 무기를 살 수 있다면, 또는 그 전에 미리 무공서나 마법서를 사 수련해 둔다면, 사역마를 사 잘 길들여 둔다면 고난이도의 수련 퀘스트를 안전하고 쉽게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용효의 그 생각은 세 달도 못 가 머릿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다음을, 미래를 생각하고 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종일 팔굽혀펴기만 하고 하루 세끼 치킨만 먹는 생활.
 팔굽혀펴기도 치킨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신물이 올라왔다.
 이 방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런 생활을 55000년이나 해야 한다고? 이 방에선 늙어 죽지 않는다 해도 정신은 분명 돌아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도······ 용효는 다시 꾸역꾸역 팔굽혀펴기를 했다. 몸이 지치면 배는 다시 고파왔고 배가 고프면 신물이 나는 먼치킨이라도 먹고 싶어졌다.
 먼치킨을 먹으면 다시 피로는 씻은 듯 사라졌고, 가끔 오르는 스탯 상승은 이 팔굽혀펴기가 헛일은 아니라는 의미 부여와 함께 위로를 줬다. 어찌어찌 버티게 해줬다.
 “으······ 추워······.”
 겨울이 된 걸까?
 양복 상의를 입고 있어도 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추웠다.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이불도 사자······.”
 용효는 더 이상 나중 나중의 수련 퀘스트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다.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보상으로 받게 되는 천금화 100골드.
 그걸 받으면 맥주, 콜라, 초코파이, 비빔밥, 설렁탕, 삼겹살, 라면 등 먹고 싶은 걸 자판기에서 다 사 먹고 시계, 이불, 침대, TV도 살 생각이었다.
 에어컨도 사자. 겨울이 돼서 추워진 거라면 여름이 되면 푹푹 찌개 될 테니.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받는 천금화, 이젠 그것만이 용효의 목표이고 희망이었다.
 테디베어를 꼭 끌어안고 양복 상의를 이불처럼 덮은 용효는 한기가 올라오는 대리석 바닥 위에서 꾸역꾸역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5시.
 용효는 언제나처럼 아침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팔굽혀펴기를 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 * *
 
 1년이 지났다.
 그리고 용효는······.
 “먼치킨만이!”
 “살길이다!”
 “먼치킨만이!”
 “······살길이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조금의 요령도 부리지 않고 오늘도 기상하자마자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용효의 앞에는 5,000,000이 넘은 숫자가 적힌 카운트 홀로그램창이 떠 있다.
 하루 세끼 먼치킨을 먹으며 12,000~15,000여 개의 팔굽혀펴기를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해온 덕분이었다.
 스탯들도 꾸준히 올라 수련의 방에 들어온 첫날과 비교해 신체 스탯이 전부 50 이상 올라 있었고, 투지 스탯도 30이 넘게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8개월 차엔 인내 스탯이 개방되어 인내 스탯도 20이 넘게 오른 상태다.
 아침 식사가 나오기 5분 전.
 새벽 수련을 끝낸 용효가 땀범벅이 되어 몸을 일으켰다.
 “하아······ 하아······ 하아······.”
 숨은 거칠었지만 이제 구토감을 느끼거나 헛구역질을 하는 일은 없었다.
 상의를 탈의하고 있는 용효의 몸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울퉁불퉁, 울끈불끈!
 강철처럼 단련된 근육이 용효가 거칠어진 숨을 내쉴 때마다 마치 펌프질을 하며 김을 피어 올리는 듯했다.
 그 정도로 탄력적이었고, 강인하고 폭발적인 힘이 응축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거실 허공에 빛의 구체가 생겨나 바닥에 내려앉으며 팟! 먼치킨을 만들어냈다.
 먼치킨 앞에 앉은 용효는 주저하는 기색 없이 뚜껑을 열고 덥석덥석 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을 집어 뜯어먹었다.
 하루 세끼, 무려 1년간 먹어온 치킨, 당연히 맛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맛이 없단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먹었다. 살기 위해 먹었고, 강해지기 위해 먹었다. 인내 스탯을 얻고 그 수치가 10이 넘은 용효의 인내심은 이미 범인(凡人)의 것이 아니었다.
 식사를 끝낸 용효는 싱크대에서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거실로 돌아가 팔굽혀펴기를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된 수련, 어차피 해야 한다면, 도망갈 수 없다면 용효는 제대로 하기로 했다.
 또, 가능한 빨리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싶었다.
 “내일부턴 하루 30000개씩도 가능하겠는데······.”
 이름만 먼치킨 치킨이 아니었다. 수련과는 별개로, 먹으면 먹을수록 몸이 강해지는 듯했다.
 충분히 하루 30,000개도 가능하리라. 그럼 10년 안에 첫 번째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었다.
 “91,721,588!”
 “91,721,589!”
 “91,721,590!”
 시간은 흘렀다.
 “93,628,372!”
 “93,628,373!”
 “93,628,374!”
 시간은 흘렀다.
 “98,179,534!”
 “98,179,535!”
 “98,179,536!”
 시간은 흘렀다.
 “······살길이다!”
 99,999,998.
 “먼치킨만이!”
 99,999,999.
 “······살길이다!”
 드디어······.
 카운트 홀로그램창의 숫자가 100,000,000으로 변했다.
 동시에 땀으로 범벅이 된, 돌덩이 같고 강철 같은 근육으로 둘러싸인 용효의 몸이 벌렁 뒤집히며 대리석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그런 용효의 눈앞에 카운트창이 사라지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홀로그램창이 나타났다.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근력이 500 오릅니다.
 -보상으로 천금화 100을 얻었습니다.
 
 “으아아아아악!”
 누운 채로 꽈악 말아 쥔 양 주먹을 번쩍 치켜든 용효가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포효를 터뜨렸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터뜨렸다. 이제 만물 자판기를 쓸 수 있다······!
 
 * * *
 
 거실 허공에 빛을 내는 구체가 생겨나 용효의 주변을 맴돌았다. 얼른 양손을 모아 앞으로 내밀자 빛의 구는 용효의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그 직후······.
 팟!
 빛이 흩어져 사라졌고, 생겨난 것은 가죽으로 된 금화 주머니였다.
 입구를 묶고 있는 줄을 풀어 안을 보니 반짝이는 금화가 가득 들어 있었다. 용효가 금화 한 닢을 꺼냈다. 한쪽 면에는 날개 무늬가, 반대쪽엔 하늘 천(天)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게 천금화······.”
 용효의 얼굴 가득 환희와 감격에 찬 미소가 지어졌다.
 “할 수 있어······.”
 100,000,000번의 팔굽혀펴기를 해냈다. 9년이 넘는 수련을 견뎌냈다. 그리고 갖고자 한 보상을 얻어냈다.
 그 성공이 용효로 하여금 어떤 수련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그 자신감이야말로 가장 큰 보상이었다.
 그런데 용효는 바로 자판기로 달려가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게 잔뜩 있었고 마시고 싶은 것도 잔뜩 있었다. 사고 싶은 물건도 많았다.
 그러나 클리어 보상을 받고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용효는 천금화를 단 한 닢도 쓰지 않았다.
 ······용효는 또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똑같은 수련 퀘스트를 받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두 번째 수련 퀘스트는 아직 받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용효는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콜라도 마시고 싶었다. 햄버거도 먹고 싶고 김치찌개도, 된장찌개도, 삼겹살도 먹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 수련을 하는 데 천금화가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음료와 음식을 사고 생활용품과 가전제품을 사는데 써버리면 안 되겠다 싶었다.
 수련 클리어 보상으로 받은 천금화를 다음 수련에 전부 써야 하는 악랄한 구조일 리는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용효는 다음 수련 퀘스트를 보고 천금화를 어떻게, 얼마나 쓸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인내가 2 오릅니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다음 수련 퀘스트는 뜨지 않았다.
 그러나 천금화를 한 닢이라도 만물 자판기에 써야 다음 수련 퀘스트가 뜬다거나 하는 룰은 없을 것이다.
 용효는 기다렸다.
 팔굽혀펴기를 하며.
 
 -인내가 2 오릅니다.
 
 두 번째 수련 퀘스트가 용효의 눈앞에 떠오른 건 다음 날 아침 8시였다. 첫 번째 수련 퀘스트를 받은 시간과 아마 같은 시간일 것이다.
 
 <수련 퀘스트-신체 스탯을 5,000까지 올려라>
 생명력, 체력, 근력, 민첩 스탯을 전부 5000 이상 올려라. 천금화로 산 영약을 먹어 오른 스탯 상승도 수련의 일환으로 인정된다.
 [보상1] 전 스탯 +1,000
 [보상2] 천금화 +1,000
 [보상3] 천년삼과 먼닭으로 끓인 백숙
 
 “5,000이라니······.”
 어제 얻은 자신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현재 용효의 신체 스탯들은 550~700 정도다.
 근력 스탯은 클리어 보상으로 500포인트를 받아 1,000이 넘었지만 그래도 4천 포인트를 더 올려야 했다.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수련을 해야 클리어할 수 있는 걸까.
 더구나 최근 몇 년간은 투지와 인내 스탯 외, 신체 스탯의 상승은 거의 없었다.
 팔굽혀펴기만으론 200년 넘게 300년 넘게 수련을 해도 4000포인트를 올리는 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수련 퀘스트창에는 팔굽혀펴기를 하라는 내용은 없었다. 수련을 어떻게 하라는 지시 자체가 없었다.
 자유 수련······.
 잠시 생각하던 용효가 자판기 앞으로 갔다. 안 파는 게 없는 만물 자판기, 당연히 운동 기구의 종류도 수없이 많았다.
 “비싸지 않으면서 강도 높은 운동이 가능한 걸로······.”
 용효가 만물 자판기의 화면 하단에 있는 운동 기구란을 클릭했다. 그리고 철봉과 러닝머신, 백근환(百斤環) 한 세트를 샀다. 철봉의 가격은 천금화 4닢, 러닝머신은 8닢, 백근환은 3닢이었다.
 덜컹덜컹!
 자판기 밑으로 마치 뽑기 머신처럼 동그란 플라스틱 캡슐 3개가 나왔다. 이 캡슐을 돌려 열면 안에 든 물건이 나오는 식인 듯했다.
 잠시 고민하던 용효는 메인화면으로 돌아가 식료품란을 눌렀다. 그리고 맥주 한 캔을 1닢을 주고 더 샀다.
 딱 그거 하나였다.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게 100개도 넘었지만 용효는 천금화를 모아두기로 했다.
 오늘 새로 받은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1000골드를 얻을 수 있지만, 무공서도 마법서도 사역마도 50,000골드가 넘었다.
 또 상품 설명창을 보니 상급 무공서를 익히려면 내공환도 먹어야 했고 오러를 쓰려면 오러홀이, 마법서를 사 마법을 익히려면 서클링이 있어야 했다.
 수련 퀘스트가 주는 수련을 통해 내공도 오러홀도 서클링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게 쉬울 리가······.
 만약을 대비해 한 닢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모아둘 수 있을 때 모아두고 싶었다.
 그러나 용효는 아직 자판기 앞에 있었다. TV 때문이었다. TV는 낭비가 아니라 상황파악을 위해 꼭 필요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천금화가 넘쳐도 사기 싫단 생각도 들었다.
 TV를 사서 보면 수련의 방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난리가 나 있는 건 아닐까 겁이 나는 것이었다.
 그저 사건이나 사고,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론 막지도 복구도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재앙에 의해······.
 용효는 이 수련의 방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수련을 계속해 나갈 수밖에 없다. 무려 55000년의 수련을.
 그러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수련의 방 밖의 시간은 흐르지 않을 거라 믿으며, 흐른다 해도 아주 느리게 흐르고 있을 거라 믿으며.
 용효가 몸을 돌렸다.
 거실로 가 바닥에 앉았다. 9년 7개월여 만에 마실 수 있게 된 맥주를 마셨다.
 꿀꺽꿀꺽!
 맛있었다. 미치도록 맛있었다.
 눈물까지 주륵 흘러내렸다.
 그러나 즐거움은 짧았다.
 그래도 미련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효는 캡슐을 돌려 철봉과 러닝머신을 거실에 설치하고 60㎏이 나가는 강철 고리, 천근환 4개를 양팔과 양다리에 채웠다. 그리고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시작했다.
 
 * * *
 
 50년이 지났다.
 “367,251,456!”
 “367,251,457!”
 “367,251,458!”
 -12시!
 점심을 알리는 홀로그램창이 뜨자 그제야 용효는 양 손목과 양다리에 총 240㎏이 나가는 백근환을 채운 채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하던 철봉에서 내려왔다.
 온몸은 땀범벅이었고 전신에선 노천탕의 수증기처럼 김이 피어올랐다. 첫 번째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한 50여 년 전과 비교해 근육이 갑옷처럼 크고 두꺼워졌기에 피어오르는 김의 양이 상당했다.
 “후욱······ 후욱······ 후욱······.”
 한참 동안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용효.
 그러나 입가엔 만족에 찬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빠르면 오후 수련 중에, 늦어도 오늘 저녁 수련을 끝내기 전엔 네 개의 신체 스탯을 전부 3,000까지, 또는 그 이상으로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하려면 2,000포인트씩을 더 올려 5,000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신체 스탯들이 3,000을 넘으면 백근환을 한 세트 더 팔다리에 달고 수련을 할 수 있을 테고, 그럼 더 높아진 수련 강도로 더 빠른 스탯 상승을 이룰 수 있었다.
 호흡이 평소로 돌아오자 용효는 바로 거실 바닥에 앉아 점심으로 나온 먼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피로가 회복됩니다.
 -근력이 10 오릅니다.
 -체력이 11 오릅니다.
 -민첩이 8 오릅니다.
 -생명력이 12 오릅니다.
 
 피로감은 씻은 듯 사라졌고 오랜만에 큰 폭으로 오른 스탯 상승에 전신에선 더욱 힘이 넘쳐났다.
 먼치킨은 땀에 젖은 속옷과 바지까지도 원상 복구를 시켜줬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효는 싱크대에서 물을 마시고 바로 다시 철봉에 매달렸다.
 턱걸이를 시작했다.
 우락부락한, 갑옷 같고 강철 같은 몸이 흔들림 없이 완벽한 자세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철봉을 하는 동안에도 스탯들은 상승했고, 3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네 신체 스탯들이 전부 3,000을 넘어섰다.
 드디어······!
 만물 자판기에서 백근환 한 세트를 더 사기 위해 용효가 철봉에서 내려온 직후였다. 눈앞에 본 적이 없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용효, 당신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초인의 경지에 들어섭니다.
 
 그 직후, 몸속에 수백 마리의 뱀들이 들어가 있는 듯, 전신의 근육들이, 근섬유 한 가닥 한 가닥이 서로 뭉치고 베베 꼬이며 요란스레 꿈틀거렸다.
 
 -진화가 끝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립니다.
 -진화가 진행되는 동안 심한 통증이 유발됩니다.
 
 그 알림창에 이어 용효의 신체 모든 근육이 더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몸속으로 파고든 수백 마리의 뱀들이 근육과 혈관, 신경을 마구 헤집으며 돌아다니면 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까.
 그러나 그뿐, 용효는 비명을 지르는 일도 아파 죽겠다거나 못 참겠다는 생각도 일절 하지 않았다.
 강해진 건 육체만이 아니었다. 육체의 한계를 수없이 넘으며 해온 50년이 넘는 수련으로 용효의 정신력도, 오히려 육체보다 먼저 초인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뛴 용효가 척! 철봉에 매달렸다.
 여전히 찰흙을 주물러 대는 듯 근육들이 뭉치고 응축되고 다시 뭉치고 응축되길 반복하고 있었으나, 그로 인해 고통이 점점 배가 되고 있었으나 용효는 표정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표정.
 고요 그 자체였다.
 그로부터 1시간 뒤, 용효의 전신이 마치 굴뚝이 뿜는 연기 같은 대량의 수증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잿빛 수증기였다.
 그 수증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용효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용효의 몸은 물론이고 철봉까지도 가려질 정도였다.
 그러나 용효는 턱걸이를 멈추지 않았다.
 “367,262,256!”
 “367,262,257!”
 “367,262,258!”
 급기야 잿빛 수증기에 용효가 입고 있던 속옷과 양복바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철봉을 멈추며 반응을 보이는 용효.
 그러나 철봉에선 역시 내려오지 않았다. 고개만 밑으로 내려 바지와 속옷의 상태를 살필 뿐.
 이미 바지와 속옷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녹아 있었고, 아직도 그칠 기미 없이 뿜어지는 수증기에 계속 녹고 있었다.
 “······뭐 어차피 혼잔데.”
 또, 수련을 하면 땀은 흘리지만, 더위를 덥다 느끼지 않게 됐고, 극한까지 단련된 육체는 추위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방 안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가 인간일 리는 없었다.
 인간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자신감이기도 했고, 60여 년간 혼자 수련만 해온 용효의 사회성은 그 정도 일로 수치심을 느끼고 평정심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용효가 철봉에서 내려온 시각은 저녁 8시,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알림창이 떠서였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5분도 못 버티고 쇼크사로 죽고 말았거나 나 죽는다- 비명을 질러대며 바닥을 굴렀을 통증을 견뎌내며 언제나처럼 7시간을 넘게 한 번도 쉬지 않고 오후 수련을 끝낸 것이다.
 “후욱······ 후욱······ 후욱······.”
 당연히 숨은 다를 때보다 배는 거칠어져 있었다.
 그러나 용효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통증도, 호흡곤란으로 당장 기절할 것 같은 목의 답답함도 무시하고 거실 바닥에 생겨난 먼치킨 앞에 정좌를 하고 앉아 와그작와그작 먼치킨을 베어 먹었다.
 몸에서 수증기가 계속 뿜어져 나온다 해도 전혀 상관 않고 먼치킨을 먹었겠지만, 철봉에서 내려왔을 즈음부터 잦아들기 시작한 수증기는 먼치킨을 다 먹어갈 즈음엔 완전히 그쳐 있었다.
 
 -피로가 회복됩니다.
 -생명력이 5 오릅니다.
 -근력이 3 오릅니다.
 -체력이 4 오릅니다.
 -민첩이 2 오릅니다.
 
 먼치킨의 회복 효과로 통증이 사라진 것도 잠시,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격통이 전신을 휘감았다.
 물론 용효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늘 해오듯 식사 후의 입가심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갈 뿐이었다.
 진화가 끝나는데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리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용효가 싱크대의 수도꼭지가 뻗던 팔을 멈췄다.
 마치 갑옷처럼 크고 우람해진 근육들이 이번엔 피부 속에서 수만 마리의 지렁이들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정신없이 움직이며 부피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수축은 근육들이 몇 시간에 걸쳐 수증기를 뿜어대며 꿈틀거릴 때와 달리 한순간에 끝이 났다.
 “······뭐야.”
 기껏 수십 년간 온종일 근력 운동과 러닝머신을 하고 먼치킨만 먹으며 키워놓은 내 새끼 같은 우람한 근육들이 절반으로 쑥 줄어버리자 용효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
 근육의 부피는 반으로 줄었지만 곱절 이상 더 폭발적인 힘을 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완전히 다른 근육이 된 것이다.
 말 그대로 진화한 것이다!
 
 -용효, 당신은 이제 초인입니다.
 -전 스탯이 1,500 오릅니다.
 
 “상태창.”
 
 이름: 김용효
 직업: 수련생
 특성: 초인
 생명력: 4,865 체력: 4,571
 근력: 5,125 민첩: 4,502
 투지: 2,618 인내: 2,473
 
 특성란은 원래 없었다. 그런데 초인으로 진화해 새로 생겨난 것이다.
 초인 진화 하나만을 위해 새 난(欄)까지 만들어 상태창에 넣은 건 아닐 것이다.
 초인 이상으로, 더 진화할 수 있는 게 분명하다.
 수도꼭지를 올려 물을 마신 용효는 철봉으로 돌아갔다.
 철봉에 매달려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5분도 지나지 않아 용효는 턱걸이를 멈췄다.
 몸이 너무 가벼웠다.
 “······백근환을 한 세트 더 사야겠군.”
 
 * * *
 
 용효는 천금화 3닢으로 만물 자판기에서 백근환 세트를 한 개 더 사서 양 팔목과 양 발목에 착용했다.
 총 480㎏.
 그러나 이번에도 용효는 5분을 못하고 철봉에서 내려와 버렸다.
 “아직도 가벼워······.”
 이 정도 무게론 2시간 3시간을 쉬지 않고 턱걸이를 하고 러닝머신을 뛰어도 힘들다 지친다고 느끼긴 힘들 것이다.
 힘들다 지친다, 그래도 그걸 참아내며 근육을 계속 쥐어짜며 수련을 해야만 스탯 상승을 이룰 수 있었다.
 만물 자판기로 간 용효는 천금화 5닢을 넣어 아예 천근환 세트를 샀다.
 철봉과 러닝머신, 백근환을 사는데 외엔 맥주 한 캔을 사 먹었을 뿐이기에 천금화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덜컹덜컹!
 자판기 배출구로 나온 캡슐을 꺼내 바로 돌려 열었다.
 천근환의 무게는 백근환의 10배인 600㎏, 그러나 고리 표면에 적힌 천근(千斤)이라는 글자만 다를 뿐 고리의 두께도 크기도 백근환과 똑같았다.
 용효는 손목의 백근환은 전부 풀어 천근환으로 바꿔 채우고 발목은 백근환으로 그대로 둔 채 총 1,320㎏, 1톤이 넘는 무게를 팔다리에 달고서 다시 철봉에 매달렸다.
 “367,262,963!”
 “367,262,964!”
 “367,262,965!”
 그제야 용효는 만족에 찬 미소를 입가에 옅게 지었다.
 완벽한 자세로 1시간 2시간 3시간 쉬지 않고 턱걸이를 해나갔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생명력, 체력, 민첩 스탯은 500포인트 정도만 더 올리면 됐고, 근력은 초인 진화를 하며 이미 5,000이 넘은 상태였기에 두 번째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는 그 이후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전 스탯이 1,000 오릅니다.
 -보상으로 천금화 1,000을 얻었습니다.
 -보상으로 천년삼과 먼닭을 넣어 끓인 백숙을 얻었습니다.
 
 1,000의 스탯 상승으로 근육과 오장육부에 더욱 힘이 샘솟는 게 느껴졌고, 거실 허공엔 두 개의 구체가 생겨나 빛을 내며 용효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하나는 거실 바닥으로 내려갔고, 하나는 용효가 손을 뻗자 그 손바닥 위에 내려앉아 금화 주머니로 변했다. 백금화 100닢을 받았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 묵직했다.
 “후후······.”
 작게 소리까지 내며 용효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거실 바닥에 닿은 빛의 구체가 천년삼과 먼닭을 넣고 끓인 백숙으로 변하자 용효의 미소는 더욱 커졌다.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제대로 된 식사인가······! 또한 처음 먹어보는 영약이기도 했다.
 얼마나 몸보신을 시켜주며 자신의 몸을 강인하게 만들어줄까.
 용효가 아직도 뚝배기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천년삼과 먼닭을 넣고 끓인 백숙, 먼숙 앞에 정좌하고 앉았다.
 용효가 숟가락을 들었다.
 그 직후였다.
 만물 자판기에서 뜬금없이, 70년이 다 되도록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뭐지······?
 만물 자판기에서 울린 팡파르는 10초 정도 지속이 되다 저절로 그쳤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용효는 천년삼과 먼닭으로 끓인 먼숙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왼손엔 한 입 크게 뜯어 먹은 큼지막한 닭 다리가 쥐어져 있었고 오른손에 쥔 숟가락으론 죽을 퍽퍽 떠먹었다.
 “어후후, 어후, 크으~ 시원하다······!”
 식도와 오장육부가, 먼닭의 적당히 지방이 붙은 야들야들한 살점과 담백하게 기름진 죽과 하나가 되어 줄줄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어후어후, 후르륵, 어후후!”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맛이 있을 수 있을까!
 단지 70년 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련의 방에 들어오기 전이었다 해도 용효는 감탄을 넘어 감격하며 걸신들린 듯 먼숙을 먹어치웠을 것이다.
 그야말로 세상엔 없는 천상의 맛!
 그러나 맥주를 사 먹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즐거움은 참 짧았다.
 그래도 용효는 미련이 남은 눈으로 빈 뚝배기 속을 내려다보진 않았다.
 충분히 배가 불렀고, 차고 넘칠 정도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게다가 식사가 끝이 아니었다.
 용효의 눈앞에 먼숙을 한 그릇 더 먹은 것 같은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알림창들이 떠올랐다.
 
 -천년삼의 기운이 솟아납니다.
 -먼닭의 기운이 솟아납니다.
 -전 신체 스탯이 2,000 오릅니다.
 
 가슴 한가운데 생겨난 거대한 에너지가 혈관과 근섬유들을 타고 몸속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경이적인 흡수력이었다. 초인이 됐기에 가능한 일.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스탯 상승은 1,000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근데 웬 팡파르였지······?”
 팡파르가 울리고 1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련의 방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자판기가 아닌 삼라만상을 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신물, 그냥 오류로 오작동을 일으켰을 리는 없었다.
 용효가 만물 자판기로 갔다.
 “세일······?”
 
 <3만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세일 기간! 당신은 행운아입니다. 딱 2시간 동안만 전 상품을 반값에 팝니다!>
 
 “······.”
 액정 화면의 상단에 그런 문구가 생겨나 광고판처럼 반짝이며 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용효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현재 용효가 가진 천금화는 1,076골드.
 이 정도 액수로는 그가 사고자 하는 무공서나 마법서, 마나환, 오러홀, 서클링, 정령이나 드래곤 같은 사역마는 반값이 됐다 해도 살 수가 없었다.
 턱없이 모자라다.
 그 외, 몸의 즐거움을 위한 상품은 반값이 됐다 해도 살 생각이 없었다.
 “천근환은 몇 개 더 사둬야겠군.”
 먼숙의 효과로 신체 스탯이 2,000이나 올라, 갖고 있는 천근환과 백근환을 전부 팔목과 발목에 찬다 해도 가볍게 느껴질 터였다.
 또, 앞으로 어떤 수련을 하게 되든 천근환은 두고두고 쓸 수 있는 만큼 미리 사둬서 손해 볼 일이 없었다.
 천금화 10닢을 자판기 투입구에 넣어 천근환 세트 4개를 샀다.
 잠시 고민하던 용효는 바탕화면으로 돌아가 가전제품란을 눌렀다.
 TV를 사기로 했다.
 이제 용효는 수련의 방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 담대하게 받아들일 자신이 있었다.
 또, TV가 있으면 격투기를 익히는 것도 가능하다. 초인 용효는 혼자 수련으로도 절정의 경지를 이룰 자신이 있었다. 넘치고 넘치는 게 시간이니.
 TV의 가격은 200골드, 반값이 되어 100골드였다.
 덜컹덜컹!
 배출구에서 캡슐을 꺼내 바로 거실로 돌아가 뚜껑을 돌렸다. 캡슐에서 빛이 나오며 다리가 달리고 안테나가 뻗은, 마치 70년대 TV 같은 TV가 생겨났다.
 그러나 리모콘이 있었고, 자판기에서 본 설명창에는 지상파 방송은 물론이고 볼레TV도 볼 수 있다 했다.
 삑!
 용효가 리모콘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켜진 TV 화면에 가장 먼저 나타난 건, 알림 문구였다.
 
 -TV는 하루 1시간만 시청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수련의 방, 예상한 일이기에 용효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뉴스였다.
 용효의 얼굴에 조금 긴장감이 서렸다.
 수련의 방에 있는 동안 밖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다음 뉴스입니다.”
 화면이 바뀌며 나타난 건 도시에 생겨난 거대한 구멍이었다.
 아마 싱크홀이라 부르던가······.
 거대한 싱크홀이 보라색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 *
 
 세계 각지에 생긴 싱크홀의 수가 1천여 개가 넘었지만, 전부 그저 보라색 연기를 뿜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큰 혼란 없이 세상은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 수련의 방에서 70여 년간 수련하는 동안, 밖의 시간은 하루가 조금 넘게 지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용효는 다행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 싱크홀들 안에선 분명 뭔가가 나온다······ 흉험하고 잔악한 재앙들이······.
 그 재앙이 자신이 수련의 방에서 수련을 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었다.
 이후, 볼레TV로 수백 개의 채널을 볼 수 있고 재방송까지 볼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용효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목과 발목에 천근환 2세트, 총 4,800㎏의 천근환을 달고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새로운 수련 퀘스트가 떴다.
 
 <수련 퀘스트-신체 스탯을 25,000까지 올려라>
 생명력, 체력, 근력, 민첩 스탯을 전부 25,000 이상 올려라. 천금화로 산 영약을 먹어 오른 스탯 상승도 수련의 일환으로 인정된다.
 [보상1] 전 스탯 +1,500
 [보상2] 천금화 +3,000
 [보상3] 봉황천년삼(鳳凰千年蔘) 한 뿌리
 
 시간은 흘러갔다.
 
 * * *
 
 시간은 밤 10시.
 용효는 TV 앞에 앉아 볼레TV로 권투 경기를 보고 있었다.
 권투 수련을 한 적은 없었다. 용효는 손목과 발목에 천근환을 달고 철봉과 러닝머신만 계속 해왔다.
 권투는 계속 보기만 했다. 본 걸 또 보고 본 걸 또 봤다. 새로운 경기가 올라오면 그 경기를 보고 또 봤다.
 그렇게 해온 시간이 10년이었다.
 
 -초급 권투 스킬을 얻었습니다.
 
 “······?”
 용효의 눈이 조금 커졌다. 스탯은 생겨도 스킬은 생기지 않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스킬도 생긴다면 매일 해온 러닝머신으로 달리기 스킬 정도는 생겼어야 했다.
 “TV의 효과구나······.”
 신비한 힘이 깃든 TV라는 설명은 적혀 있었지만 스킬을 얻을 수 있단 내용은 없었기에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넘치고 넘치는 게 시간이다. 용효는 5년간 더 육체 단련만을 하고 권투는 계속 경기만 봤다.
 이론을 완벽히 마스터하고, 수많은 경기를 보며 여러 간접 경험을 쌓은 뒤 훈련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TV를 끈 용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 중앙으로 가 15년간 보며 익힌 펀치를 허공에 슉슉 날려보고 스텝도 밟았다.
 실제로 해본 건 지금이 처음이지만 초인 용효는 머릿속에 있는 움직임과 동작을 거의 완벽히 재현할 수 있었다.
 꽤 재밌는지 용효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날 이후, 용효의 수련에 권투가 추가되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스탯은 큰폭의 아니었지만 그래도 계속 올랐고, 권투 스킬은 나날이 군더더기 없이 날렵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권투를 수련한 지 30년이 지나자 초급 권투 스킬이 중급 권투 스킬로 승급되었다.
 그 후 50년이 더 지나자······.
 
 -중급 권투가 상급 권투 스킬이 됩니다.
 
 200년이 더 흐르자······.
 
 -초인 용효, 당신은 권투의 신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레어 스킬, 핵펀치를 얻었습니다.
 -핵펀치의 사용엔 마나도 오러도, 내공도 필요치 않습니다.
 
 상급 권투는 패시브 스킬이지만, 핵펀치는 액티브 스킬이었다.
 “설명창.”
 
 <핵펀치>
 전력을 실어 날리는 스트레이트 펀치다. 무엇이든 한 방에 박살 낼 수 있을 것이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효과가 2배가 된다.
 등급: 레어
 레벨: 1
 효과: 펀치력×1,000
 쿨타임: 1시간
 
 용효가, 권투 스킬이 중급에 올랐을 때 만물 자판기에서 2골드를 주고 산, 절대 찢기지도 터지지도 않는다는 설명이 적혀 있던 트롤 가죽 샌드백 앞으로 갔다.
 무엇이든 한 방에 박살 낼 수 있다는 펀치, 절대 터지지 않는다는 트롤 샌드백.
 어떨까?
 용효가 샌드백 앞에서 자세를 취했다.
 “핵펀치!”
 스킬을 쓰며 용효가 샌드백을 향해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
 쾅!
 폭발음 같은 소리를 내며 트롤 가죽 샌드백이 위로 붕 뜨더니 파지직! 찢기며 산산조각으로 터져나갔다.
 
 -스킬, 핵펀치가 2LV이 됩니다.
 
 
 Chapter 2
 
 
 “이게 스킬······.”
 용효의 얼굴에 놀라움과 만족, 기대의 감정이 깃들었다.
 신체 능력이 상승한 게 아니었다.
 펀치를 날린 오른 주먹에만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이 더해졌고 주먹이 샌드백을 친 직후엔 정확히 1,000배까지 펀치력이 올라 샌드백을 강타했다.
 놀랍게도 정말 딱 1,000배였다.
 초인이 되며 극한으로 예민해진 감각, 용효는 그 감각으로 증가된 펀치의 위력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 더 쓰고 싶었지만 트롤 가죽 샌드백은 터져버렸고 2골드나 하는 트롤 가죽 샌드백을 사자마자 바로 터뜨려 버릴 순 없었다.
 트롤 가죽 샌드백보다 더 튼튼한 오우거 가죽 샌드백도 만물 자판기에서 팔지만 오우거 가죽 샌드백이라 해도 과연 핵펀치 스킬을 버틸 수 있을지······.
 그래도 찾아보면 샌드백처럼 칠 수 있고 핵펀치 스킬을 버텨내는 수련 도구가 분명 있을 것이다.
 용효가 테디베어 옆에 놓아둔 천금화 주머니를 들고 만물 자판기로 갔다.
 일단 4골드로 오우거 가죽 샌드백을 샀다.
 더 좋은 용비늘 샌드백도 있지만, 가격이 2,000골드나 했다. 상품 이름 앞에 용이나 드래곤이 붙으면 최소 1천 골드는 넘고 1만 골드도 가볍게 넘었다.
 용효는 검색 기능을 써 비싸지 않고 재구매 없이 핵펀치 스킬을 백년이고 천년이고 수련할 수 있을 수련 도구를 찾았다.
 그렇게 한참······.
 “······!”
 펀치 머신이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가격은 7골드, 스킬 레벨이 올라도 핵펀치 스킬을 계속 쓸 수 있다면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었다.
 디자인은 오락실에서 하던 펀치 머신과 똑같았다.
 단, 펀치를 치는 타격부에 가죽은 덧대어져 있지 않았다. 뭔지 알 수 없는 검은 쇠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트롤 가죽 샌드백처럼 그저 찢기지 않는다는 내용만 적혀 있었다면 용효는 바로 투입구에 천금화를 넣진 않았을 것이다.
 1Yt.
 1,000,000,000,000,000,000,000,000톤의 펀치력을 견딜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내구력이면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덜컹덜컹!
 용효가 캡슐 2개를 들고 거실로 돌아갔다.
 오우거 샌드백은 캡슐을 돌리자 저절로 트롤 샌드백이 있던 천장에 설치됐고, 펀치 머신기는 TV 옆에 놨다.
 아직 핵펀치 스킬의 쿨타임이 끝나지 않은 상태, 용효는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슬슬 무게를 늘릴 때가 됐군.”
 더뎌졌던 스탯 상승이 권투를 수련하며 다시 속도가 붙었고, 그 덕분에 12톤의 무게도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한 요즘이었다.
 쿨타임이 끝나자 용효는 바로 철봉에서 내려와 펀치 머신기로 갔다.
 찰칵.
 펀치(Punch)라 적힌 붉은 버튼을 누르자 펀치판이 앞으로 올라왔다.
 용효가 권투 자세를 취했다.
 “핵펀치!”
 스킬을 쓰며 펀치판을 향해 전력을 실은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
 콰앙!
 트롤 샌드백을 쳤을 때보다 더 큰 굉음이 나며 펀치판이 원래 있던 자리로 곤두박질치듯 떨어졌다.
 띠리리리링!
 전광판에 용효의 펀치력이 표시되었다.
 55Kt!
 “와······.”
 무려 55,000톤!
 정말 어마어마한 위력이다.
 용효도 자신이 날린 펀치임에도 커진 눈으로 전광판의 숫자를 한동안 바라봤다.
 보통 펀치도 55톤의 힘이 실린단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용효는 오히려 더 강함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더 이상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는 수련이 아니었다.
 하면 할수록, 열심히 한 만큼 착실히 강해지는 수련의 방에서의 수련이 즐겁게 느껴졌고, 열망도 커져 갔다.
 “더 빨리, 더 많이 강해지고 싶어.”
 용효가 주먹을 꽉 쥐었다.
 
 -투지가 100 오릅니다.
 
 * * *
 
 TV 앞에 앉은 용효가 보고 있는 건 가라데 경기였다.
 가라데는 다양한 수기(手技)와 권(拳), 발차기 기술을 가진 무술이었다.
 펀치만 있는 권투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숙고 끝에 권투와 함께 수련하기로 했다.
 물론, 가라데 수련을 시작하는 건 가라데의 이론과 기술을 완벽히 이해하고 수많은 경기 영상들을 본 뒤, 20~30년 뒤가 될 것이다.
 그 전까진 계속 육체단련과 권투 수련만 하기로 했다.
 시간은 흘러갔다.
 용효의 눈앞에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알림창이 뜬 건 그로부터 27년이 더 흘렀을 때였다.
 
 -용효, 당신의 권투는 더 이상 권투가 아닙니다.
 -권투의 새로운 경지가 열립니다.
 -상급 권투가 용투(龍鬪)로 바뀝니다.
 -모든 스탯이 500 오릅니다.
 -용투는 오직 용효 당신이 써야만 진정한 힘을 발휘합니다.
 
 “용투라······.”
 권투를 수련한 지 400년이 지났을 때부터 용효는 더 높은 경지를 이루기 위해 권투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동작과 기술들을 자신에 맞춰 바꿔왔고, 그 노력이 새로운 투기(鬪技)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가라데 수련이 기대되는군······.”
 가라데를 마스터해 용투에 접목시키면 용투 이상의, 더 강력한 투기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가라데 경기 영상들은 충분히 봤다.
 용효는 오늘부터, 지금부터 당장 가라데 수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 그 전에······.
 쾅!
 
 -핵펀치가 7LV이 됩니다.
 
 핵펀치 스킬을 써 펀치 머신기를 치고 돌아선 용효가 거실 중앙에 서며 가라데 수련을 시작했다.
 
 * * *
 
 500년이 지났다.
 초급 용투는 중급 용투로, 가라데는 상급 가라데에 도달해 있었다.
 그 말은, 용투 스킬과 가라데 스킬이 아직 합쳐지지 않고 따로따로 존재한다는 뜻.
 다른 두 무술을 합쳐 기존에 없던 새로운 투기를 만들어내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그러나 급할 건 없었다.
 용효에겐 시간이 참 많았다.
 용효는 조급해하지도, 안 되는 게 아닐까 아쉬워하지도 불안해하는 일도 없이 수련해 나갔다.
 “핵펀치!”
 콰앙!
 펀치 머신기의 전광판에 570Kt가 떴고, 눈앞에는 스킬업 알림창이 나타났다.
 
 -핵펀치 스킬이 진(盡) 핵펀치가 됩니다.
 
 핵펀치 스킬은 역시 10LV이 끝이 아니었다. 단, 진 핵펀치 스킬은 스킬 레벨이 없었다.
 핵펀치 스킬의 성장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용효는 아쉽다고 생각지 않았다.
 진 핵펀치의 효과는 ×15,000 무려 855,000톤의 위력이 실린 펀치를 날릴 수 있었다.
 “이 정도 펀치력이면······.”
 용효가 먼치킨 액자 밑에 있는, 손잡이도 실선 같은 틈새조차 없는, 그러나 문이 분명한 문을 바라봤다.
 만물 자판기에는 당연히 열쇠도 팔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물건들과 달리 열쇠는 딱 한 종류만 팔고 있다.
 
 <골드 키(Key)>
 금으로 된 열쇠다.
 어떤 문이든 열 수 있다.
 
 만물 자판기에 딱 한 종류만 있는 키의 설명문.
 설명이 영 부실했던 TV, 설명과 달리 찢겨 버렸던 트롤 샌드백, 만물 자판기의 설명문을 100% 믿을 순 없게 됐지만, 수련의 방에 딱 하나만 있는 문과 만물 자판기에 딱 하나만 파는 열쇠, 골드 키는 이 문을 여는 열쇠인 게 분명하다.
 수련의 방 밖으로 나가는 문은 아닐 것이다. 더 강해질 수 있는 수련 공간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골드 키의 가격은 50,000골드. 무공서보다 마법서보다, 서클링보다, 오러홀보다, 정령보다도 비쌌다.
 대체 언제쯤이면 살 수 있을지, 살 수 있게 됐다 해도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문을 여는데 50,000골드나 쓰고 싶진 않단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였다.
 “부순다······.”
 진 핵펀치를 쓰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 앞에 선 용효가 용투 자세를 취했다. 핵펀치가 진 핵펀치로 승급되며 1시간의 쿨타임은 채워진 상태.
 고오오오오!
 내공도, 마나도, 오러도 사용되지 않는 펀치임에도 꽉 말아쥔 용효의 오른 주먹 주위의 공간이 일렁이는 듯했다.
 “진, 핵펀치!”
 용효가 진 핵펀치 스킬을 담은 스트레이트 펀치를 문으로 날렸다.
 콰아앙!
 방 안에 굉음과 광풍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석문이 깨진 거울처럼 쩍쩍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주먹 모양으로 패인 자국에서부터 시작해 사방으로 뻗어 나간 금들은 아직도 길이가 길어지고 틈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용효의 얼굴에는 이미 기대감이 사라지고 없었다.
 석문에 생긴 금들의 틈에선 빛 한 줄기 바람 한 줄기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문은 두꺼웠고, 문을 뒤덮은 금들은 이내 되돌리기를 하듯 틈이 메워지고 길이가 줄어들어 갔다.
 문이 원상복구 되는 데는 5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후후······.”
 용효의 입에서 나온 웃음소리였다. 실패했지만,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었다.
 금이 갔다는 건 자신의 펀치가, 공격이 먹혔다는 뜻.
 그렇다면 신체 스탯과 펀치력을 더 올리면 된다.
 문 너머의, 또 다른 수련의 방으로 가기 위해 골드 키를 천금화를 주고 살 필요는 없었다.
 시간은 많고 많다.
 이 방에서의 수련이 정체된 것도 아니다. 급할 건 없었다.
 
 1시간 뒤.
 진 핵펀치 스킬의 쿨타임이 끝나자 용효는 다시 석문 앞에 섰다.
 이번엔 진 핵펀치에 이어 펀치 세례도 퍼부어 보기로 했다.
 용효의 주먹은 노말 펀치도 85톤의 펀치력을 갖는다.
 이번에도 실패한다 해도 문의 강도와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 더 잘 알게 될 테니 손해 볼 건 없었다.
 “후우······.”
 숨을 길게 내쉬며 다시 용투 자세를 취했다. 권투 자세처럼 보이지만 다리는 권투라 하기엔 중심이 낮았고 얼굴의 가드는 왼 주먹만, 오른 주먹은 마치 권법처럼 오른쪽 옆구리에 가 있었다.
 “진, 핵펀치!”
 스킬을 시전하며 용효가 석문으로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
 콰아앙!
 조금 전과 똑같이 석문에 거미줄 같은 금이 쩍쩍 갔다.
 이어······.
 “우와아아아앗!”
 기합을 내지르며 85톤의 힘이 실린 왼 주먹과 오른 주먹을 번갈아 가며 석문으로 퍼부었다.
 콰콰콰콰콰쾅!
 당연히 진 핵펀치로 쳤을 때보다 더 큰 굉음과 광풍이 휘몰아쳤고, 석문이 용효의 주먹 모양으로 움푹움푹 패며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고 와르르 쏟아졌다.
 그러나 용효의 펀치 세례는 10여 초 만에 끝이 났다. 지친 건 아니었다.
 더 해봐야 지금 자신의 펀치로는 석문을 깰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쉬이이이익~.
 얼핏 바람 소리가 들렸다.
 문에 난 균열의 틈새로 가는 바람이 잠시 불었다, 문이 복구되자 사라진 것이었다.
 문을 깨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듯했다.
 용효가 샌드백 앞으로 돌아갔다.
 퍽! 퍼벅! 퍽!
 용투가 아니었다. 가라데식 권으로 샌드백을 쳤다.
 가라데의 틀을 그대로 지키며, 그러나 강력한 힘이 실린 수기와 권, 킥으로 샌드백을 치고 또 쳤다.
 자신에 맞게 가라데를 변형시키고 용투에 접목시키는 건 가라데가 절정의 경지에 오른 뒤여야 했다.
 “조급해하지 마. 한 계단 한 계단 오른다······.”
 나날이 커져 가는 강함에 대한 갈망으로 가라데 스킬이 상급에 오르자마자 욕심을 냈던 적도 있지만, 가라데를 완벽히 이해하고 마스터하지 못했는데 변형과 접목을 시도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용효는 반성하며 권투를 수련할 때처럼 가라데의 기본과 기술을 정직히, 묵묵하게 다지고 또 다졌다.
 700년이 더 지나서야 용효의 눈앞에 기다리던 알림창이 나타났다.
 
 -당신은 가라데의 신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투기 스킬이 상급에 오른 뒤 뜨게 되는 이 알림창을 용효는 절정의 알림창이라 불렀다.
 이 알림창이 뜨면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볼 수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한 투기냐를 떠나 권투보다 기술이 더 많은 만큼 절정의 경지에 오르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절정에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는데 걸린 시간은 권투와 비슷한 100년 정도였다.
 
 -스킬, 괴골킥(壞骨-Kick)을 얻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용효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권투엔 킥 기술이 없기에 용효는 가라데 스킬이 상급에 오르자 수기보단 킥 기술에 더 열중했다. 당연히 수기보단 킥 기술들이 훨씬 강력했다.
 그걸 알고서 수련의 방은 미들킥과 로우킥에 쓸 수 있는 스킬을 만들어준 것이다.
 “설명창.”
 
 <괴골킥>
 상대가 누구든, 몬스터든 마물이든 타격한 부위의 뼈를 부숴버리는 강력한 미들킥과 로우킥을 날릴 수 있다.
 스킬이 오를수록 효과가 2배가 된다.
 등급: 레어
 레벨: 1
 효과: 타격한 부위의 뼈에 킥력의 ×1,000의 공격력이 가해진다
 
 용효가 씩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였다.
 용투 스킬도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상태, 초절정 용투와 초절정 가라데를 합쳐 자신만을 위한, 새로운 투기를 만들기 위한 수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용효는 무도 수련에 푹 빠져들었다.
 
 * * *
 
 천년이 흘렀다.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도, 문을 깨부수는 것도, 용투와 가라데를 합쳐 새 투기를 만드는 것도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용효는 좌절하지도 의욕을 잃지도 않았다.
 좌절할 이유가 없었다.
 스탯은 계속 올랐고 스탯이 오르는 만큼 육체는 착실히 강해졌으며,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용투도 가라데도 더 발전할 여지가 남아 있었다.
 특히, 새로운 투기를 만드는 수련은 잠을 더 줄이고 싶을 정도로, 빨리 내일이 왔으면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천년이 더 흘렀다.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전 스탯이 1,500 오릅니다.
 -보상으로 천금화 3,000을 얻었습니다.
 -보상으로 봉황천년삼을 얻었습니다.
 
 용효는 보상으로 받은 금화 주머니에서 천금화를 한 닢도 쓰지 않고 그대로 테디베어 옆에 놨다. 봉황천년삼도 먹지 않고 테디베어의 품 안에 넣어뒀다.
 “분명 TV로 요리 스킬도 얻을 수 있어······.”
 만물 자판기에서 파는 천년삼, 그리고 먼닭만으로 요리한 요리를 따로 먹을 경우 오르는 스탯은 요리 영약인 먼숙을 먹으면 오른 스탯의 반도 되지 않는다.
 요리 스킬을 익혀야 하는 이유였다.
 용효는 용투와 가라데를 합친 새로운 투기가 만들어지면 요리 수련에도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었다.
 요리만이 아니다.
 육체단련과 투기에만 국한을 두지 않고 더 강해질 수 있다면 용효는 무엇이든 배우고 익힐 생각이었다.
 퀘스트를 클리어한 다음 날.
 새로운 수련 퀘스트가 떴다.
 
 <수련 퀘스트-육체를 초인 이상으로 진화시켜라>
 초인 용효, 당신의 앞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렸다. 당신은 이미 방법을 알고 있다. 초인을 넘어서라.
 [보상1] 천금화+7,000
 [보상2] 킹베어의 웅담
 [보상3] 천과과즙(天果果汁) 한 박스
 
 이전 수련 퀘스트들과 달리 얼마나 수련을 해야 클리어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어려운 퀘스트, 그러나 55000년의 수련이라는 언젠간 반드시 도착할 수 있는 종점이 있고 마법이나 오러, 내공을 익히는 수련이 아닌 이상 고민할 게 없었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지금 하고 있는 수련을 계속하면 되었다.
 또 보상도 달콤하지 않나. 천금화가 무려 7,000에 웅담에, 천과과즙 한 박스라는 건 한약처럼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영약이라는 뜻일 것이다.
 시간은 더 흘러······.
 1500년이 더 지났을 때였다.
 퍽!
 파지직!
 투웅, 퉁!
 용효의 미들킥에 오우거 샌드백의 가죽이 찢어지고 천장에 박힌 나사들이 일제히 뽑혀나가며 샌드백이 부엌까지 날아가 통통 튀며 바닥을 굴렀다.
 천장의 균열은 금방 복구됐지만 망가진 오우거 샌드백은 소멸해 사라져 버렸다.
 4골드나 주고 산 샌드백, 용효의 얼굴이 구겨졌다. 진 핵펀치 스킬만 쓰지 않으면 수련 내내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분노까지 담기며 구겨진 용효의 표정은 이내 펴졌다.
 눈앞에 뜬 알림창 때문이었다.
 
 -극진용투(極?龍鬪)가 완성되었습니다!
 -전 스탯이 2,000 오릅니다.
 -어느 신이 용효 당신의 무도에 대한 집념과 노력에 탄복해 선물을 내립니다.
 -수련의 방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
 -상태창에 영혼 각인란이 추가됩니다.
 -용효, 당신의 영혼에 신급의 각인이 새겨집니다.
 
 “영혼 각인······?”
 타이틀 같은 것일까······?
 어떤 효과를 주는지 궁금했지만 계속 떠오르는 알림창들에 용효는 상태창을 열지 못했다. 신이 줬다는 선물도 영혼각인의 효과 못지않게 궁금했다.
 
 -도복을 얻었습니다.
 -신이 도복의 왼쪽 가슴에 직접 극진용투(極?龍鬪)를 새겨줍니다.
 -용효, 당신은 검은띠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극진용투의 검은띠를 받았습니다.
 
 거실 중앙에 가지런히 개어진 흰 도복이 생겨났고, 이어 그 위에 가지런히 접힌 검은띠가 생겨났다.
 “설명창.”
 신이 내린 선물, 평범한 도복일 리 없었다.
 극진용투 도복의 상태창이 용효의 눈앞에 떠올랐다.
 
 <극진용투 도복>
 비스릴 실과 모리하르콘 실, 거미 여왕의 실로 짠 흰색 도복이다. 신이 직접 도복에 도복명(道服名)을 새겨 넣어 도복에 축복이 깃들었다.
 등급: 신화 무게: 30톤
 내구력: 100,000,000
 방어력: 100,000,000
 항마력: 100,000,000
 효과: 1. 청결의 축복 2. 복구의 축복 3. 활력의 축복
 
 용효의 입이 반쯤 벌어져 한동안 다물어지지 않았다.
 도복의 스펙은 용효가 가졌던 기대를 아득히 넘어 있었다. 30톤이나 되는 도복 무게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감사합니다······.”
 세 축복의 설명창까지 확인하고 나자 용효는 허공에 대고서라도 감사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결의 축복은 도복을 늘 깨끗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고, 복구의 축복은 도복의 찢기고 헤진 부분을 복구하는 효과가, 활력의 축복은 수련을 통한 성장폭을 더욱 증폭시키는 효과였다.
 “상태창.”
 
 이름: 김용효
 직업: 수련생 특성: 초인
 생명력: 29,237 체력: 29,179
 근력: 31,582 민첩: 29,012
 투지: 18,246 인내: 18,113
 스킬
 패시브: 극진용투
 액티브: 1. 진, 핵펀치 2. 괴골킥
 
 오랜만에 열어보는 상태창이기에 용효는 스탯들을 먼저 확인하고 밑에 생겨난 영혼 각인란을 봤다.
 
 영혼 각인
 *신의 선물을 받은 자(신급, 마(魔) 속성 데미지 30% 반감, 마 속성 상대에 대한 20% 추가 데미지)
 
 20%의 추가 데미지 효과도 대단하지만, 마 속성 공격에만 적용된다 해도 받은 데미지를 1/3이나 깎아버리는 효과라니 과연 신이 준 버프다웠다.
 그러나 수련에는 도움 될 게 없는 버프, 용효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효는 극진용투의 도복을 집어 들었다.
 용효는 먼저 1톤이 나가는 하의를 입고, 25톤의 상의를 입은 뒤 4톤이 나가는 검은띠를 도복 위에 둘렀다.
 처음 둘러보는 도복 띠지만 극진용투의 창시자는 용효다. 용효가 도복 띠를 두르는 방법이 극진용투의 도복 띠를 두르는 법이었다.
 “······흠.”
 도복을 다 입자 땀을 삐질 흘리는 용효.
 팔목과 발목에 차고 있는 천근환의 무게가 25톤, 도복의 무게가 30톤, 55톤의 무게를 두르자 아무리 초인인 용효라 해도 몸이 편할 수 없었다.
 결국, 용효는 손목과 발목에 차고 있던 천근환을 전부 벗었다.
 쿵! 쿵쿵! 쿵쿵쿵쿵!
 쿵쿵쿵! 쿠웅!
 도복만 입은 상태가 됐지만, 여전히 무거웠다. 천근환만 차고 있었을 때보다 5톤이나 무거운 무게는 오버, 2~3톤 정도를 올리는 게 적당했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는 용효.
 용효는 도복을 벗기가 싫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흰색에, 적당히 두꺼운 천의 두께, 무릎까지 늘어지는 검은띠.
 용효는 이 도복이 참 마음에 들었다.
 검은띠를 풀고 천근환 한 세트를 차면 수련하기 딱 좋은 무게가 되겠지만, 용효는 띠를 두르지 않은 도복은 앙꼬가 안 들어간 붕어빵이요 소스를 안 뿌린 돈가스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띠를 풀지 않은 채 철봉에 매달린 용효는 끙끙거리며 턱걸이를 시작했다.
 아직 500개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역시 30톤의 무게는 무리.
 쿵!
 결국, 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용효는 검은띠를 벗고 다시 철봉에 매달렸다.
 이번엔 속도가 붙었다.
 그날 저녁, 좋은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육체단련과 무도 수련을 끝내고 1시간의 TV 시청까지 막 끝냈을 때였다.
 
 -초급 한식 요리 스킬을 얻었습니다.
 
 “역시······.”
 TV로 요리 스킬도 얻을 수 있었다.
 요리 스킬이 초절정에 오르면 봉황천년삼과 네 번째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얻는 킹베어의 웅담으로 보양식을 요리해 먹으리라.
 주먹을 불끈 쥐며 용효는 요리 수련에 대한 기대와 집념을 드러냈다.
 내일부터 바로 요리 수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 * *
 
 퍽! 파각! 퍽! 퍼벅! 퍽!
 다음 날.
 새벽부터 용효는 샌드백을 치고 있었다.
 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오우거 샌드백은 사고 싶지 않았기에 거금 2천 골드를 투자해 산 용비늘 샌드백이었다.
 “용비늘씩이나 되는데 찢기진 않겠지······.”
 오우거 샌드백이 찢겼을 땐 도복에 영혼 각인까지 선물로 받아 참았으나 용비늘 샌드백까지 찢기면 용효는 만물 자판기를 깨부숴 천금화를 토해내게 만들어서라도 환불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확실히 비싼 게 좋긴 좋네······.”
 치는 맛이 달랐다.
 샌드백이 아닌, 고깃덩어리를 친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가죽이 찢기지만 않는다면 2천 골드가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다.
 
 -8시!
 
 아침 식사로 나온 먼치킨을 뚝딱 해치운 용효는 아침 수련도 용비늘 샌드백을 치며 극진용투를 수련했다.
 오후엔 철봉과 러닝머신에서 육체단련을 했다.
 저녁은 다시 극진용투 수련이었다.
 요리 수련도 시작했지만, TV 시청 전, 하루 1시간의 수련일 뿐이었다.
 부엌에 빌트형 가스렌지와 싱크대는 있지만 요리 도구와 식료품은 없었다.
 그래서 용효는 10골드로 요리 도구와 식기가 세트로 묶인 먼키친(Mun-Kitchen) 세트를 사고, 30골드를 더 투자해 요리 재료로 사용해야만 맛이 난다는, 대신 양이 1톤이나 되는 식료품 상자를 샀다.
 무도 수련이 끝나자 용효는 부엌의 조리대 앞에 섰다.
 탁탁탁탁탁!
 식칼로 양파를 써는 걸 시작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김치찌개였다.
 좋아하는 요리인 만큼 정말 열심히 만들었으나······.
 
 -17점.
 
 하루 1시간의 요리 수련이기에 성장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50년이 넘자 한식 요리 스킬은 중급에 올랐고, 100년이 넘자 상급이 됐다.
 
 -용효, 당신은 이제 상급 한식 요리인입니다.
 -요리 점수가 80점을 넘는 요리를 만들면 요리에 신비한 힘이 깃들지도 모릅니다.
 
 그 신비한 힘이란 스탯 상승이었다.
 보양식을 요리해 먹을 생각으로 시작한 요리 수련인데 노말 요리를 만들어 먹어도 스탯을 올릴 수 있다니, TV야말로 용효의 인생템이자 효자템이었다.
 그러나 이후 500년이 지나고 700년이 더 지나도 한식 요리 스킬은 절정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뭔가가 잘못됐어······.”
 요리를 수련이라 말하면서도 실은 난 수련이 아닌 요리만을 해왔던 게 아닐까. 불현듯 용효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용효는 한식 요리 수련이 시작부터 잘못됐음을 느꼈다. 상급까지 오른 게 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련의 방 수련자의 요리는 요리가 아니야······ 수련이다.”
 더 치열하게, 쓰러뜨릴 각오로 해야 했다. 무엇을? 맛을. 그 직후, 용효의 눈앞에 본 적이 없던 알림창이 떠올랐다.
 
 -수련생들에게 두고두고 깨달음을 줄 선배의 명언!
 -먼치킨 난이도 수련의 방 역사상 두 번째 명언 액자가 만들어집니다.
 
 ‘먼치킨만이 살길이다’ 액자 맞은편 벽에 수련자의 요리는 요리가 아닌, ‘수련이다’ 액자가 걸렸다.
 
 -명언 값으로 천금화 5,000이 지급됩니다.
 
 용효의 요리 실력은 빠르게 성장했다. 이후 절정의 경지에 오르는 데는 10년의 세월도 걸리지 않았다.
 
 -용효, 당신은 한식 요리의 신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초절정 경지에 오르는 데는 더 짧은,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스킬, 챔기름을 얻었습니다.
 
 ······?
 “설명창.”
 ······크게 기대가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초절정의 요리 스킬, 평범한 스킬일 리 없었다.
 <챔기름>
 이 스킬의 시전에는 반드시 참기름이 필요하다. 챔기름 한 방울이면 어떤 음식이든 숨겨진 맛을 끌어올릴 수 있다.
 등급: 레어
 효과: 맛 2~10배 증가
 
 용효가 고개를 돌려 테디베어의 품속에 고이 넣어둔 봉황천년삼을 봤다.
 만물 자판기에서 파는 튀긴 먼치킨은 500골드지만 요리가 안 된 생먼닭은 50골드면 살 수 있었다.
 요리인의 안목으로 보니 네 번째 수련 퀘스트의 보상인 웅담은 삼계탕 요리와 맞지 않는 재료였다. 오히려 요리를 망치고 말 것이다.
 용효는 지금 바로 봉황천년삼으로 보양식을 만들기로 했다.
 만물 자판기에서 먼생닭 한 마리와 해신전복 한 마리를 사고 봉황천년삼을 들고 와 조리대 앞에 섰다.
 초절정 한식 요리인이 최고의 영약들과 초절정 한식 요리 스킬인 챔기름까지 사용해 만드는 요리! 과연 스탯을 얼마나 올려줄 것인가.
 어쩌면 단숨에 초인의 경지를 넘어서며 네 번째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극진용투 도복의 검은띠를 파악! 당겨 맨 용효가 도마를 앞에 놓고 식칼을 집어 들었다.
 “이름하여······ 해신봉황천년삼계탕(海神鳳凰千年蔘鷄湯).”
 
 탁탁탁탁탁!
 수련의 방에 평소의 퍽퍽거리고 쾅쾅거리는 소리가 아닌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용효가 식칼로 도마 위의 양파와 마늘을 써는 소리였다.
 이어 용효는 왼손엔 생먼닭을 오른손엔 가위를 들었다.
 깔끔한 국물 맛을 위해 가위로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고 생먼닭의 뱃속에 불린 찹쌀을 채워 넣었다.
 이어 냄비에 생먼닭과 황기물, 해신전복, 봉황천년삼, 대추와 양파, 편마늘을 전부 넣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센 불에 20분, 중 불에 30분을 끓이자 삼계탕의 구수하고 담백한 향이 부엌 가득 휘돌았다.
 툭툭, 톡톡.
 절묘한 솜씨로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한 용효는 2분 정도를 더 끊인 뒤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챔기름.”
 요리 스킬로 평범한 참기름을 챔기름으로 만들어 삼계탕 속에 챔기름 한 방울을 톡! 떨어트렸다.
 딱 한 방울일 뿐인데 한순간에 향이 확 달라졌다.
 향이 더욱 구수해졌고 고급스러워졌으며 깊어졌다.
 요리란 눈으로도 먹는 것.
 용효는 해신봉황천년삼계탕을 뚝배기 속에 예쁘게 옮겨 담고 그 위에 황백지단과 파를 곱게 올렸다.
 완성이었다.
 용효의 눈앞에 요리 점수가 떠올랐다.
 
 -91점.
 
 “이 정도면······.”
 용효의 가장 높은 요리 점수는 97점이지만 영약들을 넣고 요리한 삼계탕은 이번이 처음,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한 점수였다.
 쟁반 위에 뚝배기와 숟가락 젓가락을 얹고 용효는 그 쟁반을 들고 거실로 갔다.
 거실 중앙에 쟁반을 놓고 그 앞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먼저, 다리를 잡아 북 뜯자 뱃속에 채워져 있던 찹쌀이 와르르 흘러나와 뚝배기 밑바닥을 푸짐히 채웠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닭 다리를 입에 넣어 살점을 한 입 크게 뜯고, 오른손으론 숟가락을 들어 뚝배기 속으로 푹 담가 찹쌀과 대추를 숟가락 가득 퍼 올려 입안에 넣고 살점과 함께 씹었다.
 “어후어후······!”
 입에서 뽀얀 김과 함께 절로 나오는 맛있는 소리.
 “쩝쩝쩝, 쩝쩝······!”
 죽이 된 찹쌀이 혓바닥 위를 이리저리 넘나들며 사르르 풀어지고 가볍게 씹혔다. 그러나 소리와 달리 가볍지만은 않은 찰짐 또한 갖고 있었다.
 “······후르르르륵!”
 먼닭과 찹쌀을 다 먹은 용효가 뚝배기를 뚝배기 채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국물을 다 마시자 용효는 그제야 아껴두던 봉황천년삼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고 으적으적 씹었다.
 삼답게 쓴맛이 올라왔으나 맛있게 쓴맛이었다. 잔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봉황천년삼을 전부 먹어치웠다.
 
 -전 신체 스탯이 5,000 오릅니다.
 
 먼숙을 먹었을 때보다 2배 이상 높은 스탯 상승!
 그러나······ 초인 진화를 이뤘을 때처럼 혈관들이 일제히 확장되며 그 혈관들 속으로 폭발적인 에너지가 해일처럼 퍼져 나가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 상승으론 턱도 없다는 건가······.”
 용효의 목소리가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그가 바라던 건 육체 진화와 그로 인한 수련 퀘스트의 클리어였기에 기대한 결과가 나왔다 할 순 없었다.
 그런데 그때, 가슴 한복판에 뜨거운 기운이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
 아니, 다르다.
 심장이 만들어낸 뜨거운 기운이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으나 통증도 신체변화도 없었다.
 대신, 스테미너라 해야 할까, 전신에서 폭발적인 힘이 솟구쳤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효가 용비늘 샌드백 앞으로 갔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성난 황소처럼 몸속에서 마구 날뛰는 이 기운에 되레 몸이 망가져 버릴 것 같았다.
 퍽! 콰앙! 퍼벅!
 쾅! 퍼억! 퍽!
 펀치와 수기, 킥으로 용효가 용비늘 샌드백을 쉴 새 없이 쳤다. 식사시간을 알리는 알림창이 떴는데도 용효의 난타는 멈추지 않았다.
 자정이 넘고 새벽이 지나고 아침 식사시간이 돼도 용효는 멈추지 않았다.
 무아지경과는 달랐다.
 넘칠 기세로 계속 전신에 차오르는 이 기운을 밖으로 내뿜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용효는 먼치킨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용비늘 샌드백만 쳤다.
 초인은 신은 아니다.
 먹지 않으면 체력은 떨어지고 몸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계속 먹지 않으면 아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불같은 기운은 몸에 영양 공급까지도 해줬고,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할 노폐물들은 그 기운에 녹아 몸속에서 수증기나 가스조차 만들지 않고 소멸해 사라졌다.
 신체 스탯이 빠른 속도로, 큰 폭으로 계속 상승했다.
 용효의 기행이 멈춘 건 근 반년이 지났을 때였다.
 “하아, 하아, 하아······.”
 어깨까지 들썩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용효가 간신히 숨을 가다듬고 용투 자세를 풀었다.
 몸속의 기운이 다 빠져나갔기 때문은 아니었다. 몸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초인2의 경지에 들어섭니다.
 
 불쑥불쑥!
 전신의 근육들이 팽창하듯 커지고, 전신의 모공들이 일제히 활짝 열리며 수증기를 자욱이 뿜어냈다.
 용효의 두 번째 육체 진화가 시작되었다.
 
 * * *
 
 용효가 육체 진화를 끝내는 데는 하루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천금화 7,000을 얻었습니다.
 -킹베어의 웅담을 얻었습니다.
 -천과과즙 한 박스를 얻었습니다.
 
 전신의 뼈가 더 두껍고 단단하게 변했고, 근육이 더욱 질기고 억세게 변해 흉포함을 품었다.
 오장육부는 장기의 위치까지 바뀌며 야수가 품은 장기인처럼 거세고 우악스럽게 신진대사를 돌려댔다.
 잠시 뒤, 새로운 수련 퀘스트가 용효의 눈앞에 떠올랐다.
 
 <수련 퀘스트-육체를 더 진화시켜라>
 수련의 방은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또한, 인간의 가능성도 무한하다. 용효, 자신의 집념을 믿고 정진한다면 길은 열릴 것이다.
 [보상1] 천금화+10,000
 [보상2] 초먼닭 한 마리
 
 석문 앞으로 가며 용효는 흐트러진 도복을 정리하고 검은띠를 다시 맸다.
 첫 진화 때와 달리 근육이 커져 도복이 꽉 꼈지만, 권과 킥을 날리는데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쩌엉!
 가볍게 툭 쳤을 뿐인데 석문이 크레이터 모양으로 움푹 팼다.
 이번엔 깰 수 있다.
 확신이었다.
 “진, 핵펀치!”
 순간적으로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150만 톤이 넘는 힘이 실린 용효의 오른 주먹이 석문을 후려쳤다.
 콰아앙!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간단히 석문이 깨져나갔다.
 방 안에 휘몰아치던 광풍이 잦아들자 용효는 한 걸음을 내디디며 석문이 사라진 공간을 들여다봤다.
 방이었다.
 
 -대련의 방이 개방됩니다.
 -대련의 방과 수련의 방 사이에 여닫이문이 만들어집니다.
 -수련자는 수련의 방과 대련의 방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대련의 방에는 2배의 중력이 작용합니다.
 
 “대련······ 중력······!”
 용효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두 번의 진화까지 이루며 수천 년간 단련해온 육체와 수천 년을 갈고닦아 온 무술, 전력을 쏟으며 싸워보고 싶단 욕구를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련의 방에선 더 강도 높은 육체단련과 무도 수련도 가능했다.
 주저 없이 용효가 대련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정육각형으로 되어 있었고 방 중앙엔 두꺼운 철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여섯 개의 벽 중앙엔 전부 수련의 방의 문처럼 문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때, 허공에 광구(光球) 하나가 생겨났다.
 손으로 마구 주무르는 찰흙처럼 광구의 모양이 이리저리 바뀌며 차츰 인간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서브 수련 퀘스트-강철 주술인형 1호를 파괴하라>
 강철 주술인형 1호를 파괴하기 전까진 수련의 방으로 돌아갈 수 없다.
 [보상1] 근력+100
 [보상2] 천금화+100
 
 퀘스트창이 사라지자 안구부와 어깨와 무릎의 관절부가 흉물스럽게 노출된, 수준 낮은 과학기술로 만든 인조인간 같은 인형이 사납게 달려들었다.
 2배의 중력에 60톤이 된 도복이 용효의 전신을 짓누르는 상태, 용효는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 느꼈다.
 그사이 강철 주술인형 1호가 용효의 지척에 다다랐다.
 용효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펀치와 킥을 못 날릴 정도까진 아니야······.’
 콰앙!
 100톤이 넘는 킥력의 로우킥에 강철 주술인형의 강철 뼈가 45도 각도로 부러지며 몸이 기울었고, 이어 날린 수도가 앞으로 기울어지는 강철 주술인형의 목을 후려쳐 목을 찌그러뜨렸다.
 이어 오른손 스트레이트 펀치가 목이 찌그러져 옆으로 돌아간 머리의 관자놀이를 내리꽂듯 후려쳤다.
 콰앙!
 물 흐르듯 이어진 3연타!
 단 1초 만에 만신창이가 된 강철 주술인형 1호가 허공에서 핑그르르 돌며 바닥에 곤두박질쳐 바닥을 구르고 미끄러지며 불티를 요란하게 튀어 올렸다.
 
 * * *
 
 “더 강한 상대와 대련하고 싶다.”
 60톤의 무게가 된 도복도 벗지 않고 그 자리에 꼿꼿이 선 용효는 다른 대련 상대를 내보내 줄 때까지 대련의 방에서 나가지 않겠단 기세였다.
 대답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허공을 올려다봐도 광구도 새로 생겨나지 않았다.
 1분 정도······.
 용효의 요구를 들어준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정강이가 부러지고 목이 찌그러지고 머리가 박살 난 강철 주술인형 1호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파지지직!
 부러지며 찢긴 정강이의 틈새와 귤껍질 벗겨지듯 찢겨져나가 휑하게 드러난 머리의 단면에서 스파크가 튀며 파손된 부위가 마법처럼 복구되어갔다.
 용효가 용투 자세를 다시 취했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라 해도 얻는 게 있을 것이다. 저렇게 계속 복구된다면 그래도 수련이 되긴 할 것이다.
 양주먹을 가슴 앞으로 올린 강철 주술인형 1호가 하체와 상체를 바짝 낮춘 자세로 용효를 향해 달려들었다.
 용효는 공격을 일절 하지 않고 강철 주술인형의 공격을 머리와 상체만 슬쩍슬쩍 틀어 피하거나 손바닥으로 툭툭 쳐 옆으로 흘리거나 팔로 막기만 했다.
 “제법······.”
 격투 수준은 조잡하고 스피드는 자신보다 한참 떨어지지만, 펀치력은 거의 비등했다.
 펀치를 막은 손바닥과 팔목이 얼얼하고 욱신거릴 정도.
 정타를 맞는다면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이거나 풀썩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일부러 맞아주는 게 아닌 이상 수가 훤히 보이는 펀치와 킥에 용효가 맞을 일은 절대 없었다.
 
 -12시!
 
 얻을 게 더 있다고 생각됐다면 계속 대련을 했겠지만, 실력 차가 워낙 컸다. 이 이상의 대련은 의미가 없었다.
 그만 끝내기로 했다.
 “수고했다.”
 콰앙!
 로우킥이었다.
 정강이가 부러져나간 강철 주술인형이 뒤로 휘청 기울어졌다.
 쿠당,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진 강철 주술인형의 가슴을 발로 밟아 누르며 용효가 인형의 얼굴에 주먹을 퍼부었다.
 완전히 파괴시켜야 서브 퀘스트가 클리어되어 수련의 방으로 돌아갈 수 있고, 또 서브 퀘스트가 클리어되면 수련 퀘스트처럼 다른 서브 퀘스트가 뜰 수도 있었다.
 단 한 번의 대련을 위해 만든 방은 아닐 것이다.
 강철 주술인형의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나 발에 밟혀 짜부라진 벌레처럼 되자 용효의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근력이 100 오릅니다.
 -천금화 100을 얻었습니다.
 
 강철 주술인형 1호가 빛에 휩싸였다.
 흩어진 파편과 피도 기름도 아닌 녹색 액체가 빛 속으로 빨려들자 빛이 뭉쳐지며 광구로 변했다.
 “······?”
 천장까지 떠오른 광구는 들쭉날쭉 모양을 바꿔대다 17개의 광구로 나뉘어 대련의 방 곳곳으로 흩어졌다.
 1m 정도 높이에서 멈춘 광구들이 강철 주술인형을 만들어냈을 때처럼 인간의 형상을 빚어냈다.
 잠시 뒤, 빛의 막이 껍데기처럼 벗겨져 흩어지자 드러난 건 강철 주술인형들과 한 명의 인간이었다.
 가슴에, 또는 입고 있는 옷에 숫자가 새겨져 있는 것 외엔 키도 체격도 얼굴 생김새도 전부 달랐다.
 용효가 캐주얼한 반팔 티셔츠에, 그 티셔츠에 숫자 18이 적혀 있는 단발머리 여자를 봤다. 인형 수준이 아니었다.
 정말 인간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응?!”
 18호는 생김새만 더 아름답고 특별한 게 아니었다.
 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뒷덜미가 순간 서늘해지는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 살기나 포스, 기(氣)라 부르는 기운일 것이다.
 그때······.
 강철 주술인형 2호의 머리 위에 홀로그램창이 떴다.
 
 -364:23:59
 
 용효는 홀로그램창에 뜬 숫자의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강철 주술인형 2호의 기동까지 남은 시간일 것이다.
 “1년 뒤라······.”
 그러나 1년의 세월은 용효에게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또, 대련이 아니더라도 성장할 수 있는, 해야 할 수련이 많았다. 1호와의 대련을 통해 만들고 싶은 스킬도 있었다.
 수련의 방으로 돌아가 먼치킨을 먹은 용효는 다시 대련의 방으로 들어갔다.
 도복을 검은띠까지 두른 채 대련의 방을 뛰었다.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심장에 통증까지 느끼며 숨을 헐떡거렸지만 용효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1호는 약했다. 2호는 어떨까. 기세란 게 있다. 정지한 상태지만 기세가 어느 정도는 느껴졌다. 2호는 절대 약하지 않을 것이다.
 또, 어쩌면 나중엔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와 대련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빨리 대련의 방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한계를 넘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한계에 몸을 부딪치는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려도 코피가 흘러내려도 용효는 도복을 벗지 않고 대련의 방을 달렸다.
 인간의 육체를 초월하고 초월한 용효의 몸은 인간의 몸과 달리 혹사시키면 시킬수록 더 강해졌다.
 
 * * *
 
 “이 정도면······.”
 반년이 지나자 대련의 방에서 그럭저럭 몸을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됐기에 용효는 오늘부턴 새 스킬을 만드는 수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괴골킥은 뼈에만 효과가 적용되는 스킬, 강철 주술인형들에게 쓸 수 있는 공격 스킬은 진 핵펀치 하나였다.
 용효는 혹 자신이 밀리는 상황이 된다면 전황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스킬이 더 있었으면 했다.
 반드시 격투나 무술이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을 때 딱 하나의 스킬만 만들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용효가 만물 자판기 앞으로 갔다.
 어떤 스킬을 만들지 이미 생각해둔 게 있었고, 그 스킬에 필요한 수련 도구도 봐둔 게 있었다.
 덜컹덜컹!
 캡슐을 꺼내 들고 거실로 갔다. 뚜껑을 돌리자 나온 건 벽돌보다 좀 더 크고 매끈매끈한 검은 돌이었다.
 
 <검은 돌>
 어디서 주워왔는지 출처가 불분명한 돌이다.
 아주 단단하다. 수련용으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용효가 왼쪽 무릎만 꿇고 앉아 검은 돌의 왼쪽 끝부분을 왼손으로 꽈악 쥐었다.
 이어 오른손을 수도로 만들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상대의 주먹을 피하지 않고 붙잡아 일격에 팔을 부러뜨릴 수 있다면 호각의 상대라 해도 그 공격 한 방으로 승기를 자신 쪽으로 기울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두 번 세 번 내리쳐야 하는 상황이 되면 오히려 역공을, 카운터를 받을 수 있었다. 반드시 일격에 부러뜨려 버릴 수 있어야 했다. 그게 용효가 수도(手刀) 스킬을 만들려는 이유였다.
 퍽!
 용효가 수도로 검은 돌을 내리쳤다.
 검은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좋아······.”
 쉽게 부러질 것 같지 않았다.
 계속 쳤다.
 다른 수련은 모두 중단하고 용효는 손날로 검은 돌을 치는 수련만 했다. 강철 주술인형 2호와의 대련이 시작되는 반년 안에 스킬을 완성하고 싶었다.
 반년은 순식간에 흘렀다.
 “흠······.”
 아무리 초절정 무도인이라 해도 스킬을 만드는 게 쉬울 순 없었다.
 용효가 대련의 방을 들여다봤다.
 강철 주술인형 2호의 머리 위, 타이머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없었다.
 당장 대련이 가능했다.
 그러나 용효는 대련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시작했으니 끝을 본다.”
 검은 돌 앞으로 돌아간 용효는 다시 검은 돌을 왼손에 쥐고 오른 수도로 검은 돌을 내리치고 또 쳤다.
 퍽! 퍼억! 퍽!
 지루하고, 언제 끝날지 모를 수련. 그러나 너무도 막연했던 네 번째 수련 퀘스트를 통해 이미 해본 경험 아니던가.
 용효는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검은 돌을 손날로 치고 또 쳤다.
 손날의 굳은살이 점점 두꺼워져 갔다.
 굳은살이 두꺼워지자 수도에 더욱 힘이 실리며 검은 돌을 치는 소리가 점점 더 묵직하게 변해갔다.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나고, 300년도 훌쩍 지났다.
 파각!
 검은 돌에서 지금까지 들어온 타격음과 조금 다른 소리가 났다.
 용효가 검은 돌을 내려다봤다.
 ······금이었다. 금이 생겨나 있었다.
 옅은 미소를 지은 용효가 다시 손날을 들어 올려 금이 간 부위를 전력으로 내리쳤다.
 퍽! 파각! 퍽!
 검은 돌의 금이 더 커진 건 10년이 더 지나서였다.
 “끝낸다······.”
 어쩐지 손날이 뜨겁게 달궈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용효가 금들이 교차하는 부분을 수도로 내리쳤다.
 퍽!
 배트에 잘 맞은 야구공 같은 소리.
 뚝, 검은 돌이 반 토막이 나 떨어져 나왔다.
 용효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진 핵펀치는 권투가 초절정에 올랐을 때 얻은 스킬이고 괴골킥은 가라데가 초절정에 올랐을 때 얻은 스킬.
 지금 얻은 이 스킬이야말로 극진용투의 오리지널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극진용투의 정수가 담긴 스킬, 극-수도일격(手刀一擊)을 얻었습니다.
 
 설명창을 열며 용효가 2호와의 대련을 위해 대련의 방으로 갔다.
 
 
 Chapter 3
 
 
 <극-수도일격>
 수도로 내리쳐 일격에 팔이나 다리를 부러트린다.
 스킬 효과는 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뼈대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일격에 박살 낼 수 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효과가 2배가 된다.
 
 등급: 유니크
 레벨: 1
 효과: 뼈대 부위에 ×1,000의 공격력
 “역시······.”
 용효가 미소 지었다.
 수련을 하며 마음속으로 바라고 염원해온 그대로 스킬이 만들어졌다.
 TV로 얻은 권투 스킬과 가라데 스킬, 그 두 스킬이 합쳐져 만들어진 극진용투의 기술이라면 무엇이든 스킬로 만들어낼 수 있고, 어떤 특성이 담길지도 수련자의 바람과 마음으로 컨트롤할 수 있었다.
 용효가 대련실로 들어서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서브 수련 퀘스트-강철 주술인형 2호를 파괴하라>
 강철 주술인형 2호를 파괴하기 전까진 수련의 방으로 돌아갈 수 없다.
 [보상1] 체력+500
 [보상2] 천금화+1,000
 
 퀘스트창이 사라지자 강철 주술인형 2호가 눈을 떴다.
 골격의 투박함은 1호보다 덜했으나 코와 입술, 하관의 인조 피부가 뜯겨져 강철 뼈대와 이빨이 고스란히 드러나 모습은 1호보다 흉측했다.
 2호가 지면을 박차며 쏜살같은 속도로 용효에게 달려들었다.
 몇 번 공방이 오갔다.
 2호의 속도와 파워는 1호보다 배 이상 빨랐다. 사용하는 투기는 권투와 절권도였다.
 권투식으로 날아오는 펀치는 강력하고 매서웠고, 절권도의 독특하게까지 느껴지는 다양한 기술들은 2호의 공격을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파아앙!
 2호의 절권도식 옆차기를 양팔을 가슴 앞으로 모아 막은 용효의 몸이 뒤로 조금 주륵 밀렸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팔이 조금 얼얼하게 저려 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용효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붉은빛을 발하는 2호의 눈이 더욱 붉게 변했다. 살기가 진해졌고, 마치 기계의 스위치를 2단으로 올린 듯 2호의 속도와 파워가 바로 2배로 증가했다.
 2호는 권투 스텝으로 용효의 옆으로 돌며 펀치를 날렸고, 용효는 미들킥을 날렸다.
 당연히 리치가 더 긴 용효의 미들킥이 먼저 2호의 옆구리를 쳤다.
 우지끈 옆구리가 찌그러진 2호가 주먹을 다 뻗지 못하고 휘청였다.
 직후, 용효의 왼 주먹이 반원을 그리며 날아가 2호의 턱을 쳤다.
 턱 속의 부품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강철 이빨 십여 개가 허공을 비산했다.
 이어 용효의 로우킥이 오른 정강이를 찌그러트리자 2호는 결국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더 공격하지 않고 돌아선 용효는 여유 있게 흐트러진 도복을 가다듬었다.
 
 잠시 뒤······.
 2호의 복구가 끝나자 다시 대련이 시작됐다. 몸속에 기어라도 있는 것일까. 스위치를 올리듯 2호의 전투력이 점점 더 상승했다.
 물론 용효가 원하던 바였다.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대련 3시간째.
 시각이 막 8시가 됐을 때 갑자기 2호의 팔이 용효의 왼팔에 붙잡혔다.
 “극, 수도일격!”
 용효의 오른 수도가 벼락처럼 2호의 왼팔로 떨어졌다.
 팔등이 브이(V)자로 부러지며 녹색 액체가 쏟아지고 스파크 줄기가 사납게 튀었다.
 이어 코와 턱, 가슴으로 용효의 펀치 3연타가 번개처럼 퍼부어졌다.
 털썩 무릎을 꿇은 2호가 바닥에 쓰러졌다. 워낙 큰 데미지를 입은 탓인지 복구는 이루어 지지가 않았다.
 
 -체력이 500 오릅니다.
 -천금화 1,000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강철 주술인형 3호와 4호, 5호의 머리 위에 동시에 타이머 홀로그램이 떴다.
 “59초······?”
 1분 뒤에 강철 주술인형 세 기와 1대 3 대련이 시작된단 뜻일 것이다.
 어떻게 할까······.
 대련의 방이 바로 대련을 시키려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국, 용효는 대련의 방을 나가지 않았다.
 
 <서브 수련 퀘스트-1대 3 대련에서 승리하라>
 강철 주술인형 3호 4호 5호를 전부 파괴하기 전까진 수련의 방으로 돌아갈 수 없다.
 [보상1] 천금화+5,000
 [보상2] 신수 녹용(神獸鹿茸)
 
 문답 무용, 타이머 홀로그램창이 사라지자 강철 주술인형 세 기가 일제히 용효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하아······ 하아······ 하아······.”
 사납게 숨을 몰아쉬는 용효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극진용투 도복의 곳곳에 붉은 피가 얼룩져 있었다.
 복구의 축복이 금방 도복을 물들인 핏자국을 없앴으나 몸 곳곳에 난 상처들은 계속 피를 흘렸고 흰 도복은 금세 또 피로 물들었다.
 강철 주술인형 세 기가 앞과 좌우에서 살기를 뿌리며 달려들었다.
 용효는 3호의 펀치를 손날로 쳐 옆으로 흘리고 왼쪽에서 날아온 하이킥을 왼 주먹의 가드로 막아냈다. 이어 오른쪽에서 달려든 5호의 가슴으로 옆차기를 날렸다.
 콰앙!
 5호가 뒤로 날아가 바닥을 굴렀고, 용효는 뒷걸음질 치며 3호와 4호의 공격을 흘리고 막으며 반격의 틈을 노렸다.
 그런데 그때, 4호의 변칙적인 절권도 펀치에 옆구리를 맞은 용효의 상체가 옆으로 푹 꺾였고, 그 즉시 3호의 니킥이 얼굴로 날아와 코뼈를 짓뭉갰다.
 그로기에 빠진 듯 휘청이며 용효가 손으로 벽을 짚었다. 기다렸다는 듯 절권도식 옆차기가 용효의 옆구리로 날아왔다.
 콰앙!
 내장이 전부 터져버린 게 아닌가 싶은 살인적인 충격이 옆구리를 관통하고 전신을 뒤흔들었다.
 거의 20m를 날아간 용효는 언젠가 자신이 터뜨린 샌드백처럼 바닥을 튀며 요란하게 바닥을 굴렀다.
 “쿨럭······!”
 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용효는 구토를 하듯 피를 토해냈다.
 그러나 도복 소매가 턱과 입술의 피를 닦아내자, 웃고 있는 입이 드러났다.
 도복과 검은띠를 벗어버리면 상황이 훨씬 나아질 텐데 용효는 검은띠조차 풀지 않았다.
 코뼈를 잡아 억지로 세우고 콧속의 핏물을 팽 풀었다.
 강철 주술인형 세 기가 다시 움직였다. 놓치지 않고 세 기의 강철 주술인형들을 한 기, 한 기 바라봤다.
 어떤 공격을 어떻게 해올지, 용효는 이제 예상이 됐다.
 킥을 날린 5호의 다리를 붙잡은 용효가 그 다리로 수도일격 스킬을 건 수도를 내리쳤다. 파각! 5호의 다리가 격파 시범용 방망이처럼 간단히 부러져 나갔다.
 “진, 핵펀치!”
 3호가 날린 연타 펀치를 권투의 위빙 같은 동작으로 피하며 3호의 관자놀이로 진 핵펀치를 날렸다.
 콰쾅!
 3호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파편과 부품들이 케잌 폭죽을 터트린 것처럼 쏟아져 나와 흩어졌다.
 그러나 그때, 4호의 로우킥이 용효의 정강이를 쳐 중심을 무너트렸고, 이어 어퍼컷을 날려 용효의 턱을 반쯤 박살 냈다.
 용효가 휘청이자 4호의 펀치 세례가 퍼부어졌다. 그 사이 5호가 복구를 끝내고 일어나 4호에 합세했다.
 정신이 어느 정도 들자 용효는 5호의 정강이를 로우킥으로 쳐 휘청이게 하고, 극 수도일격으로 4호의 목을 부러뜨려 수세에서 빠져나갔다.
 아슬아슬한 공방이 계속 이어졌다.
 승패가 난 건 그로부터 3시간이 더 지났을 때였다.
 
 * * *
 
 -천금화 5,000을 얻었습니다.
 -신수 녹용을 얻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왼팔뿐이었다. 용효는 왼팔만으로 포복하듯 움직여 하나같이 머리가 박살 나 있는 강철 주술인형들을 타 넘어 문으로 기어갔다.
 “······푸흐······ 푸흐으으······.”
 턱이 박살 나고 이가 거의 다 부러지고 뽑혀 숨을 쉬는 것뿐인데도 바람 빠지는 소리가 계속 났다.
 그야말로 처참한 몰골, 그러나 용효는 웃고 있었다.
 결국, 승리했고, 보상으로 천금화 5,000과 영약을 얻었고,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확실히 알게 됐다.
 정말 강했다.
 그러나 더 강해져야 한다.
 더 강해질 수 있다.
 
 -지금부턴 대련의 방에 3배의 중력이 작용합니다.
 
 간신히 수련의 방으로 돌아온 용효는 잠시 숨을 돌렸다가 다시 거실로 기었다.
 거실 중앙에 먼치킨, 그것도 2개가 놓여 있었다.
 어제저녁으로 나온 먼치킨과 오늘 아침에 나온 먼치킨이었다.
 “으적으적······.”
 용효는 박살 난 턱과 4개밖에 안 남은 어금니로 먼치킨을 필사적으로 씹었다.
 그러나 제대로 씹힐 리 만무, 거의 그냥 삼키는 수준이었다.
 거의 1시간에 걸쳐 한 박스를 다 먹자 상처들이 치료되기 시작했다. 망가진 내장들도 마법처럼 치료됐고 부서서고 부러진 뼈가 붙고 이도 새로 났다.
 
 -생명력이 2,000 오릅니다.
 -근력이 1,500 오릅니다.
 -체력이 2,000 오릅니다.
 -민첩이 1,500 오릅니다.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나 얻을 수 있을 스탯 상승!
 어떻게 된 거지?
 그때······.
 “······어?”
 뱃속에서 느껴본 적 없는 뭔가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피부나 장기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아니었다.
 이걸······ 단전이라 하는 걸까······?
 배꼽 아래, 뭔가 따뜻하면서 간질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기(氣)를 느꼈습니다.
 
 * * *
 
 수련의 방에서 수련하는 동안 밖의 시간이 멈춰 있는 건 아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5천 년은 넘었을 것이다. 1만 년까진 아닐 것이다. 7~8천 년 정도? 그럼 밖은 시간은 5~6개월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반년이라······.”
 용효가 TV를 켰다.
 채널을 뉴스로 돌렸다.
 이전, 보라색 연기만을 뿜어내던 싱크홀들은 지금도 연기만 뿜고 있진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 있든 용효는 불안과 걱정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싸워야 할 적을 알고 싶었고, 알아야 했다.
 
 -다음 뉴스입니다.
 뉴스 앵커의 짧은 보도 설명에 이어 바뀐 화면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이었다.
 “······?”
 사람 같은 형상이었으나 사람이라 하기엔 키가 너무 컸다.
 3m도 넘을 것 같았고 몸의 두께는 용효보다도 두꺼웠다.
 이마엔 일본어 가타가나의 노(ノ)자 같은 뿔이 솟아 있었다.
 그때, 뿔 거한의 몸에서 불꽃이 번쩍번쩍 튀었다. 총알이었다. 사방에서 총알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피는 튀지 않았다.
 단 한 발의 총알도 뿔 거한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쾅!
 굉음과 함께 잿빛 연기가 태풍처럼 화면으로 밀려왔다. 군인들이 뿔 거한을 향해 박격포나 전차포를 쏜 듯했다.
 편집 영상인지 갑자기 거의 연기가 걷힌 도로가 나타났다.
 군인들의 시체가 도살돼 부위별로 잘린 고깃덩어리처럼 흩어져 있었고, 불길에 휩싸여 있는 전차도 보였다.
 화면이 클로즈업되며 뿔 거한의 모습이 다시 잡혔다. 다리는 마치 소나 염소 같은 모양이었고 상체와 머리는 뿔을 빼면 인간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손에 무기는 들고 있지 않았지만, 오른손에 죽은 군인의 시체를 들고 있었다.
 그 시체를 입으로 가져갔다.
 상어 같은 이빨이 빼곡히 들어찬 입으로 과일을 베어먹듯 시체를 씹더니 다리만 남자 옆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돌연 등에서 곤충 같은 날개를 촥 펼쳐 무당벌레가 날아오르듯 날아올랐다.
 
 -도망가! 이쪽으로 온다!
 
 화면이 하늘로 바닥으로 홱홱 돌아갔고, 계단을 내려가는 화면에 이어 영상은 끝이 났다.
 용효가 채널을 다른 뉴스로 돌렸다. 그 뉴스에서 나온 건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고릴라를 연상시키는 몸에 머리는 늑대였고 이마엔 뿔이 솟아 있었다.
 그 괴물과 싸우고 있는 건 군인들이 아니었다. 민간인들 같았다. 그런데 인간은 절대 낼 수 없는 스피드와 괴력을 냈다.
 “수련자들······.”
 틀림없다.
 수련의 방에서 수련하고 나간 수련자들이다······!
 -크허어엉!
 괴물의 펀치에 수련자의 몸이 몸속에서 폭탄이 터진 듯 산산조각으로 터져나갔다. 또 한 명, 또 한 명······.
 다리를 붙잡힌 수련자는 늑대 머리의 입속으로 들어가 으적으적 씹혀 간단히 고깃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수련자들이 또 나타났다.
 
 -TV 시청 시간이 끝났습니다.
 
 용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 불안과 걱정의 감정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밖으로 나간 수련자들이 있다면 세계는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걸 한다.”
 그건 수련이었다.
 더 강해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기를 더 잘 느낄 수 있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해야 기를 의지대로 다룰 수 있을 것인가.
 기와 관련된 책들을 사 읽었지만, 뜬구름을 잡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이해하기도 힘든 다른 기공서를 흉내 내지 않겠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내 길은 내가 만든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무도의 경지를 더 올리고, 육체를 더 진화시키고, 죽음을 넘나드는 대련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련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로 얻은 영약으로 요리를 해 먹고, 요리할 수 없는 영약은 탕약으로 탕제 해 먹으면 된다.
 기를 느끼게 해준 수련을 계속하면 되는 것이다.
 용효가 만물 자판기에서 흑철각 허수아비와 ‘천(天)의 탕제학(湯劑學)’이란 책을 샀다. 가격은 두 개를 합쳐 1,200골드.
 흑철각 허수아비는 강철 주술인형들과의 대련에서 자신을 몇 번이나 위기에 빠트린 절권도를 익히기 위함이었고, 천의 탕제학은 탕제술 스킬을 익혀 신수 녹용으로 탕약을 만들어 먹기 위해서였다.
 그날부터 용효는 절권도 수련과 탕제학 공부를 시작했다.
 절권도와 달리 하루 2시간의 시간만을 투자했지만 먼저 얻은 스킬은 탕제술이었다.
 
 -초급 탕제술 스킬을 얻었습니다.
 
 * * *
 
 -스킬, 절권킥을 얻었습니다.
 
 탕제술은 아직 절정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으나, 초절정 무도인답게 절권도는 저력을 십분 발휘해 권투와 가라데 수련 때보다 더 빠르게 초절정의 경지를 이뤄냈다.
 
 <절권킥>
 준비 동작이 길고 움직임이 커 상대의 몸에 명중시키기 어려우나 맞춘다면 일격필살의 공격이 될 것이다.
 등급: 레어
 레벨: 1
 효과: 어느 부위든 킥력의 ×1,000
 
 “음······.”
 절권도가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얻고자 한 스킬까지 얻었음에도 용효는 기뻐하는 기색이 별로 없었다.
 무술을 계속 합친다 해서 무도의 경지가 계속 오르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조잡해지며 균형이 깨질 위험도 있었다.
 그럼에도 용효가 절권도를 극진용투에 합치려 하는 것은 기 수련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을 해서였다.
 그러나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절권도가 초절정 경지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단전을 맴도는 기를 느끼는 정도에 불과했다.
 “해법은 역시 탕약에 있는 건가······.”
 기를 느끼게 해줬던 대련, 그 대련 퀘스트의 보상으로 신수 녹용을 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용효는 탕제술 수련에 더 시간을 투자했다.
 만물 자판기에서 100골드 200골드 500골드가 넘는 고가의 한약재와 영약도 사 탕약 수련에 사용했다.
 수준 높은 탕약들이 완성됐고 정체됐던 탕제술의 경지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스킬, 지극정성을 얻었습니다.
 
 탕제술이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음을 알리는 알림창이었다.
 “설명창.”
 
 <지극정성>
 그 어떤 귀한 한약재보다 영험한 재료는 탕제사의 정성이다.
 등급: 유니크(패시브)
 레벨: 1
 효과: 탕약 효과 ×100
 
 용효가 테디베어 옆에 놓아둔 신수 녹용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약탕기에 73가지의 최상급 한약재들과 1/3등분을 한 신수 녹용을 넣고 뭉긋한 불로 천천히 달였다.
 
 -지극정성이 발동됩니다.
 
 초절정 경지에 오르는 동안 갈고 닦아온 노하우를 총동원해 용효는 나흘에 걸쳐 정성을 다해 신수 녹용을 우렸다.
 “이 정도면······.”
 초절정 탕제인인 용효, 향만으로도 탕약의 상태를 가늠해낼 수 있었다. 이 이상 달이는 건 오히려 탕약을 탁하게 만들어 효과를 반감시키고 말 것이다.
 불을 껐다.
 완성이었다.
 이름하여······.
 “칠십삼약신수 녹용탕(七十三藥神獸鹿茸湯).”
 용효가 불순물을 탕약 제조용 거름을 써 10번에 걸쳐 걸러내고 칠십삼약신수 녹용탕을 대접에 조심히 부었다.
 “흠······.”
 ······정말 많이 쓸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대수인가, 분명 기를 더 잘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용효가 대접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단전이 전력 질주를 하고 난 심장처럼 널뛰었다.
 단전이 더욱 선명히 느껴지며, 심장이 칠십삼약신수 녹용탕의 기운을 받아들여 만들어낸 양기가 소용돌이치며 단전으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도 느껴져 왔다.
 그리고 그때······.
 
 -단전에 기심환(氣深環)이 생겨납니다.
 
 모든 감각을 놓치지 않고 느끼며 용효는 대련의 방으로 들어갔다.
 해신봉황천년삼계탕을 먹었을 때처럼 몸속에서 불같은 기운이 용솟음쳤고, 기심환이 그 기운을 계속 빨아들이는데도 몸속엔 계속 기가 차올라 장기를 녹이거나 피부를 찢고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몸을 움직여야 했다.
 강철 주술인형 11호가 눈에서 살기를 뿌리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대련은 1시간도 이어지지 못했다.
 힘을 주체못한 용효가 공격을 마구 퍼부었기 때문이었다.
 
 -전 신체 스탯이 2,000 오릅니다.
 -천금화 5,000을 얻었습니다.
 
 “······이런 거였군.”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스텟 상승, 그로 인한 몸속의 변화를 용효는 지금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기와 흡사한 기운이 가슴 속에서 바람개비처럼 천천히 회전하며 혈관과 근섬유들을 타고 퍼져 나갔다.
 “가만······.”
 이 기운을 단전의 기심환으로 빨아들일 순 없을까?
 전신으로 퍼져 나가며 근육과 혈관으로 흡수되는 스텟의 기운을 용효가 단전으로 끌어내리고 올려보냈다.
 다 합쳐 8,000포인트의 스텟!
 이 힘을 단전에 흡수시킬 수 있다면······!
 
 기들은 혈관과 근섬유를 따라 흘렀다.
 기를 생생히 느낄 수 있게 되자 용효는 어렵지 않게 스텟의 기운, 원기를 단전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기심환의 기도(氣道)가 촘촘해집니다.
 -기도의 깊이가 깊어집니다.
 
 기도의 수가 늘고 깊어질수록 기심환으로 들어온 기를 빠르게, 또 더 많이 쌓을 수 있고, 또 기를 기심환 밖으로 빠르게 내보낼 수도 있었다.
 “그렇군······.”
 용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기심환이 깊어지고, 기도가 발달하면 기의 양만이 아닌 기의 질, 공력(功力) 증가로도 이어질 것이었다.
 또 하나 알게 된 게 있었다.
 “한 번에, 하루에 늘릴 수 있는 기심환의 깊이와 기도의 수에 한계가 있군.”
 더 기심환이 깊어지지 않고 기도도 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기를 흘려 넣자 기심환에 균열이 일어났다.
 용효가 단전으로 끌어모으던 원기를 놓아버리자 억지로 잡아당겨 놓은 고무줄처럼 원기들은 빠르게 전신으로 퍼져 나가 몸속으로 흡수되어갔다.
 
 -생명력이 1,020 오릅니다.
 -체력이 937 오릅니다.
 -근력이 922 오릅니다.
 -민첩이 911 오릅니다.
 
 그 알림창이 뜨자 몸속에서 원기의 기운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양기는 아직 몸속에 가득했다.
 기심환이 더 이상 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됐음에도 양기들은 힘차게 기심환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용효는 몸속의 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 상태, 기가 기심환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또한, 용효는 양기들의 길을 돌리는 데만 그치지 않고 기를 이런 식으로 당기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느끼며 기를 수련했다.
 용효에게 붙들린 양기들은 실에 묶인 연처럼 용효가 잡아끄는 대로 끌려다녔고, 붙잡히지 않은 양기들은 몸속을 조금 떠돌다 육체로 흡수되어 스텟을 상승시켰다.
 
 -전 신체 스탯이 1,200 오릅니다
 
 이미 대부분의 양기가 기심환에 흡수됐음에도 상당한 상승 폭이었다.
 그렇지······.
 봉황천년삼에 버금가는 영약을 초절정 탕제인인 자신이 초절정 탕제 스킬인 지극정성까지 써 탕제 했으니.
 그즈음, 스위치를 강(强)으로 올린 기계처럼 맹렬히 회전하던 기심환이 차츰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용효가 기대감을 담은 얼굴로 허공을 바라봤다.
 
 -10갑자의 공력을 얻었습니다.
 
 인간을 기준으로 삼은 거지만, 600년을 수련해야 쌓을 수 있는 내공이었다. 적은 양이 결코 아니었다. 거기에 신체 스텟도 2,000가량이나 올렸다.
 오늘 하루 정말 대단한 성과를 이룬 용효였다.
 “내 방식대로······.”
 잠시, 만물 자판기에서 파는 기공서와 내공서가 떠올랐으나 용효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지금이라면 기를 다루지 못했던 때와는 달리 뜬구름 잡는 소리로만 들리던 내공서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만 골드가 넘는 최상급 무공서까진 힘들어도 용효는 이젠 중급 무공서 정돈 살 수 있는 천금화도 있었다.
 그러나 용효는 최상급 무공서를 살 수 있는 천금화가 모여도 무공서를 사는 데 쓰지 않겠다고 지금 확실히 마음을 정했다.
 용효는 자신이 만들어온 길을 계속 개척해가기로 했다.
 스스로 길을 찾고 그 길을 완성해내는 수련법이야말로 진정 강해질 수 있는 수련법이라 용효는 확신했다.
 “수련의 방에선 시행착오 또한 좋은 수련이야······.”
 흑철각 허수아비 앞으로 간 용효가 극진용투와 절권도식의 펀치와 킥을 번갈아 가며 허수아비를 쳤다.
 동시에 용효는 단전의 기심환 속에서 기를 얇게 뽑아내 한 줄기는 기도를 따라 흐르게 하고, 한 줄기는 기심환 밖으로 꺼내 혈관과 근섬유들을 타고 흐르게 했다.
 “후우~”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용효는 숨을 거칠게 쉬며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어느 내공서에도 이런 식의 수련법은 없었다.
 또 이런 식으로 내공을 수련한 수련자도 없었다.
 다들 수련 퀘스트를 통해 모은 천금화로 기공서나 내공서를 사 내공을 배우고 수련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용효에게 정좌를 하고 앉아서 하는 내공 수련은 너무나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외공과 내공의 수련을 동시에 하는 이 수련법이 불가능했다면 금방 멈췄겠지만, 쉽지 않고 외공 수련 쪽도 내공 수련 쪽도 배로 힘들어졌으나 불가능하진 않았다.
 지금껏 그래왔든 용효의 몸은 빠르게 그 수련법에 적응해 나갔다.
 
 * * *
 
 50갑자를 만들려면 2000년 정도의 수련 기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만물 자판기에서 영약을 사 보양식과 보약을 꾸준히 만들어 먹는다면 1000년까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천금화를 내공을 쌓는 데만 올인해서는 안 돼.”
 초절정 무도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용효가 되고 싶은 건 무도 제일인이 아닌 절대 강자였다.
 그랬기에 용효는 마법과 정령술, 사역마에도 관심이 있었다.
 계속 수련 퀘스트의 보상으로 천금화가 나와줄까? 수련 퀘스트는 계속 주어지는 걸까?
 알 수 없다.
 수련에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천금화를 아끼고 모아야 했다.
 “그래도 극진용투와 절권도를 합치는 데 성공한다면······.”
 그럼 50갑자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500년 정도는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용효가 50갑자에 집착하는 이유는 50갑자의 내공이 강철 주술인형 12호를 기동시키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었다.
 용효는 극진용투와 절권도를 합치는 수련에 더 시간을 투자했다.
 시간은 흘러갔다.
 500년은 느리게 흘러갔고, 이후 500년은 쏜살같이 흘렀다.
 그리고 300여 년이 더 지났을 때였다.
 
 -극진용투도(極?龍鬪道)가 완성되었습니다!
 -전 신체 스탯이 1,500 오릅니다.
 
 그 즉시 용효는 6,000포인트의 원기를 단전의 기심원으로 빨아들였다.
 “이번엔······!”
 단 1포인트도 놓치지 않고 전부 기심원으로 빨아들이리라.
 이젠 자신이 있었다.
 
 -도복을 선물했던 신이 기꺼이 극진용투 도복에 도(道)자를 새겨줍니다.
 -극진용투 도복에 새겨진 극진용투 중앙에 도(道)가 추가됩니다.
 -극진용투 도복이 극진용투도(極?龍鬪道) 도복이 됩니다.
 -도복의 내구력이 20,000,000 상승합니다.
 -도복의 방어력이 20,000,000 상승합니다.
 -도복의 항마력이 20,000,000 상승합니다.
 -세 축복이 +1 강화됩니다.
 
 그때, 기심환이 6,000포인트 양의 원기 흡수를 끝냈다. 용효의 내공이 단숨에 48갑자까지 상승했다.
 이제 2갑자만 더 올리면 강철 주술인형 12호와 대련을 할 수 있었다.
 분명 강철 주술인형 12호는 기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떤 대련이 될까.
 용효는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아직도 얼마든지 더 강해질 수 있어.”
 오히려 이제부터란 생각이 들었다.
 용비늘 샌드백 앞에 선 용효가 극진용투도의 펀치와 킥으로 샌드백을 치며, 동시에 몸속에선 기를 돌렸다.
 
 * * *
 
 콰앙!
 강철 주술인형 12호의 펀치에 왼쪽 가슴을 맞은 용효의 몸이 뒤로 날아가 방 중앙의 철 기둥에 부딪쳐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용효는 늘어지지 않고 구르는 몸의 속도를 이용해 손끝과 발끝으로 지면을 차 화살이 쏘아져 나가듯 옆으로 튀어 올랐다.
 그 직후, 쾅!
 용효가 있었던 자리가 움푹 패며 쩍쩍 갈라졌다.
 12호가 대련의 방의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움직임으로 포물선으로 그리며 뚝 떨어져 주먹을 꽂은 것이었다.
 몸을 꼿꼿이 세운 12호가 제자리에서 돌며 자신의 주위를 극진용투도 자세로 돌고 있는 용효를 눈으로 좇았다.
 그 모습은 투박한 로봇이나 조악한 인형의 모습이 아니었다.
 놀랍도록 사람 같은 외형, 움직임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인간과도 같은 몸이, 전신에서 투명한 붉은 인광(燐光)을 발하고 있었다.
 “이제 알겠군······.”
 용효는 기가 몸속을 돌도록 할 수만 있을 뿐 밖으로 꺼내, 흩어지지 않고 몸을 감싸듯 하며 흐르게 하진 못했다.
 기가 혈관을 타고 흐르게 하고, 근섬유들을 휘감게 해 육체가 더 강한 체력과 근력을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12호와 대련을 한 지 37시간이 지난 지금, 용효는 12호가 어떻게 뿌옇게 번지는 기를 몸에 두른 채 기를 공격에 직접적으로 사용하는지 알 것 같았다.
 훙!
 용효의 몸에도 인광, 옅은 푸른빛이 맺혔다.
 용효의 몸을 장작으로 삼기라도 한듯 푸른 인광은 점점 짙어졌고, 이윽고 마치 수증기처럼 변한 푸른 인광은 용효의 전신에서 줄기줄기 피어올랐다.
 동시에 용효의 눈앞에 못 보던 알림창이 떠올랐다.
 
 -초인2-기(氣) 상태가 됩니다.
 
 12호의 기법(氣法)은 기심환 속에서 기와 기를 충돌시켜 터트리면 발생하는 에너지, 기파(氣坡)로 혈관과 근섬유들에 기를 전달하고 몸 밖으로까지 퍼트리는 식이었다.
 “한 선 한 선 선을 긋듯 퍼트리는 게 아니라······ 수채화처럼 큼직큼직 번져 나가도록.”
 그렇게 하면 소모되는 기의 양이 더 많고 빨라지지만 대신 몸 안의 모든 혈관과 근섬유들로 기를 채워 넣을 수 있고 기를 공격에 직접적으로 쓸 수 있었다.
 인광을 줄기줄기 흩뿌리며 2배 이상 늘어난 스피드로 용효가 12호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콰앙!
 팔을 교차시켜 용효의 권투식 펀치를 막았으나 12호는 밭고랑을 갈듯 바닥을 부숴놓으며 뒤로 밀려났다.
 12호가 자세를 가다듬을 틈을 주지 않고 용효는 푸른 인광을 더 짙고 길게 흩날리며 12호를 향해 쇄도했다.
 이어진 용효의 공격에 12호는 양주먹을 다 가드로 만들어 완전 방어 자세를 취했다.
 공격들을 막아냈음에도 한 공격 한 공격 전신을 뒤흔드는 충격에 12호는 결국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기다렸다는 듯 용효의 절권킥이 12호의 복부를 강타했다.
 쾅!
 부등호(>) 모양으로 날아간 12호가 벽에 크레이터를 만들며 수많은 파편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몸을 두르고 있던 인광은 사라졌고 척추가 부러졌는지 12호는 바닥을 기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강철 주술인형들은 가슴의 숫자가 높을수록 복구 성능도 높아진다.
 파손 부위를 복구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용효가 도복을 가다듬고 기심환 속을 관조했다.
 “······.”
 기 상태가 된 지 2분도 안 지났는데 무려 1/5의 기가 소실돼 있었다.
 그러나, 기심환이 마치 발전소처럼 기들을 기도를 따라 돌게 하며 자체적으로 기를 생성해 빈 공간을 채우는 게 느껴졌다.
 “······기를 방출시켜도 내공의 영구적 소실은 없단 거군.”
 복구를 끝낸 12호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시 대련이 이어졌다.
 승패를 가른 건 용효의 중심을 흔드는 절권도식 발기술에 이은 미들킥이었다.
 다리가 쭉 벌어지며 낮아진 12호의 상체로 용효의 미들킥이 꽂혔고 쇄골을 부순 킥은 목뼈까지 부러트려 놨다.
 이어 용효는 쓰러진 12호의 이마로 격파를 하듯 주먹을 꽂아 넣어 확실히 끝장을 냈다.
 
 -전 신체 스탯이 2,000 오릅니다.
 -세계수의 은사과 한 알을 얻었습니다.
 -녹마보석(綠魔寶石)을 얻었습니다.
 
 용효는 8,000포인트의 절반인 4,000포인트의 원기만 기심환으로 흡수해 내공으로 쌓고, 2,000포인트는 몸에 흡수시켰다.
 기를 느끼게 되고, 기심환을 단전에 만들어 기를 다룰 수 있게 된 건 두 번의 육체 진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내공의 힘에 취해 육체단련과 외공 수련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었다.
 
 -전 신체 스탯이 1,000 오릅니다.
 -내공이 55갑자가 됩니다.
 
 그때······.
 꼬르르륵!
 거의 이틀을 12호와 싸우며 내리 다섯 끼를 걸렀다.
 미치도록 배가 고팠다.
 그런데, 대련의 방을 나가려다 말고 용효가 멈춰 섰다.
 벽을 봤다.
 지금이라면, 기(氣) 상태가 되면 깨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신에 푸른 인광을 두른 용효가 진 핵펀치 스킬까지 써 벽을 쳤다.
 석문이 크레이터 모양으로 움푹 패며 파편들이 비산했다.
 이어 절권킥을 날려 크레이터를 더 키우고 용효는 극진용투도의 공격 자세까지 취했다.
 
 -경고! 문이 50% 이상의 손상을 입을 시 강철 주술인형들이 일제히 기동함!
 
 “······!”
 ······용효가 얌전해졌다.
 아직 대련의 방에는 여섯 기의 강철 주술인형들이 남아 있었다.
 특히, 기를 다룰 수 있게 된 용효는 18호가 자신을 능가하는 내공을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슨 방이 나오려나······.”
 문을 못 연단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용효는 결국엔 모든 강철 주술인형들과의 대련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몸을 돌린 용효가 수련의 방으로 돌아갔다. 거실에 다섯 개의 먼치킨 박스가 놓여 있었다. 전부 먹어치울 자신이 있었다.
 빨리 먼치킨을 먹고 수련을 하고 싶었다.
 
 -상처가 치유됩니다.
 -피로가 회복됩니다.
 -근력이 102 오릅니다.
 -체력이 92 오릅니다.
 -민첩이 77 오릅니다.
 -생명력이 110 오릅니다.
 -투지가 120 오릅니다.
 
 * * *
 
 “녹마보석이라······.”
 폭풍 먼치킨 식사를 끝낸 뒤, 용효는 만물 자판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녹마보석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녹마보석>
 마나를 품고 있다.
 누가 만든 물건인지 출처가 불분명하다.
 등급: 레어
 내구력: 300/300
 마력량: 2,000
 
 “흠······.”
 아직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용효로서는 마법과 관련된 물건이라는 것 외엔 어디에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내공은 물론이고 육체 진화와 외공도 성장 가능성이 남은 상황, 아직은 마법에 손을 댈 때가 아니었다.
 뭘까 더 고심하지 않고 녹마보석을 테디베어의 품속에 넣은 용효는 손에 든 은사과를 어떻게 할까 하다 그냥 베어 먹었다.
 요리 재료로 사용할까도 생각했으나 용효가 생각하는 사과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그냥 껍질째 베어 먹는 것이었다.
 치킨을 다섯 박스나 먹었겠다 달콤하고 상큼한 과즙이 듬뿍 배어 나오자 용효는 은사과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잠시 뒤, 심장이 빠르게 뛰며 막대한 양의 기운을 만들어냈다.
 용효는 그 기운의 절반은 기심환으로 흡수하고 절반은 몸으로 흡수시켰다.
 
 -전 신체 스탯이 1,200 오릅니다.
 -60갑자가 됩니다.
 
 그 직후였다.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천금화 10,000을 얻었습니다.
 -보상으로 초먼닭을 얻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 신체 스탯이 이제 50,000도 넘었군······.”
 
 -초인3의 경지에 들어섭니다.
 
 기심환 속의 기들이 기도를 따라 빠르게 회전했고, 동시에 전신의 모공들이 활짝 열렸다.
 속도를 주체못하고 서로 충돌하는 기들이 생겨났다.
 푸른 인광이 너울대며 용효의 전신을 휘감자 모공에서 뿜어져 나온 잿빛 수증기들이 인광을 따라 소용돌이쳤다.
 용효가 또 한 번 육체 진화를 시작했다.
 
 * * *
 
 이전 진화 때와 달리 통증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신체의 변화는 이전 진화 때보다 컸다.
 도복이 꽉 낄 정도로 컸던 근육이 반으로 줄었고, 흰머리 한 가닥 없던 검은 머리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몸을 기 상태로 만들자 생겨난 인광이 머리카락과 비슷한 회색빛이었다.
 단지 인광의 색만 바뀐 건 아니었다.
 내공이 늘어난 건 아니었다.
 몸에 둘리는 기들이 더 사나움을 품게 됐다 해야 할까.
 마치 감춰져 있던 날카로운 손톱이 드러난 듯했다.
 “근데······.”
 용효가 수련 퀘스트의 보상으로 받은 초먼닭을 내려다봤다.
 “왜 손질한 생닭이 아닌 산 닭을······?”
 붉은 깃털이 몸을 덮고 있지만 우람한 덩치만 봐도 전신이 두꺼운 근육들로 둘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리도 초식 동물이 아닌 맹금처럼 길고 날카로웠다.
 그러나 닭인 이상 요리할 수 있도록 손질하는 것쯤이야 초절정 요리인인 용효에겐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널 먹겠다.”
 자신을 바로 앞에 두고도 겁먹은 기색 하나 없이 꼿꼿이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 건방지게 느껴져 겁을 줄 요량으로 던진 말이었다.
 그러나 초먼닭은 더 당당한 태도로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었다.
 ‘이 녀석이······.’
 닭을, 종의 한계를 초월하고 먼닭까지도 초월한 데서 나오는 기백일까.
 그냥 한낱 짐승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욱 봉황천년삼이나 신수 녹용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 이상의 영약일 터였다.
 먹는다······.
 바로 요리하기로 했다.
 발로 머리를 쳐 기절시킬 생각으로 용효가 한 걸음을 내디디며 초먼닭의 머리로 발을 휘둘렀다. 그런데······.
 슬쩍, 초먼닭이 고개만 뒤로 빼 용효의 로우킥을 피해냈다.
 ‘이 녀석이······!’
 몸이 터져버리면 안 되기에 힘을 거의 빼고 찼다지만 초월닭이라 해도 닭은 닭, 닭 주제에 초절정 무도인의 킥을 피해내다니······!
 영물(靈物)이로군······.
 “······널 먹지 않겠다.”
 그러나 초먼닭은 여전히 먹을 테면 먹고 말 테며 마라는 당당하고 초연한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용효도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널 길들여주마.”
 정말 닭에서 먼닭으로 먼닭에서 초먼닭으로 진화했다면 그 이상의 진화도 가능할 것이다. 초먼불닭이라던가······.
 만물 자판기에서 정령과 드래곤을 사 사역마로 길들일 생각을 하고 있던 만큼 그 전까지 좋은 수련이 될 것이다.
 
 -교감 스텟이 개방됩니다.
 -펫창이 개방됩니다.
 
 
 Chapter 4
 
 
 <수련 퀘스트-육체를 더 진화시켜라>
 초인3의 한계를 넘어 육체를 더 진화시켜라.
 이뤄낸다면, 수련의 방 역사상 최초의 업적이 될 것이며, 모든 신이 용효 당신을 주목할 것이다.
 [보상1] 천금화+10,000
 [보상2] 만년삼(萬年蔘)
 [보상3] 정령과(精靈果)
 
 불가능하다, 무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용효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애초에 용효는 육체 진화 퀘스트가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초인3에 만족해 진화를 그칠 생각은 없었다.
 보상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용효는 의욕이 마구 샘솟았다.
 특히······.
 정령과는 분명 지금까지 먹은 영약들과는 다른 효과가 더 있을 것이었다.
 “펫창.”
 용효의 눈앞에 정사각형 세 개를 나란히 붙인 홀로그램창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뿐, 글자 하나 수치 하나 없이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너······ 내 펫이 돼라.”
 마음속으로 초먼닭이 펫창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했으나 펫창도 초먼닭도 전혀 미동이 없었다.
 그렇다면 교감 스텟을 보다 더 올려야 되거나, 스킬을 얻어 테이밍에 성공해야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일 것이다.
 “상태창.”
 일단 용효는 교감 스텟의 수치를 알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김용효
 직업: 수련생
 특성: 초인3
 생명력: 50,237 체력: 50,179
 근력: 52,582 민첩: 50,012
 투지: 32,246 인내: 33,113
 교감: 3 내공: 60갑자
 용효는 개를 좋아했다. 고양이도 좋아했다. 심지어 거리의 닭둘기도 귀엽게 느끼기도 했다. 그랬기에 교감 스텟이 10은 되겠지 했는데······.
 “내 교감이 겨우 3이라니······.”
 그러나 용효는 금방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일단······ 교감 스텟을 올린다······.”
 지금껏 그래왔듯 할 수 있는 것부터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나가기로 했다.
 교감 스텟을 계속 올리다 보면 자연스레 펫을 길들일 수 있는 테이밍 스킬을 얻거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관련도 없는데 교감 스텟과 펫창이 함께 개방됐을 리는 없으니.
 초먼닭이 자신을 따르게 하려면 교감 스텟은 오를 테고, 자신을 따르게만 만들어도 어쩌면 교감 스텟의 수치와 상관없이 테이밍 스킬을 얻게 될 수도 있었다.
 “배고프냐?”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인지 초먼닭이 용효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머리를 저었다.
 그러나 용효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먹이를 주마.”
 먹이를 만든 경험은 없지만, 초절정 요리 스킬인 챔기름 한 방울이면 처음 요리한 닭 모이라 해도 맛있게 조리해낼 자신이 있었다.
 “······채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린 채소볶음이 좋겠군.”
 당근과 브로콜리를 쓰기로 했다.
 용효가 싫어해 특히 많이 남은 채소들······.
 그러나 싫어하는 재료라 해서 초절정 요리인인 용효에게 대충 적당히 만드는 요리란 있을 수 없었다.
 조리가 끝나자 용효는 챔기름 한 방울을 톡 떨어트려 화룡점정을 찍었다.
 
 -점수는 92점!
 
 “뜨거울 때 먹어라.”
 채소볶음의 향에 홀린 듯 초먼닭이 슬쩍 목을 낮췄다.
 냄새만 맡아볼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결국 접시에 부리를 박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후후······.”
 자신이 만든 요리를 걸신들린 듯 먹는 모습에 용효는 교감 스텟도 테이밍 스킬도 잠시 잊고 뿌듯함과 흐뭇함을 느꼈다.
 
 -교감이 10 오릅니다.
 
 역시 오른다!
 그날 저녁, 수련을 끝낸 용효는 TV 앞에 앉아 ‘동물대농장’을 봤다.
 그 외에도 용효는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교감이 1 오릅니다.
 -교감이 4 오릅니다.
 -교감이 2 오릅니다.
 
 교감 스텟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 * *
 
 -교감 스탯이 3000을 넘었습니다.
 -스킬, 초급 테이밍을 얻었습니다.
 
 용효의 눈앞에 스킬 획득 알림창이 뜬 건 교감 스킬이 개방되고 세 달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초먼닭에게 매일 손수 요리해 먹인 먹이 덕분이었다.
 초먼닭이 먹이를 먹고 나면 교감 스텟은 5~8포인트, 많게는 15포인트가 상승할 때도 있었다.
 또, 수련 중에도 뜬금없이 교감 스텟이 오르기도 했다.
 초먼닭은 용효가 수련을 할 때면 눈을 한 시도 떼지 않고 수련을 지켜봤다.
 강함에 끌리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아직 용효는 초먼닭을 펫으로 만들진 못한 상태였다.
 
 -실패!
 -실패!
 -실패!
 -교감 스텟이 100 하락합니다.
 
 “크흠······.”
 이젠 경계하는 기색 없이 먹이를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고, 수련의 방과 대련의 방을 제집 드나들 듯하면서도 초먼닭은 용효의 펫이 되는 건 거부했다.
 그러나 납득이 안 되는 바는 아니었다.
 용효의 테이밍 스킬은 아직도 초급에 머물러 있었다.
 “교감 스텟이 아무리 높아도 테이밍 성공 횟수가 쌓여야만 스킬 승급을 이룰 수 있단 거군······.”
 그러나 용효가 테이밍 스킬을 쓸 수 있는 대상은 초먼닭뿐, 그런데 초먼닭은 초급 테이밍 스킬로는 테이밍이 되지 않으니 스킬 경험치가 쌓일 수가 없었다.
 아마 대련의 방에 있는 다른 문 중 한 곳에 테이밍을 수련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수련 공간이 있을 것이다.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교감 스텟을 1만 이상 올렸으니 시간 낭비를 한 건 아니다.
 테이밍 스킬을 제대로 수련할 수 있는 방이 개방되면 1만이 넘는 교감 스텟으로 훨씬 빠르게 테이밍 스킬의 등급을 올려 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 * *
 
 시간은 좀 더 흘러······.
 초인3-기(氣) 상태로 용비늘 샌드백을 치던 용효가 수련을 멈추고 대련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공을 70갑자 이상 쌓아야 하는 강철 주술인형 13호와의 대련 조건은 이미 달성된 상태, 기 상태가 됐을 때 과하게 빠르게 소모되는 기의 양을 줄일 방법을 찾기 위해 대련을 미루고 있던 것뿐이었다.
 아직도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서브 수련 퀘스트-강철 주술인형 13호를 파괴하라>
 강철 주술인형 13호를 파괴하기 전까진 수련의 방으로 돌아갈 수 없다.
 [보상1] 천금화+8,000
 [보상2] 대성수(大聖水) 1병
 [보상3] 청마보석(靑魔寶石)
 
 퀘스트창이 사라지자 레슬러처럼 두꺼운 근육으로 둘러싸인 강철 주술인형 13호가 붉은 인광을 뿌리며 용효에게 달려들었다.
 용효도 기심환 속의 기를 폭발시켜 단숨에 모든 혈관과 근섬유로 기를 채워 넣고 전신에서 잿빛 인광을 뿌렸다. 동시에 용효는 기심환 속을 관조했다.
 기심환 속의 내공이 마개가 빠진 욕조 속 물처럼 줄어들었다. 그러나 처음 초인2-기(氣) 상태가 됐을 때와 비교하면 그 속도는 분명 줄어들어 있었다.
 용효가 찾은 방법은, 기심환의 회전력을 줄여 폭발하는 기의 수를 줄이고, 몸 밖으로 나가자마자 허공으로 퍼져나가는 기파를 몸으로 다시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기파를 전부 끌어당기며 계속 몸에 붙잡아둘 순 없었다. 그러나 전부는 힘들어도 일부를 끌어당겨 몸을 따라 더 돌게 하며 좀 더 붙잡아두는 게 가능했다.
 “반대로 이런 것도 가능하지······.”
 용효가 기심환을 맹렬한 속도로 회전시켰다.
 기심환 속의 기들이 불꽃을 일으킬 기세로 기도를 돌다 결국 기도에서 이탈해 마구 충돌했다.
 수채화처럼 흐릿한 인광이 아닌 선명한 빛줄기가 된 회색 기파가 화살처럼 곧고 빠르게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 즉시 용효가 그 기파들을 몸으로 끌어당겼다.
 상당량의 기파들이 다시 용효의 몸으로 되돌아와 그의 몸을 따라 돌며 소용돌이쳤다.
 
 -초인3-기(氣)-폭주 상태가 됩니다.
 
 쾅!
 용효가 지면에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며 낮은 포물선을 그렸다. 13호와의 거리가 단박에 좁혀졌다.
 이어 회색 빛줄기들이 마구 뒤엉켜 회전하는 용효의 주먹이 포탄처럼 휘둘러졌다.
 콰콰앙!
 13호의 주먹을 깨부순 용효의 펀치가 13호의 머리까지 산산조각을 냈다.
 조각난 파편들과 부품들을 흩뿌리며 핑그르르 돌며 날아간 13호가 벽에 박히며 거의 1m는 될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교감이 5000 오릅니다.
 -초먼닭을 길들였습니다.
 -초급 테이밍이 중급 테이밍이 됩니다.
 -중급 테이밍이 상급 테이밍이 됩니다.
 
 알림 홀로그램창 너머, 수련의 방문 앞에 부리를 쩍 벌리고 서 있는 초먼닭이 보였다.
 그러나 파괴 충동에 휩싸인 용효의 관심은 오직 13호에게 가 있었다.
 쾅!
 거듭 지면에 달 표면 같은 크레이터를 만들며, 아직 벽에 박혀 있는 13호를 향해 뛴 용효가 펀치 세례를 퍼부었다.
 콰콰콰쾅!
 전신이 깨지고 터져 13호가 거의 형체를 잃었을 즈음, 지진에 뒤틀린 건물 벽처럼 큼직한 균열이 쩍쩍 가 있는 석문 안쪽에서 바람이 세어 들어왔다.
 대련이 끝나지 않은 상태기 때문인지 용효의 앞에 경고 알림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콰콰콰쾅!
 석문엔 이미 13호의 파편 하나 부품 하나 박혀 있지 않았으나 경고창이 뜨지 않자 용효는 폭주 상태를 유지하며 계속 석문으로 펀치를 휘둘렀다.
 단 1초 만에 네 번의 펀치가 더 석문에 퍼부어졌고, 결국 석문은 깨져나갔다.
 동시에 용효의 몸으로 뜨거운 바람이 불어 닥쳤다.
 여름날 바람처럼 그저 후끈한 정도가 아닌, 화기(火氣)를 품고 있었다.
 “······대장간?”
 쇠 냄새와 불의 기운이 방 가득 휘돌고 있었다.
 안쪽에는 큰 화덕이 놓여 있었고, 그 화덕 안엔 얼추 검날의 모양을 갖추고 있는 쇠붙이가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화덕에서 붉은 벌레 같은 불티들이 날아올라 타탁거리는 불 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허공으로 흩어졌다.
 ‘왜 대장간이······.’
 강해지기 위한 수련에 왜 야장(冶匠) 수련이 필요한 건지 용효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직접 무기를 만들어 천금화를 아끼라는 것일까? 만물 자판기에서 파는 무기를 뛰어넘는 무기를 만들어내라는 걸까?
 그러나 용효의 무기는 그 어떤 철보다 단단하고 날카롭게 벼려진, 앞으로 더욱 단단하게 벼려질 자신의 몸 그 자체, 병장기는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기(氣)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게 되면서 용효는 검술이나 창술을 수련할 시간에 육체단련과 기 수련에 집중하며 무술과 내공에 더 깊이 파고들고 싶었다.
 철은, 그게 흑철이나 비스릴, 모르하르콘이라 해도 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철로 벼른 무기에 기를 담기 위해선 기심환의 내공이 아닌 다른 기, 오러가 필요했다.
 그러나 오러홀이 자리하는 곳은 단전.
 오러홀과 기심환이 단전에 함께 넣어지면 융합하지 못하고 충돌을 일으켜 기심환도 오러홀도 망가져 버릴 수 있었다.
 심장에 자리 잡는 서클링과는 달랐다.
 
 그런데 잠시 뒤······.
 “그렇군······.”
 화덕에 넣어진 검날을 꺼내 모루에 올려 망치로 두드려보길 3시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난 무기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도 무기를 쓰지 않나······?
 TV의 뉴스에서 본 두 괴물은 무기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두 마리를 봤을 뿐이다.
 다른 괴물들은, 다른 적 중에는 검을 도끼를, 창을 쓰는 자들이 있을 수 있었다.
 용효는 누구든 이길 수 있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은 아직 절대강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더 강해지기 위해, 절대강자가 되기 위해선 알아야 했다. 검에 대해, 창에 대해, 다른 무기들을, 무기를 들고 하는 전투에 대해.
 “적을 잘 아는 것도 더욱 강해질 방법인 것을······.”
 용효는 더는 야장의 방에 대한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더 전력을 담아 모루 위에 올려진 검날을 망치로 쳤다.
 땡깡똥깡······.
 똥깡땡깡······.
 제대로 치고 있는 건진 알 수 없었지만 검을 어떻게 만드는지, 단조와 담금질, 연마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은 있었다.
 푸쉬이익!
 물에 넣어 식힌 검날을 다시 화덕에 넣어 빨갛게 익힌 뒤 다시 모루 위에 올려 망치로 힘차게 두드렸다.
 그때, 초먼닭이 야장의 방으로 들어와 용효의 옆에 섰다.
 “······볼 테냐?”
 오늘 아침만 해도 먹이에 대한 말이 아니면 눈길조차 주지 않던 초먼닭이 딴 닭처럼 고분고분하게 변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효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
 동경을 넘어 사모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
 용효는 살짝 부담스러움을 느꼈으나 누군가, 그게 닭이라 해도 자신을 봐준다 생각하니 어쩐지 의욕이 더 솟는 걸 느꼈다.
 땡깡똥깡······.
 똥깡땡깡!
 
 -근력이 20 오릅니다.
 -민첩이 11 오릅니다.
 -체력이 7 오릅니다.
 -생명력이 9 오릅니다.
 -투지가 12 오릅니다.
 -인내가 5 오릅니다.
 
 줄줄이 뜨는 스텟 획득창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용효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복에 천근환을 찬 것도, 야장의 방 안에 2~3배의 중력이 작용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망치로 검날을 두드릴 뿐인데도 전신의 근육들이 팽팽하게 부풀며 펌핑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재밌군.”
 육체단련으로도, 극진용투도 수련으로도, 대련으로도 거의 쓰이지 않았던 근육들이 지금 망치로 검날을 치는 이 단조로운 단조 작업과 담금질로 자극되고 있었다.
 “역시 보통 철이 아니로군······.”
 단조 작업과 담금질을 한 지도 7시간이 넘어 있었다.
 보통 철이었다면 용효의 괴력에 진작에 만두피처럼 얇게 변해 버렸을 텐데 모루 위의 검날은 좀 더 검날답게 얇게 펴졌을 뿐이었다.
 어설펐지만 용효는 계속 담금질을 해나갔다.
 이왕 시작했으니 검날을 검답게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뜨겁지도 않은지 용효의 곁을 한 시도 떠나지 않고 화덕 옆에 앉아 용효의 담금질을 지켜봐 주는 초먼닭이 있기에 용효는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쉬지 않고 10시간을 더 망치로 검날을 두드렸을 때였다.
 
 -엉성한 검날을 만들었습니다.
 -52점!
 -용효, 당신은 기술은 아직 미흡하나 천부적인 야장의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초급 야장술(冶匠術)을 얻었습니다.
 -50점을 넘은 검날은 상품 가치가 있습니다.
 -만물 자판기에서 판매할 수 있습니다.
 
 팔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용효의 눈이 동그래졌다.
 용효는 당장에 야장의 방을 나가 수련의 방으로 돌아갔다.
 만물 자판기의 고액 투입기를 열고 그 안에 흑철 검날을 넣었다.
 고액 투입기의 뚜껑을 닫자 그 즉시 만물 자판기의 화면이 바뀌었다.
 
 -1골드.
 -만물 자판기에 매각하겠습니까?
 
 용효가 액정 화면의 ‘예’를 누르자 배출구로 천금화 1개가 떨어졌다.
 꺼내서 보니······.
 틀림없는 천금화였다.
 
 * * *
 
 -튼튼한 쇼소드를 만들었습니다.
 -균형이 잘 맞는 롱소드를 만들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바스타드소드를 만들었습니다.
 -초급 야장술이 중급 야장술이 됩니다.
 
 단 100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그렇다고 용효가 종일 야장의 방에서 검만 만든 건 아니었다.
 새벽 5시부터 아침 식사가 나오는 8시까지 딱 3시간만 용효는 야장의 방에서 단조나 담금질, 연마를 했다.
 그 외 오전과 오후, 저녁 수련엔 육체단련과 극진용투도, 내공 수련, 요리 수련과 TV 시청을 똑같이 했다.
 그럼에도 용효가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건 100톤이 넘는 괴력이 실리는 망치질 덕분이었다.
 단조와 담금질을 빠르게 끝낼 수 있었고, 연마도 10년 20년, 50년이 넘어가자 충분히 달인이라 불러도 될 수준의 경지까지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용효가 120년 동안 완성한 검은, 거의 일주일에 한 개씩을 완성시켜 5,000개가 넘었다.
 매각비는 검 한 자루에 3~6골드.
 그 천금화를 다 합치면 20,000골드가 넘었다.
 그러나 용효는 그 천금화를 일체 쓰지 않고 모으며 수련과 검 만들기를 계속 해나갔다.
 500년이 더 흘렀다.
 
 -거의 완벽한 롱소드를 만들었습니다.
 -98점!
 -중급 야장술이 상급 야장술이 됩니다.
 
 완성된 롱소드를 들고 용효는 수련의 방으로 돌아갔다.
 
 -10골드.
 -만물 자판기에 매각하겠습니까?
 
 어차피 흥정은 되지 않는다. 팔거나 팔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용효가 예를 눌렀고, 배출구로 천금화 10개가 떨어졌다.
 이로써 500년간 검을 만들어 번 천금화가 100,000골드를 넘었다. 이전 100년간 검을 만들어 번 천금화까지 합치면 약 120,000골드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지난 500년 중 강철 주술인형과의 대련이 한 번 있었고 그 승리 보상으로 받은 천금화에, 그동안 수련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들을 클리어해 모아둔 천금화까지 합치면 용효의 수중에 모인 천금화는 200,000골드가 넘었다.
 “후후······.”
 뭘 살까.
 목표한 액수를 달성하자 용효는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물론 용효는 아무리 20만 골드의 거금이 모였다 해도 꼭 필요한, 꼭 사야 하는 상품이 아니면 살 생각이 없었다.
 촤르르르르륵!
 용효가 만물 자판기의 고액 투입기에 천금화를 쏟아부었다.
 그리고 검색 기능으로 사기로 한 상품들을 찾아내 구매 버튼을 주저 없이 시원하게 팍팍 눌렀다.
 
 -레드 드래곤 가죽 샌드백을 얻었습니다.
 -수련용 모리하르콘 허수아비를 얻었습니다.
 -중량의 팔찌를 얻었습니다.
 -소드마스터 로이렌의 검술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살까 말까 거듭 고민했으나 용효는 결국 구매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보통은 길들일 수 없는, 길들지 않는 초먼닭을 길들여 12,000 이상 올린 자신의 교감 스텟을 믿기로 했다.
 
 -상급 불의 정령을 얻었습니다.
 
 * * *
 
 “확실히······.”
 기 폭주 상태가 되어 레드 드래곤 샌드백을 쳐본 용효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튼튼했다.
 게다가 고깃덩어리를 치는 느낌 이상, 살아 있는 짐승을 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수련용 모리하르콘 허수아비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기 폭주 상태에서 킥과 펀치를 마구 퍼부어도 밀리지도 흔들리지도 않고 버텨냈다.
 이어 용효는 오른 손목에 중량의 팔찌를 찼다. 좀 크다 싶었는데 손목에 차자 크기가 줄어 밴드처럼 착 감겼다. 최대 100톤까지 중량을 늘릴 수 있었다.
 “10톤.”
 그 즉시 전신에 10톤의 무게가 가해졌다.
 극진용투도 도복의 무게까지 합치면 40톤의 무게였다.
 이번엔 불의 정령이 든 캡슐을 돌렸다.
 화르르륵!
 정령의 불꽃이 화덕 속 불꽃보다 더 뜨거운 화기를 발하며 사람의 얼굴 같은 형상을 갖춰나갔다. 그러나 완전한 형태는 갖추지 못하고 뭉그러졌다.
 이어 불꽃은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요정의 모습으로 변했으나 이번에도 결국 형체를 잃고 횃불 같은 불꽃으로 돌아가 버렸다.
 
 -정령의 구체화에 실패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령의 불꽃을 캡슐 안으로 회수해 만물 자판기에 되팔면 3만 골드나마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용효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듯했다.
 용효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교감 스탯에 대해서였다.
 영물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올린 12,000의 교감 스텟, 다른 차원의 존재라 해도 아무 영향도 못 끼칠 리 없다.
 아직 정령의 불꽃은 완전히 소멸하진 않고 남아 있었다.
 ‘해보자······.’
 실패한다 해도 괜찮다. 실패해도 그 또한 수련이었다.
 야장술로 천금화를 벌 수 있게 됐다.
 야장술을 더 갈고 닦으면 앞으론 더 많은 천금화를 벌 수 있었다.
 용효는 흔들리지 않고 시도했다.
 불꽃 속 어딘가에 있을 정령을 느끼려 애썼고, 정령이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을 봐주길 소망하며 계속 불꽃 속으로 의지와 말을 던졌다.
 그러나······.
 촛불 크기까지 줄어든 정령의 불꽃은 한순간 훅 꺼져 사라져 버렸다.
 초먼닭이 자신의 발을 툭툭 건드리는 감각에 용효가 고개를 내렸다. 눈이 마주치자 초먼닭이 시선을 허공으로 올렸다. 용효가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불티였다.
 아니, 불티처럼 날아다니는 불의 정령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봐도 불의 정령은 구체적인 형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틀림없는 정령이었다.
 
 -초급 정령술을 얻었습니다.
 -정령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정령에 이름을 각인하면 정령계약이 이루어집니다.
 
 “용불······.”
 언젠간 용과도 같은 불을 만들어내란 의미를 담았다.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 * *
 
 ‘혹시 이 녀석이······?’
 용효가 초먼닭을 내려다봤다. 이 녀석이 자신에게 힘을 보태주고, 불의 정령을 붙잡아준 게 아닌가 싶었다.
 초먼닭은 화덕의 뜨거운 불길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의 기운을 즐기는 것도 같았다.
 영물인 만큼 정령, 특히 불의 정령에 익숙한 게 아닐까 싶었다.
 용효의 시선을 느꼈는지 초먼닭이 고개를 들어 언제나처럼 용효를 촉촉하고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
 용효가 슬쩍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 채소볶음엔 가지도 넣어주마.”
 가지는 용효가 제일 좋아하는 채소, 초먼닭의 먹이를 만들 땐 쓴 적이 없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호화로운 채소볶음을 요리해 주기로 했다.
 용효가 손을 내밀자 허공을 맴돌던 용불이 용효의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용효의 의지를 제법 잘 따라줬다.
 바람에 흩날리는 불티처럼 다시 사뿐히 날아오른 용불은 이번엔 초먼닭의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다.
 용효를 보듯 그윽한 눈은 아니었지만 초먼닭은 경계하는 기색 없이, 익숙한 듯 용불의 움직임을 눈으로 가만히 쫓았다.
 
 -초먼닭의 화(火) 속성이 강해집니다.
 
 용효가 수련의 방을 나서자 용불은 다시 용효의 등으로 따라붙었고, 초먼닭도 용효의 뒤를 따랐다.
 야장의 방으로 들어간 용효가 용불을 화덕 속에 넣었다.
 화르르륵!
 화덕 속 불꽃에 녹색 빛이 섞이며 방 안의 열기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정도면······.”
 화덕 뒤편으로 돌아간 용효가 큼지막한 비스릴 덩어리를 들어 화덕 속에 넣었다.
 화덕의 불꽃으론 녹일 수 없었지만, 정령의 불꽃이 더해지면 분명 녹일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뒤······.
 비스릴 덩어리가 붉은 젤리처럼 변해 누글누글 뭉그러졌다.
 땡깡똥깡······.
 똥깡땡깡······.
 담금질이 시작되자 화덕 위로 날아오른 용불이 다시 용효의 주변을, 때론 초먼닭의 주위를 불티들과 뒤섞여 장난을 치듯 날아다녔다.
 “이젠 혼자가 아니군······.”
 화덕의 불길이 더욱 뜨거워졌는데도 화덕 옆에 앉은 초먼닭은 한시도 눈을 안 떼고 용효를 봐줬고, 용불도 계속 용효의 주변에 머물며 주위를 날아다녔다.
 용효는 힘든 줄도 모르고 신명이 나 땡깡똥깡 똥깡땡깡 박자를 타가며 망치질을 하고 담금질을 해나갔다.
 
 그리고 한 달 뒤······.
 -불 기운이 깃든 날이 잘 선 비스릴 롱소드를 만들었습니다.
 -99점!
 -롱소드에 명검 칭호가 붙습니다.
 -어느 신이 용효 당신의 야장술에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용효는 만날 수도 없고 정체도 모르는 신들에 대한 생각에 깊이 빠지지도, 그들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할 수련이 많았다.
 오늘 일과는 이제 시작이었다.
 수련의 방으로 돌아간 용효가 만물 자판기의 고액 투입기에 비스릴 롱소드를 넣었다.
 
 -102골드.
 -만물 자판기에 매각하겠습니까!
 
 아니오를 누른 용효가 고액 투입기를 열어 비스릴 롱소드를 도로 꺼냈다. 검술 수련에 쓰기 위해서였다.
 용효는 일단 소드마스터 로이렌의 검술서부터 정독했다.
 
 * * *
 
 최상급 검술서는 비싼 값을 했다.
 소드마스터 로이렌이 쓴 검술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게 아니었다.
 아주 쉽게, 주석까지 세세히 달아 풀고 풀어놓은 검술서였다.
 “쉽군······.”
 검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소드마스터 로이렌의 비전 기술까지 머릿속에 담을 수 있었다.
 
 -스킬, 초급 로이렌 검술을 얻었습니다.
 
 로이렌 검술을 초절정의 경지까지 올리는 데도 권투, 가라데, 절권도 정도로 긴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닦아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 오른 초절정의 경지는 진정한 초절정의 경지일 수 없었다.
 검을 자신의 무기로 하고자 했다면 용효는 검술서를 사지 않았을 것이다.
 헤매기도, 길을 잃기도, 고뇌하기도 하며 그 고행 끝에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자신만의 검술을 완성했을 것이다.
 용효는 극진용투도를 바탕으로 한 외공과 내공의 끝을 보고자 했다.
 검술과 창술, 다른 무기술을 익히려는 건 적을 알고 이해해 초월 육체와 극진용투도를 바탕으로 한 외공 내공을 더욱 벼르고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극진용투도와 내공 수련 시간을 가능할 뺏기지 않으며 지름길을 통해서라도 가능한 많이 익히고 경험해야 했다.
 
 -초급 로이렌 검술이 중급 로이렌 검술이 됩니다.
 -중급 로이렌 검술이 상급 로이렌 검술이 됩니다.
 
 30년 만에 이룬 일이었다.
 “흠······.”
 그러나 용효는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검술을 수련하면 할수록 처음의 목표와 달리 검술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검에 기를 두를 수 있다면······.”
 그러나 쇠는 기심환의 기를 품을 수도 두를 수도 없었다. 검에 기를 두르려면 반드시 오러를 만들 수 있는 오러홀이 필요했다.
 “단전이 아니더라도, 심장이 아니더라도 오러홀을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공간은 정말 없는 걸까······?”
 단전과 심장처럼 기들이 소용돌이치며 모여드는 부위가 있긴 했다.
 손바닥이었다.
 단, 단전과 심장처럼 큰 소용돌이를 그리며 많은 기가 모이는 부위는 아니었다.
 또······.
 혹 손바닥에 오러홀을 심는 데 성공했다 해도 과연 기심환의 기와 충돌하지 않을 것인가······.
 작은 충돌이라 해도 그 충돌이 계속 일면 몸의 균형은 결국 깨지고 말 것이다.
 그래도······.
 “해보자······.”
 왜일까.
 위험천만한 일인데도 용효는 기분이 즐거워지는 걸 느꼈다.
 지금껏 해온 대로 결국엔 방법을 찾아내리란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성공하면······ 양 손바닥에 2개의 오러홀을 심을 수 있다.’
 아니······.
 심장엔 서클링이 아닌 기심환을 더 만들고, 왼손바닥엔 오러홀을 오른손바닥엔 서클링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용효가 만물 자판기 앞에 섰다. 어찌 될까 고민하지 않고 부딪치기로 했다. 부딪쳐 오러와 오러홀이 무엇인지 알아내기로 했다.
 
 -오러홀을 얻었습니다.
 
 * * *
 
 용효가 TV 앞에 앉아 있었다. 채널은 뉴스였다. 그런데 화면은 아무 영상도 뜨지 않는 회색 화면이었다.
 어떤 채널로 돌려도 아무 방송도 나오지 않았다. 나오는 건 볼레TV 뿐이었다.
 어느 채널에서도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수련의 방 밖의 일상이 무너졌단 뜻이었다.
 리모콘을 든 용효가 볼레TV의 뉴스 다시 보기로 들어갔다. 최신 뉴스를 재생시켰다.
 첫 보도부터 괴물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군대와 수련자들이 도시를 뒤덮은 괴물에 맞서 싸웠지만, 괴물들은 악마 같고 마족 같고 심지어 마왕 같았다.
 “이건······ 신(神)과 인간의 전쟁이 아닌가······.”
 인간을 초월한 수련자들이라 해도 한 마리 한 마리가 모조리 신(神)인 괴물들에겐 역부족이었다.
 일방적인 학살이고 사냥이고 악마들의 축제였다.
 뉴스는 월식이 일며 어두워진 하늘에 전신이 붉은 털로 덮이고 인간 같은 골격을 가진 괴물이 5m가 넘는 대도(大刀)를 들고 피막의 날개를 휘저으며 날아가는 영상으로 끝이 났다.
 어느 뉴스든 그랬다.
 “아내와 희진이는 어떻게 됐을까······.”
 1만 년의 시간은 용효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감정도 풍화시켰다.
 그들과 쌓은 추억은 너무도 흐릿했고 어떤 얼굴이었는지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1만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은, 조금도 풍화되지 않는 아내와 딸에 관한 기억이 하나 있었다. 기억이라기보단 각인이었다.
 “반드시 지켜내야 할 사람들······.”
 수련의 방에 들어온 첫날······.
 누군가 벽에 날카로운 날붙이로 새겨 넣은 문장처럼 용효가 자신의 심장과 뇌리에 새겨 넣은 각인이었다.
 하지만, 수련을 끝마치고 방을 나갔을 때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면 어떻게 지켜낸단 말인가.
 “마법······.”
 현실에 일어날 수 없는 이적을,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마법이었다. 마법이라면 죽은 자도 살려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망자를 살려냈다 해도 지켜낼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야······.”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야 했다. 절대강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것만 생각해야 했다. 마법은 그다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효가 오른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오러홀을 회전시키자 허공을 떠돌던 마나가 흘러들어와 오러홀 속의 길을 따라 돌았다.
 단단한 심이 박힌 단전의 기심환과 달리 손바닥의 오러홀은 허공에 붕 뜬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오러홀이 흔들릴 때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몸속도 흔들렸다.
 한 번 몸속이 뒤집히고 나면 용효는 전신에서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주먹을 쥘 힘도 사라지곤 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몸을 기 상태로 만들었을 때 오른손바닥을 통과하는 기들이 분쇄기에 들어간 듯 갈기갈기 찢겨 흩어졌다.
 “흠······.”
 용효는 일단 오러홀을 오른손바닥에 고정시키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게 우선이었다.
 오러홀도 서클링처럼 서클 고리가 하나씩 늘어나는 형태로 확장이 이루어졌고 다 완성된다면 원뿔 모양이 될 듯했다.
 원통 모양으로, 무한히 늘릴 수 있는 기심환과는 달랐다.
 “그렇다면······.”
 용효는 오러홀이 완전한 원뿔 모양이 되면 그 모양을 이용해 손바닥 깊이 박는 게 가능하다 생각했다.
 
 -오러홀이 4서클이 됩니다.
 
 수련의 방엔 마나가 가득했다.
 써도 써도 새로운 마나가 흘러들어와 금세 방 안을 채웠다.
 몸속이 뒤집히는 통증만 견디면 온종일 오러홀을 돌릴 수도 있었다.
 
 -오러홀이 5서클이 됩니다.
 -오러홀이 6서클이 됩니다.
 -오러홀이 7서클이 됩니다.
 -오러홀이 8서클이 됩니다.
 
 50년 만에 용효가 완전한 원뿔 모양의 오러홀을 만들어냈다. 그 오러홀을 오른손바닥 안 깊숙이 박았다.
 “······.”
 용효의 표정이 어두웠다. 1서클 오러홀 때와 비교하면 오러홀이 좀 더 고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흔들렸다.
 좌절감을 느낀 건 잠시, 검을 든 용효는 다시 검날을 오러로 휘감아 모리하르콘 허수아비를 쳤다.
 수련이 끝난 뒤에도 계속 오러홀을 돌리며 방법을 찾았다.
 기심환의 기까지도 돌렸다.
 두 기가 충돌하며 몸속이 뒤흔들리는 데도, 극심한 통증에도 용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정도에 무너질 정도로 자신의 초월 육체는 약하지 않았다.
 “반드시 찾아낸다······.”
 
 -투지가 500 오릅니다.
 -인내가 300 오릅니다.
 
 * * *
 
 150년이 흘렀다.
 용효의 일과는 달라진 게 없었다.
 이른 새벽, 몸속의 기심환과 오러홀을 돌리며 야장의 방으로 가 모루 위의 검날을 망치로 치며 담금질을 했다.
 상급 로이렌 검술은 절정의 경지에 올랐으나 오러홀은 여전히 마나를 빨아들일 때마다 흔들렸다.
 용효의 강인한 육체는 아직 굳건했지만, 한계는 분명 올 것이다. 그 전에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땡깡똥깡······.
 똥깡땡깡······.
 오늘은 평소의 작업과 다른 게 있었다. 초먼닭의 옆에 주먹만 한 크기의 녹색 보석이 놓여 있었다. 서브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해 얻은 녹마보석이었다.
 녹마보석과 청마보석에 담긴 마나는 순수한 마나가 아니었다. 아마도, 마법 술식을 거쳐 가공된 마력일 것이다.
 용효는 그 마법의 힘을 뽑아내 검날에 마법각인을 하려는 것이었다. 마법엔 문외한이지만 마력의 본질은 마나, 용효는 자신이 있었다.
 
 잠시 뒤······.
 용효가 왼손엔 완성된 검날을, 오른손엔 녹마보석을 쥐었다.
 후웅!
 오러가 스며들자 녹마보석이 빛을 냈다. 동시에 용효는 마나와 오러를 다루듯 강한 의지를 담아 바랐다. 검날이 아주 단단해지기를, 절대 깨지지 않기를.
 훙!
 녹마보석에서 흘러나온 빛이 검날로 흘러들자 검날 하단부에 마법진이 음각되며 새겨지기 시작했다.
 
 -마법 각인에 성공했습니다.
 -불 기운이 깃든 튼튼한 비스릴 롱소드를 만들었습니다.
 -93점!
 -롱소드에 레어 칭호가 붙습니다.
 
 그때였다.
 “······!”
 갑자기 용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날에 새겨진 오망성 마법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꼭 원일 필요가 없는 것을······!”
 오러홀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다른 모양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아래가 아닌 옆으로 박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답은 오망성이었다.
 용효는 그 즉시 오른손바닥의 오러홀을 부숴 버렸다.
 무엇이든 다 파는 만물 자판기지만 용효가 생각하는 오망성 오러홀은 팔고 있지 않았다.
 “내가 직접 만든다······.”
 오망성 오러홀이 용효의 생각대로 돼준다면 기심환의 기는 오러와 충돌하지 않을 테고, 오히려 오러홀은 오러홀을 지나는 기의 공력을 증폭시킬 것이다.
 
 * * *
 
 -오망성 오러홀을 얻었습니다.
 
 용효는 오러홀을 두 번 더 부쉈고, 700년이 지나서야 완전한 형태의 오망성 오러홀을 완성해냈다.
 두 번의 개조를 거친 오망성 오러홀은 보통의 오망성과 달리 별의 다섯 꼭짓점이 원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 다섯 꼭짓점으로 오러홀을 손바닥에 단단히 박을 수 있었다.
 또, 복잡하고 다양한 기도(氣道)들로 구성돼 있어 기심환의 기들이 오러와 충돌하지 않고 오러홀을 통과할 수 있었다.
 성과는 하나 더 있었다.
 로이렌 검술이 초절정 경지에 올랐고, 불안정한 오러홀 때문인지 생기지 않던 검술 스킬이 오러홀의 완성과 함께 생겨났다.
 
 -스킬, 오러 블레이드를 얻었습니다.
 
 “오러 블레이드.”
 지금까진 그저 검날을 타고 돌며 푸른 인광만 발하던 검기가 견고하게 뭉쳐 완전한 검강을 만들었다.
 모리하르콘 허수아비를 몇 번 쳐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은 용효가 검을 놓고 드래곤 가죽 샌드백 앞으로 갔다.
 
 -초인3-기(氣)-폭주 상태가 됩니다.
 
 오러홀을 지나며 증폭된 오른 펀치를 완전히 버티지 못한 가죽들이 찢기며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뛰어난 재생력을 가진 레드 드래곤 샌드백은 1~2초 사이에 찢긴 부위들을 멀쩡히 재생시켰다.
 용효가 계속 펀치를 퍼부었다. 치며, 웃었다. 검술 수련이 검술의 경지뿐만 아니라 극진용투도와 내공의 경지까지 올려놓았다.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망성 오러홀을 얻었습니다.
 
 200년 뒤, 왼손바닥에도 오망성 오러홀이 단단히 자리 잡았다.
 바로 몸을 돌린 용효가 대련의 방으로 들어갔다.
 강철 주술인형 15호 16호와의 2대 1 대련을 위한 조건은 150갑자가 넘는 내공이었다.
 아직 모자랐다. 그러나 용효는 당장 대련을 하고 싶었다. 15부터 18호까지, 4대 1 대련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몸을 기 상태로 만든 용효가 철문을 주먹으로 치기 시작했다. 주먹이 철문을 칠 때마다 대련의 방이 통째로 흔들렸다.
 
 -경고! 문이 50% 이상의 손상을 입을 시 강철 주술인형들이 일제히 기동함!
 
 “원하는 바다.”
 용효의 펀치가 더 빨라졌다.
 콰콰콰콰쾅!
 용효의 펀치 세례에 철문은 오래 못 버티고 수십 조각으로 깨져 빛으로 변해 소멸했다. 이어 드러난 석문은 철문보다 더 빠르게 무너져갔다.
 그런데 그때, 강철 주술인형들이 일제히 눈을 떴는지 등 뒤에서 폭발하듯 퍼져 오르는 막대한 공력이 느껴졌다.
 
 <서브 수련 퀘스트-강철 주술인형 15, 16, 17, 18호를 파괴하라>
 강철 주술인형 네 기를 전부 파괴하기 전까진 수련의 방으로 돌아갈 수 없다.
 [보상1] 전 신체 스탯+2,000.
 [보상2] 천금화+100,000.
 [보상3] 천년설삼(千年雪蔘).
 [보상4] 홍마보석 3개.
 
 펀치를 멈추고 돌아선 용효가 도복을 가다듬고, 갖고 들어왔던 검들을 강철 주술인형들 앞으로 던졌다.
 “와라······.”
 입가의 미소를 없앤 용효가 검은띠를 양손으로 팍 당기곤 극진용투도 자세를 취했다. 동시에 기심환을 돌려 기파를 전신에 퍼트렸다.
 화살 같고 칼날 같은 기들이 중력에 이끌리듯 되돌아와 용효의 전신을 타고 돌며 점점 더 짙은 잿빛을 발했다.
 
 -초인3-기(氣) 상태가 됩니다.
 
 강철 주술인형들도 용효의 인광 못지않게 짙은 인광을 만들어냈다.
 용효가 그 기를 느꼈다.
 15, 16, 17호의 공력은 150갑자 이상으로 자신보다 5갑자가 높았고, 18호는 160갑자도 넘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공의 높고 낮음만으로 강함과 약함이 나뉘지는 않는다.
 더 튼튼하고 강인한 육체가, 더 높은 경지의 외공이, 상대는 갖고 있지 않은 기술로 더 높은 전투력을 낼 수도 있었다.
 또, 내공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공력이 더 낮다 해도 더 우위에 설 수도 있었다.
 대련이 시작됐다.
 16호와 18호는 지면을 깨부수며 용효를 향해 내달렸고, 15호와 17호는 용효가 던진 검을 주워 검날에 오러를 휘감았다. 검기를 넘어선 검강이었다.
 18호가 가장 먼저 거리를 좁혀 용효에게 펀치를 날렸다.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단발머리는 16~17살 정도 되는 평범한 여자아이의 모습이나 느껴지는 내공은 150갑자가 훌쩍 넘었고, 눈엔 흉험한 살기가 가득했다.
 파앙! 팡!
 용효가 절권도식의 수기로 18호의 손목을 안쪽으로 쳐내고 이어 왼 펀치는 옆으로 밀어내듯 왼손등으로 쳐냈다. 동시에 발은 로우킥을 날렸다.
 왼 다리가 부러질 듯 꺾이자 18호가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그 직후, 잿빛 인광이 소용돌이치는 용효의 어퍼컷이 18호의 턱에 꽂혔다.
 이어진 핵펀치 스킬이 담긴 스트레이트 펀치가 18호의 관자놀이까지 박살 냈다.
 오른쪽 얼굴이 폭삭 주저앉으며 18호의 몸이 허공에 떠 핑그르르 돌았다.
 철 기둥에 옆구리를 부딪치며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허리가 부러졌는지 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바닥을 기었다.
 부웅!
 17호가 휘두른 롱소드를 상체를 틀어 피한 용효가 검 옆면을 펀치로 후려쳤다.
 충돌과 동시에 잿빛 인광이 사방으로 후욱 흩어지고 롱소드에 둘린 검강이 검날 채로 형광등처럼 깨져나갔다. 이어 용효의 미들킥이 17호의 옆구리를 쳤고······.
 “절권킥!”
 일부러 17호가 뒤로 두어 걸음을 물러나게 둔 뒤 도약하듯 두 걸음을 내딛어 복부에 옆차기를 꽂아 넣었다.
 부등호(>) 모양으로 날아간 17호가 철문에 등을 부딪치며 안으로 박혀 들어갔다.
 동시에 기심환을 맹렬히 돌려 기 폭주 상태가 된 용효가 미사일이 쏘아져 나가듯 포물선을 그리며 도약했다.
 콰앙!
 17호의 안면에 펀치가 꽂혔다.
 주먹이 빠져나오자 밟은 계란처럼 박살 난 코와 부러지고 깨진 이빨들이 녹색 액체와 섞여 토사물처럼 쏟아졌다.
 쾅! 콰앙! 쾅!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달려든 16호의 몸에 로우킥과 펀치 2연타를 날리고, 머리가 젖혀지며 드러난 턱에 펀치를 한 번 더 올려쳐 확실히 끝장을 냈다.
 이제 남은 건 두 기였다.
 15호는 검강을 두른 바스타드소드를 양손으로 쥐고 달려들었고, 18호는 복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
 갑자기 18호가 묘한 자세를 취했다. 하체는 무술 자세처럼 낮췄고, 양팔은 앞으로 쭉 뻗어 쌀보리 게임을 하듯 양 손바닥 끝은 붙이고 손가락들은 펼쳤다.
 “······!”
 용효가 18호의 손바닥 안에서 피어나듯 퍼지는 막대한 공력을 느낀 직후, 18호의 양손에서 피처럼 붉고 불보다 뜨거운 붉은 기파가 45도 각도를 만들며 쏘아져 나왔다.
 15호와 용효가 그 붉은 기파에 함께 삼켜졌다.
 
 * * *
 
 푸쉬이이익······.
 붉은 기파가 사라지고 붉은 연기가 흩어지기 시작하자 그제야 용효의 모습이 드러났다.
 얼굴 앞에 교차시킨 양팔은 피부가 녹고 근육까지 녹아 뼈가 드러나 있었고, 도복이 녹아 드러난 부위들도 깊게 패 뼈가 보이고 피가 철철 흘렀다.
 “기로······ 에너지파를······ 쏠 수 있다······?”
 아니······ 방금 그 기파는 기를 품고 있었지만, 기가 아니었다. 용효가 알고 있던 원기와 양기로 이루어진 그 기가 아니었다.
 속성 자체가 달랐다.
 다른 기들이 섞여 있었다. 섞이다 못해 용합해 전혀 다른 기가 되어 있었다.
 기가 아닌 에너지였다.
 “······어떻게 한 거지?”
 당연히 18호로부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분해한다······.”
 파괴된 18호가 광구로 변해 소멸하기 전에 대련의 방에서 이탈시키면 어쩌면 소멸하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수련의 방에 존재하는 모든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분명 18호는 파괴돼도 사라지지 않을 테고, 분해한다면 그 기파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5분인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치명적인 외상뿐만 아니라 에너지파에 담겨 있던 화살 같고 창 같은 기들이 몸을 관통하며 용효는 내상까지 입은 상태였다.
 아무리 인간을 초월했다 해도 내장들이 녹아내리는 내상까지 입은 상황에선 곧 한계가 올 수밖에 없었다.
 몸을 기 폭주 상태로 만든 용효가 날듯이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18호를 향해 도약했다.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8호가 가드로 용효의 킥을 막아내고 한 발을 내디디며 붉은 인광을 휘감은 펀치를 용효의 턱으로 날렸다.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용효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절권도의 수기로 펀치를 막고 옆으로 튕겨낸 용효가 반걸음을 내디뎌 18호의 옆구리에 바디 블로우를 꽂아 넣었다.
 18호가 상체를 푹 숙이자, 오른쪽 목에 스킬을 담은 수도가 도끼처럼 떨어졌다.
 우지끈, 목이 빈 음료 캔처럼 찌그러지며 18호의 목과 머리가 사선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18호는 그 상태에서 용효의 카운터펀치를 막고 용효의 관자놀이에 되레 카운터펀치를 먹였다.
 용효가 중심을 잃고 휘청휘청 뒷걸음질 쳤다. 급기야 기심환 속의 기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릉!
 바스타드소드를 집어 든 용효가 양 손바닥의 오러홀을 동시에 돌리며 검날에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냈다.
 달려드는 18호를 향해 휘둘렀다.
 오러 블레이드를 두른 검임에도 몸에 둘린 기에 막혀 일격에 18호의 목을 베지 못하고 쩍 박혔다.
 그러나 조금 전 에너지파로 18호의 내공도 상당량 소실되고 몸에도 충격이 있는지 움직임이 둔했다.
 검을 뽑아내지 않고 앞으로 당겨 로우킥으로 다리를 무너트리고, 그제야 바스타드소드를 뽑아 휘청이는 18호의 목으로 다시 바스타드소드를 휘둘렀다.
 부웅!
 간발의 차로 18호의 머리카락만 조금 자르고 검이 허공을 갈랐다.
 휘둘러지는 궤적 그대로 바스타드소드를 내던지고 돌진하듯 달린 용효가 왼손으로 18호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 상태로 목에 난 틈을 벌리며 오러홀을 지나며 증폭된 기를 두른 수도를 도끼날처럼 내리찍었다.
 퍽! 퍼억! 퍽!
 18호의 머리가 뜯겨져 나왔다. 그 즉시 기동이 멈췄다.
 
 -전 신체 스탯이 2,000 오릅니다.
 -천금화 100,000을 얻었습니다.
 -천년설삼을 얻었습니다.
 -홍마보석 3개를 얻었습니다.
 
 스탯 포인트의 절반은 기심환으로, 절반은 몸으로 흡수했다. 동시에 18호를 들고 야장의 방으로 갔다.
 벽에 세워둔 미완성의 검날을 들고 와 18호의 양 손목을 내리쳐 잘라냈다.
 “역시······.”
 18호의 손목 안에 오망성 모양으로 빛을 내는 오러홀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왼 손목에 든 건 오러홀이 아니었다.
 이건······.
 서클링이었다.
 오망성 모양이었다.
 “그랬군······.”
 기심환과 오러홀, 그리고 서클링······.어떻게 18호가 그런 에너지파를 쏠 수 있었는지 용효는 이해가 됐다.
 그리고 그때, 용효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더 있었다.
 “······이 기계 인형을 고칠 순 없을까?”
 가능하다면, 만물 자판기에서 산 재료들과 야장술로 18호를 더 강화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Chapter 5
 
 
 강철 주술인형 18호의 손목에 든 오망성 오러홀은 보석 같은 재질에 원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안엔 오망성 마법진 8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새겨져 있었다.
 서클링의 모양도 같았다.
 단, 서클링의 오망성 마법진 안엔 읽을 수 없는 문자와 상형문자, 숫자와 기호들이 빽빽이 새겨져 있었다.
 형체를 갖고 있지 않을 뿐, 마나를 가공해 마법으로 만들어내는 장치고 부품이며 기관일 것이었다.
 검날에 다시 오러 블레이드를 두른 용효가 18호의 배를 세로로 갈랐다.
 대련 때와 달리 기(氣)가 사라진 18호의 가슴은 오러 블레이드에 아무 저항감 없이 잘렸다.
 용효가 틈새로 손을 넣어 가슴을 좌우로 더 크게 벌렸다.
 단전 부위부터 들여다봤다.
 “이건······.”
 용효의 눈이 커졌다.
 단전에 박혀 있는 마름모 모양의 보석이 빛을 발하고 있었고, 보석 안에는 살점 같은 게 들어 있었다. 마치 심장 같았다.
 그 심장에서 짙은 원기와 양기가 느껴졌다. 기심환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파괴되지 않았단 뜻이었다.
 수리해 기동시킨다면 18호는 대련 때처럼 계속 160갑자가 넘는 내공을 쓸 수 있을 것이었다.
 용효가 시선을 위로 올렸다.
 왼쪽 가슴 쪽에 혈관처럼 생긴 기계관들을 잔뜩 달고 있는 둥근 보석이 있었다.
 붉은색에 멜론 정도 크기였다. 엔진 역할을 하는 기관일 것이다.
 그러나 깨진 사탕처럼 조각나 있었고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 교체해 작동시키면 고칠 수 있겠군.”
 수련의 방으로 돌아간 용효가 만물 자판기로 갔다. 강철 주술인형을 검색했다.
 강철 주술인형은 뜨지 않았지만 수리 용품과 강화용 재료들이 떴다.
 용효가 찾는 멜론 모양의 붉은 보석, 홍마주술석(紅魔呪術石)도 있었다.
 가격은 25,000골드.
 18호를 수리해 다시 기동시키면 18호가 쏜 에너지파를 수련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고, 대련 상대로도 쓸 수 있으니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었다.
 
 -홍마주술석을 얻었습니다.
 
 야장의 방으로 돌아갔다.
 18호의 가슴에서 부서진 주술석을 빼내고, 새 홍마주술석을 왼쪽 가슴에 넣어 기계관을 연결시켰다.
 “흠······.”
 반응이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용효가 서브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마석을 집어 들었다.
 오른손엔 그 마석을 쥐고 왼손은 18호의 가슴 속 주술석 위에 갖다 댔다. 두 보석에 오러를 흘려 넣었다.
 주술석이 빛을 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주술석은 가동되지 않았다.
 이내 빛도 사라졌다.
 “수리는 마법을 배운 뒤인가······.”
 신에 버금가는 존재가 마법에 주술, 기계학, 그 외에 여러 기술을 망라해 만들어냈을 피조물이다.
 마법은 물론이고 마법과 관련된 다양한 학문과 기술들을 두루 섭렵해야 18호를 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용효는 마법 수련을 시작할 생각이 없었다.
 160갑자가 넘는 내공에, 기계 몸을 가졌음에도 18호는 에너지파를 쏘고 난 뒤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
 에너지파를 제대로 쓰기 위해선 육체 진화를 더 이루고, 내공도 더 많이 쌓아 올려야 했다.
 “꼭 수리해내마······.”
 소멸되도록 두지 않고 자신의 세계로 데려왔다. 용효는 존재의 가치와 존재하는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왜인지······ 그저 기계이고 인형으로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절단된 머리와 손을 모았다. 그 부위들을 몸의 절단면에 대고 녹마보석과 용불의 정령술을 사용해 녹여 붙였다.
 그러고 나자 멀쩡히 고쳐진 것처럼 보였다. 기계나 인형 같지도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그냥 인형이지만 좀 그렇군······”
 만물 자판기에서 1골드를 써 반팔 티셔츠를 사 온 용효가 찢긴 반팔을 화덕에 던져 넣고 새 반팔 티셔츠를 18호에게 입혔다. 그러곤 모루 뒤편의 벽에 기대 놨다.
 “······.”
 토굴 같고 어두침침했던 야장의 방이 어쩐지 화사해진 느낌에 용효의 입가에 살짝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야장술을 수련하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화덕 앞으로 돌아간 용효는 붉은 젤리처럼 변해 있는 비스릴 덩어리를 꺼내 모루 위에 올려 적당한 길이로 늘려 자르고 단조를 시작했다.
 단조가 끝나자 바로 망치를 두드려 담금질을 했다.
 땡깡똥깡······.
 똥깡땡깡······.
 제대로 길을 잡은 건지 마음이 문득 가끔 흔들릴 때 경쾌하게 울리는 망치질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상스레 마음이 안정되며 이내 마음이 다잡곤 했다.
 “나를 굳세게 믿자······.”
 어느새 초먼닭이 화덕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용불도 화덕에서 날아올라 용효와 초먼닭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이따금 18호의 이마나 콧잔등, 어깨에 잠깐 내려앉기도 했다.
 수련의 방으로 돌아간 용효가 평소의 스케줄 대로 드래곤 가죽 샌드백과 모리하르콘 허수아비를 치며 극진용투도와 내공을 수련했다.
 시간이 흘러갔다.
 스탯이 오르고 내공이 쌓여갔다.
 7~15일에 한 자루씩 검이 완성됐고, 성장한 야장술의 기술만큼 완성된 검의 수만큼 천금화가 착실히 쌓였다.
 
 -스킬, 손기술을 얻었습니다.
 
 야장술이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서자 얻은 스킬이었다.
 
 <손기술>
 손에 섬세함을 더해주고 완성품의 디테일을 높여준다.
 등급: 유니크.
 레벨: 1.
 효과: 섬세함 20% 증가, 디테일 30% 증가.
 
 그리고 그다음 날이었다. 대련의 방에 있는 문 하나가 스스로 무너졌다.
 
 -암흑의 방이 개방됩니다.
 
 * * *
 
 4대 1 대련을 하기 위해 용효가 쳤던 석문이 너무 큰 손상을 입어 복구되지 않고 있다 무너진 것이었다.
 용효가 석문이 무너진 문 앞에 섰다.
 들어가고자 했다면 진작에 이 방뿐 아니라 다른 방으로도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해야 할 수련들이 이미 충분히 많았다. 용효는 한두 개의 수련이라도 목표로 한 경지까지 이루기 전까진 수련 수를 더 늘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잠깐 보고만 나오는 정도라면······.”
 뭔가에 홀린 듯 용효가 갑자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이름 그대로 보이는 것 온통 어둠뿐이었다.
 길을 잃어 바로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에 용효가 몸을 돌렸다.
 그런데 문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련의 방은 아주 밝았다. 고작 다섯 걸음을 걸어 들어왔을 뿐인데 그 밝은 대련의 방 불빛이 안 보일 리 없었다.
 그러나 사방 어디를 봐도 빛 한 줄기 없었다.
 그때였다.
 “······?”
 용효의 머릿속에 누군가 강제로 주입하는 듯한 장면들과 1만 년도 더 전의 기억들이 의식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수련의 방 밖의 상황으로 보이는 절망적인 장면들도 슬프거나 비참하게 느꼈던 과거의 기억들도 조금도 용효를 괴롭히지 못했다.
 용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몸만 단련돼온 세월이 아니었다.
 다만, 해야 할 수련들을 못 하게 됐단 생각만이 용효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암흑의 방에서의 수련도 언젠간 해야 할 수련이었다.
 그러나 원하는 목표까지 닿지 못하고 중간에 끊겨버린 수련을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해야 한다면, 목표로 한 경지까진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뭘 하자는 거지?”
 걸어도 걸어도 계속 어둠만 이어졌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육체와 관련된 어떤 욕구도 느껴지지 않았다.
 별 수 없이 계속 걸었다.
 걸으며 기심환을 돌리고, 마나가 느껴졌기에 오러홀도 돌렸다.
 
 -1년.
 
 어느 날 갑자기 용효의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이었다. 용케 글자는 보였다.
 “벌써?”
 
 -2년.
 -3년.
 -10년.
 
 “눈으론 찾을 수 없다······.”
 10년을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면, 그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기로 더듬어 찾으려 해서는 암흑 속 괴물도 문도 절대 찾아낼 수 없단 뜻이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는 눈을 만들겠다.”
 그런 눈을 갖는다면 암흑 속 괴물을 찾아내고 문을 찾고, 18호의 주술석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마법 지식 없이 마법 없이 회로를 연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뚝 멈춰선 용효가 기심환과 오러홀을 돌리며 극진용투도를 수련하고 중량의 팔찌로 무게를 올려 팔굽혀펴기를 했다.
 동시에 기심환의 기를 머리 위로 올려 이마에 세로로 된 눈을 그렸다.
 
 -200년.
 -300년.
 -500년.
 
 계속 그렸다.
 그리고 또 그렸다. 자신을 믿었다.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용효는 사람의 눈 모양을 그리고 있지 않았다.
 반은 용효의 의지였고, 반은 심기환과 이어진 기(氣)가 멋대로 움직여 무엇을 본뜬 건지 알 수 없는 괴상스러운 눈을 그려냈다.
 
 -700년.
 -1000년.
 -1200년.
 
 돌연······.
 용효의 이마가 세로로 쭉 그어지며 그 안쪽에서 빙글 잿빛 눈동자가 나타났다.
 
 -심안(心眼)을 얻었습니다.
 
 그 파충류의 눈 같은 눈이 눈꺼풀을 좌우로 여닫으며 가만히 암흑 속을 주시했다.
 “그어어어······.”
 용효가 암흑의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1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직 절망적인 장면들을 주입하고 우울한 기억을 들추기만 하던 괴물이 처음으로 보인 다른 행동이었다.
 “너로구나······.”
 용효가 괴물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도 괴물은 연기처럼 흐릿한 실루엣만 보였다.
 자그마치 1200년간 자신의 주변을 한 시도 떠나지 않고 맴돌며 어둠 속에 기어코 주저앉히려 했던 괴물, 용효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얼굴을 드러내라.”
 심안은 육체의 눈이 아닌 정신으로 보는 눈, 정신은 원기(元氣)와 이어져 있고, 몸속의 모든 원기는 기심환과 이어져 있었다.
 반드시 보고자 하는 의지를 심안에 담으면 뭐든 볼 수 있었다.
 기심환이 맹렬히 회전했다.
 괴물의 몸을 두르고 있던 검은 연기가 벗겨져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러난 몸은 살 한 점 없이 뼈만 앙상했다.
 인간이라 하기에도 괴물이라 하기에도 뭐한 볼품없는 모습.
 때려잡을 필요도 없었다.
 용효의 심안 앞에 발가벗겨진 괴물은 괴성을 내지르며 재로 변해 흩어져갔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용효는 몸을 돌렸다.
 생겨난 게 아닌, 수십 가닥의 기들이 계속 그려내고 있는 심안은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술법이 아니었다.
 벌써 기심환의 내공이 절반 가까이 소모되어 있었다. 빨리 문을 찾아 나가야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암흑이 소멸합니다.
 
 “문을 찾는 게 아니었구나.”
 수련자에게 심안을 만들 수 있게 하고, 사용법을 알려주기 위해 준비해놓은 수련의 방이었던 것이다.
 그 말은 수련의 방 밖에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없고, 기와 오러를 써도 느낄 수 없으며 정령마저 가둬버리는 적도 있단 뜻이었다.
 그 적 중에는 기 공격도 오러 블레이드도 통하지 않고 심안에 보인 것만으론 죽지 않는 적도 있을 것이다.
 반드시 마법도 초절정이라 할 수 있을 경지까지 익혀 수련의 방을 나가야 하는 이유였다.
 그때, 암흑이 모두 증발해 사라졌다.
 
 -결계가 풀립니다.
 -마법의 방이 개방됩니다.
 -마법사의 가장 큰 자질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용효, 당신은 천부적인 마법사의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구리 열쇠를 얻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마법사가 마법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 같은 방이 용효의 눈앞에 나타났다.
 
 * * *
 
 방은 정사각형이었다.
 바닥엔 책들이 쌓여 있고, 책상 위엔 양피지와 깃펜, 플라스크와 시험관이 놓여 있었다.
 각 벽에는 문이 달려 있었다. 문손잡이가 달린 제대로 된 문이었다.
 용효가 앞에 있는 벽으로 가 문손잡이의 홈에 구리 열쇠를 넣어 돌렸다.
 찰칵.
 “······도서관?”
 큰 서재 정도가 아니었다.
 도서관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넓었고 그 넓은 방을 책장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책장 안엔 하나같이 벽돌처럼 두꺼운 책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용효가 책장에서 양장본 한 권을 꺼내 반을 펼쳤다. 한글이었다. 그러나 읽어도 내용은 이해되지 않았다.
 도서관을 나와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10평 정도 되는 방이었다.
 바닥에 색색의 마석들이 박힌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마법 수련을 하는 방일 듯했다.
 이어 남은 두 문도 열었다.
 열쇠 홈이 없는 문밖에는 대련의 방이 있었고, 다른 한 곳은 연구실이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실험 기구들이 벽을 채우고 있고, 바닥엔 굵직한 기계관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방 중앙엔 녹색 물이 채워진 기다란 원통이 놓여 있었다.
 통 안엔 TV 뉴스에서 보던 괴물처럼 인간 같은 골격을 가진 인간도 동물도 아닌 뭔가가 들어 있었다.
 키메라?
 호문클로스?
 지금으로선 나올 리 없는 답을 깊이 생각지 않고 용효는 방을 나와 대련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 녀석······.”
 마법의 방문 앞.
 초먼닭이 일어나 감격에 젖은 눈으로 용효를 올려다봤다.
 1200년의 세월이었다.
 굶어 죽었다 생각했는데 초먼닭의 모습은 깃털 색이 더 붉게 변한 것 외엔 1200년 전과 다름이 없었다. 굶은 모습이 아니었다.
 영물을 넘어 영물과 영체의 중간쯤의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배고프냐?”
 초먼닭이 고개를 끄덕이곤 용효를 1200년 전 그날처럼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
 “있어 줘서 기쁘다······.”
 그 말만 투박하게 한 용효는 먼저 수련의 방으로 가 7가지 채소를 넣은 호화스러운 채소 볶음을 만들어 그 접시를 들고 야장의 방으로 갔다.
 “넌 먹어라, 난 수리할 테니.”
 18호의 배를 가르고 이마에 심안을 그려냈다.
 이마가 갈라지고, 그 안에서 잿빛의 심안이 그려지자 주술석 안의 마력 회로들이 속속들이 들여다보였다.
 용효가 주술석 안으로 오러를 흘려 넣어 마력 회로들을 이어 붙였다.
 그러나 작동하지 않았다.
 다시 전부 떼어내 다른 마력 회로들끼리 연결시켰다. 그걸 반복했다.
 10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돌연 주술석이 빛을 발했다. 18호가 번쩍 눈을 떴다.
 
 -강철 주술인형 18호가 당신을 주인으로 인식합니다.
 
 * * *
 
 18호는 용효가 어느 방을 가든 따라다녔다. 그러나 용효가 시키는 건 하지 않았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다. 용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싸우자.”
 용효가 공격을 해도 18호는 주인인 용효에게 반격을 하지 않았다.
 언어로 확실히 명령을 전달해야 대련이 가능할 듯했다.
 
 -한글책을 얻었습니다.
 
 만물 자판기에서 한글책을 사 용효는 하루 20분씩 18호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18호의 학습 능력은 아주 뛰어났다. 한 달 만에 한글을 마스터하고 용효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 됐다.
 “기파를 어떻게 쏘지?”
 “나도 몰라.”
 “모르는데 어떻게 쏴?”
 “그냥 쏠 수 있어.”
 “쏴봐라.”
 “용효한테?”
 “철 기둥에.”
 18호가 대련 때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18호의 양 손바닥에서 막대한 양의 공력과 오러, 마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용효가 이마에 심안을 그렸다.
 심안이 보는 장면이 느리게 흘렀다.
 더 자세히 보려 하자, 45도 각도를 그리기 시작한 기파 속이 현미경 렌즈처럼 확대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마력이 자색 화염으로 변해 기들을 일제히 폭발시키고 오러를 녹였다.
 기와 오러, 마법이 뜨거운 물에 들어간 가루처럼 한순간에 녹아 융합하더니 붉은빛을 내는 고열의 에너지로 변했다.
 “역시······.”
 마법은 필수였다.
 게다가 아주 높은 수준의 화염 마법을 시전할 수 있어야 했다.
 훌륭한 마법 스승이 있다면 하루 두세 시간의 마법 수련으로도 성과를 낼 수 있겠지만, 18호는 에너지파를 쏠 때 쓰는 불꽃 마법 외의 마법은 쓸 수 없었고 마법 지식도 없었다.
 마법 수련에 오랜 시간 몰두할 수 있다면 모를까, 이해가 안 되는 글로만 채워진 도서관의 그 수많은 마법서를 떠올리자 용효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마법에 손을 댄다면 수련 두세 개 정도는 중단해야 한다. 그래야 마법 수련에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문득 용효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있었다.
 용효가 18호를 바라봤다.
 지능을 갖고 있고, 말을 할 줄 안다. 뛰어난 학습 능력까지 갖고 있다.
 지치지도 않는다.
 마법의 방으로 간 용효가 도서관에서 마법서를 들고 돌아왔다.
 그 마법서를 18호에게 건넸다.
 “소리 내서 읽어라.”
 18호가 읽어주는 글을 들으며 용효는 드래곤 가죽샌드백을 쳤다.
 극진용투도를 수련하고 심기환을 돌렸다.
 펀치와 킥이 샌드백을 쾅쾅 퍽퍽 치는 소리에도, 마법이 만들어내는 18호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 선명히 들렸다.
 육체단련을 할 때도, 검술 수련을 할 때도, 검을 만들 때도 18호는 용효의 옆에서 계속 책을 소리 내 읽었다.
 하나같이 크고 두껍지만 잠자는 시간만 빼고 종일 들으니 하루 2~3권의 마법서를 들을 수 있었다.
 10년이 지나자 1만 권이 넘었고, 100년이 지나자 10만 권도 넘었다.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그저 들음일 뿐이었다. 아주 기초적인 마법서의 내용도 용효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시 첫 권부터 읽어줘.”
 용효는 100년간 읽은 10만 권의 마법서를 다른 수련을 계속해 나가며 1000년간 반복해 들었다.
 조금씩 마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오망성 서클링을 만들었습니다.
 -마력 스탯이 개방됩니다.
 
 마법진이 새겨진 방으로 들어가 서클링 속에 마법 술식들을 새겨 넣었다.
 
 -1서클링을 완성했습니다.
 -2서클링을 완성했습니다.
 -3서클링을 완성했습니다.
 -총 132개의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건 용효만이 아니었다. 펀칭 머신기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18호가 말했다.
 “난 217개나 쓸 수 있는데.”
 “217개?”
 극진용투도 수련을 하기 위해 드래곤 가죽 샌드백 앞으로 가던 용효가 돌아섰다.
 에너지파를 쓰기 위한 마법 외에 다른 마법은 일절 못 쓰던 18호였다.
 그런데 자신과 마법 횟수가 80개 이상 차이 난다니 용효는 충격을 받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
 “어떻게 한 거지?”
 “용효보다 더 많은 마법술식을 서클링에 각인했으니까지.”
 “······너도 3서클링이지?”
 “그렇지.”
 18호는 잠을 자지 않았다.
 용효가 자는 동안은 완전한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18호도 용효와 똑같이 3서클이라면 용효에게 마법서를 소리 내 읽어준 것 외에 다른 마법 수련을 더 하지는 않았단 뜻이었다.
 그렇다면, 순전히 학습 능력과 숙련 속도의 차이였다.
 “마법만이 아니겠군······.”
 18호는 1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수련을 봐왔다.
 극진용투도 기술로 샌드백과 허수아비를 치는 걸 봐왔고, 기 상태와 기 폭주 상태에서 기를 어떻게 다루는지도 지켜봤다.
 “극진용투도를 쓸 수 있어?”
 “있지.”
 용효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극진용투도는 내 무술보다 강해.”
 물론이다.
 그 어떤 무술보다 강한 무술이 극진용투도다 용효는 자신했다.
 “쓰면 안 돼?”
 “된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18호가 용효의 웃음처럼 후후······ 작게 소리 내 웃었다.
 “기도 오러도 마법도 쓰지 않고 극진용투도만 써서 날 이길 수 있나?”
 “잘 몰라. 나중엔 이길 수 있지만.”
 이길 수 있다······?
 극진용투도의 창시자인 나를?
 당돌한······.
 “대련하자.”
 대련으로 파괴되고 파괴되다 혹시 18호가 더 수리되지 않으면 마법 수련이 중단돼 버리고 말기에 용효는 처음의 목적과 달리 18호와 대련 수련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도 궁금했다.
 분명 자신만 더 강해진 게 아닐 것이다. 18호도 강해졌을 것이다. 그 수준을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룰은 네가 70% 이상의 손상을 입게 되면 내 승리, 내가 포기 선언을 하거나 내 내공이 70% 이상 소모되면 네 승리다.”
 “알았어.”
 기대감도 긴장도 담기지 않은 얼굴로 18호가 펀칭 머신기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용효가 걸음을 떼 대련의 방으로 가자 18호가 그 뒤를 따랐다.
 대련의 방 안쪽으로 들어간 용효가 극진용투도 자세를 취했다. 철 기둥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선 18호도 용효와 거울처럼 똑같은 극진용투도 자세를 취했다.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 녀석이······.’
 대련할 때마다 용효가 그랬듯 18호는 용효에게 달려들지 않고 탐색하며 용효를 주시했다.
 결국, 처음으로 용효가 선제공격에 들어갔다.
 
 * * *
 
 12시간 넘게 이어진 극진용투도 대련은 용효의 승리로 끝났다.
 대련 시간은 길었으나 그래도 이 정도면 용효의 압승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용효의 표정은 어두웠다.
 수련의 방에서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수련의 이유와 정답이라 믿었던 확신들이 어둠 속으로 폭삭 내려앉아 꺼져버리는 자괴감도 느꼈다.
 “안일했구나······.”
 정말 자신이 해온 수련들은 최선이었나······? 정답이 맞았나? 정말 최선을 다했나?
 적당히 보내버린 시간은 없었나?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순 없었을까?
 아직 자신은 절대강자가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55000년의 수련을 끝마치고 수련의 방을 나갔을 땐 자신을 이길 적수는 있을 수 없다 자만했던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정말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용효를 괴롭히는 생각은 하나 더 있었다.
 ‘이 수련을 해야 할 사람이 꼭 나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
 패하는 쪽은 머지않아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심지어는, 55000년의 수련이 모두 끝난 뒤 18호가 자신보다 더 강해져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18호는 용효의 지시만을 따르는 용효의 무기다. 밖으로 나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강력한 무기를 얻었으니 좌절할 일이 아니라 기뻐할 일이었다.
 그러나, 용효는 자신이 쓰는 무기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 수련의 방에서 수련해야 할 사람이 꼭 나여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럼 만들겠다.
 꼭 나여야 할 이유를.
 이유가 사라졌다면 다시 만들어내면 되었다.
 왜?
 수련을 계속하기 위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절대강자가 되기 위한 수련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다.
 18호를 넘지 못한다 해도 뇌리에 각인된 아내와 딸을 구하고 지키기 위한 수련은 계속해 나가겠지만, 절대강자가 되기 위한 수련은 거기서 끝이었다.
 “······부딪친다.”
 지금껏 그래왔듯. 그리고 더욱 강해지리라.
 용효의 얼굴에 혼란과 불안의 감정이 깨끗이 사라졌다.
 더 치열하게 수련에 몰두했다.
 예전보다 더 무겁고 묵직하게 변한 시간이 흘러갔다.
 900년이 지났을 때였다.
 
 -손기술 스킬이 10LV이 됩니다.
 -초급 정령술이 중급 정령술이 됩니다.
 -스킬, 용화권(熔火拳)을 얻었습니다.
 
 “따라와라. 널 강화시켜 주마.”
 용효는 이 수련의 방에서 수련을 해야할 사람이 자신이어야 한다는 답을 얻기 위해 계속 한계와 벽에 몸을 던졌다.
 
 -강화용 기계관을 얻었습니다.
 -강화용 용골(龍骨) 세트를 얻었습니다.
 -모리하르콘 덩어리를 얻었습니다.
 -흑마주술석을 얻었습니다.
 
 만물 자판기에서 강철 주술인형의 강화에 사용되는 재료들을 산 용효는 18호를 데리고 야장의 방으로 갔다.
 초절정 경지의 야장술과 MAX가 된 손기술 스킬, 중급 정령술을 사용해 혼신을 다해 18호를 강화시켰다.
 땡깡똥깡!
 똥깡땡깡!
 강화가 끝나자 용효는 바로 18호를 데리고 대련의 방으로 들어갔다.
 “극진용투도, 로이렌 검술, 기, 오러, 마법, 무엇이든 다 써도 좋다.”
 
 * * *
 
 “극-수도일격!”
 왼쪽 옆구리로 날아드는 18호의 펀치를 왼손으로 붙잡은 용효가 잿빛 기를 휘감은 수도를 팔등으로 내리쳤다.
 파각!
 모리하르콘 재질의 팔등이 부러지며 녹색 액체가 흔들어 딴 탄산캔처럼 거품을 부글부글 만들며 후두둑 쏟아졌다.
 용효는 18호의 안면에 펀치까지 날리진 못하고 뒤로 물러나 옆으로 달렸다.
 허공에서 빛을 뿌리며 생겨난 청뢰(靑雷)들이 얼린 초콜릿을 깨부수듯 지면을 부수며 용효를 쫓았다.
 청뢰의 기세가 약해지자 용효가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18호를 향해 도약했다.
 용효의 펀치와 킥을 피하고 흘리며 18호도 기를 폭주시켰다.
 그 직후, 용효의 로우킥이 갑자기 방향을 꺾어 18호의 발목을 걸더니 옆으로 당겼다.
 순간 18호의 양다리가 다리 찢기를 하듯 쭉 벌어졌다.
 용효의 주먹에 불길이 휘감겼다. 정령술이었다. 잿빛 기들이 마치 그 불길이 만들어낸 연기처럼 흩어졌다가 소용돌이를 그리며 불꽃과 마구 휘감겼다.
 “용화권(熔火拳)!”
 콰앙!
 18호의 쇄골이 부러져나갔고, 이어 절단면으로 옮겨붙은 불꽃이 모리하르콘 외피를 초콜릿 녹이듯 녹였다.
 “전력을 내라.”
 갑자기 용효가 멈춰 서며 말했다.
 “용효가 죽을 수도 있는데.”
 “상관없다.”
 “알았어.”
 직후, 18호의 모습이 용효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용효가 심안을 열었다. 심안이 보는 장면이 느리게 흘렀다. 그러나 18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용효가 뒤로 몸을 돌렸다.
 심안이 보는 장면들이 느려지는 것일 뿐, 용효만 두고 시간이 느려지는 건 아니었다.
 피할 수 없다.
 용효가 가드를 올렸다.
 그런데 그때, 바로 지척까지 온 18호의 몸이 지우개로 군데군데를 지우는 듯 지워지기 시작했다.
 공간도약······!
 마법이었다.
 본다!
 용효가 심안으로 꿰뚫듯 18호의 몸속을 들여다봤다.
 서클링 속의 마법술식들을 현미경으로 보듯 들여다보고, 전신을 휘감아 도는 마력의 움직임을 살폈다.
 부족하다······.
 옆에서도 뒤에서도 위에서도 봐야만 했다.
 본다!
 기계였다면 불티를 튀기며 연기를 피워 올릴 기세로 기심환이 회전했다.
 기심환과 이어진 기 줄기들이 심안 속에 뭔가를 더 그려내기 시작했다. 심안의 형상이 더욱 복잡해지고 선명해졌다.
 
 -심안이 용마안(龍魔眼)이 됩니다.
 -서클링에 공간도약의 술식이 각인됩니다.
 
 “날 넘어서 봐라.”
 이것은 나의 수련이다.
 이곳은 날 위한 방이다.
 “나도 널 넘어서겠다.”
 
 -초인3-기(氣)-폭주-용마안-7버프 상태가 됩니다.
 
 용효의 몸이 사라졌고······.
 왼 다리가 꺾이고 목이 부러지고 왼쪽 팔이 뜯겨 나가고, 왼쪽 눈이 깨져 흩어지고, 전신이 불꽃에 휩싸인 18호가 지면에 크레이터를 만들며 곤두박질쳤다.
 “내가 더 강한데 왜 내가 항상 져?
 세 번째 대련 후 2천 년이 지났을 때, 용효가 말을 걸지도 질문을 하지도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18호가 용효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왜 그게 궁금해졌지?”
 용효는 놀랐다.
 인간이어야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가 들 수 있는 의문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용효보다 더 강하고, 용마안도 만들 수 있게 됐는데도 계속 지니까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약해.”
 “약하지만 강하다.”
 “흠······.”
 “이해가 안 되나?”
 “응.”
 “불가능한 일을 이뤄내는 게 인간이다.”
 향상심과 경쟁심을 느끼고, 과거를 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고, 한계 이상으로 더 치열하게 수련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용효는 18호를 넘어설 수 있었다 생각했다.
 “그렇군.”
 이해한 건지 흥미를 잃은 건지 펀칭 머신기에서 폴짝 뛰어내린 18호가 수련의 방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마법서를 들고 돌아와 펀칭 머신기 위에 다시 걸터앉아 마법서를 소리 내 읽었다.
 마법서를 들으며 용효가 모리하르콘 허수아비를 치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론 마법술식을 풀고, 풀이가 끝난 마법 술식들은 바로바로 서클링에 새겨 넣었다.
 
 -324개의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325개의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326개의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마법의 방 도서관에 있는 마법서들로 각인할 수 있는 원소 마법은 총 326개였다. 그 326개의 마법을 다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진정한 6서클 마법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도서관엔 익힐 수 있는 마법 지식이 많았다.
 “내일부턴 하루는 주술인형 학, 하루는 마도기계 학 책을 읽어줘.”
 “응.”
 마법서를 도서관 책장에 꽂고 돌아온 18호가 드래곤 가죽 샌드백을 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대련에서 일방적인 공격이 아닌 공방이 가능하도록, 18호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용효가 수련 시간을 줬기 때문이었다.
 100년이 지났다.
 그동안 용효는 3만 5천여 권의 주술인형 학 책과 마도기계 학 책을 들었고, 이후 5백 년 간은 그 3만 5천 권의 책을 반복해 들었다.
 그러고 나자 18호의 가슴에 흑마주술석을 하나 더 장착해 2개의 주술석을 함께 가동시킬 수 있단 확신이 들었다.
 “더 강화시켜 주마.”
 용효가 만물 자판기에서 흑마주술석을 사 들고 야장의 방으로 갔다.
 
 * * *
 
 오른쪽 가슴 속에 장착된 흑마주술석이 빛을 발했다.
 성공이었다.
 이어 용효는 화덕에 비스릴 덩어리와 모리하르콘 덩어리를 넣고 용불을 불꽃 속에 넣어 두 금속을 녹였다.
 두 금속이 엿가락처럼 녹아 섞이자 용효는 용불을 화덕 밖으로 꺼냈다.
 잠시 뒤 수은처럼 변한 금속들이 젤리 정도의 경질로 굳어지자, 모루에 올려 정령술을 두른 망치로 두드렸다.
 만들고자 하는 게 있는 게 아니었다.
 초절정에 오른 야장술과 중급 정령술, 수없이 읽은 주술인형 학과 마도기계 학 책들을 통해 문득 얻은 영감(靈感)이 있었다.
 뭔가 만들어질 수 있을 듯했다.
 
 -성철(星鐵)을 얻었습니다.
 
 비스릴과 모리하르콘보다 더 단단하면서도 더 높은 탄력을 가진 금속이었다.
 18호의 기존 외피보다 더 얇게 만들어도 더 단단하고 튼튼한 외피가 될 테고 더 섬세한 단조도 가능했다.
 용효는 하루 3시간씩 18호의 외피를 한 조각 한 조각 만들어 나갔다.
 땡깡똥깡!
 똥깡땡깡!
 반년 뒤······.
 외피 교체 작업이 끝나자 흑마주술석에서 평소와 다른 기운의 마력이 퍼져 나왔다.
 그 마력들이 머리를 주물럭대며 이목구비를 빚고 인조 피부와 손톱, 인조 모발도 만들어 기존 18호의 외모를 완벽히 구현했다.
 
 -어느 신이 용효 당신의 야장술에 깊이 탄복합니다.
 -그 신이 용효 당신의 영혼에 각인을 새겨줍니다.
 -영혼각인란에 ‘신이 인정한 야장’이 추가됩니다.
 -손기술 스킬 효과가 50% 증가합니다.
 -야장 작업 시 근력이 50% 증가합니다.
 -유니크 제작 확률이 50% 증가합니다.
 
 “오늘부턴 마족 소환술 마법서를 읽어줘.”
 천사들이 관리하기 때문인지 도서관엔 흑마법서가 없었고, 만물 자판기에도 흑마법 책은 있어도 흑마법 술식을 익혀 각인할 수 있는 마법서는 없었다.
 그러나 흑마법 책이 있다는 건 흑마법도 존재한단 뜻이었다.
 용효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익히고 서클링에 각인해 넣고 싶었다.
 
 50년 뒤.
 마족 소환술을 마스터하자 용효는 바로 마족을 소환하기 위해 만물 자판기에서 홍마보석과 소환의식용 촛불을 샀다.
 용효는 오러 블레이드를 두른 검으로 대련의 방바닥에 마법진을 새겼고, 18호는 그 위에 마석들을 박고 촛불을 올렸다.
 마족 소환이 차단되는 공간일 수도 있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나와라.”
 마법진에 박힌 홍마보석들이 붉은빛을 발했다.
 반쯤 녹아내린 촛불들이 녹색 연기를 자욱이 뿜어냈다.
 마법진 아래에서 검고 뾰족한 손톱을 가진, 마치 곤충의 다리처럼 긴 팔이 올라왔다.
 그 팔이 바닥을 짚고 몸을 끌어올렸다.
 검붉은 가죽에 관자놀이엔 달팽이 집처럼 돌돌 말린 뿔이 달려 있고, 키는 굽은 허리를 펴면 2m가 넘을 것 같았다.
 “누가 나를 소환하였느냐.”
 “나다.”
 “나를 소환한 대가는 너의 피와 살이다. 또한, 내 힘을 빌리고 싶다면 네 영혼을······.”
 갑자기 마족이 말을 멈추더니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너는······ 누구냐······.”
 “용효다.”
 “왜 나를 소환하였느냐······.”
 “알고 싶은 것과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무엇이냐······.”
 “따라와라.”
 용효가 수련의 방으로 걸어갔고, 마족은 순순히 용효의 뒤를 따랐다.
 TV 앞에 앉은 용효가 TV를 켰다. 마족이 용효의 옆에 앉았다. 용효가 볼레TV의 다시 보기로 들어가 뉴스를 틀었다.
 “알고 있나?”
 외뿔을 가진 뿔 거한과 고릴라 같은 몸에 늑대의 머리를 가진 괴물, 월식에 가려진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대도를 든 자를 보여준 뒤 용효가 물었다.
 “모른다······.”
 용효가 이마에 심안을 그렸다. 그 눈으로 마족을 바라봤다. 사실이었다.
 마물도, 마족도, 마왕도 아니다?
 “그럼 뭐지?”
 “······모른다.”
 이번에도 사실이었다.
 “뭔 거 같나?”
 “모른다······.”
 “죽고 싶나?”
 용효가 마족을 노려봤다.
 “흐어어······ 허으······.”
 마족이 몸을 사시나무 떨듯 오들오들 떨었다. 그러곤 지린내가 진동하는 검은 물을 앉은 자리에 지렸다.
 “내게 흑마법을 가르쳐라.”
 “불가능하다······.”
 “왜지?”
 “당신의 영혼에 각인된 신의 흔적 때문이다······.”
 “그럼 인형에게 가르쳐라.”
 용효가 펀칭 머신기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자신과 마족의 대화를 듣고 있는 18호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건 가능하다······.”
 “하루 2시간씩 가르쳐라.”
 용효가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족도 용효를 따라 일어났다.
 문을 열고 대련의 방으로 들어가자 그 뒤를 초먼닭과 용불, 펀칭 머신기에서 내려온 18호가 뒤따랐다.
 잠시 주저하는가 싶던 마족도 결국 그 뒤를 따랐다.
 대련의 방을 지나 야장의 방으로 들어간 용효가 화덕에 흑철 덩어리를 툭 던져 넣고 망치를 들어 마족에게 내밀었다.
 “만들어라.”
 “······무엇을?”
 “검을.”
 “얼마나?”
 “내 수련이 끝날 때까지.”
 마족의 동공이 흩어져버릴 기세로 거세게 흔들렸다. 이 방이 어떤 방이며 그 수련 시간이 어느 정도의 시간인지 알게 된 눈치였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나 만드나?”
 “천금화가 필요하다.”
 그 말에 마치 개가 냄새를 맡듯 코를 킁킁거린 마족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이미 충분히 갖고 있지 않나······.”
 “더 많이 필요하다.”
 “무엇을 사려고······?”
 “만물 자판기 안의 모든 것.”
 무엇에 떠는 걸까.
 마족은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 몸을 떨어댔다.
 “이름이 뭐지?”
 “······볼로니아 쿠스코 루미톨레 파나바 델 미켈보르토베너다.”
 “마족이라 부르겠다.”
 “······.”
 “도망치지 마라, 마족. 죽는다.”
 몸을 돌려 용효는 야장의 방을 나갔고, 야장의 방 안에선 카앙- 카앙 캉! 흑철을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련의 방으로 돌아온 용효가 에너지파 수련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왼팔의 오망성 오러홀이 소멸합니다.
 -심장의 오망성 서클링이 소멸합니다.
 
 에너지파를 쏘기 위해선 재구축이 필요했다.
 왼손에 오망성 서클링이, 심장엔 원 모양의 서클링이, 그리고 심장 안엔 기심환이 하나 더 만들어져갔다.
 그리고 용효는 대련의 방에 있는 남은 세 문 중 하나를 더 열었다.
 
 -수련자들의 방이 개방됩니다.
 
 수련자들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건 1월 1일 단 하루뿐이었다. 앞으로 반년이 지나야 들어갈 수 있었다.
 심장을 두르는 서클링과 왼손바닥의 오망성 서클링은 완성된 상태였다. 두 번째 기심환을 만드는 작업도 막바지였다.
 반년 안에 완성될 것이다.
 기심환에 생각했던 대로 무한히 내공을 쌓을 수 있었다면 용효는 기심환을 심장에 더 만들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심환은 물리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 내공이 바닥나지 않는 한 한계치 없이 얼마든지 가속시킬 수 있었다.
 굳이 2개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내공이 250갑자를 넘으면서부터 원통 모양이던 기심환의 끝이 원뿔 모양이 돼가며 좁아져 갔다.
 쌓을 수 있는 내공량에 한계가 있단 뜻이고, 그 한계에 닿을 날도 그리 멀지 않을 듯했다.
 그러나 심장 속의 기심환과 단전의 기심환을 연결하면 기심환에 쌓을 수 있는 최대 내공량을 배로 늘릴 수 있었다.
 
 한 달 뒤.
 “반대편에서 에너지파를 쏴줘.”
 18호가 반대편으로 가 용효와 마주섰다.
 용효가 극진용투도의 기본자세로 하체를 낮추고 양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18호도 거울처럼 용효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초인3-기(氣)-폭주-12버프 상태가 됩니다.
 
 용효가 기심환에서 기들을 양손으로 올려보내고 오러홀 속의 오러를 손바닥 밖으로 밀어냈다.
 이어 서클링을 돌려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화염 마법인 5서클 마법 작화화(炸花火)를 만들어냈다.
 화르르륵!
 쌀보리를 하듯 오므려진 양손 안에 불꽃이 생겨나 기와 오러를 녹이며 한순간에 융합했다.
 고열의 에너지가 만들어지며 용효의 손안에서 포탄처럼 에너지파가 쏘아져 나갔다.
 콰콰쾅!
 
 -용마안이 열립니다.
 
 이마에 용마안을 그려낸 용효가 자신의 에너지파와 18호의 에너지파가 충돌하는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봤다.
 팽팽히 힘겨루기하던 두 에너지파가 잠시 뒤 거의 동시에 흩어져 소멸했다.
 푸쉬이이익!
 용효의 전신에서 짙은 수증기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몸을 기 폭주 상태로 만들어 전신을 기 줄기들로 칭칭 휘감고, 12개의 버프를 몸에 걸었는데도 역시 몸에 가해지는 반발력이 상당했다.
 “해결해야 할 게 많군······.”
 에너지파는 강력하긴 하지만 무엇이든 일격에 녹여 버릴 수 있는 일격필살의 기술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탈력감을 받는다면 실전성이 없었다.
 “더 강력한 화염 마법이 필요해······.”
 내가 만들자.
 그리고 에너지파를 스킬로도 만들어낸다면 18호의 에너지파를 능가하는 에너지파를 만들 수 있고, 에너지파를 쏘고 난 뒤의 탈력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로이렌 검술에 이어 수련하기 시작한 창왕(槍王) 비하엘의 창술을 수련하며 용효는 기심환과 오러홀을 돌리고, 지금까지 들으며 쌓아온 마법 지식을 기억 속에서 뒤져가며 마법을 창조해낼 방법을 찾고 연구했다.
 세 번의 진화로 용효의 육체는 단지 힘이 세지고 튼튼해진 것만이 아니었다.
 감각과 운동신경도 진화했고, 감각과 운동신경이 진화하려면 뇌의 진화도 필수였다.
 용효가 여러 수련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이유였다.
 카앙, 캉, 카앙······!
 창술 수련을 끝낸 용효가 야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형편없군.”
 “······혼신을 다해 만들고 있다.”
 용효가 마족이 만들어 쌓아놓은 검 한 자루를 집어 살피더니 미간을 구겼다.
 다른 검들도 몇 자루 더 들어 살폈다. 용효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다.
 “전부 노말 등급이군.”
 “레어도 있다······.”
 “내가 만든 노말 검보다 못한 레어를 말하는 건가?”
 “······.”
 마족은 억울했다.
 농땡이를 피우는 게 아니었다. 검을 만드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명검이나, 레어 유니크 등급의 검은 그저 열심히 혼신을 다한다 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때, 마족의 손에서 망치를 빼앗아 든 용효가 마족이 만들고 있던 비스릴 검날을 치기 시작했다.
 땡깡똥깡!
 똥깡땡깡!
 “차이를 알겠나?”
 “······소리다.”
 “그렇다. 검을 만들려는 철에선 이렇게 경쾌한 소리가 나야 한다. 그런데 마족, 네 망치 소리는 네 마음처럼 탁하기 짝이 없다.”
 “······.”
 다시 담금질을 시작한 용효가 검날을 물속에 넣고 달구고 치는 걸 몇 번 더 반복한 뒤 완성된 검날을 마족에게 툭 넘겼다.
 “······유니크!”
 마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담금질을 몇 번이나 했다고······!
 용효의 영혼에 새겨진 신급의 각인으로 유니크 등급을 받을 확률이 30% 증가한다지만, 검날엔 유니크 등급뿐만 아니라 명검 등급까지 붙어 있었다.
 “반년을 더 주마.”
 “······?”
 “내 야장의 방에서 검을 만들어야 하는 마족이 꼭 너여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라.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죽는다.”
 그 말을 끝으로 용효는 야장의 방을 나갔고, 야장의 방 안에선 조금 전보단 좀 더 경쾌해진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년은 화살처럼 흘러갔다.
 
 * * *
 
 -스킬,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을 얻었습니다.
 -6서클 마법, 지평선의 검(Sword of Horizon)을 창조했습니다.
 -6서클 마법, 백화화(白華火)를 창조했습니다.
 
 마법서들에 적혀 있던 더블 캐스팅은 리치, 마족, 드래곤들만의 고유 기술이었다.
 그러나 몸속에 서클링을 2개 만들자 더블 캐스팅은 전혀 어려운 게 아니었다.
 더블 캐스팅이 가능해지자 마법 창조도 가능해졌다.
 두 서클링으로 동시에 시전한 마법을 합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마법을 만들 수 있고, 마법술식을 다 거치지 않아 미완성 상태인 마법을 다른 서클링으로 시전해 완성한 마법에 섞는 식으로도 마법 창조가 가능했다.
 그렇게 창조된 마법을 분석한 뒤 술식을 서클링에 각인하면 마법 조합 없이 바로 시전해 쓸 수도 있었다.
 “지평선의 검.”
 용효가 쥐고 있는 바스타드소드의 오러 블레이드에 지평선의 검(Sword of Horizon)이 씌워지며 푸른빛을 내던 검강이 백색으로 변했다.
 검 손잡이를 양손으로 쥔 용효가 바스타드소드를 허공에 휘둘렀다.
 훙!
 허공에 하얀 선을 그리는 듯한 참격이 생겨나 날아갔다.
 굉음도 없었고 고열도 없었고 불꽃도 일지 않았다. 그런데 철문에 가로로 선이 그어지며 그 안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철문과 그 안의 석문을 함께 베어버린 것이다.
 철 기둥까지 베진 못했지만 참격의 길이가 길고 철문과 그 안쪽의 석문까지 일격에 베어버릴 정도의 공격력이면 충분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참격 마법이었다.
 “다음······.”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백화화(白華火).
 두 개의 서클링이 함께 회전하며 용효의 손바닥 안에 새하얀 불꽃 2개가 동시에 피어나 기와 오러를 녹여 융합했다. 그러자······.
 콰콰쾅!
 새하얀 에너지파가 용효의 양 손바닥에서 포탄이 터진 듯 쏘아져 나갔다.
 “드디어 유니크 등급의 검을 완성······ 키헤에에에에엑-!”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완성된 유니크 검을 들고 대련의 방으로 나오던 마족이 스치지도 않았는데도 에너지파의 열기만으로 몸의 절반이 녹아 사라졌다.
 푸쉬이이이익-!
 지평선의 검엔 흠집도 생기지 않던 철 기둥이 연필처럼 얇아져 있었고, 정면에 있는 철문은 초콜릿처럼 녹고 있었다.
 문이 뚫리지 않도록 용효가 에너지파의 길이를 조절했기에 철문이 녹는 정도에 그친 것이었다.
 “사, 살려······ 나······ 는 유니크······ 검을······ 완······ 성······ 살아야 할······ 이유······ 가······.”
 오른쪽 몸만 남은 마족이 용효를 향해 한팔로 기며 애원했다.
 용효가 마족이 떨어트린 흑철 롱소드를 집어 살폈다.
 “제법······.”
 몸을 돌려 수련의 방으로 들어가 점심으로 나온 먼치킨을 들고 온 용효가 그 먼치킨을 마족 앞으로 툭 던지고 수련자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캡슐을 열고 들어가 의자에 앉자, 용효의 머리 위로 헤드기어가 씌워졌다.
 
 -수련자들의 방으로 이동합니다.
 
 잠시 뒤······.
 시야가 차츰 밝아지자 드러난 공간은 사방이 뻥 뚫린 들판이었다.
 용효가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처럼 도복을 입고 있거나 평범한 캐주얼 차림의 사람들이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있었다.
 “수련자들······?”
 
 -2:59:59.
 
 용효의 눈앞에 뜬 타이머 홀로그램을 통과해 걸어온 한 남자가 용효 앞에 섰다. 용효처럼 도복을 입고 있었다.
 “난 소드 익스퍼트 난이도의 수련자 김진성이다. 이름과 난이도를 밝혀라.”
 “먼치킨 난이도, 김용효다.”
 모닥불 주변이 술렁였다.
 
 
 Chapter 6
 
 
 “먼치킨······?”
 “문제 있나?”
 “아니······ 먼치킨 난이도 수련자를 처음 봐서 좀 놀랐을 뿐이다.”
 놀랐다기보단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수련자들에게서 기와 오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스무 명이 넘는 수련자들 중 기와 오러를 쓸 수 있는 자가 한 명도 없다는 건 이상했다.
 못 쓰는 게 아니라 이곳이 기와 오러를 느낄 수 없는 공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수련자들 또한 자신의 기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가상의 공간인가.”
 “처음 들어왔는데 바로 눈치채다니 눈썰미가 좋군.”
 용효가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김용효.
 직업: 수련생.
 특성: 초인3.
 생명력: 61,522 체력: 61,738.
 근력: 63,119 민첩: 60,912.
 투지: 40,258 인내: 39,112.
 마력: 15,725 교감: 18,451.
 내공: 251갑자.
 
 스킬창 하단엔 스킬과 영혼각인란까지 빠짐없이 붙어 있었다.
 그 말은 이 공간의 아바타들이 육체의 모든 정보를 그대로 복사해 만들어졌단 뜻이었다.
 ······뭘 하라는 거지?
 어떤 수련을 하는 수련장이고, 왜 현실의 육체를 그대로 반영한 아바타를 만든 건지 용효는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련법과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토의해 보다 더 수련 성취도를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스터디 모임이라 생각하면 될 거다.”
 공유? 토의? 스터디?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대답에 용효의 표정이 심드렁하게 식었다.
 그래도 일단 김진성이 안내하는 대로 모닥불로 가 빈자리에 앉았다.
 수련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존댓말을 쓰는 자도 있고 딱딱한 어투로 반말을 쓰는 자도 있었지만, 다들 표정과 화법이 자연스러웠다.
 오래전부터 이 공간에서 꾸준히 만나 교류하며 사회성을 유지해왔단 뜻이었다.
 “근데 정말 먼치킨 난이도에요?”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섞이려 들지 않는 뻣뻣한 용효의 태도에 질문한 남자가 불쾌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다른 남자가 용효를 향해 날 선 목소리를 냈다.
 “슬슬 이제 분위기 좀 파악하지? 그리고 형씨, 확인 못 한다고 허풍떨지 마.”
 “허풍?”
 그렇군······.
 각 수련 난이도들은 수련 시간만이 아니라 수련 퀘스트의 종류, 또는 강도도 다른 듯했다.
 그러니 먼치킨 난이도의 그 험난한 퀘스트들을 클리어하고 2만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련을 해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수련자 중엔 반신 난이도의 수련자도 없었다.
 반신 난이도의 수련자도 만난 적이 없는데 먼치킨 난이도의 수련자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되긴 했다.
 “남호영, 박철호, 말조심해라.”
 붉은 도복을 입은 40대 남자가 그 한마디를 하자, 두 남자가 날카로워진 눈빛을 풀었다.
 “에이, 1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분위기가 왜 이래요. 용효 씨, 저 형들 성격이 좀 까칠해서 그렇지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앞으로 1년마다 계속 만날 텐데 좋게 잘 지내요.”
 용효의 옆에 있는 남자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띄우곤 자기소개를 시켰다.
 “소드익스퍼트 난이도 박상남입니다.”
 “소드마스터 난이도 최윤호입니다.”
 “소드레귤러 난이도 임예림이에요.”
 자기소개가 한 바퀴 빙 돌자 다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정국 형님, 검 좀 보여주세요. 그 검 새로 만드신 거 맞죠?”
 올라가는 입꼬리를 의식적으로 내리며 붉은 도복 남자가 옆에 있는 수련자에게 롱소드를 건넸다.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든 체인메일 복장의 수련자가 이리저리 검을 돌려보더니 장황하게 감탄사를 늘어놨다.
 “이야~, 역시 명검이네요! 정국 형님 야장술 실력은 진짜 알아줘야 한다니까. 실력이 1년 사이에 또 엄청 느셨네.”
 수련자들의 감탄과 칭찬을 들으면 신조차 벨 것 같은 검이 한 바퀴를 돌아 용효의 손으로까지 넘어갔다.
 “형편없군.”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해졌다.
 “검의 균형도 안 맞는 데다, 유니크 등급이라 하기엔 내구력도 형편없군. 차라리 이걸로 수련하는 게 더 수련에 도움이 될 거다.”
 용효가 스탯창과 함께 열 수 있게 된 인벤토리에서 롱소드를 꺼내 붉은 도복남 앞으로 툭 던졌다.
 롱소드를 들어 검날과 힐트를 이리저리 살핀 임정국의 미간이 구겨졌다.
 유니크 등급에, 자신이 만든 검보다 더 높은 공격력과 내구력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불 정령의 기운까지 깃들어 있었다.
 “······당신이 만든 검인가?”
 “내 도제(徒弟)가 만들었다.”
 “도제?”
 제자가 있단 말에 수련자들이 황당해하며 눈을 크게 떴다.
 “도제라 하면 어떤······?”
 “마족이다.”
 “······?”
 음소거를 눌러버린 듯 모닥불 주변이 다시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마족?”
 “에너지파에 좀 심하게 녹긴 했어도 먼치킨 치킨을 먹었으니 죽진 않았겠지······.”
 “뭔 소리야?”
 “수련을 너무 많이 해서 미쳐버린 거 아니야?”
 “싸우자.”
 용효가 다짜고짜 그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자들의 방이 어떤 수련을 하는 곳인지 답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친목 놀이를 하라고 준비해 둔 방이 아니었다.
 대련이다.
 같은 수련자와의 대련을 통해 자신의 전투력을 가늠하고 경쟁심을 고양시키고, 상대에게 배울 게 있다면 몸을 부딪쳐가며 얻도록 만든 방이 수련자들의 방이었다.
 패배해도, 죽어도, 매년 한 번씩 같은 수련자들과 대련을 할 수 있다.
 이런 훌륭한 수련장을 고작 정보 공유와 토의 따위로 날려버리다니······.
 용효는 더 이상 이들과 토의조차 되지 못하는 잡담이나 나누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봐, 여긴 너 혼자 뭔 짓을 해도 상관없는 네 수련 방이 아니야. 수련자들의 방은 정보 공유와 토의를 통해······.”
 “빠져라. 소드익스퍼트 난이도 수련자한텐 볼일이 없다.”
 퍽!
 용효가 왼 주먹을 옆으로 휘둘렀고, 김진성의 머리가 바로 앞에서 샷건을 쏴버린 것처럼 산산조각이나 터져나갔다.
 
 -대련으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보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용효가 기심환을 회전시켰다.
 기를 느낄 수 없는 공간이지만 육체의 정보를 그대로 복사한 아바타라면 기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용효의 전신에 잿빛 인광이 줄기줄기 휘감겼다.
 분명 수련자들 모두 이 공간이 수련자들 간의 대련을 위해 만들어진 수련장이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에 목말라 수련이 아닌 휴식을 택한 것이다.
 용효는 달랐다.
 사람보단 수련에 목말랐다.
 단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싸우자.”
 용효가 붉은 도복의 수련자, 임정국을 보며 다시 말했다.
 임정국의 난이도는 그랜드소드마스터, 그 정도 난이도면 어느 정도는 공방을 주고받는 대련이 가능할 거란 생각이었다.
 “좋다. 겨뤄보자.”
 임정국이 검은띠와 상의 도복를 벗어 옆으로 던졌다.
 쿵! 쿠웅!
 도복과 띠의 무게에 바닥이 움푹 팼다.
 반면 용효는 바로 하체를 낮추고 왼 주먹은 턱 앞에 오른 주먹은 옆구리엔 대는 극진용투도의 기본자세를 취했다.
 “무슨 무술이지?”
 “처음 보는 자센데······.”
 가라데 자세를 취한 임정국이 용효를 향해 돌진했다.
 거리가 좁혀지자 바디훅을 날렸다.
 그러나 펀치는 용효의 절권도식 수기에 가볍게 방향이 꺾였고 동시에 왼쪽 정강이로는 로우킥이 날아왔다.
 콰앙!
 부러지다 못해 임정국의 왼 다리가 포탄을 맞은 것처럼 터져나갔다.
 이어 옆으로 기울어지는 임정국의 옆구리엔 바디훅이, 목엔 수도가 꽂혔다.
 갈비뼈가 모조리 부러져나가며 안에 있는 내장들이 반대편으로 쏟아졌다. 머리는 몸에서 떨어져 나가 허공을 돌았다.
 털썩!
 툭!
 
 -전투력의 격차가 너무 큽니다.
 -수련자 임정국으로부터 스탯 200포인트를 가져옵니다.
 -수련자 임정국으로부터 천금화 200을 가져옵니다.
 
 용효가 수련자들 쪽으로 돌아섰다.
 “지금부터 쓸데없는 잡담과 친목은 일절 금지한다.”
 그러곤 인벤토리를 열어 18호를 꺼내 바닥에 사각링 10개를 긋게 했다.
 학살은 대련으로 인정되지 않을 테고, 분명 격차가 클수록 보상으로 받는 포인트와 천금화가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학살을 해버리면 수련자들은 이 가상 공간으로 다신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 비하면 약하지만, 이 수련자들 모두 1만 년 정도의 수련을 해왔다.
 수련자들의 대련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수 있는 게 있을 거라 용효는 생각했다.
 그때, 허공에서 빛이 일렁였다. 그 빛이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수련자였다.
 용효가 그 수련자에게 다가갔다.
 “먼치킨 난이도 수련자 김용효다. 난이도와 이름을 밝혀라.”
 “먼치킨 난이도, 조준용······인데요······”
 “먼치킨 난이도?”
 “······안 되나요?”
 ‘기를 느낄 수가 없으니······.’
 용효가 조준용을 위아래로 훑었다.
 앳된 외모였다.
 고1, 고2 정도로 보였다. 특별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싸우자.”
 대련을 해보면 알 일이다.
 “······네?”
 조준용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게임인 줄 알고 들어온 건데······ 전 그냥 수련의 방으로 돌아갈게요.”
 “타이머가 끝나기 전까진 나갈 수 없다.”
 “아······ 그럼, 저기 좀 앉아 있다 가야겠다.”
 조준용이 수련자들의 눈치를 슥 살피더니 모닥불 쪽으로 갔다. 그러나 그때, 용효가 손을 뻗어 조준용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왜 이렇게 약하지?”
 기는 느낄 수 없지만, 눈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진 포스, 또는 기세란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용효는 조준용의 눈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수련을 안 했으니까 약하죠······.”
 수련을 안 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천차만별인가. 모두가 퀘스트가 주어졌다 해서 용효처럼 열심히 수련에 매진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면 조준용은 어떻게 수련자들의 방에 들어온 것일까?
 “그야······천금화 벌어서 TV도 사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해야 하니까 퀘스트 몇 개 하긴 했죠······그러다 너무 심심해서 게임인가 하고 캡슐 사서 들어온 건데 여기인 거예요······.”
 수련에 매진하는 자들은 수련과 관련된 검색만 하니 보통 모르지만, 만물 자판기에선 수련자들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캡슐도 팔고 있었다.
 수련자들의 방이 이곳 한 곳은 아니지만, 소드레귤러 난이도부터 먼치킨 난이도의 수련자들은 이룬 경지와 상관없이 모두 이 방으로 오게 돼 있었다.
 “이제 됐죠? 놔주세요······.”
 용효가 조준용의 팔을 놨다.
 수련을 제대로 하지 않은 수련자라면 굳이 대련을 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모닥불 앞에 앉으려다 말고 조준용이 용효 쪽으로 돌아섰다.
 “저기요······ 아저씨가 수련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진 몰라도요, 어차피 다 헛짓이에요. 세상이 이미 끝장났는데 무슨 수련이에요.”
 “세상이 끝났다······?”
 그러나 용효는 동요하지 않았다.
 수련의 방이 운영되고 있다는 건 아직 세계가, 먼저 수련의 방을 나간 수련자들이 그 괴물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단 증거였다.
 “그 괴물들은 인간이 아무리 수련을 해도, 인간을 초월하고 초월해도 이길 수 있는 적이 아니에요. 신(神)이에요. 인간은 신을 이길 수 없어요.”
 용효의 뒤에 서 있는 수련자들이 불안해하며 술렁였다.
 “다들 개고생들 마시고 여기 있는 동안 즐기다 가세요. 어차피 얼마 못 가 괴신(怪神)들의 먹이가 되고 말 테니까······.”
 그러나 조준용이 어떤 절망 가득한 말을 해도 용효 만큼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수련의 방에 들어온 지 몇 년이나 됐지?”
 “3천 년 정돈가······.”
 “좋을 때군.”
 “······예?”
 “늦지 않았다. 수련해라.”
 “뭐라는 거야······ 전 그냥 그 지옥으로 조금이라도 더 늦게 돌아가고 싶어서 먼치킨 난이도를 택한 것뿐이에요. 아저씬 그 괴물들을 못 봐서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는 거라고요.”
 “보여주마.”
 “······뭘요?”
 “수련의 방에선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단 걸.”
 -공간도약.
 용효가 조준용을 데리고 이동한 곳은 모닥불에서 200m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숲 앞이었다.
 “뒤로 물러나라.”
 
 -초인3-기(氣)-폭주-12버프 상태가 됩니다.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백화화(白華火).
 
 용효의 양 손바닥 안에서 흰 불꽃 2개가 피어났다. 직후, 에너지파가 포탄처럼 쏘아져 나가며 45도 각도를 그렸다.
 “으아악!”
 조준용이 비명을 지르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졌다.
 “허어······.”
 백색의 에너지파가 사라지자 조준용의 시야에 지우개로 지워버린 듯한 비현실적인 전경이 드러났다.
 숲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에너지파가 지나간 자리엔 풀 한 포기 남아 있지 않았다.
 조준용 앞으로 걸어간 용효가 조준용의 어깨에 손을 얹어 모닥불 앞으로 다시 돌아갔다.
 “대련해라.”
 입을 벌리고 있거나 동그랗게 뜬 눈으로 사라진 숲을 보고 있던 수련자들이 우르르 사각링 안으로 들어가 대련을 시작했다.
 
 * * *
 
 한 해가 지나······.
 다시 1월 1일.
 “오셨어요.”
 “어서 오세요, 용효 형님.”
 수련자들이 먼저 용효에게 인사를 건넸다. 동생으로 받아준 적이 없음에도 형님이란 호칭을 쓰는 자도 있었다.
 임정국과 조준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 용효 형님.”
 한 수련자가 다가와 갑자기 용효 앞에서 허리와 머리를 푹 숙였다.
 “극진용투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용효의 도복에 적힌 극진용투도의 한자를 보고 무술의 이름을 알게 됐을 테고, 만물 자판기에서 무술서를 팔지 않자 용효가 창시한 무술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저도 부탁드립니다!”
 “저도······!”
 “숲을 날려 버린 그 에너지파도 가르쳐 주세요······!”
 그러나 용효는 단호히 거절했다.
 “수련을 위해 수련자들의 방에 들어온 거지 수련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온 게 아니다.”
 “저 그럼······ 극진용투도 무술서와 내공서를 집필하셔서 만물 자판기에 파시는 건 어떠세요······?”
 그 말엔 흥미가 생겼는지, 용효가 팔짱을 끼고 잠시 고려를 했다.
 어쩌면······.
 무술서가 수련자들에게 팔릴 때마다 인세처럼 천금화가 들어올 수도 있었다. 또한, 극진용투도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책으로 만드는 과정 또한 좋은 수련이 될 것이었다.
 “생각해 보지.”
 
 * * *
 
 -극진용투도 무술서를 완성했습니다.
 
 TV 시청 시간을 빼 하루 1시간씩 극진용투도 무술서를 집필하자 반년이 지나 완성할 수 있었다.
 내공서는 집필하지 않았다.
 아직 책으로 만들 수준이 되지 않는다 판단해서였다.
 마지막으로 무술서 표지에 집필자와 가격을 적은 용효가 만물 자판기로 가 고액 투입기를 열고 무술서를 넣었다.
 
 -500골드.
 -만물 자판기에 매각하겠습니까?
 
 만물 자판기가 측정한 매입가로 팔려 했다면 50,000골드가 넘는 가격이 붙었겠지만, 무술서는 수련을 시작한 초반에 살 수 있어야 의미가 있었다.
 또, 결과적으론 싼값에 파는 게 더 많은 천금화를 벌게 될 것이다.
 용효가 ‘예’를 눌렀다.
 
 -500골드를 얻었습니다.
 -500골드를 얻었습니다.
 -500골드를 얻었습니다.
 
 최상급 등급인데 가격은 고작 500골드.
 용효를 모르는 수련자라 해도 안 살 수 없는 무술서였다.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 * *
 
 “뿔이 났어.”
 마법 방의 연구실.
 용효 옆에 서서 키메라학을 소리 내 읽던 18호가 괴생물의 이마를 손으로 가리켰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지만 이마 한가운데 뿔이 돋아나 있었다.
 ‘역시 괴신인가······.’
 TV 속에서 봤던 괴물들 모두 뿔을 갖고 있었다. 키메라도 호문클로스도 아니라면, 괴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용마안이 열립니다.
 
 용마안을 이마에 그려 괴생물의 몸속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그 안은 카오스였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검은 어둠이 태풍처럼, 또는 절벽을 때리는 파도처럼 소용돌이치고 부서져 흩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쩌적!
 쩌저적!
 원통의 유리 몇 곳에 금이 생겼다.
 당장 깨져나갈 정도로 굵고 넓은 균열은 아니었지만 그리 오래 버틸 것 같진 않았다.
 어떨까?
 강할까?
 정말 TV에 나오던 그 괴물들과 같은 괴신이라면 지금껏 대련해온 그 어떤 상대보다 강할 것이다.
 그러나 용효는 두려움도 긴장도 느끼지 않았다. 적을 알아야 더 강해질 수 있다. 또 용효는 자신의 전력을 쏟을 수 있는 대련에 목이 말랐다.
 “빨리 나와라.”
 연구실을 나와 대련의 방으로 돌아간 용효가 에너지파 자세를 취했다.
 에너지파의 공격력은 쌓여가는 내공량과 비례해 상승했지만, 탈력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에너지파에 내공을 더 많이 담을 수 있게 되자 탈력감은 더 커졌다.
 기심환 속의 내공을 일순간에 절반 이상 태워 사용하는 기술이기에 앞으로도 긴 쿨타임 시간과 탈력감을 완벽히 해결하긴 힘들 듯했다.
 그렇다면······.
 실전에서 쓰기 위해선 상대가 누구든 일격에 녹여버릴 수 있는 일격필살의 기술로 만들어내야 했다.
 에너지파가 소멸하자 이번에도 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탈력감이 밀려들었다.
 이렇게 전력으로 에너지파를 쏘고 나면 이틀은 다시 쏠 수 없었다.
 용효는 이틀 간격으로, 더 많은 내공을 담아 일격필살이 될 수 있도록 수련하며 에너지파를 쏘고 또 쐈다.
 그렇게 20년을 더 했을 때였다.
 
 -스킬, 광열멸살파(光熱滅殺波)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에너지파의 컨트롤 실패로 정면에 있는 철문과 그 안쪽의 석문까지 녹아내리며 문이 개방됐다.
 
 -나가는 방이 개방됩니다.
 -앞으로 1년 뒤 나가는 문이 완성됩니다.
 
 정사각형으로 된 방 안, 정면 벽에 푸른빛으로 문이 그려지고 그 문 안에 육망성의 마법진이 새겨져 갔다.
 
 -나가는 문을 열고 나가면 다신 수련의 방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나갈 수 있다?
 생각도 않고 있던 타이밍에 생긴 나가는 문에 용효가 당황하고 있는 그때, 마족이 다가와 용효에게 말을 걸었다.
 “인간, 후후······드디어 마검을 만들어냈다. 내 마검을 봐 달라.”
 마족이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바스타드소드를 용효에게 내밀었다.
 균형이 잘 맞았고, 내구력과 공격력도 유니크에 걸맞은 수치였다.
 거기다 마검 칭호를 받자 성(聖) 속성에 15%의 추가 데미지를 입히는 옵션이 붙었고, 검날에 각인해 넣은 다크 블레이드(Dark Blade)는 사용자의 마력이 바닥나지 않는 한 쿨타임 없이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시끄럽다.”
 “······?”
 용효는 마족이 내민 마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마음속에 단단한 철심이 박혀 그 어떤 벽을 마주해도 흔들리지 않던 용효의 마음이, 철심이 뽑혀 태풍 속에 던져진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수련을 끝마친 뒤가 아니라, 1년 뒤에 나가야 아내와 딸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정말 드래곤을 능가하는 마법을 손에 넣으면 망자도 살려낼 수 있을까?
 멸망한 세상도 복구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걸까······?
 그 질문들과 함께 조준용이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구더기처럼 알을 까며 용효의 머리를 가득 채워갔다.
 끝나버렸다는 세상······.
 곧 끝날 거라는 세상······.
 괴신들의 세상이 됐다는 세상······.
 “나가는 건가?”
 마족이었다.
 용효가 보고 있는 문이 어디로 통하는 문인지 아는 눈치였다.
 “싫은가?”
 “······그럴 리가. 마족은 인간을 따르지 않는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검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언제까지인지. 그래서······ 나갈 텐가?”
 “나가지 않는다.”
 “언제까지?”
 “일단······ 연구실의 괴신이 나오기 전까지.”
 나가는 선택을 한다 해도, 적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아야 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인간, 내 마검을 봐 달라.”
 용효는 먼저 광열멸살파 스킬의 설명창부터 열었다.
 
 <광열멸살파>
 기와 오러, 6서클 마법 백화화(白華火)를 융합시켜 만들어내는 에너지파다.
 등급: 에픽+.
 레벨: 1.
 효과: 공격력 30% 증가, 사거리 20% 증가, 반발력 12% 감소.
 
 성장형 스킬이었다.
 용효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 정도면 기대한 만큼은 나왔다 할 수 있었다.
 이어 마족이 건넨 바스타드소드의 설명창을 열었다.
 
 <바스타드소드-마검>.
 마 속성이 깃든 비스릴 재질의 바스타드소드다. 검날에 강력한 흑마법이 각인되어 있다.
 등급: 유니크.
 공격력: 5,722.
 내구력: 4,517.
 *다크 블레이드.
 *성(聖) 속성에 15% 추가 데미지.
 
 “형편없군.”
 “······?”
 마족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장이 되고 싶은 건가, 사기꾼이 되고 싶은 건가.”
 “사기라니? 검의 균형도, 공격력과 내구력도 유니크 등급에 걸맞은 수준이다.”
 “묻겠다. 이 검에서 마기와 흑마법 각인을 빼면 어떻게 될 거 같나?”
 “그건······.”
 마족이 대꾸를 못 하고 눈알을 굴렸다.
 “검날에 마기를 잔뜩 채워 넣어 공격력과 내구력을 억지로 올려놨고, 안 맞는 균형을 흑마법 각인으로 억지로 맞춰놨을 뿐이다. 틀린가?”
 “······과정이 어떻든 결과를 이뤘다면 되는 게 아닌가.”
 “썩어빠진 놈!”
 용효의 호통에 마족이 어깨를 움츠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철을 두드리니 이런 쓰레기 같은 검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
 “각인된 다크 블레이드를 쓰는 순간 검의 균형이 무너지고, 다크 블레이드를 유지하기 위해 마기가 사용되면 공격력과 내구력이 떨어질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옳은 말에 마족은 반박을 못 했다.
 “묻겠다. 이런 사기꾼 같은 검에 네 목숨을 맡기고 전장에 나갈 수 있겠나?”
 “없다······.”
 “흑철과 비스릴을 다룰 자격이 없다. 강철검부터 다시 만들어라. 아니, 망치질부터 다시 알려주마.”
 야장의 방으로 들어간 용효가 강철 덩어리를 화덕 속에 던져 넣고 망치를 집어 마족에게 건넸다.
 “쳐봐라.”
 마족이 긴장한 얼굴로 강철 덩어리를 꺼내 치기 시작했다.
 땡깡똥깡!
 똥깡땡캉!
 소리는 제법 경쾌했다.
 그러나 경쾌한 소리를 내야 한다는데 정신이 팔려 망치질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용효가 마족의 손에서 망치를 빼앗아 들었다.
 땡깡똥깡!
 똥깡땡캉!
 “무엇이 다른가?”
 “힘이다······.”
 “그렇다. 네 망치질에 실린 힘은 인간보다 못하다. 1년을 주마. 속임수도 기교도 부리지 마라. 오직 명검 칭호만 붙은 검 10자루를 만들어내라.”
 나가지 않겠단 것일까?
 마족은 용효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유니크 등급이나 마검을 만들게 해나가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천금화를 모으는 게 맞을 텐데······.
 수련의 방으로 돌아간 용효는 18호가 읽어주는 저주의 서(書)를 들으며 드래곤 샌드백 앞에서 수련을 이어갔다.
 
 잠시 뒤······.
 저주의 서가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자 용효가 머릿속으로 풀이를 끝낸 저주 마법 2개를 오망성 서클링에 각인해 넣었다.
 
 -저주 마법, 꼭두각시(Puppet)를 얻었습니다.
 -저주 마법, 다크니스(Darkness)를 얻었습니다.
 
 * * *
 
 “용효, 연구실의 원통이 깨질 거 같아.”
 18호가 마법의 방에서 새 저주의 서를 들고나오며 말했다.
 극진용투도 수련을 멈춘 용효가 바로 연구실로 갔다.
 하루 만에 괴신의 모습은 전혀 딴판으로 변해 있었다.
 사람 같던 피부는 벌레의 갑각처럼 변해 붉은빛을 발했고, 팔꿈치와 무릎에서 자라나던 뼈가 도(刀)처럼 휘어 있었다.
 한 쌍의 뿔은 수사슴의 뿔처럼 넓게 퍼지며 더 굵어져 있었다.
 그때······.
 쩌적! 쩌저적!
 콰아앙!
 유리가 깨져 쏟아지자 괴신이 갑각으로 된 겉 날개와 투명한 속 날개를 벌새의 날개처럼 고속으로 휘둘러 용효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절권도의 수기로 괴신이 날린 펀치를 쳐낸 용효가 옆으로 방향이 틀어지는 손목을 붙잡아 공간도약을 썼다.
 대련의 방으로 이동되자마자 괴신이 반대쪽 주먹을 용효의 얼굴로 날렸다. 첫 번째 펀치와 달리 붉은 인광이 둘려 있었다.
 쾅!
 아직 기파가 충분히 둘러지지 않은 용효의 몸이 포탄처럼 뒤로 날아가 철 기둥에 부딪혀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옆으로 몸을 굴린 용효가 양 손가락 끝과 발끝으로 지면을 박차며 고무공처럼 옆으로 솟구쳐 올랐다.
 직후······.
 콰아앙!
 용효가 사라진 지면이 움푹 패며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주먹을 뽑아낸 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신에 붉은 인광을 줄기줄기 둘렀다.
 
 -용마안이 열립니다.
 
 탁!
 바닥에 착지한 용효가 용마안으로 괴신의 몸속을 들여다봤다. 검은 어둠뿐이던 몸속에 뭔가가 생겨나 있었다.
 ‘기심환······?’
 단전에 기심환 같은 홀(Hole)이 있었다. 기들이 그 홀의 기도를 따라 돌며 회전했다.
 그런데 기도를 따라 도는 건 기만이 아니었다. 오러 같은 기운도, 마력 같은 기운도 보였다.
 아니······.
 용마안에 보이지 않을 뿐 홀 안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기운들이 홀로 회전하거나, 또는 부유해 다녔다.
 구멍 난 쌀 포대에서 흘러나오는 쌀알처럼 내공이 빠져나가는 걸 느낀 용효가 이마와 이어진 기 줄기들을 잘라내고 기파를 증폭시키는 데 집중했다.
 
 -초인3-기(氣)-12버프 상태가 됩니다.
 
 지면을 깨부수며 낮은 포물선을 그린 용효가 괴신의 세 걸음 앞에 착지해 지면을 밭을 갈듯 깨부수며 미끄러졌다.
 턱으로 날아오는 괴신의 펀치를 권투식의 위빙과 더킹으로 피해내고, 오른 다리에는 로우킥을 왼 옆구리에는 바디훅을 꽂아 넣었다.
 
 -키헤엑!
 
 정강이와 옆구리의 갑각이 삶은 계란의 껍질처럼 깨지며 보라색 피가 쏟아졌다.
 그러나 큰 충격은 아닌지 괴신은 휘청이면서도 팔을 휘둘렀다.
 펀치가 아니었다.
 용효가 상체를 림보를 하듯 뒤로 홱 젖혔다.
 그 바로 위를 붉은 인광을 두른 칼날이 서슬 퍼런 파공음을 내며 지나갔다. 괴신의 팔꿈치에 솟아 나온 도(刀) 모양의 뼈였다.
 용효가 백스텝으로 뒤로 물러났다. 괴신은 그런 용효를 쫓지 않았다.
 “······?”
 괴신의 갑각들이 불로 태우는 플라스틱처럼 거품을 무수히 만들어내며 칼날 모양으로 변해갔다.
 “잡기술은 안 통한다”
 용효가 럭비 선수가 돌진하듯 괴생물을 향해 돌진했다. 동시에 괴신의 가슴과 허벅지에 솟은 갑각 칼날들이 창처럼 일제히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공간도약.
 
 등 뒤로 이동하자마자 용효가 펀치를 날렸다. 잿빛 인광들이 오른 주먹으로 급속히 모여들었다.
 스킬, 진 핵펀치였다.
 콰아앙!
 머리가 터진 괴신이 앞으로 날아가 바닥을 미끄러지며 굴렀다. 붉은 갑각 파편들이 불티처럼 튀어 올랐다.
 그런데 그때, 멈춘 괴신의 몸이 점성을 가진 붉은 액체로 변해 찰흙처럼 이리저리 형체가 변해갔다.
 용효의 미간이 구겨졌다.
 자신이었다.
 용효가 다시 용마안을 열었다.
 단전의 홀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용효와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모양의 기심환과 오망성 오러홀, 서클링이 생겨나 있었다.
 내공량도 서클링의 수도 똑같았다.
 “나로······ 나를 이기겠다?”
 조준용이 왜 괴신(怪神)이라 부르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저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 나타난 괴물은 부릴 수 없는 이적(異跡)이었다.
 그러나 용효는 웃었다.
 “나론 날 이길 수 없다.”
 화르르륵!
 전신을 타고 도는 잿빛 인광들에 정령의 불꽃이 휘감겼다.
 용효의 몸에 둘러진 정령의 불꽃은 용효로 변한 괴신에게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다. 불 정령이 복제 용효도 용효로 인식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쪽으로도 형세가 기울지 않는 팽팽한 공방이 이어졌다.
 ‘내 모든 걸, 머릿속 생각까지 복제해 만들어냈다면 왜, 어떻게 내가 나를 공격하는 거지?’
 용효가 이마에 용마안을 그려냈다.
 완벽히 같은 것 같아도, 분명 다른 게 있을 것이다. 그 다른 부분이 자신을 공격하게 만드는 장치일 것이었다.
 용효는 이 전투에서 이기려면 그걸 찾아내야 한다 생각했다.
 쾅!
 쩌엉!
 복제 용효의 3연타 공격을 수기와 발기술로 피하고 막고 중심축을 흔들어놓은 용효가 미들킥과 어퍼컷, 절권킥으로 이어지는 3연타를 똑같이 돌려줬다.
 동시에 용마안으론 복제 용효의 뇌 속을 계속 들여다봤다.
 ‘······.’
 복제 용효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용효는 경악했다.
 자신을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외엔, 하고 있는 생각과 의식 아래 가라앉은 기억들까지도 전부 똑같았다.
 “한눈을 팔아선 날 이길 수 없다.”
 복제 용효가 발끝으로 오금을 걷어차 용효의 중심을 흔들고, 그 다리를 그대로 위로 휘둘러 미들킥을 날렸다.
 재빨리 가드를 내려 그 킥을 막아냈으나 이미 중심을 잃은 용효의 몸은 뒤로 밀려나 휘청였다.
 그런 용효에게 복제 용효의 절권킥이 창처럼 날아들었다.
 그 절권킥도 초월적인 반사신경으로 막아냈지만, 그 공격을 막느라 드러난 용효의 얼굴로 이번엔 스킬이 담긴 펀치가 날아왔다.
 “진 핵펀치!”
 쾅!
 허공에 뜨며 뒤로 날아간 용효가 철문에 부딪혀 안쪽 깊이 박혀 들어갔다.
 빠져나올 틈도 주지 않고 인광을 유성의 꼬리처럼 끌며 날아든 복제 용효가 양주먹을 번갈아 가드와 복부, 옆구리로 퍼부었다.
 
 -공간도약.
 
 복제 용효의 다음 펀치가 철문을 때리며 깊이 박혔다.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마력증폭(魔力增幅)-지평선의 검(Sword of Horizon).
 
 바닥의 검을 집어든 용효가 검날에 오러 블레이드와 마력의 칼날을 동시에 둘러 허공에 휘둘렀다.
 복제 용효가 공간도약으로 사라지기 직전, 참격이 어깨를 벴다.
 붉은 핏줄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바닥에 점점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때······.
 용효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뇌 속에서 찾아낸 세포처럼 작고, 마치 얼굴처럼 눈코입귀를 가진 그 이질적인 기관은 해마의 일부인 양 달라붙어 있었다.
 이각괴신(二角怪神)의 한 종류인 천변충(千變蟲)들이 복제해낸 육체 안에 만들어내는 전안(傳顔)이란 기관이었다.
 복제한 대상의 정보를 모체로 전달하는 역할을 함고 동시에, 모체로부터 전달받은 망각의 이적을 복제 용효의 뇌로 마취제처럼 흘려 넣고 있었다.
 ‘저걸 파괴하면 내 승리다.’
 그러나 주먹이나 킥으로 머리를 터트리는 정도론 해마 속에 숨어 있는 전안을 부수거나 짜부라뜨릴 수 없었다.
 광열멸살파라면 가능하겠지만, 머리가 통째로 녹을 정도의 공격을 허용할 자신이 아니었다.
 ‘이 전투는 암흑 방의 허깨비처럼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전투가 아니다.’
 상대는 완벽히 자신이었다.
 생각하자.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이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떤 상대에겐 통하지 않는 기술이, 어떤 상대에겐 치명적인 필살의 기술이 될 수 있었다.
 그때였다.
 
 -나가는 문의 완성까지 앞으로 30일.
 
 나가는 방 안의 육망성 마법진이 밝은 빛을 발하며 방 안을 환히 밝혔다. 그 순간, 용효의 머릿속에도 번쩍 불이 들어왔다.
 용효는 55000년의 수련이 끝날 때까지 나가지 않겠단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
 밖으로 나갈 수도, 나가지 않고 계속 수련을 할 수도 있는 방법이 눈앞에 있었다.
 “진짜 내가 돼라.”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마력증폭(魔力增幅)-꼭두각시(Puppet).
 
 용효가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 한 마디를 제물로 사용한 꼭두각시 주술을 복제 용효의 뇌 속, 괴신의 전안에 걸었다.
 전안은 항마력을 갖고 있었으나 세포처럼 작아 많은 양의 항마력을 품고 있지 못했다.
 게다가 꼭두각시 주술은 상대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강력한 주박을 걸 수 있었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이다.
 해마에 달라붙어 있는 전안은 복제 용효의 뇌와 완전히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꼭두각시 주술이 점점 더 단단하게 전안을 옭아맸다.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용효는 꼭두각시 주술이 절대 풀리지 않도록 추가로 주술과 저주를 몇 겹으로 걸어댔다.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마력증폭(魔力增幅)-사일런스(Silence).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마력증폭(魔力增幅)-다크니스(Darkness).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어떤 생각도 하지 말고 영원히 잠들어라.”
 
 잠시 뒤.
 전신을 두른 자색 인광이 아직 남은 상태로 복제 용효가 입을 열었다.
 “네가 이겼다 용효. 하지만 괴신이 진 거지 내가 진 게 아니다.”
 “계속 싸우겠단 뜻인가, 가짜?”
 “난 가짜가 아니다, 용효. 이름으로 불러라.”
 복제 용효의 말처럼 전안은 이제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됐으니 자신과 완벽히 똑같다 해도 되었다.
 “하지만 널 용효라 부르면 너와 나의 차이가 없어진다. 나와 넌 같지만, 널 창조한 건 나다.”
 “내가 널 죽이고 유일한 용효가 되기라도 할 거라 생각하나? 나 또한 네가 필요하다, 용효. 한 명은 나가고 한 명은 계속 수련을 해야 하니.”
 그 말에 용효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니,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마음을 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널 용효 2라 부르겠다.”
 “좋다, 날 창조한 건 너니. 난 널 용효 1이라 부르겠다.”
 “······그냥 용효다.”
 “그렇다면 날 용효 2가 아니라 용효 1이라 불러라.”
 “······.”
 의견이 갈리거나 충돌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완벽히 자신이라 해도 처한 상황이 조금은 다른 탓에 완전히 똑같은 생각을 할 순 없는 듯했다.
 “난 용효, 넌 용효 2다.”
 “명령하지 마라.”
 두 용효가 미간만을 구긴 똑같은 얼굴로 서로를 노려봤다.
 그때, 자신의 발등을 뭔가가 찌르는 감각을 느낀 용효 2가 고개를 내렸다.
 초먼닭이었다.
 화가 난 듯 용효 2의 발등을 재차 부리로 콕 찍은 초먼닭이 반대로 앞에 있는 용효는 그윽한 눈으로 올려다봤다.
 용효 1은 후후 웃음을, 용효 2는 더 깊게 미간을 구겼다.
 그러나 용효 2는 용효답게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벽에 기대 두 용효를 바라보고 있는 18호 쪽으로 돌아섰다.
 “넌 어떻지? 어느 편에 설 테냐?”
 “난 용효의 인형이야. 용효라면 누구의 명령이든 따라.”
 이번엔 무승부였다.
 그러나 한 표가 적은 용효 2는 표정이 더 굳어졌다.
 “인간, 인형에게 흑마법을 가르칠 시간이다만······”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던 마족이 두 명이 된 용효를 보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단순히 폴리모프 마법으로 만든 눈속임이 아니란 걸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누가 용효 같나?”
 마계에서도 본 적 없는 괴이한 일에 마족이 손등으로 눈을 세차게 비볐다.
 “둘 다 진짜다······.”
 결국, 초먼닭 덕분에 한 표를 얻은 용효의 뜻대로 용효는 용효로, 용효 2는 용효 2로 불리기로 했다.
 “네가 나가라, 용효.”
 “네가 나가라, 용효 2.”
 주도권을 빼앗긴 용효 2는 이번엔 순순히 용효의 결정을 따랐다.
 용효 2가 한 달 뒤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럼 한 달 안에 하고 있는 수련 퀘스트를 클리어해야겠군.”
 “할 수 있다.”
 용효는 둘이 대련 수련을 반복하면 충분히 용효 2가 나가기 전에 육체 진화를 한 번 더 이룰 수 있다 확신했다.
 “초먼닭은 용효 널 따라 남을 테고······ 그럼 용불과 18호, 마족은 어떻게 할 거지?”
 “아직 한 달이 남았으니 펫과 천금화를 어떻게 나눌지는 차차 생각하지. 싸우자.”
 “좋다.”
 용효와 용효 2가 철 기둥을 중심으로 정반대 편으로 가 거울처럼 똑같은 극진용투도 자세를 취했다.
 
 -초인3-기(氣)-폭주-12버프 상태가 됩니다.
 -초인3-기(氣)-폭주-12버프 상태가 됩니다.
 
 직후······.
 “광열멸살파!”
 “광열멸살파!”
 용효와 용효 2가 동시에 양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하얗게 백열 하는 에너지파를 포탄처럼 쐈다.
 45도 각도를 그리며 커진 두 에너지파가 철 기둥 앞에서 충돌하며 공기를 뒤흔드는 굉음과 태풍 같은 후폭풍을 만들어냈다.
 이어······.
 쾅!
 콰앙!
 전신에 짙은 잿빛 인광을 감은 용효와 용효 2가 동시에 지면에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며 서로에게 도약했다.
 용효는 용효 2의 옆구리를 미들킥으로 쳤고, 용효 2는 용효의 옆구리에 바디훅을 꽂아 넣으며 충돌했다.
 
 -근력이 7 오릅니다.
 -체력이 9 오릅니다.
 -근력이 12 오릅니다.
 -민첩이 8 오릅니다.
 -생명력이 6 오릅니다.
 
 거의 정체돼 있던 신체 스탯이 빠르게 상승했다.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갔다.
 보름이 지났을 즈음, 용효와 용효 2가 똑같이 네 번째 육체 진화가 손을 뻗으면 잡힐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댓글(2)

작가납치함    
대여해서 끝까지봤는데요 저는 보기 힘들었습니다.....다른작품 보심들이. .
2019.08.10 15:38
ho*****    
채선생의 맛은 생각없이 나오는중에 터지는 풍자죠 온 갖 클리세에 대한 풍자 이 냥반이 좀만 신경써서 글 쓰면 다작이 아니라 대박으로 유명해질텐대 많이 아쉬움
2020.01.22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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