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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렉션 1-1

2019.07.17 조회 4,532 추천 23


 레저렉션 1권
 
 목차
 제1장 등장
 제2장 이도수
 제3장 신의 손
 제4장 협상
 제5장 밀당의 고수
 제6장 폭풍전야
 제7장 대수술
 제8장 히든카드
 제9장 생존 확률 제로
 제10장 고비를 넘다
 제11장 쉴 틈이 없다
 제12장 충돌, 충돌, 충돌
 제13장 환상의 호흡
 제14장 소생
 제15장 표적
 제16장 목숨의 무게
 제17장 전환점
 제18장 비밀
 제19장 가야 할 길
 제20장 탈주
 제21장 유명 인사
 제22장 도수의 전략
 제23장 천재
 
 
 
 제1장 등장
 
 
 
 위이이이이이이잉!
 새벽 1시.
 아프리카 라크리마 UN군 모르스주둔지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공습경보다.
 의무병이 천막 문을 열어젖히며 외쳤다.
 “닥터!”
 “가지.”
 김광석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료진이라곤 의료봉사자를 포함해도 단 네 명뿐.
 하루도 전투가 끊이지 않는 모르스 주둔지의 실태였다.
 그들은 다 같이 앰뷸런스를 타고 총격이 있었던 북측 초소로 내달렸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운전병이 주의를 주었다.
 “만에 하나 총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두 고개 숙이고 총격에 대비하십시오.”
 의료진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밝음 속에서 어둠을 기억하게 하시고······.”
 십자가에 입을 맞추며 신을 찾는 이들. 다리를 달달 떨며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
 오줌을 지리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이를 쭉 지켜보던 김광석이 긴장감을 덜기 위해 입을 열었다.
 “도착하는 즉시 매뉴얼대로 움직입니다. 알렉스, 외상처치 매뉴얼.”
 그러자 하버드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던 중 의료봉사에 참여하게 된 알렉스 맥케넌이 대답했다.
 “현장에선 간단한 1차 처치만 한다! 그 후 후방으로 옮겨 2차 수술을 한다!”
 “1차 처치 땐?”
 “트리아지 태그(Triage tag: 응급환자 분류)를 합니다!”
 “카드는?”
 트리아지 태그를 할 땐 중증도에 따라 네 가지 색깔 카드로 표시를 한다.
 카드를 확인한 알렉스가 크게 답했다.
 “준비됐습니다!”
 그사이.
 그들이 탄 앰뷸런스가 현장에 도착했다.
 “···지옥이 따로 없군.”
 만연한 핏자국.
 쓰러져 있는 군인들 모두 UN군 군복을 입고 있었다.
 “으으으으······!”
 “으아악! 사, 살려줘어··· 흐흐흑!”
 “엄마··· 엄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너덜거리는 팔을 붙잡고 엄마를 부르짖는 병사, 옆구리가 뚫린 채 쏟아진 창자를 자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병사, 삶을 애걸하는 병사, 공포에 질린 병사, 의식조차 없는 이들까지.
 창백한 얼굴의 김광석이 차에서 내렸다.
 “상황은?”
 어두운 표정의 지휘관이 답했다.
 “안 좋습니다.”
 “우리가 분류하겠네. 빨간색, 파란색 카드로 분류된 아군은 건물 안으로 옮겨. 나머진 이송한다.”
 “옛썰.”
 현장 지휘관이 경례를 붙였다.
 김광석은 폐건물로 들어가 가방을 풀고 응급 환자를 받을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조금 지나자.
 환자들이 들이닥쳤다.
 “닥터!”
 들것에 누운 환자가 피를 뿜었다.
 “상태는?”
 “이송되다 말고 돌아온 환자입니다! 혈압 80에 40, 맥박 40, 호흡 8, 체온 31도입니다!”
 그 순간.
 오르락내리락하던 환자의 가슴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어레스트(Arest: 심정지)입니다!”
 뭘 해볼 새도 없이 숨이 멎은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사망 판정을 내리는 건 의사. 의사가 사망 판정을 내리지 않는 이상 환자는 소생할 수 있다.
 “심폐소생술!”
 김광석 교수는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그리고 심장을 압박하며 꺼진 불씨를 되살리려 했다.
 1분도 안 돼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헉, 헉······!”
 하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환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처럼 제세동기도 없는 상황.
 마침내 손을 뗀 김광석 교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사망 시간, 2019년 1월 4일 오전 4시 32분.”
 의무병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나 사망선고를 내린 김광석 교수는 묵묵히 검정색 카드(T5: 사망)를 발목에 묶었다.
 “아직 밤은 끝나지 않았네.”
 그는 다음 환자를 찾았다.
 그 순간.
 번쩍!
 반사광이 눈을 찔렀다.
 아직 잔상이 남은 김광석의 시야로 왼팔에 총상을 입은 병사와, 그 앞에 메스를 쥐고 도사리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어, 어어?”
 옆에서 소리치는 의무병.
 그때 정체불명의 남자가 총상환자의 가슴을 향해 매스를 찔러 넣었다.
 푸욱!
 
 
 
 제2장 이도수
 
 
 
 현장에 나타난 소년.
 이도수는 메스 날을 노려봤다.
 그 순간 두 눈이 번뜩였다.
 샤아아아아아.
 살갗을 파고든 메스 끝에서부터 모세혈관들이 퍼져 나가며 비치기 시작했다. 마치 컴퓨터 회로를 반투명으로 그린 듯한 형상.
 도수의 입이 열렸다.
 “절개 부위는 이렇게······.”
 중얼중얼.
 그의 메스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주욱!
 칼날을 따라 살결이 갈라졌다.
 그 와중에 모세혈관이 몇 가닥 끊겼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한 가닥의 혈관도 끊어먹지 않고 절개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메스에 달린 칼날은 작고 예리했지만, 모세혈관까지 모두 피해 가기에는 너무 크다.
 투두둑······!
 혈관들이 잘려 나가는 소리.
 청각이 아무리 발달한 사람이라도 듣기 힘든 그 소리가 고막을 간지럽힌다.
 그러나 도수에게는 익숙한 소리였다.
 “후우.”
 혈관이 잘린 자리로 피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출혈(出血)이다.
 대부분의 부상자가 죽는 원인.
 고작해야 모세혈관이 손상된 것뿐이지만 출혈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사람 몸의 피는 4.5리터가량.
 그중 3분의 1인 1.5리터가량이 빠지면 환자는 사망한다.
 우유팩에 바늘구멍을 내고 빈각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그 시간이면 환자는 사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수는 수술에 속도를 붙였다.
 겨드랑이 밑에서부터 옆구리 아래까지.
 방금 절개한 부위에 거침없이 손가락을 집어넣고 양손으로 확 벌린 것이다.
 쩌억!
 피부가 가진 탄력 때문에 손에 압박이 왔다. 벌어진 절개 부위가 스스로 닫히려 발광을 하는 것이다. 도수는 손가락이 부러질 것처럼 경직됐지만 참고, 외쳤다.
 “집게!”
 그를 멍하니 보고 있던 병사 한 명이 얼음물을 뒤집어 쓴 듯 화들짝 놀랐다.
 “이게 뭐······.”
 “빨리!”
 뾰족한 외침.
 병사는 두리번거리며 김광석을 찾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이 사람 죽이고 싶어?”
 도수가 물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
 감히 사람 목숨의 무게를 짊어질 엄두를 못 낸 병사는 망설이던 끝에 움직였다. 도수의 허리춤에서 집게를 꺼낸 것이다.
 “고정시켜.”
 건방진 말투.
 그러나 병사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멀리서 김광석이 뭐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는 덜덜 떨며 환자의 절개 부위를 고정시켰다. 단순히 고정시키는 것만으로도, 기존에 보던 것과 달리 땀이 뻘뻘 났다.
 “좀 더 벌려.”
 침착한 도수의 한마디.
 병사가 집게를 쥔 손에 힘을 가하자.
 “거기!”
 도수가 외쳤다.
 손을 멈춘 병사.
 “후.”
 도수는 소매로 땀을 닦았다.
 딱 시야 확보가 잘될 만큼 옆구리가 오픈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안쪽은 온통 피로 물들어있었다.
 이리게이션(Irrigation: 세척)도, 석션(Suction: 흡인)도 불가능한 상태. 최대한의 시야 확보가 이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늘상 있는 일이었기에, 도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번쩍!
 눈이 빛나고.
 샤아아아아아.
 그의 시야로 다른 어떤 누구도 볼 수 없는 광경이 떠올랐다.
 혈관들과 심막, 그 안에 뛰고 있는 심장까지 반투명하게 투시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절개할 때보다 훨씬 더 집중력을 소모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피곤해.’
 마치 출혈처럼.
 체력이 물 쓰듯 빠져나가고 있었다.
 더 집중할수록 투시력은 강해지지만, 이처럼 체력의 소모도 커진다.
 도수는 서둘렀다.
 서걱, 서걱!
 심막이 잘려 나갔다.
 동시에,
 심막에 고여 있던 피가 빠진다.
 심장을 압박하고 있던 원인이 제거된 것이다.
 이제 한 고비.
 봉합만 잘 되면, 환자는 산다.
 ‘봉합.’
 도수는 집게를 꺼냈던 허리춤에서 실과 바늘을 꺼냈다. 그 후 정교한 손놀림으로 심막을 꿰매는 게 아닌가?
 “아······!”
 병사가 신음을 흘렸다.
 너무 놀라서 어떤 소감도 형언할 수 없는 것이다.
 그사이 심막을 모두 꿰맨 도수는 집게를 잡아 환자의 몸속에서 빼냈다.
 “제법이야.”
 미소 지은 도수가 옆구리를 봉합했다.
 자칫 잘못하면 환자를 즉사시킬 수도 있는 심장. 그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심막도 꿰매는 마당에, 살을 꿰매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제야,
 두 사람은 중년 의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김광석.
 한달음에 달려온 그가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환자 가슴이 열린 상태라 차마 말릴 수 없었다. 눈앞의 소년이 큰 실수라도 하면 환자 목숨은 그대로 요단강을 건널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아직 20살도 안 되어 보이는 녀석이 환자 왼팔의 총상 외에 심장압전(Cardiac temponade)을 찾아내고 척척 수술해 버렸다.
 민간인, 그것도 동양인의 외모.
 정신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김광석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자넨 누군가?”
 
 ***
 
 “이도수.”
 “······?”
 김광석은 귀를 의심했다.
 한국말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한국인인가?”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나 말고 한국인 의사가 또 있단 말은 못 들어봤는데······.”
 “의사 아닌데요.”
 “뭐?”
 “전 난민이에요.”
 “······!”
 김광석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 잠깐. 난민 캠프에 살고 있는 그 난민이라고?”
 도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광석은 기가 막혀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의사도 아닌 자가 어떻게······.”
 총상 환자에게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심장압전을 찾아냈다. 의사라도 검사가 필요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것도 수술까지 하고.
 “······.”
 물어볼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할 말을 잃은 그에게,
 도수가 말했다.
 “일단 이 사람부터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수술 중에 출혈이 많았다. 부득이하게 야외에서 수술했으니 감염 문제도 있을 것이다.
 환자에게는 수혈과 안정이 필요했다.
 고개를 끄덕인 김광석이 넋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병사에게 말했다.
 “사람을 좀 불러오게.”
 “···예.”
 병사가 건물 안을 떠나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김광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본인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고 있나?”
 “사람을 살렸죠.”
 당당한 태도.
 김광석은 헛바람을 뱉었다.
 “자네는 지금 환자 가슴을 열었어. 의사 자격도 없는 사람이.”
 “제가 증상을 얘기했다고 믿었을까요? 의사 자격도 없는데.”
 “······.”
 도수가 말을 이었다.
 “겉보기엔 그냥 총상 환자였어요.”
 김광석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총상 환자로 분류해 처치한 의료진의 실수다. 하지만······.
 “심장압전을 어떻게 찾아냈지? 의사들도 검사 없이 찾아내기 힘든 걸.”
 “점점 숨이 차고 창백해졌어요. 가슴을 움켜잡고 괴로워했고요. 옷을 찢으니 명치 쪽에 시커먼 멍이 보였죠.”
 “단지 그걸로······?”
 “네. 열어보면 정확해지니까요.”
 “미친 소리!”
 김광석은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자가 죽을 수도 있었어!”
 “저 아니었으면 그렇게 됐겠죠.”
 도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쏘아보며 대치하고 있던 그때.
 불현 듯 UN군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닥터! 어떻게 된 겁니까?”
 현장지휘관이었다.
 김광석은 도수에게서 눈을 뗐다.
 “여기 이 친구가 멋대로 수술했네. 일단··· 환자는 살려놨어.”
 “아.”
 현장지휘관이 도수를 일별하더니 물었다.
 “의료진이 아닙니까?”
 “그렇네.”
 “모르시는 분이고요?”
 “처음 봤네.”
 확인을 마친 지휘관은 도수를 턱짓했다.
 “연행해.”
 군인 둘이 다가가 포승줄을 묶었다.
 도수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손을 뒤로 빼줬다.
 “수술이 끝났다고 해도 저 사람은 치료가 필요해요.”
 “자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현장지휘관은 까칠했다.
 그는 이어서 병사들에게 말했다.
 “저항하거나 도주 시 발포해도 좋다.”
 “옛썰.”
 도수가 피식 웃었다.
 “살려줘도 지랄이구만.”
 이번에도 한국말.
 따라서 김광석만 알아들었다. 그는, 꽁꽁 묶여 지나쳐 가는 도수를 향해 당부했다.
 “자중하는 게 좋을 거야.”
 나름 걱정해서 한 말인데.
 도수는 뒤돌아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본인이나 신경 쓰시죠.”
 등 뒤로 묶인 손.
 가운데 손가락이 솟았다.
 
 
 
 제3장 신의 손
 
 
 
 덜컹, 덜컹······.
 군용차량이 흔들렸다.
 맞은편에 앉아 도수를 빤히 응시하던 김광석이 한국말로 불렀다.
 “이봐.”
 도수가 고개를 돌리자.
 그가 물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아··· 미안하군.”
 “별말씀을.”
 김광석은 도수의 표정을 훔쳐봤다.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눈빛이 삭막하고 차갑다.
 ‘쯧쯧. 어린 것이······.’
 내심 혀를 찬 김광석이 물었다.
 “언제부터 떠돌았지?”
 “열두 살 때부터요.”
 “···지금은 몇 살이고?”
 “열아홉이요.”
 “7년이나 전쟁터를 전전한 건가?”
 7년 전이면 이 땅, 라크리마에 내전이 발발한 시기. 전쟁이 시작되고 계속 떠돌았다는 뜻이다.
 도수는 대답 대신 질문을 찔렀다.
 “전쟁터를 잘 아세요?”
 “무슨 뜻이지?”
 “여긴 반군 세력과 인접한 위험지역이에요. 어딜 가든 생지옥이라고요.”
 “그래서?”
 “전쟁터에선, 일단 살리고 보는 겁니다.”
 자신의 의료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잘잘못을 따지는 건 김광석의 소관이 아니었다.
 “그 얘긴 주둔지에 가서 하도록 해.”
 “어련하시겠어요.”
 고개를 젓는 도수.
 아랑곳하지 않은 김광석이 질문을 이어갔다.
 “진단법은 어디서 배웠나?”
 “아, 그거요······.”
 도수가 두 손이 묶인 채 상체를 기울였다.
 귀를 열고 집중하는 김광석.
 그런 그를 향해, 도수가 말했다.
 “그런 건 주둔지 가서 물어보시죠.”
 김광석은 맥이 탁 풀렸다. 그 전부터 느낀 거지만 보통 까칠한 녀석이 아니었다.
 ‘하긴, 예의라는 걸 배울 여유나 있었을까.’
 참는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말장난하지 말고. 메스를 다루는 손놀림이 정교하던데?”
 “아아.”
 도수는 뻔뻔하게 웃었다.
 “본능이죠. 포크질하는 법을 배우진 않잖아요?”
 “젠장.”
 김광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도무지 대화가 안 되는군. 메스질과 포크질을 비교해?”
 그러나 기만은 계속됐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운동화 끈이 풀리면 다시 묶어야 한다는 걸 알죠. 어떻게 묶을지도요. 저한테 수술은 그런 겁니다. 환자 상태를 보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그냥 알 수 있어요.”
 김광석은 전혀, 조금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수술할 수 있다면 전 세계 의사들이 왜 이론을 공부하고 실습을 하겠는가?
 “그래, 계속 해보자고. 말하는 걸 보니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은데. 몇 명이나 수술했어?”
 “5,271번이요.”
 “하하하하하하!”
 김광석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갈 수록 가관이다.
 5,271번?
 그의 임상경험보다 수십 배는 되는 수치였다.
 “그래? 매일매일 하루 2건 이상 수술을 했다고?”
 “네.”
 그래, 어디까지 허풍을 떠나 보자.
 그리 생각한 김광석이 물었다.
 “그래서 성공 확률은?”
 “제로.”
 “응?”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습니다.”
 “도저히 못 들어주겠······.”
 덜컹!
 김광석이 들썩였다.
 차량이 멈춰 선 것이다.
 곧 문이 열리고, UN군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화 즐거웠습니다.”
 짙은 미소를 띤 도수는 군인들 손에 이끌려 차에서 내렸다.
 말을 하다 만 김광석은 입을 닫았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5,271회 수술?
 성공 확률 100%?
 설령 성공 확률이 높은 환자만 골라서 수술했다고 해도, 절대 불가능한 수치였다.
 사람 목숨은 예측불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의사도 사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조사해 보면 다 밝혀질 일이지.”
 김광석은 느긋하게 그들을 뒤쫓았다.
 
 ***
 
 UN군 주둔지에 도착한 도수는 곧장 취조실로 연행됐다.
 그리고 머지않아 상사 한 명이 들어왔다.
 “바실 프롬리 상사일세.”
 “이도숩니다.”
 맞은편에 앉은 바실 프롬리 상사가 조서를 꺼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자세히 적게. 자네 신원을 확인해 줄 난민촌 친구들 이름도.”
 “언제 적 일부터 적죠?”
 “기억이 시작된 순간부터.”
 “좀 긴데요.”
 “시간은 많아.”
 도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능력을 써서 기운이 빠진 상태.
 쉬고 싶었지만 펜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사각, 사각······..
 정적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바실 프롬리는 종종 시계를 확인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점심, 저녁 식사를 취조실에서 모두 마친 후에야 조서가 완성됐다.
 “다 됐습니다.”
 도수가 조서를 넘겼다.
 이를 받아 쭉 훑은 바실 프럼리가 고개를 들었다.
 “생각보단 짧군.”
 “기억나는 건 다 적었어요.”
 “열두 살 때 부모님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고 그 후 7년간 전쟁터를 전전하며 사람들을 치료해 왔다?”
 “네.”
 “반군도 치료했나?”
 바실 프롬리의 시선이 고요하게 압박해 왔다.
 그러나 도수는 꿈쩍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 한 명, 가벼운 열상 환자도 치료하기 힘들었어요. 좀 수완이 생긴 후에야 하루 두세 명, 제가 치료할 수 있는 부상당한 환자들만 치료했습니다.”
 “흠······.”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던 바실 프롬리가 말했다.
 “일단 여기 적은 자네 친구들에게 신원을 확인할 때까지 구류될 거야. 그 후 자네의 무면허 의료 행위에 관한 처분을 내릴 걸세.”
 “좋으실 대로.”
 도수의 얼굴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바실 프롬리는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다.
 ‘이런 어린 소년이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이상했다. 조사실에 도착하자마자 겁부터 먹었어야 할 어린애가 너무 태연했기 때문이다. 만약 적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본색을 드러내야 하는데, 장시간 조사를 받으면서도 전혀 변화가 없었다.
 “뭐, 조사해 보면 알겠지.”
 바실 프롬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한편, 취조실에서 끌려 나간 도수는 유리창을 통해 심문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김광석과 맞닥트렸다.
 핼쑥해진 도수의 얼굴을 본 김광석이 물었다.
 “···괜찮나?”
 허풍쟁이에 싸가지 없는 꼬마 녀석이긴 하지만.
 자식처럼 어린애가 구류당하게 된 것만으로 충분히 보기 불편했다.
 그러나.
 파리한 안색의 도수.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럼요. 저는 곧 풀려날 테니까요.”
 
 ***
 
 ‘이도수 사건’을 맡은 바실 프롬리는 도수가 써준 명단을 갖고 난민촌을 찾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난민들.
 ‘어떻게 수소문을 한다.’
 담배를 꺼뜨리며 한숨을 내쉰 바실 프롬리는 본격적으로 임무에 착수했다. 그는 맨 처음, 천막에 기대어 앉아있는 노파에게 가서 물었다.
 “혹시 솔로몬 밴디란 분을 아십니까?”
 단번에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
 “솔로몬은 왜 찾으시오? 우리 촌장이라오······.”
 “촌장님이요?”
 바실 프롬리도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났다. 공권력은 없지만 난민들이 그들끼리 의존하는 존재가 있다고.
 “솔로몬 밴디란 분이 촌장님이셨습니까?”
 “그렇다오. 촌장이 지내는 곳은··· 저쪽이오.”
 노파가 쭈글쭈글한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
 다른 천막과 다를 바 없는 허름한 곳이었다.
 “여쭤보지 않았다면 고생할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인사한 바실 프롬리는 촌장이 머문다는 천막으로 갔다.
 천막을 걷자.
 흑인 한 명이 책을 읽고 있는 게 보였다.
 ‘이 전쟁통에 독서라니. 한가롭군.’
 바실 프롬리는 내색하지 않고 말을 붙였다.
 “안녕하십니까?”
 “······.”
 고개를 드는 흑인.
 “군인 양반이 날 찾을 일이 없는데.”
 책을 덮은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오?”
 묵직한 분위기.
 잠시 기가 눌려 있던 바실 프롬리가 아차 싶어 용건을 꺼냈다.
 “아! 혹시 솔로몬 밴디 촌장님이 맞으십니까?”
 “그렇소만.”
 흑인, 솔로몬 밴디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실 프롬리가 덧붙였다.
 “이도수라는 소년을 아시나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분위기가 변했다.
 솔로몬 밴디의 눈빛이 돌변한 것이다.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소?”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였다.
 절로 긴장이 된 바실 프롬리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게, 의사 면허도 없이 부상자들을 수술하다 발각돼서 현재는 구류된 상태입니다.”
 “휴······!”
 솔로몬 밴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하늘이 무너질 뻔한 사람처럼.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다행인 겁니까?”
 구류되어 있다는데 다행이라고?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솔로몬 밴디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살아는 있잖소.”
 그리고는 상체를 내밀며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습니까?”
 바실 프롬리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원래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
 “실은 그 소년에 대해 알아보러 왔습니다. 반군에서 보낸 첩자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하하하하하!”
 천막이 들썩일 만큼 큰 웃음을 터뜨린 솔로몬 밴디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나를 비롯해 이곳 난민들 모두 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이라도 바칠 텐데.”
 “예?”
 바실 프롬리가 깜짝 놀라 물었으나,
 솔로몬 밴디는 바로 대답해주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마르지 않소?”
 “아··· 마릅니다. 그보다······.”
 “기다리시오.”
 말을 자른 솔로몬 밴디는 물을 한 잔 내왔다.
 “워낙 궁색해 드릴 게 이것뿐이오.”
 “아닙니다. 그보다 방금 뭐라고 하셨는지.”
 “그를 위해서라면 우리 모두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했소.”
 “······!”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쯤되자, 바실 프롬리는 궁금증을 참기 힘들었다.
 “어째서입니까? 대체 그 소년이 무슨 일을 했기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겁니까?”
 “그가 지금 잡힌 이유라고 생각되는데.”
 “···예?”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선문답.
 솔로몬 밴디는 빙그레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도수는 마을 사람들을 돌봐주었소. 다친 사람도, 지병이 있던 사람도 치료를 받았지. 이 난민촌에, 가족 중 한 명이라도 그 소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요.”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소.”
 솔로몬 밴디는 바실 프롬리가 방금 목을 축인 물 잔을 눈짓하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단숨에 들이켠 그 물은 내가 오늘 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식수였소. 하지만 그를 도와줄 수 있는 당신한텐 기꺼이 내줄 수 있지. 그는 우리에게 이런 존재입니다.”
 “······.”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먼저라오. 하지만 상대가 같은 인간이 아닐 땐 얘기가 달라지지. ‘나’보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더 이상 타인이 아니지 않겠소? 다치고 병든 난민들을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모두를 치료해 준 이도수는 우리에게 인간 이상의 가치가 있소.”
 바실 프롬리는 얘기를 듣고도 믿기 힘들었다.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모든 사람을 치료했다고요? 그 소년이 무슨 신이라도 된답니까?”
 “아니, 그는 신이 아니오.”
 진지하게 고개를 저은 솔로몬 밴디가 말했다.
 “죽을 사람을 살려내진 못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자신이 살릴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살려냈다는 것이오. 그것도 수백 명을.”
 “아······.”
 “앞으로 수백, 수천 명의 난민들을 더 살릴 수 있는 한 사람. 그리고 내 목숨. 무엇이 더 소중하겠소?”
 
 
 
 제4장 협상
 
 
 
 주둔지로 복귀한 바실 프롬리는 사령관 할리 무어 장군을 만났다.
 그리곤 목판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뭔가?”
 할리 무어가 묻자 바실 프롬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전부 광신도들인 줄 알았습니다. 보시다시피 그들 모두 피로 연판장을 새겼습니다. 이도수를 석방시켜 달라는 일종의 탄원서를요······.”
 “허.”
 할리 무어는 헛바람을 뱉으며 김광석을 보았다.
 “닥터. 그 소년을 처음 발견한 당신이 얘기해 보시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김광석이라고 알 리 없었다.
 “글쎄요······.”
 그때, 바실 프롬리가 입을 열었다.
 “난민 수백 명을 치료했답니다. 혼자서요.”
 김광석이 눈을 부릅떴다.
 ‘그럼 그 말이······.’
 차 안에서 나눈 대화가 사실이란 말인가?
 “전부 다 치료했답니까? 그러니까, 실수도 안 했고요?”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할리 무어 장군이 말을 잘랐다.
 그러나 바실 프롬리는 한숨을 쉬며 대답해 주었다.
 “네. 한 명도······. 전부 다 건강하게 치료해 주었답니다.”
 “허허허.”
 김광석이 헛웃음을 뱉었다.
 하지만 할리 무어 장군은 웃을 수 없었다.
 “실수까지 없었다? 그럼 우리가 내세울 명분이 더 줄어들겠군. 지금 난민들은 굶주리고 병들어서 무서울 것이 없소. 그런데 자신들을 치료해 준 성자가 위험하다? 무슨 짓이라도 할 거요.”
 그에 김광석이 반론을 제기했다.
 “우리 UN군도 그들을 지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소년은 엄연히 국제의료법상······.”
 “의사 양반.”
 말을 자른 할리 무어가 덧붙였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지금 이 전쟁통에 국제의료법 같은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소? 그리고 UN군 지원은 한계가 있어요. 우리가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이 반군에 맞서는 건데, 달리 보면 정부군과 반군의 협상을 번번이 막아서고 있는 셈이오. 그들 중 우리를 고맙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만을 품은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이 말이오. 지금 이런 상황에, 여기 이 탄원서들 좀 보시오.”
 “······.”
 김광석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윤리적인 가치관을 내세운다 해도 하루하루가 전시상황인 라크리마에선 군인이 곧 법이었다. 그리고 이곳 지휘관인 할리 무어에게 중요한 건 의료법이 아닌 난민들의 동향이었다.
 톡톡.
 책상을 두드리던 할리 무어 장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한번 만나보도록 하지.”
 “···그 소년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모시겠습니다.”
 바실 프롬리는 할리 무어 장군, 그리고 김광석을 데리고 도수가 갇힌 유치장으로 갔다.
 이도수는 태평하게 타이(Tie: 봉합할 때 쓰는 기술)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장군님!”
 보초가 경례를 붙이며 보고했다.
 “무기가 될 만한 소지품은 모두 압수했습니다. 단, 그 외 물품은 돌려준 상태입니다.”
 “알겠네. 나가 있게.”
 “옛썰.”
 보초가 유치장을 나갔다.
 이내 의자에 앉은 할리 무어 장군이 말을 걸었다.
 “소문이 자자하더군.”
 그제야 도수가 타이를 멈췄다.
 “장군.”
 “내 얼굴을 아나보군.”
 “먼발치에서 몇 번 봤습니다.”
 “그래,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팔짱을 낀 할리 무어가 대뜸 물었다.
 “난민들 모두가 널 풀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어. 어떡하면 좋겠나?”
 정말 뜬금없는 질문.
 그러나 도수는 기다렸다는 듯 역질문을 던졌다.
 “이미 답안지를 작성해 두신 것 아닙니까?”
 할리 무어 장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얘기가 빠르겠군. 똑똑한 친구야. 그래, 맞네. 지금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묘수를 생각해 왔지.”
 “그게 뭐죠?”
 “정말 다행스럽게도 자네가 무면허로 의료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건 여기 네 사람뿐이야.”
 “그래서요?”
 “자네 고향이 한국이든 다른 곳이든, 어디든 보내주겠네. 그러니 혼자 조용히 떠나.”
 이곳.
 라크리마는 지옥이다.
 난민 누구한테 묻던 혹할만한 제안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도수는 아니었다.
 “싫습니다.”
 “······!”
 눈을 치켜뜬 장군이 물었다.
 “왜지?”
 도수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제가 어디 가서 사람을 치료할 수 있겠어요?”
 “······.”
 할리 무어는 그제야 자신이 무언가 단단하게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의 소년이 원하는 게 뭔지,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러든 말든, 비상식적인 발언으로 모두를 당황시킨 도수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 땅에는 당장이라도 제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수백, 수천 명이나 있습니다. 내일이면 또 늘어나겠죠. 그다음 날이면 더 늘어날 테고요. 전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
 그 미소를 본 할리 무어 장군은 소름이 돋았다.
 ‘이 자식······.’
 전혀 협조할 생각이 없다.
 고집을 꺾을 것 같지도 않다.
 할리 무어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넌 사라지지 않으면 안 돼. 네 생각이 어떻든 이곳에 남을 수 없다는 뜻이야. 만약 그래도 이곳에 남겼다면? 난 널 국제의료법에 의거, 처벌할 거다. 얼마 전에 네가 벌였던 무모한 미친 짓을 계속하겠다면 더더욱!”
 “······.”
 빤히 응시하며 잠시 침묵하던 도수가 입술을 뗐다.
 “잠시 독대할 수 있을까요?”
 “그러지.”
 할리 무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변에 눈치를 줬다. 그러자 바실 프롬리가 김광석을 데리고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고 둘만 남은 유치장.
 도수의 눈이 번뜩였다.
 샤아아아아.
 그가 입을 열었다.
 “혹시 담배 피우십니까?”
 “한 대 피우겠나?”
 할리 무어가 시가 케이스를 꺼냈다. 전쟁터에서 어린아이가 담배를 주워다 피우는 일은 심심찮았기 때문.
 하지만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요새 기침이 늘지 않으셨습니까?”
 “음?”
 “가끔 가슴도 아프실 테고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왜··· 그런 걸 묻지?”
 “너무 놀라지 말고 들으십시오.”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장군님께선 폐암이십니다.”
 도수의 눈에는 폐에 있는 종양이 보이고 있었다.
 “지금도 암세포가 눈덩이처럼 자라고 있는 중이고요.”
 쿵.
 할리 무어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암’이라는 단어의 위력에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는 백전노장답게 평정심을 찾으려 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지? 우린 오늘 처음 만난 것 같은데··· 한번 본 것만으로도 암이란 걸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의학에 문외한인 그라도 얼굴만 보고 병명을 알아낼 수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검사는 왜하고, 경과는 왜 지켜본단 말인가?
 그 사실을 떠올리자 문득 괘씸한 마음이 치고 올라왔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아니면 정말 신이라도 된 것 같아?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지어내나 본데······.”
 “내일.”
 도수가 말을 잘랐다.
 “내일 검사받고 다시 오세요.”
 “뭐······?”
 “저도 설마 암일 줄은 몰랐습니다.”
 도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연기라면 너무나 사실적인 연기.
 “그저 남들도 한두 개쯤 달고 사는 잔병치레나 하고 계실 줄 알았죠. 그걸 낫게 해드리고 다시 협상을 하려고 했는데······.”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가!”
 할리 무어가 호통을 쳤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 할 말을 계속했다.
 “아마 병원에선 수술 성공률이 희박하다고 할 겁니다. 1퍼센트 미만으로요.”
 그리고 덧붙인다.
 “하지만 전 수술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요. 꼭 검사받아보고 내일 다시 오세요.”
 “완전 미쳤군······!”
 할리 무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유치장을 나가 버렸다.
 그 뒷모습에서 눈을 뗀 도수.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쉽지 않은 수술인데······.”
 두근 두근······.
 왜 심장이 뛰는 걸까?
 도수는 다시 타이를 감았다.
 
 
 
 제5장 밀당의 고수
 
 
 
 이튿날 저녁.
 할리 무어 장군이 찾아왔다
 “···오늘 아침 병원에 다녀왔다.”
 어제보다 십 년은 더 늙은 표정.
 얼굴 가득히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타이를 멈춘 도수가 그를 응시했다.
 “그렇군요.”
 “암이라더군.”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물었다.
 “병명은요?”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모르는 병명이다.
 “검사 사진이 있습니까?”
 “가져왔다.”
 할리 무어가 사진을 보여주었다.
 도수가 투시 능력으로 본 것과 일치하는 곳들에 암 덩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지만, 아무 근거도 없이 몸속 상태를 턱턱 알아내면 의심을 살 게 분명했기에 의례적으로 물은 것뿐이다.
 “병원에선 뭐라고 했습니까?”
 “4기라고. 면적이 넓어서 절제할 수 없다더군.”
 “그랬겠죠.”
 도수가 수긍하자 할리 무어가 물었다.
 “하지만 넌 가능하다고 했지.”
 “······.”
 “살 수만 있다면.”
 심호흡을 한 그가 덧붙였다.
 “살고 싶다.”
 도수는 쇠창살 사이로 사진을 돌려주었다.
 “저를 믿을 수 있으십니까?”
 “척 보고 내 병을 알아냈어. 네가 아니었다면 발견할 수 없었겠지.”
 “그랬겠죠.”
 “···모르는 게 약이었을까?”
 수술이 가능하냐는 뜻.
 도수의 두 눈이 빛을 머금었다.
 샤아아아아아아.
 시선이 닿는 곳.
 할리 무어의 신체 부위가 반투명으로 내비쳤다.
 도수는 차근차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리훑었다. 동시에 그의 뺨을 타고 땀방울이 떨어졌다.
 역시··· 투시 범위가 넓어질수록 체력 소모도 극심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알아낸 사실도 있었다.
 “아직은 완치가 가능합니다. 시간이 많진 않지만.”
 “후······.”
 길게 한숨을 내쉰 할리 무어가 중얼거렸다.
 “다행이군.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야.”
 그리곤 도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내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야. 내 입장에선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고국에 남기고 떠나온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하지만 난 아직 불안해. 내게 신뢰를 줄 수 있겠나?”
 “신뢰요?”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병원에선 시한부를 말했죠. 장군님한테 선택지는 두 가지뿐입니다. 죽을 날만 기다리느냐, 아니면 뭐라도 해보느냐.”
 “······.”
 “이런 상황에 성공을 장담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더구나 우린 운명공동체죠. 제 실수로 장군님이 잘못되면 전 더 난처해질 겁니다.”
 “그렇겠지.”
 “그럼 믿으세요.”
 “······.”
 할리 무어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차라리 호랑이를 앞에 두고 재주를 부려보라고 하고 말지. 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한테 너무 무례했군.”
 그는 본론을 꺼냈다.
 “비용은 얼마나 들겠나?”
 “돈은 필요 없습니다.”
 “필요 없다?”
 “네. 지갑이 든든하다고 날아오는 총알을 막아주진 않으니까요.”
 그 또한 맞다.
 전쟁터에 있는 한 화폐의 가치란 무의미하다.
 고개를 주억거린 할리 무어가 물었다.
 “그럼 내가 뭘 해주면 되겠나?”
 “여기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당연한 얘기를 하는군. 성공한다면 자넨 자유야. 그걸로 끝인가?”
 “그럴 리가요.”
 도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장군님 관할 지역 내에선 자유롭게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뭐?”
 할리 무어가 난색을 표했다.
 “그건 좀 곤란해. 네가 여기 잡혀 온 이상, 이 사실이 알려지면 난 모든 걸 잃게 될 거야.”
 “글쎄요.”
 도수가 역으로 물었다.
 “장군님께선 지위가 목숨보다 중요하십니까?”
 동시에 할리 무어의 표정이 휴지 조각처럼 구겨졌다.
 “지금 내 목숨을 갖고 흥정을 하는 건가? 협박이야?”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뿐입니다.”
 “어떻게 의사란 사람이······!”
 “제가 의사라면!”
 소리치며 가로막은 도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치료했다고 이곳에 갇혀 있진 않겠죠.”
 “······!”
 “더구나 제게 치료받은 그 사람은 장군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할리 무어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
 그는 상대가 어린 소년이라고 해서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은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
 자신의 목적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상대의 목숨 따윈 안중에도 둬선 안 되는 비정한 세계인 것이다.
 “군인은 군율과 명예에 죽고 살아. 내가 한목숨 살자고 규율을 어기고 지위를 내던질 것 같나?”
 “저랑 게임을 하고 싶으신 거라면 충고해 드리고 싶군요. 장군님은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암세포가 자라나고 있죠.”
 “또 협박을······!”
 할리 무어는 이를 악물었다. 마음 같아선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으나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죽음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때, 도수가 입을 열었다.
 “이미 저에 대해 조사해 보셨을 테니 제 수술 성공률은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믿음을 가지지도 못했을 테니까.
 “······.”
 대답이 없자.
 도수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한 제안은 장군님을 포함한 수많은 목숨을 구하는 길이 아닌가요? 장군님의 지위와 사람 목숨. 뭐가 더 중요합니까? 어느 쪽이 진짜 명예를 지키는 길이죠?”
 질문을 남긴 도수는 시계를 보며 덧붙였다.
 “시간이 없으니 24시간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답변 주세요.”
 그리곤 등을 돌렸다.
 칼 같은 축객령.
 할리 무어는 찍소리도 할 수 없었다. 기분대로 굴었다간 실낱같은 희망이, 수술이라도 받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영영 날아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고 했지.’
 난민촌 촌장의 증언을 떠올린 할리 무어는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걸음을 돌렸다.
 
 ***
 
 할리 무어는 반나절도 채 버티지 못했다.
 언제 몸 상태가 악화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6시간 만에 도수를 찾아왔다.
 “좋아.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하지.”
 “그럼······.”
 “단, 나에게도 조건이 있어.”
 그를 빤히 응시하던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해 보세요.”
 “자네가 사람들을 치료할 권한을 가지는 건 주둔지로 한정하도록 하지. 물론 아군만 치료할 수 있어.”
 언뜻 들으면 모든 걸 수용하는 것 같다.
 호칭도 ‘너’에서 ‘자네’로 바꾸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허울 좋은 제안에 불과했다.
 주둔지에는 닥터 김광석처럼 이미 상주하는 의료진이 있으니까.
 만약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주둔지 내로 국한된다면 닥터 눈치나 보며 허드렛일이나 하게 될 터였다.
 해서 도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짜 위급한 환자들은 현장에 있습니다. 출혈이 심해서 이송해 오면 늦는 경우가 태반이죠. 장군님의 제안은 제 손을 묶어놓고 수술을 하라는 겁니다.”
 “전투현장에 직접 나가겠다?”
 “아프고 다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요.”
 “성자 나셨군.”
 할리 무어는 비아냥댔다.
 “군의관도 하지 않는 일을 하겠다고 자청해서 나서다니. 차라리 입대를 하지 그래?”
 지구상에 수술 권한이 있는 의무병은 없다.
 도수는 대답할 가치를 못 느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치료해 왔습니다.”
 “전투 현장에 가서?”
 “어차피 난민촌에 정착하기 전에는 반군을 피해 도망 다녔어요. 정처 없이, 숱한 전투 현장을 지나면서.”
 “···물러날 생각이 조금도 없군.”
 할리 무어는 도수의 눈빛에서 결연한 의지를 보았다.
 그리고 역시, 도수가 말했다.
 “애초부터 협상하려던 게 아닙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거지?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 해두죠.”
 “헛소리.”
 할리 무어가 입꼬리를 올렸다.
 “내 목숨을 걸고 딜을 하는 걸 보고도 그런 감상적인 이유를 믿으라고? 자네도 내게 원하는 게 있으면 날 납득시켜야지. 안 그런가?”
 사실, 굳이 그를 납득시킬 이유는 없었다. 할리 무어는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채로 발악하는 것뿐이니까.
 그렇다 해도, 도수는 불필요하게 자존심을 긁을 생각이 없었다. 만에 하나 부스럼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좋아요. 정확히 납득시켜 드리죠.”
 “그래, 한번 해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도수가 입을 열었다.
 “전투에서 느끼는 스릴과 비슷합니다.”
 “스릴······.”
 할리 무어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역시 도수가 말한 ‘스릴’을 느껴본 적 있었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 적응하기 마련이다. 잔혹성, 공포, 긴장과 같은 본능들이 반복되면 인격이 바뀐다. 그렇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한 자극들에 중독되는 것이다.
 “지금 스스로 전쟁광이라고 밝히는 건가?”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비슷하지만 달라요. 저는 매일같이 죽어가는 사람을 봅니다. 죽음이란 구덩이에서, 지옥에서 악마가 끌어당기죠. 그때부터 전투를 치르는 겁니다. 지옥까지 손을 쑤셔 넣고 끌어 올리는 거죠. 죽어가던 사람을 살릴 때의 희열. 그 긴장감과 경이로움이 계속 저를 부릅니다.”
 “······!”
 너무도 생생한 설명에 할리 무어가 눈을 치켜떴다.
 한편 도수의 눈동자 역시 광기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저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이 좋습니다. 그게 제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유예요.”
 “허.”
 할리 무어는 토를 달 수 없었다.
 집착에 가까운 소년의 의지가 백전노장인 그를 질리게 만든 것이다.
 “그거 아나?”
 “······?”
 “자넨 못 말릴 꼴통이야.”
 그렇게 말한 할리 무어가 결론을 내렸다.
 “좋아, 휘둘려 주지! 어차피 협상의 여지가 없으니··· 수술만 성공하면 자네 뜻대로 하게 해주겠어. 지독한 꼬맹이 같으니.”
 “제가 병원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상대적인 대가를 받고 치료한다는 것뿐입니다.”
 “늙은이한테 수술비 한번 더럽게 비싸게 받는군. 내가 준비할 건 뭔가?”
 “수술 전, 장군님과 제가 한 약속에 관해 중립적인 증인을 세우고 싶습니다.”
 “모든 의료진과 지휘부 간부, 난민촌 촌장에게 전달해 두지. 이 정도면 됐나?”
 “믿겠습니다.”
 믿는다······.
 할리 무어는 피식 웃었다.
 “내 몸속에 폭탄이나 심어두지 말게. 자, 그럼 이제 필요한 걸 얘기해 봐.”
 역시 군인이라 그런지 한번 결정 난 일에 대해선 시원시원했다.
 “자세한 건 수술 방에 들어오는 수술팀이 정해지면 주문하죠. 최대한 빨리 입이 무거운 팀원들을 선별해 주십시오.”
 “내일까지 대령하지.”
 “좋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도수가 미소를 보였다.
 “닥터 킴을 어시스턴트에 포함시켜 주세요.”
 닥터 킴.
 바로 김광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제6장 폭풍전야
 
 
 
 늦은 시간.
 할리 무어에게 불려간 김광석은 자다 일어나 퉁퉁 부은 눈을 부릅떴다.
 “암이요?”
 “그렇소.”
 “확실한 겁니까?”
 “오늘 아침,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소.”
 “······.”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단다.
 그럼 오진일 리는 없다는 뜻.
 김광석은 몇 번 입을 더듬다가 어렵게 물었다.
 “몇 기랍니까?”
 “4기라고 하더군.”
 “병명은요?”
 “진행성 비소세포폐암이란 병을 아시오?”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4기면 생존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병원에서도 수술을 단념했을 것이다.
 “······.”
 김광석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할리 무어가 입을 열었다.
 “괜찮소. 나이도 있고··· 어차피 우리야 죽음을 각오하고 사는 사람들이니. 하지만 내가 흔들리는 건, 살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오.”
 살 가능성이라니?
 김광석의 눈이 커졌다.
 “4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소.”
 “병변 부위가 아무리 좋아도 그 정도 진행도면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극히 드물 텐데··· 검사사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할리 무어는 검사 사진을 건네주었다.
 그걸 본 김광석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날 살릴 수 있겠습니까?”
 “······.”
 사진을 돌려준 김광석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저 아닌 누구라도 손을 대기 힘들 겁니다.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 권위자가 온다 해도 손대지 못할 확률이 큽니다.”
 “그렇구려.”
 할리 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만한 권위자를 찾아서 만날 때까지 버틸 수도 없는 상황.
 고개를 주억거린 할리 무어가 덧붙였다.
 “그런데, 성공을 자신하는 사람이 있더이다.”
 “성공을 자신한다고요? 그게 누굽니까?”
 “이도수.”
 “···예?”
 김광석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이도수, 그 친구가 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소.”
 할리 무어가 다시 확인시켜 주자 김광석이 진지하게 말했다.
 “장군.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얘기해 보시오.”
 “이건 심막에 고인 피를 빼내는 것과 차원이 다른 수술입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많은 케이스를 경험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수술을 한 적은 없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 무리해서 수술을 강행했다가 지금 남겨진 시간마저 잃으실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는 게······.”
 “그래서.”
 할리 무어가 말을 잘랐다.
 “닥터 킴이 수술 방에 함께 들어와 줬으면 합니다.”
 “제가요?”
 김광석은 일순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말 죄송한 얘기지만··· 제가 담당의라면 전 수술을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인 제가 집도의가 될 순 없겠지요. 항암치료를 하면서 시간을 버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시는 게······.”
 “닥터 킴에게 집도를 맡기려는 게 아닙니다. 수술 과정을 확인하고 수술 내내 훌륭한 솜씨로 도와달라는 뜻이오.”
 “······!”
 김광석의 손을 맞잡은 할리 무어가 덧붙였다.
 “수술 집도는 이도수. 그 친구가 하게 될 겁니다.”
 
 ***
 
 철컹!
 기적처럼 유치장 문이 열렸다.
 도수는 거울에 얼굴을 비춰봤다.
 거뭇거뭇하게 자란 수염, 짙은 눈썹이 조각 같은 이목구비와 어우러져서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샤워를 좀 하고 싶은데요.”
 “팔자 좋군.”
 까칠하게 대답한 군인이 그를 샤워 부스로 안내했다.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몇 없으니 당연한 대우였다.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라는 지시를 받았겠지만, 군인이 보기에 도수는 꼼짝없는 죄인이자 골칫덩이일 것이다.
 도수는 개의치 않고 면도를 하고 목욕재계를 한 뒤 깔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느새 부스 밖에는 바실 프롬리 상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물이 훤해졌군. 따라오게.”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뒤따라 갔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의무대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둔 수술 방 앞이었다.
 “결국 사고를 쳤군.”
 김광석이었다. 그는 이미 수술복을 입고 있었다.
 “잘 어울리시네요.”
 도수가 빙그레 웃자 김광석이 가시 돋친 한마디를 뱉었다.
 “설마 널 어시스트하게 될 줄은 몰랐다.”
 “든든합니다.”
 도수가 태연하게 말했고.
 김광석이 물었다.
 “어떤 수술을 할 생각이지?”
 “명칭 같은 건 모릅니다. 암이 퍼진 부위를 절제해야죠.”
 “그걸 몰라서 묻겠나? 병원에서 이미 수술을 포기한 환자야. 절제부위는 어떻게 정할 셈이지?”
 “약을 써서 치료할 수 있는 부분은 남겨두고 정도가 심한 경계선을 절제할 겁니다.”
 “그걸 어떻게 구분하지?”
 종양 위치는 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심한 농도까진 검사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썩은 사과처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절제해야 할지 경계선을 정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의사들이 선택하는 방법이 대략적 절제.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할리 무어 장군은 폐가 거의 남지 않아 사망할 터였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감이라고 해두죠.”
 “미치겠군.”
 김광석은 머리가 핑 돌았다.
 이 미친놈이 환자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방법이라도 있나 했더니··· 환자 목숨을 걸고 도박이라도 할 셈이야?”
 “말이 심하군요.”
 도수는 손을 닦으며 덧붙였다.
 “이 수술에서 집도의는 접니다. 어떤 의구심도 갖지 말고 제 지시에 따르세요.”
 “살인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을 손 놓고 지켜보라고?”
 “장군이 잘못되면 전 더 엄중한 처벌을 받겠죠. 그리고 제가 수술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건 닥터 킴도 아실 텐데요.”
 “성공을 확신하나?”
 “물론입니다.”
 “최악의 최악까지 생각해야 하는 게 의사야.”
 “1퍼센트의 확률만 있어도 최선을 다하는 게 의사죠.”
 그리 말한 도수가 몸을 돌렸다. 수술실을 향해 걸어가던 그는 이내 걸음을 멈추고 짤막하게 덧붙였다.
 “이미 결정 난 사항입니다. 집도의와 환자를 믿으세요. 만약 그게 힘들다면 수술실에 발을 들이지 마십시오.”
 그러더니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
 으득.
 이를 악문 김광석은 마스크를 고쳐 쓴 뒤 수술실로 따라갔다.
 
 ***
 
 수술실 안.
 의료진들이 도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빛까진 미처 숨기지 못했지만.
 ‘뭐야?’
 ‘대단한 권위자라더니··· 저런 애송이가?’
 물론 도수는 개의치 않았다.
 “환자 상태는요?”
 “···혈압 125에 77입니다. 안정적이에요.”
 할리 무어 장군은 깊게 잠들어 있었다.
 김광석이 맞은편에 서자, 도수의 입이 열렸다.
 “오늘 수술은 스피드가 관건입니다. 왼쪽, 오른쪽 옆구리를 다 열고 양쪽에서 폐엽을 하나씩 절제할 겁니다. 4, 5번 갈비뼈를 자르고 들어가죠.”
 빈틈없는 성격 덕분인지 지시하는 모습이 제법 능숙했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집도의.
 사정을 모르는 의료진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 한 사람, 김광석만 빼고.
 도수는 김광석의 눈을 응시했다.
 “대답은요?”
 “······.”
 시선을 맞추고 있던 김광석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도수가 말했다.
 “칼.”
 메스(Mes: 외과 수술, 해부에 사용하는 작은 칼)를 가리키는 것이다.
 통칭 메스를 부르는 명칭은 의사마다 다 달랐다. 그냥 메스, 칼, 블레이드라고 부르는 의사도 있었다.
 턱.
 메스를 건네는 간호사.
 그녀에게는 눈길도 안 주고 환자를 내려다보는 도수의 눈이 빛을 품었다.
 샤아아아아아.
 반투명하게 변하는 할리 무어 장군의 신체. 그 안에 혈관과 장기들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제7장 대수술
 
 
 
 스으으윽.
 메스를 다루는 도수의 손놀림은 교묘했다. 혈관을 피해 살과 근육을 절개하는 정교함이란.
 ‘정말··· 5,000회 이상 경험이 있기라도 한 건가?’
 김광석은 마스크 안으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5,000회의 임상경험.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진짜가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이 드는 것이다. 처음 도수를 만났을 때만 해도 가까이서 볼 수 없었던 손놀림. 그건 차라리 예술에 가까웠다.
 그 순간.
 절개를 끝낸 도수가 훤히 드러난 갈비뼈를 내려다보며 주문했다.
 “립 커터(Rib cutter: 갈비뼈 절단 시 쓰는 커다란 가위).”
 간호사가 가위를 건넸다.
 턱!
 두 손으로 넘겨받은 도수는 거침 없이 늑골을 잘랐다.
 뚝··· 뚜둑······!
 뼈가 잘려 나간다.
 동시에 섬뜩한 소리가 이어졌다.
 3, 4번 갈비뼈를 잘라낸 도수는 할리 무어의 폐를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맞은편에 서 있던 김광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윽······.”
 보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상태가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이만큼 암이 퍼졌다면 수술은 불가능하다.
 “엉망이야. 이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알겠지? 이 수술이 얼마나 무모한지.”
 도수가 마스크 위로 눈동자를 들었다.
 그러자 김광석이 말을 이었다.
 “그놈에 고집 때문에 환자 가슴까지 열고··· 이게 무슨 짓이야? 안 그래도 병약한 환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할 거냐는 말이야.”
 환자의 가슴을 도로 닫을 거라고 확신하는 그.
 그러나 도수는 다시 시선을 내리고 손을 뻗었다.
 “칼.”
 “뭐?”
 김광서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칼!”
 도수의 불호령에 간호사가 메스를 건넸다. 그리고 감광석이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칼자루를 쥔 도수가 환자의 폐를 쑤셨다.
 푹!
 “이런 미친······!”
 김광석이 비명처럼 외쳤다.
 그럼에도 도수의 동작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리게이션(Irrigation: 세척).”
 그를 보조하는 의료진이 세척액을 부었다.
 촤악!
 “석션(Suction: 흡인)”
 슈아아아아악!
 피와 세척액이 동시에 석션기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시야가 확보되는 동시에.
 도수는 폐엽에 그림자처럼 들러붙은 암덩이를 도려냈다.
 서걱, 서걱!
 그의 눈동자에 맺힌 빛이 더 짙어졌다.
 샤아아아아아.
 종양이 퍼진 농도를 정확히 구분해주는 투시 능력.
 그 투시 능력을 발판삼아 자로 잰 듯 경계선을 잘라낸다.
 석, 서걱!
 그리고 마침내.
 폐엽이 잘려 나갔다.
 그럴수록 김광석의 안색도 창백하게 질려갔다. 도수가 절제한 부위는 자칫 조금만 지나쳐도 환자의 폐 기능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만큼 아슬아슬했기 때문에, 김광석이 보기엔 과한 면적을 절제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때 도수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
 “그렇게 가만히 서 계실 거면 나가주십시오.”
 “······!”
 “아니면 피라도 제거해 주시든가요. 이리게이션.”
 손을 뻗는 도수.
 입술을 지그시 깨문 김광석이 의료진에게 세척액을 빼앗아 들이부었다.
 촤악!
 “내가 보조하지.”
 도수는 들은 척도 안하고 말했다.
 “석션.”
 슈아아아악!
 친히 석션을 실시하던 김광석이 덧붙였다.
 “···만약 잘못되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그런 각오도 없이 수술방에 들어왔겠어요? 꽉 잡아요.”
 “예··· 예엡······!”
 절개 부위를 벌리고 있던 의료진이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평소의 도수도 충분히 까칠했지만, 수술방 안에서의 도수는 매섭기 그지없었다. 어린애의 모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칼잡이로 돌변한 것이다.
 그가 날카로운 눈매로 환자를 살폈다.
 “이제 절반은 끝났습니다. 왼쪽 폐는 한곳 남았어요.”
 폐를 잘라낸 도수가 절제한 폐엽을 쟁반 위에 던졌다.
 툭!
 “하아······!”
 절개부위를 고정시키고 있던 의료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도수가 말했다.
 “정신 차려요. 이리게이션.”
 촤악!
 “석션.”
 슈아아아악!
 세척액과 핏물이 빨려 들어가자, 도수는 타이 연습을 하던 대로 능숙하게 잘라낸 부위를 봉합했다.
 그다음 갈비뼈를 근육 사이에 고정시키고 옆구리를 닫았다.
 그야말로 물 흐르듯 진행된 수술.
 수술하는 내내 의료진들이나 김광석은 숨을 돌릴 틈조차 없었다. 보조를 맞춰 따라가는 것만 해도 급급했던 것이다.
 그만큼 도수의 손이 빨랐다.
 수술과정을 가까이에서 쭉 지켜본 김광석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잠시도 망설이는 기색이 없다.
 개흉(開胸)을 하고 폐를 살피는 것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
 암이 퍼진 부위를 구분하고 절제할 면적을 정하는 데만 해도 신중의 신중을 요하기 마련이다.
 한데 도수는 생각할 틈도 없이 열고, 잘라내고, 봉합해 버렸다.
 이런 속도로 수술을 진행했는데 그 시간에 폐엽을 떼어냈다는 자체가 수술의 성패를 떠나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수술은 이제 절반이 진행됐을 뿐.
 김광석이 말을 걸 틈도 없이 도수가 의료진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른쪽도 바로 수술하겠습니다. 땀 좀 닦아주세요.”
 간호사가 붙어서 땀을 닦아주었다.
 ‘응?’
 그녀는 뭔가 이상했다.
 ‘무슨 땀을··· 비 오듯 흘리잖아? 어디 아픈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정작 도수는 개의치 않고 김광석과 위치를 바꿨다.
 “환자 자세 바꿔주세요.”
 의료진이 조심스럽게 의식 없는 할리 무어 장군을 반대쪽으로 돌려눕혔다.
 도수는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살과 근육을 절개하고 갈비뼈를 잘라낸 뒤 암이 퍼진 폐엽을 마주했다.
 김광석은 이 순간을 다시 봐도 섬뜩했다.
 “정말··· 환자가 살 수 있겠나?”
 너무 넓은 면적을 잘라낸 게 아니냐는 뜻.
 그를 응시하던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으세요. 장군은 살 수 있습니다. 남은 암세포가 사라질 때까지 얼마간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겠지만······.”
 김광석은 한숨을 삼켰다.
 “부디 자네 말이 맞길 바라지.”
 그의 시선에는 환자에 대한 걱정과 애틋함이 묻어났다.
 흘깃 바라보던 도수는 환자의 가슴 속으로 눈을 돌렸다.
 “성공할 겁니다. 칼.”
 턱.
 메스를 받는 그 순간.
 도수의 눈앞이 흔들렸다.
 “윽.”
 아찔했다.
 만약 폐엽에 손을 댄 상태였다면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왜 그래?”
 김광석이 물었다.
 “자네 손을 좀 봐.”
 도수는 메스를 쥔 손을 내려다봤다.
 덜덜.
 계속해 떨리고 있었다.
 ‘젠장.’
 투시 능력을 과하게 써버렸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진행하면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큰 수술에는 더 큰 집중력과 투시 능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만큼 더 큰 체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자리 바꾸시죠.”
 도수의 한마디.
 김광석은 눈을 부릅떴다.
 “내가 수술하라는 거냐?”
 “절제 부위는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
 김광석은 고민에 빠졌다.
 메스를 잡는 순간 환자의 죽음은 두 사람 모두의 공동 책임이 된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목숨.
 의사가 된 후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신념이었다.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김광석은 도수의 눈을 응시했다.
 “부탁하지. 난 정확이 어딜 절제해야 할지 감도 안 와. 그러니 자네가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해.”
 “그러죠.”
 도수는 메스를 넘겼다.
 자리를 바꾼 두 사람.
 ‘제발 한 번만.’
 샤아아아아아.
 도수의 투시 능력이 발현됐다.
 그리고 희미하게 절개해야 할 경계선이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오른쪽······.”
 김광석의 메스 끝이 도수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0.2㎜ 정도만 아래로.”
 미세하다.
 “아니, 0.1㎜만 위로요.”
 김광석의 메스가 다시 움직였다.
 “아래, 조금 더, 조금··· 거기!”
 딱.
 멈춘 김광석의 메스.
 “헉, 헉······.”
 도수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경계점을 잡은 그는 희미한 시야로 메스가 가야할 길을 노려보며 말했다.
 “거기서부터 지금 방향대로 3㎝를 절제하시면 됩니다.”
 김광석은 메스를 내리그었다.
 혈관들을 피해 폐엽만 잘려 나가는 기적적인 상황.
 김광석은 도수를 걱정할 정신도, 정확한 경계를 절제하고 있는 기쁨을 누릴 정신도 없이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잘하고 있는 건가?’
 무시무시한 공포.
 장님이 된 채로 수술하는 기분이었다.
 “이리게이션.”
 촤악!“
 “석션.”
 슈아아아아악!
 안쪽이 깨끗하게 비워지자 메스가 자르고 들어간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도수가 말했다.
 “2㎝만 옆으로··· 스톱!”
 이번에도 잘 멈춘 메스.
 “15도만 트세요.”
 다행히 김광석은 훌륭한 서전답게 각도기로 잰 듯 메스를 움직였다.
 “다시 3㎝ 절제하시면······.”
 휘청!
 도수가 수술대를 잡으려다 말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콰당······!
 “닥터!”
 의료진이 놀라 외쳤다.
 김광석도 당황하긴 매한가지였으나 그는 환자에게 온 신경을 쏟았다.
 ‘살려낸다!’
 위로 3㎝ 움직이는 메스.
 이번에는 도수의 정지신호를 바랄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이미 꼭짓점이 모두 맞춰졌기에, 김광석은 깔끔하게 폐엽을 절제할 수 있었다.
 텅!
 폐엽을 쟁반 위에 떼어놓은 김광석은 어쩔 줄 모르는 의료진들을 향해 말했다.
 “마무리는 내가 직접 합니다. 저 닥터 리를 병실로 데려가서 안정을 취하게 해요. 수술 마무리되는 대로 금방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닥터.”
 의료진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어려운 작업은 모두 끝낸 김광석은 수술방을 떠나는 도수의 뒷모습을 흘깃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체 어떻게 된 녀석인지······.’
 환자가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도수는 기꺼이 칼자루를 넘겨줬고 쓰러지는 순간까지 환자의 상태를 신경 썼다. 여기서 확실해진 건 도수 역시 개인의 욕심보단 환자의 회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김광석은 봉합한 실을 자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장군. 제발 기사회생하십시오.”
 
 
 
 제8장 히든카드
 
 
 
 수술을 마친 김광석은 도수가 누워 있는 의무대로 갔다.
 “괜찮나?”
 도수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끝났습니까?”
 여전히 환자 걱정부터 하는 그.
 김광석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덕분에 잘 마쳤다. 회복하실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회복하실 겁니다.”
 도수는 이번에도 확신했다.
 어떻게 4기 암환자의 상태를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자신감 문제가 아니었다.
 “매번 자신만만하군.”
 “믿어야죠.”
 도수는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환자의 회복력을 믿는 것뿐.
 김광석은 입을 열었다 닫더니,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래, 꼭 일어나실 거야.”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말했다.
 “좀 쉬고 싶습니다.”
 “아, 그래야지. 쉬어야지.”
 김광석은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하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나도 자네를 믿고 싶군.’
 그는 진정으로 할리 무어 장군이 건강을 되찾길 바랐다. 도수가 보여준 신기에 가까운 직감과 실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길 바랐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그 말을 남긴 김광석은 몸을 돌려 나갔다.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도수는 문이 닫히기 무섭게 몸을 일으켰다.
 “후.”
 흠씬 두드려 맞은 후가 이럴까?
 아직 몸이 찌뿌둥했다.
 마취제를 맞은 것처럼 어질어질하다.
 그럼에도 그는 기지개를 켜며 정신을 차리고 병실을 나섰다. 그가 향하는 곳은 할리 무어 장군이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환자실.
 소독 후 무균복장을 착용한 도수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환자를 보고 있던 간호사가 시선을 돌렸다.
 “닥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
 “괜찮으세요? 좀 더 안정을 취하셔야할 텐데······.”
 도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딘가 이상했다. 수술이 있기 전과는 상이하게 존경심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대답 대신 물었다.
 “환자 상태는?”
 “아! 체온, 맥박 다 정상이에요. 추후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이 정도면 안정적인 것 같죠?”
 뜰뜬 목소리.
 이는 호재다.
 “수술이 잘됐나 보군요.”
 담담하게 말한 도수가 덧붙였다.
 “앞으로 며칠은 두 시간 간격으로 환자 상태를 체크해 주세요.”
 보통은 세 시간에 한 번 체크하는 것이 매뉴얼이다. 그 간격이 줄어들수록 간호사 입장에선 더 피곤해지겠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밝게 웃었다.
 “네, 그럴게요! 그런데 닥터.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건 왜 묻죠?”
 “아니 그게, 의사 선생님치고 너무 나이가 젊어 보이셔서요.”
 “젊은 거 맞습니다. 열일곱이에요.”
 한국 나이론 열아홉이지만.
 그 말을 들은 간호사가 화들짝 놀랐다.
 “예? 열일곱이요?”
 정식 의사가 되려면 의대 입학부터 최소 11년의 시간이 걸린다.
 쉬이 납득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도수가 되물었다.
 “그게 중요한가요?”
 “아, 아뇨······.”
 간호사는 차마 ‘의사가 맞긴 하냐’고 묻지 못했다. 두 눈으로 수술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어떤 수술 때도 본 적 없는 실력이었다. 당시의 순간을 떠올리던 그녀는 무심코 도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수술 과정에서 도수가 보여줬던 매서운 눈빛이 오버랩됐다.
 “······!”
 얼굴을 붉힌 그녀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시선을 피했다.
 그 사이 환자의 몸 구석구석을 모두 살핀 도수가 말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환자 깨면 호출해 주세요.”
 할리 무어 장군의 마취가 깨기까진 1시간 남짓.
 도수와의 약속을 이행하기까지 남은 시간도 한 시간뿐이었다.
 ‘믿을 수 없어.’
 도수는 할리 무어를 믿지 않았다. 그는 이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기 때문이다. 막말로 이제 도수에게 아쉬울 게 없다. 인간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얼마나 다른지 지난 7년 동안 수없이 지켜봤다. 생존과 욕망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추잡해질 수 있는지도. 전쟁통에서 자란 그는 장군뿐 아니라,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의 운명을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은 그야말로 멍청한 짓이 아닌가?
 그 순간, 간호사가 정신을 일깨웠다.
 “저··· 실례지만.”
 “······?”
 “어떻게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의사가 된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타인은 집요하다.
 즉, 피곤하다.
 “안 됩니다.”
 “예?”
 황당한 표정의 그녀를 빤히 응시하던 도수가 대답했다.
 “환자 보세요.”
 드르륵.
 문을 열고 중환자실을 나서는 도수.
 그의 뒷모습을 쫓던 간호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싸가지······.’
 
 ***
 
 1시간 후.
 할리 무어 장군은 눈을 떴다.
 먼저 시력이 돌아오고, 정신도 돌아왔다.
 “쿨럭, 쿨럭······!”
 힘겹게 기침을 뱉어낸 그는 자신의 몸상태를 체크했다.
 ‘수술이··· 성공한 건가?’
 손을 쥐락펴락해 보는 그.
 아직 기력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특별히 불편한 곳은 느껴지지 않았다.
 “간호사.”
 맞은편 환자를 보고 있던 간호사가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며 등을 돌렸다.
 “장군님! 정신이 좀 드세요?”
 “그래, 괜찮아. 컨디션도 좋고.”
 장군이 물었다.
 “수술은 어떻게 됐지?”
 “잘 끝났어요! 이제 회복하시기만 하면 돼요.”
 간호사의 말에 할리 무어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쿨럭, 쿨럭! 하··· 그게 정말인가? 어떻게 병원에서도 포기한 날··· 하하하, 쿨럭!”
 웃을 때마다 기침이 섞여 나왔지만 이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죽었다 살아난 목숨 아닌가?
 “집도의, 집도의를 부르게.”
 “닥터 리 말씀이시죠?”
 “그래··· 닥터 리.”
 고개를 주억거린 간호사가 호출을 했다.
 그사이 할리 무어는 뻐근한 옆구리를 감싸 안고 생각에 잠겼다.
 ‘정말 뛰어난 실력자였군.’
 물론 그 사실을 믿었으니 수술을 강행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희망적으로 자기최면을 걸은 것뿐, 도수 자체를 믿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도수는 해내고야 말았다.
 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할리 무어 장군이 감격하고 있는 그때, 드르륵 문이 열리며 도수가 들어왔다.
 “제때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문 앞에 있었나? 부르자마자··· 쿨럭,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오는군.”
 할리 무어가 떨떠름하게 말하자 도수가 대답했다.
 “대략 이쯤이면 깨어나셨을 거라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고맙네.”
 할리 무어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다시 눈을 들 수 있었던 건 모두 자네 덕이야.”
 “별말씀을··· 완치되려면 앞으로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해요.”
 “그건 병원에서 해주겠지. 하하··· 쿨럭.”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약속을 지키실 차례군요.”
 그런데.
 할리 무어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와서 이런 얘길 하는 게··· 아니꼽겠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주면 안 되겠나······?”
 “뭘요?”
 “좋은 환경에서 정식으로 의사가 되게··· 내 모든 재정적인 지원을 약속하지. 어디가 됐든··· 아름다운 나라에서 다시 시작하게. 몇 년이든 자네가 필요로 하는 동안··· 내 목숨값을 치르겠네.”
 “말씀드렸을 텐데요.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라고.”
 “그건 자네가 밖에 못 나가봐서 하는 소리······.”
 “아뇨.”
 도수는 단칼에 잘랐다.
 “약속을 지키세요, 장군.”
 “후··· 쿨럭, 쿨럭.”
 길게 한숨을 내쉰 할리 무어가 입을 열었다.
 “설득에 임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고집을 부리는군······. 자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난 자네를 내보낼 거야. 내 방식대로··· 은혜는 갚겠네.”
 “버젓이 증인들이 있는데도?”
 “여긴 라크리마··· 내가 하고자 해서 안 될 일은 없지.”
 맞는 말이었다.
 분쟁지역에서 군인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존재가 할리 무어 장군이었다.
 “역시······.”
 도수가 입을 뗐다.
 “제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군요.”
 미리 예상했다는 듯한 말투.
 할리 무어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부터 반협박에 의한 약속이었어.”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만 사라져 주면 장군의 경력에 아무런 오점도 남지 않을 테니까요.”
 할리 무어가 반색했다.
 “날 이해하는군! 쿨럭, 쿨럭··· 그래······. 막말로 지금껏 자네가 저지른 의료 행위들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지 않나? 전부 완벽히 성공했다는··· 쿨럭. 어떤 증거도 없단 말이야.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자넨 떠나서 행복한 장래를 추구하고, 난 평생 은혜를 갚으면 되는 걸세.”
 언뜻 들으면 달콤한 이야기였지만.
 도수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미 약속을 어긴 장군을 제가 또 믿겠습니까?”
 “허··· 그래서, 안 믿으면··· 어쩔 텐가?”
 “장군님 말씀처럼 여기선 장군님 권력이 절대적이죠. 모든 사람들이 다 장군님 편이니까요. 그래서 저도 제 편을 한 명 만들어 왔습니다.”
 벌떡 일어난 도수가 드르륵 문을 열었다.
 그러자.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국인 여성이 서 있었다.
 “아······.”
 그녀를 알아본 할리 무어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당신은······!”
 “오랜만이에요, 장군님.”
 생긋 웃은 그녀가 병실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매디 보웬······.”
 “‘기자’란 직함도 붙여주시죠.”
 매디 보웬.
 그녀는 미국인으로, 모르스 마을에 머물고 있는 종군기자였다.
 조금 떨어진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매디 보웬이 입을 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이런 일을 저 모르게 벌이시다니.”
 “그건······.”
 할리 무어가 머뭇거리자 매디 보웬이 물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런··· 것 같네. 자넬 보고 충격을 받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
 “호호호! 농담도. 재미없는 건 여전하시네요.”
 “할 말이나 하지.”
 할리 무어는 도수를 노려봤다.
 정작 도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전 잠시 나가 있죠.”
 그러더니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순간적으로 놀라 어깨를 들썩인 할리 무어가 이불을 말아 쥐고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제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
 할리 무어가 침묵하자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사실, 말씀해 주시지 않으셔도 돼요. 다 듣고 왔으니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전부 다요.”
 “그럼 왜 왔지······? 지금쯤 기사를 쓰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뭐, 진위 여부 확인은 해야 하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제안할 게 있어요.”
 “제안?”
 할리 무어의 눈빛이 되살아났다.
 기사가 나가면 꼼짝없이 추궁을 받겠지만, 아직 기사가 나가지 않았다면 살 길은 있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매디 보웬이 입을 열었다.
 “문밖의 소년이 저를 찾아와 얘기하더군요. 장군님과 본인, 그리고 저까지 만족할 만한 방법이 있다고.”
 “그게 뭐지?”
 “간단해요. 장군님은 저 소년과의 약속만 지키세요.”
 “약속을 지켜라······?”
 “네.”
 대답한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럼 저 소년은 계속 사람들을 치료하겠죠? 전 그 모습을 내전의 참상과 함께 보도할 거예요. 그럼 단순한 ‘고발성 기사’보다 훨씬 더 값진 기삿감이 되겠죠.”
 “자네 둘은 횡재하겠군······. 하지만··· 내가 얻을 건······?”
 “확실한 이슈가 되면 더 이상 국제의료법 같은 건 개밥으로도 못 쓰죠. 여긴 전쟁터잖아요? 온 세상이 저 소년이 가진 신비한 매력에 주목할 거예요. 그리고 그것만으로 장군님의 잘잘못 따윈 중요치 않게 되겠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테니까.”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수가 실수하지 않고 환자들을 살렸을 때의 이야기.
 만약 반대로 환자를 죽게 만든다면······.
 “저 소년을 믿나?”
 “농담해요?”
 피식 웃은 매디 보웬이 덧붙였다.
 “전 그를 믿는 게 아니에요. 병원에서도 포기한 장군님을 살려낸 데이터를 믿는 거지.”
 “데이터라.”
 침묵하던 할리 무어가 대뜸 물었다.
 “나도 제안 하나 할까?”
 “해보세요.”
 “돈을 주지.”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당신은 한 가지만 누락시키면 돼. 내가 저 소년에게 수술 받았다는 것만. 어떤가?”
 “돈이라··· 돈 좋죠.”
 그녀가 물었다.
 “액수는요?”
 “원하는 대로. 달러로 맞춰주겠어. 아무도 할 수 없는 제안이지.”
 “축하해요. 장군님 혐의가 하나 추가됐네요. 뇌물공여 미수.”
 “잘 생각해. 아무 탈 없이 큰 금액을 벌 기횐데도?”
 “저 공돈 별로 안 좋아해요. 복권도 안 사는데 무슨.”
 매디 보웬이 말했다.
 “잊으셨나 본데, 저 종군기자예요.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에 자원해서 온 미친년이 돈이 중요하겠어요? 퓰리처상이라도 안겨주신다면 모를까.”
 할리 무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
 거절하는 즉시 매디 보웬은 사회 고발 기사를 작성할 터였다.
 고개를 절레 저은 할리 무어가 입을 뗐다.
 “당신 말대로라면 이곳 참상을 보도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목숨까지 걸고 온 당신이··· 기자로서의 신념은 어디다 버리고 이런 소설을 쓰나?”
 생긋 웃은 매디 보웬이 대답했다.
 “우린 지금 미래를 선택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선택이 진실을 만들죠. 이건 거짓도 왜곡도 아니에요. 이곳 사정에 대한 세상의 문제의식을 키우고 절망으로 물든 땅에 희망을 꽃피울 기회라고요. 그리고 ‘이도수’란 아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비범해요.”
 비범하다.
 할리 무어도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
 
 잠시 후, 매디 보웬이 중환자실 문을 열고 나왔다.
 “얘기 끝났어. 네가 원하는 대로.”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녀가 말했다.
 “역시 사람 살릴 만한 머리야. 대단한 담력까지··· 이번 건 드라마 되겠어.”
 도수는 피식 웃었다.
 “드라마라면 비극일 텐데.”
 “비극 속에서 꽃 피는 희망. 그게 바로 너야.”
 “기꺼이······.”
 도수가 중얼거렸다.
 “기삿거리가 되어드리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데 이 투시력을 쓸 수만 있다면.
 그를 빤히 응시하던 매디 보웬이 방긋 웃었다.
 “그것 참 고맙네. 어쨌든··· 딜(Deal)?”
 도수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딜.”
 마침내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된 도수.
 그가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따라오세요. 진짜 의사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보여 드릴테니까.”
 
 
 
 제9장 생존 확률 제로
 
 
 
 도수는 매디 보웬을 난민촌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난민촌에는 아직도 병마나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UN군 지휘소를 지나고 있는 그때.
 소란스러운 군인들이 보였다.
 “의료진들 불러 모아! 의사든 간호사든 붕대라도 감을 수 있는 사람은 전부!”
 “예, 알겠습니다!”
 “빨리 빨리 움직여! 시간 없다!”
 매디 보웬은 기자답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멈춰 섰다.
 “무슨 일이죠?”
 그녀가 분주한 군인을 붙잡고 묻자.
 군인이 다급한 얼굴로 대답했다.
 “시내에서 폭탄이 터졌답니다!”
 “포, 폭탄이요? 사상자는요?”
 “아직 파악된 게 없습니다! 그럼······!”
 군인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눈으로 좇던 매디 보웬이 툭 뱉었다.
 “쫓아가자.”
 도수가 고개를 돌렸다.
 “어딜?”
 “못 들었어? 붕대 감을 줄 아는 사람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다잖아?”
 폭탄테러라면 그 예후가 좋지 못하다.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도수는 두 말 없이 대답했다.
 “가죠.”
 두 사람은 의료진들이 탑승해 있는 차로 갔다. 이미 시동이 걸린 상태. 의료진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도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응급처치 정돈 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김광석이 의료진들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겸손은··· 얼른 타게.”
 고개를 끄덕인 도수와 매디 보웬이 비좁은 자리를 비집고 올라탔다. 그리고 차량이 출발하자 도수가 먼저 입을 뗐다.
 “저를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줄 알았는데요.”
 김광석은 부정하지 않았다.
 “자네가 불안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는 창밖을 향해 애가 타는 눈길을 던졌다.
 “폭탄이 터졌다면 상황은 끔찍할 테지. 정말 한 사람의 손이 아쉬울 정도로··· 혹시 몰라서 피도 이만큼이나 챙겼다.”
 김광석은 끼고 앉은 박스 뚜껑을 슬쩍 열어 내용물을 드러냈다. O형 피 주머니가 가득하다.
 그때, 지금 상황을 메모하고 있던 매디 보웬이 물었다.
 “폭탄에 당한 환자를 보셨어요?”
 “봤소.”
 김광석이 덧붙였다.
 “···딱 그만큼의 죽음도 봤고. 폭발에 제대로 휘말린 환자가 살아남는 건 못 봤어요.”
 도수는 그의 어깨너머 창밖을 응시했다. 저 멀리 치솟고 있는 시커먼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거의 다 왔군요.”
 “한 가지만 확실히 하지.”
 김광석은 도수를 향해 못 박았다.
 “현장 책임자는 나야. 이번엔 너무 나서지 말고 내 통제에 따르도록 해.”
 “전······.”
 차창 밖. 참혹한 지경의 사상자들이 보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제멋대로 굴어야 할 것 같은데요.”
 도수가 나지막이 읊조렸지만.
 사건 현장을 마주한 김광석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
 
 사건 현장은 지옥이었다.
 부분부분 시커멓게 타버린 시체들.
 매캐한 탄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끼이익, 차량이 멈추자 현장에서 인원 통제를 하고 있던 군인이 박스 문을 열어젖혔다.
 “어서 오십시오.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김광석이 내리며 물었다.
 “사상자 수는?”
 군인이 고개를 저었다.
 “사망자건 부상자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사망 열두 명, 부상 서른한 명입니다.”
 그때 부상자를 보고 있던 병사가 크게 외쳤다.
 “숨을 안 쉽니다!”
 “···부상 서른 명. 사망자 열셋이 됐네요.”
 “바로 움직이지.”
 김광석은 서둘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환자 분류.
 하지만 이런 매뉴얼을 모르는 도수는 이미 부상자 옆에 가 있었다.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부상자다. 사망자들과 구분이 안 될 만큼 숯덩이가 되어버린.
 “······.”
 도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의 뇌리로,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이 오버랩됐던 것이다. 배와 가슴에 폭탄 파편이 박혀 죽어가던······.
 ‘살린다.’
 두 눈이 번뜩였다.
 샤아아아아아.
 부상자는 아프리카계 흑인. 투시력으로 본 그의 상태는 겉보기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허벅지, 복부, 흉부에 스무 개가 넘는 파편이 박혀 있었다. 출혈이 심해 혈압도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운이 안 좋았다.
 허벅지에 박힌 파편 조각이 넙다리동맥과 접다리정맥을 찢고 들어가 대량출혈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흉부에서도 출혈로 혈흉(흉막강 안에 혈액이 괸 상태)이 생기고 복부 역시 소장과 콩팥에 크고 작은 파편들이 박혀 있었다.
 그가 어떻게 손써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어느샌가 곁에 와 있던 김광석이 입을 열었다.
 “안타깝지만 이 환자는 가망이 없다. 다른 환자부터······.”
 “살릴 겁니다.”
 도수가 말을 잘랐다.
 엄마, 아빠를 잃었던 그날처럼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땐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한 속내를 모르는 김광석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파편이 박힌 환자가 생존한 케이스는 없다.”
 단정 지은 그가 모르핀 주사를 꺼냈다. 고통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그 순간.
 턱.
 도수가 손목을 잡았다.
 김광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할리 무어 장군처럼 생존률이 희박한 게 아니라, 인력으론 불가능한 영역이란 말이다. 고통을 덜어주고 다른 환자를 보는 게 맞다.”
 지금 환자는 쇼크 상태.
 하지만 곧 깨어날 터였다.
 도수 또한 알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김광석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건물 안으로 옮겨서 수술하겠습니다.”
 도수는 아직도 손목을 잡고 있었다.
 김광석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놔.”
 “쓸데없는 짓 마세요.”
 “뭐? 쓸데없는 짓?”
 참다 못한 김광석이 쌍심지를 켰다.
 “그렇게 아무 때나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자네 욕심만 생각하나? 가망이 없는 환자한테 피 주머니 몇 개씩 들이부을 바엔 다른 가망 있는 환자부터 치료하는 게······!”
 “책임은 제가 집니다.”
 도수는 투시력을 끌어 올렸다.
 샤아아아아아.
 동시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환자들을 보았다. 그러자 피부 위로 반투명하게 빛나는 혈관들과, 그 안을 돌고 있는 혈류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응급처치 시 수혈해야 할 양이 대략적으로 파악되었다.
 “피 주머니는 넉넉해요. 이송이 가능한 환자들은 지혈한 후 이송하면 되고, 출혈이 심한 환자들도 수액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걸 어떻게 판단하나? 충분하게 챙겨 왔다곤 해도, 아직 환자들 상태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도수의 능력을 모르는 김광석으로선 당연한 의문이었다. 더 정확하려면 일일이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수혈할 수 있는 피 주머니 개수를 따져서 생존 확률이 높은 환자부터 수혈해야겠지만.
 그 시간이면 눈앞의 이 환자는 백 퍼센트 사망이다.
 도수는 김광석의 손을 놓고 지혈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 낭비할 여유 없습니다. 이 환자도, 다른 환자들도 빨리 손써야 돼요.”
 김광석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실랑이를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그래, 한 번쯤은······.’
 어차피 경험해야 하는 일이었다.
 환자의 죽음.
 만약 그 죽음에 익숙해지지 못한 의사라면 아직 환자 목숨이 붙어 있는 이상, 쉽게 포기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인턴이나 레지던트들도 겪는 과정.
 어쩌면 아무리 비범하다 해도 아직 열아홉 살에 불과한 소년에게 너무 노련한 의사의 기준을 뒤집어씌우려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판단한 김광석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그게 환자에 대한 예의니까.”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매디 보웬 기자의 입장은 달랐다.
 “잠깐만요! 지금 모험을 하겠다는 거예요? 닥터 킴은 이걸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거고요? 만약 환자가 사망하기라도 하면··· 그럼 우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요! 도수, 넌 아예 추방되거나 다시 투옥될 거야.”
 “그딴 게 중요해요?”
 도수가 눈을 부라렸다.
 “지금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요.”
 그는 군인들을 향해 벼락같이 외쳤다.
 “실내로 옮겨요! 당장!”
 군인들이 눈치를 보며 주춤거리자, 도수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말고도 환자가 사망할 경우 책임질 분이 또 계십니까?”
 “······!”
 그제야 군인들이 움직였다.
 환자를 이송하는 그들을 보며 매디 보웬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네가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고 해도 모두를 살릴 순 없어.”
 “닥쳐요, 매디.”
 냉정하게 말한 도수는 혈액을 챙긴 뒤 군인들의 뒤를 쫓아갔다.
 뒤에 남겨진 매디 보웬은 김광석을 쏘아보며 말했다.
 “방금 들었어요? 지금 나보고 닥치라고······.”
 “닥치고 쫓아가요, 미스 보웬.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거요.”
 그 말을 남긴 김광석은 혈액가방을 매고 다른 환자를 보러 떠났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매디 보웬이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
 
 “후우.”
 피 주머니를 매단 도수는 한숨을 뱉었다.
 어시스트도 못 받는 상황.
 혼자 환자를 감당해야 했다.
 그 순간.
 찰칵!
 플래시가 터졌다.
 매디 보웬이 사진을 찍은 것이다.
 “아··· 나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해. 난 내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니까.”
 닥치라는 소리까지 들은 마당이라 변명이 줄줄 나왔다. 그리고 이내,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도수가 입을 열었다.
 “아뇨. 신경 쓰입니다.”
 “그건 미안하······.”
 “거기 카메라 내려놓고 이리 오세요.”
 말을 끊자, 매디 보웬은 떨떠름하게 물었다.
 “···뭐? 왜?”
 “이리 오라고요.”
 반협박조.
 매디 보웬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한 대 맞는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왜?”
 “거기 애바가드(Avagard: 최근에 개발된 소독약의 일종. 물과 브러시가 필요 없어 빠르고 간편하다)로 손 소독해요. 손톱 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 빈틈없이.”
 “응?”
 매디 보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무슨······.”
 “어려울 거 없어요. 어차피 수술은 제가 해요.”
 “난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빨리! 환자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이에요?”
 “······!”
 매디 보웬은 뭐라 반발하지 못했다. 환자 상태가 최악이라는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쩔 줄 모르고 머릿속이 하얘져선 손을 소독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무리 소독해도 빈틈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도수는 침착했다.
 “그만하고 앞에 와서 서요.”
 그녀가 마주 서자 도수가 메스를 빼 들었다.
 “출혈부터 조절해야 합니다. 먼저 다리 쪽 동맥, 정맥을 복구할 거예요.”
 샤아아아아.
 투시력을 쓰자 일회용 젓가락 두, 세배쯤 되는 허벅지 동맥과 정맥이 시야에 들어왔다.
 “절개 시작합니다.”
 압박붕대를 풀기 무섭게.
 촤악!
 피가 솟구쳤다.
 “피, 피가······!”
 매디 보웬이 당황해 외쳤지만 도수는 이성적이었다. 그의 두 눈에는 잘린 혈관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혈압 떨어집니다. 두 손으로 피 주머니 잡고 짜요.”
 “아··· 응!”
 매디 보웬 역시 전쟁터를 전전하며 사진을 찍었던 여자라 그런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아마 이런 장면이 처음인 일반인이었더라면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한 채 넋 놓고 있었으리라.
 그녀가 피를 짜자, 빠지는 피와 들어가는 피의 혈액량이 조절됐다.
 물론 출혈로 빠져나가는 피를 완벽히 충당하진 못했지만 출혈을 멈출 때까지 시간을 번 것이다.
 “잘했어요.”
 샤아아아아.
 도수의 눈이 다시 한번 빛을 머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혈관 지나는 곳까지 손상된 피부와 근육 조직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최대한 빨리.’
 거침없이.
 도수의 메스가 움직였다.
 석, 서걱!
 출혈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게 손상된 조직을 제거하는 도수.
 너무도 손쉽게 혈관 위치까지 파고든 그는 메스를 던져놓고 혈관의 손상된 부분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턱!
 그리곤 물 흐르듯 잘린 혈관을 묶었다.
 “출혈을 멈추는 겁니다.”
 “아······!”
 “메스 소독해서 다시 준비해주세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 매디 보웬이 메스를 소독하는 사이, 일단 혈관을 묶어서 출혈량을 조절한 도수는 집게를 빼 들고 깊게 파고든 파편들을 떼어냈다.
 텅, 터엉!
 쟁반에 올려진 파편들.
 “이··· 이게 몸을 뚫고 들어간 거야?”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칼.”
 매디 보웬이 메스를 건넸다.
 “혈관을 봉합할 거예요. 일시적인 출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당황하지 마세요.”
 그는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손상된 혈관의 단면을 메스로 평평하게 잘라낸 뒤 묶여 있는 혈관을 풀었다.
 파악!
 피가 튀었다.
 도수가 외쳤다.
 “피 짜요!”
 이미 한번 경험이 생긴 매디 보웬이 피 주머니를 짰다.
 그사이 도수는 수술실로 혈관을 봉합했다.
 다시 한번 신기에 가까운 타이기술이 빛을 발했다.
 ‘와······.’
 매디 보웬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실제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수술 장면을 목격한 적이 없는데, 도수의 봉합 솜씨는 어떤 장인 재단사가 와도 울고 갈 정도로 빠르고 정교했던 것이다.
 ‘피가 멈췄어.’
 정말 분수처럼 솟던 피가 멎었다.
 도수는 최소한의 출혈만으로 끔찍하게 파편이 박혀 있던 허벅지를 복구한 것이다.
 짧은 생각을 하는 동안 이미 그는 혈관을 봉합한 뒤 수술 부위를 거즈로 감았다.
 “왜 수술 부위를 봉합하지 않는 거야?”
 매디 보웬의 질문에 도수가 대답했다.
 “아직 자잘한 파편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파편들까지 제거하고 있을 시간 없어요.”
 말하는 와중에도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눈부시게 빠르고 능숙한 손놀림.
 수술을 잘하는 척도가 속도라면 도수는 우사인 볼트급이었다.
 “긴장 풀지 마세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샤아아아.
 도수의 눈에 비친 환자 상태는 좋지 못했다.
 생존 확률이 제로라는 김광석의 말처럼, 환자는 장시간 이어진 어마어마한 출혈을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제10장 고비를 넘다
 
 
 
 도수는 겨드랑이 아래서부터 가슴 아래까지 절개 부위를 바라봤다.
 수북한 털 때문에 면도가 필요한 상황.
 그는 털을 밀고 절개할 부위를 소독했다.
 “아직 수술해야 할 곳이 두 곳이나 남았습니다. 긴장 늦추지 마세요.”
 “응······!”
 매디 보웬이 대답했지만.
 실은 도수 자신한테 하는 말이었다.
 이미 큰 수술을 한 차례 끝낸 상태.
 그럼에도 두 번의 고비가 더 남아 있었다.
 만약 이 수술의 연장선에서 조금이라도 밀린다면 환자는 사망할 터였다.
 “칼.”
 메스를 건네받은 도수는 소독한 절개 부위를 갈랐다.
 출혈은 폐 자체가 아닌, 갈비뼈 사이의 혈관이 다쳐 발생한 것이었다.
 “거즈.”
 매디 보웬이 거즈를 찾아주자 그가 소리쳤다.
 “더 많이!”
 한 뭉텅이, 두 뭉텅이······.
 쉴 새 없이 거즈를 때려 박은 도수는 피가 충분히 스며들자 도로 빼냈다.
 촤악!
 피가 튀었다.
 철퍽거리는 거즈를 바닥에 던진 도수의 두 눈이 번쩍였다.
 터억!
 그는 단번에 혈관을 찾았다.
 만약 전문가가 이 장면을 봤다면 기겁했을 것이다.
 어떤 서전이라도 손상된 혈관을 찾는 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은 어시스턴트가 없는 상황.
 급한 대로 집게를 이용해 고정시켰지만 가슴을 완전히 열어젖히진 못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수술을 한다면 시야확보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도수는 혈관을 찾는 과정도 없이 곧바로 혈관을 찾아낸 것이다.
 물론 매디 보웬은 방금 자신이 본 장면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도수의 거침없고 재빠른 움직임이 귀신같다고 생각할 뿐······!
 그야말로 순식간에 출혈점을 파악한 도수는 두 혈관을 묶었다.
 다리, 가슴의 출혈을 잡자 혈액의 흐름이 좋아졌다.
 ‘혈압이 올라가고 있어.’
 정확한 혈압수치를 파악할 순 없었지만 투시 능력과 경험적 감각으로 환자 상태를 파악한 그는 매디 보웬에게 말했다.
 “피 새로 달아주세요. 짤 필요는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매디 보웬이 튜브에 새로운 피 주머니를 연결했다.
 구구절절 설명해 주지 않아도 도수가 하는 걸 본 것만으로 척척이다.
 ‘똑똑한 여자야.’
 그렇게 생각한 도수는 다시 시선을 내렸다.
 이제 환자의 배를 열어야 하는 상황.
 샤아아아······.
 투시력을 쓰자 조각조각 잘린 소장과 손상된 콩팥이 반투명으로 보였다.
 그것만으로 앞에 벌어질 상황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엉망이다.’
 환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검토를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 배 속 상태는 최악이었다. 안 그래도 연속된 두 번의 수술로 환자 컨디션이 나쁜 상태에서 수술을 감행한다면······.
 ‘정말 닥터 킴의 말처럼··· 죽을 수도 있어.’
 도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배를 가르면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눈에 빤히 보이는데 메스를 움직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환자는 백 퍼센트 사망한다.
 이미 손을 댄 이상, 환자를 죽음의 문턱에서 끄집어내는 것만이 그의 사명인 것이다.
 “절개.”
 도수는 메스로 환자의 배를 내리그었다.
 고요한 폭풍전야(暴風前夜).
 “스읍.”
 숨을 들이쉰 도수는 배를 벌렸다.
 그와 동시에.
 촤악!
 피가 솟구쳤다.
 얼굴에 그대로 뒤집어쓴 피.
 그러나 도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아······!”
 매디 보웬은 피 주머니를 잡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전까지보다 훨씬 더 출혈이 심했던 것이다.
 “어, 어떡하지? 피가······!”
 “정신 차려요!”
 정신이 번쩍 들 만큼 큰 소리로 외친 도수가 말했다.
 “거즈.”
 매디 보웬이 거즈를 한 뭉텅이 건넸다.
 “거즈! 더!”
 도수는 계속해 거즈를 쑤셔 넣었다.
 “혈압 떨어집니다. 피 짜세요.”
 철퍽, 철퍽.
 거즈를 빼낸 도수는 물을 잔뜩 먹은 것처럼 호흡을 내뱉었다.
 “후아······!”
 투시력을 이용해 미리 봤던 것처럼.
 소장이 조각나고 콩팥이 손상을 입었다.
 배만 보면 장기가 다 녹아내리거나 산산 조각나서 늘러 붙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중태였다.
 문제는 수술이 길어지고 수혈받는 혈액량이 늘고 있다는 것.
 환자의 몸에 자신의 피보다 다른 사람의 피가 더 많은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는다.’
 그래야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수술방도 아닌 곳에서 무균 복장도 갖추지 않고 하는 수술.
 수술을 성공한다 해도 생존률이 크지 않다.
 조금이라도 생존률을 올리기 위해선 배를 열고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밖에 없었다.
 ‘일단 콩팥부터.’
 도수는 파편이 뚫고 지나가 찢어진 콩팥을 봉합했다.
 스슥, 슥!
 봉합은 빠르게 끝이 났다.
 ‘진짜 잘한다······.’
 매디 보웬은 바느질을 해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소질이 없어선지 할 때마다 꽤나 애를 먹는다. 따라서 그녀는 도수의 손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정도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든 오직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해 봉합을 마친 도수가 고개를 들었다.
 “가위 주세요.”
 도수는 수술실을 잘랐다.
 컷(Cut).
 원래 어시스트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수 혼자 모든 걸 하고 있었다.
 실도 이물질이다. 괜히 매디 보웬을 시켰다가 환자 몸에 이물질을 많이 남겨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싹둑.
 타이가 풀리지 않을 정도로만.
 아슬아슬하게 실을 자른 도수는 다음 소장을 주시했다. 세 조각으로 나눠진 소장.
 손상된 부분을 잘라낸 뒤 이어 붙여야 했다.
 문제는 손상된 부분만 자르는 게 아니라 손상된 세 곳을 전부 포함하는 넓은 면적을 자르고 이어 붙여야 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더 깊게 들어가서 소장이 둘러싸고 있는 장간막까지 함께 잘라야 했다.
 잘라내는 범위가 크면 클수록 환자한테는 좋을 게 없었다.
 “혈압 떨어집니다. 피 짜주세요.”
 도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수술이 늦춰질수록 환자의 생존도 멀어진다.
 뿐만 아니라 그는 투시력의 과용으로 인해 이미 머리가 붕 뜬 것처럼 어질어질해지고 있었다.
 ‘수술실에선 닥터 킴이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다.’
 버텨내야 한다.
 도수는 이를 악물고 환자 뱃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턱!
 이번에도 실수는 없었다.
 장간막을 지나는 동맥을 낚아챈 그는 미끄러운 혈관을 놓치지 않고 묶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출혈이 줄었다.
 “후우.”
 소장을 이어 붙이는 건 이제부터 시작이다.
 도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말했다.
 “칼.”
 턱!
 메스를 받은 도수는 소장의 손상부위와 그에 해당하는 장간막을 함께 잘랐다.
 서걱, 서걱······!
 “으으.”
 매디 보웬은 결국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피 냄새는 익숙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 장기를 통제로 잘라내는 모습을 보는 건 단순히 끔찍한 부상을 당한 대상을 보는 것과는 달랐다.
 툭.
 절제를 마친 도수는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는 매디 보웬에게 말했다.
 “손 좀 줘 봐요.”
 “뭐?”
 매디 보웬이 화들짝 놀라자 도수가 말을 이었다.
 “소장을 이어 붙이려면 잡아줘야 됩니다.”
 “아······.”
 망설이는 그녀를 보며 도수가 외쳤다.
 “빨리!”
 “······!”
 그녀는 이번에도 할 수 없이 손을 뻗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눈 떠요.”
 매디 보웬이 말을 듣지 않자 도수가 소리쳤다.
 “눈 뜨라고!”
 “으······.”
 매디 보웬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눈을 떴다.
 도수는 그녀에게선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여기로 손 넣어서 제가 잡고 있는 소장을 받으세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고.”
 “후우,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한 매디 보웬이 배 속으로 손을 넣었다. 미끌미끌한 이질감.
 도수는 그녀의 손에 소장을 쥐여주었다.
 “잘 잡아요. 이대로 움직이지 말고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
 극도의 긴장 상태.
 실수 한 번에 환자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무 꽉 잡지 말고.”
 “아······.”
 그녀는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다행히 소장은 미끄러지지 않았다.
 “느낌은 흙탕물 속 미꾸라지를 잡는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 보니, 혈관을 순식간에 잡아버리던 도수는 맨 손으로 물속에 노니는 미꾸라지를 잡는 것과 같은 일을 단번에 해낸 것 아닌가?
 정신이 없으니 별에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 그녀를 힐긋 본 도수가 말했다.
 “정신 차려요.”
 “응······!”
 도수는 소장과 장간막을 꿰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의 손놀림은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러면서도 빼곡하게 타이를 했다.
 “거의 다 끝났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췌장이 다치지 않았다는 거예요. 췌장액이 샜다면 장기들이 다 녹아버렸을 겁니다.”
 매디 보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말이었다.
 적당한 긴장감은 필요하지만, 너무 과부화되면 예기치 못한 실수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환자의 경우 단 한 번의 실수만 범해도 사망이다.
 적당히 주의를 빼앗은 도수는 그 사이 봉합을 끝냈다.
 귀신 같이 빠른 솜씨였다.
 무려 세 곳이나 되는 신체 부위를 수술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고비 넘긴 도수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놔도 돼요. 가방 안에 보면 세척액 있을 겁니다. 계속 부어주세요.”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매디 보웬은 고분고분 지시를 따랐다. 세척액을 꺼내 이리게이션(Irrigation)을 시작했다.
 촤악!
 세척액을 붓자.
 도수는 급한 대로 석션기 대신 거즈를 집어넣어서 세척액을 제거했다. 세척액과 피, 장이 손상되면서 복강을 오염시킨 내용물들이 걸러져 나왔다.
 “다시, 이리게이션.”
 촤악!
 거즈를 쑤셔 박고 다시 뺀다.
 철퍽, 철퍽.
 한참 동안 같은 작업을 반복한 끝에.
 도수가 말했다.
 “···이래도 감염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 그렇겠지.”
 그사이 도수는 치열했던 수술을 마무리했다. 모든 과정이 끝나자, 그는 매디 보웬의 두 눈을 마주 응시했다.
 “우리가 여기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여기까지입니다. 수고하셨어요.”
 두근, 두근······!
 도수의 귀에는 환자의 심장 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누가 봐도 생존률 제로에 가까운 엄청난 수술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환자는 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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