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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스텟 100배 1권

2019.07.17 조회 3,048 추천 18


 보너스 스텟 100배 1권
 
 CONTENTS
 
 프롤로그
 Chapter 1
 Chapter 2
 Chapter 3
 Chapter 4
 Chapter 5
 Chapter 6
 
 
 프롤로그
 
 
 2020년 7월 1일. 날씨 구림.
 오늘 역시 지랄이 풍년이다. 세상을 개판으로 만들어놓은 마왕을 죽이겠답시고 왕국의 영웅이라는 놈이 등장했다.
 그 자식은 답답했다. 몇 걸음 다가서지도 못하고 뒈졌다. 한심한 놈.
 
 2020년 10월 11일. 날씨 구림.
 오늘은 열댓 놈이 마왕에게 대적했다. 온갖 아티팩트로 치장했기에 기대 좀 해 봤다.
 한데 뭐냐? 모조리 요단강 건넜다. 장난하냐?
 
 2020년 11월 23일. 날씨 맑음.
 
 적어봐야 무엇하냐. 에효.
 고구마 5개를 억지로 쑤셔 처넣은 것처럼 답답하다! 숨이 막힌다!
 저쪽 세상에는 어찌 저리도 인재가 없을까?
 ······.
 ······.
 
 일기장을 덮었다.
 강철두, 그는 지구의 게이트 사태를 막아낸 세계적인 영웅이다.
 이제는 시골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는 은퇴한 영웅.
 수십 년 전, 지구는 개판이 됐다.
 흔히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괴수라는 놈들이 등장했으니까.
 강철두는 살아남았고, 종국엔 마왕 놈의 멱을 부러뜨렸다. 그때 얻었던 아이템이 있다.
 그 아이템은 주먹만 한 수정구다.
 강철두는 이 수정구를 통해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염탐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다른 차원의 용사들은 쌍욕이 튀어나올 만큼 형편없었다.
 도저히 두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을 정도로······.
 눈이 썩어 들어갈 정도였다.
 얼마나 인상을 썼는지 매끈한 이마에 주름이 생기려고 한다.
 이러다가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
 이제 강철두는 참을 만큼 참았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 수정구는 다른 차원을 염탐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해당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이건 필시 신의 농간이다.
 빌어먹을 신 새끼는 마왕의 수정구를 얻어낸 용사에게 일부러 저런 발암 물질 가득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하위 차원의 상황을 보여주는 거다.
 근질근질하지? 응, 그럼 네가 가서 직접 싸워.
 “오만한 새끼. 결국엔 네놈 뜻대로 놀아나는구나.”
 강철두는 결국 신의 농간에 당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수정구의 기능을 발현시켰다.
 
 [차원 넘버 ‘00023422118’ 아카도르 대륙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응, 지금 당장!”
 
 [최초 이동 시 당신의 능력은 초기화되며, 이에 상응하는 새로운 랜덤 보너스 권능이 부여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초기화’라면 분명 레벨 1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상응’이란 단어가 있다.
 그간 겪어왔던 시스템은 결단코 개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아니, 굳이 추가 능력을 받지 않더라도 이동할 생각이었다.
 답답했으니까.
 더군다나 지구는 빌어먹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달리 말해 너무너무 심심했다.
 천성이 싸움꾼 기질인 강철두는 평화보단 혼란을 원했다.
 “잔말 말고 후딱 가자. 자, 이동!”
 잠시 뒤 강철두의 몸은 새하얀 빛무리에 둘러싸였다.
 
 
 Chapter 1
 
 
 [마왕의 수정구가 소멸합니다.]
 [레벨이 초기화되었습니다.]
 [용사 특전, ‘아카도르 대륙 공용어’를 획득하였습니다.]
 [용사 특전, ‘용사 전용 아공간 (특수)’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용사 특전, 랜덤 보너스 권능을 부여받았습니다.]
 
 줄줄이 소시지로 시스템 기계음이 고막을 강타한다.
 ‘레벨 초기화’와 이에 상응하는 ‘랜덤 보너스 권능’은 시스템의 예고대로 이루어졌다.
 예상 밖의 것은 공용어 획득과 아공간 스킬, 그리고 마왕의 수정구 소멸이었다.
 공용어를 획득했으니 말은 바로 통할 거다.
 아공간은 스킬로 지급하나보다.
 지구에선 간간이 가방형 아이템으로 등장하곤 했는데, 스킬형 아공간이라면 굉장히 편리할 것 같았다. 잃어버릴 일도 없고 말이다.
 마왕의 수정구의 경우, 한번 이동하면 사라지는 일회성이었나 보다.
 제법 재미난 아이템이었는데, 뭐, 상관없다고 여겼다. 수정구는 마왕을 잡으면 나온다.
 아카도르 대륙이라는 이곳의 마왕을 조지고 또 얻으면 될 일이었다.
 자, 이제 지구에서 수정구로만 보아 왔던 아카도르 대륙의 실체를 볼 차례다.
 우선 하늘이 보였다.
 “가만······.”
 하늘이라고?
 그제야 강철두는 자신이 대자로 뻗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때, 강철두의 심기를 건드리는 외침이 들려왔다.
 “빨리빨리 움직여! 굼벵이 기생충들아!”
 ‘공용어, 아주아주 찰지게 잘 들리네.’
 강철두는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후비적대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려 했다.
 철그렁-
 “응?”
 그의 양 손목엔 강철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발목에는 족쇄에 연결된 쇠구슬이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물을 잔뜩 먹은 가죽 채찍이 강철두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찰싹!
 “썅!”
 욕설이 절로 나온다.
 채찍 자국이 그대로 난 가슴팍에서 핏물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제야 강철두는 하늘을 보던 시선을 거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처럼 강철 수갑과 발목에 거대한 쇠구슬을 단 사람들이 잔뜩 보였고, 가죽 채찍을 든 험상궂은 사내들도 보였다.
 이거, 상황이 퍽 난감하다.
 “해가 지기 전에 뤼올 산을 넘어가야 한다! 더 빨리 움직여라, 노예 놈들아!”
 채찍을 든 사내들이 고래고래 악을 써대고 있다.
 노예로 팔려가는 중인 건가? 스타트 지점이 뭐 이따위란 말인가?
 빌어먹을 신 새끼. 이건 필시 고의다.
 “어이 거기 나자빠져 있는 노예 놈! 한 대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나!?”
 니미랄.
 마왕조차도 무릎의 연골이 닳도록 강철두 앞에서 꿇었다.
 어디 그뿐인가?
 손바닥에서 헬파이어가 피어날 정도로 비벼대며 빌었던 마왕이다.
 근데 뭐?
 한낱 노예상이 한 대 더 치겠다고 협박을 한다고?
 “노예 놈! 두 번의 경고는 없다!”
 노예상이 가죽 채찍을 들어 올렸다.
 “후우······.”
 한데 별수 있나. 지금 자신은 1레벨이다.
 금세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일단은 노예상의 명령에 따라야 할 것 같다.
 자존심?
 그런 건 강자에게나, 힘이 있을 때나 주어지는 권리다. 지금의 강철두는 레벨 1의 노예일 뿐.
 여기서 빡이 돌아봐야, 돌아오는 건 채찍질일 테다.
 물론 말까지 곱게 나오진 않았다. 이건 천성이라 못 고친다.
 “일어났다. 됐냐?”
 “크흠.”
 강철두가 몸을 일으키자 노예상은 금세 채찍을 거두고 헛기침을 했다. 심지어 움찔대기까지 했다.
 누워 있을 적엔 몰랐는데, 덩치가 장난 아니다.
 하긴, 강철두는 190cm의 키와 엄청난 근육을 지녔다.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었다.
 윗옷이 터져 나갈 듯한 우람한 팔뚝.
 쫙 벌어진 어깨.
 돌덩이 같은 가슴 근육.
 칼조차 꼽히지 않을 것만 같은 단단한 복근.
 흔하디흔한 근육 돼지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단련의 단련을 거듭해 온 최상의 육체인 것이다.
 “크흠! 자, 어서 움직이거라.”
 노예상의 목소리는 한결 수그러들었다.
 강철두는 피식 웃었다.
 일단은 사태를 지켜보자.
 터벅-터벅-
 강철두는 여러 노예와 뒤섞여 산길을 걸었다.
 그나저나, 밀림도 아니고 그냥 산속일 뿐인데 왜 이렇게 습한 걸까? 불쾌지수가 정수리를 뚫고 나올 기세다.
 이런 곳은 슬라임의 서식지로 제격이다. 지구에서도 슬라임들은 습한 곳에 자리 잡곤 했다.
 도시의 경우 하수구였고, 시골의 경우 계곡이나 강가에 있곤 했으니까.
 슬라임은 위험하다.
 고작 액체 괴물 따위가 뭔 위험 거리가 되느냐고?
 녀석은 엄연한 괴수다.
 살아 있는 액체로 이루어진 녀석은 자유자재로 몸을 변형시킬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닿는 것은 모조리 흡수하여 녹여 버리는 산성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엄청난 위험이다.
 “자! 더 빨리 가야 한다! 어두워지면 골치 아파져!”
 노예상의 외침이었다.
 이를 통해 보건대 노예상 또한 슬라임을 경계하는 것 같았다.
 슬라임은 빛을 싫어한다. 아무래도 지금은 낮이기 때문에 슬라임들이 숙면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슬라임들이 나타날 게 뻔했다.
 강철두는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바라보았다.
 뉘엿뉘엿 지고 있다. 어둠은 삽시간에 산을 집어삼킬 것이다.
 강철두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상태창을 불러왔다.
 
 <강철두>
 레벨: 1
 직업: 용사 (+1)
 [근력 21] [마력 1] [민첩 21] [체력 18]
 물리 공격력: 21
 마법 공격력: 1
 회피력: 21
 방어력: 18
 [미분배 스텟: 0]
 [EXP 0 / 100]
 
 레벨1, 역시나 깔끔한 초기화다.
 그럼에도 일반인보다는 압도적으로 높은 능력치임에는 분명하다.
 ‘플러스 1이라. 이건 뭘까.’
 그나저나, 다른 건 다 알겠는데 직업란이 의심스럽다.
 강철두의 직업은 마왕의 손에서 세계를 구했던 엄연한 용사.
 그 직업은 초기화가 되었음에도 그대로였다.
 한데, 그 뒤에 +1이 붙었다.
 어렴풋이 예상은 됐으나 확실한 의미는 모르겠다.
 예측은 좋지 않다. 그쯤에서 생각을 그쳤다.
 그때였다.
 “크아아아악!”
 선두에 있던 노예가 난데없이 얼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강철두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츄륵, 츄륵.
 ‘이런. 불면증은 좋지 않은데.’
 밤낮이 바뀐 슬라임이 있었나 보다.
 간혹 낮에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들이 있긴 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녀석이 한 마리뿐이라는 거였다.
 반면 불행은······.
 ‘노란색 슬라임? 하필 슬라임 킹이라니.’
 골치 아프게 됐다.
 슬라임 킹은 일반 슬라임보다 강하다.
 -츄륵, 츄륵.
 노예의 얼굴에 들러붙은 슬라임 킹은 연신 몸을 꿈틀댔다.
 노예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비닐봉지에 얼굴이 포장된 느낌일 거다.
 숨을 쉴 수 없을 테고, 점차 얼굴이 녹을 테지.
 슬라임의 산성은 인간의 연약한 피부 따위는 단숨에 녹여 버릴 정도니까. 시간만 충분하다면 뼈까지 모조리 녹여 먹는 녀석이다.
 물론 이 경우엔 슬라임 킹이기에 녹는 속도가 확연히 빠를 거다.
 -츄륵!
 슬라임 킹은 사탕을 아껴 먹는 아이처럼 노예의 얼굴을 녹이고 있었다.
 그 참혹한 광경에 누군가는 구토했고, 노예상들은 연신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이런! 알폰소 남작님께 납품할 노예가······!”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때가 아닐 텐데?
 강철두는 넋이 나간 노예상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내 쇠사슬을 풀어. 모조리 다 슬라임 밥이 되고 싶지 않다면.”
 손발은 묶였고 상황은 최악이다.
 그럼에도 강철두의 얼굴에는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애초에 초기화를 고려하고도 넘어온 이유가 있다.
 강철두는 지구에 계속 머물렀다면 행복과 쾌락의 삶을 영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피 터지게 쟁취하는 삶을 원했다.
 따분한 건 질색이다.
 “얼른 풀어.”
 “아······.”
 노예상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노예상은 얼굴을 구겼다.
 애초에 슬라임 정도라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다.
 노예상이 바보도 아니고 노예 납품을 위해 산 하나를 넘어가는데 대비조차 하지 않았겠는가?
 뤼올 산에는 고작 해봐야 슬라임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밤이 되기 전에 산을 넘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었다.
 그랬기에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한데 낮에, 그것도 슬라임 킹이라니.
 재수 옴 붙었다.
 “시간 없어.”
 강철두가 손목을 흔들어댔다.
 노예상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철컥-철컥-
 강철두는 금세 자유를 얻었다.
 손목을 감싸고 있던 수갑은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발목에 찼던 쇠구슬을 집어 들었다. 사람 머리만 한 쇠구슬은 족쇄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자체로 이미 훌륭한 무기다.
 그는 족쇄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손목 스냅을 이용해 쇠구슬을 빙글빙글 돌렸다.
 “딱 좋네.”
 다음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슬라임 킹을 향해 내달려갔다.
 능력치가 딸릴지언정 저따위 액체 괴물에게 겁먹을 수가 없었다.
 타다다다닥!
 슬라임은 도구를 이용할 수도 없고, 그저 몸통이 무기다.
 슬라임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생명체를 손쉽게 죽이기 위해선 숨통을 막아버려야 한다는 걸.
 실제로 조금 전 당했던 노예도 1차적으로 숨통이 막혔을 거다.
 물론 실질적인 사인은 안면이 녹아내려서이겠지만······.
 정리하자면, 슬라임은 본능적으로 적의 머리를 향해 뛰어든다는 것이다.
 닳고 닳은 강철두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당장에라도 머리를 젖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츄륵!
 예상대로 슬라임 킹이 몸을 날리며 강철두의 머리를 노렸다.
 ‘스텟이 짱짱할 때는 네놈 산성 독으로 때를 벗기려고 목욕도 했다. 어디서 감히!’
 강철두는 가볍게 머리를 젖히며 날아드는 슬라임에게 쇠구슬을 휘둘렀다.
 후웅!
 철컹!
 슬라임 킹은 몸을 펼쳐 동글동글한 쇠구슬을 감쌌다.
 기본적으로 촉감이 없는 녀석은 그저 둥근 형태의 쇠구슬을 머리통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강철두는 볼 것도 없이 족쇄를 움켜쥔 손에 더욱 강한 힘을 주었다.
 그런 뒤 바닥에 박힌 커다란 돌덩이를 향해 마구잡이로 내려쳤다.
 까득! 까득!
 힘을 잔뜩 준 강철두의 팔뚝에 거머리 같은 핏줄이 돋아났다.
 까득! 까득!
 슬라임 킹의 몸통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손맛이 제법이다.
 절구통에 든 떡을 치는 느낌이랄까?
 모조리 터뜨려주마.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녀석의 몸통이 터지며 생긴 파편이 입속으로 튀기라도 하는 날에는 성대가 녹아내린다.
 강철두는 입조차 벌리지 않으며 살벌하게 쇠구슬을 내려칠 뿐이었다.
 퍽! 퍽!
 공격이 거듭될수록 파편이 이리저리로 튄다.
 몸통과 얼굴에 튀는 파편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강철두의 피부 이곳저곳에 구멍이 송송 뚫렸다.
 그런데도 강철두는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놈의 숨통을 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퍽! 퍽!
 끝끝내 쇠구슬에 들러붙어 있던 슬라임 킹은 숨이 끊기고야 말았다.
 
 [경험치 100 획득!]
 [레벨 업!]
 
 그제야 강철두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후욱. 후욱. 후욱!”
 주변에 있던 노예들은 입을 쩍 벌린 채였고, 몇몇 노예상이 강철두에게 다가왔다.
 “자, 자네. 소드 파이의 검투사 출신이었나?”
 일견 간단해 보이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숨은 근력과 민첩성은 도저히 일반인의 것이 아니었다.
 노예 출신임에도 전투력이 상당하니 검투사가 떠오를 수밖에.
 강철두가 퉁명스레 물었다.
 “소드 파이 검투사는 또 뭐야?”
 “원형 경기장 소드 파이에서 목숨을 걸고 대결을 펼치는 자들을 말하지. 진정 몰라서 묻는 겐가?”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들을 해대니까 마왕 놈의 목을 여태 못 따고 있는 거지.”
 “자, 자네 지금 무, 무슨 말을······!”
 마왕이라는 단어에 노예상은 질겁했다.
 감히 검투사 따위가 입에 담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헤일루안 왕국의 영웅인 세실님조차 마왕을 막지 못했네! 고작 슬라임 킹 한 마리 해치워놓고 기고만장이로군!”
 세실이라.
 강철두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혹시 그 세실이라는 놈, 초록색 머리에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덕지덕지 껴입고, 해머를 든 근육 돼지 아니냐?”
 “자, 자네 지금 도대체!!”
 맞나 보군.
 노예상은 불같이 노했다.
 뭐,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왕국의 영웅이라는 놈을 험담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철두의 입장에서는 세실이라는 놈이 한심할 수밖에 없었다. 강철두는 마왕의 수정구를 통해 모조리 다 보았으니 말이다.
 그 초록 머리 근육 돼지는 마왕에게 몇 걸음 다가서지도 못하고 뒈졌다.
 세실은 죽기 직전 마왕과 대화를 나눴었다.
 그때는 이곳 공용어를 몰랐기에 뭔 소린지 몰랐다.
 수정구에 자막 따윈 없었으니까.
 하지만 시스템을 통해 공용어를 획득한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세실, 살고 싶으냐?
 -살, 살고 싶으냐?
 -살고 싶습니다! 제가 감히 마왕님께 맞서다니! 정말로 죄송합니다!
 -후후, 나는 모두 들었다. 네놈이 진격 직전에 했던 연설을, 나의 목을 베고 침을 뱉어주겠노라 외쳤었지?
 -제, 제가 어찌 감히 그랬겠나이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발 목숨만은!
 상념은 여기서 그만뒀다.
 더 생각하려니 암 걸릴 것 같다.
 다시 생각해봐도 한심한 놈이다.
 바로 그때, 노예상이 진지한 얼굴로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세실님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마왕에게 굴하지 않았네! 그분은 긍지를 지키기 위해 왕국을, 나아가 아카도르 대륙 전체를 위해, 마왕을 향해 진격했네! 그분은 조금의 겁도 집어먹지 않았으며······.”
 “뭐라는 거냐, 에효.”
 강철두는 고개를 내저었다.
 세실은 겁쟁이였다.
 다 보았다.
 단순한 영웅 심리에 취해 있던 머저리였을 뿐이다.
 놈은 똥오줌을 지리며 구걸했다.
 물론 이해는 한다.
 하지만 자신이라면 그렇게 비굴하게 죽진 않았을 거다. 적어도 마왕의 면상을 향해 가래침이라도 뱉고 죽었을 거다.
 “됐고, 빨리 이 빌어먹을 산에서 나가야겠다. 최대한 가까운 마을로 안내해.”
 “자네가 진정! 어서 빨리 사과하게! 하늘이 두렵지도 않······!”
 “응, 미안.”
 강철두의 얼굴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빠른 태세 전환에 노예상들은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더군다나 노예상들은 이미 강철두의 무력을 보았기에 더는 언성을 높이지 못했다.
 어느새 노예상들은 노예들을 이끌고 산길을 따라 걸었다.
 자유를 얻은 강철두도 그들의 뒤를 쫓았다.
 강철두는 이곳의 지리를 알지 못하기에 현재로써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터벅-터벅-
 이제 슬슬 날이 어두워지려 한다.
 슬라임 무리가 깨어날 시간.
 어서 빨리 산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아 맞다. 레벨 업 했었는데.’
 한참 걷던 강철두는 자신이 레벨 업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강철두는 꽥 하고 비명을 내지르고야 말았다.
 “시, X벌 이거 뭐야!! 스, 스텟이 왜 이래!?”
 
 <강철두>
 레벨: 2
 직업: 용사 (+1)
 [근력 21] [마력 1] [민첩 21] [체력 18]
 물리 공격력: 21
 마법 공격력: 1
 회피력: 21
 방어력: 18
 [미분배 스텟: 100]
 [EXP 0 / 500]
 
 레벨2, 미분배 스텟 100.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본래대로라면 1레벨 업에 1보너스 스텟이 지급된다.
 한데 지금은 100이다.
 즉, 100배라는 거다.
 강철두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에 보았던 시스템 메시지를 떠올렸다.
 
 [최초 이동 시 당신의 능력은 초기화되며, 이에 상응하는 새로운 랜덤 보너스 권능이 부여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래 분명 초기화, 그리고 상응이 있었다.
 그렇다면 스텟 100배가 초기화에 상응하는 새로운 능력이라는 건가?
 강철두는 스킬창을 불러왔다.
 
 <스킬>
 無
 <특수 스킬>
 1. 아카도르 대륙 공용어 (특수)
 -차원 넘버 ‘00023422118’ 아카도르 대륙 공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2. 용사 전용 아공간 (특수)
 -전혀 다른 차원으로 구성된 공간을 소환합니다.
 <용사의 권능>
 1. 보너스 스텟 100배 (SSS)
 -레벨 업 보너스 스텟이 100배 증가합니다.
 
 지구에서는 용사의 권능이라는 게 없었다.
 그의 직업이 용사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와 같은 특혜가 있던 건 아니었으니까.
 이것은 마왕의 수정구를 통해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100배라니, 1레벨 업만 해도 100레벨 업을 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물론 강함과 약함을 스텟 수치만으로 판단할 순 없다.
 스킬, 스킬의 레벨, 아이템, 아이템의 등급, 전투 센스, 깡따구, 상황 판단력, 운 등등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일례로 강철두는 1레벨임에도 불구하고 슬라임 킹을 요절내 버렸다.
 녀석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전투 센스와 깡따구로 밀어붙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스텟이 100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강철두에게는 그야말로 날개가 달린 격이었다.
 ‘가만······.’
 
 <용사의 권능>
 1. 보너스 스텟 100배 (SSS)
 -레벨 업 보너스 스텟이 100배 증가합니다.
 
 자세히 보니 ‘1.’이라고 넘버가 붙어 있다.
 시스템에 닳고 닳은 강철두는 이를 눈여겨보았다.
 이것은 다시 말해 두 번째도 있고 세 번째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분명······.’
 아카도르 대륙으로 넘어오자마자 보았던 시스템 메시지를 떠올려 보았다.
 
 [용사 특전, 랜덤 보너스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시스템은 분명 그리 말했다.
 ‘랜덤’이라고.
 다시 말해 어떠한 권능이 더 존재할지 모른다는 거다.
 그렇다면 지금 손에 넣은 ‘보너스 스텟 100배’가 어느 정도로 좋은 걸까?
 권능 옆에 보이는 등급이 (SSS)다.
 이는 다시 말해 최상 등급 중에서도 최상이라는 뜻이다.
 만일 랜덤 능력을 (F)등급으로 지급 받았다면 지금처럼 놀랄 일도 없었을 테지.
 어쨌거나 권능은 이게 끝이 아니다.
 아직 여지가 남았다.
 또 다른 권능을 손에 넣고 싶다면 이곳의 마왕을 잡으면 될 일이었다.
 그리하여 수정구를 얻고, 또다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조건으로 권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였다.
 그리된다면 ‘보너스 스텟 100배’라는 권능과 더불어 ‘새로운 권능’ 마저 중복으로 얻을 수 있을 테다.
 이 가정이 맞는다면 아마도 수많은 차원이 존재할 거다.
 자신과 같은 용사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그들 중엔 ‘용사의 권능’을 손에 넣기 위해 노가다를 하는 놈들도 있지 않을까?
 모든 차원의 마왕을 사냥하며 권능을 차곡차곡 쌓는 괴물 같은 녀석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이건 마치 외계인의 존재를 발견한 것처럼 커다란 흥미로 다가왔다.
 지구의 최강자였던 과거의 자신보다 강한 생명체가 수두룩하게 존재할 수도 있는 거다.
 강철두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세상은 넓다.
 심심하고 따분한 지구에서 벗어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참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강철두가 돌연 진지한 얼굴을 했다.
 ‘자, 우선은 스텟부터.’
 레벨 업으로 인해 슬라임에게 입었던 상처는 치유됐다.
 몸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았고, 그가 할 일은 100개의 스텟을 골고루 분배하는 일뿐이었다.
 이렇게 푸짐한 양이라니.
 강철두는 신나게 스텟을 찍었다.
 
 <강철두>
 레벨: 2
 직업: 용사 (+1)
 [근력 55] [마력 1] [민첩 54] [체력 51]
 물리 공격력: 55
 마법 공격력: 1
 회피력: 54
 방어력: 51
 [미분배 스텟: 0]
 [EXP 0 / 500]
 
 100개의 스텟은 근력, 체력, 민첩에 균등히 분배했다.
 엄청난 양을 한 번에 찍었기에 육체에서 느껴지는 힘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반면 마력은 변함이 없다. 마력에 투자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까진 마력을 요구하는 스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마력을 올려줄 필요가 없었다.
 미리 찍어둘 필요조차도 없다.
 보너스 스텟은 넘쳐날 테니까.
 현재로썬 최대한 육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게 맞다고 여겼다.
 
 * * *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산의 어둠은 평원보다 위험하다.
 하물며 이곳은 슬라임의 서식지인 뤼올 산이었다.
 시야조차 어둠에 갇힐 때, 평범한 인간들은 슬라임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노예상들은 연신 채찍을 휘두르며 노예들을 다그쳤다.
 “젠장! 벌써 밤이라니!! 어서 빨리 움직여!”
 행렬의 끄트머리에는 강철두가 보였다.
 ‘마침 잘됐네.’
 산이 어둠에 물들자 강철두는 미소를 지었다.
 바라던 바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었다.
 3분이 채 지났을까?
 슬라임들, 그리고 노예와 노예상들의 비명이 쏟아졌다.
 -츄륵, 츄륵.
 “꺄아악!”
 “스, 슬라임이야! 50마리는 되겠어!”
 “이런 X부럴!”
 “횃불을 더 많이 밝혀! 어서 빨리 이 새끼들아!!”
 모두 난리가 났다.
 어느샌가 모든 이의 시선이 강철두에게 닿았다.
 하지만 그들은 금세 절망적인 얼굴을 했다.
 강철두가 이 무리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라임 50마리와 단신으로 맞설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이 판단한 강철두의 무력은 딱 그 정도였다.
 그럼에도 노예상 중 한 녀석이 강철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어, 어이! 검투사! 어떻게 좀 해봐!”
 가슴팍에 채찍질을 해댔던 그 녀석이었다.
 강철두가 퉁명스레 물었다.
 “뭘?”
 “스, 슬라임들 말일세! 자네는 강하지 않나! 슬라임 킹을 무찔렀을 정도로!”
 노예상은 강철두를 치켜세우기에 바빴다.
 그는 강철두가 홀로 슬라임 무리에 뛰어들면 곧바로 도주할 생각이었다.
 강철두는 노예상의 눈빛만 보고도 대번에 그 마음을 짐작했다.
 역시나 말은 곱게 나오지 않았다.
 “네놈이 멍청해서 밤이 오도록 산 하나 넘을 계산도 못 한 거 아니냐? 지금 같은 상황을 대비해 각성자라도 고용을 해놨어야지. 아니아니, 이쪽 세상에도 각성자가 있나? 뭐 아무튼, 미리 얘기하지만 내 몸값은 비싸다.”
 “모, 몸값이라니?”
 “정말 몰라서 묻냐? 살고 싶으면 돈 내놓으라고. 내가 자선 사업가로 보이냐?”
 순간 노예상은 멍해지고야 말았다.
 하나 금세 정신을 차리곤 불같은 노호를 내뱉었다.
 “가, 감히! 슬라임 킹 한 마리 잡았다고 기고만장한 꼴이라니! 자네의 무력으로 저 50마리의 슬라임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여기나?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현재 이송 중인 노예들을 자네에게 모두 넘기겠네!”
 이대로라면 어차피 모두가 죽는다.
 그랬기에 노예상은 무리수를 두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강철두가 전면에 나서게 만들어야 한다.
 그사이 최대한 많은 노예들을 데리고 도주하는 것이다.
 강철두는 결국 죽게 될 것이고, 노예상은 노예들을 살린 채 무사히 산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였다.
 노예상은 계산을 끝마쳤다.
 그런 그의 귀로 강철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예들을 나한테 다 넘긴다 이거지? 좋다.”
 50마리의 슬라임 사냥?
 일도 아니다.
 조금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레벨이 2가 됐다.
 
 
 Chapter 2
 
 
 슬라임의 점프력은 5~8미터에 육박한다.
 놈들은 몸을 둥글게 말았다가 단숨에 피는 방법으로 뛰어오른다.
 이때의 순간 속도는 100~150㎞ 정도이다.
 하물며 산성 독으로 이루어진 액체 몸은 어떠한가?
 이렇게나 무시무시한 놈이 50마리나 된다.
 “크아아아악!”
 주변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벌써 두세 명의 노예가 숨이 끊겼다.
 노예상들은 다급한 얼굴로 강철두를 주시했다.
 그 순간, 강철두가 쇠구슬을 들고 슬라임들을 향해 돌진했다.
 파바바밧!
 눅눅한 산바닥이 깊게 패이며 진흙이 튀었다.
 강철두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이 노예들은 모조리 자신의 것이다.
 슬라임의 경험치는 덤이고.
 “으라아아아!!”
 복부 끝자락에서부터 끌어모은 고함을 터뜨렸다.
 산이 쩌렁쩌렁 울리며 나뭇잎이 흩날렸다.
 그 모습에 노예상들은 도주조차 잊은 채 중얼거렸다.
 “기, 기세가 완전히 뒤바뀌었는데? 힘을 숨기고 있던 건가······?”
 조금 전 슬라임 킹을 상대할 때는 저 정도가 아니었다.
 사람의 기세가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이 경우엔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었다.
 “이제 어, 어쩌지? 이대로라면 슬라임들을 다 잡을 수도 있겠어!”
 강철두를 미끼로 이용한 채 노예들을 이끌고 도주하려 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많이도 뒤바뀌었다.
 푸아아아악!
 슬라임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거듭될수록 노예상들의 정신줄도 터져 나갔다.
 “뒈져!”
 강철두는 벌써 절반 이상의 슬라임들을 퇴치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다.
 쇠구슬을 휘두르고, 맨손으로 슬라임을 찢었으며, 발로 밟아 터뜨렸다.
 어떻게 된 것이 저 거대한 덩치에서 저렇게나 빠른 스피드가 나온단 말인가?
 도무지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저 정도라면 상급 검투사 정도는 될 것이다.
 강철두는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막강한 위력을 내뿜는 강철두조차도 노예들이 죽는 걸 막아줄 순 없었다.
 얼추 수십 명의 노예가 있었는데, 이제 남은 건 3명뿐이었다. 슬라임의 공격은 노예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이었다.
 ‘젠장. 레벨이 3만 됐어도 노예들을 더 지켜줄 수 있었을 텐데.’
 여기서 ‘지켜준다’의 의미는 연민이나 정의감 따위가 아니었다.
 노예를 받기로 했으니 최대한 많이 갖는 게 좋은 거 아닌가?
 그러니 지켜주는 것이다.
 강철두가 뭐가 아쉽다고 생면부지의 인간들을 구해주겠는가.
 푸아아악!
 슬라임들을 모조리 퇴치해 갈 무렵, 살아남은 노예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에라이!”
 강철두는 마지막 남은 슬라임의 몸을 터뜨리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경험치 10 획득!]
 [레벨 업!]
 
 레벨은 3이 되어 있었다.
 스텟 분배는 뒤로 미룬 채 살아남은 노예를 바라보았다.
 꼬질꼬질한 소녀였다.
 얼마나 씻지 못했는지 땟국물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 덕에 외모를 판단할 건덕지조차 없었다.
 건진 것은 이 한 명뿐인가.
 강철두는 입맛을 다시며 시선을 돌렸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노예상들이 보였다.
 “노예를 나한테 다 넘긴다 했지? 얘는 내가 데리고 간다.”
 “그, 그, 그러십시오. 나으리.”
 노예상들의 태도는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괜히 대들었다가 목격자도 없는 산속에서 모조리 죽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런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강철두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가봐.”
 그 한마디에 노예상들은 힘없이 산에서 내려갔다.
 
 * * *
 
 잠시 미뤄 두었던 스텟을 분배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강철두>
 레벨: 3
 직업: 용사 (+1)
 [근력 55] [마력 1] [민첩 54] [체력 51]
 물리 공격력: 55
 마법 공격력: 1
 회피력: 54
 방어력: 51
 [미분배 스텟: 100]
 [EXP 0 / 1,000]
 
 100개의 미분배 스텟은 이번에도 역시 근력, 체력, 민첩에 골고루 분배했다.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지 강철두는 히죽거리고 있었다.
 그때, 뒤통수에서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를 파실 건가요?”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예 소녀다.
 강철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얼마나 받을 수 있지?”
 “30실버 받기도 힘들 거예요.”
 “30실버가 어느 정도인데?”
 “청동 단검 한 자루를 간신히 살 돈입니다.”
 “넌 사람인데, 네 가격이 그것밖에 안 한다고?”
 강철두는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들이켰다.
 그래 뭐, 이곳은 다른 세상이니 지구의 기준으로 생각해선 안 되겠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 쫄쫄 굶게 생겼네.”
 “따라다니게 해주세요.”
 그녀는 힘 있는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강철두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가만 보니 손목의 강철 수갑과 발목의 쇠구슬이 제거되어 있다.
 ‘슬라임들을 이용했군.’
 제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좀 전 상황에서, 그녀 또한 슬라임들의 공격을 받았을 거였다.
 노예상들처럼 한참이나 뒤로 빠져 있지 않았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노예들은 저마다 발목에 쇠덩이를 매달고 있어 멀리 피할 수 없었으니까.
 그녀 또한 다를 바 없었을 거였다.
 하지만 그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듯했다.
 달려드는 슬라임을 향해 수갑과 족쇄를 내밀었겠지.
 슬라임의 산성독은 그녀의 포박을 녹였을 거다.
 수십 명의 노예 중에서 홀로 살아남은 것만 보아도 명확하다.
 쓸 만한 여자다.
 하나, 믿을 만한 여자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다못해 노예 한 명의 값이 30실버라는 말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믿는 척해주었을 뿐.
 어쨌거나 지금은 가이드 한 명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곳의 지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금세 판단을 끝낸 강철두가 말했다.
 “따라다니는 건 네 자유야. 다만, 나한테 신세 질 생각 마. 나는 널 지켜주지 않을 거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냐?”
 “익숙해요. 그런 거······.”
 노예 소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팔지 않는 것만으로도, 따라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듯이 말이다.
 연민의 감정이 들만도 하건만, 강철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자, 그럼 가까운 마을로 안내해라.”
 “아, 네!”
 산나물과 약초를 캐서 인근 시장에 팔던 그녀였다.
 뤼올 산과 인근 영지의 위치는 모조리 꿰고 있었다.
 
 * * *
 
 뤼올 산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습한 기운이 거짓말처럼 물러갔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다만 몸은 여전히 끈적거렸다.
 어디 그뿐인가?
 꼬르르륵.
 배가 고파 죽게 생겼다.
 아카도르 대륙을 마왕의 마수에서 구해낼 용사 강철두, 보무도 당당히 등장했건만!
 꼬르르르륵.
 아사하게 생겼다.
 상황은 옆에 있던 노예 소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마른 다리로 간신히 서 있는 것 같았다.
 강철두는 이리저리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사람이 사는 마을에 도착했으니 당연히 먹거리를 구할 수 있을 거다.
 다만 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지만······.
 순간 밥을 강탈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불쑥 내민다.
 하지만 그런 건 양아치나 하는 짓이다.
 강철두는 참을성 있게 인내했다.
 옛말에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들 하지 않았던가?
 어느새 강철두는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슬슬 다리도 아파오겠다,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흙바닥은 생각 외로 감촉이 좋았다.
 이내 강철두는 눈을 감고 밤바람을 느꼈다.
 산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은 제법 시원했다.
 땀이 금세 식는다.
 주변을 향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풀벌레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마을 아이들이 노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절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한데 그때, 단박에 그의 평화를 아작내는 소음이 들려왔다.
 “네놈, 복장을 보아하니 노예 놈이 분명하거늘, 어디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바닥에 편히 앉아 있느냐?”
 이 새낀 또 뭐지?
 강철두의 굵은 눈썹이 꿈틀댔다.
 “어허, 내 말이 들리지 않더냐? 이 비천한 노예 놈아!”
 그놈의 노예, 노예!
 오늘만 해도 빌어먹을 노예라는 말을 수십 번은 들은 것 같다.
 강철두는 오만상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늙수그레한 영감탱이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영감 옆에는 창을 꼬나쥐고 있는 사내도 보였다.
 잠시 승산을 가늠해보았다.
 영감탱이는 척 보아도 1초 컷이다.
 다만 병사가 아주 조금 걸리는 정도?
 그래 봐야 대략 30~40초 걸리려 나?
 견적은 순식간에 끝났다.
 강철두는 노려보는 영감탱이를 무시하며 귀를 후비적댔다.
 “것 참 앵앵대네.”
 “뭐라? 네놈이 지금 실성을 하였구나?”
 황당한 얼굴의 영감을 향해 차분하게 욕설로 응수했다.
 “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잖아? 왜 지X이야?”
 “이 비천한 노예 놈이 정녕!”
 “왜 다짜고짜 시비야? 죽고 싶어?”
 “이놈이 진정 돌았구나.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알게 뭐야. 나이 처먹고 할 짓 없어서 동네 알짱대는 노망난 늙은이겠지.”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가 지혜를 머금진 않는다.
 누군가는 노망을 퍼먹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삐뚤어진 인성을 교정할 새도 없이 늙은이가 되고야 만다.
 저런 인간들은 답도 없다.
 이미 교정 시기도 지난 거다.
 어느새 늙은이가 옆에 있던 병사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이놈을 당장 체포해라!”
 “예, 세리님.”
 아아, 세리?
 세리라면 분명 세금을 징수하는 관리들을 칭한다.
 뭐, 공무원인 셈이다.
 이 나라에선 공무원 패면 어떻게 되려나?
 뭐, 패보면 알게 되겠지!
 마침 주변엔 인적도 없었다.
 뛰어놀던 아이들도 세리 놈의 노성에 의해 집으로 다 도망갔다.
 이 정도면 뭐, 볼 것도 없다.
 강철두는 불식간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강철두의 주먹이 세리의 안면에 꽂혔다.
 뻐걱!
 코뼈가 주저앉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세리는 썩은 고목처럼 쓰러졌다.
 역시나 뭐 없는 영감탱이였는지 한방에 기절이다.
 이제 좀 속이 후련하다!
 물론 아직 끝이 아니다.
 창을 꼬나쥔 병사가 사태를 파악하곤 뒤늦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밧!
 병사는 거리를 가늠함과 동시에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한 손으론 창의 끄트머리를, 다른 한 손으론 창의 중간 마디를 잡는 무척이나 안정적인 자세였다.
 사정거리는 짧아져도 강한 힘을 줄 수 있을 터였다.
 후웅!
 순식간에 찌르기가 쏘아져 왔다.
 병사의 창은 강철두의 복부를 노리고 있었다.
 강철두의 재빠른 움직임을 고려한다면, 면적이 큰 복부 공격이 명중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나쁘지 않은 판단력이다.
 하지만 어림없다.
 강철두는 산전수전 다 겪은 용사이지 않은가?
 그는 쏘아져 오는 창의 옆면을 오른발로 후려쳤다.
 챙!
 그 한방에 창의 경로가 뒤바뀌었다.
 목표를 잃은 창은 병사와 함께 휘청거렸다.
 강철두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녀석의 뒷목에 냅다 팔꿈치를 꽂아버렸다.
 빡!
 “컥!”
 병사가 외마디 비명을 내뱉었다.
 경추가 찌르르 진동하며 시야가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려댔다.
 병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선 창을 지팡이처럼 땅에 박고 넘어짐을 방지했다.
 경추의 충격이 가시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물론 강철두는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으라아!”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 창의 몸통을 발로 냅다 깠다.
 빠가악!
 나무로 이루어진 창의 몸통이 단숨에 부러졌다.
 간신히 서 있던 병사는 대책 없이 바닥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병사는 당황했다.
 “자, 잠깐 기다······!”
 “X까.”
 명쾌한 답변과 함께 쓰러진 병사의 머리를 향해 싸커킥을 날렸다.
 뻑!
 관자놀이를 타격 당한 병사는 혀를 빼고 기절했다.
 “에라이. 더러운 새끼들.”
 강철두는 기절한 놈들의 면상을 향해 침을 뱉어버렸다.
 이로써 일단은 상황 종료다.
 속이 다 후련하다!
 그 순간, 저만치 옆에서 달달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예 소녀였다.
 “감당되시겠어요? 상대가 세리인 건 알고 있죠?”
 “응.”
 강철두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노예 소녀의 얼굴에 황당함이 깃들었다.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요?”
 “노예를 가축 취급하는 세상인 거 같은데, 어디 미친 개새끼한테 한번 물려보라지.”
 “네······?”
 그녀는 어이가 없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의 침묵을 비집고 강철두가 말했다.
 “벙쪄 있지 말고 이 자식들 주머니부터 탈탈 털어라. 그래야 저녁도 먹고 할 거 아니냐.”
 “헐······.”
 그녀는 살다 살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처음 보았는지, 여전히 황당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 * *
 
 알폰소 하실데르 남작은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세리놈에게 세금을 걷어오라 일렀거늘, 어디서 신나게 얻어터지고 왔다.
 게다가 걷었던 세금마저 모조리 털렸단다.
 “어떤 놈인가?”
 “송구합니다. 영주님. 놈은 최소 300레벨은 되어보이는 근육질의 사내였습니다.”
 세리는 300레벨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유독 힘을 주었다.
 고작 50레벨인 영지병 한 명으로는 어쩔 수 없었노라고.
 “혹, 놈이 근래에 설치고 다닌다던 리버티 캡의 단원이었나?”
 영주는 조심스레 물었다.
 리버티 캡, 그들은 노예와 평민들로만 구성된 집단이었다.
 그들은 평등을 위해 싸운다.
 동등한 인간이면서, 인간의 위에 군림하는 귀족들을 말살하겠다는 미친 집단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장인 리버티 폭스가 가장 골치 아픈 녀석이었다.
 새하얀 여우 가면을 쓰고 다니는 그 싸이코는 벌써 수십 명의 귀족을 죽였다.
 그로 인해 천문학적인 현상금이 붙어 있기도 했다.
 그런데도 놈은 여태 잡히지 않고 있었다.
 리버티 폭스는 본인의 단원들 앞에서도 가면을 벗지 않는 용의주도함을 보인다고 알려졌다.
 그 누구도 그의 정체를 모른다.
 골치 아픈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점조직으로 활동하는 리버티 캡 녀석들은 번식하는 구더기처럼 도무지 끝이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만큼 귀족의 권위가 서서히 추락하는 시점이었고, 평민과 노예들이 단합하는 시점이었다.
 세리를 공격했다던 그 미친놈도 리버티 캡의 단원일 가능성이 컸다.
 어느 누가 감히 노예의 신분으로 그러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겠는가.
 미친 사고방식을 가진 리버티 캡만이 가능하다.
 “송구하오나, 놈의 정확한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당했사옵니다.”
 “놈의 얼굴은 기억할 테지?”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몽타주를 그려 나에게 주어라.”
 잠시 뒤 몽타주를 받아든 남작은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굵은 눈썹, 쌍꺼풀이 없는 강인한 눈, 반듯하기 그지없는 높은 콧날, 굳게 다문 입술, 전체적인 인상은 무척이나 남자다운 생김새였다.
 고놈 참, 노예로 팔리면 귀족 부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게 생겼다.
 한참 놈의 얼굴을 뜯어보길 잠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영주님.”
 “뭔가?”
 “노예상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분명 노예를 구매했던 참이다.
 “들라 하라.”
 잠시 뒤 노예상들이 들어왔다.
 한데 그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불길해진 남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노예들은 잘 끌고 왔는가?”
 노예상들은 우물쭈물 댔다.
 “저어, 그것이······.”
 “뭔가? 어서 말하게. 지금 내 기분이 매우 좋지 않으니, 되도록 좋은 소식이었으면 하네.”
 “후우······ 죄송합니다, 영주님. 저희는 오는 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습격당했습니다. 노예들을 모조리 빼앗기고 금품마저 갈취 당했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노예상의 리더 노만이 대표로 말하고 있었다.
 그는 자세한 내막을 숨긴 채 보고했다.
 이렇게 해야 그나마 문책을 피한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어느 누가 감히 나에게 납품될 노예들을 건드린단 말인가?”
 그때, 노예상 노만은 테이블에 놓인 몽타주를 발견했다.
 저놈의 몽타주가 왜 영주의 책상에 있는 걸까?
 아니,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노예상 노만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저 몽타주의 남자, 저놈이 영주님의 노예들을 습격한 그 녀석이옵니다!”
 “정말인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노예상의 눈빛은 분명한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알폰소 남작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몽타주의 사내는 누구일까?
 세리와 병사를 단번에 때려눕히고 노예까지 모조리 강탈해갔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달에는 가뜩이나 사치를 부려서 돈이 부족한 시점이었다.
 왕국에 납부할 세금마저 부족하다.
 한데 돈이고 노예고 모조리 한 녀석에게 빼앗겼단다. 당장에 놈을 잡아들여야 한다.
 “이 몽타주를 토대로, 당장 수배령을 내려라!”
 
 * * *
 
 어둠이 더욱 짙어질 무렵, 강철두는 여관을 찾았다.
 <방랑자의 발걸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1층에는 식당을 겸한 주점을, 2층은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확 끼쳐왔다.
 식탁에 검을 세워둔 채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이들은 대부분 용병인 것 같았다.
 강철두는 노예 소녀와 함께 빈자리에 앉았다. 배가 고팠기에 닥치는 대로 음식을 시켰다.
 송아지 스테이크 2인분.
 양고기 수프 2인분.
 갓 구워낸 마늘 빵 5조각.
 훈제 칠면조 1마리.
 구운 감자 8개.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즈음 되자 점원이 강철두의 행색을 보며 눈가를 좁혔지만, 강철두는 가죽 주머니를 짤랑대는 것으로 간단히 의심을 해결했다.
 잠시 뒤 음식이 나왔다.
 게걸스럽게 음식들을 입에 쑤셔 넣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그때, 옆에서 ‘꿀꺽’ 소리가 크게 났다.
 강철두는 고개를 돌렸다.
 노예 소녀였다.
 그녀는 강철두의 기름진 입가와 남은 음식들을 바라보며 연신 침을 삼키고 있었다.
 “왜 안 먹냐?”
 “네,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요!”
 노예 소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그녀의 몸값이 30실버인 마당에, 그보다 비싼 요리에 손을 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저 돈은 영주의 돈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겁이 났다.
 하지만 아무리 겁이 난다 해도 배고픔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그녀가 언제 저런 요리를 먹어보겠는가?
 그냥 눈 딱 감고 먹어버릴까?
 하나 정작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마음과 달랐다.
 “그냥, 곰팡이 슬은 빵이라도 시켜주신다면 감사히 먹을게요.”
 “곰팡이 빵?”
 “네! 3쿠퍼 정도면 살 수 있어요!”
 그 정도가 이 소녀에게 알맞은 한 끼 식사비였다.
 “정말 그런 쓰레기를 입에 욱여넣을 생각이냐?”
 “늘 먹었던 거라 익숙한 맛이에요.”
 강철두는 고개를 내저으며 곰팡이 슬은 빵을 시켰다.
 잠시 뒤 빵이 나오자 그녀는 연신 감사 인사를 해댔다.
 “켁! 켁!”
 배가 고팠던 만큼 급하게 빵을 욱여넣던 그녀는 금세 목이 막혀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데도 그녀는 끈기 있게 빵을 먹었다.
 심지어 맛나게 먹는 통에 저게 진짜 맛있는 건가 궁금해졌다.
 “나도 좀 줘봐.”
 빵을 조금 넘겨받은 강철두가 그것을 입에 넣었다.
 그 즉시 그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이딴 걸 돈 주고 처먹어?”
 “죄, 죄송해요.”
 “버려. 식탁에 있는 음식이나 먹어. 어차피 배가 불러 더는 못 먹겠으니까.”
 “하지만······.”
 노예 소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하나 그녀의 손은 이미 식탁 위로 올라간 뒤였다. 음식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참 맛있게도 잘 먹는다.
 “너, 너무 맛있습니다!”
 “그래.”
 강철두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녀는 공범이었다.
 
 * * *
 
 식사를 끝마친 뒤 방을 잡았다.
 은화가 꽤 있는 관계로 특실을 잡은 참이었다.
 노예 소녀가 쭈뼛거리며 종종걸음으로 강철두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으나, 강철두는 오로지 샤워만을 생각할 뿐이었다.
 땀을 꽤 흘려서인지 무척 찝찝했다.
 그는 몸을 긁적대며 욕실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때 노예 소녀가 말을 걸었다.
 “······씻겨드려요?”
 “지금은 생각 없다.”
 “아, 네.”
 노예 소녀는 조금 의외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그녀였다.
 아직 경험은 없으나, 어차피 노예상의 손에 끌려갔더라면 귀족 놈에게 첫 경험을 빼앗기고 성노예가 될 예정이었으니까.
 차라리 그것보다는, 자신을 노예상의 손아귀로부터 구해준 이 사내와 몸을 섞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강철두의 입장에선 그녀를 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에선 달랐다.
 더군다나 강철두는 단단한 근육질에다가 얼굴까지 호감형이니 힐끗힐끗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쩌면 그녀는 내심 원하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그녀가 멍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강철두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서야 그녀는 강철두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는 분명 ‘지금은 생각 없다.’라고 했다. 여기서 ‘지금은’이 중요하다.
 그럼 나중은?
 ······응?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즈음 샤워를 끝마친 강철두가 나왔다.
 “너도 좀 씻어라.”
 강철두는 꾀죄죄한 그녀의 몰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통 더러운 게 아니다.
 덕지덕지 붙은 때 구정물에 의해 외모조차도 판별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가냘픈 팔다리 때문인지 굉장히 불쌍해 보였다.
 그녀도 인정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군말 없이 욕실로 향했다.
 그녀는 한참이나 씻었다.
 하긴, 그 많은 때를 벗기려면 보통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 거다.
 이윽고 그녀가 욕실에서 나왔다.
 그 순간 강철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다른 사람인가 싶어서였다.
 때를 벗기니 인상이 달라졌다.
 살짝 올라간 눈꼬리와 앙증맞은 입술을 보니 고양이가 생각났다.
 나아가, 옅은 금발과 푸른색 눈동자는 그녀의 분위기를 신비스럽게 만들어주었다.
 엄청난 미인은 아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다.
 아니, 굉장히 매력적이다.
 예쁜 얼굴은 금세 질리지만, 매력적인 얼굴은 오래도록 아름답다.
 강철두가 눈을 떼지 않자 그녀는 무안한지 다급히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맛있는 음식도 사주시고, 이렇게 좋은 방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강철두는 인사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소리를 해댔다.
 “진즉에 좀 씻고 다니지.”
 “아, 아하하······!”
 그녀는 겸연쩍은 얼굴을 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런데, 어디 출신이세요?”
 그녀는 여전히 남은 무안함을 털어내기 위해 화제를 바꿨다.
 “말해도 넌 모를 거야.”
 “음······.”
 적어도 이곳 헤일루안 출신은 아닌 걸까?
 아카도르 대륙에는 10개의 왕국이 있으며, 개척되지 않은 지역도 있다.
 어쨌거나 대륙 어디에선가 왔겠지.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의지를 표출했다.
 “여행을 하실 참이에요? 제가 지금처럼 따라다녀도 되겠죠?”
 어차피 혼자 다녀봐야 또다시 노예상에게 잡힐 거다. 그녀는 강철두를 쫓아다니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음······.”
 강철두는 잠시 침묵했다.
 이쯤에서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함께 다니며 부려먹기 좋은 종자인 건 알겠다.
 하지만 그건 서로의 뜻이 어느 정도 맞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강철두는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가 어딜 가는진 알고 그러는 거냐?”
 “어디인데요?”
 “마왕성.”
 “······네?”
 “목적지는 마왕성, 목표는 마왕 놈의 모가지.”
 노예 소녀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만연했다.
 강철두는 씨익 웃었다.
 아마 겁에 질린 그녀가 더는 따라다니지 않겠다고 말하겠지 싶었다.
 한데 잠시 뒤 들려온 대답은 정말로 뜻밖이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응?”
 “몇 달 전, 대륙에 내려온 신탁에 의하면 꽃이 만발하는 시기에 마왕을 물리칠 용사가 등장한다고 했거든요.”
 “오 그래?”
 “어째서 마왕과 싸우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실 필요 없다는 거죠! 대륙에 현신한 용사님이 처치해주실 테니까요! 마침 꽃이 만발하는 시기가 되었으니, 이미 용사님은 대륙에 오셨을 거예요.”
 그녀의 눈동자가 용사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초롱초롱해졌다.
 한데 그녀는 알까?
 그 용사가 바로 그녀의 눈앞에 있다는 것을.
 그 용사가 바로 나란다. 애송아.
 라는 말을 할까 하다가 그냥 관뒀다.
 말해 봐야 믿지도 않을 테고, 굳이 까놓을 이유도 없었기에.
 문득 그녀가 품고 있는 용사에 대한 환상이 궁금해졌다.
 “그 용사라는 놈은 어떤 자식일 것 같냐?”
 “음······. 키가 크시고, 늠름하시고, 근육질이시고, 잘생기셨을 거예요.”
 “그리고?”
 “인정이 많으시며, 따스하시고, 약자를 돌볼 줄 아는 분이실 테죠.”
 “흠, 글쎄······ 그리고 또?”
 “신비스러워서, 왜인지 홀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질 것만 같아요······.”
 마지막 말을 마치며 그녀는 침울한 얼굴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두는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마지막 예상이 맞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이따위 ‘노예, 노예’ 세상에서 평생을 보내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마왕의 목을 따고, 수정구를 통해 미련 없이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거였다.
 그리되면 새로운 용사의 권능이 추가될 거다.
 보너스 스텟 100배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는 용사의 권능을 겹겹이 쌓아 올릴 예정이었으니까.
 “그래,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겠지.”
 “네?”
 “아마 그럴 거라고.”
 “아아.”
 그녀는 대꾸할 말이 딱히 없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강철두는 곧장 침대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난 잔다.”
 “아, 네.”
 노예 소녀는 누워 있는 강철두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 * *
 
 아침이 밝았다.
 강철두는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을 하며 낑낑댔다.
 “끄으으!”
 그 인기척에 노예 소녀도 깼다.
 그녀는 깨자마자 잔뜩 눈치를 보더니 이내 안심한다.
 확실히 그녀는 노예 시절의 버릇이 남아 있었다.
 뭐, 지금도 그녀의 신분은 엄연한 노예다.
 인정하긴 싫지만 자신 또한 마찬가지고.
 이내 그녀는 눈을 비비적대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셨어요?”
 “응.”
 강철두는 간단히 세수한 뒤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노예 소녀가 물었다.
 “이제 어디 가실 참이에요?”
 “어제 말했잖아.”
 “아, 엥, 네?”
 “당장은 아니지만, 빠르게 힘을 키워 마왕성에 갈 참이다.”
 “현신하신 용사님에게 보탬이 되려는 건가요?”
 그녀가 진지하게 묻자 강철두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뭐, 그냥 그렇다고 해두자.
 “그래.”
 “아아.”
 그녀는 오늘도 뒤통수를 긁적댔다.
 할 말이 궁해질 때 나오는 버릇인 듯싶었다.
 어느새 강철두가 문을 열고 1층 식당을 향했다. 노예 소녀는 자연스레 강철두를 쫓아왔다.
 “이제 너 갈 길 가도 된다.”
 “따라다닐래요. 혼자 있다간 팔려가서 가축처럼 부려질 거예요.”
 “죽어도 책임 안 진다. 구해주지도 않을 거고.”
 “알고 있어요.”
 “겁나지 않아?”
 “겁······ 나요.”
 “근데 왜 쫓아오려고 하냐?”
 “저도 마왕성에 가서 현신하신 용사님을 뵙고,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요.”
 “아아, 그래.”
 뜻은 달라도 목적지는 같다. 따라오는 걸 굳이 말리고 싶진 않았다.
 그나저나, 한창 백마 탄 왕자님을 바랄 나이인 건가? 용사님을 돕고 싶다니.
 강철두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침을 시켰다.
 그러곤 아무 테이블이나 잡고 앉았다.
 그런데 한참을 앉아 있어도 노예 소녀가 오지 않았다.
 어디 있나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저만치 뒤에 있는 카운터에 서 있다.
 뭘 하나 들여다 보니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소시지를 보며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다.
 그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저 눈빛, 집중력, 실로 어마어마하다.
 강철두는 소리 없이 그녀의 뒤로 향했다.
 그러곤 불시에 물었다.
 “하나 먹던가?”
 “우, 우악!”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깜짝 놀란 그녀가 괴성을 내질렀다.
 “먹고 싶으면 먹으라고. 소시지.”
 “네!!! 아, 아니, 아니에요!”
 강철두는 돌아가는 소시지 하나를 뺐다.
 그러곤 식당 주인에게 값을 지불했다.
 “자. 받아라.”
 “맛있겠······ 아니, 하하하!”
 “먹으라고.”
 “······정말 감사합니다.”
 노예 소녀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소시지 하나에 이렇게 감동해도 되는 건가 싶다.
 이내 그녀와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바삭하게 구워진 소시지 껍데기를 치아로 야금야금 뜯어먹고 있었다.
 모든 껍데기를 먹어치운 그녀는 알맹이만 남은 소시지를 한입에 욱여넣었다.
 표정에서 행복이 뚝뚝 떨어진다.
 “우아암.”
 5초 만에 먹는다.
 씹기는 하는 거냐?
 참 복스럽게도 먹는다.
 잠시 뒤 음식이 나왔다.
 강철두는 그제야 아침 식사를 시작했고, 노예 소녀는 강철두의 권유로 마지못해(?) 2차전을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강철두는 식당 주인이 자신을 힐끔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 보니 웬 종이 한 장과 자신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순간, 강철두의 눈과 식당 주인의 눈이 마주쳤다.
 “히, 히익!”
 “흠.”
 강철두는 조금 귀찮은 얼굴을 했다.
 어제와는 다른 주인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사태가 돌아가는 꼴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젠장할!”
 어느새 주인장은 헐레벌떡 바깥으로 도망가 버렸다.
 그가 사라지자 가게 안에 남은 건 강철두와 노예 소녀뿐이었다.
 휘이이익-
 잠시 뒤 주인장이 내팽개치고 간 종이가 서서히 바닥에 추락했다.
 강철두는 가만히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하실데르 영지 수배서>
 이름: 알 수 없음.
 나이: 25~30세 추정.
 성별: 男
 신체 사항: 185~190cm 장신의 근육질.
 특이 사항: 리버티 캡의 단원일 가능성이 높음.
 현상금: 5골드.
 죄목:
 1. 세리 폭행.
 2. 영지병 폭행.
 3. 노예상 폭행.
 4. 영지 세금 탈취.
 5. 노예 탈취.
 
 수배서에는 자신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으며, 온갖 죄명이 붙어 있었다.
 강철두는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세리를 쥐어 패면 어찌 될지 궁금했었는데 답이 나왔다.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지구를 개박살 내려던 마왕 앞에서도 한 점 흐트러짐 없었던 그였다.
 이따위 종이쪼가리 따위,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한데 노예 소녀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울화 섞인 외침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건 말도 안 돼요! 세리와 관련된 건 그렇다 쳐도, 노예상은 오히려 구해주셨잖아요! 게다가 저를 데리고 오신 것도 정당한 거래를 통해서였잖아요! 어떻게 이런 부당한 수배서가!”
 그녀는 마치 자기 일처럼 이를 갈고 있었다.
 강철두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당연히······! 누명을 풀어서 죄를 경감 해야죠!”
 “그게 가능할까? 한낱 세리조차도 노예, 노예거리면서 내가 땅바닥에 앉아만 있어도 지랄발광을 떨어대는데?”
 “그건 그렇지만······. 이대로는 너무 억울하잖아요.”
 그녀는 노예로 지내며 부당한 대우를 꽤 당했을 텐데도 아닌 걸 아니라고 하는 강단이 있었다.
 저런 성향의 인간들은 대부분 명이 짧다. 물론, 반대로 명이 길어지면 역사의 한구석에 이름 석 자 새길 만한 인물이 된다.
 그녀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생각도 잠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떡하면 좋겠냐니까?”
 “그건······.”
 “간단하게.”
 “간단하게요? 가장 간편한 방법은 다른 영지로 도주하는 거예요. 하실데르 영지 수배서이기 때문에 타 영지로 갈 시 죄인에서 벗어나게 되니까요.”
 그러면서 그녀는 수배서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수배서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영지 수배서, 왕국 수배서, 대륙 수배서.
 현재 강철두에게 떨어진 ‘영지 수배서’의 경우, 해당 영지에서만 효력이 발생한다.
 물론, 하실데르의 영주가 강철두가 도주한 타 영지의 영주에게로 협조를 요청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왕국 수배서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스케일이 조금 커지는 것일 뿐. 수많은 영지를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왕국이 내리는 수배서이니 말이다.
 이러한 왕국이 열 군데니, 이 또한 하나의 왕국이 다른 왕국으로 도망친 본국의 범죄자를 잡기 위해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대륙 수배서가 있다.
 대륙은 말 그대로 세계의 적이 된다는 의미였다.
 어딜 가도 수배범이다.
 전 왕국이 단합할 정도로 악명 높은 놈만이 이 수배령의 주인공이 된다.
 현재 가장 유명한 대륙 수배범은 귀족 말살 집단 리버티 캡의 수장 리버티 폭스였다.
 어느새 그녀의 긴 설명이 끝났고, 강철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세계의 적, 대륙 수배범. 그거 괜찮은데?”
 “······네에?”
 애초에 평화보다 혼란을 원했던 강철두다.
 그래서 지구에서의 안락한 삶을 내팽개치고 이곳으로 넘어온 거였다.
 물론 이쪽 영웅들의 답답함이 크게 한몫했지만 말이다.
 그런 강철두가 보기에 세계의 적은 혼란 그 자체였다.
 게다가 강철두는 빠르게 마왕을 물리치고 싶었다.
 원하는 건 마왕의 수정구이지, 이 대륙에서의 명성이나 직위 따위의 것은 쥐뿔도 필요 없었다.
 그렇다면 모조리 깨부수고, 자신을 핍박하는 영지를, 나아가 왕국을 향해 반기를 드는 게 낫다.
 먼저 깝죽댄 것은 놈들이다.
 그러니 되돌려준다. 그리고 이왕이면 귀족이라는 고귀하신 새끼들이 꿍쳐놓은 아이템들도 빼앗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그 편히 확실히 빠르고 편하게 강해지는 길이다.
 이건 양아치 짓도 아니다. 먼저 ‘노예, 노예’거리면서 시비를 걸던 건 녀석들이었다.
 한낱 세리도 그러한데 귀족들은 또 얼마나 지랄 같겠는가?
 마침 잘 됐다.
 정당하게 한길만 파는 선한 영웅이 되어서는, 그만큼 마왕을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게 뻔했다.
 이곳 아카도르 대륙에서는 악한 영웅이 되겠다.
 그리하여 마왕의 목을 베고 조용히 사라져주겠다.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악명 높고 위험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노예, 노예’ 거리는 재수 없는 귀족 놈들의 비위를 맞춰줄 필요가 전혀 없는 거다.
 이 거대한 계획의 시작을 위해 레벨을 좀 올릴 필요가 있었다.
 지금 그의 레벨은 3이다.
 제아무리 스텟 100배라 해도 이걸로는 죽기 딱 좋다.
 결심을 굳힌 강철두가 노예 소녀를 향해 말했다.
 “길 안내 좀 부탁하자.”
 “역시, 다른 영지로 도망칠 생각이십니까?”
 “아니?”
 “그러면 도대체······?”
 그녀의 얼굴엔 의문이 가득했다.
 수배령을 내리고 24시간이 흘렀다. 알폰소 하실데르 남작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 다른 영지로 도주라도 하는 날에는 골치가 아파진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제이딘 남작의 영지다. 놈은 그곳으로 도주할 확률이 높았다.
 그리되면 제이딘에게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니, 심각하게 나쁜 정도였다.
 그 이유는, 제이딘의 영토와 알폰소의 영토를 걸치고 애매하게 들어선 던전 때문이었다. 제이딘과 알폰소는 오랫동안 그 던전을 두고 소유권 싸움을 해왔다. 던전은 곧 보물이다. 이를 두고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제이딘이나 알폰소는 소유 영토에 던전도 몇 개 없었기에, 던전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오래전, 난데없이 생성된 던전.
 자신의 영토에 많은 던전이 생성된 영주는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전리품들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본인들의 영토에 던전이 생성되지 않은 영주들은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 격차는 세월이 지날수록 심각하게 벌어졌고, 마침내 영주의 힘은 본토에 자리 잡은 던전 개수로 판가름 나버리는 시대가 오고 말았다.
 이러니 제이딘과 알폰소가 원수 지간이 돼버린 것이다.
 “놈이 제이딘 녀석의 영토로 도주하기 전에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알폰소의 눈동자에 독기가 흘렀다.
 그러나, 이때까지 알폰소는 강철두가 설마 그곳으로 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다른 영지로 도망칠 생각도 아니시라면,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안내해 달라는 거예요? 설마 알폰소 남작의 성으로 쳐들어간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죠?”
 “아아, 물론 지금은 아니지.”
 지금은?
 그렇다면 나중엔 쳐들어간다는 건가?
 노예 소녀는 식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두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운 여정이 되기 위해선 힘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힘을 키우기 위해선 레벨을 올리고 스킬을 습득하고 아이템을 얻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특히 스킬과 아이템이 중요하다.
 깡스텟만으론 한계가 명확하니 말이다.
 현재 강철두가 처한 상황의 특성상 숨어서 힘을 키울
 만한 곳이 필요했고, 그런 곳은 던전만 한 곳이 없다.
 귀족을 치는 것은 힘을 키운 뒤의 이야기다.
 그때가 되면 귀족들이 가진 재물, 보물, 유니크 아이템들을 강탈할 수 있을 거다.
 그걸로 빠르게 마왕과의 격차를 좁힌다.
 “우선 던전으로 갈 거다.”
 “아······!”
 강철두는 노예 소녀에게 가까운 던전으로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3시간가량 이동했다.
 자신을 쫓는 영지병들을 따돌리며 가까스로 던전 근처에 도착했다.
 강철두는 먼발치에서 던전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뭔 놈의 병사들이 저렇게 많냐?”
 아닌 게 아니라 던전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이 족히 100명은 되어 보였다.
 현재 강철두의 무력으로는 저 길을 뚫고 입장할 방법이 없었다.
 “각각 알폰소 남작의 병사와 제이딘 남작의 병사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두 머저리 남작은 저 던전을 두고 오랫동안 싸워왔고, 결국에 내린 결론이 저것이었다.
 그 누구도 저 던전에 입장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를테면 저것은 휴전이다.
 참으로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종자들이다.
 하다못해 둘이 번갈아가며 던전을 사용해도 되는 것 아닌가?
 “가만. 그러고 보니 저 던전, 제대로 익었는데?”
 던전은 술과 같다. 묵힐수록 좋아진다. 현재 저 던전의 입구는 제법 붉었다. 붉기가 짙을수록 던전의 농도가 높다는 뜻이었다.
 강철두의 판단으로, 저 던전은 최소 2년은 방치된 것 같았다.
 그 말은 즉, 저 내부는 그야말로 꿀이라는 뜻이었다.
 멍청한 두 남작이 서로 으르렁대는 통에 본의 아니게 보물 덩어리를 만들어 놨다.
 정말로 잘 차려진 밥상이다.
 “흠······.”
 한데 현재로써는 그림의 떡이다. 경비가 저렇게 많으니 당장 어찌할 방법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눈앞에 저런 보물 덩어리가 떡하니 존재하지 않는가?
 저건 무조건 먹는다.
 그렇다면, 이제 어쩐담?
 우선 던전 앞을 지키고 있는 병력을 흐트러뜨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저들에게 그만한 혼란을 던져주어야 한다.
 ‘혼란이라.’
 찰나의 혼란이면 충분하다.
 그 틈을 비집고 저 던전에 입장하면 그만이다.
 던전은 누군가가 들어서면 입구가 봉쇄된다. 해당 던전에 들어선 이가 클리어 혹은 사망해야만 다시금 입구가 활성화된다.
 다시 말해 들어가기만 하면 끝이란 얘기다.
 간단한 문제다.
 강철두는 이곳까지 도주해오며 얼핏 보았던 오크부락을 떠올렸다.
 
 * * *
 
 던전의 입구를 지키는 알폰소와 제이딘의 병사들은 따분함을 이기지 못한 채 하품을 내뱉고 있었다.
 큰 꿈을 꾼 채 병사가 되기 위해 분투해왔건만, 막상 발령 난 곳이 이곳이라니.
 그들은 오늘도 전방을 주시하며 교대 시간을 기다릴 뿐이었다.
 하루 반나절을 이러고 있으니 다리가 저려 오고 머릿속에는 온통 집 생각뿐이다.
 그나마 야간조가 아닌 게 다행이랄까?
 한참을 서 있으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그때, 저만치 앞에서 나무숲을 헤치고 난데없는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아악! 오크다!”
 공포에 질린 비명이었다.
 그들은 전방을 주시했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오크가 몇 마리나 몰려올지는 모르겠으나, 모조리 생포해서 사지를 절단내며 시간을 죽여야겠다.
 우다다다닥!
 뜀박질이 가까워진다.
 그럴수록 병사들의 눈동자에 흥미가 담기기 시작했다.
 “우와, 엄청난 양인데?”
 몰려온 오크는 족히 50마리는 되어 보였다.
 선두에는 오크들에게 쫓기는 남자와 여자가 보였는데, 추레한 차림새를 보니 노예가 분명해 보였다.
 “저 노예 년놈들. 겁에 질린 얼굴 좀 봐. 크큭.”
 병사들은 검지로 손가락질을 해대며 배를 잡고 낄낄댔다.
 특히나 여자 노예는 얼마나 겁을 집어먹었는지 침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러는 순간에도 거리는 가까워졌고, 마침내 오크 놈들이 공격범위에 근접해 있었다.
 그제야 병사들은 느릿하게 창을 꼬나쥐고 외침을 토해냈다.
 “자, 가자! 제이딘 영지의 병사들보다 무조건 많이 잡는다!”
 “우리보다 많이 잡겠다고? 헛소리! 위대한 제이딘 영지의 초인적인 힘을 보여주자!”
 “우와아아아아아!!”
 두 병력은 끝내 경쟁까지 붙었다.
 이렇게 된 이상 오크들의 운명은 바람 앞에 촛불이나 다름없었다.
 챙!
 챙!
 “취익! 인간들!”
 전투 본능에 휩싸인 오크들은 눈을 부라리며 손도끼를 고쳐 쥐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던전 앞은 단숨에 전쟁터로 변했다.
 “이야아아아압!”
 “끄에엑!”
 피와 살점이 튀고, 외침과 비명이 격돌한다.
 그 난전 속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바로 오크들을 여기까지 몰아온 강철두였다.
 공포를 가장했던 그의 눈동자는 단숨에 차분함을 머금고 있었다.
 그는 노예 소녀에게 힐끗 눈치를 준 뒤 던전의 입구로 튀어 나갈 준비를 했다.
 ‘한 번에 간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순간을 잡으면, 꿀 발린 던전이 온전히 제 것이 된다.
 강철두는 침을 한번 삼켰다.
 주변을 둘러보니 병사들은 눈알이 뒤집힐 기세로 오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오크 병력의 숫자가 삽시간에 줄어들고 있었다.
 시간을 더 끌다간 말짱 도루묵이 된다.
 강철두는 던전의 입구를 향해 총알같이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닷!
 그 순간, 던전으로 향하는 강철두를 발견한 병사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저런 미친! 저 노예가 던전으로 들어가려 한다!”
 삽시간에 던전의 입구를 향해 시선이 확 쏠렸다.
 “저, 저런! 벌레 같은 노예 놈들이 감히 저기가 어디라고 들어가!”
 분개를 견딜 수 없어 하는 외침이었다.
 강철두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던전의 입구를 지척에 두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 던전, 잘 먹을게. 그럼 수고!”
 “저, 저저저!”
 이내, 던전의 입구가 강철두와 노예 소녀를 삼켰다.
 던전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병사들의 허망한 숨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허어, 시X럴······.”
 현재 평화 협정이 맺어진 던전. 꽤나 오래 익어 순도가 높은 던전. 그들이 지난 몇 년간 따분함을 이기며 지켜오던 던전.
 그런 곳에 웬 미친 노예 새끼가 들어가 버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제 놈이 뭐라고 난입을 한단 말인가?
 
 
 Chapter 3
 
 
 그 던전이 어떤 던전인데!
 알폰소의 얼굴이 종이처럼 구겨졌다.
 “그놈이 감히!!”
 던전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을 통해 놈의 생김새를 들은 뒤였다.
 필시 그놈이다.
 그 빌어먹을 개종자가 영주인 자신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던전에 들어선 거다.
 “으아아아! 빌어먹을!”
 그 던전은 대략 2년간 방치되어 있었기에 보물 상자나 다름없었다.
 던전 등급에 맞는 최상의 아이템이 뜰 것이다.
 그 값어치를 생각하니 피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보통의 던전은 몬스터가 리젠되는 24시간을 주기로 끊임없이 클리어된다.
 던전은 몬스터를 생산하고, 기사들은 그것들을 잡고 전리품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던전을 클리어 하지 않게 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이 때문에 인위적으로 던전을 묵혔다가 클리어 하는 영주들도 상당수였다.
 하지만 그래 봐야 몇 달을 채 넘기지 못했고, 지금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2년 묵은 던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알폰소는 즉시 기사단장을 불러 명했다.
 “당장 병력을 소집해서 던전 앞을 단단히 봉쇄해라!!”
 “예. 영주님. 하나,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판단되옵니다.”
 “지금 걱정이 안 되게 생겼느냐?”
 “놈은 아이템마저 걸치지 않은 맨몸이라지요? 결코 그 던전을 클리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다리면, 알아서 몬스터 밥이 될 겁니다.”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기사단장은 단호한 어투였다.
 영지에서 가장 강한 기사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걱정이 조금 달아났다.
 하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소유권 싸움을 하던 제이딘 남작.
 그 녀석이 어찌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던전에 무단 입장한 노예 녀석은 자신의 영토의 범죄자다.
 수배서까지 낸 상태니 빼도 박도 못한다.
 제이딘은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것이다.
 이를 가지고 무슨 꼬투리를 잡아 난리를 피울지 벌써부터 머리통이 지끈거렸다.
 여러모로 그 노예 녀석 때문에 명이 단축되는 기분이다.
 “놈의 시체라도 가지고 와야 할 것이다. 당장 병력을 끌고 던전으로 향해라! 그리고 던전이 다시 열릴 때까지 대기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놈은 아마 1시간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알폰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기사단장도, 강철두가 던전을 클리어 할 가능성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 * *
 
 [751일 동안 방치된 던전입니다.]
 [드랍율이 751% 증가합니다.]
 
 “역시 꽤 오래 방치됐었군.”
 오래 묵을수록 좋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드랍율은 1일에 1%씩 증가한다.
 강철두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노예 소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괜찮을까요?”
 “뭐가?”
 “저희 목숨 말이에요!”
 “왜 ‘저희’냐? 뭐, 너 목숨은 확실히 걱정해야 할 거다. 하지만 난 아니야.”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그리 무서우면 그냥 여기 입구 쪽에서 기다리던가.”
 “윽······.”
 노예 소녀는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강철두의 등 뒤에 얌전히 섰다.
 혼자 있는 건 더 싫었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두는 던전의 전경을 살폈다.
 기다란 동굴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고, 천장에 다닥다닥 붙은 종유석은 일정한 패턴이 있어 마치 샹들리에 같았다.
 높은 등급의 던전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무시할 만한 곳은 못 된다.
 던전은 필드와는 궤를 달리하니까.
 그럼에도 들어온 이유는 승산이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레벨 업 한 번에 엄청난 능력치 상승을 꾀할 수 있으니, 던전을 정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다.
 게다가 드랍율도 +751%이기 때문에 득템을 노려볼 만했다.
 어느새 강철두는 성큼성큼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곳곳에 보이는 반딧불이 같은 놈이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강철두는 유일한 무기인 쇠구슬의 족쇄를 움켜쥐며 전방을 주시했다.
 그때 동굴의 벽을 타고 기괴한 소음이 들려왔다.
 -그그그그극.
 뼈와 뼈가 마찰하는 기분 나쁜 소리.
 이는 스켈레톤 특유의 특징이다.
 동굴의 울림까지 덧입혀지니 곱절은 더 기괴하다.
 “스켈레톤인가.”
 강철두가 중얼거리자 노예 소녀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스켈레톤이요? 정말 그 괴물이 이 앞에 있는 거예요?”
 그녀는 겁보다는 흥미가 동한 아이와 같은 음성이었다.
 하긴, 스켈레톤이 신기하긴 하다.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음에도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언데드는 일반 양민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일 수밖에.
 이내 뼈 소리가 가까워졌다.
 끼긱-
 끼긱-
 스켈레톤이 육안으로 식별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온통 새하얀 뼈로 이루어진 녀석은, 기괴한 각도로 뼈마디를 꺾으며 마치 목각인형처럼 움직였다.
 비주얼만 보자면 개뼈다귀처럼 볼품없기에 한 주먹거리도 안될 것 같다.
 하지만 놈은 엄연한 괴수다.
 보통, 게임에서는 스켈레톤이 최하급 몬스터로 나오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슬라임 수십 마리가 덤벼들어도 스켈레톤 한 마리에 비할 바 못 된다.
 잠시 뒤 놈이 롱소드를 치켜들고 강철두를 향해 내달려오기 시작했다.
 타다닥! 타닥!
 격한 뜀박질로 인해 놈의 뼈마디에서 뼛가루가 흘렀다.
 그 생경한 풍경에 노예 소녀가 비명인지 괴성인지 모를 것을 흘렸고, 강철두는 미소를 지으며 내달려 오는 놈의 면상을 향해 냅다 쇠구슬을 휘둘렀다.
 후웅!
 캉!
 스켈레톤은 롱소드의 검날을 이용해 거뜬히 공격을 막았다.
 강철두는 손아귀가 저려옴을 느꼈다.
 근육도 없는 뼈다귀 주제에 어찌 이리 강한 힘을 낼까.
 신기할 법도 하건만, 강철두는 도리어 익숙하다는 듯 놀라기는커녕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빠각!
 다리를 들어 올려 놈의 무릎을 냅다 찍어 눌렀다.
 놈의 무릎뼈가 기형적으로 뒤틀리며 균형이 단숨에 무너졌다.
 -그극.
 스켈레톤은 당황스러운 비명과 함께 롱소드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후웅! 후웅!
 엄청난 빠르기로 쇄도해 오는 검날에 강철두는 거리를 벌렸다.
 그 잽싼 움직임을 쫓기 위해 스켈레톤이 발을 옮기는 순간.
 으득.
 뒤틀렸던 놈의 한쪽 무릎이 허물어졌다.
 이내 놈은 좀비처럼 바닥을 기며 강철두를 향해 기어왔다.
 “으라압!”
 강철두는 벌렸던 놈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볼 것도 없이 놈의 머리를 쇠구슬로 내리쳤다.
 쩌적!
 골통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 번 내려침, 또다시 내려침, 사정없는 내려침이 이어졌다.
 빠각! 빡! 빡!
 골통이 단숨에 아작나며 스켈레톤의 움직임이 멎었다.
 역시 스켈레톤은 골통을 부숴야 제 맛이다.
 
 [경험치 300 획득!]
 
 나쁘지 않은 경험치다.
 이내 놈의 시체가 빛을 발하며 사라졌다.
 그 위로 전리품이 떠오른다.
 강철두는 모조리 주워 정보를 훑었다.
 
 [이 나간 스켈레톤 롱소드]
 물리 공격력 - 4
 등급 - 일반
 설명 - 별다른 특징 없는 스켈레톤의 롱소드. 검날이 많이 상해 있다.
 
 [최하급 체력 포션]
 효과 - 체력 5% 회복
 등급 - 일반
 
 [스켈레톤의 뼈]
 등급 - 일반
 설명 - 인간의 뼈보다 강도가 높다.
 
 드랍율이 높아서인지 확실히 아이템이 많이 쏟아진다.
 그다지 좋은 아이템은 뜨지 않았기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물론 지금 들고 있는 쇠구슬 나부랭이보단 롱소드가 압도적으로 좋다.
 상대가 제아무리 둔기에 추가 타격을 받는 스켈레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괴수들이 떨구는 아이템은 제아무리 낮은 등급이라 할지라도, 인간들이 만든 검과 방어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방금 얻은 ‘이 나간 스켈레톤 롱소드’를 예로 들어보겠다.
 물리 공격력이 4이다.
 액면 그대로 보자면 이 무슨 후져 터진 공격력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판정은 그렇지 않다.
 현재 강철두의 레벨은 3으로써, 근력 89, 체력 84, 민첩 87의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근력 89가 바로 물리 공격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무런 아이템이 없다면 근력 89만큼의 공격력을 낼 것이다.
 하지만 이 나간 스켈레톤 롱소드를 착용한다면?
 롱소드에 붙은 물리 공격력 4에, 곱하기 근력 89가 된다.
 4x89, 숫자 수치상으론 356의 파괴력을 뿜게 되는 것이다.
 즉, 4+89가 아닌 곱하기이기 때문에 아이템의 중요성은 매우매우 높다.
 심지어 아이템의 공격력 수치가 1.1이라 해도 스텟만 높다면 엄청난 위력을 보이게 된다.
 게다가 강철두의 경우 스텟 괴물이 될 터이니, 아이템과의 시너지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아이템이 중요한 이유이고 스텟이 전부가 아닌 이유이다.
 만일 강철두가 템빨로 밀어붙이는 적을 만난다면, 스텟이 제아무리 높다 한들 고전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아이템이 받쳐준다면 그 어떤 적도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강철두는 쇠구슬을 버리고 ‘이 나간 스켈레톤 롱소드’를 쥐었다.
 손잡이에는 가죽조차 감겨 있지 않았다. 땀이라도 흐르는 날에는 검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모름지기 검이란, 손잡이에 좋은 가죽이 감겨 있어야 한다. 세월이 지나 가죽은 피땀을 머금고 더더욱 끈끈해지며, 손에 익을 대로 익어 종국엔 한 몸처럼 편해진다.
 하지만 현재로써 뭘 바라기는 무리다.
 
 [‘이 나간 스켈레톤 롱소드’를 착용하였습니다.]
 
 즉시 상태창을 열었다.
 
 <강철두>
 레벨: 3
 직업: 용사 (+1)
 [근력 89] [마력 1] [민첩 87] [체력 84]
 물리 공격력: 356
 마법 공격력: 1
 회피력: 54
 방어력: 51
 [미분배 스텟: 0]
 [EXP 300 / 1,000]
 
 물리 공격력은 89에서 356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끼긱-
 끼긱-
 때마침 스켈레톤 한 마리가 더 등장했다.
 강철두는 미소 지었다.
 “한 방에 골로 보내주마.”
 강철두는 여유롭게 놈의 앞으로 걸어갔다.
 거리를 좁힘과 동시에 놈의 골통을 향해 롱소드를 휘둘렀다.
 휘잉-
 스켈레톤은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방어했다.
 하지만······.
 -우득!
 칼을 쥔 놈의 손과 팔이 통째로 나가떨어졌다.
 강철두가 내뿜은 엄청난 파괴력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르륵!
 외팔이가 된 채 무기까지 잃은 스켈레톤은 당황했다. 그 틈을 비집고 강철두의 롱소드가 짓이겨온다.
 빠가가가가가각!!
 단 한방에 스켈레톤의 뼛조각이 공중을 수놓았다.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그야말로 미친 파괴력.
 
 [경험치 300 획득!]
 
 “아주 만족스럽네.”
 강철두는 이 나간 스켈레톤 롱소드의 검신을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잠시 뒤 전리품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역시 롱소드와 최하급 체력 포션과 스켈레톤 뼈가 나왔다.
 이 중 부피가 작은 것은 뼈와 포션이다. 이것들을 주머니에 욱여넣던 강철두가 툴툴댔다.
 “이거, 전리품이 쏟아져도 담을 곳이 없네.”
 전리품은 이제 시작일 텐데, 이걸 다 챙겨갈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러다 그는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손뼉을 딱 쳤다.
 그래! 그게 있었다.
 새롭게 생성된 용사 전용 특수 스킬 말이다.
 
 <특수 스킬>
 1. 아카도르 대륙 공용어 (특수)
 -차원 넘버 ‘00023422118’ 아카도르 대륙 공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2. 용사 전용 아공간 (특수)
 -전혀 다른 차원으로 구성된 공간을 소환합니다.
 
 강철두는 볼 것도 없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자 허공에 검은색 아가리가 크게 벌어졌다.
 노예 소녀는 경악했고, 강철두는 아공간에 고개를 불쑥 넣곤 내부를 살폈다.
 그러다 벙찌고야 말았다.
 “······고층 아파트 몇 채는 들어가겠는데?”
 지난날 지구에서 보았던 주머니 아공간은 장난 수준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아공간이라면, 무한한 가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면, 전리품이 제아무리 많이 쏟아져도 거뜬할 것 같았다.
 막말로 저 안에 마을 하나를 건설해도 될 정도다.
 전리품?
 그런 건 이제 통째로 몰려와도 된다!
 강철두는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지었다.
 
 * * *
 
 스켈레톤의 머리를 20여 개 정도 부쉈고, 레벨은 6이 됐다.
 
 <강철두>
 레벨: 6
 직업: 용사 (+1)
 [근력 188] [마력 1] [민첩 188] [체력 184]
 물리 공격력: 752
 마법 공격력: 1
 회피력: 188
 방어력: 184
 [미분배 스텟: 0]
 [EXP 300 / 4,000]
 
 능력치의 상승은 엄청났다. 거침없이 오르던 물리 공격력은 356에서 752가 되었다.
 공격력 4짜리 무기를 꼈을 뿐인데도 이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상승한 민첩과 체력 근력으로 인해 강철두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요녀석.”
 강철두는 내달려 오는 스켈레톤의 골통을 향해 검지를 뻗었다.
 척!
 나름 강력했던 스켈레톤이 고작 손가락 하나에 저지당한다.
 -그르르!
 놈은 앞으로 돌진하려 했지만, 강철두가 검지에서 뿜어내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강철두는 손가락 하나로 녀석을 너끈히 밀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갔고, 스켈레톤은 밀리기 시작했다.
 “역시 텅 빈 머리통이라는 건가.”
 멍청한 대가리 같으니라고. 그냥 옆으로 비켜서면 될 것을 이겨보겠다고 끝까지 발악이다.
 강철두는 피식 웃더니 손가락을 떼버렸다.
 -그르르르르!!
 기다렸다는 듯, 놈이 발광하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따악!
 굽혀졌던 강철두의 검지가 곧게 펴지며 놈의 이마를 때렸다.
 딱밤이었다.
 빠가가가각!
 -케에에에······!
 단 한방에 놈의 골통에 구멍이 났다.
 이내 녀석의 몸통이 바닥을 향해 형편없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즉사였다.
 
 [경험치 300 획득!]
 
 압도적인 격차다.
 레벨은 3에서 6이 됐을 뿐인데, 뿜어내는 괴력은 300에서 600이 된 꼴이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쫓아오던 노예 소녀는 이제 자기가 더 신나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이 상태라면 클리어도 무리는 아니겠어요!”
 “그렇지. 근데, 아이템은 죄다 뼈다귀뿐이냐. 어휴.”
 하긴 잡 몹에서 뭘 더 바라겠는가.
 이번에도 스켈레톤은 롱소드와 뼈, 체력 포션을 떨궜다.
 높은 드랍율로 인하여 이 3가지는 무조건 떨구는 편이었다.
 본래대로라면 롱소드 한 자루 얻는 것도 힘들다.
 2년 묵은 드랍율이 무섭긴 무섭구나.
 어쨌거나 체력 포션이야 많을수록 좋다.
 그런데 그때.
 “응?”
 빠르게 전리품을 챙기던 강철두가 돌연 눈을 크게 떴다. 전리품은 끝난 줄 알았건만, 조그마한 책 하나가 보였던 것이다.
 책의 겉표지가 거무튀튀했기에 단박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였다.
 그의 표정이 급변하자 노예 소녀가 다급히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이쯤 되면 하나 줄 때도 됐지.”
 “뭐가요? 대체 뭔데요!?”
 강철두는 책을 주워 들었다. 그것의 정체는 스킬북이었다. 즉시 정보를 훑었다.
 
 [스톤 스킨]
 등급-영웅
 조건-치유사
 효과-방어력 상승
 설명-일시적으로 몸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본인을 포함한 타인 발동이 가능한 버프형 스킬입니다.
 
 만족, 만족, 대만족이다!
 방어력을 크게 올려주는 이 스킬은, 지구에서도 보통 비싼 게 아니었다.
 그 증거로 등급을 보라.
 자그마치 ‘영웅’이었다.
 아이템의 등급은 총 5가지로 나뉜다.
 일반, 정예, 영웅, 전설, 신화.
 신화 등급의 경우 강철두조차도 본 적이 없기에 논외로 두겠다.
 전설 등급마저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니 말이다.
 지금 드랍된 ‘스톤 스킨’의 경우 영웅 등급.
 결코 낮은 등급이 아니었으며,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킬북은 더더욱 아니었다. 알폰소와 제이딘 남작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성대에서 피거품이 올라올 때까지 고래고래 악을 내지를 터였다.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어 하겠지.
 강철두는 통쾌하게 웃었다.
 어느새 옆에 있던 노예 소녀도 스킬북에 관심을 보였다. 그녀 또한 정보를 훑더니 몇 마디 내뱉었다.
 “조건이 치유사네요.”
 “응.”
 “배우지 못하시겠어요.”
 그녀는 확신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용사를 돕겠다더니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은 갖추고 있었구나.
 “내가 이 스킬을 왜 배우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오라버니는 척 보아도 치유사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라버니?”
 강철두는 ‘오라버니’라는 말을 곱씹다가 피식 웃었다.
 나쁘지 않은 호칭이다. 매력적인 여자가 그리 불러준다면 더더욱 나쁠 게 없지. 암.
 “그럼 내 직업 특성이 뭐 같냐?”
 “음······ 전사 종류일 것 같네요.”
 전사 종류라.
 그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강철두의 직업 특성은 ‘용사’였으니까.
 용사는 모든 직업을 씹어먹는 극강의 클래스다!
 “보여주지.”
 어느새 강철두는 ‘스톤 스킨’ 스킬북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예 소녀의 표정엔 의문이 가득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녀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고야 말았다.
 스킬북이 증발하며 알림음이 떠올랐다.
 
 [‘스톤 스킨’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즉시 스킬 창을 확인해보았다.
 
 <스킬>
 1. 스톤 스킨
 [등급: 영웅]
 [레벨: F]
 [쿨타임: 1,620초]
 [지속시간: 180초]
 [효과: 방어력 5 상승]
 일정 시간 동안 육체를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방어력을 올려줍니다. 본인을 포함한 타인 발동이 가능한 버프형 스킬입니다.
 
 스킬창에 새로운 기술이 생겼다. 스킬의 레벨은 F.
 이는 차츰 성장할 것이다.
 F에서 SSS레벨까지 말이다.
 물론 녹록한 과정은 아닐 테다. 하지만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스킬 레벨이 올라갈수록 엄청난 기능 상승이 있을 테니까.
 쿨타임이 줄어들고, 지속 시간과 방어력이 증가할 것이다.
 그때, 노예 소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허얼······.”
 빛을 발하며 사라진 스킬북과 강철두를 번갈아 보던 노예 소녀.
 그녀의 눈동자가 천천히 끔뻑댔다.
 그 모습이 퍽 귀엽다. 역시나 꽤 놀란 모양이다.
 “맙소사! 치, 치유사였어요? 어쩜! 하나도 안 어울리잖아요!!”
 그녀는, 요술봉처럼 생긴 마나봉을 들고 사제복을 입은 강철두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눈이 절로 질끈 감긴다.
 근육 빵빵한 치유사라니!
 어찌 이런 일이!?
 “으악! 안 돼!”
 “뭘 상상하는 거냐.”
 강철두는 어이가 없는지 웃고 있었다.
 그녀는 강철두가 모든 직업 스킬을 배울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굳이 오해를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같이 다니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까.
 강철두는 앞으로도 스킬을 배울 테고, 그것들은 여러 클래스의 기술일 터였다.
 용사는 모든 클래스의 스킬을 배울 수 있다.
 이는 굉장한 이점이다.
 홀로 힐과 버프 스킬을 사용하며 딜링까지 해대는 만능형 인간이라니?
 이 무슨 개사기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강철두는 용사 클래스를 날로 얻은 게 아니었다.
 꽤 오래전 이야기다.
 그는 지구에서 ‘가디언’으로 각성했었다.
 각성을 한 것은 14레벨 때였다.
 각성자든, 비각성자든, 모두가 공평하게 레벨을 올릴 수 있다. 괴수를 잡으면 누구나 경험치를 획득하니까.
 그렇다면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차이는 무엇이냐고?
 그건 바로 ‘직업’ 즉 클래스다.
 각성을 하면 치유사, 검사, 마법사, 가디언 등의 직업이 생긴다. 그리되면 해당 직업에 특화된 스킬을 배울 수 있다. 즉,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차이는 ‘스킬’의 유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강철두는 타고난 전투 감각을 발휘하며 빠르게 성장해 나갔으며, 훗날 지구의 마왕을 물리쳤다.
 그때까지도 강철두의 클래스는 ‘가디언’이었다.
 하지만 마왕을 잡고 난 뒤엔 달랐다.
 ‘용사’로 전직할 기회를 얻게 됐으니까.
 세상을 구했으니 그만한 가치의 선물을 받게 된 것이었다.
 강철두는 만능형 클래스인 용사로 전직했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용사는 엄청난 이점이 있는 반면 페널티도 존재한다.
 그 페널티란 바로 경험치의 총량이 ‘20배’로 늘어나는 것이었다.
 일례로, 강철두가 아카도르에 처음 도착했을 때 1레벨 경험치 총량은 100이었다.
 하지만 본래대로라면 5다.
 현재와 비교하자면, 강철두의 레벨은 6이고 필요 경험치는 4,000이다.
 하지만 이 또한 본래대로라면 경험치의 총량은 200이다.
 용사는 강력한 만큼 레벨 업이 느린 것이다.
 반면, 타 클래스는 용사보다 레벨 업이 20배 빠르다고 보면 된다.
 사냥 좀 했다 하는 녀석들이 죄다 100레벨인 이유도 이것이었다.
 대륙에 던전은 굉장히 많았고, 그곳에 입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기사였다.
 영주들은 본인의 기사를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던전을 이용했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기사들의 레벨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는 추세였다.
 강철두의 경우 레벨 올리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명백했지만, 100배 스텟을 보장받는 지금은 ‘단점’이라는 단어조차도 무의미했다.
 비유해보자면 그냥 모기 물린 정도랄까?
 스텟 100배에 타 직업군의 스킬까지 모조리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훗날 새로운 용사의 권능을 얻을 때, 아마 경험치 10배 같은 권능도 존재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또한 F등급부터 SSS까지 급수가 나뉠 테고, SSS등급은 어쩌면 보너스 스텟 100배처럼, 배수가 100일 수도 있다!
 강철두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행복한 상상에 젖어 들어 있었다.
 그러다 돌연 정신을 차리고 입을 뗐다.
 “테스트나 해볼까?”
 현실로 돌아온 강철두는 스톤 스킨을 시전해 보았다.
 [마력이 부족합니다.]
 아차차, 돌이켜보니 그는 여태 마력에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았다.
 하지만 뭐 그깟 게 대수랴?
 다음 레벨 업 때 마력을 50 정도만 올려줘도 스톤 스킨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테다.
 보너스 스텟은 넘쳐날 테니까!
 
 * * *
 
 어느새 던전은 끝자락에 닿아 있었다.
 더는 전진이 불가했으며, 앞에는 칙칙한 묵빛의 문이 하나 보일 뿐이었다.
 그 문에서 심상찮은 기세를 느낀 노예 소녀가 물어왔다.
 “저긴 어디인 거죠?”
 “어디일 거 같냐?”
 “거대한 괴물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요.”
 “틀린 말은 아니지.”
 “저게 도대체 뭔데 그러세요?”
 “보스룸의 입구.”
 드랍율 751%가 적용된 보스.
 분명 뭐라도 하나 떨굴 것이다.
 강철두는 기대 어린 눈을 한 채 보스룸의 문을 열었다.
 
 * * *
 
 제이딘 영주의 두툼한 턱살이 분노로 인해 경련했다.
 “다시 한 번 말해 보아라.”
 “그, 그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남녀가 그 던전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네 이노오오오옴! 그 던전이 어떤 던전인지 모르느냐? 네놈이 진정 돌았느냐?”
 ‘그걸 왜 저한테······.’
 라고 항변하고 싶은 집사였으나, 제이딘의 소불알 같은 성격을 익히 알고 있기에, 닥치고 있는 게 능사임을 알았다.
 제이딘은 끝도 없이 소리를 빼액 질러댔다.
 “뭐어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남녀가 던전에 기어들어가아? 누가! 누군데! 그게 누구냔 말이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문 밖에서 다급한 보고가 쏟아졌다.
 “영주님! 급히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들어와라!”
 들어선 신하는 웬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제이딘은 그 종이를 가만히 들여보다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이건 알폰소 영지의 수배서 아니냐? 이걸 지금 왜 나한테 보여주는 것이냐!”
 “그놈입니다.”
 “뭐가 말이냐?”
 “던전에 입장한 녀석이 바로 그놈입니다.”
 제이딘의 얼굴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알폰소, 그놈 영지의 수배자가 던전에 들어섰다 이거지? 알폰소 그 고얀 놈! 그 더러운 인성으로 던전을 끝끝내 양보하지 않더니만, 결국 이따위 더러운 술수로 나를 농락하려 들어? 필시 이 범죄자와 알폰소가 한패렷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옳지. 그렇지! 내 이럴 게 아니라 당장 병력을 움직여야겠다. 알폰소 그 간악한 녀석이 어찌 나올지 모른다! 지금 당장 던전 앞으로 정예 병력을 보내라!”
 “하, 하면 영주님의 성의 경계가 크게 약해집니다!”
 “네 이노오오옴! 네놈도 알폰소와 한패라고 광고라도 하려는 찰나더냐? 그 던전은 무조건 나의 것이다! 당장 실행치 못할까!!”
 “하지만 영지의 경계가 약화되면 위험합니다. 근래에 들어 귀족 말살 집단인 리버티 캡이 활개를······.”
 “그깟 노예 집단이 뭐가 무섭다고! 잔말 말고 병력을 보내라!”
 “아, 알겠사옵니다!”
 제이딘, 그리고 알폰소, 그들은 각자의 병력을 추려 던전 앞으로 보내고 있었다.
 강철두는 본의 아니게 두 영주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야 말았다.
 
 * * *
 
 [보스룸 입장.]
 
 피부의 솜털을 타고 스산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그르르르르.
 둥근 원형의 방.
 그중앙에 거대한 무언가가 보인다.
 살기의 주인은 바로 저 녀석이리라.
 노예 소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저게 대체 뭐죠······?”
 “스켈레톤 골리앗.”
 그것도 보통 스켈레톤 골리앗이 아니다.
 자그마치 2년 묵은 놈이다.
 강철두는 녀석이 꼬나쥐고 있는 검을 유심히 보았다. 상당한 예리함을 머금고 있다.
 고놈 참, 탐난다.
 스켈레톤 골리앗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거대한 해골 병사인 녀석은 족히 3m는 될 법한 신장을 지녔다. 커다란 골격을 보고 있노라면, 살아생전 오우거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르르······.
 텅 빈 녀석의 눈두덩이에서 새빨간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강철두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녀석을 마주 노려보았다. 놈의 주변엔 뼈다귀가 한가득이었다. 저것이 얼마나 귀찮은지 강철두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귀찮다는 것은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다.
 누군가에겐 목숨이 걸린 문제이겠지.
 그는 노예 소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 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문득 슬라임들을 이용하여 수갑과 족쇄를 풀어낸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리한 여자다.
 하지만 버틸 수 있을까?
 “정신 바짝 차려.”
 “네에엡!”
 뜻밖으로 노예 소녀의 대답은 우렁찼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낄 줄 알며, 이에 겁먹지 않는 강인한 심장을 지녔다.
 생존력이 높다는 거다.
 “단숨에 끝내주마.”
 강철두는 선공을 취하기 위해 롱소드를 뽑았다.
 스르렁.
 단지 검 하나 쥐었을 뿐인데 느껴지는 기세가 180도 뒤바뀌었다.
 심상찮음을 느낀 스켈레톤 골리앗이 피어를 내질렀다.
 -크워어어어어어!!
 그 즉시 바닥에 깔린 뼈들이 움찔대기 시작했다.
 뼈들은 저들끼리 짝을 맞추며 달그락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종국엔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이 되었다.
 -그르르르!
 스켈레톤들이 뼈마디를 꺾으며 강철두를 노려보았다.
 강철두는 쓰레기 보듯 녀석들을 꼬나보았다. 싹 다 치워버려야 한다.
 “분리수거 시간이다.”
 그가 불식간에 움직였다.
 신형이 총알처럼 튀어 나갔고, 그의 검은 창처럼 전방을 겨누고 있었다.
 우지끈!
 가까이에 있던 스켈레톤 한 마리가 꿰뚫렸다.
 그 한 방에 엄청난 파괴력 판정이 떴고, 스켈레톤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경험치 300 획득!]
 
 “썩 꺼져라!”
 방어를 포기한 채 검을 연이어 휘둘렀다.
 후웅! 후웅! 후웅!
 순전히 파괴력만 믿고 한 행동이었다. 저따위 오합지졸 녀석들은 스쳐도 한 방이다.
 으드드드드드드!
 
 [경험치 300 획득!]
 [경험치 300 획득!]
 ······.
 ······.
 [경험치 300 획득!]
 [레벨 업!]
 
 스켈레톤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위로 놈들의 전리품이 수북이 쌓여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스켈레톤 골리앗은 이를 악물고 끊임없이 스켈레톤을 소환했다.
 사력을 다한 소환술 때문이었을까?
 얼마지 않아 보스룸에는 스켈레톤이 개미떼처럼 깔려 버렸다.
 저게 다 경험치가 얼마야?
 엄청난 숫자다.
 그즈음 되자 강철두는 노예 소녀와의 이별을 직감했다.
 자신이야 그저 검 몇 번 휘두르면 되겠지만, 그녀는 아닐 거다.
 ‘제길.’
 그래도 하루 같이 다녔다고 정이 들었나 보다. 용사를 돕겠다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작별인 걸까?
 말은 안 했지만, 이 던전까지 안내해 준 것만으로도 꽤 큰 도움을 준 거다.
 어찌 보면 그녀는 뜻을 이룬 거였다. 용사 강철두에게 도움을 주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스켈레톤이 너무 많이 깔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어느새 강철두는 골리앗을 찾아 눈을 번뜩였다.
 -그르으으으······.
 확실히 거대한 신장이라서 쉽게 눈에 띈다.
 놈은 중앙에서 여전히 스켈레톤 소환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우선은 가만히 두었다.
 놈이 피똥 싸가며 경험치 덩어리들을 뿜어내고 있지 않은가?
 기다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강철두는 덤벼드는 스켈레톤들을 마구잡이로 베어가며 놈을 주시했다.
 
 [경험치 300 획득!]
 [경험치 300 획득!]
 ······.
 ······.
 [경험치 300 획득!]
 [레벨 업!]
 [레벨 업!]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때, 강철두는 그제야 골리앗의 머리를 향해 롱소드를 냅다 던져 버렸다.
 휘이이이익! 콰득!
 -꾸으으으으!
 관통이다.
 놈은 비명을 내지르며 눈두덩이에 박힌 롱소드를 뽑아냈다.
 그러는 동안 강철두는 아공간에서 롱소드 한 자루를 더 꺼냈다.
 그것을 쥐고선 남아 있는 스켈레톤들을 파리떼 쫓듯 후려쳤다.
 우득! 우득!
 스켈레톤들이 빠른 속도로 결딴나기 시작했다.
 푸스스스.
 
 [레벨 업!]
 
 뼛가루가 휘날린다. 하도 양이 많은지라 눈 속에 침투할 정도였다.
 강철두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눈물을 내었다. 대충이나마 시야를 확보한 뒤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다.
 “스켈레톤 다 뽑았냐? 이제 넌 뒈졌다!”
 -그르!
 흰자위가 벌게진 채로 고래고래 악을 내지르는 강철두.
 스켈레톤 골리앗으로선 강철두가 데스 나이트보다 무서워 보였다.
 이제 마력도 서서히 떨어져 간다.
 스켈레톤 골리앗은 더는 소환이 불가능할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이제는 피할 수 없다.
 겁을 줄 요량으로 피어를 내질렀다.
 -크르으으으!
 한데······.
 “크아아아아!”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스켈레톤 골리앗은 마주 괴성을 내지르는 강철두를 보며 뼈를 부르르 떨었다.
 파바바바밧!
 강철두는 빠른 속도로 쇄도해왔다.
 “이놈!”
 -크르!
 지척에 다가온 강철두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크다.
 그도 신장이 큰 편인데, 골리앗 앞에선 비할 바 못 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으라아!!”
 휘이이익!
 강철두의 검이 허공을 찢었다. 찢긴 허공이 채 아물기도 전에 골리앗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엑!
 놈의 어깨뼈에 정타가 들어갔다.
 강철두는 녀석의 체력이 숭덩하고 빠져나갔음을 확신했다. 아무렴, 강철두가 제아무리 똥템으로 무장했다 해도 내뿜은 파괴력은 상당하다.
 “곱게 죽자!”
 연이은 두 번째 공격.
 휘이이익!
 카아아앙!
 이번만큼은 골리앗도 이를 악물고 방어에 임했다.
 검을 쥔 골리앗의 손가락뼈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으드득.
 곧바로 놈의 팔꿈치와 어깨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파괴력에 대항한 결과였다.
 흡사 대포알을 칼 한 자루로 막는 꼴이니, 골리앗의 관절이 무사할 리 없었다.
 “어디 언제까지 막을 수 있나 보자.”
 강철두는 양손으로 검을 꽉 움켜쥔 채 작정하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카득! 카득! 카득!
 채 5방이 끝나기도 전에 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쿠에에에에!
 놈의 뼈마디가 진동하며 팔 하나가 어깨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강철두는 랍스타에 망치질하듯 놈을 서서히 부숴가기 시작했다.
 카득! 카득! 카득!
 -쿠에에······.
 방어만 하던 녀석은 결국 그대로, 비명에 비명을 거듭하다 허물어졌다.
 
 [경험치 3,500 획득!]
 [레벨 업!]
 
 “하아. 요놈 자식.”
 역시 보스라서 경험치가 꽤 크다.
 그러고 보니, 레벨 업을 몇 번이나 한 거지?
 못해도 스켈레톤 수십 마리를 잡았는데 말이다.
 강철두는 피식 웃으며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허물어진 놈의 시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사실, 놈의 방어를 비집고 다른 부위에 정타를 넣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방어를 깨는 손맛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철두는 월척을 낚으려 물고기와 힘겨루기를 하는 낚시꾼처럼, 그렇게 서서히 놈을 함몰시켰던 것이다.
 스르르르르.
 잠시 뒤 놈의 시체가 증발하기 시작했다. 그 위로 전리품이 떠오른다. 그 순간 강철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오호!”
 월척이다.
 꽤 많은 양의 전리품이 쏟아졌고, 역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놈의 검이었다.
 검신에서 옅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저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유니크 등급이로군.”
 강철두의 입술이 시원한 웃음을 그렸다.
 하지만······.
 동시에 씁쓸하기도 했다.
 역시나 노예 소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깐!
 보이지 않는다고? 죽었다면 당연히 시체라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 순간이었다.
 천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 저 좀······!”
 필시 노예 소녀의 목소리였다.
 강철두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우스꽝스럽게 천장 종유석에 매달린 채 낑낑대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이번에도 기지를 발휘하여 살아남은 것 같았다.
 노예 소녀가 연신 울먹이며 부탁했다.
 “저 좀 내려주세요. 흑!”
 강철두는 걸음을 옮겨 천장에 매달려 있는 그녀를 내려주었다.
 몸이 부대끼자 그녀의 가슴이 가쁘게 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생존력이 강하고 두뇌 회전이 제법 빠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모양이다.
 어느새 강철두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그 시선에 노예 소녀가 재촉하지도 않은 답을 내뱉기 시작했다.
 “스켈레톤이 너무 많았다구요. 가만히 있었다면 전 정말로 죽었을 거예요. 그래서 벽을 타고 위에 있는 종유석에 매달려 있었어요.”
 노예 소녀는 볼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억지로나마 웃음 짓고 있었다.
 표정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을 보니, 무서움이 여태 가시지 않았나 보다.
 어느새 강철두는 종유석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스켈레톤은 멍청해서 위에 매달린 그녀를 어쩌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종유석은 미끄러워서 붙잡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물론 이곳에 있는 종유석은 오돌토돌하다. 손으로 꽉 붙잡는다면 어느 정도 저지력이 있었을 거다.
 물론 그렇다 해도 웬만한 힘으론 힘들다.
 이를 통해 증명됐겠지만, 노예 소녀는 마른 몸에 비할 바 안 되는 근력과 악력을 지녔을 터였다.
 거기다가 살고 싶다는 욕망까지 덧입혀졌으니 충분히 매달려 있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역시나 놀랍다.
 스켈레톤이 깔리는 속도는 빨랐고, 노예 소녀는 시간이 촉박했을 거였다.
 위기 상황에 부닥쳐 본 인간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이를테면 내달려 오는 트럭에 몸이 굳는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흔히 드라마에서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주인공을 비추며 클락션을 빵빵 울려댄다.
 하지만 주인공은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고 부딪히고야 만다.
 그런 장면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직면하게 되면 몸이 굳어 버리고야 만다.
 물론 모든 인간이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노예 소녀 또한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녀는 빼곡히 깔린 스켈레톤을 보며 엄청난 위기를 느꼈을 게 뻔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몸을 움직였으며, 나아가 그 급박한 상황에서 종유석에 매달리겠다는 발상을 떠올렸고, 실행했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이는 굉장한 능력이었다.
 강철두는 그녀에게 내렸던 평가를 격상시켰다.
 ‘꽤’ 쓸 만한 여자다.
 
 * * *
 
 대화를 끝마친 강철두는 그제야 스켈레톤 골리앗의 전리품을 줍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확인한 것은 놈의 검이었다.
 
 [스켈레톤 골리앗의 소환 검]
 물리 공격력 - 5.5
 등급 - 정예 (유니크)
 특수 기능 - 공격 시, 25%의 확률로 스켈레톤 소환 (최대 30마리)
 설명 - 스켈레톤 골리앗의 유니크 무기이다.
 
 역시나 쓸 만한 무기를 떨궜다.
 현재 착용 중인 ‘이 나간 스켈레톤 롱소드’의 경우, 물리 공격력이 4이다.
 하지만 골리앗의 검은 5.5다.
 대부분 아이템은 소수점 단위로 위력이 차이 난다.
 따라서 1.5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볼 수 있었다.
 익히 겪어봤듯, 이 정도의 차이만으로도 엄청난 데미지 상승을 꾀할 수 있을 테지.
 이뿐만이 아니다.
 등급이 정예이며, 그중에서도 유니크에 속했다.
 유니크란, 특수한 기능이나 스킬이 붙어 있는 아이템을 지칭한다.
 그 이름답게 스켈레톤을 소환하는 특수 기능이 붙어 있었다.
 확률상으로 보자면 4대의 공격을 가하면 1마리의 스켈레톤이 소환될 거였다.
 최대 30마리의 스켈레톤.
 이는 전투에 상당한 보탬이 될 것이었다.
 마나도 들이지 않고 네크로맨서의 스킬을 사용하는 것과 같으니까.
 역시나 751%의 드랍율 때문인지 유니크 아이템도 떨구고, 꽤 만족스러웠다. 본래대로라면 유니크가 아닌, 일반 스켈레톤 골리앗의 검조차도 보기 힘들 테지.
 강철두는 기존에 착용하던 롱소드를 해제하고 골리앗의 검을 꼈다.
 
 <강철두>
 레벨: 11
 직업: 용사 (+1)
 [근력 188] [마력 1] [민첩 188] [체력 184]
 물리 공격력: 1,034
 마법 공격력: 1
 회피력: 188
 방어력: 184
 [미분배 스텟: 500]
 [EXP 2,100 / 9,200]
 
 물리 공격력은 기존 752에서 1,034로 크게 상승했다. 여기에 조금 전 골리앗을 물리치며 레벨 업까지 했다. 그 횟수가 무려 5번이다.
 미분배 스텟 500개를 마저 투자하면 더 큰 물리 공격력 상승이 있을 거다.
 강철두는 500개의 스텟을 모조리 근력에 투자할까 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무기밖에 구하지 못해서 그렇지, 훗날 장신구와 방어구까지 구한다면 민첩과 체력 또한 엄청난 효율을 낼 것이다.
 그러니 골고루 분배하는 것이 맞다.
 게다가 마력이 필요한 ‘스톤 스킨’스킬까지 생성된 마당이다.
 결국 강철두는 마음속으로 적당한 합의점을 보았다. 물리 공격력 욕심에, 근력에 가장 많은 200포인트, 마력 100, 민첩 100, 체력 100을 투자했다.
 이렇게 되니 근력 스텟은 388이 되었고, 물리 공격력은 2,134로 그야말로 뻥튀기가 되었다.
 지금 이 상태로 골리앗과 다시 대결한다면, 놈이 방어한다 해도 두세 방에 허물어질 것이 분명했다.
 다음 전리품을 확인했다.
 
 [하급 체력 포션]
 효과 - 체력 10% 회복
 등급 - 정예
 
 [스켈레톤의 뼈]
 등급 - 일반
 설명 - 인간의 뼈보다 강도가 높다.
 
 이것들은 죄다 잡템들이었다.
 각각 포션 5개, 뼈10개가 나왔다.
 모조리 아공간에 쑤셔 박아버렸다.
 잡템을 줍는 김에 소환됐었던 스켈레톤들이 떨군 것들도 모조리 주워 담았다.
 이제 마지막 전리품이다.
 
 [스켈레톤의 뼈 갑옷 제조서]
 등급 - 정예
 요구 조건 - 스켈레톤의 뼈 40개, 슬라임의 끈적한 점액 1개
 설명 - 요구 조건을 충족하면 스켈레톤의 뼈 갑옷을 즉시 제조할 수 있다. 이 제조서는 일회성이다.
 
 [방어구 강화석]
 등급 - 정예
 효과 - 기본 방어력 10% 상승
 설명 - 방어구에 가져다 댈 시 성공 확률이 뜬다.
 
 제조서는 마침 잘 됐다.
 현재 강철두의 아공간에는 잡템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이 나간 스켈레톤 롱소드 x 93
 최하급 체력 포션 x 111
 하급 체력 포션 x 5
 스켈레톤의 뼈 x 150
 
 뼈는 충분하다!
 게다가 방어구 강화석까지 나왔다.
 강화석의 경우 굉장히 희귀하다. 지구에선 등급이 높든 낮은 강화석 1개 구하기가 그리도 힘들었다.
 이곳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역시나 2년 묵은 던전인 걸까?
 강철두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뼈 갑옷을 제조하려면 ‘슬라임의 끈적한 점액’ 1개가 필요했다.
 ‘그거 드랍율 별론데.’
 하지만 구할 것이다. 저것만 구하면 방어구를 제조할 수 있으니 말이다.
 뭐, 굳이 슬라임을 잡을 필요도 없을 거다.
 이 던전에서 롱소드를 잔뜩 얻었지 않았나? 이걸 모조리 팔면 꽤 큰돈이 될 테다. 이밖에도 세리 녀석에게 빼앗은 은화까지 있으니 큰 걱정은 없었다.
 점액이 꽤 비싼 편이긴 해도 구매할 수 있을 거다.
 모든 전리품을 챙긴 강철두는 그제야 던전에서 빠져나갈 채비를 했다.
 보스룸에는 새카만 이동 게이트가 생성되어 있었다.
 저것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문임을 안다.
 
 * * *
 
 던전 앞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알폰소와 제이딘의 병사들은 입구를 사수함과 동시에 서로 으르렁대고 있었다.
 두 병력은 당장에라도 전쟁을 치를 태세였다.
 “던전으로 들어간 노예 놈이 죽어서 던전이 활성화되면, 우리가 먼저 진입할 것이다.”
 “허튼소리. 엄밀히 말해서 던전의 입구는 우리 알폰소 남작님의 영토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우리가 먼저 진입할 것이다.”
 “이런 도둑놈들! 듣자 하니. 던전에 들어선 노예 놈이 너희 영지의 범죄자라지? 우리는 너희를 믿을 수 없다. 우리가 먼저 진입한다.”
 두 영토를 걸치고 애매하게 들어선 던전은 여전히 문제였다. 강철두가 들어섬으로 인해서 이 문제가 심화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설마하니 강철두가 던전을 클리어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은 강철두의 죽음을 너무나 당연한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잠시 뒤 벌어진 상황은 정말로 뜻밖이었다.
 지이이이잉.
 닫혀 있던 던전의 입구를 비집고 누군가가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워, 많이도 모여 있네.”
 “네, 네놈은!? 도대체 어떻게!?”
 병사들의 시선이 단박에 쏠렸다.
 던전 입구에서 튀어나온 녀석은 다름 아닌 강철두였던 것이다.
 병사들은 강철두가 어깨에 걸치고 있는 빛나는 검을 바라보며 경악을 토해냈다.
 “유니크?!”
 마법적 스킬이 붙은 유니크 아이템은 보통 보기 드문 게 아니었다.
 일반, 정예, 영웅 아이템은 있어도, 여기에 유니크가 추가된 아이템은 정말로 드물었다.
 유니크 아이템에 어떠한 스킬이 붙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스킬 하나로 인해 듀얼 클래스의 위력을 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드, 등급은 당연히 일반이겠지??”
 “정예인데?”
 강철두는 어깨를 으쓱이며 숨김없이 말했다.
 병사들의 눈동자에 탐욕이 끓어 넘쳤다.
 “나머지 전리품은 주머니에 있는가? 도대체 어떻게 던전을 클리어 했는진 모르겠다만, 네놈의 무덤은 이곳이 될 것이다.”
 “아아, 뭐, 그거야 붙어 보기 전엔 모르지.”
 굉장한 자신감.
 저 노예는 필시, 던전에 입장할 때만 하더라도 오크들을 끌고 온 뒤 얍삽한 수를 썼었다.
 이는 다시 말해, 강자는 아니란 소리다.
 한데 저 자신감은 뭔가?
 던전 한 바퀴 돌더니만, 온 세상이 제 놈 것인 줄 아는 건가?
 병사들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으나, 금세 표정을 고쳤다. 제아무리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보아도, 이 많은 병력 앞에서 놈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저 안에서 레벨을 올려봐야 얼마나 올렸겠으며, 스텟은 또 몇 개나 올렸겠는가?
 필시 얼마 되지 않을 거다.
 그런데도 강철두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있었다.
 “덤벼.”
 그는 눈앞에 깔린 백여 명의 병력을 상대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Chapter 4
 
 
 100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칼을 빼 드는 장면은 나름 장관이었다.
 츠르렁, 츠르렁
 칼집에서 칼이 뽑히는 소리가 들리자 몸의 근육이 본능적으로 요동쳤다.
 강철두는 놈들을 쭈욱 훑다가 스톤 스킨을 시전했다. 몸에서 푸른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스톤 스킨’ 스킬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3분간 방어력 5 상승.]
 
 마력이 체감될 정도로 빠져나가며 방어가 올랐다.
 이 또한 공격력과 마찬가지로 곱연산의 보정을 받는다.
 강철두는 상태창을 열고선 슬쩍 보았다.
 
 <강철두>
 레벨: 11
 직업: 용사 (+1)
 [근력 388] [마력 101] [민첩 288] [체력 284]
 물리 공격력: 2,134
 마법 공격력: 101
 회피력: 288
 방어력: 1,420 (179초)
 [미분배 스텟: 0]
 [EXP 2,100 / 9,200]
 
 방어력이 284에서 1,420으로 뛰어올라 있었다.
 엄청난 수치였으나, 강철두를 지켜보던 병사들은 그를 비웃기 바빴다.
 “뭐야 네놈, 치유사였나?”
 필시 ‘스톤 스킨’스킬을 시전했다.
 그 스킬은 치유사만 배울 수 있다.
 만에 하나 유니크 검에 붙은 능력일 수도 있겠으나, 스톤 스킨 같은 고위급 스킬이 붙어 있는 검이 어디 흔한가?
 그러니, 필시 치유사가 분명했다.
 병사들의 얼굴은 더더욱 여유롭게 변했다.
 “기사들 뒤에 숨어서 계집년처럼 회복 마법이나 걸어줄 것이지, 네 이놈! 감히 이 많은 병력 앞에서 허세를 부려?”
 이 순간, 제이딘과 알폰소의 병사들은 한마음 한뜻을 품게 되었다.
 저 버르장머리 없는 노예 녀석에게 단단히 매운맛을 보여주는 거다.
 당장에 잡아다가 포박하여, 신체를 야금야금 뜯어내며 고통을 주다가 괴수 밥으로 내던져 버리리라!
 마음이 급했던 병사 한 녀석이 우렁찬 기합을 내지르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혼꾸멍을 내주마!!”
 “흠.”
 강철두는 딱한 시선으로 병사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휘잉!
 “어, 어!?”
 병사는 당황했다.
 강철두와의 거리가 제법 됐었는데, 어느새 지척에 와 있다. 그것도 모자라 강철두의 검이 자신을 쪼갤 듯 떨어져 내린다.
 죽음이 코앞으로 당도하면 시간이 느려진다 하던가?
 아, 그 말은 사실이었다.
 쓰륵!
 검은 정확히 병사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키이!?”
 병사는 괴상한 숨소리를 내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몸은 석상처럼 굳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촤아아아아!
 병사의 몸이 잘 익은 수박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피가 터져 나오며 허공을 적셨고, 무거운 내장은 곧바로 추락하더니 땅바닥을 적셨다.
 그야말로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강철두가 싸늘한 경고를 날렸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녀석은 굳이 잡지 않겠다. 다만, 내가 여기서 한 발짝 움직인 뒤에, 그 이후에 남아 있는 녀석들에겐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다.”
 병사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니, 분명 치유사인 줄 알았건만 일도에 양단하는 솜씨가 일류다.
 그렇다면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었던, 저 유니크 검이 스톤 스킨의 기능을 품고 있었던 걸까?
 그들이 착각하고 있던 그때, 강철두의 검이 빛나더니 스켈레톤 한 마리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25% 확률인 유니크 기능이 발동된 거였다.
 “뭐, 뭐야!? 이번엔 네크로맨서의 스킬을? 저놈 도대체 클래스가 뭐야!?”
 “치유사일 것 같다. 스켈레톤 소환은 유니크 검을 통해서 발현된 것이고.”
 “그렇다면 저 극강의 파괴력을 뿜어내는 쾌검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으아아아아! 네놈!! 도대체 정체가 뭐냐!?”
 강철두는 대답 대신 한 발짝 움직였다.
 그제야 입술을 열었다.
 “경고는 끝났어. 이제 자비는 없을 거다.”
 쐐애애앵!
 그의 신형이 번쩍였다.
 착각이 아니다.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의 스피드로 인한 현상이었다.
 촤아아아아!
 적진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피 분수가 터졌다.
 정확한 일검이었고, 재빠른 쾌검이었다.
 도대체 근력, 민첩 스텟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이런 무지막지한 검술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변방 시골 남작의 병사인 그들로서는,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 이쪽이다! 이쪽에······ 크악!”
 희생자가 발생한 순간, 그제야 병사들은 강철두의 위치를 파악했다.
 “달려들어!!”
 “X바아아알!!”
 “으라아아아!!”
 전신을 가득 메우는 두려움을 날리기 위해 욕설을 토해낸다.
 나름대로 대련과 전투의 경력이 있는 그들은 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기합은 곧 기세이며 힘이고 용기였다.
 카아아아아앙!
 강철두가 서 있는 곳을 향해 수십 자루의 검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며 불똥이 튀었다.
 강철두는 그 모든 공격을 일검에 막아냈다.
 “크아아아아!!”
 기합을 토해냄과 동시에 검을 쥔 손에 온 힘을 주었다.
 그의 근육이 터져 나갈 듯 팽창하며 반질반질한 땀을 토해냈다.
 카가가가가각!!
 강철두는 짓이겨 오는 수십 자루의 검을 불도저처럼 밀어버렸다.
 병사들은 강철두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리거나 발라당 자빠졌다.
 그 사이 또다시 스켈레톤이 소환되었고, 스켈레톤은 쓰러진 병사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크아악!”
 “X버어얼!!”
 고통과 악에 찬 비명이 난무한다. 강철두는 적들의 피를 잔뜩 끼얹은 채로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쐐애애애액!
 막는 병사, 피하는 병사, 뒤로 돌아 도주하려는 병사, 모두가 일검에 숨을 거뒀다.
 병력의 숫자는 삽시간에 줄어들었고, 그와 반대로 강철두의 스켈레톤 군단은 늘어갔다.
 -키에에에엑!
 족히 스무 마리는 되어보이는 스켈레톤이 무기를 휘두르며 병사들을 압박해 나갔다.
 강철두는 점차 전투가 수월해짐을 느꼈다.
 상대의 모든 수를 몰아내어 종국엔 잡아먹고 마는 바둑처럼, 그렇게 정확하고 빠르게 놈들을 물리쳤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병사의 목을 베고는, 그제야 쿵쾅대는 심장과 호흡을 놓아주었다.
 “하아. 하아. 하아.”
 그래, 자그마치 100:1이었다.
 숨조차 아껴가며 쾌검을 퍼부었으니, 그간 참았던 호흡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스톤 스킨의 지속시간인 3분을 넘기지 않기 위해 빠른 검술을 사용한 것도 있었다.
 “그냥 경고했을 때 가면 좀 좋아?”
 강철두는 툴툴대며 롱소드에 붙은 피를 닦기 위해 흙을 뿌렸다.
 그리고 그때, 던전의 입구가 또 한 번 울렸다.
 지이이이잉.
 노예 소녀가 나왔다.
 “오라버니 말씀대로 5분 뒤에 나왔어요! 저 잘했······ 아니, 으악!”
 그녀는 시체를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이미 예상했던 바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크게 놀라는 거 같진 않았다. 이건 마치, 깜짝 놀라서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다 랄까?
 무섭다거나, 징그럽다거나, 혐오스러워서 내뱉는 비명이 아니었다.
 “시체를 처음 보는 게 아닌가 보네.”
 “아, 뭐······ 그렇죠. 허구한 날 귀족의 병사들에게 얻어터져 죽는 게 노예들이니까요.”
 그녀의 눈빛은 의외로 차분하고 차가웠다.
 신분 특성상, 그녀는 귀족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도 시달렸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자,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한다.
 강철두는 노예 소녀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가만있어 보자. 내가 그걸 어디에 뒀더라?”
 어느새 강철두는 아공간을 열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얼마지 않아 그가 아공간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의 정체는 바로 수배서였다.
 강철두 본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수배서.
 
 <하실데르 영지 수배서>
 이름: 알 수 없음.
 나이: 25~30세 추정.
 성별: 男
 신체 사항: 185~190cm 장신의 근육질.
 특이 사항: 리버티 캡의 단원일 가능성이 높음.
 현상금: 5골드.
 죄목:
 1. 세리 폭행.
 2. 영지병 폭행.
 3. 노예상 폭행.
 4. 영지 세금 탈취.
 5. 노예 탈취.
 
 강철두는 쪼그려 앉았다.
 그러곤 검지 끝에 적들의 피를 묻혔다. 그런 다음 수배서 아래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내 수배서 수정해놓아라. 이름은 강철두, 나이는 서른다섯이다.
 나는 영주 네놈의 던전을 통째로 털어먹고, 정확히 101명의 병사를 죽였다. 이 부분 정확히 참고해서 추가해라. 수정 제대로 안 하면 죽는다.>
 
 ps. 아이템은 유니크 정예 검과 강화석, 갑옷 제조서를 비롯해 온갖 것들이 나왔다. 잘 먹고 간다.
 
 작성을 끝낸 강철두는 그것을 병사들의 시체 한복판에 내던져놓았다.
 아마, 조사를 올 테고 이 수배서를 발견하게 될 거다.
 그래, 이건 명백한 도전장이었다.
 건들면 죽여 버리겠다는 뜻이었으며, 대륙에서 제일가는 악당이 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이로써, 세계의 적이 되어 악한 영웅이 되겠다는 강철두의 목표는 한 발짝 가까워졌다.
 원하는 건 마왕의 수정구일 뿐, 아카도르에서의 명성 따윈 개뿔도 필요 없다.
 마왕을 잡지도 못할 거면서 보물 창고에 유니크 아이템을 쟁여놓는 귀족, 그리고 왕족들.
 그 고귀하신 새끼들이 꿍쳐놓은 아이템을 강탈할 시간이다.
 악한 영웅이 되겠다.
 다만, 네놈들이 두려워하는 마왕은 잡아주마.
 
 * * *
 
 수배서를 쥐고 있는 알폰소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 이이익!!!”
 황당과 경악, 그리고 분노.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얼굴은 그러한 감정들로 범벅이 된 채였다.
 눈을 씻고 몇 번이나 수배서에 적혀 있는 글귀를 봤는지 모른다.
 
 <내 수배서 수정해놓아라. 이름은 강철두, 나이는 서른다섯이다.
 나는 영주 네놈의 던전을 통째로 털어먹고, 정확히 101명의 병사를 죽였다. 이 부분 정확히 참고해서 추가해라. 수정 제대로 안 하면 죽는다.>
 
 ps. 아이템은 유니크 정예 검과 강화석, 갑옷 제조서를 비롯해 온갖 것들이 나왔다. 잘 먹고 간다.
 
 “크아아아아아!! 이, 이 빌어먹을 노예 놈이!! 감히이이이!!”
 결국 그는 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발광하고야 말았다.
 주변 신하들은 안절부절 못하는 모양새였고, 그의 분노는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놈의 던전 클리어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지금 상황을 보라.
 본인을 강철두라고 밝힌 이 개종자 녀석은 제 놈이 제 죄를 알렸다.
 아니,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뭐 이런 또라이가 다 있지?
 이건 마치 현상금을 올리고 싶어 안달이 난 녀석처럼 보이지 않는가?
 세상에 별의별 미친놈 다 있다지만 이 녀석은 그중에서도 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지의 자금이 바닥이다.
 한데 이 녀석은 마치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제 놈이 획득한 아이템 목록까지 적어놓았다.
 감히 노예 따위가 고귀한 귀족을 우롱해?
 정말이지, 알폰소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대가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 분노를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던전의 소유권 문제로 다투던 제이딘 녀석도 발광을 떨어댈 것이 뻔했다.
 웬 정신병자 같은 노예 놈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개판이다.
 이대론 화병이 나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오냐! 더러운 노예 새끼, 네놈 뜻대로 수배서를 격상시켜주마!”
 왠지 놈의 뜻대로 놀아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넘어갈 문제는 절대 아니다.
 알폰소는 사과처럼 붉어진 얼굴로 이를 갈고 있었다.
 
 * * *
 
 강철두와 노예 소녀는 산속 오크 부락으로 왔다.
 이곳의 오크들은 모조리 던전 앞으로 유인했던 터라 남아 있지 않았다.
 강철두는 오크들이 잡아놓았던 사슴을 도축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뿔을 잘라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녹용은 몸에 좋다.
 “너도 먹어볼래?”
 강철두는 뿔을 얇게 포 떠서 노예 소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별다른 거리낌 없이 받아먹었다.
 그녀가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영주를 너무 자극하는 거 아니에요?”
 “재밌잖아. 그놈 아마 울화통 터져서 미치기 일보 직전일걸?”
 강철두는 이러한 도발이 익숙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러면 더 위험해지는 거잖아요.”
 “글쎄? 내가 하나 알려주지. 나쁜 놈을 ‘빨리’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아냐?”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그녀의 눈동자가 금세 초롱초롱해졌다.
 “나쁜 놈보다 더 나빠지는 거야.”
 “그건 나쁜 거잖아요.”
 “나쁜 놈을 잡았으니 나쁜 건 아니지.”
 강철두는 귀족을, 나아가 마왕을 잡는 목표를 상기하며, 그렇게 말을 마쳤다.
 문득 이 상황이 재밌다.
 대륙 최강의 흉악범이 된 뒤, 이곳의 마왕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그건 참으로 묘한 일이겠지?
 과연 대륙의 인간들은 강철두를 어떻게 볼까?
 좋아할까?
 싫어할까?
 아니, 그딴 건 중요치 않다.
 어차피 세상을 관통하는 불변의 진리는 하나다.
 선한 용사로 남든, 악한 용사로 남든.
 모두가 그를 좋아할 순 없는 거다.
 지구에서조차 모두가 그를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모두가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래,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타닥. 타닥.
 어느새 사슴 고기가 맛깔나게 익었다.
 강철두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기를 입속에 구겨 넣었다.
 맛이 제법이다.
 그때, 하늘 위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꽤액. 꽤액.
 노예 소녀가 고개를 들더니 괴성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특이한 외형의 새였다. 그녀는 알은 채 했다.
 “에어 버드네요.”
 에어 버드,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새였다.
 놈의 배속에는 거대한 공기주머니가 있다.
 -꾸엑! 꾸엑!
 잠시 뒤 에어 버드는 무언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륵!
 그러자 공중에서 수십 장의 종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바람을 타고 낙엽처럼 흔들리더니 결국 바닥에 추락했다.
 “수배서네요.”
 수배서? 순간 강철두는 저것이 격상된 자신의 수배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뒤 들려온 노예 소녀의 설명으로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에어 버드까지 동원할 정도의 수배서라면, 세계의 적, 대륙 수배범의 수배서이겠네요.”
 아아, 이곳에선 에어 버드를 이용해 수배서를 뿌리나? 지구에서 에어 버드는 그냥 ‘독특한 새’ 정도로 통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저렇게 이용하는구나.
 가만, 이건 마치 북한이 풍선으로 삐라를 뿌리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어느새 강철두는 떨어진 수배서들을 바라보았다.
 가만 보니, 모조리 한 녀석의 수배서였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길래 이리도 대량 투하되는 걸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한 장 주워 훑어보았다.
 
 <아카도르 대륙 수배서>
 이름: 리버티 폭스.
 나이: 알 수 없음.
 특이 사항:
 1. 귀족 말살 집단 리버티 캡의 수장.
 2. 흰색 여우 가면을 착용하고 다님.
 현상금: 51,000골드.
 죄목: 다수의 귀족 살해.
 
 아아, 언젠가 노예 소녀를 통해 들은 적 있었다.
 현재 대륙에서 가장 핫한 수배범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귀족을 말살하겠다고 발광해 대는 녀석이라나 뭐라나.
 그나저나 현상금이 눈에 띈다. 현재 자신이 5골드이니, 족히 1만 배는 차이 난다.
 강철두는 일전에 여관에서 먹었던 밥값을 떠올리며 이곳 돈의 가치를 가늠해 보았다.
 계산해 보니, 대충 이곳의 1골드가 한국의 돈으론 10만 원 정도 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51,000골드는 51억이라는 소리다.
 “보통 놈이 아닌가 보네.”
 도대체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해야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경쟁의식을 느꼈다.
 뭐, 귀족들을 죽였다 이건가?
 그렇다면 얼마나 강할까?
 아카도르 대륙의 영웅들이야 형편없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용사로 전직도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왕을 잡아야 그 대가로 주어지는 게 ‘용사 전직’ 아닌가?
 놈들은 마왕을 잡기는커녕 얼마 버티지도 못하기 일쑤였다.
 아카도르의 인간들은 ‘용사’라는 클래스가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를 테지.
 하긴, 지구에서도 강철두밖에 모르는 사실이긴 했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용사로 전직했음을 밝히지 않았으니까.
 그런 의미로 보자면, 모든 클래스의 스킬을 난사하는 자신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질서였다.
 다 됐고, 이곳의 수준은 과거 지구의 강철두 기준으로는 모조리 한심한 놈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노예 소녀에게 물었다.
 “이 녀석, 강해?”
 “네. 무척이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마왕에게 필적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낭설일 것 같은데. 정말 그렇다면 왜 여태 마왕을 잡지 않고 있는 건데?”
 마왕의 수정구로도 이 녀석은 본 적 없다.
 “폭스가 말했죠. 마왕에게 도전하는 영웅들은 모조리 귀족 출신이고, 마왕이야말로 이 시대의 정의라고.”
 그러니까, 마왕이 본의 아니게 귀족들을 죽이고 있으니, 마왕은 정의라는 건가?
 이놈, 보통 또라이가 아니구나.
 귀족에 대한 원한이 장난 아닌 녀석이 분명하다.
 이 녀석 면상이나 한번 보고 싶었다.
 정말 마왕만큼 강한지도 궁금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느새 강철두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덩달아 일어선 소녀가 물었다.
 “어디로 가요?”
 “음, 잠시만.”
 강철두는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런 뒤 손뼉을 쳤다.
 침은 동쪽으로 튀었다.
 “동쪽이 알폰소냐 제이딘이냐?”
 “······알폰소요.”
 “알폰소네 성으로 가자.”
 “겨우 침 튀기는 곳으로 목표를 정하는 거예요?”
 노예 소녀는 황당하다는 투였다.
 강철두는 피식 웃었다.
 “너는 칠면조 먹을 때 다리부터 먹을까 날개부터 먹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냐?”
 “네?”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 어차피 다 먹을 거니까.”
 “아······ 다, 다 먹는······.”
 “그래. 어차피 다 먹을 거야. 침 튀기는 건,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라고.”
 묘하게 설득력 있다.
 어느새 노예 소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 * *
 
 알폰소 영주의 성은 지구의 건물로 치면 5층 빌라 정도의 크기다.
 성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외벽과, 튼튼한 흉벽은 더없이 든든해 보였다. 이곳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도개교를 건너야 했다.
 도개교 아래에는 끈적한 물이 차 있는 해자가 있었으며,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더없이 늠름해 보였다.
 그 누구의 침입도 불허할 것만 같은 이곳에서 굉음이 터져 나온 건, 해 질 녘이었다.
 콰직! 콰직! 콰직!
 도개교의 끄트머리에 웬 정신 나간 놈이 보였다.
 녀석은 도개교를 파괴할 작정인지 무차별적으로 칼을 내려찍고 있었다.
 “저, 저 새끼 뭐야?”
 “야야야! 저러다 다리 무너지겠다! 저거 도대체 뭐야? 괴물이야!?”
 “뿔피리부터 불어!! 비상이다!!”
 뿌우우우우우우우.
 경보가 울리자 도개교를 파괴하던 사내는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콰직!
 쿠루루루루루루!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도개교가 무너져 내렸다.
 무너져 내린 도개교 아래에, 물을 채워놓은 도랑인 해자가 내려다보였다.
 성의 입구에 서 있던 병사들은 저만치 앞에 있는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야이 미친 새끼야! 너 뭐야!?”
 다리가 끊겼기에 놈이 있는 곳까지 돌진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성에 고립된 모양새랄까?
 그 덕에 저 미친놈이 줄행랑치면 쫓지도 못하게 생겼다.
 “그러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네놈의 간덩이가 부은 게 분명하렷다!”
 “······.”
 침묵을 고수하던 사내가 돌연 기다란 장대를 주워들었다.
 그는 멀리뛰기 선수처럼 도움닫기를 했다.
 후우우웅!
 곧바로 장대를 바닥에 처박고 무너진 도개교를 건넜다.
 당연히 도주할 줄 알았던 사내가, 단숨에 병사들의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병사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내가 검지를 치켜들고 말했다.
 “알폰소 안에 있냐?”
 “이런 개자식이 미쳤나!?”
 “자, 잠깐······ 저 자식?”
 당황하던 병사들은 오래지 않아 사내의 얼굴을 알아봤다.
 필시 그놈이다.
 근래에 알폰소 남작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고 있는 그 노예 놈.
 이름이 아마······.
 “가, 강철두!?”
 “도개교를 부숴놓았으니 쉽게 도망칠 수 없을 거다. 나는 알폰소를 보러 왔다. 안내해.”
 “이, 이익!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뭐해! 놈을 잡아!”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강철두를 향해 뛰어들었다.
 강철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검을 고쳐 쥐었다.
 
 * * *
 
 양초 하나로 너끈히 밝아질 만큼 자그마한 골방.
 이곳에 후줄근한 차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귀족 말살 집단, 리버티 캡의 단원들이었다.
 노예와 평민으로 이루어진 리버티 캡, 그들은 귀족들에게 대항하며 거세게 맞서는 집단이었다.
 근래에 들어 귀족들의 강한 탄압으로 인해 음지에 숨어들어 발톱을 감추고 있던 차였다.
 “오늘 밤 치기로 했던 제이딘과 알폰소의 영지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은 모두 접했겠지?”
 “듣기론 각기 50여 명의 병사를 잃고, 묵혀놓았던 던전까지 빼앗겨 정신적인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판단되네만.”
 “지방에 있던 우리의 또 다른 단원들이 나선 것입니까?”
 누군가가 묻자, 중앙에 앉아 있던 사내가 고개를 내저으며 덧붙였다.
 “우리 단원은 아닐 걸세. 게다가 한 명이라더군.”
 “예? 한 명이요? 도대체 누가?”
 모두가 궁금증을 표하자, 사내는 바닥에 수배서 한 장을 내려놓았다.
 수배서에는 강인한 인상의 남자가 그려져 있었고, 상당한 근육질인 것으로 보였다.
 처음 보는 자다.
 “확실히 우리 단원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누구입니까?”
 “듣기론 뤼올 산에서 노예들을 구하고, 악랄한 알폰소 남작에게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다더군.”
 “대단한 남자로군요.”
 “지금 그는 단신으로 알폰소 영지에 쳐들어갔다.”
 “허어!”
 모두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러기도 잠시, 누군가 의문을 표했다.
 “하면, 오늘 알폰소와 제이딘을 치기로 한 것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예정대로 진행합니까?”
 “아니, 우리는 철수한다.”
 “어째서입니까?”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 폭스님께서 직접 나섰으니까.”
 리버티 캡의 지도자가 직접 나서다니?
 혹, 알폰소의 영지로 쳐들어간 사내에게 관심이라도 생긴 걸까?
 어쩌면 스카우트 제의를 위해 직접 움직인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늘 그들의 생각을 비껴가는 폭스였기에, 어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시골 변방의 괴팍한 영주들은, 오늘 세상을 하직하겠군요.”
 극강의 무력을 지닌 폭스와 떠오르는 신흥 강자인 노예 사내.
 남작들의 앞날은 불 보듯 뻔했다.
 “마음 같아선 폭스님과 합류하고 싶으나, 도리어 방해만 되겠지요?”
 “당연한 말을. 우리는 다음 타켓을 정하고 폭스님의 지시를 기다리면 될 것이네.”
 모두의 얼굴엔 무한한 신뢰와 존경이 담겨 있었다.
 리버티 폭스.
 그를 두고 세인들은 말했다.
 귀족 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뜻을 품고 있는 오만한 살인자.
 완벽에 가까운 살인자.
 그리고 감정이 없는 괴물, 이라고.
 하지만 리버티 캡에게 있어 폭스란, 신 그 이상이었다.
 
 * * *
 
 성벽 위 보도에 길게 늘어선 궁수의 활시위는 한곳을 향해 있었다.
 “발사아아!!”
 궁수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살이 쏟아진다.
 파바바바바밧!
 “아오.”
 강철두는 날아드는 화살을 피하며 덤벼드는 창병을 때려눕혔다.
 장거리 공격 스킬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건 뭐 파리 떼를 상대하는 것처럼 성가시다.
 결국 강철두는 병사들을 무시한 채 성의 입구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놈 잡아라!”
 “절대 놓쳐선 안 될 것이다!”
 “호위대는 들어라! 성내에 계신 영주님을 보호하라!”
 파바바바밧!
 강철두가 마음먹고 뛰자, 잡기는커녕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였다.
 휘이이이이잉!
 총알같이 튀어나가는 그의 뒤로 강한 바람이 일 정도였다.
 단숨에 입구에 닿은 강철두는 굳게 닫힌 철문을 냅다 발로 깠다.
 콰드드드득!
 두꺼운 철문이 일격에 휘어졌다. 벌어진 틈을 비집고 강철두가 성으로 진입했다.
 “제, 젠장! 놈이 들어가 버렸다!”
 “모두 놈을 쫓아!”
 하지만 그들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강철두는 들어섬과 동시에 철문을 다시금 발로 차버렸고,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철문은 설령 쥐새끼라 해도 진입이 불가할 것 같았다.
 병사들은 하는 수 없이 흉벽 위로 사다리를 올렸다. 그런 뒤 진입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강철두는 눈에 불을 켜고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알폰소! 어딨냐!”
 청각에 모든 집중을 하던 강철두가 돌연 멈춰섰다.
 “위인가.”
 그는 단숨에 계단을 타고 올라서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침실에 숨어 있는 알폰소를 발견했다. 기사 한 놈이 알폰소를 보호하고 있었다.
 기사는 롱스드를 치켜든 채 강철두를 겨눴다.
 “이 녀석, 감히!”
 “뭐 인마.”
 짧게 일축한 강철두의 신형이 번쩍였다.
 휘릭!
 바람이 일었고, 강철두는 어느새 기사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커, 커어어어!”
 기사는 교수형에 처한 죄수처럼 온몸을 바르작거렸다.
 이내 강철두는 놈을 들었다가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어 버렸다.
 콰지지지직!
 바닥에 금이 가며 기사의 뼈가 아작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즈음 되자 알폰소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네, 네, 네 이노오오옴!”
 알폰소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소리를 내질렀다.
 한데도 강철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강철두는 잠시 침묵하더니 알폰소의 책상에 놓여 있는 양피지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거 내 수배서네. 수정하고 있었냐?”
 “썩 꺼지지 못할까아아!!”
 퍽!
 강철두는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며 알폰소의 복부를 걷어차 버렸다.
 “케에엑!”
 알폰소는 숨이 막혀오는지 눈을 시뻘겋게 뜬 채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심심하다며 노예들을 패보기나 해봤지 맞아본 적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다시 물을게. 내 수배서 수정하고 있었냐?”
 알폰소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 현상금을 30골드로 수정하고 있었네.”
 “크으으······ 그, 그렇다. 그 정도의 금액이라면 현상금 사냥꾼들이 눈에 불을 켜고 네놈을 쫓을 테지. 불쌍한 녀석. 네놈의 미래는 없다.”
 알폰소는 눈을 치켜뜨며 더러운 노예 녀석을 쏘아보았다.
 이 노예 녀석은 30골드라는 거금에 잔뜩 얼어붙을 게 분명할 터였다.
 제 놈 목에 그 큰 현상금이 걸렸으니, 이제 얼마 못 살겠구나 싶겠지.
 하지만 후회해도 늦었다.
 알폰소는 고통 속에서도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고, 던전에서 얻어낸 전리품을 나에게 준다면 현상금을 낮춰주마.”
 알폰소는 강철두에게 꿀 같은 제안을 건넸다.
 그런데도 강철두는 귀를 후비적대고 있을 뿐이었다.
 “너,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잠시 말을 끊은 강철두가 쪼그려 앉으며 알폰소와 눈높이를 맞췄다. 이내 알폰소의 귓가로, 예상 밖의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 현상금 올리려고 여기 쳐들어온 거야.”
 “뭐, 뭐라······?”
 현상금을 올리기 위해 쳐들어왔다고?
 알폰소 남작은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이 무슨 미친놈인가 싶었다.
 아니, 세상천지 어떤 인간이 제 놈의 현상금을 올리려고 발악을 한단 말인가?
 보통의 범죄는 그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게끔 몰래 이루어진다.
 그래야 잡히지 않을 거 아닌가?
 한데 이놈은 대놓고 이러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며, 무슨 자신감일까?
 황당함에 고통마저 가실 정도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두는 제 놈 하고 싶은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이템과 재물은 어디에 있냐?”
 “도대체 나에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
 “말 돌리지 마. 시간 끌 때마다 이빨을 하나씩 뽑을 거다.”
 그러면서 강철두는 손가락을 하나씩 굽히기 시작했다.
 “······.”
 1초, 2초, 시간이 흐른다.
 알폰소 남작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이거,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렸다.
 상식이 있어야 협상이라도 할 거 아닌가?
 하지만 이 노예를 보라!
 협상이고 나발이고 없다.
 이놈은 그야말로 미친개였다.
 
 * * *
 
 “으게에겔에에.”
 치아가 뭉텅이로 빠져나간 알폰소는 대자로 뻗어 있었다.
 옆에 있던 강철두는 목각 금고를 흡족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즉에 줄 것이지, 꼭 반병신이 되어야만 했냐?”
 제 놈이 반병신으로 만들어놓고도 당당한 어조였다.
 알폰소 남작은 대답할 기운도 없는 듯, 그저 망연히 천장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살다 살다 노예에게 당할 날이 올 줄이야.’
 “자, 그러면 확인을 해볼까나?”
 어느새 강철두는 알폰소의 목각 금고를 열기 위해 열쇠를 꽂았다.
 보스의 전리품을 획득할 때보다 더 떨린다.
 이 안에는, 그간 알폰소의 탐욕이 고스란히 들어 있을 테지.
 철컥.
 열쇠가 들어맞으며 금고가 열렸다.
 “응?”
 근데 이건 뭐지?
 금고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이건 마치······.
 “아공간 형태의 금고라고? 이야, 신박한 물건이네?”
 금고의 내부는, 본래의 용량보다 5배는 더 컸다.
 역시나 아공간! 그 이름값을 한다.
 예전 같았으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아공간 상자를 신줏단지처럼 모셨겠지만······.
 지금의 강철두에게는 무한 가방이나 마찬가지인 용사 전용 아공간이 존재한다.
 쩌어어어엉.
 어느새 강철두의 용사 전용 아공간이 새카만 아가리를 벌렸다.
 그러자 알폰소는 게이트가 열렸다며 게거품을 물어댔다.
 “미개한 녀석.”
 강철두는 혀를 끌끌 차며 우쭐댔다. 그러곤 금고에 있는 보석류를 자신의 아공간으로 모조리 털어 넣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은 아니었다.
 사실, 현재 알폰소 영지는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었기에 이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 금액은 강철두의 전 재산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은 양이었다.
 보석이 모조리 털리자, 그 아래에 깔린 책 두 권이 보였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스킬북이다.
 스킬북은 귀하다.
 일전에 던전에서 운이 좋아 1권을 먹었을 정도다.
 강철두는 스킬북의 정보를 훑었다.
 
 [회복의 정령 소환술]
 등급 - 정예
 조건 - 정령사
 효과 - 체력 회복
 설명 - ‘치유의 빛’을 사용하는 정령을 소환합니다.
 
 구경도 잠시, 알폰소의 이죽거림이 들려왔다.
 “어차피 너언 배우지도 모한다. 정령사 전용이니가. 슬마, 글시를 일그지 못하는 까막누는 아니겠지?”
 이빨이 다 날아가서 발음이 제법 우습다.
 그나저나, 저게 아직 덜 맞았나?
 여태 기가 살아 있다니.
 귀족이란 놈들은 다 저런가?
 생각보다 독종이다.
 하지만 저놈이 제아무리 이죽거려봐야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강철두는 놈에게 반응하는 대신 스킬북을 가슴에 얹었다.
 곧바로 빛무리가 터져 나오며 스킬북이 증발했다.
 
 [‘회복의 정령 소환술’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아, 아아니?”
 예상대로 알폰소가 경악을 토해내고 있었다.
 놈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리며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네, 네노므. 저, 정령사라고? 그, 그럴 리가아!”
 알폰소는 강철두의 주먹과 완력을 몸소 체험했다.
 그래서 이 꼴이 난 거 아닌가?
 한데, 그렇게나 무식한 무력을 발휘하는 놈이 정령사라고?
 말도 안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두는 알폰소를 철저히 무시했다.
 실컷 경악하라지.
 그러곤 다음 스킬북을 확인했다.
 
 [매직 미사일]
 등급 - 일반
 조건 - 마법사
 효과 - 마법 공격
 설명 - 목표에 반드시 명중하는 마법 에너지 미사일을 생성합니다.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쨌거나 처음으로 원거리 스킬을 배울 수 있게 됐다.
 이거라면 까다로운 궁수를 충분히 괴롭힐 수 있을 테지!
 볼 것도 없이 배웠다.
 
 [‘매직 미사일’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이쯤 되자.
 “마, 마도 아니대!”
 알폰소는 믿을 수 없다며 연신 제 볼을 꼬집어대고 있었다.
 하긴, 지금 강철두의 모습은 ‘클래스에 맞는 스킬만을 배울 수 있다.’라는 기존의 공식을 철저히 파괴하는 모습이지 않은가?
 용사 클래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 세계다.
 미개한 아카도르인들은 마왕을 죽이지 못하는 이상, 죽었다 깨어나도 강철두를 이해할 수 없을 거였다.
 어느덧 강철두는 스킬 정보를 불러왔다.
 
 <스킬>
 
 1. 스톤 스킨
 [등급: 영웅]
 [레벨: F]
 [쿨타임: 1,620초]
 [지속시간: 180초]
 [효과: 방어력 5 상승]
 일정 시간 동안 육체를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방어력을 올려줍니다. 본인을 포함한 타인 발동이 가능한 버프형 스킬입니다.
 
 2. 회복의 정령 소환술
 [등급: 정예]
 [레벨: F]
 [쿨타임: 1,200초]
 [지속시간: 60초]
 [효과: 10초에 체력 회복3%]
 일정 시간 동안 회복의 정령을 소환합니다. 소환된 정령은 시전자에게 회복의 빛을 걸어줍니다.
 
 3. 매직 미사일
 [등급: 일반]
 [레벨: F]
 [쿨타임: 3초]
 [효과: 마법 공격력 1.5]
 목표에 반드시 명중하는 마법 에너지 미사일을 발사합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제 전리품은 끝인가?”
 아쉬워하며 목각함을 들여다보기도 잠시, 알폰소가 불안한 눈초리로 목각함 내부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저 눈동자는 마치, ‘저것마저 빼앗기면 안 되는데.’라며 불안해하는 눈빛이었다.
 ‘전리품이 아직 더 남았구나?’
 
 * * *
 
 성녀는 예쁘다.
 이 불변의 공식이 참혹히 무너져 내린 것은 20년 전이었다.
 10왕국 중 하나인 헤일루안 왕국, 그곳의 셀리아 신전에서 태어난 성녀 제니는 올해로 스무 살이 되었다.
 그녀는 주먹만 한 들창코에 쫙 찢어진 뱁새눈을 지녔다.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추녀였다.
 만일 그녀가 성녀로 태어나지 못했다면, 서커스 단원 신세를 면치 못했으리라.
 하지만 신은 그녀를 선택했고, 그녀는 얼마 전 신탁을 받았었다.
 
 -꽃이 만발하는 시기에, 마왕을 물리칠 용사가 등장할 것이다.
 
 그 뒤로 수일이 흘렀고, 또다시 신탁이 내려왔다.
 
 -알폰소 하실데르 영주와 함께 있는 용사를 모셔라. 반드시 그가 폭발하기 전에 모셔야 한다. 지금 당장 그를 모시지 아니한다면, 대륙의 체계가 무너지고 붕괴될 것이다.
 
 ‘도대체 어떤 용사님이기에?’
 상황이 단숨에 급박해졌다.
 신탁의 내용이 길고 자세하다는 것은, 그만큼 대륙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뜻했다.
 일례로······.
 ‘대륙의 체계가 무너지고 붕괴’된다는 신탁은 마왕이 강림할 때나 받아보았다.
 도대체 어떠한 성향의 용사가 현신했기에 마왕 강림에 필적하는 신탁이 내려온단 말인가?
 ‘이번에 내려온 용사의 신탁은, 마왕 강림에 필적할 정도다!’
 성녀의 발언은 굉장한 파급력을 몰고 왔다.
 당장에 대신관이 움직였으며, 오래지 않아 국왕까지 나섰다.
 헤일루안의 국왕 레이준 아스타는 재빨리 대응했다.
 10왕국 중에서 자신의 왕국에 용사가 등장하다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을까?
 하지만 범상치 않은 신탁의 내용으로 인해 기쁨을 잠시 뒤로 밀어냈다.
 그는 즉시 왕국의 기사들을 소집했다.
 신탁은 절대적이다.
 용사의 고삐가 풀리기 전에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신탁 발효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용사를 모시기 위한 왕국의 기사들과 성녀가 시골 변방의 알폰소 영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대륙에 강림한 마왕이 혹시 이 새끼는 아닐까?
 용사는 뭐하나? 이 새끼 안 잡아가고?
 알폰소는 강철두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진지했다.
 마왕의 생김새야 인간과 다를 바 없다 하였으니, 이 녀석이 마왕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래, 그래야만 말이 된다.
 알폰소는 몽땅 빠져나간 이빨로 인해 어눌한 발음으로 구걸했다.
 “사렬주시게.”
 결국 꿍쳐놓은 아이템도 모조리 빼앗긴 뒤였다.
 어느새 악마 같은 녀석이 자신을 쏘아본다.
 “누가 널 죽이겠대?”
 “허, 하면, 주기지 아늘건가?”
 “당연하지. 넌 이 영지의 대가리니까, 살아남아서 나한테 현상금을 추가로 걸어야 할 거 아니냐? 그리고 이 나라의 국왕한테 나 같은 놈이 있다고 꼰질러야지.”
 “······.”
 그래, 뭐, 살아남게 되면 무조건 그리 할 참이었다!
 한데 이건 또 뭔가?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를 부추기다니?
 이 미친 새끼, 보통 미친 게 아니다.
 그러니까, 살려주는 이유가 현상금을 걸기 위함이다?
 나아가, 이 왕국에 제 놈의 악명을 널리 전파하기 위함이라고?
 “현상금을 얼마나 올리는지 지켜보겠어.”
 살아생전 이런 협박을 받아본 적은 또 처음이다.
 알폰소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 참, 제이딘인가? 걔네 영지는 어디에 있냐?”
 오! 제이딘 그 육시랄 놈도 이 악마에게 털리는 건가? 아주 좋다!
 알폰소는 지도까지 꺼내 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노믄 성격이 조치 안타. 까불면 성질대로 주겨버려.”
 알폰소는 뻘건 잇몸을 드러낸 채 비굴한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들려온 강철두의 협박 때문이었다.
 “그래그래. 이참에 네 병력 좀 빌리자.”
 “그, 그게 무스은······!”
 “편하게 가면 좋잖아?”
 
 * * *
 
 제이딘 남작의 침실.
 그는 근래에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3명의 노예 소녀를 들였다.
 “흐으아아아아!”
 제이딘은 고삐 풀린 망아지 새끼처럼 노예 소녀들을 겁탈했다. 소녀들의 끔찍한 비명이 침실을 가득 메우고, 제이딘은 흥분에 흥분을 거듭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때 웬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제이딘의 비대한 목살이 흔들리며 고개가 홱 돌아갔다.
 “웬 놈이냐!”
 침실의 끄트머리에 칙칙한 로브를 걸친 자가 보였다.
 그의 얼굴은 새하얀 여우 가면으로 뒤덮여 있었다.
 저 가면을 안다.
 나아가 여유로운 걸음걸이까지.
 제이딘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필시 리버티 폭스였다.
 “네, 네놈은!!?”
 리버티 폭스는 남작에게 겁탈당한 소녀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귀족들이란······.”
 “여, 여봐라! 밖에 아무······!”
 “쉿.”
 삽시간에 다가온 폭스가 제이딘의 목에 칼을 겨눴다.
 하얀 여우 가면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웃는다. 제이딘은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
 순간, 폭스의 손에 새파란 마법이 맺혔다.
 쩌저저적!
 ”끄, 끄억!“
 짧은 비명과 함께 제이딘의 눈이 고통에 부릅떠졌다.
 어느새 그의 목은 시퍼런 눈송이들로 뒤덮이며 점차 단단히 얼어붙었다.
 성대를 필두로 목 전체가 얼어붙은 그는 작은 신음조차 내뱉지 못했다.
 
 ”······으, 으그!“
 
 지독한 고통이었다. 얼어붙은 목이 서서히 옥죄여 오며 이제는 숨조차 내쉴 수 없었다.
 제이딘은 온몸을 바르작거리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리버티 폭스는 잘게 웃으며 제이딘의 몸통을 지르밟았다.
 폭스는 서서히 다리에 힘을 주었다.
 숨통이 매우 질기다. 삶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과 허영이 많은 놈일수록 더러운 생을 포기하지 못한다.
 어느새 제이딘은 폭스의 바짓가랑이를 꽉 움켜쥐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동자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서 폭스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저러한 눈동자를 이해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폭스는 그저 가만히 제이딘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생이 끊어지는 귀족의 눈동자를 계속해서 주시하는 것은 그가 느끼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눈동자가 차차 생기를 잃어간다. 결국 제이딘의 숨이 끊겼다.
 “후우.”
 살인을 끝마친 폭스는 길게 숨을 토해냈다.
 그러곤 중얼거렸다.
 “강철두라······ 알폰소 영지에 단신으로 쳐들어갔다 하였나?”
 캡의 단원들을 통해 소식을 전해 받았다.
 시골 변방에 난데없이 등장한 신흥 강자.
 노예 신분인 그는 귀족들에게 굴하지 않고 맞서는 용맹함을 보였다 한다.
 하지만 폭스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믿지 않는 타입이랄까?
 그래서 왔다.
 강철두라는 강자의 진면목을 보기 위하여.
 어느새 그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떼려 했다.
 한데 그 순간.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저, 적이다!
 -저, 저놈들은 알폰소 남작의 병사들이잖아!
 -진입을 막아라!
 -저, 저 새끼들이 진정 미친 건가!!
 -왕국의 평화 협정을 깨다니! 국왕 폐하의 분노가 두렵지도 않느냐!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급박한 외침들이 들려왔다.
 폭스는 즉시 창가로 향했다.
 밖을 바라보니, 도개교를 통해 돌진해 오는 병력들이 보였다.
 그들의 경갑에는 붉은색 독수리가 그려져 있었다.
 이는 알폰소 영지의 상징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알폰소 남작과 제이딘 남작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한데, 제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저 으르렁댈 뿐, 실질적인 전쟁이 벌어지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한 왕국에 귀속된 영주들이 아닌가?
 다시 말해 같은 편이다.
 이러니 서로 원수라 해도 전쟁을 할 수 없는 거다.
 만일 이 꼴을 국왕이 확인한다면 크게 분노할 테지.
 그렇기에 더더욱 의문이다.
 알폰소는 어째서 제이딘 영지로 쳐들어온 것일까?
 그러한 의문도 잠시······.
 폭스의 시선이 도개교 끝으로 빨려들 듯 꽂혔다.
 ‘허어?’
 그곳에 병사들을 지휘하는 알폰소가 보였다.
 한데 이상한 것은, 알폰소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단단한 근육질의 사내가 알폰소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폭스는 근육질의 사내를 주시했다.
 제법 먼 거리임에도, 사내의 얼굴이 또렷이 보인다.
 수배서에서 확인했던 그 얼굴이 맞다.
 신흥 강자 강철두.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이윽고, 발달한 청력으로 인해 강철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철두는 알폰소의 귓가에 대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다 밀어버리라고 명령해. 성 내부까지 싹 밀어. 제이딘의 재물은 모조리 다 내꺼다.
 -이, 익! 저, 전 병려근 드러라! 모조리 미러버러라!
 완벽히 제압당한 알폰소는 꼭두각시처럼 강철두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순간 폭스는 할 말을 잃었다.
 알폰소 영지에 단신으로 쳐들어갔다더니, 알폰소를 협박해 그 병력을 모조리 끌고 왔다.
 강철두, 놈은 정말이지 황당무계한 녀석이었다.
 
 
 Chapter 5
 
 
 주먹과 달걀이 싸운다면 주먹이 이기겠지만.
 달걀과 달걀이 싸운다면 둘 다 깨진다.
 지금이 그랬다.
 알폰소와 제이딘의 병력들.
 두 무리의 실력과 숫자는 비스름했고, 결국엔 둘 다 깨지고야 말았다.
 이 모든 사태를 주도하고 기획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강철두.
 저벅. 저벅.
 그는 안전지대나 다름없는 성 앞을 가로질러 걸어왔다.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일개 노예의 신분으로 귀족의 성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강철두의 옆에는 시뻘건 잇몸을 만개한 채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알폰소도 보였다.
 알폰소에겐 안 된 일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그는 강철두와 단단히 엮일 게 분명해 보였다.
 “알폰소. 내가 진입할 수 있게 성문을 열어.”
 강철두는 오만한 얼굴로 알폰소에게 명령을 내렸다.
 알폰소의 얼굴이 쓰레기더미처럼 구겨졌으나, 그것은 찰나였다.
 금세 비굴한 얼굴로 변신한 그가 허리를 굽혔다.
 “아르겠다.”
 “발음하고는.”
 ‘니 새끼가 이렇게 만들었잖냐!’
 라는 말이 목젖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용케 참았다.
 강철두는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기에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단숨에 문 앞으로 내달린 알폰소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대문이 열리자, 강철두는 뒷짐을 진 채 입성했다.
 “제이딘 영주가 숨어 있을 만한 곳으로 안내해.”
 “아르겠다.”
 알폰소는 일차적으로 침실로 향했다.
 그조차도 강철두가 쳐들어왔을 때 침실에 숨었었다.
 제이딘 또한 그럴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영주는 재물을 본인의 방인 침실에 숨기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 그곳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재물을 지키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쟁쟁한 기사 녀석을 호위로 끼고 있을 거다.
 하지만 그래 봐야······.
 ‘강철두 녀석에겐 한주먹거리도 안될 테지.’
 어느새 침실에 도착했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알폰소는 제 눈을 의심했다.
 “으, 으아니?”
 “뭔데?”
 멋지게 등장하려고 뒤편에서 똥폼을 잡고 있던 강철두가 잽싸게 다가왔다.
 “응? 뭐야, 저 시체가 설마 제이딘이냐?”
 “으, 으응.”
 강철두는 단숨에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
 목은 얼어붙은 듯 단단하고, 배와 가슴은 아직 사후경직이 오지 않아 말랑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더하여, 누군가에게 얼음 마법을 맞고 살해당했다.
 그렇다면 누가?
 도대체 왜?
 순간 정신이 퍼뜩 든 강철두는 방 안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뭐, 당연한 건가.”
 재물과 아이템은 모조리 털려 있었다.
 “도대체 누구지?”
 현재로서 추론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첫째, 괴인은 마법을 사용하기에 마법사다.
 둘째, 괴인은 성에 있는 모든 병력들의 눈에 띄지 않고서, 제이딘의 침실에 잠입했다. 암살에 특화된 녀석이다. 즉, 암살자다.
 셋째, 첫째와 둘째의 가정이 맞는다면 놈은 굉장히 보기 드문 ‘듀얼 클래스’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다.
 넷째, 귀족을 죽였기에 귀족 말살 집단이라는 리버티 캡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요약하자면, ‘귀족을 죽이고 다니는 굉장히 강한 인간.’
 아닐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썬 유력하다. 이쯤 되자 떠오르는 녀석이 있었다.
 강철두는 알폰소에게 물었다.
 “야, 리버티 폭스라는 녀석에 대해 알지?”
 “안다.”
 “그놈, 클래스가 뭐지?”
 “두, 두얼. 두얼이다.”
 “듀얼이라. 마법사와 암살자이겠지?”
 “으응.”
 녀석이다.
 대륙 최강의 수배범이라는 그 녀석.
 그 현상금만 해도 무려 51,000골드!
 그놈이 자신의 일용할 양식을 빼앗아 먹었다.
 가면 쓴 변태 새끼, 언젠가 꼭 한번 보자.
 이자까지 쳐서 받아줄 테니까.
 강철두는 다짐했다.
 
 * * *
 
 노예 소녀는 두 손에 무언가를 소중히 쥐고 있었다. 이건 아주 중요한 거다.
 “읏~차!”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어둑해진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 산은 강철두가 강탈했던 던전이 위치한 산이었다.
 이곳에는 슬라임을 비롯한 괴수들이 없었다.
 그나마 오크 부락이 하나 존재했었는데, 그것조차도 강철두에 의해 모조리 사라졌다.
 산은 안전했다.
 그녀는 이 산의 오크 부락에서 강철두와 다시 만나기로 했었다.
 약속된 시간은 자정.
 강철두는 반드시 올 것이다.
 노예 소녀는 박차를 가해 오크 부락에 도착했다.
 그러곤 어젯밤 모닥불을 피웠던 자리에서, 무릎을 껴안고 앉았다.
 그렇게 얼마쯤 기다렸을까?
 사박. 사박.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홱 돌리니, 그곳에 강철두가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봄날의 꽃처럼 환해졌다.
 “오라버니!”
 “응. 먼저 도착해 있었네?”
 “네! 그런데, 옆에 있는 아저씨는······?”
 그녀가 궁금증을 표하자 알폰소의 얼굴이 단숨에 구겨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새로 생긴 쫄병. 당분간 데리고 다닐 거다. 귀족이라서 아는 게 꽤 많거든.”
 귀족이라는 단어에 깜짝 놀란 듯, 그녀는 토끼 눈을 떴다.
 아무래도 그녀는 귀족에게 팔려가던 노예였기에, 그 반감과 혐오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강철두가 데리고 온 귀족이다.
 강철두를 믿었기에 반감은 애써 밀어두었다.
 반면 알폰소의 얼굴은 더더욱 구겨졌다.
 그가 언제 이런 취급을 받아보았겠는가?
 30년 인생을 통틀어서 이러한 개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철두는 노예 소녀와 연신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부탁했던 건, 구해놨어?”
 “그럼요!”
 노예 소녀는 양손에 소중히 쥐고 있던 것을 강철두에게 건넸다.
 “얼마나 하디?”
 “5골드요. 엄청 비싸더라고요. 거짓말 아니에요. 영수증도 써달라고 했습니다!”
 “응.”
 강철두는 알폰소 영지로 쳐들어가기 전, 노예 소녀에게 심부름을 시켰었다.
 그것은 바로 ‘슬라임의 끈적한 점액’을 구매해오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주 잘 구해온 듯했다.
 강철두는 점액의 정보를 훑었다.
 
 [슬라임의 끈적한 점액]
 등급 - 일반
 설명 - 방어구 제작에 사용되는 아이템
 
 이로써 갑옷을 제조할 수 있게 되었다.
 일전에 던전의 보스를 잡고 나왔던 아이템 중에 갑옷 제조서와 방어구 강화석이 있었다.
 강철두는 아공간에서 제조서와 재료들을 꺼냈다.
 
 [스켈레톤의 뼈 갑옷 제조서]
 등급 - 정예
 요구 조건 - 스켈레톤의 뼈 40개, 슬라임의 끈적한 점액 1개
 설명 - 요구 조건을 충족하면 스켈레톤의 뼈 갑옷을 즉시 제조할 수 있다. 이 제조서는 일회성이다.
 
 모든 재료를 확보한 강철두는 곧바로 제조를 시작했다.
 이윽고 제조서가 증발하며 그 위로 순백의 뼈 갑옷이 떠올랐다.
 
 [‘스켈레톤의 뼈 갑옷’의 제조가 완료되었습니다.]
 
 [스켈레톤의 뼈 갑옷]
 방어력 - 2.1
 등급 - 정예
 설명 - 스켈레톤의 뼈로 이루어진 갑옷이다.
 
 즉시 착용했다.
 그런 뒤 상태 정보창의 방어력을 확인해 보았다.
 
 <강철두>
 레벨: 11
 직업: 용사 (+1)
 [근력 388] [마력 101] [민첩 288] [체력 284]
 물리 공격력: 2,134
 마법 공격력: 101
 회피력: 288
 방어력: 596.4
 [미분배 스텟: 0]
 [EXP 2,100 / 9,200]
 
 방어력은 기존 284에서 596.4까지 올랐다.
 여기에 스톤 스킨까지 사용해보았다.
 
 [3분간 방어력 5 상승.]
 
 뼈 갑옷의 방어력 2.1과 스톤 스킨의 방어력 5.
 합쳐서 7.1이다.
 이렇게 되니, 방어력은 껑충 뛰어올라 2,016.4가 되었다.
 단숨에 4자리가 된 것이다!
 이제 병사들의 칼질 정도는 모기 물리는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부족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마침 아공간에 방어구 강화석이 있다.
 하지만, ‘일반’ 등급의 뼈 갑옷에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아깝다.
 강화석이 흔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기승전약탈이었다.
 정도正道로 진행한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거다.
 일전 드랍율 751% 던전에서 보았다시피, ‘좋은’ 아이템을 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게다가 그런 던전을 찾는 것도 일이다.
 정도로서, 마왕과 상대할 만한 아이템을 맞추려다 보면 몇 년이 걸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더 많은 약탈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수십 년 묵은 던전이라도······.
 
 * * *
 
 헤일루안의 국왕 레이준 아스타는 연신 안절부절이었다.
 성녀와 기사단이 길을 나선 지도 벌써 반나절.
 이쯤 되면 소식이 들려와야 하건만, 깜깜무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이럴 때만큼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 기다리던 통신이 왔다.
 레이준은 재빨리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또르르르르.
 수정구에 커다란 들창코가 떡 하니 보였다.
 레이준은 단박에 알아봤다.
 성녀다.
 -폐, 폐하!
 “오냐! 어찌 되었느냐? 용사님은?”
 -그, 그것이······.
 성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알폰소와 용사를 찾을 순 없었으나, 길거리를 배회하던 상처 입은 병사들을 통해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아······.
 그녀는 긴 침묵을 택했다.
 쉽사리 단어를 선별할 수 없었다.
 하긴, 이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용사에게 현상금을 걸어야 한다.’는 말을!
 
 * * *
 
 헤일루안의 국왕 레이준 아스타.
 그는 자꾸 뜸을 들이는 성녀를 향해 위엄을 담아 말했다.
 “어서 말하라!”
 -후우, 일단 상황부터 설명해야 할 듯합니다. 저희는 알폰소 남작의 영지에 도착하였으나, 알폰소 남작이 정신이 나갔는지 병력을 이끌고 제이딘 남작의 영지를 공격했다고 하옵니다.
 “뭐, 뭐라? 감히 그놈이 그따위 헛짓거리를 했다고!?”
 헤일루안 왕국에 귀속된 두 귀족이다.
 평화 협정이 맺어져 있고, 전쟁은 어떠한 경우에도 벌어져선 안 된다.
 한데 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놀라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알폰소 남작에 의해 제이딘 남작은 사망하였고, 알폰소는 그 길로 도주했다고 합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애꿎은 불똥이 알폰소에게로 튀었다.
 “알폰소! 이 고얀 놈! 내 당장 그놈의 직위를 박탈하고 수배령을 내릴 것이다! 감히!!”
 튀었던 불똥이 번져 산불이 된다.
 국왕이 직접 내리는 수배령이다.
 이는 즉, 일개 영지 수배서가 아닌, 왕국 수배서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짜배기는 이제부터다.
 성녀는 심호흡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당 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 병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알폰소와 함께 있던 사내가, 모든 상황을 꾸미고 계획했다 하옵니다.
 “뭐, 뭐라?”
 -제 생각으론 그 사내가 바로 용사인 것 같습니다. 신탁이 틀릴 리 없으니까요.
 그래, 신탁은 분명 말했다.
 ‘알폰소 하실데르와 함께 있는 용사’라고 정확히 언급했다.
 “하, 하면 그 사내가 용사라면, 그에 대한 정보가 있느냐?”
 국왕의 물음에 성녀는 수배서 한 장을 수정구에 내밀었다.
 이 수배서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하실데르 영지에서 나온 이 수배서는, 강철두라는 남자의 신상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자가 용사······. 과연, 강자의 풍모가 느껴지는구나.”
 -힘을 어찌 사용할지 알 수 없습니다.
 성녀는 회의적이었다.
 신탁에서 말하길, ‘지금 당장 용사를 모시지 않으면 대륙의 체계가 무너지고 붕괴된다.’ 하였다.
 하지만 성녀는 당장 용사를 모시지 못했다.
 신의 안배는 그걸로 끝일 테지.
 신탁은 절대적이다.
 성녀는 단념한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용사 강철두, 그에게 수배령을 내리는 것이 맞다고 판단됩니다.
 세상에 재앙이 둘 일 순 없다.
 하나의 재앙은 아직 덜 자란 새싹.
 차라리 자르는 게 맞다.
 -폐하, 결단을 내려주소서.
 레이준 국왕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었다.
 
 * * *
 
 “아유, 정말! 제가 몇 번을 말했어요! 불을 피울 땐 나무를 그렇게 비벼선 어림없대도요!?”
 “네 이녀언!”
 노예 소녀는 허리춤에 양손을 얹은 채 눈을 치켜떴고, 알폰소는 결국 폭발하고야 말았다.
 그는 귀족이다.
 언제나 따스한 잠자리에서 잘 수 있는 귀족.
 그가 언제 불을 피워봤겠는가?
 반면 노예 소녀는 그런 알폰소가 답답하기만 했다.
 처음엔 귀족이라 해서 지레 겁부터 났었는데, 가만 보니 허당도 이런 허당이 없다.
 더군다나 이빨까지 몽땅 나가 우습기 이를 데 없었다.
 “외식이나 하자.”
 그 꼴을 잠자코 지켜보던 강철두가 나섰다.
 “외식이요?”
 “그래.”
 강철두는 여태 남은 사슴 고기를 질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돈이 제법 두둑이 쌓였다. 혹시 먹어보고 싶은 게 있냐?”
 강철두는 일전에 식당에서 노예 소녀의 식탐을 확인한 바 있었다.
 그녀는 평생을 통틀어 곰팡이 슬은 빵이나 먹어보았지, 요리 다운 요리를 먹어본 적도 없다 했다.
 그래서인지 그날, 노예 소녀는 만찬을 앞에 두고 그리도 행복해 보였다.
 왜인지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지는 강철두였다.
 “뭐든 말해. 먹고 싶은 게 있다면.”
 그 말에 노예 소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밝아지더니, 하얀 이까지 드러낸 채 헤죽대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파이! 파이를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늘 그랬어요!”
 “파이?”
 “네에! 버터와 달걀이 들어간 호두 파이요!”
 그즈음, 옆에 있던 알폰소가 피식 쪼개며 거드름을 피웠다.
 “파아이? 참나. 우리 전속 주방장이 호두 파이를 잘했지. 나느은 하도 먹어서 질린 차암인데. 허허!”
 한데 강철두와 노예 소녀는 알폰소에게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저 저들끼리 대화하기 바빴다.
 “그래, 호두 파이는 어디가 맛있냐?”
 “음······! 자유도시 필라도의 호두 파이가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허허! 피일라도? 그고스 호두 파이는 내가 아주 자알 알지. 나는 그······.”
 “그래. 가자.”
 강철두는 알폰소의 말을 중도에 잘라내며 걸음을 옮겼다.
 졸지에 홀로 덩그러니 있던 알폰소가 꽥 하고 외쳤다.
 “가, 같이 가아!”
 
 * * *
 
 자유도시 필라도.
 이곳은 자유라는 이름을 내건 도시답게 공화도시였다. 다시 말해 이곳은 세습에 의한 군주 제도 따윈 없었다.
 제법 시범적이고 실험적인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치안 상태가 형편없어 하루가 멀다 하고 범죄가 끊이질 않았다.
 문제는 비단 범죄뿐만이 아니었다.
 칼리므 사막이라는 훌륭한 국경선, 그 최전방에 위치한 도시가 필라도였다.
 북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펜달 왕국은 틈만 나면 필라도를 침공했고, 빈번하게 침투해 오는 펜달 왕국의 전사들 때문에 항상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자유라는 이름을 쫓아 많은 평민과 노예들이 망명한다.
 하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세워진 필라도는 장점보단 단점이 월등히 높은 곳이었다.
 세인들은 필라도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명분상 자유도시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라고.
 어쨌거나 ‘시장’이라고 부르지만, 이곳은 귀족이 통치하고 있으니 말이다.
 제아무리 세습의 근절을 외치며 자유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귀족은 언제 변할지 모른다.
 아직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공화제도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전한 것이었다.
 “저기! 저기에요!”
 필라도의 거리, 인파 속에 파묻힌 노예 소녀가 검지를 치켜들고 간판을 가리켰다.
 
 <파이 먹고 가라>
 
 뭔가 마초 냄새가 나는 건 착각일까?
 그나저나 강철두는 의외라는 듯 노예 소녀를 바라보았다.
 “글을 읽을 줄 아냐?”
 “그럼요.”
 강철두야 용사의 권능으로 이곳의 언어를 안다 쳐도, 그녀는 의외였다.
 노예이지 않나?
 “저는 한번 본 것을 잊어먹는 일이 없거든요.”
 의문이 담긴 강철두의 얼굴을 보며 그녀가 덧붙였다.
 암기력이 뛰어나다는 말이었다.
 옆에 있던 알폰소는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이내 일행은 파이 집으로 들어갔다.
 고소한 호두 향기와 버터 냄새가 확 끼쳤다.
 동시에 뱃속이 난리가 났다.
 단숨에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주문하려던 찰나, 강철두의 시선이 벽에 꽂혔다.
 뭔가 싶었던 알폰소와 노예 소녀도 벽을 바라보았다.
 
 <헤일루안 왕국 수배서>
 이름: 알폰소 (과거: 알폰소 하실데르)
 나이: 30세
 성별: 男
 신체 사항: 172cm 70kg
 특이 사항: 치아가 없음.
 현상금: 500골드.
 죄목: 귀족 살인 도움 및 방조
 
 “히, 히이이익!”
 그걸 발견하자마자 알폰소가 고개를 바닥으로 푹 숨겼다.
 여태까지 사람들이 몰라봤던 건, 강철두에게 맞아서 시퍼렇게 멍이 든 얼굴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때.
 가게의 문이 벌컥 열리며 중갑옷을 착용한 병사들이 들어섰다.
 “주인장 계시오? 오늘만 두 번째 들리는군. 또다시 새로운 수배서가 나와 붙이러 왔소.”
 “아아, 들어오슈! 아니, 현상금 500골드의 알폰소라는 거물이 등장하더니, 이번엔 또 누굽니까?”
 “알폰소라는 자와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 거물이요.”
 “500골드보다 더한 거물이라고? 도대체 그게 누구요!?”
 대답 대신 병사들은 벽으로 가 새로운 수배서를 붙였다.
 수배서에는 ‘강철두’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헤일루안 왕국 수배서>
 이름: 강철두.
 나이: 25~30세 추정.
 성별: 男
 신체 사항: 185~190cm 장신의 근육질.
 특이 사항: 3~4종류의 직업 스킬을 구사한다고 알려져 있음.
 현상금: 1,500골드.
 죄목:
 1. 귀족 살해.
 2. 귀족 재물 약탈.
 3. 이외 다수의 살인, 공갈, 협박.
 
 “바로 이자요. 단신으로 귀족의 영지로 쳐들어갔다 하더이다.”
 “처, 천오백 골드라고!?”
 “그렇소.”
 “어, 엄청난 녀석이로군. 현상금 사냥꾼들이 눈독을 들이겠소.”
 “그럴 테지. 하지만 이자의 무력이 상식 밖이라더군.”
 “그렇게 강자인 거요?”
 “아니, 조금 다른 의미요. 솔직히 대륙에 강자는 많지. 하지만 이런 자는 처음이요.”
 병사는 검지로 ‘특이 사항’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듀얼 클래스는 들어봤어도, 3~4종류의 클래스는 당치도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요. 하지만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어야지.”
 “허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아마도 유니크 아이템을 여러 개 착용하여 두세 종류의 스킬을 사용하는 것일 테지.”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 그래야만 말이 된다.
 하지만 목격자들의 증언은 강철두라는 자의 아이템이 고작 검 한 자루였다고 입을 모았다.
 뭐가 됐건 직접 보기 전까진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어느새 병사들도, 파이 가게 주인장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입을 닫고 있었다.
 침묵이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그 꼴을 잠자코 지켜보던 강철두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확실히 왕국 수배서라 그런가? 몽타주가 잘 뽑혔네.”
 강철두의 목소리가 침묵을 꿰뚫었다.
 “조, 조용히해애! 그러다 병사가 듣게써!”
 알폰소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발광을 떨어댔고, 순간 병사들의 시선이 강철두를 향했다.
 병사들은 새로 붙인 수배서와 강철두의 얼굴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가, 강철두???”
 강철두는 보란 듯이 턱을 내밀며 가슴을 폈다.
 잠시 굳어 있던 3명의 병사는 잽싸게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와, 왕국 수배범 강철두! 헤일루안 왕국의 빛나는 태양, 레이준 아스타 국왕 폐하의 이름으로 네놈을 체포한다!”
 호기롭게 외치는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그들의 화를 돋우고 있었다.
 “호두 파이를 먹으러 왔다. 그러니까 좀 기다려.”
 “뭐, 뭐라!!”
 “주인장, 호두 파이 3개 내어줘.”
 주인장은 강철두와 병사들의 눈치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 순간, 병사들이 폭발했다.
 “놈을 덮쳐!”
 세 자루의 칼날이 동시에 쏘아져 온다.
 강철두는 스톤 스킨을 시전했다.
 방어력은 순식간에 4자리로 뛰어올랐다.
 강철두는 잽싸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 뒤 자신의 목을 향해 베어져 오는 세 자루의 검을 손바닥으로 움켜쥐었다.
 우직!
 “이, 이 무슨!!”
 움켜쥔 강철두의 손아귀에서 핏줄이 꿈틀댔다.
 끼기기기긱!
 순간 엄청난 힘을 주었는지, 세 자루의 검이 꽈배기처럼 꼬였다.
 일개 병사 3명이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병사들은 완벽히 압도되었다.
 어느새 강철두는 배배 꼬여 한 몸이 된 세 자루의 검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러곤 손바닥을 털더니 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주인장을 향해 다시금 말했다.
 “호두 파이 3개. 빨리.”
 “아, 알겠습니다요! 다, 당장 내오지요!”
 강철두는 호두 파이를 기다리며 수배서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본인뿐만 아니라 알폰소 녀석도 500골드라는 거물이 되어 있었다.
 예상은 했으나 저렇게까지 많이 붙을 줄은 몰랐다.
 어느새 강철두는 시퍼렇게 멍이 들고 팅팅 부어오른 알폰소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왜 그렇게 쳐다보냐아······.?”
 “응? 별거 아냐.”
 강철두는 히죽 웃었다.
 알폰소는 문득 그 웃음이 불길했다.
 
 * * *
 
 배를 채운 강철두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장이 진땀을 빼며 말했다.
 “계, 계산은 되었소.”
 악명 높은 수배범에게 돈을 받아낼 용기가 없었다.
 한데.
 “무슨 소리를.”
 강철두는 한사코 거절하는 주인의 손바닥에 파이 값을 얹었다.
 잠시 은화의 개수를 헤아리던 주인장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파이 세 개가 아닌 두 개 값이로군. 뭐, 뭐 괜찮소.”
 “응. 저기 저 이빨 빠진 녀석은 제 놈이 알아서 계산할 거야.”
 그러자 이빨 빠진 녀석, 알폰소가 역정을 냈다.
 “이, 이 녀석아! 나느은 도니 없다! 네가 다 빼앗았잖아!”
 “알 바냐?”
 “이노미 그래도오! 빨리 내 것도 계산해라!”
 “싫다.”
 “이러면 내가 못된 노미 되잖아! 왜 나에게 못된 짓을 시키는 거냐!”
 “글쎄, 왜일까?”
 알폰소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렇잖아도 누명으로 500골드의 수배범이 된 것도 짜증 나 죽을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하실데르’라는 성을 빼앗긴 채 귀족의 직위를 박탈당했다.
 이 모든 게 강철두 저놈 때문이지 않은가?
 그런데 놈을 보라!
 어느새 강철두는 노예 소녀를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홀로 남은 알폰소는 어정쩡한 얼굴로 주인장을 바라보았다.
 “미, 미안하오.”
 그 말을 끝으로 얼굴이 붉어진 채 강철두의 뒤를 쫓았다.
 전前 귀족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가, 같이 가아!”
 “계산은 하고 나온 거냐?”
 “도니 없다.”
 “쯧.”
 강철두는 혀를 찼다.
 그러더니 휘적휘적 앞서 걷기 시작했다.
 길은 알고 저리 당당히 가는 걸까?
 “어디 가는 건데에? 또 나븐 짓 하러 가냐?”
 “아니, 올바른 일을 하러 간다.”
 강철두는 대충 답하더니 돌연 멈춰섰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아공간을 열고 포션을 꺼내는 것 아닌가?
 저벅.
 어느새 강철두가 알폰소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멍이 들고 팅팅 부어오른 알폰소의 얼굴에 포션을 발라주기 시작했다.
 “얼굴이 이렇게 상해서야.”
 “너, 너어······.”
 알폰소는 감격한 듯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밀당이라는 건가?
 사실 강철두는 굉장히 친절하고 좋은 녀석이었던 걸까?
 알폰소는 꽤 감동을 받았다.
 그가 알기로도 포션은 상당히 비싸다.
 한데 강철두는 아낌없이 포션을 사용했다.
 “이제 얼굴이 말끔해졌네.”
 뿌듯한 어조로 말을 마친 강철두가, 어느새 알폰소의 손을 잡았다.
 문득 느껴지는 악력의 느낌이 불길하다.
 “자, 가자.”
 “으, 으응? 어딜?”
 어느새 강철두는 검지로 어떤 건물의 간판을 가리켰다.
 알폰소는 잠시 몸을 굳힌 채 간판을 바라보았다.
 
 <수배범 관리소>
 
 “너, 너어어어!?”
 단숨에 관리소 앞에 도착한 강철두가 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안을 향해 더없이 정중한 태도로 외쳤다.
 “계십니까?”
 “누구십니까?”
 “범죄자를 잡아 왔습니다.”
 알폰소가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이 미친노마! 이러다 너도 잡힌다아!?”
 “난 안 잡혀. 이깟 놈들한테. 그리고 네놈을 넘긴 뒤 수배금을 받을 거다.”
 “이, 이 개자시익! 너어! 이러려고 나에게 포션까지 준거냐아!?”
 그래, 강철두에게 맞아서 팅팅 부어오른 알폰소의 얼굴은, 왕국 수배서의 몽타주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 그러해서 강철두는 알폰소를 치료해 주었던 것이다.
 범죄자를 넘기는데 얼굴을 못 알아보면 낭패이질 않나?
 “으아아아아!!”
 알폰소가 발광을 하든 말든 강철두는 한술 더 뜨기 시작했다.
 “아참, 이 녀석 방금 식당에서 호두 파이 값도 지불 안 하고 무작정 도망치던데, 현상금 추가로 더 안 붙습니까?”
 얼굴을 치료해줬을 때 진즉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강철두가 미친 녀석이라는 것을 잠시 깜빡했다.
 수배범 관리소의 관리인은 근육질의 사내에게 붙잡혀 온 알폰소를 바라보았다.
 “흐음.”
 동시에 헤일루안 왕국 수배서를 확인했다.
 알폰소, 수배금 500골드의 거물이다.
 오늘 오전에 수배령이 떨어진 따끈따끈한 놈인데, 벌써 잡히다니.
 그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알폰소를 인수받고 절차대로 수배금을 지급했다.
 새삼, 근육질의 사내가 굉장한 무력의 소유자겠구나 싶었다.
 500골드 범죄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 오니 말이다.
 어느새 사내는 함께 왔던 어여쁜 소녀와 함께, 인사를 남기며 떠나갔다.
 무언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여자 쪽은 18살 정도 됐으려나?
 사내도 그리 많아 보이진 않았다.
 20대 중후반 정도?
 그렇게, 그들을 보낸 뒤 관리인은 1시간 전 발부된 수배서들을 훑기 시작했다.
 알폰소의 수배서가 나오고 얼마 안 있어 새로 나온 수배서들이었다.
 수배서를 가지고 온 병사단장의 말에 따르면, 엄청난 거물이 출현했다고 하던데······.
 “어디 보자······. 가만. 응?”
 과연.
 헤일루안 왕국 수배서가 떴다.
 일개 영지 수배서들은 뒤로 밀어놓고선 왕국 수배서부터 확인했다.
 
 <헤일루안 왕국 수배서>
 이름: 강철두.
 나이: 25~30세 추정.
 성별: 男
 신체 사항: 185~190cm 장신의 근육질.
 ······.
 ······.
 
 “이, 이 무슨?”
 수배서를 훑던 관리인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이 수배서에 그려진 몽타주가 지나치게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그 사내가 아니던가! 아니 그럼!! 범죄자가 범죄자를 잡아 온 거라고?”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상황인가?
 더군다나 이 강철두라는 놈은 얼마나 강심장이었던 건가?
 <수배범 관리소>, 이곳은 수배범들을 관리하는 곳이기에 강력한 병력이 깔린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 왕국 수배범이 들렀다 간 것이다!
 거기다 수배금까지 받아 처먹고!
 관리인은 제 뺨을 치더니 관리소 병력들을 데리고 즉시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강철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 * *
 
 큰돈이 생기면 써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겨두고 모조리 쓰는 것이다!
 강철두의 생각은 그랬다.
 그는 노예 소녀와 함께 <용사님의 전리품>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가게를 찾았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쇠붙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과연, 굉장한 물량의 아이템이 즐비했다.
 “어서 오십시오!”
 역시 이곳 주인장도 강철두를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이 가게엔 아직 강철두의 수배서가 붙지도 않았다.
 왕국 수배령이 떨어진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기에 당연한 이야기였다.
 사실 이미 며칠 전 ‘하실데르 영지 수배령’이 떨어진 상태이긴 하나, 그것은 해당 영지에서만 효력을 발휘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왕국 수배령’이다.
 헤일루안 왕국에 속해 있는 땅이라면 어느 곳이든 강철두의 수배서가 붙을 터였다.
 병사들은 이곳 필라도의 거리를 활보하며 순차적으로 수배서를 붙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불필요한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흐음.”
 어느새 강철두는 아이템들을 쭈욱 훑었다.
 대부분 일반과 정예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그러던 중 강철두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딱 꽂혔다.
 그곳엔 족히 2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해머가 비치되어 있었다.
 강철두는 해머의 정보를 보기 위해 손을 뻗었다.
 “허허! 조심히 확인하십시오. 저희 가게에 비치된 몇 안 되는 영웅 등급 아이템이니까요.”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두는 한 손으로 너끈히 해머를 들어 올렸다.
 그 완력에 주인장의 눈이 잠시 크게 뜨였다.
 어느새 강철두는 해머의 정보를 확인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해머]
 물리 공격력 - 7
 등급 - 영웅
 착용 조건 - 근력 200 이상
 설명 - 트윈 헤드 오우거의 거대한 해머. 웬만한 근력으론 드는 것조차 버겁다.
 
 물리 공격력이 자그마치 7이다.
 현재 착용 중인 골리앗의 소환검이 5.5이니, 무려 1.5의 차이다.
 확실히 등급이 영웅인지라 공격력이 쓸만하다.
 골리앗의 검보다 좋지 않은 점은 ‘유니크’가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하긴, 영웅 등급에 유니크 기능이 붙은 아이템이 어디 흔한가?
 그저 영웅 등급이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착용해본 김에 물리 공격력도 확인해 보았다.
 
 물리 공격력: 2,134 - > 2,716
 
 무려 ‘582’의 공격력이 상승한다.
 강철두는 마음을 굳혔다.
 “이건 얼마지?”
 강철두가 허공에 해머를 가볍게 휘두르며 물었다.
 그 상식 밖의 근력에 주인장의 목소리는 금세 공손해졌다.
 “아아, 굉장한 모험가님이셨군요. 제 눈이 썩어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결례를 범할 뻔했습니다. 허허!”
 적어도 주인장은 물건 값을 후려칠 생각은 접어두었다.
 이렇게나 강한 모험가에겐 정가로 정직하게 파는 것이 맞다.
 괜히 어설프게 후려치려다간 되려 큰코다치니까.
 “그래서 얼마인데?”
 “흐음. 영웅 등급인 만큼 상당한 고가의 아이템입니다. 300골드는 주셔야 합니다.”
 현재 강철두의 재산은 520골드.
 300골드라 하면 일반 가정집 한 채 값이었다.
 상식 밖의 가격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수긍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영웅 등급의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놀라울 지경이었으니까.
 이 세계보다 훨씬 앞서나가고 있는 지구의 기준으로도 ‘트윈 헤드 오우거의 해머’ 정도의 아이템은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이 주인장이 적어도 가격을 후려치려는 건 아닐 테다.
 그저, 적당한 가격이다.
 어차피 알폰소를 넘기고 받아온 꽁돈이다.
 게다가 앞으로도 약탈을 지속할 것이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은 없었다.
 “사지.”
 값을 지불했다.
 아직도 돈은 220골드가 남았다.
 “무기 강화석은 있나?”
 현재 그의 아공간에는 방어구 강화석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는 당장 이 무기에 사용할 무기 강화석을 원했다.
 “흐음. 요즘엔 강화석이 한 달에 한두 개의 물량이 들어올까 말까입니다.”
 “물량이 그렇게 적어? 조금 심한데.”
 아쉬워하려는 찰나, 주인장의 말이 이어졌다.
 “근래에 강화석을 대량으로 훔쳐 엄청난 수배금이 붙은 레이나라는 도적 때문이지요.”
 “강화석을 대량으로 훔쳤다고?”
 눈이 확 뜨였다.
 대량이라면 못해도 수십 개는 되지 않을까?
 강철두가 관심을 두자, 주인장은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 망할 년은 잡혔습니다. 현재 수배범 관리소에 구치 되어 있죠. 한데 그년이 글쎄······.”
 “어쨌기에?”
 “강화석을 어디다 숨겼는지 불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 덕에 당분간은 강화석 값이 폭등하게 생긴 거죠.”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강철두는 미련 없이 가게를 나섰다.
 아무래도, 그 죄수를 확보해야겠다.
 
 * * *
 
 썩은 밀짚이 깔린 바닥은 구정물과 온갖 오물들로 범벅되어 있었다.
 발을 어디로 옮겨도 마찬가지다.
 알폰소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기다란 쇠창살은 이 썩은 공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며 짱짱하고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이익! 강처얼두우!”
 이게 다 놈 때문이다.
 알폰소는 안절부절못하며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발바닥이 썩은 물과 오물들로 인해 축축해졌지만, 이렇게라도 걷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만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500골드의 범죄자라며 위험인물로 규정짓고 특대형 옥에 갇힌 거였다.
 이게 왜 다행이냐면, 여러 범죄자가 구금된 감옥에 갇혔다면 놈들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지금은 다행이었다.
 이 옥 안에는 알폰소 본인과 연약해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전부였으니까.
 듣기론 저 여자도 왕국 수배범이라던데······.
 도적이라나 뭐라나.
 생각도 잠시, 난데없이 바깥에서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 쿠구구구궁!
 바닥이 진동할 정도의 굉음이다.
 뒤이어 거친 사내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죄수를 내놔!
 
 “어, 으어!?”
 알폰소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건 필시 강철두의 목소리였다.
 한데 그 빌어먹을 놈이 도대체 왜?
 설마 자신을 구해주려고?
 그 녀석······. 설마 후회했던 것인가?
 ‘지난 하루 동안, 시간은 우리에게 끈끈한 우정을 선물했구나아!’
 어느새 알폰소는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뜨거운 외침을 토해냈다.
 “나, 나아 여기 있다아!! 강처얼두우!! 여으기야!! 여으기다!! 어서!!”
 목이 터져라, 미친 듯이,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수배범 관리소가 개판이 되자 옥에서 난동이 일어났다.
 죄수들은 양손으로 쇠창살을 움켜쥐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와아아! 어떤 미친놈이 쳐들어왔는진 몰라도 모조리 다 쓸어버려라!!”
 “다 휩쓸어버려!!”
 죄수들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 외침 속에 알폰소도 있었다.
 “으아아아! 쟤가 내 친구다아! 날 구하러 온 거라고! 우하하하하!”
 자랑하지 않을 수가 있나?
 알폰소는 성대가 갈라지도록 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때, 같은 옥에 갇혀 있던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널 구하러 온 거라고?”
 알폰소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보았다.
 왕국 수배범이라던 그 도적이다.
 여태 한마디 말도 없더니······.
 알폰소는 우쭐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그으래! 날 구하러 온 거야.”
 “저 남자, 설마 혼자 온 건 아니겠지?”
 “으응? 혼자다. 강처얼두우는 내 영지에 쳐들어올 때도 혼자여써.”
 “무리야. 혼자선.”
 말을 마친 그녀는 주변을 향해 턱짓했다.
 그러고선 이어 말했다.
 “봐. 이곳에 있는 죄수들을. 이 많은 범죄자를 다루는 관리소의 관리병들이 그렇게 우스워 보여?”
 “흥. 그래 봐야 처얼두에겐 안 된다.”
 “대단한 믿음이군. 그냥 교수형 집행 날짜나 기다리는 게 속 편할걸?”
 말을 마친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 그녀의 귀로 알폰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처얼두를 몰라서 그래.”
 그래, 강철두는 한다면 하는 놈이다.
 당해봐서 안다!
 
 * * *
 
 관리소 건물 내부로 진입하자 온갖 장비를 갖춰 입은 관리 병력이 즐비했다.
 강철두는 스톤 스킨을 두르고 새로 구한 해머를 휘둘렀다.
 후웅!
 본인보다 10센티는 더 큰 해머를 나무 목검처럼 휘둘러대니, 관리병들로서는 섣부른 접근이 불가능했다.
 저거에 맞는다면 골통이 그대로 부서질 것이다.
 “원거리 마법으로 놈의 진을 빼놓는다!”
 관리단장이 외치자 마법을 쓸 줄 아는 관리병들이 나섰다.
 곧장 화염과 얼음 덩어리들이 강철두를 덮치기 시작했다.
 강력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염과 얼음은 살갗에 닿기만 해도 치명적일 테다.
 방어력만 믿고 무작정 마법을 맞을 순 없다.
 강철두는 해머를 풍차처럼 돌리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웅!!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마법들이 회전하는 해머에 닿자마자 파훼되었다.
 “더, 더! 더 뿌려라! 언제까지고 해머를 돌릴 순 없을 것이다! 발사하라! 놈이 지칠 때까지!”
 파바바바밧!!
 수십 개의 마법이 빗발치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마치 보스 레이드를 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 정도였으니까.
 물론, 이 경우엔 보스가 인간이다.
 어느새 강철두는 한 손만을 이용해 해머를 돌리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이와 동시에 다른 손으론 매직 미사일을 생성했다.
 검지 끝에 맺힌 새하얀 빛덩어리.
 강철두는 그것을 발사했다.
 푸슈우우우웅!!
 매직 미사일은 목표에 반드시 명중하는 특징을 지녔다.
 그야말로 사기적인 능력인 것이다.
 다만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위력이 극단적으로 약하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때문에 살상용 마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인지 마법사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놈이 매직 미사일을 시전한다. 무시하고 끝까지 공격을 멈추지 마!”
 녀석들은 강철두의 매직 미사일을 철저히 얕보고 있었다.
 하지만······.
 “크아악!”
 “무, 무슨 매직 미사일 따위가!!”
 “마, 말도 안 되는 마공이다!”
 “저놈 도대체 뭐야!”
 그들은 크게 놀랐는지 저마다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하긴, 강철두가 장난삼아 올린 마력 스텟의 수치만 해도 상당하다.
 스텟 자체가 하도 괴랄하니 한낱 매직 미사일조차도 총알과 같은 위력을 내는 것이었다.
 “크아악!”
 “제, 젠장!”
 그쯤 되자, 마법사들은 흡사 벌집을 상대하는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언제 어디서 매직 미사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법사들의 공격은 금세 소극적으로 변했다.
 심지어 쉴드를 펼치며 뒷걸음질 치는 녀석도 보였다.
 강철두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우다다다닥!!
 온 힘을 다해 앞을 향해 뛰었다.
 바닥의 대리석에 금이 갈 정도의 추진력이었다.
 로켓포와 같은 빠르기를 머금은 강철두가 금세 적진 한복판에 들어섰다.
 “으라압!”
 후우우웅!
 당황한 놈들을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퍽! 퍼버버버벅!
 그 파괴력만 해도 2,716이다.
 해머에 얻어맞은 병력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본격적인 근접전이 펼쳐지자 이후엔 속전속결이었다.
 강철두는 미친 듯이 해머를 휘둘러 댔다.
 퍽! 퍽! 퍽!
 그러는 와중에도 사방팔방에서 칼질이 빗발쳤다.
 카가각!
 아직까진 스톤 스킨의 효력이 지속되고 있었기에, 모기 물리는 정도의 가려움이 일 뿐이었다.
 하지만 180초는 금세 지나갔고, 스톤 스킨의 버프가 끝났다.
 재 시전을 위한 쿨타임은 1,620초다.
 그때까진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낮다.
 카가가각!
 다시금 사방에서 빗발치는 칼날.
 “아오!”
 이제는 피부가 벌겋게 올라올 정도의 고통이 느껴졌다.
 나아가, 일부 강한 단장급 녀석들이 휘두르는 검은······.
 부우욱!
 커터칼로 할퀴고 간 것처럼 살갗이 찢어질 정도였다.
 뼈 갑옷을 꿰뚫을 정도의 파괴력.
 역시나 범죄자들을 가두는 곳이었기에 강자가 있을 수밖에.
 핏물이 후두둑 흐른다.
 곧장 포션을 바르거나 마시면서 체력을 회복해야겠지만,
 전투 중에 포션을 흡입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사방팔방에서 칼과 마법이 빗발치는데 포션 먹을 겨를이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회복 계열의 스킬은 매우 유용하다.
 강철두는 용사이며 모든 클래스의 스킬을 다룰 수 있다. 이러한 이점은 지금과 같을 때 빛을 발한다.
 혼자 다 해 처먹을 수 있는 것이다.
 강철두는 회복의 정령 소환술을 시전했다.
 손바닥만 한 정령이 강철두의 주위를 맴돌며 회복술을 펼쳤다.
 그의 체력이 조금씩 회복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강철두는 기합을 내지르며 놈들을 굴복시켰다.
 결코 놈들의 목숨을 빼앗진 않았다.
 필요한 건 강화석을 대량으로 훔쳤다는 죄수이지, 이들의 목숨이 아니었으니까.
 
 * * *
 
 모든 관리병을 때려눕혔다.
 강철두는 이곳 관리소에 온 목적을 상기했다.
 대량의 강화석을 훔쳐서 숨겨놓았다는 도적년.
 그 여자를 찾아야 한다.
 무기 상점 주인장의 말을 떠올렸다.
 ‘근래에 강화석을 대량으로 훔쳐 엄청난 수배금이 붙은 레이나라는 도적······.’
 이름이 분명 레이나였다.
 우선 관리소에 붙어 있는 수배서부터 확인했다.
 오래지 않아 레이나의 몽타주가 그려진 수배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헤일루안 왕국 수배서>
 이름: 레이나
 나이: 20대 중반 추정
 성별: 女
 신체 사항: 160cm 마른 체형
 특이 사항: 거짓말에 능숙하고 교활한 성격.
 현상금: 420골드.
 죄목: 다수의 절도, 사기, 공갈.
 
 ‘이 여자로군.’
 생긴 건 눈이 쫙 찢어져 교활해 보였고, 코는 커다란 주먹코였다.
 굉장히 개성 있게, 다른 말로는 못생겼기에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강철두는 쇠창살로 가로막힌 옥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죄수들이 난리다.
 “이야아아아아! 날 꺼내줘! 그렇게만 해주면 평생의 보스로 모셔주마!!”
 “나는 엉덩이를 대주마! 어이! 멈추라고!”
 모조리 무시했다.
 오래지 않아 남녀 한 쌍이 갇혀 있는 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녀석은 알폰소였다.
 알폰소는 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한 채 그렁그렁한 눈동자로 강철두를 바라보았다.
 “이, 이 너석. 그으래. 나 여으기 있다. 여으기 이써. 크흑.”
 알폰소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팔을 뻗었다.
 “아.”
 강철두는 짧게 신음했다.
 불과 반나절 전에 처넣은 녀석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 할까······.
 강철두가 제아무리 철면피라 해도 어색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너 때문에 온 게 아니야.”
 “으, 으응? 거지슬 말하지 마.”
 “거짓이 아니야. 난 아직도 널 넘기고 받은 500골드가 만족스러워. 후회가 안 된다고.”
 “거지말! 거지말!”
 알폰소는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때마다 콧구멍에 맺혀 있던 콧물이 덜렁거렸다.
 강철두는 인상을 슬쩍 찌푸리며 다시 한 번 팩트 폭행을 날렸다.
 “너 말고, 저 여자를 보러 온 거다.”
 “아니야아아아!”
 알폰소는 주저앉은 채 비명을 내질렀고, 어느새 여자 도적, 레이나가 얼빠진 얼굴을 한 채 강철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날 보러 왔다고? 아니, 다 됐고, 당신 어떻게 혼자서 이곳의 병력을 뚫은 거지?”
 그녀는 마치 드래곤이라도 보고 있는 것처럼 강철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다.
 남자답고 강인한 생김새에 엄청난 무력.
 그렇게나 대단한 남자가 자신을 보러 왔단다.
 그녀의 가슴이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뒤 들려온 강철두의 목소리는, 그녀의 환상을 아작내기에 충분했다.
 “강화석 어디에 숨겼어? 다 내놓는 게 좋을 거다. 안 주면 널 죽일 거야.”
 레이디고 뭐고 없었다.
 강철두는 미친개처럼 으르렁댔다.
 
 
 Chapter 6
 
 
 피식.
 레이나는 가벼운 웃음을 뱉으며 강철두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강화석을 내놓지 않으면 죽인단다.
 그 협박이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반대로 풀이하자면, 강화석을 내놓으면 살려준다는 것 아닌가?
 어차피 그녀는 이대로 있다간 교수형에 처할 운명이었다.
 영지 수배범이라면 모를까, 왕국 수배범의 최후는 무조건 사형이다.
 죽음을 각오했건만, 살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그렇다 해도 전부를 줄 순 없다.
 “날 감옥에서 내보내 줘. 절반을 주지.”
 “아쉬운 건 너인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부 주지 않는다면 죽일 거다.”
 “조, 좋아. 그렇다면 7할을 주지.”
 “전부.”
 강철두의 입술은 고집스럽게 전부라는 단어만을 내뱉었다.
 레이나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이곳에서 나가는 게 최우선이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날 내보내 줘.”
 “그러지.”
 강철두는 곧장 옥의 문을 땄다.
 “자, 이제 불어라. 강화석은 어디에 숨겼지?”
 그 물음에 레이나는 주변을 의식하며 강철두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까치발을 들고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칼리므 사막.”
 “사막이라.”
 “펜달 왕국과 헤일루안 왕국을 가로막고 있는 천연 국경선이지.”
 “정확한 위치를 말해.”
 “그곳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거야? 어차피 내 안내 없이는 못 찾아. 동행해 줄게.”
 말을 마친 그녀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녀를 따라 걷던 강철두는 불현듯 고개를 뒤로 돌려보았다.
 “······.”
 넋이 나간 알폰소가 보였다.
 “뭐 하냐, 안 나오고.”
 “으, 으응?”
 “나와.”
 “나, 나느은······. 자신 없다. 나가 봐야, 처얼두 네가 나를 또 넘길 테지.”
 “그럴지도 모르지.”
 “이, 익!”
 알폰소는 잇몸을 갈았다.
 거짓말이라도 해주면 안 되나?
 결국 알폰소는 속에 맺혀 있던 것을 분출하고야 말았다.
 “나느은! 처얼두 네가 날 구하러 온 줄 아라따!”
 “그래서 안 나올 거야? 그럼 여기서 사형 집행 날짜나 기다리던가.”
 강철두가 미련 없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폰소가 다급히 외쳤다.
 “자, 잠까안! 아직 내 말 안 끝나써!”
 할 말이 남아 있다는 핑계로, 알폰소는 황급히 강철두의 뒤를 쫓았다.
 암, 여기서 죽을 순 없는 거다.
 
 * * *
 
 헤일루안 왕국의 최전방에 위치한 도시가 필라도였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조금만 걸어나가면 칼리므 사막이 나온다.
 이 사막을 건너게 되면 대륙의 또 다른 왕국 중 하나인 펜달 왕국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그저 사막에 숨겨 강화석을 찾아오면 그만일 뿐.
 
 늦은 밤 사막은 선선했다.
 낮이 되면 찜통더위를 맞이할 테지만, 사막의 일교차는 무척이나 큰 편이다.
 사막엔 낮의 열기를 붙잡을 식물이 없기에 밤이 되면 추워지는 것이다.
 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다만,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 평원은 저절로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이 푹푹 꺼지기 때문에 평지를 걷는 것보다 곱절은 더 힘든 것이다.
 “헤엑, 헤엑, 헤엑.”
 그래서인지 알폰소는 꽤 힘들어 했다.
 알폰소는 끝끝내 강철두를 따라왔다. 왕국 수배범이기 때문에 단독 행동을 하다간 금세 잡히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좋든 싫든 강철두에게 붙어 있는 게 안전했다.
 하지만 사막 횡단은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이 순간에도 노예 소녀는 강철두가 잡아준 최고급 객실에서 편히 쉬고 있을 텐데!
 “얼마나 더 가야 되니야? 헤엑.”
 알폰소가 앞서 걷던 레이나와 강철두를 향해 물었다.
 한데 그때, 둘의 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므, 무어야? 왜 멈춰?”
 “쉿.”
 레이나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덩달아 알폰소는 입을 꾹 닫고 얌전히 서 있었다.
 가만 보니 저만치 앞에서 모래가 꿈틀대고 있는 게 보였다.
 가만, 모래가 꿈틀댄다고?
 궁금증이 길어질 새 없이 강철두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샌드웜이네.”
 샌드웜!
 모래 속에 사는 벌레형 괴수다.
 말이 벌레지, 그 크기만 해도 2~5미터나 된다.
 스르르륵.
 꿈틀대는 모래가 점차 가까워진다.
 알폰소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 어!!”
 바로 그때.
 -쿠에에에에엑!
 모래를 꿰뚫고 거대한 샌드웜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었다.
 끔찍한 모습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거대한 지렁이와 지네가 합쳐진 외형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둥근 아가리에 다닥다닥 붙은 이빨은 꼭 피라냐 같아 한번 먹히면 그대로 토막 날 것 같다.
 눈은 퇴화하여 보이지 않았는데도, 샌드웜은 정확히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동을 느끼는 것이다.
 “나, 나도오 검을 다오오!”
 알폰소는 마음에도 없는 소릴 내뱉었다.
 실제로 그는 조금씩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가 언제 저런 대형 괴수를 상대해 보았겠는가?
 해봐야 영지의 기사들을 이끌고 던전 사냥을 몇 번 해본 게 고작이었다.
 기사들이 스켈레톤을 포박해 오면, 망치를 가지고 놈의 골통을 깨부수며 스트레스를 날리곤 했었다.
 그렇게 해서 올린 레벨이 꽤 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야생의 대형 괴수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반면 강철두는 흥미로운 눈동자로 샌드웜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물은 처음 보네.”
 그의 고향 한국에는 사막이 없었다.
 간혹 해외로 나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샌드웜을 본 적은 없었다.
 그가 알기로 샌드웜은, 지닌 무력 대비 경험치가 상당히 높은 녀석이다.
 즉, 훌륭한 경험치 원이다.
 어느새 레이나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어디, 수배범 관리소의 병력을 어떻게 뚫어낸 건지 확인을 해볼까?”
 구경하겠다는 말을 참 어렵게도 한다.
 강철두는 혀를 차며 등허리에서 해머를 빼 들었다.
 -쿠에에에에엑!
 그 소리에 반응한 건지, 샌드웜이 괴성을 내질렀다.
 “고놈 참 포악하군.”
 강철두는 즉시 놈을 향해 뛰어들었다.
 퐈봐바바바밧!
 모래가 한 움큼씩 파이며 평소보다 움직임이 느렸다. 하지만 상관없다.
 일단 거리를 좁히기만 하면!
 “으라아아!”
 기합을 내지르며 놈의 몸통을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푸아아악!
 -꾸에에에에엑!!
 초록색 피가 사방팔방으로 튀며 일격에 몸통이 터졌다.
 강철두는 얼굴을 뒤덮은 초록색 피를 떨쳐냈다.
 -끼에에······.
 샌드웜은 한 방에 치명타를 입은 건지 바르작거리고 있었다.
 강철두는 쓰러진 놈의 면상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음. 이쯤이려나?”
 놈의 뇌가 있을 법한 곳을 확인한 것이었다.
 이내 양손으로 해머를 들어 뒤통수까지 젖혔다.
 후우우우욱!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푸아아아악!
 뇌수와 초록색 피가 튀며 샌드웜이 즉사했다.
 
 [경험치 2,000 획득!]
 
 엄청난 경험치다.
 스켈레톤이 300을 줬으니 족히 7배에 가까울 정도!
 경험치도 꽤 차올랐다.
 
 [EXP 4,100 / 9,200]
 
 현재 강철두의 경험치 총량은 9,200이다.
 샌드웜을 잡으면 금세 레벨 업을 할 수 있을 테지.
 강화석을 찾으러 온 이 사막은, 여러모로 강철두에게 이로웠다.
 “허어.”
 어느새 저만치 뒤에 있던 레이나가 감탄의 한숨을 토해냈다.
 그녀는 강철두의 무력에 크게 놀란 듯 보였다.
 “이 정도라면 확실히······.”
 “뭐가?”
 “강화석을 되찾을 수 있겠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도대체 어디에 숨겼기에?”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쫓기다가 이 사막에 들어왔었지. 그때 난, 그 누구에게도 강화석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래, 그래서 모래 지옥에 강화석이 담긴 가방을 던져 버렸지.”
 “모래 지옥?”
 강철두의 의문에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
 “그곳은 말 그대로 칼리므 사막의 지옥이야. 샌드웜 밭이기도 하고, 샌드 스톰까지 출몰하지.”
 아, 그러니까 훌륭한 경험치 밭이라는 건가?
 게다가 그 밭의 경험치를 모조리 다 먹으면 강화석까지 덤으로 얻고?
 강철두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직경 100미터의 거대한 구.
 저곳에 발을 디디면 곧장 빨려 들어가기에, 모험가들은 저곳을 모래 지옥이라 부른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가장 먼저 감상을 내뱉은 건 알폰소였다.
 “모래가 끄또 없이 꿈틀댄다.”
 그의 말대로였다.
 푸스스스스.
 마치 톱밥에 묻어둔 갯지렁이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모래가 요동쳤다.
 도대체 저 안에 샌드웜이 몇 마리나 있는 걸까?
 아니, 다른 건 다 됐고 저 안에다 강화석 가방을 던져 버렸다고?
 강철두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진짜 네 말대로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나 보네. 근데, 저래서는 설령 본인이라도 찾지 못할 텐데?”
 강철두는 그녀의 수배령에 적혀 있던 특이 사항을 떠올렸다.
 ‘거짓말에 능숙하고 교활한 성격.’
 물론 수배령을 100% 신뢰할 순 없다.
 강철두마저도 짓지도 않은 죄목이 덧씌워져 있었으니까.
 모든 죄가 시스템화되어 정확히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세간에 떠도는 악명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죗값이 붙을 뿐.
 생각도 잠시.
 어느새 레이나가 목에 걸린 펜던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큐피트의 반쪽 심장이야.”
 그것을 강철두에게 넘기는 레이나였다.
 
 [큐피트의 오른쪽 반쪽 심장]
 등급 – 일반 (유니크)
 특수 기능 – 큐피트의 왼쪽 반쪽 심장과 한 짝을 이룬다. 짝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의 색깔이 핑크빛으로 물든다.
 
 정보를 확인함과 동시에 심장의 색깔을 확인했다.
 분명한 핑크색이다.
 또 다른 한 짝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겠지.
 “강화석을 넣어둔 가방에 또 다른 반쪽 심장을 넣어뒀다는 건가?”
 “이해가 빨라서 좋네.”
 “흐음.”
 “내가 그렇게 대책 없진 않다고. 가방에 다른 심장을 넣어둔 이상, 찾지 못할 일은 없을 거야.”
 거짓말은 아닐 테다. 아티팩트는 거짓을 말하지 못하니까.
 “오케이. 접수 완료.”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모래 지옥에 들어가는 건 상당한 위험을 동반할 거야.”
 강철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레이나는 의구심을 숨기지 않았다.
 “대책이 있는 거야?”
 “응.”
 “어쩔 셈인데?”
 “이렇게.”
 말을 마치자마자 구를 향해 매직 미사일을 발사했다.
 푸슝!
 푸부부부북!
 -꾸에에에에!
 모래가 꿰뚫리며 괴성이 터져 나온다.
 이와 동시에 강철두가 태연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말했다.
 “뭐해?”
 “응?”
 “도망쳐.”
 후다다다닥!
 강철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했다.
 뒤늦게 레이나가 욕설을 내뱉으며 꽁지를 내뺐고, 알폰소는 잠시 벙찐 채로 눈을 끔뻑대고 있었다.
 꾸에에에에에!
 샌드웜 수십 마리가 구를 꿰뚫고 머리를 내민다.
 놈들이 곧장 달려오기 시작한다.
 “으, 으어······. 이요오오오오옵!!!”
 알폰소 또한 뒤늦게 줄행랑을 놓았다.
 후다다다닥!
 세 사람은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었다.
 레이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외치기 시작했다.
 “샌드웜을 유인하겠다는 건가? 미리 말해주던가!”
 “그러면 너희가 나보다 먼저 도망칠 거 아니냐.”
 “뭐?”
 “미끼 정도는 있어야지.”
 그러니까, 레이나와 알폰소는 미끼라는 건가?
 이제 큐피트의 심장도 받았고, 강화석도 확실히 확보할 수 있다 이건가?
 뭐 이런 쌩 양아치가 다 있지!
 레이나는 이를 악물었다.
 역시나 왕국 수배범다운 발상이다.
 풀어 말해, 악당답다!
 “하, 한순간 너한테 반한 내가 밉다!”
 “아, 미안한데, 나 외모 많이 따진다.”
 “내가 뭐 어때서!”
 “시민증은 있냐?”
 “당연히 있지! 그렇게 당연한걸 뭐 하러 물어!”
 “아아, 종족이 인간인지 확인해 보려고 했지.”
 줄행랑을 놓으면서도, 강철두는 이죽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여유 있다는 것이겠지.
 한참을 도주하던 강철두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뒤에 레이나가 보였고, 저만치 뒤에는 알폰소가 보였다.
 그리고 알폰소의 바로 뒤편에 샌드웜들이 보였다.
 당장에라도 잡아먹힐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가앙! 처얼! 두우! 나아안! 여기서 주글 수! 없다아!”
 오냐, 나도 훌륭한 적금을 여기서 버릴 생각은 없단다.
 강철두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제야 뜀박질을 멈췄다.
 “자, 가볼까나.”
 파바바바밧!
 강철두는 경로를 바꿔 샌드웜들을 향해 내달렸다.
 “그건 내 적금이다!”
 암, 훌륭한 적금이지.
 아마 이번 탈옥을 통해 수배금이 더 올랐을 거였다. 알폰소의 몸값은 강철두와의 동행이 지속되는 한 끊임없이 부풀어 오를 테지.
 “크아아압!”
 한참을 내달리던 강철두가 돌연 펄쩍 뛰어올랐다.
 슈우우웅!
 모랫바닥에서 뛰어올랐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점프력.
 삽시간에 허공에 떠오른 강철두는 알폰소를 향해 아가리를 내민 샌드웜을 향해 검지를 뻗었다.
 푸슝!
 놈의 아가리를 향해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꾸에에에에에엑!
 놈의 하얀 이빨이 뭉텅이로 날아가더니, 포물선을 그리며 이내 모랫바닥에 쑤셔 박혔다.
 샌드웜은 타깃을 알폰소에서 강철두로 바꿨다.
 샌드웜과 강철두의 시선이 마주친다.
 “으자자자자!”
 높은 공중에 떠 있던 강철두.
 -크에에에에!
 샌드웜은 코브라처럼 고개를 치켜들어 하늘로 뻗어오기 시작했다.
 “그래, 와라.”
 강철두는 양손으로 해머를 꽉 쥐었다. 그러곤 곧장 하강하며 솟구쳐 오는 놈의 머리통을 향해 해머를 내려찍었다.
 푸우우우욱!
 공중에서부터 내려오던 중력까지 더해지니 곱절은 더 아플 거다!
 -쿠엑!
 놈의 아가리에 해머가 틀어박혔다.
 샌드웜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무서운 속도로 바닥을 향해 짓눌리기 시작했다.
 콰지지지지직!
 결국 바닥에 꽂힌 놈의 머리통.
 끄드드드득!
 모래바닥과 해머 사이에 끼인 아가리가 마찰을 이기지 못하고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끄드드드득!
 가죽과 뼈가 끊기는 끔찍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끄엑.
 
 [경험치 2,000 획득!]
 
 원큐다.
 거기다가 만족스러운 경험치까지!
 어느새 바닥에 착지한 강철두가 알폰소를 향해 말했다.
 “자, 이제 내 차례야. 뒤로 가라.”
 “처, 처얼두. 이번엔 날 지켜주는 거시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알폰소는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두는 스톤 스킨을 몸에 두르며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했다.
 
 [‘스톤 스킨’ 스킬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스톤 스킨’ 스킬의 레벨이 상승됩니다.]
 [‘스톤 스킨’ 스킬의 상승된 효과가 적용됩니다.]
 [3분간 방어력 5.5 상승.]
 
 “오!”
 그간 부지런히 사용했더니, 스킬의 랭크가 올랐다.
 
 1. 스톤 스킨
 [등급: 영웅]
 [레벨: E] ↑UP
 [쿨타임: 1,440초] ↓DOWN
 [지속시간: 180초]
 [효과: 방어력 5.5 상승] ↑UP
 일정 시간 동안 육체를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방어력을 올려 줍니다. 본인을 포함한 타인 발동이 가능한 버프형 스킬입니다.
 
 레벨은 F에서 E로.
 쿨타임은 1,620초에서 1,440초.
 방어력은 5에서 5.5로.
 레벨 업에 걸맞게 효과가 좋아졌다.
 E레벨의 스톤 스킨을 두르자 방어력은 2,158.4까지 올랐다.
 마음이 든든해진다.
 “들어와!”
 -꾸에에에에에!
 수십 마리의 샌드웜들이 발광을 하며 내달려온다.
 동료가 죽어서인지 놈들은 더 흉포해졌다.
 “그래그래, 어서와.”
 대충 놈들의 숫자를 가늠하던 강철두는 미소를 지었다.
 레벨이 꽤나 오를 것 같다.
 2~5미터의 크기를 자랑하는 샌드웜 수십 마리가 모래를 뚫고 돌진해온다.
 놈들이 이동할 때마다 튀는 모래가 바람이 되어 휘몰아쳤다.
 시야마저 모래로 뒤덮일 지경.
 강철두는 눈알을 비집고 들어오는 모래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오.”
 눈을 가늘게 떴다.
 속눈썹으로 눈동자가 가려질 정도로.
 이렇게 하니, 그나마 모래알이 속눈썹에 가로막혀 침투하지 못했다.
 퐈바바바밧!
 어느새 샌드웜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와 있었다.
 순간 강철두는 해머를 야구 배트처럼 쥐었다.
 “와라.”
 그의 중얼거림마저도 모래바람에 파묻힐 지경.
 -구에에에엑!
 선봉에 서 있던 샌드웜이 아가리를 벌렸다.
 “으라차!”
 강철두는 해머를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 놈의 아구창을 냅다 깠다.
 마치 어퍼컷과 같은 모양새.
 퍼억!
 -쿠엑!
 놈의 머리통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몸통과 분리됐다.
 
 [경험치 2,000 획득!]
 
 푸와아아아악!
 초록색 피가 튀며 모래바람과 뒤엉켰다.
 강철두는 손사래를 치며 피바람을 막아냈다.
 -꾸에에에에에!
 뒤이어 몸을 날리는 샌드웜은 5미터나 되는 놈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최홍만이나 마찬가지다.
 -쿠아아!
 놈이 아가리를 벌리며 강철두를 집어삼키려 했다.
 강철두는 재빨리 회피했다.
 파바박!
 녀석의 거대한 입은 애꿎은 모랫바닥에 처박혔다.
 푸수수수숙!
 놈은 그대로 모래를 뚫고 들어갔다.
 이내 두더지처럼 강철두가 딛고 있는 땅 위로 솟구쳤다.
 -크아아!
 놈의 아가리가 강철두의 허리춤을 물었다.
 “씨X럴!”
 강철두는 욕설을 내뱉었다.
 이렇게 잡혀서야 해머를 휘두를 수 없다.
 그는 상당히 열 받은 얼굴로 놈의 이마를 깨물었다.
 -꾸에에에엑!
 그야말로 개싸움이 벌어졌다.
 -쿠아아아아아!
 이마가 깨물린 놈의 뒤로 수십 마리의 샌드웜이 접근해 왔다.
 강철두는 볼 것도 없이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푸슝!
 -꾸엑!
 잠시의 시간을 번 뒤 자신의 허리춤을 깨물고 있던 샌드웜의 면상을 본격적으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으드득! 으드득!
 -꾸에에에에에에엑!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놈은 아가리에 힘을 빼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제야 자유의 몸이 된 강철두는 도주하는 놈의 뒤통수를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후웅!
 퐈아아악!
 
 [경험치 2,000 획득!]
 [레벨 업!]
 
 놈의 숨통이 끊어지자 레벨이 올랐다.
 보너스 스텟을 찍을 여유 따윈 없었다.
 수십 마리의 샌드웜들이 사방팔방에서 강철두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니까.
 -쿠에에에에!
 땅속에서, 전방에서, 옆에서, 후방에서, 그야말로 온갖 군데에서 놈들이 공격을 시도했다.
 파바바밧!
 한 녀석이 모랫바닥을 꿰뚫고 강철두의 다리를 깨물려 했다.
 “젠장 할 놈!”
 강철두는 곧바로 다리를 들었다가 그대로 내려찍었다.
 퍽! 퍽!
 그야말로 밟아 죽이는 모양새였다.
 -꽥!
 놈은 상당한 타격을 입은 채 땅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뒤쫓을 새 없이 앞에 있던 샌드웜이 이빨을 드러냈다.
 강철두는 놈의 목구멍을 향해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푸슝!
 -꾸에에엑!
 어떤 괴수든 입속은 연약하다.
 혀가 꿰뚫린 채 목에 구멍이 난 녀석은 고통에 발광했다.
 강철두는 재빨리 놈의 몸통에 해머를 박아 넣었다.
 퍽!
 놈의 복부가 참혹하게 일그러지며 터져 나갔다.
 찢어진 복부 사이로 초록색 창자가 줄줄 흐르며 놈은 맥없이 쓰러졌다.
 
 [경험치 2,000 획득!]
 
 모래에 흥건하게 스며든 창자를 지르밟으며, 강철두는 해머를 길게 일一자로 휘둘렀다.
 허공이 찢어질 기세의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쐐애애애애애앵!!
 그 천둥과 같은 일격에 전방에 있던 4마리의 샌드웜이 당했다.
 퍼버버벅!
 
 [경험치 2,000 획득!]
 [경험치 2,000 획득!]
 [경험치 2,000 획득!]
 [경험치 2,000 획득!]
 [레벨 업!]
 
 단숨에 레벨이 올랐다.
 거칠었던 호흡이 단번에 안정을 되찾고 체력이 가득 차올랐다.
 ‘한 번에 가야겠다.’
 강철두는 여세를 몰아 나자빠진 샌드웜을 밟고 도약했다.
 그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자 샌드웜들이 길게 몸을 뺀 채 아가리를 내밀었다.
 “읏차!”
 강철두는 놈들의 이빨을 절묘하게 밟으며 돌계단 걷듯 허공을 뛰었다.
 팟! 팟! 팟!
 한참을 뛰던 강철두가 놈들을 밟고 또 한 번 도약했다.
 후우우우웅!
 그의 몸이 수십 미터는 떠올랐다.
 샌드웜들은 강철두를 잡겠다고 서로 몸이 꼬이는지도 모른 채 뒤엉켜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놈들이 한데 뭉친 것이다.
 이것은 강철두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이내 강철두는 중력에 의해 서서히 속도가 줄어들었고, 곧바로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애앵!
 강철두는 해머를 발아래로 내려 추락의 속력을 높였다.
 쐐애애앵!!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지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운석은, 한데 뭉쳐 있는 샌드웜들의 골통을 짓뭉개기에 충분했다.
 콰지지지지지직!
 -꾸에에에에엑!
 해머는, 겹겹이 뭉쳐 있던 놈들을 파고들며 치명상을 입혔다.
 
 [경험치 2,000 획득!]
 [경험치 2,000 획득!]
 [경험치 2,000 획득!]
 [경험치 2,000 획득!]
 [경험치 2,000 획득!]
 [경험치 2,000 획득!]
 [레벨 업!]
 
 아찔할 정도로 경험치가 차오르고 있었다.
 
 * * *
 
 레이나는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샌드웜들이 별다른 힘을 쓰지도 못한 채 나가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물론 강철두도 지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그는 마치 레벨 업이라도 한 것처럼 쌩쌩해지기 일쑤였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연달아 그랬다.
 어찌 이런 일이?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별다른 아티팩트를 착용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건 해머가 전부 다.
 입고 있는 뼈 갑옷도 그리 좋은 아이템은 아니었으니까.
 한데도, 저런 아이템을 가지고 수십 마리의 샌드웜을 박살 내다니?
 게다가 이렇다 할 스킬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샌드웜들을 물리쳤다.
 아니, 세상천지 어떤 미친놈이 샌드웜의 이빨을 밟고 도약할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거다.
 강철두가 강한 건 알고 있었으나,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저 정도라면, 국왕 직속 기사단인 그렌 가드에 입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거짓말 좀 크게 보태서, 그렌 가드 한 명의 무력은 하나의 국가와 버금간다고들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레이나는 피식 웃었다.
 왕의 기사인 그렌 가드라니.
 저 남자는 악당이지 않은가?
 어엿한 왕국 수배범이다.
 그 악명을 떠올리던 레이나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 돌연 고개를 내저었다.
 ‘왕국 수배서 따위로 저 남자를 담아내기엔 한참이나 부족해.’
 레이나는 자신이 굉장한 거물을 만난 것이라 확신했다.
 이 남자는 고작 왕국 수배범 따위로 악명을 날릴 위인이 아니다.
 빌어먹을 정도로 양아치 같은 성격과, 저만한 무력이라면?
 그래 세계의 적, 대륙 수배범에 어울릴 남자다.
 
 * * *
 
 굉장한 경험치 공급원인 샌드웜의 단점을 꼽아 보자면, 전리품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레벨을 꽤 올렸기 때문에 그다지 마음에 걸리는 단점도 아니었다.
 “아오, 모래!”
 모든 샌드웜을 물리친 강철두는 양손으로 머리칼을 들쑤셨다.
 털어도, 털어도 모래가 끊임없이 털려 나왔다.
 그 꼴을 잠자코 지켜보던 알폰소가 다가왔다.
 알폰소는 입바람을 후후 불며 강철두의 모래를 털어주려 노력했다.
 “히히히. 가앙처얼두. 멋이꾸나.”
 알폰소는 엄지를 치켜들곤 선홍빛 잇몸을 드러낸 채 활짝 웃고 있었다.
 어쩐지 동네 바보형 같은 미소다.
 그러다 알폰소는 돌연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나도오 너처럼 강해지고 싶구나아. 도대체 레벨이 며치나 되어야 그리되나?”
 “글쎄.”
 강철두는 애매한 답변을 하고선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강철두>
 레벨: 17
 직업: 용사 (+1)
 [근력 388] [마력 101] [민첩 288] [체력 284]
 물리 공격력: 2,716
 마법 공격력: 101
 회피력: 288
 방어력: 596.4
 [미분배 스텟: 600]
 [EXP 500 / 15,200]
 
 레벨은 11에서 17이 되어 있었다.
 보너스 스텟만 600개다.
 스텟의 분배는 근력에 200을 주고 마력에 100, 민첩과 체력에 각각 150씩 주었다.
 최종적으로,
 근력 588, 마력 201, 민첩 438, 체력 434가 되었다.
 한 번에 엄청난 스텟을 올려서인지 근육 한 올 한 올에서 힘이 용솟음치는 게 느껴졌다.
 지금 당장 힘을 쓰지 않고선 간지러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이쯤 되니 강철두조차도 조금은 얼떨떨해졌다.
 강해지는 속도가 상식 밖이다.
 물리 공격력만 해도 기존 2,716에서 4,116까지 올랐다.
 근력 스텟에 200포인트가 추가된 것으로 인해, 엄청난 공격력 상승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기대 이상인데?’
 과거, 지구에서 강철두의 스텟을 따라잡을 날이 머지않았다.
 당시 강철두의 스텟 중 수치가 가장 높은 것은 근력이었다. 그 수치는 1,200.
 이계에 온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과거의 스텟과 차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보너스 스텟 100배의 위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물론, 정작 중요한 것은 스텟보단 아이템이었다.
 그 당시 강철두는 +9짜리 전설템으로 도배를 해서, 공격력과 방어력, 회피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쯤 되니 마왕조차도 꼬랑지를 내릴 수밖에.
 이곳에서도 전설템을 구하면 그만이다. 도리어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깡 스텟이 높을수록 아이템의 위력은 배가되니까.
 ‘음.’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강철두가 돌연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보니 오늘의 스펙 업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질 않나?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은 강화석 가방이었다.
 그래, 아직 강화가 남아 있었다.
 샌드웜이 모두 빠진 모래 지옥은 고요했다.
 강철두는 큐피트의 반쪽 심장을 레이더 삼아 모래를 뒤졌다.
 어렵지 않게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곁에 있던 레이나에게 물었다.
 “이 가방 맞지?”
 “······ 응.”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아까운 것이겠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고, 강화석을 빌미로 탈옥은 했으나 이제는 심정이 다를 수밖에.
 그러거나 말거나 강철두는 가방을 열어보았다.
 듣던 대로 강화석이 잔뜩 보인다.
 
 방어구 강화석(일반) 23개.
 방어구 강화석(정예) 5개.
 방어구 강화석(영웅) 1개.
 무기 강화석(일반) 20개.
 무기 강화석(정예) 8개.
 무기 강화석(영웅) 2개.
 장신구 강화석(일반) 13개.
 
 도합 72개의 강화석이다.
 강화석의 드랍율을 생각한다면 보통 많은 게 아니었다.
 751% 던전에서 1개를 구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이 도둑년은 도대체 얼마나 도둑질을 했던 걸까?
 뭐, 어쨌거나 이제는 모두 자신의 것이 됐다.
 강철두는 이 중에서 일반 등급의 무기 강화석을 사용할 결심을 굳혔다.
 
 [무기 강화석]
 등급 – 일반
 효과 – 기본 공격력 10% 상승
 설명 – 무기에 가져다 댈 시 성공 확률이 뜬다.
 
 등급이 일반이든 정예든 영웅이든 전설이든 공격력 10% 상승의 효과는 똑같다.
 다른 점은 ‘확률’이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확률이 확연히 높아지는 것이다.
 다만 신화 등급의 경우 강철두조차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했다.
 ‘일단은 좀 띄워볼까나.’
 우선 일반 등급으론 +4까진 띄울 수 있었다.
 강철두는 ‘트윈 헤드 오우거의 해머’에 강화석을 가져다 댔다.
 
 [+1 강화 성공 확률 70%]
 [‘무기 강화석(일반)’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곧장 승낙했다.
 잠시 뒤 해머에서 빛이 뿜어지며 결과가 나왔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해머 +1]
 물리 공격력 – 7 (+0.7)
 등급 – 영웅
 착용 조건 – 근력 200 이상
 설명 – 트윈 헤드 오우거의 거대한 해머. 웬만한 근력으론 드는 것조차 버겁다.
 
 70%의 확률답게 기분 좋게 성공했다.
 이로써 해머는 +1이 되었고, 공격력은 7.7이 되었다.
 강철두는 멈춤 없이 다음 강화석을 가져다 댔다.
 
 [+2 강화 성공 확률 50%]
 [‘무기 강화석(일반)’을 사용하시겠습니까?]
 
 50%라면 반반이다.
 곧장 승낙했다.
 하지만 이번엔 해머에서 빛이 뿜어지지 않았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다시.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해머 +2]
 물리 공격력 – 7 (+1.4)
 ······.
 ······.
 
 뒤이어 곧바로 +3에 도전했다.
 
 [+3 강화 성공 확률 30%]
 [‘무기 강화석(일반)’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두번째에 성공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해머 +3]
 물리 공격력 – 7 (+2.1)
 ······.
 ······.
 
 이제 목표치인 +4 강화다!
 
 [+4 강화 성공 확률 10%]
 [‘무기 강화석(일반)’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성공! 10% 확률임에도 운이 좋게 5번 만에 성공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해머 +4]
 물리 공격력 – 7 (+2.8)
 ······.
 ······.
 
 이로써 해머의 공격력은 9.8이 되었다.
 강화석은 총 10개를 사용했다.
 남은 강화석은 몽땅 아공간에 챙긴 뒤 물리 공격력을 확인했다.
 
 <강철두>
 레벨: 17
 직업: 용사 (+1)
 [근력 588] [마력 201] [민첩 438] [체력 434]
 물리 공격력: 4,116 - > 5,762.4
 마법 공격력: 201
 회피력: 438
 방어력: 911.4
 [미분배 스텟: 0]
 [EXP 500 / 15,200]
 
 무려 1,600정도의 공격력이 올라, 5,762.4가 되었다.
 이쯤 되자 조금 더 강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안 될 말이다.
 +5부턴 ‘일반’ 등급의 강화석으론 성공 확률이 0%다.
 다시 말해, 정예 등급 이상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조금 아까운 것이다.
 그렇기에, 더 좋은 무기를 구할 때 사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우선은 이걸로 충분하다 여겼으니까.
 어느새 강철두를 향해 레이나가 말을 걸어왔다.
 “이제 우리 인연은 이걸로 끝이야?”
 “응. 이제 볼 일 없지.”
 강철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레이나의 얼굴이 시무룩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금세 표정을 고쳤다.
 그리고 억지로나마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강철두는 빈 가방과 큐피트의 반쪽 심장들을 건넸다.
 “이것들은 서비스.”
 “아······.”
 레이나는 피식 웃었다.
 이건 되돌려주겠다는 건가?
 그러다 그녀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큐피트의 반쪽 심장 하나를 꺼냈다.
 그러곤 그것을 강철두의 목에 걸었다.
 “항상 걸고 다녀. 당신, 내가 찜했으니까. 또 만났으면 해.”
 마찬가지로 그녀의 목에도 큐피트의 반쪽 심장이 걸려 있었다.
 “그럼, 안녕.”
 그녀는 활짝 웃으며 작별을 고했다.
 
 * * *
 
 헤일루안 왕국의 셀리아 신전.
 이곳의 성녀인 제니는 용사 강철두의 목에 현상금을 걸자고 제안했었다.
 “용사 자격조차 없는 쓰레기!”
 지금, 그녀의 뻐드렁니가 바득바득 갈리고 있었다.
 이미 소식은 접했다.
 강철두는 자유도시 필라도에 등장했고, 그는 그곳의 수배범 관리소를 파괴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함께 다니는 범죄자를 잡아 넘겨 현상금을 지급 받기도 했단다.
 그래, 그것이 용사의 실체다.
 “너 따위가 무슨 마왕을 잡아? 웃기는 소리!”
 제니는 용사를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이제 그는 용사라 불릴 수 없었다.
 신탁의 내용조차도 말하지 않았는가?
 ‘만일 지금 당장 그를 모시지 않는다면 세상이 망할 거라고.’
 세상을 멸하려는 인간이 어찌 용사일 수 있겠는가?
 “끄아아아!”
 그녀는 제 머리칼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사실, 신탁의 내용대로 그날, 그때에, ‘당장’ 용사를 모셨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당장’ 그를 모시지 못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현 상황이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떳떳함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용사를 점점 더 나쁜 놈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 국왕은 지금이라도 수배령을 철회하고 용사를 모시는 게 맞다고 하였다.
 그녀는 거기에 대고 거짓 신탁을 고했다.
 ‘새로운 신탁을 받았습니다. 강철두, 그는 더 이상 용사가 아닙니다.’
 이미 수차례의 신탁을 받으며 그 신성력을 인정받은 제니였다.
 그녀의 말은 엄청난 영향력이 있었고, 막강한 신뢰를 지녔다.
 결국, 헤일루안 왕국의 국왕은 강철두를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용사가 아니다.
 따라서, 그는 마왕을 잡지도 못할 것이다.
 그는 그저 범죄자일 뿐.
 ‘너 따위가 무슨 마왕을 잡아?’
 그렇게, 헤일루안 왕국은 확신하고 있었다.
 강철두는 용사가 아니며, 그렇기에 마왕을 잡지 못할 것이라고.
 
 * * *
 
 청명한 날씨였다.
 푸르른 하늘 위로 떠다니는 새하얀 구름은 더없이 맑고 깨끗했다.
 짙어진 봄으로 인해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헤일루안 왕국의 경비대원들은 봄바람을 만끽하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때, 한 경비대원이 말했다.
 “이봐, 저게 뭐지? 저기 하늘에 떠 있는 거 말이야.”
 그의 말에 모든 경비대원의 시선이 하늘에 꽂혔다.
 “어라? 그러게. 저게 뭐지?”
 무언가 이상한 게 보였다.
 새하얀 구름과 대비되는, 새카만 원형의 소용돌이가 보였던 것이다.
 “저거, 어째 점점 커지는 거 같지 않아?”
 누군가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소용돌이의 크기는 점차 거대해지더니 주변 구름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제야 경비대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다, 당장 위에 보고 올려!”
 그러고선 움켜쥔 창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얄궂게도, 이해할 수 없는 자연 현상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후아아아아아앙-!
 이내 검은색 소용돌이가 회전을 멈췄다.
 그러자, 주변이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지저귀던 새들조차도 겁에 질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경비대원들은 저것이 무언지 깨달았다.
 저것은, 그야말로 마의 기운이 넘쳐나는······.
 “지, 지옥의 게이트다! 마, 마왕의 군대, 마왕의 군대야!”
 그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색 구체는 서서히 아가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심장이 아릴 듯한 괴성이 들려왔다.
 -꾸에에에에에엑!
 “저, 전원 전투 준비!! 뿔피리를 울려라!!”
 “마왕군이다! 마왕군이야!”
 여태껏 침묵으로 일관하던 마왕이, 서서히 대륙을 향해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마왕은, 아카도르 대륙 한 부분에 마왕성을 구축한 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왕이 움직이기 위해선 대량의 마기가 필요했으니까.
 그 마기는 마왕성 내부에 있는 데몬 스톤에서 출력되며, 이는 옮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마왕은 마왕성에서, 마치 던전의 보스처럼 자신에게 도전해 오는 용사들을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그간 아카도르 대륙이 무사했던 건 모두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저게 아니었다면 대륙은 이미 오래전에 마왕에 의해 멸망했을 테지.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하염없이 마왕성을 내버려 두는 건 바보 같은 행위다.
 데몬 스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륙을 향해 끊임없이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러다 대륙에 마기가 가득 차게 되면 마왕의 활동이 자유로워질 테다.
 이는 곧, 멸망인 것이다.
 그렇기에 여태껏 수많은 영웅들이 마왕에게 도전했던 것이고.
 어쨌거나, 이러한 이유로 현재 왕국 상공에 열린 지옥의 게이트에서 마왕이 등장할 일은 없었다.
 그저 마왕이 보낸 강력한 괴수들이 등장할 테지.
 성녀 제니는 이 부분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즉시 국왕을 찾았다.
 국왕 레이준 아스타는 그녀를 보자마자 구세주라도 마주한 양 애타게 외쳤다.
 “이, 이를 어쩐단 말인가!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그간 잠잠했던 마왕이 공격을 감행하다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심지어 이번 공격은 본국인 헤일루안 왕국에만 벌어졌다고 한다.
 즉, 대륙의 나머지 9왕국들은 평화롭기 그지없단 것이다.
 아니, 왜 하필이면 이곳만 공격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마왕이 강철두라는 존재를 의식하였기에 벌인 일이 아닐까 판단됩니다.”
 “뭐라? 강철두는 용사가 아니라 하지 않았느냐! 네 입으로 필시 그리 말했거늘! 한데 마왕이 어째서 강철두를 의식하고 이 땅을 공격한단 말인가!”
 아차, 말실수를 했다.
 제니는 황급히 머리를 굴렸다.
 거짓말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단 시작하게 되면 끝도 없이 구라를 남발하게 된다.
 “가, 강철두가 용사라 그런 것이 아니라, 대륙을 멸할 또 다른 악이기에, 마왕은 경쟁의식을 느낀 것이겠지요.”
 그녀는 그야말로 나오는 대로 씨불이고 있었다.
 뭐, 대충 아귀는 맞아 들었는지 국왕의 표정이 한결 수그러들었다.
 “하아! 하나 정작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다. 당장 지옥의 게이트를 막아야 하거늘, 왕국의 병력만으로 어찌 저 게이트를 막는단 말인가?”
 마왕이라고 해서 지옥의 게이트를 마구잡이로 뿌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상당한 마기를 끌어 올려야 하기에, 마왕조차도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한다.
 그런데도 지옥의 게이트를 열었다는 것은, 마왕이 작정했단 뜻이다.
 “우, 우선 이웃 펜달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시간이 촉박하다! 지원군을 요청한다 해도, 칼리므 사막을 건너와야 하거늘! 족히 하루는 걸릴 것이다! 게다가, 펜달 왕국이 정신을 놓지 않고서야 지원 병력을 보내줄 듯싶으냐?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며 우리가 멸망하길 기다리기나 할 테지!”
 레이준은 성녀의 무식함을 탓하며 역정을 내고 있었다.
 순간 성녀 제니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준은 끝끝내 고함을 내질렀다.
 “넌 우선 신전으로 가보거라!”
 레이준은 확실히 민감해져 있었다.
 본래라면 성녀를 금이야 옥이야 아끼거늘, 왕국이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금과 옥은 똥오줌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국왕은 바깥을 향해 외쳤다.
 “여봐라! 당장 그렌 가드를 소집하여라! 짐 또한 직접 출전할 것이다!”
 국왕은 몸을 번쩍 일으켰다.
 이래봬도 하나의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다.
 권력과 재력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무력 또한 겸하고 있었다.
 
 * * *
 
 강철두는 알폰소와 함께 필라도에 도착했다.
 귀찮음을 방지하기 위함인지, 그들은 얼굴에 터번을 빙빙 감은 채였다.
 척 보기에 사막에서 막 넘어온 상인들처럼 보였다.
 “처얼두야. 노예 소녀를 맡겨 놓은 여관이 여기야아?”
 “응.”
 간단히 답한 강철두는 여관에 들어섰다.
 마침 1층 식당에서 소시지를 야금야금 먹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오라버니!”
 그녀가 강철두를 보며 반색했다.
 터번으로 얼굴을 가렸거늘, 어찌 척 보고 아는지.
 강철두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괴팍한 성격의 그였지만, 노예 소녀에게만큼은 그 괴팍함이 덜했다.
 “뭘 그렇게 맨날 먹고 있냐?”
 “흐흐.”
 빈 접시가 5개는 보인다.
 그녀는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는지 하얀 이를 드러냈다.
 마주 웃던 강철두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곤 터번의 입 부분만 드러내어 소시지를 먹었다.
 “오, 맛있네.”
 “특제 양고기 소시지입니다!”
 꿀꺽-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알폰소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노예 소녀가 고개를 획 돌려 알폰소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도 드세요!”
 “으, 응? 허허! 그러언 소시지는 입맛에 맞지는 않지마는, 권유한다면 머거주는 게 인지상정이거느을.”
 알폰소가 여전히 허허 웃으며 겸연쩍게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러면서 그는 강철두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다행히 별다른 제지를 가할 것 같진 않다.
 알폰소는 포크로 소시지 하나를 찍었다.
 “후아아암”
 입을 쩍 벌렸다.
 그렇게, 소시지가 들어가려는 순간.
 -으아아아아악!!
 바깥에서 난데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지지직!
 곧바로 식당의 문이 부서지며 상처 입은 병사가 들어섰다.
 그는 숨을 헥헥 대며 두려운 눈동자로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푸슉!
 기다란 검이 병사의 심장을 관통했다.
 “크허억!”
 병사는 그대로 즉사했다.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던 알폰소는 소시지를 입속에 넣는 대신 비명을 내질러댔다.
 “끼으아아아!!”
 그와 동시에 부서진 식당 문을 비집고 마기를 풀풀 날리는 데스 나이트가 들어섰다.
 칠흑의 갑주로 몸을 두른 데스 나이트는, 일반적인 데스 나이트와는 크게 달랐다.
 저놈은 마왕이 부리는 괴수 중 하나다.
 일반 데스 나이트와는 다르게 저 녀석은 인격을 지녔다.
 무력 또한 보통의 괴수들과는 질적으로 달라서, 저 한 놈만으로도 이 필라도라는 도시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강하다 해도 뭐 대수랴?
 강철두는 샌드웜을 잡으며 폭풍 성장을 했고, 무기의 강화까지 끝낸 직후다.
 그는 소시지를 우물거리며 장난스럽게 해머를 빼 들었다.
 “어서와.”
 강철두가 놈을 반겼다.
 그제야 놈은 번쩍이는 안광으로 강철두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크르으. 보통. 기세가. 아니로군.
 “알아봐 주니 기쁘네.”
 -얼굴을, 가렸군. 네놈이, 인간계의 최강자 중 한 명이라는, 폭스인가?
 “아, 걔가 이 대륙의 최강자 중 한 명이었어? 아직 본 적은 없다만.”
 마왕군 녀석들은 아카도르 대륙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철저히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는 즉, 용사가 현신했다는 신탁 또한 알고 있다는 뜻일 테다.
 즉, 이번 침공은 자신으로 인해 벌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또한, 지옥의 게이트는 보통 마기를 잡아먹는 게 아니므로, 자신이 머무는 이곳 헤일루안 왕국만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강철두는 단 한 번의 대화로 모든 상황을 유추해내고 있었다.
 생각도 잠시.
 어느새 데스 나이트가 흥미로움을 감추지 못한 채 묻기 시작했다.
 -네놈은. 누구지? 들어 본 적 없는. 강자로군.
 “나? 저~쪽 세상에서 마왕 잡으러 온 인간이지.”
 -그렇다면. 네놈이?
 “응. 네놈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 그게 바로 나지.”
 강철두는 ‘용사’라는 단어를 굳이 언급하지 않으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데스 나이트는 확실히 당황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강철두가 불식간에 바닥을 박찼다.
 파밧!
 되먹지 못한 스피드.
 데스 나이트는 눈을 크게 떴다.
 우지끈!
 무언가가 번쩍였고, 해머가 뱃가죽을 강타했다.
 -끄아아아악!
 데스 나이트는 그 한 방에 죽기 직전까지 내몰렸으며,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통이 잡혀 있었다.
 -힘이······?
 강철두는 농구공을 쥐듯 데스 나이트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있었다.
 “꿈틀대지 마 이 자식아. 당장에 으깨버리기 전에.”
 말을 마친 강철두는 고개를 돌렸다. 식탁에서는, 벙벙한 어안을 깨물고 있는 소녀와 알폰소가 보였다. 그들을 향해 말했다.
 “너흰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갔다 올 테니.”
 그러더니 강철두는 데스 나이트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지옥의 게이트로 복귀하는 주문서 가지고 있지? 얼른 찢어서 사용해.”
 지옥의 게이트가 정확히 어디에 열렸는지는 몰라도, 그곳엔 아마 이런 괴물들이 즐비할 테다.
 이는 곧 훌륭한 경험치와 전리품일 테지.
 
 * * *
 
 성녀 제니는 국왕을 따라나섰다.
 그녀는 수많은 성기사들과 함께 지옥의 게이트가 있는 부근에 도착했다.
 “폐하. 저 또한 후방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저런 악마들에게 왕국을 내어줄 순 없습니다!”
 국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전장을 주시했다.
 왕국의 하늘 위, 그곳에 열린 지옥의 게이트는 잠잠했다.
 이미 모든 악마를 배출한 것이었다.
 챙- 챙!
 “끄아아아악!”
 지상에선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저만치 앞에는 마왕의 군단을 지휘하는 기간트 발록이 보였다.
 기간트 발록은 극강의 무력을 뿜어내며 병사들을 종이처럼 찢고 있었다.
 “신이시여······!”
 국왕 레이준은 참담한 얼굴로 보검을 빼 들었다.
 “가호를 내려주소서. 신이시여······!”
 조용한 중얼거림으로 마지막 기도를 마쳤다.
 신은 과연 응답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내 국왕은 복부에 힘을 주며 크게 외쳤다.
 “그렌 가드는 듣거라! 나를 따라 마왕의 군단을 몰아내어 왕국을 사수한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국왕의 직속 기사단인 그렌 가드들은 죽음조차도 불사할 기세로 기합을 내질렀다.
 과연, 왕국 최정예 기사단다운 모습이었다.
 하나, 그들의 그늘진 얼굴 밑바닥에 깔린 죽음의 공포는 끝끝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 그들은 오늘 죽을 것이다.
 기간트 발록과 수많은 데스 나이트를 막아내지 못할 테지.
 하지만 역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목숨마저 내어놓으며 끝끝내 마왕의 군대와 결전을 벌였던, 헤일루안 왕국의 영웅들로서, 그렇게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거면 됐다.
 “명예로운 죽음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자, 전원 돌격!”
 그렌 가드의 단장이 검을 치켜들고 우렁차게 외쳤다.
 -우와아아아아아!
 이내 그들은 전장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꾸우우우우우우우웅-!
 지옥의 게이트가 다시 한 번 요동쳤다.
 설마, 마왕의 군단이 추가로 배출되려는 건가?
 그러한 걱정을 하고 있는 찰나.
 지옥의 게이트에서 데스 나이트 한 놈이 기어 나왔다.
 한데 이상한 건, 놈이 웬 근육질 사내에게 붙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을 때, 게이트에서 기어 나온 데스 나이트가 발악하듯 외치기 시작했다.
 -기, 기간트 발록님! 요, 용사, 용사가. 나타났습니······. 끄아아아악!
 데스 나이트는 외침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놈의 머리통을 쥐고 있던 사내가 단번에 골통을 으스러뜨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장난처럼······.
 가볍게 데스 나이트의 숨통을 끊어버린 사내.
 그는 지상을 향해 껑충 뛰어내렸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자네들도 들었지? 데스 나이트가 죽기 직전에 내뱉은 외침을?”
 “그래! 분명······. 용사라고 했어.”
 “요, 용사! 현신하신 용사님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신 거야!!”
 “우와아아아아아!”
 왕국이 위험에 처하자 신의 사자가 나타난 것이다!
 모두가 기쁨의 함성을 토해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성녀 제니.
 그녀의 들창코에서 당황의 숨결이 속절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 안 돼! 저놈은 용사가 아니야! 인정할 수 없다고!’
 용사가 마왕군과 대적한다면, 그녀의 거짓 신탁은 모조리 들통날 것이다.
 ‘안 돼! 안 돼!’
 그녀의 바람과는 다르게, 지상으로 내려선 용사는 한 손으로 거대한 해머를 쥐고서 마왕군을 겨냥했다.
 자신의 적은 마왕군이라고,
 분명한 뜻을 내비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댓글(4)

wh*******    
먼치킨이지만 캐리터보단 굵직한 스토리하고 세계관이 볼만함 큰 반전은 없음
2019.08.07 23:58
am****    
선발대후기. 볼만합니다. 다만 아쉬운점이 있다면 후반가서 분노조절장애 걸린 정신병자마냥 도와주는사람이 도망쳐라할때 안도망치고 꼬라박다가 뒈질뻔한거 어거지로 살려내는거 몇번있어서 주인공은 살았을지언정 보고있는 독자는 고구마먹고 기도막혀 뒤질거같은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2019.08.09 21:48
[탈퇴계정]    
음.. 그냥 생각없이 보기 좋은글 같습니다 극한의 먼치킨이고 고구마는 별로 없어요 대신 뭐 깊은 세계관이나 스토리는 없는거 같아요
2019.11.30 18:24
야차왕    
원피스냐 수배서 배포보소 케케케케
2019.12.19 18:44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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