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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유적 포식자 1권 (1)

2019.07.22 조회 14,810 추천 93


 [개정판] 유적 포식자 1권 목차
 프롤로그
 1화. 총꾼
 2화. 불사황제의 권능
 3화. 섭취 마력 포인트
 4화. 몬스터 도축자
 5화. 불꽃꼬리
 6화. 별미
 7화. 즈믄나래
 8화. 1서클
 
 
 
 프롤로그
 
 2015년 1월 1일, 세계 곳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문(門)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가지각색, 형태도 크기도 색도 다른 다양한 문들은 오직 하나의 공통점만을 가지고 있었다.
 모래시계.
 정체 모를 문들은 전부 모래시계를 머리 위에 짊어지고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 문의 정체는 몰랐지만, 그 모래시계의 모래가 전부 떨어지는 날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리란 사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예상대로 모래시계의 모래가 전부 떨어지는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문에서 등장한 건 다름 아니라 인류가 이제껏 본 적 없었던 가지각색의 괴물들, 몬스터들이었다.
 세상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세상에 종말이 왔다고, 이제는 끝이라고 말했다.
 그런 세상 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저 문이 판도라의 상자라면, 희망은 저 안에 있겠지!”
 
 그 말과 함께 희망을 찾기 위해 몇몇 멍청한 자들이, 훗날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이 그 모래시계문 너머로 몸을 던졌고, 그들 중 일부가 돌아왔다.
 희망이라 부르게 될 마법을 품은 아이템, 아티팩트를 든 채로!
 마법과 유적 그리고 몬스터의 시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1화. 총꾼
 
 거울 앞에 선 사내는 날카로운 인상을 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듯, 볼은 쏙 들어가 있었고 눈 밑은 짙은 재를 문지른 듯 시커멓기 그지없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꽤 괜찮은 인상이었다. 180센티미터를 넘는 몸, 다부진 체격, 턱이 약간 사각형으로 각지긴 하지만 시커먼 눈썹과 제법 짙은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그야말로 사내다운 외모였다.
 
 “이게 대체······.”
 
 거울에 비친 사내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 주변을 가득 채운 온갖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자신의 머리 위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머리 위에는 9개의 검은 고리가 있었다. 개중 가장 왼쪽에 있는 고리의 1/10이 빛나고 있었다. 사내가 거울 가까이 접근하자, 가장 왼쪽에 있는 고리 위에 적힌 9%라는 글자를 볼 수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사내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왜 이런 게 보이는 거야? 내가 지금 환각을 보는 건가? 환각?’
 
 이 순간 사내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며칠 전 자신이 경험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불사황제의 권능······.”
 
 말과 함께 사내가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을 뻗어 거울에만 비치는 문자를, [능력치]라고 적힌 문자를 손가락으로 쓰다듬듯 만졌다.
 그러자······.
 
 [이강우]
 -마력: 1서클 개발 중(9% 완료)
 -보유 마법: 1개
 -마법 슬롯: 1개
 -섭취 마력: 1,120포인트
 
 거울에 초록빛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젠장!”
 
 ‘무슨 게임도 아니고,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나흘 전, 2020년 1월 4일의 기억이었다.
 
  * * *
 
 -오빠, 엄마 신장이식을 하려면 일단 수술비로 2천만 원 정도가 필요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셔.
 “네 몸은 어때?”
 -나? 내가 뭐? 나는 괜찮아. 멀쩡해.
 “저번에도 그런 소리 했다가 쓰러졌잖아? 객기 부리지 말고 너도 종합검진 다시 한번 받아.”
 -하지만 돈이······.
 “걱정 마. 돈은 어떻게든 구할 테니까.”
 -설마 오빠 총꾼······.
 
 거기까지였다.
 이강우는 여동생이 말을 마치기 전에 스마트폰을 귀에서 뗐고, 곧바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추운 겨울, 스마트폰은 핫팩처럼 뜨끈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손바닥을 통해 그 온기가 느껴졌지만, 반대로 이강우의 낯빛은 냉동고에 갇힌 사람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젠장.”
 
 기어코 그의 입에서 쓴소리가 나왔다. 이강우가 스마트폰으로 제 이마를 툭툭 쳤다.
 
 ‘내가 미쳤지. 돈 좀 벌었답시고 주제에도 없는 사업 따위를 하다니, 병신 새끼. 천하의 등신 새끼. 그냥 차라리 그 돈 은행에 때려 박고 알바나 하지, 이 등신 새끼.’
 
 이강우는 자책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자책의 끝은.
 
 “빌어먹을! 그 돈이 어떻게 모은 돈인데!”
 
 후회로 끝나는 법.
 비탄, 절규 섞인 한숨을 내뱉은 이강우가 습관적으로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주머니에는 여러 개의 초콜릿이, 투명한 비닐에 포장된 그 ABC초콜릿이란 놈이 들어 있었고 이강우는 그중 하나를 꺼내 곧바로 입에 넣었다.
 씹지 않았다. 입 안에 넣고 초콜릿을 천천히 녹였다. 당분의 등장에 여러 감정으로 하얗게 질렸던 뇌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굳어 있던 머릿속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떻게든 잊으려고 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3년 동안의 기억들, 지옥이나 다름없었던 나날들. 그 기억을 회상하던 이강우의 심장이 다시 그곳으로 가는 건 미친 짓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2천만 원······.”
 
 심장은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든 마련해야 한다, 그 말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주제에 그런 큰돈을 당장 벌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지.’
 
 이윽고 이강우가 다시 스마트폰을 켰다. 짧게 고민을 한 뒤 잽싸게 11개의 숫자를 눌렀다. 뚜르르뚜르르, 투박한 발신음이 여섯 번 정도 이어졌을 때.
 
 -예, 핏불 크루입니다.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석 형.”
 -응?
 “저 강우입니다. 이강우.”
 -어!
 
 걸걸한 목소리가 이강우를 반겼다.
 
 -강우야! 이야, 이게 얼마 만이냐? 목소리 멀쩡한 거 보니 큰일은 없었나 보구나. 야 이 자식아! 아무리 우리가 빌어먹을 일을 한다고 해도, 3년 동안 몸 비비면서 지냈는데 어떻게 은퇴하고 1년 동안 전화 한 통화를 안 할 수 있냐? 내가 몬스터도 아니고, 널 잡아먹기라도 하냐?
 
 연거푸 터져 나오는 그 목소리에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이강우는 기뻐하는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이를 꽉 물었다. 꽉 문 어금니에서 초콜릿이 뭉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초콜릿이 입 안에서 폭발하는 듯한 느낌도 났다.
 이윽고 이강우가 입을 열었다.
 
 “우석 형. 당장 돈이 좀 필요해요.”
 -돈?
 “그래서 말인데 총꾼······ 선수금으로 2천만 원쯤 받을 수 있는 총꾼 의뢰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뭐?
 “좀 급합니다. 열흘······ 아니, 일주일 안에 선수금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일을 소개해주세요.”
 -야, 잠깐. 너 진짜 복귀하게?
 
 복귀.
 그 말에 이강우는 빠득! 재차 이를 갈았다. 이강우의 얼굴에는 고뇌가 가득했다. 말을 하면서도 거듭 후회를 하는 표정.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걸 할 수밖에 없다는 표정. 이강우는 그렇게 이를 갈면서 억지로 대답을 쥐어 짜내듯 내뱉었다.
 
 “복귀는 아니고······ 급하게 목돈이 필요합니다. 한 번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단기 알바 식으로.”
 -총꾼은······ 통화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사무실 알지? 만나서 이야기하자.
 “예. 1시간 정도 걸릴 것 같네요.”
 -그래, 준비해두고 있을게.
 
 통화가 종료됐다.
 
 “후우!”
 
 이강우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자신이 손에 쥔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그 순간 이강우의 눈앞에 자신의 삶에서 가장 처절했던 3년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지옥에서 운 좋게 사지 멀쩡하게 돌아왔는데······ 그 대가로 알게 된 건 아버지나 나나 절대 사업을 해서는 안 될 팔자란 사실뿐이군.’
 
 이강우.
 
 3년 동안 백 번이 넘는 유적 사냥에 참여한 전직 총꾼이다.
 
 
 * * *
 
 
 2015년 모래시계문이 등장하고, 모래시계문을 통해 몬스터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당연히 그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 군대가 움직였다. 그 무렵 이강우는 직업군인이었다.
 그런 이강우가 퇴역을 하고, 마법사들의 졸개나 다름없고 어느 직업보다 사망률이 높은 총꾼이 되어 유적 사냥에 나선 이유는 오직 하나, 돈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모래시계문이 등장할 무렵 사업을 크게 벌였던 아버지가 몬스터에게 살해당하면서 모든 재산을 날렸고, 당시 아버지를 위해 자기 명의로 돈을 빌렸던 어머니 이름 앞으로는 적잖은 빚이 생겼다. 설상가상 충격으로 쓰러진 어머니가 병원 검사 결과 간암 3기 판정을 받고, 여동생이 간 이식을 위해 간을 기증했다가 이후 후유증으로 쓰러지면서 생긴 수술비, 병원비는 직업군인 월급으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이강우가 할 수 있는 건 총 들고 은행을 털거나 유적을 털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쨌거나 총꾼이 된 이강우는 3년 동안 백 번이 넘는 유적 사냥에서 살아남으며 모든 빚을 갚았다. 빚만 갚은 게 아니라 억 소리가 나는 돈도 모을 수 있었다.
 만약 이강우가 그렇게 번 돈으로 사업을 한답시고 나대지 않았다면······.
 
 “쯧쯧.”
 
 이강우가 후덕한 몸집을 가진 사내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도 푹푹 내쉬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냥 술 처먹고 도박을 해서 날리지, 사업을 하다가 그 돈을 전부 날리다니······ 그게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걸 그렇게 날리냐?”
 
 최우석의 말에 이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기분도 아니었고, 그럴 기운도 없었다.
 
 “그래, 속 쓰린 건 내가 아니라 너일 테니 괜한 말은 할 필요가 없겠지.”
 
 그런 이강우의 반응에 최우석은 쯧쯧, 혀를 두어 번 더 찬 후에 자신이 보고 있던 태블릿PC를 이강우에게 건네줬다.
 
 “자, 봐봐. 일단 네가 말한 조건에 맞는 의뢰들 정리해뒀다. 네가 원하는 조건 맞는 의뢰는 당장은 하나밖에 없고, 비슷한 조건들은 따로 정리해뒀어.”
 
 이강우가 거리낌 없이 태블릿PC를 받았다.
 
 “참고로 이 바닥이 1년 전······ 네가 은퇴했을 때랑은 많이 달라졌어. 예전에는 9등급 유적 사냥도 인심 넉넉한 마법사들 만나면 선수금으로 천만 원은 가뿐하게 받아냈지만, 요즘은 9등급 유적 사냥에 투입되는 총꾼들 몸값이 5백만 원 안팎이다. 아무리 비싸도 천을 넘기 힘들어. 심지어 요즘 3백만 주면 총꾼 하겠다고 나대는 놈들까지 있다니까.”
 
 최우석이 설명을 이어갔다.
 
 “선수금 2천만 원짜리 의뢰는 결국 8등급 유적 의뢰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마저도 그냥 8등급은 안 돼.”
 
 거듭된 설명에 이강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우석 형, 나도 백 번 넘게 유적 탐사한 몸입니다. 초짜들처럼 설명해주실 필요 없어요. 하이에나 크루답게 지금 이 의뢰 실패 횟수나 말해주세요. 나한테는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모래시계문 너머에 유적이 있고, 그 유적에서 마법 아티팩트와 몬스터 사체에서 마나스톤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계는 제2의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정부와 기업, 개인이 경쟁적으로 모래시계문을 확보하고, 유적 사냥에 나섰다.
 혼란이란 짤막한 단어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었던 과도기를 거친 이후 세계는 모래시계문을 사회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체계적인 관리가 시작됐다. 그중 하나로, 각국 정부는 모래시계문을 정부 소유물이라는 법을 제정했다. 당연히 그런 법이 등장한 이후에는 모래시계문 너머의 유적을 탐사하기 위해서는 정부 공식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 허가를 받은 집단들을 길드라고 불렀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길드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초기 투자금도 많이 들어가고, 인맥도 필요하고, 뇌물을 주고도 걸리지 않을 만한 배경도 필요했고, 결정적으로 유적 사냥을 할 때마다 부과되는 세금 등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무허가로 유적 사냥을 하는 집단이 등장했고, 그 집단을 부르는 명칭이 바로 크루였다.
 어차피 모래시계문은 시도 때도 장소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만큼, 정부 모르게 모래시계문을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모래시계문을 암거래하는 암시장도 있었다. 정부가 모래시계문 신고자에게 신고 포상금을 주지만, 암시장에서는 그보다 더 비싼 값에 현금거래가 가능했으니까. 모래시계문 암시장은 이미 정부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고, 크루들은 그런 암시장에 기생하듯 살아오며 세를 불리고 있었다.
 물론 길드에 비해 편법, 불법 그리고 주먹구구식 운영을 할 수밖에 없는 크루들은 유적 사냥 실패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법.
 그런 실패가 연거푸 반복되면서 쉽사리 유적 사냥을 시도할 수 없게 된 문들, 들어가기에는 위험하고, 그렇다고 문을 파괴하기에는 아까운 그야말로 계륵 같은 문들은 당연히 시세조차 저렴한 가격에 모래시계문 암시장에 올라오게 된다. 그런 모래시계문 유적만을 전담하는 게 바로 하이에나 크루다. 남들이 먹다 버린 것들을 주워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강우가 찾아온 핏볼 크루는 하이에나 크루에 속하는 크루였고, 당연히 그들에게는 모래시계문의 등급보다는 실패 횟수가 더 중요했다.
 
 “두 번.”
 “두 번? 꽤 적네요?”
 “참고로 2서클 마법사가 포함된 파티가 이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가 실패했어.”
 “그래서 암거래 시장에 나온 겁니까? 그 정도 사고는 일상 아닙니까?”
 “네 말이 맞아. 솔직히 말하면 이 문거래 시장에서 이 문이 싸게 나온 건 아니었거든.”
 “그래요? 그런데 왜 샀답니까?”
 “난들 아냐?”
 “유적 등급은 어떻게 됩니까?”
 
 유적의 등급은 그 유적 안에 상주하는 몬스터 최고등급을 따른다. 때문에 몬스터가 9등급부터 1등급까지 존재하는 것처럼, 유적 등급 역시 9등급부터 시작된다. 안에 있는 몬스터의 최고등급이 7등급이면 7등급 유적이 된다.
 
 “내구성 검사했을 때도 8등급 판정이 나왔어.”
 
 더불어 유적에 있는 몬스터의 등급이 높을수록 모래시계문의 내구성도 높아진다. 9등급 유적의 모래시계문은 석공(石工)이 정과 망치만으로 부술 수 있을 정도의 내구성이지만, 8등급 몬스터가 있는 모래시계문을 부수려면 폭탄 정도는 써야 한다.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유적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런 방법으로 유적을 가늠한다. 더불어 이 방법을 통해 유적의 등급이 정해지고, 암시장에서 그 등급으로 거래가 된다.
 
 “두 번밖에 실패하지 않았고 제값 주고 구매······.”
 
 문의 가격은 유적 사냥 실패횟수가 늘어날수록 떨어진다. 리스크가 올라갈뿐더러, 유적 사냥 실패횟수가 늘어났다는 건 모래시계문에 달린 모래시계의 모래가 꽤 떨어졌다는 의미니까.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는 순간, 모래시계문은 몬스터가 등장하는 깜짝 상자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두 번은 약소한 수치다. 때로는 20번 넘게 사냥에 실패한 모래시계문이 문시장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제값을 주고 샀다는 건, 구매한 쪽도 없는 돈을 털어 로또를 노렸다기보다는 나름 제대로 유적 사냥을 준비할 만한 자금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나마 추천하는 거야. 내가 보기엔 그렇게 위험한 유적으로 보이진 않아.”
 
 이강우는 그 말에 속으로 실소를 지었다.
 위험하지 않은 유적은 없다. 마법사들은 아니지만, 총꾼들에게는 9등급 유적도 지옥이다.
 
 “의뢰인은 누구입니까?”
 “3서클 마법사, 박준영이라고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긴 한데, 본인은 7등급 유적도 가뿐하다고 자신하더군. 그냥 유적에서 길 안내나 해줄 사람이 필요하니 적당히 일곱 명만 채우라고 하더라고.”
 “3서클 마법사······.”
 “왜? 뭐 걸리는 게 있어? 들어본 이름이야?”
 
 최우석의 반문에 이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걸리는 건 없다. 단지 배알이 꼴릴 뿐.
 
 ‘3서클 마법사면 못해도 1년에 10억은 벌 수 있지.’
 
 마법 아티팩트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이런 마법 아티팩트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마력이 필요하며, 이 마력은 두 가지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다. 하나는 몬스터의 몸에서 얻을 수 있는 마나스톤을 정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력을 만들어내는 고리, 마나 서클을 가진 마법사가 직접 마력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때문에 아티팩트의 시대가 오면서, 마법사의 시대도 같이 왔다. 하지만 마법사의 재능을 가진 자들은 5만 명 중 1명꼴로 등장했다.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이라고 치면, 마법사의 재능을 가진 이는 1천 명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자연스럽게 마법사는 국가 차원에서 대우를 해줬다.
 그렇게 귀한 몸이기에 총꾼이란 직업이 탄생했다. 돈을 받고 마법사 대신 총알받이가 되어주고, 살아있는 미끼가 되어주고, 고기방패가 되어줄 소모품이 필요했으니까.
 총꾼들이 마법사 덕분에 돈을 받지만, 그런 마법사에게 일회용 소모품 취급을 받는 이상, 마법사를 향해 좋은 마음을 가진 총꾼은 있을 수 없다. 특히 이강우는 백 번 넘는 유적 사냥을 하면서 정말 마법사라면 치를 떨 만큼 고생했다. 개중에 좋은 사람이 없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이강우를 일회용품 취급하는 자들이었다.
 어쨌거나 3서클 마법사라면 자금력은 확실할 것이다. 부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걸리는 건 없습니다. 어쨌거나 내용은 괜찮군요.”
 “생각보다 조건이나 상황이 좋아. 유적 사냥 실패는 고작 두 번뿐. 여기에 의뢰인이 3서클 마법사. 보수도 기본 1천만 원, 리더는 2천만 원. 클로즈 보너스는 지위 여부 상관없이 1천만 원. 발견된 아티팩트는 전부 의뢰인 소유자고, 몬스터 사체에서 나오는 것들은 의뢰인과 총꾼들이 7 대 3으로 분배. 문은 강원도 홍천군에 있는 계방산이고, 디데이는 1월 4일이야.”
 
 기타 조건도 적당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너니까 주는 거야. 네가 돈이 급하다고 해서, 너랑 의리를 위해서 널 꽂아주는 거다.”
 
 이강우는 최우식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봤을 때 지금 이 시점에서 이만한 조건과 대우가 걸린 의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운이 좋아. 이런 의뢰가 곧바로 잡히다니······.’
 
 당장 돈이 급하기도 하다.
 
 ‘그래, 어차피 수술비만 벌면 돼.’
 
 결정적으로 이강우는 복귀할 생각이 없다. 이번 일은 그저 단기 알바, 돈이 급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일 뿐이다.
 이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최우식에게 건네줬다.
 쪽지를 본 최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여기로 입금해줄게.”
 
 계좌번호와 은행 이름이 적힌 쪽지였다.
 
  * * *
 
 강원도 홍천군에 위치한 계방산의 1월은 추웠다. 강원도 그리고 겨울, 여기에 엊그제 제법 내린 눈은 작심하고 계방산을 찾아온 등산객들조차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 정도였고, 겨울답게 해가 슬슬 꺼지는 게 보이는 시각, 오후 4시에 접어들었을 때 계방산은 모든 생명체가 죽은 듯 고요했다.
 여덟 명의 사내가 그런 산을, 눈으로 덮여 족적조차 얼마 없는 계방산을 타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등산객은 아니었다. 나름 등산을 위한 준비를 했지만 일곱 명의 사내들은 누가 보더라도 과할 정도로 많은 것이 들어간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일곱 명의 사내들은 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군인이라고 하기에는, 한국군이라면 당연히 입는 군복을 입고 있는 것 역시 아니었다. 복장은 군인이라기보다는 공항에서 볼 수 있는 무장경비요원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만약 5년 전이라면 그들을 발견한 이들은 모두가 당연히 간첩을 떠올리며 잽싸게 경찰에 신고를 했겠지만 지금 시대는 조금 다르다. 요즘 이런 사람을 산에서 보면, 일반인들도 간첩이라는 표현보다는 총꾼이란 단어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총꾼이 맞았다.
 계방산에 등장한 모래시계문, 그 모래시계문 너머의 유적을 사냥하기 위해 온 파티였다.
 그 순간 앞장서서 무리를 이끌던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게슴츠레 눈을 뜬 사내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오른손을 들고 수신호를 줬다. 총꾼들이 긴장된 눈빛으로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처벅처벅!
 
 일곱 명의 총꾼들과 달리 아무런 무장도, 짐도 들지 않은 채 동네 뒷산을 오르는 것처럼 단출한 옷차림을 한 20대 중반의 사내는 수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맨 뒤에 있던 20대 중반의 사내는 가장 앞장서던 사내 옆까지 왔다.
 
 “아니, 뭐 전쟁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 아깝게 그런 짓을 왜 합니까? 저기 바로 문이 보이는데, 그냥 가면 될 것이지.”
 
 그리고는 푸념 섞인 질책을 내뱉으며 사내보다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번 의뢰를 맡게 된 총꾼 리더 이강우의 얼굴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추위 때문은 아니었다.
 
 ‘이 새끼······ 유적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확실해.’
 
 처음에는 여러모로 조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의뢰인도 그렇고 3서클 마법사가 참가하는 것도 그렇고 보수도 그렇다.
 하지만 의뢰인이자 참가자인 박준영을 보는 순간 이강우의 가슴 속에는 불안함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그러나 이 순간 이강우는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어머니와 여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억눌렀다.
 이미 돈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불길함 때문에 의뢰를 포기한다? 당장 이강우에게 위약금을 지불할 능력은 없다.
 
 ‘그래도 3서클 마법사인데 8등급 유적 정도는 쉽게 처리하겠지.’
 
 때문에 이강우는 애써 자신의 본능을, 백 번 넘게 유적을 사냥하면서 그를 살려준 본능을 외면했다.
 
  * * *
 
 계방산의 외진 곳, 등산로를 한참 벗어난 곳, 조난신고를 해도 찾기 힘든 곳에 보통 크기의 문 하나가 비탈진 경사면에 오롯하게 서 있었다.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 크기의 문은 단순한 문이라기보다는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돌과 비슷한 재질로 만들어진 문틀에는 음각으로 괴상한 문양이 잔뜩 새겨져 있었고 문짝에도 비슷한 문양이 음각이 아닌 양각으로, 입체적인 느낌이 나도록 새겨져 있었다.
 결정적으로 문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스스스스.
 
 문틀 위에 달린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미약한 소리였으나, 이제는 밤중에 가까워지고 눈마저 짙게 깔려 짐승들마저 숨을 죽인 계방산에서는 그 어떤 소리보다 컸다.
 그런 소리 사이로.
 
 깡!
 
 청아한 소리 하나가 길게 울려 퍼졌다.
 모래시계문의 문틀 오른쪽을 정과 망치를 이용해 석공이 석상을 만들듯 망치로 정을 내리친 사내, 이강우는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음에 쓴웃음을 지었다.
 
 ‘최소 8등급. 그런데 손끝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일반적인 8등급은 아니란 말이야.’
 
 그때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20대 중반의 청년, 박준영이 한마디 던졌다.
 
 “그렇게 치면 답이 나와요?”
 
 박준영.
 나이는 24세.
 딱히 그 외에 경력이라고 내세울 만한 건 하나도 없는 보잘것없는 대한민국 청년. 하지만 반년 전 우연히 마력 개방, 서클을 각성하면서 그는 집에서 밥만 축내던 백수에서 단숨에 수십억 원의 연봉을 언제든 받을 수 있는 대단하신 분이 됐다.
 흔히 이런 이들을 모래시계문이 만든 세계의 행운아들이라고 표현한다. 더군다나 3서클이라면 단순한 행운이 아니다. 매년 로또 1등 당첨금 정도는 당연하게 벌 수 있는 행운의 소유자들이다.
 그 빌어먹을 돈 때문에 다시 지옥으로 돌아오게 된 이강우는 원래도 마법사를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박준영 같은 부류는 더더욱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 이강우를 더 기분 나쁘게 만드는 건 이 박준영이란 인간이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모래시계문과 유적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지식이 하나도 없는 초짜라는 점이었다.
 
 ‘그럼 답이 나오니까 치지, 설마 할 일이 없어서 칠까? 설마 이 정도 기본도 모르는 건가?’
 
 물론 그런 심중의 마음과 행동은 달랐다.
 
 “예, 어느 정도 가늠은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정과 망치로 흠집이 가면 7등급은 절대 아닙니다.”
 
 친절한 대답.
 그 대답에 박준영은 인상을 팍 구겼다.
 
 “그럼 안 깨지는 게 좋을 뻔했네. 조금 전 깨진 거 맞죠?”
 “살짝 흠집이 났습니다. 9등급이라면 조각이 떨어질 정도였겠지만, 이 정도 내구성이라면 8등급 이상입니다.”
 “기왕 나오는 게 7등급이었으면 대박인데.”
 
 박준영은 말을 하면서 아쉬움이 잔뜩 섞인 투정을 술술 내뱉었다. 그 말을 듣던 이강우는 쓴웃음이 지어지는 수준을 넘어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3서클이라고 해서 기본은 해줄 놈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봐도 이거 똥 밟았다.’
 
 유적 사냥에서 마법사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마법이 총보다 순수하게 위력이 강한 건 아니다. 3서클 이상 마법은 분명 놀랍지만, 총이 가지는 위력과 정확성, 효율은 마법보다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사가 대우를 받는 건, 총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들의 존재 때문이다.
 몬스터들 중에는 그냥 덩치와 힘만 센 놈들도 있지만, 특이한 구조로 된 놈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9등급 몬스터인 안개살이라는 놈이 있는데, 안개로 만들어진 놈은 자신의 몸 일부를 대상에게 먹이는 식으로 사냥을 한다. 안개로 된 놈이기 때문에 총알이나 폭탄은 의미가 없다. 어마어마한 고열로 녹여버리는 게 그나마 답이지만, 반대로 마법사들이 날린 보잘것없는 불꽃 화살에는 조금의 반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
 대상에게 환각을 보여주거나, 그림자 속을 오고 가는 놈들, 어둠으로 만들어진 몬스터, 죽여도 다시 복구되는 언데드 몬스터 놈들은 총으로 잡는 게 쉽지 않다. 현대무기로 잡으려고 해도 적잖은 주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완벽한 무장을 마친 1개 대대라고 해도 마법사의 도움 없이 물리력이 쉽게 통하지 않는 몬스터 무리를 만나면, 그 몬스터 무리가 9등급이라도 해도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괜히 마법사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주는 게 아니다.
 이런 이유로 유적 사냥 역시 당연히 마법사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마법사가 핵심이고 총꾼은 부품 같은 거다. 쓰다가 고장 나면 버리는 일회용 부품, 필요하면 바꾸는 부품.
 
 ‘느낌이 안 좋아.’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의뢰인이자, 유적 사냥을 주도하는 마법사 박준영은 최악이었다.
 이제 확신할 수 있다. 그는 완벽한 초짜였다. 3서클 마법사란 사실만으로 모든 걸 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는 부류. 자신이 디씨 코믹스에 나오는 슈퍼맨이 된 것처럼 착각하는 부류다. 마법사가 된 지 얼마 안 되고, 마법사가 되는 순간 주변에서 온갖 칭찬과 칭송만 들으면서 딱히 유적 사냥 경험도 얼마 없는 주제에 백전노장인 것처럼, 자신이 천재인 것처럼 콧대를 세우는 부류.
 
 ‘젠장.’
 
 사실 예전 이강우라면 이런 초짜 마법사의 의뢰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박준영이란 마법사에 대한 뒷조사도 해보고, 좀 더 심사숙고해서 의뢰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너무 좋았고, 돈이 급했다.
 흔히 말하는 좋은 조건에 눈이 멀어 코가 꿰이는 경우. 1년 동안의 공백이 이강우의 눈을 비롯한 감각을 멀게 했다.
 어쨌거나 선택을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박준영의 행동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게 낫다. 괜히 그의 자존심을 갉아먹는 소리를 지껄일 필요는 없다. 콧대를 꺾을 필요도 없다.
 이강우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자기보다 어린 박준영에게 아부하듯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8등급이라도 해도 3서클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가 나올 수도 있잖습니까? 더군다나 3서클 마법사이시니, 그냥 몸 푼다는 느낌으로 가뿐하게 사냥해 주십시오. 이번 일 끝나면, 제가 클로즈 보너스로 정말 물 좋은 곳에서 대접 한번 해드리겠습니다.”
 
 그 아부에 박준영이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이름이 이강우라고 했나? 생각보다 뭘 좀 아는 양반이네. 난 경력이 엄청나다고 해서 고지식한 꼰대 새끼라고 생각했는데.”
 “유적 안에서는 마법사가 대빵이고, 총꾼은 졸개입니다. 꼰대고 나발이고 없죠. 까라면 까야지.”
 “그래?”
 “일단 정리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날씨도 추운데 쉬고 계십시오. 어이, 거기! 하던 일 멈추고 라면이나 하나 끓여라!”
 
 이강우의 거듭된 아부에 박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드는군. 이강우라고 했지? 이름 꼭 기억해두지.”
 
 그 말에 이강우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게 비결 중 하나다. 이강우가 이제까지 살아남은 비결.
 이강우는 괜히 마법사와 신경전을 벌이지 않는다. 유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법사의 도움이 꼭 필요하고, 그런 마법사와 신경전을 벌이는 건 위험하다.
 결정적으로 마법사는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총꾼을 버려도 무방하다. 하지만 총꾼은 마법사가 필요 없다고 마법사를 버리는 선택 같은 건 절대 할 수 없다.
 유적 안에서 마법사는 절대 갑(甲)이고 총꾼은 을(乙), 아니 병정(丙丁)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게 박준영이 비위를 맞춰 준 이강우는 고개를 돌려 모래시계문을 바라봤다.
 
 츠츠츠!
 
 스산한 소리를 내는 모래시계문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퍽 불안했다. 더군다나 그 느낌은······.
 
 ‘이놈이 날 부르는 것 같단 말이야.’
 
 마치 모래시계문이 이강우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은 모래시계문이 인류의 번영을 위해 찾아온 기적이라지만, 이강우가 봤을 때 모래시계문은 그냥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실제로 인간을 계속 잡아먹고 있다.
 
 ‘이딴 게 희망은 무슨.’
 
 인류는 이제 모래시계문을 정복했다고 외치지만, 이강우의 생각은 다르다. 모래시계문은 오히려 적당히 인류에게 미끼를 주고 있다. 자신을 배척하지 말라고, 자신을 손에 꼭 쥐고, 품에 꼭 안은 채 보물처럼 다뤄달라고.
 그러다가 때가 오면 인류 전체를 단숨에 잡아먹을 것이다. 이강우가 보는 모래시계문은 그런 놈이다.
 그런 괴물이 먹잇감을 부른다는 건······ 잡아먹기 위해 유혹을 한다는 의미.
 물론 이강우 본인의 느낌일 뿐이다. 착각이라도 할 수 있다.
 
 “후우.”
 
 이강우는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어차피 이번 한 번이다. 이번 일만 마치면 그냥 차라리 공장에서 취직해서 조금씩이라도 안정적으로 돈을 모아야지.’
 
 마지막.
 그 단어를 되새김질하며 이강우는 자신의 가슴팍에 피어오르는 불길함을 애써 억눌렀다.
 
  * * *
 
 투투투!
 
 총구가 불을 내뿜고 총성을 토해내자, 어둠으로 가득 찼던 길목 안이 산발적으로 환해졌다. 마치 라이트를 가지고 장난을 치듯, 깜빡거리는 시야 속에서 보이는 건 시커먼 몸뚱이를 가진 원숭이였다. 원숭이지만, 부리는 마치 새처럼 뾰족한 놈들.
 9등급 몬스터 부리원숭이였다.
 
 “젠장!”
 
 그리고 이강우는 놈을 잘 알고 있었다.
 
 “사격 중지! 부리원숭이는 총이 안 통해!”
 
 처음 놈을 만난 건 2015년 3월 5일, 처음 만났을 때 놈은 무지막지한 덩치를 자랑하는 거대 몬스터보다 더 섬뜩한 공포를 군인들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총알 세례를 퍼부어도 놈은 유유히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근처 군인에게 접근해 그 뾰족한 부리로 눈알이나 콧잔등, 주둥이 같은 야들야들한 살점들을 쪼아 먹었다. 그때 녀석에게 직급보단 형·동생으로 부르던 부하 넷을 잃고, 나중에 녀석이 9등급 몬스터란 사실을 느꼈을 때 이강우가 느낀 허탈함과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뒤로 물러나! 백!”
 
 총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나중에 밝혀졌다. 녀석이 야수형 타입이 아니라, 환수형 타입인 게 이유였다.
 환수(幻獸) 타입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환수 타입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마법을 이용한 공격이나 혹은 놈이 있는 공간 자체를 망가뜨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물리력이 필요하다.
 어쨌거나 총이 통하는 놈이 아니다. 마법사들의 마법이 아니라면 3층짜리 건물 한 채 정도는 가뿐하게 붕괴시킬 만한 위력을 가진 폭탄으로 잡아야 하는 놈이다.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간다! 모두들 정신 차리고, 총 쏘지 마. 녀석들은 후각이나 시력이 좋은 편이 아니야! 어두워지면 녀석들도 긴장한다! 괜히 총을 쓰면 오히려 놈들에게 위치가 들킨다! 플래시 꺼! 끄라고!”
 
 당연히 지금 이 파티에서 놈을 잡을 수 있는 건 마법사뿐!
 그러나 이 순간 놈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마법사는······.
 
 “으아아아악!”
 
 반쯤 정신이 나간 모습으로, 이미 바지는 축축하게 젖은 상태로 이강우의 등에 업혀 있었다.
 
 ‘젠장! 완전히 맛이 갔군.’
 
 사건의 시작은 유적 입장 6시간이 지났을 때 일어났다.
 이강우는 총꾼들을 지휘하며 최대한 천천히, 주도면밀하게 자신들 앞에 놓인 갱도 같은 길을 수색했다. 그냥 보면 뻥 뚫린 길이었지만 이강우는 천천히 소리를 죽인 채 이동했다. 마치 지뢰밭을 걷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갈림길이라도 생기면, 그때부터는 아예 갈림길 앞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박준영은 이강우에게 몇 번 말했다.
 
 “그냥 쭉쭉 갑시다.”
 
 그러나 이강우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박준영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유적 사냥의 기본은 탐색과 수색이다. 유적은 도망가지 않는다. 또한 유적에는 한 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 숫자에 제한이 있다. 사람이 죽어 빈자리가 생겨야만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 아티팩트를 훔치러 올 사람 역시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아티팩트가 발이 달려 도망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유적에서 섣부르게, 급하게 일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이강우는 그 부분을 박준영에게 이야기해줬다.
 하지만 박준영 입장에서는 기껏해야 총알받이 신세에 불과한 총꾼이 해주는 조언이 조언이라고 들릴 리 만무했다. 그냥 주제넘게 개가 짖는 거라고 생각했겠지.
 기어코 그는 폭발했다.
 
 “아니, 여기 뭐가 있다고 그렇게 지랄염병을 떨면서 미친놈처럼 움직이는 겁니까? 빨리빨리! 좀 빨리합시다!”
 
 그 말과 함께 박준영은 대뜸 본인이 앞장서서 성큼성큼, 가볍게 달리기를 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강우가 기겁하며 그런 박준영을 잡으려고 나서는 순간,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부리원숭이가 박준영을 덮쳤다.
 그때를 떠올리던 이강우는 자신의 등에 업혀 있는 박준영이 풍기는 진한 오줌 냄새를 맡으며 이를 갈았다.
 
 ‘미친 새끼. 이 정도까지 초짜일 줄 알았다면 그냥 유적 들어오기 전에 총으로 쏴 죽였을 텐데······.’
 
 등장한 부리원숭이는 박준영의 몸에 달라붙은 후에 제 날카로운 부리로 박준영의 목덜미와 어깨 부근 살점을 쪼아 먹었다. 살점이 덩어리째 나가떨어질 정도, 허여멀건 것이 보일 정도로 제법 심각한 부상이었고, 그 상황 앞에서 박준영은 정신이 나가 버렸다.
 만약 이강우가 그 순간 플래시를 터뜨려 부리원숭이를 잠시 동안 당황케 만들고 그 틈을 노려 잽싸게 박준영을 구하지 못했다면, 박준영은 그냥 거기서 죽었을 것이다. 이강우니까, 그래도 백전을 치른 이강우니까 박준영을 구할 수 있었다.
 
 ‘비싼 돈 내고 총꾼을 고용한 주제에 그 이유를 모르는 건가?’
 
 그리고 그런 일 때문에 마법사들이 총꾼을 고용한다.
 막말로 필요하면 마법사들이 총을 들고 유적을 사냥해도 된다. 총이란 건 어느 정도 훈련을 하면 어린아이도 쓸 수 있으니까. 그런데도 마법사들이 적지 않은 돈을 내면서까지 총꾼들을 고용하는 건, 총꾼들의 별명 중 하나인 고기방패, 말 그대로 총꾼들을 방패 혹은 미끼로 쓰기 위함이다.
 때문에 정말 경력 있는 마법사들은 잔혹할 정도로 총꾼들만을 몰아세운다. 자신은 뒤에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 정말 완벽하게 안전이 보장된 후에야 움직인다.
 사실 총꾼들 입장에서도 그런 마법사가 차라리 낫다. 괜히 나대다가 마법사가 부상을 입을 경우에는 9등급에 불과한 부리원숭이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게 총꾼들의 현실이니까.
 어쨌거나 마법사가 당하는 순간 총꾼들도 당황했다. 경력이 있는 총꾼들이라면 부리원숭이를 보는 순간 방아쇠를 당겨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겠지만, 경력 없는 몇몇 녀석들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당연히 총성은 통로를 따라 곳곳에 퍼졌을 터.
 여기에 쫄깃하고 오동통한 먹잇감이 있으니 맛보러 오세요! 아마도 유적 안에 있는 몬스터들에게 총성은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이강우가 긴급하게 후퇴를 외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부리원숭이는 시작이다.
 
 ‘여긴 8등급 유적. 8등급 몬스터가 필시 오겠지.’
 
 그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접근할 것이다. 그 전에 전력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다음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탄약을 아끼고, 정신이 나간 박준영이 정신 차리도록 뺨이라도 때릴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길을 잡는다. 내 뒤만 따라와!”
 
 하지만 이 순간 이강우는 직감했다.
 
 ‘절반은 죽는다.’
 
 이번 유적 사냥은 실패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오늘 그와 남은 일곱 명의 무덤이 될 것이다. 이강우가 이를 꽉 물었다.
 
 ‘젠장.’
 
  * * *
 
 총꾼으로 백 번이 넘는 유적을 탐사하면서 이강우가 몸으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으아악!”
 
 뒤에서 비명이 들릴 경우 절대 뒤돌아보지 말 것.
 
 ‘젠장.’
 
 몬스터를 상대로 도주를 하는 상황 속에서 비명이 나온다는 건 이미 끝난 거다. 뒤를 돌아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이강우가 마법사라면, 강력한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를 가진 마법사라면 모르겠지만, 총꾼에 불과한 그가 몬스터에게 이미 잡힌 동료를 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걸로 여섯 번.’
 
 이강우는 자신이 체득한 그 사실을, 어찌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굴하고 비참한 진리를 여섯 번 곱씹었다. 비명이 날 때마다 곱씹었다. 달리 말하면 도주를 하면서 여섯 명이 당했다.
 최악이었다.
 도주가 쉬우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설마 일곱 명의 총꾼 중 자신을 제외한 전부가 죽을 줄은 몰랐다.
 
 ‘우석 형 말이 맞아. 총꾼들이······ 수준이 바닥이 됐군.’
 
 처음 이번 의뢰를 받고 총꾼 우두머리가 되어 총꾼들 경력을 봤을 때 상당수가 초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니, 솔직히 그들 잘못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나름 유적 사냥 경력이 있는 총꾼들이라면 오히려 박준영이 앞장서서 그 지랄을 했을 때 더 놀랐을 것이다. 그 순간 냉철함을 유지한다는 게 이상한 일이다. 원래 총꾼들은 마법사를 지키는 병사 같은 역할인데 마법사가 제멋대로 적진에 몸을 던지는 상황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판단을 내리는 건 쉽지 않다.
 또한 이번 의뢰는 여러모로 조건이 좋았다. 오히려 정말 베테랑들이었다면 조건이 좋다는 사실을 역으로 의심했을 터. 반대로 어수룩한 놈들이 조건이 좋으니 경쟁적으로 달라붙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총꾼 리더가 된 이강우는 유적 탐사를 천천히 하면서 어중이떠중이들을 가르칠 속셈이었다. 유적 사냥은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면 한 달 동안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나씩 가르쳐서 쓸모 있는 녀석들로 만들 속셈이었는데, 그 생각을 박준영이 6시간 만에 난장판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정말 역대급 폭탄이다.
 이윽고 이강우가 좁은 통로를 지나 널찍한 공간으로 나왔을 때.
 
 ‘으아아악!’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고.
 
 “빌어먹을.”
 
 말은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이강우는 여전히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철칙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곳은 몬스터 소굴이다. 악에 받친 비명은 몬스터들에게 식후 디저트가 있음을 알리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는 사이 이강우는 주변을 살폈다.
 
 ‘여긴 또 어디지?’
 
 이강우는 자신이 돌아왔던 길을 되짚어서 이동했다. 아무리 어두컴컴한 통로라고 해도, 이강우의 방향감각은 확실하다. 괜히 백 번 넘는 유적 사냥에서 살아남은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 보는 곳은 처음 보는 곳이었다.
 
 ‘마법인가? 미로에 빠졌나? 아니면 내 실수?’
 
 이강우가 의도치 않게 도달한 그 공간은 거대한 공간이었다. 예전에 한 번 우연히 방문하게 된 야구장, 도쿄돔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 수만 명의 인원 정도는 가뿐하게 소화할 수 있을 법한 크기였다.
 
 ‘젠장.’
 
 이강우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단순히 길을 잘못 들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여긴 절대 8등급 유적이 아니야.’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유적은 등급이 높을수록 크기도 커진다. 왜냐하면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몬스터들의 등급이 대개 높기 때문이다. 몸집이 전차보다 더 큰 몬스터들이 움직이려면 그만큼 큰 공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유적 안에 도쿄돔 크기의 공간이 있다?
 최소 7등급 혹은 그 이상.
 이 순간 이강우는 자신이 등에 업고 있던 박준영의 존재가 하찮게 느껴졌다.
 
 ‘이렇게 뒈지는 건가?’
 
 이강우는 박준영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그를 악착같이 업고 뛴 게 아니다. 이강우는 까놓고 말해서 박준영이 싫다. 아무리 고용주라고 하지만 초면에 자기보다 분명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하직원 다루듯 막 다루는 것도 그렇고, 노예 보듯 총꾼들을 보던 것도 그렇고, 모래시계문의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이강우 앞에서 경력도 얼마 없는 놈이 8등급 유적이란 말에 7등급이 아니라서 아쉽다고 지껄이는 것까지.
 이강우가 박준영을 만난 이후 그가 한 행동 중에 마음에 드는 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살린 건, 그가 유일한 구명줄이기 때문이다. 죽은 총꾼들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죽은 총꾼 여섯을 다 합쳐도 박준영보다 쓸모가 없다. 당장 부리원숭이에게 당한 것만 하더라도 그렇다. 총이 통하지 않는 놈이다. 마법으로만 해치울 수 있는 놈이다. 그런 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마법사의 존재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 살려놓았다. 유적에서 살고 싶으면, 출문(出門)을 찾기 위해서는 마법사가 꼭 필요했으니까.
 살려놓았는데······.
 
 ‘이곳이 순수한 7등급 유적이라면······ 박준영 같은 놈이 지금 당장 정신을 차려도 죽은 목숨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박준영을 앞세워서 7등급 몬스터를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더군다나 7등급 몬스터는 지금 이강우가 가진 소총 정도로는 생채기도 내기 힘든 놈이다. 이강우가 직업군인이던 시절, 7등급 몬스터인 비늘등곰은 전차 포탄을 맞고도 우어어, 소리만 지르고 전차에 달려와서 전차를 뒤집었던 놈이다. 7등급부터는 실상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화기로는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물론 3서클 마법이면 해치울 수 있다. 마법은 단순한 위력을 떠나서, 몬스터들이 가지는 항마력을 뚫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박준영이 정말 3서클 마법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3서클 마법사인 거지,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마법 아티팩트의 도움이 필수적이니까. 3서클 마법사가 3서클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3서클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가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이 새끼가 무슨 마법을 쓰는지도 못 봤네.’
 
 그러나 3서클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 가격은 실상 30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말이 30억 원이지, 3서클 이상의 마법 아티팩트는 국가반출금지 품목이다. 국외로 반출했다가 걸리면 처벌이 상당하다. 그리고 소유자는 소유 사실을 정부에 알려야 한다.
 물론 암시장을 통해 거래할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암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마법 아티팩트는 기본 평균가의 2배 이상이다. 30억 원이 아니라 50억 원은 잡아야 한다.
 그런 어마어마한 것을 과연 박준영이 가지고 있을까? 그런 생각은 솔직히 들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적어도 이강우 앞에서 7등급 아니라서 아쉽다는 소리를 지껄이거나, 총꾼들이 알아서 제 몸뚱이로 지뢰밭을 탐사해주겠다는데 그걸 참지 못해서 자신이 직접 지뢰밭에 몸을 던지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가 내 무덤이었군.’
 
 이 순간 이강우는 자신의 등 뒤에 업혀 있는 박준영을 바닥에 버렸다. 기절한 박준영은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너부러졌다. 퀴퀴한 오줌 냄새를 내면서. 그 냄새가 이강우의 몸에도 잔뜩 묻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몸뚱이가 썩어 문드러지면 더 퀴퀴한 냄새를 낼 텐데 무슨 고민이란 말인가? 그게 아니면 몬스터가 깨끗하게 먹어줄 터.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반대로 총꾼으로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죽음을 각오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아니, 2015년부터 직업군인으로 몬스터와 전쟁을 치를 때부터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이 왔음을 자각했다. 단지 그때가 왔을 뿐이다.
 
 ‘그래, 어쨌거나 어머니 앞에 있는 빚도 갚고, 이번 수술비도 갚았으니까. 내 목숨 써서 빚이라도 없앴으면 수지맞은 장사였지.’
 
 이강우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그가 꺼낸 것은 초콜릿이었다. 이강우는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단맛이 머릿속을 풍요롭게 해줬다. 그래서 초콜릿을 자주 가지고 다녔다. 이 초콜릿이 3년 동안 이강우를 살려준 비결 중 하나였다. 유적이란 제한된 공간, 몬스터란 공포의 존재 앞에서 그나마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단 것만큼 좋은 놈도 없으니까. 때문에 이강우는 언제나 몸 구석구석, 주머니가 있는 곳이라면 빠짐없이 초콜릿을 넣었다.
 지금도 초콜릿은 위력을 발휘했다. 마치 마약처럼, 공포와 짜증, 분노 등으로 복잡했던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정리해줬다.
 
 “응?”
 
 그 덕분이었다.
 이강우는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을, 칙칙한 시야 너머로 제단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3층 건물 높이의 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제단 위에 무언가가 오롯하게 서 있었다.
 
 ‘뭐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또한 거리도 제법 됐다.
 이강우가 그 먼 곳에 있는 것을 직시했다. 그나마 이강우가 자랑할 수 있는 2.0 시력이 제 역할을 했다.
 
 ‘······해골? 아니, 잠깐만 해골이라니?’
 
 그 순간.
 
 “오오!”
 
 기괴한 외침과 함께 이강우의 등 뒤에 기절해 있던 박준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응?”
 
 이강우가 갑작스러운 낌새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박준영이 제 두 팔로 이강우의 어깨를 잡았다.
 이강우가 기겁했다.
 
 “뭐, 뭐야?”
 
 이강우의 놀람에도 박준영은 대답 대신 이강우의 어깨를 위에서 아래로 꾹 눌렀다.
 
 ‘큭!’
 
 굉장한 힘이었다. 이강우는 어깨가 뭉개지고, 두 다리가 땅에 박힐 것 같은 충격을, 마치 소형차 한 대를 어깨 위에 올려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힘은 절대 아니었다.
 
 ‘마, 마법?’
 
 그럼 마법일까?
 없진 않다. 마법 중에는 대상의 힘을 강화해주는 다양한 종류의 마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박준영이 그런 마법의 소유자일 것 같진 않았다.
 무엇보다.
 
 “왔도다!”
 
 박준영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미친!’
 
 비유가 아니었다. 그의 두 눈알은 사라지고 눈두덩이 안에는 푸른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 불길은 박준영의 두 눈두덩이 주변의 살점을, 눈썹 근처의 살덩어리와 눈 밑의 살점을 양초처럼 녹이고 있었다.
 
 ‘화, 환각인가?’
 
 괴상망측한 광경.
 이런 산전수전 다 겪은 이강우도 처음이었다. 듣기로는 환각 마법에 걸리면 이런 광경을 보게 된다는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강우는 박준영의 손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다.
 
 “놔! 놓으라고!”
 
 이강우는 간신히 팔을 구부려 자신의 어깨를 누르는 박준영의 팔을 탁탁 쳤다. 하지만 박준영의 팔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준영은 활활 타오르는 두 눈덩이를 품은 얼굴을 이강우 앞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드디어 왔도다! 나의 힘을 오롯이 계승할 그릇이, 나의 숙원을 이룩해줄 그릇이 이곳에 왔도다.”
 
 그 말.
 
 “닥쳐!”
 
 이강우가 반사적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 욕지거리에 박준영은 잔뜩 미소를 지었다.
 
 “바츠무, 그 영생을 꿈꾸는 비릿한 뱀들에게 나를 대신해 복수해줄 그릇이 내 앞에 왔도다!”
 
 이 순간 이강우는 느낄 수 있었다.
 
 ‘아!’
 
 자신의 등 뒤에서, 자신이 발견한 제단 위에서 어마어마한 것이 자신을 향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보았던 그 붉은 도포를 입은 해골이 왔다는 사실을!
 이강우가 이를 꽉 물고 어깨를 부술 듯한 힘을 이겨내며 간신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이강우의 눈에 들어온 건 활활 타오르는 듯한 붉은 도포를 입고 있는 해골이었다.
 해골은 말하지 않았다. 말은 박준영이 계속했다.
 
 “모든 것을 먹어 치워라. 세상의 모든 마법을 먹어 치워 스스로를 살찌워라. 그리하면 네 몸의 살점을 양분 삼아 자라난 나의 권능들이 너의 충실한 종이 되어줄 것이다.”
 
 분명하다.
 해골은 살아있으나, 말을 할 수 없기에 박준영의 몸을 빌려 말을 하고 있다.
 이강우는 이 순간 이를 꽉 물었다.
 
 ‘유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지!’
 
 백 번이 넘는 유적 사냥이 이강우에게 준 건 단순히 돈만이 아니었다.
 경험!
 그 경험이 이 압도적인 공포와 절망 속에서 이강우의 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정체가 뭐야?”
 
 그 해골을 향해 이강우가 질문을 했을 때, 해골은 이번에도 박준영의 입을 빌려 대신 대답했다.
 
 “나는 불사황제 야크센. 복수를 위해 세상 마법들을 먹어치워 불멸을 이룩한 존재이며, 세상을 종말로 이끄는 자들을 먹어치우는 그들의 악몽이다.”
 
 이윽고 해골이 손을 뻗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강우의 이마를 만졌다.
 
 푹!
 
 그러자 이강우의 이마가, 단단한 두개골이 두부처럼, 젤리처럼 꿰뚫렸다. 이강우는 이 말도 안 되는 촉감 앞에서, 해골의 손가락이 자신의 두개골을 뚫고 뇌를 만지는 듯한 이 느낌 앞에서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그 순간 이강우는 머릿속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2화. 불사황제의 권능
 
 붉은 도포, 거대한 짐승의 비늘 가죽을 잘라 만든 듯 강렬하면서도 섬뜩한 핏빛 기운을 품고 있는 도포를 입고 있는 사내는 괴상한 얼굴이었다. 오른쪽 눈은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왼쪽 눈은 검은 소용돌이를 눈동자에 집어넣은 듯 눈알이 쉴 새 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빨은 짐승을 떠올릴 정도로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괴물.
 인간처럼 보이지만, 그는 괴물이 분명했다. 이제까지 백 번이 넘는 유적 사냥에서 만났던 그 어떤 몬스터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공포와 위엄과 재앙을 온몸에 가득 채운 괴물이었다.
 그 괴물 앞에서 이강우는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부들부들, 몸을 떠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공포에 젖은 다리를 후들거리는 것도, 주저앉는 것도, 비명을 내지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그 괴물도 알고 있는 듯, 괴물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를 지은 채 이강우의 이마를 제 오른손 검지로 눌렀다. 그러자 손가락은 마치 젖은 종잇장을 뚫듯 이강우의 피부를 뚫고, 두개골도 뚫고, 뇌에 닿았다.
 상상만으로도 영혼이 나갈 것만 같은 그 느낌 속에서 이강우는 정신이 나가기 직전이었다.
 그때 그 괴물이, 아직 정신이 남아있는 이강우를 향해 말했다.
 
 “나의 권능을 오롯이 계승할 그릇이여, 네 방식대로 내 힘을 담아주도록 하겠다.”
 
  * * *
 
 -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무사한 거야? 유적은? 클로즈 했어?
 
 자신의 원룸 화장실 변기를 의자 삼아 걸터앉아있던 이강우는 제 오른쪽 귀에 닿은 스마트폰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에 왼쪽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찌를 듯한 두통.
 그 두통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건, 오늘 자신이 꾼 꿈과 조금 전 자신이 겪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최우석이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올 리 만무했다.
 
 -강우야 문제 있어? 경찰 불러줘?
 “아니, 무슨 경찰입니까? 쇠고랑 찰 일 있어요?”
 
 하지만 경찰이란 단어에는 이강우가 신속한 반응을 보였다.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최우석이 짧은 한숨,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경찰이란 말에 즉각 반응이 나오는 걸 보니까 정신이 나가거나 그러진 않은 모양이네.
 
 총꾼들 대부분은 경찰과 친하지 않았다. 친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총꾼들은 당장 경찰에게 잡혀가도 이상할 게 없는 처지다.
 일단 대한민국에서 총기 휴대는 불법이다. 여기에 정부 허가를 받지 않은 유적 탐사 역시 불법이며, 유적에서 나온 것들, 몬스터 사체와 마나스톤, 아티팩트 거래도 불법이다.
 단지 정부가 모든 모래시계문과 몬스터를 처리할 수 없고, 크루들이 그런 모래시계문과 몬스터 처리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는 만큼 정부와 검경이 총꾼이나, 크루들을 당장 때려잡기보다는 주시하는 쪽으로 노선을 잡고 있을 뿐. 만약 당장 경찰이 총꾼들을 잡으려고 한다면 과연 어떤 죄목으로 잡아야 할지 그게 가장 큰 고민이 될 정도다. 실제로도 총꾼들이 사고라도 치면, 벌집 쑤시듯 총꾼, 크루, 암시장을 들쑤시는 식으로 경고를 보낸다.
 이강우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유적 사냥을 백 번 넘게 성공한 총꾼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이미 이강우의 이름은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그런 그가 경찰을 찾아간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당장 경찰에게 잡힐까 봐 어머니 병문안도 못 가는 게 이강우의 현실적인 처지다.
 어쨌거나 경찰이란 단어가 이강우의 빠진 얼을 되돌려줬다.
 
 -유적 사냥은?
 
 최우석이 담담한 음색으로 말했다.
 이강우는 짧게 고민한 뒤
 
 “······성공했습니다.”
 
 거짓말을 시작했다.
 
 -성공? 그런데 왜 아무도 연락이······.
 “저랑 마법사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박준영이란 양반하고 저만 클로즈해서 나왔어요.”
 
 클로즈.
 유적을 클리어했단 말이다. 클리어가 아닌 클로즈란 표현을 쓰는 건, 유적에 있는 나오는 문, 출문을 열면 모래시계문의 모래시계가 작동을 멈추고 평범한 문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문을 닫는다, 그래서 총꾼과 마법사들은 클로즈란 표현을 주로 쓴다.
 
 -총꾼 여섯이 다 죽었어?
 
 ‘실제는 나 빼고 전부지만······.’
 
 “박준영, 그 인간 완전 초짜였어요. 그 인간이 사고 치는 바람에 총꾼들 희생이 컸습니다.”
 
 총꾼의 가장 큰 역할은 마법사 보호다. 만약 마법사가 사고를 치면, 마법사가 아니라 총꾼이 죽는다. 총꾼이 전멸하고 마법사만 살아서 유적 클로즈에 성공하는 건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래서 의뢰인은?
 
 때문에 최우석도 깊게 들어가진 않았다.
 
 “총꾼들 때문에 자기가 죽을 뻔했다면서, 클로즈 하자마자 클로즈 보너스는 없다고 지랄발광을 한 뒤에 사라지더군요.”
 -뭐? 진짜야?
 “아마 마법 아티팩트를 구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출문을 발견하자마자 열고 나오자고 했거든요. 그 마법사 양반은 좀 더 수색해서 아티팩트를 구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티팩트 구한다고 제 몫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왔죠.”
 -꽝이었군.
 “아마 수색을 하면 아티팩트 한두 개 정도는 구할 순 있었을 것 같은데······ 총꾼 여섯이 죽고 총꾼 하나랑 초짜 마법사 한 명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먼저 뒈지는 건 나뿐인데. 제가 봤을 때는 빠지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술술, 이강우의 입에서는 마치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는 듯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 거짓말 실력이 이강우가 살아남은 비결 중 하나이기도 했다. 흔히들 이강우의 경력을 보면, 사람들은 그가 굉장히 깐깐하고, 철두철미한 군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를 보면 이강우만큼 얼굴색이 다양한 인간도 없다. 필요하다면 마법사 앞에서 간과 쓸개도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이다. 이 정도 거짓말을 꾸미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새끼 블랙리스트에 올려야겠네. 박준영이라고 했지?
 
 최우석은 그런 이강우의 말에 확실하게 속은 듯, 격렬하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퍽이나.’
 
 그러나 이강우는 최우석의 반응에 실소를 지었다.
 
 ‘어차피 죽은 새끼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뭐해?’
 
 일단 박준영은 죽었다. 죽은 이가 오를 수 있는 리스트는 사망자 리스트나 실종자 리스트밖에 없다.
 혹여 살아있다고 해도 고작 총꾼을 파견해서 얻는 수수료로 먹고사는 소규모 인력업체인 핏볼 크루가 3서클 마법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린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린 애가 난 코카콜라보다 펩시콜라가 좋아, 코카콜라 안 먹을래, 하고 지껄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는 거다.’
 
 이강우는 일단 상황을 여기서 정리하고자 했다.
 
 “어쨌든······ 일이 그렇게 됐으니까 당분간 잠수 타겠습니다. 전화 못 받아도 그러려니 하세요.”
 -알았다. 그런데 클로즈 보너스를 못 받았는데 어떻게 하냐? 괜찮겠어? 돈 급하다며?
 
 돈!
 그 말에 이강우의 표정이 다시금 굳어졌다.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가족이 떠올랐다.
 급하게 수술비는 마련했다. 하지만 수술 이후 입원비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괜찮아요. 급한 불은 껐어요.”
 -내가 돈을 빌려줄 순 없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너 같은 실력 좋은 총꾼을 원하는 곳은 많으니까.
 “예.”
 
 통화가 꺼진 순간 이강우는 스마트폰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자신의 콧대와 미간을 주물렀다.
 우습게도 이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그 괴물도, 박준영이란 마법사도,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 위로 보이는 그 기괴한 것도 아닌 오직 돈이란 단어였다.
 
 ‘빌어먹을 돈만 있으면 그런 수술 받을 필요도 없었는데.’
 
 거듭된 수술과 병원 생활 때문에 미라처럼 말라버린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술을 견디기도 힘든 몸. 그런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주는 여동생 역시 어머니에게 간을 기증하는 바람에 몸이 좋지 못하다. 한때는 피아노 실력을 인정받아 유럽으로 유학도 가려고 했던 여동생이 퉁퉁 부어버린 손가락으로 어머니 병간호를 하고 있다.
 
 ‘빌어먹을 돈.’
 
 돈만 있으면 그런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당장 돈만 있으면 병원 신세도 필요 없다. 힐링 마법, 리커버리 마법, 큐어 마법······ 회복 마법만 쓰면 된다. 실제로 인류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불꽃 구슬을 만드는 마법이나, 얼음 화살 따위를 만드는 마법이 아니라 치료 계열 마법이었다.
 물론 저렴하진 않다. 괜히 마법사와 아티팩트의 값이 기본 억 단위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어머니랑 여동생의 신세를 당장 바꿀 만한 마법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10억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마법 치료는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니까.
 그 외에도 집을 살 돈도 필요했고, 먹고살 돈도 부족했으며, 스포츠카는 아니더라도 타고 다닐 법한 번듯한 차도 필요했다. 경찰들에게 잡힐 게 무서워서 어머니 병문안조차 가지 못하는 처지도 돈만 있다면 바꿀 수 있다.
 돈만 있으면.
 
 “불사황제 야크센······.”
 
 돈만 있으면, 힘만 있으면, 마법사만 될 수 있다면, 마법을 쓸 수만 있다면······.
 
 “권능, 그릇······.”
 
 그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목숨 따윈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실제로 이제까지 돈을 위해 목숨을 베팅해오지 않았던가?
 
 ‘설마 내가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건가?’
 
 이강우가 변기에서 일어나, 다시금 화장실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머리 위에 달린 아홉 개의 고리를 바라보는 이강우의 눈빛은 마치 꿈에서 본 붉은 도포의 사내처럼 기괴한 빛을 품고 있었다.
 
  * * *
 
 이강우는 기억을 더듬었다. 자신이 그로부터, 스스로를 불사황제 야크센이라고 소개한 붉은 도포를 입은 해골 혹은 꿈속의 괴물 같은 사내로부터 들은 말을 어떻게든 선명하게 떠올리고자 노력했다.
 
 “모든 것을 먹어 치워라. 세상의 모든 마법을 먹어 치워 스스로를 살찌워라. 그리하면 네 몸의 살점을 양분 삼아 자라난 나의 권능들이 너의 충실한 종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이강우는 그가 한 몇 가지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의 권능을 오롯이 계승할 그릇이여, 네 방식대로 내 힘을 담아주도록 하겠다.”
 
 이강우는 거울 속 자신을 향해, 머리 위에 아홉 개의 고리를 가진 자신을 향해 불사황제 야크센이 했던 말을 뱉었다. 이강우의 눈이 거울 주변을 훑었다. 거울 곳곳에 있는 초록빛 문자들을 바라봤다.
 
 ‘이 거울은 일종의 나만 볼 수 있는 터치스크린이겠지.’
 
 대충 상황은 이해가 됐다.
 불사황제 야크센이란 어마어마한 괴물,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 그런 그가 이강우의 몸속에 들어왔다. 혹은 그가 자신의 힘을 이강우에게 줬다.
 이유?
 
 ‘세상을 종말로 이끄는 자, 복수······.’
 
 불사황제가 남긴 말을 더듬으면, 아마도 무언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복수일 가능성이 크다.
 즉, 본인이 당장 복수를 할 수 없는 처지이니, 이강우를 통해 복수를 대신하겠다는 것.
 
 ‘그런 괴물 같은 존재의 적이라니, 어떤 괴물이기에?’
 
 타인의 복수를 대행해주는 것만큼 이 세상에서 가장 섬뜩하고, 어려운 일은 없다. 수지타산 맞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강우에게 중요한 건, 그 괴물이 가진 힘을, 필시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힘을 자신이 쓸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강우는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채우는 공포심과 우려, 걱정이란 감정을 지금 이 순간은 무시했다.
 
 ‘내 방식대로라면······ 내가 이해하기 쉬운 구조로 해줬다는 의미이겠지.’
 
 이 부분에서 불사황제는 배려를 해줬다.
 
 “게임 시스템이라, 이거지?”
 
 게임.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모두가 아는 시스템.
 지금 불사황제 야크센이 이강우를 위해 만든 시스템은 그 게임 시스템과 흡사했다.
 덕분에 이해가 어렵진 않았다.
 
 “머리 위에 있는 아홉 개의 고리는 9서클.”
 
 머리 위에 있는 고리는 게임 캐릭터 머리 위에 레벨이 있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 외에 이강우가 볼 수 있는 항목은 세 가지가 있었다.
 
 [능력치], [도서관], [마법].
 
 ‘능력치는 봤고.’
 
 능력치는 확인했다. 특별할 건 없었다. 의문이 생기는 건 섭취 마력 포인트란 놈이었다.
 
 ‘모든 것을 먹어 치워라······.’
 
 그 섭취 마력 포인트와 불사황제 야크센이 한 말을 섞으면?
 
 “뭔가를 먹으면······ 마법 아티팩트나 마나스톤 따위를 먹으면 경험치처럼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는 건가?”
 
 정황상 이강우의 예상이 맞을 것이다.
 
 ‘설마 몬스터를 먹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순간 그 거대한 몬스터의 살점을 잘라내 먹는 상상을 한 이강우의 얼굴색이 굳었다.
 몬스터를 먹어야 레벨업이라니······ 먹으라면 못 먹을 건 없겠는데 몸집이 전차만 한 크기의 몬스터를 전부 먹는 건 솔직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니겠지.’
 
 이강우는 애써 자신의 상상을 외면했다. 그런 이강우의 눈이 [마법] 항목을 향했을 때, 잠시 머릿속을 채웠던 끔찍한 상상은 사라진 듯 이강우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 * *
 
 솨아아!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 소리와 함께 이강우가 분주하게 자신의 화장실 거울을 닦고 있었다. 화장실 거울을 터치스크린 삼아서 온종일 만졌다. 당연히 거울에는 손때가 가득했고, 그걸 닦고 있었다.
 거울을 닦는 와중에도 거울 속 이강우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검은 고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고리를 바라보며 이강우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대충은 알겠어.’
 
 이강우가 거울과 씨름을 하면서 얻은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능력치] 항목은 말 그대로 능력치다.
 [도서관] 항목은 게임으로 따지면 아이템 상점 같은 개념이다.
 [마법] 항목은 게임으로 스킬 설정창 같은 개념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도서관] 항목을 활성화하면 거울 안의 풍경이 도서관으로 바뀌고, 개중에서 이강우는 다섯 가지 책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된다.
 다섯 가지 책은 색으로 구분을 할 수 있었다.
 가장 저렴한 책은 구리색 커버를 가진 책으로 브론즈북이란 명칭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격은 5천 포인트였다. 이 포인트는 예상대로 섭취 마력 포인트를 의미했다. 그다음 책은 은색 커버, 실버북으로 3만 포인트였고, 그 위에 순차적으로 골드북 10만 포인트, 플래티넘북 50만 포인트가 존재했다. 나머지 책은 당연히 다이아몬드북이겠지,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검붉은 커버를 가진 책이 그 위에 존재했다. 그것뿐이다. 그 책은 구매를 시도했으나 자격이 부족하다는 말만 뜰 뿐, 그 외에는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더불어 어떤 마법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마법을 특정해서 구매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런 식으로 현질 유도하는 장사치 수완을 발휘할 필요는 없는데······ 그냥 퍼주면 안 되나?’
 
 어쨌거나 그렇게 [도서관]에서 구매를 한 마법은 [마법] 항목에서 관리할 수 있었다.
 [마법] 항목을 활성화하면, 아홉 개의 슬롯이 뜨고 그 아래에 습득한 마법 목록이 정리됐다.
 현재 이강우가 볼 수 있는 아홉 개의 슬롯 중 여덟 개는 자물쇠 모양이 존재했다. 문외한이 봐도 잠금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히 현재 사용 가능한 슬롯은 1개에 불과했다.
 사용법은 간단했다. 마법 목록 중 원하는 마법을 손가락으로 이용해서 드래그인을 하면 끝!
 
 ‘아티팩트 역할이겠지.’
 
 슬롯에 넣은 마법은 언제든 사용 가능한 상태, 즉 슬롯에 마법을 넣으면 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착용한 상태가 되는 셈이다. 또한 슬롯에 마법을 집어넣으면 일정 시간 동안 다른 마법으로 교체하는 게 불가능했다.
 더불어 현재 이강우는 1개의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슬롯에 집어넣은 마법은 다름 아니라 [분석].
 
 [분석]
 -1서클 마법.
 -마법 사용 시, 일정 시간 동안 주변에 존재하는 마력을 탐지하고, 마력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 단, 마력의 양이 너무 높거나 특수한 능력을 통해 마력을 숨긴 대상의 마력은 감지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다.
 
 어떻게 이 마법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뭐, 내 지금 처지 자체를 생각하면 뭐든 주기만 하면 고맙다고 해야 할 팔자지.’
 
 확실한 건, 지금 이강우에게는 1서클짜리 공격 마법보다는 차라리 보조 마법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이었다.
 이강우가 마법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백 번 넘는 유적 사냥 속에서 마법에 대해서는 일반인은 물론 초짜 마법사들보다는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마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공격 마법, 방어 마법, 보조 마법.
 똑같은 1서클 마법이라도 대체로 공격 마법이 보다 많은 마력을 요구하고, 반대로 보조 마법이 가장 적은 마력을 요구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보조 마법에 속하는 치료 마법 계열은 어지간한 공격 마법보다 훨씬 더 많은 마력을 요구한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 이강우에게 필요한 건, 강력한 공격 마법이 아니다.
 
 ‘일단 최우선 과제는 1서클 확보.’
 
 1서클 마법사가 되는 게 최우선 과제고, 그 과제를 위해서는 쓰지도 못할 공격 마법보다는 [분석] 마법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분석] 마법을 이용하면 당장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뭐든 돈이다.
 이제는 돈만 있으면 마법도, 마나스톤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마법의 시대 아닌가?
 
 뽀드득!
 
 이강우가 깨끗해진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의 자신을, 머리 위에 검은 고리들을 잔뜩 가지고 있는 자신을 바라봤다.
 
 “불사황제.”
 
 그 거울 속에 이강우의 낯빛은 퀭했지만.
 
 ‘그래, 네놈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
 
 눈빛만큼은 섬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 * *
 
 -엄마 수술은 잘 됐어. 너무 걱정하지 마. 나머지는 내가 잘할게.
 “너는?”
 -나?
 “검진받으라고 말했잖아.”
 -아, 그거······ 날짜 잡았어.
 “언제?”
 -다음······ 아니, 다다음 주. 다다음 주에 종합검진 받을 거야. 큰 문제는 없겠지. 나 아직 20대 초반이야. 내가 무슨 문제가 있겠어? 분명 멀쩡하게 나올 거야.
 
 여동생과 통화를 하던 이강우는 여동생의 너무 뻔하고, 수준 낮은 거짓말 앞에서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 꼭 검진받아. 돈 부족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저 넘어갈 뿐이었다.
 애써 거짓말에 속아줄 뿐이었다.
 
 -응, 괜찮아. 내 걱정은 하지 마.
 “필요하면 문자라도 남겨. 전화는 자주 못 하겠지만 문자는 수시로 확인할 테니까.”
 -오빠, 너무 무리하지 마.
 “무리는 무슨.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처지인데. 끊는다.”
 
 통화가 끝나는 순간 이강우는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는 열불을 억누르기 위해 이를 꽉 물어야 했다. 이런 비루한 처지 앞에서 담담해지는 게 쉽지는 않았다.
 결국 이강우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언제나 그렇듯, 초콜릿을 꺼내 입에 넣었다. 최근 들어 먹는 초콜릿 양이 꽤 늘었는지, 주머니를 가득 채웠던 초콜릿은 하나밖에 없었다.
 
 ‘난 몬스터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면, 당뇨로 죽을 거야.’
 
 푸념을 뱉으며 이강우는 걸음을 옮겼다. 그런 이강우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인천이었다.
 
  * * *
 
 5년 전, 정확히는 2015년 4월 5일. 그 날 인천 차이나타운은 고작 하루 만에 풍비박산이 났다.
 이강우는 그 날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다. 4등급 몬스터 폭탄방울뱀이 3시간 만에 차이나타운을 쓸어버렸고,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수도권 병력 중 상당 병력을 인천으로 집중시켰다. 덕분에 이강우는 남들은 동영상으로도 보기 힘든 4급 몬스터 폭탄방울뱀의 위엄을 고작 100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두 눈으로 아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놈의 꼬리에 달린 폭탄이 건물과 부딪칠 때마다 폭발하는 광경은 소름이 끼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강우는 참으로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몬스터에 따른 피해와 혼란이 가장 컸던 2015년 무렵, 굵직한 몬스터와의 전쟁에 참가한 주제에 이제까지 살아남았으니까.
 
 ‘운이 좋긴 개뿔.’
 
 덜컥덜컥, 거친 소리를 내는 전철 안에서 과거를 떠올리던 이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보다 오랜만이네. 인천은 1년 만이지?’
 
 어쨌거나 인천 차이나타운은 폭탄방울뱀에 의해 풍비박산이 난 이후 세상이 어느 정도 안정됐을 때 복구사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복구사업 과정에서 차이나타운에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다.
 인천마법시장.
 정확히 말하면 마법을 거래한다기보다는 유적과 관련된 것들······ 몬스터의 사체나 마나스톤, 아티팩트, 모래시계문 따위들이 거래되는 곳이었고 적잖은 크루가 자리를 잡고 있어 인력시장 역할도 했다.
 이 시장이 인천에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중국과 인접한 인천항의 존재 때문이었다.
 현재의 중국은 세계적인 마법대국이었다. 보통 마법사의 재능을 가진 이가 5만 명 중 1명꼴로 등장한다. 그 수치를 중국 인구 13억 명에 대입하면, 중국은 2만 6천 명의 마법사를 보유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세계 3대 길드 중 한 곳인 칠성문(七星門)의 존재를 비롯해, 중국 정부는 모래시계문과 관련된 모든 것을 국가 주요 사업으로 지정한 뒤 국가 차원에서 유적 사냥 및 마법사 육성, 아티팩트 확보, 마법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 중국과 인접한 인천에 시장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차이나타운 재건사업은 그런 시장을 만들기에 좋은 기회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장사를 하는 거대한 시장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몬스터 사체, 모래시계문, 마법 아티팩트, 마나스톤 등은 허가를 받지 않으면 국외반출 및 거래가 불가능한 품목들이다. 그런 걸 대놓고 사고파는 건 그냥 감옥에서 먹는 밥맛이 그립다는 걸 강력하게 주장하는 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중국음식점 같은 가게 안에 정체를 감춘 채 장사를 하는 이들이 있다.
 이강우가 방문한 곳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구멍가게. 급하게 담배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찾을 이유가 없을 정도로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가게였다.
 
 드르륵!
 
 이강우가 그 구멍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입구 근처에 위치한 계산대에 앉아 있는 노인이 이강우를 바라봤다. 백발에 두꺼운 렌즈를 품은 안경을 쓴 노인은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울 정도로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노인이 이강우를 보는 순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년 전에 은퇴했다는 놈이 여긴 왜 와?”
 
 노인은 이강우를 알고 있었다. 이강우는 그런 노인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오고 싶어 옵니까? 살다 보니 빌어먹을 일이 많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쯧쯧, 번 돈 다 날렸구먼.”
 
 돈 소리에 이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소문이 벌써 인천까지 왔습니까?”
 “정말 제대로 은퇴한 총꾼 놈이면 장난으로라도 인천에 오지 않는데, 소문은 무슨 소문. 딱 보면 척이지. 그래서 왜 왔어?”
 “마나스톤 요즘 시세가 어떻게 됩니까?”
 
 마나스톤.
 그 단어가 나오자마자 노인, 백광현은 손바닥을 펼치면서 말했다.
 
 “돈부터 꺼내.”
 “마나스톤 살 돈이 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습니다. 살 생각은 없고 시세나 좀 알려고 왔습니다.”
 “그걸 왜 여기 와서 물어?”
 “좀 부탁합시다. 나도 여기에 많이 팔아줬잖아요? 3년 단골이 1년 안 왔다고 이러지 맙시다.”
 
 쯧!
 
 3년 단골이란 말에 백광현이 짧게 혀를 찬 후 대답해줬다.
 
 “9등급은 3백만, 8등급은 1천만이다. 7등급은 그냥 모르는 게 약. 물론 이 시세는 길드 시세고, 암시장에서는 2배는 잡고.”
 
 시세를 듣는 순간 이번에는 이강우가 혀를 찼다.
 
 “총꾼 몸값은 반타작이 났는데, 마나스톤 가격은 어떻게 된 게 1년 동안 떨어진 게 없네요. 이제 총꾼 한 명보다 9등급 마나스톤이 더 비싼 거 아닙니까?”
 “사람이 몬스터보다 많으니까 당연한 거지.”
 
 몬스터만도 못한 사람 목숨.
 참으로 서글픈 소리지만, 현실이기도 했다. 아무리 학교 도덕 시간에 사람 목숨은 천금보다 귀하다고 가르쳐도, 현실에서는 천금이 더 귀한 대우를 받는다.
 
 “그보다 시세가 여전한 거 보니까 마나스톤 가지고 사기 치는 새끼들도 여전하겠네요.”
 “요즘 들어 유독 심해. 전국에 있는 모든 사기꾼이 다른 사기는 관심도 없고 마나스톤으로 사기를 치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야.”
 
 마나스톤.
 몬스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광석의 가치는 현재 금과 비슷하다. 단순히 값을 말함이 아니다. 마나스톤은 경제적 가치는 물론 정치적 가치마저 가지고 있다.
 때문에 마나스톤은 비싸게 거래되고, 활발하게 거래된다.
 문제는 이 마나스톤이란 놈이 보통 사람들은 진위를 가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단 마나스톤의 진위를 가장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마법사를 통해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 몸값이 보통 몸값인가? 또한 마법사라고 해서 마나스톤을 무조건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9등급과 8등급 마나스톤의 차이를 구분하는 건 별개의 능력이다.
 그리고 사기라는 게 사실 알면서도 당하는 게 사기다. 마법사가 진짜라고 판정한 놈을 도중에 가짜로 바꿔치기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마법사가 나서서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요즘 감별사 몸값이 얼마입니까?”
 “감별사? 왜? 너 감별사 하게?”
 
 이 바닥에서 마나스톤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감별사의 몸값은 제법 비싸다.
 
 “총꾼 짓보다는 더 낫지 않습니까?”
 “너 설마 마나 서클을 얻은 거냐? 개방했어?”
 
 놀라는 백광현의 물음에 이강우가 손을 저었다.
 
 “그랬으면 여기 왔겠습니까? 당장 정부에 마법사 인증 요청하고, 공무원 됐지.”
 
 더불어 마나스톤을 구분하는 능력은 꼭 마나 서클이 있어야만 가능한 건 아니다. 마나 서클이 없어도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촉을 가진 자들이 없진 않으니까.
 애초에 불법거래가 이루어지는 암시장이다. 정말 제대로 된 능력과 배경을 가진 자보다는 어중이떠중이들, 검증되지 않은 자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결과만 낼 수 있으면, 경력이고 실력이고 배경이고 전부 나발이 되는 바닥이다.
 
 “그럼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무슨 방법이라기보다는 유적 사냥 한 백 번쯤 하니까 감이 오더라고요.”
 
 그 말에 백광현이 두꺼운 안경을 벗었다. 안경을 벗자, 굉장히 날카로운 눈매가, 섬뜩한 눈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구멍가게를 간신히 운영하던 초라한 노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네놈이 이강우니까 받아준다. 다른 놈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네놈 이마에 구멍을 뚫었을 거야.”
 
 이마에 구멍을 뚫는다······ 그 말을 들은 이강우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이마를 툭툭 쳤다.
 
 “예, 그러시겠죠. 제 이마가 뚫기 좋게 생기긴 했지요.”
 
 
 
 3화. 섭취 마력 포인트
 
 “만석루(滿席樓)의 오너인 왕지홍.”
 
 이강우의 부탁에 백광현, 그가 소개해준 인물은 만석루라는 중화요리점의 주인, 왕지홍이었다.
 
 “누굽니까?”
 
 이강우는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강우가 은퇴를 하기 전에는 인천마법시장에서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인물이었거나 혹은 1년 만에 입지를 키운 인물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의미.
 
 “자네가 은퇴한 후에 인천마법시장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돈을 버는 사람이지.”
 
 왕지홍은 후자였다.
 
 “대단한 사람이네요. 내가 은퇴한 후면······ 1년 만에 이 바닥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뭐로 그리 돈을 번 겁니까?”
 “몬스터 고기.”
 
 이 대목에서 이강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고개를 갸웃했다. 백 노인은 그런 이강우에게 재차 말했다.
 
 “몬스터 도축 사업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지. 그렇게 해서 번 돈과 입지, 인맥을 이용해서 최근 마나스톤 거래 사업에도 손을 대려고 감별사들을 모집하고 있어. 그래서 자네를 소개해주는 거야. 이미 이 바닥에서 마나스톤 사업으로 자리 잡은 사람이 경력도, 마법사도 아닌 자네에게 관심조차 가질 리 만무하니까.”
 “아니, 마나스톤 사업은 그렇다 치고 몬스터 도축 사업이라니······ 그 몬스터를 먹는다고요? 소, 돼지처럼?”
 
 이강우는 굉장히 혐오스러운 것을 본 듯한 표정을, 그냥 표정을 짓는 것도 아니고 있는 힘껏 지었다.
 백광현이 그런 이강우를 보며 반문했다.
 
 “먹어본 적이 있나?”
 “있으니 이런 표정을 짓는 거 아니겠습니까? 몬스터 고기는 사람이 먹을 게 못 됩니다.”
 
 이강우가 혀를 내두르며, 몇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직업군인을 그만두고 총꾼으로 유적 사냥을 시작했을 무렵의 기억이었다.
 일단 이강우는 몬스터를 먹어본 적이 있었다. 먹고 싶어서 먹은 건 아니었다. 유적 사냥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유적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 유적 안이 어떤지는 예상할 수 없으니까. 또한 가지고 간 식량에 문제가 생길 경우도 있다. 몬스터와의 전투 도중에 식량을 잃을 수도 있고, 특수한 환경 때문에 식량이 부패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유가 됐건, 유적 사냥 도중에는 외부의 보급을 기대할 수 없고, 그럼 살기 위해서 뭐라도 먹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세상에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까.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몬스터를 잡아서 먹어봤다. 그리고 몬스터를 먹어본 이후로 이강우는 원래 초콜릿을 좋아하긴 했지만 거의 중독자 수준으로, 유적 사냥을 할 때마다 초콜릿을 챙겼다. 결코 몬스터 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 몬스터 고기는 그 정도로 최악이었다.
 
 “진짜 그때를 생각만 해도······ 쓰레기 오물을 뭉쳐서 입 안에 넣는 기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거 먹고 탈이 나서 죽을 뻔했습니다. 난 내장이 항문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몬스터 고기는 맛을 떠나 독을 품는 경우가 적잖았다. 배탈이 나서 설사로 하루 이틀 고생하는 건 애교 중의 애교다. 먹고 죽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매달 주기적으로 마법사들 및 길드 관계자들에게 보급되는 몬스터 도감에는 절대 먹지 말아야 하는 몬스터 관련 항목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걸 돈 받고 파는 인간이 있다고요? 아니, 그걸 돈 주고 사는 인간이 있습니까?”
 
 어쨌거나 이강우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
 그런 이강우의 반응에 백광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자네가 요식업을 시도했다 망하는 거지.”
 “무슨 소리입니까?”
 “요즘 시대에 그냥 보기 좋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봤자 통할 리가 있나. 누가 보더라도 새롭게, 신선한 걸 시도해야지.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몇몇 몬스터의 특수한 부위는 같은 무게의 캐비어와 같은 값을 치러 준다더군.”
 “캐비어요?”
 
 그런데 이강우가 1년 동안 사업으로 번 돈을 후루룩, 말아먹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캐비어 같은 경우에는 30그램짜리가 30만 원 정도 하지. 더 비싼 건 그 곱절인 경우도 있고 말이야.”
 “순금이 그램 당 4만 원 정도 하니까······.”
 “그마저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지. 그래서 왕지홍이 단숨에 인천마법시장의 거물이 될 수 있었지. 마법 아티팩트는 대량 거래나 안정적인 수급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실상 돈벌이에 불과할 뿐이고, 마나스톤은 물량 거래는 꾸준하지만 수요만큼 공급도 많아 시세 가지고 장난치기 힘들고, 몬스터 가죽이나, 비늘 따위는 실상 제대로 된 기술력이 없으면 헐값에 처분할 수밖에 없지만 몬스터 도축 사업은······ 현재는 경쟁자는 없는데, 수요는 있지. 그것도 미식에는 큰돈을 당연하게 쓰는 부자들이. 여러모로 괜찮은 사업이지. 어때? 관심이 있나?”
 
 그 말에 이강우는 스스로에게 경고했다.
 
 ‘미친 새끼, 사업으로 이 꼴이 되고 또 사업을 한다고? 관심 끊어라, 끊어. 넌 사업하고 평생 인연이 없는 팔자야.’
 
 이강우가 그 비싼 돈을 치르고 배운 건, 자신은 사업에 조금도 재능도, 인연도 없다는 사실이다.
 
 “관심은 없고, 그 양반 소개나 해주세요.”
 “맨입으로?”
 
 맨입.
 그 말에 이강우는 구멍가게 한곳을 차지하고 있는 ABC초콜릿을 비롯한 모든 초콜릿을 가져다 계산대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자, 제가 크게 샀습니다. 솔직히 이거 마트 가면 전부 절반 값에 살 수 있는데 여기서 사드리는 겁니다.”
 
 백광현은 그 말에 피식, 실소를 흘렸다.
 
  * * *
 
 만석루는 3층짜리 건물 전부를 음식점으로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석루는 만석루란 이름처럼 언제나 자리가 만석이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중화요리점이란 게 허명이 아니었다.
 이강우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강우의 얼굴을 본 종업원이 곧장 이강우를 예약 푯말이 붙은 방 안으로 데려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강우의 눈이 스윽, 주변을 훑었다.
 
 ‘감시카메라는 석 대쯤 있네. 여기에 방음벽. 이 정도 설비는 건물 올릴 때부터 설계해야 가능한 수준인데, 1년 전에 자리를 잡은 것치고 준비가 꽤 철저한데?’
 
 이강우가 자리에 앉은 후 곧바로 방에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딱히 주문을 하지 않았음에도 여러 종류의 중화요리, 그것도 저렴한 탕수육이나 짜장면 같은 게 아니라 딱 봐도 해삼, 전복을 아낌없이 쓴 요리들이 푸짐하게 식탁 위를 채웠다.
 그러나 이강우는 쉽사리 젓가락을 들 수 없었다. 백광현의 말이 계속 귀에 남았다.
 
 ‘설마 몬스터 고기로 만든 요리는 아니겠지?’
 
 그때.
 
 드르륵!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등장했다. 코밑을 시커멓게 채운 콧수염과 반쯤 벗겨진 머리가 인상적인 40대 후반 중년 사내였다. 중년 사내의 등장에 이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년 사내가 방긋 웃으며 악수를 권했고, 이강우가 그 악수를 받았다.
 
 “반갑네. 만석루 주인 왕지홍이라고 하네.”
 “이강우라고 합니다.”
 “마나스톤 감별사라고?”
 “예.”
 “마법사는 아닐 테고.”
 
 악수를 한 상태에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마나 서클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나스톤의 진위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있습니다.”
 “듣기로는 감별사 경력이 전혀 없던데······.”
 “테스트를 해서 아니다 싶으면 쫓아내시면 됩니다. 아, 그래도 요리값은 좀······ 제가 주문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내가 먹으려고 만든 거니까.”
 
 그제야 둘이 잡은 손을 놓았고, 왕지홍이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왕지홍은 품에서 비단으로 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식탁을 반 바퀴 돌리자, 비단 주머니가 이강우 앞에 섰다. 이강우는 자연스럽게 비단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을 채운 건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가진 검은색 돌멩이 네 개였다.
 마나스톤이다.
 일단 이강우는 그중의 하나를 꺼냈다.
 
 “이건 가짜군요.”
 
 왕지홍이 눈빛으로 가짜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이냐? 그리 물었다.
 
 “마나스톤의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마블링이 없습니다.”
 
 마나스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 돌멩이 속과 겉을 가득 채운 마블링이다. 나머지 세 개는 전부 마블링이 있었다. 이강우는 작은 조약돌 크기의 마나스톤 3개를 바라보며 눈에 힘을 줬다.
 
 ‘분석.’
 
 마음속으로, 머릿속으로 캐스팅을 외치자, 이강우의 눈에 묘한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냥 보면 알 수 없지만, 이강우의 눈을 뚫어지게 보면 느낄 수 있는 일렁거림이 피어올랐다.
 그 일렁거림과 함께 이강우의 시야가 바뀌었다. 마치 구글 글라스 같은 제품을 착용한 것처럼, 현실 위에 텍스트가 덧붙여지기 시작했다. 증강현실이 구현됐다.
 동시에 세 개의 마나스톤 중 두 개의 마나스톤 위로 숫자가 보였다.
 
 ‘오케이! 통하는구나!’
 
 하나는 아예 숫자가 표시되지 않았다.
 
 ‘이것도 아니고.’
 
 숫자가 표시되지 않은 건 마력을 조금도 품지 못한 가짜라는 의미다.
 나머지 둘은 숫자가 있었다. 하나는 [221/221]이라는 숫자를 품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44/220]이라는 숫자를 품고 있었다. 상황을 봤을 때 뒤의 숫자는 본래 가지고 있던 마력의 양이고, 앞의 숫자는 현재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인 모양.
 하나는 마력이 꽉 찬 상태고, 다른 하나는 마력이 1/5밖에 남지 않은 놈이다.
 
 ‘이거구나.’
 
 그리고 이 수치를 보는 순간 이강우는 섭취 마력 포인트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거다.
 이런 마나스톤을 섭취하면 마력 포인트가 오르고, 그럼 [도서관]에서 원하는 스킬북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설마 그냥 돌멩이를 처먹어야 하나? 소화는 되려나?’
 
 아주 잠깐, 돌멩이가 위장에 쌓여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모습이 이강우의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이강우는 그 상상을 무시했다.
 
 “일단 이건 가짜입니다.”
 “어떻게 확신하나?”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나 서클도 없으면서 마력을 느낀다?”
 “이래 봬도 총꾼으로 3년 동안 유적 사냥을 백 번 넘게 치른 몸입니다. 몬스터도 꽤 잡아 봤고, 마나스톤을 채취하기 위해 몬스터를 해체해 본 횟수도 천 번을 가뿐하게 넘어갑니다.”
 
 왕지홍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일단 당장은 믿어주는 수밖에.
 
 “나머지 두 개는? 둘 다 마나스톤인가?”
 “둘 다 마나스톤인데, 굳이 구분하자면 이게 진짜고, 이게 가짜입니다. 크기는 같아도 이쪽 마나스톤은 마력의 양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근거는?”
 “감입니다.”
 
 여전히 불친절한 설명이었지만, 왕지홍은 그 불친절한 설명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감치고는 꽤 정확하군. 사실 최근 마나스톤 암시장에서 감별사들 골치를 아프게 만드는 게 지금 자네가 고른 이놈이지. 마력을 품고 있는데, 그 양이 적은 것들. 속칭 빼내기를 한 놈들이 시장을 교란하고 있어. 그런데 용케 이놈을 구별해내는군.”
 
 마나스톤의 핵심은 그 안에 든 마력의 질과 양이다. 진짜 마나스톤이라도 그 안에 든 양이 적으면 의미가 없다. 그걸 구별할 줄 알아야 감별사랍시고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감별사 보수는 알고 있나?”
 “감정한 마나스톤 판매가의 5퍼센트 아닙니까?”
 “경력조차 없는 초짜의 경우에는 3.5퍼센트부터 시작이지.”
 
 이강우가 짧게 눈살을 찌푸리며 슬슬 수수료 협상을 나서기 위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자네 혹시 내 사업에 동참할 생각 없나? 만약 내 사업에 동참해준다면, 수수료를 6퍼센트로 잡아줄 수도 있네.”
 
 왕지홍이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6퍼센트? 진짜?’
 
 이강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이 열리며, 여종업원이 음식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종업원이 들고 온 음식은 중화요리점에 어울리지 않는 스테이크였다.
 정말 큼지막한 고깃덩이.
 그런 고깃덩이 위로 보이는 건······.
 
 ‘응?’
 
 [101]이란 숫자였다.
 
  * * *
 
 왕지홍은 자세한 사업 이야기에 앞서 마련된 스테이크 맛을 보라고 했다.
 그러나 이강우은 그런 왕지홍의 말에 쉽사리 스테이크를 향해 손을 내밀지 못했다.
 
 ‘이거······.’
 
 스테이크 위로 보이는 숫자, 마나스톤에서 보던 숫자와 똑같다. 그렇다는 건 이 스테이크가 마력을 품었다는 의미다. 소, 돼지는 마력을 품지 못한다. 마력을 품는 건 몬스터 그리고 마법사뿐이다. 물론 이 스테이크가 마법사의 몸에서 나온 스테이크일 리는 없다.
 
 ‘몬스터 고기다.’
 
 그럼 답은 몬스터!
 당연히 이강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과거 몬스터 고기를 먹고 구역질을 하고, 배탈이 나 설사까지 했던 기억이었다.
 
 ‘때깔은 뭐 그때랑은 차원이 다르지만.’
 
 물론 외형적으로 봤을 때 지금 마련된 스테이큰 굉장히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과거 유적에서 먹을 게 정말 없어서 보기에 소처럼 생긴 9등급 몬스터, 삼뿔황소를 대충 해체해서 불에 바짝 구워 먹었을 때의 광경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그때 그 식감, 끈적거리는 썩은 오물을 입에 억지로 넣는 식감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강우가 망설이는 건 당연했다.
 
 “무슨 문제가 있나?”
 
 왕지홍이 그런 이강우의 망설임에 의문을 가지는 것 역시 당연했다. 누가 보더라도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인데 먹기를 주저하다니.
 
 ‘설마 몬스터 고기란 걸 아는 건가?’
 
 왕지홍의 눈매가 가늘어지는 순간.
 
 “젓가락으로 먹기 좀 그래서 고민 중입니다.”
 
 이강우가 정말 능숙하게 거짓말로 상황을 넘어갔다. 왕지홍이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짧게 생각했다.
 
 ‘하긴, 눈으로 보고 몬스터 고기인지 구별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걱정하지 말게.”
 
 이윽고 왕지홍이 젓가락을 들어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가볍게 찢었다.
 
 푹!
 
 정말 가볍게.
 마치 젓가락으로 푸딩을 자르듯, 두부를 자르듯, 잘라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육즙을 가득 품은 육질이 부드럽게 찢기는 모습은 이제까지 이강우가 먹은 스테이크들과는 존재감······ 아니, 개념 자체가 달랐다.
 그 모습을 본 이강우가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두부를 먹듯 젓가락으로 필요한 만큼만 잘라낸 후에 그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 첫맛.
 몬스터 고기가 입에 들어오는 순간 느껴진 첫맛.
 
 ‘부드럽다.’
 
 가장 먼저 느낀 느낌은 보이는 그대로의 부드러움이었다. 씹는다기보다는 녹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굉장히 진해.’
 
 그 부드러움 속에는 어지간한 스테이크보다 두 배 이상 강렬한 고기 특유의 진한 맛이 꽉 차 있었다. 그 진한 고기 맛 속에서 느껴지는 짙은 달콤함과 감칠맛은 이강우가 이제껏 먹어본 그 어떤 맛보다 인상적이었다. 통상적인 고기의 맛이 아니었다. 맛을 떠나서 세상 어느 가게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맛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기를 삼키는 순간.
 
 [43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마나 서클이 활성화됩니다.]
 
 알림이 떴다.
 
 ‘이거······.’
 
 이 순간 이강우의 머릿속 계산기가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한편 왕지홍은 그런 이강우를 보며 만족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비싼 돈을 주고 먹어도 아쉽지 않은 맛 아닌가?”
 
 이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강우가 눈빛으로 이 고기의 정체를 물었다.
 
 “고기의 정체는 사업 비밀이니 알려줄 수 없네. 물론 자네도 눈치를 챘겠지만 일반 소나 돼지고기가 아닐세. 몬스터 고기. 하지만 이 정도라면 내 사업의 가능성은 인정할 터.”
 
 이강우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몬스터 고기라는 게 구하는 게 쉽지 않네.”
 “그냥 잡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당장 유적 들어가면 많아서 처치 곤란인 게 몬스터인데.”
 “자동소총으로 총알 세례를 퍼붓고 마법으로 난도질을 하는 게 도축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아······.”
 
 이강우가 실소를 머금었다.
 
 “하물며 당장 마나스톤만 구하기 위해 제멋대로 해체된 몬스터 사체는 부패도 빠르게 진행되네. 그 해체라는 것도 전문적인 기능사가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자가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지.”
 
 이강우는 왕지홍의 의중을, 그가 말하고자 하는 사업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유적 사냥에서 몬스터를 해치우고, 값이 되는 부위를 즉석에서 도출해올 실력자가 필요하다, 이겁니까?”
 “이해가 빠르군. 몬스터 고기를 즉석에서 도축해올 전문적인 실력자가 필요하네. 그것도 많이. 지금 우리 상황이 꽤 안 좋거든.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지.”
 “마법사는······.”
 
 그 순간 이강우는 자신이 뱉으려던 말에 스스로가 웃고 말았다.
 
 “마법사들이 굳이 몬스터 고기를 도축해서 팔 생각은 하지 않겠군요.”
 “최소 수억 원에 거래되는 아티팩트가 목적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당장 돈 이삼백만은 돈 취급도 안 하는 마법사들이 고깃값 때문에 우리 제안을 받을 리가 없지.”
 
 마법사가 도축업자가 될 일은 없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자기가 인류보다 진화한 인류쯤으로 여기는 자들이니까. 몬스터 도축 같은 걸 제안하면, 감히 내게 그런 제안을 해? 하고 두 눈을 부라릴 것이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총꾼이다. 돈만 주면 뭐든 할 수 있는 총꾼이라면 좋은 공급자가 될 것이다.
 문제는······.
 
 “문제는 요즘 총꾼들 수준이 굉장히 낮다는 점이네. 몬스터 도축이란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고, 아무래도 노하우도 중요한 만큼 내 입장에서는 경력과 신용이 있는 자가 필요한데······ 요즘 총꾼 애들은 대부분 양아치나 다름없지. 차를 사고 싶어서, 몬스터를 잡고 싶어서, 신기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 이력서에 독특한 경력 좀 넣고 싶어서 돈 삼사백 받고 유적 사냥에 나서는 양아치들.”
 “마지막 사례는 좀 슬프군요. 취업하려고 총꾼을 하다니.”
 “뭐, 어찌 됐건 내 입장에서는 자네가 마나스톤 감별사 역할을 해주는 것보단 내 사업을 도와줬으면 하네. 자네 경력을 보는 순간 정말 적격자가 왔다고 생각했으니.”
 
 그 순간.
 
 “죄송합니다.”
 
 이강우가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 왕지홍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생각보다 단칼에 거절하는군.”
 “매력적인 제안입니다만, 결국 유적에 들어가는 일 아닙니까? 돈이 궁한 처지이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왕지홍은 옅게 웃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드는군. 보통은 그냥 돈에 눈이 멀어 저울질을 하는데······ 이게 백 번이 넘는 유적 사냥에서 살아남은 비결이군.’
 
 “이해하네.”
 
 왕지홍이 그 말을 기점으로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럼 수수료는 3.5퍼센트로 하겠네.”
 “석 달 동안 일하면서 마나스톤 감별에 실수가 없다면, 5퍼센트로 수수료를 올려주십시오.”
 “석 달이라······ 좋아.”
 
 왕지홍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방 밖에 있던 종업원이 계약서 두 장을 꺼냈다. 왕지홍이 부른 것도 아닌데 잽싸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지금 이 방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실시간으로 감시된다는 의미.
 이강우는 그런 사실을 제 머릿속에만 둔 채 왕지홍이 마련한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읽고 마지막에 사인도 했다.
 그 둘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이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일어나면서.
 
 “남은 건 마저 먹겠습니다.”
 
 스테이크의 남은 조각을 잽싸게 손으로 집어 먹었다. 쪽쪽, 손에 묻은 양념도 깔끔하게 빨아 먹었다.
 
 [58포인트의 마력을 섭취하셨습니다.]
 
 눈앞에 알림이 떴고, 이강우는 그 알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맛이 좋네요. 정말.”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철에 몸을 실은 이강우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오른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누가 보더라도 피로에 지쳐 몸조차 겨누지 못하는 서민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강우는 지금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
 
 ‘진짜 좋은 기회가 왔어!’
 
 너무나도 들뜬 기색을 이런 식으로라도 감추지 않으면 변태로 오인당할 것 같아서, 그래서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이강우는 작금의 상황에 만족했다.
 
 ‘일단 분석 마법······ 드디어 사람다운 일자리를 얻겠네.’
 
 가장 큰 수확은 역시 분석 마법이다. 분석 마법으로 마나스톤을 감별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목돈은 힘들어도 당분간 수입은 안정되겠지.’
 
 마나스톤 감별능력은 돈이 된다.
 보통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마나스톤은 9등급에서 8등급 사이다. 더불어 시세는 공식 시세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 비싸다. 때문에 암시장에서 마나스톤의 거래량은 그렇게까지 많은 편은 아니다. 정말 정당하게 마나스톤이 필요한 경우라면 암시장에서 거래할 필요가 없으니까. 암시장에서 마나스톤을 거래하는 건 마나스톤에서 추출한 마력을 합법적이지 못한 일에 써먹기 위해서다.
 어쨌거나 암시장에서 보통 크기의 9등급 마나스톤 하나를 감정하는 것에 대한 5퍼센트 수수료는 20~30만 정도다. 당장은 3.5퍼센트를 받으니까 액수가 줄어들겠지만, 한 달에 10~20개 정도만 감정해도 먹고살 돈 걱정은 필요 없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바다.
 
 ‘몬스터 도축 사업이라······.’
 
 예상외 수입은 다름 아니라 몬스터 도축 사업.
 
 ‘정말 맛있었어. 아니, 정말 처음 보는 맛이었어.’
 
 몬스터 고기가 그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맛을 떠나서 기존의 고기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맛을, 그것도 호불호가 갈리는 맛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즐길 수밖에 없는 맛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하다.
 
 ‘그건 진짜 돈이 돼.’
 
 이강우가 사업에 재능이 있는 건 절대 아니지만, 몬스터 도축 사업은 어마어마한 돈이 되는 사업이다.
 
 ‘백 노인이 왜 나보고 사업하는 재주가 없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되네.’
 
 더군다나 몬스터 도축 사업은 남들은 그냥 버리는 걸 가져다가 돈을 만드는 사업이다. 보통 몬스터를 잡고 나면 가장 먼저 마나스톤을 채취한 다음 몬스터에 따라 비늘이나, 뼈, 가죽 정도만을 벗겨다 판다. 몬스터 고기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고기는 아무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니 더욱 매력적인 것이다. 플러스알파를 얻을 수 있는 사업이고, 블루오션이다.
 그리고 마지막 소득.
 
 ‘몬스터 고기를 먹어도 섭취 마력 포인트가 오른다.’
 
 처음에는 마나스톤만으로 섭취 마력 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몬스터 고기를 먹는 것으로 섭취 마력 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었다.
 사실 마나스톤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상적으로 거래되는 마나스톤은 사용 용도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사용 용도가 집에서 삶아 먹으려고······ 이러면 구치소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감금될 것이다. 여기에 총꾼으로 3년 동안 뛰면서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른 이강우는 범법자다. 돈이 있어도 마나스톤 구매가 불가능하다.
 암시장에서 사는 건 더더욱 힘들다. 물량도 생각만큼 많지 않고, 결정적으로 비싸다.
 그러나 몬스터 사체는 다르다.
 먹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미친놈 취급을 받겠지만, 그래도 마나스톤을 먹는 것보다는 낫다.
 결정적으로 유적 사냥 도중 잡은 몬스터를 먹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의심받지 않고 마력을 섭취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다.
 그래서 왕지홍의 제안을 거절했다.
 정말 하고 싶으니까.
 
 ‘굳이 내가 안달이 났다는 걸 상대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지. 결국 이 바닥은 궁한 자가 알아서 고개를 숙이는 법이니까.’
 
 좀 더 좋은 조건과 대우를 받기 위해서, 좀 더 제대로 하기 위해서, 그래서 뜸을 들였다.
 
 ‘그보다 왕지홍, 그 양반은 대체 몬스터 도축 방법을 어디서 구한 거지? 자체적으로 구한 건가?’
 
 
 
 4화. 몬스터 도축자
 
 왕지홍, 그의 밑에서 마나스톤 감별사로 일을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났다.
 
 ‘이걸로 이번 달 병원비랑 생활비는 입금했고······.’
 
 그 석 달 동안 이강우에게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석 달 전 정말 돈이 너무 급해서 은퇴를 번복하고, 총꾼이 되어 무작정 의뢰를 받은 후에, 유적 사냥에서 불사황제 야크센의 권능을 얻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이 과정 전부가 마치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난 석 달간 이강우의 삶은 평온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2015년 모래시계문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어떤 식으로든 몬스터와 목숨을 건 투쟁을 치러야만 했던 이강우의 삶에서 가장 평온했던 석 달이었다. 은퇴 후 보낸 1년이란 세월 역시 사업을 한답시고 나서면서 여러모로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솔직히 이런 삶이 이강우가 원했던 삶은 아니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이강우는 억 소리 나는 돈을 십억 소리 나는 돈으로 바꾸고 싶었고, 사업에서 성공해서 그야말로 인생역전, 화려한 삶을 꿈꿨었다.
 그때의 꿈에 비하면 지금 삶은 솔직히 구질구질하다. 한 달에 만질 수 있는 돈은 3백만 원 안팎.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 일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내일 일이 끊겨도 이상할 건 없다. 혹은 불법 마나스톤 거래라는 죄목으로 수갑을 찰 수도 있다.
 또한 수입도 불규칙하다. 매일 마나스톤 감별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요청이 있을 때만 한다. 여기에 매달 나가는 여동생과 어머니의 병원비, 생활비 때문에 적금 하나 들기 힘들다.
 심지어 지금 이강우는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을 쓸 수가 없었다. 사업 실패로 신용불량자 처지가 됐고, 총꾼으로 일하면서 반쯤 지명수배자나 다름없는 꼴이다.
 구질구질한 삶.
 하지만 이강우는 이 구질구질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삶이 계속되리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이유?
 
 ‘내 인생 팔자에 이런 평온함이 오래 갈 리 만무하지.’
 
 이강우가 미래에 어떤 차를 끌고 다닐지는 그도 모르지만, 이강우는 자신의 팔자가 어떤 팔자인지는 안다. 사업을 하면 무조건 망할 팔자, 사업이 아니더라도 평생 조용히, 평온하게 살 수는 없는 팔자.
 더군다나 이강우는 불사황제 야크센과 조우한 기억을, 그의 섬뜩한 기세와 그가 품은 눈빛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 불사황제의 의지와 힘이 이강우의 몸속에, 영혼 속에 있다. 만약 이강우가 계속해서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자 한다면, 불사황제가 원하는 바와 정반대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때는 불사황제의 권능이 이강우의 목을 조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가 보여준 능력을 생각하면 이강우를 미치광이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분명하다.
 최근 석 달간의 평온함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일 뿐이다. 조만간 아주 큰일이 터질 것이다.
 
 ‘큰일이 터지는 건 아무래도 좋은데, 내게 이득이 되는 큰일이 됐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강우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왕지홍.
 
 ‘이 바닥에 양반은 없는 법이지.’
 
 드디어 큰일이 왔다.
 
  * * *
 
 “총꾼 시절에 몬스터 해체를 해 본 적이 있나?”
 
 왕지홍, 그는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다짜고짜 이강우에게 몬스터 해체 경험을 물었다.
 
 ‘드디어 왔구나.’
 
 여기서 이강우는 촉을 느꼈다. 왕지홍의 의중이 무엇인지,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숨긴 채, 왕지홍의 의중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많이 해봤습니다. 유적 사냥에서 몬스터를 잡고, 마나스톤 채집은 거의 제 몫이었죠. 횟수로 따지면······ 제가 유적 사냥을 백 번 넘게 했고, 보통 유적 한 곳에서 적게는 대여섯 마리, 많게는 스무 마리도 넘게 몬스터가 나오니까 대충 횟수로 따지면 천 번은 넘었겠군요. 아마 제가 지금 얻게 된 마나스톤 감별능력도 그 덕분인 것 같습니다. 몬스터 해체도 많이 해보고, 마나스톤도 많이 만져 봤죠.”
 
 대답을 하면서도 이강우는 왕지홍의 의중을 떠올리며 속으로 쓴웃음을 머금었다.
 
 ‘여기서 몬스터 해체라니······ 의중이 너무 뻔하잖아?’
 
 왜 왕지홍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다짜고짜 몬스터 해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까? 그 의중을 파악하는 건, 눈치가 조금 있다면 그리고 왕지홍의 주력 사업이 뭔지 안다면 금방 알 수 있다.
 
 “길게 돌려 말하지 않겠네. 조만간 유적을 하나 사냥할 건데······ 거기에 총꾼으로 합류한 다음 잡은 몬스터를 좀 썰어 주게.”
 
 몬스터 도축 사업!
 
 “······몬스터를 썰라는 게 저보고 마법사들처럼 몬스터를 썰라는 건 아닐 테고.”
 
 왕지홍은 이강우가 도축업자로 유적 사냥에 참가해주기를 원했다.
 
 “몬스터 도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 순간 이강우는 혼신의 연기력을 발휘했다. 일단 긴 한숨을 내뱉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죄송하지만, 저번에 말했던 대로 유적에 들어가는 건······.”
 “선수금 4천만 원.”
 
 큼지막한 액수가 나왔다.
 
 “아티팩트와 마나스톤에 대한 지분을 포기하는 대가로 클로즈 보너스는 3만 달러 지급일세. 돈은 클로즈를 완료하는 순간 현장에서 달러로 즉시 지급.”
 “예?”
 
 여기서 이강우는 자신이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도 잊은 듯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4천만 원? 클로즈 보너스가 3만 달러?’
 
 놀란 이유는 단순히 왕지홍이 제안한 액수 때문이 아니었다. 정말 큰 액수지만, 정말 노련한 총꾼이라면 그 액수에 눈이 돌아가서는 안 된다.
 
 “지금 설마 7등급짜리 유적을 말하는 겁니까? 저보고 7등급 유적 사냥 참가?”
 
 그만한 돈을 총꾼에게 준다는 건, 달리 말하면 위험성과 수익성이 굉장히 높은 등급의 유적이란 의미다. 총꾼에게 7천만 원 정도 준다는 건, 유적 등급이 최소 7등급이란 의미다. 8등급 유적은 총꾼 리더를 맡아도 2천만 원을 받기가 힘든 게 현실이니까.
 반대로 그만한 돈을 지불할 가치가 7등급 유적에는 충분히 있다.
 7등급 유적은 마법사들에게는 기회의 땅이요, 기업들이나 길드에게는 다이아몬드 광산이니까. 물론 총꾼들에게는 공동묘지 같은 곳이지만.
 
 ‘여기서 7등급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일단 7등급 유적이 가지는 가장 큰 가치는 3서클 마법 아티팩트를 구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8등급이나 9등급 유적에서 3서클 마법 아티팩트가 전혀 안 나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사례를 수집해서 통계를 만드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8등급과 9등급 유적에서 3서클 이상의 마법 아티팩트를 구할 수 있는 확률은 낮다.
 또한 7등급 몬스터에서 나오는 마나스톤이 있어야 3서클 마법 아티팩트에 쓸 수 있는 마력을 정제할 수 있다. 몬스터 등급에 따라 마나스톤이 가지는 마력의 질과 양이 달라지며, 3서클 마법 아티팩트가 요구하는 마력의 질은 7등급 이상의 마나스톤에서 구할 수 있다. 9등급이나 8등급 마나스톤을 특수한 기술로 정제해서 마력의 질을 높이면 3서클 마법에 쓸 수 있지만, 이강우가 알기로는 그렇게 하는 건 배보다 배꼽이, 마나스톤 값보다 기술이나 기타 비용이 더 든다.
 그리고 3서클 마법부터가 진짜 마법이다. 특히 치료 마법 중에 실질적인 효용성을 기대할 수 있는 마법들이 대부분 3서클 마법이다. 공격 마법 역시 3서클 마법의 위력은 1~2서클 마법과 궤를 달리한다. 1~2서클 마법 중에 공격 마법으로 서열을 정하는 건 어느 총이 더 세다, 더 좋다, 수준의 이야기다. 하지만 3서클 마법부터는 곡사포냐, 박격포냐······ 뭐 이런 수준의 이야기가 된다.
 물론 여기까지는 유적 사냥을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마법 산업 관련 기업들, 길드들, 마법사들 이야기이고 총꾼들에게는 툭 맞으면 비명횡사하는 세계다. 몬스터들의 강함, 특수성이 차원이 다르다. 총꾼들의 몸값이 갑자기 확 오르는 건 사망위로금을 선지급해준 덕분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이 유적 사냥 파티에는 4서클 마법사 한 명과 3서클 마법사 두 명이 포함되어 있네. 또한 자네만큼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총꾼 아홉 명 그리고 충분한 화력지원까지. 적어도 소총으로 무장된 파티와는 차원이 다를 걸세.”
 
 물론 7등급 이상의 유적은 가치가 있는 만큼 위험하고, 위험한 만큼 준비도 철저하게 한다. 파티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의 수준도 달라지고, 총꾼들의 무장 상태도 달라진다.
 그래서 석 달 전에 박준영이 계방산에 등장한 모래시계문을 두고 7등급이 아니라서 아쉽다고 했을 때, 이강우가 속으로 그를 시체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씹은 것이다. 고작 그 정도 실력과 병력, 조합과 무장 상태로 7등급 유적을 사냥하는 건 자살행위니까.
 사실 그런 점 때문에 의외로 7등급 유적 사냥에서 총꾼의 사망률은 8등급 유적이나 9등급 유적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높은 건 아니었다. 낮은 건 아니지만, 지급되는 돈의 액수를 감안하면 무시할 정도는 된다.
 
 ‘오히려 돈 때문에 오합지졸, 급하게 모인 8등급, 9등급 유적 사냥 파티보다는 그래도 나름 실력자들이 모인 7등급 유적 사냥 파티가 낫긴 하지. 문제는 내가 낄만한 일이 아닌데, 대체 왕지홍이 날 어떻게 꽂아 넣을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놀랐다.
 이강우가 현역으로 활동할 당시 그는 제법 총꾼으로는 이름이 났지만, 하이에나 크루 소속인 그를 7등급 유적 사냥에 참가시켜주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보안상의 이유도 있고, 이미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무리에 굴러온 돌이 들어오는 게 모양새도 그렇고, 그런 요소들을 감수할 만큼 이강우의 합류가 이익이 되는 건 아니다. 까놓고 말해서 총꾼 한 명의 합류가 전력에 미치는 영향은 높지 않다. 총꾼은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이고, 주력은 마법사다.
 그런데 자신을 집어넣는다?
 
 ‘왕지홍, 이 양반 배후에 크루나 길드가 있다는 의미인데?’
 
 왕지홍의 권력이나 영향력, 배경이 이강우의 생각보다 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
 어쨌거나 이강우가 놀란 표정을 가다듬고 짧게 한숨을 내쉬기 시작하자 상황을 지레짐작한 왕지홍이 설득을 위해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줬다.
 
 “자네는 어디까지나 보조일세. 우리 쪽에서 칼잡이를 보내지만, 알다시피 유적에서는 누가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일 아닌가? 그 칼잡이가 당할 경우, 그를 대신해 몬스터를 썰어 줄 실력자가 필요하네.”
 
 왕지홍의 말에 이강우는 금방 상황을 이해했다.
 
 “스페어가 필요하다, 이거군요.”
 “스페어인 만큼 실력보다는 일단 생존 능력이 중요하네. 자네의 경력이 가장 큰 가산점이 됐지.”
 “1년 공백기가 있는 저를 그저 경력만 보고 뽑으셨을 리는 없고······.”
 “두 번째는 신용일세. 아무래도 도축기술이란 게 외부에 유출하면 손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기술인만큼, 신용도 없는 자에게 알려줄 수는 없지.”
 
 신용!
 그 두 단어에 대한민국 금융권이 인정한 신용불량자, 이강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신용이 좋다는 이야기는 태어나서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데······.”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자네만큼 신용이 높은 사람은 없지 않나?”
 
 그 말에 이강우의 표정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살벌한 기운이 이강우의 얼굴을 뒤덮었다.
 모를 리 없으니까.
 왕지홍이 지금 신용을 운운하면서 내뱉은 이유의 의미를, 의중을, 속뜻을 모를 리 없으니까.
 
 “자네는 죽으면 죽었지, 가족을 두고 도망치는 사내는 아니니까. 이 바닥에선 자네보다 신용이 높은 사람은 단언컨대 없네.”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정말로 원치 않는다면 안 해도 좋네. 자네는 유력한 후보일 뿐이니까. 하지만 자네가 정말 노련한 총꾼이라면 이번 일이 마냥 위험하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건 나보다 더 잘 알 터. 선수금과 클로즈 보너스 외에 자네가 도축해온 고기에도 수수료를 지불하겠네. 만약 자네가 정상적으로 유적 사냥과 임무를 마친다면 1~2천만은 충분히 더 받을 수 있겠지. 그럼 대략 1억 정도 되는 돈을 유적 사냥 한 번으로 벌게 되는 걸세. 지금 마나스톤 감별사로 3년 가까이 일을 해야 하는 돈을 한 달 만에 벌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진 않지.”
 
 왕지홍이 말을 마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리며 방 안으로 요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짜장면 두 그릇.
 왕지홍이 한턱 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정말 조촐하기 그지없는 대접이었다. 이강우가 조금은 실망한 기색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이윽고 이강우가 짜장면을 반쯤 먹었을 때.
 
 “제가 뭐부터 배우면 되는 겁니까?”
 
 이강우가 왕지홍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왕지홍이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기술을 배워야지. 식사가 끝나면 곧바로 지하로 안내해주겠네. 그곳에 작업실이 있으니까. 장담하지. 배워서 나쁠 건 절대 없을 걸세.”
 
  * * *
 
 식사를 마친 후 왕지홍이 이강우를 데리고 향한 곳은 만석루 건물 지하 1층이었다. 계단을 통해 내려간 지하 1층은 조리 도구들 따위가 대충 정리되어 있는, 그야말로 창고였다.
 그 순간 이강우의 눈빛이 바뀌었다.
 
 ‘분석 시작.’
 
 [분석 마법이 시작됩니다. 지속 시간은 5분입니다.]
 
 이강우의 눈에 생긴 묘한 일렁거림, 이강우가 분석 마법을 썼다는 증거였다.
 
 ‘오호.’
 
 분석 마법을 쓰자 이강우가 보는 세상이 달라졌다.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창고, 하지만 입구가 있는 면을 제외한 나머지 3면에서는 벽 틈으로 푸르스름한 아지랑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밀의 방 같은 게 있을 줄은 알았지만, 설마 세 곳이나 될 줄이야?’
 
 벽 틈에서 흘러나오는 건 다름 아니라 마력이었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벽으로 보이는 곳의 틈으로 마력이 흘러나온다는 건 그 벽 너머에 특별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 안에 마력을 품은 것들이 있다는 의미다. 마나스톤일수도 있고, 마법 아티팩트일 수도 있다. 혹은 마법사가 있을 수도 있다. 몬스터 고기가 있을 수도 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여긴 인천마법시장에서 최근 가장 돈벌이가 좋다는 왕지홍의 거점이다. 마법과 관련된 게 없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장소가 세 곳이나 될 줄이야?
 
 ‘시침 뚝.’
 
 그러나 이강우는 그 이상 호기심을 품진 않았다. 궁금하긴 하지만, 이 이상 괜한 호기심을 품었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언제나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거나, 너무 많이 알면 명줄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적당히 아는 게 도움이 되는 거지.
 그런 이강우의 모습에서 의심할 구석을 찾지 못한 왕지홍은 이강우를 자신이 선 벽 앞으로 불렀다.
 
 “이리 오게.”
 
 이윽고 왕지홍이 벽에 숨겨진 스위치를 누르자, 벽이 문처럼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눈에 들어온 건 또 다른 문이었다. 철로 된 문 앞에는 하얀 가운과 장화 그리고 장갑 같은 위생용품을 비롯해서 위생 관련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왕지홍이 곧바로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장화를 신었다. 이강우도 따라서 했다. 위생용품 착용을 마친 후에는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칙칙, 소리와 함께 소독약이 뿌려졌고, 소독약이 찰랑거리는 길을 장화를 신은 채로 밟고 지나갔다.
 
 “위생이 철저하시군요.”
 “먹는장사 하는 사람들은 위생관리에 철저해야 하는 법일세.”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문을 왕지홍이 여는 순간, 이강우는 살짝 발걸음을 뒤로 물렸다.
 왕지홍이 그 모습을 보며 옅게 웃었다.
 
 “감이 좋군.”
 
 이강우가 멋쩍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몬스터 같은 게 느껴지면 일단 뒤로 빼는 체질이라서 말입니다.”
 
 몬스터가 등장한 이후 평생 그렇게 살았다. 몬스터와 언제나 일정 거리 이상을 벌리고자 했다. 그렇게 하도록 훈련을 받았고, 적지 않은 유적 사냥 동안 살아남기 위해 그런 능력을 어떻게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득해야 했다.
 
 “총꾼이라면 당연한 일이지. 그래도 걱정 말게. 이곳에서 살아있는 놈은 취급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는 살아있는 놈을 취급한다는 말입니까?
 ······라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이강우는 그 질문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대신에 이강우는 왕지홍을 따라 전진했다.
 
 ‘이제 마냥 뒷걸음질 칠 수는 없지.’
 
 눈앞에 보이는 숫자, 마력 포인트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댓글(14)

wn********    
단행본만 개정판 인가요?????
2019.07.26 19:21
후원충    
모바일기준 3쪽 입루 -> 일부
2019.08.02 18:45
the0    
오타 비문 수정 개정판이라는데... 이게 수정한 거면 편당 원본은 어떠했을지... 출판사가 일을 제대로 안한 것인지 작가가 최대한 수정을 못하게 하고 눈에 보이는 오타 수정만 하도록 한 것인지는 몰라도 참담하네요...’편집’이라는 것은 없는 출판사인듯.. 마무리도 그렇고 전투씬 처리도 그렇고 너무 겉멋만 내려는 연출과 반전도 아니고 다 뻔하게 아는 사람이나 상황인데 사내는...바로 누구! ....몰랐다.. 이런 식의 글이 너무 많고 단어로 끝나는 문장 천지네요... 일괄대여라서 끝까지 봤지만 이 작가분 소설은 다시는 안 볼 것 같습니다..
2019.08.05 21:50
엘리오사    
문피아는 이북오류가너무심해서 당최볼수가없네... 재밋을꺼같은디ㅜㅜ
2019.08.09 01:10
달탄양    
작가님은 역쉬 제 취향입니다.
2019.08.12 08:51
키작은거인    
저도 ..완전 재밌게봄
2019.08.12 09:04
레종그린    
초중반까진 완전 잼있게봤고 중반이후는 그럭저럭인듯 합니다.
2019.08.16 11:49
쩔었어    
개자슥들 졸라 받아쳐먹네
2021.01.25 01:44
뽀마르03    
정말 잘 봤습니다.^^
2021.01.25 14:41
대여조아    
문장력이 너무 구려... 작가님 책 좀 많이 읽으세요
2021.08.10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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