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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상인(완전판) 1

2019.07.24 조회 1,569 추천 5


 무공상인(완전판) 1
 
 일원교의 경전에서 발췌
 ······
 일원교는 삼목이안수(三目二顔獸)란 신수를 숭배한다.
 전설에 의하면, 선인이냐 악인이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그 보이는 얼굴을 달리한다고 전해진다.
 선인에겐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달래 주는 천사의 모습으로, 악인에겐 나찰보다도 더 끔찍한 형상으로 출현한다.
 그것은 신수의 이마에 박혀있는 세 번째 눈이 선과 악을 가려 각기 전혀 다른 형상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즉, 신수의 눈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의 본질까지 꿰뚫어 보는 영적인 힘이 내재된 것이다.
 
 
 서장
 
 
 태조 홍무제의 넷째 아들 연왕이 거병, 3년여의 격전 끝에 건문제를 몰아내고 즉위한 지 일년······.
 연왕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민초들의 삶은 등한시한 채 숱한 정벌사업을 벌였다. 이로 인해 곳곳에서 숱한 장정들이 징발되어 전장으로 끌려 나갔고, 그들은 이름모를 산야에 피 흘리며 뼈를 묻어야만 했다.
 빈곤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져 밝은 미래는 꿈꿀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더불어 연왕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은 드세져 원말처럼 민란이 일어날 조짐마저 일었다.
 이렇듯 정국의 형세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명 왕조의 국운이 흥왕기에 접어든 탓일까.
 민란이 일 것처럼 술렁이던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안타깝게 여겨, 헐벗고 굶주린 그들을 부모처럼 달래주고 어루만져 주는 자가 나타났다.
 장귀향!
 그는 일원상단이란 거대한 상단의 회주였다.
 장귀향은 자신이 보유한 황금 50만 냥을 풀어 민초들의 구제사업에 앞장섰다. 황궁에서조차 수수방관하던 민초들의 형편을 일개 상단의 힘으로 돕고 나선 것이다.
 백성들은 장귀향이란 인물을 날로 존경하게 되었다. 그에 반해 명 왕조는 민심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백성들 사이에 칭송이 자자했던 휘명상단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는데···
 
 낮은 살아있는 생명에 생기를 불어넣지만, 밤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도 하고 사멸시키기도 한다.
 지나온 역사의 수레바퀴는 항상 밤에 커다란 이변을 만들어내곤 하였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든 이 시각. 한 모처에서는 심상치 않은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도착하려면 한 식경 정도 남았습니다.”
 “그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어떤 말도 새나가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자들에게도 충분히 일러두었겠지?”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나리. 오늘의 일은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 버리라고 일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고 충분히 전해 두었습니다.”
 보고를 하고 있는 자의 목소리엔 냉기가 흘렀다. 그는 전신에 흑의를, 머리엔 흑색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뻣뻣하게 선 채 고개를 조아리며 보고하는 그의 몸에선 가공할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방과 방의 경계엔 대나무로 엮은 발이 쳐져 있었다. 나리라 불린 자는 발이 쳐진 건너편에서 묵묵히 흑의인의 나머지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는 어둠에 묻혀 검은 형체만이 보일 뿐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수백에 달하는 흑의인들. 월담하는 그들의 몸놀림은 한결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일장에 달하는 담장을 뛰어넘고, 주변을 살피며 건물 곳곳으로 은신해 가는 그들. 움직임은 쾌속했으며 미세한 기척조차 남기지 않았다. 다들 형체가 없는 어둠의 그림자 같았다.
 곳곳에 무사들이 창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따금씩 병사들이 병영을 돌 듯 순시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애석하게 그들은 그 어떤 낌새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꼬리를 잇듯 연달아 건물로 숨어들던 흑의인들의 간격이 뜸해졌을 때였다.
 펑-
 퓌우우웅-
 어디선가 갑자기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칠흑 같이 어둔 하늘로 붉은 연막탄이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전각 곳곳에 은신해 있던 흑의인들은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공격신호가 떨어진 것이다.
 
 다다다닥-
 “웬 놈들이!”
 푹-
 “커억!”
 써걱-
 쿵-
 수십 채에 달하는 건물 곳곳에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흑의인들. 그들은 건물을 경비하는 무사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하기 시작했다.
 무사들은 침입한 흑의인들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변변한 대응조차 못하고 선혈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그만큼 흑의인들의 동작은 날렵했고 검의 움직임은 섬전 같았다.
 그들에게선 살인에 대한 일말의 주저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거침없는 흑의인들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건물 곳곳에서 처절한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잦아들었고, 무사들의 시신은 늘어만 갔다.
 
 그들의 만행은 방안에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콰당-
 “누구냐!”
 “으아아아!”
 “침입이다!”
 방으로 뛰어들어 흑의인들이 살인을 하고 다닐 때 어디선가 절규에 가까운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흑의인들은 당황하거나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할 따름이었다.
 뒤늦게나마 사태를 파악한 무사들이 건물 곳곳에서 뛰쳐나왔다.
 무사들의 수는 수백에 달했다. 대체 이곳이 어디기에 이렇게 많은 무사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의문이 일 정도였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무사들과 흑의인들의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채앵-
 “으아아아- 내 팔!”
 쇄애애액-
 “윽-”
 “회주님께 보고하라!”
 “살인귀다!”
 누군가의 절규하듯 외치는 소리가 허공을 맴돌았다. 그 소리는 마지막 삶의 발악처럼 들렸다.
 그랬다. 그들에게 있어 흑의인들은 진정 인간이 아니었다. 단지 겉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다음날.
 “자네, 들었는가?”
 “무슨 말?”
 “놀라지 말게. 글쎄, 휘명상단이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변했다는 게야?”
 “뭐,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도무지 믿기질 않는군.”
 누구에 의해 시작된 건지는 모르지만, 이런 소문은 삽시간에 중원을 휩쓸기 시작했다.
 휘명상단(煇明商團)이 무너지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틀림없이 상단을 음해하려는 자들의 헛소문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휘명상단이 어떤 곳인데, 그리 쉽사리 무너진단 말인가. 사람들은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 뒤에 올 파장에 겁이 났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은 소문은 진실로 판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휘명상단!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해 삽시간에 중원 상권의 삼분지 일을 차지한 상단이다. 황제 영락제가 등극하자 그들의 성세는 급류를 타듯 중원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무슨 연유인지 휘명상단에 대한 영락제의 지원은 전폭적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상단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휘명상단은 갈수록 자금이 넘쳐 났고, 중원 중소상단의 모든 자금줄이 휘명상단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 될 정도에 이르렀다.
 황제 영락제는 등극을 한 후에도 몽고족을 몰아내기 위한 숱한 전쟁과 주변 지역에 대한 대규모 정벌을 단행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휘명상단에서 상당액의 자금이 군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사람들이 말하길, 그들이 자금을 동결시킨다면 나라의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라 하였다.
 영락제가 권력으로 나라를 움직인다면, 이제 휘명상단은 그들의 자금력으로 중원 곳곳의 상단을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불안해진 중원 대부분의 상단은 은밀히 연합을 하여 휘명상단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자신들의 손으로 무너뜨리기엔 너무도 거대한 상단으로 부상한 터였다.
 국고를 능가하는 자금력!
 만일 군자금을 동원하여 명 황조를 전복시키려 한다면 능히 성공할 것이란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기까지 했다.
 
 삭초제근!
 위험한 싹은 사전에 제거해 버린다는 말이다.
 고래부터 전해 내려오는 진리다.
 이제 휘명상단은 황궁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히 제거해야만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움직임은 없었다.
 영락제는 휘명상단에 굵직굵직한 국책사업의 대부분을 넘겨주기까지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나 할까.
 휘명상단은 갈수록 철옹성이 되어 갔고, 중원에 산재한 수많은 상단들은 견제는커녕,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제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몸을 사려야 할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중원을 다스리는 건 황제다. 하지만 중원 안에는 무림이란 전혀 이질적인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황제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할 정도였다.
 중원과 무림!
 이제 그 중심에 또 하나의 낯선 세력이 등장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당연히 그것은 휘명상단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세력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화하게 될 줄이야······.
 과연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알고 보니, 휘명상단이 영락제의 황위 찬탈 때 군자금으로 황금 십만 냥을 대기도 했다는군.”
 “정말인가?”
 “소문이 파다하다니까.”
 “허허!”
 “그뿐인 줄 아는가? 듣자하니 휘명상단의 회주가 무림의 엄청난 고수래.”
 
 상단이 무너진 이후.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지만 진실의 여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정확하게 알려진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휘명상단 소속 삼천여 명의 몰살 사건······.
 이러한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중원 전체가 벌집을 쑤신 듯 정국이 어수선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뭐라고!! 반드시 원흉을 찾아내도록 하라!!”
 휘명상단에 대한 보고를 받은 영락제는 진노했다. 그는 황궁고수들을 선발, 암황대(暗皇隊)란 비밀조직을 구성했다. 상단을 무너뜨릴 정도면 어지간한 군소세력으론 불가능하단 판단에서였다.
 암황대는 황제의 특명에 의해 살인 면책을 부여받아 무림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 중원은 암황대로 인해 더욱 혼란스럽게 돌아갔다.
 그러나 근 일년여에 걸쳐 중원 곳곳을 뒤졌지만 실낱 같은 단서 하나 잡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암황대에 의해 다소라도 혐의가 있는 자로 판명되면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그 수가 무려 500여 명에 달했으나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휘명상단의 3000여 명에 달하는 목숨을 앗아간 원흉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런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고, 사건은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중원을 술렁이게 하던 이 일은 미궁 속에 빠져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제1장 거상을 꿈꾸는 소년
 
 
 덜그럭- 덜그럭-
 “제기랄, 내가 노예도 아니고 이게 뭐야, 정말. 동네 창피해서······. 그냥 콱, 이대로 도망갈까 보다.”
 십칠팔 세쯤 되었을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소년의 목소리는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회백색의 남루한 옷차림을 한 소년.
 그는 자신의 키보다 얼추 두 배쯤 높아 보이는 땔감 한 무더기를 지게에 짊어지고 비탈진 산길을 용케 내려가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소년이 한 걸음씩 뗄 때마다 굵고 둔탁한 쇳소리가 난다는 점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그것은 무게가 족히 100근(60kg)은 됨직한 쇳덩어리였다. 어른들도 들어올리기 힘들 정도의 쇳덩이가 놀랍게도 쇠사슬에 연결되어 소년의 양 발목에 수갑처럼 채워져 있었다.
 귓가를 자극하는 쇳소리는 바로 거기서 나는 소리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는 힘겨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중얼거리며 걷고 있는 소년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다.
 그렇다고 여느 소년들보다 건강해 보이는 체격 또한 아니다. 오히려 그 나이 또래의 소년들보다 약간 왜소해 보이는 편이라고 할까.
 “뭐, 반드시 무공을 배워야 한다고?!”
 장하루는 다시금 불만을 터뜨렸다. 장하루, 소년의 이름이다. 그는 마치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인상까지 써가며 중얼거렸다. 불만을 터뜨리는 대상은 사실 그의 할아버지, 무명노인이었다.
 장사를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고집불통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할아버지는 한사코 무공을 강요했다. 삶은 자신이 사는 것이지, 할아버지가 대신 살아 주는 게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소년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으아아- 정말이지 싫다. 왜, 왜!! 제게 그렇게 싫다는 걸 강요하냐고요!”
 장하루는 갑자기 절규에 가까운 비명성을 토해 냈다. 무공은 정말이지 싫었다. 왜 싫어하냐고? 사실대로 말하면 무공수련 자체가 싫은 것보다는, 원대한 포부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멋모르고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무공을 배우고 학문을 익혔다.
 “하하하. 장하다, 장해.”
 처음 걸음마를 하는 장하루를 본 무명노인은 대소를 터뜨리며 세상을 다 얻기라도 한 듯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손자가 걸음을 떼서 기뻐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고대하던 무공을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을 게 뻔하다.
 어쨌든 장하루의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발을 바닥에서 막 떼었을 때는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바닥에 붙일 때는 숨을 내뱉도록 하여라.”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알록달록하고 달짝지근한 먹을 것으로 유혹했다. 먹고 싶은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아장아장 걸으면서 기본 호흡법을 구사하자, 이번엔 조그만 목검을 쥐어주었다. 동시에 밤에는 글을 익혀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엔 그저 할아버지가 시키는 일에 무조건 따랐다. 먹을 것도 생기고, 머리가 유달리 뛰어난지라 학문을 익히면서 할아버지의 칭찬을 듣는 것이 기뻤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머리가 뛰어난 게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5살 때 할아버지에게 배운 <효경>에 쓰인 문구를 지금도 철자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한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불감훼상함이 효지시야라.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뭐, 다 아는 사실이지만 구태여 설명을 하자면, ‘내 육신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거라 함부로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란 뜻이다.
 당시엔 아무런 생각 없이 앵무새처럼 읊어대던 성인들의 말씀.
 그가 머리가 커지고 드디어 사고를 하면서부터 갈등은 시작되었다. 물론 선인들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부르짖을 정도로 우매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이 말 또한 맞는다고 역설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전혀 틀린 말이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헌데, 무공을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부모님이 물려주신 육체를 학대해야 하는 게 아닌가.
 여기에 그의 일차적인 고민이 있었다. ‘효경’의 말씀과 위배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바로 그가 장씨 가문의 하나뿐인 혈손이라는 것이다. 물론 열심히 수련을 해서 절정의 고수가 되면 할아버지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니, 더할 수 없이 좋은 효도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무공을 배운답시고 주화입마에 들어 죽음에 이른다든지, 아니면 신법을 수련하기 위해선 벼랑 끝도 오르내려야 한다는데, 혹여 떨어져 죽기라도 한다면······.
 “으흐흐.”
 온몸의 살이 떨려온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절대 아니다.
 자신이 죽는다면 누가 있어 장씨 문중을 일으켜 세울 것인가? 그 생각이 죽음보다도 끔찍하게 온몸으로 전해져 오기 때문이었다.
 장씨 가문의 후손은 이제 자신밖에 없는데······.
 멍청하게도 이런 생각을 15살이 되고서야 비로소 하게 되었고, 이윽고 할아버지와의 사투가 벌어졌다.
 아! 여기서 말하는 사투(死鬪)란 심리전을 말하는 것이다.
 장하루는 처음엔 혼자서 마음속으로만 사흘 밤낮을 고심했다.
 어떻게 하면 한시바삐 가문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지만 쉽사리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민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또한 피눈물 나는 고행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얍!”
 그날도 할아버지에게 끌려나오다시피 해서 무공을 수련하였다. 비록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그날따라 무척이나 짜증이 났다.
 장하루는 대충대충 목검을 휘두르며 찌르고, 베고 하면서 검법을 수련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수련해도 성이 차지 않을 판에 흉내만 내고 있으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마땅치 않다는 표정으로 옆에서 무공수련을 지켜보던 무명노인은 급기야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야 말았다.
 “네 이놈!! 무공을 수련할 때는 정(情), 신(身), 기(氣)가 검(劍)과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펼쳐야 한다고 얼마나 말했더냐?”
 “뭐, 아무려면 어때요?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대로 하나도 틀리지 않고 검로(劍路)를 따라 하는데.”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장하루는 입을 놀렸다.
 무명노인은 잠시 말문을 열지 못했다.
 “뭐, 뭐라?”
 딱, 따닥-
 “아얏!”
 붉으락푸르락 안색이 변하던 무명노인은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장하루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든 장하루는 과장되게 아프단 표정을 지었다.
 “괜한 엄살 부리지 마라. 이제 네놈 얼굴만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볼 수 있으니까.”
 끙-
 그렇게 남의 속을 잘 들여다보면 저잣거리에 나가 돗자리라도 까시지······.
 “하루야! 남을 흉내 내는 검법은 일이 년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상승검법이 무엇인 줄 아느냐? 검을 깊게 이해하고, 신(身)이 움직이기 전에 검의 흐름이 실개천의 물처럼 막힘이 없이 흐르고, 더불어 정(情)과 신(身)이 검을 무의식적으로 보호하며 나아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수십 번도 더 들은 말이었다. 아무리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인데, 하물며 어려서 지금까지 수백수천 번 들었다고 생각해 보라.
 장하루가 듣기 싫다는 듯이 인상을 구기자, 노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네놈이 정 그렇게 나온다면 이 할애비도 다 생각이 있지.’
 금방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건만 아무런 꾸지람도 내리지 않자 오히려 장하루는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슬쩍 할아버지의 표정을 살펴보니 음흉한 미소가 입가에 감도는 게 영 찝찝했다.
 ‘저건 뭔가 음모를 꾸밀 때 짓는 표정인데······.’
 “오늘은 모처럼 할애비랑 저잣거리에 나가보자꾸나.”
 의외로 할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장하루는 저잣거리에 가잔 할아버지의 말에 위험하단 생각을 그만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장하루는 산속에서만 생활했다. 주변에 인가라곤 한 채도 없어 좀처럼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기껏해야 저잣거리에 나가 진귀한 물건도 구경하고 그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주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한 달에 한두 번. 할아버지를 따라 구경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평상시라면 노인의 음흉한 미소에 뭔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장하루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단 생각에 애석하게 모든 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한 것이다.
 
 
 ‘고작 대장간이라니!’
 장하루로선 여간 불만이 아니었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따라 산에서 내려와 들른 곳이 겨우 대장간이란 말인가. 대장간은 저잣거리가 끝나는 길의 모퉁이에서 약간 꺾어져 들어간 곳에 있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쳇, 속고 말았군. 흥.’
 내심이야 어떻든 장하루는 오랜만에 만나는 기노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대장간에 즐비하게 늘어선 농기구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하루를 일견하던 기노인이 무명노인을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한동안 뜸하시더니 어쩐 일이십니까, 나리.”
 “오래 전에 맡겨놓았던 물건 있지 않나? 이제 그것이 필요한 때가 된 것 같아서 말이네.”
 “아, 예.”
 그렇지 않아도 잔주름이 자글자글한 기노인의 이마에 주름살이 더욱 깊게 패였다. 장하루를 향하는 그의 표정이 근심으로 가득해 보였다.
 한쪽에서 물건들을 구경하던 장하루는 자신을 바라보는 기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응! 기노인의 표정이 왜 저러지?’
 “히히히. 기노인, 할아버지께 혼이라도 났어? 갑자기 왜 그래?”
 “아, 아닙니다, 도련님.”
 팔까지 저어 가며 기노인이 대꾸했고, 장하루는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큰일이야 있을라고.’
 장하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장하루가 그들에게 무관심한 사이, 무명노인과 기노인은 한참 동안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장간을 나온 뒤 장하루는 할아버지를 졸라 저잣거리를 거닐었다. 이번에 돌아가면 언제 다시 나올지 알 수 없기에 가능하면 좀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었던 것이다.
 때마침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수레에 물건을 잔뜩 싣고 지나가는 규모 큰 행렬이 보였다. 또한 멀리서 보기에도 멋들어진 복색을 갖춘 무사들이 수레 주위를 호위하고 있었다.
 “와아! 할아버지, 저 행렬은 뭐예요?”
 “보아하니 상단인 듯하구나.”
 “상단요?”
 “그래. 보아하니 몽고에서 장사를 하고 돌아오는 행렬인 듯 보이는구나.”
 “아하.”
 점차 멀어져 가는 상단을 바라보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장하루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몽고···하면 무지 멀고, 사람들도 사납다고 하던데요.”
 “멀기야 멀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들여오는 물건을 그만큼 비싸게 팔 수 있는 거란다. 물론 위험하기도 해서 무사들을 저렇게 대동하고 다니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구나. 그럼 상단은 중원 곳곳 다니지 않는 곳이 없겠네요?”
 “당연하지. 어디 중원뿐이냐? 인니(印泥), 파사(波斯), 아불리가(阿佛利加)란, 멀리 서쪽에 있는 나라까지도 왕래를 하는 사람들이 저들이지.”
 물론 장하루로선 인니, 파사, 아불리가가 어디에 있는지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상단이 부러웠다. 산속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와 달리, 가고 싶은 곳은 그 어디든지 자유로이 왕래하는 그들. 거기다가 돈도 많이 벌 것이 자명했다.
 어느새 걷다보니 노인과 장하루는 초옥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장하루는 상단의 행렬이 눈앞에 어른어른거렸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돌아다니고 돈도 왕창 버는 상단······. 생각만 해도 다시없는 멋진 삶이 아닌가.
 ‘가만!’
 순간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
 장하루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드디어 가문을 부흥시킬 좋은 방법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 나도 장사를 하는 거야. 그것도 시시껄렁한 게 아닌 거대한 상단을······.’
 예로부터 황금으로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왜 진작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가.
 장하루의 가슴이 흥분으로 인해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아, 드디어 집안을 일으켜 세울 방도가 떠오른 것이다.
 
 방안으로 들어선 장하루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전에 없이 들뜬 표정이 역력한 장하루를, 노인이 알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장하루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털어놓았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가슴까지 텅텅 치면서, 자랑스럽게.
 ‘어린 나이에 참으로 기특한 생각을 했구나!’ 하면서 할아버지가 좋아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뭐, 뭐라고? 장사? 안 돼!! 넌 누가 뭐래도 무공을 배워야 하느니라.”
 “싫어요. 전 상인이 되어서 중원 제일의 거부가 될 겁니다.”
 “무공···!”
 “장사···!”
 “어허, 그래도 이놈이.”
 노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장하루는 사정하다시피 매달렸다.
 “할아버지, 손자의 굳은 결심을 제발 꺾지 말아 주세요.”
 “가문을 생각한다면 넌 더더욱 중원 제일의 무공을 배워야 하느니라. 만일 무공을 배우지 않으면 후일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게다. 그러니 무공을 배우도록 해라.”
 “싫어요, 할아버지,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게요. 허락해 주세요, 예?!”
 “···하루야···.”
 “······”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신경전은 한동안 팽팽하게 지속되었다. 노인의 고집도 황소고집이었지만 장하루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칠일째 되는 날.
 할아버지와 손자의 신경전은 여전히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명노인은 아무런 말없이 나가더니 점심때가 다 되어서 돌아왔다.
 저잣거리에 다녀온 듯 이상한 물건이 손에 들려있었다.
 평상에 앉아있던 장하루는 무명노인을 보고도 시큰둥했다.
 무명노인은 평상의 한쪽에 물건을 내려놓은 뒤 장하루 곁으로 다가와 타협안을 제시했다.
 “네가 그리도 고집을 피우니 할 수 없구나. 이렇게 하기로 하자.”
 “?”
 “장사라는 것 또한 하고 싶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학문과 마찬가지로 그 생리를 알고 배워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러니 날마다 오전엔 할애비와 함께 무공을 수련하고, 오후엔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서 돈을 모으도록 해라.”
 “···좋아요!”
 “이놈, 좋아하기는 일러. 아직 할애비 말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부터 저것을 발목에 차도록 해라. 잠을 잘 때만 발목에서 풀어놓아야 하느니라. 또한 장작은 항산의 정상에서만 구하되 저 지게를 사용해야만 한다. 만일 이를 어길 시 두말 않고 무공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그것은 둥그런 쇳덩어리였다. 그 옆에는 거무튀튀하니 불길해 보이는 지게가 놓여있었다.
 순간 장하루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어쩐지 이럴 노인네가 아닌데, 쉽게 허락한다 했거늘. 그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가서 쇳덩어리를 들어보았다. 그런데 웬걸.
 “헉!”
 쿵!
 털썩!
 얼추 무거울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이건 도대체가······. 쇳덩어리를 들어올리려던 장하루는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조심해야지. 이놈아, 그러다 허리라도 다치면 대가 끊긴다.”
 멍하니 쳐다보는 장하루를 향해 무명노인이 덤덤하게 말했다.
 장하루는 눈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그냥 들기도 버거운 쇳덩어리를 들고 험한 산길을 다닐 수 있단 말인가. 눈을 부릅뜨고 할아버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무명노인은 태연하기만 했다. 아니, 무척이나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이놈의 노인네가! 그런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알고?’
 장하루는 오기가 생겼다. 절대 할아버지의 계략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대장간 기노인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래서였군? 좋아, 끝까지 해보는 거야!’
 이렇게 해서 오전엔 무공을, 오후엔 항산의 산을 돌며 장작을 구해 장사를 시작하는 장하루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벌써 지나간 건 아닌지 모르겠네.”
 대문 앞을 서성거리는 유총관은 무척이나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 장하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해 오는 장작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덜그덕- 덜그덕-
 이때 멀리서 둔탁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유총관의 얼굴이 금세 환하게 변했다.
 “왔구나!”
 아니나 다를까. 저쪽에서 장하루가 장작을 지게에 짊어진 채 걸어오고 있었다.
 관리의 행차가 이보다 반가울까?
 유총관은 터벅터벅 걸어오는 장하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고, 고맙다. 하루야, 네가 날 살리는구나. 그렇지 않아도 행여 지나갔으면 어떡하나, 무척 걱정하고 있었는데.”
 “예?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저씨?”
 “실은 삼일 후면 주인어르신네 회갑연이거든. 지금 한창 별채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땔감이 떨어져 난리가 났지 뭐냐. 그래서 진작부터 네가 지나가는지 목이 빠져라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장하루가 저잣거리에 장작을 내다 판 지 이년이 흘렀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를 보고는 무척 놀랬다.
 그도 그럴 것이 체격은 여느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어른들도 힘들어 할 정도의 장작을 짊어지고 저잣거리에 나타난 것이다. 거기다 발목엔 묵직해 보이는 쇳덩이를 차고서······.
 “쯧쯧. 어느 집 하인인지 불쌍하군.”
 “집에서 기르는 가축도 저 정도로 족쇄는 채우지 않을 걸세.”
 “자고로 있는 놈들이 더 악독하다니까.”
 “누가 아니래.”
 “얘야, 그래도 기죽지 말고 꿋꿋이 살아야 한다.”
 저잣거리에서 장작을 팔기 위해 손님을 기다리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하고 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장하루가 노비로서 못된 주인을 만났다고 지레짐작을 한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장하루의 얼굴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이유야 어떻든 사람들의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장사를 처음 시작하는 장하루였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인정 많은 사람들이 한 다발 두 다발, 측은한 마음에 물건을 사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속에만 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또한 즐거웠다.
 이년이 지난 지금에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장하루가 못된 상전을 만나서 발목에 쇳덩어리를 차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무공수련의 일환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고 놀랐다. 그리고 장작을 구해 내다 파는 것 또한 수련의 일환이라 여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물건이 팔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땔감은 저잣거리에 오는 도중에 팔려나가는 게 보통이었다. 심지어 저마다 먼저 사가려 종종 구매자들끼리 싸움이 나기도 했다.
 왜냐?
 그의 땔감은 여타 장작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 내오는 장작들은 손님의 눈을 속여 적게 다발을 엮는다든지, 아니면 불을 지필 때 매운 연기가 많이 났다. 그에 반해 장하루가 내다 파는 장작은 양도 많을뿐더러 거의 연기가 나지 않았고 화력 또한 좋았다. 당연히 여인들 사이에 장하루의 장작은 무척이나 인기가 좋은 상품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유총관이 대문 앞에 지켜 서서 오매불망 장하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장작을 옮겨주고 나온 장하루는 기분이 좋았다. 저잣거리에 들어서기도 전에 입구에서 다 팔았으니 이제부터 여기저기 실컷 구경할 시간을 번 것이다.
 “평상시보다 두 배에 달하는 돈을 받을 줄이야. 내가 지난밤에 개꿈이라도 꾼 건가?”
 저잣거리를 들어서는 장하루는 즐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들었다.
 “내일 오전 중으로 한 짐 더 부탁한다, 하루야.”
 인심 좋은 유총관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덜컥 약속을 한 것이다.
 ‘어떻게 한다?’
 좋은 수가 없을까 하고 한참을 고민하던 장하루는 좋은 생각이 났는지 어디론지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장하루는 저잣거리의 한켠에 있는 ‘만종주점’이란 간판이 걸려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들어서기가 무섭게 주향이 사방에 진동했다.
 “아니, 네가 웬일이냐? 이곳에서도 뭐, 팔 물건이 있어?”
 점소이의 말에 장하루는 눈을 흘겼다. 하지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한 20살쯤 된 비대해 보이는 점소이와는 서로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얼굴에 곰보자국이 여기저기 있었지만 인상은 순박해 보였다.
 “곰보형! 너무하는 거 아니야? 보자마자 꼭, 그런 식으로 밖에 말을 못해? 기분 나빠서 형하고 말 안 해! 아저씨는?”
 “하하하! 아이고, 그러셔! 네가 그런다고 무서워할 줄 알고. 야, 이놈아! 저잣거리의 사람들에게 다 물어봐라. 소문이 파다하다. 어린놈이 돈 버는 데는 비상하게 머리가 잘 돌아가 산에서 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내다 판다고 소문이 자자하니까 말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네놈은 산에 있는 물도 저잣거리에 내다 팔 놈이다, 그렇지?”
 “어, 어떻게 알았어?”
 “뭐?!”
 곰보라 불린 점소이가 멍한 얼굴로 장하루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놀라긴. 장난한 것뿐인데. 안에 계시지? 나 들어가 본다.”
 “······”
 멍해있는 곰보라 불리는 점소이를 두고 장하루는 서둘러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점소이는 우뚝하니 서서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자식, 저거··· 진짜 산에서 나오는 샘물까지 팔아먹으려나.’
 점소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처음 장하루는 장작만을 내다 팔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품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귀한 약재를 캐다가 한약방에 파는가 하면, 어떤 날은 깊은 산중에서 나는 향기로운 찻잎을 말려 저잣거리에 들고 나왔다.
 뭐 이 정도면 그래도 그러려니 간주하고 말았을 것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짐승들의 가죽을 들고 나온다. 그것도 산토끼, 멧돼지, 사슴 같은 흔한 짐승의 가죽이면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 어린놈이 들고 나오는 게 보통 커다란 흑곰 내지 호랑이 가죽인 것이다. 그것도 최상급의 재질을 지닌 것들이었다.
 
 “주괴 아저씨, 안녕하세요?”
 별채에 들어선 장하루가 작은 정자에 앉아있는 뚱뚱한 중년인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가 바로 만종주점의 주인 주괴였다. 올해 쉰 살로, 젊어서 한때 술에 미친 사람이었다.
 주괴는 밥보다도 술을 더 좋아했다. 결국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그 많던 재산을 다 술로 탕진하고 그나마 남은 돈으로 만종주점이란 주점을 차려 운영하고 있었다.
 술을 너무 좋아한 탓에, 주먹코는 항상 대낮에도 홍당무처럼 빨갰다.
 “네가 이곳에 웬일이냐?”
 “웬일은요. 좋은 정보가 있어서 가르쳐 드리려고 왔지요.” “정보?!”
 주괴의 옆 의자에 앉으며 장하루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정자의 중앙엔 돌로 만들어진 둥그런 탁자가 놓여있었다. 무엇이 담겨있는지 탁자 위엔 흑갈색 사기그릇이 여러 개 놓여있었다.
 자리에 앉은 장하루는 조그만 흑갈색 사기그릇 쪽으로 코를 들이대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 모습은 마치 냄새를 맡아보는 강아지 같았다.
 그러면서도 장하루는 슬쩍 곁눈질로 주괴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주괴의 눈에 기광이 일었다. 이미 장하루의 도움을 받아 막대한 이문을 본 사람이 저잣거리엔 한둘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음··· 어디 보자. 이건 증류수로 만든 백주고, 옆에 놓인 건 양조주인 황주, 그리고 한방약을 이용한 노주······.”
 사기그릇에 담긴 것은 술이었던 것이다.
 장하루는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고, 하나하나 술의 성분을 귀신처럼 알아냈다.
 주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이 주점을 운영하는 자신보다 술에 대해 해박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장하루의 ‘정보’란 말이 그의 호기심에 불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그냥은 좀처럼 말문을 열 것 같지가 않았다. 별 수 없이 주괴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만일 좋은 건수면 네놈에게 섭섭지 않게 해주마. 그러니 이제 말해 보거라. 노인네 속 터져 죽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헤헤! 약속했습니다?”
 ‘얄미운 놈!’
 주괴는 실실거리는 장하루의 모습을 보자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기분 내키는 대로 할 수도 없는 입장. 한일자로 입을 꾸욱 다물고 주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때서야 장하루는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제가 알기로 만종주점이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이십 년 이상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술장사 20년이면 남들은 벌써 거부가 되고도 남았을 겁니다.”
 “뭐라고? 이놈아! 그럼 내가 못나서 거부가 되지 못했단 말이냐?”
 애써 화를 참고 있던 주괴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더니 화를 버럭 냈다.
 “이크! 아저씨!! 너무 화만 내지 마시고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세요. 그렇다면··· 어째서 아저씨는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바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주괴가 되물었다.
 “이곳에서 직접 술을 주조하지 않고, 사다가 팔기 때문입니다”
 “이놈아! 지금 내가 속 터져 죽는 꼴 보려고 그러냐? 누가 그걸 몰라!? 그래서 이렇게 지금도 성분을 연구하고 있지 않느냐. 남들보다 특별한 술을 담가 보려고 말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술을 만들려면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수질이 좋아야 한다.”
 “바로 그거예요! 수질.”
 “······?”
 “제가 얼마 전에 깊은 산중에서 좋은 약수가 나오는 곳을 발견했거든요. 그 물을 길어다가 쓰면······.”
 좋은 약수! 눈이 휘둥그레진 주괴는 전에 없이 생기가 돌았다.
 “저, 정말이냐! 그게?”
 “예에.”
 “그게 어딘데?”
 “······”
 장하루가 조그만 손바닥을 주괴의 코앞에 쑥, 내밀었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것이 세상사였다.
 주괴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
 ‘그러면 그렇지. 네놈이 거저 알려줄 리가 없지. 어린놈이 잇속은 알아 가지고······.’
 잠시 갈등을 하던 주괴가 은화 한 닢을 꺼내 장하루의 손에 쥐어주었다.
 “옜다! 이놈아. 됐냐? 어린놈이 무슨 놈의 돈을 그리도 밝히는지. 쯧쯧. 너 그러다가 장가 못 간다.”
 “아저씨, 웬 악담이에요. 전 장씨 문중의 혈족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단 말에요. 이씨! 정··· 이 돈이 아깝다면, 지금 말은 없던 걸로 해요.”
 탁-
 손에 거머쥐었던 은화 한 닢을 탁자에 도로 내밀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장하루가 한마디 했다.
 “별수 없지. 황주전문 주점이 요즘 사람을 시켜 산에서 뭔가를 찾는다고 하니··· 그곳에나 한번 들려 봐야지.”
 장하루의 한마디에 주괴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옆 마을에 있는 황주전문 주점은 인근에서 꽤 알려진 주점이었다. 즉, 황주전문 주점과 만종주점은 이 일대에서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황주전문 주점에서 한 가지 종류의 술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였기에 주괴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 들어 들려오는 소문에 사업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전문점을 탈피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주괴로선 태연한 척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내심 그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하루는 그것을 알고 은근히 주괴의 화를 부추긴 것이다.
 약발은 금방 나타났다.
 코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주괴는 일어나 가려고 하는 장하루를 재빨리 잡아 자리에 앉혔다.
 “자, 잠깐만 앉아 봐라, 하루야.”
 “빨리 가 봐야 되는데요.”
 ‘히히히. 안 넘어가고 배겨?’
 주괴의 손에 은근슬쩍 자리에 않는 장하루였다.
 주괴는 잠시 숨을 내쉬었다. 그는 가빠진 숨을 진정시켜야 했다.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자 속은 쓰렸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은화 한 닢에 스무 냥을 얹혀 장하루의 손아귀에 쥐어 주었다.
 “이 정도면 섭섭지 않은 금액일 게다.”
 “뭐, 이렇게나 많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장하루는 받은 돈을 재빨리 주머니에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주괴가 보기에 여간 눈꼴신 것이 아니었다.
 장하루는 주괴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닥거렸다. 주괴의 입이 점점 하마처럼 커다랗게 변해갔다.
 “······”
 “그곳에 가면 틀림없이 있는 거지?”
 “아저씨!!”
 “아, 알았다. 정말이지 고맙다, 하루야. 네가 날 살리는구나.”
 이젠 황주전문 주점으로 인한 걱정거리가 해결된 것이다. 비록 장하루에게 몇 푼 주었지만 그것은 후일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즐거워하는 주괴를 보며 장하루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너무 늦으면 할아버지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저씨, 그럼 전 이만··· 참! 주점에서 노주 한 병 가져갑니다.”
 “그렇게 해라.”
 
 
 제2장 마교
 
 
 존마전(尊魔殿).
 마교의 장로급 이상이 모여 회의를 여는 곳. 둘레가 모두 대리석으로 둘러싸여 외부의 어떤 공격에도 버틸 수 있게끔 설계된 곳이기도 했다.
 지금 이곳에선 짙은 마기를 뿜어대는 20명의 마교 장로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있었다.
 마교의 전례회의는 일년에 한 번, 그리고 임시회의는 일년에 전반기와 후반기, 두 번에 걸쳐 교주의 주관 하에 열게 되어있었다.
 현재 교주 파천대제(破天大帝) 양일통은 폐관수련에 든 상태였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전례회의도, 그렇다고 임시회의도 아닌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긴급회의를 소집한 자는 바로 서열 2위인 적안인마(赤眼人魔) 조백광이었다.
 “참으로 답답들 하시오. 교주님께서 언제 폐관수련을 마칠지 모르는 상황. 마냥 이대로 앉아 교주님을 기다리고만 있자는 것이오? 대체 언제부터 사파의 종주인 우리가 이빨 빠진 맹수처럼 웅크리고 있었단 말이오······.”
 적안인마 조백광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두 눈은 그의 독문절기인 적마신공(赤魔神功)으로 인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붉게 충혈된 두 눈에선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게 하는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50여 평에 이르는 장내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는 30대 중반의 깔끔한 인상과는 달리, 이미 극마의 마지막 경지에 오른 올해 80의 노고수로, 마교 내에서도 악명을 떨치고 있는 지옥살수대(地獄殺手隊)를 이끌고 있는 야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10여 년 전 정의맹에게 죽은 형제들의 통한의 소리 말이오. 그리고 누구 때문에 교주님이 폐관수련에 들게 되었는가!”
 “죄송하지만 부교주님. 현재로선 정의맹을 공격하는 것은 범의 아가리 속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부교주의 말에 정면으로 반대의견을 들고 나선 사람은 의외로 중년 여인이었다. 무척이나 차가워 보이면서 요사스러움이 얼굴에 가득했다.
 바로 마교의 내총관인 환희요녀(歡喜妖女) 추타타였다. 그녀는 속이 훤히 내비치는 엷은 망사를 걸치고 있었다. 엄청난 내공의 주안술 덕택에 겉보기에 30대 중반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60줄에 가까운 노파였다.
 지략이 뛰어나고 냉철한 판단력의 소유자인 그녀는 현재 마교의 정보조직인 천비대(天秘隊)의 수장이기도 했다.
 “아니, 내총관. 그게 무슨 말이오?”
 “물론 제갈천뇌가 죽은 지금이 정의맹을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럼 내총관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가 아니란 말인가?”
 이때 말없이 앉아있던 장로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제갈천뇌가 죽었단 말이 정말이오?”
 “사실이오.”
 마땅찮은 표정으로 부교주가 말했다.
 제갈천뇌가 죽다니!
 모두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10년 전 정(正), 마(魔)의 대 혈전. 양 파는 수천 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내면서 한 달여간에 걸친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이 자연의 섭리.
 무릇 싸움이란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생기는 게 바로 하늘의 진리다.
 당연히 정, 마 대전 또한 시간이 흐르자 승패가 갈리기 시작했다.
 정도의 연합체인 정의맹은 점차 패색이 짙어져 갔다. 이때 정파의 군사인 제갈천뇌가 아니었으면 마도천하가 이어졌을 것이다.
 정의맹이 패할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한 그는 은밀히 사파의 연합체인 배교를 꼬드겼다. 제갈천뇌가 무엇을 제시했는지, 배교 장문인인 기문천은 은밀히 야밤을 틈타 그의 수하들을 이끌고 사라져 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날 제갈천뇌는 탈혼삼재진을 펼쳤다. 삼각형( △) 모양의 각 꼭지점에 방위를 정한 일 갑자 이상의 고수 100여 명이 한 조가 되어 도합 300명이 삼재(하늘, 땅, 사람)의 진기를 조화시켜 펼치는 진법이었다.
 환술과 진법의 종주나 다름없는 배교의 무리가 사라진 이상 이 진법을 파훼할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라 확신을 했던 것이다. 결국 마교는 탈혼삼재진에 갇혀 대부분 뼈를 묻고야 말았다.
 부교주 조백광은 제갈천뇌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지금 그 설욕전을 하자는 것이다.
 “1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간혹 당시의 꿈을 꾸면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묵빛 하늘, 갈라지는 대지, 그 갈라진 대지를 뚫고 치솟던 엄청난 화염, 피 끓는 절규 속에서 형체조차 남지 않고 죽어가던 형제들!”
 열변을 토하는 부교주는 인간의 모습이 아닌 야차의 형상이었다.
 그랬다. 당시 그 진에 갇힌 대부분의 부하들은 형체도 없이 먼지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탈혼삼재진을 경험했던 부교주, 차석장로, 내총관 등 회의에 참석해 있던 10여 명 역시 그때를 회상하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꽝!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기다란 대리석 탁상을 내리친 자는 차석장로 흑수마인(黑手魔人) 안온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배교 놈들을 모조리 잡아다 껍질을 홀라당 벗기고 뼈란 뼈는 오도독 씹어 먹고 싶을 뿐이오. 만일··· 기문천, 그 개자식이 배신만 하지 않았어도 현재 마도천하를 이루었을 겁니다.”
 “분한 일입니다. 만일, 파천대제이신 현 교주님이 아니었다면 우리 마교는 탈혼삼재진에 갇혀 몰살당했을 테니 말입니다.”
 수석장로인 탈혼수라(脫魂修羅) 백도광의 얼굴에 진한 아픔이 배어들었다.
 “당시 교주님이 12성 공력을 사용해 파천마검으로 진을 가동시키는 300명의 정파 놈들을 단 일식에 쓰러뜨리지 않았다면··· 진법에 갇힌 마도인 전원은 진기가 고갈되어 떼죽음을 당했을 겁니다. 지금쯤 암흑의 공간을 헤매고 있겠지요. 이렇게 우리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다 교주님의 덕분이라 봐야 합니다.”
 파천마공!
 당시 양일통이 펼친 절학은 가히 인간의 무공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하늘을 부수는 마공이었다. 탈혼삼재진의 300여 명의 고수들을 와해시키는 것으로 부족해, 반경 300장 이내의 모든 지형지물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한순간 싸움이 양일통의 무위로 인해 멈춰지고 말았다.
 그러나 마주교주 또한 무사하진 못했다. 심맥이 손상을 당한 그는 그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무공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내에 있던 장로들은 하나같이 분개한 표정들이었다.
 다시금 조백광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 자··· 진정들 하고 내 말을 들어보시오. 지금 과거의 원한을 상기나 하라고 모임을 주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정의맹의 군사가 죽은 지금이 우리가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 이 말씀입니다.”
 “음······.”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장로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환희요녀 추타타는 장내를 쓸어보며 근심스러워했다.
 자신의 의도대로 돌아가자 조백광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가 막 다시금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하나같이 답답들 하십니다. 10년 전에 그렇게 당했다는 분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질책하고 나선 사람은 뜻밖에도 어린 소녀였다. 잘해야 십팔구 세 정도로 보였다.
 “여러분들이 정의맹이라면 제갈천뇌가 죽었다고 소문을 내겠습니까? 제갈천뇌가 누군지 벌써 잊었단 말입니까? 그 지혜가 하늘에 닿아있다는 제갈천뇌입니다. 그런 그자가 자신의 죽음을 알지 못했을까요?”
 그 누구도 소녀의 말에 반박하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조백광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장내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훑어가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나갔다.
 “물론 부교주님의 말씀처럼 혈채(血債)는 받아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 봅니다.”
 
 
 “엉큼한 늙은이! 그 능구렁이 속을 내 모를 줄 알고?”
 방금 전 긴급회의에서 마교 장로들을 상대로 질타를 하던 소녀였다.
 회의는 좀더 정의맹를 지켜보자는 선에서 끝이 났다.
 자신의 방으로 서둘러 돌아온 그녀는 분노가 치솟았다.
 ‘제갈천뇌의 죽음을 기회로 교주 자리를 넘보겠다 이건데. 내 눈이 지켜보고 있는 한 어림없어, 늙은이.’
 으드득-
 소녀는 분하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 절대로 늙은이 뜻대로 되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아버님이 어떻게 일궈 놓은 교단인데······. 그녀는 바로 양일통의 외동딸 양수련이었다.
 “아버님이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오실 때까지 그 늙은이를 견제해 줄 인물이 없을까?”
 양수련은 장로들의 얼굴을 한 명씩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휴··· 이럴 때 숙부님이라도 옆에 계셨다면······.”
 절망감에 ‘숙부’란 말을 무의식적으로 내뱉던 그녀의 눈에 순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내가 왜 진작 생각을 못했지?’
 그녀는 갑자기 문갑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았다.
 “이상하네. 예전에 분명히 이곳에 두었을 텐데······.”
 문갑을 뒤지던 그녀가 이번에는 자신의 침대 밑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찾았다!”
 침대 밑에서 꺼낸 것은 둘둘 말린 오래된 족자였다. 먼지를 털어 낸 그녀는 원탁에 족자를 펼쳐놓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인자하게 웃고 있는 한 중년인의 모습이 그곳에 그려져 있었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일까?’
 초상화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아련함이 배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숙부의 모습이었다.
 한동안 감상에 젖어있던 양수련은 허공에 대고 누군가를 불렀다.
 “무체(無)야!”
 스르르륵-
 “하명하십시오, 아가씨.”
 허공에서 잔잔한 남자 목소리가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앞에 연기처럼 무언가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다시 뭉쳐져 전신을 검은 천으로 감싼 사람으로 변했다.
 검은 복면의 사내는 그녀의 앞에 부복했다.
 양수련은 탁자에 앉아 뭔가를 급히 써 내려가더니 봉투에 밀봉한 다음 족자와 함께 사내에게 건넸다.
 “너는 은밀히 이 초상화 속에 그려진 인물을 찾아라. 그리고 이 편지를 꼭 전하고 오너라. 아무도 눈치 채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서신과 족자를 받아든 사내가 잠시 멈칫했다.
 “아가씨, 제 임무는 아가씨를 보호하는 겁니다. 혹시라도 제가 없는 사이······.”
 “그 점은 염려 말아라. 교주의 딸인 날 섣불리 해칠 자는 드물 테니······. 그리고 나 또한 호락호락하게 당할 정도로 무공이 형편없지 않을뿐더러 내 곁엔 난과 향이가 있지 않느냐.”
 “그래도······.”
 “넌 그렇게 날 형편없이 보았더란 말이냐?”
 “···알겠습니다, 그럼.”
 검은 사내가 양수련의 말에 마지못해 수긍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3장 장사의 기본은 신용
 
 
 예로부터 산서성에 위치한 항산은 중원 오악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산이었다. 산세가 험하고 곳곳에 험준한 봉오리로 둘러싸인 산의 정기가 가득한 명산이었다.
 그 때문일까? 예로부터 태상노군, 옥황대제, 원시천존을 모시는 도관들이 곳곳에 널려있는 곳이다.
 언제부터인가, 항산의 한 중턱에 멀리서 보면 지극히 초라한 한 채의 초옥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엔 조손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지냈다.
 그들은 바로 장하루와 무명노인이었다.
 
 오늘도 역시 이른 아침부터 두 사람 사이엔 심상치 않은 냉기류가 흘렀다.
 시각은 진시 초(오전 7시), 방안에서는 무명노인과 장하루가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다.
 “네 이놈! 예전에 할애비한테 뭐라고 약속했느냐? 분명히 날마다 항산의 정상에서 장작을 하기로 약속했지 않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약속을 어기겠단 말이냐?”
 무명노인의 목소리가 방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휴, 정말 미치겠네.’
 장하루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그렇다고 기분 내키는 대로 대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쉬운 쪽은 그였던 것이다.
 ‘침착하자, 침착! 여기서 개기면 끝장이다.’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내일부턴 진짜진짜 열심히 수련에 임할게요. 딱, 오늘 하루만요, 예?”
 “안 된다. 대장부가 한번 약속을 했으면 죽어도 지켜야 한다. 바로 그게 대장부이거늘······.”
 무명노인의 대답은 단호했다.
 무명노인과 장하루가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언성을 높이고 있는 건 바로 오늘 오전 중으로 황 부잣집에 땔감을 대주기로 약속을 한 때문이었다. 만일 평상시대로 항산의 정상에서 장작을 하게 된다면 시간에 맞추어 물건을 대주지 못하게 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장하루는 사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늘 하루만 수련을 미루어 달라고 간청을 드렸던 것이다.
 한 번쯤 예외라는 것도 있는 거지, 뭐.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이건 신용 문제였다!
 장래 거대 상단을 꿈꾸는 장하루였다.
 신용을 쌓기는 힘들어도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날아가고 만다. 그리고 그보다 어려운 것이 한번 잃은 신뢰를 다시금 회복시키는 것이다.
 장하루는 지금까지 쌓은 신용이 한순간의 실수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꼴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자신의 이력에 이런 커다란 흠이 남겨져선 안 된다.
 물론 정말이지 아니꼽고 치사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노인네를 조손으로 엮어준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장하루는 수없이 참을 인 자를 새기며 다시 한 번 할아버지에게 간청을 했다.
 “할아버지. 저잣거리에 있는 황 부잣집 아시죠? 그 집이 내일 회갑잔치를 하는데 제가 오늘 일찍 땔감을 대주지 않으면 음식을 만들지 못한단 말이에요. 점심때까지 장작을 대주기로 하고 선불도 받았다니까요.”
 “이놈아, 누가 선불을 덥석 받으래? 어린놈이 벌써부터 돈맛을 알아가지고. 그리고 장작 파는 놈들이 어디 네놈 한 놈뿐이더냐?”
 장하루에게 사정없이 질타를 하면서도 무명노인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오호, 어쩐지. 네놈이 이렇게 고분고분할 리가 없다 했지. 그랬단 말이지······. 이다음에 저잣거리에 나가면 황노인에게 고맙다고 해야 되겠군.’
 무명노인은 생각할수록 황씨가 고마웠다.
 장하루는 한번 내뱉은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다. 무명노인은 장하루의 그런 성격을 잘 알기에 이번 기회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결심을 단단히 굳혔다.
 하지만 장하루는 이미 무명노인의 그런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엉큼한 노인네. 그 시커먼 속을 내가 모를 줄 알고.’
 생각할수록 약이 올랐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만종주점에서 술까지 사오는 게 아닌데······.’
 물론 공짜로 얻어온 것이지만, 그래도 가져온 것은 사실이었다.
 장하루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분주로 은근슬쩍 오늘 하루 무공을 수련하지 않고 넘겨보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명노인은 장하루의 꾀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장하루가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앞으로 술은 국물도 없을 줄 알아요, 흥!’
 “좋아요, 이번 한 번만 할아버지가 봐주신다면··· 신···법인가 뭔가 수련을 할게요.”
 ‘그렇지, 네놈이 진작 그렇게 나와야지. 크크크,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군.’
 절레절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흔드는 무명노인.
 ‘흐흐흐, 이런 좋은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기분이 좋아진 무명노인은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최대한 표정관리를 잘해야 했다.
 항상 귀신같이 약점을 파고들어 공격하는 장하루였다. 무명노인은 중요한 순간에 흥분하는 바람에 자신의 목적을 지금까지 이룰 수가 없었다.
 이번엔 어림없다, 절대로!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무명노인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굳게 다물고 있었다.
 “······”
 으흐흐, 정말 미치겠네! 장하루는 약이 올랐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 선에서 얼씨구나, 하면서 요구조건을 말했다. 헌데 오늘은 아무래도 단단히 각오를 한 듯했다. 갈수록 시간이 흘러가자 결국 장하루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할아버지의 조건을 말씀해 보세요.”
 “장사는 신용이 제일 중요하지······.”
 “흥!! 시간 없어요. 서론은 필요 없고 본론만 말해요.”
 “약속한 거다?”
 “그렇다니까요!”
 그제야 무명노인이 만족스럽단 표정을 지으며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내일부터 무영신법(無影神法)과 무음천변권(無音千變拳)의 초식을 완벽하게 익히는 거다.”
 헉!
 “왜? 싫으냐? 알았다. 없던 걸로 하자.”
 으드득!
 분한 마음에 장하루는 이를 갈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 아니에요. 그렇게 하지요. 흐흐흐.”
 “빨리 준비하지 않고 뭐하느냐? 오늘 바쁘다고 하지 않았느냐?”
 “암만 생각해도 난 친손자가 아닌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선 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가 내게 이러실 수는 없는 건데······.”
 들으라는 듯 원망이 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리면서 장하루는 방을 나섰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일단 황부잣집에 시간 맞추어 땔감을 해다 주기 위해선 지금부터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방안에 혼자 남게 되자 무명노인의 얼굴에 함지박만한 미소가 걸리더니 한동안 지워지질 않았다. 그동안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도 무공을 제대로 배우지 않던 놈이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무명노인은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하루의 고집을 꺾을 묘안을 찾아 전전긍긍하고만 있던 참이었다.
 언제나 기회는 한순간에 돌연 찾아온다고 했던가?
 무명노인은 설마 이처럼 쉽사리 장하루가 무공을 배운다고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허허허. 기분도 그렇고. 가만있자, 내일부터는 하루 놈 무공을 가르쳐야 되니··· 모처럼 집안에 술도 있겠다, 놀러나 가볼까? 그렇지 않아도 귀가 간질간질한 것이 담 늙은이가 내 욕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당분간은 놈에게 무공을 가르치려면 시간이 없을 테니.”
 
 땔감을 하기 위에 항산에 오른 장하루는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에잇, 빌어먹을! 콱, 부서져 버려라!”
 장하루는 어깨에 멘 지게를 벗어 앞으로 힘껏 던져 버렸다. 지게는 5장 정도의 거리에 우뚝 솟아있는 고목을 향해 날아갔다.
 휘이잉-
 장정이 양팔로 둘레를 감싸 안을 정도의 고목을 향해 지게는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순간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고목은 수숫단이 꺾어지듯 쓰러져 버렸다.
 우지직, 쿠궁!
 “으유··· 부서지길 바란 내가 바보지.”
 쓰러진 고목 쪽으로 걸어가 보니 강철로 만든 지게답게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장하루는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주변은 상록수가 아닌, 그 수명을 다한 고목으로 둘러싸인 산중이었다.
 장하루에게 항산은 부모, 형제,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눈을 감고도 항산 어디에 온천이 있고, 약초는 어디에 많으며, 맹수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 어디인지,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훤히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질 좋은 땔감이 많은 곳을 찾는 건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다.
 “늙어서 죽을 때까지 사용해도 까딱없을 거야. 그때는 아마 기력이 딸려서 이걸 지고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하겠지만.”
 푸념 섞인 말이었다.
 “그러나저러나 내일부터가 걱정인데. 분명히 노인네가 잡아 족치려 들 텐데··· 좋은 수가 없을까?”
 하지만 그럴듯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빠른 시간 안에 약속한 것을 익히는 수밖에······.
 “하는 수 없지. 눈 딱 감고 한번 들어주는 수밖에. 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쯤 못 들어줄까? 최대한 빨리 익혀버리는 거다.”
 과연 그것이 장하루의 생각처럼 될지는 의문스럽지만······.
 
 깊은 산중에서 장하루가 무명노인에게 불만을 터뜨리고 있을 무렵 무명노인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초옥을 나섰다. 오랜만에 담노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담노인의 집은 항산에서 서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무명노인과 마찬가지로 담노인의 장원도 촌락과는 많이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여러 채의 전각으로 이루어진 장원은 밖으로 높다란 담장이 전각을 둘러싸고 있었다. 정문에는 ‘녹원장’이란 현판이 붙어있었다. 빛바랜 회갈색의 담장과 낡아 보이는 정문. 그것은 녹원장의 건물이 오래 전에 세워졌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뒤로는 멀리 수많은 봉우리로 이루어진 항산의 절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지극히 평화로워 보이는 장원이었다. 간혹 장원 내를 오고가는 시종들 또한 여느 산촌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녹원장의 이런 고요한 전경은 일반인이 봤을 때 이야기. 절정에 이른 무림의 고수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큭큭!
 곳곳에 설치된 절진에 갇혀 안에서 해체하기 전에는 빠져나갈 수 없고, 급기야 진기가 고갈되어 뼈를 묻어야 하는 죽음의 장원이기도 했다.
 
 녹원장의 안채.
 회색 장삼을 걸친 담노인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번에 찾아온 녀석이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군. 더 이상 노부를 찾지 말라고 했는데.”
 말하는 담노인에게서 칙칙하고 사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30대 초반의 날렵해 보이는 사내는 갑자기 기가 불안정해지면서 숨이 가빠왔다. 흑색 무복을 걸친 사내의 안색은 점차 창백하게 변했다. 비릿한 무언가가 식도를 타고 턱밑까지 올라왔다. 아마도 핏덩어리인 듯싶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꿀꺽!
 한참이 지난 후에야 사내는 힘겹게 입에 고여 있던 핏덩이를 삼킬 수 있었다.
 담노인이 내뿜던 진기를 거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일각 이상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휴우··· 엄청난 마기였다! 혈도마인(血刀魔人) 시절보다 더 무시무시하군.’
 “드,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힘겹게 입을 연 사내가 품속에서 한 통의 서신을 꺼냈다.
 “그게 뭔가?”
 “교주님의 전갈입니다.”
 “···받을 수 없네. 이미 오래 전에··· 살인귀였던 혈도마인은 죽었네. 여기 있는 나는 녹원장의 장주 담노인일 뿐이네.”
 회안이 담긴 목소리였다.
 
 혈도마인(血刀魔人)!
 그는 마교 교주의 의동생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양일통의 파천신검과 그의 혈천도법(血天刀法)은 한때 무림을 피로 물들였다. 정파의 수많은 고수들이 그의 도에 목숨을 잃었고 잔인한 손속으로 인해 혈도마인이란 별호가 붙었다.
 그런 그가 이런 외진 항산의 깊은 곳에 은거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마교에서 담노인을 찾아왔다.
 담노인의 마기에 혼이 난 흑의인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당시 장로님께서는 주화입마의 상태셨습니다. 교주님께서도 그것을 아시고 지난 일은 불문에 붙인다 하셨습니다.”
 “설혹 교주님이 용서한다 해도 난 그럴 수 없네. 생각해 보게. 자그마치 200여 명의 형제를 이 손으로 죽였네. 이, 이 손으로 말일세······.”
 들어올린 담노인의 오른손이 부르르 떨렸다.
 “게다가 ‘수련’ 그 아이마저 죽일 뻔했네. 그 아이가 ‘담숙부님!’하고 불러서야 난 겨우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난 질녀를 처참하게 죽이고 말았을 것이야. 당시 창백한 얼굴로 온몸을 부르르 떨던 그 아이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네. 그런 내가 무슨 낯으로 교주와 형제들의 얼굴을 본단 말인가?”
 “그럼 앞으로 교단에 돌아오지 않겠단 말씀입니까?”
 “방금 전에도 말했지 않은가. 혈도마인은 죽었다고 말일세. 그러니 그 일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말게. 교에 돌아가거든 죽은 것으로 보고해 주게.”
 담노인이 잠시 눈을 감는 사이 흑의인의 눈빛이 잠시 빛을 발했다 사그라졌다. 본래의 무심한 눈빛으로 돌아온 흑의인은 서신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는 그 와중에 담노인의 표정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는 가볍게 예를 취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신형을 날렸다.
 ‘음··· 교단에 심상치 않은 일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아까 그 눈빛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신법으로 봐선 환영신마의 제자 같기도 한데······.’
 담노인은 방금 전 사라진 흑의인의 눈빛을 알아챘던 것이다. 한편으론 그의 내기에 놀랐다. 지금껏 그는 자신이 뿜어낸 살기를 일각 이상 버티는 자를 보지 못했다. 어쩌다 일각정도 버티는 자들도 결국 기혈이 막히면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던 것이다. 그런데 흑의 복면인은 자신의 내기를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맡은 바 임무까지 수행하고 돌아간 것이다.
 
 ‘지금쯤 예쁘게 자랐겠군.’
 담노인은 한동안 잊고 지내던 질녀가 생각이 났다.
 무척이나 자신을 잘 따르던 질녀였다. 무공에 미쳐 일가를 이루지 않은 그에게 양수련은 딸이나 진배없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모습. 자신을 보면 언제나 한손을 내밀며 선물을 달라고 하던 모습. 무동을 태워주자 등에 오줌을 찔끔 누던 모습.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자신이 가르쳐 주던 무공을 배우던 모습 등등.
 참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질녀였다. 그런데 그런 질녀를······.
 옛일을 생각하자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리, 무명어르신이 찾아오셨습니다.”
 갑자기 전해진 전갈을 듣고서야 담노인은 과거의 악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려 두 달 만이었다.
 담노인은 무명노인을 반갑게 맞았다. 두 사람은 하녀가 내온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자 담노인이 뜬금없이 말했다.
 “축하하네!”
 “응? 벌써 눈치를 챘단 말인가?”
 “하하하! 놀라긴. 자네 얼굴에 다 써있는데 뭘 그렇게 놀라나. 이제 그만 털어놓아 보게. 고래 심줄보다 고집이 센 고놈이 어떻게 무공을 배운다고 했는지. 그 사연이 무척이나 궁금하군.”
 잠시 전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사악한 기운은 흔적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평범한 노인처럼 보일 뿐이었다.
 “크크. 역시··· 이런 외진 곳에 묻혀 살더니 자네도 도인이 된 건가?”
 “뭐라고!”
 “······”
 “하하하!”
 “하하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이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명노인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자네도 알지? 고놈이 나이는 어려도 한번 약속한 건 칼이 목에 들어온다 해도 지킨다는 사실 말일세.”
 “그거야 알지. 뭐라고 했더라? 상인에게 있어 약속은 신용이고 그것은 목숨과도 같다. 내 고놈의 말을 듣고 어찌나 놀랐던지.”
 “게다가 어린놈이 돈벌이라면 아마 똥통에라도 들어갈걸?”
 두 사람의 얼굴에선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무슨 놈의 서두가 그리 길어. 다 집어치우고 본론만 말해, 본론만!! 누구 숨넘어가는 꼴 보려고 그래.”
 “아, 알았네. 그 놈의 성미하고는. 고놈이 장작을 내다가 저잣거리에 내다 파는 것은 자네도 알지?”
 “그거야 알지. 그리고 네놈의 그 계략도 더불어서.”
 “어험. 계략이라니? 다 하루의 장래를 생각해서 한 것이야.”
 담노인을 힐끔 한번 째려본 무명노인은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잠시 후 무명노인은 오전에 장하루와 벌였던 심리전을 다소 과장을 섞어 말했다.
 말을 다 마친 무명노인이 허리춤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뭔가?”
 “고놈이 사온 아부주일세그려.”
 “아부주? 그런 술도 있었던가. 모처럼 한잔하게 생겼군. 하하하!”
 두 사람은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담소를 이어갔다.
 탁-
 “꺼억··· 역시 좋군. 참! 이참에 아예 자네의 절학인 천무신공(天武神功)을 가르치는 것이 어떤가?”
 담노인의 말을 들은 무명노인의 안색이 갑자기 어둡게 변했다.
 쪼르르-
 담노인이 이제 마지막 남은 술을 한 잔 가득 따라주자 무명은 단숨에 들이켰다.
 “현재로선 너무 위험한 일이야.”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대체 자네가 항산에서 찾고 있는 게 뭔가? 혹시 아나? 내 도움이 될지.”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천무신공’은 엄청난 양강지학의 무공이네. 일반인이 아무것도 모르고 이 무공을 익히려 든다면 몸속에서 일어나는 열화를 감당하지 못해 타죽게 된다네. 설혹 무림인이 익힌다 해도 잘못하면 주화입마 되기 십상이지.”
 무명노인의 주화입마란 말에 담노인의 인상이 휴지조각처럼 일그러졌다. 자신의 과거가 생각났던 것이다.
 무명노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또 한 가지··· 하루가 어렸을 때 기억을 지우는 봉인대법을 시술받았네. 누구도 풀 수 없는······.”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어찌 보면 기구한 운명일 수도 있네, 도련님은.”
 무명노인의 입에서 뜬금없이 ‘도련님’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듯했다.
 사실 장하루가 무공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봉인대법을 풀어야 했다.
 문제는 그것을 풀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만약 당시에 그런 참변만 일어나지 않았어도······.’
 무명노인의 얼굴에 진한 아픔이 묻어났다.
 “그렇다면 자내의 절학은 영영 아무에게도 전수하지 못하는 건가?”
 “그렇지는 않네. 하루의 봉인이 풀리고 한 가지만 찾을 수 있다면······.”
 “그게 뭔가?”
 “······”
 무명노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담노인 또한 더는 묻지 않았다. 말할 거였으면 진작 말했을 것이기에······.
 
 
 제4장 교주의 딸
 
 
 조백광은 자신의 거처에서 수하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소인이 판단하기엔 분명 교단으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음··· 그래.”
 조백광에게 보고를 하는 있는 흑의인. 그는 바로 얼마 전에 담노인을 만났던 그 사내였다.
 그는 조백광이 혈도마인의 심중을 떠보기 위해 보낸 수하였다. 양일통이 폐관수련에 든 지금 교의 일인자는 조백광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이 교를 휘어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단지 눈에 걸리는 인물이 있다면 양일통의 의제인 혈도마인 담철인뿐이었다.
 조백광은 그동안 수하들을 풀어 혈도마인을 찾았다. 만일 그가 교에 관심이 없다면 상관이 없지만 혹여라도 마교에 미련이 남아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되는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수하의 말을 들어보면 교에 미련을 갖고 있지 않은 듯했다.
 조백광은 목구멍에 걸린 뼈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혈도마인 담철인, 네 말처럼 그렇게 죽은 듯이 살아라. 이 손에 형제들의 피를 더 이상 묻히고 싶지 않으니까. 크하하하!”
 방안을 서성이던 조백광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었다. 이제 더 이상 걸림돌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동안 실성한 사람처럼 웃던 조백광이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담가 놈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 같지는 않더냐?”
 “절대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천화야! 네가 보기에 그놈의 무공은 어느 정도인 것 같더냐?”
 “소인으로선 도저히 추측하기가······.”
 흑의인, 천화라 불리는 사내는 혈도마인을 생각만 해도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두려움에 살이 떨려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사실 혈도마인에 대한 소문은 마교 내에서도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들었던 터였다.
 천화는 부교주의 밀명을 받았을 때부터 각오는 했지만 설마 뿜어지는 마기가 조백광을 능가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조백광은 천화의 지금 모습이 이해가 갔다.
 “대충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구나. 이제 교주를 제외한다면 담가 놈을 상대할 자가 교단엔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그래서 믿는 널 보낸 것이다. 그래, 혹시라도 너의 신분을 의심하지는 않더냐?”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자를 만나고 나오면서 부교주님이 가르쳐 주신 무영신법을 펼쳤습니다. 아마도 그자는 제가 환영신마의 제자라 판단할 겁니다.”
 “허허허. 아주 잘했다.”
 “천화야. 매사에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다. 내가 지옥살수대의 영패를 건네줄 테니 넌 지옥살수대에서 뛰어난 놈을 골라 그자의 주변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해라.”
 “존명!”
 
 조백광과 천화란 사내가 대화를 주고받는 전각의 지붕.
 얼굴에 귀면탈을 쓴 자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이미 극마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조백광조차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은신술은 대단했다.
 휘익, 휙, 휘이이익-
 그는 전각과 전각 사이를 이리저리 건너다니며 날듯이 움직였다. 흡사 밤고양이처럼 날렵했고 미세한 기척조차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그가 동쪽으로 빠르게 사라져 시야에 보이지 않을 때 일어났다.
 잠시 전 귀면탈을 쓴 자가 웅크리고 있던 곳에서 10여 장 떨어진 곳. 기왓장밖에 없는 곳에서 하나의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스르르-
 그리고 순식간에 연기는 흑의 복면인으로 변했다.
 ‘누구지?’
 그는 한동안 말없이 동쪽을 응시하더니 바람처럼 신형을 감추었다.
 복면인이 사라진 방향은 서쪽이었다. 귀면탈을 하고 있던 자의 움직임도 빨랐지만 그는 눈으로 보고도 그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힘들 정도였다.
 
 복면인은 근 반 시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지붕을 평지처럼 쉬지 않고 달리고 있건만 거친 호흡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는 주변의 동태를 한번 살피더니 어느 한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아가씨.”
 “들어오너라.”
 그는 두건을 벗으면서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바로 양수련의 침실에 딸린 서재였다. 복면인은 다름아닌, 은밀히 조백광을 감시하도록 양수련이 보낸 난이란 소녀였다.
 “어찌 되었느냐?”
 양수련이 다급하게 물었다.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저말고도 누군가가 조백광을 염탐하고 있었습니다.”
 “응?”
 자신말고도 조백광의 동태를 은밀히 주시하고 있는 자가 있었단 말인가. 양수련으로선 의외였다.
 감히 부교주를 염탐할 정도로 대담한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만일 조백광이 눈치라도 채는 날엔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을 텐데. 과연 누가······? 혹시!?
 양수련은 짐작 가는 인물이 있었다.
 “혹, 그자가 동쪽으로 사라지지 않더냐?”
 “아,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아가씨?”
 “짐작이 가는 인물이 있어 물어본 것이다.”
 “그게 누군데요?”
 “좀더 두고 보자. 그래, 그자의 용모는 어떠하더냐?”
 “귀면탈을 쓰고 있어 얼굴을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여자의 체형이었습니다.”
 틀림없다. 귀면탈은 환희요녀 추타타의 수하일 것이다.
 ‘추타타! 역시 음영대의 수장을 맡을 만한 여인이다.’
 양수련은 새삼 추타타의 용의주도함에 놀랐다.
 “그건 그렇다 치고. 조백광이 뭔가 새로운 일을 꾸미지는 않더냐?”
 “부교주가 혈도마인을 거론했습니다.”
 “숙부님을! 그게 정말이냐?”
 부교주가 혈도마인에 대해 거론했다는 말에 양수련은 깜짝 놀랐다. 숙부님을 찾기 위해 백무체를 중원으로 은밀히 내보낸 상황이 아닌가.
 양수련은 조백광의 의도가 자못 궁금했다.
 “조백광이 숙부님에 대해 무슨 말을 하더냐?”
 “자세히는 듣지 못했습니다.”
 “네가 들은 대로만 말해 보거라.”
 난이 들었던 얘기는 특별할 게 없었다. 단지 혈도마인이 교내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정도였다.
 내심 숙부의 소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양수련은 못내 아쉬웠다.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이 백무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그 늙은이가 다시 지옥살수대를 보내어 숙부님을 감시한다고 했단 말이지?”
 “예에. 틀림없이 그렇게 들었다니까요.”
 숙부님의 거처를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양수련은 백무체를 중원으로 내보낸 것을 후회했다.
 백무체가 있다면 그로 하여금 조백광이 보내는 수하를 은밀히 미행하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 누구를 보낸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히 보낼 만한 수하가 없었던 것이다.
 양수련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제5장 장하루의 무공수련
 
 
 항산의 깊은 산속······.
 턱, 하니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절벽!
 천상을 향해 까마득히 치솟은 절벽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초옥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버팀목처럼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절벽 바로 밑에는 30여 평에 이르는 널따란 공터가 있었다.
 
 이 공터에 무명노인과 장하루가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장하루의 본격적인 무공수련이 시작된 것이다.
 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무명노인는 장하루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지칠 줄 몰랐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힘이 넘쳐나는 듯 보였다.
 “······다시 말해 사파의 무공은 그 내공의 증진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파의 무공은 그 반대이다. 그 이유를 아느냐? 그것은 사파의 무공은 사람을 살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정파의 무공은 궁극적으로 그 무를 통한 도(道)를 이루는··· 즉 깨달음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네가 지치지도 않나!’
 장하루는 할아버지의 열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도 한 시진째 무명노인은 무공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 많은 무공을 알 수 있지?’
 장하루의 생각이었다. 서적을 통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면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매일 한 시진 이상씩 강연하는 내용이 마치 책을 읽어 내려가듯 명확하게 요점만 설명한다는 사실이었다.
 장하루는 생각할수록 할아버지가 놀랍고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혹시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도관을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되지 않았다.
 장하루의 이런 속내를 알지 못하는 무명노인은 장하루가 그저 총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흐뭇했다.
 ‘그래, 이제야 네가 무공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녀석.’
 그저 기특하다 여기며 무명노인은 그동안 가르치려 마음먹었던 무공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신법에 대해 강론을 하고 있었다.
 “무림의 문파들은 제각기 그들만의 독문신법과 보법을 가지고 있느니라. 심법을 운용,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여 일정한 법칙에 따라 빠르게 발을 움직여 나아가는 것을 신법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지척에서 공격해오는 적을 피하거나 반대로 상대를 수월하게 공격하기 위해선 발이 빨라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보법이다. 이러한 연유로 생겨난 것이······.”
 장하루에게 무공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신명이 난 무명노인은 이제 두 눈까지 감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진다고 하더니 사실이군.’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시간은 쉼 없이 흘렀지만 무명노인의 열성은 식을 줄 몰랐다. 꼭, 누가 가르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제는 질려버린 장하루였다. 무명노인이 두 눈을 감고 강연을 하는 사이, 귀담아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살며시 주변 경관을 쳐다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볼수록 대단한 곳이란 말야.’
 어려서부터 항산의 산자락을 오르내렸다. 그는 눈을 감고도 산의 지리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한쪽 방향을 절벽이 가로막고 있고 앞에 공터가 있는 곳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경치나 감상하면서 무공강연을 들으라고 이곳에 데려오지는 않았을 터······. 노인네가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게 뭐지?
 장하루는 불현듯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무명노인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강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의문을 가지고 할아버지를 바라보자 왠지 불길함이 엄습했다. 분명 이곳에 그을 데리고 왔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장하루는 무심코 절벽을 바라봤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면서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래도 하나뿐인 장씨 집안의 독자인데······?’
 속으로 아니라고 부정을 하면서도 장하루의 얼굴은 점차 굳어져 갔다.
 세상일이란 것이 참으로 얄궂다!
 자신이 바라는 게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반면 자신이 원하지 않은 것은 소리도 형체도 없이 연인처럼 은밀히 다가오기 때문이다.
 장하루의 경우가 그러했다. 불길한 생각을 지워버리기 위해 속으로 발버둥치던 장하루는 그동안 수십 번도 더 들어오던 내용을 다시금 듣자 짜증이 났다. 그때 갑자기 할아버지를 놀릴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장하루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무명노인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각 문파의 독문신법으로는 곤륜파의 윤룡대팔식, 개방의 취팔선과천, 점창파의 유운신법, 소림사의 금강부동신법, 아미파의 부동명왕보, 무당파의 제운종, 마교의 천상제······ “
 각 문파의 신법에 대해서 설명을 하던 무명노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멈추고 감았던 눈을 떴다.
 ‘아니, 이 녀석이!’
 무명노인은 노화가 치밀었다. 장하루가 자신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명노인이 매섭게 쏘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장하루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장하루는 이제 제 흥에 겨워 고개까지 흔들어대며 신법에 대한 내용을 읊어대고 있었다.
 “······모두 강호에선 그 순위를 가리기 어렵다고 하는 신법들이지. 하지만 누가 뭐라 하더라도 천상보······ 이놈!!”
 “헉!”
 딱- 따닥-
 불같이 화가 난 무명노인이 장하루의 머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아이고, 머리야. 자, 잠···만요!”
 “고얀 놈. 할애비가 말을 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듣지는 못할망정 앵무새인 양 쫑알거리다니. 언제부터 네가 앵무새로 둔갑을 했더냐, 이놈!”
 무명노인의 화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 잘됐구나. 앵무새는 길들이면 잘 따라한다고 하니 어디 네놈도 맞다보면 길이 들겠지.”
 “할아버지, 그··· 그건 오해예요, 오해. 손자는 복습 차원에서······.”
 무명노인의 손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장하루는 맞지 않으려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되는대로 둘러댔다.
 무명노인은 어이가 없었다.
 “복습?!”
 “복습 모르세요?”
 “······”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대들듯이 되묻는 장하루의 넉살에 무명노인은 그만 할말을 잃고 말았다.
 ‘오냐! 네놈이 정 그렇게 나온다면 앞으로 지옥이 어떤 건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겠다. 크크크크.’
 무명노인은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손자를 상대로 앙심을 다지는 무명노인이었다.
 속으로 애써 화를 다스리며 무명노인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였다.
 “허허허, 참. 미안하게 되었구나. 그동안 네가 갖은 핑계를 대며 무공 배우기를 싫어하기에······.”
 “아니, 할아버지. 이 손자를 어떻게 보시고 그런 서운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지금!”
 펄펄 날뛰는 장하루.
 무명노인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놈이 보자보자 하니 아예 간덩이가 부어 가는군.’
 무명노인의 속을 짐작하지 못하는 장하루는 호기롭게 외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항상 자랑하시는 무영신법(無影神法)이란 독문신법을 당장 가르쳐 주세요.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당연히 그래야지. 아암! 사내가 한번 약속을 했으면 평생이 걸리거나, 설혹 죽음과 같은 고통이 따른다 해도 지켜야지. 안 그러냐?”
 죽음?
 고통?
 아니 이 상황에서 웬 불길한 말만 팍팍, 머리 속에 꽂히지?
 게다가 저 음흉한 표정은 또 뭐란 말인가?
 장하루의 예감이 점차 안 좋은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취소하기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장하루는 이를 악물었다.
 “당연하지요, 사내라면 오기와 배짱을 빼면 남는 게 없잖아요.”
 “네가 그렇게 말하니 할애비도 안심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예?”
 “학문을 배우는 것에 순서가 있듯이 무공을 익히는 것 또한 절차가 있는 법이다. 내 그동안 너에게 인체의 혈도를 암기하게 하고 검술의 기본기를 가르쳤다. 그리고 각대문파 무공의 장단점을 하루에 한 시진 이상씩 설명해 주었다. 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언제 무공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그저 그때그때 억지로 무공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장하루였다.
 오히려 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장하루가 대답하기도 전에 무명노인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것은 네가 후일 상승무공을 익히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승무공은 스승으로부터 이론을 배우고 몸으로 익힌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깨달음이란 것이 마음만 있다 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타의 무공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찾아 노력해야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잊지 않을게요, 할아버지.”
 지은 죄가 있는지라 장하루는 진중하게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보다도, 무명노인이 오늘의 무공 강연을 끝마치려는 의도를 보이자, 뭔가에 불안해하던 것이 일시에 해소된 장하루가 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한 말이었다.
 무명노인은 품속에서 한 권의 서적을 꺼내 장하루에게 건네주었다.
 “그동안 여러 문파의 무공에 대한 설명을 듣느라 고생했다. 내일부터는 무영신법에 대해서 배우게 될 것이다. 그것을 될 수 있으면 하루빨리 암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당장에 암기를 하라든지, 아니면 언제까지 외우거라가 아닌 하루빨리? 이상했다. 물론 강요한다 하여 따를 것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쨌든 장하루는 무명노인이 건네준 무공서적을 쳐다보지도 않고 품속에 넣어버렸다.
 
 
 초옥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을 때까지도 할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철푸덕-
 장하루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드러누웠다.
 “푸우우··· 힘들다! 아아, 과연 언제쯤이면 이 장하루의 인생에 봄날이 올 건지. 빌어먹을!”
 신세한탄을 해보지만 지금으로선 방도가 없었다.
 “잠이나 자자.”
 벌떡 일어난 장하루가 상의를 벗자 서적이 품속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바로 무명노인이 그에게 전해준 무공서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심사가 뒤틀린 장하루는 서적을 보자 더욱 짜증이 났다.
 “쳇. 줄려면 팔아도 돈이나 될 만한 거나 주지. 누가 저딴 책 달라고 했나?”
 팍-
 발로 걷어차 버리자, 서적은 장하루의 방에서 유일한 기물인 나무로 만들어진 궤짝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하루는 방바닥에 누워 미련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을 일찍 먹은 무명노인과 장하루는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간에 공터에 도착했다.
 무명노인 자신의 독문신법인 무영신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먼저 무명노인은 무영신법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무영신법을 정확하게 펼치기 위해선, 먼저 사상과 팔괘의 묘리를 정확하게 숙지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 연후 천무심법의 내가진기를 전신혈도 곳곳에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전의 진기는 하나도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명노인의 설명은 여타의 무공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대체로 타 문파의 무공을 시전하기 위해선 진기가 단전에 충만해 있어 그것을 신체의 전신혈도에 일정한 방식으로 흘려보내게 되어있다.
 그런데 무영신법에서는 진기가 막혀있던 혈도를 완전히 개방하기 위한 힘으로 쓰이는 것이었다.
 “단전의 모든 기운을 내보내 전신혈도가 개방되면 대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라. 이때 중요한 것은 오행의 기운을 받아들이되 개방된 혈도를 통해 다시금 내보내는 것이다. 처음엔 잘 되지 않아도 차츰 몸에 익숙하게 될 게다. 그렇게 되면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변하고, 자신의 의념에 따라 대자연에 부는 바람의 기운 또한 받아들일 수 있다. 바람의 기운이 자유로이 몸속을 유영하고 다닐 때 사상과 팔괘를 정확히 밟아 나아가는 것이 바로 무영신법의 묘리(妙理)이니라. 무영신법을 극성으로 펼치면 무림인들이 흔히 말하는 신법의 최고경지, 허공답보를 뛰어넘게 된다. 물론 그런 경지가 너에게 올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던 무명노인의 끝말이 모호했다.
 두고 봐야 알겠지만?
 무공을 배우기 싫어하는 장하루였지만 무명노인의 그 말에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마치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로 들렸던 것이다.
 장하루의 눈썹 끝이 살짝 꿈틀거렸다.
 “할아버지! 용기를 북돋아 주지는 못할망정 너무하시는 것 아니에요? 아무리 손자가 미워도 그렇지.”
 “왜? 할애비 말에 기분이 상하더냐?”
 물어보나 마나한 말이었다.
 자신을 무시하는데 세상에 기분이 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바보천치도 자신을 욕하면 고까워하거나 대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갈수록 무명노인의 말은 장하루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사실 무영신법을 극성으로 펼친다 함은 천무신공을 삼 단계까지 터득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현재로선 네가 배울 수 있는 단계는 이 단계까지이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죠?”
 “네가 천무신공을 이 단계까지 터득하면 그때 말해 주마. 하지만 하루야, 천무신공의 이 단계라 하여 쉽게 생각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이 할애비도 천무신공의 이 단계를 뛰어넘어 삼 단계에 진입을 했을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 할애비 나이 60이 되어서였다.”
 “그렇다면 저도······.”
 “그것은 아니란다. 무공이란 시간이 흘러야만 익히게 되는 것이 절대 아니지. 항상 명경처럼 맑은 마음으로 깊게 사색하고 이해하면서 자연을 바라보거라. 개안(開眼)하는 날, 길가의 초목이나 주변의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스럽게 보일 게다. 그렇게 되는 날 대자연의 기운은 자연스럽게 네 몸과 동화가 될 것이다. 네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게 되면 무공의 초식이 불필요하고 너무 번잡하다는 사실을 알고 네 스스로 무공을 버리게 될 것이다. 그 날이 바로 네가 진정 무학의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는 때인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은 일년이 될 수도, 십년이 될 수도, 아니면 평생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네 노력의 여하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말해 두마.”
 허걱!
 사미승이나 도인도 아니고······.
 무공을 익히기 위해 평생을 소비하다니.
 장하루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은 무가치한 시간낭비라고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장하루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무명노인이 말했다.
 “그래. 무공을 수련한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도인이나 승인처럼 인간의 끝없는 내면을 성찰하고 깨달아 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단지 그들과 방식만 다를 뿐.”
 나이가 들면 다들 저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일까? 장하루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무공을 배우겠다고 호언장담했다는 사실이었다. 할아버지도 60이 되어서야 삼 단계에 진입했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일단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무명노인이 마침내 무영신법을 시전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린 손자를 두고 사설이 너무 길었구나. 잘 보도록 하여라. 한 번만 무영신법을 시전할 테니.”
 ‘흥! 얼마나 대단한지 볼 테야!’
 흑단처럼 새까맣게 보이는 장하루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빛났다.
 
 사뿐-
 사뿐-
 무명노인이 마침내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앞을 지나쳐 절벽으로 향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장하루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불길하게 여겼던 생각이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무명노인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고, 절벽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팍, 파박-
 “······!”
 저럴 수가······. 놀라서 벌어진 장하루의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타다다다다-
 파르르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귀신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이 저러할까.
 높다란 장대에 매달린 천이 세찬 바람에 휘날리듯 절벽은 장대가 되고 무명노인의 기다란 소맷자락이 펄럭이는 무명천처럼 춤을 추며 끝도 없는 허공으로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무명노인은 인간이 아닌 땅을 박차고 오르는 한 마리 비조(飛鳥) 같았다.
 “무영신법? 인간이 아닌 한 마리 붕새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환상을 보는 것 같다.”
 고개를 쳐들고 절벽을 오르는 무명노인을 바라보며 장하루가 중얼거렸다.
 푸른 하늘에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처럼······.
 절벽을 타고 오르는 무명노인의 신형은 그렇게 점점 지면에서 멀어져 갔고, 급기야 하나의 점이 되어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무명노인이 절벽 너머로 사라지고도 한참, 장하루는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려는 듯 장하루는 세차게 도리질했다. 그때서야 자신이 절벽 바로 밑에까지 와있다는 것을 알았다.
 “응! 이것은······?”
 절벽에는 밑에서부터 위로 무수하게 많은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할아버지가 절벽을 오르면서 남긴 흔적이 분명한데. 진흙도 아니고 단단한 암벽에 어떻게 발자국을 남길 수 있지?’
 장하루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발자국은 어떤 것은 3촌 정도의 깊이에서, 어떤 것은 1촌 정도로 각기 달랐다.
 장하루는 부인하고 싶었지만 무명노인의 무공이 대단하단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명노인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후로도 두 식경이 지난 후였다.
 분명 상당한 내공을 소비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에게선 힘든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장하루는 태연한 척 무명노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무척 놀랐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명노인은 그런 장하루의 마음을 읽었다.
 “하하하. 무척이나 놀란 듯싶구나.”
 “솔직히 아주 쬐금요.”
 “떽, 이놈! 그래, 발자국은 잘 살펴보았느냐?”
 “예. 발자국의 찍힌 모습을 보아 대충 무영신법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짐작이 돼요.”
 장하루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무명노인이 놀랍다는 듯이 눈을 치켜떴다.
 “오호, 그래? 그럼 어디 말해 보거라.”
 “앞으로 나아가고 때로는 좌우로 기묘하게 움직이는 동작이 사상과 팔괘에 원리를 두고 있는 듯한데요.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분배지요. 발이 앞으로 뻗을 때는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야 되고, 좌우에서 발이 움직일 때는 몸의 체중이 실리게 되어있어요. 다시 말해서 좌우에서 움직일 때 앞으로 힘차게 도약을 하는 듯한데······.”
 장하루가 말끝을 흐렸다.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무명노인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계속해 보거라.”
 “문제는 좌우에 찍혀있는 발의 깊이가 일정하지 않아요. 좌측의 발자국이 깊은가 하면, 어느 순간 우측의 흔적이 더욱 깊게 찍혀있거든요. 다 다르단 거죠. 그 이유가 무엇일까···음······.”
 “잘 보았다. 하지만 절반밖에 알아내지 못했구나. 물론 안다고 해도 무영신법을 터득하기는 어렵지. 그러나 저 발자국을 따라 오르다 보면 무영신법의 묘리를 어느 정도 터득하게 될 게야. 그때가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영신법을 터득했다는 말은 천무신공의 내기가 전신혈도와 세맥에 들어가고 나감이 막힘 없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비록 하나의 신법을 수련하는 듯 보여도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무음천변권(無音千變拳)’이란 권법 또한 자연스레 터득하게 될 것이다.”
 무음천변권을 터득한다고?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지금까지 무음천변권이란 권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듣도 보도 못한 하나의 권법을 터득할 수 있다니, 약속이 틀렸다.
 장하루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만일 이렇게 되면 평생 무공을 배우기 위해 이 깊은 산중에서 썩어 지내야 할 듯싶었다.
 장하루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신법을 자연히 터득할 거란 건 알겠는데, 권법을 터득할 수 있다는 할아버지 말씀은 좀······.”
 “그것은 네가 이 절벽을 오르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게야.”
 끄응!
 너무 막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게재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어떻게 저 절벽을 오르느냐 하는 문제였다.
 무명노인이야 수십 년 넘게 무공을 수련하였으니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하루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는 입장.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말이다.
 감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자 장하루는 일단 사정을 해보기로 했다.
 “할아버지, 꼭 제가 저 절벽을 올라야 하나요?”
 “허허. 막상 절벽을 오르려 하니 겁이 나는가 보구나. 하지만 할애비는 네가 약속을 지키리라 믿는다.”
 으드득!
 ‘인정을 기대한 내가 바보다!’
 물론 쉽게 승낙하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매몰차게 일언지하에 냉정하게 잘라 말하자 장하루는 오기가 생겼다.
 이때 무명노인이 깜빡했다는 듯이 덧붙였다.
 “참! 잊을 뻔했군. 저 절벽을 반나절 만에 올랐다 내려올 수 있어야 한다.”
 “예에?”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장하루는 금방이라도 밖으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저, 저 절벽을······.
 “왜, 그렇게 놀라느냐?”
 “지, 지금 놀라지 않게 생겼어요!?”
 대들듯이 버럭 소리를 지른 장하루가 손으로 절벽을 가리켰다.
 “저, 저··· 절벽을 올라가는 것도 불가능하거늘 어, 어떻게 반나절 만에 왕복해요?”
 “사람이 노력해서 되지 않는 것이 없다. 할애비는 널 믿는다.”
 자신의 말은 이미 다했다는 듯이 무명노인은 장하루를 혼자 남겨두고 산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멍하니 서서 무명노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장하루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할아버지!!”
 
 
 무명노인은 숲 속으로 들어섰다.
 숲 속에는 오솔길조차 나있지 않았고, 빽빽하게 들어찬 수목만 보일 뿐이었다. 간혹 나뭇잎 사이로 태양빛이 쏟아져 내려 눈이 시려왔다.
 수풀을 헤치며 원시림으로 들어서는 무명노인.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얼마 전에 한 사냥꾼이 보았다는 동굴을 찾고 있는 것이다.
 
 “신비한 샘이 있는 동굴이었지요.”
 “신비한 샘이라니?”
 항산 일대에서 사냥을 하고 내려가던 한 사냥꾼이 ‘신비한 샘’을 보았다는 말에 무명노인은 되물었다. 혹시나 그동안 자신이 찾은 샘인지도 몰랐다.
 “글쎄 화살에 맞아 다 죽어가던 엄청나게 큰 이리가 피를 줄줄 흘리며 들어오더니 샘으로 들어가지 뭡니까! 전 이리가 너무 무서웠어요. 혹여 잡혀 먹히지나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전 바위 뒤에 숨어서 그놈이 하는 양을 지켜보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두 식경이 채 못 되어 샘에서 이리가 밖으로 튀어나가지 뭡니까? 다 죽어가던 놈이 팔팔하게 살아서 말입니다.”
 틀림없었다. 사냥꾼이 보았다는 샘은 분명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곳이······.
 무명노인은 마음이 급했다.
 “혹, 꿈을 꾼 것이 아닌가?”
 “물론 저도 처음엔 꿈을 꾼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하도 신기해서 샘으로 다가가 손을 넣었다가 온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지요. 얼음도 그보단 차갑지 않을 겁니다. 그제야 꿈이 아니란 걸 알고, 재빨리 손을 빼낸 전 피곤해서 잠이 들고 말았어요. 잠결에 너무 허기지고 목이 말라 그 샘물을 마시고 말았지요. 그때 전 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는데, 순간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어요. 글쎄 상처가 말끔하게 나은 건 물론이고 몸속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펄펄 넘치지 뭡니까?”
 “자··· 자네, 그곳이 어디인지 가르쳐 줄 수 없겠나?”
 말을 하는 무명노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사냥꾼의 대답에 그만 무명노인은 허탈해지고 말았다.
 “알 수 없습니다요.”
 “알 수 없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사실 제가 그 동굴을 찾아 들어간 것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었지요.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를 피해 어딘지도 모르고 우연히 들어갔던 겁니다. 그리고 상처가 다 나은 후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놀라고 있을 때 다시 고통에 찬 맹수의 울음소리를 듣고 무서워서 뛰쳐나왔거든요. 이미 밖은 폭우가 그쳐있었지요. 전 두려운 마음에 어디로 달리는지도 모르고 밤새도록 숲 속을 달렸지요. 날이 밝고 나서야 제 몸이 예전에 비해 훨씬 건강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다시금 그곳을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냥꾼이 보았다는 샘이 바로 음양이기지(陰陽異氣池)일 것이다.’
 그동안 무명노인은 음양이기지란 샘을 찾아 항산의 구석구석 뒤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영약이란 것이 기연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이 또한 찾고자 하여 찾아지는 샘이 아니었다.
 
 음양이기지.
 항산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신비한 샘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음기가 부족해 다 죽어가는 여자도 이 물을 마시면 음기가 보충이 되어 회복되고, 양기가 허약한 남자에겐 양기를 채워주는 신비한 샘이었다. 또한 무공인이 그 물을 마시고 운기를 하게 되면 인체의 모든 불순물이 제거되며 일시에 임, 독맥이 타동되면서 환골탈태와 같은 효능을 그 사람에게 준다고 알려져 있다.
 무명노인은 오래 전 한 고서에서 읽은 사실을 기억해 냈다. 만일 고서의 내용이 정확하다면 장하루의 봉인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진위여부를 떠나 장하루가 천무신공의 삼 단계 이상을 뛰어넘기 위해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결국 무명노인은 장하루에게 내색하지 않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항산 곳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실오라기 같은 단서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인근에 살고 있는 산촌민들에게 물어도 금시초문이란 말만 들을 뿐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얼마 전에 사냥꾼을 통해 그 단서를 잡은 것이다.
 ‘사냥꾼이 말한 그날은 항산의 북쪽 정상 근처에 폭우가 쏟아진 날이다.’
 이제 한 발짝 헤쳐 나가기도 어려운 숲 속을 뚫고 무명노인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갔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는 구름에 가려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명노인의 발걸음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음양이기지’란 샘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라도 하듯.
 “으아아아- 사람살려!!”
 털썩-
 힘겹게 오르던 장하루는 그만 절벽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져 내린 바닥이 움푹 들어갔다. 몸을 돌려 허공을 응시하며 그대로 드러누워 있는 그는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요즘 장하루는 하루하루가 죽느니만 못했다.
 그래도 전에는 오전에 항산의 정상에 올라 장작을 해서 저잣거리에 나가면 행인들과 상인들, 그리고 재수가 좋은 날은 상단이 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헌데 지금은 아니었다.
 장하루가 목숨보다 중시하는 신용!
 장하루는 그 신용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명노인에게 무공을 배우기로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장하루는 오전에는 명상을 해야 했고, 오후부터는 신법을 터득하기 위해 절벽을 올라야만 했다. 그렇다고 하루 일과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잠들기 전에 또다시 명상을 해야만 했다.
 절벽을 오르내리며 무영신법을 수련한 지도 벌써 두 달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장하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이기 때문이었다.
 떨어져 내린 바닥에 누워 절벽을 응시하고 있는 장하루의 입이 한일자로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정상에 오르면 뭐··· 자연 터득한다고? 좋아, 꼭 오르고 말 테다!’
 “으아아아!!”
 힘겹게 일어난 장하루는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뻗으며 소리쳤다.
 얼굴은 온통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날카롭게 튀어나온 바위조각에 의복은 수없이 찢겨 너덜거렸다. 찢겨진 의복사이로는 몸 곳곳에서 핏물이 흘렀다.
 드르륵, 드르륵-
 힘겹게 다시금 절벽으로 향하자 발목에 채워진 쇳덩이가 바닥을 구르며 신경을 자극했다.
 하지만 장하루의 귀에는 그것이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 정상을 향한 집념뿐이었다.
 “후, 후, 후우우······”
 장하루는 숨을 토해냈다.
 “전생에 견원지간이었음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절벽을 맨손으로 오르게 할 수 있어? 하지만 보란 듯이 오르고 말 테다!”
 날개가 달려 허공을 난다면 모를까, 어떻게 저 끝도 보이지 않는 정상을 인간이 오를 수 있단 말인가.
 한 발 한 발 할아버지가 찍어 놓은 족적을 따라 절벽을 올라갔다. 하지만 얼마 오르지 않아 장하루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우··· 빌어먹을! 쳐다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리까리하군. 하지만 노인네가 몸소 올라갔다 왔으니 발뺌을 할 수도 없고······. 으아아아! 정말 미치겠네.”
 애초에 시도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포기하기엔 정말이지 억울했던 것이다.
 부르르-
 갈수록 손과 발이 떨렸다. 장하루는 모질게 이를 악물고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었다.
 “빌어먹을!!”
 뜻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자 자연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도 장하루의 손은 여전히 무명노인이 찍어놓은 발자국을 찾아 더듬거렸다.
 그리고 발자국이 찍힌 암반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고, 이마에 심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불거졌다.
 “응차!”
 한 걸음.
 한 걸음.
 텅텅텅-
 발을 움직일 때마다 발목에 채인 쇳덩어리가 절벽에 부딪히면서 신경을 자극했다.
 비록 절벽을 오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쇳덩이를 달고 산 지는 벌써 삼 년 이상 흐르고 있었다. 이제는 무게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다보니 간혹 쇳덩어리가 발목에 묶여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꾸만 밑으로 그를 끌어내리는 일등공신이 바로 쇳덩어리였다.
 그럼에도 장하루는 기어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텅, 텅, 텅-
 얼마나 올랐을까?
 어렵게 고개를 쳐들고 위를 쳐다보았다. 역시나 절벽은 까마득해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현기증이 일었다.
 장하루가 무의식중에 오른손을 들어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려는 순간!
 주르르-
 “으아아악-”
 철푸덕-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곤두박질친 장하루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으응, 어떻게 된 거지?”
 장하루가 의식을 차린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장하루는 자신이 방안에 누워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니 날은 이미 캄캄해져 있었다. 무수한 별들만이 하늘에 가득했다.
 장하루는 문득 자신이 저 별들보다도 처량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 신세가 저 하늘에 떠있는 별들보다도 못하군, 빌어먹을. 벌써부터 내일이 걱정이군. 이렇게 몸이······?”
 응? 멀쩡했다. 바위에 찢겨지고 베인 무수한 상처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칼로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몸 또한 한결 가뿐해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금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인가?”
 도저히 믿기지 않은 장하루는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얏!”
 분명 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명노인이 데려다 눕히고 상처를 치료해 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장하루의 표정은 눈곱만큼도 고마운 표정이 아니었다.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데?
 장하루는 할아버지가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장하루의 맨손 암벽등반은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장하루는 날마다 암벽을 타면서 바닥으로 떨어졌고 정신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는 곳은 언제나 자신의 방안이었다. 죽지 않고 꼬박꼬박 살아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나 할까?
 놀라운 것은 무명노인이었다. 장하루가 의식을 되찾을 시간을 어떻게 아는지 귀신같이 알았다.
 그리고 건넌방에서 무명노인 왈.
 “일어났으면 명상에 들거라!”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사내.
 나이가 언뜻 50줄에 들었을 것 같은 사내의 왼쪽 가슴엔 귀(鬼) 자가 흑색무복 위에 백색으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이의 손바닥만한 크기의 백색 원 안에 있는 귀 자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왠지 오싹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바로 마교의 5대 무력단체 중의 하나를 뜻하는 지옥살수대의 의복으로 사내는 수장인 나찰도였다.
 나찰도는 낭패한 표정으로 급히 조백광의 집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처벅, 처벅-
 이때 조백광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뭔가에 깊이 빠져있었다.
 나찰도가 지척에 이르러서야 조백광은 상념에서 벗어나 고개를 쳐들었다. 나찰도가 조백광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서 다가섰다고는 하나, 조백광이 자신의 지척에 누군가 다가오기까지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조백광은 나찰도를 보고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냐?”
 “아무래도 양수련이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무척이나 조심스런 말투였다.
 “눈치 채다니? 설마 혈도마인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라도 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부교주님.”
 “뭐라고?”
 나찰도의 말을 들은 조백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계집이었다.
 양수련은 틀림없이 조백광이 혈도마인을 찾은 이유를 궁금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칫 마교를 장악하려는 조백광에겐 크나큰 변수가 생길 수 있었다.
 조백광의 두 눈이 금방이라도 핏물이 흐를 것처럼 붉게 타올랐다. 바로 적안마공의 마기가 뿜어져 나올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보고를 올리던 나찰도는 그렇지 않아도 창백한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변해갔다.
 반대로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인식한 조백광은 차분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하게 보고하라.”
 “한 달 전, 누군가 지옥살수대의 문서를 들쳐본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 당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양수련은 정탐하고 온 수하의 보고를 듣고 조백광이 뭔가 음모를 꾸민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조백광의 비밀문서가 보관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지옥살수대의 문서 보관함을 뒤지게 했던 것이다.
 헌대 뒤늦게 그 사실이 탄로 난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냐? 문서는 분명 지옥살수대의 지하 비밀 회의실에 있을 텐데. 우리의 심장부에 들어왔는데도 몰랐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대체 네놈은 무엇을 하고 있었더란 말이냐!”
 지옥살수대가 어떤 곳인가. 마교의 5개 무력단체 중에서도 교주의 지옥염왕대를 제외하곤 가장 강력한 마교의 무력단체 였다. 또한 조백광이 가장 신임하는 단체이기도 했다.
 그런 단체의 수장이란 놈이 누군가 침입을 했는데도 알아내지 못했다니······.
 다시금 조백광의 몸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찰도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급히 바닥에 한쪽 무릎을 끊고 고개를 숙인 그의 신형이 부르르 떨렸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조백광에게 있어 용서란 말은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그것이 사소한 과오라 할지라도 그 결과는 언제나 참혹한 죽음이었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자가 바로 지옥살수대의 대장 나찰도였다. 언제나 그의 명을 수행한 것은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네놈이 살기를 바란단 말이냐?”
 “아닙니다!”
 “뒤늦게 누군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양수련, 고 어린 계집의 짓이란 것을 알았느냐?”
 “처음 이상하단 것을 알아낸 것은 저희 지옥살수대의 현황과 인원, 그리고 활동에 대한 문서가 들춰진 것을 발견한 때였습니다. 그래서 부교주님이 다녀가신 줄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였습니다. 심상치 않게 느껴져 급히 보고를 드리려 했지만 그 당시 부교주님이 교단 내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단 은밀히 수하들을 시켜 감시하라 명했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마교의 심장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에서 이런 일이 여러 번 발생했는데도 어떻게 범인을 잡기는커녕 알아내지도 못했단 말인가. 만일 그자가 정파의 첩자였다면······.
 나찰도는 조백광의 안색이 급격히 변하는 것을 보면서 서둘러 변명을 하듯 말을 이었다. 만일 여기서 조금이라도 멈추게 되면 정말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다행히 어제서야 놈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고문을 한 결과······.”
 “그 어린 계집이 보낸 수하였단 말이지?”
 “예!”
 “그래, 그놈은 지금 어디에 가둬 놓았느냐?”
 나찰도가 몹시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자결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부교주님!”
 “양수련을 잡을 수 있는 좋은 미끼였는데 아깝군.”
 “커억!”
 갑자기 나찰도의 입에서 검붉은 핏덩어리가 뿜어져 나왔다. 조백광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기혈이 들끓어 피를 토하고 만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아 보이는 나찰도를 향해 조백광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네놈에게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그 말과 함께 조백광이 적안마공의 진기를 거둬들였다.
 나찰도는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가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있었다.
 자세를 바로 한 나찰도는 급히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부교주님!”
 “명심해라, 마지막 기회다.”
 “존명!!”
 “양수련은 영리한 계집이다. 모르긴 해도 지금쯤 수하가 잡혔단 사실을 알고 있을 터. 분명 도망치려 할 것이다. 그 전에 너는 은밀히 양수련 그 계집을 잡아 지옥살수대의 지하 감옥에 가둔 후에 보고해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존명!”
 수하에게 지시를 내린 조백광은 집무실을 배회하며 생각에 잠겼다.
 ‘양수련. 얌전하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니 날 원망하진 말아라.’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선 이른 감이 있지만 미꾸라지 한 마리가 휘젓고 다니게 할 수는 없는 일.
 조백광은 마교를 장악하려는 자신의 야망을 펼쳐보기도 전에 일이 꼬이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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