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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최강 무사, 시골 선생되다(종료221004)

1. 탄야리에 왔다

2019.07.29 조회 6,403 추천 70


 최강 무사, 시골 선생되다 001화
 
 
 1. 탄야리에 왔다
 
 
 파란색 용달차가 멈춰 서고, 그 앞으로 누리끼리한 차단봉이 내려왔다.
 곧 차단봉 너머 철길로 새까만 기차가 요란하게 지나간다. 새까만 연기를 뿜는 열차의 모습은 옛날, 칠팔십 년대를 연상시켰다.
 아니, 오륙십 년대려나. 그보다 더 옛날일 수도 있겠다.
 “얼마나 남았냐?”
 입을 연 자는 용달차 조수석에 앉은 남자였다.
 까만 흑발에 앞머리를 살짝 옆으로 넘기고, 단정하게 깎은 옆머리와 뒷머리. 짙은 눈썹에 날카로운 눈매. 샤프하고 매력 있는 외모의 그는 나이가 어려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이름은 최준성.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형님.”
 운전석에서 웃으며 대답하는 자는 일명 도치.
 빡빡머리에 부리부리한 눈. 190㎝ 큰 키에 근육질 몸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다부지지만 체격이 그리 크지는 않은 최준성과 비교했을 때 두 배는 큰 느낌이었다.
 “하. 멀미 나.”
 최준성이 말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금 용달차가 달리고 있는 세상은 최준성이 살던 세상이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소설이나 만화에 자주 나오는 ‘이세계’다.
 다른 점이라면 원래 세계와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금 다른 것도 아니고. 애매하다고 할까.
 일단 국호는 한국이지만 황실이 존재한다. 심지어 국회도 있고 여러 부서와 장차관 등도 있지만, 최종 결정권자가 황제다.
 간단하게 일제강점기와 남북 분단이 존재하지 않았고, 황실이 존재하는 한국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세계(異世界)’기 때문에 원래 최준성이 살던 세상과는 다른 곳이다.
 심지어 주변 국가도 들어보지 못한 곳이 있을 정도다. 비슷한 부분은 굉장히 비슷하고, 다른 부분은 굉장히 다르다.
 과학의 발전 역시 애매하다. 어떤 부분은 최준성이 사는 세상과 다를 것 없으면서, 어떤 부분은 발전이 안 됐다.
 특히 집은 아직도 한옥들이 많이 남아 있다. 복장 역시 전통 한복, 약간 개량된 다른 모습의 한복, 서양식 복장 등 여러 가지가 혼용된다.
 그중에서도 원래 세상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기(氣)’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그런 힘을 칭하는 이름은 ‘오라(悟羅)’.
 최준성이 살던 세계의 무협지 등에 나오는 기와는 약간 다르다. 흔히 생각하는 ‘기’처럼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를 불이나 얼음, 물 등으로 바꿔 사용하기도 하는 등. 활용이 다양한 게 오히려 마법과 더 가깝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런 오라, 무기 등. 모든 것을 이용해 겨루는 것이 격무(格武)다.
 어찌 됐든 이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형님. 진짜 후회 안 해요?”
 도치가 최준성을 향해 슬쩍 물었다.
 최준성은 대답 없이 차창 밖만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후회라···.’
 최준성이 이세계에 떨어진 것은 무려 20년 전. 17살에 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져 죽을 둥 살 둥, 생지랄 하며 실력을 쌓았었다. 오로지 돌아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렇게 실력을 쌓으면 언젠가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온갖 위험한 일을 겪으며 어느 날 선황(先皇)과 만났고, 신뢰를 쌓았다. 그렇게 해서 황실 호위부대 ‘운위대’의 대장까지 올랐다.
 20년. 이제 최준성은 원래 세계에서 산 세월보다 이세계에서 산 세월이 더 길게 됐다. 너무 시간이 흘러 원래 세계로 돌아가도 문제일 지경이었다.
 돌아간다는 목표가 사라지자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그러던 중 황제가 죽었고, 최준성은 황실 호위부대 ‘운위대’ 대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12년 전부터 알고 지낸 동생 도치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런데 너는 왜 이런 시골까지 내려와서 카페를 하냐?”
 “얼마 안 살았지만 나름 제 고향입니다. 그리고 시골은 카페 있으면 안 돼요?”
 도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최준성과 도치가 만난 것은 12년 전. 그때 도치는 수도 한양시의 건달이었다.
 최준성이 국가 격무(格武)시험에 나가려 한양시로 왔을 때. 도치와 시비가 붙었고 단번에 처리했다.
 그 이후 도치는 최준성을 형님으로 모셨고, 필요할 때마다 자기 패거리를 이용해 도와줬었다.
 이번에 최준성이 호위 대장직을 버리고 낙향한다고 하자 도치가 자신이 사는 곳을 추천했고, 지금 그곳으로 짐을 싣고 향하는 중이었다.
 덜커덩.
 울퉁불퉁한 길 때문에 차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병풍 같은 산. 반대편 차창 너머 비단처럼 흐르는 강물.
 끝없을 것 같던 논을 지나 드디어 멀리 집들이 보였다.
 “이제 곧 도착입니다.”
 도치가 콧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용달차는 덜덜 떨며 천천히 마을 표지석을 지나갔다.
 
 [탄야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
 
 차는 작은 실개천 위의 돌다리 위를 지나고 나서야 멈췄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최준성은 팔과 허리를 쭉 폈다.
 “어유. 한양에서 몇 시간을 온 거야.”
 “네 시간 반밖에 안 걸렸거든요.”
 도치가 차 뒤로 가 짐을 내리며 말했다.
 최준성도 그쪽으로 가 같이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차가 서 있는 곳은 한 집 앞이었다. 초록색 낡은 대문과 키 정도 높이의 돌담. 안에는 작은 마당과 적당한 크기의 단층 주택이 있었다. 지붕은 기와지만 그 아래는 모두 벽돌로 된 집이었다.
 최준성과 도치는 짐을 마당에 옮겨 놓았다.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해봤자 책 스무 권 정도와 책장, 책상, 의자 정도. 나머지는 이불, 옷가지 등 생필품이었다.
 아, 그리고 특별한 게 있었는데. 바로 호위대장으로 있을 때 입던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군복, 그리고 허리에 차는 환도였다.
 물론 이 군복은 평소에 입지 않는 정복 비슷한 개념이었다. 다만 환도는 늘 차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 밖에 군에 있으며 받은 훈장과 모은 무기 네다섯 가지 정도.
 “아까 그 돌다리 있죠? 거기만 건너면 바로 회관 근처, 중심가예요. 그러니까 그다지 불편한 건 없으실 거예요. 지난번에 와서 보셨으면서.”
 도치가 말하며 주섬주섬 품에서 열쇠를 꺼냈다.
 최준성은 동네 중심가라는 말에 아까 차를 타고 오던 길을 떠올려봤다.
 분명 다리를 건너기 전 나름 깔끔한 건물들, 가게 몇 개가 있었다. 도시는커녕 시골 읍내 정도도 안 되지만, 이런 시골치고는 제법 번화해 보이는 곳이었다.
 그래봤자 한 여섯 블록 정도밖에 안 돼 보였지만 말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바빠서 집만 보고 바로 한양으로 올라갔잖아.”
 최준성이 시큰둥하게 말하는데 도치는 꺼낸 열쇠를 건넸다.
 “알겠으니까 얼른 문부터 여세요. 집주인이 여셔야죠.”
 도치가 산도적처럼 커다란 입을 씩 웃어 보였다.
 최준성은 열쇠를 받아 현관으로 걸어갔다.
 막연히 시골 가서 평온하게 살 생각이었고, 마침 도치가 이곳을 추천한 것이었다. 구체적인 계획 따위는 없었다.
 이곳 탄야리에 온 것은 집 알아보고 계약하러 내려온 것 한 번뿐. 다만 산과 강 사이의 마을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었다. 여유롭고, 한가해 보였다.
 달칵. 끼익.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낡은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거 구리스 칠이라도 좀 해놓지 그랬냐.”
 최준성이 불만스럽게 말하며 문을 몇 번 좌우로 움직였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최준성은 현관에 멈춰 섰다.
 도치가 타박에 입을 삐죽 내밀며 그런 최준성에게 다가왔다.
 “뭐해요. 안 들어가고.”
 도치가 말하며 현관에 들어섰을 때였다.
 “너희 뭐야.”
 최준성이 날카로운 눈을 하며 말했다.
 그의 앞. 그러니까 텅 빈 집 거실 한가운데 있는 것은 사람이었다. 그것도 열댓 살 정도 돼 보이는 어린아이 세 명.
 아이들은 멍하니 최준성과 도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 도치가 아이들 쪽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 뭐야! 여기 누가 들어와 있으래!”
 도치는 그냥 말하는 것이었으나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소리치는 것 같이 큰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은 열려 있던 거실 창문으로 후다닥 뛰어나갔다.
 최준성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걸어 들어가 창문을 닫았다.
 “동네 애들이야?”
 “하하. 네. 여기가 오래 비어 있어서 애들이 아지트로 쓴 모양이네요.”
 “난 쟤들보다 큰 애들 담당이지?”
 “네, 중고등부예요. 아, 짐 정리하고 교장 선생님 뵙고 오시죠.”
 “짐 정리하느라 정신없고 피곤할 텐데 뭘 굳이 오늘 만나. 내일 만나면 되지.”
 최준성이 말하며 다시 집 밖으로 나갔다. 도치 역시 얼른 나가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도치가 이 동네를 추천하고, 집까지 알아봐 줬을 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바로 이 탄야리에 있는 유일한 학교. 탄야 학교의 선생이 돼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공부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격무 수업 교사가 돼 달라고 한 것이었다.
 무려 최정예인 운위대 대장으로 있었던 최준성이다. 격무 교원 자격도 갖추고 있었다.
 들어보니 교장이 최준성의 이사 소식을 듣고 도치에게 부탁한 모양이었다.
 시골에서 무료할 것으로 생각했기에 최준성은 이를 수락했다.
 “여기는 사람 몇이나 사냐?”
 “한 백 명 정도 사나.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카페가 장사가 돼?”
 “관광객이 많이 오거든요.”
 “관광객?”
 최준성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여기 앞에 흐르는 강 보셨죠. 동문강이라고 하는데, 낚시가 기가 막혀요. 거기다 여기 근처에 형님도 아시죠. 송 영감이라고 그 유명한 대장장이. 그 양반 집이 근처예요.”
 일명 송 영감. 유명한 명검 등. 이름난 무기들을 만들기로 유명한 자였다.
 지금은 제자들과 함께 여러 무기는 물론, 식칼까지 만들어 무기 판매 회사에 납품 중이었다.
 그의 옛날 작업실이 현재 ‘무기 박물관’으로 조성돼 이 근방의 관광 명소 중 한 곳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는 중심지나 강이랑도 거리가 좀 있고, 그 송 영감 있는 데랑도 머니까 시끄럽지는 않을 거예요.”
 도치가 최준성의 표정을 살피더니 얼른 말했다.
 조용하게 살기 위해 왔는데 만약 관광객이 버글버글한 곳이라면, 분노할 것이 분명했다.
 “시끄럽기만 해봐.”
 “그럼요. 하하···.”
 도치가 어색하게 웃으며 짐을 날랐다.
 
 * * *
 
 짐을 다 옮겨 놓았을 때, 이미 해는 저물어 있었다.
 최준성과 도치는 거실 바닥에 축 늘어져 누워 있었다.
 “얼른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까 회관 근처가 중심가라고 했지. 거기 식당도 있냐?”
 관광객들이 온다면 식당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었다.
 “네. 딱 하나 있어요.”
 “하나밖에 없어?”
 “네. 관광객이 많은 것도 아니고. 동네에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하하···.”
 도치가 멋쩍게 웃는데 갑자기 진동음이 들려왔다.
 최준성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했다.
 이세계의 휴대전화는 스마트폰이 아닌 폴더폰이었다. 그것도 전화와 문자만 되는, 최준성이 있던 세상과는 비교도 안 되는 구식 휴대전화였다.
 최준성의 휴대전화는 그대로였다. 도치도 얼른 휴대전화를 꺼냈다.
 지이잉.
 역시 도치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도치는 휴대전화에 찍힌 이름을 확인하더니 황급히 받았다.
 “예. 교장 선생님. 예, 지금 막 이사 끝났습니다. 이거 짐 옮기느라 전화를 못 받았네요. 예.”
 도치가 안절부절못하며 통화를 이어갔다.
 “아, 예. 저녁이요. 하하. 저녁···.”
 도치가 슬쩍 최준성 눈치를 봤다.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최준성이 교장을 내일 만나겠다 한 것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최준성은 표정 없이 창문 밖을 보고 앉아 있었다.
 “아, 예. 밥··· 먹긴 먹어야죠.”
 도치는 교장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계속 최준성 눈치를 봤다.
 “예. 그럼 제가 한번 말해볼게요. 예. 연락 드리겠습니다.”
 통화 종료 후 도치가 해맑게 웃으며 최준성을 바라봤다.
 “형님. 교장 선생님이 같이 밥 먹자는데. 사주신대요.”
 말하는 도치를, 최준성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댓글(8)

탄콩    
작가님 건필하세요!
2019.07.30 03:25
Hogo    
전에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쓰시는건가?
2019.07.30 06:05
또비선비    
최강무사 어쩌고 옛날에 타 플랫폼 간다고 했었나 잘기억이 안나는데 본 것 같긴 하네
2019.08.01 02:40
g8************    
이거 카카오페이지에서 독점 연재 중인데 여기서 연재해도 되는건가요?
2019.08.01 12:17
교주님이다    
리메이크인듯...
2019.08.01 14:11
가고라    
다시쓰시나요??
2019.08.01 21:57
하무린    
잘보고 가요^^
2019.08.04 15:04
클라루스    
카페가 장사 될 정도로 관광객이 온다해놓고 또 몇문장 뒤에는 관광객도 없어서 식당이 하나....
2019.09.0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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