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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딩 1화

2019.08.02 조회 325 추천 2


 프롤로그
 
 
 
 
 
 사랑하는 여인이 죽었다.
 그래서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난 사형수가 되었다.
 
 
 사형수의 거래(1)
 
 
 
 
 그르릉!
 철컹!
 결국 갇히고 말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먹빛 쇠막대기들이 깨부술 수 없는 창살이 되어 세상과 나를 격리시키고 말았다.
 내 인생은 이것으로 끝장이다.
 “어이, 2037! 사형선고··· 축하하마. 킥킥킥.”
 철창 밖에서 느글거리는 한 간수의 말이 들려왔다. 나에게 칼이 있었다면, 아니, 무엇이든 날카로운 것이 있었다면 저 간수 놈의 목부터 그어 버렸을 것이다.
 이미 다섯 놈의 목줄을 따버린 내가 한 놈쯤 더 죽인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으니까.
 “그따위 썩은 동태눈깔, 확! 후벼 파기 전에 눈 깔아라. 이 살인마 새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양손에 수갑을 채워 놓고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쇠창살 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날 두려워하는거야? 큭큭, 웃기는 세상이야. 간수도 웃기고, 세상도 웃겨. 온통 웃기는 것들로 가득하군.
 “2037! 너 같은 살인마는 하루라도 빨리 사라져 주는 게 만인의 행복을 위하는 길이다. 빠른 시간 안에 네놈이 교수대에 올라가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마. 이 가증스러운 새끼야!”
 따다다당!
 간수는 쇠로 만든 교도봉으로 쇠창살을 두드리며 사라져 갔다.
 나는 개 같은 놈들을 죽인 것뿐인데, 간수는 사람을 다섯이나 죽였다고 날 아예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
 살인을 했으니 당연한 거겠지, 큭큭큭. 하지만 난 조금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왜냐고? 내가 죽인 건 사람이 아니고 짐승일 뿐이니까. 그것도 죽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더러운 짐승이니까.
 더러운 건 놈들뿐만이 아니었다. 내손에 명줄을 달리한 그놈들의 부모도 다를 것이 없었다. 저 간수 놈을 보면 뻔하지 않나?
 눈과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저지른 살인사건에 대해 충분히 내용파악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간수는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분명 그 새끼들의 부모가 이 교도소에까지 돈을 처먹였겠지? 그래, 어디 마음대로 해 보라고. 나도 이젠 살 생각 따윈 버렸으니까. 아니, 복수도 했으니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과연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1년? 아니면 3년? 사형 집행까지 남은 시간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차라리 형이 빨리 집행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그녀를 빨리 만날 수 있겠지?
 고휘경.
 내 목숨보다 사랑했던 그녀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한 번쯤은 만나게 해 주겠지. 그곳이 지옥이라도 말이야!
 
 ***
 
 [신지운. 26세. 모든 신체리듬이 최민호와 동일. 영혼 NPC 대상자로 최종 선정.]
 [2025년 6월 XX일. 신지운 살인죄로 교수형 선고.]
 [2025년 6월 XX일. 신지운 수감번호 2037. 미결수로 서울 구치소 수감.]
 [2025년 6월 XX일. 신지운 현재 사형 집행 대기. 희생자 유가족들의 원성 때문에 형 집행일이 당겨질 가능성이 높음. 희생자 중 김재헌이 국회의원의 아들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서둘러 접촉을 시도할 필요가 있음. 영혼 NPC화할 것인지에 대해 회신 요망.]
 
 띠링!
 연달아 도착하는 메시지를 읽던 한 남자, 그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테블릿의 전원을 껐다. 가냘프지만 곳곳에 굳은살이 잔뜩 박여 있는 손의 주인은 전원이 꺼진 테블릿을 검은색 양복의 속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본사로 간다.”
 부우웅!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검은색 세단이 왕복 8차로의 넓은 도로에서 U턴을 하기 시작했다.
 차창마저 검게 선팅되어 있어 내부는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연동 속도 60킬로미터를 유지하며 달려가는 검은색 세단이 향하는 곳, 그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대그룹 ‘진화’의 본사였다.
 
 ***
 
 “이거 뭐 하는 새끼야?”
 “새로 들어온 최고수인가 본데? 저 빨간 수번을 봐. 허! 젊은 놈이 무슨 짓을 했기에······.”
 “어? 저 새끼, 얼마 전에 TV에서 나오던 그 새끼네? 다섯 명인가? 암튼 무슨 국회의원의 아들을 비롯해서 꽤 이름난 대그룹의 아들 녀석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그놈! 그것도 그냥 죽인 게 아니라 거의 인체해부 수준이었다고 하던데······.”
 쨍쨍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간만에 광합성이라도 할 생각이었던 나는 수감 이후 처음으로 감방 밖을 나와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철통같은 간수들의 감시 속에서 건물 밖으로 나설 수 있는 내게 주어지는 건 고작 나무의자 하나뿐.
 비교적 어린 나이인 내가 사형수를 나타내는 붉은 수감번호표를 달고 있는 것이 신기해 보였는지 몇몇 죄수들이 내 주위로 파리 떼처럼 꼬여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재수 없는 새끼들! 내가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되는 줄 아나? 신기해하는 그런 표정 따윈 집어치우라고!
 “이야, 이 새끼 봐라! 눈에 독기가 서려 있는데? 그래도 최고수라고 깡은 있어 보이네? 그런데 감히 나를 상대로 야코죽이는(기세를 꺾다) 거냐? 좆만 한 새끼가! 어이! 범털선생(돈 많고 지식이 있는 죄수)! 띵 좀 봐. 폭방(폭력관련 죄수)의 빵장을 야린 대가를 좀 감당시켜야 쓰것구만?”
 “관둬. 괜히 최고수 건드렸다가는 먹방(징벌방)에서 보름은 살아야할 거야. 어차피 갈 놈인데 가만히 두자고.”
 체격이 좋아 보이는 죄수와 체구는 작지만 눈빛이 날카로운 한 죄수가 실랑이를 하는 동안 가장 샌님 같은 죄수 하나는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후후후, 내 눈빛을 마음에 들어 하는 친구들이 여기 또 있군. 어디 그 대가라는 걸 한번 치르게 해 보시지?
 “저 새끼 눈 좀 보라고! 날 야리잖아! 형 집행이 있기 전에 내손에 먼저 죽고 싶냐? 맛 좀 보여 줘? 교수형 당하기 전에 내 손에 목 졸려 죽는 쾌감을 느끼게 해 줄까? 앙!”
 “학수! 말조심해! 최고수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잘하면 둘이 싸우겠다, 큭큭! 여기까지 와서도 재미있는 구경을 하는구나. 마음대로 해 보시라고. 난 상관없으니까.
 나는 두 명의 죄수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그리 넓지 않은 운동장에, 바닥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넘어지면 다치기 딱 좋은 상태였다.
 어느 멍청한 놈인지는 몰라도 뛰어놀라고 만든 운동장에 콘크리트를 깔아 놓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죄수들은 좋다고 공을 차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확실히 죄수들도 사람은 사람이었다.
 저 작은 공을 튀기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 뭐가 그리 재미있다고······.
 뚜벅, 뚜벅!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죄수인가? 오늘따라 시비를 거는 녀석들이 왜 이리 많아?
 “2037. 면회다.”
 간수였나? 그런데 면회라니··· 사형수에게도 면회가 허용되었던가? 하지만 날 찾아올 인간은 하나도 없을 텐데?
 왠지 면회라는 단어가 굉장히 생소하게 다가왔다. 더군다나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이상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면회 따윈 거절하고 싶은 게 내 진심이었다.
 “일없어요. 난 여기서 광합성에 충실할 테니 신경 끄고 돌아가라고 전해 줘요.”
 나는 죄수들에게 동일하게 보급되는 흰색 운동화를 두 발로 툭툭 털어 내며 면회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곁에 선 간수는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너 같은 녀석에게 거절할 자격은 없다. 따라와!”
 턱!
 간수의 손이 내 뒷덜미를 거칠게 잡아챘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더러워졌다. 전에 내 뒷덜미를 잡았던 놈, 그놈의 배때기를 해부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팍!
 “치워요! 내 발로 갑니다.”
 나는 수갑이 채워진 손으로 간수의 손을 뿌리쳤다. 간수도 더 이상은 괴롭힐 생각이 없는지 교도봉으로 내 허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시간 낭비 말고 빨리 가!”
 “개새끼.”
 “뭐야?”
 터벅.
 나는 간수의 고함을 그대로 무시한 채 걸어갔다. 사형수들을 구타하는 것은 간수들로서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내가 얻어맞을 일은 절대 없었다. 같은 죄수들끼리면 몰라도······.
 
 ***
 
 “어떤가? 내 제안이··· 구미가 당기지 않나?”
 3미터 위에 설치된 창문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네모난 책상 하나. 내 두 손은 의자 뒤로 넘겨져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발도 의자 다리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책상 정 중앙을 네모난 형태로 내리쬐는 햇빛. 그 위로 둥실거리는 뿌연 먼지가 너무도 선명히 보인다.
 내가 숨을 쉴 때마다 저 먼지들이 목구멍을 통해 허파로 들어가겠지? 생각만 해도 목이 막혀 왔다.
 “콜록! 콜록!”
 “하하! 대답을 회피하는 방법치고는 상당히 어색하군. 아무튼 잘 생각해보고 답을 주게. 아, 지금이라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다음에 만나는 자리에선 확실하게 답을 주어야 하네.”
 헛소리! 지금 저 작자의 말은 헛소리가 분명했다. 가상현실? 실제와 똑같다고? 나보고 지금 그걸 믿으라는 거야?
 내 나이 스물여섯이다. 지금까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PC방이라는 곳을 수차례 들락거리며 여러 가지 게임을 경험해 봤다.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게임들도 많았지만, 지금 저자가 꺼내놓은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말은 황당 그 자체였다.
 그런데 저 작자,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반짝이는 은테 안경을 쓴 ‘임상진’이라는 30대 사내는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너무도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나보고, 이 사형수더러 그 가상현실 게임의 테스터가 돼 달라고? 웃기지도 않는군.
 “하하! 하하하!”
 열 평 남짓한 면회실의 넓은 방 안이 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문 앞에 서 있는 간수는 지금 이자의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설마 진짜라고 믿는 건가? 아니면 벌써 돈으로 매수당한 건가? 들어도 못들은 척해 달라고 말이야.
 면회실 한쪽 구석에 감시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음성을 제외한 화면 녹음만 가능했기에 임상진의 헛소리는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어쩌면 뒷돈을 주고 면회실 감시를 중지하라고 했을 수도 있겠는데?
 “웃는 건 좋은데 내 말을 흘려듣지는 말게. 내가 한 말은 사실이네.”
 “큭큭큭! 좋네요, 아주 좋다고요. 그 가상현실 게임인지 뭔지 하는 것의 테스터가 되어 준다면 나에게 새로운 삶을 보장한다 이건데··· 이거 어쩝니까? 내가 죽여 버린 녀석들은 너무 빵빵한 배
 경을 가지고 있어서요. 하하하! 국회의원 아들도 있다던데, 이런 날 살릴 수 있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쳐들었다. 그리고 은테 안경을 살짝 올리는 임상진을 바라봤다. 창백한 얼굴에 운동이라고는 전혀 한 적이 없을 것 같은 둥글둥글한 몸매의 임상진은 내 질문이 마음에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 대통령이 온다 해도 자네를 살릴 순 없어.”
 역시 그랬다. 그런 엄청난 배경을 가진 자들이 자기 자식을 죽인 살인자를 살려 둘 리 없었다.
 “하지만 살아가게 만들 수는 있지.”
 뭐야, 이 사람?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건가? 살릴 순 없지만 살아가게 만들 수는 있다고?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끄르륵!
 임상진이 책상 가까이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그는 두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양손을 깍지 낀 채 턱을 받쳤다.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가상현실 게임은 사람의 뇌파와 신체리듬, 그 외의 모든 개인별 특색을 데이터화할 수 있지. 그것이 가상현실의 기초가 되는 거고··· 그러다 우린 우연한 기회를 맞이했고 멋지게 성공할 수 있었네. 데이터화된 인간의 영혼을 컴퓨터 속에 담는 것을 말이야.”
 임상진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컴퓨터 속에 영혼을 담아?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사람의 영혼을 담는다는 거지?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임상진의 말이 충격이었을까? 건들건들한 내 말투가 나도 모르는 사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방법까지 알려 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야. 한동안 게임의 테스터가 되어 줄 것을 약속해 주면 자네가 게임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지. 들어본 적이 있을는지 모르겠네만··· NPC가 된다면 가능한 이야기야. 자네가 바로 그 NPC가 된다면 말이지.”
 NPC? 하하! 이젠 더 이상 놀랄 기력도 없었다. 아직 학교를 들어가지 않은 어린 아이서부터 나이많은 할아버지들까지 이 NPC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있기라도 할까?
 게임 속에 등장하는 도우미, 또는 이런저런 정보를 게임 유저에게 알려 주거나 스토리가 진행될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임 속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 그것이 바로 NPC였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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