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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2019.08.07 조회 2,711 추천 31


 악당들의 빌런 1권
 
 목차
 
 프롤로그
 랍스타(?)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래서 헌터가 싫다
 얼마까지 가능해요?
 정말 각성자가 돼버렸다
 테스트
 무슨 일이야
 빨리 가줘요
 우연이네. 나도 그런데
 사람을 패니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기억해 두죠
 사고가 아니다
 개화
 소속을 정하다
 샌드위치 아니었습니까?
 첫 진입
 이 사람 어디 갔나 했더니
 사격 연습
 시험 끝나고 보자
 자연스럽게 스무디만 먹고 빠져나왔다
 신고식
 이곳에 온 이유
 곧 갑니다
 도발은 가운뎃손가락으로
 
 
 
 
 
 프롤로그
 
 
 
 
 
 더위가 일찍 찾아온 6월, 신림역에서 때 아닌 소동이 벌어졌다.
 “꺄아아악!”
 “미친!”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다. 남자의 어깨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여자는 하이힐을 손을 쥔 채 맨발로 군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다 비켜! 시발!”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식칼을 휘두른다. 페인트가 묻은 바지를 입고 국방색 팔 토시를 한 사내가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소주를 들이킨다. 턱을 타고 흐르는 술을 소매로 닦고 충혈이 된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본다.
 
 - 챙그랑!
 
 “뭘 꼬라봐!”
 건물 안에서 소란을 지켜보던 사람에게 소주병을 던진다. 그 모습에 움찔, 훔쳐보던 사람이 창문 옆으로 숨는다.
 길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그를 피해 구석으로 모여 웅성거렸다. 당장이라도 남자가 달려들면 칼부림이 날 텐데도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을 뿐 몸을 숨기진 않는다.
 참으로 안전 불감증의 나라다웠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불렀겠지. 하여간 경찰 놈들 일을 안 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던 커플이 쑥덕인다.
 “그래! 나라가 일을 안 해! 꼭 지랄을 해야 말을 듣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사내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커플을 향해 칼을 치켜세운다.
 눈이 맛이 갔다. 그가 재차 사람들을 향해 달려든다. 그제야 구경하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피한다.
 그 모습을 보며 사내는 웃었다.
 보아라! 아무도 날 무시할 수 없다!
 뭐라도 된 듯한 기분에 흥분한 사내는 곧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을 헤치며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크지는 않지만 다부진 체격. 전역한지 4개월이 지나 투블럭이라고 우길 만한 머리를 한 한혁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공책으로 부채질을 한다. 사내가 든 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거침없이 발을 옮긴다.
 ‘가뜩이나 기분 x같아 죽겠는데.’
 “너, 넌 뭐야!”
 “학생이다, 이 새끼야.”
 예상치 못한 도발에 사내가 눈을 깜빡인다. 그것도 잠시, 자존심이 구겨진 사내가 칼을 휘두르며 달려든다. 멀리서 작게 비명 소리가 들린다.
 쯧, 혀를 찬 한혁이 부채질하던 공책을 말아 쥔다.
 사내의 공격은 어설펐지만 칼은 진짜다. 스치더라도 살갗은 찢어질 터.
 보통이라면 겁부터 집어먹겠지만 한혁은 달랐다.
 차분히 백스텝을 하며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난다. 칼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모습이 이어진다.
 조급함에 남자가 더 빨리 칼을 휘저었다.
 ‘저렇게 휘둘러봤자 팔만 아프지.’
 거리를 내주지 않은 채 스쳐 가는 칼을 공책으로 툭툭 건든다. 그 행동이 사내의 성질을 더욱 긁었지만 마음과 다르게 움직임은 점점 느려졌다.
 의외로 칼을 계속 휘두르는 건 힘든 일. 한혁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내가 거친 숨을 가다듬으며 칼질을 멈춘다.
 “하, 하아. 너, 이 새끼!”
 그 순간 한혁이 몸을 던졌다. 온 힘을 다해 공책으로 식칼을 쥔 손을 후려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칼이 날아가지는 않았다.
 그 정도는 예상했다. 한혁이 튕겨나간 사내의 팔목을 잡는 동시에 비틀어 당긴다. 왼발을 축으로 비어버린 겨드랑이에 옆차기를 날린다.
 “억!”
 충격이 고스란히 간으로 전해진다. 사내가 헛구역질을 하며 주저앉는다. 그러면서도 식칼을 놓지 않는다.
 “놔! 안 놔?”
 쉬지 않고 발길질을 한다. 사내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반대 팔로 막으면 머리를, 머리를 막으면 다시 늑골을 걷어차기를 수차례.
 으적. 뒤꿈치로 늑골이 부러지는 감촉이 전해졌다.
 “으아아악!”
 
 - 짤그랑.
 
 강렬한 통증에 사내가 칼을 놓친다. 재빨리 발로 칼을 쳐낸 한혁이 사내에게 올라탄다. 여기서부터는 일방적인 구타였다.
 예의 공책이 뒤통수에 명중할 때마다 경쾌한 타격음이 울려 퍼진다.
 “미친놈이 대낮에 말이야! 어?”
 
 - 팡! 팡! 팡!
 
 “내가 시험공부 좀 하겠다는데!”
 
 - 짝! 짜악!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잖아!”
 “아악! 죄, 죄송합니다!”
 “사지 멀쩡하면 일을 하던가, 일이 없으면 집에서 딸이나 치던가!”
 
 - 콰직!
 
 공책이 손바닥이 되고 손바닥이 팔꿈치가 됐다. 무차별한 구타에 사내의 귀와 얼굴이 터질 것처럼 벌게진다. 팔로 머리를 감싸지만 빈틈만 귀신같이 찾아서 때린다. 보고 있자니 사내가 불쌍해질 지경이다.
 군중에 섞여 있던 학생 하나가 용기를 내 한혁의 옆으로 다가간다.
 “저, 저기. 이제 그만하시는 게.”
 “뭐! 할 거 없으면 경찰이나 불러!”
 “넵!”
 한혁의 살벌한 분위기에 학생이 부리나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이미 신고가 됐는지 혼잡한 길을 뚫으며 경찰차가 들어온다. 급하게 문을 박차고 나온 경찰 둘이 시선을 맞추더니 한혁의 팔을 꺾으며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움직이지 마!”
 “잠깐! 나 아니야! 아니라고!”
 
 * * *
 
 경찰서 안. 한혁과 칼부림의 원인인 사내가 의자에 앉아 조서를 쓰고 있다.
 컴퓨터를 두드리던 경찰이 사내를 쳐다본다.
 고막이 터졌는지 귀를 타고 흘러내린 피는 딱지가 되어 굳었고 얼굴은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로 부었다. 임시방편으로 연고를 바르긴 했지만 그다지 효과가 있을 거 같지는 않다.
 반면 한혁은 이마에 반창고 하나를 붙였을 뿐 생체기 하나 없다. 그마저도 경찰들이 제압하면서 생긴 상처다.
 겉만 봐서는 한혁이 가해자였지만 실상은 칼부림을 막은 용감한 시민이었다. 용감한 시민은 맞는데. 경찰이 머리를 긁적인다.
 “에, 그러니까 이름이 최한혁, 최중대생이고 나이가 스물다섯.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칼 든 사람을 제압하셨다고요?”
 “그렇다고요. 거기서 여친 만나기로 해서 기다리는 동안, 아 씨, 소란 피운 건 저 사람인데 왜 저한테 그래요.”
 경찰이 조용히 지퍼백을 들어 올린다. 증거물이라고 가져온 식칼과 공책이 흔들린다.
 “믿기가 힘들어서 그렇죠. 각성자도 아니라면서요.”
 “cctv 봐 봐요, 그럼. 저 가야 된다고요. 여친 기다린다고!”
 기분이 안 좋았던 이유. 입대 후 상병이 되던 해 사귄 여자친구와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 탓이었다.
 
 - 띠리리리링.
 
 특색 없는 벨소리가 들린다. 한혁이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낸다.
 “어, 현주야. 내가 지금.”
 
 - 없네?
 
 “어?”
 
 - 됐어. 뭘 기대해. 헤어져.
 
 “현주야? 현주야!”
 다급하게 이름을 불러보지만 전화가 끊긴 뒤였다. 다시 전화를 걸어 봐도 발신은 도중에 멈췄다.
 
 - 따릉!
 
 대신 메신저 알림음이 울렸다. 김현주. 함께 찍었던 프사가 보이지 않는다.
 
 - 다신 연락하지 마.
 
 짧고 단호한 한마디였다.
 “허허, 어허허허허허.”
 한혁이 헛웃음을 흘리며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 모습에 경찰이 조심스레 말을 건다.
 “그, 학생. 괜찮아요?”
 “어허허, 괜찮아요. 괜찮, 지 않아! 이 새끼야!”
 “으아아악!”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한혁이 옆에 앉아 있던 사내를 걷어찬다. 커피를 타고 있던 박 순경이 종이컵을 내팽개치고 뛰어온다.
 “말려! 박 순경!”
 “여기 경찰서야! 멈춰, 인마!”
 “놔! 놓으라고! 으아아아아!”
 양팔을 붙잡힌 한혁이 부르짖었다.
 
 
 랍스타(?)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신림역에서 15분가량 떨어진 골목. 일반인의 접근을 막는 폴리스라인과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다.
 저녁 시간이 지난 거리에는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총을 든 군경들의 모습에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는다.
 “무슨 일 났대?”
 남자친구와 팔짱을 끼고 가던 여학생이 물었다. 남자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십 여분 전에 받은 긴급재난 문자를 확인한다.
 “던전이 터졌다던데.”
 “진짜? 그럼 위험한 거 아니야?”
 덤덤한 표정의 남자와 달리 여자는 남자친구의 팔을 끌어당기며 빠르게 골목을 지나가려 했다. 그 모습에 남자가 피식 웃는다.
 “무성(無星)급이래.”
 “아, 뭐야. 괜히 놀랐네.”
 이제야 그녀도 남자의 태도에 납득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24년. 태동의 날. 그 날을 기점으로 세상은 변했다.
 던전이 생겨났고 그곳에는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몬스터의 맹공에 인류는 멸망의 길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각성자들의 출현으로 몬스터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4년간의 전쟁을 끝으로 사회를 안정시킬 시간을 벌었으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그들이 우습게 보는 몬스터가 있었는데, 바로 무성(無星)급 몬스터다. 등급을 매기기도 애매한 괴물. 일반인도 조심만 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다.
 
 * * *
 
 창이 내리꽂힌다. 까드득! 하고 금속음이 퍼지며 목표로 한 몬스터가 꿰뚫린다.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꼬챙이가 된 몸이 움직일 리는 만무했다. 숨이 멎으며 갑각류의 다리가 오므라진다.
 “하, 젠장. 긴급 소집이길래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이딴 놈들이라니.”
 창의 주인인 박환서가 한숨을 내쉰다. 올해로 헌터 경력 4년차. B급 헌터였다. 그의 굵은 눈썹이 찡그려진다.
 그가 잡은 몬스터는 철갑게. 고블린보다 못한 무성급 몬스터다.
 그가 창을 빼내며 죽은 몬스터를 발로 찬다. 철갑게가 날아가 쓰레기통에 박힌다.
 “이거 팔아 봤자 돈도 안 되는데. 괜히 근처에 있어 가지고 고생만 하네.”
 “그래도 어쩌겠냐. 헌터인 이상 던전이 터지면 와야지. 그래도 뭐, 대충 끝났잖아.”
 환서의 곁으로 진우가 다가온다. 환서와 같은 팀이자 친구인 그가 골목 구석을 가리킨다.
 전봇대와 쓰레기통 사이에 숨어져 있던 게이트가 빛을 잃더니 모습을 감춘다.
 게이트가 사라진다는 건 몬스터를 모두 배출했다는 뜻. 던전이 터지고 5분이 채 안 돼 왔으니 튀어나온 몬스터는 모두 잡았다고 봐야 한다.
 “하여간 정부새끼들. 던전 하나 확인을 못해요. 쯧.”
 “워워, 너무 약한 건 제대로 감지 안 될 때도 있다잖아. 그만하고 가자. 오늘은 내가 쏜다. 삼겹살에 소주 어때?”
 “좋지! 인마. 너 보러 왔다가 이렇게 됐는데 한턱 쏴야지.”
 진우의 말에 환서가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 벨트를 푸는 시늉을 하자 진우가 어색하게 웃는다. 환서가 그런 진우의 어깨를 치며 장난을 건다.
 둘은 액션 카메라에서 sd카드를 뽑아 현장 담당자에게 건네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추후 특수재난부에서 영상을 확인해 잡은 몬스터의 수에 맞춰 토벌비를 지급해 주리라.
 헌터들이 역할을 다했으니 뒤처리는 남은 자들의 몫이었다. 군경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던전이 터진지 네 시간 만에 정리가 끝났다. 막혔던 골목이 뚫리고 사람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해는 어둑어둑해진지 오래. 가로등이 켜지고 번화가는 네온사인이 반짝인다.
 
 “이제야 끝났나 보네.”
 빨대를 씹고 있던 한혁이 카페 창문을 통해 군경들이 철수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시켰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전부 마신지 오래. 얼음까지 알뜰하게 씹어 먹었다.
 테이블에 올려 둔 스마트폰을 켠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현주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차단했는지 전화도, 문자도 안 되는 상황. 한숨이 나온다.
 바닥에 내려놨던 가방을 둘러멘다.
 경찰서에서 나와 집에 갈라 했더니 던전이 터졌다며 통제돼 갈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터져도 자취방 근처에서 터지다니. 여러모로 재수 없는 날이다.
 “소주나 사갈까.”
 알코올이 당긴 한혁이 편의점에 들렀다. 불굴의 영업 정신을 가진 편의점 점장이 창고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천 원짜리 햄버거와 과일 소주 한 병.
 “3,550원입니다.”
 계산을 한 점장이 한혁을 바라본다. 한혁이 침을 삼킨다.
 그의 눈은 카운터 뒤, 담배 진열장을 보고 있다.
 수십 종류의 담배를 보던 한혁의 눈이 한 곳에 멈춘다.
 “저, 모히또 3미리 하나 주세요.”
 한혁이 입술을 깨문다. 모히또. 이제는 헤어진 여자친구가 끊으라고 말하기 전까지 폈었던 담배다.
 점장이 바코드로 담뱃값을 찍는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나 진짜로 헤어졌구나.’
 코가 시큰하다. 점장이 건네 준 봉투에서 햄버거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sns를 확인한다. 여자친구. 아니, 전여자친구의 이름을 검색해 보지만 차단당해 보이지 않는다.
 실없이 웃음이 난다.
 편의점을 나서면서 소주를 깐다. 꿀꺽. 꿀꺽.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푸하!”
 한혁이 숨을 내뱉는다. 소주 특유의 알코올 향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알싸한 취기가 조금씩 올라온다.
 “젠장, 이런 날 취해야 되는데. 친구라도 부를까.”
 연락처 목록을 확인하다 고개를 젓는다. 당장 내일이 전공 시험이다. 부르면 올 녀석도 있지만 괜히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골목길을 돌자 낡은 빌라가 보인다. 하나 빌딩. 이곳의 반지하가 한혁의 자취방이었다.
 자취방에 들어온 한혁이 신발을 대충 벗어 던진다. 센서 등이 켜져 방안을 비춘다.
 7평 남짓한 넓이. 전에 있던 사람이 썼었을 철제 테이블과 나무의자. 구석에 펼쳐 놓은 이부자리가 살림의 전부다.
 부엌 옆에 열려 있는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눈썹을 찌푸린다.
 “먼지 다 들어왔겠네.”
 한혁이 지상에 간신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창문을 닫는다.
 반지하 특성상 곰팡이가 자주 펴 나갈 때마다 문을 열어 놓았다. 문제가 있다면 땅 바로 위에 위치하다보니 바람이 부는 날이면 흙먼지가 안으로 들어온다.
 아니나 다를까 떨어진 흙덩이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 사사삭!
 
 그 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놀란 한혁이 재빠르게 방을 살핀다. 허리를 굽히고 입가에 손을 모은다.
 “야옹, 이야옹.”
 한혁이 조심스레 고양이 울음소리를 낸다. 드물지만 고양이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 울음소리에 반응한 것일까. 열려 있는 화장실에서 철갑게가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야, 엉?”
 잠시 정적.
 “으아아악! 뭐야!”
 “끼기기긱!”
 한혁이 비명을 지른다.
 철갑게도 쇠판을 긁는 듯한 울음을 토해낸다. 한혁을 위험 대상으로 받아들였는지 곧장 달려든다. 커다란 집게가 위협적이다.
 한혁이 몸을 날린다. 철갑게가 한혁이 있던 자리를 그대로 지나친다. 잔뜩 벌려졌던 집게가 다물어진다.
 
 - 퉁.
 
 “미친.”
 나무의자의 다리가 잘렸다. 균형을 잃은 의자가 넘어진다.
 철갑게가 몸을 한혁을 향해 몸을 돌린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흐른다.
 ‘잡히면 다리 잘린다.’
 무성급이라도 몬스터는 몬스터라는 건가. 그동안 무시했던 것에 반성을 하며 설렁설렁 일을 처리한 정부에 쌍욕을 퍼부었다.
 재차 철갑게가 달려든다. 빠르긴 하지만 못 피할 정도는 아니다. 스텝을 밟으며 옆으로 빠진다.
 자신의 순발력에 흡족하던 한혁이 철갑게가 향한 곳을 보고 기겁한다. 철갑게가 향한 곳은 노트북. 시험 자료와 한혁의 보물(?)들이 가득한 소중한 것이었다.
 “안 돼!”
 한혁이 슬라이딩한다. 그의 손에 철갑게의 꼬리가 잡힌다. 그대로 집어던진다. 생각보다 무게가 많이 나갔지만 평소 운동을 꾸준히 했던 한혁이 못 던질 무게는 아니었다.
 노트북을 앉은뱅이책상 위에 올려 두고 주변을 살핀다.
 ‘무기가 필요해.’
 한혁이 스탠드를 집는다. 분리수거함에 버려져 있던 걸 주워 온 것이었다.
 이거라면 집게를 피해 공격할 수 있을 터. 한혁이 스탠드를 휘두른다.
 “흐아압!”
 스탠드가 사정없이 내리꽂힌다. 전구가 깨지고 플라스틱 덮개에 금이 간다.
 충격을 받은 철갑게가 어지럽게 집게를 휘두른다.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걸로는 답이 없다.
 의도적으로 집게에 스탠드를 밀어 넣는다. 철갑게가 반사적으로 스탠드를 집는다. 집게 힘에 스탠드가 우그러들지만 끊어지진 않았다.
 한혁이 그 상태로 철갑게를 업어 쳤다.
 “끼이이익!”
 철갑게가 배를 보이며 뒤집혔다. 다섯 쌍의 다리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길쭉한 꼬리로 바닥을 쳐올려 몸을 뒤집으려 한다.
 한혁이 꼬리 부분을 밟아 고정시킨다.
 부러진 의자를 집어 든다.
 “죽어라!”
 
 - 쾅! 쾅! 콰직!
 
 의자가 박살이 날 때까지 내려친다. 철갑게가 발악을 했지만 짧은 집게발은 닿지 않았다.
 단단한 등껍질과 달리 배 부분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서서히 철갑게의 움직임이 느려진다.
 부러진 의자 조각을 입으로 추정되는 부분에 쑤셔 박는다. 경련하듯 움직이던 다리가 부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오그라든다.
 “훅, 후우. 죽은 건가?”
 한혁이 심호흡을 하며 철갑게를 살핀다. 오그라든 다리를 잡아당기고 집게발을 쳐보지만 미동이 없다.
 혹여나 죽은 척을 한 건 아닐까 눈을 찔러봤지만 마찬가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주저앉는다. 긴장감에 굳었던 몸이 풀리자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것도 보상금이 있으려나.”
 당연한 말이지만 몬스터를 잡으면 퇴치 비용이 나온다. 마정석과 부산물이 헌터의 주된 수익이었다.
 한혁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한다.
 무성급 몬스터 퇴치 비용.
 “기대한 내가 바보지.”
 국가에서 인정한 공식 퇴치 비용. 무성급 한 마리에 3만 원이었다. 하다못해 1성급 몬스터도 한 마리당 평균 10만 원을 받는 걸 생각하면 짠 금액이다.
 한혁이 철갑게를 내려다본다.
 
 - 꼬르륵.
 
 한혁의 배에서 소리가 들린다. 배를 문지른다.
 경찰서에 갔다 오는 바람에 제때 식사를 하지 못했다. 햄버거를 좀 먹기는 했지만 부족하다.
 “생긴 건 랍스타 같아 가지고.”
 한혁의 말대로 철갑게의 배는 랍스타와 비슷하게 생겼다. 투구게의 껍질을 가진 가재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꿀꺽.
 “아!”
 본인도 모르게 군침을 삼킨 한혁이 스트리밍 사이트를 연다. 예전에 봤었던 동영상이 떠올랐다. 빠르게 타자를 치자 원했던 동영상이 재생된다.
 유명하지는 않은 먹방 BJ. 그가 커다란 쟁반에 요리된 철갑게를 올려두고 있다.
 
 - 오늘은 철갑게 요리를 먹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철갑게는 몬스터죠. 많은 사람들이 먹고 탈이 나지 않냐고 물어보시는데 전혀 문제없습니다. 소수의 몬스터는 식용이 가능하거든요.
 
 BJ가 등껍질을 연다. 김이 올라오며 붉고 흰 속살이 나온다. 꽉 찬 살이 조명을 받아 빛난다. BJ가 나이프로 살덩이를 떼어내더니 큼지막하게 썬다.
 
 - 물론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거 아시나요? 오히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몬스터로 만든 음식을 별미로 여기고 있다는 걸요.
 
 그가 소스를 찍은 속살을 입에 넣는다. 눈을 감으며 맛을 음미한다.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 한 조각 더 썬다.
 
 - 와, 장난 아니네요. 랍스타보다 탱글탱글하면서 담백한 향이 올라오는데. 잠시 만요. 한 입만 더 먹고요. 아, 참고로 식용 몬스터는 반드시 국가가 인증한······.
 
 한혁이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더 볼 것도 없다. 부엌으로 철갑게를 들고 간다.
 “오늘 저녁은 랍스타다.”
 식칼로 어떻게든 손질한 철갑게를 찜통에 넣는다.
 담배를 피우며 어질러진 방을 치운다.
 그렇게 기다린 지 30분. 요리가 완성됐다. 감칠맛 나는 냄새에 침이 절로 삼켜진다. 콧노래를 부르며 냄비를 연다. 수증기와 함께 붉게 익은 껍데기가 보인다.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등껍질을 연다.
 “우오오오!”
 팔뚝만한 속살이 탱탱한 질감을 뽐낸다. 윤기가 흐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한혁은 거침없이 속살을 뜯었다. 탱탱한 살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BJ의 반응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겨자를 풀은 간장을 찍어 먹으니 그 맛이 배가 된다. 입에 술술 들어간다.
 
 - 따악!
 
 딱딱한 무언가가 씹혔다. 반사적으로 씹던 걸 삼키고 입안을 살핀다.
 “껍질이 좀 섞였, 어? 끄으으, 으아아아악!”
 다시 식사에 열중하려는데 격렬한 복통이 한혁을 덮쳤다. 수백 개의 송곳이 내장을 찌르는 고통! 독한 술을 먹은 것처럼 뱃속이 화끈하고 오금이 저려 다리가 풀린다.
 통증이라는 바늘이 혈관을 타고 흐른다. 온몸이 속부터 찢기는 격통에 몸이 떨리고 의식이 점멸한다. 식은땀이 바닥을 적신다.
 “끄으윽! 먹어도 된다며. BJ 개새······.”
 이를 갈며 버티던 한혁이 까무룩 정신을 잃는다.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망했다.”
 택시에서 내린 한혁은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11시 55분. 재무관리 시험은 12시에 시작한다. 정문에서 강의실까지 대략 15분 거리. 뛰어간다 하더라도 지각을 피하기는 어렵다.
 다른 과목이라면, 시간적으로 불이익을 받으면 그만이지만 재무관리를 가르치는 교수는 수업 시간이 지나면 문을 잠가 버리는 걸로 유명했다.
 오늘 따라 오르막길에 세워진 학교가 더욱 원망스럽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고전 짤이 떠올랐지만 머리를 흔들어 지워냈다.
 ‘이제 삼 학년이다 한혁아, 정신 차리자.’
 한혁이 더욱 세차게 계단을 박찼다. 옆에 있던 사람이 계단 서너 개씩 뛰어오르는 한혁을 보고 놀라워했지만 한혁은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어제 탈난 것 치고는 몸이 가뿐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4분 만에 경영대 건물에 들어선 한혁이 계단으로 향했다. 강의실은 3층.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바에는 계단이 빠르다. 난간을 잡아끌며 속도를 낸다.
 순식간에 3층에 도착한다. 이제 코너만 돌면 강의실! 엉망이 된 머리를 대충 쓸어내리며 코너를 돈다.
 복도에 학생 몇 명이 보인다. 한혁의 급한 모습에 다들 자리를 피해주는데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여학생이 아는 체를 한다.
 “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인데 밥 한 끼······.”
 “바빠! 비켜!”
 “힉!”
 버럭 소리를 지르자 벽으로 몸을 피한다. 그대로 지나쳐 강의실 문고리를 돌렸다.
 
 - 퉁!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다. 막 잠그려고 했는지 학생 하나가 바닥에 주저앉아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다. 갑작스레 문이 열려 넘어진 모양이다.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문을 잠근다. 시간은 12시. 늦지 않았다. 빈자리를 찾아 앉는데 중간쯤에 앉아 있던 민우가 엄지를 세운다. 한혁도 웃으며 엄지를 올린다.
 ‘고맙다. 시험 잘 봐라.’
 20분 전 민우가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기절해 있었으리라.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미리 올려놓은 답안지를 확인하고 볼펜을 꺼내 이름을 적는다. 그 사이 교수가 강의실을 돌며 시험지를 돌린다.
 한혁의 차례가 되자 탐탁지 않는 표정으로 내려다봤지만 별말 없이 시험지를 건네준다.
 시험지를 받아든 한혁이 자신의 뺨을 때린다.
 “집중하자. 공부한대로만 하면 문제없다. 후우, 후우.”
 숨을 고른 한혁이 문제지를 펼친다.
 “하!”
 웃음이 흘러나온다. 한혁이 이마를 짚으며 볼펜을 돌린다.
 잊고 있었다.
 ‘나 어제 공부 못했지.’
 시험은 금방 끝났다. 기억이 나는 것만 쓴다고 썼는데 다 쓰고 나오니 세 번째로 빨리 나왔다. 한혁은 B만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민우를 기다렸다.
 문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살펴보니 민우는 똥 씹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고 있다.
 “곧 나오겠네. 역시 내 친구야.”
 “오빠!”
 혼자 키득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부른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혁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키에 단발머리를 한 여학생이 서 있다. 다른 사람을 부른 거라고 생각해 보려 해도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누구지?’
 자신을 아는 걸 보니 같은 과 학생인 거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살짝 통통한 얼굴에 수수한 화장. 무난한 맨투맨 차림.
 모르겠다. 당장 밖에 나가도 비슷한 사람 열 명은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차라리 특징적인 뭔가가 있다면 기억이 날 수 도 있을 텐데. 아싸에 가까운 한혁의 인간관계는 그리 넓지 못했다.
 “어, 안녕.”
 “시험 끝난 거예요?”
 “대충?”
 “그게 뭐에요.”
 한혁이 대충 얼버무리자 팔을 치며 꺄르륵 웃는다. 과한 친한 척에 한혁이 슬쩍 몸을 피했다.
 “오빠, 시험 끝났으면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갈래요? 그거 썰 좀 풀어줘요.”
 “무슨 썰?”
 반문하는 사이 강의실 문이 열린다. 가방을 한쪽 어깨에 짊어진 민우가 기지개를 편다.
 “이야! 제대로 말아먹었다! 어? 둘이 뭐하냐?”
 “잠시 얘기 좀.”
 “그래? 언제 인사 나눴데? 너 아싸라서 모를 줄 알았는데.”
 “응?”
 의아함을 느낀 한혁이 그녀에게 고개를 돌린다. 그녀가 난감한 표정으로 웃는다.
 “헤헤, 안녕하세요. 35학번 김영주라고 합니다. 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화합의 장을 여는 게······ 아! 오늘은 시험 치르느라 고생하신 오빠들을 위해 예쁜 후배가 쏩니다! 학식 가시죠. 오늘 제육볶음 나와요.”
 상큼하게 양쪽 엄지를 올리고 윙크하는 모습을 보자니 두통이 밀려온다.
 “오케이, 잠깐만.”
 속사포로 말을 뱉어내는 영주에게 손바닥을 들어 올린다. 한혁이 미간을 문지른다. 영주가 불안한 표정으로 손을 꼼지락거린다. 민우가 재밌게 둘을 쳐다본다.
 한혁이 얼굴을 쓸고 입을 연다.
 “너 오늘 나 처음 본 거지?”
 “에헤헤, 그쵸?”
 “근데 왜 아는 척이야! 헷갈리게. 가!”
 한혁의 호통에 영주가 움찔한다. 그대로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신문부라는 자존심이 영주를 붙잡았다. 눈에 힘을 주며 정신을 차리더니 한혁에게 달라붙는다.
 “아이이잉! 한 번 만요! 인터뷰 한 번만 같이 해줘요. 원하시면 얼굴 모자이크 해드릴게요.”
 “어디서 앙탈이야. 가! 안 가?”
 한혁이 눈을 부라려도 눈길을 피하면서 계속 매달린다. 자기한테 들을 이야기가 뭐가 있다고. 한 가지 떠올랐다.
 김현주.
 한혁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자신의 팔에 달라붙은 영주를 거칠게 떼어내고 달리다시피 복도를 지난다. 멀리서 영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 너무 그럴 필요 없어요. 사람이 자랑도 하고 그래야죠!”
 “뭐 좋은 일이라고 자랑이야! 장난하냐!”
 “오, 대박. 한혁 오빠. 자랑할 일 아니야.”
 영주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무언가를 끄적거린다.
 한혁이 울컥했지만 그를 따라 온 민우가 어깨에 팔을 두른다.
 한혁이 한숨을 내쉰다. 신경 써서 뭐하겠냐. 이미 지나간 일인걸. 둘은 점심을 먹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과실이 있어서인지 같은 과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많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있던 학생들이 한혁을 보며 수군거린다.
 “그 사람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예전에 오티에서 본 적 있어.”
 속닥인다고 한 것 같지만 한혁의 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아, 오늘 따라 나한테 관심가지는 사람이 왜 이리 많냐.”
 “몰랐냐? 너 지금 완전 핫해.”
 “아니, 현주 걔가 이렇게 영향이 큰 사람이었어? 어떻게 헤어진 지 하루 됐는데 소문이 다 퍼져. 거기다 인터뷰? 그건 무슨 또라이적 발상이냐고.”
 민우가 눈을 끔뻑인다. 한혁의 손을 살핀다. 반지가 없다. 전역하는 날 월급 모아서 산 거라고 자랑하던 거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 헤어졌냐?”
 “뭘 자꾸 물어봐. 몰랐던 것처럼. 연애중독자 새끼들. 지들 앞가림이나 하지, 남의 연애사가 어찌 됐든 뭔 상관인데.”
 “야! 헤어졌으면 헤어졌다고 말을 해야 알지.”
 “뭐라는 거야. 소문 다 났다며.”
 “그 소문 말고. 아이고야. 이거 문명에 뒤쳐진 녀석일세.”
 민우가 잠시 기다려보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뷰튜브에 들어가더니 영상 하나를 틀어 한혁에게 내민다. 얼떨결에 핸드폰을 받아든 한혁의 눈썹이 올라간다.
 누군가 핸드폰을 찍은 동영상이 재생된다. 한 남자가 칼을 휘두르고 있다. 그 때 군중 속에서 짧은 머리를 한 학생이 공책을 들고 나선다.
 사람들이 어떡하냐며 걱정했으나 탄식은 감탄으로 바뀌었다. 공책을 든 학생이 칼 든 남자를 제압하고 두들겨 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거 나잖아.’
 5분 남짓한 영상은 금방 끝이 났다. 업로더가 한 말이 가관이었다.
 “신림역 소드마스터?”
 “그거 너 맞지? 군바리 티 팍팍 나는 게 딱 너구만. 댓글 봐 봐라. 반응이 장난 아니다.”
 민우의 말대로 굉장히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며 하나하나 살핀다.
 
 - 엌ㅋㅋㅋ 저 분 공책으로 제압한 거?
 - 소드마스터 ㅇㅈ합니다
 ┗ㄴㄴ 북마스터임
 ┗ㅋㅋㅋㅋㅋ
 - ㅁㄷㅅ) 공책으로 사람 못 죽일 거 같지?
 - 더 놀라운 건 저 사람 각성자도 아니랍니다. 순경 친구가 말해 줌 ㅇㅇ
 ┗ㄹㅇ?
 - 나 저사람 앎! 최중대 경영학과임
 - ㅊㅎㅎ?
 ······.
 
 이제야 사람들의 반응이 왜 그런지 알겠다. 과연 초상권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나라!
 최소한 모자이크라도 할 것이지. 현대 기술력은 쓸데없이 좋아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다 보인다. 덕분에 신상까지 털렸다.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한혁에게 이런 상황은 달갑지 않았다.
 한혁이 뷰튜브 페이지와 댓글, 동영상을 캡처해 자기 메신저로 보낸다. 초상권 침해로 고소미를 먹여 주리라.
 “그래서 현주랑은 왜 헤어졌는데.”
 “그냥 뭐, 성격 차이지.”
 한혁이 덤덤히 말했다. 헤어진 마당에 구구절절하게 떠들 이유는 없었다. 한순간 이 동영상이면 현주에게 카페에 없었던 이유를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연락은 차단되어 있었고 민우의 말대로 이번 일이 소문이 났다면 현주 쪽에서 먼저 연락을 줬을 거다. 적어도 걱정이란 걸 했다면 말이다.
 상투적으로라도 다친 곳은 없느냐 물어봤을 수도 있는데 아직까지 반응이 없다면 이유는 한 가지. 확실히 선을 그은 것이다.
 침울한 한혁의 표정을 본 민우가 그의 등을 두드린다.
 “새끼, 나 6시에 끝나니까 나와라. 형이 술 사준다.”
 “고맙다.”
 둘은 별다른 말없이 학생 식당으로 향했다. 학식은 영주의 말대로 제육볶음이 나왔다.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수업이 있던 민우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갈까 고민하던 한혁은 중문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PC방에서 민우를 기다릴 생각이다.
 선입금으로 이천 원을 넣고 탄산음료 하나를 계산한 한혁이 게임을 한다. 시험 기간이라고 한동안 안 하다 하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집중해서 게임을 하는데 전화가 울린다.
 “아 씨, 한타하는데.”
 킹스버거 사장님. 복학하면서 일하기 시작한 곳이다. 헤드셋을 목에 걸고 어깨로 전화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마우스를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여보세요.”
 “한혁아! 안 바쁘면 빨리 와라. 손님이 너무 많다!”
 사장의 말을 반증하듯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와 튀김기계의 알람 소리가 어지럽게 섞여 들린다.
 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6시에 민우와 만나기로 했다.
 “죄송한데 제가 약속이 있어서요.”
 “오늘 수업도 없잖아. 택시 타고 와. 택시비 줄게!”
 “택시비가 문제가 아니라요.”
 “내가 네 처지 생각해서 학교 다니는데도 뽑아 준 거 알지? 매번 이러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아무튼 기다릴 테니까 얼른 와!”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한혁이 거칠게 헤드셋을 벗는다. 협박이나 다를 바 없었다.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으니 꼬우면 나가라는 말.
 PC방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면서 민우에게 문자를 보낸다.
 
 - 사장이 나오란다. 다음에 만나자. 미안해.
 
 몬스터들의 출현으로 많은 게 변했다. 많은 건물과 도로가 파괴되고 소비 시장이 무너졌다.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밖으로 나서는 일 자체를 삼갔다.
 외식업을 포함해 매장을 가지고 하는 대부분의 사업이 문을 닫아야 했다. 설사 손님이 오더라도 운송업 또한 마비되어 식료품과 물건을 제때 받기 힘들었다.
 위기가 사람을 바꾼 것일까. 4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 허구한 날 욕을 먹던 정부가 괜찮은 정책을 연달아 내놓았다.
 그 중 하나가 일상으로의 복귀. 태동의 날 이전,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가까웠던 사업들을 국가에서 지원해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패스트푸드, 치킨, 중국집, PC방, 찜질방과 같이 평소에 가고 즐겼던 것들이 운영되자 일상은 빠르게 회복됐다.
 물론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분야는 회복이 더뎠고 지원받은 곳 또한 제한적이었기에 사람이 몰렸다.
 같은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할 곳도 부족했기에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항상 있었다. 한 마디로 사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잘라도 금방 새로운 사람을 뽑을 수 있다는 말.
 한혁이 짜증을 내면서도 갈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어찌됐든 돈은 필요하니까.
 속으로 사장 욕을 하는 사이 킹스버거 앞에 도착했다. 전면 유리 너머로 수많은 손님과 부지런히 움직이는 알바들이 보인다.
 계산을 하고 택시에서 내린다. 한숨이 나온다.
 “확 망해버려라.”
 
 - 콰앙!
 
 한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킹스버거의 옆면이 무너진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벽의 파편이 한혁의 발치까지 굴러온다.
 불길한 핏빛을 머금은 소용돌이. 게이트가 나타났다.
 
 
 이래서 헌터가 싫다
 
 
 
 
 
 게이트를 본 한혁의 몸이 굳었다. 소용돌이치는 게이트. 그 의미는 분명했다. 곧 몬스터가 쏟아질 거라는 의미!
 이렇게 빨리 터지는 던전은 하나뿐이다.
 “이동 던전.”
 궤멸될 위기에 빠지면 무작위로 위치를 옮기는 던전이다. 특이사항은 이동과 동시에 몬스터를 배출한다는 것.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고 한혁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택시를 타고 도망간다면!
 
 - 끼이익! 부릉!
 
 “야! 인정머리 없는 새끼야!”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한혁뿐만이 아니었다. 멀어지는 택시를 향해 쌍욕을 퍼붓는데 괴성이 귀를 때렸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몬스터가 출현했다.
 재빠른 이들은 문과 깨진 창문을 통해 탈출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물에 고립됐다. 피투성이의 고블린들이 조악한 무기를 내지르며 괴성을 지른다.
 그 중 하나가 한혁과 눈이 마주친다. 잘린 왼팔에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눈빛 하나는 살벌했다.
 “키아아아아!”
 고블린이 오른손으로 쥔 창을 옆구리에 끼고 한혁에게 달려든다. 심장이 뛴다. 당장이라 도망가라고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지만 등을 돌리지 않았다.
 한순간이라도 따라잡히면 그대로 당한다. 다행히 더 빠르더라도 고블린이 창을 집어던진다면? 그대로 꼬치행이다.
 맨손이라도 정면에서 붙는 게 생존 확률이 크다. 다행히 적은 외팔에다 피를 흘리고 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크아아압!”
 기세에서부터 질 수는 없는 법. 기합을 내지른 한혁이 고블린을 향해 돌진했다. 눈은 정확히 고블린의 손을 향했다.
 ‘삼, 이, 일. 지금!’
 속으로 숫자를 센 한혁이 곧장 옆으로 구른다. 그와 동시에 한혁이 있던 자리에 창이 꽂힌다.
 한 손뿐인 고블린이 달려오면서 할 수 있는 공격은 찌르기 뿐. 순간적으로 팔을 뻗어 리치를 늘릴 수 있다는 것까지 계산된 행동이었다.
 “죽어!”
 “끼에에엑!”
 벌떡 일어난 한혁이 손을 뻗는다. 고블린이 반사적으로 창을 휘두르지만 근접에서 들어오는 창은 약간 아픈 막대기일 뿐.
 한혁이 창대를 붙잡아 당긴다. 그대로 딸려 들어오는 고블린의 면상에 발길질을 한다.
 코뼈가 부러지며 고개가 휙 꺾인다. 고블린이 휘청거리는 순간 창을 빼앗은 한혁이 거리를 벌리며 크게 휘두른다.
 원심력을 이용한 한 방!
 
 - 콰득!
 
 창대에 얼굴을 맞은 고블린의 광대뼈와 목뼈가 부러진다. 기괴한 각도로 돌아간 머리를 보아 즉사가 확실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혀를 빼문 고블린의 머리통을 찔러 확인 사살한다. 더 오는 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살핀다. 몸이 굳는다.
 가게 안의 사람들에게 이목이 쏠려 있던 고블린들이 일제히 한혁을 보고 있다. 전신에 소름이 쫙 끼친다. 그들의 시선이 내려간다. 한혁의 앞에 늘어진 동족에게로.
 그제야 자신이 한 행동을 깨달았다. 이 순간 저들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존재는 자신이라는 걸.
 “끼엑!”
 “키아아아!”
 고블린 떼가 괴성을 지른다. 한혁이 손에 쥔 창에 힘을 더했다. 이렇게 된 이상 버틸 수밖에 없다.
 게이트가 열렸으니 던전 감지기가 위치를 파악했을 거고, 기존에 던전을 공략하던 헌터들이 올 거다. 주변에 있던 헌터들도 마찬가지.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몇 분 전만 해도 맨손이었는데 지금은 창도 있다.
 한혁이 이를 악문다.
 ‘가보자 최한혁! 할 수 있어!’
 열댓 마리의 고블린이 각자의 무기를 추켜올리며 몰려온다. 창, 칼, 도끼. 무기도 다채롭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느끼며 충돌을 대비한다. 그 모습이 제법 장엄해 보이기까지 하다.
 가게 안, 테이블과 의자로 고블린을 막던 사람들도 한혁에게 집중한다.
 “아니다! 못 한다. 저건 아니잖아!”
 한혁이 줄행랑을 친다. 냉정하게 판단했다. 자신은 못 이긴다. 말이 되나. 대학생이 몬스터 무리를 무찌른다는 게.
 성난 고블린들의 울음소리가 바짝 쫓아온다. 건물을 끼고 내달린다. 만화도 아니고 언제까지 빙글빙글 돌리가 없다. 금세 반대편으로도 적들이 올 거고 포위당할 거다. 그 다음이야 말할 것도 없이 바늘꽂이행.
 아니나 다를까 건물 뒤편으로 도니 정면에서 세 마리가 오고 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자신을 막 따라온 놈들이 열 마리 정도.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놈들은 죄다 따라 붙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한혁은 웃었다.
 “멍청한 새끼들. 너희가 그래서 몬스터다.”
 가게 뒷문을 연다. 평상시 쓰레기를 버릴 때 이용하는 문으로 주방과 이어져 있다. 들어가자마자 걸쇠를 잠근다. 철문이니 뚫지는 못하리라.
 한혁이 거친 숨을 내쉬며 주방을 가로지른다. 그의 등장에 고블린이 사라져 안도하던 사람들이 기겁한다.
 “이, 이쪽으로 오면 어떡해!”
 “꺄아아아악!”
 “일로 오지 마! 나가!”
 고블린의 타깃이 된 한혁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한혁을 붙잡아 밖으로 내보내려는 사람까지 있었으나 창을 들이밀자 양손을 들며 물러난다.
 “웃기는 소리하지 맙시다. 나 다음에는 너희야. 이럴 시간에 문이나 막아! 곧 헌터들이 올 거야. 그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한혁이 창을 내팽개치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테이블과 의자를 망가진 문과 깨진 유리창으로 민다.
 사람들이 술렁이더니 한혁을 도와 온갖 잡동사니를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만든다. 청소함, 쓰레기통, 냉장고까지! 사장이 그건 안 된다며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당했다.
 “끽해야 고블린이야! 우리라고 당할 수만은 없지!”
 “다들 붙어요! 빨리!”
 “우리가 훨씬 많습니다! 뭉치면 이길 수 있어요!”
 잡동사니를 쌓고 몸으로 민다. 입구로 돌아온 고블린들이 칼과 도끼로 방벽을 두드린다. 그 때마다 몸이 들썩거렸지만 뚫리진 않는다.
 “끼에엑!”
 “엄마!”
 가게 전면에 위치한 통유리 너머로 고블린이 머리를 박는다. 그에 놀란 여학생 한 명이 주저앉는다.
 “빨리 좀 와주세요. 제발요!”
 “그래서 헌터가 언제 오냐고요! 사람 다 죽는다고!”
 “여기에 애들도 있단 말이야!”
 힘이 약한 노약자들은 뒤로 빠져 경찰과 헌터 협회에 전화를 걸어댔고, 청년과 젊은 여성, 아저씨들은 온몸으로 공격을 버텼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희망이 보인다. 이미 몇 분이 흘렀다. 대낮에 일어난 사고인데다가 도심이다. 살 수 있다!
 “꺄아아아악!”
 “쿨럭!”
 아주머니의 새된 비명 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냉장고를 등으로 받치고 있던 한혁이 소란의 근원지를 찾는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아저씨와 눈이 마주친다. 뭔가 말하기 위해 뻐끔거리는 입에서 피거품이 흘러나온다.
 피로 얼룩진 창이 그의 목을 꿰뚫고 있었다. 삐져나온 창이 테이블 사이로 모습을 감추자 뚫린 목으로 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그게 시작이었다. 옆에 있던 사람의 죽음을 본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바리케이드에서 몸을 뗐다.
 “안 돼! 막아!”
 빠르게 방벽이 무너진다. 한혁이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지만 이미 통제 불가능한 상태.
 “주, 죽었어.”
 “김 과장! 아니, 한수야!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죽지 말라고. 씨발.”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뒤, 뒷문!”
 덜덜 떨던 할아버지가 주방으로 달려간다.
 “미친 노인네야! 가지 마! 다 죽어!”
 당장이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등 뒤로 전해지는 충격에 움직일 수 없었다. 한혁까지 몸을 떼면 바리케이드는 완전히 무너진다.
 노인이 잡동사니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기어이 뒷문으로 탈출했다. 유리창으로 그 모습을 본 고블린 하나가 건물 뒤편으로 뛴다.
 오래지 않아 노인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문을 잠그러 간 사람이 얼어붙더니 뒷걸음질 친다. 나가면 죽는다는 생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젠장, 젠장, 젠장!’
 뒷문이 열렸다. 용의주도한 놈은 홀로 들어오지 않았다. 동료를 이끌고 한꺼번에 들어올 계획.
 한혁이 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싸울 사람을 모아 뒷문으로 넘어오는 적들을 해치우고 남은 사람들은 바리케이드를 지키는 게 베스트다.
 생각을 마친 한혁이 냉장고에서 몸을 뗀다. 어느 순간 방벽을 치는 횟수가 줄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고블린도 없다. 내려놓았던 창을 집는다. 전면전이다.
 “저랑 뒷문 지키러 갈사람 있습니까?”
 한혁의 물음에 사람들이 침묵한다. 서로 눈치를 본다. 한혁이 초조하게 주방과 사람들을 번갈아 살핀다. 예민해진 청각으로 고블린들의 키득거림이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빨리!”
 “가, 같이 갑시다!”
 휴가 나온 군인이 일어섰다. 옆에 있던 여자 친구가 말렸지만 손을 꼭잡아주고 일어서더니 대걸레를 부러트려 간이 창을 만든다.
 “나도 가지.”
 “저도요!”
 넥타이를 맨 아저씨와 고등학생이 추가로 나섰다. 주방에서 그나마 쓸모 있어 보이는 물건을 들었을 때 뒷문에서 고블린들이 튀어나왔다.
 “키아아아아!”
 고블린들이 괴성과 함께 달려든다. 선두에 있던 놈이 대각선으로 칼을 휘두른다. 창두를 짧게 잡아 쳐내며 몸통박치기를 한다.
 넘어진 놈에게 창을 쑤셔 넣는 사이 다른 놈이 한혁을 덮친다. 날카로운 손톱이 어깨를 긁는다. 한혁도 지지 않고 귀를 물어뜯는다.
 넥타이를 맨 아저씨가 칼로 고블린의 옆구리를 찌른다. 뜨끈한 피가 얼굴을 적신다.
 “우리도 도와요!”
 “뭐라도 던져!”
 가게 안에 있던 아줌마와 할아버지도 의자와 음료수 병을 집어 던진다.
 일어선 한혁이 다른 녀석을 향해 뛰었다. 도끼를 휘두르는 손을 정확히 찔러 넣고 옆으로 몸을 돌리며 목을 따버린다.
 몸을 웅크리고 있던 고블린이 몽둥이를 휘두른다. 그대로 얻어맞은 한혁이 뒤로 자빠진다.
 가슴을 부여잡고 뒹굴면서도 악착같이 괴물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깨진 유리조각을 집어 녀석의 눈에 뿌리고 비어버린 복부에 창을 찌른다.
 죽은 몬스터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다음 목표를 찾는다.
 한혁의 움직임이 정확해진다. 피가 빠르게 돌았고 머리는 더 빠르게 주변을 파악한다. 거칠었던 숨은 진정이 됐으며 괴물들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힘이 넘치는 걸 느낀 한혁이 더욱 적극적으로 공격한다. 창대를 맞은 고블린이 날아가 벽에 부딪쳐 떨어진다. 고딩이 기절한 고블린을 의자로 내려친다.
 “끄아악!”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한혁의 고개가 돌아간다. 넥타이 아저씨가 당했다. 고블린이 달려드는 상황. 군인이 곧장 뒤돌아 달렸다.
 “한영아!”
 “오빠!”
 군인이 몸을 던진다. 고블린과 뒤엉켜 구르던 군인의 허벅지에 칼이 꽂혔지만 이를 악물고 주먹으로 내려친다. 쉴 새 없이 꽂히는 주먹에 고블린이 축 늘어진다.
 “형!”
 “제길.”
 잠깐 한눈판 사이 고딩도 수세에 몰렸다. 창을 있는 힘껏 던졌다.
 
 - 카앙!
 
 창이 고딩을 덮치고 있던 고블린의 옆구리를 뚫고 벽에 박힌다. 가공할만한 괴력에 고딩의 눈이 커진다. 놀라긴 한혁도 마찬가지였으나 감탄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아직 적은 남았다.
 자신을 찔러 들어오는 창을 가까스로 잡은 한혁이 창을 밀어내며 고블린의 얼굴에 스트레이트를 뻗는다. 살벌한 파육음과 함께 안면이 함몰된다.
 남은 고블린은 셋.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주춤하는 고블린들에게 한혁이 먼저 다가간다.
 이미 대부분의 동족이 죽었고 본인들도 상처를 입은 상황. 빠르게 결론에 도달한 녀석들이 뒷문으로 도망친다.
 “키루룩!”
 “그렇게는 안 되지!”
 한혁이 뒤를 쫓는다. 거리가 삽시간에 줄어든다. 창대 끝을 잡고 쭉 뻗는다. 가장 뒤쳐졌던 녀석의 등이 꿰뚫린다. 이어서 바로 옆에 있는 놈의 머리를 창대로 터트리고 동료를 재물 삼아 도망치고 있는 고블린에게 창을 던졌다. 정확히 목에 박힌다.
 “끝난 건가.”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버텼다. 게이트가 사라진 걸로 보아 나올 몬스터는 전부 나왔지만 덤비지 않고 숨어 있는 녀석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가게 전면으로 가 바리케이드 쪽을 확인한다. 주차된 차량 사이와 밑까지 살펴보고 나서야 한혁이 주저앉는다.
 땀과 피로 젖어 온몸이 끈적거렸고 비릿한 피 냄새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 위이이잉! 위이이잉!
 
 멀리서 검은색 벤 여러 대가 오는 게 보인다. 헌터 수송 차량. 그렇게 기다렸던 차량이다.
 한혁이 말없이 핸드폰을 확인한다.
 2시 43분. 민우와 1시 쯤 헤어져서 게임 두 판을 돌렸으니 대략 한 시간. 이 사단이 나고 30분은 넘게 지났다.
 한혁이 침을 뱉는다.
 “씹새끼들. 다 끝나니까 오네.”
 
 
 얼마까지 가능해요?
 
 
 
 
 
 짠 듯이 일렬로 멈춰 서는 벤에서 헌터들이 내린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배틀슈트, 어깨에는 용암을 내뿜는 화산 마크가 달려 있다.
 팀 볼케이노. 조직 된지 1년이 채 안 되는 신생 팀이었다.
 볼케이노의 팀장이자 B급 헌터인 김준호가 인상을 썼다. 간신히 다른 팀과 협력해 E급 던전을 확보했건만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하필이면 이동 던전이라니. 특수재난부에서 이동된 위치를 알려주기 전까지는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운이 나쁘다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고 문책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던전이 이동하면서 잡은 몬스터들의 사체와 함께 헌터들이 강제로 던전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같이 던전을 공략했던 팀 비스트가 잡은 몬스터들과 자신들이 잡은 몬스터들이 섞였고 서로가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시간이 더 늘어졌다.
 ‘돈에 환장한 비스트 놈들!’
 김준호가 이를 갈았다. 그 또한 욕심이 안 났던 건 아니었지만 사람이 우선이었다. 결국 팀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스트에게 정산을 맡기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럼에도 30분가량이 흘렀다. 기존의 위치와 15분 거리였다는 걸 생각하면 너무 늦은 처사였다.
 근육질의 대머리인 그가 표정을 구기자 보통 험상궂은 게 아니다. 그의 분위기에 다른 팀원들이 눈치를 살핀다.
 “뭐하고 있어! 빨리 가서 생존자 확보해!”
 “알겠습니다!”
 그 또한 팀원들과 함께 몸을 날렸다. 게이트가 소멸했다. 몬스터들이 모두 나왔다는 것. 최악의 경우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몰살당했을 수도 있다.
 팀원들이 생존자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사이 자신은 남은 몬스터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언제든 휘두를 수 있게 워해머를 바짝 쥔다.
 
 - 바스락.
 
 “여기 있구나!”
 주차된 자동차 사이에서 소음이 들리자마자 워해머를 휘두른다.
 “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한혁이 비명을 지른다. 김준호가 급하게 망치를 비켜 올린다. 망치가 한혁의 머리 위 허공을 가른다. 풍압이 훅 들어온다.
 
 - 콰득!
 - 삐삐삐삐!
 
 천장이 박살난 자동차가 요란한 경고음을 낸다. 한혁이 입을 벌리며 그 모습을 본다. 저 양반이 조금만 늦게 틀었으면.
 몸을 떤 한혁이 무사히 달려 있는 머리를 만진다.
 “미쳤어요?”
 “죄, 죄송합니다. 일단 저희 차량으로 가세요. 언제 몬스터가 덤빌지 모릅니다!”
 “고블린은 다 잡았으니까 사람들이나 챙겨줘요.”
 “예?”
 김준호가 당황해서 한혁을 살핀다. 피투성이의 남자. 마찬가지로 붉게 물든 창. 건물 옆에 늘어진 고블린의 사체.
 ‘이 사람이 처리한 건가.’
 고블린에게 뺏은 게 분명한 창 하나. 배틀슈트도 없다. 맨손으로 덤볐을 게 뻔하다. 어지간한 D급 헌터라도 아무런 장비 없이 고블린과 싸우면 죽기 마련이다.
 팔목에 차고 있던 던전 전용 스마트워치가 진동한다. 잠깐 잡음이 들리더니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 팀장님! 생존자 확보했습니다! 총 스물한 명입니다.
 - 고블린 사체 열네 구 확보! 근처 50m내에 생체반응 없습니다.
 - 사망자 셋, 경상 한 명 있습니다. 바로 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김준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한혁의 말대로 몬스터는 다 처리됐다. 생존자들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나도 생존자 한 명 확보했다. 현장 촬영하고 지원팀 빨리 오라고 해.”
 
 - 네!
 
 한혁이 김준호에게 손을 내민다. 김준호가 그 손을 잡자 한혁이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킨다.
 쉬고 싶었다. 온몸이 뻐근하고 특히 몽둥이로 맞은 가슴이 꽤나 아팠다. 상의를 살짝 들쳐보니 가슴 전체가 시퍼렇게 멍들었다.
 늑골이 나간 건 아니겠지. 손톱에 베여 피가 흐르는 어깨를 움켜쥔 한혁이 김준호를 부른다.
 “갑시다. 일단 병원부터.”
 김준호가 묵묵히 앰뷸런스로 한혁을 인도한다. 그러면서 흘낏 쳐다본다.
 “혹시 각성자십니까? 소속된 팀이나 길드가 있다면 말해 주십시오. 그쪽을 통해 정산을 하겠습니다.”
 “저 각성자 아닌데요.”
 한혁이 단칼에 대답하자 김준호가 침음을 삼킨다. 그가 보기에 이번 일을 막은 당사자가 한혁이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참았다. 그러기에는 수습할 게 많았으니까.
 
 * * *
 
 병원을 들려 간단한 소독과 연고를 바른 후 붕대를 감은 한혁이 밖으로 나온다. 가슴의 타박상이야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나 뭐라나.
 간호사한테 얻은 물티슈로 얼굴 곳곳과 머리를 닦는다. 금세 빨갛게 물든다.
 그나마 상체는 거즈로 닦고 새 티셔츠를 받아 봐줄만 했지만 하체와 피로 떡진 머리는 그대로다. 덕분에 택시도 승차 거부를 당해 걸어가고 있다.
 “치사한 놈들. 상처만 닦아주고.”
 병원 화장실에서 머리 감기를 시도했다가 들켜 쫓겨났다. 화장실에 들어왔던 의사가 한혁의 모습을 보고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볼일을 봐버렸다.
 비명 소리에 경비가 달려왔고 한혁을 끌어냈다. 하기야 핏물이 가득한 세면대에 머리를 처박고 허우적거리고 있었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여전히 몰골은 말이 아니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엄마! 저 형아, 피 흘려!”
 “쉿! 저런 거 보면 안 돼. 엄마 말 안 들으면 나중에 저렇게 돼요. 알았지?”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주머니.
 심지어 사람들까지 구했는데.
 울컥한 한혁이 아이한테 다가간다. 아이 엄마가 아이를 끌어당긴다. 한혁이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을 맞춘다.
 “얘야. 엄마 말 잘 들어도 크게 달라지는 거 없다. 걍 네 맘대로 살아.”
 “뭐라는 거예요! 가세요. 안 그럼 경찰 불러요.”
 아이 엄마가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정말 놀랍게도 경찰차가 갓길에 서더니 경찰 한 명과 정장 차림의 사내가 내린다. 정확히 한혁에게로 온다.
 ‘그 사이에 신고를? 애초에 이런 걸로 접수가 되기는 하나?’
 움찔한 한혁이 아주머니를 봤지만 그녀도 놀란 눈치다.
 도망칠까 고민하던 사이 정장 남자가 속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넨다.
 받아든 한혁이 눈썹을 올린다.
 “특수재난부의 이한철 팀장입니다. 이번 이동 던전에서 활약해주신 점 정말 감사합니다. 한혁 씨가 아니었으면 더 큰 인명 피해가 있었을 겁니다.”
 이한철 팀장이 허리를 숙인다. 경찰도 그를 따라 고개를 숙인다.
 그들의 입장에서 한혁의 활약은 훌륭했다. 항상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곳이 특수재난부지만 이번 일은 까딱 잘못했으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킬 뻔했다.
 정확히는 지금도 언론이 일고 있다. 그걸 막기 위해 한혁이 필요하다.
 한혁이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한 사이 이한철이 경찰차 뒷문을 연다.
 “잠시 시간 되시면 함께 가시죠. 던전 사무소에서 이번 일에 관해 전해드릴 말이 있습니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 나 이런 사람이다. 같이 가자며 차에 태우려 한다면 무조건 도망칠 한혁이었지만 경찰이 동승한다면 믿을 수 있다. 차도 경찰차 아닌가.
 차에 타려던 한혁이 몇 가지를 확인한다.
 “갔다가 집까지 데려다 주나요?”
 “물론이죠.”
 “거기 샤워실 있어요?”
 “온수 잘 나옵니다.”
 “그럼 가죠.”
 한혁이 뒷좌석에 앉자 이한철 팀장도 조수석에 탄다. 경찰차가 떠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와 엄마가 입을 벙긋거린다.
 아이가 엄마 손을 놓는다.
 “엄마 말 안 들을래.”
 
 * * *
 
 보라매 던전 사무소.
 당직과 주기적으로 대기 중인 국가 소속 헌터를 위해 기본적인 시설은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샤워를 마친 한혁이 이한철 팀장이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고 접대실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은 한혁이 방 안을 구경한다.
 심플한 검정색 소파, 유리 테이블. 딱 있을 것만 있다.
 이한철 팀장이 캔 커피를 건네고 본인도 한 캔 마신다. 느긋하게 앉아 있는 한혁에게 몸을 기울인다.
 “먼저 이번 일에 대한 사과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됐어요. 해줄 말이 뭔가요?”
 대충 짐작은 갔다. 자신이 잡은 몬스터의 정산에 관한 말이리라.
 “사건이 있고 난 후 생존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길 한혁 씨가 대부분의 몬스터를 해치웠다더군요. 솔직히 의아했습니다. 일반인이 맨손으로 고블린 떼를 상대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요.”
 “그렇긴 하죠.”
 한혁도 인정했다. 말이 안 됐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힘든 일이었다. 지금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가게 안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해보니 확실하더군요. 감탄했습니다. 빠른 대처 능력과 가장 선두에 서는 용기까지. 무엇보다 놀라운 건 한혁 씨의 신체 능력이었습니다. 일반인의 힘과 스피드가 아니었습니다. 각성자의 움직임이었죠.”
 그가 한쪽에 놔둔 태블릿을 켠다. CCTV에서 뽑아온 동영상을 한혁에게 보여준다. 화질은 좋지 않았지만 보는 데는 문제없었다.
 한혁이 창을 휘두르는 모습이 이어진다. 찌르고, 내치고, 던지고. 같이 싸운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특히 창이 고블린을 관통해 벽에 꽂히는 광경은 초인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동영상을 쓸 수 있게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지금 언론이 좋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던전 출현에 정부의 뒤늦은 조치. 말이 많아요. 심지어 예전처럼 외출을 삼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죠.”
 한혁이 말없이 커피를 홀짝인다. 이한철 팀장의 목소리가 커진다.
 “이 동영상을 필두로 언론의 흐름을 바꾸려고 합니다. 시민들이 뭉쳐서 몬스터를 이겨내고 전투를 겪으며 일반인에서 각성자가 되는 모습!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겁니다. 국민의 영웅이 되는 거죠!”
 “국민의 영웅?”
 “그렇습니다! 기자 회견을 열고 장관 표창과 함께 상금을 수여할 생각입니다. 거기에 이번에 잡은 몬스터들도 최고의 조건으로 매입해드리겠습니다.”
 한혁이 피식 웃었다. 자신은 말도 안 했는데 기자 회견까지 계획해 두고 있다. 거기다 영웅이라. 사람이 아닌 국가가 만든 영웅이 얼마나 부질없던가.
 군복무 시절 게이트 지원 나간 동기 녀석이 다리가 잘렸을 때도 국가는 영웅이라 칭했다. 물론 영웅에 준하는 대우도 보상도 없었다.
 의도도 뻔하다. 눈 가리기.
 한혁이 다리를 꼰다.
 “저를 앞세워서 시선을 돌리시겠다? 언론에서 욕먹기 싫어서?”
 “크흠,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한혁 씨에게도 이득이 있을 겁니다. 미처 말하지 못했는데 한혁 씨의 각성자 테스트도 저희가 부담해 실행해드리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전투 중 각성. 얼마나 드라마틱해. 그걸로 기사 쓰려면 내가 각성했는지 확인을 해야 하고. 날 위하는 척 말 돌리지 말고 솔직히 대화합시다.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데요?”
 여유로운 한혁의 태도에 이한철 팀장이 곤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기껏해야 대학생. 무조건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다.
 당황했지만 그도 팀장이다. 자기 선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원하신다면 특채로 국가 소속으로 뽑아드리겠습니다. 상부에 보고해서 지원도 아낌없이 해드리죠.”
 국가 소속 헌터라. 고수익 강철밥통이다. 혼란한 시대. 공무원만큼 안전하게 돈을 버는 곳은 없다. 좋은 조건이기는 한데 한혁이 물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런 거 말고. 그 영상 주는 대가로 얼마나 줄 수 있어요?”
 
 
 정말 각성자가 돼버렸다
 
 
 
 
 
 한혁이 싱글벙글 웃는다. 그 모습에 이한철 팀장이 진땀을 뺀다.
 다짜고짜 돈이라니. 애초에 기자 회견 때 장관상과 함께 상금을 주는 걸 제외하고는 금전적으로 나가는 게 없었다.
 한 번 받는데 1억이라는 각성자 검사기는 국가 소유물이기 때문에 나가는 게 없었고, 특채로 국가 소속 헌터에 꽂아주는 것도 상부의 허가만 있으면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이번 일에 책정된 예산이 없기에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상한선을 모르니까.
 “너무 계산 따지시지 마시고 서로가 충분히 납득이 되게 불러주시면 돼요. 어휴, 이거 반응이 굉장하네.”
 CCTV동영상을 보다 말고 인터넷 뉴스란으로 들어간 한혁이 기사를 하나하나 살핀다.
 “금일 오후 2시 8분 경 상동3동 킹스버거에 이동 던전 발생. 세 명이 숨지고 두 명이 다쳤습니다. 이번 던전은 양녕대군 이제 묘역 인근에 생성됐던 던전으로 불과 15분 거리였습니다. 30분가량이 흘러서야 기존 공략 팀 중 하나인 볼케이노가 현장에 도착했고, 다른 공략 팀이었던 비스트는 40분,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특수재난부의 지원팀은 45분이 흐른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은 재해가 아닌 인재이며 정부의 늦장 대처가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일고 있습니다. 또한 팀 단위 헌터들의 체계에도 미숙한 부분이 많이 보여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보입니다.”
 친절하게 기사를 읽어 준 한혁이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을 보여 준다. 그 사이 댓글이 500개가 넘게 달렸다.
 대부분의 내용은 공략팀과 특수재난부에 대한 욕. 당분간 외출을 사려야겠다는 사람과 혹시 몰라 장기 보존식품을 사놓겠다는 댓글도 보인다.
 “호오, 이미 밑밥을 뿌려 두셨구만.”
 한혁이 눈을 치켜뜨며 이한철 팀장을 본다.
 속보에 이어 후속 기사가 잇따라 올라왔고 거기에는 병원으로 이송된 사람들과 다른 생존자들의 인터뷰가 올라와 있었다.
 그들의 말을 요약하자면 다 같이 싸웠다. 한 청년의 활약이 아니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을 것이다. 이런 내용이다.
 사람들은 생존자가 많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그들이 말한 청년의 정체를 궁금해 했다. 이 타이밍에 한혁의 기사가 나간다면 충분히 시선을 끌만하다.
 “말 안 하실 겁니까? 이런 거 타이밍 지나면 쓸모없어요. 시간 지날수록 효과 떨어진다고. 관심 왔을 때 해야 되는 거 아시죠? 말 좀 해보세요.”
 “잠깐, 전화 좀 쓰겠습니다. 제가 멋대로 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서.”
 이한철 팀장이 입술을 깨물더니 자신의 상사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흐를 때마다 표정이 굳는다.
 옛날이었다면 이런 반응이 있어도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좀 심해진다 싶으면 연예인 찌라시만 뿌려도 알아서 덮어졌다.
 지금은 아니다. 국민들 모두 몬스터와의 전쟁을 겪은 세대다. 최고의 관심사는 헌터와 몬스터지 연예인이 아니었으며 다른 재해와 사고와는 달리 던전에 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제일 큰 문제는 이번 일에 불만을 품은 각성자가 미쳐 날뛸 수도 있다는 거지.’
 실제로 국가의 실용성 없는 정책과 부정부패한 정부에 불만을 품은 각성자가 정치인들을 습격해 살해한 일이 있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한쪽에서는 각성자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만큼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불만이 쌓였다는 뜻이리라.
 이 일을 계기로 정치계는 여론에 특히 예민해졌다. 언제 자신들의 목에 칼이 들어올지 몰랐으니까.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전화가 연결됐다.
 “아! 부장님. 이한철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동 던전에 관련돼서 쓸 수 있는 예산을 알고 싶습니다.”
 
 - 갑자기 예산은 왜?
 
 “한혁 씨가 동영상을 활용하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뭐? 그게 말이야? 그냥 언론사에 넘겨서 기사 내보내. 그럼 지가 어쩔 거야. 초상권으로 소송이라도 걸겠데? 그래 봤자 언론사랑 얽히는 거야. 우리랑 상관없다고.
 
 “하지만 각성자 검사도 해야 하고.”
 
 - 짬을 귓구멍으로 먹었나. 안 되겠으면 하지 마. 사람들이 팩트 체크를 하면 얼마나 하겠어. 우린 그냥 사람들 관심만 분산시키면 돼. 알았지?
 
 “저기 전화 좀 줘 봐요.”
 한혁이 다가와 핸드폰을 가로챈다. 예민해진 귀를 통해 듣고 싶지 않아도 대화가 전부 들렸다. 어이가 없었다. 한다는 말이 고작 저건가.
 이한철이 안절부절 못한다. 당장 전화를 뺏고 싶지만 자신은 일반인. 신체적으로 이길 수가 없다.
 “아이고 부장님. 저 한혁이라는 사람입니다.”
 “어? 아. 안녕하십니까. 한혁 씨, 활약은 익히 들었습니다. 국가를 대표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한혁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태세 변환이 빛의 속도다.
 “감사하면 말이 아니라 성의를 보이세요. 아니다.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없었던 일로 하죠. 덕분에 저도 입을 열고 싶어졌네요. 병원으로 돌아가서 인터뷰 좀 하려고요. 부장님과 팀장님의 이야기는 제가 잘 다듬어서 전달해드릴게요.”
 
 - 아하하하, 약간 오해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오해는요. 그럼 바쁘신 사람 계속 붙잡기 싫으니 이만 끊겠습니다. 어디 화난 각성자가 그쪽 침대에 칼이나 박아뒀으면 좋겠네요.”
 
 - 그게 무슨, 잠깐만요! 한혁 씨! 한혁 씨!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은 한혁이 핸드폰을 돌려준다. 주머니를 살핀다. 핸드폰, 지갑, 담배. 다 챙겼다.
 팀장의 핸드폰이 다시 울린다. 안색이 창백해진다.
 “본부장님?”
 급하게 전화를 받아든 팀장이 연신 허리를 굽히더니 문자를 확인한다.
 한혁이 남은 커피를 쭉 들이켜고 일어선다. 팀장이 급하게 따라 일어선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드리겠습니다!”
 이한철이 급하게 손가락을 든다. 그러면서 정신없이 손가락을 움직인다.
 한혁이 미소 짓는다. 왼손 다섯 손가락. 오른손은 두 손가락. 고작 칠만 원은 아닐 거고. 칠십 정도 주려나.
 단순히 일자리도 잃었겠다, 다음 알바를 찾기 전까지 쓸 생활비나 벌어 보자는 심보에서 한 행동이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진땀을 빼며 무언가 열중하던 팀장이 핸드폰을 내민다. 인터넷 뱅킹 어플에 계좌번호를 찍는 칸이 열려 있다.
 “바로 부쳐드리겠습니다. 섭섭하지 않을 만큼 준비했습니다.”
 “이제야 말이 통하네요. 기사는 알아서 하세요. 아, 그리고 검사는 잘 받겠습니다만 표창 수여니 기자 회견은 안 합니다. 주려고 했던 상금도 지금 같이 보내주세요.”
 한혁의 말에 이한철이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예민하신 윗분들이 그냥 해달라는 대로 해주라고 지시를 내렸다.
 계좌번호를 입력하자 얼마 안 있어 은행 입출금 문자가 온다. 팀장의 뒤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하던 한혁이 발걸음을 멈춘다.
 “처, 천이백만 원!”
 “CCTV 활용과 기사를 쓰는 대신 드리는 게 칠백, 상금으로 지급할 예정이었던 게 오백입니다. 대가를 받으셨으니 저희가 어떻게 기사를 쓰던 다른 말이 안 나오게 해주십시오.”
 “저한테 피해만 안 간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전 항상 대한민국을 생각해 왔습니다.”
 양손에 엄지를 세우는 한혁의 모습을 보며 이한철이 이마를 짚었다.
 주차장에 도착한 팀장이 차 키를 누르자 고급외제차에 불이 들어온다. 삼각표창 같은 엠블럼.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는 한혁이었지만 저 브랜드가 비싸다는 건 안다.
 “차 좋네요. 역시 헌터 관련된 직종이 돈을 잘 벌어요.”
 “헌터만 할까요. 타시죠. 바로 각성자 검사를 하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뒤 칸에 비밀유지 계약서가 있을 겁니다. 거기에 사인해 주세요. 오늘 이야기한 것들은 함구하셔야 합니다.”
 “철저하시네요.”
 “공무원이니까요.”
 차에 탄 한혁이 사인을 하는 동안 팀장이 시동을 건다.
 
 * * *
 
 약 한 시간을 달려 강남구청 옆에 위치한 중앙각성자 센터에 도착했다. 전국에 딱 두 대 있다는 각성자 검사기 중 하나가 이곳에 있다.
 일억이라는 비싼 검사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수십 명이 오간다. 그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 아주 미약하나마 마나 레벨이 발견되기를 바라고 온다. 그것만 있으면 가공된 마정석을 섭취해 각성할 수 있으니까.
 초기에는 검사 비용이 너무 비싸 개인이 마정석을 구해 섭취했으나 부작용이 너무 심한 탓에 법적으로 금지됐다. 가공되지 않은 마정석은 각성자라 하더라도 신체적 이상이 올 수 있으며 마나 레벨이 없는 일반인이 섭취할 경우 최소 장애,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부작용이 뒤따랐다.
 “검사는 금방 끝날 겁니다. 각성자로 나오겠죠. 그러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움직임이었으니. 중요한 건 그 다음입니다. 검사가 끝나면 곧바로 마정석을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최하급이지만 먹는다면 확연히 강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이건 반드시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중앙각성자 센터에 들어가기 직전 이한철이 팀장이 말했다.
 한혁의 눈이 커진다. 마정석. 최하급이라도 평균 백만 원이 넘는다. 그걸 대뜸 주겠다니 의심이 간다.
 “그걸 저한테 왜 주죠? 미리 말해 두지만 전 국가 소속 헌터가 되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마정석을 흡수한 후 능력치 검사를 할 겁니다. 그걸 기사로 내보낼 거죠. 약간의 눈속임이라 보시면 됩니다. 위기에서 천재가 등장하다. 그쪽이 더 드라마틱하니까요.”
 결국 어떻게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혁에게 집중시키겠다는 뜻이다. 내키지는 않지만 한혁도 납득했다. 어찌됐든 이목을 끌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챙길 수 있는 이익은 전부 챙기는 게 옳았다. 앞으로의 행보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기회는 기회니까.
 건물에 들어선 팀장이 홀 직원에게 특수재난부 카드를 내밀자 특별한 절차 없이 검사 대기실로 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둘이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데 전형적인 근육돼지 남성이 다가온다. 중견 길드인 발리스타의 2팀장 박장태다. 동네 형 같은 이미지지만 A등급의 실력자다. 그가 이한철 팀장에게 아는 체를 한다.
 “이야, 이거 이 팀장님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뵙니다. 아하하하!”
 “박장태 씨. 반갑네요. 웬일로 이곳에?”
 이한철의 물음에 박장태가 자신의 뒤에 가려진 인물을 앞에 세운다. 창백하다 싶을 정도로 하얀 피부와 검은 철태안경. 키는 컸지만 상당히 말랐다. 전체적으로 말끔한 샌님 느낌이다.
 노랗게 물든 머리에 까만 피부. 락페스티벌에서나 입을 법한 현란한 티셔츠를 입은 박장태가 옆에 있으니 차이가 두드러진다.
 “아하하! 이번에 새로 키우는 앱니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너도 인사 하고.”
 “안녕하세요. 막 각성한 김진우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특수재난본부 팀장 이한철입니다.”
 크지는 않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자신을 소개한 김진우와 이한철 팀장이 악수를 한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연신 미소를 지우지 않던 박장태가 한혁과 눈이 마주친다.
 “이 친구는 처음 보는데. 신입입니까?”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이동 던전을 막은 영웅이라고 설명하려는 찰나 한혁이 선수를 친다.
 “아마도 각성자인 한혁이라고 합니다. 조만간 기사에 나올지도 모르는데 관심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아마도 각성자?”
 “하하하하! 나중에 말씀 드리지요. 저희 차례가 됐군요.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예. 나중에 식사나 같이 합시다.”
 이한철이 도망치듯 한혁을 이끌고 검사실로 들어간다. 박장태가 머리를 긁더니 어깨를 으쓱인다.
 검사실에 들어서자마자 이한철이 한혁의 어깨를 잡는다. 이를 문 채 한혁에게 귓속말을 한다.
 “한혁 씨. 괜히 여기저기 이야기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기사가 난 다음 누가 맞냐고 물으면 맞다고 하시면 돼요.”
 “알겠다니까요. 전 한 명이라도 관심 덜 끌고 싶어서 그랬죠.”
 “검사 시작할게요!”
 팔짱을 끼고 둘을 지켜보던 간호사가 소리친다. 팀장을 떨쳐낸 한혁이 검사대 위에 눕는다.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편히 숨을 가라앉히는 한혁의 위로 투명한 덮개가 내려온다.
 안쪽에 연결된 호스에서 하얀색 연기가 흘러나온다. 몸을 간질이는 듯한 감각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이어진다.
 ‘좀 긴장 되는 걸. 나 정말 각성자가 된 걸까.’
 이제야 실감이 났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인생에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각성자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니까.
 조용히 눈을 감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 돌아가신 부모님, 키워주신 작은 아버지, 헌터······.
 
 - 삐이-!
 
 “검사 끝났어요. 나오세요.”
 “벌써!”
 언제 치웠는지 덮개도 올라가 있다. 어떤 걸 기대한 걸까. 한혁이 얼굴을 쓸었다.
 “별거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보다 결과나 봅시다. 대부분 마나 레벨 레디에서 시작하니까 최하급 하나 먹으면 스타터 정도 되겠죠. 역시나 Lv.1이네요. Lv······.”
 부러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팀장이 목을 돌아간다.
 “말도 안 돼!”
 그가 경악한 표정으로 한혁을 바라본다.
 Lv.1. D급 헌터 수준의 결과였다.
 
 
 테스트
 
 
 
 
 
 이한철 팀장의 반응에 한혁이 움찔한다. 그만큼 그의 목소리가 컸다. 뚱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간호사도 검사 결과를 듣더니 눈을 깜빡이며 한혁을 위아래로 훑는다.
 “뭐 잘못됐어요?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던가.”
 “아뇨. 그런 건 아닌데. 하아, 진짜 천재였나.”
 천재라는 말에 한혁이 솔깃한다. 팀장이 들고 있던 검사지를 받아 살폈으나 이쪽에 관련된 지식이 없으니 그냥 좋은가보다 할 뿐이다.
 손가락으로 셈을 해보던 팀장이 입을 연다.
 “예상한 것보다 수치가 너무 높습니다. Lv.1이면 D급 헌터 수준이에요. 스타터만 돼도 길드에서 눈독 들이는 마당에 이건.”
 “높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위기 속에서 태어난 천재를 원했다면서요.”
 “정도가 있는 겁니다. 계획을 바꾸죠. 바로 능력치 검사를 합시다. Lv.1도 말이 안 되는 데 그것보다 높아지면 사람들이 안 믿을 겁니다.”
 결론을 내린 이한철이 곧장 능력치 검사를 위해 한혁을 잡아끈다. 신체 능력까지 평균을 압도하는 점수가 나오면 준비한 기사를 전면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시민의 영웅으로 전면에 내세우려면 일반인들과 동질감을 줘야 하는데 길드에서 키우는 루키를 뛰어넘는 기량을 보인다면 이질감이 생긴다. 너무 뛰어나서 그 사실을 감춰야 하는 웃기는 일이 벌어지는 거다.
 ‘그래도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돼서 다행이야. 이런 잠재력이라니. 반드시 국가에서 잡아야 한다. 기사야 능력치를 숨기고 각성했다라고만 써도 돼. 임팩트는 줄겠지만 어쩔 수 없지. 중요한 건 한혁 씨를 잡는 거다.’
 덤으로 상부에 욕먹을 일도 사라진다. 지금 당장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검사가 우선이다. 정확한 정보를 보고해야 하니까.
 급한 이한철 팀장과는 달리 한혁은 그 자리에서 버텼다. 불만이 있는 표정. 가자미눈으로 팀장을 노려본다.
 팀장이 침을 삼킨다. 그도 스스로의 가치를 알아차린 것인가. 혹여나 턱없는 조건을 제시하며 배짱을 부릴까 긴장한다.
 “무슨 문제라도?”
 “그럼 주신다고 했던 마정석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설마 치사하게 준다 했다가 뺏는 건 아니죠?”
 ‘그거였냐.’
 목을 가다듬은 팀장이 손사래를 친다.
 “걱정 마세요. 약속은 지킵니다. 흠, 어쩌면 더 좋은 걸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자세한 건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하핫! 뭘 또 그렇게나. 역시 국가는 믿음이죠.”
 얼굴이 펴진 한혁이 가자며 이한철의 등을 떠민다.
 검사실을 나와 안쪽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탄다. 각성자 전용 측정 장비들은 부피가 컸고 안전성의 이유도 있었기에 각성자 센터 옆의 부속 건물에서 능력치 검사를 했다.
 오로지 내구도에만 신경 쓴 투박한 외관이었지만 내부는 정갈했다. 센터와는 다르게 각성자들만의 시설이기 때문에 직원들 또한 각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돌발 상황 발생 시 일반인은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들 또한 특수 재난부 소속이었기에 이한철 팀장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 중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직원이 손을 흔든다.
 박예지. C급 헌터다. 경력에 비해 빠르게 성장해 눈에 띄었었고 외모는 더 눈부셨다. 곧은 콧날과 부드럽게 모여드는 턱선, 쌍꺼풀은 없지만 시원한 눈. 무엇보다 깨끗한 피부는 보는 사람까지 밝게 만드는 느낌이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예지 씨, 잘 있었어요? 전에 말했던 건 생각해 보셨나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지만 아직은 현장에서 직접 뛰기에 실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언제든 생각 바뀌면 연락주세요.”
 한 달 전 박예지에게 던전에 직접 개입하는 직책으로 옮길 의사가 있는지 물었었다. 전투조가 부담된다면 지원팀도 괜찮다고. 그 당시에도 거절하려는 걸 천천히 생각해 보라 했었는데 역시나.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만 극복한다면 크게 성장할 텐데.’
 고작 스무 번의 전투를 겪었을 뿐인데 타고난 센스와 재능으로 C급이 됐다. 아쉬운 건 거기서 성장이 멈췄다는 것. 던전과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마나를 흡수하고 실전 경험이 쌓이면 반드시 A급 이상의 헌터가 될 것이다.
 물론 그녀의 개인사를 알기 때문에 강하게 권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조금 더 신경 써 줄 뿐.
 인사를 마무리하고 복도를 걷는 사이 한혁이 말을 건다.
 “팀장님 저분한테 관심 있어요? 잠깐 이야기 들어보니 뒤 좀 봐주려는 거 같은데. 공무원이 그래도 됩니까. 하긴 공무원이든 뭐든 남자는 미녀에 약하니까.”
 한혁의 말에 팀장이 피식 웃는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보다 한혁 씨 한 가지 확인 좀 합시다.”
 “어떤 거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길드 소속은 아니시죠? 알고 보니 대형 길드에서 몰래 키우던 루키였다던가. 숨기고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말하세요.”
 “어제만 해도 평범하게 칼 든 사람 때려잡는 학생이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릴까. 모르던 사이에 평범함이란 단어의 기준이 올라간 게 아닐까 혼란스러워진다.
 한혁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닥인다.
 “모르시나 보네. 지금은 서로 비즈니스 관계니까 알려드리는 겁니다. 이따가 기사 쓰는데 참조하시라고.”
 그러더니 조용히 뷰튜브에 들어가 신림역 소드마스터를 검색창에 친다. 재생되는 동영상. 가만히 감상하던 이 팀장이 헛웃음을 친다.
 “하, 참나.”
 “생각해 보면 제가 참 사람들을 잘 구하는 것 같죠? 아까 최하급 마정석보다 좋은 걸 준비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거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부담 갖지 마세요.”
 한혁이 툭툭 어깨를 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팀장은 이마에 손을 짚으며 웃음을 흘렸다.
 움직임을 보건데 이때는 확실히 각성하기 전이다. 그럼에도 굉장히 깔끔하고 날카롭다. 확신이 든다.
 ‘이 녀석은 진짜다. 꼴통이지만 센스와 재능은 타고났다.’
 다시 한 번 꼭 잡겠다는 의지를 굳히며 왼쪽으로 꺾었다. 철로 된 문이 10m 간격으로 이어져있다. 문 위로 각각 번호가 적혀 있다. 둘이 향한 곳은 108호. 국가 소속 각성자들을 위해 상시 남겨 두는 곳이었다.
 이 팀장이 문을 열어 준다.
 “들어가시죠. 안에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분의 지시대로 하면 될 거예요.”
 “팀장님은 어디에 있게요?”
 “전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한혁이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닫힌다. 쇠 긁히는 소리와 함께 걸쇠가 걸리고 간판에 IN이라고 표시가 뜬다.
 팀장이 벽에 기대 전화를 건다. 잠시 신호음이 이어진다.
 
 - 이 팀장! 한혁, 그 새끼 어떻게 됐어! 아니, 네 짬밥이 얼만데 고작 대학생 하나를 컨트롤 못해. 이런 일 하나하나 본부장님 손 거치게 할 거야? 어!
 
 “부장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 그래 네 귓구멍이 중요하지. 오늘 단단히 각오해. 내가 하는 말이 네 고막에 새겨질 테니까!
 
 “Lv.1입니다.”
 
 - 그게 뭐! 어?
 
 “Lv.1이라고요! 한혁 씨 꼭 잡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거, 바로 어제 뷰트브에 올라온 겁니다. 각성하기 전에 찍힌 건데. 움직임 자체가 일반인과 다릅니다. 단순히 운동을 했다, 안 했다의 차이가 아니라 센스가 달라요.”
 
 - 너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장난치면 앞으로 고단해진다.
 
 “거짓말을 왜 합니까. 각성자 검사 결과지도 전송했으니 확인해 보십쇼. 능력치 측정도 끝나는 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알았어. 이따가 다시 통화하자.
 
 부장이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이 팀장이 마른 입술을 핥는다.
 그동안 특수 재난부의 각성자가 길드에 비해 약하다는 말이 많았다. 단순히 수준으로 따진다면 대등하나 국가 소속 헌터가 매스컴을 타는 일은 드물었기에 생긴 오해다.
 길드는 이익단체인 만큼 헌터들을 간판으로 내걸어 방송계까지 진출했다. 당연히 소위 말하는 스타헌터들은 대부분 길드소속. 특히나 각성자가 국력으로 취급되는 시대에 국가는 보유한 각성자에 대한 정보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스케일을 키워서 한혁 씨를 특수재난부의 간판으로 밀 수만 있다면.”
 국가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바뀔 것이며 인기를 바탕으로 던전 공략에 대한 지원도 충분히 뽑아올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형 길드의 참여까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그들이 빠질 일은 없으니까.
 
 - 지이이잉.
 
 진동이 상념을 깨운다. 한재석 부장님. 전화를 받는다.
 
 - 이 팀장!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 잡아! 지원은 빵빵하게 넣어 줄 테니까. 책임지고 데려와!
 
 만족스러운 답변이다.
 “물론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부장님. 한혁 씨에게 주려고 했던 최하급 마정석 있잖습니까. 그 등급을 조금 더 올리고 싶습니다.”
 
 - 마정석을? 알았다. 내가 보고할 테니까 거래 내역만 확실히 가져와. 바쁘니까 끊는다. 수고해!
 
 “네. 들어가십시오.”
 이 팀장이 미소 짓는다.
 
 * * *
 
 “이게 능력치 검사?”
 “네. 먼저 근력 측정부터 할게요. 10분 동안 최대한 움직여 주시면 됩니다.”
 무덤덤한 검사원의 말에 한혁이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팔과 다리, 몸통까지 안쪽에 가죽을 덧댄 쇠사슬이 감겨 있었고 그 끝에는 10kg짜리 쇳덩이가 달려 있다. 그 밑으로는 얇은 1kg의 쇳덩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달려 있는 쇳덩이가 올라가고 다시 내려가면 그 밑에 있는 쇳덩이가 달라붙는다. 간단하게 움직일 때마다 1kg씩 추가가 되는 시스템.
 “이 꼴로요? 진심이세요?”
 “그럼 시작할게요.”
 “크윽!”
 검사원의 말과 동시에 안전핀이 풀렸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중량에 한혁이 휘청거린다. 사족에 허리까지 총 50kg이다.
 눈앞에 위치한 타이머가 깜빡인다.
 “으아아아! 하고 보자! 읏차! 핫차!”
 까라면 까야지. 한혁이 분주히 움직인다. 팔을 뻗고 회수할 때마다 무게가 늘어난다. 발을 움직일 때도 몸의 중심이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
 극 초반은 할만 했다. 일반인일 때도 2, 30kg으로 바벨컬을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누가 10분 동안 하냐고! 그것도 중량을 늘려가면서!’
 티셔츠가 금세 땀에 젖는다. 뒤는 보지도 않고 움직인다. 몇 킬로그램을 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악을 쓰며 움직일 뿐이다.
 고작 3분이 지났다. 그럼에도 온몸에 힘이 빠진다. 목에 핏줄이 올라서고 옷 밖으로 비쳐진 근육이 선명하게 갈라진다.
 몸이 점점 느려진다. 체력은 떨어지는데 중량은 늘어가니까.
 다시 1분이 흐른다.
 “후욱! 후욱!”
 아직 6분이나 남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체력이 회복되면 다시 움직일 생각이다. 검사가 근력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 조금은 체력을 남겨 둬도 괜찮으리라.
 그때 손톱을 만지던 검사원이 들고 있던 테스트지를 흔든다.
 “천천히 쉬면서 해도 돼요. 그런데 회복용 포션도 있고 움직이는 시간만큼 체력에 가산점이 들어간답니다.”
 “크아! 그럴 거면 쉬라 하지 마세요!”
 얄밉다, 저 사람!
 심호흡을 하던 한혁이 움직인다. 검사원에 대한 짜증까지 담아 악으로 깡으로 팔다리를 휘두른다. 그럼에도 저놈의 타이머는 너무나 느리게 흘러간다. 보고 있으니까 더 시간이 안 가는 거 같다.
 ‘차라리 눈을 감자.’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하면 되겠지. 오히려 그쪽이 마음이 편하다.
 얼마나 움직였을까.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샤워를 해서 찰랑거렸던 머리카락은 미역이 돼 있었고 눈은 땀이 들어가 따끔하다.
 이러다 골병드는 게 아닌가 싶을 때쯤 타이머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그만! 오, 축하해요. 이번이 첫 검사시죠? 기록이 좋게 나왔네요. 평소에 운동 좀 하셨나 봐요.”
 “헉, 허억! 웁! 포, 포션 주세요. 예쁜 누나, 사, 살려줘.”
 속이 다 울렁거린다. 생존 본능에 입 발린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그래도 효과가 있는지 검사원이 꺄르륵 웃더니 주머니에서 한약처럼 생긴 팩을 꺼낸다.
 “드세요.”
 “고맙습니다.”
 친절하게 끝을 잘라 빨대까지 꽂아줬다. 목도 말랐기에 정신없이 빨아 먹었다. 한혁이 끝까지 마실 동안 들고 있어 준다.
 거짓말처럼 호흡이 진정된다. 조금씩이지만 생기가 돌아온다. 마치 열심히 운동한 후 찜질방에 갔다가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가슴이 트이며 개운하다는 생각이 든다.
 검사원이 안전핀을 꽂고 팔다리에 걸린 쇠사슬을 풀어준다.
 “그럼 5분만 쉬고 다음 테스트로 가죠.”
 “시, 십 분만.”
 “안 돼요.”
 한혁이 불쌍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무슨 일이야
 
 
 
 
 
 능력치 검사실의 문이 열린다.
 “다음에 또 와요. 한혁 씨.”
 “히익!”
 검사원 한수정이 한혁의 엉덩이를 때리며 내보낸다. 질린 표정의 한혁과 다르게 수정의 표정은 신나 보인다.
 들어갈 때와 달리 묘하게 눈빛이 끈적인다. 그녀의 가늘고 날카로운 이미지와 합쳐지니 먹이를 앞둔 뱀 같은 느낌이다.
 “그세 친해졌나 보군요. 상당히 차갑게 구시는 분인데. 이곳에서도 수정 씨랑 친한 사람은 몇 없거든요.”
 “친해 보였어요? 아, 안 돼.”
 이 팀장의 말에 한혁이 몸서리친다.
 능력치 검사는 고통 그 자체였다. 마치 어떻게 해야 각성자들을 더 괴롭힐 수 있을까 연구의 연구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 같다고 할까. 그걸 담당하던 한수정은 그 의도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체력 검사한다고 등에 전기 충격기를 달더니 달리기를 멈출 때마다 등을 지지고, 민첩성 검사를 할 때는 사방에서 화살이 쏘아지는 방에 가두더니 본인도 심심할 때마다 단검을 던져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칼이었다.
 그 밖에 자질구레한 검사 때마다 포션은 만능이라며 학대(?)를 해댔다. 그러고는 탈진해 축 늘어져 있으면 애정 어린 손길로 어루만져주며 포션을 먹여 줬다. 약간 호흡이 거칠었던 것도 같고. 처음으로 여자를 상대로 ‘이 사람은 위험해!’ 라고 생각한 한혁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한계까지 쥐어짜낼 수 있었지만요.”
 “뭔지 대충 알 거 같네요. 걱정 마세요. 보통 저런 식으로 측정하지 않으니까요. 아마 한혁 씨가 이곳에 처음 왔다니까 장난을 친 걸 겁니다.”
 “장난이요?”
 “안 실려 나왔잖아요.”
 그게 장난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진짜 악의를 가지고 검사를 진행한다면 무슨 짓을 할까.
 자신도 모르게 팔을 쓰는 한혁의 등을 이한철이 두드린다. 한혁이 뭔가 떠오른 듯 이한철 팀장의 손을 잡는다. 간절함이 담겨 있다.
 “마정석 먹고 나면 또 검사해야 되죠?”
 “당장은 아니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해야겠죠.”
 “그럼 그전에 다음 검사는 살살해 달라고 해주시면 안 돼요? 팀장이잖아요.”
 “저도 무섭습니다.”
 고개를 젓는다.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도 각성자는 아니었지만 팀장의 위치에 있었기에 능력치 측정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각성자 판정을 받아 특채로 특수재난부에 들어온 신입이 그 대상이었는데 상당히 까부는 성격이었다. 깐족거림은 수정 씨에게도 이어졌고.
 ‘내가 각성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지.’
 신입은 측정 30분 만에 실려 나갔다. 나중에 일반적인 측정을 받고 당했다는 걸 알았지만 혼자 방방 날뛸 뿐 찾아가서 따지지는 못했다. 그만큼 한수정에 대한 공포가 각인됐으니까.
 지금도 어쩌다 마주치면 허리가 90도가 되도록 인사를 한다.
 “그보다 결과부터 봅시다.”
 팀장이 한혁이 쥐고 있던 검사지를 살핀다. 역시나. 오늘 각성했다고 믿기 힘든 점수가 나왔다.
 근력-37
 체력-31
 민첩-39
 마나레벨-Lv.1
 일반인의 평균이 10이다. 운동을 많이 했다는 사람도 수치가 15를 넘지 못했다. 현재 한혁의 수치는 D급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 헌터스쿨에서 교육을 받고 평균 2년은 굴러야 E급에서 벗어난다는 걸 생각해 봤을 때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밑으로 신체적 결함 여부와 잡다한 부가 설명이 이어졌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특이 사항이 비어 있다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아직 능력을 개방하진 못했군.’
 각성자는 기본적으로 초인이었지만 한두 개쯤 자신만의 고유 능력이 개방된다. 능력이 생기는 이유는 밝혀진 게 없으나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가장 갈구하는 것이 구현화되는 거라는 의견이 많았다.
 초기에는 능력의 개수가 강함의 척도였다. 다양한 능력을 가지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덕분에 간혹 등장하는 다중능력자가 우대받았었다.
 지금은 아니다.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 노력한다고 능력이 생기는 일은 없었고, 두 번째, 전쟁을 거치면서 능력의 개수와 강함은 별개라는 것이 증명됐다.
 결국 강한 놈이 강한 거다.
 검사 결과를 부장한테 찍어 보낸 팀장이 시간을 확인한다. 사건이 발생한지 4시간이 지났다.
 “능력치 검사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됐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기사를 내보내야 해서. 마정석은 잠시 후에 드리도록 하죠. 3층에 카페가 있으니 그곳에서 잠시 쉽시다.”
 “좋죠. 저도 검사하고 나오니까 진이 다 빠지네요.”
 한혁도 잠시 쉬자는 말에 동의했다. 생각해 보니 몬스터와 전투한 후로 제대로 쉰 적이 없다. 능력치 검사를 하며 마신 포션 덕분에 육체적으로는 피로가 풀렸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그대로다. 카페인이 필요했다.
 커피 두 잔을 시킨 후 이한철 팀장은 자기 몫의 커피를 들고 전화 통화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
 카페라떼를 빨며 웹툰을 감상하던 한혁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민우다. 시간을 보니 수업이 끝날 타이밍이다.
 “여보세요.”
 
 - 야! 괜찮냐! 살아 있어?
 
 갑작스레 들려오는 고함에 한혁이 귀를 뗀다. 청각이 예민해져서 귀가 저릿하다.
 “방금 고막 터져서 죽을 뻔했다.”
 
 - 살아 있구나. 와, 수업이 이제 끝나서 지금 문자 봤다. 이동 던전 터진 곳 네가 알바하는 곳 아니냐?
 
 “맞아. 덕분에 앞으로 일 안 나가도 된다. 아, 그러네. 알바 안 가도 되니까 이따 볼까?”
 
 - 미친놈. 이 상황에 술이 넘어 가냐. 나중에 사줄 테니까 몸이나 챙겨라. 몬스터 만나고 살아남은 게 기적이야, 인마.
 
 “기적은 무슨. 나 멀쩡하니까 걱정 마시고, 근처 PC방이나 가 있어라. 형이 오늘 돈 좀 생겼다. 아침에 깨워준 답례로 맛있는 거 사줄게.”
 
 - 내가 미쳤다고 헤어진 놈한테 얻어 먹냐.
 
 민우의 말에 한혁이 멈칫한다. 잊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헤어진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멀쩡히 잘 있다.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다 잊었다. 정신없으니까 생각도 안 나더라. 이별 별거 없네.”
 
 - 후우, 힘내, 새꺄.
 
 “힘은 넘친다, 친구야. 형이 오늘부로 각성자 됐거든.”
 
 - 그래, 그래. 많이 심란할 텐데 푹 쉬고 있어라.
 
 넌지시 각성자임을 알려서 놀라게 하려 했는데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넘어간다. 때마침 전화를 끝낸 이한철이 안으로 들어온다.
 “좀 늦었네요. 준비한 기사 내용을 약간 수정해야 돼서요. 아, 통화중이시면 잠시 비켜드릴까요?”
 “괜찮아요. 기사 나갔어요?”
 “기본적인 틀은 이미 짜놨으니까요. 지금쯤이면 몇 군데 올라왔을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치자 그의 말대로 기사가 나왔다. 맨 위 기사의 주소를 복사에 민우에게 보낸다.
 “문자 봐라. 난 할 일이 있어서 이만.”
 민우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는다. 곧 이어 전화가 울렸지만 가볍게 씹어줬다. 문자가 연달아 몇 개가 오더니 너네 집으로 가 있겠다는 말을 끝으로 진동이 멈춘다.
 “어디 기사를 한 번 봐볼까요?”
 한혁도 어떤 식으로 기사가 나갔을지 궁금했다. 본인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기사는 처음이었으니까. 생소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전체적인 내용은 말했던 대로다. 위기에서 천재의 등장. 그걸 증명하는 마나 레벨 검사지. 몬스터와 싸우는 cctv 동영상은 벌써 뷰튜브에도 올라가 있었다.
 능력치 검사 결과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학교만 밝히고 이름을 동반한 신상 정보는 숨겼지만 동영상만 봐도 알 사람은 다 알았을 거다. 사장님이랑 같이 일했던 알바들이야 그 자리에 있었으니 당연히 알거고.
 앞으로 학교 다닐 때 고생 좀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사를 내리던 한혁이 미간을 좁힌다.
 “이건 뭐죠?”
 한혁이 기사의 하단 부분을 가리킨다.
 
 - 위 학생은 일전에도 시민들을 괴한으로부터 보호한 전적이 있으며 이는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는 영웅적인 면모로 보인다. 이에 특수재난부 최 씨는 우리가 바라던 인재라며 국가 소속 헌터로 영입해 전폭적인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맨 밑에는 뷰튜브, 신림역 소드마스터로 가는 링크가 달려 있다.
 “전 국가 소속이 되겠다고 한 적 없는데요. 애초에 헌터 일을 하겠다고 말한 적도 없거든요?”
 “압니다. 하지만 저는 꼭 한혁 씨를 잡고 싶습니다. 기사에서 말한 전폭적인 지원은 헛된 말이 아닙니다. 대형 길드에서 키우는 루키보다 많은 지원을 받으면 받았지, 부족할 일은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 생기는 모든 던전의 관리는 저희가 맡고 있어요. 한혁 씨에게 가장 적합한 던전을 몰아줄 수 있다는 뜻이죠. 그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시켜드리겠습니다.”
 사실 한혁도 헌터 일을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 시대에 대학을 나와 취직을 해봤자 먹고사는 건 힘들었으니까. 그나마 인문계에서 취업이 잘된다는 경영학과를 다니고는 있지만 막막하기는 매한가지다.
 무엇보다 자신의 성격에 회사를 잘 다닐지도 의문이었다. 얌전히 컴퓨터를 두드리면 좀이 날 것 같았고, 상사한테 필요 이상으로 털리면 상사의 주둥아리를 털어버릴 것 같다. 간신히 참더라도 화병으로 쓰러질 것 같고.
 그럼에도 쉽사리 헌터 일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한혁이 말이 없자 이한철 팀장이 계속해서 말한다.
 “국가가 한혁한테 바라는 건 하나뿐입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 하나요. 길드는 다릅니다. 그들은 이익집단이에요. 돈만 된다면 어디든지 보낼 것이고 돈이 안 된다면 가차 없이 버릴 사람들입니다.”
 “좀 더 생각해 볼게요. 작은 아버지와도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렇군요.”
 마음 같아서는 더 밀어붙이고 싶지만 지금은 생각할 틈을 줘야 할 때다. 지금 닦달해 봤자 좋은 결과는 얻기 힘들다.
 팀장이 일어선다. 한혁도 따라 일어선다.
 “모쪼록 헌터 일에 관심이 생긴다면 저희에게로 와주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미 특수재난부는 한혁 씨에게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무슨?”
 “최하급 마정석 말고 중하급 마정석을 준비했습니다. 더 좋은 걸 준비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 한혁 씨의 능력으로는 이정도도 전부 소화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하급 마정석. 기본 억 단위의 물건이다. 그걸 준비하다니. 한혁이 입을 벌린다.
 한혁의 반응에 미소 지은 팀장이 한혁을 데리고 간다. 맨 처음 각성자 검사를 받았던 건물이다. 직원 전용 통로로 건물을 가로지르자 병원 같은 느낌의 공간에 도착했다.
 거기까지 한혁을 데려다준 이한철이 명함을 꺼낸다.
 “오후에 드린 명함은 아까 능력치 측정할 때 구겨졌겠죠. 새로 하나 드리겠습니다. 섭취는 금방 끝나니까요. 전 밖에 차를 끌고 오도록 하죠. 집까지 태워주기로 했잖아요.”
 “네. 알았어요.”
 팀장이 주차장으로 간다. 한혁도 마정석 주입실로 들어간다.
 안에는 의사 가운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색 테이블 위에는 한혁을 위해 준비한 중하급 마정석이 올려 있다. 주변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이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다.
 중년의 남자가 자리를 안내한다.
 “안녕하세요, 한혁 씨. 마정석 주입은 간단해요. 이 기계와 연결하면 끝이거든요. 직접 삼키는 방법도 있는데 그건 흡수율이 좋은 사람한테만 가능한 거라서요. 간단한 검사 좀 할게요. 따끔합니다.”
 자기 할 말을 재빠르게 끝낸 의사가 고무줄로 한혁의 한쪽 팔을 묶더니 능숙한 손짓으로 피를 뽑는다.
 실린더에 담긴 피를 기계에 넣고 흥얼거린다. 5분 정도 걸릴 거라는 말에 한혁이 의자 옆에 놓인 안내 책자를 뒤적인다.
 봐도 재미없다. 마정석으로 눈길이 간다.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다.
 “이거 마정석 만져 봐도 돼요?”
 “뭐 상관없습니다. 닳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본인이 흡수할 거니까요.”
 의사의 허락을 받고 마정석을 구경한다. 보석처럼 차가우면서도 이상한 열기가 느껴진다. 붉으면서도 보라색이 섞여 있고. 엄지손톱만한 마정석을 손 안에서 굴린다.
 “아, 이런.”
 의사가 탄식한다.
 “무슨 문제라도?”
 “한혁 씨, 혹시 최근에 마정석을 흡수한 적이 있나요?”
 “예? 오늘 각성했는데 무슨 마정석이에요.”
 “그런데 왜 이러지. 진짜 맞아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무작정 많이 먹으면 좋은 줄 아는데 아니에요.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하면 부작용이 생겨요. 몸에 부담이 가서 장기에 손상이 오거나 쇼크사로 죽기도 해요. 그렇게 죽은 사람 꽤 많습니다.”
 “아니 정말로. 밥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마정석 살 돈이 어딨어요.”
 “아무튼 안 돼요. 송장 치우기 싫습니다.”
 괜히 해주기 싫어서 땡깡 부리는 게 아닐까 의심하는데 한 가지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설마 철갑게?’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우연하게 자신이 먹은 철갑게에 마정석이 있었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끔찍했던 복통. 이상하리만치 높이 나온 마나 레벨.
 스쳐 지나는 또 다른 생각. 방금 봤던 책자를 다시 읽는다. 일반인이 검사 없이 마정석을 먹으면 안 되는 이유.
 등으로 식은땀이 흐른다.
 ‘내가 마나 레벨이 없었으면 장애인이 됐을 거란 거잖아. BJ새끼 만나기만 해 봐라.’
 한혁이 속으로 이를 가는 사이 의사가 마정석을 도로 가져간다.
 “이건 보관해 둘 테니까 6개월 뒤에 다시 오세요.”
 “오, 맡아도 줘요?”
 “이미 계산은 다 했으니 상관없습니다.”
 의사의 말에 한혁이 쿨하게 일어선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팀장의 차를 얻어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김현주. 전화 한 번 없던 전여친이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한혁이 결정을 내렸다.
 “여보세요. 현주야, 기사 보고 전화하나 본데 너랑 다시 만날 생각 없다.”
 
 - 한혁아.
 
 “어?”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울음 섞인 목소리. 영상전화가 걸린다. 승낙을 누르자 현주의 얼굴이 보였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입가에 피딱지가 붙어 있다. 눈이 그렁그렁해지더니 굵은 눈물을 흘린다.
 “도와줘.”
 
 
 빨리 가줘요
 
 
 
 
 
 맹렬한 기세로 뛰어온 한혁이 거칠게 자동차 문을 열었다.
 팀장이 깜짝 놀랐지만 힘이 넘쳐 주체를 못하는 거라고 판단했다.
 “어때요. 효과는 괜찮던가요?”
 “못 먹었어요. 일단 성수동으로 가주세요. 빨리!”
 한혁의 외침에 팀장이 시동을 건다. 다급함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에 팀장이 한혁을 살핀다.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욕을 뱉고 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게, 아. 아니에요. 일단 가주세요. 가면서 설명할게요.”
 뭔가 말하려던 한혁이 입을 다문다. 머리를 쓸어 올리며 현주와의 이야기를 되씹는다.
 
 * * *
 
 지금으로부터 20분 전. 현주는 평소와 같이 성수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 이거 또 망가졌는데요.”
 현주가 제빙기를 두드리며 말한다. 그의 말대로 얼음이 가득 차 있어야 할 통 안에는 물난리가 나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일한지 2년 되던 해, 매니저라는 직책을 가진 후부터 조금씩 제빙기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한 달에 서너 번씩 전원이 꺼졌다.
 빼꼼 고개를 들어 확인한 사장이 머리를 긁는다.
 “어쩔 수 없지. 친구네 갔다 오자.”
 “에휴, 그니까 AS를 하던지 새로 하나 사시라니까요.”
 “아직 쓸 만해. 나중에 바꾸지 뭐.”
 투덜거리면서도 속으로는 신이 났다. 앞치마를 풀어 행거에 걸고 슬라이딩금고에서 택시비를 꺼낸다.
 처음에는 근처 카페에서 얻어왔지만 이런 일이 반복하자 얻어오는 데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사장의 친구가 한다는 가게에서 얼음을 얻어오게 됐다.
 그때 마다 사장은 택시비와 함께 수고비랍시고 5만 원씩 쥐어줬다. 처음에는 무슨 수고비를 주나 싶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은 내심 제빙기가 망가지기를 바라는 입장이었다.
 “그럼 갔다 올게요.”
 “잠깐만. 나도 같이 가자.”
 카페를 나서려는데 사장이 따라 나온다. 모자를 쓰고 있어 눌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헝클인다.
 “사장님. 자리 비우셔도 돼요?”
 지금 카페를 지킬 사람은 현주와 사장 둘뿐. 다음 알바가 오려면 3시간은 지나야 한다.
 사장이 열쇠로 카페 문을 잠근다. 그 사이 현주가 택시를 잡았다.
 “어차피 손님도 없어. 그냥 간만에 친구나 보고 오련다.”
 “손님이 없기는 없죠.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에요?”
 “망하기는. 그럴 일 없어.”
 현주의 농담에 사장이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한다.
 친구의 가게까지는 택시로 5분 거리. 잡담을 나누니 금방 도착했다. 계산을 치르고 골목으로 들어간다. 근처에 회사도, 아파트도 없어 상권으로는 영 아닌 곳이다.
 사장의 카페 또한 손님이 많이 올 위치는 아니었다. 이런 걸 보면 둘이 친구는 친구구나 싶은 현주였다. 물론 눈에 안 띄는 걸로는 친구의 가게가 앞섰지만.
 “으, 진짜. 친구 분한테 간판 좀 바꾸라고 해요. 좀 크고 깔끔하게. 밑에다 cafe라고도 좀 적고. 아니다. bar라고 적어야 하나.”
 “지가 알아서 하는 거지 뭐.”
 현주의 말대로 사장 친구의 카페는 보더라도 지나치기 일쑤였다. 통유리는 코팅되어 안이 보이지 않았고 간판이라고 붙여 놓은 건 영어를 휘갈겨 쓴 느낌이라 뭐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당장 현주도 이곳을 찾는데 꽤 고생했었다. 누가 이런 곳이 카페라고 생각할까. 다방도 이 정도는 아니다.
 “야! 나 왔다.”
 “왔냐. 오! 현주도 왔구나.”
 “안녕하세요!”
 사장이 거침없이 문을 열자 사장의 친구 김태만이 심드렁하게 답한다. 그러다 현주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든다.
 안에서 의자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또한 현주에게 아는 체를 한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에이, 지영 언니. 저번 주에도 왔잖아요. 헤헤. 음? 오늘은 예은 언니가 안 보이네요?”
 “아. 예은이는 오늘 약속이 있어서.”
 “오, 남친 만나라 간 거예요?”
 “하하, 뭐 비슷하지.”
 “썸이네. 하긴, 예은 언니가 워낙 예쁘니. 남자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죠.”
 6개월간 오가며 김태만과 이곳의 직원들과도 제법 친해졌다. 현주가 직원들에게 한눈이 팔린 사이 김태만이 속삭인다.
 “그런데 왜 둘이 왔어?”
 “이제 슬슬 말할 때 됐잖아. 다음 작업 넘어가야지.”
 “그렇다면야. 아, 잠깐만.”
 고개를 끄덕이던 김태만이 인상을 쓴다. 수첩을 꺼내더니 빽빽하게 적어 놓은 일정을 확인한다.
 “좀 있으면 호재 형님 오시는데.”
 “어쩐지 예은이가 안 보이더라니.”
 “호재 형님 걔만 찾잖아.”
 “으흐흐, 잘됐네. 이번 기회에 눈도장 찍어야지. 그 형님 한 번 꽂히면 끝까지 가니까.”
 “하긴 저 정도면.”
 사장의 눈이 스산하게 빛난다. 그의 말에 김태만도 입술을 훑더니 현주의 뒤태를 훑는다. 긴 생머리에 가는 팔. 허리도 적당히 잘록하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꽉 찬 히프.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예술이다.
 그의 시선을 느낀 현주가 뒤돌아본다. 눈이 마주치자 둘이 시선을 돌린다. 현주가 어색하게 웃는다.
 “아하하, 얼음 가지러 온 거였지. 죄송해요. 오랜만에 언니들 만나서. 헤헤.”
 “괜찮아. 어차피 친구랑 얘기 좀 하다 가려했어. 너도 올라가자.”
 사장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킨다.
 “예? 저도요? 전 그냥 여기서 언니들이랑 있어도 되는데.”
 “너 월급 관련해서 할 얘기도 있어.”
 “오오, 사장님 저 월급 올려주시게요?”
 “올려줘야지. 앞으로 계속 일할 텐데.”
 월급 얘기에 현주의 얼굴이 밝아진다. 너무 들떴기 때문일까, 자신과 떠들던 지영의 표정이 순간 굳는 걸 보지 못했다.
 김태만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주머니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열쇠를 꺼낸다. 현주에게는 2층은 밤 장사를 할 때 사용한다고 말해 뒀었다. 그 말에 현주는 위층이 술집이라고 알고 있었다.
 반쯤 계단을 올라간 김태만이 아래에 있는 지영을 부른다. 지영이 움찔한다.
 “커피 세 개만 타다 주라. 아이스 아메리카노, 알지? 아이스. 얼음 많이 넣어라.”
 “······네.”
 지영이 작게 대답한다.
 위층은 홀이 있고 그 뒤로 복도식으로 방이 늘어져 있는 구조였다. 살짝 붉은 빛을 뿜는 부분 조명이 흐릿하게 공간을 밝힌다.
 알 수 없는 위압감에 현주가 주춤했지만 뒤따라 들어오는 사장에 의해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은 사장이 홀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김태만은 선반에 있던 음료수 캔을 까더니 컵에 따른다.
 사장 옆에 앉은 현주가 빠르게 주변을 살핀다. 깔끔하지만 뭔가 어색한 색감의 벽지들. 통로에 이어져 있는 문은 고급스러웠으나 문 사이에 달린 식물과 다양한 색체로 덮은 그림들은 삐뚤게 걸려 있다.
 조화롭지 않다. 마치 취한 사람이 인테리어를 한 듯한 기시감.
 현주가 반사적으로 코를 훔친다. 들어오면서부터 느껴지는 냄새 때문에 코가 간지럽다. 달짝지근한 냄새와 식초 냄새, 금속 냄새가 뒤섞인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본능적으로 이곳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쩍 몸을 일으킨다.
 “사장님. 아무래도 카페를 비워 두는 건 좀 그런 거 같아요. 제가 매니저다보니까. 아하하, 그 손님도 별로 안 오는데 한 명이라도 더 받아야죠. 두 분이서 편하게 얘기 나누세요.”
 생각나는 대로 말을 뱉은 현주가 빠르게 문으로 몸을 옮기는 순간 사장이 현주의 팔을 잡아 당겼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균형을 잃은 현주가 소파에 넘어진다. 사장이 현주의 허리를 껴안더니 엉덩이를 주무른다.
 “꺄악!”
 “흐흐, 상상 이상인데?”
 사장이 몸부림치는 현주를 더 강하게 안는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모습은 사라지고 음흉한 모습만 남았다. 번들거리는 눈은 가슴을 살피고 있었고 다른 손은 허벅지에 올라갔다.
 소름이 돋은 현주가 사장의 가슴을 밀친다.
 “뭐하는 거예요! 멈춰! 시, 신고할 거야!”
 몸이 떨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 모습에 사장이 테이블을 치며 웃는다.
 “푸하하! 신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러다 정색. 현주의 머리를 움켜쥐더니 뺨을 때린다. 고개가 홱 돌아간다. 입에서 피맛이 난다. 현주가 독기 어린 눈으로 사장을 노려본다.
 “내가 못할 거 같아?”
 “신고하면 너도 잡혀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윽!”
 앞에 앉아 있던 김태만이 몸을 숙여 현주의 턱을 잡아 고정시킨다. 주머니에서 하얀 가루가 든 비닐팩을 꺼내 보여준다.
 “이게 뭔지 알아? 얼음이야. 얼음.”
 “야야, 그렇게 말하면 알겠냐.”
 그의 말을 파악하지 못해 입을 다문 현주를 보고 사장이 천천히 설명한다.
 “이쪽 사람들은 이걸 아이스라고 불러. 한국어로 얼음. 마약쟁이들은 필로폰이라 부르는 물건이고.”
 “필로폰!”
 마약! 이쪽에 몸담고 있지 않아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마약이었다.
 “네가 한 달에 몇 번씩 옮긴 게 이거라고! 너도 공범이야.”
 “우, 웃기지 마! 난 그냥 얼음을 옮겼을 뿐이야! 안에 얼음밖에 없었다고.”
 “경찰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치?”
 현주의 눈이 흔들린다.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마약 운반에 가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냄새의 정체도 알 것 같다.
 급격한 두려움이 현주를 덮친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목이 메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던전이 나타난 후로 마약 유출이 심해진 건 알 거고. 덕분에 처벌이 강화된 건 알아? 잡히면 몇 년이더라. 최소 7년이던가.”
 “가게 안의 CCTV로 얼음통 옮긴 건 전부 찍혔을 거고. 거기다 운반비용까지 받았으니 이건 뭐 빼박이라고 봐야지?”
 “거짓말 하지 마! 내가 언제, 아!”
 수고비라고 받았던 5만 원!
 뒤통수가 얼얼하다. 금방이라도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머리가 하얘진다.
 “하하하하! 거봐! 너도 부인 못하겠지? 이미 넌 우리와 한배를 탄 거야. 알겠어, 파트너?”
 “어, 엄마.”
 “크흐흐! 엄마란다.”
 김태만이 이마를 치며 웃는다. 그 때 2층 문이 열리며 직원이 커피를 들고 온다. 조용히 커피를 테이블에 내린다.
 “언니도 알고 있었어요?”
 지영이 눈을 피한다. 트레이를 든 손이 작게 떨린다. 김태만이 필로폰을 꺼내 따라 둔 음료에 넣는다. 그가 손짓하자 지영이 옆에 앉는다. 김태만이 자연스럽게 그의 몸을 주무른다.
 ‘언니도 당했구나.’
 “자자, 너무 걱정 말라고. 마셔. 도움이 될 거야.”
 사장이 현주에게 커피를 밀더니 본인도 마신다. 김태만도 마찬가지. 지영도 눈을 꾹 감더니 김태만이 따라 놓은 음료를 마신다.
 현주의 시선이 자기 앞에 놓인 커피에 고정된다.
 약 기운이 슬슬 올라오는지 입 근육을 꿈틀거리며 눈을 끔뻑이는 사장이 키스를 하려고 현주의 목을 잡는다. 현주가 반사적으로 밀쳐내자 힘없이 테이블에 누우며 실실 웃는다.
 “너도 앞으로 이곳에서 일하게 될 거야. 그 전에 내가 연습 좀 시켜주려는 거야. 내가 데리고 왔으니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으흐흐, 너무 정색하지 마.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야. 사람들이 말하는 대기업? 돈벌이로는 여기만 못하다.”
 사장의 말에 김태만도 거든다. 지영도 약에 취했는지 그에게 적극적으로 달라붙는다. 잠시 현주에게 눈길을 줬지만 이내 김태만의 목에 입을 맞춘다.
 ‘나도 저렇게 되는 걸까. 마시면 나아질까.’
 다시 커피에 눈이 간다.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가는 그 때 문이 벌컥 열렸다.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팔짱을 낀다.
 “야, 이놈들아! 난 오지도 않았는데 먼저 시작해!”
 “으아아. 호재 형님. 아이고오. 저희가 급해서 그만. 죄송합니다아아.”
 찬바람이 들어오며 냄새가 가신다. 정신이 든다. 이게 마지막 기회다! 어디서 나온 힘일까. 방금까지만 해도 쓰러질 것 같던 몸이 움직인다.
 맥없이 늘어진 사장의 손을 밀어버리고 호재의 옆을 지나친다. 호재가 현주를 슬쩍 봤지만 별 관심이 없는지 안으로 들어온다.
 “어? 어. 으음. 가면 안 되는데.”
 “시끄럽고. 예은이 어딨어?”
 “에헤헤, 예은이라면 이미 준비했습죠. 늘 쓰시던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래? 그럼 대마 하나 줘봐. 요즘 그거 태우면서 하는 게 좋더라고.”
 “안에 다 있습니다. 저희가 호재 형님을 모릅니까. 암요.”
 “새끼, 준비성 하고는. 내가 이래서 여길 못 끊지.”
 김태만의 머리를 쓰다듬은 호재가 복도 맨 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허억! 허억! 흐윽!”
 밖으로 도망친 현주가 벽을 잡고 눈물을 쏟아낸다. 무서웠다. 이제 어떡하지. 경찰에 신고할까. 그러면 내 인생은? 부모님한테? 어떻게 말해.
 떨리는 손으로 무작정 핸드폰을 잡고 있던 현주에게 친구에게서 온 문자가 보였다.
 
 - 야! 네 전남친 각성자 됐대! 지금이라도 빨리 잡아!
 
 “하, 한혁!”
 한혁이라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른다. 지워버렸지만 잊지 못했던 번호로 전화를 건다.
 
 
 우연이네. 나도 그런데
 
 
 
 
 
 성수동 골목. 현주가 말해 준 위치에 도착하자마자 한혁이 뛰어내린다.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다시 잡혀간 건 아닐까 다급히 골목을 뒤진다.
 “현주야! 야! 어딨어!”
 “한혁아!”
 한혁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근처 건물 화장실에 숨어 있던 현주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비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눈물 범벅이 된 현주가 한혁을 끌어안는다.
 안심이 됐던 걸까. 입을 틀어막고 있던 현주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한혁이 꼭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괜찮아. 나 왔잖아.”
 한혁이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많이 무서웠을 거다. 천천히 등을 두드려주며 속에 담긴 게 모두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올라올 때 풀지 않으면 응어리가 지니까. 현주와 연애를 하며 배운 일이었다.
 “흑! 고마워. 염치없지만 너 말고 부탁할 사람이 없었어. 미안해.”
 “됐어. 나도 헤어졌다고 이런 일에 관심 끌 정도로 매정하진 않으니까. 사귀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친구였어도 왔을 거야.”
 “그래. 넌 그런 사람이었지.”
 ‘다른 사람한테도 나처럼 대하는.’
 울음을 그친 현주가 한혁의 품에서 떨어진다. 그러다 자신의 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서둘러 세면대로 향한다. 화장은 이미 수습 불가. 코를 풀고 세수를 한다. 그 사이 한혁이 화장지를 뜯어 건넨다. 겸사겸사 자신의 옷에 묻은 화장과 눈물 콧물도 닦고.
 좀 진정이 됐는지 코를 훌쩍이며 호흡을 가다듬는 현주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다. 갓길에 주차를 해놓은 이한철이 손을 든다.
 한혁만 온 줄 알았던 현주가 한혁의 손을 잡는다.
 “누구야?”
 “특수재난부 팀장. 내가 갔다 올 때까지 저 사람 옆에 있어. 특수재난부를 상대로 시비 걸 놈들은 없으니까.”
 “정말 각성자가 됐구나.”
 실감이 안 난다. 어제만 해도 평범했는데.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팀장한테 가자 그가 악수를 건넨다. 당황했지만 현주도 손을 맞잡는다.
 “특수재난부 팀장 이한철이라고 합니다.”
 “김현주라고 해요.”
 “팀장님. 그럼 잠시 현주 좀 지켜줘요.”
 현주의 어깨를 두드려 준 한혁이 손목을 풀며 몸을 돌린다. 마약굴의 위치는 이미 알아 놨다.
 팀장이 현주를 차에 태우더니 자신도 운전석으로 들어간다. 창문을 내리고 한혁에게 소리친다.
 “진짜 들어갑니까? 문제 생길 거 같으면 그냥 나와요. 경찰 부르면 되니까.”
 “경찰은 안 돼요!”
 현주의 외침에 팀장과 한혁이 뒤돌아본다. 한혁이 웃으며 양손을 들어 올린다.
 “걱정 마세요. 들어보니 전부 일반인이던데. 간단하게 겁만 주고 올게요.”
 “일반인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 조직입니다.”
 “깡패들도 똑같아요. 다 해봤으니까 걱정 마십쇼.”
 “예?”
 도대체 뭘 해봤다는 걸까. 팀장은 사무실로 돌아가는 즉시 한혁의 뒷조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맞다! 팀장님!”
 손을 흔들며 멀어지던 한혁이 창문을 닫는 팀장을 멈춰 세운다. 팀장이 고개를 내민다.
 “영 아니다 싶으면 팀장님 이름 좀 팔게요. 그럼!”
 “제 이름은 왜! 한혁 씨! 잠깐만!”
 팀장이 뒤늦게 소리쳤지만 한혁은 이미 골목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하여간 제멋대로다. 골이 아파진 팀장이 핸들에 머리를 박는다. 좋게 생각하자. 이번 일을 빌미로 확실히 국가에 발을 묶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름을 팔아도 좋다. 그렇다면 국가 소속 헌터 최한혁, 등장부터 마약 현장 덮쳐! 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써버리면 되니까.
 일반인 사건은 특수재난부가 아닌 경찰 담당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협조를 요청하면 될 거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특수재난부는 던전과 헌터에 관한 업무만 처리하지, 경찰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헌터는 인류를 지키는 영웅이라는 인식이 있어 생긴 오해일 뿐.
 시트에 몸을 눕힌 이한철이 룸미러로 현주를 살핀다. 쭈뼛거리며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
 “현주 씨.”
 “네, 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팀장의 말에 사색이 된다. 그 또한 특수재난부와 경찰을 동일시하는 사람이다. 몸을 웅크리며 겁먹은 얼굴로 쳐다본다.
 “저, 저는 잘못한 거 없어요.”
 “그건 들어서 압니다. 팔 줘 봐요.”
 현주의 양팔과 손을 확인한 팀장이 현주의 얼굴을 구석구석 살핀다. 안구이동이나 입 경련, 동공수축이나 확장은 보이지 않는다.
 “팔은 깨끗하네요. 거기서나 일하던 곳에서 사장이 준거 먹은 적 없죠?”
 “없어요.”
 “다행이네요. 본의가 아니더라도 마약을 했으면 법정에서 불리해졌을 겁니다.”
 “법정이요? 저 잡혀가는 거예요? 정말요?”
 당장이라도 울 것 같다. 팀장이 고개를 흔든다.
 “걱정 마세요. 단순히 이용당한 거라면 제가 손을 써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제 소속이 이렇다보니 경찰이든 군이든 연줄이 생길 수밖에 없어서요. 거기다 현주 씨는. 흠흠, 안 그래도 심란할 텐데 상기시켜서 죄송합니다만 성폭행 당하실 뻔 하셨고요. 그럼 기소유예로 넘어갈 겁니다. 빨간 줄도 남지 않으니 취업 활동에도 지장이 생기는 일은 없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주가 고개를 연거푸 숙인다. 그동안 걱정하던 것이 풀렸다.
 팀장이 별거 아니라며 손사래 친다.
 “현주 씨. 안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 아는 거 있으면 다 말해주시겠어요? 어찌됐든 마약범죄의 현장을 알게 됐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거든요. 만약 경찰 쪽 목록에 올라간 사람들이라면 담당 팀을 부르는 게 낫습니다.”
 “제가 일한 카페 사장 이름이 김주섭, 이곳 사장 이름이 김태만이에요.”
 경찰청 홈페이지에 들어간 이한철이 마약사범 리스트를 확인한다. 나오는 사람이 없다. 비교적 규모가 작거나 점 조직으로 퍼져나간 영업장 중 하나리라.
 현주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억을 되짚는다.
 “그리고 그 도망칠 때 왔던 사람, 호재. 성은 몰라요. 호재라고 했어요.”
 “호재요? 그 사람도 목록에 없는데. 잠깐! 설마.”
 그냥 경찰에 신고하려던 팀장이 특수재난부 자료실로 들어간다. 호재라는 이름을 들으니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헌터 중에서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둔 차트. 그 중 가슴과 골반에 문신을 한 남자, 박호재의 프로필을 띄운다.
 “혹시 이 사람입니까?”
 “마, 맞아요! 이 사람. 박호재. 폭행, 강간. C급 헌터!”
 범죄 이력을 살피던 현주가 기겁한다. 무려 C급 헌터. 사람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헌터의 기준이었다. E급은 일반인 보다 강하다. D급은 초인의 경계에 섰다고 말한다면 C급부터는 확실한 초인이다.
 “어, 어떡해! 팀장님! 한혁이 좀 구해주세요. 팀장이잖아요! 강하잖아요!”
 “골치 아픈데. 저도 일반인입니다. 제가 간다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게다가 각성자가 끼어들었다면 경찰로는 안 됩니다.”
 망설임 없이 단축키를 누른다. 그 번호로 GPS 위치를 보낸다. 상대방이 신호음이 두 번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는다.
 
 - 예, 특수테러본부입니다. 오, 이 팀장님 아니십니까? 뭔 일 있습니까?
 
 “마약 현장입니다. C급 헌터가 한 명 있어요. 위치 보냈습니다. 최대한 빨리 와주세요.”
 
 - C급이요? 그 정도야 뭐. 어디 보자. 거기까지 15분이면 갑니다.
 
 “더 빨리는 안 됩니까? 저희 쪽 애가 혼자 쳐들어갔어요. 정확히 저희 애는 아닌데. 한혁이라고 오늘 각성한 풋내깁니다. 어떻게 될지 몰라요.”
 
 - 어이구야, 또라이네. 그러면, 아아! 형님! 지금 전화 중! 이 양반은 늙지도 않나! 악!
 
 전화 너머가 소란스러워지더니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 야! 방금 한혁이라고 했냐! 그 기사에 나온 애?
 
 “두현 형님? 맞아요. 그 친굽니다!”
 
 - 좋았어. 내가 간다! 으하하하!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안 돼요, 형님! 걔는 저희가 점찍어 둔! 형님? 형님!
 전화가 끊겼다. 이한철이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내린다.
 “뭐래요. 어떻게 된 거예요! 한혁이는요. 설마 저 때문에 죽는 건!”
 뒷좌석에서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던 현주가 이한철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이한철이 정중히 손을 떼어낸다.
 “해결 됐습니다. 안심해도 돼요.”
 ‘그 양반이라면 3분이면 도착할 테니까.’
 전화를 끊은 사람은 도두현. 한국에 다섯 명뿐인 S급 헌터다.
 
 * * *
 
 코팅된 유리에 정체성 없는 간판. 찾았다, 현주가 말한 건물.
 “생긴 것부터가 존나 수상하게 생겼네.”
 문이 잠겨 있었지만 억지로 밀어버리자 유리문이 깨지며 열린다. 의자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비명을 지른다. 한혁이 그들을 주욱 스캔한다. 이들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 당장 자신이 어떻게 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한혁이 엄지로 출입문을 가리킨다.
 “다들 나가요. 오늘부로 여기서 일할 일 없을 테니까.”
 한혁의 말에도 테이블에 몸을 숨길 뿐 나가지 않는다. 한혁의 이마에 핏줄이 올라온다. 자기 앞에 있는 테이블을 잡더니 그대로 집어 던진다.
 천장으로 날아간 테이블이 형광등을 깨부수더니 천장에 박힌다. 한 손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괴력.
 “나가!”
 한혁의 호통에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간다. 조용해진 건물 안. 2층으로 올라간다. 겁만 준다고는 했지만 말로만 끝낼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두드려 맞아도 신고도 못할 테니까. 범죄자들의 숙명이랄까. 법의 울타리를 벗어난 자들은 다시 안으로 들어오려면 자신의 죄도 함께 가져와야 하는 법이다.
 거침없이 계단을 오른다. 역시나 잠겨 있는 문. 계단 난간을 붙잡고 발길질을 한다. 한 번, 두 번.
 
 - 콰앙!
 
 우그러들던 철문이 경첩과 함께 날아간다. 헐벗은 채로 뒹굴던 남녀 세 명이 하던 짓을 멈추고 한혁에게 고개를 돌린다.
 “강간범은 다 뒤져야 돼.”
 약에 취했음에도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김태만과 김주섭이 주섬주섬 옷가지로 몸을 가린다. 소파에 늘어진 지영은 신음하며 일어서지 못한다.
 “으으, 응? 오늘 손님 더 없는데. 저 새낀 뭐야.”
 “너, 너 뭐야!”
 “그건 알거 없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한혁이 레프트 훅을 날린다. 턱뼈가 빠지며 날아간 김주섭이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기절한다.
 자리에 주저앉으려는 김태만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고정시킨 한혁이 그의 사타구니에 니킥을 꽂는다.
 “어! 어흑!”
 두 눈을 부릅뜨고 부들거리는 김태만의 뺨을 후려친다. 짝! 하고 찰진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는다. 볼에 남은 선명한 손자국이 시커멓게 물든다.
 한혁이 그가 쥐고 있던 옷을 집더니 지영의 나체를 가린다.
 “니들 몸만 몸이지. 새끼들아. 배려가 없어.”
 교육은 이제 시작이다. 테이블을 눕히고 바닥에 널브러진 바지를 로프 삼아 기절한 김주섭과 김태만을 묶어 고정시킨다.
 선반 아래에 위치한 미니 냉장고에서 페트 음료를 꺼내 한 모금 마시고 두 사람에게 붓는다. 차가운 감촉에 정신을 차린다.
 “어, 풉푸.”
 “아으아아.”
 김태만이 부러진 이를 몇 개 뱉어내고, 턱이 나간 김주섭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낸다. 약 기운에 고통이 심하지는 않지만 본인들이 묶여 있는 건 보이나 보다.
 한혁이 둘의 손가락을 하나씩 잡는다.
 “만나서 반가워.”
 
 - 뚜둑! 뚜드득!
 
 “끄아아윽! 내 손가락!”
 “으어아아!”
 손가락을 꺾어버린 한혁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인다. 이제야 대화할 상태가 됐다. 정신 나간 놈들이랑은 대화를 할 수 없으니까.
 “짧게 말할 게. 오늘부로 영업 끝이야. 알았냐?”
 “저, 저희한테 왜 이러시는 건데요.”
 “내가 묻고 싶다! 왜 평범하게 잘 사는 애를 괴롭혀!”
 “헉! 으아악!”
 수차례 뺨을 때린 한혁이 김태만의 정강이를 밟아 부러트린다. 김태만이 기형적이 각도로 꺾인 다리를 보며 비명을 지른다.
 약기운을 몰아내고 조금씩 느껴지는 통증이 지금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알려줬고 마음에서 올라오는 공포는 그에게 끔찍한 환상으로 나타난다.
 끈적한 피를 질질 흘리는 그를 놔두고 김주섭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돌아간 턱을 들썩거리며 고개를 흔든다. 도망치려 해도 몸이 고정되어 있다. 김주섭의 턱을 잡고 강제로 원상복귀 시킨다. 빠득하고 뼛소리가 났지만 그걸 걱정해 줄 사람은 없었다.
 “네가 사장이지? 몇 번 봐서 기억난다. 넌 나 기억하냐?”
 주섭이 도리질 친다.
 “현주. 네가 작업했다며.”
 “아닙니다. 얘, 얘가 한 거예요.”
 “지랄.”
 싸대기로 입을 다물게 한 한혁이 주머니에서 이한철의 명함을 꺼낸다. 그의 눈앞에 들이댄다.
 “뒤지기 싫으면 알아서 자수하자. 내일까지 안 하면 다른 사람들이랑 다시 온다.”
 “트, 특수재난부!”
 그가 놀라거나 말거나 한혁이 로프로 사용한 바지에서 그들의 지갑을 꺼내더니 주민등록증을 하나씩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이걸로 집 주소 및 개인정보는 확보했다.
 “내일 확인할 거니까. 똑바로 해. 도망가면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김주섭의 뒤통수를 때리고 굽히고 있던 허리를 편다.
 소파에 누워 있던 지영이 조금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든다. 옷이 흘러내리는 소리에 한혁이 뒤돌아본다.
 “깼어요? 일단 나갑시다.”
 “꺄아아아악!”
 “아!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좀.”
 한혁의 뒤로 피투성이가 된 두 남자를 본 지영이 비명을 지른다. 한혁이 귀를 막으며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 쾅!
 
 “왜 이렇게 시끄러워! 다들 미쳤어!”
 복도 끝 문이 박살나더니 양말만 신은 박호재가 인상을 쓰며 다가온다. 장식으로 놔둔 도자기를 한 손으로 쥐고 한혁을 향해 들더니 그대로 깨트려버린다.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
 “으그극! 넌 끝났어! 호재 형님은 각성자라고!”
 설마 손님이라고 했던 게 각성자일 줄이야.
 한혁이 헛웃음을 치더니 천천히 테이블을 잡는다.
 
 - 끼기기긱!
 
 한혁이 힘을 주자 철제테이블이 반으로 접힌다. 박호재의 눈이 가늘어진다.
 “우연이네. 나도 그런데.”
 
 
 사람을 패니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호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가볍게 몸을 튕기더니 몸을 굽히며 총알같이 달려든다.
 “건방진 새끼!”
 좌측으로 빠지면서 크게 라이트 훅! 한혁이 급하게 몸을 비틀며 엎드린다. 머리를 스치며 주먹이 지나간다. 뒤통수가 간지럽다.
 복도 쪽으로 몸을 빼며 호재를 경계한다.
 “제길, 너무 빠른데?”
 본인도 각성자였지만 막상 각성자를 상대로 싸워보니 움직임이 일반인과 너무 다르다. 남다른 반사 신경으로 피하기는 했지만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유효타를 맞을 거다.
 “날래구나, 꼬마야.”
 “꼬마는 네 밑에 달려 있는 거고.”
 한혁이 호재의 다리 사이를 보며 이죽거린다. 호재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다. 발을 구르니 2층 전체가 울린다. 기세가 더 험악해진다.
 “개자식!”
 복도를 따라 일직선으로 쏘아져 온다. 한혁도 맞대응 한다. 그를 향해 달려간다. 마주치기 직전, 자신의 옆에 있는 문고리를 잡고 거칠게 문을 연다.
 갑작스럽게 자기한테 다가오는 문을 보고 당황했지만 호재는 C급 헌터. 돌발 상황은 던전에서 충분히 겪었다.
 시야를 가리려는 얄팍한 속임수! 문이 있으면 문과 함께 박살내면 그만이다.
 
 - 콰드득!
 
 주먹을 뻗어 문을 부순다. 동시에 앞발에 힘을 줘 몸을 제동을 건 뒤 앞발을 축으로 몸을 돌려 뒤차기를 날린다. 가속도가 붙은 발차기라면 막아도 팔이 부러질 터!
 나무 파편이 날아가며 시야가 생긴다. 문을 방패로 삼아 기습을 노린 녀석이 박살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발길질이 허공을 가른다.
 “없어?”
 그 때, 한혁이 문이 부서진 방에서 튀어나온다. 발차기에 자세가 어정쩡해진 호재의 등 뒤로 매미처럼 달라붙는다. 이어지는 리어 네이키드 초크! 뱀처럼 파고든 팔이 호재의 목을 감싼다.
 “크윽!”
 약 기운이 있어도 헌터라는 것인가. 그 상황에서 균형 잡기를 포기하고 뒤로 눕는 동시에 초크가 걸리기 직전 한혁의 팔 사이에 손을 집어넣는다.
 덩달아 뒤로 넘어진 한혁이 다리로 호재의 몸통을 조인다. 각성자는 초인. 다리로 조여 몸통을 터트릴 수도 있다.
 복압이 올라가고 눈에 핏줄이 선다. 안 그래도 잦은 대마로 충혈 됐던 눈이 피라도 떨어질 정도로 빨개진다.
 “빨리 기절하고 편해지지?”
 “그으윽! 남자가 바지를 벗었으면 끝을 봐야지.”
 아, 도중에 나왔군.
 물론 알 바는 아니다. 애초에 범죄 현장 아니던가. 한혁이 몸을 비틀며 어떻게든 초크를 완성시키려고 노력한다.
 호재 또한 녹록지 않다. 바닥에 엎드린 모양으로 몸을 웅크리더니 머리로 몸을 받친다.
 “으아아아아!”
 괴성과 함께 호재가 몸을 일으킨다. 굉장한 완력! 한혁을 등에 매단 채로 두 다리로 일어서더니 미친 듯이 벽에 등을 들이박는다.
 화분이 깨지고 액자가 떨어진다. 유리파편 몇 개가 한혁의 등을 찔러 피가 난다. 호재의 몸무게까지 더해진 충격이 몸을 흔들었지만 악착같이 버텼다.
 호재도 이정도로는 안 된다고 느꼈는지 몸을 돌려 복도 끝으로 간다. 그리고 곧장 1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달린다. 계단으로 뛰어내리며 한혁을 깔고 뭉갤 셈.
 “미친 새끼!”
 저건 안 된다. 둘 다 죽자는 무식한 방법이다. 한혁이 초크를 푼다. 목이 자유로워지자 호재가 무게 중심을 낮추며 미끄러진다. 손이 바닥을 긁는다. 내려가는 문 지척에서 몸이 멈춘다.
 기침과 함께 침을 뱉은 호재가 목을 문지른다. 거칠게 숨을 내뱉는다.
 ‘그래도 성과는 있다.’
 그라운드는 당하는 쪽이 더 체력적으로 부담이 간다. 이번엔 한혁이 공격한다.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줄 생각이 없다.
 ‘저 자세에서 할 수 있는 건 태클! 이럴 때는 측면으로 파고들거나.’
 낮은 자세로 있던 호재가 개구리처럼 튀어 오른다. 양팔을 벌리며 한혁의 무릎 뒤를 잡아채려한다.
 “정면으로 부수거나!”
 
 - 콰직!
 
 “크악!”
 오히려 앞으로 무게를 옮긴 한혁이 발을 떼더니 니킥을 꽂아버린다. 코가 부러지고 충격으로 골이 울린다. 목에도 상당한 부담이 갔을 터.
 범인이라면 기절할만한 공격임에도 버텨낸다. 기어코 팔을 뻗어 한혁의 한쪽 다리를 잡는다. 지지할 곳을 잃은 한혁이 넘어진다. 잡히지 않은 발로 호재의 얼굴을 마구 찬다.
 호재도 당하지만 않았다. 어깨를 내밀고 고개를 뒤로 뺀다. 어깨에 막혀 발이 닿지 않는다. 그가 일어선다.
 박호재의 체구가 더 크다. 그가 한혁을 들어 올리자 머리가 공중에 뜬다. 그대로 빙글 돈다. 발목이 잡힌 한혁이 바람개비처럼 돈다.
 “이런 무식한!”
 “내가 좀 터프해!”
 충분한 원심력을 가지자 호재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듯 한혁을 던진다. 인간 야구공이 되어 날아가는 한혁이 몸을 웅크린다. 머리로 부딪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다.
 
 - 터엉!
 
 등으로 엄청난 충격이 느껴진다. 척추가 다 부러진 건 아닐까. 속을 울리는 통증에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몸을 일으킨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다. 벽과 부딪치면서 혀를 깨물었는지 입에 피가 고인다.
 “퉤!”
 피 섞인 침을 뱉어내고 호재를 노려본다. 그도 부러진 코를 강제로 맞추고 엄지로 한쪽 콧구멍을 막더니 킁! 하고 코피를 푼다.
 한혁과 박호재가 싸우는 동안 테이블에 묶여 있던 김주섭과 김태만은 열심히 벽까지 기어가 있었고 지영은 옷으로 몸을 가리며 소파 뒤에서 떨고 있다.
 “너 이름이 뭐냐.”
 “알아서 뭐하게.”
 한혁이 성의 없는 말투에 호재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애써 구겨지는 인상을 편다.
 “아아, 다른 건 아니고 둘 다 끝까지 가면 좋은 꼴은 못 볼 거 같은데 이쯤하지?”
 “왜. 쫄리냐?”
 “뭐 쫄! 하, 이 새끼. 미안하지만 형이 전과가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다. 이 난리를 폈는데 신고가 안 들어왔을 리가 없잖아? 너도 슬슬 자리 떠야 될 걸?”
 확실히. 그의 말대로다. 호재의 등장으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뺏겼다. 다행히 이곳에 cctv는 없으니 경찰이 오더라도 자신의 벌인 일은 들키지 않으리라. 팀장과 현주 또한 입을 다물어 줄 테니까.
 경계를 풀자 호재가 씩 웃는다.
 “보니까 너도 헌터 같은데. 다음에 만날 때는 오늘 일은 잊자고.”
 “잊고 나발이고 서로 볼일 없었으면 좋겠다.”
 약기운이 가신 주섭과 태만이 침을 삼킨다. 이렇게 가버리면 좆되는 건 둘 뿐.
 “아, 안됩니다! 호재 형님! 어차피 다 끝났어요! 저놈 특수재난부 소속이라고요!”
 김주섭이 소리친다.
 나가려던 박호재가 우뚝 멈춰 선다. 표정이 가라앉았다.
 한혁이 아차 싶었다. 당장 더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호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너, 특수재난부 소속이었냐?”
 “아니. 나 소속 없어.”
 “아닙니다! 여기 명함 좀 보세요!”
 “조용히 해!”
 한혁이 소리를 질렀지만 호재가 김주섭이 발로 밀은 명함을 줍는다. 작게 한숨을 내쉰다.
 “안 되겠다. 넌 여기서 죽어야겠어. 이번에 잡히면 최소 10년이야. 내 헌터 인생은 끝이라고!”
 “뭘 또 그렇게. 오해가 있나 본데.”
 “닥쳐!”
 호재가 달려든다. 아까와는 사뭇 다르다. 주먹을 뻗는 호재를 피해 카운터를 날렸지만 느낌이 이상하다. 마치 북을 치는 듯한 느낌. 제대로 턱을 맞췄다 생각했는데 꿈쩍도 안하고 한혁에게 바디블로를 날린다.
 “커윽!”
 “능력까지 쓰게 만들다니. 쯧!”
 ‘능력? 제길. 일이 꼬이려니까.’
 복부에 느껴지는 고통을 참으며 한혁이 주먹을 날린다. 명치, 늑골, 턱! 연속적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그대로 맞는다. 몸이 흔들리고 머리가 돌아갔지만 웃으며 발길질을 한다.
 “크흐흐흐! 넌 끝이다! 호재 형님의 피부는 충격을 흡수한다고!”
 김태만이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호재가 땅에 떨어진 유리조각을 집어던진다. 표창처럼 날아간 유리가 김태만의 허벅지에 박힌다.
 “으아아악!”
 “혀, 형님!”
 “입 다물고 있어. 다음은 너희 차례니까. 내가 이곳에 온 걸 아는 놈은 다 죽인다.”
 “그런!”
 자신들도 죽일지 몰랐던 태만과 주섭이 아연실색한다. 어떻게든 속박을 풀기 위해 발버둥 친다.
 ‘덕분에 능력을 알았다. 충격 흡수라니. 이런 개 같은.’
 한혁이 속으로 욕을 한다. 그나마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능력이 아니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
 능력이라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쓸 수는 없을 거다. 안 그러면 처음에 치고 박고 싸웠을 리가 없으니까. 분명 약점은 있다.
 고민을 하는 사이 호재가 연거푸 주먹을 날린다. 막으면 막는 대로 카운터를 쳐도 곧이곧대로 맞으며 밀어붙인다. 한혁의 몸에는 데미지가 쌓이는데 이놈은 멀쩡하다. 정말이지 개싸움에 특화된 능력이다.
 “이거나 먹어라!”
 “이 새끼가!”
 쓰러진 냉장고에서 굴러 나온 맥주병을 내려친다. 한쪽 팔로 막은 그가 다른 손으로는 눈을 가린다.
 ‘저거다!’
 눈은 피부가 아니다. 손에 집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집어 던졌다. 미꾸라지처럼 도망 다니는 게 마음에 안 드는지 한쪽 손으로 눈을 보호하며 달려든다.
 “잠깐 빌립니다!”
 “꺄악!”
 바닥에 있는 건 다 던졌다. 이대로 도망만 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지영이 가지고 있던 옷가지를 뺏어 던지면서 호재의 무릎 옆을 뒤꿈치로 찍었다.
 비명과 함께 한쪽 무릎이 꺾인다. 공격이 통했다! 연기가 아닐까 싶었지만 진짜다. 알몸인 덕분에 무릎이 퉁퉁 부어오르는 게 눈에 보였다.
 ‘왜지, 왜 통한 거지? 저놈 피부는 충격을 흡수하는 게. 아!’
 한 가지 가설을 만들어낸 한혁이 적극적으로 달려든다. 명치를 후려치고 발등을 밟는다. 호재가 한혁의 공격을 무시하고 팔을 휘두른다. 맞을 때마다 몸이 휘청거렸지만 악을 쓰며 버틴다. 이어지는 난타전!
 몸이 부서질 것 같다! 하지만 확인해야 한다.
 몸을 숙여 호재의 엘보우를 피한 한혁이 일어서며 손바닥으로 턱을 올려친다. 올라가는 머리, 그 틈에 엉덩이를 손톱으로 긁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긁혔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보니 확실하다.
 한혁이 웃는다.
 “찾았다. 약점.”
 몸 전체가 충격을 받아내는 게 아니었다. 공격할 부위를 예측해서 능력을 쓰는 거였다. 각성자의 말도 안 되는 동체 시력이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보이지 않으면 예측할 수 없다. 짐작으로 능력을 쓸 수도 있지만 그 따위 것 예상 못할 곳으로 때리면 그만! 혹은.
 재차 싸대기로 머리를 돌려버린 한혁이 주먹에 힘을 더한다.
 “낭심!”
 
 - 콰직!
 
 호재의 턱이 돌아간다. 흐릿해지는 그의 눈에서 의문이 서렸다 사라진다. 바람 빠진 인형처럼 그의 몸이 무너진다.
 한혁이 손을 턴다.
 “페이크다, 새끼야.”
 남자라면 낭심이란 말에 흠칫할 수밖에 없는 법.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그 말을 들으면 반드시 그곳에 능력을 쓸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보다시피.
 “호재 형님!”
 “부르지 마, 이것들아. 깨어나면 너희도 죽어.”
 한혁의 말에 주섭이 입을 다문다. 한혁이 던졌던 옷을 지영에게 돌려준다.
 “저놈 깨어나기 전에 나가요. 또 상대할 자신 없으니까.”
 “네, 네!”
 지영이 부리나케 옷을 입는다. 한혁도 발을 끌며 통로로 향한다. 온몸이 쑤시다. 얼굴도 부어올라 시야가 잘 안 보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인다.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곧 경찰이 올 테니까.
 “뒤에!”
 “크아아아아!”
 지영이 소리친다. 각성자는 기절하는 시간도 짧은 건가. 정신이 들은 호재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괴성과 함께 덤빈다.
 무리다.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그가 노리는 건 자신. 피할 방법은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지영이라도 피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줄 수밖에.
 “우와아아아!”
 한혁도 기합을 넣는다. 질 땐 지더라도 기세에 눌릴 수는 없지.
 “오케이, 거기까지.”
 한혁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한 남자가 자신과 호재 사이에 나타나더니 가볍게 주먹질을 한다.
 
 - 콰앙!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호재가 공 마냥 벽에 날아가 박히더니 그대로 고꾸라진다. 자신이 고전한 상대를 한 방에 제압했다.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한혁이 긴장한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외모. 반바지에 체크 남방.
 그가 손을 내민다. 장난기 가득한 미소.
 “네가 한혁이지? 특수테러본부장이자 S급 헌터 도두현이다. 보니까 사람 잘 패던데. 나하고 일해 볼래?”
 
 
 기억해 두죠
 
 
 
 
 
 도두현의 말에 한혁이 할 말을 잃었다. S급 헌터! TV에서나 볼 법한 사람이 눈앞에 있다. 방금 보여준 무력만 보더라도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다 죽어가더라도 C급 헌터. 그것도 충격 흡수를 하는 능력자를 한 방에 잠재웠으니까.
 이상한 점은 스쳐 가면서라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것. S급 헌터인 이상 현재는 활동이 뜸하더라도 과거에 이룬 업적이 많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TV에서도 심심치 않게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어 올려주고. 그들이 세운 길드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은근슬쩍 그들의 이름을 끼워 파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니까.
 한혁이 지그시 도두현을 바라본다.
 “너 지금 내가 거짓말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티 났습니까?”
 “어, 많이. 오해하지 마라. 일반인들은 나 잘 모르니까. 헌터들한테나 유명하지. 내가 이끄는 특수테러본부는 던전 공략에는 별 관심 없거든.”
 사람들이 헌터에 열광하는 이유. 그들의 보여주는 무력과 화려함도 있지만 던전과 몬스터를 없애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몬스터와의 전쟁을 겪은 세대니까.
 몬스터들의 위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말한 특수테러본부도 언뜻 들어 알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헌터들을 잡는 기관이라고. 그렇다고 그를 믿을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소속이 진짜인지 확인할 방도가 없으니.
 한혁이 말없이 노려보자 도두현이 바지주머니를 뒤진다. 지갑을 두고 왔다. 명함은커녕 특수테러본부 사원증도 없다. 곤란한 듯 턱을 쓰다듬는다.
 “흐음, 이걸 어쩌나. 명함이 없네. 너무 그렇게 보지 마. 수상한 사람 아니니까.”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그렇긴 하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 자세. 아주 훌륭하다. 마음에 들어. 맞다. 잠깐만 기다려봐.”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어, 나다. 다 끝났으니까 올라와.”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 쿨함. 그가 소파를 끌고 와 앉는다.
 “곧 이 팀장 올라올 거야. 걔가 신고해서 온 거거든. 어차피 우리 애들이 현장 수습하러 올 때까지는 못가니까 편히 있자고.”
 한혁도 의자 하나를 주워와 앉는다. 자력으로 이곳을 도망치는 건 불가능. 그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 팀장의 존재도 알고 있으니 수상한 사람은 아닐 거다.
 도망칠 타이밍을 재고 있던 지영이 불안하게 눈을 굴린다. 출구와 한혁, 도두현을 번갈아 쳐다본다.
 “아가씨.”
 “네!”
 도두현이 자신을 지목하자 지영이 깜짝 놀란다. 도두현이 오라고 손짓한다. 울상을 지으며 다가간다.
 자신의 옆에 앉힌 도두현이 지영을 찬찬히 살핀다. 입을 벌리더니 안을 들여다본다. 목을 긁으며 인상을 찌푸린다.
 한혁도 뭐하는 걸까 싶어 지켜본다.
 “이거 예상은 했지만 약을 꽤나 먹었네.”
 “저, 전 몰랐어요! 저 사람들이 몰래 먹였다고요. 저는!”
 항변하는 지영의 입을 막는다.
 “그 이후에는 중독돼서 알아서 먹었고?”
 “그건.”
 도두현의 말 대로였다. 시작은 타의였지만 지금은 금단증상 때문에 마약을 하고 있다. 약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했고 약을 파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억울했다. 원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닌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 중독이 돼 있었는데. 왜 이렇게 고통 받아야 하는 걸까.
 약을 끊고 잠수를 타려 해도 주섭과 태만은 어떻게든 연락을 해왔다. 이곳에 묶여 있는 동안 배운 것도 모은 것도 없었다. 가진 건 몸 하나뿐.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범죄 현장에서 잡히기까지.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기분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울컥 눈물이 났다. 도두현이 당황한다.
 “아저씨 왜 사람을 울리고 그래요.”
 “아저씨라니! 난 그냥 좋은 것 좀 해주려 그랬지.”
 좋은 거? 어감이 참 이상하다. 한혁이 지그시 노려본다. 등을 두드리며 달래던 도두현이 자신의 검지를 깨문다. 피가 흘러나온다.
 “거, 울지 마시고. 손가락이나 좀 빨아봐.”
 “예?”
 “아저씨 변탭니까?”
 너무 뜻밖의 행동이라 지영도 울음을 멈춘다. 벌레 보는듯한 한혁의 시선이 굉장히 껄끄러웠지만 도두현이 강제로 지영의 입에 손가락을 넣는다.
 “아기 때 젖꼭지 물어봤지? 쪽쪽 빨면 돼. 이거 귀한 거라고. 내 능력이 해독이야. 독이든 마약이든 어지간한 상태 이상도 내 피면 해결된다고.”
 그의 말에 지영이 눈이 빛낸다. 밑져야 본전. 그야말로 열심히 빨기 시작한다. 손가락이 닳아 없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혁이 한숨을 내쉰다. 저 아저씨. 뭔가 하는 행동은 바람직한데 표현이 이상하다. 좋은 일하고 욕먹기 딱 좋은 성격이다.
 지영이 몸을 떤다. 얼굴에 혈색이 돌고 굳었던 표정이 풀어진다. 손가락에서 입을 뗀다.
 “푸하! 좀 더 없어요?”
 “피가 음료순지 알아? 없어!”
 지영이 입맛을 다신다. 도두현이 자신의 손가락을 꼭 잡고 있는 지영의 손을 조심히 떼어낸다. 지영이 아쉬운 눈으로 바라본다.
 “좀 어때?”
 “몸이 개운해요. 이렇게 상쾌한 기분 언제만인지 모르겠어요. 세상이 또렷해 보여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생기가 도니 목소리도 한층 밝아진다. 자연스럽게 웃는 걸 보니 원래 웃음이 많은 성격이었나 보다. 그동안은 약 때문에 웃지 못했던 거겠지.
 의자를 돌려 등받이에 턱을 걸친 한혁이 착잡한 표정으로 지영을 본다. 저 사람이야 운 좋게 마약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1층에 있다 도망간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그러고 보니 한 명 더 있지 않았나? 한혁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지영이 두현의 팔을 잡아끈다. 경찰이 오기 전에 해야 했다. 잡혀가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 그걸로 끝이니까.
 “아저씨 한 번만 더 도와주세요!”
 “아저씨 아니라고! 안 가.”
 그러면서 고개를 돌리는데, 30대 중후반의 남자가 토라지는 모습은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지영이 도두현의 손을 붙잡는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기세다. 장난스러운 표정이 사라진다. 자신처럼 당한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의 도움이 있다면 새 삶을 살 수 있다.
 “제발 부탁드릴게요. 저 말고도 약에 빠진 애가 있어요. 도와주신다면 어떻게든 보상하겠습니다.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아, 왜 부담을 주고 그래. 알았어. 안내해.”
 도두현이 무릎을 꿇으려고 하는 지영을 일으켜 세운다. 앞장서라고 손을 휘젓는다.
 한혁도 뒤따라간다. 복도 끝 방. 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대마 냄새가 코를 찌른다. 두현도 코를 막더니 벽으로 잽을 날린다. 말이 잽이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다.
 
 - 푸북!
 
 방음 처리까지 된 두꺼운 벽에 구멍이 뚫린다. 바람이 들어와 방 안을 환기시킨다. 부수는 것도 아니고 구멍을 만들었다. 이건 무슨 괴물이란 말인가.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한혁과 달리 도두현은 이제야 좀 낫다며 태평하게 손부채질을 한다.
 지영이 나체로 엎드려 있는 예은이를 똑바로 눕힌 후 이불을 덮어준다.
 도두현이 정신을 잃은 예은을 살핀다.
 “얘는 좀 심한데? 약쟁이 새끼. 각성자 수준으로 투약했어.”
 “그럼 예은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각성자가 취할 정도면 일반인에게는 치사량에 가까웠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지영이 주저앉는다.
 서로가 같은 처지기에 의지하고 독려해 왔다. 가족도 친구도 잃은 그들에게 있어 이들은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다.
 지영이 예은이를 껴안는다. 간절한 눈으로 도두현을 올려다본다.
 도두현이 베개로 예은의 머리를 받치고 입을 벌린다. 손날 부근을 씹고 예은의 입에 갖다 댄다. 주먹을 쥐자 레몬 즙을 짜듯 피가 흘러내린다.
 “어떻게 되긴. 멀쩡해지는 거지.”
 그의 말대로 죽은 것처럼 미동도 안하던 예은이 조금씩 움직인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먹고 있는 게 생명줄이라는 걸 알았는지 조금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린다.
 그 모습에 지영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두현 형님! 어디 있습니까!”
 “한혁아! 최한혁!”
 익숙한 두 목소리가 들린다. 이 팀장과 현주. 두현의 연락을 받은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도두현이 치료가 끝났는지 손을 거둔다.
 방으로 도착한 현주가 한혁을 안는다.
 “살아 있구나! 다행이야!”
 “아, 악! 현주야! 아파! 나 멀쩡해. 살살!”
 온몸이 만신창이인 한혁이 비명을 지른다. 현주가 급하게 손을 뗀다. 그제야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온 현주가 지영에게 시선이 멈춘다. 지영이 현주를 보더니 무릎을 꿇은 상태로 고개를 숙인다.
 “지영 언니.”
 “미안해. 현주야. 미리 말 못해서.”
 왜 그랬냐고. 어째서 말하지 않은 거냐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현주 본인도 마약의 길에 한발자국 걸쳤다 도망쳤으니까.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렇다고 배신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왜 그랬냐고는 안 할게요. 언니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 아니까. 그래도 용서는 못할 거 같아요. 미안해요.”
 “네가 왜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정말 미안해.”
 전체적인 사정을 알고 있는 한혁과 이 팀장은 조용히 있었다. 이건 둘 사이의 문제니까.
 도두현만 싸해지는 분위기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거 분위기 왜 이래? 무슨 문제 있어?”
 “그게. 이 친구도 이번 일에 피해잡니다.”
 팀장의 말에 도두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일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많이 봤으니까.
 피해자가 가해자, 또는 방관자가 되는 악순환. 그런 연결고리에도 시작점은 있는 법이다.
 그가 지영을 일으켜 세우더니 현주 앞에 데려간다. 둘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두 사람의 손을 잡고 강제로 악수를 시킨다.
 “서로 쌓인 게 있겠지만 적당히 풀어. 똑같이 당한 사람들끼리 미워해 봤자 남는 거 없으니까. 이번 일의 원흉은 밖에 있는 놈들 때문이지 얘 때문이 아니야. 증오할 사람을 헷갈리지 마.”
 확실히, 맞는 말이다. 한혁이 도두현을 다시 봤다.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가벼워 보이다가 이럴 때는 나이에 걸맞은 현명함을 보인다.
 지영과 현주도 깨달은 게 있는지 서로 껴안고 엉엉 울기 시작한다.
 슬쩍 자리를 피해 준 두현이 어깨를 으쓱한다.
 “나 좀 멋졌냐?”
 “네, 네. 아주 멋졌습니다. 그보다 왜 형님이 직접 오신 거예요. 말했다시피 한혁 씨는 저희 특수재난부에서 침 발라 놨습니다.”
 “후후후, 그 말은 곧 아직 소속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아, 진짜. 형님!”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왜 이럴까. 한혁이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말린다.
 “워워, 어딜 들어가던 제가 선택합니다. 아직 헌터가 될 생각도 없고요.”
 “그래? 잘됐다, 야! 특수테러본부로 와라. 그 징글맞은 던전 안 들어가도 돼.”
 “한혁 씨. 그곳도 던전 들어갑니다. 덜 들어가서 그렇지. 아시죠. 강해지려면 던전으로 가셔야 한다는 거. 던전은 특수재난부 담당입니다.”
 “강해지는 거야 내가 가르치면 되는 거고. 요즘은 마정석만 먹어도 충분해.”
 “그거야 형님이나 그런 거고! 보통 사람들은 흡수율이 그렇게 좋지 않거든요?”
 서로 질세라 영업하더니 다시 티격태격한다.
 그리 긴 시간을 함께한 건 아니지만 이한철 팀장이 저렇게 쉽게 흥분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게 도두현 옆에 놔두니 사람이 가벼워진다. 도두현 특유의 분위기에 말리는 것도 있지만 둘 사이에 느껴지는 친밀감이 주원인인 것 같다.
 “워워, 다들 진정하시고. 그보다 둘이 아는 사이에요?”
 “아, 한혁 씨는 잘 모르겠군요. 예전에 한 식구였습니다. 청와대 공식 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국가 소속 S급 헌터 두 명 중 한 명이 이 사람입니다.”
 “물론 지금은 명목상만이지만.”
 “형님, 그런 거 말하시면 안 됩니다.”
 “뭐 어때. 알 사람은 다 아는데.”
 이건 무슨 이야길까. 예전에는 국가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그럼에도 올라가 있는 건 국가 소속이고?
 “좀 더 얘기해 봐요.”
 “별 건 아니고 특수테러본부가 원래는 특수재난부랑 하나였거든. 그런데 이놈의 윗대가리 놈들이 자꾸 쪼는 거야. 특히 예전에 국회의원 몇 명이 각성자한테 죽은 적 있잖아. 그 뒤로 뭐 맨날 찾아와서 지켜 달라. 우리의 안보가 국가의 안보다. 지랄 시발을 싸대서 다 뒤집고 나왔거든.”
 “하아, 형님. 그때 뒷수습 하려고 제가 얼마나 고생한지 아십니까?”
 “하하핫! 알지! 너 그 때 나도 나갈 걸 하면서 울며 전화했었잖아.”
 도두현이 팀장의 등을 때린다. 윽! 하고 팀장이 몸을 비튼다.
 “아무튼 그래서 나왔는데 내 밑으로 있던 애들이 나 따라서 전부 나와 버린 거야. 그 때야 이놈들이 정신 차리더라고. 미안하다 다시 와 달라. 좆까라 했지.”
 “그 때 당시 국가소속 상위 각성자의 반이 빠져나가서 비상이었죠.”
 그 때 일이 떠올랐는지 이한철이 관자놀이를 주무른다. 한 명의 영향력이 이정도로 클 수 있다는 사실에 한혁이 감탄한다.
 “뭐, 그래도 나도 예전에 한 게 있으니까. 적당히 타협했지. 준정부기관으로 특수테러본부 만들어서 예전에 하던 일 계속 해주고. 대신 그놈들은 나 터치 안 하고.”
 “그러면서 정보와 특수면책권은 가져가고.”
 “그럼 인마. 뭘 알아야 잡든지 말든지 하지. 그리고 하다 보면 사람도 죽어 나가고 건물도 무너지고 하는 거 아냐. 면책권은 필수지. 그거 없었으면 나 포함 우리 애들 다 깜방 갔어. 우리 없으면 테러범들이 국회의사당이랑 청와대랑 다 폭발시킬 걸?”
 “아무튼 한혁 씨. 핵심은 이쪽은 공무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안정성은 공무원. 아시죠?”
 “야! 우리는 얘네처럼 윗대가리들 눈치 볼 필요 없다. 그게 최고야.”
 한혁이 헛웃음을 터트린다. 결국 한 사람 때문에 국가기관이어야 할 조직이 민간으로 나왔다는 말 아닌가.
 무엇보다 윗사람들 신경 안 써도 되는 건 마음에 든다. 특수테러본부. 기억해 두기로 했다.
 
 
 사고가 아니다
 
 
 
 
 
 성수동에 위치한 종합병원. 침상에 누워 있던 한혁이 기지개를 편다.
 “크흐! 쉬니까 좋구나. 돈 많은 백수로 살면 행복할 텐데.”
 “아서라. 네 팔자에 그런 삶은 없으니까.”
 병문안을 온 민우가 과일바구니에서 바나나를 까먹으며 말했다. 이 팀장이 선물로 가져온 거다. 입원하고 매일같이 찾아와서 음료수며 과일이며 챙겨줬다. 올 때마다 국가 소속으로 들어오라 말하는 건 덤.
 한혁이 에어컨을 튼다. 자취방과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함에 감탄이 나온다.
 그 비싸다는 1인용 입원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올 수 없는 곳이지만 도두현이 힘써 준 덕분에 무료로 입원할 수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마약사범들을 잡는데 큰 도움을 줬으니 당연하다나.
 마약굴 소동은 특수테러본부의 사람들이 현장을 수습하며 끝이 났다. 뒷일은 그들의 몫.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 팀장과 도두현이 말해 주었기에 한혁과 현주, 지영과 예은은 간단한 조사만 받고 나올 수 있었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한혁은 바로 입원을 했고 일주일동안 푹 쉴 수 있었다. 갈비뼈에 금이 몇 개 가고 전신에 타박상을 입어 전치 6개월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각성자의 경이로운 회복력 덕분에 지금은 거의 다 나았다.
 학교 또한 자취방에서 한혁이 오기를 기다리던 민우가 사정 설명을 듣고 교수들한테 찾아가 이야기했다고 한다.
 출석 걱정도 끝. 입원 서류와 진단서도 미리 뽑아뒀으니 불이익을 받을 이유도 없다.
 “오늘 퇴원한다고?”
 “어. 슬슬 나가야지. 졸업은 해야 하지 않겠냐.”
 “나 같으면 학교 바로 때려치웠다. 어차피 취업하려고 대학 온 건데 넌 이제 걱정 없잖아.”
 그렇기는 하다. 한혁은 각성자. 사람들이 가지고 싶은 직업 1위에 빛나는 헌터를 할 수 있다. 이미 이쪽으로 오라며 팀장과 도두현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고 길드들 또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팀장이 마약굴 사건을 기사로 내보내며 추가로 한혁의 능력치 검사 결과를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현주와 그곳 직원들에 대한 언급은 빠졌다. 그 내용을 빼는 조건으로 기사 쓰는 걸 허락했으니까.
 “작은아빠도 봬야 되고.”
 “아저씨는 잘 계시냐?”
 폰 게임을 하던 민우가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한혁의 개인사를 아는 몇 안 되는 친구다. 그 또한 한혁의 작은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한혁이 얼마나 작은아버지를 소중히 생각하는지 안다.
 “똑같지 뭐. 그곳이 뭐 달라지겠냐.”
 한혁의 말에 민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조심스럽게 한혁을 살피더니 툭하고 말을 뱉는다.
 “아저씨도 너 헌터하는 거 허락하실 거다. 너무 생각 많이 하지 마. 결국 네 인생이니까.”
 퉁명스럽게 말을 해도 자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한혁이 장난스럽게 민우의 머리를 친다. 발끈한 민우와 한참을 투닥거린다.
 “환자한테 뭐하는 짓이에요!”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소리 지른다. 한혁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있는 민우와 이에 질세라 민우의 얼굴을 밀어내고 있던 한혁이 슬며시 손을 놓는다.
 “큼큼, 이놈이 반병신 돼도 저보다 튼튼해요. 걱정 마세요.”
 “하아, 틀린 말은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죠. 한혁 님 마지막으로 검사하고 퇴원 수속 밟아드릴 게요.”
 “후딱 끝내죠.”
 한혁이 침대에서 내려온다. 민우도 가방을 챙긴다. 학교에 가기 전에 잠깐 들린 거라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럼 난 간다. 4시에 수업이야. 아저씨한테 안부 전해주고.”
 “오냐. 잘 가고 나중에 술이나 마시자.”
 “약 드시는 동안 술 마시면 안 돼요.”
 징글징글한 눈빛으로 한혁을 보는 간호사가 몇 마디 더 잔소리를 하며 끌고 간다.
 전신 엑스레이와 간단한 건강검진을 끝마쳤다. 결과는 이상 없음. 오히려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환자복을 벗고 민우에게 부탁해 가져온 옷을 입는다. 충전기와 속옷을 가방에 챙기고 팀장한테 얻어 온 마나 레벨 검사지와 능력치 결과지를 챙긴다. 작은아버지한테 보여 줄 생각이다.
 병원 밖으로 나가니 미리 불러 둔 콜택시가 경적을 울린다.
 한혁이 차에 탄다.
 “어디로 모실까요?”
 “교도소로 가주세요.”
 기사가 힐끔 룸미러로 한혁을 살피더니 말없이 출발한다. 운전을 하면서도 틈틈이 자신을 살피는 게 거슬리기는 했지만 무시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갈 때마다 겪은 일이었으니까.
 한혁의 작은아버지인 최송호. 그는 몬스터와의 전쟁이 끝날 무렵 혼란했던 강남 지역을 집어삼킨 조직의 수장이었으며 동시에 한혁의 양아버지이기도 했다.
 서울교도소. 입원해 있을 때 면회 신청을 해 놨다. 면회실에는 최송호가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있다. 오랜 수감 생활로 얼굴은 많이 야위었지만 눈빛은 살아 있다. 깎기 귀찮다고 놔둔 수염은 어느새 하관을 덮었다.
 “왔냐. 학교는 어쩌고. 오늘 공강 아니잖아.”
 “괜찮아. 입원했다 오늘 퇴원한 거라 안 가도 돼.”
 “입원? 어디 다쳤어?”
 상체를 숙인 최송호가 눈을 부라린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겁부터 집어먹을 만큼 험상궂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한 한혁은 그가 걱정할 때 짓는 표정이란 걸 알고 있다.
 “그냥 좀. 싸움박질 좀 하느라고.”
 “난 또 뭐라고. 네가 입원할 정도면 꽤나 하는 놈이었나 보다?”
 한혁의 말에 송호가 관심을 끈다. 그 또한 한혁의 실력을 알고 있으니까. 한혁의 어머니를 이어 자신의 형인 최송주가 세상을 떠난 후 천애고아가 된 조카인 한혁을 친양자 입양했다.
 그 당시 조직을 키우던 시기라 따로 보살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 사무실에 한혁을 데려왔다.
 몬스터가 판치는 세상. 밖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의 구역에 두는 게 안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보스의 양아들이자 갓 중학생이 된 한혁은 삼촌들의 귀염둥이가 됐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주먹질 밖에 없던 삼촌들은 반 장난삼아 한혁에게 싸움을 가르쳤고 한혁은 빠르게 삼촌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배워 나갔다.
 그 능력과 실력에 조직에 필요한 인재라며 삼촌들이 설레발쳤지만 송호는 단호하게 한혁은 대학에 보내 평범한 삶을 살게 하겠노라고 선포했다.
 물론 종종 송호의 눈을 피해 용돈벌이 삼아 일을 돕기도 했다. 송호 또한 알면서도 눈감아주었다. 그가 봐도 한혁은 물건이었으니까.
 차마 먼저 하늘로 간 형에게 미안해서 실행시키는 못했지만 공부에 영 소질이 없으면 자신의 뒤를 잇게 할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 와서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진짜 조직원이 됐다면 한혁도 자신처럼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을 테니.
 ‘애초에 이쪽 길과는 맞지 않았지. 성질은 더러워도 심성은 착한 아이니까.’
 한혁이 시선을 돌리며 말을 잇는다.
 “아하하, 그게 말이지. 헌터였어. 그것도 C급.”
 “쿨럭! 켁, 켁! 뭐! 헌터?”
 사래가 걸린 최송호가 기침을 한다. 헌터라니! 각성자 아닌가. 자신이 이렇게 수감 생활을 하게 된 이유도 각성자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가장 먼저 정리된 건 의외로 조직과 같은 범죄 소굴이었다. 어려운 시절 더욱 삶을 힘들게 했던 그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쏟아졌다.
 조직의 횡포에 당한 자들 중에 각성자가 나타났고 그들은 그동안의 울분을 모아 조직을 무너트렸다.
 송호의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덩치가 있어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뿐이지 한혁이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 완전히 무너졌다. 경찰까지 합세한 대대적인 작전이었다.
 다행히 한혁이 엮이지 않도록 조치를 했고 급하게 빼돌린 칠천만 원을 건네 줄 수 있었다. 덕분에 한혁은 무사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거. 나도 각성자가 됐어.”
 한혁이 주섬주섬 각성자 검사결과 용지와 능력치 결과를 펼쳐 보여준다.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여 주면 좋겠지만 입장할 때 핸드폰을 맡겨야 하는 교도소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
 각성자가 됐음을 밝히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한혁도 송호가 이렇게 된 이유를 아니까. 남들에게는 단순히 범죄자에 불과하겠지만 자신에게는 마음으로 키워 준 두 번째 아버지이자 유일한 가족이다.
 각성자라면 학을 떼는 송호였기에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거리를 두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이는 한혁이었다.
 나이를 먹으며 눈이 안 좋아진 송호가 유리문에 얼굴을 바짝 붙인다.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어 내려가던 송호가 입술을 깨문다.
 한혁이 눈치를 살핀다.
 “야, 이놈아!”
 “어, 어!”
 “축하한다! 이놈 새끼 크게 될 줄 알았지만 각성자라니! 최고다 우리 아들!”
 “자, 작은아빠.”
 한 치의 거짓도 없는 기쁨. 송호가 밝게 웃는 모습을 보자 울컥 뭔가가 올라온다. 눈물이 살짝 올라온다.
 “새끼, 다 큰 놈이 왜 울어.”
 “뭘 울어. 안 우는구만.”
 송호가 가까이 오라며 손짓한다. 한혁이 고개를 내민다.
 “잘 들어라. 지금 시대에 돈이니 권력이니 다 필요 없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세상이야. 결국 죽으면 끝. 알아듣지?”
 “당연히 알지.”
 “내가 너 공부시킨 것도 다 그래서였어. 똑똑해야 컴퓨터 두드리면서 안전하게 먹고 살지.”
 왜 모르겠는가. 경찰에 잡혀가면서도 대학은 가야 한다며 주머니에 몰래 통장과 도장을 넣어 준 사람이 당신인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지만. 운 나쁘면 길 가다가도 몬스터 만나는 거고 던전 터지면 건물 안도 안전하지 않아. 살아보니 그렇다. 내가 여기에 박혀 있지만 세상 돌아가는 건 다 알아.”
 “알기는 개뿔. 나 각성자 된지도 몰랐으면서. 나 밖에서 엄청 유명해.”
 “인마. 그럴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거야. 꿀 떨어지는 곳에 나비만 모이는 줄 아냐. 벌도 모이고, 심하면 곰도 오는 게 현실이야. 그보다 잘 들어라.”
 송호가 벽에 달린 시계를 확인한다. 면회 시간은 10분. 벌써 얼마 안 남았다.
 “그동안 숨겨서 미안하다만 앞으로 네가 헌터 생활을 할지도 모르니 말해 주마. 네 아버지는 몬스터 습격 때문에 돌아가신 게 맞다. 하지만 형수님은 몬스터 때문에 죽은 게 아니야. 던전을 클리어하고 부산물 배분할 때 시비가 붙어 살해당한 거지.”
 예상치 못한 말에 한혁이 굳는다.
 그동안 몬스터의 습격 때문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고로. 헌터였던 어머니 또한 던전 공략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고 들었었다.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이 널렸으니까. 의심한 적도 없다.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핀 송호가 목소리를 더욱 낮춘다. 면회실의 대화는 전부 녹음 된다.
 “나도 칼밥 먹고 살았던 사람이지만 그놈들은 더 해. 너도 겉핥기지만 이쪽 바닥이 어떤지 알잖냐. 조심하고 의심해라. 그래야 살아. 잊지 마. 진짜 괴물은 사람이라는 걸.”
 “면회 시간 끝났습니다.”
 둘을 지켜보던 교도관이 손목시계를 두드린다. 송호가 1분만 달라며 손가락을 흔들고는 빠르게 말을 뱉는다.
 “길드를 들어간다면 미라클은 피해. 그놈들이.”
 “면회 끝났어요!”
 교도관이 거칠게 송호를 일으킨다. 송호가 입을 꾹 다문다. 그가 하지 못한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를 살해한 길드가 미라클, 대한민국에서 순위를 다투는 대 길드라는 걸.
 일어선 한혁이 손을 흔든다.
 “작은아빠! 저 돈 좀 벌었어요! 영치금 넉넉하게 넣을 테니까 맛있는 것 좀 사먹고 그래요! 살도 좀 있던 양반이. 그러다 말라 죽겠네!”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그 돈 모아놔! 헌터는 장비도 중요하다더라!”
 끝까지 한혁을 걱정한 송호가 사라진다.
 교도소를 나왔다. 머리가 복잡하다. 송호의 말이 사실일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는 법도 없다. 누군가 잘못 전해 준 걸 수도 있으니까.
 송호의 경우 기결 급수 4. 한 달에 네 번까지 면회가 가능하다. 오늘까지 세 번 왔으니 아직 한 번 남았다. 내일 다시 만나 이야기해야겠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애써 털어내고 자신의 앞일을 생각했다. 송호의 응원도 받았겠다. 긍정적으로 헌터의 길을 생각해도 될 것 같다.
 특수테러본부의 경우 일반적인 헌터와는 다른 것 같지만 뭐 어떤가. 각성자로서 일하는 건 매한가진데.
 먼저 헌터 교육부터 받아야겠다. 각성자로 활동하려면 필수인 자격증이니까. 길드와의 접촉도 활발히 할 생각이다. 팀장과 도두현에게는 미안하지만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가는 게 맞으니까.
 한혁이 다양한 경우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피곤한 기분이 들었고 자신이 없는 동안 곰팡이가 핀 자취방에 누워 낮잠을 잤다.
 
 그날 밤, 한혁은 최송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개화
 
 
 
 
 
 갑작스럽게 치르게 된 장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 수감 생활 4년. 이루었던 조직이 와해되면서 산하에 있던 사람들은 대거 체포됐다. 잡히지 않은 사람들도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했다.
 새 삶을 시작했거나 아직도 숨어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경찰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을 찾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조직이 전부였던 송호에게 다른 친구들이 있을 리는 만무.
 한혁 또한 그 밑에서 자랐기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과 깊은 인연을 가지지 못했다. 애초에 정상적인 학창시절을 보낼 수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몬스터와의 전쟁이 끝났을 때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으니까.
 고등학교 시절도 무너진 사회를 회복시키느라 정신없던 시기다. 의무교육인 중학교까지는 어떻게 빈약하게나마 운영을 했지만 고등학교는 운영 자체를 많이 하지 못했고 학생이어야 할 아이들도 생업 전선에 뛰어들면서 학교를 포기한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보면 한혁은 운이 좋았다. 그 시대 고등학교까지 걱정 없이 다니고 대학까지 왔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또 다시 작은아버지, 최송호가 그리웠다.
 “한혁아. 나 왔다.”
 적적한 빈소에 민우가 찾아왔다. 유일하게 연락한 친구. 다른 대학 친구들도 몇 명 있었지만 그들은 최송호의 과거를 모른다. 혹시나 예전에 함께 했던 삼촌들이 올까봐 연락하지 못했다. 대학은 소문이 금방 퍼지니까.
 완전히 몸을 담았던 건 아니지만 조직에서 자랐다는 걸 알게 되면 좋은 이야기가 돌지는 않을 테니. 뒤에서 자신과 송호의 욕을 할 게 뻔했다. 자신은 몰라도 송호가 욕을 먹는 건 바라지 않는다.
 “고맙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민우가 조문을 마치고 나온다. 품에서 부조금을 꺼내 내민다.
 “현주도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정신과에서 치료받고 있더라. 그래서 그냥 혼자 왔어.”
 “그러냐.”
 부조금을 받아 든 한혁이 담담히 대꾸를 했다.
 마약굴 소동 이후 현주는 휴학을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주변 사람한테서 그런 일을 당했으니 심적으로 큰 상처가 남았으리라.
 다른 직원들도 마약 센터에서 교육을 받으며 치료를 받고 있다. 몸에 누적된 약은 몰아냈어도 습관은 남아 있으니까.
 “배고프지? 뭐 좀 챙겨 줄게.”
 “내가 가져갈게. 넌 자리 지켜야지.”
 “됐어. 어차피 너 말고 올 사람도 없어.”
 한혁이 일어나 육개장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하는데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자신이 있는 곳으로 향해 소리가 이어진다.
 다른 곳을 착각한 게 아닌가 싶어 고개를 내밀자 이 팀장과 도두현이 보인다.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은 걸로 봐서 문상을 온 게 확실하다.
 “한혁 씨. 소식 들었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도 왔다.”
 각자 봉투를 꺼내더니 한혁에게 건네준다. 얼떨떨하다. 둘에게는 연락도 하지 않았으니까.
 묻고 싶은 게 있지만 빈소를 찾아온 사람들을 입구에서부터 막을 수는 없는 노릇.
 민우에게 양해를 구한다.
 조문을 한 후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육개장에 편육, 과일 몇 점. 소주. 어색하게 민우와 두 사람이 인사를 한다. 한혁이 먼저 입을 연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그게. 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한혁 씨에 대해 알아보다가 알게 됐습니다.”
 간단하게 뒷조사를 하다 최송호의 사망 사실을 알게 됐다는 말. 기분이 나쁘고 말 거도 없다. 이 사람들에게 숨길 이유는 없으니까. 그저 신경 써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그럼 아저씨도?”
 “나야 뭐, 어쩌다 보니 알게 돼서.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니다. 형이라 불러.”
 한혁이 소주를 마신다. 입술을 깨물더니 담배를 챙긴다. 민우에게 잠시 자리 좀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도두현에게 다가간다.
 “두현이 형. 담배 태워요?”
 “피기는 하지.”
 “잠깐 같이 바람 좀 쐬러갑시다.”
 할 말이 있음을 눈치 챈 도두현이 일어선다. 이 팀장이 따라 일어서려 했지만 도두현이 손을 들자 도로 앉는다.
 장례식장 출구 옆, 흡연실로 온 한혁과 도두현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입맛이 쓰다. 한동안 말없이 담배를 태우던 한혁이 운을 땐다.
 “형. 그 사람 이름 알죠?”
 “누구?”
 짐짓 모르는 척 도두현이 되묻는다. 한혁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작은아빠 살해한 새끼요.”
 부고 문자를 받았을 때 곧장 교도소로 찾아갔다.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걸 실랑이를 벌이다 겨우 들어갔다.
 부고 문자에는 정확한 사인이 적혀 있지 않았다. 알아야 했다. 어째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지. 그날만 해도 같이 대화를 나눴다. 건강상의 문제일 리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간 한혁은 면회장 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걸 봤다. 분명히 저곳이다. 무작정 들어가려는 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막았다.
 힘으로 뚫으려 했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각성자였다. 어깨에 적혀 있는 마크와 소속. 특수테러본부였다.
 도두현의 이름을 팔고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난장판이 된 면회실. 유리벽은 박살이 나 있었고 벽은 무언가에 긁혀 부서졌다.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 두개로 나뉜 현장 보존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최송호라는 이름. 작은아버지는 살해당했다. 그것도 각성자의 손에.
 도두현에게 바로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연락처가 없었다. 조금만 침착했으면 이 팀장을 통해 연락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시잖아요. 말해 주세요.”
 “만나서 어쩌려고.”
 “그냥 얘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왜 그래야 했는지.”
 도두현이 한혁을 살핀다. 잠깐이지만 자신이 겪어 본 한혁은 빈말이라도 차분한 성격이 아니다. 가해자를 어떻게 할지 몰랐다.
 한혁의 표정은 알기 어려웠다. 분노, 슬픔 그밖에 알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 있다.
 한혁은 대충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조직이 왜 무너졌던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 각성자가 되어 공격했기 때문 아닌가. 이 또한 마찬가지리라. 어쩌면 업일지도.
 면회를 갈 때면 최송호가 심심치 않게 하던 말이 있다. 자신은 죄가 많은 사람이라고. 결국은 죗값을 치르게 될 거라고.
 “그래, 뭐. 만나는 것뿐이라면 내가 데려다주마. 대신 나도 옆에서 지켜보는 조건으로.”
 “그거면 됩니다.”
 다음날 새벽 민우와 이 팀장, 도두현의 도움으로 발인을 마쳤다. 화장을 하고 유골함을 납골당에 안치시켰다. 팀장과 민우가 떠나고 도두현과 한혁 둘만 남았다.
 “타라.”
 도두현이 국산 SUV를 두드린다.
 
 * * *
 
 남양주 각성자 교도소에 도착한 한혁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간은 점심때가 다 돼가고 있었다.
 밤을 새웠지만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맑았다. 도두현의 안내로 안으로 들어간다. 두께가 20cm에 달하는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각성자의 특성상 일반 교도소 시설로는 수용이 불가능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
 같은 이유로 교도관도 전원 각성자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가장 많은 수의 각성자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인력난에 시달리는 건 이유가 있었다.
 도두현을 알아본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자 그가 가볍게 손을 흔든다. 점심시간이라 면회가 불가능 했지만 도두현의 힘으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규정상 면회실 사용이 불가능해 취조실에서 봐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도두현이 취조실 담당을 내보내고 한혁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앉아 있던 김도환이 각성자 전용 수갑을 찬 채 눈을 감고 있다.
 “난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할 말 나눠라.”
 그의 배려에 한혁이 고개를 숙인다.
 도두현이 밖으로 나간다. 녹화 화면과 녹음 장치가 있으니 문제가 생기면 바로 들어갈 생각이다. 한혁은 D급 헌터 수준의 각성자. 김도환의 경우 두 달 전에 각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당시 마나 레벨은 READY. 흔한 수치였다. 마나를 쓸 수 있는 준비가 된 상태에 불과했다.
 김도환이 갑작스럽게 공격을 하더라도 한혁이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거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한혁이 이성을 잃고 김도환을 덮치는 경우다.
 “왜 그랬어요?”
 의자에 앉은 한혁이 물었다. 그제야 김도환이 감았던 눈을 뜬다. 나이는 30대 정도 됐을까. 눈이 제법 날카롭다. 얼굴은 앙상했지만 몸은 잔근육이 조금씩 붙어 있다.
 “최송호. 제 작은아버지이자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저를 키워 주신 분입니다. 어째서. 왜 살해한 거예요.”
 김도환이 무미건조한 눈으로 한혁을 내려다본다.
 “너도 죽였어야 했는데.”
 “뭐라 했습니까?”
 
 - 쾅!
 
 김도환이 수갑채로 테이블을 내려친다. 강철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울린다. 그가 앞으로 몸을 내민다.
 “너도 죽였어야 한다고! 너도 그놈들이랑 한패겠지! 그 새끼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는지 알기나 해! 우리 아버지, 시발! 자식새끼 먹여 살린답시고 빚지고 일반인의 몸으로 던전에 나갔어. 짐꾼으로! 집도 직장도 다 박살 났었던 그때. 힘든 사람들 등골 빨아먹으니 좋았냐, 개새끼들. 우리 아버지 그렇게 가실 분 아니셨다. 우리 아버지는!”
 한혁이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안다. 정말 그랬으니까. 자신이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심심치 않게 사무실에 무릎을 꿇고 있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한 달이면 갚을 수 있다고. 하다못해 이자로 갚을 테니 참아 달라고. 살려 달라고.
 돈을 빚진 사람, 용역 깡패로 사람들 데려갔다가 대금을 치르지 않은 사람, 세력 다툼에서 진 적대 조직원 등등.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다.
 그 사실을 알기에 한혁은 참을 수 있었다. 그래도 속이 뒤집히는 건 어쩔 수 없다.
 “적어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두 개로 나눠진 현장 보존선. 그게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시체가 두 동강 났다는 사실. 그 사실이 한혁을 괴롭혔다.
 “더 찢어 죽였어야 했는데.”
 “이 새끼가!”
 흥분한 한혁이 일어선다. 의자가 밀려나 넘어진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김도환을 노려본다.
 “알량한 힘으로 괴롭힐 때는 좋았지? 크큭! 솔직히 지금 와서는 이해할 것도 같아. 각성자가 되니까 말이야. 도저히 일반인은 사람으로 안 보여. 그냥 실수로 톡 치면 죽는 벌레 같아.”
 김도환이 일어선다. 한혁의 바로 앞, 테이블에 걸터앉은 김도환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한혁만 들을 수 있게 작게 속삭인다.
 “재밌더라. 살려 달라고 엎드려 빌 때 머리를 밟았어야 했는데. 그만 흥분해서 조각내 버렸네. 흐흐흐흐!”
 “그만해.”
 “살려 주세요! 저한테는 아들이 있어요! 하하하하!”
 “그만 하라고.”
 한혁의 중얼거림에도 김도환의 도발은 계속 됐다. 머리로 한혁의 가슴을 밀더니 넘어진 의자를 발로 밟는다. 터지듯이 박살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버지가 죽은 이유도 약해서야. 왜 그때는 몰랐을까. 결국 강한 사람이 다 잡아먹는 거잖아. 너도 너무 상심하지 마. 그냥 죽을 만하니까 죽은 거야. 어차피 옥살이 끝내고 나왔어도 몬스터 똥밖에 더 됐겠어? 크흐흐흐! 똥이래! 내가 말했지만 존나 웃기네! 야, 이 새끼야. 형이 오늘 기분이 좋다. 살려 줄게. 나가봐.”
 김도환이 한혁의 뺨을 툭툭 친다. 한혁이 고개를 숙인 채 꿈쩍도 않는다.
 “푸하하하! 이 새끼 이거 쫄았네. 얌마, 긴장 풀어! 오줌 지린 건 아니지? 네 애비처럼 객사 당하기 싫으면 열심히 살아, 새꺄. 혹시 아냐. 너도 각성해서 헌터가 될지.”
 “이미 각성했다, 이 새끼야!”
 
 - 뻐억!
 
 한혁의 주먹이 김도환의 얼굴에 꽂힌다.
 “쿠엑!”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친다. 한혁이 몸을 날린다.
 “뒤져! 새끼야! 너 같은 각성자는 다 뒤져야 돼! 씨발! 씨바알!”
 이성을 잃은 한혁이 재차 주먹을 꽂는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차라리 복수가 이유의 전부라면 넘어갈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 때문에 힘들고, 죽은 사람 많으니까.
 나한테 작은아버지가 소중한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는 본인의 가족이 더 소중했을 거다. 그래. 거기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이 새끼는 선을 넘었다. 시작은 복수였지만 나중에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죽이는 것에 쾌락을 느꼈다. 그게 작은아버지를 반으로 찢어 죽인 이유였다.
 “으아아아!”
 한혁이 괴성을 지른다. 내리꽂힐 때마다 힘이 넘친다. 회수되는 주먹을 따라 김도환의 마나가 빨려 들어온다. 한혁의 능력이 개화되는 순간이었다.
 
 
 소속을 정하다
 
 
 
 
 
 모니터로 상황을 지켜보던 도두현이 취조실로 들어온다. 곧장 한혁의 뒷덜미를 잡고 던져버린다.
 자신을 압도하는 괴력에 대응도 못하고 날아가 벽에 박힌다.
 “커윽!”
 “뭐하는 짓이야! 내가 이러라고 데려온 줄 알아!”
 도두현이 고함을 친다. 땅으로 떨어진 한혁이 바닥을 긴다. 척추를 타고 전기가 오르는 기분이다.
 뒤통수도 살짝 부딪쳐 골이 울린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한 대라도 더 때려야 분이 풀릴 것 같다.
 비틀거리며 일어섰지만 책상에 기대 서 있는 게 전부. 사람을 공마냥 집어던지다니. 몸이 부셔질 것 같다.
 “한 번만 더 손대면 너도 가만 안 둬.”
 김도환을 뒤로 물린 도두현이 한혁의 어깨를 잡아 누른다. 버티려 했지만 힘의 격차가 너무 크다. 무릎이 꺾이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제길.”
 혼란스럽다. 분노와 함께 의문이 머리를 뒤섞는다. 한순간이지만 김도환으로부터 힘을 뺏은 듯한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느껴 본 적 없는 생소한 감각에 한혁이 자신의 손을 살핀다. 아직까지 여운이 남아 손가락이 간지럽다.
 “끄으으으.”
 힘없이 넘어졌던 김도환이 신음과 함께 정신을 차리더니 눈을 부릅뜬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손을 묶고 있는 수갑이 너무나 무겁다. 안간힘을 줘도 마임을 하는 것처럼 몸만 움직일 뿐 팔은 미동도 없다.
 몸에 힘이 없다. 마치 일반인이었을 때처럼. 소름이 돋는다.
 “뭐, 뭐야! 너 뭐냐고! 힘이 안 들어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도두현이 눈살을 찌푸린다.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 노려본다.
 “쇼하지 마라. 이런다고 깽값 받는 거 없으니까 얼른 일어나.”
 
 - 따악!
 
 도두현이 이마에 딱밤을 때린다. 그대로 김도환의 눈이 뒤집어지더니 쓰러진다. 피부는 찢겨져 피가 흘렀고 올라오는 게 보일 정도로 붓기가 차오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도두현이 당황한다. 그를 잡아 흔든다.
 “야! 왜 이래, 인마! 의료팀! 의료팀 아무나 빨리!”
 도두현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아무나 붙잡고 의료팀을 부르라고 소리 지른다.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던 교도관들이 때 아닌 소란에 분주해진다.
 이 교대로 식사를 하던 의료팀이 호출을 받고 급히 달려온다. 의료팀은 특성상 전문지식을 필요했기에 일반인도 섞여 있다. 느린 그들을 위해 교도관들이 장비와 의료팀을 업고 뛰었다.
 “뭐해! 빨리 와!”
 도두현의 재촉에 김도환이 쓰러진지 1분 만에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도두현이 일단 한혁을 데리고 나온다. 혹시라도 다시 달려들까 싶어 어깨를 붙잡고 있다.
 슬쩍 김도환을 살핀다. 이러다 사람 하나 보내는 거 아닌가, 초조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도두현에게 의료팀장이 나오라고 눈짓한다.
 “너. 얘 감시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도두현이 교도관 한 명을 한혁 옆에 붙여 두고 의료팀장을 따라간다. 초조하게 손을 매만지던 도두현이 먼저 말을 꺼낸다.
 “어때? 안 좋아?”
 “뇌진탕이야. 어쩌면 뇌출혈도 올 수도 있고.”
 도두현의 물음에 의료 팀장이자 C급 헌터인 이세준이 말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채 각성한 엘리트였다.
 그의 말에 도두현이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뇌진탕이 왜 걸려. 난 딱밤 한 대만 때렸다고.”
 “일반인이 네 딱밤 맞으면, 잘하면 죽어.”
 “쟤는 헌터잖아. 두 달밖에 안 됐지만.”
 자신이 너무 강한 건가. 아직 초짜 헌터에게는 꿀밤마저도 위험하다는 걸까. 스스로 자중해야겠다, 결심하는 도두현에게 의료팀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으로 돌아간 거 같다.”
 “그게 뭔 개소리야.”
 도두현의 반응에 의료팀장이 혀를 찬다. 본인도 안다. 개소리란 거. 하지만 진짜다. 도착하자마자 상태 측정기로 살펴봤는데 신체 능력이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졌다.
 각성이 풀린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고 실제로도 그런 경우는 발견된 적이 없다.
 “자세한 건 검사해 봐야 알아. 일단 진료부터 하고. 머리 친 거 말고 다른 짓 한 거 없지?”
 “없다니까.”
 “하아, 알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리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 혹시라도 짚이는 거 있으면 바로 말해. 난 가봐야겠다.”
 그 말을 끝으로 의료 팀장이 자리를 뜬다. 하얀 의사가운을 펄럭이며 멀어지는 그를 보며 도두현이 머리를 긁적인다.
 “일반인으로 된다는 게 가능한가.”
 “두현이 형.”
 도두현의 뒤로 한혁이 다가온다. 어느 정도 이성을 찾았다. 그놈을 때린 건 좋았지만 도두현과 의료팀, 교도관들까지. 여러 명에게 폐를 끼쳤다. 특히 자신을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해 준 도두현에게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달리 아저씨가 아닌 형이라는 칭호를 썼다.
 “괜히 저 때문에 이렇게 됐네요. 미안해요.”
 “괜찮다. 저 새끼가 말을 좆같이 하기는 했잖아. 네 성격에 한 대 칠 건 예상했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때린 딱밤이 더 문제인 거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하다. 좋은 생각이 난 도두현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혁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한혁의 신체 능력은 D급 헌터에 준한다. 심지어 대인전은 C급 헌터를 맞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다른 건 몰라도 전투 센스와 맷집 하나는 인정해 줄만 하다.
 “한혁아. 미안하지?”
 “미안하죠.”
 “그럼 이마 좀 까봐라.”
 한혁이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두현을 올려다봤지만 별말 없이 이마를 깐다. 예고 없이 들어오는 손가락.
 
 - 따악!
 
 “크악! 뭐야!”
 “아 씨. 멀쩡한데.”
 머리를 부여잡는 한혁을 내버려두고 특수테러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본부장 권한으로 모든 자료를 둘러볼 수 있는 도두현이 김도환의 정보를 불러온다. 혹시나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던 걸 수도 있었다.
 정보를 빠르게 읽어 내려간다.
 마나 레벨 Lv.0. 특이사항. 방출.
 도두현의 눈썹이 꿈틀 거린다. Lv.0. 보통 헌터 스쿨을 수료하고 나서야 얻는 수치다. 심지어 능력까지 개화했다.
 ‘고작 두 달 만에 말이지.’
 물론 각성과 동시에 Lv.1을 찍은 한혁이 바로 옆에 존재했지만 경우가 좀 달랐다. 저 수치는 체포되면서 측정된 정보.
 중앙각성자 센터에서 처음으로 측정된 마나 레벨은 READY상태였다. 각성자가 될 준비가 된 상태. 그런데 고작 두 달 만에 STARTER를 넘어 Lv.0에 도달했다?
 시작점 자체가 높은 한혁과 달리 비정상적으로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길드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다. 길드 크로스. 총원 서른 명이 채 안 되는 중소형 길드지만 한국 삼 대 길드라 불리는 미라클의 산하 길드였다.
 그런 곳에서 헌터 스쿨도 갔다 오지 않은 애송이를 영입했다? 구린내가 난다. 특히나 미라클 길드는 다른 대형 길드에 비해 안 좋은 소문이 많이 나오는 곳이다.
 길드치고 불법적인 일에 손 안 대는 놈들이 없지만 이놈들은 유독 심했다. 다만 뒤처리가 워낙 깔끔해 물고 늘어질 게 없달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사건이 많았다.
 “이거 수상한데.”
 밑에 애들이 정리해서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걸리는 점이 많다. 범인은 잡혔고 범행 동기 확실하니 크게 문제될 건 없다. 그래도 찜찜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이건 차후에 살펴보도록 하고. 한혁아.”
 핸드폰을 끈 도두현이 한혁을 부른다.
 “예.”
 “이번일은 형이 잘 넘어가 주마.”
 “고맙습니다.”
 한혁이 고개를 숙인다. 도두현이 음흉하게 웃는다.
 “그러니까 특수테러본부로 들어와라.”
 “아이고.”
 정말 지치지도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업이라니. 한결 같은 도두현의 모습에 한혁이 허탈하게 웃는다. 처음에는 워낙 장난치듯 말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입원실을 잡아주는 것부터 시작해 병문안, 전화까지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끈질긴 걸로는 이 팀장도 지지 않지만 이 사람은 뭐랄까. 느닷없이 치고 들어온다.
 양손을 든 한혁이 한숨을 쉰다. 뭐 좋다. 이미 결정은 했으니까.
 “뭐 좋습니다. 데려가십쇼. 저런 놈이 헌터라고 설치면서 날뛰는 꼴은 못 보겠네요. 선을 넘은 새끼들. 전부 패버릴 겁니다.”
 김도환 또한 헌터라고 들었다.
 헌터. 하루하루 죽음의 경계에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그들 중에는 힘에 취해서 혹은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돼서 감정이 무뎌지거나 망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다툴 수도 있고, 복수를 할 수 있고, 시비가 붙을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람이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 선을 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한 행동의 책임을 져야한다.
 때렸으면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법.
 특수테러본부에 소속되면 특수면책권이 발부된다하니 깽값으로 고생하는 일 또한 없으리라.
 “오오! 진짜냐? 잘 선택했다!”
 한혁의 대답에 도두현이 방긋 웃는다. 덩치는 고릴라 같은 양반이 이럴 때 보면 참 애 같다. 나잇값을 못한다고 해야 하나, 해맑다고 해야 하나.
 “단, 조건이 있습니다.”
 뭘까. 연봉? 복지? 연금? 이한철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첫 만남부터 돈을 달라 했었다고.
 “뭐, 뭔데.”
 “대학은 졸업할겁니다.”
 작은아버지가 유일하게 바랐던 거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생각이었다. 긴장했던 도두현의 얼굴이 펴진다. 기세 좋게 한혁의 등을 두드린다.
 “그럼, 그럼! 마음껏 다녀! 총장 누구냐. 내가 전화해서 전액 장학금 받게 해줄게.”
 “그건 직권 남용 아닙니까.”
 “뭐 어때. 난 공무원도 아닌데.”
 “그럼 협박이잖아!”
 “괜찮아. 괜찮아!”
 안 괜찮다, 이 사람아. 대학을 숨기고 싶어도 도두현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 아니다. 그냥 기사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이동 던전 때 기사에 나왔으니까.
 선택을 한지 1분도 안 돼 옳은 선택을 한 건지 의심이 들었다.
 “좋아. 일단 본부로 가자.”
 떠밀다시피 도두현이 한혁을 끌고 나온다. 차에 탄 후 조수석 글러브 박스를 연다. 계약서다. 볼펜과 함께 한혁에게 쥐어 주고는 곧장 시동을 건다.
 “월급 기본 500. 처리하는 일에 따라 성과급은 따박, 따박 나간다. 우리가 좀 특이해서 1년 단위가 아니라 맡은 일이 해결될 때마다 성과급이 나와. 국가가 할 일을 대신 해주는 거라 그쪽에서 해결비를 주거든. 일이 많아서 기본 월급만 받는 일은 없을 거야. 대충 일한만큼 번다고 생각하면 돼. 헌터 등급 오르고 경력 쌓이면 계약 다시 할 거고. 네가 대충 D등급이니까 1년에 4억 정도 챙길 걸? 참고로 던전 공략 가면 부산물이나 퇴치비는 따로 계산된다.”
 단수 계산으로 기본 연봉 6000.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4억을 받는 다라. 성과급이 3억 4천? 배보다 배꼽이 큰 것도 유분수지. 이런 식으로 정산하는 곳이 어디 있을까.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길래 성과급을 억 단위로 받아요.”
 “뭐긴 뭐야, 목숨 걸고 하는 일이지. 그리고 네가 할 일도 정해져 있어.”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아직 사인도 안 했건만.
 “너도 아는 일이야. 마약굴있잖아.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나도 괜히 갔다가 거기에 꼬였다. 일단은 나랑 같이 다니면서 분위기 좀 파악하고. 준비 좀 하고 그럴 거다. 할 게 많아.”
 한혁의 입이 벌어진다. 지금 이 사람 입사와 동시에 마약범 소탕을 가잖다. 할 말을 잃었다. 취직의 꿈을 이뤘는데 별로 행복하지가 않다. 앞으로 구를 생각을 하니 착잡할 따름이다.
 숨을 깊게 내쉬며 머리를 비운다.
 ‘어쩌면 이게 낫다. 내가 건든 놈들은 확실히 조져야지, 안 그러면 뒤탈이 날 수 있으니까. 할 수 있을 때 확실히 뿌리 뽑자.’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그놈들과 연관된 마약조직에서 암살하러 올지.
 반드시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날 때릴 놈을 먼저 조지면 맞을 일이 없다는 게 한혁의 지론이었다.
 
 - 우우우웅!
 
 운전을 하던 도두현이 진동음에 핸드폰을 꺼낸다. 의료팀장이다.
 “어. 왜?”
 
 - 야! 김도환 일반인 됐다. 확실해!
 
 “뭐! 그게 가능해? 혹시 나 오기 전에 드레인이나 흡혈 같은 거에 당한 거 아니야? 효과가 좀 늦게 나타났다던가.”
 
 - 달라! 그것도 구별 못하면 내가 의료팀장이냐! 것보다 네가 데려온 애 어딨어? 벌써 헤어진 거 아니지?
 
 “옆에 있는데 한혁이는 왜?”
 
 - 걔가 원인이야. 당장 센터 가서 능력치 검사 다시 해! 국가기관전용 측정실 알지? 그쪽으로 가. 이거 딴 데로 새면 안 돼. 이쪽은 입단속 끝났으니까 너만 조심하면 돼.
 
 “네 말이 사실이라면 진짜 입단속 잘해야겠네.”
 각성자를 일반인으로 바꾸는 힘이라. 각성자들에게 그만큼 무서운 능력이 또 있을까.
 상대방의 체력이나 마나를 흡수하는 능력은 종종 보였지만 각성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능력은 이제껏 없었다.
 도두현이 전화를 끊는다. 한혁의 표정이 굳는다. 일반인과 차원이 다른 청각을 보유한 각성자인 이상 대화는 전부 들었을 것이다.
 “한혁아, 들었지? 아무래도 센터부터 먼저 가야겠다. 너 진짜 능력 개화 됐냐?”
 “확실한 건 아닌데 아마도요.”
 “그거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로 해라. 밝혀지는 순간 암살대상 일 순위가 될 테니까.”
 한혁이 침을 삼켰다. 가만히 있었는데 적이 늘었다. 그렇다면.
 ‘누가 와도 박살낼 만큼 강해지면 되겠네.’
 한혁 또한 평범한 사고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샌드위치 아니었습니까?
 
 
 
 
 
 도두현과 한혁이 중앙각성자 센터에 도착한다. 이전에 갔었던 부속 건물로 들어가자 한수정 검사원이 둘을 기다리고 있다. 의료팀장이 직통으로 연락을 해뒀다.
 한수정이 한혁을 보며 손을 흔든다. 발걸음이 느려진다. 한 달도 안 돼서 이곳을 또 오다니.
 “안녕하세요. 검사원님.”
 “누가 그렇게 딱딱하게 부르래. 내가 누나라고 부르랬지!”
 한수정이 등짝을 때린다. 한혁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절대 일반인의 공격력이 아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각성자를 상대로 이런 짓 저런 짓 다 하는 사람인데 일반인일 리가 없다.
 한혁이 애써 웃는다.
 “아, 하. 하. 수정 누나.”
 “그래그래. 아구구, 잘 왔어.”
 마치 아기 다루듯 한혁의 볼을 잡아당긴다. 현주와 연애를 할 때도 당한 적 없었는데 이렇게 당할 줄이야.
 손을 쳐내고 싶지만 차마 거부할 수가 없다. 잠시 후 측정실로 들어가면 한수정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니까.
 이 순간이 얼른 끝나기를 빌 뿐이다.
 “우후후, 이렇게 재밌는 아이가 알아서 굴러오다니. 오늘도 누나랑 신나는 시간을 보내자고.”
 한혁이 작게 도리질했지만 소용없었다. 옆에 있던 도두현이 슬쩍 끼어든다. 자신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에 살짝 삐진 모습.
 “어허, 너무 한혁만 반기는 거 아니야? 나도 왔다고.”
 “아저씨는 왜 왔어? 측정할 거면 당장 나가. 또 기구 망가트리지 말고.”
 한수정이 도두현을 째려본다. 그가 측정을 해보겠답시고 부숴 먹은 측정기만 수십 개다. 초인이라 불리는 각성자를 위해 특수 제작했음에도 S급 헌터에게는 부족함이 있었다. 말 그대로 괴물. 상식을 넘어서는 인물들이다.
 한편에서는 S급 각성자를 위한 전용 측정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지만 S급부터는 수치의 의미가 없다는 한수정의 일갈로 무산됐다. 평타가 필살기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라 10kg, 20kg 더 든다고 더 상위에 있는 게 아니란 거다.
 당장 A급만 돼도 개인의 신체 능력보다는 각자의 능력 활용과 노하우에 의해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S급은 말할 것도 없다.
 “난 측정 안 해. 또 망가트렸다가 맞으려고. 나도 너한테 맞는 건 아프다.”
 도두현이 자신의 몸을 감싼다.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었지만 반은 진담이다. 한수정, A급 헌터. 능력, 게임. 마나 레벨 검사기와 각성자 검사기를 만든 주역 중 하나였다.
 “지켜보겠어.”
 낮게 목소리를 깔며 으르렁거린 한수정이 한혁에게 몸을 돌리면 방긋 웃는다. 순식간에 바뀌는 분위기. 그래서 더 무섭다.
 “그럼 우리 한혁이는 예쁜 누나랑 재밌는 측정하러 가자! 후후후. 오늘은 능력 검사도 같이 하는 거 알지?”
 한혁이 도두현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외면당했다. 개인의 무력으로는 도두현이 강할지 몰라도 세계적 지위나 명성으로는 한수정이 앞선다. 본인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안타까운 여자야.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그녀를 볼 때마다 안쓰러운 도두현이었다. S등급의 헌터. 남들은 모르는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된다. 그가 아는 인물 중 가장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사람이 한수정이다.
 도두현이 의자에 걸터앉는다. 자신이 신경 써 봤자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검사를 기다리며 도두현이 특수테러본부에서 보내온 정보를 확인한다. 성수동 마약굴에서 잡힌 두 놈들의 증언과 탐문 수사를 통해 마약상인. 일명 고사바리라 불리는 놈들을 몇 찾아냈다.
 이태원에 위치한 바(Bar), 방배에 있는 물류창고, 충무로 인력시장. 이상 세 곳이 놈들이 활동한다고 추측되는 장소다. 아직 이곳이 영업장인지 생산 공장인지 유통망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수많은 점 조직 중 하나일 수도 있고. 꽝만 아니면 된다.
 “대가리는 아니겠지만 꼬리만 돼도 충분하지. 꼬리만 잡으면 덩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
 어쩌면 규모가 상당할지도 모른다. 요즘이야 워낙 단속이 심해 소규모로 운영하는 곳이 많지만 이놈들은 헌터를 고객으로 데리고 있다.
 일반인에 비해 각성자가 마약사범이 될 경우 헌터 생활을 접어야 할 정도로 강한 처벌을 한다. 그들이 약 기운에 난동을 피우면 대형 참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약에 중독된 헌터들은 거래를 트는데 과할만큼 조심한다. 안정성, 비밀유지, 공급능력 등등 따지는 것도 많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어지간한 규모로는 어림도 없다.
 “각성자도 보유하고 있겠지.”
 그렇지 않으면 유지를 못할 테니까. 까딱 잘못하면 약을 뺏기거나 제압당해 공물 바치듯 제공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단톡방에 사다리타기가 올라온다. 놈들이 모이는 시간은 오후 7시. 세 팀으로 나뉘어 동시에 급습하기로 했다.
 흰색 토끼를 누르자 흥겨운 멜로디와 함께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결과는 방배 물류창고. 갈 곳은 정해졌다. 남은 건 준비. 한혁에게는 급작스럽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옆에 있을 테니까.
 
 * * *
 
 4시간에 걸친 검사가 끝났다. 기본적인 능력치 검사야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이 고통의 연속이었다면 맨 마지막에 한 능력 검사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수정은 각성자였다. 그가 한혁을 대상으로 능력을 발휘하자 게임처럼 홀로그램과 온갖 정보들이 뜨더니 자신이 능력을 개화했던 순간, 김도환을 패는 모습이 동영상이 재생됐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래프가 눈을 어지럽혔다.
 ‘진짜 각성자였구나.’
 한혁은 입을 벌리며 그 광경을 구경하는데 바빴지만 한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종합했고 검사지에 능력을 옮겨 적었다.
 거기 까지는 좋았다.
 ‘왜 다 모인 거지?’
 측정이 끝나고 나오자마자 한혁은 별관에 위치한 회의실로 가야했다. 도두현과 한수정도 함께 갔으며 회의실에는 먼저 도착한 이 팀장이 우리를 반겼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한혁 씨?”
 “지금은 멀쩡해요.”
 “다행이군요.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이 팀장이 노트북을 조작한다.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화상통화로 회의에 참가하는 모양이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외관, 전체적으로 살이 쪘지만 눈은 쉼 없이 굴러가 영악하다는 인상이 든다. 특수재난부의 지원본부 본부장 김지석이다.
 이한철은 지원본부에 속했다. 해당 본부의 최고 상사에 해당하는 김지석의 대리인 입장으로 참석한 거라 긴장이 됐다. 혹시나 밉보이면 앞으로의 승진은 물 건너가니까.
 한혁과 그나마 안면이 있다는 이유로 이 자리에 나왔다. 총대를 멘 거다.
 화면 속 김지석이 입을 움직이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한쪽에 낀 이한철에게만 지시를 내리려는 것 같다. 몇 번 고개를 끄덕인 이 팀장이 손뼉을 쳐 이목을 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에 모인 이유는 한혁 씨 때문입니다. 이번에 개화된 능력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교도소는 국가기관이다. 각성자 교도소 또한 마찬가지. 김도환이 일반인이 된 사건은 이미 특수재난부로 보고가 올라갔다. 그것도 직통 라인으로 본부장 이상의 사람들에게만.
 그만큼 한혁의 능력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 정확한 정보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보고대로 각성자를 무장해제 시킬 수 있다면 국가의 큰 힘이 되리라.
 이전까지는 문제가 되는 헌터들에게 던전의 이용을 제한하거나 수수료를 올리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페널티를 가했다.
 하지만 한혁의 능력으로 직접적인 페널티를 가할 수 있다면? 무법자마냥 판을 치는 헌터들을 통제할 수 있다.
 “한철아. 저기 연결된 놈 지원본부장이지? 바로 전해라. 한혁은 이미 특수테러본부 소속이니까 뒷작업 하지 말라고. 하다 걸리면 대가리 날아간다. 알지? 비유 아닌 거?”
 목 잘리는 시늉을 하는 도두현을 보고 이한철이 재빨리 마이크를 손으로 감싼다. 본인이야 기분 내키는 대로 떠들면 그만이지만, 이한철은 분노한 지원본부장의 성질을 감당해야 한다.
 “아, 형님! 이거 지원본부장님보다 더 윗선에서 결정 난 거거든요? 일단 능력이 뭔지 부터 들어보고 얘기 합시다. 한수정 씨 시작해 주세요.”
 한철이 빠르게 진행시킨다. 한수정이 손가락을 튕기자 홀로그램이 나온다. 예의 김도환이 맞는 장면과 한혁, 마정석과 사람 모양의 그림이 순차적으로 올라온다.
 한수정이 다리를 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능력은 간단해요. 각성자를 대상으로 힘을 뽑아가는 거죠.”
 “드레인이나 정기 흡수 같은 것처럼?”
 “비슷하지만 달라요. 그 능력들은 일반인을 상대로도 쓸 수 있고 체력이나 정기, 생명력 등을 흡수하죠. 한혁은 오로지 각성자를 대상으로만 능력이 발휘됩니다. 빼앗아 가는 것도 각성자의 힘의 원천. 마나죠.”
 각성자는 결국 마나의 힘을 받아들인 존재. 마나 레벨 최하위 단계인 READY라는 것도 마나를 운용할 준비가 됐으니 마나를 주입해 달라는 의미였다.
 한수정이 손가락을 흔들자 마정석을 먹는 사람의 그림이 앞으로 나온다.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헌터들이 마정석을 흡수하는 것처럼 한혁 씨는 각성자를 흡수하는 거죠. 김도환이라는 사람이 일반인이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하던 도두현이 손을 든다. 한수정이 말해 보라고 손짓한다.
 “그러면 말이야. 보조배터리에서 전기 뽑아가는 느낌이잖아. 그럼 빼앗긴 사람이 다시 마정석을 흡수하면 다시 각성자가 되는 건가?”
 “아뇨. 마정석 리필 안 되잖아요. 끝까지 빨리면 그걸로 끝. 재생 안 됩니다. 뭐,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느 정도 회복할 수는 있겠네요.”
 각성자를 일반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그 사실을 이한철이 지원본부장에게 전달한다.
 “물론 제한이 없는 건 아닙니다. 만화처럼 상대 힘을 흡수했다고 능력도 가지고 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마정석을 흡수할 때처럼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양도 한계가 있고요. 그 이상 뺏어오면 과다 흡수자와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내부에 흡수하지 못한 마나가 충돌하면서 부작용이 오겠죠. 가벼운 떨림이나 마비. 어쩌면 장애. 심하면 사망. 다들 잘 아시잖아요.”
 능력 한 번 삐끗 나면 부작용이 심각하다. 앞으로 자신이 쓸 능력이기 때문에 좀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한혁이 질문을 던진다.
 “혹시 주의해야 할 점이나 피해야 하는 행동 있나요? 최대 어느 정도까지 흡수할 수 있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정석 주입은 도중에 취소가 안 되지만 네 경우는 능력이기 때문에 조절할 수 있지. 능력을 쓰다가 위험하겠다 싶으면 멈추면 돼. 얼마큼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네가 몸으로 때우면서 알아봐야 하는 거고.”
 더 말할게 없나 고민하던 한수정이 손뼉을 친다.
 “저번에 본관에서 마정석 주입하려다 빠꾸 먹었다면서. 그런데 이번에 능력을 쓰고도 멀쩡한 거 보니까 네 능력으로 빼앗은 마나는 효율이 별로 안 좋아. 있는 그대로 가져왔다면 지금쯤 병풍 뒤로 갔겠지.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빨아들인 마나의 대부분은 누실되니 마음껏 빨라는 소린가.
 설명이 끝나자 각자 생각에 빠진다. 이 팀장은 부지런히 지원본부장과 이야기를 하고 한수정은 홀로그램을 도로 집어넣는다.
 이 팀장이 귀에서 이어폰을 뺀다.
 “두현 형님. 상부에서 결정이 났습니다. 한혁 씨를 특수재난부 소속으로 등록시키기로.”
 이 팀장의 말에 도두현이 벌떡 일어선다.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쥔다.
 “뭐!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아나, 한 번 더 뒤집어엎어야 정신을 차리나.”
 도두현이 머리를 뒤로 넘긴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다. 더 무서운 건 그는 진짜 엎어버릴 능력이 된다는 것.
 이 팀장이 그의 팔을 잡는다.
 “아, 좀! 끝까지 들어요. 소속 자체는 형님 쪽이 맞아요. 맞는데 서류상으로만 등록해 놓겠다 이겁니다. 특수테러본부도 독립했지만 아직까지 명목상으로는 특수재난부에 포함되어 있잖아요. 자연스럽게 이름만 올려 둔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헌터들이 말을 듣죠. 테러본부는 던전 관련된 분쟁은 관여 안 하잖아요. 강력범죄나 테러 아니면.”
 “그러니까 우리한테 이런 애가 있다. 일반인이 되고 싶지 않으면 까불지 말고 말 잘 들어라. 이러겠다고?”
 “그렇죠. 한혁 씨의 능력이 필요할 때는 다른 일을 맡길 때처럼 의뢰하는 형식으로 부를 거예요.”
 “완전 약았구먼. 뭐, 좋아. 그런 거라면. 대신 당장은 안 돼. 지금은 밝혔다가는 능력 쓰기도 전에 암살당한다.”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될 때까지는 비밀리로 붙일 거니까 걱정 마세요.”
 거 당사자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한혁이 따지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말이 막힌다. 오늘부로 자신은 특수테러본부 소속. 그곳의 최고 책임자가 오케이 했는데 뭘 어쩌겠는가.
 도두현이 시계를 확인한다. 시간은 어느덧 18시 13분. 적당한 타이밍이다.
 “자, 그럼 이야기는 끝났고. 가자, 한혁아.”
 “어디로요?”
 한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도두현이 씨익 웃는다. 뭔가 불길하다.
 “어디긴 어디야. 마약범 잡으러 가는 거지. 그리고 이거.”
 그러면서 검사할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종이봉투를 쥐어준다. 샌드위치라도 사왔나 보다. 하긴 저녁 먹을 시간이기는 하다.
 “뭘 또 이런 걸.”
 막상 받고 보니 생각보다 무게가 있다. 아니, 절대 빵조각의 무게가 아니다.
 “너 검사하는 동안 준비했다. 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몰라서. 급한 대로 아무거나 가져왔다.”
 한혁이 봉투를 연다. 입이 벌어진다.
 안에 들어있는 건 짧은 총신의 권총.
 토러스 레이징 저지 매그넘(Taurus Raging Judge Magnum). 동봉된 탄은 무려 454 Casull. 사람도 아닌 곰 호신용 탄이다.
 
 
 첫 진입
 
 
 
 
 
 방배에 위치한 물류창고 근처. 마약범들에게 들키지 않게 거리가 있는 곳에 차를 주차했다. 한혁이 심호흡을 한다. 묘한 긴장감과 흥분감에 손이 근질근질하다.
 잡동사니가 가득한 도두현의 차량에서 끈이 떨어진 권총멜빵을 주워 착용했다. 남은 끈을 조이니 어느 정도 고정이 된다. 도두현이 건네준 레이징 저지의 실린더를 연다.
 여섯 발. 거기에 퀵로더가 한 개있으니 총 열두 발이다. 총을 권총집에 넣는다.
 군대에 있을 당시 몬스터 때문에 병사들에게도 소총뿐만 아니라 권총도 한 자루씩 보급했다. 덤으로 수류탄도 네 개씩. 물론 던전으로 출동했을 때 얘기지만. 그래도 덕분에 권총을 몇 번 쏴봤다. 기본적인 파지법과 조준하는 방법은 안다.
 도두현이 트렁크를 열더니 물건들을 뒤진다. 구석에서 처음 보는 장비를 꺼내는데 검정색을 띈 정팔각형 모양이다. 굳이 따지자면 카페 진동벨 같이 생겼다.
 “이게 작동하려나 모르겠네.”
 그러면서 귀에 대고 흔드는데 작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안쪽에 뭔가가 부서진 모양. 전원을 켜니 불이 들어오기는 한다. 초록색 불이 두 번 깜빡이더니 사라진다.
 도두현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괜찮겠지 하면서 한혁에게 던져준다. 얼떨결에 받아든 한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관찰한다.
 “이게 뭔데요?”
 “MB(Mana Barrier) Class 1. 그냥 총알 막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일단 너는 슈트가 없으니 주머니에 넣어 둬라. 괜히 떨궜다가 총 맞지 말고.”
 마나 배리어(Mana Barrier). 원래는 북한이 핵으로 자멸 한 후 어떻게든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에서 살아보기 위해 개발된 장치다.
 마정석을 특수한 장치로 조금씩 분열시키면 특수한 파동과 함께 마나가 퍼져 나와 장막을 만든다. 그 힘으로 방사선을 밀어내는 원리인데 같은 이유로 작은 입자 또한 접근을 막아내는 게 밝혀졌다.
 그것을 증폭시켜 만든 게 지금의 MB Class시리즈다. 일정 이하의 중량과 운동에너지를 가진 물체가 다가오면 궤도가 왜곡되어 빗나가게 된다.
 일반 방탄복이 방호력에 따라 NIJ 레벨이 붙는 것처럼 MB 또한 파동의 세기에 따라 class가 올라간다. 다른 점이 있다면 MB의 장막은 각성자의 몸도 투과하기 때문에 실력이 부족한 각성자가 높은 등급의 장비를 착용할 경우 내부적으로 데미지를 받는다.
 “오오, 그런 좋은 물건을 망가진 걸로 주다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작동될 거야. 아마.”
 그것 참 위로가 되는 말이다. 혹시나 멀쩡한 게 없을까 미련어린 눈으로 트렁크를 봐보지만 비슷하게 생긴 물건도 없다.
 “그럼 가자. 7시에 모인다고 했으니 바로 가야 돼.”
 부디 MB가 정상 작동하기를 바라며 도두현의 뒤를 따른다. 여유롭기 그지없다. 이 양반 너무 허술하다. 누가 보면 산책 가는 줄 알겠다.
 미처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슈트가 없기는 도두현도 마찬가지였다. 주머니도 홀쭉하다. 본인 몫의 MB가 없는 게 확실하다.
 ‘설마 자신의 걸 나한테 준 건가. 그건 좀 감동인데.’
 고맙기는 했지만 냉정히 생각해서 자신보다는 도두현이 장비를 챙기는 게 좋았다. 그는 S급 헌터. 한혁보다 활약할 게 당연하니까. 그가 들고 있는 게 더 효율적이다.
 “두현이 형. 이거 그냥 형이 가져가요. 보니까 형도 없는 거 같은데. 전 적당히 잘 숨어 있으면 돼요.”
 “응? 하하하핫! 짜식. 벌써부터 날 챙기는 거냐.”
 기분이 좋은지 한혁의 등짝을 친다. 가볍게 치는 데도 몸이 휘청거린다. 한혁도 두현의 옆구리를 때렸지만 그저 껄껄 웃는다.
 너도 좀 아파보라는 마음을 담아 좀 세게 쳤는데 멀쩡하다니. 한혁이 질린 표정을 짓는다.
 “난 어차피 필요 없어. A급 때는 종종 썼었는데 지금은 그냥 맞아도 멀쩡해서 말이야. 그 왜, 상위 몬스터로 갈수록 화기가 안 통하잖아. 비슷한 이치야.”
 “아하하! 괴물 같은 사람 같으니.”
 감동은 개뿔. 소중히 MB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총에다 방탄이라. 도두현은 어디까지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거라고 했지만 글쎄. 만약의 상황이란 게 의외로 빈번하게 터지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인데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비교적 총기류 관련돼서는 안전한 나라니까.
 “쉿. 여기부터는 조심히 가자. 자연스럽게 행동해.”
 도두현이 허리를 세우더니 웃음을 지우고 정면을 응시한다. 도심답게 건물들이 많고 적지만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이런 곳에서 마약 사업을 하고 있다니. 대담하달까. 허를 찌르는 수법이다. 상가를 지나자 낡은 빌라들이 밀집한 공간이 나타났고 곳곳에 컨테이너 박스와 조립식 창고가 보인다.
 한혁과 도두현이 향하는 곳은 그 안쪽. 기묘하게 숨겨졌으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
 컨테이너 뒤로 몸을 숨긴 도두현이 유리창 너머로 목표 건물을 확인한다. 2층 가까이 되는 건물로 주변 창고들보다 큰 편이다. 높이가 어중간한 게 층이 구분되는 것 같지는 않고 천장이 높은 모양.
 입구는 앞뒤로 두 개가 있었으며 슬레이트 지붕을 따라 달린 수십 개의 환풍기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옆면에 많지는 않지만 창문이 달려 있었는데 코팅이 되어 있거나 상자로 막아놔 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은 저놈들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지.’
 일단 확인이 먼저다. 현재 시간 7시 8분. 불법적인 일을 하는 놈들은 제법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다. 그래야 서로 의심을 안 하고 깔끔하게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모이는 시간보다 늦게 왔다. 모두 모여 있을 때 덮쳐야 빠져나가는 놈들이 없다. 같은 이유로 빠르게 제압해야 한다. 동료들에게 연락하면 뒤로 이어진 놈들이 몸을 사릴 테니까. 숨어버리면 찾아내기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일단 확인부터 해볼까.”
 창고 앞에 차량 두 대가 주차되어 있고 그 뒤로 한 명씩 보초를 서는 사람이 있다. 뒷문도 마찬가지.
 옆면에는 문도 없고 창문도 다 막아놔서 그런지 감시가 소홀하다.
 도두현이 한혁의 허리를 잡는다. 한혁이 뭐하는 거냐고 묻기도 전에 번쩍 든다. 그것도 한 손으로!
 “소리 내면 안 된다. 알았지?”
 “잠깐, 잠깐! 설마 나 던지려는 건 아니!”
 “맞아!”
 투포환을 던지듯 한혁을 날려버린다. 몸이 바람을 가른다. 롤러코스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더 생생했고 안전장치도 없다.
 억지로 입을 틀어막는다. 한혁 또한 초인. 비명을 삼키고 최대한 소리가 안 나게 슬레이트 지붕에 착지한다. 그나마 지붕의 경사가 완만해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굴러 내려갈 뻔 했다.
 한혁이 무사히 도착한 걸 확인한 도두현이 점프를 한다. 가볍게 지붕에 올라선다.
 “사람 맞습니까?”
 “후후, 당연한 말을.”
 손을 푼 도두현이 천장 끝을 잡고 매달린다. 한혁도 따라한다. 지붕 밑에 위치한 환풍기 뚜껑을 조심스럽게 움켜쥐어 부순 다음 환풍기 날개를 떼어 낸다.
 “당첨이네.”
 그 너머로 보이는 풍경.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마스크를 낀 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줄지어 이어진 테이블 위에는 하얀색 가루가 담긴 비닐 팩과 주사기, 봉지 등이 널려 있고 사람들은 숙달된 손놀림으로 빠르게 유통시킬 마약을 나눠 담고 있다.
 그들을 감시하는 사람 중 세 명의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다섯이었다. 그들의 허리와 등에는 검이 메여 있다. 헌터일 가능성이 높다.
 온갖 자재와 팔레트, 상자들이 가득해 창문으로 훔쳐봐도 알 수 없게 가려져 있다.
 도두현과 한혁이 다시 지붕위로 올라온다. 도두현이 헌터 워치를 누른다. 나머지 두 팀이 반응한다.
 “다들 어떻게 됐냐.”
 
 - 전 꽝입니다.
 - 고사바리를 찾기는 했는데 그냥 발품 파는 놈입니다. 혼자서 사람들 찔러보고 있네요. 형님은요?
 
 “나? 난 유통장이다.”
 
 - 부럽다. 저도 글로 가면 안 됩니까?
 
 “됐고. 작업 시작할 테니까 차음막 발사해.”
 
 - 예예. 알겠습니다. 연락해 둘게요.
 
 한혁이 몸을 푼다. 이제 시작이다. 심장이 뛴다. 도두현이 위치를 보내주고 웹툰을 켠다. 낄낄 거리며 웃는다.
 이게 바로 경력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인가. 자신은 아직 실력도 경험도 없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준비한다.
 그렇게 5분. 한혁이 도두현에게 다가간다.
 “저희 안 갑니까?”
 “아? 좀만 기다려봐. 곧 떨어질 테니까.”
 “떨어진다니. 그게 무슨.”
 
 - 휘유웅. 치지지직!
 
 한혁의 말이 끝내기도 전에 하늘에서 기묘한 빛이 떨어진다. 차음막이 파직! 하고 푸른 스파크를 내뿜더니 덩치를 불리며 창고와 그 주변 일대를 감싼다.
 한혁이 당황한 사이 도두현이 뛰어내린다.
 “그럼 가볼까! 밖에 있는 놈들부터 처리하자. 어지간하면 죽이지는 말고. 영 위험하면 알지? 그냥 쏴버려.”
 “알겠습니다. 가시죠!”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짠 듯이 몸을 움직인다. 도두현이 정문, 한혁이 후문.
 한혁의 등장에 보초 두 명이 인상을 쓰며 다가온다. 한 명은 살덩이, 남은 한 명은 적당히 근육이 있는 삼십 대.
 “여기는 개인 소유지입니다. 잘못 찾아 온 거 같은데 가시죠?”
 “제대로 찾아왔다!”
 선빵 필승! 쏜살같이 살덩이의 복부에 주먹을 꽂는다. 허리가 ‘ㄱ’자로 꺾인다. 삼십 대가 곧장 주먹을 날린다.
 느리다. 확실히 각성자가 되니까 알겠다. 일반인은 절대 각성자를 이기지 못한다.
 여유롭게 몸을 숙여 피한 다음 몸통 박치기를 한다. 괴상한 소리와 함께 자동차에 부딪친다. 운전석 유리창에 금이 가고 요란한 경고음이 들린다.
 어차피 난입하면 다 알 텐데 무슨 상관인가. 경고음을 무시하고 문을 박찬다. 한혁이 생각하는 싸움의 철칙. 시작은 패기롭게. 기세를 쥔 자가 승리한다.
 
 - 콰앙!
 
 “다들 동작 그만! 손에 든 거 다 내려놔!”
 도두현도 마찬가지. 문을 박살내고 들어온 도두현이 박수를 친다.
 “좋아, 좋아. 우리 신입 최고다. 들었지? 팔다리 멀쩡하게 잡혀 가고 싶은 사람은 양손 들고 무릎 꿇어!”
 “큭! 다들 튀어!”
 “유통장이 걸렸다! 처리해!”
 말한다고 들을 리가 없지. 단 한 명도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 없다. 마약을 나눠 담던 인원들은 급하게 주머니에 마약 봉투를 집어넣었고 헌터 다섯이 칼을 빼들고 달려든다.
 세 명이 도두현에게 덤빈다. 수적으로 우위에 섰다고 견제나 확인 작업도 하지 않는다. 곧장 칼을 휘두른다.
 “돌았구나?”
 도두현이 칼날을 향해 손바닥을 내민다. 헌터의 눈이 빛난다. 초짜들의 전형적인 실수. 갑작스러운 공격이 들어오면 본능적으로 손으로 막으려 한다.
 그 결과는 당연히 절단. 손이 잘리면 그걸로 끝.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알아서 과다출혈로 죽는다.
 “어?”
 검이 막혔다. 도두현이 혀를 차더니 검을 쥔 손에 힘을 준다.
 
 - 콰칭!
 
 검날이 부러지는 동시에 도두현이 놈의 가슴을 친다. 그대로 날아간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한혁에게까지 들린다.
 “나는 왜 데리고 온 거야? 혼자 다 해먹을 양반이, 힉!”
 한혁이 검을 피하며 투덜거린다. 다행히 적들의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하기야 능력이 있으면 던전에서 떼돈 벌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한혁이 완전히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적은 둘이다. 검도 있다. 맨손으로 상대하기는 무리가 있는 법.
 “이쪽 먼저 처리할 테니까 조금만 버텨!”
 “죽어라!”
 그들 또한 그 사실을 알았는지 매섭게 연계공격을 펼친다. 검이 아슬아슬하게 한혁을 스친다. 옷이 찢어지고 상처가 생긴다. 옷에 핏물이 번진다.
 확실히 이전에 싸운 C급 헌터 박호재와는 다르다. 적은 살상용 무기를 가지고 있다. 죽이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
 이어지는 공격에 몸을 굴러 피한 한혁이 최대한 거리를 벌린다. 사람을 패려거든 자신도 맞을 각오를 하라.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의한다.
 한혁이 자신의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그걸 꺼냈다.
 “너희나 뒤져.”
 
 - 탕!
 
 
 이 사람 어디 갔나 했더니
 
 
 
 
 
 총알에 관통당한 허벅지가 갈라진다. 대퇴뼈가 부러진 헌터가 비명과 함께 쓰러진다.
 한혁이 얼굴을 찡그린다.
 관통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펀치력은 강한데 저 정도라. 그것도 지근거리에서 쏴 맞췄다. 다리가 뜯기거나 반은 날아갈 줄 알았다.
 왜 이런 무식한 총을 줬는지 알겠다. 각성자들의 강화된 육체. 대인용 탄과 사냥용 탄이 다른 것처럼 각성자에게 충분한 데미지를 주려면 그에 걸맞은 탄알을 써야 한다.
 동료가 당하자 남은 한 명이 주춤한다. 한혁이 총구를 들이밀며 조준을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죽이지 말라 했으니 이번에도 다리를 맞출 생각이다.
 “제길!”
 
 - 탕!
 
 헌터가 도망간다.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지만 빗나갔다. 움직임이 조준하는 것보다 빠르다. 연달아 두 발을 더 쐈지만 실패. 총을 집어넣고 먼저 덤벼들었던 녀석의 검을 들었다.
 똑같은 검이라면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몸을 돌려 검을 휘두른다. 사선으로 검을 막는다.
 검을 잘 다루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각성자의 괴력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각도로 억지로 비틀며 들어온다.
 한혁이 검을 몸에 바짝 붙인다. 그 또한 검이 익숙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 야구에서 번트를 하는 것처럼 상대의 검이 닿는 동시에 밀어버린다.
 힘의 차이로 헌터의 검이 튕겨져 나간다. 자세가 흔들리는 건 당연한 일. 상체가 들린 사이 허벅지를 벤다. 살이 갈라지는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상대의 한쪽 다리가 꺾이며 몸이 기운다. 마무리를 지으려는 찰나 총격음이 들린다. 한혁이 반사적으로 공장자재 사이로 몸을 던진다.
 “총을 가지고 있다! 다들 쏴버려!”
 “헌터들이 당했어!”
 “지원군 불러!”
 
 - 탕! 탕!
 - 투두두두!
 
 말단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각자 총을 꺼내 쏘기 시작한다. 헌터도 쓰러진 이상 아군을 맞출 일도 없다. 권총에 소총까지 튀어나온다.
 “여기 한국 아니었냐! 뭔 총이 이렇게 많아!”
 몬스터와의 전쟁으로 총기가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익숙하다 못해 애인마냥 안고 뒹굴었었던 K-2부터 러시아 군인들이 썼었다는 AK-74까지. 폐품은 아닐까 걱정되는 M16도 간혹 보인다.
 “여기가 총기 박람회야 뭐야.”
 적들의 화기를 보니 자신이 쥐고 있는 리볼버가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스테인리스 테이블 뒤까지 기어간 한혁이 잠시 숨을 고른다. 적들은 한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곳으로 마구잡이로 쏘고 있다. 지금 나가면 화력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
 “그렇다고 계속 있을 수는 없고.”
 저들이 먼저 탐색해 포위당하면 스펀지마냥 구멍이 송송송 뚫린다. 결국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건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맛탱이가 간 MB가 얼마나 성능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오래 버텨줄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 이곳에 침입한 사람은 한혁 뿐만이 아니다. 도두현이 시선을 끄는 사이 기습을 하면 방법이 나올지도 모른다.
 지금쯤 도두현이 싸우고 있을 터. 눈을 감고 귀에 집중한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총소리. 전투를 하며 내뱉는 욕이나 집중 사격하는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왜 안 들리지?’
 용기를 내 살짝 고개를 내민다.
 “이 양반은 어디 간 거야!”
 안 보인다! 어쩐지 자신에게 날아오는 총알이 많다 싶었다. 그나마 헌터는 모두 쓰러져서 다행이다.
 현재 남은 총알은 퀵로더까지 포함해 여덟 개. 적은 스무 명이 넘는다. 한 발에 세 명씩 잡아도 될까 말까다.
 결국은 적들의 총을 뺏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MB를 믿고 검으로 무쌍을 찍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시도하고 싶지는 않다.
 한혁이 리볼버를 고쳐 쥔다.
 “싱글 액션이 아닌 거에 감사하자.”
 더블 액션이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쏠 때마다 해머를 당겨야 했다.
 한혁이 보이지 않자 총격이 멈추었다. 긴장 상태. 언제 누가 먼저 쏠지 모른다.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우선.
 총기를 들었다한들 일반인이다.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에 한계가 있다.
 
 - 탕! 탕!
 
 한혁이 찰나의 순간 몸을 들어 적들을 쏴버린다. 대응하지도 못할 짧은 시간 안에 다시 몸을 숨기고 자리를 피한다. 결국은 수십 대 일. 화력이 집중되면 답이 없다.
 몸을 일으킨다. 감시하고 있던 마약범이 한혁을 가리킨다.
 “저쪽이다, 쏴!”
 퀵로더로 탄알을 장전하고 빠르게 측면으로 돈다. 자신이 있던 자리가 벌집이 된다. 적들이 주시하는 곳은 한혁이 들어온 후문 방향. 상대적으로 옆은 부실할 것이다.
 역시나. 냉장 테이블과 잡동사니로 바리케이드를 만드느라 옆면이 비어 있다.
 한혁이 갑작스럽게 몸을 내민다.
 “반갑다! 친구들!”
 
 - 탕! 탕! 탕!
 
 “크악!”
 “끄아아! 내 팔!”
 곧장 세 발을 쏴버린다. 가장 앞에 있던 두 놈이 쓰러진다. 한 명은 팔이 거의 뜯겨 나갔다. 그 뒤에 있던 사람들은 급하게 바리케이드를 탈출하거나 테이블을 끌어와 몸을 숨긴다.
 빠르게 대응 사격이 날아왔지만 이미 한혁은 자리를 피한 후였다.
 이제 네 발. 다시 빠르게 적들을 감싸며 돈다. 이렇게 조금씩 적들을 갉아 먹을 생각이다. 반응하기 힘들 거다. 본인조차 움직이는 각성자를 상대로 조준할 수가 없었는데 일반인들이 가능할 리가 있나.
 한혁이 조용히 머리만 내민다. 아직 그를 발견한 사람은 없다.
 이번에는 말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 탕!
 
 “억!”
 어김없이 한 명이 쓰러진다.
 “다들 엎드려!”
 “우릴 감싸고 있다! 일단 갈겨! 조준해서 맞출 생각 말고!”
 물량으로 승부하겠다는 걸까. 위치 파악도 안 하고 쏴버린다. 좋다. 그렇게 총알을 낭비하는 만큼 너희의 수명은 주니까.
 더 흥분해 날뛸 수 있도록 한 방 더 갈겨주마.
 지게차와 냉장고를 지나쳐 총구를 내밀었다. 한혁이 이를 악문다.
 얻어걸린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날래도 소나기는 피할 수 없으니까. 지금이 그랬다. 나오자마자 총을 쏘고 있는 적과 눈이 마주쳤다. 급하게 방아쇠를 당겼지만 상대는 이미 총을 갈기고 있는 중. 피할 수 없다!
 
 - 투두두두두!
 
 총소리가 벼락같이 들린다.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린다. 총에 맞는 기분이 썩······.
 아프지 않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뒤를 돌아보니 기가 막히게 자신이 있는 곳만 총이 피해갔다.
 MB! 주머니에 있던 그것이 효과를 발휘했다. 한혁의 멀쩡한 모습에 적들도 놀랐는지 또다시 총을 갈긴다. 물론 그대로 맞아 줄 한혁이 아니었다.
 ‘총을 막는 건 확실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겠어.’
 마음 같아서는 피하고 싶지만 이제 한 발 남았다. 변수를 만들어야 한다. 적들을 분산시키려면 한 곳에 뭉쳐 있으면 안 된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한 손에 검을 쥐고 나선다. 방금 전 총을 맞고도 멀쩡한 게 걸렸는지 섣불리 쏘지 않는다. 그 중 한 명이 한혁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하하하! 이제 총알이 다 떨어졌나보구나! 넌 이제 죽은!”
 
 - 탕!
 
 마지막 한 발로 말이 많은 녀석을 잠재우고 검을 치켜들었다. 누가 봐도 총을 뚫고 돌격하겠다는 모습!
 말도 안 되지만 가능하다면 몰살이다.
 “뭐해! 쏴!”
 “헌터도 총 맞아 뒤지는 건 똑같다고!”
 “쫄지 마! 허세일 뿐이야!”
 한혁이 빠르게 뛴다. 지금 이러는 것도 미친 짓이지만 정면으로 달리는 건 진짜 죽자는 거다. 자신은 죽을 생각이 없다. 지그재그로 몸을 이동시키며 조금씩 접근한다. 위험하다 생각이 들면 장애물에 몸을 숨긴다.
 적들이 초조해진다. 우연이라도 맞을 법도 한데 멀쩡하다. 그들의 불안감이 올라가는 만큼 한혁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생각보다 MB의 성능이 좋다. 몸을 비틀어 조준점을 흐트러트리고 의자를 던져 시야를 가린다. 지금이 기회다.
 “젠장! 접근한다! 피해!”
 “산개!”
 적들이 흩어진다. 그 전에 잡을 수 있는 만큼은 잡아야 한다. 한 명을 베어 넘기고 단검을 빼들고 덤비는 놈의 무릎을 짓뭉갠다.
 “죽어라!”
 동료의 시체에 넘어진 마약범이 총을 갈긴다. 가까스로 몸을 굴린다. 한혁이 식은땀을 흘린다.
 스쳤다. 분명하다. 종아리에서 피가 흐른다. 벌써 한계인가. 빠르게 끝내야 한다. 땅에 떨어진 AK-47을 집어 장전한다.
 넘어졌던 놈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찍어 기절시키고 그놈이 들고 있던 TAR-21도 집어 들었다. 불펍식 소총이라 어색했지만 상관없다. 쏘는데 문제는 없다.
 “으아아아!”
 
 - 투두두두두!
 - 드르르륵!
 
 기합과 함께 한 손에 하나씩 소총을 끼고 갈겼다. 친절하게도 조정간은 모두 연발로 돼있다. 등을 보인 마약범들이 고꾸라진다.
 남은 마약범은 총 아홉. 한혁의 무차별 난사에서 살아남은 적들이 각자 엄폐물로 몸을 보호하며 사격을 시작한다.
 한혁도 놈들이 남겨 둔 바리케이드에 몸을 숨긴다. 시체와 핏물 위에서 기고 있자니 욕지기가 올라왔지만 억지로 삼켰다. 자기도 죽으면 똑같아질 테니까.
 총소리와 화약 냄새, 비릿한 피 냄새까지. 흥분되고 약간은 무감각해지는 기분. 바닥에 굴러다니는 팔 다리가 현실성 없이 다가온다.
 왜 특수테러본부인지 알겠다. 이건 테러고 전쟁이다. 헌터와는 다르게 사람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일하는 곳이다.
 “젠장!”
 이럴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지만 겪어 보니 더하다. 한혁이 거칠게 탄창을 뽑는다. 죽은 시체에서 탄알집을 빼낸다. 총이 다양한 만큼 탄의 종류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맞는 탄이 없는 AK-47을 버린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이쪽이 유리하다. 대부분의 탄과 총은 이곳에 있으니까. 적들의 탄이 떨어지면 승리다.
 눈에 보이면 보이는 대로 보이지 않으면 적들이 숨었다고 예상되는 대로 총을 쐈다. 탄이 떨어지면 다른 총을, 총도 없으면 탄창을 뒤져서 계속 쐈다. 장애물을 뚫어 적들을 잡을 각오로.
 K-1, K-11, MPT-76. 수많은 총이 거쳐 간다. 이제 남은 총은 AK-74. 망설임 없이 집어 쏴버린다.
 
 - 두두두두두두! 틱!
 
 탄창이 비었다. 요란한 총소리가 끝나자 적막감이 감돈다.
 “하아, 하아.”
 한혁이 마지막으로 쏜 AK-74를 내려놓는다. 소총은 전부 썼다. 화약 냄새로 코는 마비됐고 계속된 사격으로 손이 진동한다.
 적들의 반응은 없다. 다 죽은 걸까? 아니면 기회를 엿보고 있을까. 일단 움직이자.
 반쯤 엎드리다시피 이동한다. 아직 식지 않은 탄피에 몸이 그슬렸지만 무시했다. 이제 탄이 남은 건 권총뿐. 잡히는 대로 탄 수를 확인해 가장 많은 걸로 두 개 챙겼다.
 한혁이 발을 박찬다. 바리케이드를 빠져나오는 동시에 지게차 뒤로 슬라이딩한다. 자신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면 분명히 봤을 거다. 자신이 빠르다 한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니까.
 그럼에도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가능성은 두 가지. 모두 죽었거나. 기회를 엿보거나.
 지게차 운전석 사이로 적들을 살핀다. 특별할 건 없다. 위치를 파악해서 집중적으로 공격한 곳이 다섯이다. 그 중 피가 흘러나오는 곳은 제외. 남은 곳은 두 곳. 어디로 숨었는지 알 수 없는 인원이 둘.
 침을 삼키고 달렸다. 먼저 위치를 아는 곳부터 확인한다. 양손으로 총구를 들이밀며 들어간다.
 “죽었군.”
 마약이 들어 있는 박스 뒤에 숨었었나보다. 온몸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져 있다. 시체 밑으로 그들이 그토록 집착한 마약이 쏟아져 피와 함께 녹아내린다.
 남은 한 명도 마찬가지. 이미 총상을 입고 죽었다. 위치를 알 수 없는 두 명을 찾아 창고를 뒤졌지만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탈출한 모양.
 ‘추적해야 하나.’
 화기를 가지고 있는 마약범이 도심으로 뛰쳐나갔다. 자칫 잘못하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 터. 쫓아야 한다.
 머리가 멍하다. 총격전을 하며 피어오른 마약 때문인지,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에 머리가 굳어버린 건지는 모르겠다.
 둔해진 발걸음을 밖으로 옮겼다. 불현듯 화가 났다. 자신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같이 온 도두현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만나기만 해봐. 내가 아주.”
 한혁이 창고 밖으로 나온다. 햇빛에 눈이 찌푸려진다. 실눈으로 보이는 풍경.
 눈을 끔뻑이며 상황 파악을 한다. 도망친 두 놈을 쌓아 의자로 만든 도두현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끝났냐?”
 도두현. 그의 뒤로 근 오십 명에 달하는 마약범들이 쓰러져 있다. 반파된 자동차만 다섯. 각성자로 보이는 자가 열 명.
 “이놈들이 지원군을 불러서 말이야. 놀다보니 깜빡했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아, 네.”
 뭐 할 말이 있겠는가. 그쪽이 두 배는 더 해치웠는데.
 
 
 사격 연습
 
 
 
 
 
 도두현이 일어선다. 깔려 있던 사람들이 신음을 냈지만 깨어나지는 않는다.
 “넌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다. 일단 기다려봐. 조금 있으면 지원팀 오니까. 거기에 여분 옷 몇 벌 있을 거야. 이 짓거리 하다보면 옷이 금방 상하거든.”
 핏구덩이를 뒹구느라 옷은 이미 빨갛게 물들었다. 찐득해진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을 때마다 기분이 더럽다.
 “찝찝하기는 하네요.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입고 있을 게요.”
 한혁이 쓰러진 마약범들 중 그나마 곱게 기절한 사람에게 다가간다. 지원팀이 옷을 주기 전 까지는 임시로 마약범의 옷을 입을 생각이다.
 차마 도심이라 바지는 벗지 못하고 윗옷만 벗어 걸레 짜듯 짠다. 땀과 핏물이 바닥을 적신다. 그걸로 몸에 남은 피를 닦아내고 기절한 마약범의 셔츠를 벗겨 입는다. 속에 받쳐 입은 반팔도 찢어 얼굴을 닦는다. 한결 낫다.
 “후우, 이제 좀 낫네. 형, 물티슈 없어요?”
 “트렁크에 있기는 한데 지금은 없지. 뭐하면 살수차라도 불러다 뿌려줄까?”
 “그래도 돼요?”
 한혁이 핸드폰을 들자 도두현이 낚아챈다.
 “농담이지 이놈아. 그딴 걸로 119 부르지 마라. 고생하는 분들이니까.”
 “고생은 저희가 더 한 거 같은데.”
 “으으.”
 투덜거리던 한혁이 깨어나려던 마약범의 뒤통수를 때린다. 옷이 없어서 추웠나보다. 일어서 있기도 힘들어 맨바닥에 앉아 있던 한혁이 주머니에서 MB를 꺼내준다.
 “이거요. 잘 썼었어요.”
 “넣어둬. 아까 보니 총소리 많이 들리던데. 이 짓 하다 보면 총질할 일 많다. 맞을 일도 많고.”
 “쓸 수 있는 거였으면 쟁여놨죠. 망가졌어요.”
 “그러냐. 한동안은 작동될 줄 알았는데.”
 그럼 그렇지. 도두현이 받아든다. 흔들기도 하고 앞뒤를 살피며 만지작거린다. 그런다고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아까웠다. MB는 가격이 상당했으니까. 무엇보다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대량 생산이 불가능 했으니까.
 그래도 버릴 건 버려야 하는 법. 특히나 이렇게 사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결함이 목숨과 직결된다.
 자신이야 총 맞아야 멀쩡하니 무뎌졌지만 한혁은 아니니까. 라이플에 관통당하는 여리고 여린 아이일 뿐이다.
 “저놈들이랑 총질하다가 적진으로 난입했는데 넘어진 놈이 총을 쏘더라고요. 반사적으로 피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형 오늘 저녁으로 육개장 먹었을 걸요?”
 “육개장은 인마. 먹기 싫어도 많이 먹는다. 것보다 넘어진 놈이 쏜 거에 맞았다고? 바로 앞에서 넘어졌냐?”
 “그쵸. 바로 근처였으니까.”
 그래서 그런 거였군. 도두현이 작게 박수를 친다. 한혁에게 권총 좀 줘보라고 손짓한다.
 한혁이 가슴에 챙겨 놨던 레이징 저지를 건네준다. 은근슬쩍 가지려 했는데 걸렸다.
 “MB가 말이야. 파동이라 해야 하나, 장막이라 해야 하나. 그게 좀 퍼져야지 제대로 작동이 되거든? 방탄복이랑은 구조가 달라. 그래서 근접에서 쏘는 건 못 막는다고 봐야지. 탄이 휘어도 가까이에 있으면 맞으니까. 물론 위력은 좀 줄겠다만.”
 잠시 입을 다문 도두현이 MB를 공중으로 던지더니 레이징 저지를 쏜다.
 
 - 찰칵!
 
 한혁이 아차 한다. 총알을 다 썼다고 말 안 했다. MB가 바닥에 떨어지고 멋들어지게 총을 겨눴던 도두현이 민망한지 헛기침을 한다.
 “흠흠! 아무튼 그래서 특수테러본부 애들이 권총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가 그거야. 가끔 장비 좋은 애들 보면, 걔네도 MB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거든. 그럴 때 다가가서 빵!”
 손바닥에 권총을 붙인 도두현이 총을 쏘는 시늉을 한다.
 “소총도 좋기는 한데 커가지고 걸리적거려. 총구 잡아서 구부려버리면 쓰지도 못하고. 눈에 잘 띄어서 경계도 많이 하거든. 관통력이 좋아서 가까이에서 쏘면 살상력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지.”
 간단하게 각성자나 MB 착용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휴대 편하고, 기습에 용이하며, 펀치력이 강한 권총을 쓴다는 거다.
 가볍거나 약한 탄은 MB의 장막을 뚫지도 못한다. 각성자에게 타격을 주려면 괴물 같은 탄을 써야 하는 법. 9mm같은 걸로는 피부에 기스나 나면 다행이다.
 마약범의 품에서 권총을 찾은 도두현이 일어선다. 자신이 던진 MB를 향해 총을 겨눈다. 거리는 약 4m.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정도 거리만 있더라도 총을 막을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지!”
 
 - 탕!
 - 파삭!
 
 MB가 박살나며 파편이 튀어 오른다. 도두현이 시발, 되는 게 없네. 하며 중얼거린다. 선배이자 기관의 수장으로써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었나보다.
 “아, 망가졌다고 했잖아요!”
 “미안하다. 용케 살아왔네. 이따 내가 쓰던 거 줄게. 그건 멀쩡해.”
 “중고밖에 없습니까?”
 “물량이 없어. 마켓에 풀리려면 좀 더 기다려야 돼.”
 MB의 원리는 마정석의 분열. 에너지 덩어리인 마정석을 조금씩 붕괴시키는 건 발전소에서나 가능한 일. 그 기능을 한 주먹에 들어갈 정도로 크기를 줄인다는 건 현대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각성자들이 능력을 모아야 만들 수 있는 물건이며 정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는 품목이었다. 테러 단체에 물건이 풀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렇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씩 일정 물량만 내보낸다. 그것도 일반 시장이 아닌 아는 사람들만 아는 비밀 마켓으로.
 이 기간이 되면 해외의 대테러 부대와 헌터들도 찾아와 구매 의사를 밝힌다. MB를 개발한 곳이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가 없다.
 한혁과 도두현이 기절한 이들과 시체를 구분해 모아둔다. 얼마 있지 않아 특수테러본부의 차량과 특수재난부의 지원팀이 도착한다.
 각성자 중 헌터로 활동하는 사람들과 일반인은 특수재난부가 데려간다. 독립하면서 인력이 부족해진 특수테러본부를 위한 배려다. 대외적으로도 특수재난부가 상위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야, 많이도 잡았네. 반가워. 네가 그 신입이구나?”
 차에서 내린 특수테러본부의 길준태가 한혁에게 손을 내민다. 큰 키에 짧은 머리. 하관이 길고 눈이 쳐졌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 활기찬 인상이다.
 만만한 생김새와 달리 A급 각성자로 상당한 전투력과 제압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혁이 그의 손을 맞잡는다.
 “한혁입니다.”
 “어때. 할 만해?”
 “같이 온 분이 망가진 MB를 주셔서 죽을 뻔 했어요.”
 멈칫. 길준태가 도두현을 매섭게 노려본다. 도두현이 당황한다.
 “진짭니까?”
 “아니,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고. 트렁크에 하나 있길래. 뭐! 없는 것보단 낫잖아!”
 “그거 믿고 돌격이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어요!”
 “돌격은 이미 했는데요? 몇 번 막아주기는 하더라고요.”
 “신입 죽일 일 있어요? 가뜩이나 새로 들어오는 놈도 없고, 들어오자마자 나가기 바쁜데.”
 길준태가 도두현의 엉덩이를 걷어찬다. 저사람 본부장 아니었나 싶었지만 좀 더 맞아도 싸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었다.
 다리가 살짝 들릴 정도로 세게 맞은 도두현이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애들 나가는 게 나 때문은 아니잖아.”
 “형님이 본부장 아닙니까. 원래 책임은 윗사람이 지는 법입니다.”
 간만에 듣는 옳은 소리다.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책임지는 게 많다는 건 다 옛말인 줄 알았는데 아직 그 정신을 이어가는 곳이 있었다니.
 길준태가 더 따지려 했지만 한혁이 말린다. 이미 일은 끝났고 길준태는 현장을 마무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싸우는 만큼 한혁이 쉬는 시간은 멀어질 터.
 “전 괜찮으니까 옷부터 갈아입을 수 있을까요?”
 “조수석 봐 봐. 좀 클 수도 있는데 대충 입어. 어차피 어디 놀러갈 때 입는 옷 아니니까. 수건도 있으니까 피도 좀 닦고.”
 고개를 끄덕인 한혁이 차로 간다. 4인이 탈 수 있는 전면과 테러범들을 집어넣는 호송 칸. 군용 차량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투박하고 튼튼하다.
 거의 장갑차 수준인 호송 차량 안으로 들어간 한혁이 옷을 갈아입는다. 생수가 있길래 수건을 적셔 간단하게 머리와 얼굴도 닦았다.
 밖으로 나오자 길준태와 지원팀이 작업을 시작했고 도두현은 특수재난부에서 나온 담당자에게 현장 자료와 과정 등을 공유하고 있다.
 대화를 마친 도두현이 가자고 손짓한다. 창고가 많은 곳을 벗어나 빌라가 있는 곳까지 나오자 이질감이 든다.
 소리. 자동차, 사람들, 광고. 잡다한 소리가 들린다. 도두현이 말한 차음막이란 게 이거였다. 해도 안 진 시간에 도심에서 총격전을 벌였음에도 아무도 모른다.
 이런 일이 이번 한 번은 아닐 것이다. 소름이 돋는다.
 일반인이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각성자와 범죄의 세계. 그곳에 발을 담갔다는 사실이 확 다가온다.
 “멍해 보인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사람을 상대로 총 쏘는 거 처음에는 다들 힘들어한다. 나도 그랬고.”
 “제가 안 쏜다고 적도 안 쏘는 건 아니잖아요. 애초에 범죄자 아닙니까. 사람 죽이는. 괜찮아요. 그냥 좀. 일상과 멀어지는 거 같아서 기분이 묘하네요.”
 도두현이 한혁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 심정을 모를 리가 없다. 이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늦든 빠르든 겪는 일이니까.
 괜한 말은 삼켰다. 스스로 자신만의 정의를 내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너무 내면에 빠져드는 것도 문제지만. 그걸 못 버텨서 관둔 사람도 많다.
 어느덧 주차한 곳에 도착했다. 이대로 집으로 보내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게 좋겠지만.
 도두현이 흘낏 한혁을 살핀다. 갑자기 다음날 그만두겠다고 말할까 걱정이 됐다.
 “흠, 본부에 있는 놈들은 다음에 만나자. 오늘은 스트레스나 풀러 가자고.”
 한혁을 태운 도두현이 시동을 건다.
 
 * * *
 
 남산 근처에 위치한 특수테러본부의 충무로지부. 사격장이 위치한 곳이다. 간판도 없어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뭐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다. 방음도 완벽해 총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여긴?”
 “사격장이다. 스트레스 풀기에 적당한 곳이지. 물론 마냥 놀려고 온 건 아니야. 총 쏘는 것도 알려주고 멀쩡한 MB도 주려고 왔다.”
 그러면서 가져갔던 레이징 저지를 준다.
 “그건 네가 써라. 난 몇 개 더 있다. 총알은 본부에 가면 줄게. 지금은 헌터 자격증도 없고 특수테러본부 사원증도 발급 안 돼서 안 돼. 사실 총 소지하는 것도 불법이기는 한데 뭐 어때. 경찰이 뭐라 하면 BB탄이라고 우겨.”
 한혁이 눈을 빛낸다. 내심 마음에 들던 거라 탐나던 참이다. 언제 말을 바꿀지 몰라 빠르게 권총집에 챙겼다.
 “제가 바봅니까. 남들 보게 들고 다닐까 봐요. 집에 얌전히 모셔 둘 겁니다.”
 “어허, 집에 놔두기는. 사격장 와서 연습해야지. 총만 들고 오면 총알은 준다. 나갈 때는 반납해야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김수지가 도두현을 반긴다. 대학을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케이스로 26살에 당당히 관리자가 됐다.
 “본부장님 오셨어요?”
 “오빠라 부르라니까.”
 “징그러워서 싫어요. 아저씨잖아요.”
 그 마음 이해한다. 한혁 또한 도두현을 아저씨라고 불렀었으니까. 은근슬쩍 서른여덟이면 한창이라며 오빠라 부르기를 강요하는 도두현을 무시한 수지가 한혁에게 다가온다.
 “그쪽이 이번에 새로 들어온 분? 이름이.”
 “최한혁이요.”
 “수지야 너보다 한 살 어리니까 말 편하게 해.”
 “에, 초면인데요.”
 “괜찮아요. 전 수지 누나라고 부를 게요.”
 “깔깔깔, 그래. 나도 아저씨들만 잔뜩 보다가 동생 보니까 좋다.”
 호탕하게 웃는 수지에게 부탁해 사격장 안내를 받았다. 일반 사격장이 일자로 서서 쏘는 거라면 이곳의 사격장은 커다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용 중인 방을 훔쳐보니 실전처럼 과녁이 앞뒤 양옆 할 거 없이 사방에서 나타난다.
 김수지가 빈방을 열어준다. 도두현이 종이상자를 들고 온다. 탄은 기존에 쓰던 454 Casull. 장전된 것 까지 합쳐 총 마흔 발이다.
 안내를 마친 수지가 자리를 비켜준다.
 “일단 어느 정도 쏘는지 봐보자.”
 문을 닫은 도두현이 시작 버튼을 누른다. 난이도는 기본. 우선은 사방이 아닌 전면으로 올라오는 것만 쏘기로 했다.
 한혁이 발을 벌리고 양손을 들어 조준을 한다. 숨을 고르게 내쉬며 어디서 올라올지 모르는 표적을 노려본다.
 
 - 탕! 탕! 탕! 탕! 탕!
 
 불규칙하게 올라오는 과녁을 쏴버린다. 놓친 것은 버리고 새로 올라오는 과녁을 맞힌다. 여섯 발을 쏜 후 아직은 어색한 퀵로더로 탄을 장전한다.
 정신없이 쏘기를 이십 분. 리볼버가 헛돈다. 집중하다보니 탄이 다 떨어진지도 몰랐다. 결과는 올라온 표적 마흔 개 중 스물아홉 개를 맞췄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은 결과다.
 “뭐, 그냥 평범하네. 자. 내가 시범을 보여주마. 잘 봐라.”
 도두현이 어깨동무를 하더니 케이스에 보관하던 권총을 꺼낸다. 크기부터가 장난이 아니다. 한혁이 눈썹을 올린다.
 “그거 권총 맞습니까?”
 “보다시피?”
 S&W의 M500. 총열만 10.5인치. cm로 환산하면 26.7cm다. 전용 탄인 S&W 500은 그 유명한 데저트 이글의 50AE 탄보다 2배가량 강하다.
 분명 이 양반 권총은 기습용으로도 쓴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흉악한 물건을 들고 오다니? 대놓고 죽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어깨에 둘러진 팔을 떼어낸 한혁이 시작 버튼을 누른다. 괘씸한 마음에 난이도를 상으로 올린다.
 “시작!”
 빠르게 과녁이 올라온다. 도두현이 피식 웃는다. 조준도 안 한다. 반동이 상당할 텐데 그냥 한 손으로 들고 쏴버린다. 과녁이 올라오는 대로 팔이 움직인다.
 다섯 발을 전부 쏴버리더니 퀵로더로 1초도 안 돼 장전을 마친다. 또 다시 연사. 결과는 놀랍게도 올 클리어.
 그가 장난스럽게 총구를 분다.
 “봤지? 우리는 일반인이 아니다. 네가 쏘는 총도 각성자라면 충분히 한 손으로 쓸 수 있어. 조준? 그딴 거 하지 마. 그냥 계속 쏘고 익혀. 이만큼 떨어져 있으면 이렇게 쏴야지. 그 감각을 배워라. 각성자 상대로 조준할 시간 따위는 없으니까.”
 한혁이 입을 벌린다.
 
 
 시험 끝나고 보자
 
 
 
 
 
 잘해 보라는 말을 남기고 도두현이 사라진다. MB를 가지고 오겠다나. 탄이 잔뜩 들은 박스를 갖다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무상자에 있는 탄만 해도 오늘 안에 다 쓰긴 힘들 것 같다. 한혁이 장전한다. 심호흡을 하고 손을 푼다. 계속되는 사격으로 손목에 무리가 갈지도 모르니까.
 스타트. 난이도는 도두현이 했던 상으로 했다. 왠지 모를 승부욕이 생긴 것도 있지만 도두현이 너무 쉽게 맞추는 바람에 혹시? 싶었다.
 “어려운 것부터 익숙해지면, 쉬운 건 껌이지.”
 감각을 익힌다. 조준은 포기한다. 초인의 악력과 힘이면 한 손으로도 충분하다. 올라오는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는 모른다. 올라오는 것만큼 빠르게 내려갔으니까. 넘어진 건지 내려간 건지 알 수 없다.
 일반인일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움직임으로 총질을 한다. 발을 비틀며 몸을 이동시킨다. 시야를 넓히고, 놓쳤을 법한 표적에 총알을 박아 넣고 동시에 올라오는 녀석은 총의 반동을 이용해 뒤로 후퇴되는 후미를 밀어 쏴버린다.
 결과는 40개중 12. 처참하다. 아니, 오히려 맞춘 게 용하다. 가능성이 있다는 거에 의의를 둬야한다.
 “어차피 권총을 장거리에서 쓸 건 아니잖아.”
 위치에 따라 얼마나 손을 움직여야 하는지부터 파악하자.
 다시 도전. 탄은 넘쳐난다. 밀폐된 공간, 탄피를 잃어버릴 일도 없다. 물론 이곳이 탄피에 민감한지는 의문이지만. 당장 창고에서도 그렇게 갈기고 왔는데 별 신경 안 쓰는 거 같다. 하기야 탄피에 목숨 거는 건 우리나라 군대 말고는 없으니까.
 탄피가 쏟아지고 화약 냄새와 연기가 방을 채워 나간다. 곳곳에 설치된 환풍기가 아니었으면 진작 질식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쏘고 또 쏜다. 오른팔이 저리다 싶으면 왼손으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오른손을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니까. 확실히 명중률이 급감한다.
 “하다보면 늘겠지.”
 무아지경이랄까. 과녁 올라오는 걸 40발에서 무제한으로 하고부터는 정신없이 총을 쐈다. 총열이 달아오르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잠시 쉬자는 생각으로 총을 내린다. 집중을 유지한 채 사격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체력이 필요했다. 거기에 총의 반동. 처음이야 별거 아니지만 누적되니 이것도 장난 아니다.
 팔을 주무른다. 총구가 까맣다. 집으로 갈 때 총기 손질 도구도 얻어야겠다.
 문이 열리고 도두현이 들어온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기침을 한다.
 “켁! 쿨럭! 총을 얼마나 쏜 거야. 화생방인줄 알았네.”
 “금방 왔네요?”
 “금방은 인마. 밖에 깜깜해. 11시 다 됐어.”
 “벌써요?”
 9시쯤에 사격장으로 왔으니 2시간가량 쏘고 있었다. 탄으로 따지면 칠백 발 가까이 쐈다. 조금만 더 쐈으면 총열의 내구도가 다 됐을지도 모른다. 연발수준으로 쏴 버렸으니까.
 도두현이 품에서 MB를 꺼낸다. 기존의 것과 같은 생김새. 다른 점이 있다면 윗면에 은색으로 Class 2라고 적혀 있다. 전에 썼던 것보다 성능이 좋은 모양.
 한혁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당한 게 있는지라 성능이고 뭐고 불신이 생긴다.
 “이번에는 멀쩡한 거 맞죠?”
 “그럼. 당연하지.”
 도두현이 당당하게 말한다. 전원을 켜더니 초록색 불 세 개가 점멸하는 걸 보여준다. 한혁이 조용히 권총의 실린더를 확인한다. 아직 두 발 남았다.
 “확인해 봐도 됩니까?”
 “그래. 응? 확인?”
 도두현이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한혁이 방아쇠를 당긴다.
 
 - 탕!
 
 “야! 갑자기 쏘면 어떡해!”
 총알을 잡기라도 하려 했던 건가. 손을 내밀고 있다. 괴물 같은 인간. 그 찰나에 반응을 하다니. 그게 가능한가.
 그대로 총알을 잡는 모습을 봤어도 좋았겠지만 MB가 무사히 작동하는지 총알은 벽을 맞고 떨어졌다.
 한혁이 바닥에 총을 내려놓는다. 더 이상의 사격은 불가. 총열이 달궈져 가슴에 있는 권총집에 꽂아 두기도 힘들다.
 “혹시 모르잖아요. 또 불량일지.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멀쩡한지 확인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유통장 건 때문에 그래? 뭐, 그래. 그건 내가 잘못한 거니까. 이번에는 멀쩡해. 작년에 C급인 애가 들어와서 줬던 건데 반년 만에 나갔거든. 이정도면 거의 신품이다.”
 그제야 한혁이 MB를 받아 챙긴다.
 안쪽에 간단한 설명이 써져 있다. 이제 보니 전원이라고 생각했던 건 얼마나 사용 가능한지 알려주는 거였다. 보조배터리 남은 용량 보는 느낌이다.
 한 번 만들어서 작동 시키면 도중에 멈출 수가 없단다. 이런 건 줄 알았으면 들어오자마자 쏴버리는 건데.
 MB Class 2는 방탄복으로 따지면 NIJ 레벨 Ⅳ 정도. 소총 철갑탄도 막을 수 있는 방호력이다.
 도두현이 바닥에 널려 있는 탄피를 발로 민다. 남은 탄알을 챙기고 밖으로 나선다.
 “집 가자. 가기 전에 총도 수리 맡겨 놔라. 강선 다 닳았겠다. 좀 살살 다뤄. 나중에 네 목숨 살려 줄지도 모르는 애니까.”
 “여기 수리도 해줘요?”
 “우리 바쁘다. 일일이 수리하고 그럴 시간 없어. 지원팀이 괜히 있는 줄 아냐.”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김수지에게 권총을 맡긴 한혁이 도두현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피곤하다. 따뜻한 물에 샤워가 간절하다. 그 다음에 시원한 맥주를.
 “크흐.”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감탄을 하자 도두현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한혁이 아무렇지 않은 척 딴 짓을 한다.
 그러다 다음날 일정을 묻기 위해 운전 중인 도두현을 부른다.
 “형. 내일은 출근 어디로 해요? 몇 시까지?”
 “내일은 학교 가. 어차피 본부는 후방팀이랑 지원팀이 자리 지키고 있으니까. 우리는 지금 필드에서 뛰는 거라 대기만 타고 있으면 돼. 술만 마시지 마라. 내일 학교 끝나면 사격장 와서 연습하고.”
 “알겠습니다.”
 출근도 없다. 꿈의 직장인가. 가만 생각해 보니 헌터들도 거의 이런 식으로 일한다. 길드에서 일 받아가고 준비하고. 각자 연습하고 모여서 합 맞추고.
 솔로로 움직이는 사람은 일 받으러 올 때만 길드에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혁이 편의점에 들려 맥주를 사고 자취방으로 들어간다.
 얼마 만에 들어오는 집인가. 10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돌아오는 기분이다.
 걸레를 빨아 바닥을 대충 닦는다. 6월 말. 1학기가 끝날 무렵이다. 기억이 맞는다면 남은 수업은 한 개다. 캘린더를 확인한다. 내일은 수요일. 교양 과목의 시험이 있는 날이다.
 “후후, 이번 학기는 망했군.”
 취직은 이미 했다. 학교는 졸업을 목표로 하자. 한혁이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킨다.
 
 * * *
 
 간밤에 숙면을 취한 한혁이 여유롭게 학교로 간다. 시험은 1시 30분. 그 전에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갈 생각이다.
 통장에는 이동 던전 때 잡았던 고블린들의 부산물을 팔고 들어온 200만 원까지 합쳐서 천사백만 원정도 모였다. 돈도 있겠다, 학교 앞 스테이크 파는 곳으로 갈 생각이다.
 민우도 불렀다.
 “역시 밥 사준다니 재깍 나오는군.”
 민우는 다음 주에 시험이 끝난다. 종강한 수업들 덕에 시간표가 붕 떠버려 PC방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야! 각성자 최한혁 씨 아닙니까!”
 “하하하! 백수님! 뭘 또 그런 걸 큰 목소리로 말하고 그러십니까, 부끄럽게!”
 “아직 학생이다, 이 새꺄.”
 민우가 한혁의 옆구리를 찌른다. 만날 때마다 투닥거리는 두 사람. 이러니까 일상으로 돌아온 거 같다. 기분이 좋아진 한혁이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메뉴를 본다. 대학생들이 주 고객인 만큼 그리 비싸지는 않았지만 평소 학식을 즐겨 먹던 민우에게는 낯선 금액이었다.
 “와우, 역시 스테이크는 비싸구나. 한 덩어리에 이만 원이야.”
 “아이고, 우리 민우 씨 연애 안 해보셨나 봐요. 이런 곳을 와 본 적이 없는 걸 보니. 비싼 데는 4, 5만 원도 한다.”
 “응, 너도 솔로야.”
 “이 새끼.”
 팩트는 폭행이다. 힘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법. 각성자의 파워로 민우의 머리를 재빨리 치고 몸을 피했다.
 적당히 제일 비싼 걸로 두 개시키고 소주도 있길래 그것도 시켰다. 도두현이 술은 안 된다 했지만 뭐 어떤가. 각 반 병씩인데.
 “원래 이거 먹을 때 소주 먹냐?”
 “그럼 너랑 나랑 둘이서 와인 깔래?”
 “상상하니까 밥맛 떨어지네. 소주 잘 시켰다.”
 얼마 안 있어 요리가 나왔다. 나쁘지는 않았다. 딱 가격만큼의 맛.
 민우가 소주를 깐다. 한 잔씩 마신다. 크흐,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역시 둘의 입맛에는 소주가 맞았다.
 “너 선택했냐?”
 “뭘?”
 “그 뭐시냐. 아저씨 두 명 너 스카우트 하러 왔었잖아.”
 민우가 한 잔 더 채운다.
 “나 특수테러본부로 취직했다.”
 “그건 뭐하는 곳이냐. 처음 듣는데.”
 “범죄자랑 테러범 잡는 곳. 어제도 마약범들이랑 총질하다 왔다.”
 “푸웁!”
 소주를 뱉어낸 민우가 사래가 걸렸는지 기침을 한다. 한혁이 티슈를 뽑아 자신에게 튄 소주와 침을 닦는다.
 “총격전? 여기 한국 아니었냐.”
 “나도 놀랐다. 미친놈들 한 명당 하나씩 가지고 있던데.”
 “뉴스에도 안 뜨더만.”
 “기자들도 모를 걸. 차음막이라는 걸 쏘는데 진짜 아무도 모르더라. 밖에서 총소리 하나도 안 들려.”
 “별게 다 있네. 적당히 사리면서 해라.”
 “나야 뭐, 내 몸 하나 챙기는 건 문제 없지.”
 민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무인도에 던져놔도 살 것 같은 놈이니까. 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민우의 전화가 울린다.
 전화를 받자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한혁이 몸을 들이댄다. 민우한테 전화가 올 여자는 없다. 그렇다면?
 “너 이 새끼! 누구냐. 썸? 여친? 드디어 모쏠 탈출이냐.”
 “아니. 너 바꿔 달래.”
 “음?”
 민우가 스마트폰을 건넨다. 뭔가 싶었지만 한혁이 순순히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 오빠! 저예요. 영주!
 
 듣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넘치는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한혁이 이마를 긁는다. 누구더라. 민우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낸다.
 “걔 있잖아. 저번에 시험 끝나고 같이 밥 먹자고 한 애. 신문부.”
 “아. 걔.”
 기억난다. 다짜고짜 와서 아는 척하던 애. 썩 좋은 첫인상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밝고 사교성 좋은 성격이고 나쁘게 말하면 나대는 성격이다. 무엇보다 말이 너무 많다. 기 빨린다.
 “어, 그래 영주야. 나 바쁘다 끊어.”
 
 - 오빠? 오빠님!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고 민우에게 넘긴다.
 “대화 안 하냐.”
 “필요하면 알아서 찾아오라 그래. 언제 봤다고 뜬금없이 전화질이야.”
 “하여간 네 성질머리도 꾸준하다. 그래서 네가 아싸인 거야.”
 “너는 모쏠이고.”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또다시 주먹을 주고받는다. 민우의 폰으로 문자가 올 때서야 멈춘다. 문자를 확인한 민우가 손가락을 놀린다.
 “야. 너 시험 한 시 반이지?”
 “그치.”
 “세계의 경제 문화였던가. 그게 아마 문화관 2층에서 했던 거 같은데.”
 “맞아. 그건 왜?”
 식사를 마친 민우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혁도 따라 일어선다. 계산까지 마친다.
 “네가 한 말 전해 줬더니 본인이 찾아오겠단다. 위치 말해 줬으니까 시험 끝나고 만날 걸.”
 “그걸 왜 말해 줘!”
 “뭐! 그럼 내가 계속 전서구 역할 할까? 둘이서 해결 봐라. 나도 귀찮다.”
 한혁이 머리를 긁는다. 이번에 확실히 말해야겠다. 인터뷰고 뭐고 안 할 거니까 귀찮게 굴지 말라고.
 민우가 기말 대체 발표 때문에 문화사를 들려야 한다고 간 후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 했다. 문화관 2층 로비에 앉아 예상문제 프린트를 살핀다.
 아무리 졸업이 목표라지만 백지를 내는 건 성미에 안 맞았다. 최소한의 예의랄까. 이번 학기는 글러먹은 거 같지만 다음 학기는 가능하면 공부도 좀 할 생각이다. 혹시 아는가. 성적 장학금이라도 나올지. 한혁에게 매 학기 빠져나가는 400만 원은 충분히 큰돈이었다.
 “벌써 시간이.”
 시험 전 알람을 맞춰 둔 핸드폰이 진동한다. 1시 25분. 강의실로 들어갈 때다. 가방에 프린트를 집어넣는데 낯익은 인물이 다가온다.
 “오빠! 오늘 마지막 시험이라면서요. 시험 잘 보세요.”
 “잘 왔다. 나 인터뷰 안 할 거니까.”
 “자자! 일단 들어가야죠. 시험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한혁을 강의실로 잡아끈다. 영주의 말대로 곧 시험이다. 영주가 강의실에 들어가기 직전 초콜릿을 손에 쥐어준다.
 “오빠 파이팅! 시험 잘 봐요! 밖에서 기다릴게요! 오오오오!”
 요란한 기합을 끝으로 쏜살같이 도망간다. 뒤에서 키득거림과 야유와 감탄이 작게 들린다.
 한혁의 귀가 빨개진다.
 이런 식으로 주목을 받는 건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뜨끈해지는 얼굴을 쓸어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교수가 시험지를 나눠준다. 한혁의 옆에 서서 어깨를 두드려준다.
 “좋겠네. 여자 친구가 기다려도 주고. 시험 잘 봐라.”
 “그게 아니라.”
 “하하하! 좋을 때야.”
 변명하기도 전에 가버린다. 한혁이 이마를 짚는다.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쥐고 있던 볼펜이 두 동강 난다.
 
 
 자연스럽게 스무디만 먹고 빠져나왔다
 
 
 
 
 
 시험이 끝났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탓에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걸로 이번 학기는 종강. 기분이 좋아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하다. 원인은 저기 앉아 있는 꼬맹이.
 한혁이 나오자 주인 맞이하는 개 마냥 팔짝팔짝 뛴다. 친근하게 다가와 말을 건다.
 “시험 끝났네요. 헤헤, 잘 봤어요? 아니지, 그게 뭐가 중요해요. 끝난 게 중요한 거지. 오빠 이번 시험이 마지막이라면서요. 종강 축하해요. 이번 기회에 저번에 못 이룬 한 끼 식사를 이루러 가보는 게 어떤가요. 아, 식사는 이미 하셨으니 카페라도?”
 변함없이 말이 참 많다. 미리 적어두고 오는 건가 싶을 정도. 심지어 빨리 말한다. 멍하니 있다가 말려들기 딱 좋은 화법.
 한혁이 머리를 쓰다듬는 척 영주의 머리에 손을 올린다. 손에 힘이 들어간다. 머리가 고정 된 영주를 내려다보며 웃는다. 웃기는 웃는데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다. 영주가 식은땀을 흘린다.
 “하, 하하, 오빠? 머리가 좀 아픈데요.”
 “다행이네. 아프라고 한 건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날 귀찮게 했나 몰라. 어디 한 번 들어보자고. 꼭 중요한 이야기면 좋겠다. 설마 인터뷰 같은 건 아니지?”
 “아, 덥다! 여름이 빨리 찾아왔나. 일단 시원하게 뭐라도 마실까요? 요 앞에 카페 생겼는데.”
 영주가 주저앉듯 몸을 빼더니 한혁의 팔을 잡는다. 한혁 또한 방금 전 커피를 마셨지만 혈압이 올랐었기 때문에 시원한 게 당겼다.
 굳이 사준다니 말리지는 않지만 허튼소리를 한다면 바로 나올 생각이다. 중문으로 향하자 늦은 점심을 먹으려는 학생들이 여럿 보인다.
 강화된 청력으로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 시험 얘기, 게임, 방학 계획.
 간혹 가다 나오는 헌터 관련된 이야기. 그 중 몇 명은 한혁을 보더니 그 사람 아니냐고 속닥인다.
 기사가 나온 후 한혁을 알아보는 사람이 소폭 늘었다. 다른 이유보다는 같은 학교에서 각성자가 나왔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에는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이동 던전이니 마약범이니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북한에서 핵이 터졌다는 말을 듣고 방사능이 밑에까지 내려올지도 모른다며 방사능 측정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영주의 말대로 깔끔하게 단장한 카페가 새로 생겼다. 몇 주 전부터 공사를 하는 건 봤지만 뭘 하는 곳인지는 몰랐다. 입원해 있는 사이 완공됐나보다.
 카페 안은 시원했다. 디퓨저도 곳곳에 보여 그윽한 커피냄새와 향긋한 향기가 섞여 묘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하나랑요. 오빠는 뭐 드실래요?”
 “난 아무거나.”
 영주가 얼굴을 찌푸린다. 제일 어려운 주문이 아무거나.
 “후후, 제가 그렇게 주문할 때마다 골라주는 메뉴가 있죠. 에스프레소 하나.”
 “어디서 엿을 먹이려고. 딸기 스무디로 주세요.”
 “흥, 그러니까 제대로 주문을 해야죠.”
 “나 그냥 갈까?”
 “죄송합니다. 혹시 허니브래드 좋아하세요?”
 바로 꼬리를 만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기에 한혁이 손을 흔든다.
 종업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포스기를 누른다. 계산을 마치고 진동벨을 챙겨 든 영주가 구석으로 자리를 잡는다.
 “여기 좋죠? 잘 꾸며놨고 커피도 맛있어요. 무엇보다 케이크가 기가 막히죠. 다음에 오시면 캐럿케이크 하나 먹어봐요. 당근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할 거예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거고. 그래서 뭐야. 할 말이.”
 “에이, 목이라도 축이고 이야기해요. 뭐가 그리 급하다고 종강도 했으면서.”
 “갈 곳 있어.”
 학교 끝나고 사격장으로 가기로 했다. 총도 손질이 끝났다고 문자가 왔다. 가서 쏘기만 하면 된다. 다만 저번처럼 무식하게 사격을 하면 금방 망가질 거라는 경고를 해서 이번에는 적당히 삼백 발만 쏘고 올 생각이다.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도 가지고.
 “약속 있어요? 이상하다. 민우 오빠가 친구 없다고 했는데.”
 한혁의 이마에 핏줄이 올라온다. 민우 이 자식. 쓸데없는 말을.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한혁 오빠. 인터뷰 한 번만!”
 “안 해.”
 “아앙! 제발요. 진짜 중요한 거란 말이에요.”
 “난 하나도 안 중요하다.”
 영주가 엎어지다시피 테이블에 몸을 던지더니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한혁의 손을 잡는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빛이 심히 부담스럽지만 한혁은 단호했다.
 한 번쯤 해주고 끝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괘씸해서 해주기 싫었다.
 “이번에는 스케일이 크다고요. 단순히 학교 신문에 나오는 게 아니라 자그마치 헌터스에 올라갈 거란 말이에요!”
 “헌터스?”
 한혁이 미간을 좁힌다. Hunter's. 헌터 매니아와 함께 헌터 관련 언론사를 양분하는 곳이다. 다양한 헌터들과의 인터뷰, 던전 공략대, 각 길드들의 루키, 그밖에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 대한 기사가 매일 올라온다.
 헌터에 관해서만큼은 공중파보다 낫다는 평가다. 한마디로 영주와 같은 일개 대학생이 기사를 내보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한혁이 코웃음을 친다. 깔보는 눈빛.
 “네가?”
 “진짜로!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했는데 오빠만 알고 있어요. 저 헌터스에서 스카우트해 갔어요.”
 “엥? 그쪽이 뭐가 아쉬워서 너를 데려가.”
 “절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이래봬도 최중대 신문부 에이스인데.”
 딱 거기까지다. 누가 대학 신문부에서 활약했다고 메이저급 언론사에서 기사로 모셔갈까.
 한혁이 한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자 입을 앙다물고 노려본다. 막 입을 떼려는데 진동벨이 울린다.
 “잠시만 기다려 봐요.”
 날랜 몸짓으로 음료를 가져오더니 깊게 한 모금 마신다. 한혁도 빨대를 물며 계속해 보라고 손을 흔든다.
 “사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에요. 그래서 오빠 도움이 필요한 거고요. 제가 종종 직접 쓴 기사를 투고하기도 하거든요? 이번에 그쪽 기자님 한 분이 연락을 줬어요. 오빠 인터뷰 따오면 헌터스에 꽂아 준다고.”
 “고작 기자가 그런 파워가 어디 있냐.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네. 사기당한 거야. 그냥 잊어버려.”
 “이미 인턴으로 올라갔어요. 방학 때부터 바로 일 시작하기로 했고요.”
 인턴이 됐다라, 그럼 말이 달라진다. 포트폴리오라도 열심히 만들었던 걸까. 생각보다 실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영주를 다시 본 한혁이 말없이 스무디를 빨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역시 이상하다.
 한혁이 말이 없자 영주가 입을 연다.
 “오빠는 이쪽으로 관심이 없으니까 잘 모르시겠지만 헌터스는 추천 제도가 있어요. 중견기자가 자신이 책임질 신입을 잡아오는 거죠. 본인이 사수가 되고. 물론 끝까지 책임을 져야한다는 리스크가 있지만요.”
 턱을 쓰다듬던 한혁이 손을 든다. 영주가 얌전히 한혁이 말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 사람이 인터뷰를 따서 오라는 건 결국 내가 기삿거리로 의미가 있다는 뜻이잖아.”
 “그렇죠.”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기자란 사람들 결국은 발품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거든? 그러다 하나 대박나면 몸값 오르는 거고.”
 영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기자들이 조회수를 올리고 주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하니까.
 막상 열어보면 찌라시도 많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말만 바꾼 경우도 많다. 덕분에 기레기라고 욕을 먹기도 하지만 기자 입장에서는 모두 소득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먹고 살려면 쓸 수밖에 없다.
 즉, 뭐가 되던 쓰고 본다는 것.
 “그걸 왜 너한테 줘. 직접 찾아오지.”
 “절 시험해 보려는 게 아닐까요? 오빠 아직 인터뷰한 적 없잖아요. 같은 과 후배기도 하니까 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한혁이 턱을 괴고 영주를 빤히 쳐다본다. 한혁을 바라보던 영주의 눈이 흔들리더니 시선을 돌린다.
 “잘 들어. 내가 좀 불신에 찌든 걸 수도 있는데. 지금 넌 헌터스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신경이 쏠려서 다른 걸 못 보는 거 같다. 네가 말하는 인턴.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계약기간 끝나면 남는 거 없다.”
 “하, 하지만!”
 영주가 손을 꼬물거린다. 한혁의 말에 의아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진짜 기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애써 외면했던 것들.
 자유 형식의 인터뷰가 아니었다. 연락을 줬던 차호준 기자는 아웃라인이라며 질문 리스트를 보내왔다. 참고만 하라 했지만 말투는 그렇지 않았다.
 거기에 인터뷰 할 때 자신도 멀리서 지켜보겠다며 위치를 알려 달라고 했다. 언뜻 듣기로는 초보인 영주를 보조하겠다는 말 같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보조보다는 감시에 가깝다.
 한혁이 혼란스러운 영주의 코앞에서 손가락을 튕긴다. 그제야 정신이 든 영주가 일어서 있는 한혁을 올려다본다.
 반쯤 먹은 스무디를 들고 있는 한혁이 입을 닦는다.
 “이용당하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봐라. 너도 알겠지만 내 기사 읽어봐. 기사거리로 수명이 어떤지.”
 “오빠.”
 한혁이 손을 흔들고 자리를 뜬다.
 영주가 스마트폰으로 인터뷰를 준비하며 조사한 자료를 불러온다.
 영주가 가장 의문스러웠던 부분. 왜 하필 한혁일까. 그녀가 보기에도 한혁은 기삿감으로의 가치가 없다. 자신도 파악한 걸 전문 기자가 못 알아봤을 리가 없다.
 이동 던전에서 있었던 동영상과 기사는 짧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왔던 마약굴 사건은 어떤가.
 각성한 당일 D급 헌터에 준하는 능력치를 보이고 마약굴에 홀로 쳐들어가 마약사범을 잡았다. 거기에 C급 헌터와 정면으로 붙어 제압했다는 말도 섞여 있다.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달걀에서 병아리 대신 닭이 나왔다는 말이 더 믿음직스럽다. 이 기사를 끝으로 한혁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식었다.
 잠잠한 길드들의 반응이 사람들에게 확신을 줬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진작 스카우트했을 거라고. 진실은 도두현이 빠르게 가로채서 어쩔 수 없었던 거지만.
 “확실히 이상해. 오히려 이게 더 재밌는 기사가 될지도?”
 자신이 이용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지 역으로 차호준 기자의 뒤를 캘 생각을 하는 영주였다. 천생 기자 체질이다.
 
 * * *
 
 운전 중이던 사토 코지가 귀에 이어폰을 낀다. 저장해 놓은 번호를 누르자 국제통화가 이어진다. 헌터스의 기자이자 이번 일의 파트너 차호준의 목소리가 들린다.
 
 - 아, 사토 상. 이번에 보내주신 건 잘 받았습니다.
 
 “부탁한 건 잘되고 있습니까.”
 
 - 그럼요. 걱정 마세요. 계산만 확실하면 일은 제대로 하니까.
 
 “그거 좋군요.”
 
 - 하하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돈 벌레 같으니. 사토 코지가 혀를 찬다. 평소라면 상종하기 싫은 사람이지만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리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목을 가다듬은 코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 참, 한국은 언제 오십니까?
 
 “내일 오전 중으로 출발합니다.”
 일본 정부의 헌터이자 국가공안위원회(国家公安委員会)의 정보원인 사토 코지가 전화를 끊는다.
 “읍읍!”
 뒷좌석에 들리는 소음에 코지가 뒤를 살핀다.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는 중국인 각성자가 결박당한 채 누워 있다. 팔과 다리가 뒤로 묶여 고개만 간신히 들고 있는 그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흐읍! 으으읍!”
 트롤의 가죽과 힘줄로 만든 재갈을 물고 있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지만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살려 줘.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코지의 얼굴에 변화가 생긴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보조개가 깊게 파인다.
 저자의 죽음으로 일본은 더욱 안전해지리라.
 코지가 엑셀을 밟는다. 타이어 타는 냄새가 올라오고 엔진이 가속된다.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욱일기를 움켜쥔다.
 “크하하하! 제국을 위하여!”
 
 
 신고식
 
 
 
 
 
 사격을 끝낸 한혁이 탄 박스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종강한 후 매일같이 나와 연습을 하고 있다.
 탄약 창고에 탄을 가져다 놓고 자신의 이름을 쓴 종이를 붙여둔다. 워낙 많은 양을 사용하다보니 따로 아예 전용 탄 박스가 생겼다.
 “오늘 본부로 간다면서?”
 “응. 한동안 마약범들 잡는다고 바쁘다더니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나 봐.”
 수지의 물음에 한혁이 대답한다. 자주 얼굴을 비추다보니 편하게 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다. 정확히는 친화력 좋은 수지의 성격 덕이다.
 처음에 한혁과 같이 움직이던 도두현은 놈들의 규모를 확인하고, 아직까지는 한혁에게 위험하다 판단됐는지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그럼 자기는 뭐하냐고 물으니 사격장이나 가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서야 여유가 생겼는지 동료들 소개시켜 준다며 본부로 가자고 불렀다.
 “샤워실 좀 쓸게.”
 첫 대면에 지저분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법. 한혁이 한쪽에 마련된 샤워실로 향한다. 옷도 챙겨왔다. 정장을 입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도두현의 옷차림만 봐도 사무적인 환경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 청바지와 카라티를 가져왔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린다. 찜질방에서나 보던 스킨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는다.
 쇼핑백에 땀에 젓은 속옷과 옷을 담고 나오니 도두현이 수지와 잡담을 하고 있다.
 눈이 마주친 도두현이 한혁을 반긴다.
 “어이! 총알 도둑!”
 “도둑은 누가 도둑이에요.”
 “하루에 수백 발씩 날려먹는데 도둑이지 그럼.”
 “그게 다 미래를 위한 투자 아닙니까.”
 도두현이 맞다며 낄낄거린다. 그가 품에서 검정색 카드를 꺼내준다. 특수테러본부 사원증.
 한혁의 정면 사진과 이름이 적혀 있고 밑으로 특수 처리된 바코드가 코팅돼 있다.
 “요새 바빠 가지고 이제야 준다. 그거 잃어버리면 안 된다. 거기 바코드가 특수 면책권이야. 망가지지 않게 관리 잘해라.”
 “후후후, 드디어 합법적으로 사람을 팰 수 있는 건가.”
 “이거 위험한 새낄세.”
 기분 나쁘게 웃는 한혁의 뒤통수를 때린 도두현이 나오라며 손짓한다. 수지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자 검정색 벤이 대기하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 너머로 일전에 봤던 길준태가 담배를 태우고 있다.
 도두현이 담배를 손으로 집어 꺼버린다.
 “얌마, 차 안에서 피지 말랬지.”
 “뭘 또 그럽니까. 형님도 피면서. 한혁아, 너도 담배 피지?”
 “저도 피죠.”
 “것 봐요. 이미 우린 폐가 다 썩었다니까.”
 “됐고. 본부로 가자.”
 “예히.”
 길준태가 매끄럽게 주차돼 있던 차를 뺀다. 한혁이 안을 둘러본다. 일전에 봤던 차량이 호송차량이었다면 이 차량은 지원용이다.
 뒷좌석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각종 장비와 장비를 유지하기 위한 배터리가 가득하다. 생명체 감지기부터 시작해서 헌터워치로 통신할 수 있는 장비, 던전 감지기까지.
 장비만 팔아도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다. 제일 비싼 던전 감지기가 30억이 조금 넘으니.
 “한혁아, 본부는 처음이라 했나?”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길준태가 한혁에게 말을 건다.
 “네. 그동안은 갈 기회가 없었네요.”
 “아이고, 한 식구 된지가 어느 세월인데. 형님, 직접 데려왔으면서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닙니까?”
 “바빠서 그랬지. 그놈들 협력 조직이 러시아에 있어서 간만에 찬바람 쐬고 왔다.”
 “러시아까지 갔다 왔어요? 와.”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한혁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다. 한혁이 감탄하자 도두현이 기특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래. 내가 고생 하고 왔다. 야, 한혁이 좀 본받아라. 바로 걱정부터 해주잖냐.”
 “아니, 걱정하는 건 아니고. 진짜 러시아 여자들 예뻐요?”
 “크큭, 걱정 잘하네요.”
 길준태가 비웃자 도두현이 어깨를 때린다. 덕분에 차가 크게 휘청거리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길준태와 한혁이 동시에 욕을 한다.
 특수테러본부는 신당동에 있었다. 특색 없지만 낮고 넓은 형태라 높기만 한 주변 건물에 비해 듬직한 느낌이다.
 유리는 전부 방탄에 내진 설계, 몬스터의 부산물을 섞어 만든 시멘트까지. 요새에 가까운 건물이다.
 어느 정도냐면 K-511. 군대에서 흔히 두 돈 반이라 부르는 중형트럭이 들이박아도 금하나 안갈 강도다.
 길준태가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튼튼하게 만든 이유는 몬스터의 침입을 대비한 게 아니고 잡아온 헌터들이 벽 부수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란다.
 친절하게 취조를 할 때면 다들 도망가려 한다나. 그 친절함이 어떤 건지 짐작이 간다.
 “건물은 큰데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야. 대부분 집에서 대기하거나 밖에서 구르고 있거든.”
 거침없이 문을 연 도두현이 말했다. 그를 따라 들어가자 삭막한 외관과는 다르게 밝은 분위기다.
 각종 신고를 받는 접수대에는 열댓 명의 사람들이 전화를 받거나 메일을 확인하고 있다. 그 뒤로는 지휘통제실처럼 생긴 공간이 있는데 검은 바탕에 초록색 선으로 이루어진 지도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화면의 중앙에는 가장 커다랗게 서울의 지도가 보였고 양 옆으로 전국의 지도가 보였으며 빨간색 점이 여러 개가 점멸하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테러를 포함해 각성자 관련 사건이 발생한 곳으로 이미 출동한 곳은 노란색으로 반짝였다.
 “다들 주목! 숙면실에 있는 놈들까지 다 데려와!”
 본부장이 들어와도 깔끔히 무시하고 자신들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도두현이 큰 목소리로 사람들을 집중시킨다.
 cctv로 화면을 보며 통신하고 있던 이규삼이 헤드셋을 벗는다. 옆에 있던 마이크의 전원을 누르더니 한 손으로 귀를 막고 사이렌을 울린다.
 
 - 삐이이이이이이이!
 
 “아아! 마이크 테스트. 본부장님이 다 1층으로 내려오시랍니다.”
 “사이렌 안 끄냐!”
 “미쳤어?”
 문이 벌컥 열리더니 수면안대를 끼고 있던 사람과 운동 중이었는지 한 손에는 50kg짜리 아령을 든 사람 등 수십 명의 인원이 몰려나온다.
 그들이 몰리는 곳은 하나. 사이렌을 울린 이규삼이다. 험악한 기세에 이규삼이 다급하게 양 손을 든다.
 “잠깐! 본부장님이 다 부르랬다고요!”
 “그럼 새꺄. 네가 발로 뛰어야지!”
 성이 난 사람들이 돌아가며 이규삼을 눕히고 밟는다. 도두현이 머리를 짚고 고개를 흔든다. 한혁이 어색하게 웃는다.
 “하하, 참 활기차네요.”
 “미안. 너도 알겠지만 각성자 치고 정신상태 멀쩡한 놈들이 별로 없다. 이 정도면 양반이다 생각하고 관심 주지 마. 괜히 피곤해져.”
 생각해 보면 도두현이 나갔다고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운 사람들이다. 의리가 넘친 달까 에너지가 넘친 달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화풀이가 끝난 사람들이 도두현 앞에 모인다. 건물 하나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모이자 복도까지 꽉 찬다. 본부장과 길준태를 보더니 한혁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단순히 보고 있을 뿐인데도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스스로의 담력이 강한 것에 감사하며 긴장을 하고 있을 때 도두현이 한혁의 어깨를 친다.
 “신입이다. 이름은 최한혁. 아직 헌터스쿨은 안 갔다 와서 정식 등급은 없지만 측정 결과 D급 정도 된다. 내가 직접 데려온 녀석이니까 시비 털지 말고 이것저것 많이 알려줘라.”
 “반갑습니다. 새로 들어온 최한혁입니다.”
 “얼마 만에 들어오는 신입이냐. 반갑다, 야!”
 “또 몇 달하고 도망가는 거 아니냐.”
 한혁이 오기 전 다섯 명의 신입이 들어왔었고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이 육 개월이었다. 그만큼 강행군을 펼치는 곳이 특수테러본부였다.
 “그럼 준태가 안내 좀 해주고.”
 “알겠습니다.”
 도두현이 특수재난부로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본부장실로 올라간다.
 길준태가 한혁에게 어깨동무를 하더니 대략적인 정보를 알려준다.
 총 인원 130명. 그 중 각성자가 89명이다. 각성자의 반절가량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남은 인원을 회복을 하거나 후방임무를 맡는다.
 헌터들이 주 상대이다 보니 단순 호송을 할 때도 문제가 생기기 십상이다. 일반인들은 사무직이나 기술자로 근무하고 있다.
 “건물 구조는 간단해. 저기 접수대에서 사건을 받거나 국가에서 알려주는 곳을 주로 나가고 굵직한 것들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파악해서 움직이지.”
 지하실에는 체력단련실과 대련장이 있고, 1층은 사건 접수, 2층은 탐색 및 정찰 특화 각성자들의 공간이다. 3층은 수리 센터와 복지시설이 자리했다. 그 위로는 본부에서 출동할 사람들을 위한 숙면실이다.
 빠르게 설명을 하며 건물 곳곳을 알려주던 길준태가 마지막으로 지하실로 내려온다. 본부 탐방을 하는 동안 쫓아오던 인원들도 따라 들어온다. 제법 넓은 공간이 가득 찬다.
 임무를 보조하거나 사무직은 자리로 돌아갔음에도 상당수 남아 있다.
 이렇게 관심이 쏟아질 정도로 신입이 희귀한 걸까 싶을 때 길준태가 씩 웃는다.
 “그럼 우리 특수테러본부의 전통적인 신고식을 해볼까?”
 “신고식이요?”
 가장 큰 대련장으로 이동하자 사람들이 벽을 등대고 빙 둘러싼다. 중앙에는 한혁과 길준태가 서 있다.
 “간단하게 수준 평가라고 생각해. 네 성향에 따라 필드를 뛸지, 지원을 할지, 후방을 맡을지 정하는 자리니까.”
 길준태가 손짓하자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가 보호구를 가지고 들어온다. 빨간색과 파란색. 파란색 보호구를 한혁에게 입힌 후 길준태가 다른 인원들을 살핀다.
 몇몇이 손을 든다.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하다.
 “네가 D급이니까. 박지원! 나와!”
 “아, 왜 하필 접니까.”
 “네가 제일 만만하잖아.”
 준태의 부름에 빨간색으로 염색한 박지원이 머리를 긁으며 나온다. 키는 187cm. C급 헌터로 작전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빨간색 보호구를 착용한 박지원이 거리를 벌린다.
 “간단한 대련이니까 무기 사용은 금지다. 정면으로 치고 박고 싸워. 힐러도 있으니까 부상 걱정은 하지 말고.”
 “아니 뭔 초면부터 싸움질이에요?”
 “그럼 시작!”
 한혁이 어이없어 했지만 가뿐히 무시한 길준태가 들고 있던 손을 내리며 자리를 빠져나간다. 손이 내려가기 무섭게 박지원이 치고 들어온다.
 가벼운 잽. 견제를 위함인지 위력은 없었으나 상당히 빠르다. 왼팔을 들어 가드한 한혁이 카운터를 날린다.
 위빙으로 펀치를 피한 지원이 거리를 유지하며 주먹을 날린다. 긴 리치를 이용한 아웃복싱.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한혁이 고전한다.
 ‘오자마자 이게 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질 수는 없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뭔가 장난감이 된 기분이랄까. 한순간에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정색한 한혁의 눈이 흉흉하게 빛난다. 대련이고 뭐고 가볍게 할 생각은 버렸다. 다리를 박찬다. 쏜살같이 접근해 페이크 잽을 날리고 복부로 주먹을 꽂는다. 움찔한 사이에 오른쪽으로 몸을 이동시키며 뒤꿈치로 지원의 무릎을 찬다.
 “어우, 장난 아닌데?”
 꺾이는 무릎을 억지로 세운 지원이 파고드는 한혁의 어깨를 밀친다. 몸을 비틀며 흘려보내는 한혁을 보며 지원도 몸을 돌린다. 백스핀 엘보! 회전력을 실은 팔꿈치가 한혁의 머리를 스친다.
 ‘위험했다.’
 반은 운이었다. 곧장 상체를 숙여 어퍼컷을 날리려하지 않았다면 정통으로 맞았다. 그랬으면 바로 게임 끝.
 상대는 강하다. 하지만 한혁도 사람을 상대로라면 자신 있다.
 엘보를 피한 걸 확인하자마자 박지원이 백스텝을 한다. 한혁이 상체를 흔들며 쫓아간다. 떨어지면 승산이 없다. 접근하면서 공격을 받을 것이고 데미지가 누적되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한혁이 몸을 날린다. 훅 치고 들어오는 돌진에 허리를 잡힌 지원이 파운딩으로 등을 가격한다. 몸을 울리는 통증을 버티며 다리를 건다. 허리를 끌어당기자 균형이 무너진다. 뒤로 넘어진 지원의 위로 올라탄다. 이대로 주먹을 내리 꽂으면 승리하리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각성자는 초인. 본인을 짓누르는 한혁의 몸무게 정도는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다.
 “흐아압!”
 곧바로 몸을 돌려 엎드린 자세를 한 지원이 푸쉬업을 하듯 땅을 밀치자 반동으로 몸이 올라간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떨어진 한혁이 뒤로 구른다.
 신입한테 당할 뻔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한 지원이 인상을 쓴다. 이에 질세라 한혁도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일어선다.
 박지원이 달려든다. 탐색전은 필요 없다. 힘으로 몰아붙인다. 이대로 물러나면 놀림감밖에 안 되니까.
 한혁이 차분히 기다린다. 확실히 느꼈다. 자신은 초인이다. 박지원이 몸을 일으켰던 것처럼 일반인이라면 불가능한 행동이 가능하다. 초인적인 능력은 단순히 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감이라면 모두 해당된다. 동체 시력도 마찬가지.
 자신의 안면으로 매섭게 다가오는 주먹을 본다. 한혁도 지원의 주먹을 향해 손을 뻗는다. 팔을 뒤집으며 장근, 팔목과 이어진 손바닥으로 지원의 주먹 하단을 밀어버린다.
 
 - 으득!
 
 “으아악!”
 본인의 힘에 못 이겨 밑으로 꺾인 손목이 부러진다.
 지원이 손목을 잡고 뒹굴었고 환호성을 지르며 관람하기 바빴던 사람들이 조용해진다.
 
 
 이곳에 온 이유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길준태가 지원을 눕힌다. 힐러로 보이는 근육질의 사내가 뛰어와 부상을 살핀다. 강제로 손을 잡아당겨 뼈를 맞추더니 손바닥으로 손목을 감싼다.
 은은한 초록빛이 흘러나오더니 손목 안으로 흡수된다. 지원의 얼굴이 풀어진다. 특수테러본부의 전투 힐러 김형수가 지원의 등을 때린다.
 “무슨 엄살이 이렇게 심해. 손목 부러진 거 가지고.”
 “보통 이렇거든요? 여기 모인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 제가 그래서 현장 안 뜁니다. 차라리 던전을 나가는 게 편하지.”
 “던전은 뭐 쉬운 줄 아냐.”
 “거기는 그나마 정보라도 있죠. 공략도 있고. 준비만 잘 하면 훨씬 안전하거든요?”
 다행히 손목은 무사하다. 지원이 손목을 돌리며 상태를 확인하더니 한혁에게 다가가 악수를 권한다.
 보기보다 쿨한 성격인지 부상에 대한 언급도 없다. 오히려 호감어린 눈으로 한혁을 바라본다. 한혁도 손을 맞잡는다.
 “잘 싸우더라. 역시 본부장님이 직접 데려올 만해. 아, 난 스물일곱. 이야기 들어보니 스물다섯이라며. 말 편하게 해도 되지?”
 “편하게 하세요.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닌데.”
 “좋아, 좋아. 내 이름이야 알겠고. 난 주로 후방에서 일해. 사진만 있으면 상대방 위치를 파악할 수 있거든. 나중에 나 보러 자주 오게 될 거다. 넌 딱 봐도 현장직이니까.”
 지원의 말에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다. 전투조는 아니지만 C급 헌터. 그를 상대로 승리했으니 따질 사람도 없다.
 내심 이 일로 시비가 붙거나 분위기가 나빠지지는 않을까 예상했던 한혁이 어깨를 으쓱한다. 이들에게 이 정도의 부상과 대련은 일상일지도 모른다.
 “자자, 그럼 신고식도 끝났으니 각자 자리로 돌아가!”
 박수를 친 길준태가 복귀를 명한다. 이 때다 싶어 쉬려던 몇 명이 불만을 토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숨만 쉬어도 시간은 가고 할 일은 쌓이는데.
 사람이 빠지고 길준태와 한혁만 남자 대련장이 휑하다. 한혁이 멀뚱멀뚱 길준태를 쳐다본다.
 “왜?”
 “전 이제 뭐해요?”
 “퇴근해. 넌 현장 투입 확정이야. 집에서 놀다가 부르면 와라. 심심하면 놀러 와도 좋고. 보니까 너랑 한바탕 해보고 싶어 하는 애들도 있던 거 같은데. 뭐하면 대련 몇 번 더 할래?”
 “괜찮아요. 가보겠습니다.”
 가라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렇게만 있어도 월급으로 오백만 원이 들어오다니. 신의 직장이 아닐까 싶다. 물론 언제 부를지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도두현의 방으로 들렸다. 본부장실은 건물 꼭대기인 6층. 접객실과 회의실이 있는 층이다.
 문을 두드리자 들어오라는 비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영화관에서나 보던 가죽을 덧댄 문을 열자 제법 넓은 사무실이 보인다.
 벽을 등지고 앉아 있는 도두현과 그의 비서이자 30대 초반의 미녀 김소연이 열심히 서류를 뒤적이고 있다.
 커다란 덩치를 웅크리고 노트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생소하기 그지없다. 눈이 침침한지 인공눈물을 눈에 넣은 도두현이 기지개를 편다.
 “일찍 왔네? 또 신고식이니 뭐니 하면서 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 있었는데 그냥 올라간 거예요?”
 “뭐, 한두 번도 아니고. 걔 누구였지? 삼 개월 전인가 들어온 애는 신고식하자마자 얻어터지고 못하겠다고 나갔었는데. 그것도 못 버티면 이 짓하기 힘들지.”
 그야 초면에 주먹부터 나가는 게 정상은 아니잖습니까.
 따지고 싶었지만 이들에게 상식은 통할 거 같지 않으니 속으로만 말했다.
 도두현과 한혁이 대화하고 있자 빠른 속도로 문서 작업을 하던 김소연이 목을 스트레칭하며 관심을 보인다.
 “이분이 소문의 신입이었군요. 아까는 업무가 바빠서 못 내려갔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무슨 소문이?”
 “용감하고 정의로운 또라이가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겉보기에는 멀쩡하네요.”
 한혁이 도두현을 노려본다. 이런 말을 하고 다닐 사람은 그밖에 없다. 딴청을 부린다.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앞장서서 사람들 구한 것도 맞고. 각성한 날 헌터랑 치고 박고.”
 “사실은 사실이니 반박은 못하겠네요. 그리고 저 신고식은 이미 마쳤어요.”
 “이겼냐?”
 “그럼요.”
 도두현이 엄지를 세운다. 누구랑 했는지는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저 기존의 멤버 수준은 된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다시 업무에 몰두하던 김소연이 새로 올라온 보고에 혀를 찬다. 방금 전 들어온 신고다.
 “본부장님. 이거.”
 김소연이 메일을 도두현에게 보낸다. 그제야 자신이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고 느낀 한혁이 급하게 마무리를 한다.
 “퇴근하기 전에 잠깐 들린 건데 바빠 보이네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김소연이 보낸 메일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도두현이 한혁을 멈춰 세운다. 눈은 여전히 모니터에 고정돼 있다.
 “한혁아, 잠깐만. 사토 코지면 그 녀석 맞지? 국가공안위원회.”
 “맞습니다. 입국 목적은 지인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돼있지만 지금 접수된 내용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군요.”
 가지도 못하게 하고 본인들끼리 떠들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상당히 민망하다. 잠시 기다리자는 마음으로 근처 소파에 앉는다.
 대련을 하느라 몰랐는데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 있다. 영주. 기어이 민우를 통해 한혁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전화는 나중에 하고 문자부터 살핀다. 맞춤법이 엉망이다. 기자를 하겠다는 애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내용을 보자 표정이 굳는다.
 
 - 오빠 잘못건드ㄴ거 같앙
 - 일단 피해있ㅇ어요 이ㄹ본
 - 숨어
 
 숨어라. 누구로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영주가 자신에게 문자를 보냈다면 자신과 관련된 사람이 원인일터.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던 영주와 한혁 사이에 공통분모는 없다시피 한다. 기껏해야 민우 정도?
 ‘민우 때문에 이럴 일은 없고. 나와 관련 된 사람. 잘못 건드렸다라. 헌터스?’
 그것 밖에 없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문제가 생겼다. 급한 대로 문자를 보내려는데 도두현이 일어난다. 한 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있다.
 “한혁아. 너 최중대라했지?”
 “네. 최중대 경영학과요.”
 “얘 아냐?”
 노트북 화면에 떠오른 건 영주. 신문부에서 단체로 찍은 사진을 확대한 모습이었다.
 
 * * *
 
 인적이 없는 건물, 그 안에 사토 코지가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의 밑에는 알몸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차호준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목 아래로 옷에 가려지는 부분은 멍으로 시퍼렇게 변해 있다.
 코지가 필터까지 태운 꽁초를 뱉어내고 럭키스트라이크를 뒤적인다. 방금 핀 게 돛대인 모양. 곽을 구겨 던진다.
 자신의 미래가 저 찌그러진 담뱃갑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차호준이 몸을 떨었다. 코지가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내가 이곳에 온지도 일주일이 지났어. 분명히 금방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정말 금방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차호준이 이마를 바닥에 박는다. 한혁을 떠올리며 이를 간다. 전부 그 새끼 탓이다! 어떻게 같은 과 후배가 인터뷰해 달라는 부탁 하나 안 들어줄까. 마음 같아서는 직접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꼬리가 잡힌다.
 자신을 만난 후 실종되면 의심을 받을 게 분명하니까.
 그래서 영주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도 대포폰을 이용했고 중요한 내용은 만나서 구두로 전달했다.
 하다못해 한혁의 위치만 파악 됐어도 이럴 일은 없었다. 바로 집으로 찾아가면 되니까.
 문제는 특수재난부에서 손을 써놨는지 한혁에 대한 기록 자체가 전부 사라져 있다. 분명히 거주지 신고를 했을 텐데도 주민센터에서 열람이 안 된다. 말 그대로 백지상태. 국적과 대학교를 제외한 모든 정보가 막혔다.
 기사와 뷰튜브에 올라온 동영상도 전부 내려가서 사진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남은 방법이라고는 대학에 찾아가 한혁의 친구로부터 알아내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너무 눈에 띈다. 한 번은 사토 코지의 압박에 못 이겨 미친 척하고 가봤는데 친구가 없다. 예상도 못했다.
 ‘빌어먹을 아싸 새끼.’
 사토 코지가 차호준을 일으켜 세운다. 무표정한 얼굴. 사람을 죽여도 눈 하나 깜빡 안 할 놈이다.
 “나 바쁜 사람이야. 이틀 줄게. 데려와.”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담배 있나?”
 “있습니다!”
 차호준이 일어서더니 반쯤 넝마가 된 옷을 뒤진다. 파란색 담뱃갑을 양손으로 건넨다. 한 개비 꺼내 문 코지가 가보라 손짓한다.
 차호준이 구십 도로 인사를 하고 빠져나간다. 알몸이 문제가 아니다. 목숨이 달렸다. 빠르게 차를 몰고 떠난다.
 “후우, 돌겠군. 시간을 끌면 특수테러본부에서 냄새를 맡을지도 모르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도두현. 그 괴물만큼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서로 좋은 감정은 없는지라 곱게 말만 하고 끝날 리가 없다. 죽는 건 자신이 되리라.
 코지가 한국으로 들어온 이유는 간단했다. 한혁의 영입. 혹은 정보 습득. 둘 다 안 되면 미래의 위협이 되기 전에 제거.
 “각성자 육성 방법을 알아내야 해.”
 한혁의 등장은 해외에서도 짧게 언급이 됐다. 인구에 비해 각성자가 많은 나라가 한국이었기에 상시 관심을 받고 있다. 수준도 세계 평균을 웃도는 정도. 즉, 한국에서 언급이 될 정도의 수준이라면 세계에서도 통한다.
 그가 맨 처음 한혁의 기사를 읽었을 때 느낀 건 하나였다. 한혁, 그 자는 전투를 통해 각성한 게 아니다. 진작 각성해 있었고 이동 던전이라는 사건으로 드러나 버린 것이다. 그래야 그의 능력치와 마나 레벨이 설명이 된다.
 그의 등장과 동시에 나타난 특수재난부. 마약굴 소동 이후로는 특수테러본부. 모두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과연 우연일까? 그럴 리가. 국가에서 키워낸 루키임에 틀림없다. 확신에 찬 코지는 상부의 허락을 받고 이곳으로 왔다.
 그들의 헌터 육성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생긴다면 지독한 헌터 부족 현상도 완화되리라.
 “쓰읍, 후우우.”
 코지가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현재 일본의 상황은 좋지 않다. 태동의 날 이후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유는 하나. 던전은 해양에서도 생겼다. 사면이 바다인 일본은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수출과 수입에 문제가 생기고 경제가 무너졌다.
 항공으로 무역을 하는 건 한계가 있다. 군함을 이용해 무역을 해볼까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 강력한 헌터들도 바다 위에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고 화기들 또한 바다를 향해 쏘니 살상력이 극감했다.
 해양에서도 강력한 힘을 보인 상위 각성자들은 내륙에 나타난 고위 던전을 막느라 무역을 따라갈 여유가 없었다.
 “각성자 검사기라도 더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태동의 날 이후는 각성자 검사기의 유무를 기준으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검사기의 중요도는 높았다. 목숨을 걸지 않아도 각성의 가능성을 알 수 있으니까. 그 장비 덕분에 세계는 안정적으로 헌터를 배출할 수 있었고 몬스터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검사기의 개수에 제한이 있다는 점. 서른 개가 전부다. 그 이상은 만들 수 없다고 한다.
 개발국인 대한민국과 개발에 도움을 줬던 독일이 두 개씩 가져갔고 중국과 러시아가 세 개. 미국이 네 개를 가져갔다. 그 대가로 매달 엄청난 금액의 로열티를 한국으로 보냈다.
 남은 유럽 국가와 아프리카, 남미 등이 하나씩 가져가거나 두 나라가 공동으로 구매하기도 했다.
 일본도 간신히 검사기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인구와 면적을 보면 턱없이 부족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예 구하지 못한 국가도 있었으니까.
 “이대로 가다간 일본은 무너진다. 탈출구를 찾아야 돼. 적어도 나라의 안전은 확보해야 한다.”
 일본이 흔들리는 동안 이웃나라 한국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선진국을 넘어 강대국으로 들어설 정도.
 헌터 또한 핵과 동일하게 비대칭 전력에 포함된다. 일반인으로 잠입하여 테러를 가하면 대응이 불가능하다.
 현 상황이 유지된다면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압도당한다. 인구도 몬스터의 습격과 이민으로 나날이 줄고 있다.
 모든 게 뒤쳐진 그날 일본은 어떻게 될까? 몬스터 필드화를 막는 다는 명분으로 무단 점거하리라.
 이미 그런 식으로 시리아가 터키에 잡아 먹혔고 페루가 브라질에 병합됐다. 한국 또한 자멸한 북한을 집어삼켰다. 방사능 때문에 거주하지만 않지 러시아와 중국의 경계선에 병력을 주둔시켰다.
 한국의 다음 행선지는 분명하다. 일본의 식민지화.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자신의 나라는 한 때 제국으로 불리던 나라다. 그런 취급을 받을 수는 없다.
 ‘개인을 희생시키더라도 적의 전력을 깎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본 스스로도 전력을 키우는 거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방법은 하나뿐. 적의 전력을 줄이고 혼란을 시켜 딴 생각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곧 갑니다
 
 
 
 
 
 차호준이 손톱을 깨문다.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 안 그러면 자신은 죽는다. 쉽게 끝날 거라 예상했던 일이 목을 조일지 몰랐다.
 서른 평 남짓한 자신의 집에서 정신없이 걷던 차호준이 방으로 가 대포폰을 꺼낸다. 방법이 없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
 결국 한혁만 사토 코지 앞으로 데려가면 되는 문제다. 그가 나선다면 뒤처리도 깔끔하게 해주겠지.
 책장 사이 교묘하게 숨겨 둔 연락처 수첩을 꺼낸다. 자기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연락처에는 헌터들의 전회번호가 가득하다.
 간단한 이름과 등급, 자신이 잡은 약점, 써먹을 수 있는 방향, 뒷배경까지. 필요한 내용은 모두 적혀 있다.
 헌터스의 중견기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건을 접했고 그 중에는 헌터 생활이 끝날 수도 있는 일도 있었다. 그 내용을 빌미로 이용해 먹는 헌터들이 꽤나 있었다.
 “최대한 뒤탈이 없는 녀석을 불러야 돼. 봐주는 사람도 없고 문제가 생겨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사람. 등급은 가능하면 C로.”
 그가 부를 수 있는 최고 등급은 C다. B급부터는 약점을 잡았다가 역으로 당할지도 모르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가며 목록을 뒤지던 차호준이 눈을 빛낸다. 이미 이용했거나 B급 이상이 되어 써먹을 수 없는 헌터들 사이로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방화범 김석준. 그 특유의 사냥 방식 때문에 소속된 길드도 같이 움직이는 팀원도 없다. 그의 능력은 두 가지. 불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그리고 숨 참기. 호흡 없이 최대 다섯 시간을 버틸 수 있다.
 단신으로 던전으로 들어가 불을 지른 후 모든 게 타버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그의 사냥 방식이다.
 불의 영향을 받지 않는 종류의 몬스터나 내성이 강한 몬스터들, 혹은 강력한 상위 몬스터의 경우에는 혼자 사냥하는 김석준이 당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철저하게 자신보다 약한 몬스터만 노렸다.
 불을 이용한다는 사냥 방식 때문에 부산물도 얻지 못하고 퇴치비용과 간혹 나오는 마정석으로 간간히 먹고 살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던전으로 들어가는 목적은 겁에 질려 도망가는 몬스터들을 보며 즐기는 것이었으니까. 대량 학살은 그에게 쾌감을 주었다. 모두가 죽는 환경에서 홀로 태연할 수 있다는 건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걸 증명해 줬으니까.
 문제는 그 성미가 현실에서도 유지됐다. 작년 가을, 대구 고시원 화재 사건. 열두 명의 사망자가 나온 끔찍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고시원의 열악한 소방시설과 창문도 없이 밀집시킨 구조, 잠겨버린 비상계단이 피해를 더 키웠다며 분노했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다.
 그 고시원의 일은 사고가 아니다. 자신이 예약한 던전을 다른 팀에서 가로채자 앙심을 품은 김석준이 그 팀장의 아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고시원에 찾아가 방화를 저질렀다.
 불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나가려는 사람들을 막았다. cctv는 열기로 먹통이 됐다. 하지만 증거는 남았다. 때마침 다음 기사로 특이한 사냥법을 가진 이들을 취재할 계획이었던 차호준은 김석준을 떠올렸고 그의 행적을 쫓는 중 범죄 사실을 알았다. 고시원 근처 cctv 자료와 기름을 산 가게의 영수증 등. 증거를 모았고 협박할 수 있었다.
 비밀로 할 테니 나중에 자신이 부르면 도움을 달라. 이 사실이 밝혀져도 너의 인생은 끝이고 나를 죽여도 망하는 건 똑같으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게 좋지 않겠냐.
 “이렇게 부르게 되는군.”
 차호준이 대포폰으로 전화를 건다. 던전에 있는 게 아닌지 얼마 안 있어 김석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석준 씨?”
 
 - 누구지?
 
 “접니다. 차호준.”
 
 - 제길. 잊고 있는 줄 알았는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걸로 거래를 끝내죠.”
 
 - 확실하지? 이러고 기사를 내보낸다면 넌 내가 반드시 찾아서 죽인다.
 
 “하하하, 약속은 지킵니다. 안 그랬으면 제가 지금까지 살아있겠습니까”
 김석준이 잠시 입을 다문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결국은 무슨 부탁이든 들어줘야 끝나는 관계니까.
 
 - 내가 뭘 하면 되지?
 
 “제가 하는 일을 도와만 주시면 됩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 하죠. 흐음, 던전 갈 때처럼 준비해서 나오세요.”
 
 - 던전?
 
 김석준이 의아했지만 알겠다고 답한다. 복장부터 장비까지 챙기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한 시간 후 만나기로 정했다.
 차호준이 이어서 영주에게 전화번호를 누른다. 별로 좋은 카드는 아닌 거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 아이를 미끼로 쓰는 수밖에.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을 의심하는 것 같다.
 은연중 한혁의 인터뷰를 하려는 이유나 질문리스트의 의도 등 대답하기 곤란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더니 한 번은 인터뷰를 잡았다며 부르기에 사토 코지와 함께 찾아갔었다.
 한혁은 없었다. 약속을 깨버렸다고 했지만 찜찜했다. 무엇보다 사토 코지의 존재를 보여줘 버렸다.
 전화가 연결됐다.
 
 - 여보세요. 차호준 기자님. 무슨 일이세요?
 
 “영주야. 아직 한혁 씨와 인터뷰를 못했잖아.”
 
 - 아, 그게. 계속 해보고 있어요. 어휴, 이 오빠가 고집이 세서.
 
 “하하, 다름이 아니고. 오늘 내가 인터뷰가 있거든? C급 헌터 김석준이라고. 네가 아직 그런 거에 서투니까 오늘 별일 없으면 어떻게 진행하는지 와서 봐볼래? 종강도 했다며.”
 
 - 오오! 진짜요? 당연히 가죠. 어디로 몇 시까지 갈까요!
 
 “내가 이따 위치랑 알려줄게. 이따 보자.”
 
 - 넵! 감사합니다!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차호준이 소파에 앉는다. 아직 김석준과 만나려면 시간이 남았다. 진열장에 넣어 둔 양주에 시선이 간다.
 딱 한 잔만 하면 좋을 텐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저녁에 마시자. 오늘 다 끝난다.”
 마음을 다잡은 차호준이 풀었던 넥타이를 맨다. 서류가방과 노트북을 챙겨 차에 싣는다.
 김석준과 먼저 만난 차호준이 비지니스 카페로 들어간다. 스튜디오를 빌려볼까도 했지만 혹시라도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기에 접었다.
 자신의 목숨이 달린 만큼 조심할 생각이다.
 회사원처럼 보이는 차호준과 달리 배틀슈트를 입은 김석준의 모습은 눈에 띄었다. 마정석과 몬스터들의 각종 부산물을 갈아 넣은 물건으로 헌터들의 상징과도 같은 장비다.
 힐끔거리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한쪽 구석에 마련된 회의실로 들어간다. 노트북을 올려두고 질문리스트, 녹음기 등을 세팅한다.
 인터뷰는 정말로 할 생각이다. 기사도 올릴 예정이다. 굳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찾아온 이유가 있다. 안전하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 또,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하여.
 이미 가게 안에 있는 cctv에 모습이 찍혔다. 자신은 이후에 기사를 쓰고 있는 걸로, 김석준은 던전으로 간걸로 처리하면 된다.
 뺑소니로 사람을 죽인 E급 헌터에게도 연락을 넣어 놨다. 김석준으로 위장하여 던전을 들어가라고. 사냥 따위 안 해도 되니 신호를 주면 들어가라고.
 준비는 할 만큼 했다. 크게 실수한 부분도 없고 변수가 나타날 가능성 또한 적다. 기껏해야 일반인 한 명 잡아가는 거니까.
 입술을 핥으며 기다린다. 오래지 않아 약속 시간보다 15분가량 먼저 도착한 영주가 안으로 들어온다.
 인상을 쓰던 차호준의 표정이 급변한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벌려 환영한다.
 그가 일어서자 김석준도 엉겁결에 따라 일어선다.
 영주가 두 사람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벌써 오셨어요? 좀 더 빨리 올 걸 그랬다. 죄송해요.”
 “아닙니다. 일로 와요. 인사해요. 석준 씨. 이쪽은 영주 씨라고 제가 서포트 할 기자 지망생입니다.”
 “C급 헌터 김석준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영주예요. 헤헤, 현직 헌터를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게 배틀슈트! 멋있어요!”
 영주가 생기발랄한 눈으로 쳐다본다. 심히 부담스럽다. 가만 놔두면 만져 봐도 되냐며 부산을 떨 것 같기에 차호준이 자리에 앉혔다.
 커피를 주문하고 곧바로 이어지는 인터뷰. 영주가 수첩과 핸드폰을 꺼내 배울 점을 적는다. 프로답게 매끄럽게 진행이 되었고 30분 만에 인터뷰가 끝났다.
 “와, 확실히 다르네요. 덕분에 많이 배워갑니다. 오우, 불을 이용한 사냥법이라니. 역시 헌터의 세계는 다르네요. 전 그냥 칼로 싸우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번 기사의 주제가 자기만의 공략법이라서요. 그럼 일어섭시다. 아직 할 일이 남았어요.”
 “또 있나요?”
 “마지막으로 던전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찍을 겁니다. 그 쪽이 임팩트 있지 않겠어요?”
 차호준이 서류가방에서 DSLR을 꺼낸다. 기자하면 떠올리는 장비 중 하나. 녹음기와 함께 기자의 필수품인 물건이다.
 “오오! 확실히 게이트를 향해 들어가는 사진을 같이 올리면 완전 멋있을 거 같아요. 영화 같잖아요.”
 카페에서 나와 차호준의 차를 탄다. 조수석은 미리 옷가지와 서류를 쌓아 뒀다. 차호준이 뒷문을 열어준다.
 “좀 더럽죠? 아무래도 급하게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정리할 틈이 없네요.”
 “아니에요. 오히려 전문가다운 느낌인걸요.”
 별 의심 없이 차호준과 뒷좌석에 앉은 영주가 말했다. 잠깐이지만 차호준과 김석준의 눈이 마주친다. 이걸로 자력으로 탈출은 불가능.
 “그럼 갑시다.”
 차호준이 차를 몬다. 처음에는 게이트를 직접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떠들던 영주도 말수가 적은 김석준이 반응을 안 해주자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밖을 구경한다.
 이동을 꽤나 했음에도 도착할 생각을 안 한다. 주변 풍경은 어느 샌가 건물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뭔가 이상하다.
 “신경이 쏠려서 다른 걸 못 본다.”
 자신도 모르게 한혁이 했던 말을 중얼거린다. 김석준이 슬쩍 영주를 살폈지만 곧 관심을 거둔다.
 각성자와의 인터뷰를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또다시 실수를 저질렀다. 물증은 없다. 하지만 차호준 기자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확실하다.
 그가 보내준 질문 리스트. 한혁에게 집중하는 듯 보이지만 파헤쳐 보면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는지. 이전에 훈련을 받은 적은 없는지. 구체적인 단련법과 국가기관과의 관계 등등이 대부분이다.
 보통 인터뷰를 한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왔나, 심정은 어땠나, 앞으로의 행보는 정해졌느냐와 같은 질문을 했으리라.
 신경 쓰이는 부분은 또 있다. 인터뷰를 하게 되면 장소를 말하라는 말이 의심스러워 거짓으로 불러냈을 때, 차호준은 혼자 오지 않았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람이 같이 왔다. 이름은 모른다. 묻기도 전에 홀로 가버렸다.
 동료 기자인가 싶어 헌터스 기자 목록을 모두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봤을 때 같이 왔던 남자는 차호준 기자보다 윗사람이다. 그의 눈치를 수시로 살피는 게 보였으니까.
 물론 다른 부서나 상사일 수도 있다. 언론사도 결국에는 기업이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상한 건 매한가지. 기자도 아닌 사람들이 그곳을 따라올 이유가 없다.
 결국 헌터스와 관련이 없음에도 차호준을 아랫사람처럼 부릴 수 있는 자라는 말인데.
 ‘그런 사람이 누가 있지?’
 여기서 생각이 막혔다. 시간을 끌며 차호준과 같이 온 사람의 정체를 파악해 보려 했지만 자료가 너무 없었다.
 “이제 다 왔습니다.”
 차가 속도를 낮춘다. 멀리 베드타운이 보인다. 주변에는 비닐하우스와 밭이 전부다. 주차한 곳 앞에는 폐가에 가까운 건물이 있다.
 페인트는 벗겨졌고 유리는 모두 깨졌다. 던전이 생기는 곳이야 워낙 다양하니 이런 곳에 있어도 문제될 건 없지만 묘한 이질감이 든다.
 던전 관리자가 없다. 게이트가 발생하면 발견되는 즉시 주변을 통제하고 담당 관리자가 내려온다.
 영주가 침을 삼킨다. 자신의 옆에 앉은 김석준은 헌터. 이 사람들이 딴 생각을 가지면 자신은 당할 수밖에 없다. 자신은 일반인에 불과하니까.
 심장이 거세게 뛰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보는 척 문자를 켠다. 지금까지 의심스러웠던 점들을 정리한 메모를 복사해 붙인다.
 특수테러본부의 번호는 외우고 있다. 기자를 꿈꾸는 이상 다른 사람들처럼 경찰과 특수재난부, 특수테러본부의 역할을 혼동할 일은 없다.
 건물 안에서 한 인형이 보인다. 던전 관리자라고 생각한 영주의 안색이 펴진다. 잠깐이지만 자신이 너무 의심이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늘에 가려진 얼굴이 드러난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차호준 기자와 함께 왔던 남자다.
 그를 본 김석준도 안색을 굳힌다. 눈을 부릅뜨고 차호준을 노려본다.
 “사토 코지? 왜놈을 불러들여?”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저는 잠깐 전화 좀 하겠습니다.”
 김석준의 말에 차호준이 급히 목소리를 높인다.
 영주가 못들은 척 가만히 있는다. 사토 코지. 저 사람 이름이다.
 김석준의 관심은 차호준에게 쏠린 상태. 빠르게 사토 코지와 김석준, 차호준이 있다고 쓴 후 특수테러본부로 문자를 보낸다.
 태연한 척 차에서 내린다. 사토 코지가 영주와 김석준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차호준이 차 안에서 가만히 있어 달라고 몸짓으로 사정한다.
 “아, 저도 같이 있으니까 의욕이 샘솟네요. 한혁 오빠한테 전화해 봐야지.”
 자신의 말이 어색하지 않았기를 빌며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다급하게 카톡을 보낸다. 잘못 건든 거 같다고. 피하라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들은 좋은 의도로 한혁을 만나려는 게 아니다. 확실히 깨달았다. 자신은 한혁을 불러들이기 위한 미끼라는 걸.
 다급함에 오타가 난다. 뒤에서 인기척이 난다. 마지막 메시지가 전송됐다.
 숨어.
 홈 버튼을 누른다. 뒤를 돌아보는 동시에 의식이 멀어진다.
 
 - 털썩.
 
 돌아서는 영주의 턱을 쳐 기절시킨 사토 코지가 떨어진 핸드폰을 줍는다.
 김석준으로 변장한 헌터에게 던전에 진입하라고 전화를 한 차호준이 다가온다. 뒤에 선 김석준이 사토 코지를 경계한다.
 그 또한 코지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그놈 손에 죽은 동료도 있었다. 그라고 처음부터 홀로 사냥을 한 건 아니었다.
 “너무 경계하지 말라고. 너한테는 관심 없으니까.”
 “미리 말 안 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말했으면 안 왔을 거잖아요?”
 “영악한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매국노일 줄은 몰랐군.”
 “에이, 누가 들으면 나라라도 팔아먹는 줄 알겠네요.”
 별 차이는 없다. 결국은 국가의 전력을 팔아넘기는 행위였으니.
 코지가 기절한 영주를 건물 안으로 끌고 간다. 김석준이 이를 간다. 졸지에 한패가 돼버렸다. 차호준을 죽일 듯이 노려봤으나 곧 체념했다. 코지의 헌터등급은 A.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다.
 차호준이 사토 코지로부터 핸드폰을 건네받는다. 분을 삭이고 있는 김석준을 달래주고 목을 가다듬는다.
 최근 전화 목록에 한혁의 이름이 보인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전화를 받는다.
 원래는 연기를 지망했던 것 마냥 차호준이 목소리를 떨며 새된 목소리를 낸다.
 “사, 사람이 쓰러졌어요. 지금 보호자도 없고 전화 목록에 있어서 전화를. 빨리 오세요. 아이고, 애 상태가. 여기가 어디냐면.”
 “어딘지 알아, 새끼야. 가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라.”
 한혁이 전화를 끊는다. 벙찐 차호준의 몸이 굳는다.
 
 
 도발은 가운뎃손가락으로
 
 
 
 
 
 전화를 끊은 한혁이 장비를 점검한다. 어느덧 주 무기가 되어 버린 레이징 저지, 혹시 모를 근접전을 대비한 대거도 양쪽 허리에 달아 놨다. 두께만 7mm. 쉽게 부러지지는 않으리라.
 탄약도 급한 대로 비닐봉지에 싸들고 왔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웨스트백을 사서 채워 넣었다.
 디자인과 재질은 별로지만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며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용량도 넉넉해서 한동안 다른 걸 사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운전을 하는 길준태가 힐끔 쳐다보더니 풉! 하고 웃는다. 아까 살 때도 그러더니. 한혁의 얼굴이 구겨진다.
 “푸흐흐, 귀엽네. 잘 샀다, 야.”
 “전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걸요.”
 한혁이 지퍼가 잘 열리는지 확인하며 대꾸했다. 한혁도 인정한다. 좀 그렇다는 걸. 색이야 무난하다. 남색 바탕에 노란 라인. 다만 중앙에 큼지막하게 피○츄가 그려져 있을 뿐이다.
 언제 적 전기 쥐돌이냐. 한혁이 입고 있는 코트의 앞섶을 여민다. 가능한 웨스트백이 가려지도록.
 6월 말에 코트.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기에 보는 사람이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이건 보통 코트가 아니다. 자그마치 배틀슈트가 개발되기 전에 사용하던 모델이다.
 기본적인 방검 효과와 독액과 비를 막아주는 방수 효과. 던전에서 오랜 기간 있을 때를 대비한 온도 조절 기능 등, 현재 사용되는 배틀슈트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성능이 좀 뒤처지기는 하지만 올 블랙에 종아리까지 오는 롱코트라 디자인적인 부분으로는 더 낫다는 평가다. 코트의 오른쪽 어깨에는 특수테러본부의 마크가 달렸고 왼쪽에는 MB를 장착했다.
 구비할 수 있는 방어책은 전부 챙겼다. 아쉬운 건 무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본부의 무기창고를 뒤져봐야겠다.
 한혁이 장비 확인을 마치자 길준태가 오면서 계속 하던 말을 반복한다.
 “조심하자. 영주라고 했던가? 그 아이랑 걔가 보낸 문자에 적혀 있던 사람들 사진으로 지원이가 위치 확인해 보니까 전부 한곳에 있던 거 기억나지?”
 “네. 알죠.”
 한혁이 곧장 영주가 잡힌 곳으로 올 수 있었던 이유. 후방에서 보조한다던 박지원의 능력 덕분이다. 그의 능력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영주는 살아 있다.
 “사토 코지. A급 헌터다. 일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녀석이고. 능력이야 전투와 전혀 관계없지만 신체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놈이야. 오히려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봐야지. 순수하게 전투 실력으로 올라온 놈이니까.”
 “같이 있는 김석준이라는 사람도 조심해라. 그 녀석 특정 환경에서는 B급 이상이야. 불이 안 통해. 등급도 너보다 높은 C급이고.”
 “걱정 마시죠. 총 맞으면 아픈 거 똑같으니까. 여차하면 형수님이 살려주실 거잖아요.”
 “크흠!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뒷좌석에 앉은 사람은 본부의 전투 힐러 김형수. 근육질의 몸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형수인 탓에 형수님으로 불리고 있다.
 회복이라는 고급 능력을 보유한데다가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까지 하는 강력함. 전투 능력은 B지만 능력의 효용성을 생각한다면 A급에 비견되는 사람이다.
 그가 직접 공방으로 찾아가 주문 제작한 건틀렛을 착용한다. 손에 이어서 팔뚝을 보호하는 철갑과 정강이를 감싸는 각반까지. 꼼꼼히 확인한다. 모두 몬스터의 외갑과 뼈로 제작된 거라 강도만 따지면 강철보다 우위다.
 “간만에 몸 좀 풀겠군. 요즘은 피라미밖에 없어서 나갈 일이 없었는데 말이야. 크하하하!”
 김형수가 손가락을 푼다.
 한혁이 머리를 흔든다. 저 사람이 덤빈다 상상하니 답이 안 나온다.
 자가 회복을 바탕으로 한 돌격력, 육중한 근육에서 나오는 파워까지. 근접 전투에 최적화됐다.
 각성자가 되기 전까지 헬스장 트레이너 겸 아마추어 파이터였다고 한다. 기술도 제법 있다는 뜻인데 하물며 그가 입고 있는 전투슈트는 방호력을 최대한 올린 제품이다. 거기에 MB까지. 총과 칼이 의미를 잃고 강제로 육탄전으로 몰아가 개싸움을 벌인다.
 방어력도 뛰어난데 회복까지 한다. 이 사람도 괴물 아닌가? A급이나 마찬가지라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B급이다. 그렇다면 A급인 길준태는 뭐지?
 생긴 건 멍하게 생겨서 만만해 보이지만 전투력만큼은 우습게 볼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 확인된 각성자만 두 명, 숨겨진 헌터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 현장에 달랑 셋만 보내는 거고.
 “거의 다 왔다. 다들 명심해. 안에 일반인이 있는 거 알지? 총도 조심히 쏴. 도탄난거 맞고 죽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쏘는 탄이 가볍지는 않잖아. 오케이?”
 “난 걱정 없구만. 그래.”
 길준태의 말에 김형수가 껄껄 웃는다.
 “한혁아. 일단은 우리 둘이 나설 테니까. 네가 영주 구해라. 그 아이도 자기가 아는 사람이 오는 게 더 안심이 될 거다. 낯선 사람이 구해 줄게요! 이러면서 오는데 총 들고 있으면 무섭지 않겠냐.”
 “그렇게 하죠. 차 키 줘요. 저 차는 대전차 로켓포도 버틴다면서요. 거기가 제일 안전할 거 같은데.”
 “이따 내리면 주마.”
 길준태도 같은 생각이다. 그들이 탄 차량은 전에 봤었던 호송 차량. 군용 장갑차 뺨치게 튼튼한 차량이다.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관통력이 뛰어나다는 판처파우스트-3(Panzerfaust-3)의 공격도 막는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장소가 가까워진다. 박지원이 시시각각 네 사람의 위치를 추적해 보여 준다. 별다른 이동이 없다. 그들이 있는 장소에서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혁이 눈을 가늘게 뜬다. 보인다. 휑한 주변에서 그나마 건물의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는 곳. 하늘에서 한순간 푸른 스파크가 터졌다. 일전에 봤었던 차음막이다.
 이제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길준태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멍청하게 정면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다. 핸들을 돌려 건물 옆으로 돌아간다.
 
 - 쿠구궁!
 
 호송 차량이 곧장 폐가를 들이박는다. 벽이 무너지는 동시에 쏟아지는 총격! 도탄된 총알들이 불꽃을 튀긴다.
 “칙쇼! 무식한 놈들!”
 89식 소총을 갈기던 코지가 욕을 내뱉는다. 그의 옆에서 K-2를 쏘던 김석준도 같은 마음이다. 벽 너머에 인질이 있었으면 어쩌려고. 이들에게 영주의 목숨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생긴 오해다.
 길준태가 권총을 뽑아든다. 레이징 불 444. 44매그넘(Raging Bull444 .44 Magnum).
 한혁과 마찬가지로 454 카술을 사용하는 물건이다.
 “환영 인사 한 번 거창하네.”
 자동차 키를 한혁에게 던진다. 건틀렛을 부딪친 김형수가 문을 박찬다. 이에 질세라 길준태와 한혁도 차에서 내린다.
 호송차를 바리케이드 삼아 총을 쏜다. 권총과 소총. 물량으로 승부하면 답이 없다. 이럴 때는 적의 진형을 흔들어야 하는 법.
 김형수가 몸을 흔들며 돌진한다. 총에 덜 맞을 수 있다면 덜 맞는 게 최선.
 어지간한 탄은 MB가 막아주겠지만 만능은 아니다. 설사 MB가 뚫려도 배틀슈트가 2차로 막아주겠지만 MB와 달리 슈트는 맞는 만큼 수명이 준다.
 “뭐 저딴!”
 “얼마나 장비를 떡칠한 거야!”
 “으랴!”
 지근까지 접근한 김형수가 기둥을 후려친다. 옆구리가 터져나가며 파편이 적들을 덮친다.
 김형수의 방어력을 믿고 길준태와 한혁이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총을 쏜다.
 김석준이 뒤로 빠지며 호송 차량에 숨은 준태와 한혁에게 사격을 한다. MB가 없는 그의 입장에서 총이 없는 김형수보다 저 둘이 더 성가셨다.
 “크윽!”
 계속해서 달려들던 김형수가 벽에 처박힌다. 김석준과 달리 앞으로 달려온 코지의 손에는 거꾸로 잡은 89식이 들려 있다. 개머리판을 방망이 삼아 형수를 후려친 것.
 절도 있는 동작으로 총을 고쳐 쥐더니 연사로 김형수를 쏴버린다.
 “그 잘난 MB도 쏘다보면 뚫리더군.”
 마나의 장막이 나오기가 무섭게 물량으로 압도해버리면 결국에는 뚫린다. 그만큼 맞을 정도로 가만히 있는 바보가 없어서 그렇지.
 형수가 일어나려고 할 때 마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총을 돌려 개머리판을 휘두른다. 그 공격을 막는 짧은 순간 이어지는 사격.
 몸을 웅크린 형수가 바닥을 짚는다. 그의 괴력에 타일이 깨지며 조각난 파편들이 잡힌다. 그대로 코지의 눈에 흩뿌린다.
 눈 하나 깜빡 안 한다. 그 또한 MB 소지자. 이정도의 파편에 맞을 리가 없다. 형수도 알고 있다. 그가 노린 건 일어날 수 있는 잠깐의 틈이다.
 웅크렸던 몸을 펴며 그 탄력으로 코지의 눈앞까지 도달한다. 총구가 코앞으로 다가온다.
 
 - 탕!
 
 건틀렛을 낀 손이 총구를 막았다. 연기가 올라온다. 내부에서 막혀버린 탄의 위력에 총열이 부풀었다.
 형수가 손을 비튼다. 까드득. 쇳소리와 함께 총열이 휘어진다. 형수가 어금니를 깨물며 웃는다.
 “몸싸움으로 해볼까?”
 “크큭! 네 실력으로는 안 될 텐데?”
 문답무용. 형수가 스트레이트를 뻗는다. 총을 버리고 뒤로 뺀 코지가 다시 형수의 앞으로 다가온다. 농락하듯 형수와 똑같은 공격을 한다.
 빠르다! 피할 생각도 못하고 간신히 팔뚝으로 막았다. 장비를 꼈음에도 팔이 욱신거린다. 상대방이 더 빠르다. 치고 빠지며 싸울 상대가 아니다.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아야 한다.
 팔로 주먹을 막으며 기습적으로 손을 뻗는다. 어깨가 잡히는 듯 보였지만 몸을 비틀어 빠져나간다. 그와 동시에 미들킥이 옆구리에 작열한다. 허리가 C모양을 꺾이며 벽에 부딪친다. 우수수 파편이 떨어진다.
 “퉷! 잡았다.”
 피를 뱉어낸 형수가 코지를 노려본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기가 무섭게 상처가 아문다.
 그가 옆구리에 붙잡은 코지의 다리를 잡아당긴다. 빨려 들어오는 코지. 그대로 그의 복부를 걷어찬다.
 포탄처럼 날아가 싱크대에 꽂힌다. 형수의 옆구리에 충격을 이기고 못하고 찢어져버린 코지의 바지조각이 남는다.
 “다리가 뜯겼으면 더 좋았을 텐데.”
 형수가 입맛을 다신다. 우그러진 싱크대를 밀쳐낸 코지가 배를 쓸어내리며 일어선다. 그가 벽 사이, 숨어 있던 차호준을 바라보며 손을 까딱인다. 총격전에 귀를 막고 있던 차호준이 움찔한다.
 “그거 가져와.”
 “네, 넵!”
 차호준이 잽싸게 가지고 있던 일본도를 던져준다. 달려가며 한 손으로 검을 잡아든 코지가 발검한다.
 섬광 같은 발도. 눈으로 쫓으면 늦는다. 반사적으로 팔을 든 형수가 서늘한 감각에 반대쪽 팔도 내민다.
 “아쉽군.”
 피가 바닥을 적신다. 왼팔이 반쯤 잘렸다. 오른손을 급히 보태지 않았다면 그대로 잘렸으리라. 특수 주문한 갑주까지 깔끔하게 잘렸다.
 왼팔을 감싸 쥔 형수가 으르렁거린다.
 “이놈!”
 재차 코지가 검을 휘두른다. 왼팔을 몸에 붙인 채 오른손과 다리로 검을 받아친다. 불똥이 튈 때마다 각반이 뜯기고 배틀슈트가 넝마가 된다. 온몸이 피투성이다.
 “네놈이 힐러인 건 알고 있다. 힐러 놈들 처리하는 방법이야 간단하지.”
 단번에 죽이거나, 과다출혈로 죽이거나. 상처가 아물어도 몸속에 피가 없으면 죽는다.
 머리가 빙빙 돈다. 상처가 금방 회복돼서 이 정도지 아니었으면 진작 쓰러졌다. 형수가 빈틈을 살핀다.
 달라붙자. 몸에 매달려 팔을 붙잡으면 저 잘난 일본도도 휘두를 수 없을 테니까.
 간발의 차이로 검을 피했다. 힘을 쥐어짜 앞으로 돌진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
 코지가 스산하게 웃는다.
 ‘설마!’
 코지의 시선을 따라 눈이 돌아간다. 그가 노렸던 건 직접적인 타격이 아니었다. 왼쪽 어깨에 붙어 있던 MB가 잘려 나간다. 코지가 품에서 매그넘 44를 꺼낸다. 더 이상 MB도 배틀슈트도 기능을 못한다. 맨몸으로 받아야 한다. 소름이 돋는다.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잘 가라.”
 
 - 탕!
 
 “어이쿠! 위험해라.”
 총이 비껴 나간다. 밀쳐져 넘어진 김형수가 길준태의 등을 본다. 발로 총을 쳐낸 길준태가 허리에 레이징 불을 꽂더니 등허리에 비스듬히 고정시켜 둔 숏소드를 꺼낸다.
 “역시 난 사격에는 소질이 없나봐. 하나도 못 맞추겠어.”
 “준태야!”
 “형수님은 쉬고 있어. 이놈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덤벼라 일뽕놈아.”
 길준태가 가운뎃손가락을 까딱이며 도발한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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