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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몽유강호기 [E]

몽유강호기 1권(1)

2019.08.11 조회 380 추천 3


 <시작하면서>
 
 변화라는 건 때가 되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할 수도 있다.
 나는 이번 글에서 변화를 꾀했다.
 그동안 펴낸 나의 졸저들을 한 권만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대뜸 알 일이다.
 변화를 꾀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시도는 나의 권리지만 판단은 오직 독자가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의 주인공은 못생겼고, 무식하고, 엉뚱하다.
 무식하니까 순진할 것 같지만 달리 보면 더 영악할 수 있다.
 왜?
 무식하니까.
 경우를 모르고 무작정 내 주장만 내세우니까 말이다.
 유식하고 멀쩡한 사람들이 손발을 들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백전불패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오늘날의 진리가 어쩌면 그래서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이 바로 그거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장황한 글을 쓸 게 있겠는가?
 무언가 읽는 중에 보이는 게 있고 생각나는 게 있어야 좋은 글이다. 그렇게 만들어주어야 제대로 된 글을 썼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저 읽는 걸로 끝난다면 그건 재미있는 글이 될지 몰라도 좋은 글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아예 읽혀지지 않는 글을 쓰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그래서 나의 변신은 우선 읽혀지는 글을 써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독자들이 읽는 내내 유쾌, 상쾌, 통쾌함을 맛볼 수 있다면 그건 대성공이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내가 불만이다. 그래서 조금 더 욕심을 냈다.
 읽는 중에 인생이라는 그림이 어렴풋이나마 눈에 보이고, 읽고 나서는, 찡한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람이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라는 심각한 주제에 대해서 쬐끔은 생각해 보게 되는······.
 그렇다. 바로 그런 글을 쓰고자 마음먹고 모니터 앞에 앉아 눈을 부릅떴다.
 그랬더니 <몽유강호기(夢遊江湖記)>가 불쑥 튀어나왔다.
 
 쓰는 동안 내내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재미있다고 독자들도 그런 건 아니리라.
 그래서 이 글을 내던져 놓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설레면서 두렵기도 하다.
 과연 내 글의 변화가 제대로 되었느냐, 반쪽의 변신에 머물고 말았느냐, 그것도 아니면 아니함만 못한 것이냐, 하는 결과를 좋든 싫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을 재판해 줄 판관으로 독자 제현을 모신다.
 부디 즐겁게 읽으시고 후한 점수를 매겨주시기를.
 
 
 
 
 
 제1장 구소자(龜小子)와 왕대룡(王大龍)
 
 
 
 구소자(龜小子)와 왕대룡(王大龍)
 
 
 
 ―까짓, 돈이나 한번 왕창 벌어보자.
 
 그것이 구소자(龜小子)가 산을 내려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그는 돈만 있으면 번듯한 문파나 세가 하나쯤 세우는 건 일도 아니라고 믿었다.
 고수? 돈으로 고용하면 된다. 많이 줄수록 뛰어난 자들을 부릴 수 있다.
 “그놈들이 왜 그렇게 무술을 열심히 연마했는데? 자신있는 재주가 그것밖에 없어서 아니겠어? 장사꾼이 주판을 들고, 주방장이 밥주걱을 쥐는 것처럼 그놈들도 먹고 살 방법으로 검을 쥐고 칼을 든 거야.”
 구소자의 결론은 명쾌하다.
 언제나 그렇다. 그에게는 의혹이란 게 없다. 내가 아는 건 당연한 거고, 모르는 건 스스로 궁리해서 알아내면 그뿐이다. 애써 돈 주고 배울 게 뭐 있는가?
 그래도 알쏭달쏭한 일이 있다면 그건 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모르는 일일 테니 신경 쓰고 살 것 없다.
 그래서 구소자는 언제나 당당하다.
 비록 애미가 누구인지, 제 나이가 몇 살이나 되었는지 몰라도, 이름자 하나 쓰고 읽을 줄 몰라도, 용졸한 외모에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어도 그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왜?
 돈을 벌면 되니까.
 그 간단한 이치를 몰라서 그렇게 생고생을 하며 아등바등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한심할 뿐이다.
 “돈만 있어봐라. 소림사? 무당파? 개똥이다. 콧대 높은 화산파 놈들도 흥! 이다.”
 구소자는 늘 그렇게 큰소리를 쳤다.
 하긴, 돈이 있으면 당장 천하제일 문파를 세우고 거들먹거릴 수 있다. 무림? 까짓 거 쓸어버리자면 못할 것도 없다.
 돈이 있고, 그래서 막강한 고수들을 부릴 수 있는데 누가 감히 나를 업신여길 것인가.
 그러니 그처럼 힘들게 무공을 연마할 필요가 없다. 그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게 현명한 일이다.
 구소자는 그런 소중한 진리를 어제 깨우치지 못하고 오늘에야 깨달은 게 억울할 뿐이다.
 그래서 산을 내려왔고, 의기양양했다.
 돈을 벌어서 아쉬운 대로 고수들을 몇 놈 부리게 되면 제일 먼저 귀왕채(鬼王寨)의 산적 놈들을 싹 쓸어버리리라고 단단히 결심했다.
 그놈들은 죄다 나쁜 놈들이니 죽여 버려도 된다. 하나씩 잡아다가 능지처참을 해도 불쌍한 생각이라고는 쥐똥만큼도 들지 않을 거다.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다가 고개를 갸웃거린 구소자가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장대두하고 왕 노인은 살려줘야겠는걸. 제법 나한테 잘해준 날도 있었으니까 말이야. 허, 참······ 나는 다 좋은데 마음이 너무 인자해서 탈이야. 제기랄.”
 구소자는 이제 자신의 자비심에 취해서 제법 의젓한 태(態)를 잡으며 천하를 굽어보았다.
 부처님도, 공자님이나 태상노군도 자신의 자비심 앞에서는 조족지혈에 불과할 거라는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에 너무도 쉽게 빠져들고, 한번 빠져들면 꿈을 꾸듯이 몽롱한 상태가 되어서 깨어날 줄을 모른다.
 그럴 때면 어디서 그 많은 생각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건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새도록 이어져서 황홀하다.
 그는 세상을 잊고 자기 자신마저 잊는 도취의 상태에 곧장 몰입해 들어갔다.
 중이라면 선정(禪定)에 든 것이고, 도사라면 입정(入定)에 든 것이나 진배없으니 그것 또한 재주라면 재주였다.
 
 “눈 떠.”
 종아리를 걷어차는 건 분명히 발이다.
 “이 쥐방울만한 놈이, 눈 뜨라니까!”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제는 허벅지를 짓밟는다. 제법 아프다.
 구소자는 짜증이 났다.
 선정에 들어 막 부처님의 경계를 엿보는데 누가 따귀를 때려봐라. 고승대덕(高僧大德)이 악귀야차로 돌변하는 데 시간이 필요없으리라.
 하지만 구소자는 인내심이 깊다. 아니, 게으르다.
 감았던 눈을 뜨는 일마저 귀찮은 그가 겨우 한쪽 눈을, 그것도 뜬 둥 만 둥 하고 허벅지를 내려다보았다.
 투박한 발 하나가 지그시 힘을 주고 있다. 더럽고 큰 발이다. 그렇다면 지저분하고 큰 놈이 분명하다.
 구소자의 실눈이 발목에서 종아리를, 허벅지에서 사타구니를 스쳐 놈의 가슴께까지 천천히 밟아 올라갔다.
 “이 자식이!”
 독사가 기어오르듯 차갑게 감겨오는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퍽―!
 이어서 가슴에 와 닿는 충격.
 구소자의 몸이 기대고 앉아 있던 벽을 뚫고 들어가기라도 할 듯 처박혔다.
 그러나 신음은 흘리지 않았다.
 구소자는 그러면 된 거라고 여겼다. 사나이 자존심은 지켰지 않은가 말이다.
 그 효과는 금방 드러났다.
 “어라?”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놈의 입에서 놀람의 외침이 터져 나온 것이다. 놈은 당황하고, 조금씩 겁을 먹어갈 것이다.
 그건 구소자만의 생각이다. 그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제법 맷집이 있는 꼬만데?”
 사내가 흐흐 하고 웃으며 손가락 마디를 뚝뚝 꺾었다. 게슴츠레하게 풀려 있는 구소자의 눈이 그런 사내를 여전히 더듬었다.
 “짜식아, 네가 감히 이 왕대룡님을 우습게 봐? 그러고도 살기를 바란다면 넌 인간이 아니지.”
 사내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구소자는 비로소 그자의 면상을 똑똑히 보았다.
 ‘지저분하게 생긴 놈.’
 사내에 대한 느낌과 인상을 그 한마디로 결정해 버렸다.
 스스로를 왕대룡이라고 한 사내는 과연 지저분했다.
 볼따구니에 덕지덕지 낀 때도 때였으려니와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과 부스스한 머리카락, 개기름이 번질거리는 콧잔등과 삐뚤삐뚤 자란 누런 이빨······.
 지독하게 쉬고 구린 냄새는 그가 입을 열어 말할 때마다 풍겨 나오는 구취(口臭)였다.
 “아, 드런 놈이구나. 재수 옴 붙었다.”
 코를 꽉 쥐고 있었으므로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코맹맹이 소리다. 하지만 사내는 귀가 밝은 모양이었다.
 “요런 쥐새끼 같은 것이!”
 기가 막혀 하다가 울화통이 치민 왕대룡이 버럭 소리치고 다시 구소자의 가슴을 힘껏 걷어차 버렸다.
 꽝―!
 구소자의 작은 가슴에서 쇠북을 두드린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의 몸이 기어이 낡은 흙벽을 뚫고 들어가 버렸다.
 채소전과 어물전, 잡화점들이 영문 모르는 벼락을 맞았다.
 담이 우르르― 무너지면서 쏟아진 흙덩이와 먼지들이 그것에 기대어 줄지어 있던 점포의 좌판들을 덮쳐 버린 것이다.
 구소자의 몸은 보이지도 않았다. 생매장을 당해 버린 듯했다.
 “어, 어, 와, 왕 대형. 죽었나 봐!”
 뒤에 있던 자들이 무너져 내린 흙덩이를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었다.
 점포를 망치게 된 상인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저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왕대룡과 그 일행들의 눈치를 볼 뿐이다.
 “다들 봤지? 들었지? 저 쥐새끼가 감히 먼저 욕을 해서 내 화를 돋우었다. 그렇지? 그렇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왕대룡이 찢어져라고 부릅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와 눈길이 마주친 상인이며 객들은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고 쩔쩔맸다.
 “어디서 온 건지도 모르는 꼬마 놈이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거란 말이다!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었던 거야. 그래, 안 그래?”
 사람들로부터 반응이 없자 급해진 왕대룡이 우르르 달려가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채소전 장씨의 멱살을 틀어쥐고 으르렁거렸다.
 낯빛이 하얗게 변한 장씨가 정신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왕대룡이 다들 들으라는 듯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못을 박았다.
 “나야 가서 뇌옥에 한 닷새 처박혀 있다 오면 그뿐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영영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돼! 그래, 안 그래?”
 이제는 그와 눈이 마주친 상인들 모두가 정신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곳 현령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왕대룡은 아무리 망나니짓을 해서 현성에 잡혀 들어가도 닷새를 넘기지 않고 멀쩡하게 걸어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한 번 끌려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면 짧아도 한 달이 고달파진다.
 벌써 몇 차례 그런 일을 경험한 상인들은 왕대룡의 일에는 되도록, 아니, 가능한 한. 아니, 아니, 절대로 끼어들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저놈이 늙거나 병들어서 제 스스로 뒈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상책이라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보호세를 내면 아무 일 없다. 세상만사가 편해지는 것이다.
 장사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중요했지 누가 맞아 죽든, 묻혀 죽든 상관이 없다.
 게다가 이틀 전부터 이곳에 와 쭈그리고 앉아 있던 꼬마 놈이야 어디서 온 누구인지도 모르는 화상 아니었던가. 그런 놈 하나 때문에 생계를 망칠 수는 없다.
 “좋아, 좋아.”
 사람들의 분위기를 읽은 왕대룡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오늘은 일진이 좋았다가 나빠지고 다시 좋아졌다고 생각하며 손을 털고 돌아섰을 때였다.
 무덤처럼 주저앉은 흙덩이들이 움찔거리더니 작고 통통한 손 하나가 쏙 빠져 나왔다.
 “어?”
 왕대룡과 그의 떨거지들, 상인들이 모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흙덩이들이 와르르거리며 다시 쏟아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온통 누런 황토 먼지를 뒤집어써서 토우(土偶)처럼 변해 버린 구소자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저 자식이 살았다?”
 왕대룡이 입을 딱 벌리고 그런 구소자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에, 퉤퉤! 네미랄, 이게 뭐야. 한 벌뿐인 옷을 다 버려놨잖아!”
 벌떡 일어선 구소자가 제 몰골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버럭 소리쳤다.
 “허―!”
 왕대룡의 눈이 더욱 커졌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리번거리던 구소자가 흙더미 속에 반쯤 묻혀 버린 깃발 하나를 힘겹게 뽑아냈다. 그가 곁에 세워놓고 있던 깃발이었다.
 흙을 툭툭 털어 그것을 다시 세워놓은 구소자가 멀뚱한 얼굴로 왕대룡을 바라보았다.
 “이제 됐어? 그럼 가.”
 “허―!”
 어이없어하던 왕대룡이 눈을 끔벅이더니 저만큼 떨어져 있는 일행들 속에서 한 놈을 손가락질 해 불렀다.
 “얘, 얘, 저기다가 뭐라고 써놓은 거냐?”
 글을 읽을 줄 모르기는 왕대룡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가 떨거지들 중에서 그래도 글 읽은 티를 내는 저소아에게 물었다. 저소아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하사능조막우청(何事能助莫憂請)이라······. 어떤 일이든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부탁해라. 뭐 그렇게 써 있는 뎁쇼?”
 “우헤헤헤헤―”
 저소아의 말을 들은 왕대룡이 구소자를 손가락질하며 배꼽을 쥐고 웃어댔다.
 “그래, 뭐든지 말만 하면 도와준단 말이지? 좋아, 아주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꼬맹이였군 그래.”
 가까스로 웃음을 멈춘 그가 이제는 제법 심각한 얼굴이 되어서 턱을 쓸며 지그시 구소자를 바라보았다.
 문득 그의 시커먼 입술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왕대룡이 이번에는 구소자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이리 와봐라.”
 “싫다.”
 “엥?”
 대뜸 해온 말이 여전히 막말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두려움도 없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게 기막혔다.
 “좋아, 그럼 내가 가지.”
 뚜벅뚜벅 걸어 다가갔지만 구소자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렇게 당하고서도 아직 사태 파악이 덜된 건지도 모른다.
 눈앞에 버티고 선 왕대룡이 가소롭다는 듯 구소자를 내려다보았다.
 “뭐든지 도와준단 말이지? 그렇다면 한 가지 도움을 청할 일이 있는데······.”
 순간, 구소자의 흐리멍덩하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꾀죄죄한 얼굴에도 희색이 도는 것이 눈앞의 사내가 어떤 놈이라는 것마저 잊은 듯하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지난 이틀 동안 죽치고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찾아와 진지하게 상담하는 고객이 없었던 차에 왕대룡이 첫 번째 고객으로 온 것이다.
 좀 거칠기는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돈을 벌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저승사잔들 반기지 않을 것인가.
 “좋소. 무엇을 원하시오?”
 제법 의젓하게 묻는다. 하지만 왕대룡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구소자를 다시 멍청해지게 하고 말았다.
 “네놈을 밟아 죽이고 싶은데 그건 좀 귀찮을 것 같거든? 그러니 네 스스로 죽어주면 안 되겠냐?”
 누굴 죽이는 수고를 대신해 달라는 말이다. 뭐 못할 것도 없다. 문제는 그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데에 있다.
 구소자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끙끙거렸다.
 첫 고객의 주문이다. 무시한다면 앞으로의 영업 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첫 주문에서 신뢰를 잃었는데 어찌 다음 주문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아까운 내 인생을 대신 죽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석 달 동안 끙끙거리면서 겨우 생각해 낸 게 이 일이었다.
 밑천 하나 없이 돈을 벌자면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달리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석 달이 걸린 것이다.
 그래서 나선 길이고, 이 일로 떼돈을 벌어 떵떵거리며 살겠다는 희망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첫 고객의 첫 주문이라는 게 제 눈앞에서 스스로 죽어달라는 것이라니······.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안 되겠냐? 무엇이든 도와준다며?”
 구소자의 끙끙거리는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보던 왕대룡이 한껏 비웃었다.
 구소자의 얼굴이 이제는 벌레 씹은 것처럼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한참을 더 끙끙거리던 그가 겨우 마음을 정하고 말했다.
 “좋소, 도와드리리다.”
 사뭇 비장하기까지 한 얼굴이고 말투다.
 이제는 왕대룡의 떨거지들은 물론 상인들까지도 온통 호기심을 갖고 구소자를 바라보았다.
 과연 저 꼬마가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 것인지 궁금해하는 얼굴들이다.
 “하지만 선금을 받아야겠소. 돈을 주시오.”
 구소자가 왕대룡의 가슴 앞에 불쑥 손바닥을 내밀었다. 멀뚱히 바라보던 왕대룡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얼만데?”
 “일백삼십이만 팔천구백사십닷 냥 서푼.”
 “엥?”
 왕대룡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로서는 한 번 보기는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액수이기 때문이다.
 “개자식아! 누가 그 돈을 준다면 차라리 내가 죽어드리겠다!”
 얼른 계산되지 않았지만, 그만한 돈이라면 한 나라가 몇 년간 전쟁을 치르고도 닷 냥 서푼은 남을 액수라는 감이 왔다.
 “뻔뻔한 자식이! 터진 주둥이라고 되는대로 지껄이다니!”
 버럭버럭 소리치던 왕대룡이 문득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적였다.
 “옜다! 이거면 과하고 넘칠 거다.”
 그가 던진 건 고린내 나는 동전 두 닢이었다. 한 끼 국밥을 사 먹으면 그걸로 땡이다.
 구소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갯값도 이보다는 더 쳐주겠소.”
 “그러니까 어서 해!”
 개보다도 못한 놈이라는 뜻이다.
 구소자의 얼굴에 언뜻 분노가 스쳐 갔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낼 줄 모른다. 아니, 인내심이 부처님보다 더 깊다.
 귀왕채에 있으면서 십 년이 넘게 단련되어 온 참을성이고 끈기인 것이다.
 어떤 상황이 되어도, 몸이 아무리 괴롭고 고달파도 참고 또 참아 넘기는 것이 이제는 습성이 되어버렸다.
 “제미랄, 장소팔 그 썩을 놈보다 더 지독한 놈이 여기 있었군 그래. 똥통에 뒹굴다가 구더기에게 파 먹혀 뒈질 놈 같으니······.”
 구소자가 얼굴을 숙이고 낮게 중얼거렸다. 장소팔에게 늘 하던 욕이다.
 귀왕채의 소두령 중 한 명인 장소팔은 채주에게 귀싸대기를 심하게 얻어맞은 뒤부터 잘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구소자가 면전에서 그런 욕을 중얼거려도 태평했다.
 하지만 왕대룡은 귀가 밝았다.
 “뭐라고? 이런 쥐방울만한 잡놈이!”
 퍽―!
 소리치는 것과 주먹이 동시에 쏟아졌다.
 큰 몸집에 우악스럽기까지 해서 왕대룡의 주먹 하나가 구소자의 머리통만했다.
 그것이 사정없이 얼굴 복판에 틀어박혔다.
 구소자의 몸이 붕 떠서 일 장이나 날아가 흙무더기에 처박혔다. 그 한 방으로 머리통이 박살 났을 게 틀림없다.
 화가 날 대로 난 왕대룡은 더 이상 살인에 대한 꺼림칙함도, 사람들의 이목도 의식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게 제 아비라고 해도 역시 지금처럼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 그것이 우성현(右聖縣)의 저잣거리를 휘어잡고 있는 개차반 왕대룡의 본색이다.
 그러나 그는 구소자라는,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한 요상한 인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했다.
 “좋았어!”
 언제 주먹질을 당했느냐는 듯 부스스한 몰골로 툭툭 털고 일어난 구소자가 뜻밖의 소리를 했다.
 왕대룡은 제 눈을 의심했다. 내가 지금 귀신을 본 건가? 하는 의구심마저 일었다.
 정통으로 그 주먹을 맞고도 죽지 않았다면 중상이라도 입었어야 옳다. 아니, 적어도 코뼈가 문드러지거나 앞니라도 왕창 나갔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구소자는 멀쩡한 얼굴이었다.
 물론 시뻘건 주먹 자국이 도장을 찍어놓은 것처럼 얼굴을 온통 뒤덮고 있긴 하다. 하지만 코도 멀쩡했고, 이빨도 여전하다.
 “이럴 수는 없어.”
 이제는 왕대룡이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구소자가 들었다.
 “없긴 왜 없어? 자, 또 때릴 거야?”
 다가온 그가 어이없어하는 왕대룡의 가슴에 턱을 들이밀며 눈을 반짝였다. 흐리멍덩하고 졸린 듯한 눈이 아니다.
 “으아악―!”
 기어이 이성을 잃어버리고 만 왕대룡이 미친 듯 두 주먹을 휘둘러 구소자의 작은 몸뚱이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미친개를 후려치는 몽둥이라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틀림없다.
 구소자의 몸뚱이에 틀어박히는 왕대룡의 주먹질은 소나기가 퍼붓는 듯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두 발을 번갈아 뻗어 차고 찍었다.
 구소자는 그대로 어육처럼 짓이겨져 버리고 말 게 틀림없다. 모두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틀렸다.
 비록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가 간간이 터져 나오기는 했어도 구소자는 작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왕대룡의 주먹과 발길질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진정한 배짱이 무엇인지를 만천하에 보여주려는 듯했다.
 아니, 진정한 맷집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려는 거다.
 주먹이 퍽퍽, 거리며 내리 꽂힐 때마다 구소자의 몸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고, 발길이 가슴과 배에 박혀들 때마다 몹시 떨렸다.
 하지만 그는 결코 밀려나지 않았다. 제자리를 사수하면서 끝내 버텨내고 있었다.
 그런 구소자에게서 더 이상 맞고만 있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건, 네가 주먹으로 때리면 나는 몸으로 받고, 네가 발로 차면 역시 나는 몸으로 반격한다는 과감한 투지의 발현이기도 했다.
 “저런, 저런, 저러다가 정말 멀쩡한 애 하나 잡겠네!”
 “에그, 누가 좀 말려요!”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던 사람들 중 몇몇 아낙네들이 얼굴을 가리고 애처롭게 소리쳤다.
 그것뿐이다. 저잣거리에서 왕대룡이 하는 일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심한 왕대룡이 마지막 주먹을 날렸다. 온 힘을 실었으므로 주먹에서 윙, 하는 바람 소리가 났다. 그것 한 방으로 이 지겨운 꼬마 놈을 영원히 꺼지게 할 셈이다.
 꽝―!
 이번에도 구소자는 한쪽 볼따구니로 그것을 받았다. 폭력에 저항하는 거룩한 무저항 비폭력 정신이 빛났다.
 “좋구나!”
 이승을 하직하는 단말마 대신 터져 나온 뜻밖의 소리가 왕대룡은 물론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구소자의 숭고한 뜻에 매료될 새도 없이 벌어진 의외의 사태였다.
 “좋다, 좋아!”
 술 취한 듯 비틀거리면서도 악을 써서 소리치는 구소자의 몰골이 끔찍했다.
 시퍼렇게 들떠서 일어선 얼굴이 발효시켜 놓은 밀가루 반죽 같다. 눈은 그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고, 주먹만하게 부푼 입술에서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사람들은 드디어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맞으면 죽거나 미치는 모양이다.
 “이, 이건······ 뭐, 뭐냐?”
 질린 왕대룡이 머뭇거렸다. 그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거친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다.
 구소자가 알아볼 수 없게 된 얼굴을 씰룩여 웃었다.
 피로 범벅이 된 입이 벌어지자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그게 더 믿을 수 없고 끔찍했다.
 “간만에 화끈하게 몸을 푼다. 더 때려. 때리라니까.”
 “미, 미친놈!”
 썩은 풀빵처럼 되어버린 얼굴을 들이미는 구소자를 피해서 왕대룡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조금만 더 하자, 응? 그러면 삭신이 풀릴 것 같은데······.”
 구소자가 불쑥 손을 뻗어 왕대룡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깜짝 놀란 왕대룡이 진저리를 치며 그 손을 털어냈다.
 “놔, 놔라, 이놈아! 징그럽다!”
 하지만 의외로 구소자의 손아귀 힘이 완강해서 떼어놓을 수가 없다.
 “에잇, 미친놈!”
 할 수 없이 겉옷을 벗어버린 왕대룡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그의 떨거지들이 역시 끔찍한 걸 보았다는 듯 질린 얼굴을 하고 우르르 뒤따랐다.
 “쳇, 시시한 놈. 조금만 더 때려달라니까.”
 때와 땀에 절어 뻣뻣해진 왕대룡의 겉옷을 들고 멍하니 서 있던 구소자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통쾌했다. 아, 찌뿌드드하던 몸이 비로소 좀 풀리는구나.”
 마치 마음껏 주먹과 발을 휘둘러 때리고 찬 사람은 자신이라는 듯했다.
 어이없어하는 사람들을 본 척 만 척, 그 뒤로도 몇 마디 더 중얼거린 구소자가 깃발을 뽑아 들고 휘적휘적 저잣거리를 떠났다.
 뒤에서 사람들의 한숨 쉬는 소리가 나뭇가지를 찢는 센 바람 소리처럼 요란하게 들려왔다.
 
 하루가 지났다.
 저잣거리는 여전히 흥청거렸다. 호객하는 장사꾼들의 쉰 목소리에서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와 기쁨이 묻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어제 그곳에 그가 있었다.
 <하사능조막우청(何事能助莫憂請).>
 어떤 일이든 도와줄 테니 걱정 말고 청해라.
 요상한 글귀의 깃발 또한 어제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곁에 앉아 아침부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소년도 아니고 청년도 아닌 묘한 인간의 모습 역시 달라진 게 없다.
 어제 왕대룡에게 그렇게 얻어 터졌으면서도 여전하다는 것이 또 한 번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썩은 풀빵처럼 부풀었던 얼굴도 멀쩡했고, 기색도 좋았다.
 다만 두 눈자위에 시퍼렇게 들어 있는 멍과 아직 부기가 조금 남아 있는 입술이 그가 어제의 그라는 걸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달라진 자가 한 명 있기는 했다.
 왕대룡이다.
 “꼬마야.”
 구소자 앞에 이른 그가 떨떠름한 얼굴이 되어서 불렀다.
 발로 툭툭 건드리기 전에 먼저 불렀으니 어제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구소자는 여전히 꾸벅꾸벅 졸고 있었으므로 어제와 마찬가지로 왕대룡의 존재에 대해서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 자식이?”
 불러도 대답이 없자 슬그머니 화가 났다. 쪼그만 꼬맹이에게서 무시를 당할 만큼 녹록한 왕대룡이 아니다.
 “어이!”
 드디어 발끝으로 옆구리를 건드렸다. 하지만 구소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깊은 잠에 빠진 모양이다.
 “이게 정말?”
 왕대룡의 얼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제의 일에 대한 꺼림칙함도 있고 해서 어지간하면 참아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맞고는 살아도 무시당하고는 못산다.”
 평소의 신념을 되새긴 왕대룡이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했다.
 “눈 떠, 짜식아!”
 발끝으로 턱을 건드렸다. 그래도 걷어차지는 않았으니 왕대룡의 인내심도 하루 사이에 놀랍게 깊어진 셈이다.
 비로소 구소자의 눈꺼풀이 열렸다. 생기라고는 담겨 있지 않은 흐리멍덩한 눈이 멀뚱하게 바라보는 게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눈깔을 확 파버린다!”
 왕대룡이 정말 그러겠다는 듯 손가락 두 개를 세워서 위협적으로 갖다 댔다. 하지만 구소자에게서는 터럭만큼의 반응도 없다.
 “왜 또 왔는데?”
 그가 귀찮다는 듯 겨우 입술만 달싹여서 말했다.
 “허―!”
 기가 막히는 일이다. 왕대룡이 눈을 끔벅거렸다. 믿을 수가 없다.
 ‘대체 누가 나를 이렇게 똥 친 막대기처럼 여길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이곳에서는 내가 왕이고 법이다. 제미랄!’
 그런 생각이 왕대룡의 자존심에 손상을 입혔다.
 “왔으면 볼일 봐. 없으면 그만 가보고.”
 여전히 막말이다.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이다.
 하지만 왕대룡은 그것에 대해서 뭐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도 그 방면에 있어서는 구소자보다 못하지 않으니까.
 끙, 하고 눌러 참은 왕대룡이 한차례 한숨을 팍, 쉬고 나서 넋두리하듯 말했다.
 “도대체 어디서 온 놈이냐?”
 “올 만한 데서.”
 “끙, 그러면 언제까지 여기 눌러앉아 있을 작정이냐?”
 “그거야 있어봐야 알지.”
 “······.”
 말이 필요없다. 이건 대화가 아니다.
 왕대룡의 얼굴이 이제는 푸르죽죽해졌다. 더운 콧김을 씩씩 내뿜던 그가 이를 부드득 갈고는 불쑥 손을 내밀었다.
 불안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왕대룡이 저렇게 인내심 많은 인간인 줄 모르고 있었던 거다.
 어지간히 수양을 쌓은 고승대덕보다 오히려 한두 길쯤은 높은 수양을 보여주는 왕대룡에 대해서 존경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구소자에게 그런 것쯤은 개 풀 뜯어먹는 것보다 나을 게 없는 일이다.
 뭐 하는 짓이냐는 얼굴로 멍하니 왕대룡을 바라보고, 코앞에 내밀어진 지저분한 손바닥을 볼 뿐이다.
 “돈을 내란 말이다.”
 “돈?”
 “자릿세.”
 구소자가 제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맨 땅이고, 어디 가나 있는 햇빛이다.
 “무슨 자릿세?”
 “허―!”
 하늘을 보고 난 왕대룡이 한숨을 팍 쉬고 나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뒤쪽에서 이제나저제나 하며 지켜보고 있던 저소아가 쪼르르 다가와 구소자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꼬마야, 이곳은 왕 대형의 보호 관찰 아래 평화와 자유로운 상거래가 유지되는 곳이란 말이다. 호패를 찼으면 나라님께 세금을 내야지? 마찬가지다. 이 거리에서 영업을 하려면 왕 대형에게 보호세를 내야 하는 거야. 그래야 다른 상인들과 네 처지가 공평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고 있는데 너만 안 낸다면 당장 지현 나리에게 탄원서가 들어갈 거야. 그러니 특혜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안 그래? 나라를 다스리는 데 공평무사함이 있어야 하듯이, 저잣거리에서도 그래야 하는 거다. 알아들었지?”
 조금이라도 먹물을 먹어본 자답게 저소아의 설명은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친절했다.
 그만하면 세 살 먹은 아이라도 충분히 납득했을 것이다.
 저소아가 왕대룡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나의 언변이 어떠냐는 과시였으나 누구도 감탄하는 자가 없다.
 “얼만데?”
 한동안 머리를 갸웃거리던 구소자가 뚱한 얼굴로 물었다. 역시 먹혀든 거라고 여긴 저소아가 우쭐거리며 말했다.
 “너는 특별히 하루에 동전 세 문으로 해주마.”
 특별한 건 쥐뿔도 없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만큼은 내고 있다.
 구소자에게서 반응이 없자 저소아가 다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이것도 거래인만큼 고객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친절과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기특한 자세다.
 “그게 과하면 열흘에 한 번씩 삼십 문을 내거나,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결제를 해도 된다. 구십 문이 되겠지? 계산은 틀림없어. 선불이야.”
 구십 문은 세 문보다 훨씬 큰돈이다. 구소자도 그쯤은 알고 있다. 그러니 세 문을 내는 게 어느 모로 보나 비교할 수 없는 이익이라는 계산이 섰다.
 “좋아, 세 문을 내지.”
 “잘 생각했다. 척 보았을 때 네가 보통 꼬마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 아주 현명한 선택을 했어. 자, 그럼.”
 저소아가 손을 내밀고 눈으로 재촉했다. 그를 보던 구소자가 어색한 웃음을 띤 채 머리를 긁적거렸다.
 문제가 또 있었던 것이다.
 “저기, 그런데 말이야······.”
 머뭇거리며 겨우 내뱉은 말이 왕대룡은 물론 친절한 웃음을 짓고 있던 저소아마저 기분을 싹 잡치게 했다.
 “돈이 없거든? 그러니 달아두면 안 될까? 벌면 그때 줄게.”
 “언제?”
 내민 손이 무색하게 된 저소아가 친절은 내버리고 매섭게 물었다.
 “벌면.”
 “그러니까 언제 벌거냐고!”
 “그걸 알면 내가 이렇게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겠어? 방구석에서 뒹굴거리다가 때맞춰서 나오지.”
 “이런, 씨앙!”
 자신의 친절이 병아리 오줌만큼도 먹히지 않았다는 것이 기어이 저소아의 분통을 터뜨리게 하고 말았다.
 퍽!
 벌떡 일어나기 무섭게 날린 발길질이 구소자의 턱을 올려 찼다.
 벌렁, 뒤로 넘어졌던 구소자가 오뚝이처럼 발딱 튕겨져 일어났다.
 “요 쥐방울만한 놈이 감히 나를 놀렸겠다?”
 그런 구소자에게 다시 저소아의 두 주먹이 번갈아 날아갔다.
 악가연환산수(岳家連環散手)의 빼어난 수법을 시범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저잣거리의 망나니 패거리들 중 한 놈에 불과한 저소아가 산동악가의 절기를 익히고 있을 리가 없다.
 그만큼 재빠르고 녹록치 않은 주먹질이었다는 말이다.
 마구잡이로 익힌 솜씨치고는 뛰어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쨌든, 저소아의 두 주먹이 바람 소리를 내며 번갈아 뻗어 나왔고, 팔꿈치와 무릎이 시차없이 작렬했다.
 작정하고 치기 시작하면 자신도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는 주먹질이고 발길질이다.
 구소자의 얼굴에서부터 정강이에 이르기까지 스물다섯 번의 가격이 고루 휩쓸고 지나갔다. 왕대룡의 그것보다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정교함과 재빠름에 있어서는 한 수 위로 보이는 솜씨였다.
 퍼퍼퍼퍽―!
 마른땅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가 따로 없다.
 “저, 저, 저놈, 잔인한 놈 같으니. 누가 좀 말려라! 저러다가 애 잡겠다!”
 제 생각은 까맣게 잊은 왕대룡이 발을 구르며 소리쳤을 만큼 구소자를 때려대는 저소아의 손과 발에는 한 점의 인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오직 미친 듯한 권각(拳脚)이 있을 뿐이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휘청거리며 그 많은 주먹과 발길질을 고스란히 받아낸 구소자가 털썩 주저앉았다. 물러서는 저소아의 숨결이 거칠어져 있었다.
 “겁도 없이 나를 놀려? 어디 죽어봐라.”
 헐떡거리면서도 번쩍 발을 들어 올려 쓰러진 구소자의 등짝을 무지막지하게 내리찍음으로써 마지막 마무리를 멋지게 했다.
 “헉!”
 구소자가 몸을 꿈틀거리며 처음으로 새된 신음을 흘렸다.
 “죽었나 보다. 음, 무서운 놈······.”
 마른땅에 코를 처박은 채 꼼짝하지 않는 그를 보던 왕대룡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중얼거렸다. 마지막 말은 저소아를 두고 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죽을 구소자라면 귀왕채의 산적들 속에 섞여 살던 지난 십 몇 년 동안 골백번도 더 죽었을 것이다.
 이까짓 일쯤은 거기서 하루 일과로 늘 겪었던 일이다.
 아침에 한바탕 타작을 당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하루 해가 넘어가지 않았고, 저녁에 또 한바탕 타작을 당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다.
 그 세월이 장장 십 몇 년이다.
 어느덧 구소자는 맞는 일을 놀이로 여길 만큼 커다란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나름대로 요령도 생기고 눈치도 생겨서, 언제부터인가는 주먹과 발길질을 가려볼 줄 알았다.
 저걸 맞으면 죽겠다 싶으면 슬쩍 비켜서 충격을 최소화할 줄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 건 대충 적당히 맞아주는 게 편하다는 걸 터득하기도 했다.
 맞는 일에 관해서는 구소자보다 더 약아빠진 인간이 또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 재주만 가지고 고하를 따진다면 강호에서 구소자를 능가할 고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구소자가 지니고 태어난 특출한 능력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다. 비록 무식한 산적 놈들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아니, 딱 한 사람 있기는 했다. 봉온벽(鳳溫壁) 아래에 있는 동굴 속에서 귀신처럼 살고 있던 왕가란 늙은이다.
 채주 왕창련(王彰連)의 조부라고 했다. 성깔이 지랄 같고 먹을 걸 탐하는 추잡스런 늙은이다.
 하지만 구소자에게 호감을 보여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소자는 무림고수를 고용해서 산채에 있는 놈들을 죄다 죽여도 왕 늙은이와 바보 장대두만은 살려줘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 얘기는 차차 풀어놓기로 하자.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그 말을 한 사람은 구소자 같이 특이한 인간도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게 틀림없다.
 끙, 하는 신음과 함께 구소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제의 악몽을 떠올린 왕대룡이 지레 놀라서 흠칫거리며 물러섰다.
 “어라? 이게 아직도 꿈틀거리네?”
 그러나 저소아의 분은 다 풀리지 않았다. 한번 작심하고 패기 시작하자 어느덧 스스로 신명이 돌아 이성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광기였다.
 퍽, 퍽, 퍽―!
 구소자의 몸에 다시 송곳 같은 주먹이 틀어박혔다.
 보릿자루를 그렇게 두드리면 터지기라도 할 테지만, 구소자의 몸은 오히려 경쾌한 격타음을 쏟아내며 스스로 춤을 추듯 흔들렸다.
 어제와 같은 몰골이다.
 부풀려 놓은 밀가루 반죽처럼 된 얼굴이고, 터진 입술이고 피다.
 잘 마른 북어를 다진 듯이 온몸이 흐물흐물해져서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구소자는 쓰러지지 않았다. 열 대를 맞는 중에 드디어 몸을 바로 세웠고, 다시 스무 대를 맞고 나서는 오히려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밀가루 반죽 속에 박힌 것 같은 두 개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피를 문 입이 히죽히죽 웃는 걸 보았는가? 미쳐 버리고 말 것이다.
 저소아는 그래서 또 한 번 미쳐 버렸다.
 처음은 화가 나서 미쳤고, 지금은 믿을 수 없어서 미쳤으니 가여운 건 저소아 그였다.
 “으아아악―!”
 부르짖은 그가 제 머리카락을 잡아 뽑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그것을 본 떨거지들도 무어라고 아우성을 쳐대며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왕대룡 혼자 남았다. 그의 턱이, 무릎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술에 취한 듯, 매에 취해서 비틀거리면서도 한 걸음씩 다가오는 구소자가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아, 좋았어. 어제보다 더 화끈해. 산다는 게 이런 거야, 제기랄.”
 다섯 걸음을 떼어놓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일곱 걸음째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씩씩한 기운이 살아났다.
 “이, 이게······ 뭐, 뭐냐······?”
 왕대룡이 제 눈을 비벼대며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가슴 앞에 다가와 히죽히죽 웃고 있는 커다란 살덩어리를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결코 그건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그럼?
 왕대룡은 거기에 맞는 말을 찾아내기 위해서 끙끙댔다. 그러다가 발목에 뱀이 감긴 듯 화들짝 놀랐다. 구소자의 손이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조금 더 때려줄래? 그러면 뼈와 근육들이 확 풀려서 녹신녹신해질 것 같은데······.”
 “······!”
 “주먹 힘은 네가 훨씬 좋았어. 난 그런 주먹이 좋더라. 자, 조금만 더 때려 달라니까?”
 “아아악―!”
 그 대목에 이르러서 왕대룡이 조금 전 저소아가 그랬던 것처럼 굉장한 비명을 터뜨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그의 꾀죄죄한 겉옷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구소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에, 쩨쩨한 놈들. 조금만 더 해주면 뭐 어때서······.”
 구소자의 그런 중얼거림이 왕대룡의 귀에 들릴 리가 없다. 둘러서서 구경하던 사람들만 혀를 빼물고 쓰러지게 했을 뿐이다.
 
 다음날이 되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살아가는 게 늘 그렇다. 어제 있던 것이 오늘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다. 가난뱅이는 어제처럼 오늘도 가난했고, 장사꾼은 어제처럼 오늘도 장사꾼일 뿐이다.
 그리고 구소자도 여전히 구소자다. 왕대룡은······.
 이 저잣거리에서 유일하게 하루가 지나면 변하는 인간이 되었다.
 “이봐.”
 왕대룡의 얼굴이 오늘 아침에는 자못 심각해져 있었다.
 구소자는 여전히 초라한 깃발 곁에 쪼그리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는 마치 졸기 위해서 이곳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 같았다.
 “이보라니까?”
 왕대룡이 다시 불렀다. 결코 구소자에게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그의 떨거지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저소아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어제의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구소자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버릇처럼 발을 들어 올렸던 왕대룡이 깜짝 놀라 얼른 그것을 내려놓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어떻게든 저놈의 몸을 건드려야 졸음에서 깨어나게 할 텐데 뾰족한 수가 없다.
 두리번거리던 왕대룡이 버려진 작대기 하나를 주워 들었다.
 “이봐, 눈 좀 떠보라니까?”
 쿡쿡 찔러오는 무언가가 몸을 간지럽게 한다.
 구소자가 드디어 흐리멍덩한 눈을 뜨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크!”
 제풀에 놀란 왕대룡이 찔러대던 작대기를 놓고 후닥닥 물러섰다.
 “뭐야? 내가 뱀이냐?”
 구소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시퍼렇게 멍든 눈이 찌푸려지면 얼굴 근육도 덩달아 당겨지기 마련인가 보다.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이 봐주기 괴로울 정도로 일그러졌다.
 “진정해라, 진정해.”
 지레 겁을 먹은 왕대룡이 두 손을 마구 내 휘두르며 뒷걸음질쳤다. 여차하면 다시 겉옷을 벗어 던지고 달아날 작정인 게다.
 쩝, 하고 입맛을 다신 구소자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산에 가면 산적의 법이 있고 바다에 나가면 해적의 법이 있는 것처럼 저잣거리에도 왕대룡 같은 자의 법이 있다.
 구소자는 자신이 살아온 환경이 그랬던 만큼 그런 일에 대해서 너그러운 사람이다. 그러니 따라줄 용의가 충분히 있다.
 문제는 지금 가진 돈이 없다는 거다.
 “벌어서 준다고 했잖아.”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나도 이 세계는 좀 알아. 여기가 네 구역이라면 자릿세를 내야겠지. 그러니까 기다려. 떼어먹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의젓한 말이고 태도다. 왕대룡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렇군. 저놈도 이 바닥에서 대갈빡 꽤나 굴려먹은 놈이었어.’
 왕대룡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깡다구와 독기가 생겨날 수 없는 법이다.
 왕대룡은 구소자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뒷골목에서 닳고 닳은 놈이라고 믿었다. 역시 뒷골목의 험한 밥을 먹고 사는 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자부심마저 든다. 그러자 구소자가 더 이상 만만한 꼬맹이로 보이지 않았다.
 구소자는 귀왕채에 있으면서 산적 놈들이 오가는 행인들로부터 통행세를 뜯는 걸 수도 없이 보아왔다. 그것도 자릿세나 같은 거라고 이해했다.
 그놈들은 수틀리면 사람 죽이는 걸 장난치듯 했다.
 가진 거 다 빼앗고 목숨마저 빼앗던 귀왕채의 산적 놈들에 비하면 여기 왕대룡이라는 얼간이는 그래도 순진하고 착한 구석이 있다고 여겼다.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민간인과 구소자나 왕대룡처럼 특수한 상황에서 살아왔거나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보고 느끼는 건 천양지차로 다르기 마련이다.
 “알았다, 알았어.”
 왕대룡이 머리를 끄덕였다. 웬일로 입가에 친절한 웃음마저 띠고 있었다.
 “뭐,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친구라니 야박하게 굴지는 않겠다.”
 그러니 자릿세를 받지 않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구소자를 기쁘게 했다.
 “보름의 말미를 주지. 그러면 충분하겠지?”
 ‘빌어먹을 놈. 지독한 놈. 쩨쩨한 쫌생이 같으니.’
 욕이 나왔지만 눌러 참았다.
 연 이틀을 신나게 두드려 맞았으니 기력은 그런대로 배부를 만큼 채워졌다. 그러니 오늘 하루쯤은 몸과 마음을 나른하게 풀어놓고 쉬는 것도 좋다.
 하는 걸 보니 왕대룡도 오늘은 쉬고 싶은 모양이었다.
 “뭐, 이자 같은 건 따로 받지 않겠다. 그만하면 동도의 친구를 대하는 예의를 다한 거니 불만은 없겠지? 커흠.”
 왕대룡이 크게 선심을 쓴다는 듯 거들먹거렸다.
 구소자가 감탄했다는 눈길로 그런 왕대룡을 바라보았다.
 미운 건 미운 거고, 구린 동전 몇 닢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저 자세만은 본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왕 돈을 벌기로 작정한 바에야 지독해지지 않으면 어찌 부자가 되겠는가.
 
 
 
 
 
 제2장 귀면녀(鬼面女)를 만나다
 
 
 귀면녀(鬼面女)를 만나다
 
 
 
 
 
 
 
 그날 오후부터는 제법 일거리들이 들어왔다.
 구소자는 역시 이름이 알려진다는 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왕대룡마저 쩔쩔매게 하는 독종 꼬마라더라.
 
 라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구경을 하러 왔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제 손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부탁해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만, 큰돈이 되는 일이 없다는 게 불만스럽기는 했다.
 한 방에 만금을 얻을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구소자는 꿈꾸고 있었다.
 인생을 어찌 길고 지루하게 살 것인가. 한 방으로 모든 걸 뒤집어놓고 말 테다. 그리하여 화끈하고 화려한 인생을 늘어지게, 오래오래 사는 거다.
 이런 구소자의 꿈은 문자 그대로 꿈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저잣거리에 나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오후에 첫 일을 나갔다.
 넘치도록 차 있는 측간의 똥통을 치워주는 일이다.
 두 집의 그것을 깨끗이 치워주고 두 냥을 받았다.
 정말 더럽고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제대로 된 첫 일거리라는 데에 위안을 얻으며 날이 저물 때까지 열심히 묵은 똥을 퍼 날랐다.
 하긴, 산채에 있을 때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어쩌면 구소자보다 더 익숙하게 똥을 퍼낼 사람은 흔치 않을지도 모른다.
 어찌나 깨끗이 치웠던지, 일이 끝났을 때는 측간이 아니라 신방 같아졌을 정도다. 그러니 소문이 나지 않을 리가 없다.
 소문은 또 바람처럼 빠르게 저잣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측간 하나는 정말 똑 소리나게 치우더군. 저 건너 백 서방보다 열 배는 낫더라. 값도 싸고.
 
 그러자 다음날부터는 여기저기에서 측간을 치워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돈을 버는 일이다. 하지만 썩 내키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구소자는 다시 한 가지의 깨달음을 얻었다.
 “네미랄, 이름이 알려지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알려지느냐가 더 중요해.”
 바로 그거다.
 한번 ‘측간을 똑 소리나게 치우는 꼬마’라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은 구소자가 제일 잘하는 일이 그 일이라고 단정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다른 주문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구소자에게는 그 자체가 기분 더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돈을 벌기로 작심한 인생인데 어디 깨끗하고 고상한 일거리만을 가려서 할 수 있겠는가.
 더럽게 벌어서 정승처럼 쓰면 된다.
 “음, 보기보다 힘이 좋은 친구로군.”
 다음날, 그가 제 몸통만한 똥통 두 개를 목도 끝에 매달고 흔들흔들, 박자를 타며 걷는 걸 본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장작을 패주게.”
 구소자가 일을 마치기 기다렸던 그자는 코를 쥐고 외면한 채 그렇게 말했다.
 비록 그자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꺼려했지만 구소자는 기뻤다. 드디어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으니 왜 안 기쁘겠는가.
 밀린 주문을 팽개치고 사내를 따라가 종일 장작을 팼다.
 그 일 또한 산채에 있을 때 물리도록 해온 일이다.
 여느 장정 네댓 명이 하루 걸려서 할 일을 구소자는 반나절 만에 해치웠다.
 쪼개진 장작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일정한 크기에 일정한 질량이다. 저울에 달아볼 것도 없다.
 게다가 그렇게 많은 장작을 쪼갰으면서도 도끼날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사내의 입이 벌어졌다. 두 냥을 받았다. 측간 치우는 것보다 배를 더 받은 것이다.
 구소자는 거기서 또 한 가지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모름지기 큰 뜻을 품은 사내라면 일을 가려서 해야 하는 법이다.”
 대단한 일이다. 그렇게 제 스스로 힘든 노동을 통해서 삶의 궁극적인 진리를 터득해 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시 이틀간은 오직 장작만 패주러 다녔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일도 지겨워졌을 때 새로운 일거리가 제 발로 걸어서 찾아왔다.
 
 “네가 구소자냐?”
 자리를 펴고, 아직 깃발을 세우지도 않았는데 벌써 고객이 찾아왔다.
 “어서 옵······!”
 쇼, 자를 발음하지 못했다. 턱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찌 턱뿐이랴.
 제일 먼저 눈이 찢어질 듯 제 맘대로 부릅떠졌고, 볼에 잔경련이 스쳐 갔으며, 어깨와 허리가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무릎마저 후들거리려는 걸 가까스로 눌러 참았다.
 그만큼 큰 충격이 구소자자의 가슴을 후려 팼던 것이다.
 “측간 잘 치운다는 구소자냐니까?”
 소녀가 짜증스럽다는 듯 빽, 소리쳤다.
 그 모습이 더 넋을 빼놓는다. 그렇다. 바로 그것 때문이다.
 구소자는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태어난 이래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소녀처럼 아름답고 요염하고 당돌하고 색기(色氣)가 철철 흘러넘쳐서 사람의 얼을 빼놓는 그런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눈을 찡그리는 것도, 붉고 도톰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 것도, 매섭게 아래위로 흘겨보는 것은 물론, 쳇! 하고 비웃음을 담은 콧방귀를 뀌는 것까지가 그렇게 야리야리할 수가 없었다.
 ‘선녀다! 선녀 중에서도 두목 선녀다!’
 머리 속을 강타하고 지나가는 그 생각이 구소자로 하여금 기어이 다리마저 후들거리게 만들었다.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던져진 듯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런데 어찌 감히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볼 수나 있겠는가.
 구소자는 생전 처음으로 누구 앞에서 이렇게 쩔쩔매 본다.
 산채에 있을 때 대두령 앞에서 떨었던 걸 빼고는 이렇게 머리를 조아려본 적이 없다.
 구소자는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붉힌 채 소녀의 당혜(唐鞋) 코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벙어리였나 봐?”
 뒤통수에 소녀의 중얼거림이 내려앉았다. 실망했다는 어투가 역력했다.
 이런 오해를 멋대로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구소자가 머리를 번쩍 들고 소리쳤다.
 “아니올시다!”
 터무니없이 크게 터져 나온 목소리다.
 소녀가 깜짝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자 더욱더 아름답고 요염해졌다.
 짜증 내는 모습만 아름다운 줄 알았더니 놀란 모습은 더 죽인다.
 가히 뇌쇄적(惱殺的)이다.
 구소자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소, 소생이······ 구소자······ 라오.”
 그 당당하던 구소자가 비 맞은 쥐새끼처럼 초라해져 버렸다.
 흥! 하고 다시 비웃음을 날린 소녀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럼 날 따라와. 시킬 일이 있으시다니까.”
 ‘있으시다니까?’
 구소자가 의아해서 얼굴을 들었다. 눈앞의 이 두목 선녀 같은 소녀가 누구의 심부름을 왔다는 것쯤은 그의 머리로도 알아낼 수 있다.
 “어떤 분이?”
 어쩌면 옥황상제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쯤 되는 신분이라야 두목 선녀를 심부름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쳇, 그게 궁금하면 가보면 될 거 아냐!”
 소녀가 다시 빽, 소리쳤다.
 맞는 일에는 이골이 났고 자신도 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이 요상한 여자라는 존재 앞에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경험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좋아. 지금부터 그걸 연구해서 터득한다.’
 구소자는 잠시 자신의 모든 역량을 여자, 그것도 눈앞의 두목 선녀처럼 예쁘고 앙칼지고 소리치기 좋아하는 소녀에 대해서 알아내는 일에 쏟기로 했다.
 그가 마음먹어서 알아내지 못한 일은 없다.
 도에 대해서 알아내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벌써 신선이 되어 있을 것이고, 불법을 깨우치기로 작정했다면 지금쯤 부처와 마주 앉아 마작이라도 한판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구소자는 지금 소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르고 있었다.
 눈앞에서 하늘거리는 두목 선녀의 빵빵한 엉덩이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호기심 때문이다.
 산채에서도, 저잣거리에 내려온 뒤에도 여자는 많이 보았다. 하지만 구소자는 맹세코 이런 소녀를 처음 본다. 그러니 엉덩이에서 눈길이 떼어지지 않는 게 당연했다.
 왜 엉덩이냐고 묻는다면······.
 까짓, 이제부터 알아볼 연구 대상이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해두자.
 뭐, 취향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의 눈길은 오직 그녀의 엉덩이 한 군데에만 집중되어 있었으므로 그녀가 등에 고색창연한 검을 메고 있다는 것도,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 역시 당연한 일이다.
 저잣거리를 빠져나온 지 한참이 지났다. 그런데도 소녀는 어디론가 하염없이 가고 있었다.
 ‘이대로 세상 끝까지 간다고 해도 좋아.’
 오직 그녀의 엉덩이에 못 박혀 버린 눈길이 점점 게슴츠레해져 갔다.
 아무리 봐도 싫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왜 남자의 그것과 여자의 그것에서 받는 느낌이 이렇게 다른 건지, 그런 의문이 구소자의 얼굴을 점점 더 심각해지게 만들었다.
 그렇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함정에 갑자기 풍덩, 뛰어들어 버린 것이다.
 인간의 의지로는 다스릴 수 없는 일이다.
 구소자는 제 스스로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사람이 제 힘과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적고 제한적인가.
 그 커다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그는 앞서 걷고 있는 소녀의 엉덩이 때문에 흘려 버리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을마저 벗어나 이제는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봄날의 햇빛은 푸른 나뭇잎 사이로 따사롭게 스며들었고, 짝을 찾는 새들의 지저귐이 귓전을 간질였다.
 호랑나비 한 쌍이 이리저리 날며 서로를 희롱하는 것을 보던 구소자의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예전에는 없던 일이다.
 ‘내가 큰 병이 난 거 아닌가?’
 그런 의심이 들었다.
 여태까지 몸살은커녕 감기 한 번 걸려보지 않은 몸이다.
 그러던 것이 이렇게 얼굴이 화끈거리고 사지에 맥이 풀리면서 가슴까지 제멋대로 벌러덩거리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자꽃 향기 같기도 한 야릇하고 달콤한 향기가 바람결에 실려왔다.
 두리번거려 보았다. 꽃이라도 꺾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하지만 치자꽃이 있을 리 없다. 그것은 초여름에나 피지 않던가.
 코를 벌름거리고 킁킁거리던 구소자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그것이 소녀의 몸에서 나는 묘한 향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서 풍기는 악취와 저잣거리의 잡다한 냄새들 때문에 맡지 못했는데, 이처럼 호젓한 산속을 둘이서만 걷고 있자 향기가 저절로 풍겨난 것이다.
 ‘아까는 왜 못 맡았지?’
 제 머리통을 꽝꽝 쥐어박는 구소자 앞에서 소녀는 여전히 검은 머리카락을 나풀거리고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며 걷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몸에 배어 있는 악취가 부끄러워졌다.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다니······.
 소녀의 몸에서는 치자꽃 향기가 나고 있었다.
 선녀들에게서는 다 그런 냄새가 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괜히 선녀가 아닌 거다.
 “다 왔다.”
 소녀가 손가락을 뻗어 한곳을 가리켰다. 희고 가는 손가락이다. 옥을 깎아서 만들어놓은 것 같다.
 그녀의 살빛이 이와 같다는 걸 왜 알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다시 밀려들었다.
 하지만 구소자에게는 그럴 새가 없었다. 그의 눈은 내내 그녀의 엉덩이에만 달라붙어 있었으니 말이다.
 소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낡은 산신당 하나가 고즈넉이 서 있었다.
 울창한 송림에 둘러싸여 있고, 뜰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 낡은 벽과 깨진 기왓장 사이로 웃자라 있는 잡풀들.
 한마디로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이 음산하고 을씨년스러운 곳이다.
 “데려왔어요.”
 그 앞에 이른 소녀가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마치 노란 새 한 마리가 지저귀는 것 같았다.
 구소자가 곁에 서자 소녀가 잔뜩 낯을 찡그리고 비켜섰다. 작고 야들야들해 보이는 옥빛 손을 펴 얼굴 앞에서 흔들었다. 냄새 때문이다.
 ‘제기랄.’
 구소자는 비로소 소녀가 왜 그처럼 빠르게 앞서 걷기만 했던 건지를 깨달았다.
 자신의 몸에 밴 인분 냄새와 땀 냄새, 나무 진 냄새와 피 냄새가 범벅이 된 그 요상한 악취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는 한사코 구소자를 멀찍이 떼어놓으려고 부지런히 걷기만 했던 것이다.
 그의 엉큼한 시선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못할 만큼 절박했으리라.
 ‘제기랄, 이게 무슨 꼴이야. 멍청한 놈!’
 이제야 그런 걸 생각해 낸 자신의 자상하지 못함을 욕하며 재빨리 겉옷을 벗어 멀찌감치 내던져 버렸다. 조금은 나을 것이다.
 “들어오너라.”
 음침한 신당 안에서 낮고 힘없는 음성이 들려왔다. 여자의 것이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소저를 보게 될 것인가? 하는 기대감이 구소자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눈앞의 두목 선녀를 부리는 여자라면 월궁(月宮)에나 있다는 항아(姮娥)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구소자의 기대는 소녀를 따라서 신당 안으로 들어선 순간에 산산이 깨져 버렸다.
 어두웠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쥐똥 지린내다.
 항아의 취향도 참 이상하다고 여기며 두리번거리는 눈에 그녀가 보였다.
 빛이 바래고 칠도 벗겨져서 저게 뭔지조차 잘 알아볼 수 없게 된 산신도 앞에 그녀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가슴 앞까지 탐스럽게 늘어져 있었다. 눈처럼 흰옷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그녀의 서늘한 눈동자가 어둠을 뚫고 다가왔다.
 얼굴은?
 항아님의 얼굴을 찾던 구소자가 훅, 하고 급한 숨을 들이쉬었다.
 귀신의 얼굴이다.
 아니, 정말 그렇다는 게 아니고, 귀면(鬼面) 탈을 쓰고 있다는 거다.
 무서웠다. 그래서 얼른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음침하고 어두운 신당 안에서 귀면탈을 쓰고 있는 백의의 여자. 그것도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있고,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서늘한 눈빛이다.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지 않은 것만으로도 구소자의 담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선녀가 아니라 여우귀신들이었구나!’
 그런 깨달음이 뒤늦게 뒤통수를 후려쳤다.
 소녀의 요염함에 홀려서 잘못 걸려든 것이다.
 이제는 피를 빨리고 간을 공양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늘 여자를 조심하라고 이르던 왕 노인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산채에 있을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동안 여자다운 여자를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홀리기 위해 찾아온 소녀가 너무 예뻐서였기도 하다.
 구소자가 눈을 깐 채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동안 귀면탈의 차가운 눈빛이 그의 몸을 구석구석 샅샅이 훑었다.
 “뭐 하고 있어?”
 갑자기 등 뒤에서 소녀의 빽,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와 가뜩이나 혼비백산해 있는 구소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두 오금이 따끔해지더니 다리에 맥이 풀려서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역시 귀신에 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감히 언니 앞에서 뻣뻣하게 서 있다니, 흥! 목숨을 서너 개쯤은 여벌로 가지고 다니는 모양이지?”
 소녀의 쌀쌀맞은 비웃음이 귀를 찔렀다.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마라. 가뜩이나 놀라고 있는데······.”
 귀면탈의 여인이 낮게 말했다. 다정했지만 어딘지 불안하고 힘이 없는 음성이었다.
 “소협이 무슨 일이든 도와준다는 우성현의 그 구 소협인가?”
 소협이 뭐 하는 물건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성현에서 그런 깃발을 세워 들고 있는 자는 자기 혼자뿐이다.
 “그, 그렇습니다.”
 구소자가 정신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귀면탈의 여인이 침묵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구소자는 고양이 앞에 잡혀온 쥐처럼 꼼짝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자칫 잘못 말해서 그녀의 비위를 거슬렀다가는 당장 잡아먹히고 말 거라는 두려움이 그의 턱을 덜덜 떨게 했다.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구소자다. 산중에서 호랑이를 만나도 고양이를 본 듯 콧방귀만 날렸다. 우악스럽고 거친 산적 놈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생활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간에 밴 배짱이다.
 사람이 죽는 것도 수없이 보았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난 지도 오래다.
 누구나 다 저렇게 쉽게 죽는 거고, 나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체념의 철학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하지만 꼭 한 가지.
 귀신에 대한 두려움만은 떨쳐 내지 못했다.
 죽어서 원혼이 되어 어두운 세계를 떠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가져온 구소자의 소망 중 하나가 죽더라도 양지바른 곳에 잘 묻히는 것이고, 사잣밥이며 지전도 충분히 확보해서 무서운 원귀는 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리미리 묏자리도 구해놓을 수 있고, 번듯한 절에 그럴듯한 중 하나 매수해서 나 죽은 뒤에 불공을 드려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해마다 제사를 지내줄 사람도 살 수 있다.
 그리고 보니 원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거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원귀들은 죄다 돈 없이 죽은 가난한 귀신들인지도 모른다.
 거기까지가 구소자의 생각이 닿을 수 있는 단순 유치함의 끝이다.
 하지만 왜 안 그렇겠는가.
 따지고 보면 구소자의 생각에도 맞는 구석이 있다.
 돈이 없으니 온갖 구박과 설움을 당했을 것이고 늘 배고팠으리라. 그러니 한이 맺히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죽은 자가 원귀가 되지 않는다면, 잘 먹고 떵떵거리며 원없이 잘살다가 죽은 자가 원귀가 되겠는가?
 구소자는 그 꼴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결심을 새롭게 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 죽는다면?
 더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원귀가 되고 만다. 아직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귀신에게 뜯어 먹혀 죽을 수는 없었다.
 그것이 구소자를 더욱 초조하고 두렵게 했다.
 “휴― 내가 과연 이 일을 해야 하는 건지······.”
 귀면탈의 여인이 낮게 한숨을 쉬고 말했는데, 어딘지 처량함이 깃들어 있었다.
 “언니,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돼요.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우리는 여자란다.”
 “흥,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얼치기 사내놈 백 명을 갖다 놔도 언니 하나만 못할걸 뭐. 그러니 어쨌든 독해져야 해요.”
 소녀가 말한 얼치기 사내놈 백 명이란 구소자 같은 부류의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걸 구소자도 눈치 챘다. 맷집 못지않게 뛰어난 게, 아니, 어쩌면 더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는 게 바로 그의 눈치다.
 ‘제기랄, 이 계집은 생긴 것만 선녀 같았지 주둥아리는 저두녀 뺨치게 고약하구나.’
 구소자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돼지머리통을 한 여자. 저두녀(猪頭女)란 산채에 있는 한 여인네의 별명이다. 물론 구소자가 지어 붙였다.
 소두령인 장소팔의 여편네였는데, 장소팔보다 열 배는 더 고약하게 구소자를 괴롭히고 닦달했다.
 구소자가 왕 노인의 심부름을 핑계대고 냅다 산채에서 도망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언니가 말하기 힘들다면 내가 대신 말하죠.”
 쏘아붙이듯 한 소녀가 구소자의 등짝을 걷어차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너는 우리 언니를 위해서 한 가지 일을 해줘야겠다!”
 “도, 돈은 주는 거야?”
 그 와중에서도 후딱 그 말부터 나왔다.
 매섭게 눈을 흘긴 소녀가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구소자 앞에 던졌다. 쩔그렁, 소리가 나는 걸로 보아 돈이다. 그것도 꽤 많다. 묵직해 보였으니 말이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구소자가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열어보니 열 냥짜리 은괴가 무려 다섯 덩이나 들어 있는 것 아닌가.
 구소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많은 돈을 구경하는 건 처음이다.
 탐욕이 아귀처럼 일었다. 이제는 귀신이라도 좋다. 돈은 다 같은 돈인데 귀신의 돈이면 어떻고 천자의 돈이면 어떨 것인가.
 “그, 그러니까······ 이 돈을······ 나한테 주겠단 말이야?”
 “시키는 일을 해주면 그렇지.”
 “좋아, 그렇게 하지.”
 무슨 일인지도 모른다. 몰라도 상관없다. 이만한 돈을 가질 수 있는데 뭔들 못하겠는가.
 “매령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귀면탈의 여인이 여전히 힘없고 처량한 음성으로 그렇게 타일렀다. 하지만 소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구소자의 귀에는 매령(梅玲)이라는 이름만 우렛소리처럼 들렸을 뿐 그 뒤로 귀면녀가 몇 마디 덧붙인 소리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쌀쌀맞아서 더욱 가슴에 파고드는 매혹적인 소녀, 매령이 다시 빽,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알아들었으면 어서 일어나지 않고!”
 ‘뭘?’
 하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정말 할 수 있지?”
 “······.”
 “뭐야, 이제 와서 못하겠다는 거야?”
 멍청하게 서서 바라보고만 있는 구소자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매령이 냅다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왕대룡에게 맞았던 것보다, 저소아에게 당했던 것보다 열 배는 더 지독한 고통이 뼛속까지 저리게 했다.
 “어이쿠!”
 구소자의 입에서 참담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누구에게서 한 번 걷어차이고 이런 비명을 터뜨려 본 적은 결코 없다.
 정강이를 감싸 쥐고 펄쩍펄쩍 뛰면서도 구소자는 이건 수치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당혜 끝에다가 쇠뭉치를 박아놓은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야리야리한 소녀가 찬 발길질이 어찌 이렇게 아플 수 있을 것인가.
 “휴, 너는 여전히 성질이 급하고 앙칼지니 장차의 일이 걱정이다.”
 귀면녀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다시 구소자를 때리려던 매령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가 너를 색시로 맞아들이려고 하겠느냐. 그러니 이젠 좀 얌전해지렴.”
 “쳇, 냄새나는 사내한테 시집은 왜 가? 그건 얼빠진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야!”
 매령이 얼굴을 붉히고 그렇게 소리쳤다.
 ‘제기랄, 사람이 나이가 차면 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거다. 오죽하면 돼지머리 저두녀 같은 여자도, 장소팔 같은 남자도 시집, 장가를 갔겠느냐? 그러니 너는 지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다. 못된 년 같으니.’
 구소자가 눈을 흘기며 입을 삐죽거리고 그렇게 속으로 욕을 해댔다.
 한 대 얻어맞고 나자 눈앞의 소녀가 귀신은 아니고, 두목 선녀는 더 더욱 아니라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다는 건 아니다. 아직도 매령은 구소자의 마음을 달뜨게 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소협이 미처 내 말을 다 듣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니 네가 다시 한 번 설명해 주렴.”
 귀면녀가 힘든 듯 숨을 할딱거리며 겨우 말했다.
 “언니, 많이 아파요?”
 쪼르르 달려간 매령이 그녀를 부축하려 했지만 귀면녀는 손을 내저을 뿐 허락하지 않았다.
 “괜찮다. 조금 쉬고 나면 좋아질 거야.”
 그 몇 마디의 말을 하는데도 무척 고통스러운 듯 어깨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는 어려운 부탁을 하는 입장이니······ 결코 그를 괴롭혀서는 안 돼.”
 가까스로 말한 귀면녀가 눈을 감았다.
 구소자는 그녀가 유언을 남기는 건 줄 알았다. 사람이 맥이 없으면 저렇게 말하는 중에 죽는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운기조식에 들어갔을 뿐이다.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는 매령의 눈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혔다.
 구소자는 그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언니가 죽었는데 기껏 눈물 한두 방울 흘리는 것으로 그만이라니······.
 ‘정말 인정머리라고는 약에 쓸려고 찾아도 없는 년이로구나. 역시 왕 노인의 말대로 여자란 생긴 낯짝만 가지고 평가할 게 못 되나보다.’
 소리 내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매령의 성깔이 사납고, 발길질이 매섭다는 걸 알았으니 이런 여자에게는 함부로 몸을 내맡길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왕 노인도 누누이 말했었다.
 
 ―한번 맞아보아서 이건 아니다 싶은 놈이 있으면 절대로 다시 맞아서는 안 된다. 정 맞아야 할 급한 상황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
 
 미묘법문(微妙法文) 같은 말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무식한 구소자에게 그 말이 먹혀 들어갈 리가 없다.
 대갈통을 쥐어박은 왕 노인이 한숨을 쉬고 다시 말했다.
 
 ―그저 외워나 둬라. 작대기도 놔두다 보면 언젠가는 부지깽이로라도 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몇 가지 재주를 몸소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만은 금방 따라 했다.
 왕 노인은 매우 놀랐다. 신기해하면서 다시 몇 가지 재주를 시범 보였다.
 처음 것보다 까다롭고 알쏭달쏭한 몸짓이다. 그러나 구소자는 두 번 눈여겨보더니 그것도 금방 따라 했다.
 
 ―네놈은 역시 몸으로 때우는 일이 제격이다. 타고난 재주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머리를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따라 하기만 해라.
 
 칭찬인지 비아냥거림인지 애매모호한 말을 했을 뿐 더 말하지도, 더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구소자가 왕 노인에게서 배운 재주라는 것이 실은 더 잘 얻어맞고, 더 잘 견뎌낼 수 있는 요상한 몸짓이었다.
 아니, 거기에 무슨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별로 대수로운 건 아니다. 구소자는 그렇게 여겼다.
 맞는 순간에 어떻게 숨을 들이쉬고, 몸을 비틀어 감쪽같이 때리는 놈의 눈과 감각을 속이면서 어떻게 숨을 내쉬어야 하는 건지 따위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구소자는 그렇게 해서 아무리 맞아도 더 이상 뼈가 부러지거나 근육과 힘줄에 심각한 손상을 입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상한 일은, 한차례 늘씬 두드려 맞고 나면 오히려 기력이 충만해진다는 거였다. 피부와 뼛골은 괴롭지만 그때뿐이다. 한숨 푹 자고 나면 어느새 거뜬해지곤 했다.
 왕 노인이 가르쳐 준 숨 쉬기가 단지 맞는 충격을 감해주고 몸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방법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구소자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그것도 가르침이라면 가르침이었으므로 구소자는 늘 왕 노인에 대해서 반은 고맙고, 반은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다.
 잘 맞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니 반쯤 고마운 거고, 때리는 법은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 반쯤 원망스러운 거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다음부터는 산적 놈들이 아무리 심하게 때리고 걷어차도 끄떡없게 되었다.
 때리는 놈이 먼저 지쳐서 헐떡거릴 때 구소자는 오히려 더 때려주었으면 하고 바라게까지 되었으니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제미랄, 나는 평생 맞고만 살라는 거냐?’
 그러자 그런 불만이 생겼다.
 여태까지는 오직 어떻게 하면 한 대라도 덜 맞을까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자기도 때리고 싶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왕 노인은 더 이상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았다.
 어찌 된 것이 전에는 그래도 한차례 늘씬 두들겨 패면 한 사흘은 푹 쉬게 해주었던 산적 놈들이 구소자의 몸에 변화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그것을 알기라도 한 듯 하루가 멀다 하고, 때로는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이나 무지막지하게 때려댔다.
 갖은 핑계를 다 대면서 괴롭히는 것이다.
 그렇게 때려도 다음날이면 구소자가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는 아예 순번을 정해놓고 기다렸다가 일일 행사처럼 번갈아가며 때려댔다.
 구소자는 맞는다는 것보다도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
 지나가다가 제 그림자를 밟았다고 불러 세워서 때리는 놈들과 어찌 더 같이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무작정 산채에서 도망을 쳤다. 그리고 이제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다.
 돈을 벌어서 고수들을 고용한 다음에 산채로 쳐들어가 그 못된 놈들을 죄다 죽여 버리기 위해서다.
 “똑똑히 잘 들어둬. 딱 한 번만 더 얘기해 줄 테니까.”
 매령의 말이 귀에 와 닿았다. 만일 이번에도 못 알아들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얼굴이고 눈빛이다.
 잠시 왕 노인과 산채에서의 일을 생각하던 구소자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매령에게서 쏘아지는 것이 살기라는 것쯤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너는 지금부터 낙성무관(落星武館)에 가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룡이십사수(紫龍二十四手)의 수법을 배워와라. 그런 다음에 그것으로 나와 겨루는 거다. 할 수 있겠지?”
 구소자가 대체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란 말이냐? 하는 얼굴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체 낙성무관은 뭐 하는 곳이며, 자룡이십사수는 또 뭐란 말인가.
 다 좋다. 그것을 배운다고 치자. 배우는 거야 나쁠 게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다음에 왜 자기와 싸우자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싸우길 원한다면 까짓 지금 당장이라도 싸워줄 수 있다. 몇 대 맞아준 다음에 항복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녀가 기분 좋아질 때까지 맞아줄 수도 있다.
 “기한은······.”
 매령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잠시 무엇을 생각했다.
 “한 달을 주마. 그 안에 네가 다 배우지 못한다면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니 나는 너를 죽여 버리고 말겠다.”
 “허―!”
 구소자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가씨는 나와 원수진 일이 있어?”
 “흥! 나는 오늘 너를 처음 보았다. 그런데 원수는 무슨 원수야?”
 “그렇다면 이상하군. 그런데 어째서 꼭 나와 싸우겠다는 거지?”
 “알 것 없어! 넌 그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매령이 다시 빽, 소리쳤다. 구소자는 눈앞의 소녀가 할 말이 없어지면 앙탈을 부리는 버릇이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소리만 지르면 다 되는 줄 아는 소녀다. 그렇다면 집에서 응석받이로 자란 게 틀림없다.
 ‘애미 애비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딸년 교육을 형편없이 시켰군.’
 물론 속으로만 한 욕이다. 그걸 알 리 없는 매령은 구소자가 가만히 있자 제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라고 여기고 좋아했다.
 “그럼 어서 가봐.”
 “그런데 한 달은 좀······.”
 “왜? 너무 짧아서? 하긴, 너 같이 멍청한 놈이 한 달 만에 자룡신장 이십사수를 흉내라도 낼 수 있게 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
 구소자가 망설이자 매령이 대뜸 그렇게 비웃었다.
 “뭐, 세세한 것까지 다 배워오라는 게 아니니까 걱정 마. 넌 그저 이십사수의 그 수법들만 대충이라도 흉내 낼 수 있으면 돼.”
 “그래도 한 달은 좀 그런데······.”
 “더 달라는 거야? 그렇게는 못해! 언니와 나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말이다!”
 매령의 눈꼬리가 치켜져 올라갔다. 구소자가 속으로 그녀의 발길질에 단단히 대비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생각해 봐. 한 달 내내 그 일에만 매달려 있어야 한다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뭐라고?”
 “이까짓 은자 몇 푼 받고서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먹고 사는 데 지대한 영향이 있다.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해.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돈을 벌겠어?”
 “돈이 부족하다는 거냐?”
 매령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까짓 자룡신장인지 개뿔인지 닷새면 충분할 일을 뭐 하러 한 달씩이나 붙잡고 있으라는 건지 그게 불만이라 이런 말씀이다, 내 말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닷새도 많다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십사수라니까 뭐 스물네 번 주먹질, 발길질을 해대는 수법인 모양이다.
 이백사십 번도 아니고 고작 스물네 번이라니······.
 까짓, 한나절만 따라 해보면 다 배울 수 있다는 자만심이 구소자를 우쭐거리게 했다.
 “하―!”
 매령의 붉고 고운 입술 사이로 의미를 알 수 없는 한탄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소자를 바라보았는데, 이게 미친놈 맞지? 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미 자만심이 하늘에 닿은 구소자의 눈에는 자신의 늠름함에 흠뻑 취해서 정신이 몽롱해진 것으로만 비칠 뿐이다.
 “험, 험. 닷새 안에 해결해 주지. 그런데 어디서 만나야 하지?”
 물건을, 아니, 자룡신장인지 뭔지를 전해주려면 어쨌든 만나야 할 것 아닌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매령이 구소자 앞에 그 작고 야들야들하고 고운 손을 불쑥 내밀었다.
 “도로 내놔. 이 일은 없던 걸로 하자.”
 주었던 은괴를 다시 달라는 말이다. 일을 물리겠다는 거다.
 구소자가 새파랗게 변한 얼굴을 한 채 뒤로 물러섰다.
 은괴 주머니를 가슴에 꼭 안고 있는 것이 죽어도 이것만은 뺏길 수 없다는 필사적인 자세였다.
 “그럴 수는 없다. 한번 일을 의뢰했으면 그걸로 땡이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물린다는 건 있을 수 없어!”
 “미친놈이?”
 눈앞이 번쩍, 하더니 매령의 손바닥이 뺨에 철썩, 달라붙었다.
 머리가 흔들리고 눈 속에서 무수한 별이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구소자가 누군가. 때리는 매령의 주먹과 손바닥이 악독하다면 그걸 이쪽저쪽 뺨과 옆구리, 가슴으로 거뜬히 받아내고 있는 구소자의 맷집은 더 지독하다.
 그의 몸이 흔들흔들했다. 연거푸 가해지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것 같았다.
 경쾌한 격타음이 낡은 신당 안에 가득 찼다.
 순식간에 열여섯 번이나 얼굴과 몸을 얻어맞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발길질이다.
 슁―!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매령이 옥각(玉脚)을 번쩍 들어 구소자의 가슴을 걷어차 왔다.
 좍, 벌어지는 치맛자락 속으로 연분홍빛 속곳이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무슨 연유인지 치마 속에 홑바지를 껴입지 않은 것이다.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다. 그러나 한가롭게 그걸 감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크! 이건 아니다!’
 구소자의 머리 속에 즉각 위험 신호가 왔다. 그러자 몸의 온 신경들이 저절로 반응했다.
 그의 몸이 좀 더 크게 흔들렸다. 가슴이 불쑥 나오고 크게 들이쉬는 숨을 따라서 뼈와 살갗이 잔뜩 바람을 머금었다.
 왕 노인이 가르쳐 준 매 맞는 호흡의 삼 단계 중 최고 단계인 바람벽의 호흡법이다.
 퍽!
 우당탕―!
 가슴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진 것과 함께 구소자가 붕 떠올랐다가 한쪽 벽을 뚫고 처박혔다. 몸이 반쯤 바깥으로 나갔다.
 ‘이상하다?’
 매령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평소의 그녀라면 구소자 같은 놈은 열 명을 한꺼번에 상대해서 떡이 되도록 때려줘도 숨 하나 가빠질 리가 없었다.
 그런데 몇 대 때리고 나자 몸이 나른해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마치 상대하기 힘든 고수를 만나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난 뒤 같았다.
 구소자가 엉금엉금 기어서 일어났다. 그것을 본 매령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비록 내력을 써서 호되게 친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면 몇 군데 뼈가 부러지고 꺾여서 꼼짝하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저놈은 괴물인가?’
 언뜻 그런 생각이 매령을 곤혹스럽게 했다.
 그런 그녀 앞에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툭툭,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난 구소자가 피식 웃었다.
 매령은 그가 자신을 비웃는다고 여겼다. 살기가 뻗쳤다.
 “에잇, 하찮은 것이 감히 나를 놀려?”
 그녀가 아미파의 정종심법인 대정신공(大靜神功)을 일으켰을 때다.
 “매령아, 그건 너무 지독한 일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빠져 있던 귀면탈여인이 낮게 말했다.
 조식 중에도 신당 안에서 벌어진 일을 낱낱이 보고 느꼈다는 얘기다. 그건 보통의 일이 아니다.
 귀면탈여인의 심공이 이미 마음에 사물을 담아두고 의식이 무의식과 하나가 되는 조탈망원(粗脫望遠)의 경지에 들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무식한 구소자가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엇? 당신은 죽은 게 아니었군?”
 보기에도 징그럽고 무서운 귀면탈의 여인이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왜인지는 구소자 자신도 모른다. 그저 마음이 그렇게 시키고 끌리는 일이니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휴, 소협의 신법은 참으로 교묘하군요.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나요?”
 “신법?”
 그런 말을 들어는 보았다. 강호의 고수들이 때리고 피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진퇴를 신속히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공이다.
 하지만 구소자는 그렇게 대단한 걸 배운 적이 없다. 그렇게 믿었다.
 ‘내가 왕 노인에게서 배운 건 그저 어떻게 몸을 흔들어야 상대의 눈을 속이면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뿐이다. 그게 무슨 신법이냐?’
 하지만 귀면탈의 여인 앞에서, 특히나 매령이 지켜보는 앞에서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사나이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험, 험. 그거야 뭐······ 아무튼 그분의 엄명이 있어서 그게 무슨 신법인지는 절대로 말할 수 없소이다.”
 한껏 거드름을 떨었다. 거짓말을 하자니 가슴이 간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귀면탈의 여인은 그 말을 믿는 눈치다.
 “소협이 굳이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요. 애석한 일이에요.”
 그녀가 구소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는데, 귀면탈 안에서 번쩍이는 눈빛이 섣달그믐 달처럼 차갑고 싸늘했다.
 
 
 
 
 
 제3장 한다면 한다
 
 
 한다면 한다
 
 
 
 
 
 더 있다가는 은괴 주머니를 빼앗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허둥거려졌다.
 몇 번이나 나무뿌리에 채여 넘어지면서도 구소자는 필사적으로 송림을 벗어나 내달렸다.
 그가 떠나고 난 신당 안에는 한동안 괴괴한 적막이 감돌았다.
 한참 만에야 매령이 한숨과 함께 침묵을 깼다.
 “휴, 과연 잘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언니의 말에 따르기는 했지만 괜히 아까운 돈만 버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두고 봐야지. 삼숙부님의 말씀이 있었고 내가 직접 본 바가 있으니 크게 틀리지는 않았을 거다.”
 “대체 저 못생기고 더럽고 멍청하고 욕심만 아귀 같은 놈의 어디가 그렇게 믿음직하다는 거죠?”
 “령아야, 너는 아직 견문이 넓지 못해서 놓치는 부분이 더러 있다.”
 말을 하면서 귀면녀가 얼굴에 쓰고 있던 탈을 벗었다. 답답했던 게다.
 깨진 기왓장 사이로 스며든 한줄기 햇빛 아래 그녀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어딘가 매령과 닮아 보이기도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기도 했다.
 그녀의 낯빛은 창백했는데,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눈빛이 영롱했다. 갸름한 얼굴에 고귀한 기상마저 어려 있었으니, 타고난 미색에 기품이 더해져 그야말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 그 자체였다.
 매령이 아, 하고 짧은 탄성을 터뜨렸다. 언제 보아도 눈앞에 있는 여인의 아름다움에는 숨이 막혔다.
 “언니는 너무 예뻐요. 그렇게 병색이 깃들어 있으니 더욱 그런걸요.”
 매령은 갑자기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슬픈 감정마저 생겼다.
 귀면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다. 너는 활달하고 재기가 출중한 데다가 이 언니처럼 그늘져 있지 않으니 언제나 햇빛처럼 영롱하다. 나는 네가 부럽구나.”
 “정말?”
 풀 죽어 있던 매령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러니 화운 사제며 소걸 사형이 너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 아니겠어?”
 “언니는······.”
 곱게 눈을 흘긴 매령이 핏,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그들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어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당장 화운(華雲)의 고상하고 청아한 모습이 가득 들어찼다.
 화운은 성수도장(猩手道長) 원원격(元源格)의 적전제자로서 대무당파의 이대 제자들 중 가장 촉망받는 청년 기협이다. 구소자 같은 놈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그를 떠올리자 당장 매령의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졌다.
 소걸(蘇傑)만 해도 그렇다.
 그는 화산파의 장문인인 기수검협(祁水劍俠) 곡인정(谷仁鼎)의 대제자로, 장차 화산 문하를 이끌어갈 재목이다.
 구소자 같은 놈은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결코 그들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들 두 젊은 영웅이 똑같이 매령을 사모하고 있는데, 매령의 마음은 화운에게 더 기울어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나중에 그들에게 그렇게 말해 주마. 네게서 관심을 거두라고.”
 “언닛!”
 매령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발마저 동동 구르는 것이 억울하다는 기색이다.
 호호, 하고 낮게 웃은 귀면탈의 여인이 다시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그가 이 일을 제대로 해줘야 할 텐데······.”
 “참, 삼숙부님을 만났다고요? 숙부님이 뭐라고 했기에 언니가 몸소 이곳까지 달려온 거죠?”
 “별말씀없으셨다. 우성현 저잣거리에 가보라고만 하셨지.”
 “숙부님이 거기서 그 못된 놈을 본 거로군요?”
 머리를 갸웃거린 매령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놈의 어디가 숙부님 마음에 들었을까?”
 “숙부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우성현으로 달려갔지. 거기서 죽도록 얻어맞고 있는 그를 보았다.”
 “쳇, 나도 그걸 봤어야 하는 건데. 그랬으면 박수를 쳐줬을 텐데.”
 “처음에는 저러다 죽는 거 아닐까? 도와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만큼 처참하게 당하고 있더구나.”
 “흥! 그런 놈을 도와주긴 뭘 도와줘?”
 매령의 입이 한 자나 쑥, 나왔다. 그렇게 구소자를 때렸으면서도 분한 마음이 풀어지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도와줄 필요가 없었지, 그는 맞는 걸 즐기고 있었으니까.”
 “미친놈이라니까요. 괜히 아까운 은괴만 날렸어.”
 “그렇지 않다. 만일 그가 우리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돈이 문제가 아니지.”
 “글쎄, 그 지저분한 놈이 어떻게 고승천의 자룡신장을 훔쳐 오겠어요? 그게 말이 된다고 믿는 건 아니겠죠?”
 “너는 그의 신법을 보지 못했니?”
 “핏, 신법은 무슨······ 신법을 지닌 놈이 그렇게 멍청하게 서서 고스란히 얻어맞기만 해요?”
 매령이 기를 쓰고 부정했다. 구소자에 대해 그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지나친 일이었다.
 귀면탈의 여인이 매령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려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매령이 다시 쫑알거렸다.
 “그놈은 어디서 매 맞는 재주만 배운 모양이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제 명대로 살지 못할걸? 흥, 틀림없어.”
 귀면탈여인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제 명대로 살지 못할 거라는 매령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길로 구소자를 내몰았다는 자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문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야무지게 마음을 다져 먹었어도 여전히 개운치 못했다.
 못나고 지저분하다고 해서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죽여야 할 악인이 아닌 이상 길가에 쓰러져 있는 걸인에게도 연민과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자기의 한을 풀기 위해서 엉뚱한 사람을 이용했다는 것이, 그것 때문에 아무 상관도 없는 구소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귀면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삼숙부님은 왜 스스로 나서지 않으시는 거죠?”
 말을 해놓고 나서 잘못을 알았던지 매령이 아차, 하곤 자신의 머리통을 툭툭 때렸다.
 “난 왜 이렇게 바보 같은지 몰라. 숙부님은 그 일 때문에 정신이 없으신걸······.”
 “우리도 일이 끝나면 숙부님을 도와드려야 할 거야.”
 “그래야죠. 그런데 언니의 몸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으니 걱정이에요.”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열흘 안에 공력을 되찾을 수 있을 거다.”
 “쳇, 이럴 때 사부님이 계셔야 하는 건데······ 그분은 꼭 중요할 때면 없어요.”
 매령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자신만 이곳에 떨어뜨려 놓고 온다 간다 말없이 떠나 버린 사부에 대한 야속함이 컸다.
 친혈육처럼 믿고 의지하는 귀면녀의 상세가 걱정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네 사부님은 아마 지금쯤 숙부님과 동행하고 계실 거다. 그분들의 안위 또한 걱정되는구나······.”
 “대체 백음신군 한백광이라는 자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사부님에 숙부님까지 나서야 한다는 건지 알 수 없어요.”
 “휴, 그는 무공은 물론 그 지독한 마음과 종적을 알 수 없는 신비한 인물이니······ 흑도에서 그런 걸출한 자가 나왔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귀면녀의 얼굴이 문득 어두워졌다.
 백음신군(白陰神君) 한백광(寒白光).
 그는 최근에 강호의 제일 큰 화두로 떠오른 인물이었다.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아본 자가 없었고, 그의 무서움을 제대로 전해주는 자가 없었다. 그와 맞섰던 자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열 명이 가로막으면 열 명이 죽었고, 백 명이 달려들면 백 명이 죽었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죽이는 일에 한 점의 망설임도 연민도 없었으니 마두 중의 마두로 불리는 게 당연했다.
 희대의 살인마라고도 했다.
 한 쌍의 금환(金環)과 옥환(玉環)을 손목에 차고 다니는데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신표였다.
 그는 또 움직이는 병기창이라는 말도 떠돌았다.
 대체 몸에 얼마나 많은 병장기를 지니고 있는지, 혹자는 열 개라고 했고, 혹자는 백 개도 넘을 거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그 많은 병장기가 모두 신병이기(神兵利器)이고, 그걸 자유자재로 쓴다는 건 더욱 놀랄 일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한백광이 궁벽하고 그래서 알려지지 않았고 평화로운 사천(四川)의 외지 우성현 부근에 나타났다는 것이 의아할 뿐이다.
 “이 일을 빨리 마무리 짓고 우리도 숙부님의 한 팔이 되어드려야 할 텐데 걱정이다.”
 귀면녀의 침울한 말을 들은 매령이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 멍청한 놈이 닷새를 약속했으니 기다리면 되죠 뭐. 약속을 못 지키기만 해봐라. 아예 다리를 꺾어서 주저앉혀 놓고 말 테야.”
 매령이 뽀드득 이마저 갈고 쏘아붙였다.
 
 ***
 
 “네미랄, 내가 아무래도 고 여우 같은 것에게 단단히 홀렸던 게다.”
 구소자가 한숨을 팍, 쉬었다.
 오후 한나절 동안 그러고 앉아 있는 중이다.
 장작을 패달라, 측간을 치워달라, 귀찮게 구는 놈을 쫓아달라는 둥 십여 가지의 일거리들이 와글거리며 찾아왔지만 다 뿌리쳤다.
 갑자기 돈이 싫어진 건 아니다. 그럴 리도 없다.
 매령의 앙칼지고 파닥거리는 얼굴과 모습이 눈에 삼삼해서?
 그건 타당한 이유가 된다.
 지금 구소자의 머리 속과 가슴속에는 온통 매령의 눈과 코와 그 앙증맞은 입술과 숨결이 들어차 있었다. 내가 밥을 먹었는지, 소피를 봤는지, 방금 누구와 이야기했던 건지 도무지 기억되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건 탱글탱글한 그 엉덩이 두 쪽이고,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건 빽, 하고 소리치던 날카로운 음성이다.
 “정말 환장하겠군.”
 구소자가 갑자기 제 가슴을 꽝꽝, 두드려 댔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좌우의 상인들이 물건을 흥정하다 말고 죄다 돌아보았을 정도였다.
 그들은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했다.
 
 ―저놈이 이 며칠 얻어터지지를 못하더니 저 발광을 떠는구나.
 
 남에게 두들겨 맞지 못하면 제 스스로라도 저를 때려야 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그들이 본 구소자는 늘 두드려 맞고 있었으니까.
 부푼 밀가루 반죽같이 되어서도 헤헤, 웃으며 다가서는 징그러운 놈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가 이 며칠 열심히 일했지만 그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왜?
 일하는 거야 특이할 게 하나도 없으니까.
 누구나 하는 당연한 일을 누가 머리 속에 담아두겠는가.
 아무튼 그렇게 해서 구소자는 저잣거리를 뛰어넘어 우성현의 명물이 되었다.
 우성현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이래 누구도 단 며칠 만에 그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이 없었다.
 이제 우성현에서는 구소자를, 그가 세워놓고 있는 깃발을 모르면 세작(細作:간첩) 취급을 당했다.
 <하사능조막우청(何事能助莫憂請).>
 우성현에 가면 그런 깃발이 있다더라.
 이건 어느새 인근 현에까지 파다하게 퍼진 희한한 소문이 되었다.
 원래 사람의 입처럼 가벼운 게 없고, 말[言]보다 빠른 말[馬]은 없는 법 아니던가.
 게다가 어디 구경거리가 있다면 주먹밥을 싸 들고서라도 달려가 기어이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특이한 인간들도 있다.
 별로 할 짓은 없고 인생이 심심한 족속들 중에 그와 같은 부류가 많은데, 그런 자들치고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 자도 드물다.
 부모 덕에 또는 돈벼락을 맞아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자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 자들이 꾸역꾸역 우성현에 모여들었다. 오직 깃발 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구소자를 보기 위해서다.
 아니, 그가 떡이 되도록 얻어터지고도 멀쩡히 일어서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아니, 이제는 과연 누가 구소자를 영영 일어나지 못하도록 작신 짓밟을 수 있나. 바로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자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돈을 건다.
 몇몇 대상에서 우성현 저잣거리의 왕초인 왕대룡은 벌써 빠졌다. 그놈은 생긴 것과는 달리 소심한 놈이라는 게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구소자의 상대가 될 것이냐?
 그게 우성현에 모여든 돈 있고 하릴없는 인간들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 인간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유일한 관심거리였단 말이다.
 그런 것을 구소자가 알 리가 없다. 뒤통수가 자꾸 당기고 귓속이 간질간질하기는 했어도 자기를 무슨 투견장의 개처럼 지켜보는 자들이 있다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남아도는 시간을 즐겁게 해줄 구소자가 이 며칠 통 튀지 않았다.
 열심히 똥통을 져 나르거나 장작을 팼을 뿐 어디 한 군데 특이하게 구는 구석이 없었던 것이다. 먹고 나면 오직 일하는 것만이 전부라는 듯한 착한 모습이었다.
 
 ―저건 바른 생활 소년이 아닌가?
 ―대체 언놈이 거짓 소문을 퍼뜨린 겨?
 ―고작 저 못생긴 놈을 보기 위해서 내가 이 먼 길을 왔다니? 억울해서 못살겠다!
 
 이런 말들이 그들 사이에서 오갔다. 때로는 너 때문이라며 멱살잡이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돈을 걸고 싶어도 건수가 없다는 것이 그들을 더욱 짜증나 미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소자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눈이라도 번쩍 뜨거나 손이라도 들어 올리면 그들은 초긴장 상태로 몰입해 들어갔다.
 드디어 뭔가 판을 벌일 모양이다 하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구소자는 잉잉거리며 눈앞에서 귀찮게 왔다 갔다 하는 파리를 쫓았을 뿐이다.
 부릅떴던 눈을 내리깔며 한숨을 쉬는 자들이 지금도 저잣거리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사람은 당사자인 구소자 한 명밖에 없었다.
 목하 구소자는 두 가지 일 때문에 끙끙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태어난 이래 지금처럼 골 아프게 머리를 굴려본 적이 없었다.
 한 가지는 이미 말한 것처럼 매령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생각 때문이고, 다른 한 가지는 바로 그녀로부터 의뢰를 받은 일 때문이다.
 ‘제기랄, 낙성무관이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건지, 자룡신장 이십사수라는 게 뭔 말라비틀어진 개뼈다귀인지 우선 그것부터 알아야 할 것 아니냔 말이다!’
 그의 고민은 거기에 있었다.
 매령의 미모에 홀려서 앞뒤 생각 할 것도 없이 덥석 그러마고 대답해 버린 일이 후회되었다.
 좀 더 정확히는 그녀가 내민 돈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지만 어쨌든 매령 앞에서 기죽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저잣거리로 다시 돌아오고 나니 앞일이 막막해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을 보아야 할지는 둘째 치고, 우선 낙성무관이라는 데가 정말 있는 건지 아닌지조차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조금만 다리품을 팔아도,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금방 해결될 일이다.
 하지만 구소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누구에게 뭘 물어보아서 시원하게 해결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물을 분간할 무렵부터 산채에서만 살았다. 당연히 그의 인생에 있어서 겪고 부대껴 본 사람들은 산적 놈들이 다다.
 게다가, 그 쳐 죽일 산적 놈들은 구소자에게 있어서 원수덩어리들일 뿐이다.
 보면 때리고 걷어차는 게 일인 놈들이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궁금한 걸 물어보면 물어본다고 때리고, 시킨 걸 몰라서 못하면 왜 물어보지 않았느냐고 때리고, 이래서 때리고, 저래서 때리고······.
 하루에도 삼백일흔석 대를 맞고 어떤 날은 두 대를 더 맞기도 했다.
 누구든지 그렇게 한 닷새만 시달려 봐라. 돌아버릴 거다.
 그렇게 석 달 열흘만 살아봐라.
 그러면 그게 인생인 줄 알게 된다.
 나는 그렇게 되도록 태어난 놈인가 보다 하고 포기하게 되는 거다. 맞는 게 일인 줄 알게 된다. 그게 편해진다.
 그렇게 길들여지면 멀쩡한 사람도 개처럼 되지 않을 수 없다.
 두뇌 구조가 이상하게 변해서 무뇌아(無腦兒)처럼 되어버리니 생각하는 게 싫고 귀찮아진다.
 그저 몸으로 알아서 때우는 게 제일 편한 삶인 것처럼 여기도록 세뇌당하는 것이다.
 그건 개처럼 되는 거다. 아니, 개도 그런 개는 희귀종에 속할 거다.
 그런데 구소자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자각이라는 게 생겼기 때문이다. 오기와 반발심과 증오가 생겼다.
 대체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누가 그걸 가르쳐 주었을까?
 산채의 도둑놈들 중에는 그런 쓸 만한 사람도 있었다. 바로 그가 장바보라고 부르는 장대두(張大頭)와 걸신들린 왕 노인이다.
 그리고 또 있다.
 웃기게도 그건 구소자가 그렇게 혐오해 마지않는 저 장소팔의 여편네인 돼지머리 저두녀다.
 그 기막힌 사연은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넘어간다.
 아무튼, 그래서 사람에 대한 신뢰라고는 쥐오줌만큼도 없고, 누구에게 뭘 물어서 해결하려는 생각 자체가 싫은 구소자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만나자마자 주먹질로 인연을 맺은 왕대룡이다.
 또 있다. 역시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저소아다.
 그들이 왜 구세주가 되었는지 지금부터 풀어보기로 하자.
 
 “일 안 해?”
 다가온 왕대룡이 대뜸 다그쳤다. 받을 돈이 있기 때문이다.
 “찾아오는 일거리마다 다 쫓아낸다며? 일 며칠 했다고 벌써 배때지가 불러진 거냐?”
 인상은 더럽게 썼지만 결코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멀뚱한 눈으로 바라보던 구소자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처음 보는 반응이다.
 “어? 저 자식이 못 먹을 걸 처먹었나?”
 왕대룡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타고난 말버릇은 어쩔 수 없지만 발로 건드리지는 못한다. 그는 어제, 그제와는 또 달라져 있었다. 신중하고 겸손해진 것이다. 적어도 구소자에게만은 말이다.
 “임마, 드디어 골병이 든 거냐? 하긴 다른 놈이 그렇게 맞았으면 벌써 죽었을 텐데 넌 좀 늦었다.”
 “시끄러.”
 “돈 벌었으면 내놔.”
 “아, 시끄럽다니까.”
 “짜식이? 날 속일 생각이라면 국물도 없다. 아무리 같은 길을 걷는 사이라지만 계산은 계산이야.”
 치사한 놈이다. 저렇게 푼돈에 집착해서는 결코 큰돈을 만지지 못한다.
 하지만 돈에 대한 그 집념만은 역시 배울 만하다고 생각했다.
 “얼마야?”
 구소자가 묻자 왕대룡의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돌았다.
 “오늘로 닷새째니까 열다섯 푼이다.”
 “옜다.”
 구소자가 되는대로 집어 던진 건 하얗게 빛나는 은자 한 냥이다. 왕대룡의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됐으면 이젠 좀 가줘. 나 지금 고민 중이니까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왕대룡에게 이미 그런 구소자를 두드려 깨울 자신은 없었다.
 저걸 어떻게 요리할까, 하고 째려보며 씩씩거리는 왕대룡의 옷자락을 저소아가 잡아끌었다.
 “대형, 저거 좀 수상하지 않수?”
 “어떻게?”
 “그동안 일한 거라고는 측간 몇 군데 치워준 거하고 몇 집 장작 패준 것뿐인데 은자가 넘쳐 난단 말씀이야.”
 “넘쳐······ 난다고?”
 “아까 돈을 꺼낼 때 유심히 봤지. 속주머니에서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가벼운 구리 동전 소리는 아니었다우. 은자 소리가 분명해. 적어도 열 냥 이상이야. 그 밖에 뭔가 묵직한 게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헛!”
 왕대룡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저소아는 도박 귀신이다. 특히 주사위 놀음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물주가 대나무통 속에 주사위를 넣고 사정없이 흔들어대도 그것이 굴러가는 소리를 듣고 높고 낮은 숫자를 맞추어냈다.
 그만큼 귀 하나는 귀신처럼 밝은 것이다.
 그런 저소아가 들었다니 틀림없다.
 ‘그렇다면 저놈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하는 의심이 구름처럼 일었다.
 “잠깐 나 좀 보세.”
 말뚝처럼 우뚝 서버린 왕대룡을 잡아끄는 손 하나가 있었다.
 
 “허, 이 돈을 나한테 주겠다 이 말이오?”
 “그렇다니까.”
 “허―!”
 가뜩이나 커진 왕대룡의 눈이 더 커져서 이제는 밖으로 튀어나오지나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다.
 곁에 잠자코 앉아 있는 저소아가 속이 타는지 뜨거운 줄도 모르고 찻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셔대다가 난리를 쳤다.
 하지만 왕대룡은 눈앞에 있는 은괴덩어리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다.
 열 냥짜리다. 탐욕이 그의 눈을 어둡게 했다.
 “구소자와 다리를 놓아주기만 하면 된다 이 말씀이지?”
 “똑똑하군. 금방 내 말을 알아들으니 말이야.”
 꿀꺽, 하고 왕대룡의 목젖이 크게 오르내렸다.
 눈앞에 있는 허여멀끔한 사내와 은괴를 번갈아 바라보던 왕대룡이 냉큼 그것을 집어 품에 넣었다.
 “좋소. 봉양현의 고 대인 부탁이라는데 내가 어찌 모르는 척하겠소? 가서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시오.”
 한껏 거드름마저 떨었다.
 이웃한 봉양현(鳳陽縣)의 고 대인이라면 이곳 우성현에까지 잘 알려진 부자였다.
 대지주이기도 한 그는 거느리고 있는 종들만도 기백 명에 이른다는 세력가다.
 하는 일은 물론 없다.
 종들을 다그치면 해마다 곳간에 쌀이며 고기가 넘치도록 쌓였고 그건 곧 돈이기도 하다.
 굳이 스스로 나서서 뭘 해야 먹고 살 만큼 구차하지 않으니 그저 놀고, 먹고, 바람피우는 게 일이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도박을 했다.
 거는 돈의 액수가 건달들과는 달랐으므로 그는 어디를 가나 황제처럼 떠받들어진다.
 그러니 정확히는 건달인 거다. 본질에 있어서 왕대룡과 다르지 않다. 노는 물이 다를 뿐이다.
 그런 고 대인이 지금 이곳에 와 있었다. 구소자의 맷집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그가 움직이는 곳에는 언제나 꾼들이 꾄다.
 고 대인의 주머니에서 한 푼이라도 어떻게 우려내 보려는 작자들이 지금 우성현에 득실거렸다.
 사마귀가 매미를 노리느라고 정신없는데, 뒤에서는 참새가 그 사마귀를 노리고 있다.
 그처럼 고 대인은 자신의 주머니를 노리고 이곳에 꾀어든 꾼들을 오히려 털어먹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서로 속고 속이는 세상. 탓할 수는 없다. 걸려드는 놈이 어리석을 뿐이다.
 어쨌든 일이 성사되면 뭉칫돈이 왔다 갔다 한다. 당연히 발품 값을 후하게 받지 않을 수 없고, 잘하면 떡고물도 떨어진다.
 목돈을 만져 볼 수 있는 이런 기회란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그걸 마다할 왕대룡이 아니었으니 허여멀끔한 사내와 그는 곧 죽이 맞아서 이마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하루를 맥없이 보내고 말았다. 이제 남은 기한은 나흘뿐이다.
 여각에 돌아와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드러누운 구소자는 하릴없이 천장에 얼룩져 있는 쥐오줌 자국을 가지고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보고 있었다.
 눈의 초점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서 그것들의 모양이 사뭇 바뀌는 게 여간 신기하지 않다. 사팔눈을 하고 보면 더 재미있다.
 “미치겠군.”
 그 재미있는 일을 때려치우고 벌떡 일어난 구소자가 머리카락 속에 열 손가락을 박아 넣고 박박 긁어댔다.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하는 버릇이다.
 대체 그놈의 자룡신장을 어디 가서 배워온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금방 그를 신경질과 짜증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이럴 게 아니다. 하나씩,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구소자는 애써 냉정을 되찾았다.
 어떤 어려운 일도 자기 스스로 해결해 내곤 했다. 아무리 끙끙대도 알 수 없는 일일 때는······
 그냥 포기한다. 그러면 세상만사가 편해진다.
 하지만 이번 일만은 그럴 수 없다는 게 그를 미치게 했다. 매령 때문이다.
 큰소리란 큰소리는 다 치고 왔는데 어떻게 닷새 뒤에 가서 못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찾아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할까?”
 하지만 그렇게 해서 자룡신장을 배우려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돈도 많이 들 거다. 그게 제일 마음에 안 든다.
 “한 놈 붙잡아다가 내놓으라고 윽박질러?”
 그게 무슨 물건도 아닌데 될 리가 없다. 또 제 주제에 누굴 납치한단 말인가?
 “돈을 주고 사버려?”
 그건 가장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지금 가지고 있는 은괴 몇 덩어리로 될 일이 아니라는 건 구소자도 잘 안다.
 “훔쳐 배우는 길밖에 없는데······.”
 몇 번의 생각 끝에 정답에 가장 근접한 결론을 끌어냈다. 역시 대단하다.
 하지만 훔쳐 배우려면 자룡신장의 고수가 눈앞에서 그것을 열심히 시연해 보여줘야 한다. 대체 누구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할 것인가.
 물론 낙성무관의 연무장에 숨어 들어갈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 수련하는 놈들을 지켜보면 되니까.
 하지만 어떻게 숨어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거기가 무슨 과붓집 헛간도 아닐 텐데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낙성무관이라는 곳이 대체 어느 구석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미치겠군. 미치겠어.”
 그가 정말 미쳐 갈 때 바로 구세주가 찾아왔다.
 “안에 있냐?”
 왕대룡이다.
 대답도 안 했는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웬일로 당당하고 우쭐거리는 모습이다. 구소자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된 건지도 모른다.
 “돈 줬잖아!”
 구소자가 인상을 쓰며 버럭 소리쳤다. 그래도 왕대룡은 싱글벙글이다.
 “꼬마 친구. 나가자. 내가 한잔 사지.”
 “어렵쇼?”
 이번에는 구소자가 어리둥절해졌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만승주루(萬昇酒樓)는 우성현에서 제일 크고 고급스러운 주루다. 저잣거리의 왕초인 왕대룡도 감히 어쩌지 못할 만큼 위세가 당당한 곳이기도 하다. 그건 만승주루를 보호해 주고 있는 막강한 세력 때문이다.
 우성현은 물론, 사천의 무림에서도 콧김깨나 뿜어대는 곳. 바로 낙성무관이 만승주루의 후견인이었다.
 평소에는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던 왕대룡이 오늘은 그 만승주루의 삼층 창가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서 거드름을 떨고 있었다.
 종업원들의 눈총이 따가웠고, 몇몇 귀티가 나는 주객들의 안색 또한 편치 않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삼층으로 오르는 계단 곁에 두 사람의 무사가 버티고 서 있었다. 만승주루에 고용되어 있는 무사들이고, 깐깐하고 솜씨 좋기로 근동에 소문난 자들이다.
 여간해서는 주청에 나오지 않는 그들이 지켜선 건 왕대룡 때문이다. 눈에 거슬리는 자인 것이다.
 만약 그가 소란을 부리기라도 한다면 죽여 버려도 좋다는 은밀한 지시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내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한 사람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혈풍도 마전이다.’
 검은빛의 헐렁한 마의를 입고, 품에 한 자루 칼을 소중히 안은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서 있는 사람.
 삼십 대 후반에 후리후리한 키. 좋은 몸집이고 각진 얼굴이 단단해 보이는 그 사내가 바로 사천무림에 이름난 혈풍도(血風刀) 마전(馬典)이란 인물이다.
 그가 있으니 누구도 함부로 나설 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그 마전보다 더 무시할 수 없는 자가 왕대룡과 함께 있었다.
 봉양현의 이름난 세력가인 고 대인이다.
 그였기에 혈풍도 마전 같은 고수를 호위 무사로 거느릴 수 있었으리라고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굳이 마전을 데려오지 않았더라도 고 대인을 귀찮게 할 자는 없었다. 돈의 위력은 하늘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법 아니던가.
 하찮은 저잣거리의 건달 왕대룡이 그런 거물과 마주 앉아 허심탄회하게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왕대룡 곁에 앉아 있는 못생긴 꼬마 놈이었다.
 만승주루도 우성현에 있었으니 고용된 무사들 또한 구소자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을 리 없다.
 측간이나 푸고 장작이나 패주던 놈.
 왕대룡보다 더 천하고 보잘것없는 그런 놈이 이곳에 왔다는 것 자체가 수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무사들은 싫은 낯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고 대인의 손님이기 때문이다.
 “자, 한잔 들게.”
 고 대인이 구소자에게 옥잔을 건넸다.
 술이라면 일찍부터 입에 익혔다. 덥석 받은 구소자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단숨에 잔을 비웠다.
 “어찌할 텐가?”
 은근히 물어오는 말속에 위협이 숨어 있다.
 대놓고 협박하는 왕대룡 같은 자들보다 이처럼 은근히 물어오는 자가 훨씬 더 무섭다.
 구소자는 몇 번 힐끔거려보는 것으로 고 대인이라는 자가 숨기고 있는 위험함을 눈치 챘다.
 어린 나이지만 인간의 사악함과 난포함, 비굴함과 교활함에 대해서는 이미 팔십 노인보다 깊은 성찰을 가지고 있는 구소자인 것이다.
 “상대가 누군데?”
 탁, 하고 술잔을 내려놓은 구소자가 인상을 찡그리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대뜸 반말이다.
 “허―”
 몸을 물리는 고 대인의 얼굴에 불쾌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의중을 읽은 마전이 가늘게 실눈을 뜨고 구소자를 노려보았다.
 그는 마치 고 대인의 그림자라도 된 듯 뒤에 붙어 선 채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는데, 지금 구소자를 가장 떨게 만드는 자는 눈앞의 고 대인도 아니고 저쪽에서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는 만승주루의 무사들도 아니다.
 바로 목석 같은 인간 마전이었다.
 ‘대두령과 비슷한 놈이다.’
 꼭 비교하자면 그랬다.
 귀왕채의 대두령에게서도 마전과 같은 기운이 풍겼다. 그 앞에 서 있기도 힘들 만큼 사람을 위축시키는 무엇.
 구소자는 아직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한마디 꾸짖는 말도 하지 않았고 한 번 때린 적도 없었지만, 대두령 앞에서는 오금이 저려서 제대로 서 있지를 못했다.
 그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댓말을 하는 사람도 그 대두령뿐이다.
 ‘역시 돈이 있어야 해.’
 다시 그런 결심을 확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눈앞의 영감이 마전 같은 자를 수하로 부릴 수 있는 건 바로 돈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전은 무섭다. 그러나 고 대인 따위는 조금도 무섭지 않다.
 노려보는 고 대인의 눈길을 똑바로 받았다. 영감탱이 네가 어쩔 건데? 하는 심중이 고스란히 읽혔다.
 끄응, 하고 된 숨을 뱉어낸 고 대인이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
 생각 같아서는 작신 패주고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 또한 돈과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않고는 밤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직 정하지는 않았다. 왜? 생각해 둔 자라도 있느냐?”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엇?”
 구소자가 말하다 말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이 미친놈이 또 왜 그러나? 하고 바라보는 왕대룡의 머리통에서 장작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아이구, 내 대가리야!”
 갑작스럽게 당한 일에 왕대룡이 머리통을 감싸고 비명을 터뜨렸다.
 자신이 방금 무엇을 내려친 건지도 잊은 구소자가 소리쳤다.
 “맞다! 있다, 있어! 정해둔 놈이 있다!”
 
 “너 정말 뒈지려고 작정한 거지?”
 “내가 왜 죽어? 아직 돈도 못 벌었는데.”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뭘?”
 “이 자식아, 낙성무관이 어떤 덴지나 알고 그러는 거냐?”
 왕대룡이 인상을 팍팍 썼다.
 시큼털털한 냄새가 배어 있는 그의 방 안이다.
 거래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자 그들은 곧 만승주루를 나왔다.
 왕대룡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저소아와 함께 싫다는 구소자를 억지로 잡아끌고 납치하듯 자신의 거처로 데려온 것이다.
 “게다가 자룡신장만 상대하겠다니. 허, 너는 무식해도 너무 무식하다.”
 왕대룡이 한숨을 내쉬었다. 구소자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내가 죽을까 봐 걱정해 주는 거야?”
 “에라, 이 썩을 놈아! 너 죽는 게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송장 치워줄 일이 귀찮으니까 그런다!”
 걱정하고 있는 거다.
 왕대룡에게도 실은 따뜻한 마음이 손톱만큼은 있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한 번도 인정과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구소자가 그런 걸 이해할 리 없다.
 “걱정 붙들어매. 안 죽으니까.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도 난 안 죽어. 흥! 못 죽지.”
 돈을 벌기 전에는 원통해서 죽을 수가 없다. 그러니 왕대룡의 걱정은 구소자에게 있어서 개뿔도 아니다.
 물끄러미 그런 구소자를 바라보던 왕대룡이 다시 한숨을 팍, 내쉬고 입을 다물었다.
 
 “죽이지는 말라고 해라.”
 고 대인의 목소리가 은근했다. 마전이 의아한 눈으로 그런 고 대인을 바라보았다.
 “항복을 받아내기만 하라고 해. 그러면 내가 이긴다.”
 마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빠르게 스쳐 갔다. 그는 비로소 욕심 많은 이 영감탱이의 속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보죠.”
 무뚝뚝하게 대답한 마전이 밖으로 나가는 걸 보는 고 대인의 입가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요놈들, 그동안 나를 잘도 속여먹었겠다? 어디 이번에는 한번 된통당해 봐라.”
 
 “걱정 마, 죽이지는 않을 거야.”
 저소아의 말에 왕대룡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임마, 자룡신장은 무림에서도 절기로 꼽히는 무서운 거다. 그 꼬마 놈이 아무리 맷집이 좋다 해도 고수의 주먹을 당해낼 수는 없어.”
 “헤헤, 왕 대형은 너무 단순해. 이걸 조금만 써보라구.”
 저소아가 손가락으로 제 머리통을 쿡쿡 찌르며 빙글빙글 웃었다.
 “고 대인은 사기 도박을 하려는 거야. 말하자면 짜고 하겠다는 거지.”
 “짠다고? 누구와?”
 “누구겠어? 낙성유수(落星流手) 문비룡(文飛龍)이지.”
 “허―!”
 왕대룡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일인지 이제는 머리 속이 지끈거려 왔다.
 어쨌든 구소자가 죽게 되는 일은 없을 모양이다. 뭐, 그렇다면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이쪽저쪽 심부름이나 해주고 짭짤하게 수입을 챙기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왕대룡을 물러앉게 했다.
 
 “형이 이곳에 왔다는 걸 알면서도 영접하지 못했으니 아우의 죄가 크오.”
 낙성유수 문비룡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포권하고 말했다.
 “앉게. 지나친 겸양은 오히려 나를 거북하게 해.”
 혈풍도 마전이 희미하게 웃으며 앞 자리를 가리켰다.
 만승주루의 후원 은밀한 곳에 있는 밀실이다.
 적송(赤松)과 매화, 도화나무들이 무성한 숲 속.
 큰 바윗돌과 흙을 쌓아 만들어놓은 가산(假山)을 등지고 있으니 좀체 바깥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남의 눈을 피해야 할 남자와 여자들이 비싼 돈을 주고 빌려서 잠시 머물다 가곤 하는 곳으로 주로 쓰인다.
 그 안에서 뭘 하는지는 본 사람이 없으니 모른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짐작들만 할 뿐이다.
 지금 그런 곳에 마전과 문비룡이 마주 앉아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자네가 지키고 있으니 이곳의 영업은 더욱 번창하겠군?”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문비룡이 웃으며 마전의 잔에 술을 따랐다.
 마전은 사천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다. 혈풍도를 쥐고 우뚝 서서 눈을 부릅뜨면 떨지 않는 자가 없다.
 그런 마전과 사천제일무관으로 꼽히는 낙성무관의 낙성유수 문비룡은 오래전부터 형이니 아우니 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그가 사부인 삼수귀백(三手歸魄) 고승천(古承天)의 명을 받아 만승주루의 총관으로 와 있은 지 어언 한 해가 지나고 있었다.
 말이 총관이지 실은 만승주루에 고용된 무사들의 두령 격으로 와 있는 거다.
 그가 맡은 일은 오직 하나. 주루에 감당하기 힘든 망나니가 찾아와 소란을 피울 때 두들겨 내쫓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온 이래 한 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낙성무관의 문비룡이 와 있다는 소문만으로도 어지간한 왈짜패들은 물론, 강호를 우습게 여기는 흑도의 괴수들도 감히 만승주루를 넘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낙성유수로 불리는 문비룡은 무섭다. 하지만 그의 뒤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삼수귀백 고승천은 더 더욱 무섭다.
 때문에 사천무림의 명망있고 뿌리 깊은 대문파인 아미와 청성파에서도 고승천의 낙성무관이라면 한 걸음 양보하는 바가 있었다.
 “형님, 그건 좀 곤란한 일인데요?”
 마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문비룡이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자네에게 직접 나서 달라는 게 아닐세. 그건 말도 안 되지.”
 “하오면?”
 “그런 얼치기 한 놈을 상대하는데 사실 자네 수하 중 아무나 한 명 점찍어줘도 과하지.”
 저잣거리의 왕대룡 같은 건달과 제대로 무공이라는 걸 배워 업으로 삼고 있는 무림인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아무리 맷집이 좋은 꼬마라고 해도 견뎌내지 못한다. 일격에 죽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마전이 문비룡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런데 맹랑하게도 그 꼬마 놈이 꼭 자룡신장을 써야 한다고 못을 박았단 말일세.”
 “허―!”
 “어디서 이름은 주워들은 모양인데 그게 뭔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지.”
 그렇지 않다면 죽으려고 작정한 놈인 게 분명하다. 문비룡이 코웃음을 쳤다.
 “상대할 가치도 없습니다.”
 “내 체면을 생각해 주게.”
 “음······.”
 문비룡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마전 같은 고수가 어쩌다 고 대인 따위의 보잘것없는 놈에게 얽매인 몸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긴, 배운 게 달리 없고 세력을 갖고 있지도 않은 강호의 무리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생계를 마련하는 수밖에 없기는 하다.
 돈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때문에 흑도의 무리들이 곧잘 흉악한 도적들과 결탁하기도 하는 것이다.
 마전같이 홀홀 단신으로 강호에 나와 유랑하는 자들은 더욱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지기 쉽다. 그러니 일거리를 찾아 잠시 머물다가 돈이 모이면 다시 강호를 떠돈다.
 그건 그래도 협의(俠義)를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자라면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강도로 돌변하는 일도 예사였다.
 문비룡은 마전을 잘 안다. 그가 이처럼 부탁해 온다는 것 자체가 평소의 고고하던 자존심을 많이 숙인 일이다.
 매정하게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오면, 소제의 문하 제자들 중 누구 한 사람을 불러달라는 거로군요?”
 “그렇지. 적당히 혼을 내주되 죽이지만 않으면 되네.”
 “죽이지 않을 정도라······.”
 문비룡의 얼굴에는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이 떠돌고 있었다. 마전이 품에서 비단 보자기로 싼 물건 하나를 꺼내 넌지시 내밀었다.
 “받게. 자네 몫일세.”
 “허―!”
 얼른 보자기를 끌러본 문비룡이 탄성을 터뜨렸다. 금괴였다.
 닷 냥 푼은 족히 나갈 금괴가 두 덩이다. 아무 데서나 바꿔도 은자 백 냥은 나가는 거금이다.
 “그저 한 번 싸워주면 되네. 아니, 싸움도 아니지. 장법을 연습한다 생각하고 몸도 풀 겸 해서 작신 두들겨 주면 되는 일이라 이 말이야.”
 탐심을 갖지 않은 자는 없다. 절정고수가 아니라 득도한 고승에게도 탐심은 있다. 무엇을 탐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문비룡은 뛰어난 무위를 지녔지만 평범한 인간이다. 황금을 탐하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된다.
 “모처럼 형이 이렇게 부탁하는 일인데 소제가 어찌 야박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주선해 보지요. 하지만······.”
 “걱정 말게. 이 일은 우리끼리만 아는 일일세.”
 철저하게 비밀이 지켜진다는 언질이다. 사부의 귀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된다.
 비로소 문비룡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럼 형을 믿고······.”
 그가 손을 내밀어 슬그머니 금괴를 쓸어갔다. 마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제4장 자룡신장(紫龍神掌)을 훔쳐 내라
 
 
 
 자룡신장(紫龍神掌)을 훔쳐 내라
 
 
 
 ―구소자가 낙성무관의 고수와 싸운단다.
 
 그 말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물론 얻어터지는 구소자의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우성현에 모여들어 있는 인간들에게만이다.
 “정말 괜찮겠냐?”
 왕대룡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구소자가 한 번 흘겨보았을 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왕대룡은 아무렇지도 않다. 이제는 그게 당연한 걸로 여겨질 정도가 된 건지도 모른다.
 그는 이 며칠 아예 구소자와 붙어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식사 때가 되면 밥을 챙겨다 주고 간식 때가 되면 떡과 과자를 얻어다 주었다.
 손발을 주물러 주고 어깨를 토닥거려 주는 것이 저잣거리의 왕초 노릇을 때려치우고 구소자의 후견인이 되기로 작정한 듯했다.
 그 시간에 저소아는 팔문정이라는 인간을 만나고 있었다.
 “알아봤어?”
 팔문정이 은근하게 물었다.
 그의 주위에는 대여섯 명의 쥐새끼 같은 사내들이 눈알을 반짝이며 둘러서 있었다. 모두 저소아의 입만 쳐다본다.
 “험, 험!”
 저소아가 한껏 거드름을 떨며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제기랄 놈 같으니. 알았다, 알았어.”
 팔문정이 주머니에서 은괴 하나를 꺼내 건넸다. 재빨리 채간 저소아의 얼굴에 그제야 비굴한 웃음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만승주루의 문 총관 손에서 결정되는 모양입디다. 낙성무관 쪽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지요.”
 “흥, 고 대인이 문비룡에게 찰싹 달라붙은 모양이군.”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손을 써야 해.”
 “그런데 정말 그 꼬마 녀석이 버텨낼까?”
 누군가의 그 말이 어두컴컴한 방 안에 들어차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일제히 저소아에게 돌아가게 했다.
 저소아가 한껏 거드름을 떨며 천천히 말했다.
 “그놈이 아무리 맷집이 좋다고 해도 어디 자룡신장을 익힌 낙성무관의 제자에게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결과가 뻔한 이런 싸움은 재미없어. 그러니 돈을 걸어봤자야.”
 “맞아, 괜한 일을 벌였나 보다.”
 사람들의 얼굴에 실망이 떠올랐다. 그놈이 하필 자룡신장만을 상대하겠노라고 큰소리쳐서 재미난 구경거리를 스스로 망쳐 놓을 게 뭐냐는 원망도 생겼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소아가 희망을 던져 주었다.
 “뭐, 순수하게 주먹 힘만 가지고 싸운다면 맷집 좋은 꼬마가 마지막에는 이길지도 모르죠.”
 그들은 무림인이 아니다. 그러나 무공을 제대로 익힌 자가 어떤지는 잘 안다.
 고수라고 불리는 자들은 손짓 한 번으로 바윗돌을 부수고 하늘을 펄펄 날아다니는 기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런 초인적인 힘이 내공에서 나온다는 것도 안다.
 그럼 그것을 쓰지 못하게 한다면?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의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매령과 약속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우성현에서 서쪽으로 이십여 리쯤 떨어진 곳에 작고 보잘것없는 절 하나가 있었다. 주지는 늙었고 그 아래의 중이라야 고작 서너 명에 불과한 초라한 절이다.
 그들이 떠났다.
 중이 절을 떠날 때는 절이 싫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돈 때문에 떠났다. 아니, 잠시 절을 비워준 것이다.
 중이 떠난 절간에 늙고 젊은 사내들이 꾸역꾸역 들어찼다. 무려 이십여 명에 이르는 군상들이다.
 생긴 건 모두 달랐지만 공통점 몇 가지는 있었다.
 첫째가 하나같이 허여멀끔한 것이 노동과는 거리가 먼 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옷차림과 몸에 밴 태도에서 두 부류의 인간들로 다시 나눠볼 수 있었다.
 하나는 돈 많고 할 일 별로 없어서 삶이 재미없는 부류고, 다른 하나는 주야장창 도박판에서 살거나 찾아다니는 전문 도박꾼들이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두 번째 공통점은 눈알이 쉴 새 없이 굴러다니고 반짝거린다는 거였다.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이다.
 그것은 또한 늘 새로운 자극을 찾아 탐닉하려는 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데서 삶의 희열을 느끼는 자들인 것이다.
 세 번째로 그들은 너나없이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웅전 앞의 넓은 마당 복판이다.
 그곳에는 늙수그레한 청의인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풍기는 분위기가 마당을 뺑 두르고 서 있는 무리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 한눈에 무림인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잠시 하늘을 보고 그림자를 살펴보던 청의노인이 헛기침을 하고 나서 의젓하게 말했다.
 “시간이 되었소. 오늘의 비무 당사자들은 어서 앞으로 나오시오.”
 비무(比武)라고 했다.
 비무란 지닌 바 무술을 겨루어봄으로써 서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상대의 장점을 배우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과연 오늘 싸우게 될 자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서쪽 고루(鼓樓)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스무 살 남짓한 젊은이가 날랜 걸음걸이로 나왔다.
 이름을 강자량이라고 했는데, 낙성무관의 삼대 제자로서 입문한 지 다섯 해가 된 청년이었다.
 그는 삼수귀백 고승천의 둘째 제자인 추일장(追日掌) 낙운비(樂雲備)에게 배우는 자들 중 막내에 해당된다. 나이는 많지만 입문이 늦었기 때문이다.
 그가 마당 한복판에 우뚝 서서 포권한 손을 높이 들어 군중들을 향하고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입가에 득의의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오늘 자신의 솜씨를 마음껏 뽐내서 인정을 받겠다는 모습이 역력했다.
 동쪽 고루의 문도 열렸다. 그리고 왕대룡과 함께 구소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 생긴 것만으로 본다면 구소자가 강자량보다 오히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지지리도 고생한 탓이다.
 허술한 옷차림에 부실해 보이는 몸이었지만 다가오는 걸음걸이만은 씩씩하고 힘찼다.
 그가 강자량을 마주하여 우뚝 섰다. 인사 따위는 없다.
 “자룡신장을 할 줄 알아?”
 첫마디가 그거였다.
 강자량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우, 우, 하는 야료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구소자를 지그시 바라보던 청의노인이 에휴, 하고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보더라도 상대가 되지 않을 싸움이기 때문이다.
 노인은 혹시라도 구소자가 무공을 익히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가 마당 가운데로 걸어올 때부터 유심히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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