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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계 지갑전사 1-1권

2019.08.14 조회 1,348 추천 6


 # 프롤로그
 
 [속보입니다. 큐브 등장 이후 전 세계 최초로 정렬을 코앞에 두고 있던 탐사그룹 ‘천상계’의 멤버 전원이 결국······.]
 
 뉴스에 별 관심이 없던 백우빈도 큐브의 정렬이라는 말에 걸음을 멈추고 서서 대형 전광판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결국······.]
 
 방송 사고였다.
 메인 뉴스 진행 시간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앵커의 모습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아······. 제발! 결국 뭐? 결국 성공했으면 안 될까?’
 말은 다 이어지지 않았지만 뉴스의 내용은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전 인류의 희망이라던 최고의 큐브 탐사그룹 ‘천상계’가 결국 정렬에 실패한 것이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최종 관문까지 전진한 그들이 이렇게 실패할 거라고는 세상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렬은 실패. 천상계 멤버들의 생사도 불분명.
 백우빈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곤란한데. 다음 물건 기일 못 맞추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젠장······!’
 정렬의 실패는 백우빈에게도 큰 문제였다.
 그는 큐브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빼돌려 음지에서 판매하는 암거래상이었다.
 위험하긴 해도 제법 돈이 되는 일이었다.
 ‘이번 한탕 크게 하고 돈이나 쓰면서 살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정렬 일정에 맞춰 제법 큰 규모의 거래를 예약해 뒀는데 정렬 실패로 거래가 틀어지게 될 상황이었다.
 선금까지 잔뜩 받고 이미 다 탕진해 버렸기에 걱정이 컸다.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큰 거래이다 보니 그 상대가 악질 중에서도 악질이었다.
 부산물로 무기를 만든다나 뭐라나?
 ‘대책을 찾아야 하는데······.’
 위험한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백우빈이었다.
 큐브만큼이나 위험한 음지 생활을 하며 여태 버텨 온 것은 눈치와 특유의 생존 본능으로 이루어 낸 것이었다.
 그가 대책을 고민하는 사이 남자 앵커가 급하게 상황을 이어받아 다음 기사로 뉴스를 진행했다.
 
 [죄송합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화면이 넘어가자 다음 소식이 들려왔다.
 
 [오늘 오후 NF corp. 대표 이사 한성욱 씨가 행사 도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정렬 실패와 더불어 한성욱 대표 이사의 입원으로 당분간 큐브 개척 사업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좋지 않은 소식이 두 개나 연속으로 전해졌다.
 백우빈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걸음을 옮겼다.
 이 정도 뉴스면 암시장도 당분간 스톱이다.
 이렇게 된 이상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일단 줄행랑치는 것.
 음지의 단체에 덜미를 잡혀 곤욕을 치르느니 도망치는 편이 신상에 좋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튈 때 튀더라도 그건 챙겨야 해.’
 백우빈이 사무실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순식간에 도착한 백우빈이 비밀 금고를 열었다.
 그는 그 안에서 천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 속 담긴 보석을 챙겨 품에 넣었다.
 오래전 빼돌린 부산물 중에 너무 귀해서 매물로 내놓지도 못하고 애지중지 보관만 하던 것이었다.
 번드리드의 눈.
 큐브 내의 1등급 위험 지역에서 출몰하는 몬스터 번드리드가 가진 세 개의 눈 중 한 개를 빼돌렸다.
 신비한 힘을 가진 번드리드의 눈.
 암시장에 내놓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물건이었다.
 물건도 챙겼으니 이곳에는 더 이상 볼일도, 미련도 없었다.
 백우빈은 당장 한국을 뜨기 위해 쉬지도 않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퍼억!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뒤통수에 뭔가를 얻어맞은 백우빈은 눈앞이 번쩍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허물어졌다.
 그가 정신을 잃자 품 안에 있던 번드리드의 눈이 아무도 모르게 은은한 광채를 뿜기 시작했다.
 
 
 # 뒤바뀐 운명
 
 백우빈이 정신을 차렸을 때 두통과 함께 찾아온 것은 강력한 의문이었다.
 ‘병원······?’
 눈을 뜨고 주변을 보자마자 병원이라는 걸 알았다.
 정황상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굳이 나를 습격해 놓고 병원은 왜?’
 미루어 짐작하건대 습격한 놈들은 분명 이번 큐브의 정렬이 실패로 돌아가며 거래가 불발될 위기에 처한 일본의 야쿠자들일 게 빤했다.
 미리 지급한 선금을 돌려받기 위해 찾아왔겠지.
 ‘대놓고 뒤통수를 후려갈긴 다음 병원으로 납치하는 경우는 도대체 무슨 경우야? 이상한데······?’
 백우빈은 그렇게 생각하며 뒤통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응······?”
 계속해서 이상했다.
 분명 뒤통수로 손을 옮겼는데 손은 뒤통수가 아닌 엄한 목덜미에 가서 닿았다.
 머리를 다쳐 신경계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 싶어 다시 손을 움직여 봤지만 뒤통수가 아닌 정수리로 손이 올라갔다.
 “뭐야······? 왜 이래?”
 그제야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다른 껍데기를 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29년간 쓴 내 몸이 아니라 다른 몸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괴상한 위화감.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손을 눈앞으로 가져와 내려다보았다.
 피부의 느낌, 주먹이 쥐어지는 감각, 손의 모양.
 모든 것이 낯설었다.
 두통과 의문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환자분 깨어나셨습니다!”
 바이털 체크를 위해 들어온 간호사가 깨어난 백우빈을 보고 밖에 소리쳤다.
 그러자 몇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중 양복을 빼입은 40대 중년의 남성이 백우빈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대표님! 정신이 좀 드십니까?”
 “예······?”
 “대표님?”
 “누구세요?”
 백우빈의 반응에 중년 남성이 간호사에게 시선을 보냈다.
 간호사는 그 시선을 받자마자 병실을 나가며 말했다.
 “선생님 모셔 올게요. 환자분 안정을 취하시게 두세요!”
 백우빈의 혼란은 깊어졌다.
 이 세상에 자신을 대표님이라 부를 사람은 없었다.
 동네 골목대장도 해 본 적 없는데 대표는 무슨.
 암시장에서도 그 흔한 사장이었다. 백 사장.
 진짜 사장이냐고? 아니, 혼자 일하니까 그렇게 불렸다.
 이상한 상황에 긴장감이 올라왔다.
 잠시 후.
 주치의와 함께 간호사가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가운을 입은 의사가 백우빈에게 다가와 물었다.
 “정신이 드셨군요. 지금 특별히 불편한 곳이 있나요?”
 “머리가 좀 아프긴 했는데······.”
 “으흠······. 다른 곳은 불편한 곳이 없으신가요?”
 “그보다 선생님. 이 사람들은 다 누구죠? 저는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그 한마디 말에 병실 안에 있던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의사나 중년 남성들은 기억 상실 증상을 의심하며 낙담에 빠졌으나 백우빈은 또 다른 의아함을 발견하고 말았다.
 ‘목소리는 또 왜 이래?’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왜곡된 형태로 안다.
 녹음된 자신의 음성을 들었을 때 느껴지는 낯섦이 있다.
 그러나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약간 다른 정도가 아니었다.
 슬슬 백우빈 머릿속의 의심은 점차 확신이 되어 갔다.
 의사가 백우빈과 사람들에게 말했다.
 “쓰러질 때 머리에 가해진 충격 때문에 일시적으로 모든 기억이 다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단은 안정된 상태로 상황을 지켜봐야겠습니다.”
 병실의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정적만이 흘렀다.
 
 ***
 
 고뇌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확인하고자 마음을 먹는 게 어려웠지 정작 확인하는 과정은 허무하리만치 쉬웠다.
 그냥 손거울을 부탁해서 들여다보기만 하면 됐으니까.
 ‘이런 일이 가능할 줄이야······.’
 백우빈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고 눈을 몇 번이나 깜빡거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꿈인지도 확인했고 시력에 문제가 있는지도 확인했다.
 모두 정상이었다.
 비정상이 있다면 자신의 몸뿐이었다.
 분명 정신을 잃는 순간까지 암거래상 백우빈이었으나 정신을 차리고 나니 NF corp.의 대표 한성욱이 되어있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결국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 가지 있었다.
 왼손 팔목에 채워져 있는 가벼운 팔찌.
 그 가운데 세공된 보석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그것이 번드리드의 눈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자세한 과정은 모른다.
 하지만 신비한 힘을 가진 이 번드리드의 눈이 무언가 작용했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었다.
 ‘나는 백우빈인 건가? 아니면 한성욱인 건가······?’
 사춘기 때에도 이렇게까지 심오한 정체성 탐구는 해 본 적이 없었다.
 ‘선택권은 내게 있어. 그러려면 일단은 자세히 알아야지.’
 백우빈은 어색한 목소리로 간호를 위해 병실에 대기 중인 NF corp.의 여직원을 불렀다.
 “저기요.”
 “예, 대표님.”
 깨어났을 때 보았던 중년 남성들은 회사의 임원들이었고 이미 돌아간 지 오래였다.
 여직원이 백우빈의 곁으로 다가왔다.
 “부탁하고 싶은 게 조금 있는데요.”
 “저는 대표님의 비서입니다. 안예슬이라고 해요. 안 비서라 부르시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녀는 늘 곁에서 함께했던 대표가 일시적인 기억 상실 증세를 보인다는 설명을 듣고 최대한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의연하게 대해 주고 있었다.
 백우빈은 고마움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네······. 안 비서님. 보고 싶은 자료들이 조금 있습니다.”
 안예슬은 아주 자연스럽게 지시를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백우빈이 그런 그녀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아······. 원래 대표님은 아무리 간단한 지시라도 꼭 받아 적으라고 하셨습니다. 습관이 되어서······.”
 “그랬군요. 그럼 우선은 나에 대한 자료들을 좀 부탁합니다. 기억을 찾기 위해 필요할 것 같아요.”
 누구로 살아가던 일단은 아는 것이 힘이었다.
 사람들이 기억 상실증이라고 오해하는 중이었지만 지금 백우빈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보면 훌륭한 방패였다.
 이 방패가 유효한 시간 동안에 자료들로나마 한성욱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백우빈의 부탁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거.”
 그가 가리킨 것은 팔찌였다.
 세공된 번드리드의 눈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 보석에 대한 자료도 좀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안예슬은 더 지시할 것이 있는지 잠시 기다렸다가 말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병실을 나섰다.
 “흐음······.”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백우빈은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며 생각했다.
 ‘솔직히 이런 삶도 조금은······.’
 살며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었던 것을 누리는 것도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
 
 어느 날 지각 아래에 숨어 있던 새로운 세계가 발견됐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미지의 영역 큐브.
 한성욱은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등장 이후 치열했던 큐브 개척 사업을 평정한 NF corp.
 회사 이름부터가 올인이나 다름없었다.
 Neo Frontier.
 즉 새로운 영역의 개척에 사활을 건 이 회사는 큐브를 탐사하며 그 안에서 얻은 부산물들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지구에 없던 새로운 소재와 물질들은 전혀 새로운 상품으로 가공되어 불티나게 팔렸다.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다음 급속도로 사업을 확장하며 단숨에 세계를 상대로 돈을 쓸어 담았다.
 
 ***
 
 ‘그러니까 지금 내가······. 전 세계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초갑부가 되었다는 말이지?’
 안예슬 비서가 가져다준 자료를 보면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가 없었다.
 드러난 공식적인 재산으로 비교를 해도 수위권이었고 드러나지 않은 사적인 재산을 두고 봐도 세계를 다퉜다.
 그야말로 돈 걱정이라는 단어가 사전에서 삭제되어도 될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이외에도 많은 설명이 있었다.
 
 [다소 예민함.]
 [늘 침착함.]
 [이성적이며 판단이 빠름.]
 [계산에 밝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함.]
 ······.
 
 공감하기 어려울 만큼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정보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무리 자세한 설명이 있어도······.
 결국 다 날아가고 머릿속에 남는 건 오로지 돈뿐이었다.
 이런 꿈같은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번드리드의 눈이었다.
 안예슬 비서가 가져온 자료에는 번드리드의 눈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안 비서.”
 “예, 대표님.”
 “그러니까······. 이 번드리드의 눈이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인가요?”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자료를 함께 살피며 어느 정도 비서와 관계가 편해지자 말도 편해지고 있었다.
 편안한 톤으로 대답한 안예슬 비서는 자료를 들여다보며 설명을 이었다.
 “번드리드의 눈은 여러 가지 에너지 자극에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번드리드라는 몬스터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주죠.”
 안예슬이 가져온 자료는 꽤나 방대했다.
 그럼에도 일목요연했고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더 쉽게 설명까지 해 주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었다.
 설명은 계속되었다.
 “번드리드는 1등급 위험 지역에서만 출몰하는 보스 몬스터입니다. 천상계 정도 되는 그룹이어야 상대가 가능하죠.”
 “천상계······?”
 세계 최고의 탐사그룹 이름을 듣자 백우빈의 머릿속에 전날 말을 다 잇지 못하던 앵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예슬은 기억 상실 증세로 천상계의 존재도 잊은 줄로 오해하고는 그것까지 설명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큐브를 탐사하는 실력으로 최고라 불리는 그룹입니다. 대표님이 직접 모으셨죠.”
 “세계 최고······.”
 “예, 그 정도는 되어야 상대가 가능할 만큼 강한 몬스터가 바로 번드리드입니다. 세 개의 눈 중 어떤 눈을 뜨고 있느냐에 따라 발휘하는 힘이 다르다고 합니다.”
 “호오······.”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눈에 깃든 힘이 달라 여러 힘을 사용하는 강력한 몬스터.
 안예슬은 그에 대한 감상까지 전해 주었다.
 “상대했던 탐험가들의 말에 따르면 한 마리지만 마치 세 마리를 상대하는 것 같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외부 자극에 완벽한 저항을 보여 줍니다.”
 “에너지 자극에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건 바로 그 말이었군······. 번드리드가 가진 힘의 원천이 바로 이 눈인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백우빈이 빼돌린 번드리드의 눈과 한성욱이 팔찌에 차고 있는 번드리드의 눈이 한 놈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가정을 세우고 나니 그림이 그려졌다.
 습격을 당해 뒤통수를 얻어맞은 순간 즉사······.
 동시에 백우빈의 영혼이 번드리드의 눈에 담겼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한성욱의 몸으로 옮겨온 것이다.
 바로 이 번드리드의 눈이 가진 능력으로!
 이건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 준 말도 안 되는 기적이었고 기회였다.
 ‘그래, 난 받아들이겠어.’
 백우빈은 한성욱이 되기로 했다.
 암시장의 비루한 암거래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세계적인 갑부로 올라서는 일이었다.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나는 이제부터 한성욱이다.’
 도망이나 다니며 물건을 빼돌리고 암시장에서 굴러먹던 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였다.
 그냥 청산만 되어도 환호성을 지를 텐데 단숨에 인생 역전에 신분 상승까지 되었으니 바랄 게 없었다.
 한 가지.
 가정했던 것 가운데 자신의 죽음이란 것이 다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하고 보니 껍데기만 한성욱일 뿐 자아는 그대로였으니 죽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회사 경영은 잘 모르지만 큐브에서 나온 물건 팔던 일은 어차피 하던 일이니까······. 조금 커졌다 뿐.’
 한성욱은 자신감을 고취시키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사실 조금 커진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암시장에서 자신을 찾는 고객들만 상대하던 것에 비교하면 이제 전 세계가 고객이었다.
 그럼에도 하던 일과 비슷한 계통이니 해 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음지에서 살았지만 일자무식에 순전 양아치는 아니었다.
 홀로 암시장을 누비는 실력만큼은 모두가 인정했다.
 결심을 세우자마자 필요한 것들을 찾았다.
 “안 비서.”
 “예, 대표님.”
 “적어요.”
 안예슬은 왠지 익숙한 모습에 흠칫 놀랐다가 이내 평소처럼 메모를 준비했다.
 한성욱이 필요한 것들을 읊었다.
 “우리 회사에 대한 자료, 내가 맡았던 일들, 임원들과 주요 보직에 있는 직원들, 주력 상품과 큐브 개척 사업에 대한 모든 자료를 가져다 줘요.”
 “예, 대표님.”
 한성욱은 기억 상실이라는 방패가 유효한 동안 신분 상승에 걸맞는 준비를 할 참이었다.
 
 ***
 
 한성욱의 퇴원이 결정되기까지 6주의 시간이 흘렀다.
 신체에 남은 의학적인 문제는 없었다.
 병원에서는 언제든 퇴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한성욱 본인이 머물기를 원했다.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 한성욱의 삶에 녹아들 만큼 공부가 될 때까지 기억 상실 증세를 방패로 내세우고 내실을 다졌다.
 전혀 다른 사람이 쌓아 둔 인생이다.
 나름대로 면밀한 공부가 필요했다.
 병원에 머무르는 동안 한성욱은 안예슬을 통해 많은 자료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것을 토대로 날이면 날마다 병문안을 오는 회사의 주요 인물들을 한 명씩 만나 관계를 쌓았다.
 눈치와 잔머리로 음지에서 살아남은 세월이 5년.
 성격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유연하게 대처해서 넘길 수 있을 만큼의 능글맞은 융통성도 있었다.
 덕분에 임원들의 신임과 응원도 제법 얻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급한 불은 끄면서 나갈 수 있어.’
 당연히 완벽한 한성욱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억 상실 증세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한성욱으로 크게 의심받는 일 없이 지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표님, 준비 마쳤습니다.”
 “나가죠.”
 대답은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한 달 반 만에 환자복을 벗어 던진 한성욱은 안예슬이 준비해 온 슈트를 입고 거울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동안은 잘 몰랐다.
 새로운 몸의 생김새보다 적응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화장실을 오가며 언뜻 거울에 비친 모습도 환자복에 꾀죄죄한 모습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깔끔하게 씻고 머리도 포마드로 정리해 넘겼다.
 그것만으로도 거울 속에는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굉장한 호감형의 훈남이었다.
 돈이 썩어 남아돌 만큼 많은 갑부라 그런지 슈트는 당연하게도 명품 맞춤 제작이었고 훌륭한 옷걸이 덕분에 소위 말하는 슈트발이 살아 있었다.
 한참 거울 속 모습을 감상하던 한성욱이 입을 열었다.
 “안 비서.”
 “네, 대표님.”
 “내가 올해 31살이라고 했죠?”
 암거래상 시절에 비해서 고작 2살 많아진 거라 세대 차이도 나지 않는 딱 좋은 나이.
 안예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결혼도 안 했고? 여자친구도 없었다고?”
 “결혼은 확실하게 안 하셨고 여자친구에 대한 건 제가 아는 한 그렇습니다.”
 “혹시 안 비서랑 나랑 뭐 없었어요?”
 “무슨······.”
 한성욱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려 버리는 안예슬을 보며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니······. 이상하잖아. 이렇게 생겼는데 왜 연애를 안 하고 살았지? 안 그래요?”
 “업무 때문에 워낙 바쁘셔서······.”
 “그럼 이제 일을 좀 줄여야겠네.”
 “푸흡······.”
 거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자아도취 중인 한성욱을 보며 안예슬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웃어요? 여자가 보기에는 좀 아닌가······?”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대표님 캐릭터가 약간 바뀌신 것 같아서요. 후훗.”
 “어······.”
 한성욱은 뜨끔했다.
 안예슬이 그 반응을 보고 혹시나 자신이 실수라도 한 것일까 염려해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나쁜 뜻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대표님은 워낙 공사 구분이 확실하시고 사무적인 면이 많으셨거든요.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 싶어서······. 실례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랬구나. 진짜 일 좀 줄여야겠네. 돈도 썩어 나는데 인간미도 어디서 사다가 장착 좀 하고 말이야.”
 “괜찮으시겠어요?”
 “어때요? 회사에 유능한 사람들 많던데.”
 한성욱은 씩 웃으며 놀란 마음을 다스렸다.
 다행스럽게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했을 비서 안예슬이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캐릭터의 변화를 캐치했다.
 앞으로도 조금만 조심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후······. 이제 진짜 시작이군.’
 마지막으로 거울에 시선을 던져 마음을 다잡았다.
 한성욱으로 사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괜히 멋지게 빼입은 것도 아니었다.
 새 시작의 첫 번째 시험대는 바로 퇴원 소식과 함께 몰려든 기자들을 상대할 기자 회견 자리였다.
 
 ***
 
 한성욱의 생김새가 낯설었던 이유는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에서 보기 힘들었던 탓이 컸다.
 그만큼 회사 일에만 몰두하던 유명인이 기자들을 만나는 몇 없는 기회였기 때문에 엄청난 수의 기자가 찾아왔다.
 사실상 입원과 퇴원이 이슈의 전부였다면 기자 회견까지 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한성욱이 쓰러진 날은 그룹 천상계와의 연락이 두절된 날과 같은 날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룹 천상계는 NF corp.가 모집하고 지원한 NF 소속의 탐사그룹이었다.
 여태 천상계 멤버들의 생사도 전해지지 않았고 그들이 속한 기업의 수장이 혼수상태로 입원한 상태였기에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벼운 인사와 기본적인 질문들이 오갔다.
 한성욱의 긴장감이 풀릴 즈음 한 기자가 물었다.
 “기억 상실 증세가 있다면 이전처럼 NF를 이끌어 나가시는 일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기억은 차차 돌아오고 있고 만에 하나 온전하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우리 회사 내에는 훌륭한 직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자 회견이 결정되고 이틀 내내 관련된 답변을 대본 외우듯 달달 외워 준비했기 때문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개척 사업을 지속하시면서 새로운 구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그룹 천상계를 직접 모집하셨습니다. 결국에는 사지로 밀어 넣었다는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래저래 형식적이고 평범한 질문들이 이어지던 와중에 다소 공격적인 질문이었다.
 병원에 있는 내내 한성욱이 되고자 NF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정을 들였다.
 자기 세뇌, 자기 최면 수준의 암시였던지라 이제는 진짜 내 것처럼 아끼게 된 상태였다.
 회사의 평판을 조준한 공격적인 질문에 심기가 살짝 불편해진 한성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느 매체의 누구시죠?”
 “천기누설 미디어의 김준호입니다.”
 “아, 예······.”
 한성욱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에 준비된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천기누설 미디어······.’
 세상이 예전 같지가 않다.
 소속과 직위를 물었는데 경제부 기자인지 연예부 기자인지도 밝히지 않는 상대는 당당했다.
 매체 이름부터가 알 만한 수준이었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1인 미디어 기자일 것이었다.
 분명했다.
 메이저 신문사나 방송사가 재벌 기업, 정치인들을 상대로 속 시원한 기사와 뉴스를 내놓지 않으니 생겨난 직종이다.
 그들은 진실을 전한다는 슬로건을 들고 1인 미디어 명패를 내걸며 온라인을 통해 나섰다.
 나름대로 공정하게 열심히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부? 아니, 대다수는 조금 더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기레기 시즌2가 될 뿐이었다.
 자극적이거나 속 시원할 만큼 통쾌한 소재를 쏟아 내야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에 질문의 수준도 딱 그 정도.
 아무리 거르고 걸러도 꼭 이렇게 회견장에 한, 두 명씩 끼어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상황을 파악한 한성욱이 말했다.
 “먼저 하나 묻죠. 그들이 간 곳이 사지였나요?”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넘게 연락 두절 된 상태입니다. 큐브 안이고 최종 관문 앞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은 땅을 사지라 합니다. 그래서 사지라고요?”
 “위험하다는 말로 다 표현 못 할 곳이 아닙니까? 질문하신 것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한성욱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애석하다는 듯 말했다.
 “당신은 지금 무사 귀환을 바라고 있는 멤버들의 가족과 전 세계의 지지자들에게 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말문이 턱 막힌 기자는 당황한 얼굴로 눈치만 살필 뿐 뭐라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한성욱은 평판을 노리고 공격한 것에 대해 역으로 뒤집어 평판을 노리고 대답을 해 주었다.
 미디어는 기업보다 더 평판에 목매달아야 하는 곳이었다.
 사실상 기자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상계 멤버들이 큐브 안에서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확인된 사실이 아니었다.
 희망이라는 것에 기대를 거는 예비 유족과 정렬을 응원했던 세계의 지지자들이 있기에 확인되지 않은 일을 사실인 것처럼 입에 담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 답답함을 못 이긴 멍청한 질문이 기회를 주었다.
 주도권을 잡은 한성욱이 말했다.
 “제가 깨어났을 때 그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들었고 가장 먼저 그들을 찾아내라고 지시했습니다.”
 진지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모두가 궁금했던 그룹 천상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니 모든 기자들이 노트북의 키보드를 맹렬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저도 그들이 무사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유감스러운 일이 생겼다면 당연히 우리 NF는 전적으로 책임지고 수습과 보상을 다 할 것입니다.”
 도의적인 책임을 다하겠다는 도덕적인 모습을 보여 준 뒤 단호한 표정으로 기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추측성 기사와 지라시는 단호하게 대처하겠습니다.”
 나름대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는 생각에 한성욱이 만족스런 미소를 잠시 머금었다.
 기자들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키보드를 더욱 열심히 두드렸고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아무래도 단호한 대처를 하겠다는 대목에서 힘을 주어 말했기 때문에 다음 질문의 수위라던가 방향성을 다시금 머릿속으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찰나의 정적을 뚫고 들어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었다.
 흰색 가운을 걸친 중년의 남성.
 그는 기자들이 앉은 자리에서도 한참 떨어진 회견장 입구에서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병원 관계자인가······?’
 기자 회견의 진행을 돕던 안예슬 비서는 한성욱에게 의중을 묻는 듯 시선을 보냈다.
 퇴원과 동시에 시작된 기자 회견이었다.
 편의성을 위해 병원의 한적한 공간을 빌렸는데 의사로 보이는 이가 손을 들고 있으니 호기심이 생겼다.
 한성욱이 고개를 끄덕이자 흰 가운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발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구원에서 생명 공학을 공부하는 김기철이라고 합니다.”
 “예, 박사님. 말씀하시죠.”
 “공교롭게도 대표님이 병원에 실려 오신 날 그룹 천상계에도 변고가 생겼습니다. 맞지요?”
 “그렇습니다.”
 “현재 NF가 확보하고 있는 번드리드의 눈을 하나는 대표님이 가지고 계시고 또 하나는 천상계의 멤버 리아가 무기에 세공하여 사용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지요?”
 “예······. 그렇습니다만······.”
 김기철 박사의 말은 큐브의 희귀한 부산물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해 봤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좋지 않은 뉴스가 동시에 터졌던 그날의 공교로움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구태여 이런 것들을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를 몰라 한성욱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기철 박사가 말을 이었다.
 “번드리드의 눈은 본래 세 개가 한 쌍입니다. NF에서 확보한 번드리드의 눈이 세 개일 텐데 알려진 건 두 개뿐이죠. 공교롭게도 번드리드의 눈을 소유한 두 사람에게 같은 날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고요······.”
 “······!”
 “다른 한 개는 어디에 있나요?”
 마지막 질문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관점의 해석이었다.
 번드리드의 눈을 소유하고 있던 이들에게 같은 날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한성욱은 새 몸으로 옮겨 오기 전의 상황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 발 떨어져서 재구성을 해보았다.
 ‘바로 그날 천상계가 정렬에 실패했고 연락 두절이 되었어······. 한성욱 대표는 스케줄 도중 쓰러졌고 나는······.’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그때의 끔찍한 기억.
 ‘미친놈들에게 습격을 당했지. 바로 그날······.’
 김기철 박사가 하고픈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세 개가 한 쌍으로 이루어진 번드리드의 눈.
 그것을 소지한 세 사람.
 그들에게 같은 날 변고가 생긴 것이다.
 한성욱에게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성욱이 당황스러운 기색을 재빨리 숨기며 말했다.
 “회사 내부 사정이고 대외비입니다.”
 “그럼 달리 묻겠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번드리드의 눈을 소지했거나 접촉한 이들 중 변고가 생겼던 그날 불미스러운 일을 당한 이가 있습니까?”
 김기철 박사는 확신에 가까운 표정과 목소리로 물었다.
 한성욱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었나 돌아보니 며칠 전 읽었던 자료가 떠올랐다.
 ‘영혼을 담는 그릇······. 생명 공학, 의료 공학 분야에서도 엄청난 관심이 있다고 했었지 참.’
 왠지 김기철 박사는 번드리드의 눈이라는 신비한 보석에 대해 회사 내의 그 누구보다 열심히 조사하고 공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과 날카로운 질문 때문에 기자 회견장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뭔가 자극적인 냄새가 풍긴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은 기자들의 눈빛이 변했다.
 한성욱은 안예슬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곳을 벗어날 때였다.
 
 ***
 
 한성욱은 퇴원이니 하루 즈음 더 쉬어도 된다는 이들의 만류를 거절하고 회사로 방향을 잡았다.
 적당히 자리나 지키며 한량처럼 살아 볼까 했는데 김기철 박사의 날카로운 질문 하나가 그의 발길을 이끌었다.
 차량은 시원하게 내달리며 송도에 접어들었다.
 이동하는 내내 입이 쩍 벌어지는 고가의 차량과 회장님 자리까지 경험해 본 한성욱은 그 편안함을 만끽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편안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 위험이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어······.’
 본사에 들어서며 안예슬이 도착을 알렸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회사 대표를 실은 차량은 굳이 주차장에 들어가지도 않고 곧장 회사 정문 앞에 섰다.
 기사가 재빨리 내려 문을 열어 주었다.
 한성욱이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는 본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큐브 개척 사업을 평정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돈을 쓸어 담는 글로벌 거대기업의 사옥이었다.
 저 멀리 옥상 부근에는 야간에 점등될 비행등까지 설치된 건물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 높네.”
 병원에 누워 머리로만 새 삶을 받아들이던 한성욱은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보고, 듣고 느끼며 새 출발을 실감했다.
 그렇게 건물을 감상하는 사이 로비에서 몇몇 이들이 문을 열고 한성욱을 반겨 주었다.
 환한 얼굴과 영어로.
 “퇴원을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병원 밥이 좋긴 좋은가 봅니다. 훤해지셨습니다.”
 가장 먼저 나온 두 사람은 각각 미국과 호주에서 온 해외사업부의 경영 담당 책임자들이었다.
 담백한 축하 인사를 건넨 이가 미국의 코빈.
 나름의 위트를 섞은 이가 바로 호주의 샘이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이들이 원래 한성욱과 각별히 친했고 병원에서 이미 한 번씩 만난 적이 있다는 점이었다.
 한성욱이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한국에서는 한국말로.”
 “흐흐, 가시죠.”
 주변 인물들을 파악하거나 회사 내부 사정, 경영에 대해 달달 외우는 건 가능했지만 입에 대 본 적 없는 꼬부랑말을 6주 만에 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병원에서 이들을 겪으며 이미 이들이 한국어 실력이 상당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샘이 한성욱에게 말했다.
 “회의실에 임원들과 각 파트 담당자들이 전부 모여 있습니다. 복귀하신 것을 축하하고 회사 현안에 대해 가벼운 설명이 있을 겁니다.”
 “대표님께서 자리를 비운 사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간략하게라도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회사 대표가 한 달이 넘는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필요한 자리였다.
 하지만 한성욱은 고개를 저었다.
 “스케줄 뒤로 미루죠. 먼저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서.”
 “예? 무슨······.”
 “연구소로 먼저 가 봅니다. 회의실 정리 좀 부탁해요.”
 한성욱이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내딛자 안예슬이 길을 잡았다.
 남겨진 코빈과 샘은 이미 모인 임원들을 달랠 생각에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
 
 본사 본관 건물 뒤편으로 마련된 별관은 전체가 연구소로 꾸며져 있었다.
 과학과 공학을 망라하는 최첨단 시설이었다.
 큐브에서 나온 모든 부산물들은 반드시 이 연구소를 거치게 되어 있었다.
 성분과 특징을 분석하고 연구해 어떻게 가공할지, 어떻게 팔아야 할지 판가름 나는 NF의 핵심 시설이었다.
 본사에 도착하자마자 한성욱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바로 기자 회견 자리에서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 때문이었다.
 한성욱을 맞이하러 나온 연구소장 장진우와 수석연구원 장진주 박사는 며칠이나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듯 피곤에 절은 초췌한 몰골이었다.
 4살 터울의 남매인 두 사람은 반갑게 한성욱을 맞이했다.
 장진우 소장이 한성욱에게 말했다.
 “무사히 퇴원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많이 걱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피곤해 보이시네요.”
 “하하······. 아직 큐브 안에 있을 천상계 멤버들을 추적할 방법이 쉽게 나오지를 않네요.”
 “바쁜 와중에 갑자기 찾아와 미안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이들이 초췌한 이유는 바로 천상계 멤버들을 찾아낼 방법을 함께 연구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장진주 박사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아마 기자 회견 중에 들으신 질문 때문에 연구소로 달려오신 거죠?”
 “맞아요. 눈치 빠르시네요.”
 장진주 박사는 예전부터 눈치 빠르기로 유명한 여자였다.
 주요 인물들의 프로필을 정리한 자료로만 봤었는데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고 나니 새삼 신기했다.
 한성욱이 진지한 목소리로 두 사람의 의견을 물었다.
 “번드리드의 눈과 불행이 겹친 것이 우연이길 바라지만 아닐 가능성에 대해 들었습니다. 두 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두 사람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일찍이 천재로 소문이 자자하던 남매였다.
 유통되는 큐브의 부산물들이 전부 이 두 사람의 손을 거칠 정도였으니 회사 관계자가 아니라도 이름과 명석함을 알 만큼 유명 인사들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장진주 박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요. 영자를 흡수하고 공유하는 성질이 있다는 건 이미 밝혀졌어요. 영자를 채워 두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면······. 스스로 영자를 충전하기 위해 기회를 만들 수 있어요.”
 “영자요?”
 눈치 빠른 장진주는 아직 한성욱이 기억 상실 증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캐치하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영혼이라는 걸 표현하는 과학적 용어라고 생각하세요. 생체 에너지를 그렇게 부르기로 했으니······.”
 “아······. 그러니 영혼을 영자라 한다는 거죠?”
 “아시잖아요. 과학자들이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녀의 설명에 한성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미신이라는 단어조차도 과학자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표현하는 과학적 용어였다.
 영혼이라는 분야는 여전히 비과학적 분야였으니 연구를 시작했으면 용어라던가 정의가 필요했을 것이었다.
 한성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설명 부탁합니다.”
 “영자는 쉽게 밝히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에너지고 번드리드의 눈은 그것을 항상 필요로 하는 보석이에요. 우리는 공백 상태를 배제하고 안정화 작업을 했지만······.”
 “했지만······?”
 “우리가 틀렸다면 번드리드의 눈이 스스로 영자를 원해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고 봐요. 신비한 힘을 가졌으니.”
 이런 가설을 뱉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장진주 박사는 미신이라는 분야도 인정할 만큼 넓은 시야를 가진 과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듣고 있던 장진우 소장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번에 천상계를 추적하기 위한 실마리로 생각한 것도 리아의 무기에 사용된 번드리드의 눈이었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결과가 좋지 않았군요.”
 “예,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할 것 같았죠. 장 박사의 가설이 사실일 수도 있으니 알아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번드리드의 눈을 누구보다 면밀하게 뜯어보고 살펴봤을 두 사람이 이렇게 난색을 표할 정도라면 확실히 변화가 있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만약 이들의 설명처럼 번드리드의 눈이 상황을 만드는 신기를 부린다면 당장 떼어 놔야 했다.
 ‘나에게 또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
 장진주 박사는 그 짧은 사이 또 자신의 가설에 몇 가지 상황을 정리한 듯 감았던 눈을 뜨고 한성욱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표님, 이리 주세요.”
 “예?”
 “그 팔찌요. 알아볼 게 있어요.”
 안 그래도 떼어 두려고 막 생각하던 참이었다.
 한성욱이 순순히 팔찌를 빼서 그녀에게 건넸다.
 장진주 박사가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지금 세운 가정에 사실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걸 소지하고 있는 건 위험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신 이걸 이용해서 다른 매듭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장진주 박사는 곧바로 작은 장치를 꺼내 그 안에 번드리드의 눈을 끼웠다.
 “공명 장치에요. 제 생각이 맞다면 분명 반응이 있을 거예요. 이렇게······.”
 그녀가 장치를 작동시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번드리드의 눈에 은은한 광채가 서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장진주 박사는 뛸 듯이 기뻐했고 장진우 소장은 토끼 눈을 떴다.
 “아아······! 다행이다. 대표님이 가지고 있던 번드리드의 눈이 바로 제3의 눈이었어요. 이게 중심이자 본체에요. 어쩌면 나머지 두 개를 추적할 수도 있어요.”
 “그간 그렇게도 공명에 반응이 없더니 변화가 생긴 건 이로써 확실해졌군요.”
 잃어버린 한 개의 눈을 회수하기 위한 시도가 꾸준했다는 걸 반증하는 말이었다.
 아직은 미스터리에 싸인 변화 때문에 추적을 면했다는 생각이 들자 한성욱은 뜨금하는 기분이었다.
 장치를 살피던 장진주 박사가 뭔가 께름칙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장치를 움직였다.
 한성욱에게 들이밀더니 다시 멀리 가져간다.
 그럴 때마다 번드리드의 눈이 뿜는 광채가 짙어졌다가 옅어지기를 반복했다.
 장진주 박사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이 녀석······. 대표님을 본체로 여기고 있어요.”
 “네? 뭐라고요?”
 “아······. 이건 좀 위험한데.”
 자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번드리드의 눈이 서로 간에 머금은 영자를 공유하려는 성질이 있다는 설명을 자료로 알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큐브의 최종 단계에 들어가 있다던 천상계의 리아에게 이동할 수도 있었는데 한성욱의 몸으로 들어오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본체.
 장진우 박사가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여 설명했다.
 “지니고 있으면 위험하다고 했던 장 박사의 말을 제가 정정하겠습니다······. 떼어 두시면 위험할 것 같군요.”
 이번에는 장진주 박사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그녀가 장치에서 팔찌를 꺼내 다시 내밀었다.
 “일단 팔찌를 다시 끼세요.”
 “위험한 거면 멀리 둬야죠!”
 “아니요. 이미 대표님의 몸과 동기화가 되었다고 생각해야 해요. 분석이 끝날 때까지 곁에 두세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한성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눈치 없는 바보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장진주 박사의 표정은 말하지 않은 무언가를 머금고 있었다.
 암시장에서 서로를 속이고 이득을 취하려고만 하는 이들을 상대했던 경험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장진주 박사가 이득을 위해 속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숨기고 있는 건 확실하다.
 한성욱이 단호하게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이 있는 건지 말해요. 당장.”
 “하아······. 세 개가 한 쌍으로 이루어진 번드리드의 눈은 서로 영자를 공유하는 게 가능해요······. 만약 이것들이 대표님을 본체로 정했다면······. 더 뛰어난 영자를 머금었을 때 본체의 영자를 바꿔 버리려 할 수도 있어요.”
 한성욱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영자는 영혼이라 했다.
 영혼을 바꿔 버리려 할 수도 있단다······.
 어쨌거나 이 몸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아직 남은 것이다.
 장진우 소장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기능에만 사로잡혀 이런 리스크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동기화인가 뭔가 풀어 버릴 방법은 없나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알아내려면······.”
 어려운 말을 꺼내는 것처럼 잠시 뜸을 들인 장진우 소장.
 그가 말했다.
 “세 개의 눈을 전부 모아야 합니다. 한 쌍을 다 모아야 안정화가······. 결국은······. 큐브로 가야겠네요.”
 큐브로 가야 한다는 말.
 그 안에 담긴 속뜻을 못 알아들을 리 없는 한성욱이었다.
 “추적은 가능하나······. 추적을 위해 이 번드리드의 눈이 필요하고······. 나는 이 녀석과 떨어져서는 안 되고······.”
 “잃어버렸던 번드리드의 눈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어디로 빼돌렸건 지구에 있을 테니. 문제는 큐브로 향한······.”
 “그걸 찾으려면 내가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죠?”
 장진우 소장이 낭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입이 떡 벌어졌다.
 큐브의 최종 관문에 있을 번드리드의 눈.
 그것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가야 해?’
 얼떨결에 회사의 대표에서 탐사그룹 리더로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 또 다른 이름. 천상계 지갑전사
 
 NF의 핵심 인사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현안 브리핑을 취소하고 연구소에서 한성욱과 장진우 소장, 장진주 박사가 나눈 이야기가 모두에게 전해졌다.
 숨길 만큼 작은 일이 아니었다.
 번드리드의 눈이 만든 알려지지 않은 변화.
 자세히 알아내고 더 이상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세 개의 눈을 전부 모아야만 했다.
 무조건 회사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방법을 짜내려고 했다.
 엄청난 회사를 일으킨 거인이긴 하지만 한성욱은 경제인일 뿐 탐사그룹에 들어갈 그 어떤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책 회의를 거듭해 봐도 제3의 눈을 가진 한성욱이 직접 큐브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리아가 가져간 번드리드의 눈을 추적하기 위해 다른 번드리드의 눈이 필요했고 그것은 한성욱이 지니고 있었으며 몸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보다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 또 어디 있을까.
 회사의 가장 큰 자원인 번드리드의 눈을 회수하고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인사인 한성욱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회사 전체가 달려드는 이유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대표가 복귀한 이 시점에 그룹 천상계 사건을 두고 제대로 된 수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에는 억눌려 왔던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대중의 시선도 피하기 힘든 상황.
 모두가 힘들게 의견을 모았다.
 번드리드의 눈과 연락이 두절된 천상계 멤버들을 찾고 회수할 때까지 한성욱이 탐사그룹을 직접 지휘하는 것으로.
 큐브에 능력자가 주류인 것은 단순히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일반인이라고 탐사그룹에 포함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위험 부담만 감당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한성욱은 그것을 감당하기로 했다.
 한성욱의 큐브 탐사가 확정되자 준비해야 하고 처리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다.
 “대표님, 대외적으로는 각별했던 그룹 천상계 멤버들을 직접 찾아내기 위해 나선 것으로 처리하려 합니다. 근 시일 내에 보도 자료가 만들어질 겁니다.”
 “천상계 멤버들에 준하는 능력자들을 수배 중입니다. 대표님이 이끌게 될 그룹에 포함될 겁니다. 그룹의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큐브 탐사에 시간을 쏟으시는 동안 회사 일을 담당할 전담팀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입니다. 완성되는 대로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시작하시기 전에 이수해야 할 탐사 관련 교육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스케줄 겹치지 않도록 조정해 두겠습니다.”
 “암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번드리드의 눈에 대한 추적이 시작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지부들에 적극 협조 요청을 해 둔 상태입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유능한 직원들이 체계적으로 움직이며 필요한 것들을 살뜰히 챙겼다.
 할 일이라곤 그들이 가져오는 보고서를 보고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수정해 주거나 아니면 고개를 끄덕이며 잘했다고 칭찬이나 해 주는 일이 전부였다.
 ‘빌어먹을······. 이 편하고 좋은 일을 두고 큐브에 직접 가야 하다니······. 이럴 바에는 그냥 암시장에 있는 게 나았어!’
 괜히 번드리드의 눈을 원망했다.
 연구소에서 제3의 눈이 하는 역할과 본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골똘히 생각해 본 한성욱은 의아한 부분을 찾았다.
 ‘이런 거대한 회사를 일으킨 원래 주인보다 내가 더 뛰어난 점이 도대체 뭐가 있었을까?’
 장진주 박사의 말에 따르면 번드리드의 눈은 본체에 깃든 영자보다 더 뛰어난 영자를 찾게 되면 바꾸려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미 본체로 지정된 한성욱의 몸은 한 번 교체당한 상태.
 한성욱이 혼수상태였을 뿐 사망 선고가 내려지지 않았으니 교체당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했다.
 ‘그럼 내가 뭔가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소린데······.’
 단순히 당시에 영자가 가진 생명력이 더 뛰어났던 걸까?
 구체적으로 뭐가 뛰어났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눈치와 임기응변 따위는 자신 있었다.
 ‘이번에도 살아남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번드리드의 눈을 모아야겠지······. 교체당하기 전에······.’
 지금까지는 적당히 도망치거나 숨으면서 기회를 노리는 방법이 먹혔다면 이제부터는 정면 돌파 외에는 길이 없었다.
 번드리드의 눈이 다른 뛰어난 영자를 찾기 전에 한 자리에 모아 안정화를 시켜야 했다.
 하나씩 곱씹으며 자꾸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있는 한성욱을 찾아온 이가 있었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축 늘어져 있던 한성욱이 자세를 고쳐 잡고 안으로 불렀다.
 “들어오세요.”
 “대표님, 장진우 소장님 오셨습니다.”
 “네, 들여보내요.”
 비서 안예슬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나가자 장진우 소장이 들어왔다.
 그는 태블릿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무언가 영상을 재생시킨 뒤에 내게 보여 주었다.
 “일단 보시죠.”
 재생된 영상 안에는 번드리드의 눈이 세공된 팔찌가 실험대 위에 올라 있었다.
 화면 속 장진주 박사가 무슨 버튼을 누르자 번드리드의 눈 위로 화염이 쏟아져 내렸다.
 “헉······.”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화염이 쏟아지는 순간 번드리드의 눈에서 광채가 일더니 푸른 막이 형성되었다.
 푸른 막은 완벽하게 화염을 차단했다.
 장진우 박사가 입을 열었다.
 “기능은 그대로인 걸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성욱에게 팔찌를 건넸다.
 한성욱은 팔찌를 건네받고 팔목에 차면서 시선을 화면에서 떼지 않았다.
 실험은 여러 가지가 이어졌다.
 액체 질소를 들이부어도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가 방출되며 스스로를 보호했고 프레스 기계가 내려와도 에너지 막이 튕겨 냈다.
 작은 아크릴 상자 안에서 이루어진 폭발 실험에서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고 기관 소총으로 집중포화를 날려도 탄막이 에너지를 뚫지 못했다.
 한성욱이 떡 벌어진 입을 겨우 다물었다.
 “이게······. 그 말이었구나······. 여러 에너지에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그렇습니다. 과학적으로는 다른 의미도 있지만 이건 순전히 대표님을 보호하기 위한 호신 장비였죠. 해당 기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방어적 에너지 방출을 극대화했습니다.”
 한성욱은 이제야 이 위험한 물건을 회사의 대표에게 족쇄 채우듯 채운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기능에만 몰두했다는 장진우 박사의 말이 와닿았다.
 영자가 뒤바뀔 위험성을 미리 예견하지 못했다고는 하나 팔찌로 만들어 굳이 소유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는데 이런 기능이라면 수긍이 되었다.
 큐브 개척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한 글로벌 기업의 수장이니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 최우선 아니겠나.
 장진우 소장이 말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치로 안정화 작업까지 끝내 뒀습니다. 큐브 안에 가셔도 위험이 크게 줄어들 겁니다. 대표님.”
 “고맙습니다. 소장님.”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어느 기레기가 말했던 것처럼 사지에 직접 걸어 들어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 걱정이 쌓이고 쌓이는 중이었는데 이 정도의 아이템이 있다면 부담이 크게 줄었다.
 오전에 받아 본 보고서에는 천상계 멤버들에 버금가는 새로운 멤버들을 모으고 있다고도 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들은 모르는 한 가지를 또 알 수 있었다.
 ‘그날, 내 뒤통수를 후려갈긴 건 번드리드의 눈······. 이 녀석이었겠구나.’
 화염, 액체 질소, 프레스, 폭탄, 총알도 어찌하지 못하는 번드리드의 눈을 안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일개 야쿠자가 휘두른 방망이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다?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었다.
 번드리드의 눈이 직접 만든 일이라고 확신했다.
 점점 한성욱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
 
 순서상의 문제였다.
 처음에는 야쿠자에게 기습을 당해 사달이 벌어지고 번드리드의 눈도 놈들에게 빼앗겼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님을 깨닫고 음지에 있어야 할 번드리드의 눈이 어디로 갔을지 걱정했다.
 연구소에서 추적 장치를 만들었다.
 회사의 은밀한 일을 하는 사업지원부 직원들이 끈질기게 추적해서 결국 번드리드의 눈을 찾아냈다.
 결과는?
 생각했던 것처럼 야쿠자들이 가지고 있었다.
 ‘놈들이 나를 친 게 아니라 치러 왔다가 쓰러진 나를 발견하고 가져간 거였군.’
 한성욱은 안심했다.
 사소한 순서가 바뀌었을 뿐 소재를 파악한 이상 회수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나저나 사업지원부라······. 실력 좋은 흥신소 인력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허허.’
 그렇다고 모든 사업지원부 소속 직원들이 은밀한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오직 본사에만 있는 사업지원부 제8팀.
 그들은 회사 대표인 한성욱의 지시라면 그 어떤 일도 거뜬하게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암시장, 야쿠자, 음지······.
 온갖 위험한 단어들이 붙어 있는 그곳에 직접 갈 필요 없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꽤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한성욱의 입장에서는 번드리드의 눈 세 개가 전부 회사에 있다고 외부에 알려져 있었으니 당연히 경찰의 협력을 기대할 수도 없었는데 참 다행이었다.
 ‘이참에 암시장으로 빠지는 루트를 다 차단해야겠어. 이미 내 회사가 되었는데 손해 볼 수는 없지.’
 과거의 경험을 이용하면 더 이상 잃어버리는 부산물 없이 회사를 더 키울 수 있었다.
 ‘게다가 빼돌리는 놈들이 결국 하는 짓을 생각해 봐. 부산물 가져가서 불법으로 무기나 만들고 말이야.’
 이번에 찾아낸 야쿠자들은 무기 만드는 것에 혈안이 된 놈들이었다.
 그걸 중국으로, 중국에서 다시 전 세계로 뿌려지는 루트까지 알고 있었다.
 입장이 바뀌었으니 능력이 된다면 뿌리를 뽑아야······.
 ‘아니지. 잠깐만······.’
 한성욱이 멈칫했다.
 회장님 의자에 드러누워 시간이나 때우다 보니 문득 팔에 차고 있는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굉장한 호신 도구를 가지고 있는데 굉장한 무기 하나 즈음 있어도 되잖아? 큐브에 들어가서 산책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인데······.’
 번뜩이는 생각이 떠오른 한성욱이 곧바로 밖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안 비서.”
 “네, 대표님.”
 부르자마자 안예슬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성욱이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나가 있는 사업지원부 8팀 연락되나?”
 “물론입니다.”
 “위치 확보하고 기다리라고 전해요. 내가 직접 간다고.”
 “예, 알겠습니다. 차량 준비시킬까요?”
 한성욱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안예슬이 밖으로 나갔다.
 그간 궁금했던 암시장의 더 깊숙한 곳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
 
 연락을 받고 간 곳은 부산이었다.
 야쿠자들이 빼돌린 부산물들을 밀항선에 실어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고까지 받았다.
 배가 떠나기 전에 덮치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항구 근처에 도착하니 8팀 직원 하나가 마중을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감시는 잘하고 있죠?”
 “예, 인원 파악도 끝났고 컨테이너도 확보해 뒀습니다.”
 “번드리드의 눈은 찾았나요?”
 “이번 한국행 책임자로 보이는 녀석이 직접 가지고 있습니다. 안주머니에서 꺼내는 걸 확인했습니다.”
 한성욱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꼼꼼하게 일 처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팀이 있으면서 여태 자신을 추적하지 못한 것을 돌이켜 보면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물건 찾으러 가는데 시간 끌 필요 있나? 바로 가죠.”
 “네, 대표님. 앞장서겠습니다.”
 직원이 안내한 곳은 항구 근처의 허름한 여관 건물이었다.
 한국에 들어온 야쿠자 일행 전원이 묵고 있었는데 그 수가 열다섯이나 된다고 했다.
 여관 건물을 가운데 두고 팔방으로 흩어진 8팀 직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감시를 계속하고 있었다.
 “바로 들어갈 테니 다들 불러요.”
 “네, 대표님.”
 직원이 무전기로 상황을 알렸고 곧바로 이번 일에 파견된 8팀 직원들이 전부 모였다.
 한성욱은 이런저런 이야기 없이 앞장서 걸었다.
 여관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에 망설임도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다.
 상황이 발생하면 8팀 직원들이 움직일 테고 여차 잘못해 위험에 노출되어도 번드리드의 눈이 세공된 팔찌가 있기에 든든했다.
 여관 입구에 다다랐을 때.
 한성욱이 다시 한번 은은하게 광채를 내뿜는 팔찌를 발견했다.
 잃어버린 다른 한쪽 눈이 근처에 있다는 걸 녀석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괜히 흥분되잖아?’
 든든하게 믿는 구석이 생기니 사람의 태도가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끼며 한성욱이 여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입구 앞에 앉아 지키고 있던 야쿠자 하나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何だ? お前ら.”
 “흐흐······.”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뱉는 야쿠자를 보며 한성욱이 씩 웃다가 말했다.
 “일본어 할 줄 아는 사람 있으면 쟤한테 전해요. 당장 대가리 데리고 나오라고.”
 총알도 막아 주는 번드리드의 눈.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사업지원부 8팀 직원들까지.
 지금 이 순간 한성욱은 겁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
 
 여관 대운장 4층에 있는 403호실.
 커다란 퀸 사이즈 침대와 대형 벽걸이 TV가 구비된 이 방은 허름한 대운장 안에서 가장 크고 좋은 방이었다.
 그 방 한가운데 검은 양복을 입은 야쿠자 세 명이 한성욱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책임자는 깔끔한 상태였지만 양옆에 앉은 부하들은 반 피떡이 되어 있었다.
 얼굴이 멀쩡해서가 아니라 책임자는 묘하게 다른 생김새와 분위기가 있었다.
 한성욱이 책임자로 보이는 가운데 사내에게 말했다.
 “일본 사람 아니죠?”
 “지금 그딴 게 중요한가?”
 놀랍게도 책임자는 유창하게 한국말을 구사했다.
 굴욕감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지만 한성욱의 기억 속에는 없는 놈이었다.
 ‘비즈니스보다는 뒤처리나 수습을 하는 놈이군.’
 음지의 생리는 누구보다 빠삭하게 알고 있으니 아마 정확할 것이었다.
 “그날 암거래상이 죽었다는 소식 듣고 온 것도 아닐 텐데······. 아무리 야쿠자라고 물건 회수 할 청소부들만 보내진 않았을 거고. 머리 쓰는 분들은 이미 돌아갔나 보죠?”
 “이 개새끼가······!”
 흥분하는 반응을 보니 정확하게 짚은 것 같았다.
 비즈니스 담당자는 함께 왔다가 먼저 돌아간 것이다.
 애초에 이들이 조직에서 파견될 때는 거래하던 암거래상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정보 따위 없었을 테니까.
 한성욱이 등 뒤를 든든히 지키고 서 있는 8팀의 팀장 신민호에게 말했다.
 “이 자랑 단둘이 이야기 좀 하고 싶으니 피떡 둘 데리고 자리 좀 비워 줘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신민호는 위험한 야쿠자와 단둘이 남게 될 한성욱을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그가 찬 팔찌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
 순식간에 방안은 정리가 되었고 한성욱은 책임자와 단둘만 조용히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한성욱이 침대 위에 걸터앉아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야.”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나마 존대라도 해 주던 한성욱이 돌연 반말과 함께 분위기가 180도 바뀌자 책임자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렇다고 뭘 할 수는 없었다.
 손이 뒤로 묶인 채 무릎이나 꿇고 있는 실정이었으니까.
 한성욱이 그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깡패야 하고 부를 수는 없잖아.”
 “이 씨발 새끼가······! 고작 회사 직원들 좀 부린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지? 뒤지고 싶어?”
 “그 회사 직원들한테 두드려 맞은 부하들 때문에 네가 지금 그러고 있는 거 아니냐?”
 반박할 수도 없는 사실이라 무릎을 꿇은 채 얼굴만 울긋불긋 분을 삭이는 중이었다.
 한성욱은 다시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착각하나 본데······. 우리 회사 이미지 때문에 직접 움직이고 있을 뿐이야. 물건 도둑맞았던 것 맞다 인정하고 널 지금 당장 경찰에 넘길 수도 있어. 그렇게 할까?”
 “빌어먹을······.”
 “경찰이 개입하면 네 선에서 절대 안 끝나. 알잖아?”
 맞는 말이었다.
 숨겨 둔 큰 사업까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직에서는 무조건 꼬리를 자르고 뒤탈 없이 처리할 것이었다.
 아쉬운 건 자신이라는 걸 깨달은 책임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카토······.”
 “일본 이름 말고 새끼야. 한국 놈이.”
 “진짜 적당히······!”
 “경찰 불러?”
 스마트폰까지 꺼내서 협박하는 한성욱.
 그는 결국 이를 악물며 한국 이름을 털어놓았다.
 “김만식이오.”
 “큭큭큭, 정겹고 좋네. 만식아.”
 한성욱 김만식을 보며 다시 한번 분위기를 바꾸었다.
 매우 진지한 표정과 진지한 목소리로.
 “궁금하기는 하다만 네가 왜 일본까지 가서 깡패 짓을 하고 있는지 묻지는 않을게. 예전부터 조폭이랑 야쿠자가 손잡는 일이 많다고 들었으니까.”
 “할 말만 빨리하시고 갑시다.”
 “사무실 덮쳤을 때 쓰러져 있던 암거래상. 어떻게 했냐?”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지······?”
 “묻는 말에나 대답해.”
 김만식은 도대체 한성욱이 어디까지 알고 온 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외진 곳에 인적도 드문 방치형 컨테이너 창고 단지 지하에서 처음 암거래상을 찾았다.
 죽은 지 며칠 된 것 같은데도 그대로 있었다.
 놈에게 돈이건 물건이건 받아 오라는 조직의 명령을 받고 왔으니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어 직접 처리했다.
 그런 상황을 한성욱이 마치 알고 있듯 이야기를 하니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암거래상을 죽였다는 누명 자체는 벗을 수 있는 기회였다.
 “먼저 일본으로 돌아간 다른 조직원들이 처리했소. 뒤탈 생기지 않게 포장해서 바다에 던져 줬을 거요.”
 한성욱이 이야기를 듣고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뉴스 한 자락 없더니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슬퍼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슬퍼하지 않았다.
 이미 한성욱으로 사는 새 인생을 받아들인 뒤였다.
 ‘남의 물건이나 빼돌려 양심과 함께 팔던 인생이었어. 이 정도면 화장해서 바다에 뿌린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자.’
 과거의 흔적을 잠시 확인한 한성욱은 다시 충실해야 할 현재로 돌아왔다.
 “그럼······. 아마도 네 전공은 아니겠지만 비즈니스 이야기로 넘어가자. 똘마니라 해도 한국까지 파견해서 물건을 맡길 정도의 위치인데 생판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겠지?”
 “뭐가 또 궁금하신데?”
 “너희 무기 만든다며? 중국으로 팔아넘기고 세계에 뿌리는 걸로 돈 좀 만지는 걸로 아는데.”
 “허······.”
 김만식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밀항 준비가 끝나고 배만 기다리면 되는 이때에 이들에게 덜미가 잡힐 것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는데 한성욱이 조직의 은밀한 일까지 알고 있으리란 건 더 생각지 못했다.
 겉으로야 일반적인 야쿠자였고 큐브의 부산물을 이용한 무기 사업은 드러나지 않도록 숨기고 숨긴 일이었다.
 암거래상 몇 명 정도가 은밀하게 알고 있는 극비였다.
 부산물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그 용도가 셀 수 없이 다양했기 때문에 단순히 암시장을 이용한 것만으로 무기 사업까지 넘겨짚을 수도 없었다.
 상대는 확실하게 알고 온 것이다.
 김만식이 물었다.
 “무기에 관심이 있는 거요?”
 “응.”
 한성욱이 담백하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안간 무기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하니 미덥지 못한 듯한 얼굴의 김만식에게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사업이 커지면 이래저래 보는 눈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아. 이미지 관리도 해야 되고······. 돈 많이 벌면 많이 번다고 욕먹는 데 쓰면 또 흥청망청한다고 지랄들이야.”
 “그래서?”
 “눈치 볼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으니 우리 회사는 무기 사업에 아예 손도 못 대고 있잖아.”
 이 정도 말했는데도 김만식은 여전히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멍청한 두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전공 분야가 아니니 말이 안 통한다 싶어 손을 저었다.
 “됐다. 주먹 쓰는 게 다인데 너랑 뭔 말을 하겠냐. 사업 이야기는 브레인이랑 할 테니까 자리나 한번 만들어.”
 “자리를 만들면 어쩌시려고?”
 “너희 물건 한번 봐야지. 어차피 다 우리 부산물 훔쳐다 만든 건데 구경은 괜찮잖아? 내 마음에 들면 혹시 알아? 우리 회사에서 팔아 줄 수도 있고. 아님 내가 살 수도 있고.”
 김만식은 다른 건 다 못 알아들었지만 마지막 말 하나만큼은 귀에 제대로 담았다.
 무조건 문책을 당할 수밖에 없는 지금 상황에서 어쩌면 문책을 피할 마지막 기회라고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김만식을 보며 한성욱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
 
 그날 밤.
 항구에 서서 멀리 바다를 내다보는 한성욱에게 안예슬이 다가와 검은 봉지를 건넸다.
 한성욱이 그 안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안 비서.”
 “예, 대표님.”
 “일본이 어느 쪽이지? 저쪽인가?”
 “맞습니다.”
 한성욱은 일본 방향을 확인하고는 그쪽으로 서서 들고 있던 소주를 바다 위에 콸콸 부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미련도 함께 흘려보낸다. 안녕.’
 한성욱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마지막으로 과거를 정리했다.
 
 ***
 
 한성욱은 일본까지 직접 움직였다.
 계기를 만들었으니 부하 직원을 적당히 골라 보내도 될 일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직 아랫사람을 부리는 게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면도 있었지만 큐브 안에서 쓸 무기를 먼저 구할 생각이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김만식을 앞세웠고 8팀장 신민호와 팀원 한 명까지 두 명만 데리고 왔다.
 명목상 수행원이었으나 보디가드나 다름없었다.
 야쿠자들 본거지에 가야 하는 일이었다.
 굳이 위험한 곳에 데려올 필요는 없었기에 안예슬에게는 쉬라고 일러두었다.
 김만식이 앞장서 도착한 곳은 오사카와 고베 사이에 위치한 대형 캬바쿠라였다.
 가게 안쪽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 끝에 다다르자 잘 꾸며진 응접실이 나왔고 그곳에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날카롭게 생긴 30대 사내가 한성욱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어서 오세요. 나마구치 코스케입니다.”
 “한성욱입니다.”
 나마구치의 말과 한성욱의 말을 사이에서 통역사가 실시간으로 통역을 해 주었다.
 한성욱은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으며 엄포를 놓았다.
 “회사에서 내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허튼수작 부리면 당신들 조직은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암시장의 일을 문책하지 않으신다는 말에 기꺼이 초대했습니다. 믿지 않았다면 이리 모시지도 않았을 겁니다.”
 “좋습니다. 시간 끌지 말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죠. 내가 혹할 만한 물건을 좀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그 이야기도 미리 전해 듣고 준비를 했습니다.”
 나마구치가 손짓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응접실 안으로 여러 물건들이 들어왔다.
 총 네 개의 이동식 테이블에 놓인 무기들이 한눈에 보기에도 수십 개가 넘었다.
 “무엇이 취향이실지 몰라 두루두루 준비했습니다.”
 “많이도 해 먹었네요.”
 “대신 퀄리티로 보상하겠습니다.”
 “어디 한번 보죠.”
 속을 긁는 한성욱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김만식과 다르게 나마구치는 여유 있게 대응했다.
 주먹 쓰는 사람과 머리 쓰는 사람의 차이였다.
 그는 테이블에서 작은 구슬처럼 생긴 것을 집어 들었다.
 “큐브에서 나온 화염석 가루와 트레버의 뼛가루를 섞어 만든 수류탄입니다. 크기는 이렇게 작지만 다이너마이트 20개 분량의 폭발력은 거뜬히 뛰어넘는 명품이죠.”
 “나는 어디 테러하러 다닐 생각은 없습니다. 폭발물은 빼죠. 필요 없어요.”
 나마구치가 고개를 끄덕이고 부하들에게 손짓을 하니 폭발물이 실려 있는 테이블이 빠졌다.
 남은 테이블에서 나마구치가 집어 든 것은 잘 벼려진 검이었다.
 “큐브 광석으로 만든 검입니다. 지구의 그 어떤 검보다 예리하고 튼튼하죠. 날이 상하지 않으니 손질도 필요 없어요. 카룸 정도 되는 몬스터의 갑피도 뚫을 수 있죠.”
 “당신네들 사무라이 정신은 존중합니다만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검을 들고 직접 움직입니까? 근접 무기도 빼죠.”
 이번에도 나마구치의 신호에 테이블 두 개가 빠졌다.
 남은 테이블은 하나.
 그 위에는 총기류가 잔뜩 준비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자신 있다는 듯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마구치가 물건을 하나 들었다.
 “역시 무기 하면 총이죠?”
 “그건 또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
 “일렉트리아의 코어로 만든 총입니다. 처음에는 전기 충격기 정도로 만들려고 했는데······.”
 말끝을 다 맺지 않은 나마구치가 총을 저편 벽에 겨누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지이이이잉.
 
 작은 탄환이 발사되는가 싶더니 벽에 전기장이 펼쳐졌다.
 응접실 전체가 누전이라도 된 듯 전자 기기와 전등이 꺼졌다가 켜지기를 반복했다.
 “와우······.”
 절로 감탄사가 뱉어졌다.
 불이 돌아오자 나마구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전기를 탄환처럼 쏠 수 있게 되었죠. 게다가 적절히 충전만 해 주면 총알 걱정 없이 무한정 쏠 수 있어요.”
 “진짜 괴물 같은 건 여기서 다 만들어지고 있었군.”
 한성욱도 물건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가 입에 걸렸다.
 이참에 저 테이블 위에 놓인 모든 총기를 다 시험해 보고 싶어졌음은 물론이었다.
 
 ***
 
 모든 총기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한성욱이 내놓은 한마디는 나마구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틀 줄 테니 그거 전부 우리 회사 연구실에 가져다 놔요. 어차피 어디로 빼돌리던 밀수입인데 그 정도는 가능하죠?”
 “전부······? 전부 말입니까? 게다가 이틀이라니······.”
 “안 돼요? 안 되면 그냥 일어나고.”
 “가능합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틀이라면 너무 촉박해서 밀항선을 섭외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요점만 이야기합시다.”
 “매우 큰 돈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이 상품 전부라니······. 그것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인······.”
 한성욱이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당연한 소리였다.
 밀수입이라는 과정 자체가 도통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여러 가지 부산물을 이용해 특징적인 화력을 장착한 무기들이 적어도 20정이었다.
 일반 총기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이런 특별한 무기라면?
 겉으로 드러내서 팔지도 못하는 음지의 무기라면?
 가격은 곱절로 올라가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바닥에서 구른 세월이 있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한성욱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물었다.
 “현금만 받겠죠? 해외에 존재하는 차명 계좌에 이체를 받거나.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만······.”
 나마구치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눈앞의 상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사람 중 하나라는 걸 말이다.
 어쩌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상상하기도 힘든 그 거액을 지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욕심이 생겼다.
 ‘아니, 확실해. 대충 계산해도 150억 가까이 되는 돈이지만 이 사람은 웃으며 지불할 거야. 단 한 번의 거래에 그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가격을 조금만 더 올리면······.’
 나마구치의 욕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
 한성욱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럼······. 이제 흥정할 시간이군. 칼자루 쥔 사람이 먼저 제안하는 게 좋겠죠?”
 “대표님, 무기 거래에 흥정이라니······.”
 “어차피 불법으로 하는 일에 정찰제도 아닐 거면서 뭘 그렇게 딱딱하게 굽니까?”
 “말씀이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공정위에 한번 전화해서 물어볼까요? 고베 야쿠자들이 암시장에서 빼돌린 부산물로 만든 무허가 무기들이 정찰제 가격으로 거래되는 게 맞는 건지.”
 다리를 꼬고 앉아 막무가내로 말을 뱉고 있지만 나마구치는 말끝에 작은 토를 달아 볼 수도 없었다.
 진짜로 칼자루는 그가 쥐고 있었으니까.
 한성욱이 나마구치의 눈에 깃든 망설임을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그냥 생각이 바뀌었다고 치고 경찰을 불러 볼까요? 당신들은 전부 잡혀 들어갈 거고 물건들은 한국으로 압수되겠죠. 그쪽보다 한국 정부와 거래하는 게 조금 더 싸게 먹힐 것 같기도 한데요.”
 “그러지 않으실 거 압니다······.”
 한성욱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막 내뱉는 말은 아니었다.
 나마구치 역시 NF 정도 되는 기업이라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길들이기가 어느 정도 되었다는 판단인지 한성욱이 이유를 들어 조목조목 따졌다.
 “값을 깎고 싶은 이유 첫 번째. 원래 내 물건이었는데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호의를 보였음에도 욕심을 부린 것.”
 “죄송합니다.”
 “두 번째. 감히 NF의 수장인 내가 직접 왔는데 당신네들 두목이 아니라 똘마니가 나왔다는 것.”
 “죄송합니다······.”
 “세 번째, 이틀이라는 기한을 줬는데 저 물건들이 아직도 내 눈앞에 있는 것.”
 “죄송······. 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내 앞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꺼낸 것.”
 “······.”
 나마구치는 그냥 고개를 떨궜다.
 야쿠자와 일하지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었다.
 협상에서의 주도권 자체가 없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성욱은 늘 당해 왔던 것을 휘두르며 주도권을 휘어잡자 통쾌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게 돈이 주는 힘이구나······!’
 이미 주도권은 넘어왔고 남은 과정은 한성욱의 입맛에 따라 조절될 것이었다.
 
 ***
 
 전 세계 최고의 자산가.
 매년 미국의 유력지에서 그 랭킹을 발표한다.
 10위권 위로 이름을 올리려면 기본적으로 60조 원이 넘는 순 자산이 있어야 하고 수위를 다투기 위해서는 100조가 넘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 있어야 했다.
 대한민국의 1년 국가 예산이 450조 전후를 오가니 개인의 순 자산이 국가 예산의 4분의 1이나 된다는 뜻이다.
 NF와 함께 성공한 한성욱은 수위를 다투는 자산가였다.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산까지 합치면 150조에 육박하는 거금을 가진 대단한 자산가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정확하게 이틀 만에 나마구치가 직접 물건을 가지고 회사로 왔다.
 한성욱은 물건을 확인하자마자 미리 준비한 현금으로 100억 원을 건네주었다.
 5만 원 다발로 꽉 채운 여행 가방 하나에 나마구치는 흡족한 얼굴로 정중히 허리까지 굽혀 인사를 건네고 사라졌다.
 평생에 한 번 만져 볼 수 있을까 싶었던 100억이라는 거금이 한순간에 날아갔지만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100조는 넘게 가진 사람이 100억을 쓰는 일이었다.
 100만 원 가진 사람이 100원 쓰는 것과 같으니 감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모든 게 마음대로 되는걸?’
 남들에게는 평생 모아도 못 모을 거금을 100원 쓰듯 후련하게 써 버릴 수 있는 부와 그로 인해 생겨난 보이지 않는 권력이 이제 피부로 와 닿을 만큼 느껴졌다.
 국가와의 거래를 입으로 논하거나 상대방의 의견 따위 생각하지 않고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자격이 실감되었다.
 처음에는 큐브로 향해야 한다는 사실에 겁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다려졌다.
 ‘직접 보고 경험한다면 회사도 더욱 키울 수 있을 거야. 그럼 지금 쥔 것들도 덩달아 커지겠지.’
 가진 부와 권력, 자격을 맛보고 나니 더욱 키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번드리드의 눈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역시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지만 또 하나의 개인적인 목표가 생긴 것이다.
 완전히 적응하고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한성욱은 바쁘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처리한 것은 일본에서 날아온 물건이었다.
 장진우 소장과 장진주 박사에게 물건들을 건넸다.
 “우리 부산물을 빼돌린 일본의 야쿠자 놈들이 나름대로 연구해서 만들어 낸 무기들입니다. 최대한 안정적이고 실용적인 모습으로 바꿔 주세요. 큐브에 들고 갈 생각이니.”
 “대표님, 이번에 되찾은 번드리드의 눈을 안정화하는 중입니다. 게다가 무기 쪽으로는 저희 지식이 크게 도움 되기 어렵습니다만······.”
 “걱정 말아요. 여기로 오고 있는 전문가가 있으니까.”
 그 말을 남긴 한성욱이 씩 웃어 주고 그대로 걸음을 돌렸다.
 이미 이 상황을 준비하며 미국의 저명한 무기 전문가를 초빙한 상태였다.
 방위 산업 분야 전반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를 고르고 골라 초빙했으니 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했다.
 거기에 특별히 한 사람을 더 초대했다.
 번드리드의 눈을 연구하는데 반드시 큰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
 마르지 않는 돈으로 무엇까지 할 수 있을지······.
 한성욱의 머릿속에는 끝없이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
 
 연구소에서 한창 무기 개조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 한성욱은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곧 큐브로 함께 떠나게 될 멤버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그룹 천상계를 모집할 때 아쉽게 멤버에 포함되지 못한 실력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회의실을 열고 들어간 한성욱은 자연스럽게 상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 과정에서 먼저 자리에 앉아 있던 세 명의 멤버들은 그 누구도 일어나거나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모두 독특한 자신만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한성욱도 멀뚱히 앉아 그들을 살폈고 회의실 내부에 네 사람이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으로 시간이 흘렀다.
 보다 못한 안예슬이 나섰다.
 “다들 인사하세요. NF 대표님이시고 이번 큐브 탐사와 구조 작업에 여러분과 함께할 리더이신 한성욱 대표님입니다.”
 세 명의 멤버들은 그냥 고개를 가볍게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들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뭔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예슬은 우측에 앉은 단발머리의 여자 멤버를 소개했다.
 “바람계 능력을 사용하는 린린 입니다. 중국인이고 ‘바람의 여제’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으며 S랭크 능력자입니다.”
 “푸흡······!”
 린린을 설명하는데 한성욱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곧장 미안하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사과하고 다음 소개를 기다렸다.
 안예슬이 왼편에 앉은 짧은 머리의 무뚝뚝한 인상을 가진 사내를 소개했다.
 “화염계 능력을 사용하는 에릭입니다. 영국인이고 ‘검은 화염’이라는 별칭을 씁니다. 역시 S랭크 능력자입니다.”
 “아니······. 푸흡······!”
 마지막 멤버를 소개해야 할 차례인데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린 한성욱 때문에 원래 어색하던 분위기가 더 가라앉았다.
 안예슬은 하던 소개라도 빨리 마무리 지으려는 듯 마지막 멤버를 소개했다.
 무표정한 얼굴의 3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마치 군인과 같은 포스를 풍기는 그는 비단 나이 때문이 아니라 본연의 카리스마로 이 자리에 모인 멤버들을 이끄는 느낌을 풍겼다.
 “물리계 능력을 사용하는 우진입니다. 한국인입니다.”
 “이 사람도 별칭이 있어?”
 “예, ‘무신’이라고 불립니다. S랭크 능력자입니다.”
 “푸하하하하하!”
 이제는 한성욱이 아예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큐브에서 부산물 빼돌리는 일이나 신경 쓰고 살았지 탐사그룹 능력자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먹고살기 바빠 모른다는 말이 딱 맞는 삶이었다.
 병원에서 자료를 살피면서야 큐브 관련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들의 정보와 활약상을 감상하며 응원을 보내는 일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흔하다고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푸흡······!’
 이런 별칭들이 하나씩 존재할 줄은 몰랐다.
 한성욱이 웃음을 겨우 참으며 말했다.
 “다들 미안합니다. 별칭이라는 게 너무 손발 오그라드는 느낌이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하하하!”
 “별일이네요. 그러는 당신 별칭이 제일 재미있다는 것도 아직 모르나 보군요?”
 “엥?”
 멤버들 중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바로 우진이었다.
 그는 멤버들을 대변해 자신들의 별칭을 비웃는 듯한 한성욱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당신이 실종된 천상계 멤버들을 찾기 위해 직접 그룹을 꾸려 큐브로 향한다는 소식이 퍼지고 곧바로 별칭이 생겼습니다. 거기 똑똑해 보이는 비서에게 물어보세요.”
 “사실이에요?”
 한성욱이 안예슬에게 물으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큐브에 발도 들이지 않은 상태인데 벌써 별칭이라니.
 그만큼 한성욱이라는 인물이 지닌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 주는 반증이었다.
 한성욱은 자신에게도 별칭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막상 들어 보려니 겁부터 덜컥 났다.
 다들 가진 능력을 기반으로 별칭이 만들어졌는데 도대체 자신에게는 어떤 별칭이 붙은 걸까?
 안예슬이 허리를 숙여 한성욱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중들이······. 대표님을 ‘천상계 지갑전사’라고 부릅니다.”
 “뭐? 뭔 전사?”
 충격적인 자신의 별칭을 들은 한성욱이 화들짝 놀랐다.
 그 모습을 본 나머지 멤버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풉!”
 “큭큭큭······.”
 다른 멤버들의 별칭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던 한성욱은 자신에게 붙은 별칭을 듣고는 얼굴이 화끈거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우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큐브로 갈 거 아닙니까? 별칭 하나 즈음은 필수죠.”
 “세상에······.”
 우스갯소리 같았지만 탐사를 업으로 삼는 능력자들 사이에서는 대중에게 불리는 별칭을 얻어야 비로소 성공한 탐사가가 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우진이 그 점을 주지시키며 말했다.
 “우리 정도 되는 랭커면 신경 쓰지 않지만 별칭 하나 얻어 보려고 아등바등하는 탐사가들은 아직 큐브에 발도 안 들인 당신에게 별칭이 붙었다는 걸 배 아파할 겁니다.”
 한성욱은 그 말을 듣고서야 쭈뼛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멤버들의 얼굴에 언뜻 드러나는 불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묻어 있었다.
 이들과 함께 위험한 큐브를 헤쳐 나가야 했다.
 ‘능력은 없지만 그에 준하는 번드리드의 눈을 얻었고······. 무기도 얻었고······. 필요한지 몰랐으나 별칭도 얻었다. 실전 감각은 곧 되고······. 마지막 준비물은 이 사람들의 마음이겠군.’
 한성욱은 멤버들의 면면을 살피며 생각했다.
 ‘지갑전사라면 응당 지갑으로 해결해야지. 그래, 이들의 마음은 또 얼마일까?’
 
 
 # 큐브 탐사 시작
 
 한성욱이 나름대로 바쁘게 준비하는 동안 회사에서도 수많은 직원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연구소 직원들은 되찾은 번드리드의 눈을 작업하는 동시에 한성욱이 말한 새로운 무기 개발에 몰두했다.
 특별히 초빙한 무기 전문가와 김기철 박사의 합류로 속도가 붙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김기철 박사는 일전에 기자 회견장에서 번드리드의 눈과 소유자 사이의 일을 유추해 질문을 던졌던 인물이었다.
 경영진은 정렬 실패로 인해 계획이 틀어진 프로젝트들을 전면 수정함과 동시에 현 수준에서 확보 가능한 부산물들의 유통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해외사업부는 현지 임원들과 정렬 실패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 개선을 위해 전략을 짰고 생산부는 쉬지 않고 공장을 관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바쁜 것은 홍보팀이었다.
 홍보팀에서 사전에 보도 자료를 뿌렸다.
 
 [드디어 움직이는 Neo Frontier corp.]
 [한성욱 대표 “직접 천상계 멤버들 구하러 갈 것.”]
 
 최초의 기사가 계속해서 재생산되면서 삽시간에 전 세계로 소식이 퍼져 나갔다. 덕분에 한성욱은 ‘지갑전사’라는 우스꽝스러운 별칭까지 얻은 상태였다.
 천상계 멤버들을 구조하는 특별한 임무가 주어질 새로운 탐사그룹 멤버들까지 모집이 끝났다.
 멤버들 한 사람씩 합류가 확정되면서 이 사실 역시 보도 자료로 뿌려졌다.
 
 [천상계 구조대 ‘바람의 여제’ 합류.]
 [천상계 구조대의 두 번째 합류 멤버 ‘검은 화염’ 에릭. “최종 관문에서 그들이 실패한 것까지 해낸다.”]
 [‘무신’ 우진. 천상계 구조대로 활동 재개!]
 
 그들은 나름대로 응원하는 팬을 거느린 스타였다.
 스타 탐사가들이 큐브와 관련된 사건의 중심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관심도는 폭발적으로 올라갔다.
 한성욱 개인에게도, 새롭게 출발하게 될 탐사그룹에게도, 회사 내부적으로도 모든 준비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마지막으로 큐브에 입성하기 전 남은 일은 한성욱이 직접 참여하는 기자 회견이었다.
 새로운 탐사그룹의 출사표를 내놓기 위한 과정까지 겸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거를 수는 없었다.
 전 세계의 미디어들 입장에서도 이번 기자 회견은 절대 거를 수 없었다.
 사건이 터지고 무려 2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공식적인 첫 번째 움직임.
 비능력자이며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한성욱의 큐브 탐사.
 노출이 적은 S랭크 탐사가들의 공식 석상 등장.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무신의 재등장까지.
 한 자리에서 쏟아질 이슈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벌써부터 전 세계의 기자들이 한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
 
 기자 회견과 탐사 작업 시작까지 앞으로 2일.
 한성욱은 연구소 안에 마련된 특수 제작실에서 은밀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마치 큐브 안의 환경을 옮겨다 놓은 듯한 공간.
 주변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의 사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바깥에서 장진주 박사가 마이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특수 제작실 안의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대표님, 이제 마지막입니다. 다음 몬스터는 조금 더 강한 녀석입니다. 엘리트 몬스터예요. 자칫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길.]
 “오케이. 시작해요.”
 거대한 바위 뒤에 몸을 기댄 채 쉬고 있던 한성욱이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에 맞추어 바깥의 장진주 박사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한성욱이 숨어 있는 바위 반대편의 벽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벽 너머에서 흉포하게 생긴 거대한 몬스터 하나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크아아아아!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한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단단한 갑피를 두르고 있었다.
 뱀처럼 바닥을 기어 움직였는데 놈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그 흔적이 남을 만큼 육중한 크기를 자랑했다.
 심지어 놈은 여기저기 마련된 구조물들을 우회하거나 넘어가지 않고 그대로 뭉개며 한성욱에게 직진했다.
 “저런 미친놈······!”
 자신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를 확인한 한성욱이 옆의 바위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몬스터는 구조물을 뭉개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잔뜩 긴장한 한성욱을 지켜보던 바깥의 우진이 마이크로 코치했다.
 [하드바이퍼는 직선적인 움직임을 가진 몬스터에요! 방향 전환이 느린 단점이 있으니 옆으로 움직여요!]
 큐브 탐사 경험이 풍부한 ‘무신’ 우진의 코치였다.
 한성욱은 곧바로 횡으로 움직여 하드바이퍼의 진로에서 벗어났다.
 잠깐의 틈이 생기자 우진이 다시 외쳤다.
 [지금입니다!]
 공격의 기회가 생긴 것을 확인하고 한성욱은 이미 무기를 겨누는 중이었다.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
 철제인지 플라스틱인지 모를 흔히 보기 힘든 소재.
 저명한 무기 전문가와 최고의 과학자들이 특수한 힘을 가진 큐브의 부산물을 이용해 만들어 낸 세계에 하나뿐인 무기.
 ‘큐브건’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 총기는 한성욱의 손에 들려 하드바이퍼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겨눴다.
 한성욱이 왼손으로 총신의 여러 버튼 중 하나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푸슝!
 
 일반적인 총기가 발사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엄청난 굉음 대신 바람 빠지는 소리와 비슷한 발사음.
 하지만 그 위력은 일반 총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파앙!
 
 큐브건에서 발사된 에너지 덩어리가 하드바이퍼의 옆구리를 때린 순간!
 폭발음과 함께 그대로 큰 구멍을 만들었다.
 살점이 녹아내린 하드바이퍼의 고통스런 괴성이 퍼졌다.
 
 끼아아아아아!
 
 엄청나게 단단한 갑피를 두른 하드바이퍼는 생전 느껴 본 적 없던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가 고개를 한성욱에게 휙 돌리더니 발작적으로 독액을 뿜었다.
 실로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한성욱은 미처 움직이지도 못하고 녀석이 쏜 독액을 가만히 바라봤다.
 독액을 뒤집어쓰기 직전.
 
 우우우우웅.
 
 팔목에 채워진 팔찌의 보석이 빛을 뿜었다.
 번드리드의 눈이 만들어 낸 에너지 보호막에 닿은 독액이 허공에서 증발했다.
 보호막의 범위 밖으로 쏟아진 독액은 그대로 주변 구조물과 바닥을 녹이며 흩어졌다.
 
 치이이익!
 
 그러거나 말거나 한성욱은 큐브건을 구멍 뚫린 녀석의 옆구리에 다시 겨누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당긴 방아쇠.
 
 지이이잉!
 
 처음 발포와 다르게 이번에 발사된 것은 전기를 머금은 탄환이었다. 이미 큐브건의 조작이 익숙해진 듯 순식간에 버튼을 바꿔 누른 한성욱이었다.
 전격 탄환은 그대로 하드바이퍼의 몸통에 생긴 구멍을 비집고 들어가 덜렁거리는 내장에 박혔다.
 
 크라아아아아아!
 
 몸의 내부에서 흐르는 전류를 감당하지 못한 하드바이퍼는 큼큼한 구운 고기 냄새를 풍기며 그대로 허물어졌다.
 
 ***
 
 훈련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한성욱을 장진주 박사와 우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로에 전 얼굴을 하고 나서는 한성욱에게 우진이 쓴소리를 뱉었다.
 “번드리드의 눈만 믿고 그렇게 공격을 멍하게 받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에이, 잡았으면 됐지.”
 “아니라니까요!”
 우진은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린린, 에릭, 그리고 저······. 이번 탐사에 맡게 된 임무가 몇 갠지 아십니까? 천상계 멤버들 구출에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야 하고 가능하면 정렬까지 해야 해요. 당신의 무모함 때문에 우리가 짊어질 책임의 무게가 커진다고요!”
 한성욱은 걸음을 멈추고 서서 우진을 바라보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 했다가 이번 임무에서 공식적으로 활동을 재개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때문인지 복합적인 임무에 크게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봐요. 우진······.”
 “말씀하세요.”
 “그래서 당신들이 천상계 멤버들보다 두 배는 더 많은 돈을 받는 것 아닌가요?”
 “······.”
 사실이었다.
 린린, 에릭, 우진 모두가 어떤 이유에서건 최초 천상계 멤버를 모집할 당시 탈락했던 인물들이었다.
 당시의 한성욱은 굉장히 사무적이며 사업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조건을 두고 최적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1차로 선발되지 못할 결격 사유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룹 천상계가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얻게 된 이상 일반적으로 이들이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한성욱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들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에요. 사정이 있어 직접 움직여야만 하기에 당신들에게 큰돈을 주고 고용한 거지.”
 우진은 돈 이야기가 나온 이후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복잡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성욱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들처럼 능력을 사용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가 가진 걸 믿을 수밖에 없어요. 나에게 뭐라 지시하기 전에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되어 주는 게 어떨까요?”
 잔인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건 가진 자의 여유나 지위에 기반한 건방을 떠는 것이 아니었다.
 한성욱은 번드리드의 눈에 인질 잡힌 모양새의 목숨을 온전히 지켜 내기 위해서 큐브로 가는 것이었다.
 수많은 위험을 마주하게 될 여정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가야만 했다.
 큰 금액을 지불하고 안전을 확보하고자 고용한 이들에게서 책임감 없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불만스러워 뱉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우진은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더니 그대로 연구소를 빠져나갔다.
 한성욱은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한 기색이 눈빛을 스쳤다.
 갑작스럽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장진주 박사였다.
 “대표님, 아마 저들도 초조해서 그럴 겁니다. 천상계가 실패했던 일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해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팔찌에 번드리드의 눈을 새롭게 세공해서 넣었으니 안정성은 훨씬 커졌을 겁니다.”
 그 말에 한성욱이 왼쪽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원래 하나뿐이던 번드리드의 눈이 두 개가 되어 있었다.
 되찾아온 번드리드의 눈도 안정화 작업을 마치고 세공해서 넣은 것이었다.
 김기철 박사의 공이 컸다고 들었다.
 방어력도 두 배가 될 것이고 큐브 안에서 잃어버린 마지막 번드리드의 눈을 추적하는 능력도 두 배가 될 것이었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오른손에 들고 있던 큐브건에 시선을 옮겼다.
 큐브에서만 구할 수 있는 소재와 부산물로 만든 이 무기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가볍고 정확했으며 강력했다.
 장진주 박사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훈련으로 모두 확인하셨겠지만 화염, 전기, 플라스마까지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자체적으로 동력을 생성하는 소형 원자로도 안정성이 확보되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해요. 총알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장전을 할 필요도 없이 이 강력한 것들을 마구 쏠 수 있는 무기라니······.”
 “연사가 불가능하고 적정 충전율이 필요한 단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죠.”
 한성욱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씩 웃었다.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출구를 돌아 나가니 방금 한성욱이 훈련을 받던 특수 제작실의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아직도 하드바이퍼의 사체가 가운데 떡하니 쓰러져 있었다.
 장진주 박사가 그것을 바라보는 한성욱에게 물었다.
 “내일이 큐브로 가시기 전 마지막 날입니다. 다른 몬스터들도 조달할까요?”
 “아뇨, 됐어요. 실전 감각은 이 정도면 충분해요.”
 장진주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살아 있는 몬스터를 조달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살아 있는 몬스터를 조달해 상대하는 이런 실전 훈련은 오직 한성욱만이 누릴 수 있는 일이었다.
 탐사 교육 프로그램에는 없던 과정인데 한성욱이 직접 요청해서 급하게 준비한 훈련이었다.
 한성욱 입장에서 탐사가 지망생들과 함께했던 교육 프로그램은 썩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입이 떡 벌어질 다양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몬스터 모형에 대고 공격을 퍼부으며 우쭐거리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파링만 만 번을 해 봐야 뭐해. 실전 한 번 못 뛰어 본 파이터는 결국 실전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데.’
 직접 해 본 적은 없지만 음지에서 활동하며 숱하게 들었다.
 생명을 직접 죽여 본 것과 아닌 것의 차이를.
 그 상대가 사람이건, 동물이건, 몬스터건 간에 말이다.
 큐브 안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고 싶었던 한성욱이기에 실전 훈련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뭐든 할 수 있어. 뭐든······.’
 새로운 무기의 성능 실험까지 겸해서 한성욱에게 실전 감각이라는 또 하나의 준비물이 완성되었다.
 한성욱이 발걸음을 우진이 사라진 방향으로 잡았다.
 
 ***
 
 한성욱은 우진의 주변을 맴돌며 그를 살폈다.
 마음을 얻기 위한 첫 번째 타깃이었다.
 실전 감각을 위한 훈련을 하며 조금 친해진 감도 있고 린린과 에릭이 그를 따르는 느낌을 받았다.
 린린과 에릭은 아직 말하지 않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우진을 가장 먼저 포섭하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훈련을 마친 뒤 나눈 대화에서 왠지 모를 익숙한 모습을 그에게서 봤다.
 ‘가장 안 그럴 것 같은 우진이 돈 이야기가 나오자 입을 더 열지 못했단 말이지······.’
 대화 중 한성욱의 눈빛에 흥미로운 기색이 서렸던 이유다.
 처음에는 아무리 그를 살펴도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10시간 정도?
 차분하게 그를 주시하다 보니 뭔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틈이 날 때마다 강박적으로 스마트폰을 살피는 모습.
 잘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한성욱이 사무실로 돌아와 안예슬을 불렀다.
 “안 비서.”
 “네, 대표님.”
 “우진에게 좀 보자고 전해요.”
 “알겠습니다.”
 안예슬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들어와요.”
 한성욱의 목소리와 함께 열린 문으로 우진이 들어왔다.
 안예슬이 그를 접객용 테이블 앞에 놓인 소파에 안내했다.
 “사는 게 참 팍팍하죠?”
 “예······?”
 의도를 알 수 없는 한성욱의 질문에 우진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한성욱이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며 본론을 꺼냈다.
 “오다가다 계속 시선이 가던데······. 당신은 볼 때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더라고요. 초조한 얼굴로.”
 “······.”
 “내가 쓰러졌다가 다시 깨어나면서 이래저래 기억과 사업적인 능력은 많이 잃었을지 몰라도 눈치 하나는 몇 배로 빨라졌거든요. 한번 맞춰 볼까요?”
 우진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한성욱은 편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대개 그런 경우 둘 중 하나죠. 금쪽같은 내 아이가 곧 태어난다거나······.”
 “······.”
 “매일 전화해서 안부를 묻던 빚쟁이가 뭔가 다른 조치를 시작하겠다며 겁을 줬다거나 말이에요.”
 “······!”
 두 번째 말을 듣고 눈이 부릅떠진 우진을 보며 한성욱은 확신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가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던 것도, 이번 임무에 나서며 활동을 재개한 것도 모두 돈이 얽혀 있다고 말이다.
 ‘그럼 그렇지······.’
 음지에서 생활하며 숱하게 봤다.
 금전적인 압박이 들어올 때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이제야 그에게서 느낀 익숙한 느낌을 이해한 한성욱이 조금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했죠? 당신은 저 위험한 큐브 안에서 내 목숨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에요. 내가 그래서 더 많은 보수를 지불한다고도 말했어요. 미안하지만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에게 내 목숨을 맡기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우진은 다급한 목소리로 자세까지 고쳐 앉으며 말했다.
 “대표님, 큐브 안에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이번 일을 무사히 끝내면 꼭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우진이 처음으로 불안한 모습을 내비쳤다.
 한성욱이 그를 안심시켰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난 당신을 내보내겠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가자는 말입니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우진을 보며 한성욱은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곧 전화가 올 것 같으니 초조하게 기다렸겠죠? 걸려 온 전화를 당신이 받지 않고 내가 받으면 분명히 상황을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럼 당신의 걱정거리는 사라지겠죠?”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건 제 문제인 것을······.”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당신의 문제가 저 큐브 안에서 내 목숨을 위협한다고요.”
 한성욱이 자신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우진에게 의도적으로 빚을 지우는 일이었지만 그 의도가 탄로 나서 좋을 게 없었다.
 스스로 빚을 졌다는 것을 알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끔 만들 생각이었다.
 주구장창 주장하던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명분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유용하고 확실했다.
 지극히 사실이고 사소한 거짓을 곁들일 수 있었으니까.
 우진이 고민하는 사이 그의 주머니 안에서 스마트폰이 진동 소리가 들렸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한성욱은 선택하라는 듯 그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어딘가에 감당하기 어려운 금전적 빚을 진 건 확실했지만 내막을 자세히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치부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었다.
 한성욱은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한참을 받지 않는데도 끊어지지 않는 걸 보니 빚을 받아 내려는 이가 독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우진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가 스마트폰을 꺼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우진이 고민을 끝낸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한성욱에게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의 치부라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
 
 비로소 바로 그날.
 한성욱 생애 처음으로 큐브에 들어가는 날이었다.
 전 세계 유력 매체의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역사적인 날이기도 했다.
 기자 회견장은 큐브 출입 관리소 로비에 마련됐다.
 부상 열차를 타고 해저 터널을 한참 달려 도착할 수 있는 큐브 출입 관리소는 심해에 지어진 요새였다.
 이곳을 기자 회견장으로 지정한 이유는 행사가 끝남과 동시에 곧장 큐브로 향하기 위한 조치였다.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기자들을 수용할 적절한 공간이 마련된 곳이기도 했다.
 워낙 규모가 큰 기자 회견이었기 때문에 회사 홍보팀 직원들이 전부 나와서 관리를 도맡았다.
 대기실에 있던 한성욱과 멤버들은 담당자의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다.
 “언론의 질문은 기본적으로 난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때로는 공격적으로 다가올 겁니다. 굳이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셔도 되니 노코멘트를 적극 활용하세요.”
 우진과 린린, 에릭이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욱이야 이미 한 번 코치를 받은 경험이 있어서 이미 아는 내용이었다.
 하나같이 반응이 뚱하니 담당자는 속이 타들어 갔다.
 “작은 발언 하나도 신중하셔야 해요. 그걸 얼마나 키워서 터무니없는 기사로 만들어 내는지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로 몰라요. 표정 관리는 최우선으로 하셔야 하고요. 아셨죠?”
 이번 반응도 대충대충.
 담당자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내려앉은 그때 대기실 문을 두드리며 스태프가 들어왔다.
 “곧 시작합니다. 대표님과 멤버 여러분은 지정된 자리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시작이 임박했다는 소식과 함께 한성욱이 멤버들과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대기실을 빠져나가는 그들을 보며 담당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기자 회견이 있을 때면 늘 미디어에 돈을 찔러주고 적당한 선에서 끝내 주길 당부했다.
 하지만 이번 기자 회견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전 세계의 미디어에서 수많은 기자들이 온 자리였고 지연 생방송까지 되는 자리였다.
 담당자는 그저 무사히 행사가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
 
 초반 질문은 거의 독보적으로 한성욱에게 쏠렸다.
 몸 상태가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천상계 멤버들과의 교신에는 진척이 있는지 큐브 개척 사업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대체적으로 평범한 질문들이었다.
 한성욱 역시 평범하고 무난하게 대답을 잘 마쳤다.
 “대표님께서는 천상계를 구조하러 가기 위해서 새로운 그룹을 모집하셨고 직접 리더가 되셨습니다. 이 그룹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천상계입니다.”
 구조 임무를 나서는 멤버들과의 그룹 이름도 천상계였다.
 그것은 NF가 큐브와 함께 쭉 가져온 아이덴티티였다.
 새로운 질문 순서가 되어 진행자가 한 기자를 지목했다.
 발언권을 얻은 기자는 일본 매체의 기자였다.
 “대표님의 큐브행 소식이 알려지며 다른 탐사가들과 마찬가지로 별칭이 붙었습니다. ‘지갑전사’라고들 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견장 전체에 국가별로 실시간 통역이 가능한 인원이 배치되어 있었고 한성욱 역시 통역사를 통해 질문을 받아 편안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으음······. 글쎄요. 처음에는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왕이면 제대로 보여 주자는 생각입니다.”
 “지갑전사에 어울리는 활약을 보여 주시겠다는 대표님의 포부인가요?”
 “그렇다고 해 두죠. 많은 고민을 해봤는데 제 지갑의 힘이라면 초능력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더라고요.”
 기자 회견장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느 정도 한성욱에 대한 질문 공세가 잦아들자 드디어 멤버들을 향한 질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큐브의 상황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천상계의 정렬 실패 후 큐브는 리셋되었고 이전보다 몬스터들이 더욱 난폭해졌다는 탐사가들의 증언을 확인하고자 하는 질문들이 주를 이루었다.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에 큐브 경험이 풍부한 멤버들이 대답하기 곤란한 경우는 없었다.
 무난하게 끝나는가 싶었던 기자 회견.
 순서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본색을 드러내듯 전혀 무난하지 않은 질문들이 하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대표님의 후계자는 지정해 두고 큐브로 가시는 겁니까?”
 “최근 부산물과 가공품의 가격 인상은 큐브 폐쇄 전에 마지막으로 이익을 뽑겠다는 의지라고들 말합니다. 이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린린, 당신은 이번 임무에 합류한 진짜 이유가 천상계 멤버 롤린스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염문설에 대해 입장을 밝혀 주시죠.”
 “지난달 마카오의 카지노에서 에릭 당신을 본 이들이 많습니다. 물처럼 돈을 썼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당신이 탐사 중 부산물을 빼돌린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무례하기 그지없는 질문들을 듣고 있던 한성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모든 질문에 모두가 노코멘트로 대답했다.
 그런데도 질문들은 끊이지를 않았다.
 한성욱은 기자들의 면면을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방패를 앞세우고 그 어떤 질문이라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듯 행동하는 그들의 얼굴이 더 이상 좋게 보이지 않았다.
 슬슬 한계에 도달하는 중이었다.
 그때, 한 기자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우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진, 당신에게 따라다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약물과 관련된 스캔들이고 그 문제로 활동을 중단했던 것이라 제보한 이가 있었습니다. 약물에 손을 댔다는 게 사실입니까?”
 한성욱은 기자의 질문이 끝나는 순간 우진이 이를 악무는 찰나를 보았다.
 이런 유형의 질문은 노코멘트로 대답하는 즉시 기정사실인 것처럼 포장해서 기사를 찍어 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좀 위험하네.’
 린린의 염문설이나 에릭의 카지노 이야기는 불편할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 하등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약물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었다.
 한성욱이 맥을 끊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쾅!
 
 벌떡 일어난 한성욱을 기자들과 멤버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한성욱은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기자 회견은 끝났습니다.”
 난데없는 기자 회견 종료 소식에 기자들이 너도나도 일어나 아직 묻지 못한 질문을 마구잡이로 쏟아 냈다.
 상황이 벌어지자 지연 생방송 중이던 카메라는 진행 임무를 맡은 직원들의 제지로 꺼졌다.
 한성욱이 손을 들어 모두의 목소리를 제지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들으란 듯이 진행자 역할을 하던 홍보팀 담당자에게 말했다.
 “쓸데없는 확대 기사 한 줄이라도 내 눈에 보이지 않게 하세요. 다녀오겠습니다.”
 직원이 고개를 숙였고 한성욱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려 큐브 입구를 향해 사라졌다.
 멤버들 역시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한성욱은 큐브의 입구에 들어서며 아무도 보지 못할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우진의 마음을 얻을 확률이 크게 올라갔음을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소한 자극이 필요했다.
 
 <『천상계 지갑전사』 1-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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