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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론 1권(1)

2019.08.15 조회 723 추천 6


 Prologue
 
 내 이름은 하이데론, 그냥 하이데론이다.
 농노의 자식이었던 나 같은 아이에게 성이 있을 리 없었고 전쟁이 벌어지면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도망쳤지만 결국 나만 살아남았다.
 어린 나에게 전쟁이 준 것은 고아라는 신분과 지독한 배고픔이었다.
 전쟁이 지속될수록 굶는 날은 더욱 많아졌고 이런 배고픔은 나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불쌍히 여기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구걸을 할 것인지,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먹을 것을 구하든지 하는 그런 선택 말이다.
 선택은 쉬웠다.
 지금과 같은 전쟁 통에 구걸한다는 것은 굶어 죽기 딱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때론 다른 약한 녀석들의 음식을 빼앗고 다른 사람들의 음식을 훔치면서 굶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다.
 선택이 옳았는지 굶는 날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또래의 다른 녀석들보다 덩치가 좋아졌다.
 그럴수록 약한 녀석들이 힘겹게 구한 음식을 쉽게 빼앗을 수 있었고 굶는 날은 더욱 줄어들어 갔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잠시, 재수 없게도 음식을 훔치다가 그만 주인에게 잡힌 것이다.
 도둑질에 대한 벌은 손목을 자르는 것이었다.
 남의 것을 빼앗고 훔치다 보니 점점 무서움이 없어졌고 그 결과 난 손목이 잘릴 처지에 놓인 것이다.
 수많은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 더러운 감옥 안에서 손목이 잘릴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은 기사가 간수와 함께 들어왔다.
 그는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쟁터로 간다면 형벌을 없애 주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은 질문이었지만 그를 향해 전쟁터로 가면 굶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시로서는 손목이 잘리는 문제만큼이나 절박한 문제가 바로 굶주림이었으니 어쩌면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어쨌든 그는 죽지만 않는다면 절대 굶는 일은 없다고 말했고 난 더 들어 보지도 않고 전쟁터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손목이 잘릴 처지에서 벗어날뿐더러 굶지도 않는다는데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라면 누구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때 내 나이가 14살, 아니 15살인가?
 어쨌든 이런 이유로 그 기사를 따라 전쟁터로 갔고 운이 좋게도 두 번의 전투를 거치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전쟁은 생각보다 두렵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죽기 싫으면 죽이면 그뿐이었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굶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터를 전전하는 동안, 내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는 오직 두 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전쟁터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와 ‘굶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내가 고민해야 하는 모든 것이었다.
 
 
 
 
 
 Chapter1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푸륵, 푸르륵.
 저 멀리 투레질을 하는 말들 그 위에는 갑옷 차림의 기사들이 있고 뒤에 그다지 중무장을 하지 않은 기마대가 전방에 진형을 갖추고 있는 적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쟁터를 전전한지 1년이 지났건만 전투는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시작한다.
 기사와 기마대를 앞세우고 뒤쪽으로는 수많은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에 따라서 진형을 구축하고 적과 대치하는 것이 기본이다.
 진형의 가장 앞 열은 항상 방패병과 창병의 차지다.
 방패병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방패로 막고 있고 그 사이로 창병들이 장창을 세워, 마치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는 것과 같은 모습을 만들어 낸다.
 상대 기사단이 돌격해 들어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한 방법이다.
 방패병, 창병의 다음으로 자리하는 병사는 모두 보병이다. 하지만 보병이라고 해서 다 같은 보병이 아니다.
 체인메일과 그나마 녹슬지 않은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는 보병, 한마디로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쓸만한 장비를 갖추고 있는 보병은 방패병과 창병의 다음에 위치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신출내기 병사들은 대부분 후미에 서게 된다.
 전투에 몇 번 참여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들은 새로 투입되는 신참들과 함께 후미에 선다.
 전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투를 오래 해본 사람들은 손발이 맞는 사람들과 싸우기를 원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참들과 함께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진형을 구축하게 되면 항상 지금과 같이 고참들이 앞쪽에 신참들은 뒤쪽에 서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신참들은 전투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망치려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그러면 가장 뒤쪽으로 있는 궁수부대에서 여지없이 활을 날아들었다.
 도망치면 죽는다는 일종의 본보기다.
 이미 이런 일을 많이 경험한 고참 보병들은 등에 화살을 맞기 싫어서 항상 창병과 신참 보병의 중간에 섰다.
 ‘젠장, 체인메일만 어떻게 구하면 나도 저들 속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앞쪽에 체인메일을 입고 서서히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는 보병들을 보니 입맛이 썼다.
 얼마 전에 벌어졌던 전투에서 체인메일을 구할 뻔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신참보병들은 전투를 통해서 자신의 무기와 방어구를 구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체인메일과 롱 소드 정도 되는 무기는 반드시 구해야하는 것들이었다.
 최소한 이 두 가지를 구해야지 지금 앞에 서있는 고참보병의 무리에 섞일 수 있었다. 고참보병의 무리에 섞여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투 중에 죽을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신참들이야 작은 손도끼와 허름한 창이 전부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죽을 수 있었다.
 게다가 고참보병들과 같이 서로를 받혀주는 전투가 불가능해서 항상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오는 것이 신참 보병들이었다.
 ‘어쨌든 이번에도 반드시 살아남는다!’
 전방의 적을 바라보며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옆에 서 있는 사람이 계속해서 나에게 부딪쳐 왔다.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먹어 보이는 얼굴, 그는 기다란 나무를 깎아 그 끝에 뾰족한 금속을 단단히 매달아 놓은 창을 들고 겁을 잔뜩 집어먹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면서 서 있었다.
 그런 떨림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었다.
 ‘금방 죽겠군.’
 그의 무기를 힐끗 보고 나서 나의 손에 들린 이빨이 나갈 대로 나간 소형도끼 두개를 힐끗 봤다. 이것이 내 무기의 전부다.
 이것도 몇 번의 전투를 겪고 겨우 얻은 무기였다.
 허름하더라도 창을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창이라는 것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거의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혼전이 벌어지면 오히려 그 창의 특성이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낡았지만 소형도끼를 택했다.
 물론 내가 선택한다고 얻을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난 소형도끼를 두 자루나 구할 수 있었다.
 창을 만들어 들고 있다가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창이야 창대가 부러지면 그대로 더 이상의 전투가 불가능해 진다.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전투를 하지 못하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다.
 똑같은 진형을 갖추고 있는 적을 바라보니 처음 상대방을 죽였을 때가 생각났다.
 난 내 손에 의해 죽어 가던 그 사람의 눈을 잊지 못한다.
 살려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했지만 난 살기 위해 그의 온몸을 부러진 창끝으로 끝없이 찔러 댔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앞에는 수없이 찔리고 난도질당한 시체가 있었고 내 온몸은 그의 피와 살점으로 가득했다.
 손에 들린 부러진 창대에도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서야 사람을 죽였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고 몸의 떨림이 하루 종일 멈추지 않았다. 그로 인해 그 좋아하는 먹을 것을 전혀 입에 대지도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몇 번의 전투를 더 겪고 나자 도살장에서 도축을 하는 사람처럼 그저 오랫동안 해 오던 아주 익숙한 일을 하듯이 상대방을 죽여 가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뿌우-! 뿌우-!
 갑자기 들려온 뿔 고동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나 보니, 내 앞쪽에서 말을 탄 기사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고함을 질러 대고 있었다.
 “모두 준비이이-!”
 기사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무기를 들고 약간은 긴장한 표정을 했다.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보자 날카로운 무기들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내가 들고 있는 것은 소형도끼였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롱 소드나 대형도끼를 들었으면 좋겠군.’
 이빨이 빠지고 녹슬어 볼품없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소형도끼에 비해 살상력이 더 좋은 무기였으니 그저 부럽기만 했다.
 롱 소드는 스치기만 해도 피를 쏟으며 죽고 대형도끼는 느리기는 해도 한 순간에 목숨을 빼앗을 수 있으니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소형도끼에 비해서는 부러운 무기들이었다.
 사실 내가 들고 있는 소형도끼도 살상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빨이 나가고 날이 무디어 진 무기들이라 둔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무기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편을 죽여 빼앗는 방법밖에 없는데 아직까지는 좋은 무기를 가진 놈을 죽이지 못했다.
 덩치가 16살짜리 꼬마치고는 큰 편이지만 그래도 어른보다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런 무기들을 가질 수 있겠는가? 행운이 따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뿌우-!
 “공겨어어어억-!”
 한 번의 긴 뿔 고동 소리가 들리자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중무장한 기사들이 적을 향해 달려 나갔고 뒤를 이어 기마대가 따라 달렸다.
 목숨이 간당간당하는 전장에서 이런 감상에 빠지면 안 되지만 기사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 내 가슴은 절로 뛰었다.
 두두두두.
 앞쪽으로 멀어져 가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기사들이 사라졌다. 뿌연 먼지 구름만이 우리 편 기사가 지금 적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저 멀리에서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엄청난 수의 기사들이 삼각형의 형태를 취하며 말을 몰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서서히 긴 창을 빼어 들고서 전투를 준비했다.
 “꿀꺽.”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입이 바싹 말라서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 후면 기사단이 정면충돌을 할 것이고 그 결과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긴장된 것이다.
 콰직! 콰지직!
 드디어 두 기사단이 중앙에서 충돌했다. 부러지고 깨지는 소리가 약하게 나의 귀까지 들려왔다. 이곳까지 들려올 정도면 양쪽의 충돌이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굉장한 소리와 함께 양쪽의 기사들 중 일부가 말에서 떨어지고 그 뒤로 달려드는 기마대에 아주 처절하게 짓밟혔다.
 “크아악-!”
 “아악-!”
 처절한 비명성을 통해 떨어진 기사와 기마대원들이 바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무도 허무한 죽음, 힘든 훈련을 받고 중무장을 한 채 달려들어도 한순간의 부딪침으로 나타난 결과는 언제나 죽음이다.
 짓밟고 짓밟힘을 당하는 것에는 아군도 적군도 없었다.
 교차하는 기마들의 말발굽 아래에서 밟히고 부서져서 피와 살점의 흔적만을 남긴 채 죽어 가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죽음의 운명에서 살아남은 기사들은 또다시 상대의 진형을 향해 내달렸다.
 두두두두!
 적의 기병들이 지축을 울리며 우리 진영을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가슴이 떨리지만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다.
 조금이라도 진열을 흩뜨렸다가는 바로 뒤에 서 있는 궁수부대에 의해 화살을 맞거나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는 기사의 검에 목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한 번만, 한 번만 버티면 난 살아남을 수 있다!’
 저 기사들의 돌진만 견뎌 내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미친 듯이 달려오는 적의 기병들이 진형의 한쪽을 뭉개 버리며 지나가고 나면 혼란이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이 혼란 속에 몸을 잘만 놀리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진형이 무너지는 지점이 나를 향해 있다면 문제가 틀려진다.
 기사대와 기마대는 말발굽을 이용하여 그대로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일직선으로 통과하기 마련이고 그 와중에 걸리는 모든 것은 그대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는 한번도 나의 정면에 있는 진형이 무너지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잘 살아남았지만 그런 행운이 언제까지 계속되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항상 이 순간이 가장 긴장이 되는 시간이었다.
 두두두두.
 귓가로 점점 크게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조금씩 몸을 움직여 대는 사람들, 긴장된 표정,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끈한 열기가 사방을 가득 메우고 모두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궁수! 쏴라아아아-!”
 뒤에서 들리는 커다란 고함과 함께 머리 위로 화살이 새까맣게 하늘을 채우고 날아갔다.
 슈슈슈슉-!
 나 같은 일반 병사들은 새까맣게 날아가는 화살을 바라보며 제발 저 화살이 적의 기병을 최대한 많이 말에서 떨어뜨려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어떤 이는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화살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화살을 사람들의 염원을 가득 담고 포물선을 그리며 달려드는 상대편 기사단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이히히힝!
 “크악-! 으아악!”
 항상 그렇지만 하늘을 까맣게 만들며 날아가는 화살들은 많은 수의 적을 없애지는 못하고 그렇게 몇 명의 비명소리만을 만들어내고 끝이 났다.
 달려오던 기마대의 일부가 화살에 맞아 말과 함께 쓰러지지만, 열 명 내외의 사람과 말만을 쓰러뜨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두두두두.
 나머지 적의 기병은 창을 빼어 들고 여전히 우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윽고 가장 선두에서 장창과 방패로 진형을 방비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콰직, 콰지직-!
 “크아-! 으아악-!”
 가장 앞줄에 있던 창병이 고슴도치처럼 창을 세워, 어떻게든 막아 보려 하지만 갑옷으로 말까지 무장하고 있는 기사단을 막아 내기란 역부족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기병들의 돌격에 창병과 방패병은 허무하게 뚫려 버리며 아비규환의 비명성만이 처절하게 사방을 울려 댔다.
 이히히힝!
 콰직! 콰지직!
 “으아아악!”
 그 후에는 무너진 진형을 따라 기마대가 몰려들어 모든 것을 짓밟았다.
 기마들의 말발굽은 그곳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모든 생명들을 한순간에 앗아가며 그렇게 빠르게 밀려들어왔다.
 챙! 챙!
 “크악-!”
 “진형을 막아-!”
 콰직! 콰직!
 “적을 없애라-!”
 진형이 무너진 지점으로부터 처절한 비명성과 병기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적의 기병을 막으라는 우리 측 기사들의 독려하는 소리가 가득했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기병이 한 번 지나가고 난 자리에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마들의 튼튼한 말발굽이 짓밟고 지나가면 살아있는 풀 한포기 찾기 어려웠다.
 이히히힝!
 챙! 우직!
 “크아-악!”
 난 가까이서 들리는 처절한 비명 소리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소형도끼에 더욱 힘을 주었다.
 “제길! 왜 내 앞으로 오는 거야!”
 난 눈앞으로 보이는 수십 기의 기마와 그 위에 올라탄 기사들이 메이스와 모닝스타, 바스타드 소드 등과 같은 무기를 휘두르며 무인지경으로 길을 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욕을 내뱉었다.
 이 상황이면 금방이라도 내 앞에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순식간에 길을 뚫고 내 앞까지 온 거대한 말이 앞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히히힝-!
 말 울음소리와 함께 기사가 탄 말의 앞발이 그대로 내 앞에서 서 있던 사람을 짓밟아 버렸다.
 콰직!
 비명도 없이 그대로 즉사한 것이다.
 후웅!
 그리고 들려오는 매서운 바람소리!
 퍼억!
 기사의 메이스가 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던 옆 사람의 머리를 부숴 버리고 뇌수를 사방으로 뿌렸다.
 매번 비슷한 상황을 겪었지만 이번처럼 눈앞에서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그간에 살았던 짧은 시간이 한순간에 머릿속을 통과했다. 그리고 텅 비는 머릿속, 난 공포에 질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으아아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비명성이 터지고 난 그대로 소형도끼를 휘둘렀다.
 휘익, 콱!
 이히히힝-!
 말의 고통스런 울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수 좋게도 휘두른 손도끼가 말의 무릎을 정확하게 찍어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이 몸부림치자 그 움직임을 이겨 내지 못한 기사가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쿵!
 말 위에서 떨어진 기사는 갑옷의 무게로 인해 그 충격이 고스란히 몸 안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두두두두!
 나는 뒤따라 달려드는 기마대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의 몸을 밀쳐냈다.
 “비켜!”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귀로는 죽음을 안겨주는 말발굽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고 피할 방법이라고는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밀쳐내며 그렇게 도망쳤다.
 우직! 우직끈!
 “크악-! 으아악!”
 뒤쪽으로 들리는 소리라고는 처참한 비명과 말발굽에 짓이겨지는 소리들만이 가득했다.
 내 뒤로 펼쳐진 광경은 안 봐도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처럼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상대편 기마대가 기사가 있던 부근의 생명체란 생명체는 모두 사라지게 만들며 통과하는 중일 것이다.
 점점 가까워지는 말발굽소리에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몸을 돌렸다.
 퍼억!
 상대편 기마대는 빠르게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며 내 앞에 서있던 사람의 머리를 으깨어 버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봤다. 아마도 나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변했을 것이다.
 두두두두.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신만이 즐비했다.
 말발굽에 짓밟혀서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시신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부러지고 잘리고 짓밟히고, 온통 살의 파편과 피뿐이었다.
 “크으···으으.”
 처참한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신음성이 들려와서 그곳을 바라보니 내가 말에서 떨어뜨린 상대편 기사가 아직도 살아서 꿈틀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갑옷으로 인해 목숨을 건진 모양이었다.
 그의 모습을 보자 다시 정신이 확 들어왔다.
 ‘죽, 죽일 수 있다! 죽여야 해! 반드시 죽일 거야!’
 하얗게 비어 있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단어들, 나에게 무한한 두려움을 주었던 존재가 지금 내 눈앞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살의에 가득 차서 그대로 그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죽어어어-! 죽어버리란 말이야-!”
 퍽! 퍽!
 내 몸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이빨이 빠져 죽이기도 힘든 소형도끼에도 갑옷이 찢겨 나가고 우그러들었으며 기사는 괴로운지 몸을 꿈틀댔다.
 계속되는 도끼질에 조금씩 배어 나오는 피!
 피가 눈에 보이자 난 더욱 힘이 났다.
 “죽어! 죽어! 죽어!”
 난 살의에 사로잡혀 그렇게 계속 도끼질을 했다. 그러자 기사의 갑옷 안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양은 점점 많아져만 갔다.
 퍽! 퍽!
 손도끼의 날이 완전히 무뎌진 것인지 간간이 갑옷을 뚫었던 손도끼가 이제는 그저 우그러뜨리고만 있었다.
 그때, 기사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메이스가 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소형도끼를 던져 버리고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죽어 버려-!”
 한 손으로 들기에는 조금 버거운 메이스를 양손으로 들고 그대로 기사의 머리통을 향해 내리쳤다.
 콰직-!
 투구가 완전히 함몰되며 그 안에서 많은 양의 피가 고여 흘러나왔다.
 기사는 죽었고 메이스는 이제 내 것이 되었다.
 “돌겨어어억-!”
 메이스를 얻었다는 기쁨도 잠시, 이번 돌격 소리는 우리들보고 달려 나가라는 신호였다.
 항상 도망칠 궁리만 하던 나는 이번 돌격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새로 얻은 무기와 한없이 두려운 존재였던 기사를 죽였다는 자신감이 내 온몸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
 주변에서 질러 대는 고함소리.
 “으아아아아아-!”
 피 묻은 메이스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며 나도 사람들과 같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와 함께 적들도 달려왔다.
 양쪽에서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날아드는 화살들!
 화살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는 알아서 잘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충돌.
 콰직! 콰지직!
 “으아악! 크악!”
 사방에서 비명이 터지고, 피 흘리고 쓰러졌다.
 내 앞에서 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팔이 잘려 쓰러졌고 바로 눈앞에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눈앞으로 나타난 적을 향해 양손으로 메이스를 잡고 힘껏 휘둘렀다.
 “죽어!”
 후웅-! 퍼억!
 내 앞에 서 있던 사람의 팔을 으스러뜨리고도 모자라 옆구리의 뼈까지 부숴 버렸는지 옆으로 흐느적대며 쓰러졌다.
 놀라운 메이스의 위력, 낡은 소형도끼와는 차원이 달랐다.
 “으아아아-!”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고함을 지르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좋은 무기를 얻었다는 것이 그렇게 만드는 건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고함을 지른 것이다.
 후웅! 퍼억!
 자신감이 생긴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몇 명을 더 해치웠다.
 하지만 갑자기 무거운 무기를 사용해서인지 벌써 몸이 지쳤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는 살기 위해서 몸을 움직여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후웅-! 퍽!
 “크악-!”
 난 싸우는 틈틈이 전투가 치열하지 않으면서 가장 피와 시체가 많은 장소를 물색했다.
 ‘찾았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는 장소를 발견한 것이다. 말도 쓰러져 있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몸을 최대한 숙이고 발견한 장소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서 그대로 쓰러졌다.
 치열하게 전투가 진행되는 와중에는 조금만 연극을 하면 멀리 있는 병사들에게 걸릴 염려는 전혀 없다.
 적당히 활을 맞은 것처럼 하고 쓰러지면 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로 얻은 메이스도 같이 감춰야 했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말이 죽어 있어 감추기가 수월했다.
 말의 배 밑으로 메이스를 감추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크악! 죽어!”
 사방에서 죽고 죽이는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지만, 이미 쓰러져 있는 나에게는 상관없는 소리일 뿐이었다.
 ‘이번에도 살았군.’
 말의 몸으로 깊숙이 몸을 감추고 있는 내 얼굴에는 미소가 맺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주변에 널려 있는 살점과 시체들이 뿜어내는 비릿한 피 냄새가 전혀 역겹지 않은 이유는 이것들이 모두 내 생명을 지켜 주기 때문일 것이다.
 
 ***
 
 그로부터 1년 후,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었지만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나의 몸이었다.
 어려서도 악착같이 굶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몸집이 더 컸던 나는 전쟁터를 돌아다니면서도 세 끼를 꼬박꼬박 잘 먹어서인지 어지간한 성인들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몸이 좋아졌고 그만큼 힘도 세졌다.
 그리고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생겼다.
 메이스는 몇 번의 전투로 인해 낡아서 버린 지 오래지만 바스타드 소드가 생겼고 좀 낡긴 했지만 체인 메일과 투구도 생겼다. 최소한 활을 맞고 죽을 확률은 많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봐, 크레이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바스타드 소드의 날을 다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누가 나의 별명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서 손짓을 하고 있는 사내는 해론이었다.
 어쩌다가 전쟁터에 끌려온 사람으로, 내 옆에서 나의 방법을 보고는 그대로 따라 하며 목숨을 이어 가고 있는 사람이다.
 보통은 저렇게 마음 약한 사람은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정상이지만 놀랍게도 그는 질긴 목숨을 이어 가고 있다.
 “왜 불러요?”
 “이리 와 봐! 여기 좋은 게 있다!”
 해론이나 나나 좋은 것이라는 것은 전쟁터에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무기 아니면 먹을 것이다.
 일말의 기대감과 호기심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갔다.
 해론의 앞에 놓인 물건을 보고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호오, 이거 좋은 데요!”
 “그렇지?”
 나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나무로 만든 동그란 형태의 방패인 라운드 실드였다.
 화살이 박혀 있지만 완전히 뚫리지 않은 것을 보면 단단한 목재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 분명했다.
 해론은 그것을 자신의 한쪽 어깨에 단단히 매달고는 이리저리 몸을 돌려 보다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어때? 이 정도면 메이스나 모닝스타에 대갈통이 날아갈 일은 없을 것 같지 않냐?”
 “활이나 다른 보병전이라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을 탄 기사의 메이스라면 대갈통은 날아가겠죠.”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거지. 말의 달리는 속도와 함께 휘두르는 기사의 무기를 어떻게 막겠어. 피하는 것이 고작이지.”
 해론은 말을 하면서 기사가 말을 타고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을 상상하는지 두려운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어 댔다.
 그의 말처럼 말을 타고 달려오는 속도에서 휘두르는 무기의 무서움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안다.
 갑옷도 필요 없고 방패도 필요 없다.
 말을 탄 상태에서 휘두르면 거기에 걸리는 모든 것은 그대로 파괴되어 생명을 잃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들이 죽을 확률은 나 같은 보병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말을 탄 기사에게 걸리면 말발굽에 짓밟히거나 메이스나 바스타드 소드와 같은 다른 무기에 의해 죽기 딱 좋았다.
 기사라는 존재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말에서 떨어뜨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해론이 갑자기 내 눈앞으로 라운드 실드 하나를 내밀었고 난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뭐예요?”
 “라운드 실드 하나 남는데 이건 너 써라. 양쪽 어깨에 매달아 봐야 불편하기만 하다.”
 “잘 쓰죠.”
 난 그의 호의를 사양하지 않았다.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전장에서 살 확률을 높여 주는 물건을 사양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해론의 손에 들려 있는 라운드 실드를 빠르게 잡아채고는 그대로 오른쪽 어깨에 매달았다. 그는 당연하게 받아드리는 내 행동에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했다.
 “그래, 잘 써라. 그리고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 살아라! 그리고···살려줘서 고마웠다.”
 고마워하는 해론의 표정, 얼마 전에 벌어졌던 전투에서 해론에게 닥친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게 해 준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 일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론의 등을 찔러 들어가는 적을 보고 순간적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도끼를 던졌는데, 그것이 정확하게 적의 머리에 박혀 버려서 그를 구했었다.
 지금 이렇게 라운드 실드를 주는 이유는 그 일에 대한 나름의 감사 표시 같았다.
 “헛소리 말고 살 궁리나 해요. 이곳에서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으면 말이에요.”
 나의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큭! 네 말이 맞다. 이곳에서 죽는 것은 정말 개죽음이지.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 우리 같은 사람들의 죽음을 말이야. 저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냥 달려들어서 살기 위해 죽이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말이다.”
 해론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를 힐끗 보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면 넌 참 특이한 놈이야.”
 “무슨 말이에요?”
 “너를 볼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다른 놈들은 다 죽어도 너는 살아남을 것 같아. 네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상대편의 무기가 너를 피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거든?”
 그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나도 피식 웃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전장에서 상대의 무기가 나를 피해 간다고 말하고 있으니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훗! 웃기는 소리 말아요!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전장에서 무기가 피해 간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아니야! 정말 그렇게 느껴져. 네가 달려들면 상대편이 뒤로 물러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단 말이야. 아니 움츠러든다는 표현이 맞겠다. 아무튼 그렇다니까?”
 나를 바라보는 해론의 눈은 마치 방법을 알려 달라는 그런 간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을 보자 왠지 내가 싸우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가르쳐 줘요?”
 “그···그래!”
 눈을 빛내는 해론을 보며 나는 그 방법을 딱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해 줬다.
 “그럼 미쳐요.”
 “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싸우는 그 순간에는 정말로 미치면 돼요. 내 앞에 있는 상대의 눈을 보며, 내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너만은 꼭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꽉 채우고는 미쳐서 달려들어요. 그리고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요. 다른 놈들이 공포로 얼어붙을 정도로 잔인하게!”
 난 말을 하면서 절로 몸이 흥분해 버렸다.
 지금 해론이 보는 나의 얼굴과 눈빛은 전장에서 적이 보던 그 얼굴과 똑같을 것이 분명했다.
 “······.”
 해론은 나의 말과 표정에 아무 말도 못하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얼어붙었다. 난 그런 그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법을 일러줬으니 이만 갈게요.”
 그를 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하며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해론이 내 등 뒤에다 대고 약간은 허둥대는 목소리로 물어 왔다.
 “너, 너 같은 생각을 가진 놈을 만나면?”
 해론의 말에 난 다시 몸을 돌려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 달려드는 순간부터 내 상대를 골라야 해요. 그러고는 단번에 처리하는 거죠!”
 단호한 나의 말에 해론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상대에 대한 파악에 실패해서 너 같은 생각을 가진 놈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는 정말 죽기 살기로 싸워야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놈을 죽인다면······.”
 “죽인다면?”
 “전투에서 우리가 져도 해론은 살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런 상대를 죽인다면 그 싸움은 아주 처절할 것이고 그것을 본 놈들은 두려움으로 해론에게 쉽사리 덤비지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살려면 아주 철저하게 미쳐야 가능해요.”
 나의 말에 해론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너···그냥 미친놈이 아니구나.”
 “훗! 난 살기 위해 미친놈이죠. 라운드 실드 잘 쓸게요.”
 난 어깨에 매달려 있는 방패를 몇 번 두드리고는 해론의 곁에서 멀어졌다.
 
 ***
 
 며칠 후, 소규모 전투를 계속하던 우리와 적은 드디어 끝장을 보려고 하는 것인지 넓은 평원에 진영을 갖추고 대치했다.
 서로의 힘이 팽팽하기 때문에 이번 전투는 아주 처절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말했고 지금 저 멀리 보이는 적의 진형을 보며 내가 판단하기에도 이번 전투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제길! 이번에는 많이 힘들겠군.’
 난 적의 진형을 바라보며 약간 어두운 표정을 하다가 옆을 힐끗 봤다.
 그곳에는 잔뜩 흥분한 표정의 해론이 있었다.
 나름대로는 험상궂은 표정을 한다고 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괜히 가르쳐줬나?’
 해론의 어색한 표정을 보니 살기 위한 방법을 괜히 가르쳐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전쟁에서 살고 죽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지 남이 도와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가끔은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는 곳이 전장이라는 곳이었다.
 
 뿌우-! 뿌우-!
 상념에 빠져 있는데 드디어 전투를 알리는 뿔 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돌겨어-억!”
 기사의 외침과 함께 모두의 몸에서 열기가 후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평원에서의 전투 방법은 언제나 똑같다.
 말을 탄 기사들이 달려가고 상대편에서도 달려온다.
 두 무리가 교차하고 나면 말에서 떨어지는 허무한 죽음들이 만들어진다.
 그 후에는 달려드는 기사단을 향해 양측 모두 하늘이 어둡게 보이도록 새까맣게 화살들을 쏘아 올리고, 그로 인해 또 몇 명의 기사가 화살을 맞고 말과 함께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것은······.
 콰직! 콰지직!
 “으아악-! 크악!”
 앞쪽에서 창병들과 기사들의 창이 부딪치며 비명성과 아우성 소리가 가득 메우게 된다.
 진형의 한쪽이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허무한 죽음들이 또다시 만들어 지는 것이다.
 두두두두.
 기사단이 지나간 자리에서 살아 있는 생명을 찾아낸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슈슈슉!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병력은 가장 뒤쪽에 있는 궁수부대와 말을 노리며 달려드는 창병이 전부였다.
 보병들이 어설프게 무기를 들고 설치는 것은 더 일찍 죽으려는 몸부림일 뿐이다.
 말을 탄 기사들을 상대로 우리 같은 보병들이 하는 역할은 창병이나 궁수부대에 의해 말에서 떨어지는 기사가 보이면 무리를 지어 몰려가 죽이는 것이다.
 다행히도 기사단의 방향이 내 쪽이 아니고 조금 떨어진 곳의 진형을 무너뜨리며 지나갔다.
 ‘살 확률이 높아졌군!’
 상대편의 기사단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또다시 들려오는 커다란 외침.
 “돌겨어어억-!”
 이제는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달려 나갈 시간이다.
 “우와아아아아-!”
 한차례 고함을 지르고 나서 상대편 기사단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통해 모두 달려 나갔고 난 적당히 무리의 중간쯤에 섞여서 주변을 잘 살피며 움직였다.
 전쟁터에서 가장 앞서 달려가는 짓은 바보 같은 짓이다.
 전투에 처음 참여하는 놈들이 대부분 분위기에 휩쓸려 가장 선두에 나서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허무한 죽음뿐이라는 것을 난 잘 알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생각대로 가장 앞서 나가는 놈들에게 위기가 닥쳐왔다.
 슈슈슈슉!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날아드는 두 진영의 화살들이 선두의 사람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날아들었다.
 파바박!
 “크아악!”
 수많은 화살에 의해 허무한 죽음을 맞는 선두의 신참들, 그들은 언제나 새로 유입되고 전쟁에 필요한 머릿수만 채워 주고 그렇게 사라진다.
 전투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것은 기사들의 몫이지만 전투의 중반을 책임지는 것은 바로 나와 같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왜 서로에게 이렇게 적의를 드러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도 모른 채 죽고 죽이는 일을 벌이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인 것이다.
 “으아아아-!”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와중에도 머리를 차갑게 해서 주변을 잘 살펴야 했다.
 내가 죽여야 할 놈을 확실하게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괜히 엉뚱한 놈을 잡아서 힘을 소진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정확하게 상대를 고르고 그 상대를 죽이는 것이 내가 전쟁터에서 오래 사는 방법이었다.
 그때, 두려운 눈빛을 하고서 도끼를 들고 달려드는 놈이 내 눈에 띄었다.
 ‘그래! 나의 상대는 너다!’
 나는 더욱 속력을 내서 먹잇감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언제나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두려워하는 놈이 먼저 죽는다.
 허세를 부리는 한이 있더라도 약한 모습이나 두려워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놈은.
 퍼걱!
 “크악-! 내 파아-알!”
 바로 내 눈앞에 있는 놈처럼 피를 흘리며 죽는 것이다.
 바스타드 소드에 팔이 잘려 쓰러진 놈을 움직이지 못하게 발로 밟아 놓고 심장에 칼을 쑤셔서 죽음을 선사했다.
 그러고는 바로 광기 어린 눈으로 다음 먹잇감을 노렸다.
 “죽고 싶은 놈은 덤벼!”
 나를 바라보는 상대편들의 눈빛에 두려움의 감정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제는 된 것이다.
 몇 명만 더 죽이면 알아서 나를 피할 것이다.
 후웅-! 푸악-!
 나의 가까이서 멈칫거리고 있는 놈을 향해 그대로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고 그의 머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최대한 잔인하게, 최대한 두렵게!’
 지금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은 이것밖에 없다.
 광기로 가득 차 눈앞에 있는 생명에 죽음을 안겨 주는 것이 내가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운 것이고 그 배움을 최대한 사용하는 것이 나의 생명을 연장하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아, 하아!”
 얼마나 죽인 걸까?
 얼마나 긴 시간을 싸운 것인지 숨은 점점 거칠어지고만 있었다.
 슬금슬금 뒷걸음치는 상대의 등에 칼을 휘두르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고, 지금 내 몸을 움직이는 힘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광기였다.
 그때, 내 뒤로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우아아아아아-!”
 “이겼다! 우리가 승리했다아-!”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살아남은 적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 적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안도감과 함께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다리가 저절로 풀려 버렸다.
 털썩!
 나는 그 자리에 벌렁 누워서 하늘을 바라봤다.
 “하아~. 이번에도 살아남은 건가?”
 난 그렇게 누워서 푸른 하늘과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을 감상하며 거친 숨을 다스려 갔다.
 이번에도 살아남았으니 이렇게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하악···하악.”
 내 옆으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가 거슬려 고개를 돌리자 해론이 보였다. 헌데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보였다.
 “무슨?”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해론의 눈길을 따라가 보니 떨리는 양손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배를 틀어막고 있었다.
 아무리 막아 보려 하지만 흘러나오는 피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해론은 결국 포기한 것인지 힘겹게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젠···장. 상대를··· 잘못··· 골랐나 봐···. 그냥 네 옆에 꼭··· 붙어 있을 걸 그랬······.”
 툭.
 온몸을 떨며 말을 하던 그의 머리가 차가운 바닥에 뉘어졌고 탁한 동공이 하늘로 향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마치 식사를 하는 것처럼 지금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빌어먹을······. 진짜로 미쳐 가는 건가?”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욕, 어제의 동료가 지금 내 옆에서 생명을 잃고 차갑게 식어 가는 중인데도 전혀 느낌이 없다는 것이 나를 조금 화나게 만들었다.
 광기와 죽음들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그의 죽음은 그저 미간을 조금 구길 정도의 일밖에 되지 않았고 전리품을 얻을 수 있는 시체가 되어 버렸다.
 이것이 지금 나의 머리를 조금은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지만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야 했다.
 “후···우.”
 크게 숨을 내쉬고 난 다음,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그의 라운드 실드를 벗겨서 나의 왼쪽 어깨에 단단히 매달았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장에 흩어져 있다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아무렇게나 누워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모두의 눈빛은 공허함으로 가득했지만 그것은 제정신이라는 증거이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봐야 했다.
 진짜로 전쟁에 미쳐버린 녀석들은 붉은 눈으로 피를 갈구하다가 비참하게 죽는다. 그러니 전쟁이 끝나고 눈빛이 공허하다면 아직은 미치지 않은 증거라고 봐야했다.
 나도 그들 옆으로 가서 그대로 누워 버렸다.
 그렇게 쉬고 있는데 저 멀리서부터 빠르게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그닥! 다그닥!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저 멀리 기사단이 모여 있는 곳에서 기사 한 명이 우리 쪽으로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모두 슬금슬금 일어서기 시작했다.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전장에서 가장 상위 계급에 속하는 기사가 오고 있는데 누워서 그를 맞이했다가는 목이 잘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히히힝!
 우리들 바로 앞쪽에서 말을 세운 기사는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들 고생했다! 이번 전투를 훌륭히 해냈으니 지금부터 잠시 동안 휴식이다! 모두들 그대로 쉬어도 좋다!”
 그의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에 주저앉았고 나도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이봐, 거기 양쪽 어깨에 라운드 실드를 메고 있는 놈!”
 자리에 앉으려다가 기사를 봤다.
 양쪽 어깨에 라운드 실드를 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기 때문이다.
 “절 부른 겁니까?”
 “그래! 전투 중에 잠시 봤는데 꽤나 잘 싸우더군. 이름이 뭔가?”
 “하이데론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하이데론이라······. 너 혹시 말을 탈 줄 아나?”
 “모릅니다.”
 “그래? 뭐, 한번 가르쳐 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나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기사가 혼잣말을 하듯 말하고 나서는 다시 나를 봤다.
 “너는 나를 따라와라!”
 “알겠습니다!”
 나는 그의 명령에 바로 답하고는 기사의 뒤를 쫓아 부지런히 뛰어갔다.
 
 기사를 따라 도착한 곳은 기사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고 내가 어색한 모양새로 그들에게 다가가자 기사들 중 한 명이 나를 힐끗 보고는 이곳까지 같이 온 기사를 보며 물었다.
 “말을 탈 줄 아는 놈이야?”
 “그런 놈을 어떻게 구해? 대충 싸움 잘하는 놈으로 골라 왔어. 휴식하는 동안 가르쳐 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뭐.”
 두 사람은 짧게 대화를 하고 나서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던 기사가 다시 나를 보며 한마디 했다.
 “이봐, 꼬맹이! 이번 전투에서 전투용 말이 많이 남았기에 기마대에 추가 인원을 뽑는 것이다. 지금부터 말 타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니 최선을 다해라. 만약 오늘 중으로 제대로 말을 타지 못하면 그대로 다시 보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 말을 알아들었냐?”
 그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기회, 기회가 왔다!’
 이것은 진정으로 기회였다.
 기마대에 들어가면 살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초반에 활을 피하기만 하면 방금과 같은 전투를 치르지 않아도 되고 말의 이점으로 인해 그냥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만 해도 적들이 알아서 피하는 것이 기마대였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다시없는 기회였다.
 “아,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의 바짝 긴장한 표정과 커다란 목소리가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웠는지 모여 있던 기사들이 낄낄거리며 한마디씩 했다.
 “크하하하! 이거 아주 웃기는 놈이군. 그래, 잘해 봐라!”
 “하하하! 잘하면 아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기겠군.”
 기사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난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당황해 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각, 다각.
 나에게 기회를 준 기사가 말을 타고 내 뒤쪽으로 섰다.
 그는 말을 안정시키려는 것인지 몇 번 쓰다듬고 나서 나를 봤다.
 “만져 봐!”
 그의 말에 따라 말에게 조금 다가갔다.
 푸륵, 푸르륵.
 투레질을 하고 있는 거대한 말, 전투용이라 그런지 덩치가 상당했다.
 처음에는 말의 크기에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애써 잡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용기를 내어 다가섰다.
 그러고는 말의 몸을 손으로 만져 봤다.
 ‘부드럽다.’
 따뜻함과 부드러운 느낌이 손을 타고 내 몸에 전달되었다.
 그러자 말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내 앞에 있는 말에 올라타서 신나게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봤다.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가슴이 떨려 왔다.
 약간은 상기된 표정을 보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알아챘는지 기사가 피식 웃었다.
 “훗! 처음으로 말을 접한 사람이 자신이 말을 타고 달리는 상상을 하면 모두가 너와 똑같은 표정을 짓더군. 하지만 막상 말에 올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는 말에서 내려 올라타는 방법부터 가르쳐 주기 시작했고 나는 하나라도 잊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말안장에 보이는 걸쇠에 이렇게 다리를 걸치고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한 손으로는 안장 위의 잡는 곳을 쥐고는 이렇게······.”
 기사는 안정감 있는 자세로 단번에 말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다시 말에서 내려와 나를 보며 말했다.
 “해 봐!”
 나는 그의 말에 따라 다리를 걸치고는 똑같은 방법으로 말에 올랐다.
 “어?”
 생각보다 쉽게 말에 오르게 되자 내가 더욱 놀라서 기사를 봤다.
 “말이 서 있는 상태에서 올라타는 것은 지금 네가 해낸 것과 같이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말이 걷다가 뛰기 시작하면 말을 탈 놈인지 아닌 놈인지 확실하게 구분된다.”
 기사는 나에게 말고삐를 잡게 하더니 말 머리 쪽에 있는 고삐를 잡고서 말을 끌기 시작했다.
 다각, 다각.
 “어, 어······?”
 말이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몸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오히려 더 무너지려고만 했다.
 그러자 말을 이끌던 기사가 바로 소리쳤다.
 “말의 움직임에 몸을 맞춰! 그렇게 하지 못하면 넌 절대 기마대의 일원이 될 수 없다!”
 기사의 말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몸을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러자 생각보다 말의 움직임에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천천히 걷는 말 위에서 안정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것 같군. 이제부터가 진짜다.”
 기사는 말의 움직임을 조금 빨리했다.
 말의 움직임에 따라 들린 엉덩이가 다시 내려오며 안장과 부딪치는 일이 많아졌고 그 부딪침 속에 몸의 균형이 조금씩 무너지려했다.
 ‘제기랄! 말 타는 것이 왜 이리 어려워!’
 난 결국 허벅지에 힘을 줘서 엉덩이를 조금 들어 올리는 편법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해 나갔다.
 ‘휴, 이렇게 하니 조금 살 것 같군!’
 더 이상 엉덩이가 아프지도 않고 몸의 균형도 절로 잡히니 나름대로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처음에는 너처럼 허벅지에 힘을 주고 버티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말을 끌고 있는 기사의 말에 놀라 그를 바라보니 조금은 짓궂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말을 잃어버리면 그길로 넌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거다!”
 기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말의 엉덩이를 때려 버렸다.
 짝!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말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히히힝!
 다그닥, 다그닥!
 “으아아아악!”
 말이 달리기 시작하자 균형이고 뭐고 없이 일단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말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실제로 몸으로 느껴지는 말의 속도는 생각보다 더욱 빨랐고 이대로 떨어진다면 그대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말이 막사 안쪽을 빙글빙글 돌면서 달렸기 때문에 말을 잃어버릴 일은 없었다.
 “와하하하! 저놈 물건이다, 물건!”
 “진짜 웃긴 놈이네! 아하하!”
 기사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지나갈 때면 나를 향한 비웃음과 조롱이 들려왔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가르쳐준 대로 말에 올랐고 아직까지 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기사의 가르침을 잘 따라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기마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절박한 문제이고 그 문제에 대한 결정권은 말 타는 법을 가르쳐준 기사에게 있었다.
 기사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말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고 난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돌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가 매달려 있는 말을 멈춰 세웠다.
 “워-워워.”
 이히힝, 이힝!
 그의 능숙한 동작에 말이 멈췄지만 난 말의 목을 꽉 감고 있는 팔을 전혀 풀지 못했다.
 그런 나의 뒤통수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은 떨어질 줄 알았는데 처음치고는 꽤 잘하는군.”
 ‘일단은 인정받은 것인가?’
 기사의 호의적인 말에 조금은 안도하며 말의 목을 단단히 감고 있던 팔을 조금씩 풀어내고서 그를 봤다.
 “근성은 있는 놈이군!”
 기사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는 그때부터 말 타는 법을 자세하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고삐를 쥐는 법부터 달리는 법, 멈추는 법 등을 차례로 가르쳐줬다.
 이 과정에서 몇 번이나 떨어졌고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지만 그래도 말에 올라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의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다시 기마대에 들 수 있는 기회가 올지 장담할 수 없으니 지금 이 순간에 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다가닥! 다가닥!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말을 타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여전히 불안하고 어색한 구석이 많았지만 그런대로 해내고 있었다.
 엉덩이는 이미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였지만 지금의 행동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만!”
 드디어 멈추라는 기사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말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나는 간절한 눈길로 기사를 바라봤다.
 그의 말 한마디에 따라 말을 타는 기마대에 들든지 아니면 보병으로 아까와 같은 전투를 계속할 것인지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넌 이제부터 기마대 소속이다!”
 “감사합니다!”
 난 드디어 내 앞에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은 것이다.
 이제부터는 기마대로서 전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죽을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
 
 기마대에 들자 나에게 주어지는 음식도 달라졌다.
 보병으로 지낼 때보다 확연하게 차이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따른 무거운 책임도 생겼다.
 타고 있는 말을 죽이지 않고 지켜 내는 것, 이것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시되었다.
 자신의 말이 없는 기마대원은 기마대가 아니다.
 그러니 말은 나를 기마대로서 존재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자신의 말을 돌보고 관리하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없는 것이다.
 물론 정식 기사가 되면 그런 일조차 하지 않지만 나는 그냥 기마대원일 뿐이었다.
 내 말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의 말과 고참의 말도 관리해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전쟁터에서 말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만 있어도 쓸모는 더욱 많아지게 되는 것이니 많이 배워 둘수록 좋은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살 수 있는 확률은 더욱 높아지는 거였다.
 말을 관리하면서도 말이 지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말을 타고 무기를 휘두르는 연습을 부지런히 했다.
 단순히 말만 탔다가는 죽기 십상이니 미리미리 연습해 두어야만 했다.
 지금처럼 전투가 없을 때 익혀 둬야 나중에 내 목숨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말 위에서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다 몇 번이나 떨어졌고 말에 밟힐 뻔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익숙해졌고 이제는 창을 들고 달리는 것도 많이 좋아졌다.
 어설프게 말을 타는 모습을 보며 다른 기마대원들과 기사들이 온갖 야유와 비웃음을 보냈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의 행동이 전투가 벌어졌을 때 내 목숨을 지켜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말을 타는 일에 능숙해졌고 그 만큼 야유와 비웃음은 줄어들어 갔다. 급기야는 나의 노력에 질려 하는 사람까지도 생겨났다.
 
 다그닥! 다그닥!
 후웅! 후웅!
 이제는 한 손으로 말을 타고 다른 손으로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는 것이 아주 익숙해져서 바람소리를 내고 있었다.
 말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가며 휘두르는 칼로 인해 들리는 바람소리가 내가 느끼기에도 꽤나 안정감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잠깐 동안 그렇게 말을 타고서 내려오자 기마대의 고참 중 하나인 타룬이 질린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빨리도 적응한다. 너 같은 놈은 어디 가서도 절대 죽지 않을 거야.”
 “죽지 않으려고 이러는 겁니다.”
 “그래도 말 타는 것에 더 익숙해져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신 되기 딱 좋아. 최고 속도로 달리는 말에서 떨어지는 놈들치고 어디 부러지지 않은 놈은 드물어. 난 죽는 것보다 병신이 되는 것이 더 무섭다. 전쟁터에서 병신이 되는 놈에게 남는 것은 비참한 삶뿐이다. 내가 그런 놈들을 수두룩하게 봤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전 병신도 되지 않을 거고 죽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기 싫으면 말 타는 것에 더 익숙해져! 지금 달리는 속도의 두 배 이상으로 달려도 말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 그렇지 않으면 전투 중에 병신이 되거나 다른 놈들처럼 활을 맞고 죽을 거다!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어!”
 “······.”
 그의 진지한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아직도 말을 탄다는 것에 조금 두려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지금의 두 배 속도로 달리면 그 속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그 속도에서 떨어지면 병신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의 속도로 말을 달리게 되면 궁수들의 표적으로 아주 좋은 먹잇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 잘 안다. 지금 그 속도를 연습하다가 혹시라도 다치게 되면 기마대에서 다시 보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타룬은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라. 말을 탈 줄 아는 놈들이 어디 흔한 줄 아냐? 전쟁터에서 말을 탈 수 있는 놈은 나중에라도 쓸모가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설픈 칼질이 아니고 말의 속도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래야지 더 오래 살 수 있다. 알아들었냐?”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타룬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처럼 달리는 말에서 떨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의 속도에서 떨어지면 대비라는 것을 할 시간도 없다.
 땅에 떨어지는 충격에 머리는 텅 비고 혹시라도 잘못 떨어지면 그대로 달리는 말에 짓밟힌다. 아니면 말 자체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가까스로 잡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타룬은 그것을 이미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알았어요.”
 그날부터 난 타룬의 충고대로 말의 속도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수십 일 후,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말 위에 내가 있었다. 죽을 만큼 두려웠지만 이제는 조금씩 그 속도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두두두두.
 “하얏!”
 말을 채찍질하며 속도를 더욱 높였다.
 바람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엄청난 속도, 그에 따라 느껴지는 말의 엄청난 움직임, 말의 속도에 따라 나타나는 수많은 위험에 익숙해지기 위해 더욱 말을 채찍질했다.
 ‘이게 내가 살 수 있는 길이야!’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바보다. 그리고 그런 바보들에게 전장이 주는 것은 죽음뿐이다.
 말의 최고 속도로 몇 번을 달리고 난 후에 기마대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말을 세우고 몸을 돌려보니 어느새 나타난 타룬이 나를 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
 “큭! 말귀는 알아듣는 모양이구나. 다른 골빈 놈들보다는 오래 살겠다.”
 “무안하게 왜 그래요?”
 “칭찬이야. 너 보병 시절에 크레이지라고 불렸다며?”
 “어떻게 알았어요?”
 “너같이 전쟁 중에 기마대에 소속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모두들 관심이 많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일이야. 보병 시절과 같이만 살아라. 그럼 오래 산다.”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
 
 그로부터 얼마 후 다시 시작된 전투에서는 보병이 아니라 기마대로서 전장에 있었다.
 투레질을 하는 말들과 그 위에 올라탄 사람들 속에 내가 있었다.
 전혀 다른 방식의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이 들었지만 타룬의 충고대로 말의 속도에 충분히 익숙해졌기에 조금은 안심이 되는 면도 있었다.
 저 앞쪽에 보이는 상대 기마대를 뚫기만 하면 충분히 살 자신이 있었다. 조잡해 보이지만 체인 메일을 걸치고 있고 양어깨의 라운드 실드는 내 몸을 보호해 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면에 있는 완전 무장한 기사들이 길을 뚫을 것이니 그 다음으로 달려드는 나는 그저 말로 밟아 버리기만 해도 되었다.
 그것이 수많은 전투 속에서 내가 눈으로 직접 본 것이고 아직까지도 그 방법은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봐, 애송이! 죽지 마라.”
 내 앞쪽에서 타룬이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당신 목숨이나 걱정해요. 당신의 뒤만 따라 움직일 거니까 아마 당신보다 오래 살 겁니다.”
 “웃기는 애송이 놈! 네가 내 속도를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봐야 당신도 앞에 서 있는 기사보다는 뒤처져서 달릴 게 분명한데 뭐가 걱정이에요?”
 나의 말에 그가 놀란 표정을 하며 뒤돌아봤다.
 “뭐야? 눈치 챈 거야?”
 “당연한 일 아니에요? 전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아는 사람치고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걸요?”
 “허, 너 아주 웃기는 놈이구나. 후후.”
 그는 나를 쳐다보며 조용히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기왕에 가르쳐 주는 것, 내 뒤에 잘 따라붙기만 하면 기마대로서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다. 잘 따라와라, 애송이!”
 “아까도 말했지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당신 목숨이나 걱정하세요. 당신이 전장에서 사는 방법은 내 두 눈으로 반드시 알아낼 테니까요.”
 “풋! 그래.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라, 애송아!”
 우리의 대화가 끝나자 바로 돌격을 알리는 뿔 고동 소리가 울렸다.
 뿌우-! 뿌우-!
 그러자 앞쪽에 있던 기사의 입에서 고함성이 터져 나왔다.
 “돌겨어-억!”
 뒤이어 말을 재촉하는 소리.
 “하얏!”
 이히히힝!
 말들이 흥분한 소리를 지르고 앞줄의 기사단부터 정면을 향해 질주가 시작되었다.
 두두두두!
 말을 재촉하는 소리와 말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맞춰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다.
 말의 열기와 사람의 열기가 합쳐지고 오직 앞에 보이는 상대편 기사단을 향해 최고 속도로 달리는 것이다.
 척! 처척!
 상대편의 기마대와 거의 충돌할 시점이 되자 앞줄의 기사들이 자신의 창을 서서히 앞으로 내뻗었고 양측 기사단의 내뻗은 창이 상대를 노렸다.
 콰직! 뻐걱!
 “크아악!”
 창과 갑옷이 부딪치면서 만들어지는 기괴한 음향과 함께 말에서 떨어지는 기사들이 속출했고 양쪽의 기마대가 서로를 교차하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내 앞에 달리고 있던 타룬은 언제 꺼내 들었는지 끝이 날카로운 가시로 가득한 모닝스타를 돌리면서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상대 기사를 향해 그대로 휘둘렀다.
 퍼억!
 타룬의 모닝스타는 상대 기사의 흉부 갑옷을 찌그러뜨리며 그를 말에서 떨어뜨렸다. 달려가던 속도가 있고 교차하고 있는 시점이라 그 파괴력은 몇 배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엎드려!”
 그리고 갑자기 들려오는 그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나도 머리를 숙이고 말에 바짝 몸을 붙였다.
 후웅! 후웅!
 몇 번에 걸쳐 머리 위로 뭔가가 바람소리를 내며 스쳐 지나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상대편에서 휘두르는 무기가 지나가는 소리일 것이다.
 그의 외침에 따라 몸을 숙이지 않았다면 모닝스타에 맞고 말에서 떨어졌던 기사처럼 나도 지금 머리 위로 지나가는 무기들로 인해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애송이, 이게 첫 번째 살아남는 방법이다!”
 그는 말에 몸을 바짝 붙인 채로 소리쳤다.
 아마도 내가 그의 뒤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
 “달려어-! 하얏!”
 그는 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말을 재촉하며, 앞에서 달려 나가고 있는 기사단을 바짝 따라붙었다.
 두두두두.
 “하얏!”
 나도 말을 달리면서 그의 뒤를 바짝 추격했다.
 앞으로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인데 정신을 확 들게 만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을 까맣게 메운 화살들이 이미 포물선의 정점을 지나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나는 이를 악물고 말을 재촉하여 최대한 빨리 달려 나갔다. 지금 따라붙지 못한다면 저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어야 하니 말이다.
 그동안 연습했던, 말의 최고 속도에서 떨어지지 않으면서 달리는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하얏! 달려! 더 빨리 달리란 말이야!”
 두두두두!
 말을 재촉하며 엉덩이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달리고 있는데 머리 위쪽으로 뭔가 지나가는 소리가 수없이 들리기 시작했다.
 슈슈슈슉!
 그리고 뒤쪽에서 고통스런 말의 울음과 비명성이 들려왔다.
 “크악!”
 이히히힝!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뒤로 처진 사람들과 말이 수많은 화살을 맞고 지르는 비명이 분명했다.
 “빌어먹을! 이게 보병보다 정말 오래 사는 방법인 거야?”
 난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로 인해 욕을 내뱉고는 그대로 말을 몰았다.
 정말 기마대가 오래 살 수 있는 곳인지 슬슬 의심이 되기까지 했다. 나의 거친 욕설 때문인지 타룬이 달리면서 뒤를 돌아봤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타룬은 바로 고개를 돌려 기사들을 따라잡는 데 열중했다.
 “그 웃음은 뭐냐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의 얼굴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는 마치 ‘애송이 녀석, 따라올 수 없다면 그냥 죽어!’라고 내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절대 안 놓쳐! 하얏!”
 기사단의 속도가 조금 떨어지자 나는 말을 더욱 재촉하여 타룬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앞으로는 고슴도치처럼 창을 세운 적의 진형이 보이고, 기사들이 다시 창을 세웠다.
 “다른 기사 뒤로 붙어!”
 또다시 들리는 그의 음성에 따라 중무장한 기사의 뒤로 바짝 붙었다.
 내 옆으로는 타룬이 다른 기사의 뒤에 바짝 붙어서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타룬은 전방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 궁수들의 먹이가 되고 싶지 않으면 기사의 뒤쪽에서 최대한 몸을 숨겨라!”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말에 바짝 엎드리며 머리만 든 채 전방을 주시했다. 물론 나도 그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슈슈슉!
 나의 주변으로 화살들이 스쳐 지나갔다. 전면으로 날아드는 화살은 기사들의 방패에 막혀 더 이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또 한 번의 부딪침.
 콰직! 콰지직!
 “크아악!”
 기사들의 창과 창병들의 창이 교차하고 가장 앞섰던 기사 몇 명이 또 말에서 떨어졌지만 인원에 비해 그리 큰 피해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방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비명을 보면 적들의 피해가 더 큰 듯싶었다.
 나 역시도 보병 시절에는 이런 기사단이 제일 두려웠으니 저들의 비명과 아우성이 이해가 갔다.
 콰직! 우지직!
 가장 앞서 충돌한 기사의 다음 열에 서서 돌격하던 기사단으로 인해 적의 진형은 완전히 와해되었고 한쪽으로 길이 열려 버렸다.
 그때를 맞춰 타룬의 외침이 또다시 내 귀를 울렸다.
 “무기를 들고 거치적거리는 것은 모두 부숴 버려!”
 후웅! 후웅!
 콰직! 우직!
 그의 외침에 따라 미친 듯이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다. 말의 좌우로 눈에 뭐가 걸리기만 하면 그대로 휘둘렀다.
 비명 소리, 부러지는 소리, 말의 발굽에 짓밟히는 느낌이 고스란히 몸으로 전달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돌진하고 있는데 또다시 타룬의 음성이 들렸다.
 “머리 숙이고 좀 전과 같이 기사 뒤에 붙어!”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바로 앞에 보이는 기사의 뒤로 몸을 숨겼다. 고개를 쳐들고 앞을 보니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궁수부대가 눈에 들어왔다.
 “쏴라아아아-!”
 궁수부대 쪽에서 소리가 나고 화살들이 우리 쪽을 향해 쏟아졌다.
 슈슈슈슉!
 내 앞에 있는 기사는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말까지 무장하고 있어서 화살이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거기다가 방패로 안면까지 보호하고 있으니 철옹성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낡은 체인 메일 따위로 이렇게 근접한 거리에서 저 화살들을 견뎌 내기란 불가능했다. 기사의 뒤에 몸을 숨기지 않았다면 그대로 고슴도치가 되어 말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다시 무기 들고 부숴 버려-!”
 궁수들이 가까이 접근한 기사단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댔지만 그렇다고 죽이지 않을 수는 없다.
 언제 활에 화살을 걸어 날릴지 모르는 존재가 궁수이기 때문이다.
 후웅! 후웅!
 콰직! 퍽!
 “으아아악!”
 지금처럼 특별히 무장을 하지 않은 궁수들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멀리 있을 때야 무서운 존재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또한 궁수였다.
 무인지경으로 칼을 휘두르고 나자 어느새 궁수부대를 뚫고 뒤쪽으로 가 있었다.
 두두두두.
 갑자기 기마대가 회전을 하며 자리에 멈췄고 나와 타룬이 기사들의 뒤쪽으로 섰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말에서 떨어지지 않게 신경 쓰며 전투를 치른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앞으로 다가오는 적들은 마치 화살이 날아오는 것처럼 빠르게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양쪽이 달리는 속도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드는 모양이었다.
 그 속도에서 상대의 무기를 피하며 공격한다는 것은 마치 보병으로 반나절을 쉬지 않고 싸운 것과 같은 느낌을 나에게 주었다.
 머리는 멍해지고 심장은 터져나갈 것처럼 뛰고 온 몸은 물먹은 솜처럼 힘이 하나도 없었던 보병시절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타룬이 씨익 웃었다.
 “어때? 심장이 터질 것 같지? 이 짓도 몇 번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다. 내가 지금 가르쳐 준 것만 잘 따라 한다면 쉽게 죽지는 않을 거라는 것에 내 목을 걸지!”
 “후욱, 후욱······.”
 타룬의 농담 섞인 말에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입으로 나오는 것은 거친 호흡뿐이고 온몸은 그저 쉬게 해 달라고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가장 앞에 있던 기사의 입에서 고함성이 터져 나왔다.
 “돌겨어어억-!”
 또다시 시작되는 죽음의 질주. 같은 방식으로 이제는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말들의 투레질과 함께 가장 앞줄서부터 달려 나가고, 중간쯤에 있던 나도 이제 달려 나가야 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살려면 기사들의 뒤에서 떨어져서는 안 되었다.
 “빌···어···먹을!”
 나는 말을 재촉하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다행히도 전투는 우리 측의 승리로 끝났고, 죽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몸살을 앓아야 했다.
 내 모습을 보고 타룬이 놀려댔지만 그의 말에 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단 한 번의 전투였지만 체력이란 체력은 모두 바닥났기 때문이었다.
 기마대로서의 첫 전투는 이렇게 끝이 났고 난 기마대로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확실하게 익혔다.
 전장은 나에게 죽음에 대한 무감각과 미치는 법, 그리고 남을 이용하여 나를 살리는 법을 확실하게 가르쳐줬다.
 
 
 
 
 
 Chapter2 왜 배워야 하는가?
 
 그 후로 몇 번의 토벌전이 있었지만 그리 위험한 전투가 아니었다. 승리를 자신할 수 있는 전투들이었고 그 전투를 통해 기마대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더 확실하게 터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겨울이 왔다.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 겨울이다.
 바야흐로 휴식의 시간이 온 것이다.
 겨울에 전쟁을 벌이는 미친놈은 없다. 전쟁을 한다고 사람들을 끌고 추운 겨울에 행군을 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추위와 행군으로 지쳐 버린 사람들이 적을 맞이하여 싸운다면 결과는 뻔하다.
 그렇기에 가까운 거리에서 대치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겨울에 싸우는 미친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방이 잘 보이는 평야에 진지를 구축해 놓고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이때가 모두에게 가장 한가한 시간이며 체력을 비축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항상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날이 조금 괜찮다 싶으면 끌려 나가서 몸이 굳지 않도록 꼬박꼬박 훈련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날도 춥고 눈도 오기 때문에 훈련은 취소되었다. 전쟁 중에 가장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바로 오늘과 같은 날이다.
 
 타닥! 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의 열기로 몸을 녹이기 위해 사람들이 둘러앉아 불을 쬐고 있다. 그 속에 타룬도 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가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궁금한 생각에 다가가서 그가 보고 있는 것이 뭔지 바라봤다.
 그것은 책이었다.
 “타룬, 글을 알아요?”
 그가 책에서 눈을 떼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럼 내가 그림책을 보는 줄 알았냐?”
 “그건 아니지만 놀라워서······.”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글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기사라는 작자들도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하물며 그보다 지위가 낮은 기마대원이 글을 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인 것이다.
 글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서 해독가로 글을 모르는 기사의 옆에서 일하는데, 기마대원으로 싸우고 있는 타룬을 보니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글을 알고 있었으면 지금처럼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장에 있기보다 기사들의 문서 해독가로 일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왜 이곳에 있는 거예요?”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이었다.
 글을 모르는 기사들이 많으니 글을 아는 사람들은 귀했다.
 그들은 그런 기사들의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낸 문서들을 읽어 주는 일만 하며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타룬은 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마대원으로 싸우고 있으니 의아했던 것이다.
 그가 책을 덮어 한쪽으로 치우고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타룬의 곁으로 다가가니 그가 바로 주먹을 휘둘러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꽝!
 “아야! 왜 때려요?”
 “너 바보냐?”
 “왜요?”
 “문서 해독가로 있다가 기사의 손에 목이 잘리면 네가 내 목숨을 다시 붙여 줄래?”
 그의 말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킥킥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거 아주 멍청한 놈일세. 그래서 넌 아직 나에게 애송이 소리를 듣는 거다. 문서 해독가라는 것이 어떤 일인지나 아냐? 공작이나 남작들이 보낸 편지를 읽는 일이다. 가끔은 작전에 관한 것도 있지. 하지만 작전이나 그런 편지들은 읽고 나면 바로 불태워진다. 왜 그럴까?”
 “그, 글쎄요?”
 “그건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문서 해독가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서다. 전쟁에서 아무리 패해도 그 일을 수행했던 사람들이 문책을 당하는 경우는 없다. 대신 문서를 잘못 해독해서 진거라며 문서 해독가의 머리가 잘린다. 그게 문서 해독가로 일하는 놈들의 운명인 거다.”
 “그, 그러고 보니 문서 해독가가 자주 바뀌는 이유가······?”
 “이제 좀 알겠냐? 얼굴이 안 보이면 열이면 열, 누명쓰고 죽은 거다. 책이나 읽고 살던 인간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기사의 검을 피할 수 있겠냐?”
 타룬은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하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거야, 이거! 그냥 누명을 옴팡 뒤집어쓰고 죽는 거지.”
 그의 행동이 조금 웃기게 보였는지 타룬과 같이 불을 쬐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고, 그들의 모습에 왠지 기분이 나빠진 나는 타룬을 보며 말했다.
 “그럼 왜 책을 읽는 거죠? 사실이 그렇다면 아예 글을 익히지 않는 편이 좋잖아요?”
 나의 말에 그가 또 한심하다는 표정을 하고서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퍽!
 “아야! 또 왜요?”
 “한심해서 그런다, 애송아! 넌 내가 이렇게 많은 전투 속에서 오래 살아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 하냐?”
 내가 아무 말도 못하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책에 있다. 그 책 속에서 지금의 상황들을 미리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거다. 일종의 간접 경험을 한 거지. 글을 몰랐다면 오랜 시간이 걸려 그 방법들을 알아냈을 거고 그 과정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더 많았을 거다. 이제 좀 알겠냐?”
 “······.”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게 있어서 글을 안다는 것은 남들이 갖지 못하는 나만의 특별한 방패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이 특별한 방패는 놀랍게도 점점 늘어나지. 그리고 무게도 없다. 글이라는 방패를 통해 더 많은 방패들이 만들어져서 내 몸을 보호해 준다. 그리고 그런 방패들이 지금껏 내 생명을 지켜 주고 있는 거다.”
 타룬의 말은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고 머릿속은 온통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패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럼 내게도 글을 가르쳐 주세요.”
 “응?”
 나의 말에 그가 약간 놀란 표정을 했다.
 “나도 당신처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패를 늘리고 싶어요. 그 방패를 통해 타룬처럼 오래 살고 싶어요!”
 타룬의 말대로라면 글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전장에서 생명을 보장받는 또 다른 방패를 가지는 셈이니 반드시 익히고 싶었다. 타룬은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큭!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웃기는 놈이야. 내 말을 그대로 믿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지 배우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나에게 다시 말했다.
 “좋아, 애송이! 가르쳐 주지. 단, 그날 가르쳐준 것을 그날 외우지 못한다면 나의 가르침은 그대로 끝이다. 난 머리 나쁜 놈에게 시간을 허비할 만큼 마음이 좋은 사람은 아니거든? 그리고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전장에서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 봐야 그게 한계야.”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반드시 외워 보이도록 하죠!”
 그날부터 난 그에게 글을 배울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배우는 공부, 몸을 쓰는 것이 아닌 머리를 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타룬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잠을 포기했다.
 아니,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고 불침번은 항상 내 몫이 될 정도로 그렇게 치열하게 외웠다.
 지금이 전투나 훈련을 하기 힘든 추운 겨울이라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항상 타룬이 가르쳐 준 글에 대한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외우고 또 외웠다.
 외우지 않는다면 가르칠 것을 포기할 것이고 그 순간이 나의 새로운 방패가 없어지는 날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룬도 날 매섭게 몰아치며 가르쳤다.
 내가 타룬이라도 그와 같이 했을 것이다.
 전장에서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고 가르침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까지 신경 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방패를 얻기 위해 겨울 내내 글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고, 겨울이 끝나 갈 무렵에는 새로운 방패를 얻을 수 있었다.
 난 글을 익혀 낸 것이다.
 
 글을 배우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은 어이없게도 내가 속한 나라가 테이란 왕국이라는 거였다.
 글을 익히고 나서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듣고 보게 되니 알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내가 기마대에 소속되어 있어 기사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글을 배우지 않았다면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일이었다.
 글을 안다는 것은 때론 새로움과 놀라움으로 또 다른 세상을 조금씩 나에게 보여 줬다.
 
 ***
 
 봄이 오자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지만 다행히도 어려운 전투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나가는 길에 있는 작은 마을들이나 도시들을 점령하면서 일어나는 사소한 싸움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타룬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달랐다. 약탈 과정에서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체의 행위를 그는 전혀 하지 않았다.
 오로지 타룬이 하는 일이라고는 돌아다니며 자신이 볼 만한 책을 구하는 것이 전부였다.
 얼마 전에 왜 돈도 되지 않는 책과 같은 것만 원하는 거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왜 책을 구하냐고? 네가 아무리 값비싼 물건을 약탈한다 한들 그게 네 것이 되냐? 그것들은 모두 모아져 기사나 그 위에 있는 놈들의 손으로 넘어갈 뿐이다. 네 꼴을 봐라.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낡은 체인 메일과 이빨이 다 빠진 바스타드 소드, 그리고 품속에 숨기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금화가 전부일 거다.”
 타룬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의 말대로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전투 중에 기사를 죽여서 얻은 금화 수십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타룬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던 나는 바로 반박했다.
 “그, 그렇다면 타룬이 책을 구하는 이유는 뭔가요?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금화보다도 못한 것이 아닌가요?”
 그러자 타룬은 여전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빨리 가르쳤더니 문제가 생기는군. 애송아,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 봐야 적을 더욱 늘릴 뿐이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을 많이 가질수록 너는 더 오래 살 수 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만약 네 머릿속에 책으로부터 얻은 지식이 가득하고 그 지식을 응용할 수 있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예를 들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만 알고 있었다면 어느 순간 그 지식들은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할 거다. 그 순간이 네가 책의 이면을 보기 시작하는 때다. 알겠냐?”
 “왜 다양한 방법들을 알아야 하는 거죠?”
 “그건 세상을 살다 보면 하나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본질을 정확히 봐야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 잘못 판단하면 남는 것은 허무한 죽음뿐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머릿속을 가득 채워야 하는 거다.”
 “이해를 못하겠어요. 머릿속을 아무리 채워도 전 그것이 기사의 검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요. 힘이 없다면 결국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나의 물음에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크레이지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는 전쟁터에서 미친 듯이 싸우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너는 그 방법이 좋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기에 나는 잠시 생각을 해야만 했다.
 “음. 어느 순간 내가 미쳐서 상대편을 죽이니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두려워하더군요. 그리고 슬슬 나를 피했죠. 그렇게 되니 싸움이 편해졌어요. 이게 내가 전쟁터에서 미친 듯이 싸우는 이유가 된 것 같네요.”
 “지금 네가 말한 것은 전쟁터에서 몸으로 배운 거다. 그렇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다고 자연스럽게 터득한 거지.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가 온다. 그것은 너도 이미 느꼈을 거다.”
 “그래요. 타룬의 말처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놈을 만나거나 나의 방법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날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정말 목숨이 위험할 것이니까요.”
 내가 약간 두려운 투로 말을 하자 그가 빙긋 웃었다.
 “바로 그거다. 전쟁터에서 익힌 방법은 다른 놈들도 시일이 지나면 알게 된다. 오래 사는 놈은 다 저마다의 방법을 가지게 되는 법이지. 그리고 그렇게 얻은 지식은 단순하다.”
 “왜 단순하다는 거죠?”
 “전장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뻔히 보이는 행동이니 단순하다고 말하는 거다. 하지만 같은 방법이라도 고민을 많이 하는 놈은 다양한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방법을 더욱 빨리 찾아내는 놈들은 다양한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 두고서 그것들을 잘 조합해 내는 놈들이다.”
 “다양한 지식을 머릿속에서 잘 조합해 내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나의 말에 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전쟁터에서 너랑 같은 놈을 만났다 치자. 그럼 감각적으로 두 사람은 바로 알아볼 거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일수록 집중력은 더욱 높아지니 말이다. 이 순간이 머리가 좋은 놈과 나쁜 놈을 가르는 순간이다. 머리가 나쁜 놈이 선택할 방법이라고는 상대를 외면하거나 맞서 싸우든가 하는 고작 두 가지 정도다.”
 타룬은 목이 타는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하지만 머리 좋은 놈은 그 외에도 많은 방법을 생각해 낸다. 상대를 외면하는 방법도 수십 가지, 싸우는 방법도 수십 가지를 생각하고 그 속에서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힘의 차이가 비슷할 경우 대부분 머리 좋은 놈이 살아남는다.”
 “그게 머릿속의 다양한 지식을 조합하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애송아, 머리 좋은 놈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공부하는 거다. 글을 익히고, 책을 읽고, 그것을 통한 간접 경험을 쌓고, 항상 ‘왜?’라는 질문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고는 그 이면을 보면서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드는 길이 머리가 좋은 놈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알겠냐?”
 “······.”
 이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책을 고르기 시작했고 난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타래처럼 엉킨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 머릿속을 정리하고 다시 타룬을 봤다. 그는 여전히 책을 고르고 있었다.
 “왜, 왜 저에게 이렇게 친절한 거죠? 왜 이렇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건가요?”
 나의 물음에 그가 책을 고르던 행동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한참 동안 나의 눈을 바라보던 타룬이 약간은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네 나이에 죽은 아들이 생각나서라면 이유가 되겠냐? 그 녀석에게는 이런 말들을 해 주지 못했다. 그저 책을 읽게만 만들었지. 책의 이면을 보지 못했던 내 아들은 기사들에게 알량한 지식을 뽐내면서 자신의 가치를 내보이며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단칼에 머리가 날아갔다. 네놈을 처음 봤을 때는······.”
 타룬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하는 것으로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 다시 말했다.
 “처음 봤을 때 너를 통해서 내 아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봤다.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누군가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내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전쟁터에서 목이 달아나겠지. 왠지 그런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것뿐이야.”
 “······.”
 타룬의 말로 생겨난 낯선 감정이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느낌, 처음으로 느껴 보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
 그것이 죽은 아들 때문이라고 해도 지금 내 마음을 울리는 것은 나를 향한 그의 마음이었다.
 “당신 말처럼 머리 나쁜 놈으로 죽지 않겠어요! 난 머리 좋은 놈으로 당당히 살겠어요. 아무도 나를 죽일 수 없도록. 아니,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만들겠어요.”
 나의 느릿한 말에 그가 희미한 미소를 보여 줬다.
 “그래. 너는 머리 나쁜 놈으로 죽지 말고 내 아들처럼 알량한 지식을 뽐내다가 죽지도 마라. 너는 세상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놈이 돼라!”
 나와 타룬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봤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타룬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전에는 절대로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가 책을 고를 때 나도 책을 골랐고, 그가 잠잘 때 나는 책을 읽었다.
 그의 지식과 그가 보는 세상에 다가가기 위해 나는 전투로 지친 날이 아니면 밤낮으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어 대자 새로운 세상이 눈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타룬이 말했던 그 이면이라는 것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만 갔고 타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난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있는 타룬의 옆으로 슬며시 걸어가 앉았다. 그러자 그가 나의 기척을 느끼고 나를 바라봤다.
 “왜?”
 “그냥요.”
 “웃기는 놈······.”
 타룬이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리려 하자 난 궁금한 것을 급히 물었다.
 “타룬은 남들과 다른 세상을 보고 있으면서 왜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거죠?”
 조금은 엉뚱하다 싶은 물음이었지만 나는 정말로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나보다 더 깊이 많은 것을 보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그가 나와 같이 기마대로서 전투를 하고 있는 이유가 너무도 궁금했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책을 덮고서 다시 나를 봤다.
 “넌 전쟁이 뭐라고 생각하냐?”
 “예? 글쎄요.”
 “그렇다면 넌 왜 이 전쟁터에서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거냐?”
 “글쎄요. 저는 도둑질로 손목이 잘릴 뻔했는데 그 형벌을 면하게 해 주고 세 끼를 굶지 않는다기에 전쟁터에 뛰어들었어요. 지금까지 그 이유로 인해 싸우고 있죠.”
 나의 말에 그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네 말대로 처음에는 이유가 있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이유가 없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그저 싸울 뿐이지. 전쟁이 일어나고 조금 길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미움과 두려움, 분노, 절망과 같은 감정들을 먹어 치우며 스스로 몸집을 키워 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전쟁 자체가 사람들을 먹어 치우며 서로 싸우게 만들지. 전쟁을 위한 전쟁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어려워요.”
 내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내 경우에는 책과 글밖에 모르고 살아왔는데 전쟁으로 아내와 자식이 모두 죽어 버렸다. 거기서 만들어진 상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의 감정이 나에게 무기를 들게 만들었고 진정으로 가족을 죽인 자들이 아닌 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죽이게 만들었다. 전쟁이라는 괴물에 감정이 먹혀 버린 거지. 그것이 네가 지금 보고 있는 현재의 나다.”
 그의 말을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자 타룬은 메마른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내가 죽이고 있는 상대는 따지고 보면 아내와 자식을 죽인 이들이 아니다. 그렇지만 난 그들을 죽였다. 분노와 원망의 감정을 풀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지금은 내가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다. 내가 전쟁이라는 괴물에 먹혀 버린 감정들을 잊어버리게 되면 그 순간이 내가 죽는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괴물에게 먹혀버린 감정은 상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다. 이것이 상대를 죽이게 만드는 힘이지 죄책감과 연민과 같은 감정을 없애버리는 진정한 전장의 힘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상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없어지면 바로 들게 되는 감정이 죄책감과 연민이다. 이런 감정을 가지고 전장에 나갔다가는 상대에게 제대로 검을 휘두르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다. 아마 지금의 너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소리일거다.”
 “정말 이해 안돼요.”
 타룬은 내 말에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훗! 내가 지금 한 말을 이해하고 싶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책을 봐라. 어떤 책이든 좋지만 그 책을 단순히 읽기만 하지 말고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이면을 봐라. 그것을 보기 시작하면 내 말을 이해하고 그 이상을 볼 수 있을 거다.”
 “이면을 못 보면요?”
 나의 물음에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면을 보지 못한다면 네가 그동안 새로운 방패를 얻기 위해 한 그 모든 노력은 한낱 물거품이 될 것이고 나의 수고는 그저 헛된 일이 되겠지.”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기마대가 잠을 청하는 막사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부터 난 타룬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같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애슬론 대륙의 역사서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큰 사건을 중심으로 요약된 책이어서, 타룬이 말한 전쟁이라는 괴물에 감정을 먹혀 버린다는 말의 의미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몇 번을 정독하면서 수많은 국가가 생성되고 망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내가 전쟁에서 경험한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타룬의 말이 맞았다.
 그의 말처럼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항상 반복되고 있었다.
 그런 반복 속에서 새로운 왕국이 탄생하고 또 사라져 갔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점은 왜 이런 것을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모두가 알고 있다면 이런 전쟁 따위는 일어날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난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다시 타룬을 찾았다.
 
 그는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다.
 훈련이나 전투가 없으면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야?”
 “왜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거죠?”
 그가 인상을 구겼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그렇게 뭉뚱그려서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라는 거야?”
 그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하고 나서 다시 물었다.
 “다시 질문할게요. 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지 않는 거죠?”
 나의 물음에 이번에는 타룬이 놀랍다는 표정을 했다.
 “어떻게 그런 질문을 생각해 냈냐?”
 “타룬이 준 역사서를 반복해서 읽다 보니 역사라는 것이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그로 인해 나라가 생겼다 사라졌다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냐는 질문을 한 것인데 나를 돌이켜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나 역시 타룬 덕에 글을 알았으니까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 평생 몰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웃었다.
 “와하하하! 이 애송이 놈이 정말 물건이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웃고 난 타룬은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말했다.
 “방금 왜 글을 가르쳐 주지 않느냐고 물었냐?”
 “그래요.”
 “그것은 사람들이 멍청해야만 위에서 다루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네가 국왕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 봐라.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성스런 군대와 신하, 그리고 말을 잘 듣는 국민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말을 잘 듣는 국민들이 필요하다면서 왜 글을 가르치지 않을까?”
 “······.”
 그의 물음에 대답을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국민들이 무식할수록 다루기는 더욱 편해진다. 너도 글을 읽을 수 있으니 알 거다. 글을 알고 나서 가장 먼저 너에게 달라진 점이 뭐였냐?”
 “같은 세상이면서 다르게 보이는 것······?”
 나의 말에 타룬이 바로 말을 이었다.
 “바로 그거다! 백성들이 글을 읽기 시작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즉, 세상의 이면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그들이 국왕이나 권력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게 될까?”
 “아마도······ 듣지 않겠죠.”
 “바로 그거다! 국왕이나 권력자들은 자신의 힘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쥐고 흔들 수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필요하지. 그것은 곧 국민이고, 이들이 바보일수록 다루기는 점점 편해진다. 물론 글을 가르치면 더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지만 그로 인해 권력이 흔들리는 것을 원하는 귀족들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일부의 사람들만이 글을 아는 이유다.”
 “그렇다면 왜 기사들도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그들은 그런 귀족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요?”
 “전혀 다르다. 귀족들과 기사들 사이에는 커다란 신분의 벽이 존재한다. 왜 귀족들이 기사들에게 기사도를 강조하고 충성을 강요할까? 그것은 힘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절대 배신할 수 없도록 미리 못을 박는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충성 서약은 귀족의 권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고, 그것들은 다시 백성들에게 강한 두려움을 심어 준다. 힘을 가진 기사들마저 고개를 숙이는 귀족이라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일까? 백성들에게 그런 마음을 품게 만드는 것이 귀족과 왕이 원하는 것이지.”
 “······.”
 타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글을 왜 가르쳐 주지 않느냐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그의 권력에 대한 해석은 어린 내가 듣기에도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의 말을 곱씹으면서 나는 다른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타룬의 말대로라면 왜 귀족이 아닌 타룬과 같은 사람들이 글을 아는 거죠? 그들이 정말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귀족들만 글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나의 질문에 그는 놀랍다는 표정을 했다.
 “너,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놈이구나. 거기까지 생각할 줄은 미처 몰랐는데······.”
 타룬은 말을 잠시 멈췄다가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왕과 귀족만으로 무식한 국민 대다수를 관리할 수 없다. 기사라는 존재를 통해 힘으로 누르기에는 언제나 한계가 존재하지. 그것을 보완해 주는 존재가 바로 일부의 글을 아는 인간들이다. 왕이나 귀족들이 학문이나 시를 장려하는 것처럼 말하고 그들을 키운다. 그리고 일부를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존재로, 또는 기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존재로 곁에 두고 쓰는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영지의 모든 것을 귀족 혼자서 처리하기는 힘들다. 그들은 게으르기 때문이다. 권력을 뺏기기 싫은 탐욕은 누구보다 강하지만 그만큼 게으르기도 하다. 그런 게으름을 도와줄 존재들이 바로 글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이 백성들에게 귀족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들은 절대 많이 만들지 않고 무력도 주지 않는다. 그 이유가 뭔지 아냐?”
 “권력에 대한 불안함인가요?”
 “맞다. 가끔 그런 자들 중에서도 나와 너 같은 생각을 품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들을 충성스런 개로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 무력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무력을 주지 않는 이유다. 그 대신 다른 것을 채워 주지. 그게 무얼까?”
 “그게 뭐죠?”
 “그것은 바로 바로 명예다. 글을 알고 있는 자들이 명예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게 되면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싫어 국민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명예는 곧 권력과 같은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무력이 없는 학자들은 자연스럽게 권력에 대한 욕심을 품지 못하게 된다. 귀족들은 이 점을 아주 철저하게 이용하지.”
 “너무 극단적인 생각 아니에요?”
 나의 말에 타룬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도 역사서를 정독했으니 학자들이 대거 학살당했던 사건을 본 적이 있을 거다. 당시의 사건은 강력한 법으로 모두를 다스린다는 취지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때의 학자들은 지금에 비해서 몇 배나 많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암암리에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시도를 했었다. 국민들이 똑똑해지면 권력이 흔들릴 것을 염려한 국왕은 바로 군대를 이끌고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대거 죽여 버리는 참극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학자들이 몰살당했던 당시 사건의 진정한 이유다.”
 타룬의 말에 난 매우 놀랐지만 그 반면에 또 다른 의문도 생겨났다.
 “그렇다면 힘도 있고 글도 아는 사람들은요?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질문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나의 미래가 궁금했던 거였다. 글을 알고부터는 전장에서 생명을 지키는 것 말고도 알 수 없는 다른 무언가가 서서히 마음속을 채워 나가고 있었기에 물은 것이다. 그는 나의 물음에 작게 웃었다.
 “후후, 그런 사람은 자신이 있는 위치에 따라 상황이 매우 달라지겠지.”
 “어떻게 달라진다는 거죠?”
 “그런 사람이 귀족이라면 나라를 뒤집거나 더 높은 지위를 얻게 될 것이고, 평민이라면······.”
 “평민이라면 어떻게 되는 거죠?”
 “영웅이 되어 나라를 세우거나 권력의 그늘에 들어가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될 거다. 하지만 평민이 그렇게 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도 어렵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말한 그런 평민의 결론은 언제나 하나다.”
 “그게 뭐죠?”
 “죽음이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에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면 가차 없이 죽인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지.”
 타룬의 말에 나의 얼굴이 완전히 구겨졌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새로운 방패를 얻는 것이 아니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낡은 방패를 얻을 것이 분명했다.
 타룬은 나의 구겨진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훗! 겁나냐? 남들과 다른 세상을 보는 자는 당연히 두려워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넌 오래 살기 위해 글을 배웠고 어렴풋하게나마 책의 이면을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넌 점점 오래 살아남을 거고 그것으로 인해 당분간 너에게는 수많은 기회들이 생길 거다.”
 “하지만 방금 전에 내 출신으로 인해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다고 했잖아요.”
 “삶은 항상 치열함을 요구한다. 특히나 평민에게는 더욱 그렇지. 평민들에게는 배우건 못 배우건 항상 상황은 같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글을 알고 세상의 이면을 알면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 달라지니 수많은 기회의 문이 열리게 되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말이 길어지자 조금은 힘든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전쟁에서 사는 것처럼 치열하게 노력하고 발악하면서 기회를 잡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한순간이라도 기회를 놓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네가 전쟁에 뛰어드는 그 순간부터 이미 운명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고 굴러가기 시작하고 한순간이라도 멈추거나 넘어지면 바로 죽음이다. 그래도 모르고 죽는 것보다는 알고 죽는 것이 덜 억울하지 않냐?”
 타룬은 약간 짓궂은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기회를 너의 것으로 확고하게 만들고 싶다면 앞으로 검술을 연마하는 것만큼이나 책을 읽어라.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어서 그것들 속에 보이는 세상의 단면들을 찾아내라. 그것들을 많이 알수록 너는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고 앞으로 네 앞에 닥쳐올 수많은 위험들 속에서 그것들이 너를 살려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할 말을 모두 마쳤다는 듯이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세상이 힘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머리다. 머리가 있는 놈에게 힘 있는 놈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나에게서 멀어지려 했고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나보다 머리 좋은 놈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의 물음에 그가 걸음을 멈추고는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의 나처럼 마음을 움직여 너의 편으로 만들어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너의 편이 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가차 없이 죽여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들이 칼이 되어 너의 목을 노리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진짜로 나의 곁에서 사라졌고 나는 그의 말에 빠져들었다.
 그의 말대로 내가 전장에서 계속 살아남는다면 기회의 문이 많이 생겨날 거다.
 그 문이 내 목을 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타룬의 말처럼 더욱 책을 많이 보고 그 이면을 찾아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들려준 당신의 말이 내 삶을 더욱 연장시켜 준다면 기꺼이 당신 말대로 할 겁니다.”
 나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
 
 “와하하! 그래서?”
 “그게 말이야······.”
 전투가 없는 밤,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은 사람들 틈에서 웃고 떠들고 있는 타룬이 보인다. 물론 조금 떨어진 곳에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도 있다.
 이제는 조금씩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곁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워낙 재미있게 말하기도 하지만 그는 단순히 웃고 떠드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서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방법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재미있는 말로, 행동으로 보여 주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니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타룬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고 지식을 뽐내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가며 그들의 수준에 맞춰 조금씩 이야기를 해 줄 뿐이었다.
 이런 것도 내가 책을 읽고부터 그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그에게 더욱 호의적이 되었고, 전투 중에 위험한 상황이 되면 그런 호의적인 사람들이 도와줬다.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지 않음으로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동료를 만들어 가는 것, 그가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타룬의 곁에만 있어도 전쟁터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기에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 방법을 알아내고부터 나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타룬과 같이 비싼 물건들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것들이 눈에 띄어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고 오직 책을 구하는 것에만 열중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머리 나쁜 놈으로 죽고 싶지 않았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고민해서 그것들을 모두 내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타룬과 마찬가지로 내 주변에도 하나 둘 내게 호의적인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나를 보며 아무 말 없이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자 타룬이 그간 한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지식이 늘어나고 그것들을 고민할수록 더 많은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의 이면을 보기 시작하자 타룬이 말했던 전쟁이란 괴물에 감정이 먹혀 버렸다는 말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타룬의 말은 전쟁이 벌어지면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불행한 사람들이 적을 대상으로 자신의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쏟아 내게 된다는 의미임을 어렴풋하게 깨달은 것이다.
 
 타닥! 타닥!
 모두가 잠들어 있는 야심한 시각, 혹시 모를 야습에 대비해 보초를 서며 주변을 돌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깨어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 시간이 내겐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책을 보고 있는데 내 옆으로 누군가가 슬그머니 앉아서 불을 쬐기 시작했다. 바로 타룬이었다.
 “아직 안 자고 뭐 해요?”
 “그냥 잠이 안 온다.”
 그는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물었다.
 “볼 만하냐?”
 “그런대로요.”
 나는 책을 덮고서 그를 바라봤다.
 “왜?”
 “요즘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니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 올라요.”
 나의 말에 그가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귀족이라는 놈들은 태어나자마자 각종 혜택을 모두 받으면서 이런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고 계속 그 지위를 유지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말 한마디에 따라 전장에서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 가죠. 그게 화가 나요.”
 “너 그거 무척 위험한 발언인 거 아냐?”
 “타룬이기 때문에 말하는 거죠.”
 나의 말에 그는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글을 가르치고 생각이 많아지면 백성들이 너와 같은 생각을 품을까 봐 귀족이나 왕들이 백성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 거다.”
 “그렇겠죠. 저도 책을 보면서 요즘에야 느끼는 거니까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똑똑한 놈들이 많아질수록 권력자들은 그 권력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겠죠.”
 나의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이제 조금씩 책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하는가 보구나?”
 “그냥 세상을 달리 보기 시작하니 조금씩 보이더군요.”
 그는 모닥불에서 눈길을 돌려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의 생각을 드러내지 마라. 그 순간이 네가 죽는 순간이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타룬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요. 당신처럼 전쟁이라는 괴물에 감정이 먹혀 버린 채로,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하는 상태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지금 나보고 새가슴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냐?”
 “설마요.”
 나는 그의 말에 답하고는 다시 모닥불을 바라봤다.
 “내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에요.”
 “어떤 세상?”
 그는 나의 말에 약간 호기심 어린 표정이 되었다.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보고 싶어요. 동등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세상 말이에요. 왕의 아들로 태어나거나 나처럼 부모 없이 태어나 자란 아이나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세상 말이죠.”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왜요?”
 “네가 지금 말하는 세상은 지금 애슬론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왕국의 권력자들에 반하는 생각이다. 기존의 권력자 그 누구라도 너의 생각을 아는 즉시 너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을 거다.”
 그의 말에 문득 웃음이 났다.
 “훗!”
 “뭐가 웃겨?”
 “웃기죠. 이름 없이 전쟁터에서 죽나 세상과 싸우다 죽나 죽는 것은 똑같은데 훗날의 일을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우습지 않아요?”
 나의 말에 타룬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그도 피식 웃었다.
 “훗! 네 말이 맞다. 어차피 죽는 것은 마찬가지군.”
 그와 난 한동안 말없이 조용히 웃기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타룬이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 목표를 어떻게 이룰 거냐?”
 “글쎄요. 일단은 권력을 잡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훗! 네가 권력이라는 마물 앞에 과연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권력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아주 사나운 괴물이지. 한번 맛보고 나면 절대 놓지 못하는 것이 권력이야. 그것을 놓치지 않게 사람들이 무슨 짓이든 하게 만드는 것이 권력이다. 네가 그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
 “그건 그때 가 보면 알겠죠. 권력이라는 괴물에 먹히든지 이겨 내든지는 그때 가서 생각할래요.”
 나의 말에 그가 웃었다.
 “크큭! 그래 너 잘났다. 책의 이면을 보게 했더니 아주 엉뚱한 생각을 품어 버렸어. 크크큭!”
 “타룬이 그렇게 만든 거잖아요. 당신으로 인해 난 글을 배웠고 책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책의 이면을 통해 세상의 단면을 봤죠. 난 세상의 단면을 통해 두 가지 길을 고민했어요. 그냥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같이 흘러가며 지금의 권력에 빌붙는 것과 세상을 바꾸는 것 말이죠. 그런데······.”
 “그런데?”
 그는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빌붙는 것은 왠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사들처럼 그들에게 아무리 충성한다 한들 그들의 말 한마디면 바로 목이 달아나는 불안한 삶을 산다는 것은 왠지 나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후자를 선택했어요.”
 “넌 정말 웃기는 놈이야.”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너의 인생이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진정으로 네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내가 너에게 해 줄 말은 오직 하나다.”
 “그게 뭐죠?”
 “먹이를 사냥하는 맹수처럼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는 발톱을 드러내지 마라. 그리고 발톱을 드러냈다면 최대한 빠르게 사냥을 끝내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아예 죽은 듯이 살아.”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냥을 빗댄 말,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몸을 움츠리고 있을 때는 바위와 같이 하고 몸을 움직일 때는 폭풍과 같이 하라는 말을 지금 말하는 거죠?”
 그가 미소를 지었다.
 “잘 아네. 책을 허투루 보지는 않았군.”
 “당연하죠. 난 똑똑한 놈이 되어 가고 있고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기들이 점점 넘쳐 나고 있으니까요!”
 나의 말에 그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는 애송이라고도 못하겠다. 하이데론! 너는 지금의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아무것도 아닌 말이었지만 그의 한마디가 너무도 기뻤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밤, 나는 타룬에게 처음으로 인정받았다.
 
 
 
 
 
 Chapter3 중요한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부대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흘리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조만간에 아주 커다란 전투가 벌어질 거라는 말을 했다.
 기사들의 움직임에 따라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로 행군이 계속되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지금 당장은 내가 기마대에 속해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말을 타고 이동을 하니 보병으로 걸을 때보다는 훨씬 편했다.
 한가롭게 지금의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는데 옆에서 말을 몰고 있던 타룬이 한마디 했다.
 “팔자 좋구나.”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지요.”
 “하긴······.”
 나의 말에 그도 조금은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전투는 상당히 치열할 것 같으니까 죽지 마라.”
 뜬금없는 타룬의 말.
 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갑자기 무슨 엉뚱한 소리예요?”
 “그냥······ 이상하게 느낌이 좋지 않아. 왠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
 “뭐가 마지막이라는 거죠?”
 어두워지는 그의 표정을 보며 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요! 마음이 죽으면 그때가 죽는 순간이라고 떠들어 대더니만 정작 자기는 느낌이 어떻다고 그러고 있으니······.”
 나의 말에 그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 네 말이 맞다. 정작 내가 그러고 있었구나. 정말 우스워······.”
 그는 웃어 댔지만 그의 얼굴은 전혀 밝아지지 않고 있었다.
 
 며칠 후, 내가 속한 부대는 다른 곳에서 온 부대와 합류했다.
 넓은 평야에 모인 사람들의 수만 대략 파악해 봐도 일 만에 가까웠지만 더 모일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저 멀리 보이는 상대편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퀠른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해 있는 양측의 병력은 점점 늘어만 가고 늘어나는 숫자만큼 사람들의 긴장감도 높아져만 갔다.
 내 앞으로 보이는 강을 힐끗 보고 나서 타룬에게 물었다.
 “수심이 얼마나 될까요?”
 “강이 넓지 않고 수심이 깊지 않았다면 벌써 싸움이 벌어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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