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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프리스트 1권

2019.08.15 조회 257 추천 0


 프롤로그
 
 
 
 
 
 
 프로필.
 이름: 김윤현
 특기: 무술
 취미: 그냥 뒹굴기
 에피리 월드에 바라는 것: 그냥 평범하게, 평범하게,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는 것
 제일 증오하는 사람: 나에게 구라 쳐서 이상한 프리스트를 만든 그 작자!
 마지막으로, 신이 있다면?: 제발, 제발! 제발 그냥 평범하게 프리스트를 하게 내버려 두시고, 내 옆에 이상한 애들 좀 달라붙지 않게 해 주소서!
 
 
 
 
 
 1장 다크프리스트
 
 
 
 
 
 
 
 
 
 “으아악! 이, 이럴 수가!”
 난 절규했다.
 분명 내가 고른 직업은 프리스트. 반짝반짝 빛나는 빛으로 다친 이들을 치료하고, 각종 버프의 힘으로 상대방의 힘을 증폭시켜 주는 파티의 꽃이었다.
 사실 마법사 쪽이 끌리기는 했지만 며칠 전에 친구 놈이 나를 무시했던 걸 떠올리고 프리스트를 선택했다.
 남을 보조하는 게 취미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1:1 파티, 여기까지는 완벽했다.
 그런데······.
 “······!”
 나를 원망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파티원.
 “······.”
 “모, 몬스터?!”
 몬스터라니? 분명 나는 파티원이 팔에 상처를 입자, 아주 선량한 마음으로 힐 마법을 걸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파티원이 갑자기 급속하게 상처가 악화되다가······.
 푹!
 다이, 다시 말해 죽음.
 “······.”
 나는 파티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그만 굳어 버렸다. 내 앞에 있는 몬스터는 레벨 20 정도의 오크.
 놈은 스피드하게 죽어 버린 내 파티원을 한 번 보더니 그대로 달려들었고, 그걸 본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메이스를 대충 휘둘렀다.
 콰앙!
 그 순간 무슨 대형 폭발 마법이 터지는 소리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메이스에 직격당한 오크는 그대로 터져 버렸다.
 
 “으아악!”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난 프리스트인데······.
 자, 잠깐!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그때 나를 전직시켜 준 존재. 분명 프리스트라고 하기에는 뭔가 구리구리한 냄새가······.
 
 이틀 전.
 “야, 그거 들었냐?”
 “······뭐?”
 나는 내 앞에서 흥분한 채 서 있는 영현을 무감각하게 바라보았고, 그런 내 반응에 영현은 더욱 흥분했다.
 “에피리 월드 오픈 베타!”
 “벌써 오픈 베타인가?”
 “벌써라니! 난 이거 기다린다고 목 빠지는 줄 알았다!”
 “그러냐?”
 “쳇! 재미없는 놈. 그나저나 에피리 월드에는 수백 가지의 직업이 있다는데. 물론 히든 클래스도 있지만 솔직히 그건 패스하고. 흐음, 넌 무슨 직업을 할 거냐?”
 “나? 흐음 마법사나 뎀 딜(데미지 딜러)이면 다 괜찮긴 한데.”
 “뭐, 너야 프리스트만 빼면······.”
 빠직!
 나는 그 말에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프리스트는 뺀다니, 그럼 내가 프리스트를 하면 안 된다는 게냐?
 “프리스트가 파티 사냥에 얼마나 중요한데! 프리스트가 잘못하면 그 파티는 전멸이거든? 그런데 네가 남한테 보조 마법 걸어 주고, 힐 준다고 생각하니 웃긴다.”
 “······.”
 지금까지 가상현실 게임은 무수히 많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 수많은 가상현실 게임을 즐겨 왔고, 대부분 데미지 딜러가 가능한 직업을 선택했다. 뒤에서 보조하는 건 내 취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영현이 놈은 프리스트, 즉 보조 직업을 꽤나 많이 선택한다. 그러니 요약하면 결국 지 자랑이다.
 “아, 에피리 월드 기대된다. 게임 평론가들이 지금까지의 가상현실 게임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극찬할 정도니.”
 에피리 월드. 영현이 말대로 세계 각지의 게임 평론가들이 만장일치로 완벽하다고 칭송한 게임.
 클로즈 베타에 참여한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는 그 게임.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꽤나 궁금하다.
 그나저나 내가 프리스트를 못한다니. 이거 은근히 기분 나쁘네.
 “친구 군, 그래, 이번에는 무슨 직업?”
 영현이 다시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녀석을 향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프리스트.”
 “푸하하하! 지나가던 똥개가 프리스트를 하는 게 낫겠다.”
 “······.”
 가, 감히 나를 무시하다니!
 사실 보조 직업에는 그리 경험이 없지만, 나도 충분히 힐 정도는 걸 수 있다고!
 프리스트 정도야!
 
 게임에 접속하자, 20대 초반 정도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에피리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 알겠으니까 대충 넘어가요.”
 ―······.―
 내 말에 환영에 인사를 하던 npc는 그대로 침묵을 유지했다.
 지금은 저런 환영에 인사를 듣는 것 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게임하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말이다.
 ―홍채를 확인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위이잉!
 그 말과 함께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잠시 후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성하시겠습니까?―
 “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말씀해 주십시오.―
 “아이디는 마에스트로, 패스워드는 *******.”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확인 중입니다.―
 나는 그 말에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마에스트로. ‘지휘자’라는 뜻으로 상당히 멋진 의미를 가진 아이디인 탓인지 오픈 베타 때면 금방 사라지는 아이디이기도 했다.
 이 아이디를 만들기 위해 오늘 온몸을 굴려 오버액션까지 해서 조퇴했다.
 그리고 이 게임의 오픈 베타 시간인 오후 1시에 맞춰서 정확히 접속했다. 아마도 지금쯤 가면 나처럼 꽤나 열정적인(?) 아이들이 온갖 꾀병으로 조퇴를 해서 바글바글할 게 분명하다.
 ―아이디가 없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네!”
 ―계정을 생성합니다. 직업을 선택하세요.―
 나는 그 말에 눈을 번쩍였다.
 본래 다른 게임이었다면 마법사나 데미지 딜러 계열을 선택했겠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영현이 자식이 나를 무시했다.
 내가 프리스트를 하지 못할 거라는 조롱! 참을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멋지게 프리스트의 지휘자가 되어서 호령하는 그 날을 위해서!
 “프리스트요!”
 ―프리스트를 선택하셨습니다. 에피리 월드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 말과 동시에 나는 게임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 멋진 프리스트가 되는 거야!
 
 역시 처음 시작해서 그런지 아이템이 부실했다.
 내 손에 쥐어진 건 메이스 하나뿐. 그냥 메이스도 아니고 상당히 구리구리한 옵션을 가진 메이스다.
 
 ―초보의 메이스―
 공격력 : 4―6
 초보의 메이스다. 사용하다가 버려라.
 
 마지막에 버리라는 건 뭐니?
 정말 어이 상실이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스킬도 없다는 점이었다.
 마법사 같은 경우 처음 시작하면 매직 애로우라도 주는데, 이건 메이스 하나 던져 주고 끝이다.
 프리스트의 로망인 힐도 없다니, 꽤나 충격적이다.
 뭐 그렇다고 이미 선택한 직업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말이다.
 바글바글.
 그나저나 사람 정말 많다.
 엄청나게 몰린 학생들. 저들도 온갖 오버액션을 취해 조퇴를 했을 게 분명하다.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나왔던가.
 나는 그들을 한번 슬쩍 본 뒤 성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게임을 시작하면 성문 앞에 토끼라든가 왠지 모르게 유아틱한 몹들이 잔뜩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성 밖으로 나서자, 내 예상대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엄청나게 많은 몬스터들이 버글거리고 있었다.
 “꺅! 못 죽이겠어.”
 “너무 귀여워.”
 토끼를 죽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두 분의 여성. 조금 당황스럽다. 저걸 못 죽이면 어쩌자는 건지······.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그녀들에게 신경을 끄고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기로 했다. 사냥을 해야 하는데 워낙 사람이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위험해도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사람은 많다.
 으아악!
 정말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사람들이 버글버글하다.
 아마도 오늘은 사냥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컴 온, 컴 온.”
 “······.”
 “죽어, 인간들! 컴 온, 컴 온.”
 뭐야, 이 괴상망측한 소리는?
 나는 돌아가려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괴생물체의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토끼 한 마리가 날뛰고 있었다.
 평범한 토끼가 아니라 앞발에 권투 장갑을 낀 괴상한 토끼였다.
 “······?”
 뭐야, 이 설정은!
 “토끼 마운틴······.”
 그때 옆에 있던 어느 한 남성 유저가 두려움에 떨면서 말했고, 나는 그 말에 물음표만 동동 띄웠다.
 토끼 마운틴은 뭐 하는 놈들이냐?
 “컴 온, 컴 온!”
 “도, 도망가! 토끼들 보스야!”
 “필드 보스라니! 오픈 베타 한 지 얼마나 됐다고!”
 사람들은 그 말과 함께 약간 맛이 간 듯 보이는 토끼를 피해 마구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쟤가 필드 보스? 너무 웃긴데!
 “컴 온, 컴 온!”
 그때 그 토끼와 난 잠시 동안 눈을 마주쳤다.
 “인간! 죽어!”
 “헉!”
 그놈의 토끼는 도망가는 사람들은 놔둔 채, 나를 향해 맹렬히 달려왔다.
 왜 나만 쫓아오는 거야!
 나는 프리스트라고. 연약한(?) 프리스트!
 그렇지만 이런 말로 저 토끼를 설득하기에는 불가능한 것 같다. 녀석은 여전히 내게 맹렬히 어퍼컷을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퍼억!
 다음 순간 나는 하늘을 붕 날았다.
 그리고 턱에서 느껴지는 고통. 한 대 맞았다.
 “컴 온, 컴 온.”
 빠직.
 나는 그대로 누운 채 혈관 마크가 생겼다.
 내가 게임을 하면서 토끼 따위한테 맞다니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운동신경 하나만큼은 꽤 자신 있는 나였기에 게임을 시작하면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지 오크 한 마리 정도는 잡을 능력이 있었다.
 그런 내가 저런 맛 가 보이는 토끼한테 어퍼컷을 맞고 날아가다니!
 나는 천천히 메이스를 쥐고 일어섰다.
 그러자 토끼가 나를 향해 재차 맹렬히 달려왔다.
 “죽어!”
 이런 섬뜩한 소리를 내지르며 내게로 달려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하지 않는다!
 파악!
 나의 메이스와 토끼의 어퍼컷이 부딪쳤다. 그리고 그 순간 허점이 보였다.
 나는 메이스를 꽉 쥐었다.
 그리고 외쳤다.
 “죽었어!”
 다다다!
 “컴, 퍽! 컴, 퍽!”
 나는 메이스를 엄청난 속도로 갈겨 댔다.
 현실에서의 뛰어난 무술 실력이 여기서 이렇게 효과를 볼 줄이야······. 완전 감동이다. 레벨 1의 공속이라고 보기에는 믿기 힘든 속도다.
 사실 현실에서의 기술이나 능력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이런 일도 불가능하지만, 이 게임은 여타 게임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의 능력을 가져올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한마디로 현실에서 강하면 여기서도 조금 이익을 본다는 소리다.
 “사, 살려······.”
 “닥쳐, 토끼!”
 “으아악!”
 나는 절규하는 토끼 세이를 죽도록 메이스로 갈겨 댔다.
 감히, 감히 나에게······. 죽어, 토끼!
 
 “오호라? 인재인데?”
 분명 옷은 프리스트 옷이다. 그리고 무기도 프리스트의 무기를 들고 있다.
 하지만 본성은 프리스트에 어울리지 않는다.
 저렇게 갈겨 대는 프리스트라니, 오히려 더욱 멋있게 보였다.
 “친구, 자네의 길은 프리스트가 아니야. 다크프리스트가 제격일 듯싶은데, 흐음······. 그리고 무엇보다 자네의 그 운동신경이 절대적으로 마음에 들어. 훗! 향후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거든.”
 
 내가 왜 그랬지? 나는 프리스트잖아.
 그래, 프리스트. 치료와 함께 버프를 걸어 주고 상대방을 보조해 주는 내가 이렇게 폭력적이 되어 버리다니.
 이렇게 되어 버리면 영현이 말대로 절대 평범한 프리스트는 못 되는 거잖아······!
 나는 필드 보스를 해치우고 나서야 내가 저지른 짓을 생각해 냈다.
 난 엄연히 프리스트다. 그래, 순수한 프리스트가 내가 희망하는 직업이야!
 
 
 
 
 
 2장 전직
 
 
 
 
 
 
 
 휴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 괴팍한 토끼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토끼한테 어퍼컷을 한 대 맞으니, 전문용어로 나사 풀린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는 거다. 신성한 프리스트로서!
 일반 유저들이 싸우다가 피가 없어지면 ‘님아, 힐 좀 줘요’라고 말한다.
 그럼 난 ‘하하하! 찬양하라!’ 하면서 힐을 한 번 주는 거다.
 멋지다. 왠지 모르게 감동적이다. 그래, 이왕 시작한 거 정말 평범한 프리스트가 되는 거다.
 그렇게 내가 신성한 프리스트가 된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히죽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전투, 인상적이었네.”
 “잊어버리세요. 저는 신성한 프리스트입니다.”
 나는 갑자기 들려온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했고, 이런 내 대답에 그는 중얼거렸다.
 “신성이라······.”
 “왜 말을 흐려요?”
 나는 고개를 휙 돌리면서 물었다.
 거기에는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법 잘생긴 얼굴에다 키도 180센티미터 정도로 커 보였기에 일단 외모 면에서는 합격이었다.
 물론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문제는 왜 내가 신성이라고 말하자 말을 흐리냐는 것이다.
 “신성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 아는가?”
 “물론요. 예를 들어 저 같은 사람?”
 “흐음, 그건 신성이 아니라 파괴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는 신성한 프리스트라고요!”
 “글쎄.”
 왠지 모르게 사람 기분 나쁘게 한다.
 거듭 말하지만 난 신성한 프리스트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왜 내게 이런 이상한 남자가 접근해 오는 거냐?
 어찌 됐든 남자의 반응에 살짝 기분이 나빠진 난 그를 무시하고 돌아서서 가려고 했다. 그 순간.
 “몇 가지 테스트만 받으면 엄청난 선물을 주지.”
 “선······물?”
 반짝반짝.
 선물이라는 말에 나의 눈이 급속도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선물이라는 말에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나저나 선물이라니, 설마 엄청난 아이템 같은 것?
 한편 이런 내 모습을 본 그 남자는 더욱 솔깃한 말을 꺼내 놓았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선물이네.”
 “저, 정말요?”
 “그래, 나를 믿게나.”
 “오오.”
 “그 대신 솔직하게 말해 줘야 하네.”
 “네!”
 선물까지 준다는데 솔직하게 말하는 건 일도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봉 잡았다.
 “그럼 질문하지.”
 남자가 한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신을 믿나?”
 “안 믿는데요.”
 “오, 브라보!”
 “······.”
 “멋지네.”
 “······.”
 “그런 비뚤어진 마음이야말로 제격이야.”
 “······.”
 뭐야? 지금 나 욕하는 거야, 칭찬하는 거야?
 비뚤어진 마음이야말로 제격이라니, 도대체 이 아저씨 뭔가 이상하다.
 아니, 구리구리한 냄새가 난다. 내 식스센스에 이 아저씨의 구리구리파(?)가 진동하고 있다.
 “그럼 두 번째 질문! 보조가 좋은가, 공격이 좋은가?”
 “당연히 공격이죠.”
 “그래, 그거야!”
 “······.”
 내 한 마디에 남자는 계속 흥분하고 있다.
 왜 저래?
 “그럼 마지막 질문, 특기는?”
 “무술.”
 “베리 굿.”
 짝짝짝.
 나의 말에 남자는 환호하면서 박수까지 쳤다.
 이상하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여기 더 있다가는 왠지 아주 암울한 일을 당할 것 같다.
 피해야 된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내 감각이 외치고 있었다. 이 남자에게서 떨어지라고, 안 떨어지면 피 본다고 말이다.
 내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자, 그런 나를 본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 정체를 밝히지. 사실 난 프리스트네.”
 저기······ 어딜 봐서요?
 아무리 훑어봐도 프리스트는 1그램도 없는 것 같은데, 어디서 그런 생구라를 치는 겁니까?
 “진짜네.”
 “······.”
 “믿어 주게.”
 “믿기 싫어요.”
 “멋지네!”
 “······.”
 뭐가 멋지다는 건데?
 진짜 이상하다. 이 남자, 완전 이상하다.
 전문용어로 풀이하면 또라이, 즉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내가 선물을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자네를 (다크) 프리스트로 전직시켜 주지.”
 “저는 정상적인 프리스트 님께 전직을 받고 싶은데요.”
 “그러려면 레벨을 올려야 하지 않나? 하지만 난 곧바로 전직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네.”
 나는 그 말에 귀가 솔깃했다.
 곧바로 전직시켜 준다고? 그럼 혹시 그렇게 된다면 내가 최초 전직자?
 하지만 이 남자, 진짜 프리스트일까? 아무리 봐도 프리스트의 ‘프’자도 안 보이는데.
 “믿게, 나를 믿게.”
 “······.”
 “자, 믿게.”
 무슨 광신교에서 신도를 포섭하는 것처럼 내게 말하는 남자를 보니 더 믿기 싫어졌다.
 피해야 한다.
 어서 도망가야 돼!
 그런 생각과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뛰려고 했지만······.
 “물론 가혹한 시험이긴 하지만, 합격만 하면 3종 셋도 주네.”
 “3종 셋요?”
 “그렇지, 내가 특별히 지급하는 것들이네. 3종 세트.”
 한마디로 말하면, 아이템?
 오오!
 “자, 어떤가?”
 나는 그 말에 살짝 고민에 빠졌다.
 내 앞에 있는 남자, 무언가 구리구리한 냄새가 가득하다. 하지만 제안이 너무 솔깃하다. 레벨을 올리지 않아도 전직이 되고, 전직하고 나면 선물까지 준다니 제법 괜찮다. 그렇다면······.
 “일단 그 시험이라는 것부터 보도록 하죠.”
 
 “이 자식아, 문 열어!”
 쾅쾅쾅!
 난 내 앞을 가로막은 강철 문을 거의 부수다시피 두들겼다. 하지만 밖에서 들려온 대답은······.
 “하루만 견디면 되네.”
 “안 해! 안 해! 이 시험! 그리고 난 한다고 한 적 없다고! 본다고 했지!”
 “내 귀에는 한다고 들렸네.”
 “······.”
 “명복을 비네.”
 “으아악! 문 열어!”
 나는 열심히 강철 문을 두들겼지만 내 연약한(?) 손으로 강철 문을 부수는 건 무리였다.
 내가 지금 이런 상황에 빠진 이유는 명백히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나를 이상한 동굴로 안내한 그 남자는 갑자기 도착하자마자 ‘저기 금이다!’라고 외치더니 나를 강제로 동굴 안으로 밀어 넣어 버렸고, 지금 보는 것처럼 문을 닫아 잠가 버렸다.
 이건 분명히 강제적이다. 난 한다고 동의한 적도 없는데, 완전 강제다.
 “아 참, 한 가지 알려 줄 게 있는데 말이야.”
 “알려 주지 말고 문이나 열어!”
 쾅쾅!
 쉴 새 없이 문을 두들겼지만, 이런 내 반응에도 불구하고 밖에서는 여유로운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거기에 뱀 있어.”
 “······.”
 “한 200마리 정도 되나? 뭐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독이라 봤자 그냥 간단하게 죽을 수 있는 치사량에 한 400배밖에 되지 않으니까.”
 “······.”
 “흐음, 간단히 그냥 스치기만 해도 온몸이 비틀리는 고통으로 뒈지는 거지.”
 “······!”
 “괜찮지?”
 “으아악! 문 열어, 열어, 열어!”
 남자의 말에 나는 더욱 세게 문을 두들겼다.
 게임을 시작한 지 2시간. 고작 2시간 만에 맹독을 가진 뱀에 물려 몸이 비틀리는 고통을 당하면서 죽고 싶지는 않다. 절대로 말이다.
 쾅쾅쾅!
 그렇게 난 쉴 새 없이 동굴의 문을 두들겼다. 하지만 나를 이곳에 가둔 정체불명의 남자는 열어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제길!
 거의 절망적으로 빠진 내게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취르륵.
 취르륵.
 취르륵.
 “······.”
 으아악! 분명 뱀이다. 그것도 킹코브라 종류다.
 몸 길이만 5미터가 넘어가는 대형 킹코브라. 그것들이 스멀스멀 몰려오고 있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이게 어떻게 프리스트 시험이냐!
 보통 프리스트 시험이라면 봉사라든가 남을 도와주든가 이런 게 프리스트 시험이지, 강제로 동굴에 밀어 넣고 거기에 엄청난 맹독을 가진 뱀 200마리를 풀어놓는 게 어떻게 프리스트 시험이냐!
 불만이 하늘 끝까지 솟았지만 지금 그런 불만을 풀 여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 앞에서 뱀들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그랑상스하게 다가오고 계셨으니까.
 난 옆에 있던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아직 뒈지고 싶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 뒈지면 밖에 있는 사기꾼 자식에게 복수도 하지 못한다.
 나가서 피의 보복을!
 
 허헉!
 ······어느새 레벨도 상당히 올라간 것 같다.
 킹고브라를 한 마리 두 마리 죽이다 보니 레벨 업이 되었고,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라는 음성이 여러 번 내 귀에 들려왔다.
 그 뿐만 아니라 처음 이곳에 강제로 들어왔을 때보다 힘과 민첩성도 상당히 늘어난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레벨 업을 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킹코브라들은 아직도 100마리 이상 남아 있다.
 3시간 동안 정말 죽도록 싸웠다. 만약 현실 세계에서 무술을 단련하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난 벌써 뒈졌을 것이다.
 영어로 아임 다이?
 뭐 영어는 대충 넘어가고. 내가 이 뱀 소굴에서 살아 있는 건 기적이다 못해 초기적이다. 물론 지금은 살아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살아 있나?”
 “제길, 빌어먹을 자식.”
 그때 동굴 밖에서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게 프리스트로 전직시켜 준다고 사기를 치더니, 이상한 동굴에 도착하자마자 이 뱀 소굴에 집어넣은 잡종 사기꾼 같은 자식.
 “지금 토끼를 구워 먹고 있는데, 아주 맛있네.”
 “······.”
 “샤프하고 슬러픈한 고기. 쫄깃쫄깃한 육질에 아삭아삭 씹히는 그 맛, 죽여주네.”
 “내가 나가면 지금 너에게 잡아먹히는 그 고기처럼 만들어 준다.”
 “흐음, 나올 수 있을까?”
 “나갈 거야!”
 왠지 모르게 사람 정말 열 받게 만든다.
 그래, 나갈 거다. 온몸이 다 부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을 살아서 나갈 거다. 그리고 저 자식을 다진 고기로 만들어 주겠다.
 으드득.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나가겠다고 결심했다.
 츄우욱!
 그렇게 다짐을 하던 내게 킹코브라 한 마리가 갑자기 내 얼굴을 물어뜯기 위해 돌격했다. 하지만 한눈팔고 있었던 건 아니다. 이 정도는······.
 퍼억!
 나는 내 손에 쥐어진 피의 메이스를 그대로 휘둘렀다.
 “꾸에엑!”
 이상한 비명소리와 함께 동굴 벽에 부딪치는 킹코브라 한 마리.
 하아, 하아.
 죽었다. 정통으로 맞았으니까.
 그나저나 진짜 피의 메이스다. 물론 킹코브라들의 피가 잔뜩 밴 메이스지만.
 거짓말 안 하고 이 메이스는 이미 무적의 메이스다. 일명 맹독이 잔뜩 묻어 있다. 한 마디로, 무기 데미지는 별 볼일 없는데 부가적으로 엄청난 맹독이라는 옵션이 붙어 있는 것이다.
 츄우욱!
 그때 킹코브라 한 마리가 또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내 오른쪽 다리다.
 하지만 체크 완료야!
 퍼억!
 난 그대로 강한 스윙으로 나를 향해 달려오는 킹코브라의 머리를 적중해 그대로 날려 버렸다.
 “꾸에엑!”
 킹코브라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킹코브라들이 경계 어린 움직임을 보이며 나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미 내 옷은 킹코브라들의 맹독으로 뒤덮인 상태다. 여기서 아주 미세한 상처라도 나는 순간 이 많은 독들이 침투할 것이다.
 그럼 난 다이, 한마디로 죽는다는 거다.
 그러니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
 난 강하게 입술을 깨물면서 외쳤다.
 “어서 와. 끝내자고!”
 
 “흐음, 정말 대단한 신체반응과 순발력, 힘인데?”
 솔직히 정말로 킹코브라 200마리와 맞장 뜰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대략 30마리만 해치워도 합격이었지만 저자는 벌써 150마리를 죽였다.
 “정말 인재인데, 이거? 그들과 대적할 수 있겠어.”
 그 말과 함께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사, 살았다!”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킹코브라 200마리를 상대로 살아난 것이다.
 이런 엄청난!
 내가 그렇게 감격에 젖어 있을 때였다.
 드르륵.
 서서히 열리는 동굴의 문······.
 드디어 피의 복수다.
 난 손에 쥐어진 메이스를 꽉 잡았다. 저 사기꾼 인간을 당장 쳐 죽이기 위해!
 이미 내 눈에 이성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파괴와 살육의 악마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게 약 1분 후, 동굴 문이 완전히 열리자 나는 곧바로 재빨리 뛰어나갔다.
 “으아악! 죽었······ 어, 어라?”
 ······아무도 없었다.
 동굴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도 없고, 편지 한 장과 이상한 물건 3개만이 놓여 있었다.
 “이, 이게 뭐냐?”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전개에 나는 당황했다. 이 작자는 어디로 튀고 편지 한 장하고 이상한 물건 3개만 있는 거지?
 “도대체 이건 뭐야?”
 나의 발걸음이 편지와 물건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난 그 편지를 들어 펼쳤다.
 
 축하하네, 시험 통과를 말이야. 직접 축하해 주고 싶었지만 내가 바빠서 말이야. 이제부터 자네는 (다크) 프리스트라네. 신성함 따위는 갖다 버리는 아주 멋진 직업이지. 그리고 그 물건 3개는 선물이네. 그리고 무기도 하나 만들어 줬으니 고마워하라고. 하하하하!
 
 “······.”
 무, 무슨 소리야? 전직이라니.
 그리고 무기도 하나 만들어 주다니······.
 띠링!
 
 ―다크프리스트로 전직이 완료되었습니다.―
 
 “······!”
 지, 진짜 프리스트?(앞의 ‘다크’는 못 들었다.)
 진짜야? 진짜? 진짜? 진짜? 사기가 아니라?
 난 믿어지지가 않았다. 진짜라니, 이런 예상치도 못한 일이!
 그렇게 내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더니 눈앞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어, 어라?
 털썩.
 그때 갑자기 내 몸은 쓰러졌고 잠시 후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태미나의 과도한 소모로 사망하셨습니다.―
 
 그날 나는 뒈졌다.
 
 회상 끝.
 나는 내 앞에서 내 힐을 받고 죽어 버린 유저를 버린 채 그대로 튀었다. 전문용어로 날랐다.
 그날 이후 난 프리스트가 되었다는 생각에 스킬창도 스텟창도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고 오늘 곧바로 1:1 파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힐을 걸자마자 픽 하고 죽어 버리는 파티원.
 나는 그것을 보고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당장 확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들고 있는 무기는 지난번 킹코브라들과 같이 논(?) 그 무기다. 한마디로 초보의 메이스. 사실 난 지금까지 내가 프리스트라고 생각했기에 무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그 한 방에 터지는 것을 보니 예사롭지가 않다. 뭔가 있다.
 “아이템창 오픈!”
 띠잉!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메이스의 대한 정보가 뜨기 시작했다.
 
 ―초보의 초절정 맹독 메이스―
 공격력 : 4―6
 적을 일정 확률로 중독시킨다. 중독 당할 시 초당 1,042만큼의 추가 데미지를 준다.
 초보의 메이스다. 사용하다가 버리지 마라.
 
 이럴 수가!
 초, 초당 1,042? 그럼 10초면 10420?
 크아악! 공격력은 4에서 6인데 추가 데미지는 왜 저렇게 강력한 거냐?
 그리고 마지막 말도 달라졌다. ‘사용하다가 버려라’에서 ‘버리지 마라’로.
 진짜 미치겠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거지?
 어서 스킬창도 확인해 봐야지.
 
 ―다크 힐―
 레벨 1.
 상대방의 상처를 순식간에 악화시킨다. 상대방이 다치지 않았다면 사용할 수 없다.
 마나 소모: 30
 
 ―일멸의 불진―
 레벨 1.
 메이스를 휘두를 때 일정 확률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난다. 패시브 스킬이다.
 
 ―다크 블레스―
 레벨 1.
 상대방의 모든 능력치를 감소시킨다. 자기 자신에게 사용 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한다.
 마나 소모: 120
 
 ―다크 스트림―
 레벨 1.
 어둠의 악령을 소환해 자신의 무기에 담는다.
 공격력: 120 추가.
 마나 소모 : 60
 
 일단 네 개의 스킬이 있었다.
 그런데 좀 많이 이상하다.
 스킬 이름 앞에 ‘다크’라는 단어가 붙는 것도 모자라 저 이상한 효능들은 뭐지?
 내가 알고 있는 프리스트의 보조 마법과는 분명 다르잖아.
 그, 그래. 진정하자. 마지막으로 스텟창을······.
 “스텟창 오픈.”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22
 HP/MP: 420/320
 힘: 31(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24(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지능: 14(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25(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105
 
 똑똑히 보인다.
 아주 선명하게 직업란에 적혀 있는······. 아주 멋지다.
 ······다크프리스트.
 으아악! 어, 어둠의 프리스트?!
 그, 그 말은 그냥 프리스트도 아니라 어둠의 프리스트라는 거냐?
 그게 뜻하는 바는······ 사기당했다!
 
 
 
 
 
 3장 이유 없는 습격
 
 
 
 
 
 
 크아악!
 치밀어 올라오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나를 다크프리스트로 전직시켜 버린 그 작자. 잡아서 손해배상 청구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내 연약한 심성이 악마의 본성이 되어 버릴 것이다.
 “제길, 그런데 무슨 수로 잡지?”
 말 그대로 무슨 수로 잡는다는 거다.
 그 작자는 날았다. 다시 말해 완벽히 도주해 버렸다는 거다.
 물론 아이디를 삭제하고 다시 생성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엄청나게 복잡한 데다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관계로 패스해야 했다.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다시 그 작자를 만나 나를 원래대로 신성하고 멋지고 우아한 프리스트로 되돌리라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손해배상 명목으로 아무거나 잔뜩 뜯어낼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작자를 잡아야 한다는 아주 중대한 문제가 남아 있었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작자를 잡아야 한다.
 말이 상당히 꼬인 것 같네.
 뭐,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그 작자를 잡아야 된다는 거다.
 “도둑 길드라도 가 봐야 하나?”
 말 그대로 도둑 길드.
 정보 하면 도둑 길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도둑 길드의 정보력은 최강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유저들이 활동하는 도둑 길드는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이미 NPC들은 준비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돈이 없네.”
 말 그대로 돈이 없다.
 킹코브라 200마리를 족쳐 보았지만, 아이템이 한 개도 안 떨어졌다. 킹코브라 자체가 시험용이었던 탓에 그랬을 확률이 농후하다.
 돈을 벌기 위해 사냥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럼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말 그대로 사냥해서 돈을 번다. 그 후에 그 도둑 길드를 찾아간다. 그런 다음 그 사기꾼 자식을 잡아 손해배상을 요구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구상하고 있는 작전이다.
 
 “······다크프리스트가 나타났다고?”
 한 남자가 흠칫 놀라면서 물었다.
 검은색 후드 탓에 얼굴에 나타난 감정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로 봐서 꽤 놀랐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네, 마스터.”
 “하필 다크프리스트라니, 귀찮군.”
 “그러게 말입니다.”
 “흐음······.”
 “어떻게 할까요, 마스터?”
 “내 대답은 한 가지다.”
 “······?”
 “죽여라. 계속해서 죽여라. 다시는 이 게임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런데 어디서 돈을 벌지?”
 작전 구상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작전을 실행할 데가 마땅히 없다는 게 문제였다. 돈을 많이 벌려면 당연히도 고렙 사냥터를 가야 한다. 하지만 내 레벨은 이제 22.
 저번에 만난 킹코브라들 덕택에 레벨에 비해 상당히 능력치가 좋은 편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고렙 사냥터로 가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면 약 30레벨 정도 되는 저렙 몬스터 중에서 이것저것 주는 게 많은 놈들을 노려야 했다.
 아직 오픈 베타를 시작한 지 별로 되지 않은 까닭에 그 놈들이 있는 사냥터에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래봬도 난 고렙이다.
 흐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게임에 들어오기 전에 게임 사이트에서 본 30대 정도의 몬스터 중 이것저것 많이 줄 거 같은 몬스터를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일단 전사 오크, 오크 아저씨의 삼촌뻘이다. 참고로 전사 오크, 초전사 오크, 슈퍼 전사 오크, 초슈퍼 전사 오크, 사이언 오크도 있다.
 한마디로 가족이다. 좋게 말해 가족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양산형 몹들이다.
 그다음 고블린 전사.
 얘들도 30대로 봤는데, 일단 오크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꽤나 좋다.
 이제 마지막으로 블린.
 이건 이 에피리 월드에서 처음 선보이는 몬스터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상당히 긴 몸체를 가지고 계시고, 은빛으로 온몸을 칠하셨다.
 그런 다음 땅을 열심히 기어 다니신다. 간단하게 말해 은빛의 거대한 지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난 무얼 골라서 사냥할까 고민에 잠겼고, 그것도 잠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블린이라는 몹을 잡는 거다.
 이왕 잡을 거 진부한 오크 따위보다는 새로운 몹을 잡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
 
 그렇게 내가 블린이라는 몬스터를 잡기 위해 천천히 자리를 옮길 때였다.
 흠칫.
 사, 살기?
 분명 살기다. 갑자기 내 몸을 조여 오는 살기. 갑자기 살기라니, 몬스터?
 제길!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다급하게 슈퍼 맹독성 초보자 메이스를 들었다. 이래 봬도 중독만 시키면 순식간에 몹을 녹여 버리는 메이스다.
 데미지 자체는 별 볼일 없지만 말이다.
 내가 그렇게 긴장감 어린 모습을 한 채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파아앗!
 “우에엑!”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굴렀다. 그대로 떼구르르 말이다.
 그리고 내가 있던 자리에 아주 멋진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
 단검 20개 정도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아주 나란히 꽂혀 있는 장면이었다.
 저, 저기 몬스터 중에 단검 던지는 놈도 있나?
 수많은 게임을 해 봤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괴이한 몬스터는 없었는데? 단검을 던지는 몬스터라니······.
 그런 놈은 없다.
 하지만 단검 던지는 존재는 있었다.
 그건 바로 어쌔신이라고 불리는 암살자 님들이시다.
 그런데 그분들이 왜 나에게 볼일이 있으신 거냐?
 그래, 착각이다. 분명하다.
 “저, 저기요. 어쌔신 님들, 저는 아주 선량하고도 선량하다 못해 무지무지 선량한 프리스트인데 왜 저한테?”
 나한테는 보이지 않지만 들을 수는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열심히 큰 목소리로 말했고, 나의 이런 질문에 그들은 대답했다.
 “다크프리스트.”
 “헉!”
 어떻게 내 직업을 아는 거지?
 “제거한다.”
 ······!
 제거?
 분명히 들었다. 간단히 이어 붙이자면 다크프리스트, 제거한다.
 그 말뜻은 이 직업······에 원한이라도 있다는 소리?
 파앗!
 하지만 그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내 등 뒤로 나타나는 어쌔신 한 놈.
 놈은 그대로 강력하게 내 등을 향해 검을 찔렀다. 하지만 가만히 당하고 있을 내가 아니다.
 난 순간적으로 발뒤꿈치를 이용해 강하게 턴을 시도했고, 그대로 몸을 돌리면서 울트라 초보자 메이스를 강력하게 날렸다.
 퍼억!
 아주 상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보라색으로 변하는 어쌔신 님.
 중독되셨다.
 “쿠, 쿨럭.”
 털썩.
 중독된 지 몇 초 만에 쓰러져서 돌아가시는 어쌔신.
 정말 맹독이다. 이건 거의 유니크 급이잖아?
 그 이상한 킹코브라들 때문에 초보자의 메이스가 유니크로 변신하다니, 왠지 모르게 멋지다.
 그렇게 내가 한 명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자신감이 넘쳐흐르자, 나는 검지를 까딱거리면서 말했다.
 “모두 덤벼.”
 스윽.
 스윽.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나는 30명 정도의 어쌔신들.
 솔직히 말해 한 10명까지만 돼도 싸워 보려고 했다.
 그런데 내 앞에는 30명 정도의 어쌔신이 서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무리다. 내 레벨은 달랑 22.
 이 레벨에 1:30은 무리다.
 나는 까딱거리던 손가락을 내리면서, 정중하게.
 “아주 깊은 오해가 있는 듯싶습니다.”
 “넌 다크프리스트.”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런 이상한 직업은 모릅니다. 아주 선량한 그냥 프리스트거든요. 하하하.”
 “······.”
 제일 앞장서 있던 복면을 한 어쌔신 리더를 향해 나는 그렇게 말했다.
 왠지 모르게 비굴해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라. 아무리 내가 날아다녀도 무리다.
 “네가 다크프리스트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너는 우리 동료를 죽였다.”
 “그, 그건 절대적으로 고의가 아니······.”
 “죽여라.”
 스윽.
 스윽.
 그 말과 함께 어쌔신들은 사라졌다.
 나는 표정을 찡그렸다.
 엿 됐다. 젠장!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했습니다.―
 
 내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축복의 효과가 나타났다. 좋다. 30이면 지금 내 능력치의 두 배 이상이다.
 그래, 다 덤벼라, 다 덤벼. 에라, 모르겠다!
 나는 공격해 들어오는 어쌔신들을 향해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나같이 순수한 존재를 노리는 건데? 도대체 이 직업이 뭐가 어떻다고!
 보통 구리구리한 직업은 아니라고 느꼈지만, 이런 어둠의 암살자들의 표적이 될 만큼 위험한 직업일 줄이야!
 스윽.
 어느새 내 등 뒤에 어쌔신 한 명이 나타났다.
 얘들은 심심하면 내 등 뒤로 나타난다. 내 등이 그렇게 좋으냐!
 난 이번에도 아까처럼 순식간에 발뒤꿈치 축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회전했고, 그대로 메이스를 휘둘러 그 어쌔신의 팔을 가격했다.
 퍼엉!
 불멸의 일진이다.
 일정 확률로 공격 시 강력한 폭발을 주는 공격.
 한편 불멸의 일진이라는 패시브 스킬에 당한 어쌔신이 그대로 터지면서 뒤로 튕겨져 나가자,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외쳤다.
 “다크 힐!”
 “크아악!”
 내 힐이 작용하자, 그 어쌔신은 엄청난 비명을 지르더니 죽어 버렸다.
 힐이 더럽게 무섭다. 상처 난 부분쯤에 시전하니 그대로 다이다.
 “역시······ 다크프리스트.”
 한편 내 이런 모습을 본 어쌔신 리더는 그렇게 말했고, 그 말에 나는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힘들다, 정말 힘들다.
 도대체 원치도 않았던 직업으로 전직하자마자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다니.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으아악!
 그 사기꾼 같은 작자, 정말 만나기만 해 봐라!
 나를 거의 반강제적으로 전직시킨 그 인간을 원망하고 또 원망할 때였다.
 “제거.”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한마디에 어쌔신들은 순식간에 다시 내게 쇄도해 왔다.
 젠장! 좀 쉬자고. 그래, 이럴 때는 비기를!
 “앗! 저기 나는 똥개다!”
 “······.”
 “······.”
 저기요, 한 명이라도 속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명도 안 속다니, 너무하잖아! 나의 비기가 초라해지는 순간이다.
 
 헉, 헉, 헉!
 숨이 더욱 가빠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약 절반 이상을 해치웠다.
 정말 레벨 22에 1:30으로 싸워서 15명을 해치운 건 기적이다. 만약 꽤 좋은 다크프리스트 스킬이 없었고, 유니크에 버금가는 맹독의 초보자 메이스가 없었더라면 난 벌써 뒈졌을 거다.
 하지만 그것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살아남은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힘들다.
 스태미나 고갈이다. 제길! 저번에 킹코브라들과의 혈투에서 끝내는 스태미나 고갈로 뒈졌는데, 여기서 또 스태미나가 걸릴 줄이야······.
 분명 나도 프리스트 부류임이 분명하기에 나중에라도 스태미나를 채워 주는 스킬이 있음은 분명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지금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난 내 앞에 있는 어쌔신 대장에게 말했다.
 “좀 쉬고 계속하면 고맙겠는데.”
 “기각.”
 “너무 야박하네.”
 “죽여라.”
 “······이런 썅!”
 저 자식은 계속해서 죽여라, 죽여라만 외치고 있다. 뭐 못 죽여서 안달 난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제길!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스태미나 고갈로 죽는다. 이럴 때는······.
 “튀······자!”
 나는 끝내 튀기로 결정했다.
 젠장, 굴욕이다. 스태미나만 넘쳐났으면 다 죽일 수 있었는데 아깝다.
 그때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추격, 척살.”
 ······염병.
 
 난 오늘 새삼스럽게 느꼈다.
 튀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뒤에서는 심심하면 단검이 날아오지, ‘죽여, 죽여!’라는 대사만 들려오지 정말 미치겠다.
 지금 나는 약 열 명쯤 남은 어쌔신들을 피해 도망가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가는 것만으로도 스태미나가 줄어든다. 한마디로 이대로 가다가는 지쳐 쓰러진다는 얘기다.
 크윽!
 그렇게 한참을 무의식적으로 뛰었을까?
 이제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그냥 넘어져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다.
 하지만 저런 이상한 놈들에게 죽는 건 정말 싫다. 미녀 어쌔신 님들에게 죽는다면 그나마 용납되겠지만 저런 칙칙한 남자들에게 죽는 건 정말 사양한다.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뛰어가던 나는 끝내 다리가 풀렸다.
 털썩.
 “크윽.”
 난 그대로 산속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뒤에는 아직도 맹렬한 살기를 내뿜는 어쌔신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뒈지다니 이렇게 암울할 수가.
 내가 그렇게 암울함에 고개를 저을 때였다.
 내 시야에 동굴이 하나 들어왔다.
 분명 동굴이었다. 그 말은!
 “음, 일단 저기에 숨어 보자.”
 나는 거의 초인적인 힘을 끌어올려 다리에 힘을 준 채 동굴을 향해 뛰어갔다. 제발 눈치 못 채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다크프리스트가 통진의 동굴로 입성했습니다.”
 “바보 같은 놈, 통진의 동굴로 들어가다니.”
 통진의 동굴. 아직 그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는 마의 던전이다. 최소 못해도 200대 레벨 몬스터가 가득한 곳이다.
 그런 곳에 자진해서 들어가다니, 죽으러 간다는 소리다.
 “다크프리스트 척살 1번 완료.”
 어쌔신 리더는 그렇게 단정지었다.
 
 
 
 
 
 4장 신을 찬양하는 리
 
 
 
 
 
 
 
 와! 안 쫓아온다!
 이 동굴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어쌔신들이 쫓아오지 않는다. 말 그대로 내가 여기 숨은 것을 눈치까지 못한 것이다.
 후우, 후우.
 난 그제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힘들다. 이제는 좀 쉬고 싶을 뿐이다.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지치다니 할 말 없다.
 그렇게 내가 너무나도 지쳐 동굴 바닥에 누우려고 할 때였다.
 쿵, 쿵!
 이건 뭔 소리일까?
 쿵, 쿵!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묵직한 발소리.
 서, 설마······.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왜 여기에서는 설마, 하면 항상 그 설마가 사실이 되는지 말이다.
 ······제길!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생물체! 그건 바로 오우거의 형뻘 되는 자이언트 오우거다.
 보통 오우거가 2―3미터 정도 되는데 이 자이언트 오우거는 4―5미터 정도의 키를 가진 어마어마한 놈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냥 오우거보다 2―3배 이상 강력한 힘과 더불어 저 우람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 날렵하다.
 뭐 이런 추가 설명은 필요 없다. 왜냐, 난 이제 정말 죽을 것 같았으니까.
 지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 자이언트 오우거는 레벨이 250대다. 달랑 레벨 22에 달하는 내가 상대할 존재가 아닌 거다.
 쿵, 쿵!
 어느새 오우거는 우렁찬 발소리를 내면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이대로 뒈지는 거냐?
 서 있을 힘도 없는데.
 쿵, 쿵!
 오우거의 발소리가 마치 지옥의 저승사자를 연상하게 한다. 뭐, 진짜 저승사자를 만나러 가야 될지도 모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어느새 자이언트 오우거는 앉아 있는 내게 거의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 오우거의 손에는 3미터 정도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몽둥이가 들려 있다.
 흐흑! 정말 이건 아니다.
 왜 게임 시작하자마자 지금까지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이 연속으로 이어지느냔 말이다. 그래, 명백히 그 사기꾼 작자 때문이다.
 아니, 토끼 마운틴의 어퍼컷에 흥분한 나에게도 잘못이라면 있었다.
 처음에 토끼 마운틴인가 뭔가 하는 필드 보스 때문에 흥분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넘어갔다면 그 사기꾼 작자를 만나지도 않았을 테고, 만났다고 하더라도 위험 센스를 믿고 도망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놈의 아이템이라는 게 뭔지, 하는 말에 홀딱 넘어갔고, 그런 다음 이상한 동굴에 갇힌 채 킹코브라 200마리와 혈투를 벌였고, 그 다음 튀어나와 파티 사냥하다가 한 유저를 피케이 했다.
 그리고 갑자기 이상한 어쌔신들의 습격.
 그 자식들은 전문용어로 내게 다구리를 쳤다. 그렇게 나는 힘들게 도망을 다니다 이 동굴을 발견해 냈다.
 그런데 들어오니 자이언트 오우거가 대기 중이시다.
 흑, 정말 슬픈 스토리다.
 그렇게 내가 과거의 회고록에 젖어 있을 때였다.
 어느새 자이언트 오우거의 몽둥이는 휘둘러졌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맹독 초보자 무기를 집어던졌다.
 퍼억!
 콰앙!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불멸의 일진이다.
 그 뿐만 아니라 맹독까지 걸었다.
 “크아악!”
 맹독에 걸린 오우거는 엄청난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빛냈다.
 그렇다! 기회다, 기회인 거다!
 “다크 블레스! 다크 힐! 다크 힐! 다크 힐! 다크 힐! 다크 힐!”
 난 일단 모든 능력치를 감소시킨 뒤 그대로 맹독에 걸려 지랄 발광을 해 대는 오우거에게 다크 힐을 난사했다.
 마나를 있는 대로 모두 쥐어짜서 말이다.
 그렇게 약 2분······.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 레벨 22, 그런데 250레벨의 오우거를 잡은 것이다.
 물론 환상적인 무기와 스킬이 있었다지만 잡은 건 잡은 거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헉!
 그 순간 내 귓가에 들리는 레벨 업 소리. 정확히 열한 번이다.
 한마디로 11업을 한 번에 당긴 것이다.
 이럴 수가! 이게 바로 기연?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었습니다. 다크 케이전.―
 
 “······?”
 새로운 스킬?
 보통 스킬을 얻는 방법은 일정 레벨이 되면 자연 생성이 되는 스킬이거나 혹은 몬스터나 탐험, 각 직업 길드를 통해 얻는 방법이 있다.
 어찌 됐든 나는 새로운 스킬이라는 말에 감격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상태에서 새로운 스킬이라니. 우욱!
 나는 당장 스킬창을 열었다.
 “스킬창 오픈.”
 
 ―다크 케이전―
 레벨 1.
 어둠의 정령을 불러낸다. 이 어둠의 정령으로 상대방을 일순간 묶어 둘 수 있다. 자신보다 레벨이 크게 높을수록 걸리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레벨이 비슷한 상대라면 100퍼센트 성공이다.
 걸릴 경우 상대방은 약 20초간 어떤 움직임도 할 수 없다.
 마나 소모: 100
 
 한마디로 요약하면, 강제로 묶는 기술?
 풀이하면 상대방을 20초 동안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그랑상스하고 멋진 스킬이 있을 수가 있지?
 난 당장 스텟창 확인에 들어갔다.
 “스텟창 오픈.”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33
 HP/MP: 680/570
 힘: 51(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34(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지능: 19(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28(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160
 
 우아, 멋지다. 한 번에 11업, 그래서 레벨 33이 되었다. 너무 멋지다! 그리고 보니 스텟 분배를 안 했구나, 이 기회에······.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33
 HP/MP : 680/570
 힘: 151(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64(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지능: 39(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38(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 0
 
 정확하게 힘 100에다가 민첩성 30, 지능 20, 체력 10 이렇게 배분했다.
 후훗!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파괴력이 나올 듯싶다.
 “하하하! 하하하!”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너무나 행복해서 웃음만 나온다. 너무나도 기쁘다. 레벨 업 덕택에 스태미나도 모두 회복됐고, 정말 행복하다.
 그렇게 내가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웃음을 지을 때였다.
 내 앞으로 뭔가가 우르르 몰려오고 있다.
 그리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누구일까요?
 너무나도 당황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이렇게 급격히 당황하는 건 내 앞에서 나를 잡아먹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몬스터 무리의 눈빛 때문이다.
 그렇다. 내 앞에 순식간에 우르르 몰려온 10마리의 몬스터들. 자이언트 오우거도 있었고, 듀라한도 있었다. 심지어는 스켈레톤 메이지도 있었다.
 난 그들에게 말했다.
 “제 웃음소리가 방해가 되었다면 정중하게 사과드리겠습니다.”
 “······.”
 “······.”
 하지만 나의 이런 정중한 인사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들은 서서히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성큼성큼 뒤로 물러섰다.
 아, 이런 엿 같은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만들어지는 걸까?
 내가 그런 탄식을 한 채 계속해서 뒤로 물러설 때였다.
 턱!
 내 등 뒤를 가로막는 벽. 벽이란 것이 이렇게 야박하게 느껴지다니. 그건 전적으로 내 앞에서 열심히 다가오는 저 몬스터들 때문이다.
 “이제 진짜로 죽는구나.”
 참 오래 살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장 죽었을 테지만, 나는 그래도 오래 살았다. 별별 짓을 다해서 말이다. 뭐 그 덕분에 스킬도 얻고, 레벨 업도 하고, 무기도 하나 만들어졌으니 그리 후회는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사실이었다.
 어느새 몬스터들은 나와 전방 10미터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는 가로막힌 벽을 밀어낼 듯 강력히 물러섰다. 그렇다고 가로막힌 벽이······.
 “끄아악!”
 벽이 무너졌다.
 말 그대로 내 등 뒤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무너진 거다. 그와 함께 내 몸은 만류인력의 법칙에 따라 급속히 하강했다.
 어둠만이 가득한 곳으로.
 
 “흐음, 다크프리스트군요. 후훗.”
 후드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으윽.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었다.
 기절한 건가?
 갑자기 열린 비밀 문을 통해 그대로 추락했고, 그런 다음 곧바로 기절이라는 걸 한 듯싶었다.
 그래도 그 몬스터들을 피해 살아남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여긴?”
 제단이었다.
 내 앞에는 푸른색으로 만들어진 빛의 제단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제단이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신을 믿습니까?”
 “······?”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뭐, 뭐야?”
 그때 갑자기 내 등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뭐? 신을 믿느냐고?
 제길, 그 사기꾼 작자랑 같은 질문이다.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당장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검은색 후드를 깊게 눌러쓴 존재가 서 있었다.
 키는 대략 185센티미터 정도?
 꽤나 큰 키다. 그런데 후드를 너무나도 깊게 눌러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신의 아름다움을 믿습니까?”
 “지랄! 난 신 따위는 절대 안 믿어!”
 프리스트 지망생이 이런 발언을 하면 어이가 없는 거겠지만, 이 사람이 내가 프리스트 지망생이라는 걸 알 리가 없다.
 게다가 지금은 프리스트가 아니라 다크프리스트고.
 “오, 이럴 수가! 이 어린 양은 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군요.”
 “······.”
 “당신은 신의 기적을 본 적이 없나요?”
 “······.”
 “보신 적이 없군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저는 신의 기적을 봤습니다. 신은 내게 아름다운 빛을 내려 주셨습니다.”
 뭐야, 이 자식은?
 갑자기 내게 다가와 대뜸 신을 믿느냐고 묻더니, 그 후에는 무슨 신의 기적 운운하며 신 타령을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또라이다. 좋은 말로 풀이하면 미친놈이고.
 어찌 됐든 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그 어떤 존재라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갑자기 떨어져서 기절한 다음 깨어났는데, 저런 미친 자식이 눈앞에 와서 설교를 하고 있었으니까.
 “저와 함께 신을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싫어.”
 “오, 이럴 수가! 미친놈이군요.”
 “······.”
 자, 잠깐. 방금 미친놈?
 내가 신을 찬양하기 싫다니까 저 자식에게서 들려온 말은 분명 미친놈이라는 단어였다. 도대체 신을 믿지 않는 거랑 미친놈이란 단어가 문슨 관계가 있는지 심히 궁금하기는 한데, 그것보다는······.
 퍼억!
 “으악!”
 나는 그대로 날았다.
 한마디로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한 방 먹인 것이다.
 감히 누구 보고 미친놈이라고 해! 이 자식이!
 나는 하이킥을 날린 후에도 분노를 참지 못했고, 한편 내 하이킥에 얻어맞은 그 이상한 존재는 서서히 후드가 벗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
 난 내 눈을 열심히 비볐다.
 비비고 또 비비고, 또 비볐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존재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당연하다.
 왜냐하면 내 앞에 있는 존재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좀 덜 평범해도 그나마 이해하겠는데, 덜 평범한 것도 아니다. 심하게 평범하지 않다. 아니, 그런 범위에 드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그 존재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리······치?”
 그는 앙상한 뼈만 남아 있는 존재였다.
 분명 벗겨진 후드 안에서 드러난 것은 앙상한 뼈다. 게다가 리치를 증명하는 개뼈다귀(?) 같은 얼굴.
 믿을 수가 없다. 리치라니, 리치라니!
 리치는 보스급 몬스터에 해당되는 마법 몬스터다.
 기본적으로 약 7서클 마법에 핵을 파괴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살아서 움직이는 그 리치. 보스급 몬스터 중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존재다.
 한편 내 하이킥에 맞아 날아간 리치는······.
 ······흐느꼈다.
 으아악! 뭐, 뭐야?
 “흐흑. 이렇게 난폭할 수가······.”
 “······.”
 “연약한 나를 이렇게 패시다니, 정말 난폭한 인간입니다. 오, 신이시여. 저런 난폭한 자에게 천벌을······!”
 정말 완전 돌아 버리겠다.
 리치가, 리치가 흐느낀다.
 그래, 여기까지는 이해해 주마.
 하지만 말이다, 왜 리치가 신을 찬양하냔 말이다! 저건 미치지 않고서는 아니, 이미 미쳤다.
 언데드 계열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리치가 신을 찬양하다니!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이기를, 그래,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 말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크아악!
 “아, 신이시여. 알겠습니다.”
 “······.”
 그때 마치 하늘과 대화하는 모습을 한 리치는 열심히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저 자식이 약간 미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곧 죽어도 리치다. 마법 몬스터 중 거의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는 거다.
 내 레벨은 33. 400대에 육박하는 대장급 몬스터를 잡는 건 무리다.
 내가 앞에 있는 리치를 보면서 긴장감으로 등에 식은땀을 흘릴 때였다.
 “신이 당신을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
 “당신을 도와주라고 하는군요.”
 “날?”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그 난폭한 행동을 교화하고 신을 믿게 하겠습니다.”
 “······.”
 “할렐루야!”
 “······.”
 절대 거절이다.
 내가 왜 너같이 미친 자식을 데려가?
 안 그래도 이상한 놈들한테 습격당해 짜증나 있는데 말이다.
 “데려가 주세요!”
 “뭐, 뭐야? 어, 언제······.”
 그때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왔는지 리치가 내 발목을 붙잡고 통사정을 했다.
 너무나 어이없었다.
 “제 임무입니다. 데려가 주세요!”
 “시, 싫어. 임마!”
 “이거 받으시고.”
 그는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손으로 무엇을 내밀었다.
 그것은 보석이었다.
 붉은색의 사파이어, 내 손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커다란 사파이어였다.
 나는 고민했다. 사파이어냐? 정상적인 생활이냐?
 하지만 난 금세 선택할 수 있었다.
 난 리치의 앙상한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언제든지 환영하네.”
 “할렐루야!”
 “흐흐흐.”
 그리고 나는 그대로 사파이어를 챙겼다.
 땡 잡았다. 이게 웬 장땡이냐. 크하하하.
 물론 미친 리치가 달라붙는 건 별로 안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 별 지장 있겠어?
 
 
 
 
 
 5장 얼음의 마을
 
 
 
 
 
 
 “이 개자식아.”
 퍼퍼퍽!
 “마, 말로······.”
 “지금 말로 될 상황이냐?!”
 “······쿠에엑.”
 “이 자식이! 으아악! 내가 이놈을 왜 데려온 거야!”
 나는 그 리치 자식을 밟으면서 후회했다.
 그리고 또 후회했다.
 신을 찬양하는 미친 리치를 데리고 온 걸 말이다. 사실 난 이 자식이 그래도 보스급 몬스터니 약간의 도움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도움은커녕 방해하기 위해 동료가 된 듯싶었다.
 처음 동료가 되자 녀석은 자신 있는 어조로 내게 말했다.
 “간단히 텔레포트로 근처 마을로 가도록 하죠.”
 난 그 말에 ‘오오! 멋지다!’ 하면서 감동했다.
 오픈 베타한 지 얼마 안 된 지금 텔레포트를 쓸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없을 거다.
 그만큼 감동은 배가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거절했어야 했다.
 그냥 가자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지금 이 꼬락서니가 된 것이다.
 이 자식은 신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닭대가리였다.
 어떻게 마법사 자식이 텔레포트 좌표를 잘못 읽느냔 말이다! 시전 중의 실수도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잘못 읽은 거다.
 어떻게, 어떻게!
 “오, 주여. 이 난폭한······.”
 “닥쳐!”
 “······.”
 “한 번만 더 지금 상황에서 ‘주여’라는 단어가 나오면 널 영원히 주의 곁으로 보내 주지.”
 “······.”
 내 협박에 그제야 침묵을 유지하는 리치, 아니 정확히 가르.
 제길!
 내가 지금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정말 어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를 텔레포트로 편안하고 안전하게 근처 마을로 데려다 주겠다는 가르. 하지만 텔레포트 된 지점은 근처 마을이 아니었다.
 얼음 계곡이었다. 그것도 눈이 엄청나게 몰아치는 얼음 계곡.
 갑자기, 급작스럽게 얼음 계곡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근처 마을과는 전혀 상관없는 얼음 계곡으로 말이다.
 “제길, 춥다.”
 무지하게 춥다.
 사실 내가 있던 곳은 따뜻했기에 이렇게 얇은 옷을 입어도 상관없었지만 여기는 정말 더럽게 추웠다.
 크윽! 도대체 이 자식은 어떻게 이 멀리까지 제멋대로 텔레포트 할 수 있는 거지?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대단했다.
 “형, 형제여. 다시 한 번 내게 기회를······.”
 “지금 기회라고 했냐?”
 “······.”
 “기회를 주지. 하지만 말이야, 실패하면 넌······.”
 나는 그 말과 함께 손으로 목을 그었고 그걸 본 가르는.
 “안 하겠습니다.”
 그게 현명한 거다. 저 자식을 믿었다가는 다음번에는 무슨 용암굴로 들어갈지도 모르니까.
 제길!
 
 하아······.
 미묘하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를 다크프리스트로 전직시킨 그 사기꾼 작자를 만나 이 직업에 대한 것을 물어봐야 했다.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녔기에 어쌔신들이 이유도 없이 나를 제거한다고 난리를 치는 건지 무지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옆에서 두 뼈다귀를 모은 채 신에게 기도를 하는 리치 자식 때문에 모든 일이 틀어졌다.
 저 녀석이 텔레포트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도둑 길드에 의뢰해서 그 양반을 추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이 되어 버렸다.
 흐흑! 제길!
 “형제여, 같이 기도합시다.”
 “지금 내가 기도하게 생겼냐? 추워 죽겠어!”
 “흐음, 저는 안 춥습니다만.”
 “······너는 뼈다귀만 있잖아, 자식아.”
 “······.”
 뼈다귀만 있는 녀석이 추우면 더 이상한 거다.
 하아, 제길. 춥다, 추워. 얼어 죽겠다.
 “가르, 근처에 동굴이라도 찾자. 이러다가 먼저 얼어 뒈지겠다.”
 “알겠습니다. 형제여.”
 
 그렇게 나와 가르는 근처에 동굴이 있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근처를 뒤적거렸다. 그렇게 약 1시간, 이미 내 몸은 얼다 못해 살얼음까지 온몸에 덮여 있는 상태다.
 그만큼 추워 뒈지겠다.
 “형제여! 저기 발견했습니다!”
 “오오!”
 그때 가르가 발견했다면서 가리키는 한 동굴.
 분명 동굴이다. 다시 봐도 동굴, 또다시 봐도 동굴이다.
 난 그제야 희열에 찬 표정을 지은 후 외쳤다.
 “가자!”
 “네, 형제여!”
 
 그렇게 나와 가르는 그 동굴로 들어갔다.
 사, 살 것 같다.
 말 그대로 정말 살 것 같았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얼어 죽을 뻔했다.
 게임하면서 얼어 죽는 경우는 흔치 않······ 아니, 내가 최초일 것이다. 그런 최초는 개인적으로 절대 거부한다.
 그렇게 나와 가르는 새롭게 발견해 낸 동굴 안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다. 아니, 나만 녹이면 되었다.
 가르는 어차피 뼈다귀밖에 없는 리치니까.
 “야, 가르.”
 “······?”
 “따뜻한 화염 마법이라도 사용해 봐.”
 “플레임 버스터 말입니까?”
 “지금 이 상황에 그런 고위급 화계 마법이 어울려?”
 “무슨 말인지 이해 불가능합니다, 형제여.”
 아이고, 내 머리야.
 지금 이런 상황에 6서클 공격 마법인 플레임 버스터 타령을 하고 있다니. 척하면 척 아닌가? 당연히 간단한 불 마법으로 내 몸을 녹이자는 건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 이해력이 엄청 부족하다.
 내가 친절히 말해 주려고 하고 있는데······.
 쿠아앙!
 “······.”
 “······.”
 쿠아앙!
 무언가 포효하는 울음소리, 이 소리 어디서 들어 봤다.
 쿵!
 쿵!
 그리고 들려오는 묵직한 발소리까지. 그리고 이런 동굴······.
 완벽하다. 그 작자다.
 쿠아앙!
 다시 한 번 내 눈에 모습을 드러내 흥겹게(?) 포효하는 생물체.
 곰이다. 그것도 검은색 곰.
 “가르.”
 “······?”
 “플레임 버스터 준비해라.”
 “네, 알겠습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주섬주섬 일어섰다.
 그런 다음 지금까지 내 목숨을 지켜 준 슈퍼 울트라 초 맹독 초보자 메이스를 꺼내 들어 움켜쥐었다.
 믿는다, 믿어. 메이스야!
 그리고······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80 상승했습니다.―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래, 할 만하다. 대략 내 앞에 있는 놈이 대충 레벨 100 정도 되니까, 가르의 지원 마법 한 방이면 꽤나 수월할 것이다.
 “가르, 발사해.”
 “플레임 버스터!”
 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르는 화염의 불꽃을 우리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곰을 향해 그대로 날렸다.
 이어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콰앙!
 “끄억!”
 곰의 비명소리도 울려 퍼졌다.
 나는 그대로 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완전히 몸을 젖힌 후 풀 스윙으로 곰의 몸을 가격했다.
 퍼억!
 급 무안이다.
 불멸의 일진도, 맹독도 아무것도 발휘되지 않았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공격력 4―6을 육박하는 메이스 공격력만 들어갔다는 말이다.
 스으윽!
 흑곰은 날카로운 앞발을 나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고, 나는 그런 흑곰의 공격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아슬아슬하게 피해낼 수 있었다. 얼마나 아슬아슬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 허공에 휘날리는 나의 머리카락이 증명해주고 있다.
 아참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어서 다음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크르릉!”
 그런데 흑곰은 다음 공격은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춘 채 으르렁거리기만 했다.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왜 저러는 거지?
 아, 혹시 아까 가르의 마법에 큰 상처가 나서 그 고통에 저러는 건가?
 나는 그런 내 추측을 확인하기 위해서 흑곰의 몸 전체를 훑어보았고, 그런 내 눈에 흑곰의 오른쪽 다리 부근에 상당히 큰 화상을 입은 것을 발견했다.
 역시 내 추측이 맞았군.
 그나저나 상처가 생겼네?
 평소에는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지만, 상대방이 다친다면 최강의 힘을 발휘하는 그 스킬을 사용할 데가 되었군.
 “다크 힐! 다크 힐! 다크 힐!”
 연속되는 다크 힐 시리즈. 순식간에 상대방의 상처를 급속하게 악화시켜 뒈지게 하는 최강의 스킬이다.
 “크아악!”
 역시나 반응을 보이는 흑곰.
 흑곰의 오른팔에 깊게 그어진 상처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썩어 간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약간 징그럽기는 한데, 뭐 내 스킬이니······.
 “크아악!”
 다시 한 번 흑곰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잠시 후 녀석은 그대로 쓰러졌다.
 잡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직업, 은근히 마음에 든다. 물론 걸리는 게 상당히 많은 직업이지만 말이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
 
 아자! 레벨 업이다. 이번에는 6업인가? 흐흐. 이러다가는 순식간에 초고렙이 되겠다. 그만큼 레벨 업 속도는 작살난 것이다.
 후후!
 띠링.
 그때 미소를 짓고 있던 내 귓가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상쾌하게 울려 퍼졌다.
 어, 어라? 서, 설마······.
 “아, 아이템이다!”
 그렇다. 아이템인 것이다. 지금까지 게임하면서 단 한 번도 구경 못해 본 아이템이었다. 그 아이템이 흑곰에게서 떨어진 것이다.
 나는 죽어 버린 흑곰에게 한달음에 다가가 그대로 아이템 감정에 나섰다.
 
 ―흑곰의 웅담―
 먹으면 10분간 올 스텟 50 상승.
 
 이런 제길!
 뭐야? 이건 잡템류랑 비슷하잖아. 아니, 잡템류보다는 상위 같아 보이기는 한데 그래도 썩었다.
 기대한 내가 바보스럽다. 흑.
 그렇게 처음 먹은 아이템이 구리구리함에 좌절하고 있을 때, 내 등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혀, 형제여. 서, 설마······?”
 “······?”
 “프리스트였습니까?”
 “······.”
 “대답해 주십시오!”
 “그, 글쎄. 프리스트 지망생?”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성격이 개같으십니까?”
 “지금 나 욕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사실 형제의 성격이 정말로 개같으셔서.”
 빠득.
 그 말에 나는 주먹을 힘껏 쥔 채 녀석에게 다가갔다.
 이 자식이 은근슬쩍 나를 욕하고 있다.
 한편 그런 나를 본 가르는 뒤로 물러나고 있었지만, 내가 더 빨랐다.
 “넌 죽었어!”
 
 “흑흑.”
 흐느끼는 리치라니, 보는 내가 난감할 정도다.
 나에게 한 방 맞은 가르는 열심히 주저앉아 흐느꼈고, 그걸 본 난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난 폭력을 싫어(?)한다. 하지만 저 자식이 나를 폭력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만약에 저 자식이 내게 성격이 개 같으십니까? 라고 묻지만 않았어도 나같이 맑고 깨끗한 영혼이 이렇게 주먹을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직 저 자식이 매를 자초한 것이다.
 “흐흑.”
 “작작 처울고, 어서 이 이상한 곳을 탈출하는 방법이나 생각하자고.”
 “너무하십니다. 순수한 저는 타락했습니다.”
 “······.”
 어이없다.
 리치는 원래 타락한 존재 아닌가?
 생명의 법칙을 깨부수고 언데드가 되어 버린 리치 주제에 순수함을 찾고 있다니. 그리고 내가 뭘 타락하게 만들었다는 거냐?
 하아······. 고개를 저절로 젓게 만드는 놈이다.
 “또 맞으려면 울든가.”
 “······.”
 내 한마디에 조용해지는 가르 군.
 역시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이 슬픈 상황. 난 지적이고 싶은데. 크음.
 그나저나 어떻게 이곳을 벗어나지?
 일단 동굴 덕분에 추위에서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여기에 죽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사기꾼 작자도 잡아야 되고 게임도 해야 하고 레벨 업도 해야 되는데, 이런 이상한 곳에서 썩어 가고 있는 상황은 절대 피하고 싶다.
 “일단 마을을 찾는 게 어떨까요?”
 “오!”
 “마을이라면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을 겁니다.”
 “······!”
 그, 그렇다!
 마을!
 마을이라면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내가 처음 게임을 시작한 마을 블루케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문제는 돈, 그러니까 머니가 필요하다는 거다.
 물론 나에게도 한 가지 돈이 될 만한 게 있다. 그것은 가르가 내게 준 붉은색 사파이어. 하지만 이건 그 빌어먹을 사기꾼 작자를 잡기 위해 도둑 길드에 줄 물건이었다.
 하아, 난감하다. 돈을 어디서······.
 나는 문득 가르를 쳐다보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흐흐흐.”
 “뭐, 뭡니까?”
 나는 웃었다.
 그래, 잘 생각해 보자. 지금 내 주머니에 들어 있는 붉은색의 사파이어를 누가 주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정답!
 바로 가르다.
 가르가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목적 하에 나에게 바친 것이다.
 그렇다면!
 “가르, 뱉어라.”
 “무, 무슨 소리입니까?”
 “알면서.”
 “······.”
 “맞고 뱉을래, 조용히 뱉을래?”
 “저, 정말 무슨 말인지······.”
 “아, 이렇게 소통이 안 돼서야······.”
 “······?”
 “간단히 말해 주마. 보석, 영어로 주얼(Jewels). 언더스탠드?”
 “······.”
 나는 웃었다.
 어서 뱉으라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에 가르는 당황하는 듯싶다.
 솔직히 후드를 뒤집어써서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감이라는 게 있기에······.
 “어, 없습니다.”
 “정말?”
 “네!”
 “그럼 내가 아∼ 없군요, 하고 물러날 것 같아?”
 “······.”
 “만약에 뒤져서 나오면?”
 “저, 정말 없습니다. 마지막 남은 걸 드린 거라고요!”
 “하하하.”
 그래?
 나한테 준 보석이 마지막이었다고? 어디서 이런 생구라를 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가르에게 다가갔다.
 이런 나의 반응에 가르는 오히려 뒤로 한 발자국씩 물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동굴. 뒤로 물러나 봤자 소용없다.
 “가르야, 가르야.”
 “······.”
 “도망가 봤자 그게 그거란다.”
 “······.”
 “어서 어서 조용히 뱉어라.”
 “지, 진짜 없습니다!”
 “말로는 안 되는군.”
 덥석.
 그 말과 함께 나는 가르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런 다음 씩 웃었다.
 뒈지자!
 
 엉? 진짜 없네?
 가르를 벌거벗긴 채 후드를 뒤져 봤지만 보석은 나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가르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저, 정말 너무하십니다.”
 “아임 쏘리.”
 “없다고 했지 않습니까!”
 “진짜 없을 줄은······.”
 그럼 가르의 말대로 나에게 준 사파이어가 마지막 남은 유일한 보석이었나?
 이 자식은 리치 주제에 왜 이리 돈도 없는 거냐, 제길.
 나는 그렇게 속으로 푸념을 하면서 벗겨 놓은 후드를 던졌다. 개인적으로 앙상한 뼈마디를 보는 취미는 없기에.
 내가 후드를 돌려주자 가르는 당장 후드를 걸쳤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아, 난감하다. 난감해.
 가르가 보석만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제길, 그나저나 돈이 될 만한······.
 ······!
 그 순간 내 머리를 번쩍 지나가는 한 가지 생각.
 그렇다. 지난번 전직 시험 통과라고 사기친 그 작자가 내게 준 세 개의 아이템. 그때는 대충 집어넣고 왔는데, 지금에서야 기억이 났다.
 “그래, 비싼 걸 줬을 수도 있어.”
 나는 기대에 찬 채 그대로 아이템창을 열고, 곧바로 그 사기꾼 작자가 내게 준 세 개의 아이템을 확인했다.
 그런데 세 개 모두 스킬 북이었다.
 그것도 다크프리스트 전용 스킬 북.
 간단히 말해 돈 되기는 글렀다.
 하지만 뭐 꿩 대신 닭이라고 돈은 되지 않지만,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니까 그냥 넘어가 준다.
 그럼 일단 확인 들어가 볼까?
 
 ―다크 큐어―
 레벨 1.
 상대방을 랜덤하게 상태 이상 시킨다. 레벨이 오를수록 한 번에 여러 개가 동시에 걸린다.
 마나 소모: 140
 
 오호?
 다크 큐어라. 큐어랑은 정반대네. 역시 상대방에게 질병, 그러니까 독이라든가 기절, 수면, 빙결, 전기, 기타 등등을 일정 확률로 건다는 말이다.
 좋다. 많이 좋다. 뭐 마나가 상당히 많이 든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럼 다음으로 넘어갈까.
 
 ―다크 스트라이크―
 레벨 1.
 어둠의 구슬을 소환해 낸다. 그 어둠의 구슬은 막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공격력: 1,200
 마나 소모: 65
 
 오호? 이건 마법?
 근접 공격력이 아니다. 한마디로 마법 종류였다. 꽤나 흥미로운데. 그리고 마나 소모도 그럭저럭 적당하다. 그럼 마지막으로!
 
 ―익스트림―
 ?????
 
 ?????이라니!
 무슨 설명도 없고. 그냥 단순히 ?????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라고!
 나는 정말 황당했다. 기대를 갖고 스킬창을 봤더니 고작 나오는 게 ?????라니, 제길!
 “에잇, 눈 버렸다.”
 “형제여, 왜 그러십니까?”
 이런 내 모습을 본 가르는 묻자 난 그에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나저나 여기에만 있을 수 없으니 어떻게든 나가야 할 텐데······.”
 근데 문제가 있었다. 밖에는 눈보라만 더 강해지고 있는데 지금 이 동굴을 벗어나면 근처 마을을 찾기 전에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물론 마을이 있다는 보장도 하지 못하지만, 뭐 있기를 바라야 하나?
 
 “으윽.”
 얼마나 추웠으면 동굴 안에도 서서히 냉기가 침범하기 시작했다. 처음 도착했을 당시에는 그나마 따뜻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동굴 안도 얼음 동굴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가르가 불 마법을 생성하지 않았더라면 동굴 안에서도 얼어 죽었을 것이다.
 “저는 안 춥습니다.”
 “지금 약 올려?”
 “아, 아닙니다.”
 “······.”
 저 자식을 콰악!
 분명 나를 약 올린 거다. 왜 지금 상황에서는 저는 안 춥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느냔 말이다.
 예전 같아서는 당장 일어나서 밟았겠지만 지금은 온몸이 얼어서 움직이는 것도 싫다.
 “야, 가르.”
 “······?”
 “온도 좀 높여라. 와 이리 춥노.”
 “알겠습니다!”
 가르는 내 말에 당장 화계 마법을 증폭했고, 그제야 나는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그러자 저절로 눈이 스르륵 감겨 왔다.
 잠까지 온다.
 하암.
 그렇게 나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따뜻함 속에서 잠이 들려고 할 때였다.
 “누, 누구 있습니까?”
 그 순간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중후한 목소리!
 그, 그건······!
 “이, 있어요!”
 “시, 실례 좀 해도 될까요?”
 “많이 실례해도 돼요!”
 “······.”
 난 활기차게 말했다.
 왜냐하면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 근처에 마을이 있다는 것!
 순간 내 허락이 떨어지게 무섭게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략 40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그 정도의 나이에 보기만 해도 두꺼워 보이는 옷을 두텁게 껴입은 남자였다.
 그 뿐만 아니라 손에는 장갑, 그리고 꼭꼭 눌러 쓴 모자까지 완벽히 알래스카인의 복장이다.
 정확히는 알레스카인 판타지 버전?
 
 “휴우, 정말 다행입니다. 이곳에서 사람을 만나다니.”
 “저도 정말 반가워요!”
 말 그대로 정말 반가웠다.
 어떻게 근처 마을을 찾을까 하고 걱정하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사람을 만나다니.
 한편 동굴 안에 들어온 그 남자가 내 복장을 보더니 물었다.
 “외지인이십니까?”
 “아, 뭐······.”
 “이곳은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인데 어떻게?”
 “그게······.”
 어떤 빌어먹을 리치 군 때문에 이상한 데로 텔레포트 된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냥 우연치 않게······.”
 “정말 외지인이라니 처음 봤습니다. 저희 마을에 텔레포트 마법진도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그 마법진을 통해서 그 누구도 오지 않았는데 정말 반갑습니다.”
 “아, 네.”
 ······그러니까 내가 이 정체불명의 동네에 처음으로 워프한 외지인이라는 건가?
 가르 자식, 어느 의미에서는 정말 신비로운 놈이다.
 
 그렇게 우리는 엄청난 눈보라가 멈추자 드디어 동굴을 나설 수 있었다.
 당연히 목적지는 그 남자의 마을. 마을의 이름은 네스카였다.
 그리 크지 않은 소규모 마을에 속한다.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있을 거 없을 거 다 있단다.
 터벅터벅.
 우리는 발목 깊이 파고 들어가는 눈을 무시하고 열심히 걸었다.
 눈보라가 멈췄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눈이 쌓인 상태여서 걷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다. 특히 가르는 더욱 힘들어했다. 왜냐하면 쟤는 저래 봬도 마법사인 것이다.
 한편 그에 반해 자신을 라칸이라고 소개한 중년 남자는 성큼성큼 잘도 걷고 있었다. 아주 능숙한 모습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역시 이곳에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다르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아, 네.”
 어느새 앞장서서 가던 그 남자가 나와 가르를 돌아보며 말했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안 그래도 서서히 힘들어지는 와중이었는데, 저런 달콤한 말은 내게 힘을 준다.
 그렇게 약 10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얼음의 마을.
 물론 내가 여기서 얼음의 마을이라고 칭한 건 눈보라 때문에 곳곳에 얼음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저희 마을입니다.”
 “아.”
 그때 라칸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고, 난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눈밭을 벗어난다!
 
 
 
 
 
 6장 설인
 
 
 
 
 
 
 
 “······.”
 “죄송합니다.”
 “저, 저기 다시 한 번만······.”
 “지금 텔레포트 마법진은 실행이 불가능합니다.”
 “왜, 왜요?”
 “그건 설인이라는 몬스터가 강력한 얼음의 결계로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이제 당장 처음 시작한 마을로 돌아갈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내게 들려온 절망적인 소식. 그것은 바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게 뜻하는 바는, 난 다시는 블루케인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
 “물론 단 하나, 텔레포트 마법진을 활성화하는 방법은 있습니다만······.”
 “뭐, 뭔데요?!”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절망에 빠져 있던 내게 정말 달콤한 유혹의 한마디였다.
 “설인을 처리하시는 겁니다.”
 “······.”
 
 ―퀘스트―
 설인을 처치하라. 마나의 흐름을 끊는 설인을 처지하고 텔레포트 마법진을 가동시켜라.
 보상: 설산 마을 텔레포트 마법진 무료 이용, 자신의 무기에 얼음 속성 개조 강화, 10골드.
 
 내 앞에 뜬 창.
 그것은 퀘스트라는 단어였다.
 퀘스트. 한마디로 임무다. 이 임무를 달성하면 특정 아이템을 받거나 돈을 받는다.
 여기서 퀘스트는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처음에는 일반 퀘스트.
 이것은 모든 유저가 할 수 있는 퀘스트로 손쉽게 부여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용병 길드에 들어오는 모든 의뢰들이 일반 퀘스트에 속한다.
 그리고 에픽 퀘스트. 이것은 단 한 명만이 받을 수 있었다.
 여러 번 반복되는 퀘스트가 아닌 단 한 번 깨고 나면 다시는 발동되지 않는 퀘스트다. 특히 에픽 퀘스트의 경우는 보상이 작살이기 때문에 너도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문제는 난이도가 꽤 높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에픽 퀘스트가 내게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빵빵한 보상을 들고.
 일단 무료 텔레포트는 별것 아니었지만, 그 뒤에 따르는 무기에 얼음 속성 개조······. 그것이 뜻하는 바는 내 울트라 초강력 초보자 메이스에 맹독뿐만 아니라 얼음 속성까지 담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일정 확률로 빙결이나 중독에 걸린다.
 그리고 10골드의 돈. 이것이 대박이었다.
 에피리 월드에는 나켄, 주리, 골드의 총 세 가지 화폐 단위가 있다.
 여기서 100나켄이 1주리이고, 100주리가 1골드다.
 참고로 10나켄만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정도로 꽤나 큰 액수라는 거다. 그런데 10골드라면······!
 
 ―하시겠습니까?―
 
 그때 퀘스트 알림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외쳤다.
 “당연히요!”
 
 ―퀘스트를 받으셨습니다.―
 
 띠링.
 퀘스트를 받았다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나는 눈을 이글이글 빛냈다.
 설인이든 뭐든 갈아 버리겠어!
 
 “······으아악!”
 나는 절규했다.
 이럴 수가!
 잃어버렸다! 지도를 말이다.
 마을 촌장이라는 할아버지가 내게 준 지도 한 장. 그 지도는 설인의 서식지에 가는 지도로 아주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는 지도였다.
 그런데 그런 지도를 잃어버렸다.
 너무 열심히 눈을 파헤치고 다니다가 그만 실수로 지도를 놓쳐 버린 것이다. 지도는 눈보라에 휩쓸려 훠이훠이 날아가셨다.
 “······.”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다.
 춥다. 너무 춥다.
 얼음 마을에서 분명 엄청나게 두꺼운 옷을 빌려 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보라는 멈출 생각을 안 하고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도 그 설인이라는 괴물 몬스터에 가까이 왔다는 증거였기 때문에 감사하기는 한데, 문제는 정확한 방향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기도하는 겁니다.”
 “······.”
 “기도를 하면 신의 축복으로 이런 추위는 단숨에 사라질 겁니다.”
 “저, 정말?”
 “그렇습니다, 형제여. 기도합시다. 할렐루야!”
 “······.”
 가르가 내게 말했다.
 정말 기도하면 안 추워치는 거야? 정말? 정말?
 난 무지무지 의심스러웠지만 너무나도 추운 환경 탓인지 판단력이 흐려졌다. 나는 두 손을 모은 채 가르의 말대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덜 춥게 해 주소서.’
 나는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얼어 죽는 건 싫었으니까. 그런데······.
 “이 개자식아, 더 춥잖아!”
 “우억!”
 퍼퍼퍽!
 “자, 잠깐 말······.”
 “괜히 이상한 짓만 시키고 있어!”
 “우억!”
 그렇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춥다. 그런데 눈을 감고 가만히 쭈그려 앉아 있었으니 더 추워지는 건 당연지사.
 가르의 사탕발림에 속아서 잠시 망각했다.
 한편 나에게 어퍼컷을 맞은 가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미,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믿음?”
 “그렇습니다, 믿음. 믿음, 믿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
 “신의 기적을 본 적 있습니까?”
 “없는데.”
 “그게 바로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
 “저는 봤습니다, 신의 기적을. 그렇습니다. 멋진 신의 기적! 신의 기적이라면 이런 눈보라 정도는 당장 사라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이냐?
 지금 허리까지 수북이 쌓인 눈을 없앨 수 있다고?
 신의 기적이면?
 “없애 봐.”
 “네?”
 “신의 기적으로 이 쌓인 눈들을 없애 보라고.”
 “······.”
 “구라지?”
 “아, 아닙니다. 신의 기적은 진짜 있습니다.”
 “그럼 해 봐.”
 “······어쩔 수 없군요.”
 그 말과 함께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걸로 추정되는 리치.
 어쩔 수 없다. 뼈다귀만 있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고개까지 숙인 채 열심히 신의 기적을 비는 가르. 그렇게 약 10분이 흘렀다.
 하지만 눈보라는 더욱 강해지기만 했고, 계속 내리는 눈은 허리를 넘어 가슴까지 올라올 예정으로 계시다.
 나는 열심히 기도를 하는 가르 군에게 물었다.
 “가르, 신의 기적은 언제 일어나?”
 “출장 가셨습니다.”
 “······.”
 “신께서 출장을 가셨군요.”
 “······.”
 “신은 모든 존재를 보살피는 만능의 존재, 바쁘신 분입니다.”
 “······.”
 으악! 이 자식이! 죽으려고!
 뭐? 신이 출장을 가?
 무슨 안마 출장사냐? 허!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하다.
 내가 말했다.
 “핑계는 다 한 거야?”
 “피, 핑계가 아닙니다!”
 “그럼 신이라는 분이 바빠서 기적을 행하지 못하신다고?”
 “그, 그렇습니다. 그분은 만능의 존재, 되게 바쁘십니다.”
 이 자식, 안 그래도 추워 죽겠는데 이런 썰렁한 개그 따위나 하다니!
 제길, 저 자식 말은 그냥 생 까야 된다.
 
 “으윽.”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
 계속해서 눈보라가 심해지는 걸로 봐서는 설인이라는 분에게 제대로 가는 것 같긴 한데, 지도가 없어서 난감하다.
 아니, 지도가 있다 하더라도 주변에는 눈밖에 없으니 어차피 제대로 보기도 힘들 것이다.
 “가르, 나 이대로 가면 얼어 죽겠다.”
 말 그대로 이대로 가면 얼어 죽을 것 같았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설인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아주 난감한 상황이다.
 차라리 설인 잡다가 죽으면 좀 멋있기라도 할 텐데, 얼어 죽으면 진짜 아니다.
 한편 내 말을 들은 리치는 즉각 반응을 보였다.
 “잘 묻어 드리겠습니다.”
 “······.”
 “아니면 저랑 같은 리치로 부활시켜 드릴까요?”
 “그 말은, 나보고 뒈지라는 거냐?”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의도······.”
 “······.”
 저 자식, 분명히 있었다. 말속에 뼈가 있다고. 내가 얼어 죽겠다고 하니까 잘 묻어 준다고 했다.
 그게 뜻하는 바는······.
 “가르, 많이 컸구나.”
 “저, 정말 결백합니다. 순진한 리치를 그런 식으로 몰아가지 마십시오.”
 자기 입으로 지가 순수하다고 말하는 리치.
 하아, 어이없다.
 그래, 참자. 이런 곳에서 괜히 힘 뺐다가는 나에게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내가 그렇게 나 자신을 세뇌하면서 묵묵히 걸어갈 때였다.
 “형제여, 동굴입니다!”
 “뭐, 뭐?”
 그때 갑자기 가르가 그렇게 말했고, 난 그 말에 눈을 번쩍 떴다.
 동굴이라니. 이런 눈보라가 치는 정체불명의 지역에 동굴이라니, 그게 뜻하는 바는······!
 “설인 동굴?”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추위 때문에 약간 전투력이 감소되기는 했지만, 신스킬도 있고 가르도 있어서 해 볼 만은 하다.
 그런데 설인 자식 레벨이 얼마지?
 몰라, 일단 가 보자!
 가르와 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설인이라는 자식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외출 중이 아닐까요?”
 “이런 날?”
 “제가 아는 설인은 이런 날을 되게 좋아하는 걸로 압니다, 형제여.”
 “흐음.”
 그런가?
 나야 설인에 대해서는 솔직히 모른다. 몇 레벨인지도 모르는데.
 그나저나 가르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한번 물어볼까?
 “야, 가르.”
 “······?”
 “이 설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모든 정보를 뱉어 봐.”
 “흐음, 간단히 말씀드리면 좀 강합니다.”
 “좀?”
 “네, 한 400레벨 정도 됩니다.”
 “······.”
 400······?
 으아악! 마, 말도 안 돼!
 나는 제깟 게 높아 봤자 200 정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400이라니!
 그것도 보스급 몬스터라면 일반 몬스터 400이랑은 격차가 심하다. 예를 들어 보스급 몬스터가 400이라 치면 일반 몬스터의 한 600 정도 되는 레벨인 것이다.
 “가르, 나 지금 후퇴하고 싶긴 한데.”
 쿠우웅!
 쿠우웅!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려오는 거대한 발소리.
 이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대충 추측할 수 있었다. 나는 왜 이리 재수가 없는 걸까?
 처음부터 지금까지 왜 이렇게 재수 없는 일만 잔뜩 일어나는지, 그 신이라는 작자가 계셨다면 물어보고 싶다.
 “가르.”
 “······?”
 “넌 뒈져도 보석을 감춰 놨으면 부활 가능하지?”
 “네, 그렇습니다, 형제여.”
 “그러면 나중에 보자.”
 난 미리 작별 인사를 했다.
 어쩐지 보상이 아름답다고 했다. 제길, 이런 퀘스트였으니 당연히 보상이 아름다울 수밖에.
 나는 죽음을 각오했지만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미 패배니까. 그리고 가르와 내 신스킬들을 믿는다.
 그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설인.
 183센티미터의 내 키에 두 배 정도에 달하는 큰 키에 오우거 따위는 가볍게 젖히는 엄청나게 육중한 몸, 그리고 온몸 가득한 하얀색의 털까지.
 확실히 설인 아저씨다.
 “저 아저씨 잡으면 비공식 랭킹 1위 되겠다.”
 말 그대로 저 녀석을 잡으면 순식간에 1위가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과연 잡을 수나 있을까?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가르, 미리 말해 두는데 얼음 마법은 아니다.”
 흠칫.
 “······설마 얼음 마법 준비 중이었냐?”
 “그, 그런데요, 형제여.”
 “야, 이 등신아! 설인한테 얼음 마법을 사용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
 “그, 그럼······.”
 “정말 모르냐?”
 “네, 형제여.”
 “······.”
 아, 머리 아프다.
 이 자식 돌대가리인지는 이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대충 얼음 하면 떠오르는 게 불 아니냐?
 하아, 제길. 그래, 마음씨 착한 내가 참자.
 “불 마법.”
 “아! 좋은 정보군요.”
 “······.”
 참으로 어이가 없다.
 내가 말한 게 어딜 봐서 좋은 정보에 포함된다는 건지 진정으로 궁금하다.
 쿠웅!
 쿠우웅.
 그때 어느새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온 설인 아저씨가 우리를 보더니 더욱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주문을 외웠다.
 “다크 스트라이크!”
 마법과도 비슷한 종류의 기술!
 그 신기술이 발동된 것이다.
 내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색의 구체가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했고, 잠시 후 엄청난 속도로 설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크앙!”
 설인의 짧은 비명과 함께 폭발음이 울려 퍼지자, 나는 곧바로 내 울트라 초보자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크 블레스, 다크 큐어!”
 그 상태로 모든 능력치를 하향시키는 다크 블레스와 일정한 확률로 질병을 유발하는 다크 큐어.
 설인은 모든 능력치 다운과 더불어 상태 이상에 걸렸다.
 그 상태 이상이란 바로 수면.
 좋았어!
 나는 그대로 내 기에 힘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다크 스트림!”
 끼이익!
 내 주문이 끝나자마자 어둠의 악령들이 소환돼, 더 이상 초보자 무기라 부를 수 없는 맹독의 초보자 무기에 들어갔고, 나는 마지막으로 내 몸에 한 가지 버프 마법을 걸었다.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100 상승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이전에 잡은 흑곰의 웅단까지!
 완전 난리 났다.
 “으악! 죽기 싫어!”
 나는 그 말과 함께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설인에게 달려들었다.
 모 아니면 도다! 살아남겠어!
 퍼억!
 나는 그대로 메이스를 휘둘러 설인의 얼굴을 가격했다. 순간, 설인이 눈을 번쩍 떴다. 그러더니······.
 슈우욱!
 “으악!”
 엄청난 속도로 2미터 정도 되는 몽둥이를 휘둘렀다.
 저 몽둥이는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
 정말 지대 난감이다.
 “형제여, 고개를 숙이소서! 파이어 필드!”
 그때 가르의 음성이 들려왔고, 나는 그 음성에 따라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와 함께 들려오는 소리.
 콰앙!
 “크앙!”
 또다시 설인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좋았어, 기회다!
 난 가르의 공격에 비명을 질러 대는 설인을 향해 그대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쿵!
 그때 중독 상태를 알리는 보라색의 표시. 초당 1,000을 넘어가는 무지막지한 데미지였다.
 나는 씨익 웃었다.
 “다 죽었어!”
 
 헉, 헉!
 나는 이리저리 피하면서 설인의 단점인 느린 스피드를 이용해 엄청 팼다.
 그런데 독에 걸린 상태면서도 이 자식은 쓰러지지도 않는다. 정말 체력 하나는 최강이다.
 그렇게 내가 한참 동안 메이스로 갈겨 대면서 녀석이 쓰러지기만을 바라고 있을 때였다.
 퍼억!
 “······크악!”
 녀석이 무심코 휘두른 몽둥이가 스쳐 지나간 순간 그대로 내 오른쪽 어깨를 부숴 버렸다.
 제길!
 “너무 불공평하잖아.”
 누구는 죽도록 공격해도 줄어드는 데미지가 미미한데, 누구는 대충 한 번 휘둘렸을 뿐인데 상대를 죽일 뻔했다.
 “형제여! 괜찮습니까?”
 한편 탈골된 내 오른쪽 어깨를 본 가르가 다급히 다가오려고 하자, 나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공격!”
 “······.”
 “공격만이 우리의 살 길이야, 가르!”
 “알겠습니다.”
 내 말에 가르는 쉴 새 없이 파이어 볼트를 날렸다.
 젠장, 무슨 방법이 없나. 이대로 가면 정말 뒈진다. 물론 처음부터 목숨을 걸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제길, 무슨 비장의 무기라도······.
 
 띠링!
 ―익스트림을 사용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엥? 익스트림?
 그건 그 사기꾼 작자에게 받은 스킬 북 중 유일하게 ????로 표시된 스킬?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난 당장 스킬창을 확인했다.
 
 ―익스트림―
 레벨 1.
 고통을 느끼면 저절로 익힐 수 있다. 상대방의 영혼을 일정 확률로 파괴한다. 하지만 파괴하지 못할 시 자신의 영혼이 파괴된다.
 파괴할 확률 20%, 파괴당할 확률 80%.
 마나 소모: 모든 마나.
 
 익스트림!
 영혼 파괴······?
 그 말은 한 방에 뻥하고 죽일 수 있다는 거냐? 물론 퍼센트 데미지가 절대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
 상대를 죽일 확률은 20퍼센트인데, 내가 파괴될 확률은 80퍼센트라니. 물론 레벨이 올라가면 확률도 올라가기는 하지만 지금 저것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저것조차도 너무나 감사할 뿐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면 재미있는 도박을 행한 뒤 죽는 게 훨씬 나으니까.
 “가르, 물러서!”
 “······?”
 “난 괜찮아.”
 나는 내 앞에서 마법사 주제에 열심히 설인과 원맨쇼를 하는 가르를 불렀다.
 익스트림을 사용한다. 이대로는 무리다. 제발 20퍼센트의 확률이 걸리기를······.
 “익스트림!”
 파앗!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주변이 어둠침침해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시뮬레이션은?
 갑자기 이상하게 변해 버린 주변의 모습에 나는 너무나도 당황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가르나 저 설인에게도 해당되는 상황일 거다.
 그 순간.
 파아앗!
 “컥······?”
 온몸이 부서지는 느낌. 마치 영혼조차도 갈가리 찢겨 나가는 느낌이다.
 제길······ 실패인가?
 그렇게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였다.
 “크아아악!”
 설인의 엄청난 비명이 들려왔다.
 쿠웅!
 그리고 뒤이어 녀석이 쓰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엥?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어라? 그러고 보니 갑자기 고통이 사라졌다??
 “오, 형제여, 무슨 마법을 쓰신 겁니까?”
 한편 나의 모습을 보던 가르가 내게 다가오면서 물었다. 난 그 물음에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그, 글쎄. 그런데 성공한 거야?”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성공한 것 같은데, 왜 성공한 사람도 아프냐는 거다.
 참으로 희한한 상황이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
 
 큭! 19업??
 마, 말도 안 돼! 아무리 대장급 몬스터라고 해도 19업이라니! 그럼 내 레벨이······?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58
 HP/MP: 1020/820
 힘: 181(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84(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지능: 44(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49(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125
 
 ······너무나도 당황스럽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이라니, 이 정도면 공식 랭킹 1위 정도는 그냥 넘어가겠다.
 어찌 됐든 난 스텟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58
 HP/MP: 1,020/820
 힘: 281(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109(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지능: 44(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49(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0
 
 스텟이 상당히 힘에 몰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파괴력이 강한 것을 좋아하는 관계로 그리 상관은 없을 듯싶다.
 그때 또다시 들려오는 음성.
 
 ―익스트림을 사용하시려면 한 달이 지나야 합니다.―
 
 엥? 하, 한 달?
 뭐, 뭐야? 그런 콩깍지 시뮬레이션은! 한 달이라니!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이란다. 허어, 어이없다. 100퍼센트 성공하는 기술도 아니고, 겨우 20퍼센트 성공 기술 주제에 말이다.
 물론 ‘영혼 파괴’라는 사기적인 스킬인 건 맞지만 말이다.
 그 순간 흥분해 있던 내 눈에 무언가가 반짝이는 물건이 보였다.
 설마?
 나는 설마 하면서 그 반짝이는 물체가 떨어져 있는 설인의 시체 쪽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한 가지 아이템이 떨어져 있었다.
 진짜 아이템이었다.
 게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발견한 제대로 된 아이템이다!
 “흐악!”
 나는 이상한 비명과 함께 그 반지로 추정되는 물건을 대뜸 집었다.
 그리고는 정보 확인!
 
 ―?????―
 감정사에게 가셔야 알 수 있습니다.
 
 엥······? 감정사?
 그게 말하는 바는······! 에픽 이상이다!
 에피리 월드에는 총 다섯 개의 아이템 등급이 있다.
 제일 낮은 등급은 노멀, 이건 일반 상점에서도 가볍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그다음이 매직. 노멀보다 약간 더 좋은 능력을 가진 아이템.
 그다음이 에픽인데, 여기서부터는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었다. 잘난 대장장이나 강한 몹들한테 떨어지는 아이템이다.
 그다음 전설, 이것은 말 다했다. 지대로 짱 먹는 아이템이다.
 마지막으로 신급, 이건 더 짱 먹어라 아이템이다.
 요약 정리 끝.
 어찌 됐든 이 아이템이 에픽급 이상이라는 건 확실하다. 흐흐흐!
 “심봤다!”
 말 그대로 심봤다. 감격이다. 흐흑!
 다음 순간 음성이 한 번 더 들려왔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7장 예은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내가 이렇게 미친 듯이 웃는 이유는 에피리 월드 사이트를 열어 본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에피리 월드 사이트를 보면 웃을 수밖에 없다.
 특히 다른 건 별 상관없고, 오직 공식 랭킹 부분. 이 부분이 중요했다.
 
 ―1위: 타르마(레벨41)―
 
 그렇다! 공식 랭킹 1위보다 레벨이 17이나 높은 것이다. 물론 나처럼 공식 랭킹을 등록하지 않고 묵묵히 사냥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5위 안에는 100퍼센트 드는 것이었다.
 “그 설인 아저씨의 힘이 컸지.”
 그 설인 아저씨 덕택에 아주 열심히 업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익스트림이라는 영혼 파괴라는 스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근데 약간 아이러니한 건 한 번 쓰면 한 달 봉인이라니, 이 무슨 슬프고 어이없는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뭐 어찌 됐든 게임을 시작한 이후로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화려한 레벨 업을 이룰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를 이렇게 만든 그 사기꾼 작자에게 살짝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찾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꼭 찾아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다. 도대체 내가 왜 어쌔신들에게 습격을 당해야 하는 건지 물어봐야 한다는 거다.
 “오랜만에 텔레비전이나 좀 볼까?”
 난 오랫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는 걸 상기해 내고는 손을 리모컨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요새 한동안 에피리 월드에 빠져서 학교도 제대로 안 갔는데,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부모님들이 세계 여행을 좋아하셔서 다행이지, 만약에 안 그랬다면 난 벌써 죽었다. 다량 결석으로 말이다.
 띠잉.
 텔레비전이 켜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내 시선은 화면으로 향했다.
 
 ―역시 예은 양은 너무나도 예뻐요!―
 ―가, 감사합니다.―
 ―겸손하고 착하시기까지.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건 당연히 이유가 있는 거군요!―
 
 텔레비전 화면 속에는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한 명은 리포터고, 한 명은 가수다.
 이름 차예은.
 나이 17세, 참고로 나보다 한 살 어리다.
 엄청난 미모에 일설에는 인간이 아니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모든 연예인을 통틀어 짱 먹었다.
 직업은 가수.
 키는 167센티미터.
 가창력 : 작살. 노래 정말 잘 부른다. 입이 딱 벌어지게 말이다.
 그리고 집안도 상당히 부유하다.
 물론 악플 중에는 예은의 집안이 너무 빵빵해서 그 백그라운드를 이용해 들어왔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그건 한마디로 개소리다.
 어차피 가수나 탤런트는 미모만 되어도 거의 합격인 세상이었다.
 그런데 예은은 미모뿐만 아니라 확실한 가창력도 가지고 있다.
 모든 음악 평론가가 인정할 정도로 말이다.
 여기서 잠깐. 내가 왜 이리 예은에 대한 정보를 잘 아느냐 하면 우리 반 녀석들 덕분이다.
 사실 예은의 인기는 거의 모든 남자들을 사로잡을 정도였다.
 특히 우리 학교는 남학교이다 보니 그런 게 더 심하다. 그래서 반 녀석들은 거의 매일 매일 저분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물론 나도 남자다 보니 본능적으로 싫지는 않지만, 저렇게 버서커처럼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
 “다시 게임이나 하러 갈까? 할 일이 많이 있으니까.”
 난 그 말을 끝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흐음.
 접속을 하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가르의 모습이었다.
 내가 블루케인에 있는 마을에서 로그아웃을 한 관계로 지금 가르는 여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 중이었다.
 그런데 차마 보기 민망했다.
 어디서 뼈다귀만 남은 자식이 두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이라니, 정말 할 말 없게 만든다.
 뭐 그래도 남의 종교 생활을 방해하는 취미는 없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곁에 있던 침대에 앉았고, 가르는 계속해서 기도 중이었다.
 내가 왔으면 눈치라도 채야지,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기도를 하다니······.
 쩝, 그래! 기다려 주자.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난 열심히 침대에서 뒹굴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가르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이 자식, 설마 조는 거 아니야?”
 교묘한 위장술이 있다.
 그것은 기도하는 척하면서 처자는 것이었다.
 왠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난 그런 생각이 들자, 가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 가르의 입이 열렸다.
 “주여, 제가 아는 형제가 난폭합니다. 사악하고 개같은 성격에 쓰레기같은 성미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
 “제발 그 형제를 가엽게 여기시고 신의 기적을!”
 설마······ 나?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나는 방금 가르가 기도한 내용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아니다. 설마 나이겠는가? 나같이 청렴결백한 프리스트를 두고 그런 어이없는 기도를 하겠는가.
 그럼 누구?
 ······없다.
 지금 가르의 옆에 있는 형제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내가 사악하고 개같은 성격에 쓰레기같은 성미?
 나는 웃었다. 그리고······.
 “가르야.”
 “헉! 혀, 형제여. 어, 언제 오셨습니까?”
 목소리가 급격히 떨리고 있다.
 나 맞구나. 난 설마 했다. 그런데 사실이다.
 저 녀석은 나를 그딴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절대로 오해입니다.”
 “뭐가?”
 “······.”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지가 알아서 말하고 있다.
 그래, 가르야. 사악하고 개같은 성격에 쓰레기같은 성미를 가진 형제여서 미안하다.
 “넌 죽었어!”
 “주, 주여! 기, 기적을!”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찾도록.”
 “으아악! 사, 살려······.”
 
 “휴우.”
 나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모르게 낭만적이고 멋지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를 깨는 흐느끼는 소리가 있다.
 “흐흑.”
 “조용히 하지, 가르 군.”
 “······.”
 내 한마디에 가르는 금세 조용해졌다.
 내가 말했다.
 “난 말이야, 순수해.”
 “순수가 얼어 죽었습니다.”
 “더 맞고 싶냐?”
 “아, 아닙니다.”
 “······.”
 저 자식이 말끝마다 태클이야.
 나는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순수한 사람일수록 화가 나면 무서운 법이야. 그러니 제발 순수한 나를 내버려 둬, 가르.”
 “······.”
 “너 방금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
 “아, 아닙니다!”
 내 기습적인 질문에 가르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그런 생각 했군, 저 자식. 하지만 물증이 없다. 그래, 이번만 넘어가자.
 
 다시 여관 밖으로 나온 가르와 나는 나오자마자 도둑 길드를 찾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없었다.
 물론 도둑 길드라는 이름 때문에 몰래 서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분명 마을에 한 개 정도는 공식 도둑 길드라는 게 있을 텐데?
 그렇게 한참을 찾았지만, 끝내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던 경비병 아저씨에게 묻기로 했다.
 “저기요.”
 “왜 그러나?”
 40대 중반 정도 되는 나이에 덥수룩한 턱수염을 기른 경비병 아저씨였다.
 그런데 수염이 멋지다기보다는 왠지 지저분해 보였다.
 “이 마을에 도둑 길드는 없나요?”
 “혹시 도둑으로 전직하려는 건가? 그럼 바칸을 찾아가면 되네.”
 “아, 아뇨. 도둑으로 전직하려는 게 아니라 정보 때문에 도둑 길드를 찾아가 봐야 하거든요.”
 “흐음, 그런가? 그럼 좀 난감하겠네. 여기는 없네.”
 “······네?”
 “블루케인에는 도둑 길드가 없어. 도둑 길드를 찾고 싶으면 대도시 그랜드 크룬으로 가야 한다네.”
 “······!”
 마, 말도 안 돼!
 없다고? 뭐 때문에 생고생해서 이곳에 왔는데, 없다니! 으아악!
 사실 내가 이렇게 절망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간단히 워프 해서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자신이 들르지 않았던 마을은 워프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걸어서 그랜드 크룬까지 가야 된다는 소리다.
 으아악!
 
 어쩔 수 없지만 걸어서 그랜드 크룬까지 가야 했다.
 바로 옆에 7서클 마법사를 놔두고 걸어가야 하다니, 이런 어이없는 일이······.
 나는 그렇게 푸념을 하면서 블루케인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입구에 모여 있는, 금방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초보 유저들이다.
 그렇게 초보 지역을 지나 이제는 약 20대 레벨들이 서식하는 오크존에 들어왔다. 이곳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사냥 중이어서 굳이 오크들을 잡지 않아도 파티 사냥하는 사람들이 잡고 있으니 이동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야, 가르.”
 “······?”
 “너 혹시 친척 있냐?”
 “무슨 말씀이신지?”
 “저기 봐.”
 “······.”
 내가 가리킨 곳에는 가르와 마찬가지로 긴 후드로 온몸과 얼굴을 가린 유저 한 명이 있었다.
 보통 마법사들이 후드를 많이 하고 다니지만 저렇게까지 얼굴을 가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저 유저는 얼굴부터 몸까지 다 가리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내 옆에 있는 가르 군이 생각난 것이다.
 “없는데요.”
 “그래?”
 “네.”
 우리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이동을 하려고 할 때였다.
 “꺅!”
 너무나도 청아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그냥 비명소리도 아니고 청아한 비명소리라니, 이런 황당한 상황이······. 그만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거다.
 아 참, 이게 아니고 그 비명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가르의 친척으로 오인한 그 후드맨(?)이었다.
 그럼 여자?
 한편 그 후드맨이 오크 녀석에게 도끼질을 당할 위기에 있었기에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동했다.
 퍽!
 그 순간 내 오른 주먹이 오크의 배에 꽂혔다.
 나는 오크를 보고 순간 씨익 웃었다.
 그리고······.
 “아다다다!”
 “크아아악!”
 나는 두 주먹을 번갈아 가면서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오크의 배를 가격했다.
 그렇게 약 2분 후.
 “꾸에엑!”
 오크는 비명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나 버렸고, 나는 오크가 사라지자 심호흡을 하면서 주먹을 내려놓았다.
 “휴우.”
 “고, 고맙습니다.”
 그때 내 등 뒤에서 후드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목소리다. 그런데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뭐, 내 착각인가?
 어찌 됐든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는 후드맨을 보고 말했다.
 “아닙니다. 뭐, 오크 한 마리 정도야.”
 “아, 아뇨. 너무 감사해요. 하마터면 그랜드 크룬으로 가는 길에 죽을 뻔했어요. 그쪽이 아니었다면요.”
 “그랜드 크룬?”
 “아, 네. 에픽 퀘스트를 받았는데 그랜드 크룬으로 가라고 해서요.”
 “흐음······.”
 나는 그 말에 손으로 턱을 잡았다.
 그랜드 크룬은 4대 대도시에 속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도시를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제법 강한 몬스터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런데 오크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실력으로 간다는 건 내가 생각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나저나 무투가세요?”
 그때 그 여자가 내게 그렇게 묻자, 나는 그 말에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말했다.
 “(다크) 프리스트입니다.”
 “······.”
 뭐, 뭐야? 이 분위기는?
 후드로 얼굴을 가린 탓에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 구리구리한 분위기에 걸맞은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구리구리한 분위기란 ‘말도 안 돼!’라는 듯한 분위기다.
 사실 말이 좀 안 되기는 하다. 프리스트가 주먹으로 오크를 박살 냈으니까.
 “그, 그렇군요.”
 후드맨이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분, 본능적으로 마음에 든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마음에 든다 이 말이다.
 “저기, 괜찮으시면 저랑 같이 그랜드 크룬으로 가실래요?”
 “저, 정말요?”
 “네. 어차피 저도 갈 예정이었으니까요.”
 “고, 고마워요.”
 내 말에 그 후드맨은 고개를 푹 숙였다.
 흐음, 왠지 얼굴도 예쁠 것 같은데. 아니, 목소리가 너무 예쁘면 얼굴은 별로라던데. 뭐, 상관있나? 그런데 정말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란 말이야.
 “아 참, 실례를.”
 그 순간 후드맨이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와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뚜렷한 이목구비······.
 한마디로 보는 사람 넋 빠지게 아름다운 미소녀였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다. 아니, 봤다.
 “차예은이라고 해요.”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차예은.
 모든 남자들의 아이돌이자 꿈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소녀.
 엄청나게 뛰어난 가창력과 너무나도 완벽한 외모로 가히 인간이 아닐 거라는 추측마저 돌고 있는 그녀의 이름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후드맨(?)이었다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다.
 “오빠는 왜 그랜드 크룬에 가세요?”
 어느새 사람들 눈 때문에 다시 후드를 뒤집어쓴 채 내게 말을 거는 예은이.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그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으아악!
 그런데 주변의 시선이 약간 이상하다.
 나만 빼고 두 명 다 후드를 얼굴까지 가리고 있었으니까. 뭐, 별 상관없나?
 난 예은의 질문에 대답했다.
 “도둑 길드 때문에.”
 “도둑 길드요?”
 “응, 알아볼 정보가 있어서.”
 “아아!”
 내 말에 예은은 탄성을 질렀다.
 으악! 이게 꿈이냐 생시냐!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예은이 나보고 오빠라고 부르고, 나는 말을 놓는 데다가 다정하게 예은이라고 부르고 있다니······.
 물론 말을 놓게 된 것은 예은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와 예은은 이런저런 잡담을 하면서 그랜드 크룬을 향해 걸어갔다. 사실 그랜드 크룬은 한 며칠 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거리에 있었다.
 물론 중간에 작은 마을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힘든 여정인 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 옆에 예은도 있으니 꽤나 행복한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뭐, 어쨌든 기도하는 리치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다크프리스트.”
 흠칫.
 그 순간 내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 기분은······.
 “또 그분들이시네, 이거.”
 “······?”
 “예은아, 정말 미안하게 됐다.”
 “네?”
 “조금 난감한 적들이거든.”
 나는 그 말과 함께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순간 내 주변에 나타나는 어쌔신 20명. 지난번보다는 확실히 적은 숫자였다. 그렇다면! 저번보다 훨씬 강해진 지금이라면 상대가 가능할 수도!
 나는 내 앞에 나타난 복면 남자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구면?”
 “척살.”
 “······.”
 참으로 센스 없다.
 그나저나 저번에 나를 죽이려고 했던 그 어쌔신들인지, 새로운 놈들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뭐, 나중에 물어보지.
 “가르, 예은이 보호 모드.”
 “네, 형제여!”
 나는 당황해하는 예은을 가르에게 맡긴 뒤 울트라 초 맹독 얼음 초보자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지난번 퀘스트 이후, 일정 확률로 중독시키는 기능뿐만 아니라 빙결이라는 속성까지 담긴 내 울트라 무기다.
 모두 각오하라고!
 
 “······.”
 나는 모두 쓰러진 복면 사내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 강해졌구나. 어떤 의미에서는 가르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가르 덕택에 설인을 잡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레벨 업과 더불어 강화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
 “어, 어떻게 된 거예요?”
 한편 이런 내 모습을 본 예은은 너무나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나를 노리는 적들.”
 “······오빠를요?”
 “응, 이유는 몰라. 왜 나를 노리는지. 도대체 왜 나를 이렇게 열심히 노리는지 나 자신도 궁금할 따름이야.”
 “······.”
 “에잇, 같이 못 가겠다. 예은아, 나랑 다니면 위험할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웃었다.
 아무래도 이 어쌔신들 때문에 동행은 무리일 듯싶었다.
 물론 아쉽긴 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취미 따위는 없어서 말이다.
 한편 내 말에 예은이 아쉽다는 듯 물었다.
 “그냥 따라가면 안 돼요?”
 “엥?”
 “사실 제 사정상 이 게임에서 만난 사람은 오빠가 처음인걸요.”
 “······.”
 그렇다. 그녀는 연예인.
 만약 그녀가 정체를 밝힌다면 당장 선물 행세에다 레벨 업 시켜 주겠다는 팬들이 널려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게임을 즐기는 건 무리가 된다.
 난 그녀를 향해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나랑 같이······ 갈래?”
 “네!”
 사실 나야 좋다. 저렇게 예쁘고, 대충 겪어 본 것만으로도 성격 좋아 보이는 아이돌 가수랑 동행이라니,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 내게 왔는데 일부러 외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제 이 블루케인도 끝이군.
 이곳에 나를 노리는 놈들이 대기 중에 있었으니까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가뿐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왜 나를 노리는 걸까? 도둑 길드에 도착한다면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겠지.
 “그나저나 정말 오빠가 프리스트일 줄 몰랐어요.”
 “하하하하.”
 난 예은의 말에 당황해서 웃었다.
 왜냐하면 사실은 프리스트 앞에 당당히 ‘다크’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으니까. 다시 말해 어둠의 성직자. 크윽!
 그렇게 예은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 우리의 대화에 끼어드는 존재가 있었다.
 “새로운 형제여, 신을 믿습니까?”
 “네?”
 가르가 갑작스럽게 그렇게 묻자, 예은이 가르의 그런 질문에 당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가르의 말이 이어졌다.
 “신의 기적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 아뇨.”
 “믿음이 부족한 겁니다. 믿음, 믿음, 믿음! 신은 모든 걸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걸!”
 “······.”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자식은 시간만 나면 그놈의 신 타령이다.
 그냥 저 혼자 믿으면 될 것을 광신도처럼 옆 사람들도 끌어들이려고 무지무지 노력 중이다.
 난 그런 가르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발 이상한 소리 좀 작작해라, 가르.”
 “형제도 믿으세요! 기적이 일어날 겁니다!”
 “도대체 그놈의 기적은 언제 일어나? 한 번만 보여 주면 믿을게.”
 “아쉽지만 장기 출장 가셨습니다.”
 “······그래, 그래.”
 신이 장기 출장을 가다니, 멋지다.
 한편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본 예은이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오빠, 저분은?”
 “일단은 내 동료.”
 “특이하시네요.”
 “응, 많이.”
 저 감춰진 후드 안에 사실은 개뼈다귀만 있다는 사실을 알면 더 놀라겠지.
 
 
 
 
 
 8장 전자석
 
 
 
 
 
 
 휴우.
 그랜드 크룬으로 출발한 지 어느새 사흘째다.
 그동안 거의 절반 정도 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남은 거리도 절반이었다. 우엑.
 물론 그 시간 동안 예은이와는 정말 친해졌다. 뭐, 당연히 계속해서 같이 붙어 있었으니 당연한 건가?
 그동안 그녀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크하하하!
 최고의 아이돌 가수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다니, 왠지 모르게 감격스럽다.
 “야, 요새 프리스트 잘하고 있냐?”
 “아, 뭐······.”
 “한번 만나야지.”
 “나중에.”
 내가 프리스트를 선택하게 만든 장본인, 영현이 자식이다.
 나는 프리스트를 하지 못할 거라는 저 녀석의 말 때문에 나는 프리스트를 선택했고, 그런 까닭에 우연치 않게 그 사기꾼 작자를 만나 다크프리스트로 전직하고 정체불명의 사건들에 휩싸였다.
 그냥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고 싶었을 뿐인데. 흐흑.
 나는야 사랑······.
 그 순간 내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어차피 지금은 쉬는 시간이니, 울리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나저나 누구지?
 내 시선은 당연히 휴대폰 액정 쪽으로 돌아갔고, 거기에는 ‘예은’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어라, 예은이네?
 “야, 뭐냐?”
 그때 영현이 자식이 그 예은이라는 이름을 보더니 내게 대뜸 물었다. 난 그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예은? 우리 마음의 안식처, 차예은?”
 “동명이인이다. 신경 꺼라.”
 나는 그 말과 함께 교실을 벗어났고, 교실을 나오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턱.
 “여보세요.”
 ―아, 오빠.
 “응.”
 ―오늘 몇 시쯤에 접속할 수 있으세요? 제가 요새 휴식기여서 시간이 괜찮거든요.
 “나야 뭐 언제든지. 지금 만날까?”
 ―지금이요?
 “응.”
 ―오빠만 괜찮으시다면.
 “그럼 접속해 있어. 금방 갈게.”
 ―네!
 나는 그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런 직후 난 눈을 빛냈다.
 오늘, 전설의 담 넘기를 보여 주지.
 
 사냥개 경현.
 지금 교문 앞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저 근육질 남자의 별명이다.
 사냥개부터 시작해서 악마, 괴물, 헐크, 절대방어, 우주방어, 기타 등등. 엄청난 별명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다. 담을 타 넘다가 그에게 걸린 학생들만 해도 몇백 명, 거의 99.9퍼센트 이상이 탈출하지 못하고 잡혔다.
 저자는 항상 교문 앞을 지키고 있는 듯 보이지만, 어느새 개구멍으로 이동을 하기도 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동도 한다.
 그만큼 위험인물이라는 거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저자에게 져 본 적이 없다.
 이래 봬도 보통 사람 이상의 뛰어난 운동신경은 나의 장기였으니까.
 그 순간 나와 그자는 눈이 마주쳤고, 그는 나를 보자 조용히 읊기 시작했다.
 “0승 14패. 나에게 치욕적인 기록을 안겨 준 김윤현.”
 “······.”
 “오랜만이군. 한동안 안 보인다 했다.”
 “오랜만이네요, 선생님.”
 “네가 수업 시간에 여기에 등장한 건 땡땡이를 치기 위해서겠군.”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요.”
 나와 사냥개 경현은 무미건조한 대사를 나누었다.
 어차피 별 소용없는 대사다. 그 대사 이후 최후(?)의 결전을 벌일 테니까.
 “김윤현, 나를 이긴다면 널 공식 조퇴 처리를 해 주지.”
 “그거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안 될 거다. 와라!”
 “갑니다!”
 난 사냥개 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사냥개 경현은 어깨를 떡 넓히면서 일명 우주방어라고 칭해지는 자세를 취했다. 나를 잡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소용없다.
 파앗!
 나는 달려들 듯하다가 순식간에 한쪽 담을 향해 뛰어갔고, 그런 내 반응에 사냥개 경현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이제는 달리기 시합이다.
 누가 더 빨리 저 담벼락에 도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거다.
 “으아아악!”
 나는 이유 불명의 굉음을 내지르면서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100미터 달리기 최고 기록 10초39의 위력이 여실히 나온다.
 “젠장!”
 내 뒤에서 사냥개 경현의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미 나의 승리다.
 어느새 담 앞으로 달려온 난 그대로 담벼락을 밟고 단숨에 뛰어올랐다.
 턱!
 나는 아주 가볍게 담벼락을 뛰어넘은 후, 반대편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냥개 경현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젠장! 또 졌어!”
 “아직 멀었습니다. 하하하!”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휴우.”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나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텐트였다.
 여관이 아닌 곳에서 로그아웃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텐트가 필수였고, 이 텐트를 기준으로 사방 20미터가 휴식 지역으로 표시된다.
 물론 그냥 휴식 지역으로 표시되는 건 아니다.
 여관에서 파는 에슬리라는 아이템을 구입해야만 몬스터에게 공격받지 않은 안전지대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근데 이 에슬리라는 아이템이 약간 비싼 편이긴 하다. 거의 숙박료 10배에 달하는 50나켄이니까, 한마디로 요약해서 스무 번만 쓰면 1골드라는 거다.
 뭐 다행히도 설인 퀘스트를 깬 직후여서 돈의 여유가 많았다.
 “아, 오빠 오셨어요?”
 내가 로그인을 하자, 나를 반기는 목소리가 있었다.
 너무나도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예은아.”
 아, 언제 봐도 너무 아름답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다니.
 그곳에는 사람들이 없는 탓인지 갑갑한 후드를 벗은 예은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아직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야.”
 나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묻는 예은에게 대답한 후 궁금했던 것을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활동 접는 거야?”
 “네. 몇 달 쉬고 음반 준비 할 것 같아요.”
 “그럼 게임도 많이 할 수 있겠네?”
 “네! 너무 좋아요. 헤헤.”
 “······.”
 으아악! 이, 이건 고문이다.
 차라리 날 죽여라!
 귀엽게 혀를 잠깐 날름했는데,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아, 정말 이게 꿈이 아니기를!
 그렇게 후드를 벗은 예은을 한참 쳐다보던 나는 갑자기 안 보이는 모 인물이 떠올랐다.
 “예은아, 가르는?”
 “기도 중이시던데요.”
 “······이 자식은 뭐 만날 기도 중이냐. 뭐 상관없나?”
 전에도 말했지만 남 기도하는 것에 태클 거는 취미는 없었다.
 하지만 또다시 내 욕을 하면 이번에는 갈아 버릴 것이다.
 
 가르는 텐트 안에서 열심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어라? 근데 기도하는 모습이 예전과 다르다?
 전에는 분명 앙상한 두 손을 마주잡은 채 열정적으로 기도를 했는데, 오늘은 왠지 처자는 모습이다.
 나는 그런 가르에게 말했다.
 “야, 가르! 이제 출발해야지.”
 “······.”
 “진짜 처자냐?”
 “······.”
 가르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진짜 자는 거야??
 진짜? 리치가?
 허어, 어이없다. 오늘 새로운 발견을 했다. 리치도 잠든다는 사실. 뭐 그것보다 그냥 자면 될 것 가지고 왜 이렇게 불편한 자세로 자는 거냐?
 번쩍.
 “헉!”
 그때 가르가 갑자기 고개를 들면서 눈을 번쩍였다.
 무섭다, 이것아. 네놈의 생김새를 생각해 봐라. 웬 해골뼈다귀가 눈을 번쩍인다고 생각하면······.
 나는 방금 깬 가르에게 말했다.
 “잘 잤냐?”
 “안 잤습니다.”
 “자는 것 같던데?”
 “신을 뵙고 왔습니다.”
 “······분명 자는 것 같았는데.”
 “아닙니다. 신과 단독 면담을 했습니다.”
 “신은 항상 바쁘다면서?”
 “그, 그게······.”
 내 말에 급격히 떨리는 목소리.
 “처잤지?”
 “잠시 피곤해서 기도하다가 그만······.”
 가르는 그제야 사실을 인정했다.
 잤다고 누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거짓말은······. 그나저나 어서 출발해야지.
 
 “웨시틴 마을, 상당히 교통수단이 발달된 도시로 나와 있어요. 이곳에 가면 탈 것이 있을지도 몰라요.”
 “저, 정말?”
 “네.”
 나는 예은의 설명에 눈을 번쩍였다.
 아무리 최고의 아이돌 가수인 미소녀와 오붓한 여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일 없이 걷기만 하자 지겨운 것도 사실이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걷고······.
 너무도 실제 지향적인 게임 덕분에 이런 수고스러움이 있었다.
 물론 한 번만 들르면 워프 마법이 활성화되니까 이런 수고스러움도 감안해야지 뭐.
 “그나저나 웨시틴 마을에서 뭐 탈것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빠르고 편하게 갈 테니까.”
 “저도요.”
 “신을 믿으면 됩니다.”
 “······.”
 “······.”
 그때 가르가 나와 예은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근데 지금 여기서 왜 신이 나오는 거냐?
 “신을 믿으면 신의 기적으로 편해집니다!”
 “······도대체 그 신의 기적이라는 걸 보여 주고 말하라니까, 자식아.”
 “아직 출장 중이십니다.”
 “언제 돌아오는데?”
 “그, 글쎄요.”
 “······.”
 내 질문에 가르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황당한 자식, 도대체 저 자식은 신이라면 모든 게 만사 오케이다. 걸어가는 게 힘들고 지루해도 신만 있으면 된다고 하니, 할 말 다했지.
 
 웨시틴 마을 입성!
 드디어 입성이다.
 “어서 오십시오!”
 우리가 도착하자 웨시틴 마을 사람들이 크게 반겼다. 휴우, 배타적인 사람들은 아니구나. 마을 사람들이 배타적이면 그건 나름대로 정말 귀찮아진다.
 하지만 다행히도 여기는 배타적인 마을은 아닌 듯싶다.
 “아, 안녕하세요.”
 마을 사람들의 인사에 예은이 살며시 후드를 뒤집어쓴 채 인사했고, 가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을 믿습니까?”
 퍼억!
 “크아악!”
 “작작해, 이 자식아.”
 “흐흑.”
 나는 사람을 보자마자 또다시 신을 믿느냐고 묻는 가르의 머리통을 한 대 갈겼고, 그 공격에 녀석은 또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왠지 내가 불량해 보이잖아!
 한편 그런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당황하면서 말했다.
 “어, 어서 들어오십시오.”
 “실례하겠습니다.”
 젠장, 가르 자식 때문에 괜히 나까지 얼굴이 붉어지잖아.
 
 나는 우리 일행을 여관으로 안내해 주는 마을 사람에게 살며시 물었다.
 “쉬는 것보다 우선 한 가지 중요한 걸 물어볼 게 있는데요.”
 “······?”
 “이 도시에는 교통수단이 발달되었다던데, 혹시 탈 것이라도 구할 수 있을까요? 그랜드 크룬으로 가려고요.”
 “아, 가는 건 있습니다. 전자석 마차로 시속 60킬로미터 이상 달리는 마차입니다.”
 “······!”
 시속 60킬로미터 이상!
 그 말이 뜻하는 바는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다는 거다. 그리고 휴식을 취할 필요도 없다. 전자석으로 움직인다고 했으니까.
 “저, 저기 돈을 낼 테니 그걸 탈 수 있을까요? 그랜드 크룬으로 가야 해서요.”
 “아, 곤란합니다.”
 “······?”
 내 말을 듣고 안내를 해 주던 마을 사람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지?
 “지금 운행이 불가능합니다.”
 “왜요? 왜요?”
 “그 마차에 달릴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되는 전자석이 없습니다.”
 “그, 그럼 그 전자석이라는 것을 구하는 방법은요?”
 “있기는 합니다만······.”
 역시!
 그럴 것 같았다.
 지난번 얼음 마을에서 비활성화된 워프 게이트를 에픽 퀘스트를 통해 활성화하지 않았던가?
 한 번 활성화하면 뒤에 오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게······.”
 
 ―퀘스트―
 전자석을 구해라.
 전자석은 땅을 파면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자석을 테룬에게 가져가라.
 보상: 5골드. 전자석 마차 무료 이용.
 
 땅?
 땅을 파라고? 지금······?
 그때 나에게 말을 건넨 마을 사람의 설명이 이어졌다.
 “옛날에 사용하다가 버린 구 전자석이 있습니다. 그 전자석을 테룬에게 가져가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여기서 문득 묻고 싶었다.
 왜 버린 건데? 안 버렸으면 됐잖아!
 지금 당장이라도 이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어느새 마을 사람 손에 쥐어진 삽.
 저건 어느새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
 “하시겠습니까?”
 “······해야죠.”
 나는 그 말과 함께 그의 손에 쥐어진 삽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으아악!
 
 “여기입니다.”
 “······.”
 이, 이건 너무 방대하잖아!
 내 앞에 펼쳐진 광경. 그건 광대하게 펼쳐진 흙바닥이었다. 대략 가로세로 100미터 정도 되는 넓이의 땅덩어리다.
 “사실 지난번에는 고장 나서 버렸지만, 테룬이 지금에서야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버린 거구나.
 그럼 버린 이유가 맞아 들어간다. 그때는 테룬이라는 사람이 고장 난 전자석을 고치지 못했지만, 지금은 고칠 수 있다는 설정인 거냐?
 “근데 보시다시피 너무나도 넓어서 찾기가 힘듭니다.”
 “그래 보이네요.”
 “찾으시면 전자동 마차를 가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랜드 크룬까지 무료로 태워 드리겠습니다.”
 “······.”
 “그럼 수고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마을 사람은 사라졌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냥 이대로 우리를 버리고 가는 거냐? 하아······.
 “오빠, 진짜 하실 거예요?”
 엄청난 크기의 흙투성이의 땅을 본 예은이가 걱정스럽다는 듯 내게 묻자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해야지. 이미 퀘스트를 수락했으니까. 그리고 찾아내기만 하면 돈도 주고 하루 만에 그랜드 크룬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아, 그럼 저도 도와 드릴게요.”
 “······.”
 마음씨 착한 예은이 내게 말하자 난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다급해도 여자한테 땅 파는 일을 시킬 정도로 매너가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내 손에 쥐어진 삽은 두 개, 딱 맞다.
 나는 한 개의 삽을 가르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가르가 말했다.
 “뭡니까?”
 “보면 모르냐?”
 “설마 연약하고 아름답고 뷰티풀한 저에게 저런 무지막지한 일을 시키실 생각은 아닌 거죠, 형제여?”
 “맞는데?”
 “······저는 기도해야 합니다.”
 “맞고 할래, 그냥 조용히 할래?”
 “······.”
 나는 너무나도 착한 관계로 선택 문항을 집어 주었고, 내 물음에 가르는 삽을 건네받으면서 공손히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가르와 나는 죽도록 삽질했다.
 말 그대로 삽질에 목숨을 걸 정도로 그 장대한 땅을 파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런 탓에 내 옷과 가르의 후드는 심하게 더러워졌지만.
 “오빠, 저 이만 가 봐야 되는데······.”
 “아, 그래? 근처 여관에서 로그아웃하고 가 봐.”
 “죄송해요. 아무것도 도와 드리지 못하고.”
 “아냐, 아냐. 여기는 나와 가르에게 맡기라고!”
 나는 죄송하다고 말하는 예은에게 그렇게 말했다. 예은은 내 말이 떨어지자 인사를 한 뒤 사라졌다.
 어느새 태양도 졌는지 어둠만이 가득한 그 거대한 땅 위에 남은 건 나와 가르뿐이었다.
 “가르.”
 “네, 형제여.”
 “기적이 있다면 이 땅 좀 파 달라고 해 봐.”
 “거듭 말하지만, 신은······.”
 “장기 출장 중이라고?”
 “그렇습니다.”
 “됐다. 말을 한 내가 잘못이지.”
 나는 그 말과 함께 열심히 삽질을 계속했다.
 그렇게 삽질한 지 약 7시간이 초과될 때였다.
 
 ―스킬, 삽질계의 꿈나무를 얻었습니다.―
 
 삽질계의 꿈나무?
 이건 뭐야?
 나는 궁금한 건 절대적으로 못 참는 관계로 금방 확인에 들어갔다.
 
 삽질계의 꿈나무는 장시간 쉬지 않고 몰두해서 땅을 파면 생기는 스킬이다.
 이 스킬은 패시브 스킬이다. 땅 파는 속도가 2배 이상 늘어난다.
 
 참, 어이······없다.
 ‘삽질계의 꿈나무’라는 스킬, 정말 어이없다.
 뭐, 그래도 삽질하는 속도가 2배가 된다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지.
 퍽! 퍽! 퍽!
 한편 삽질계의 꿈나무라는 스킬을 얻은 난 정말 삽질계의 꿈나무라는 말이 아깝지 않게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근데 확실히 잘 파진다.
 역시 삽질계의 꿈나무 스킬이다.
 “형제여, 힘듭니다.”
 그때 열심히 내 옆에서 삽질하던 가르가 말했다.
 나는 여전히 땅을 파면서 대답했다.
 “그럼 쉬어.”
 “네에.”
 그 말과 함께 가르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솔직히 힘들다. 거짓말 안 하고 힘과 체력이 쭉쭉 내려갈 정도로 힘든 삽질이다.
 
 예은은 로그인을 하자마자 굳어 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제 그 구 전자석이 묻혀 있다는 거대한 흙밭을 보고 굳은 것이다.
 “오, 오빠. 가르 님······.”
 거기에는 가히 피골이 상접한 채 그 흙밭에 드러누운 윤현과 가르가 있었다. 예은이 설마 하는 어조로 물었다.
 “하루 만에······ 다 파신 거예요?”
 “······응.”
 “······.”
 
 삽질계의 황태자.
 어제와 오늘 죽도록 삽질해서 얻은 패시브 스킬이다.
 
 ―삽질계의 황태자―
 삽질계의 영원한 황태자로서 그의 삽질은 신을 가르고 영혼조차도 가른다고 알려져 있다.
 삽질 속도 최고 13배 증폭.
 
 구라를 치기는! 삽질이 어떻게 신을 가르고 영혼을 가를 수 있냐?
 말도 안 되는 설명이다.
 하여튼 설명은 넘어가고, 제일 중요한 건 밑의 ‘삽질 속도’가 써 있는 문장이었다. 최고 13배 증폭이라, 가히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삽질 속도다.
 나는 그것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오, 오빠. 괜찮으세요? 가르 님도······?”
 “우리는 괜찮아. 끝났어. 찾았다고! 구 전자석을 말이야. 하하하하!”
 “······.”
 난 예은의 질문에 힘차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끝난 거다. 드디어!
 
 나와 가르는 씻지도 않고, 아니 정확히는 나는 씻지도 않은 채 구 전자석을 들고 테룬이라는 작자를 찾아 나섰다.
 물론 이 구 전자석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나와 가르, 예은이는 길을 물어물어 테룬이라는 자를 찾기 위해 마을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렇게 약 10분 후 드디어 테룬의 집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른 곳과 다를 것 없는 극도로 평범한 집이었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지금 피곤해 죽겠는데 말이야.
 난 그의 집 앞에 선 채 곧바로 노크했다.
 똑똑.
 “누구십니까?”
 내 노크 소리에 집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목소리만으로 추측해 보았을 때, 30대 중반 정도 될 것 같았다.
 생각 외로 젊다?
 난 구 전자석을 고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라기에 좀 늙었나 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나이보다 적었다.
 “구 전자석을 고치기 위해 왔습니다.”
 “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끼익.
 그 말과 함께 서서히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을 연 이는 역시나 내 예상을 깨뜨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30대 중반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선한 얼굴이 유독 인상적인 남자였다.
 “······.”
 하지만 남자는 우리를 보더니 굳었다.
 “······.”
 아니, 정확히는 나와 가르의 모습을 보고 굳었을 것이다.
 흙바닥에서 뒹굴다 보니 거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너저분해진 모습, 내가 생각해도 심했다. 좀 씻고 올걸, 하고 막상 후회해 봤지만 이미 늦었다.
 “하하하. 어제 전자석을 찾느라고······.”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하루 만······에 찾으신 겁니까?”
 “아, 뭐.”
 “······정말 믿어지지 않네요.”
 그건 저도 동감합니다.
 그 넓디넓은 땅을 파낸 끝에 단 하루 만에 찾아내다니, 찾아낸 당사자들도 믿기 힘든 지경이었다. 물론 환상적인 패시브 스킬, 신조차도 영혼조차도 가른다는 삽질계의 황태자라는 스킬의 영향이 컸지만.
 어찌 됐든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구 전자석을 넘겨주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크기, 내 손만 한 정도의 크기를 한 모터같이 생긴 전자석. 이게 죽도록 찾아 대던 그 물건이다.
 “잘 받았습니다. 이제 좀 씻고 오십시오. 대략 1시간이면 될 듯싶습니다.”
 “아, 네.”
 “그럼.”
 나는 얼른 씻기 위해 여관으로 돌아갔다.
 
 여관에 돌아오자 예은이 나에게 말했다.
 “오빠랑 가르 님 옷 준비해 놓을게요.”
 “아, 고마워.”
 “저도 오랜만에 목욕이나 해야겠습니다.”
 리치 주제에 목욕이라니, 정말 신비로운 녀석이다.
 그때 갑자기 후드를 훌렁 벗는 가르 군과 그런 가르를 쳐다본 예은. 이어 들려오는 비명소리.
 “꺅!”
 “······.”
 엿 됐다.
 
 “가, 가르 님이 리, 리치였어요?”
 예은이 말까지 더듬거리면서 내게 물었다.
 그 말에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으응. 뭐.”
 “오빠, 어떻게 리치랑······ 동료가 가능한 거예요?”
 “글쎄다. 나도 그게 의문이야.”
 “······.”
 내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는 모습을 하는 예은. 당연한 반응이다. 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때 갑자기 예은이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는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그럼 시, 신에게 기도······.”
 “어, 기도하는 리치야.”
 “······.”
 “네 마음 이해해. 이건 상식적으로 절대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일이니까. 신한테 기도하는 리치라니, 정말. 하아······.”
 그 말에 예은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너도 조금은 적응이 될 것이다.
 “저, 저기 오빠.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어, 많이 물어봐. 괜찮아.”
 “가르······ 님이 리치라면 텔레포트 마법이 가능······하지 않나요?”
 “가능은 해.”
 “근데······ 왜 걸어가세요?”
 “······그건.”
 “그건요?”
 “음, 저 자식이 돌대가리여서.”
 “······.”
 “좌표를 제대로 못 읽어.”
 “예······?”
 내 말에 예은은 기겁했다.
 당연하다. 좌표도 제대로 못 읽는 마법사라니. 그것도 마법계의 대부라고 불리는 리치가 좌표도 제대로 못 읽는다는 사실은 정말 서프라이즈다.
 
 어찌 됐든 잠시의 소란이 가라앉은 뒤 우리는 다시 그랜드 크룬으로 향하기로 했다.
 물론 이제는 걸을 필요가 없다.
 우리 앞에 완성된 전자석 마차에 타는 것만으로도 아주 편안하고 아늑한 여행이 될 테니까.
 “아 참, 이건 수고비입니다.”
 우리에게 퀘스트를 준 남자가 내게 내미는 다섯 개의 동전. 5골드다.
 이렇게 해서 대충 계산하면 지금 내 소유 금액은 대략 14.5골드?
 뒤에 붙이는 건 귀찮아서 그냥 점으로 계산한 것이다. 어찌 됐든 이 돈으로 이제 그랜드 크룬에 도착해서 나를 괴상한 암살자들에게 밀어 넣은 그 사기꾼 작자도 찾을 것이고, 대도시에서만 파는 특별한 아이템들도 살 것이다.
 아마도 그랜드 크룬에 입성한 존재는 아직 소수일 테니 좋은 아이템이 좀 남아 있을지도?
 그리고 그 근처에 괜찮은 사냥터도 많다고 하니 정말 좋은 도시다.
 “타십시오.”
 “아, 고맙습니다.”
 어느새 마을 사람이 마차의 문을 열고 타라고 말했다.
 그 말에 예은을 제일 먼저 태우고, 그 다음 나, 마지막으로 가르가 탔다.
 물론 이렇게 한 이유는 예은이 가르가 리치라는 사실을 안 이후 약간은 무서워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리치기는 하지만, 리치 같지도 않은 너무나도 특이한 리치인데 말이다.
 “출발하겠습니다!”
 우웅!
 마부의 목소리와 함께 전자석 마차의 엔진이 구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말이 있을 곳에 엔진이 달려 있을 뿐 여느 마차들과 다르지 않은 마차였다.
 슈우욱!
 순간 빠른 스피드로 출발하는 전자석 마차.
 아하, 드디어 그랜드 크룬이다.
 
 
 
 
 
 9장 도둑 길드
 
 
 
 
 
 
 
 “꺄울!”
 내 앞에 펼쳐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도시는 블루케인보다 약 30배 이상의 크기를 자랑하는 그랜드 크룬이다.
 4대 대도시 중 하나이자 무역이 가장 발달해서 상업 활동이 활발한 도시. 웬만한 물건은 없는 게 없다는 그 도시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예은이도 드디어 도착한 거대한 도시를 보더니 약간 힘들다는 말투로 말했다.
 물론 중간 지점부터는 전자석 마차를 타고 편하게 왔지만, 그전에는 일일이 걸어 다녔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무지 힘든 여행이었다.
 “자, 이제 들어가 볼까?”
 “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가장 앞장선 채, 보기만 해도 기가 팍 죽는 웅장한 문 쪽으로 다가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문앞에는 경비병 두 명이 서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오른쪽에 있던 경비병이 우리를 보더니 약간 수상한 눈빛을 한 채 물었다.
 물론 이해한다.
 나를 제외하고 전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니까.
 “블루케인에서 왔습니다.”
 “블루케인이요? 상당히 먼 곳에서 오셨군요.”
 “네, 무지 멀지요.”
 “그럼 신분증을 제시해 주세요.”
 “엥?”
 “블루케인 영주성에서 지급받은 신분증 말입니다.”
 “······.”
 블루케인에서 신분증을 주던가?
 생전 처음 듣는 소린데······.
 나의 이런 모습을 본 예은이 당황하면서 물었다.
 “오, 오빠. 안 만드셨어요?”
 “······.”
 “······.”
 “그런 게 있는지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
 “어, 어떡해요. 저는 있지만······.”
 “······.”
 컥! 이 이럴 수가!
 신분증이라니! 아무리 실제 지향적 게임이라 하지만, 마을 들어가는 데 신분증 보이라고 하다니!
 아니, 당연한 건가?
 제길! 큰일 났다. 예은이는 만든 것 같은데, 나와 가르는 없다. 게다가 가르는 신분증 발급 불가.
 정말 큰일 났다.
 “없으십니까?”
 한편 내 이런 반응에 경비병은 더욱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를 보냈다.
 나는 그런 경비병을 향해 씩 웃어 보이면서 주머니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런 다음 1골드를 꺼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성의입니다.”
 크윽! 내 돈!
 신분증을 만들지 않았기에 아까운 1골드가 날아갔다.
 우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경비병들은 내가 쥐어 준 1골드에 환영의 눈초리로 변했다. 그게 워낙 순식간이어서 뇌물을 준 내가 다 당황스러웠다.
 뭐, 하지만 그 후에 아무 문제 없이 들어왔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1골드라는 거금을 날린 건 여전히 아깝다.
 “오빠, 돈 많으시네요.”
 내 주머니에서 1골드라는 큰 금액을 나온 걸 본 예은이 놀랍다는 듯 말하자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해 보였다.
 “처음부터 평범하게 게임을 시작하지 못했거든.”
 “······.”
 “그리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사 줄게.”
 “아, 아니에요. 성의만 받을게요.”
 싱긋.
 그 말과 함께 생긋 웃어 보이는 예은. 크윽! 천사다.
 저런 아름다운 천사를 욕하는 안티 자식들, 다 갈아 버리고 싶을 정도다.
 그나저나 여기는 입구 근처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없다. 그런 탓에 예은이가 후드를 벗을 수 있어 좋았지만 말이다.
 문득 나는 가르와 예은을 본 뒤 말했다.
 “이제 서로 볼일 보고 여기서 만나자.”
 “네!”
 내 말에 대답하는 예은이었다. 난 그다음 가르를 보면서 말했다.
 “넌 어떡할 거야? 나 따라올래?”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 온 김에 교회에도 들르고 친구도 만나 봐야겠습니다.”
 “너 교회에 들어갈 수 있어?”
 “물론입니다.”
 “······.”
 보통 언데드들은 교회 근처도 못 가는데 저 자식은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거냐? 그리고 그 안에서 기도라니, 정말 기막힌다.
 그리고 친구라니. 리치의 친구라면 리치? 아니면 네크로맨서?
 죄다 음침한 애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쨌든 볼일이 있다니 각자 행동이다.
 “모두 볼일 본 뒤 이곳에 모이자!”
 
 일행과 헤어진 나는 열심히 도둑 길드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 자체가 워낙 큰 까닭에 찾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난 고민 끝에 근처에 지나가던 아가씨 하나를 붙잡았다. 대략 나이는 20대 초반? 젊은 여자였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기요.”
 “어머, 헌팅?”
 “······.”
 “잘생긴 남자, 전 좋아해요.”
 “······.”
 “계속하세요.”
 이분, 뭐 하는 분입니까.
 길 묻는 사람한테 헌팅이라니. 얼굴은 봐줄 만한데 한동안 최고의 미소녀 아이돌 가수 님과 함께 다니던 나다.
 즉, 눈이 더럽게 높아졌다는 사실.
 한편 초롱초롱 눈을 빛내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 여자.
 부담된다.
 “어서, 어서요.”
 “저기요, 그게 아니고······.”
 “결혼은 너무 이른데요.”
 “······.”
 “약혼까지는 해 드릴게요.”
 정말 이 여자 뭐야?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분이시다.
 전문용어로 또라이.
 아 참, 그게 아니고 길을 물어야지.
 “저는 헌팅 때문이 아니라 길을 묻기 위해 붙잡은 건데요.”
 “······.”
 내 말에 한참 침묵하던 그 여자는 잠시 후 화난 표정을 짓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그런 걸 왜 저한테 물어봐요! 흥!”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사라졌다.
 물어본 내가 더 당황스럽다.
 사람을 잘못 선택했어. 다음에는 반드시 또라이가 아닌 사람을 잡아야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다시 길을 묻기 위해 사람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워낙 큰 도시였기에 사람이 정말 많았다.
 물론 유저가 아니라 NPC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저와 NPC들이 더욱 버글거리게 될 것이다.
 그것보다는 어서 길을 물을 사람을 찾아야 한다. 어서 도둑 길드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살피던 나의 눈앞에 왠지 정상적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깔끔한 모습과 더불어 선한 인상이 느낌이 좋았다.
 “저기요.”
 나는 그 남자를 향해 불렀고, 내 부름에 그 남자는 고개를 돌리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내게 말했다.
 “왜 그러신가요?”
 “길 좀 묻고 싶은데요.”
 “아, 외지 분이신가요? 어디를 찾고 계신 겁니까?”
 나이스!
 이번에는 정상적이다.
 그럼 어서 물어야지.
 “도둑 길드를 가려고 하는데······.”
 “도둑 길드 말입니까? 흐음,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초롱초롱!
 그 말에 나는 눈을 빛내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남자는 숨을 들이켜더니 입을 열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서 쭉 가시다 보면 두 개의 갈라진 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다시 한 번 오른쪽으로 꺾으시고, 거기서 또 가다 보면 네 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1시 방향으로 가시고, 또 가다 보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옵니다. 거기서 왼쪽, 그 왼쪽으로 쭉 가시다 보면······.”
 
 “······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뭘요, 잘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 말과 함께 남자는 사라졌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젠장,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약간, 아니 많이 이상하다. 이러다가 오늘 안에 도둑 길드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헉! 정말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 도시는 왜 이따위로 크게 만들어져서 사람을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크든가 해야지, 아무리 대도시라지만 너무 크다.
 “으아악!”
 나는 혼자서 절규를 내지른 뒤 근처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젠장! 이래서는 오늘 안에 길 찾기는 글렀다. 묻는 사람마다 너무나도 복잡하게 설명해 준 탓이다. 아무리 은밀한 곳에 있는 도둑 길드라 하더라도 왜 그리 복잡한 데 지어 놨는지. 흑!
 그렇게 의자에 앉은 채 괴로워하던 나에게 꼬마 하나가 다가왔다.
 나이는 대략 12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였다. 키가 상당히 작았지만 왠지 모르게 날렵해 보이는 꼬마였다.
 꼬마가 내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마에스트로 형인가요?”
 “헉!”
 내 아이디를 알고 있다?
 어떻게?
 서, 설마 그 정체불명의 어쌔신 단체인 거냐?!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곧바로 허리춤에 매여 있는 메이스를 잡았다. 젠장, 이제는 암살을 위해 꼬맹이까지 보내는 건가?
 정말 이 자식들 정체가 뭐야?
 한편 이런 내 반응을 본 그 꼬마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 길드 마스터 형이 데려오라고 했거든요.”
 “길드 마스터?”
 “형, 혹시 도둑 길드 찾고 계신 거 아니에요?”
 “······맞기는 한데.”
 “그러면 맞네요. 저희 길드 마스터 형이 도둑 길드 마스터거든요.”
 “······.”
 보통 이런 경우에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 같은 걸 보면 어린아이가 안내해 주는 길을 따라갔더니 매복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설정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저 앞에 꼬맹이가 그런 경우일 수 있었다.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쫓아가는 이유는 한 가지, 정말 길 못 찾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너무 복잡하다, 복잡해.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꼬마는 요리조리 움직이며 아주 복잡한 길로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만약에 이 길이 도둑 길드로 향하는 길이라면 난 평생 걸려도 못 찾았을 것이다.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렇게 약 20분.
 어째 끝이 안 보인다.
 난 앞서 가는 꼬마를 향해 물었다.
 “아직 멀었어?”
 “조금 남았어요.”
 “······하아, 멀다.”
 제발 이상한 사기가 아니고 진짜 도둑 길드에서 파견된 꼬맹이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만약에 저 꼬마가 도둑 길드에서 파견한 녀석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도둑 길드에서 내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드는데?
 설마······.
 어떻게 내가 자신들을 찾아올 거라고 알고 있을 수가 있지? 아무리 도둑 길드가 정보의 집합체라고 하더라도 이건 뭔가 아니다.
 일개 유저의 움직임까지 파악하다니 말이다.
 “다 왔어요.”
 “······.”
 진짜냐?
 꼬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3층 건물 하나가 떡하니 서 있었다.
 한 층의 넓이는 대략 70평쯤?
 모든 층을 합하면 200평은 넘을 만한 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에 띄는 글자들, 확실히 쓰여 있다.
 도둑 길드라고······.
 “어서 오세요, 도둑 길드로.”
 “······.”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는 비싸 보이는 소파에 앉은 채 한 존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바로 이곳의 길드 마스터라는 존재였다.
 보통 정보를 주는 일을 하는 곳이긴 하지만, 이렇게 길드 마스터가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이상하다.
 그렇게 내가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상함에 고개를 젓고 있을 때, 접대실의 문이 열렸다.
 끼이익.
 그리고 한 남자가 등장했다.
 대략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선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키는 대략 180센티미터 정도? 그리고 균형 잡힌 몸매가 꽤나 날렵할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도둑 길드의 마스터니까 당연할지도.
 “안녕하십니까. 이곳 도둑 길드를 맡고 있는 제핀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그의 소개에 나 역시 소파에서 일어나 마주 인사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제핀이 말했다.
 “편히 앉으세요.”
 “네.”
 그 말에 내가 다시 착석하자, 이내 제핀도 의자에 앉았다.
 그가 의자에 앉자마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물어볼 게 많습니다.”
 “당연할 겁니다, 다크프리스트님.”
 내 직업까지 안다······?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분명 세키린 때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세키린?”
 “전대 다크프리스트, 즉 마에스트로님을 전직시킨 분의 성함입니다.”
 그 사기꾼 작자의 이름이 세키린?
 오늘 처음 알았다.
 그나저나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 보이는 제핀. 이러면 이야기하기가 쉬워진다.
 그런 생각에 내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제핀이 예상치도 못한 말을 꺼냈다.
 “하지만 세키린 님에 대한 정보는 일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뭐, 뭐라고요!”
 “세키린 님에 대한 정보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왜, 왜?
 그 사기꾼 작자에 대한 정보를 못 준다는 건데!
 물론 다크프리스트라는 이 직업에 원망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꼭 알아야겠다. 내가 왜 이상한 놈들한테 습격을 당해야 하는지 말이다.
 설마 돈이 없다고 생각해서 안 가르쳐 주나?
 “저 돈 많습니다.”
 “돈은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신다 해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모릅니다.”
 “······.”
 “세키린 님에 대한 정보는 저희조차도 잡아내지 못할 정도니까요.”
 “그, 그럴 수가······.”
 “그리고 이거······.”
 “······?”
 그때 좌절해 있던 나에게 제핀이 조용히 무언가를 내밀었다.
 뭐지?
 스킬······ 북?
 스킬 북 하나와 함께 무슨 이상한 글자가 적힌 종이였다.
 “세키린 님이 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
 내가 이곳에 올 것도 예상한 건가, 그 사기꾼 자식?
 그나저나 도체 무슨 말을 적어 놓은 거야?
 난 궁금함에 자연히 그 편지로 추정되는 쪽지를 열었다. 거기에는 그 작자의 글이 적혀 있었다.
 
 하하하! 내가 한발 빨랐지롱!
 
 한 줄 읽었는데 스팀 오른다, 이 작자!
 그, 그래. 참고 읽자. 참고 계속 읽는 거다.
 
 뭐 이게 주목적은 아니고, 지금 이 편지를 보고 있을 때면 칙칙한 애들한테 습격 좀 당했을 거야.
 
 잘 아시네요, 그것 참.
 
 그렇다고 게임을 포기하면 안 돼. 자네는 인재니까.
 
 더 포기하고 싶어집니다만?
 
 다크프리스트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찾으셈. 뭐 찾다 보면 좋은 무기 스킬들도 나오니 안심하고. 그럼 바이바이!
 
 으아악!
 스팀 100% 돈다.
 크아악! 이 작자, 도대체 편지를 이딴 식으로!
 한편 내가 흥분하는 걸 본 제핀이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섯 개의 유물을 찾으십시오.”
 “제가 왜요?”
 “습격당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궁금하기는 한데요. 내가 왜 번거롭게 유물 찾고 다녀요. 나는 그냥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고 싶을 뿐인데.”
 “흐음, 착각하고 있군요. 그 유물은 다크프리스트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다크프리스트의 특별한 힘을 강화해 줍니다. 예를 들어 특별 스킬 말입니다.”
 “······.”
 “그 유물들을 찾으면 정말로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사실 내가 왜 이상하게 생긴 칙칙한 녀석들에게 습격당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유물들에 더 마음이 끌린다.
 한마디로 말하면 일석이조?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어떻게 찾아요?”
 “저도 잘 모릅니다.”
 “엥?”
 “그것은 세키린 님도 찾지 못한 특별한 유물입니다. 그것을 일개 도둑 길드 마스터인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잠시 후, 윤현이 좌절한 모습으로 나가는 걸 본 제핀이 중얼거렸다.
 “다크프리스트라는 이름은 꽤나 무거울 겁니다.”
 
 
 
 
 
 10장 맞으면 희열을 느끼는 변태 검사
 
 
 
 
 
 
 
 잠깐이라도 기대한 내가 바보스럽다.
 그 유물이라는 것이 확실히 끌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찾을 방법이 없다. 그 사기꾼 작자도 찾아내지 못한 걸 내가 무슨 수로 찾아낸단 말인가?
 물론 힌트는 하나 있었다.
 그 사기꾼 작자가 내게 남겨 준 힌트 한마디.
 
 어둠보다 어두운 곳.
 
 ······이게 뭐냐?
 어둠보다 어두운 곳은 어디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하아, 정말 어이없다. 괜히 기운이 쭉쭉 빠진다. 이곳에 오면 내가 그 이상한 애들한테 습격당하는 이유를 알고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머리만 더 복잡해진다.
 그럼 이 게임을 하면서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된다는 건가?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방법도 있다.
 그것은 강해지는 거다.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는 거다. 그렇다면 그 정체불명의 단체랑 맞장 떠도 별 상관 없다는 거다.
 “에이, 모르겠다. 쳇!”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머리카락을 마구 흩뜨렸다.
 
 “아, 오빠.”
 “퀘스트 잘했어?”
 “네, 덕분에요.”
 내가 도착하자 예은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퀘스트를 잘 치렀다니 다행이다.
 문득 예은이 나를 보더니 물었다.
 “오빠 일은요?”
 “글쎄.”
 해결은커녕 더 복잡해졌다.
 으아악! 그냥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 모양이 된 거야!
 “잘 안 된 거예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나저나, 예은아, 이제 어떡할래?”
 “네?”
 “퀘스트 때문에 여기 들른 거잖아. 이 다음에는 어떻게 하고 싶어?”
 솔직한 마음으로는 계속 같이 다니고 싶었다. 아니, 평∼생.
 이건 좀 오버인가? 어찌 됐든 그녀와 계속 있고 싶다는 거다.
 나의 질문에 예은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내게 말했다.
 “저, 오빠랑 계속 다니고 싶은데 안 될까요?”
 “안 되긴! 절대로 환영이야!”
 “정말요?”
 “응!”
 절대적으로 환영이다. 나야 마음 같아선 발 벗고 나서고 싶을 정도로 환영인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 입가에는 나도 모르게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하하하.
 내 일은 잘 풀리지 않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그나저나 그 작자가 준 스킬 북은 아직 확인을 못했다.
 이야기가 워낙 급전개가 되다 보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확인하면 되니까 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스킬 북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마혈전혈―
 레벨 1.
 근처의 땅을 가격한다.
 땅을 가격 시 반경 20미터에 지진이 일어나고, 그 지진은 모든 존재들을 10초간 스턴시킨다.
 마나 소모: 100
 
 오, 괜찮은데?
 한마디로 스턴 마법인가? 그것도 20미터 안에만 있다면 다량으로 걸 수 있을 정도의 스턴 마법이라니 좋다.
 “그런데 도대체 유물급 스킬은······ 뭘까?”
 괜히 궁금해진다.
 보통 스킬들도 상상 초월인데, 유물급 스킬과 무기라면 할 말을 잃게 만들 것 같다. 아무래도 강해지기 위해서는 여섯 개의 유물을 찾는 게 필수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마음 같아서는 정말 빨리 찾고 싶었지만 해답이 없다.
 어두움보다 어두운 곳? 그럼 땅굴? 이건 좀 아닌데.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냐.”
 깊게 생각에 빠진 나를 보고 예은이 궁금하다는 듯 묻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그나저나 한 명이 도착하지 않았다.
 “가르는 아직 안 왔어?”
 “네?”
 가르라는 말에 깜짝 놀라는 그녀. 귀엽다. 크아악!
 마음 같아서는 계속 후드를 벗고 다녔으면 했지만, 그녀의 직업상 그건 불가능하다.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곳에서나마 그녀의 얼굴을 감상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너무 행복해.
 그렇게 내가 흐뭇한 마음으로 예은을 바라보고 있을 때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왔습니다, 형제들이여.”
 “아, 가르 왔······ 그 옆에는······ 누구?”
 가르의 목소리에 반갑게 맞이하려고 한 순간, 그 옆에 있는 인물을 보고 굳어 버렸다.
 왜냐? 너무 신성해 보였으니까.
 은빛 갑주를 걸친 모습은 신성한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강력할 것 같다는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그의 맑은 눈동자와 굳게 닫힌 입은 그가 정말 신성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약 183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은빛의 머리카락까지, 전체적으로 보면 신성 그 자체다.
 이런 자가 왜 가르와······?
 설마······ 가르, 잡힌 거냐?
 “제길! 가르, 내가 구해 줄게!”
 그 말과 함께 전투 준비에 들어가려던 나는 가르의 한마디에 전투 모션을 취소했다.
 “제 친구입니다.”
 “······치, 친구?”
 “네, 형제여.”
 “······.”
 저 사람이 가르의 친구?
 다르게 말하면 리치의 친구?
 리치의 친구가 왜 저 모양이냐? 저 사람이 어딜 봐서 리치랑 어울리는 존재란 말인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둘이었다.
 그만큼 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한 빛이 가득한 검사였다.
 그때 그 가르의 친구라는 남자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덥석 껴안았다.
 “뭐, 뭐야?”
 이 자식 뭐야? 설마 호모야?
 그 순간 더욱 몸을 꽉 조여 오는 그 녀석!
 이 자식이 미쳤나?
 나는 남자랑 껴안는 취미는 따위는 없단 말이다!
 퍽!
 거의 무의식적으로 녀석의 머리통을 갈기자, 그 자식은······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뭐, 뭐야?
 이 불길한 느낌은······?
 “더 때려 줘, 아잉.”
 “······.”
 뭐, 뭐야? 이 자식! 더 때려 달라니!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정말로 손발, 온몸이 다 떨릴 정도의 위압감이다. 나는 당장 그 이상한 녀석을 강제로 떼어 버린 뒤 그대로 밟기 시작했다.
 퍽! 퍽! 퍽!
 기분 나쁘다. 이 자식, 뭐야!
 “하아, 하아. 기분 좋아.”
 “······.”
 “이 발길질, 내가 맞아 본 것 중 최고야.”
 “······.”
 “너무 완벽한 발길질이야.”
 “······으아악!”
 난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더욱 밟아 대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아! 더! 더! 더! 더! 더!”
 으악!
 
 헉, 헉, 헉.
 내 앞에는 거의 반시체가 되어 버린 한 남자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이 자식, 뭐야? 미친 놈 아니야!
 갑자기 나를 껴안더니 계속 때려 달라고 매달리다니, 어디서 이런 또라이 같은 자식이······.
 한편 씩씩거리던 나를 본 가르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마조히스트입니다, 형제여.”
 “마조히스트? 그 맞으면 이상한 희열을 느낀다는 미친 변태들?”
 “네, 형제여.”
 “······.”
 역시 실망을 버리지 않는 가르의 친구다.
 그래, 신에게 기도하는 리치의 친구가 정상이면 오히려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뭔가 1퍼센트 부족한 느낌인데?
 “가르, 혹시······ 저 이상한 놈, 천족이냐?”
 “어떻게 아셨습니까?”
 “······.”
 다시 말해 맞으면 희열을 느끼는 천족 검사냐, 이번에는?
 기도하는 리치에 이어서?
 그 순간 반죽음의 모습으로 엎어져 있던 그 변태 녀석이 고개를 살짝 쳐들더니 엄지를 치켜 올렸다.
 그러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최, 최고!”
 푹!
 그 말과 기절했다.
 
 “넌 뭐야?”
 “제, 제발 나도 데려가 줘! 난 운명을 느꼈어!”
 “······.”
 계속해서 우리를 쫓아오겠다는, 맞으면 희열을 느끼는 변태 검사 자식.
 그래, 기도하는 리치까지는 용납된다. 하지만 맞으면 하아, 하아 신음하는 마조히스트는 절대로 사양이다. 절대 말이다.
 “안 되는 건 안 돼!”
 “나 알아.”
 “······?”
 “보석으로 가득 찬 던전 말이야.”
 “······.”
 순간 내 머리가 맹렬히 회전했다.
 보석이냐, 미친 변태 녀석이냐!
 참고로 돈이 많으면 강해진다. 무기도 좋아지고, 방어구도 좋아지고, 그 밖에도 많은 것이 좋아진다. 그럼 강해질 수 있다.
 그럼 그 정체불명의 단체와 대적이 가능할까? 사실 그 유물이라는 것을 찾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단서가 없었다. 마침 할 일도 없었는데 보물찾기라니, 이런 절묘한 찬스가.
 나는 그 변태 녀석에게 다가가 싱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환영하네.”
 “더 밟아 줘.”
 ······괜히 환영했다. 제길.
 그래도 보석까지만 받고 내팽개쳐 주마. 크크크!
 
 
 
 
 
 11장 루미니아 던전
 
 
 
 
 
 
 
 
 언제부터였을까?
 지극히 평범한 게임과 거리가 멀어진 원인은······.
 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건 바로 그 사기꾼 작자를 만난 직후였다. 그 사기꾼 작자만 만나지 않았다면 난 평범한 프리스트로 전직해서 선량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한 가지 좋은 점도 있다.
 그건 바로 예은을 만난 것. 예은을 만난 건 정말 좋은 일이지만, 저것들을 만난 건 나의 불행이었다.
 “모두 기도하십시다. 오, 주여!”
 “아, 아 때려 줘! 아, 아, 아!”
 저 자식들 말이다.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리치 한 마리와 더 때려 달라고 열심히 내게 달라붙는 변태 천족 검사까지.
 정말 골 때린다.
 그나마 가르까지는 이해해 주겠는데 데인 저 자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을 데인이라고 소개한 마조히스트 천족 검사. 절대로 평범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가 안 되는 놈이다.
 “당신의 발길질이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감동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다.
 왜 내 발길질이 너를 감동시키는 데 사용되느냔 말이다!
 절대로 거부하고 싶은 상황이다. 데인은 나를 보더니 마구 홍조를 띠면서 말했다.
 “그 환상적인 발길질, 처음 느껴 본 행복이었어.”
 “······.”
 “그 타격감과 파괴력. 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아아아!”
 “······.”
 난 웬 변태 자식의 이상한 말에 살짝 볼이 붉어진 예은에게 다가갔다. 그런 다음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예은아, 미안해.”
 “네?”
 “웬 미친 녀석들이 들러붙는 바람에.”
 “아, 아니에요.”
 “크윽! 할 말 없다.”
 기도하는 리치는 그나마 괜찮지만 데인 저 자식은 아무리 봐도 구제불능이다. 그래, 어서 보석을 찾은 뒤 잔인하게 내팽개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야, 데인.”
 “······?”
 “어서 그 보물이 있는 던전으로 안내나 해라.”
 “찾으면 밟아 줄 거야?”
 “······.”
 그 말에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물론 거짓말로 밟아 준다고 대답할 수도 있지만, 차마 거짓말이라도 그 말은 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초롱초롱.
 내 대답을 기다리는 데인과 차마 떨어지지 않는 나의 입.
 으아악!
 “말해 줘.”
 “······.”
 보석, 보석, 보석, 보석, 보석.
 나는 속으로 조용히 세뇌를 걸었다.
 그래, 보석을 위해! 보석을 위해!
 “밟아 주마.”
 “아아! 행복하다!”
 ······크윽.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 좌절감, 이 모멸감! 내 여린 심성이 완전히 다 파괴된 느낌이다. 주저앉은 나에게 다가온 예은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난 그런 예은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예은아, 난 절대 이상한 취미 같은 건 안 갖고 있어. 믿어 줘.”
 “알아요, 오빠.”
 “크윽!”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거짓말이라고 해도 내 입으로 마조히즘에 동참하다니, 참으로 슬픈 상황이다.
 
 그렇게 데인은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온갖 보석이 집결해 있다는 루미니아 던전으로.
 데인의 말에 따르면 그 던전에 들어서기만 하면 보석이 너무 많아 눈이 부셔서 미쳐 버릴 정도라니까, 무척 기대된다.
 만약 녀석의 말대로 보석이 그리 많다면, 나는 순식간에 초재벌이 되는 거다.
 하하하.
 근데 뭔가 이상하다?
 데인이 안내해 주는 길이 이상하다. 그것도 엄청. 왜 보석의 집결체라는 곳에 가는데 점점 갈수록 이렇게 음침하고 우울한 곳만 나오는 거지?
 어느새 주변은 음침하기 그지없었고, 이상한 기운까지 마구 느껴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썩어서 악취까지 풍기는 식물까지 보였다.
 여기가······ 정말 보석이 많다는 곳 맞나?
 던전으로 가는 길목의 꼬락서니가 왜 이러니?
 “오, 오빠······.”
 그때 그 알 수 없는 분위기에 기겁한 예은이 내 곁에 찰싹 붙자, 난 그런 그녀의 반응에 입이 찢어질 뻔했다.
 아, 너무 행복하다.
 행복해서 돌아 버리시겠다. 아아아!
 예은이 내게 기대자 너무나도 행복함에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을 때, 데인이 말했다.
 “저기야.”
 “······?”
 “저기?”
 “응.”
 “정말?”
 “그런데······.”
 “······.”
 저기······라고?
 데인이 가리킨 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평범한 동굴이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입구에 해골바가지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가 진짜 보석의 던전 맞나?
 “야, 데인.”
 “왜 그래?”
 “여기 정말 보석이 있긴 있는 거냐?”
 “물론! 나를 믿어!”
 ······개인적으로 그다지 믿고 싶지는 않지만, ‘보석의 던전’이라는 단어의 유혹은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 그래. 조금 특이한 던전일 거야.
 보석의 던전이니까.
 
 난 해골바가지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굳어 버렸다.
 왜냐하면 내 앞으로 열심히 기어오는 해골뼈다귀 님들 덕분이다. 굳이 이름을 말하자면 스켈레톤. 레벨 100대 정도로, 완전히 초전박살내지 않으면 계속해서 살아난다는 특성을 갖고 계신 분들이다.
 “데인 군.”
 “······?”
 “여기서 묻고 싶은데, 왜 보석의 던전에 저 해골뼈다귀가 있는 거냐?”
 “보석의 던전이니까.”
 “보석 던전이랑 해골뼈다귀의 관계를 가르쳐 줬으면 하는데.”
 “심오한 관계가 있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지.”
 어딜 봐서?
 내 눈에는 해골뼈다귀와 보석 던전과의 관계성이라고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데.
 달그락.
 달그락.
 열심히 뼈마디를 울리며 다가오는 스켈레톤 30마리. 엿 됐다.
 제일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이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나는 상태 이상 계열로 버텨 왔는데, 저 해골뼈다귀들은 중독이나 빙결 같은 상태 이상에는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내 스킬과 힘을 믿는 수밖에.
 “제길! 보석 찾기 힘드네! 으아악!”
 나는 그렇게 비명을 지르면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스켈레톤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그런 다음.
 “마혈전혈!”
 사기꾼 작자가 준 새로운 스킬을 시전했다.
 반경 20미터의 존재는 모두 10초간 스턴시켜 버리는 무지막지한 스킬이다.
 내가 울트라 초보자 메이스를 휘둘러 그대로 땅을 가격한 순간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다.
 콰르릉!
 순간 반경 20미터 안에 있던 스켈레톤들은 모두 스턴에 걸려 멈춰 버렸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한편 스킬에 걸려 해롱거리는 스켈레톤을 본 난 씨익 웃으면서 주문을 외웠다.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140 상승했습니다.―
 
 확실히 능력치 상승 폭이 커지고 있었다.
 레벨이 점점 오를수록 말이다.
 아마도 레벨의 영향으로 능력치가 상승하는 폭이 커지는 듯싶었다.
 “다크 스트림!”
 끼이익!
 악령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내 초보자 무기에 악령들이 깃들었다. 나는 초보자 무기를 휘둘러 다시 한 번 바닥을 내리쳤다.
 “마혈전혈!”
 콰르릉!
 다시 한 번 지진이 일어나자, 스켈레톤은 또다시 스턴에 걸렸다.
 좋다. 그런데 마나가 엄청 많이 소모된다.
 두 번밖에 안 썼는데 마나가 쭉 빠져나간 느낌이다.
 나는 다시 스턴에 걸린 해골뼈다귀들을 향해 돌격해서 그대로 놈들의 머리를 향해 초보자 무기를 휘둘렀다.
 퍼엉!
 강력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불멸의 일진이다.
 생각보다 퍼센트 데미지가 높은지 잘 터진다. 뭐, 나야 좋지.
 한편 불멸의 일진에 맞은 스켈레톤은 그대로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가리가 부서지자 몸도 자동으로 부서지는 거다.
 휘이익!
 그 순간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이다.
 스켈레톤이 휘두른 검이 내 목을 노리고 들어오자, 나는 지체 없이 고개를 숙였다.
 휘이잉!
 나는 머리 위를 바로 스쳐 지나가는 스켈레톤의 검을 보고 기겁했다.
 하지만 은근히 단련되어 있는 몸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곧바로 메이스를 두 손으로 꼭 잡았다.
 그런 다음!
 “우어어억!”
 메이스를 두 손으로 잡은 채 그대로 풀 회전하기 시작했다.
 퍽퍽!
 펑펑!
 펑펑!
 불멸의 일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메이스에 부딪쳐 오는 타격음이 마구 들려왔다. 그렇게 열심히 회전하던 나는 약간 어지러움을 느끼고 멈춰 서야 했다. 어느새 바닥에는 완전히 엎어져서 부서진 해골뼈다귀의 잔재만 남아 있었다.
 물론 건재한 자식은 한 열 명?
 내가 놈들을 처리하기 위해 다시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
 “악의 근원이여! 사라져라!”
 “다 죽어!”
 퍼퍼퍽!
 퍼퍼퍽!
 어느새 나타나서 잔재들을 처리하는 리치 한 마리와 미친 변태 검사.
 근데 한 명의 대사가 심히 거슬린다.
 ‘악의 근원이여! 사라져라!’라니 악의 대명사인 리치 님께서 던질 대사는 아닌 듯싶은데. 그리고 어느새 뽑아 든 검을 멋지게 집어넣는 데인.
 제법 멋진데?
 특히 빛나는 갑옷이 그를 더욱 빛나게 했다.
 미치지만 않았어도 멋진 놈인데 말이야. 지금도 상당히 멋······.
 “힘 아껴 둬.”
 “헉!”
 서, 설마 나를 위한······?
 왠지 감격스러운데, 이거!
 데인의 대사에 왠지 모르게 감동이 밀려왔다.
 “힘 아껴서 그 힘으로 나를 밟아 줘. 아잉.”
 그 말과 함께 데인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잠깐이지만 저 자식이 멋지다고 생각한 내가 저주스럽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오! 레벨 업이다.
 그리고 또다시 들려오는 음성.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었습니다. 라이프 블리지트.
 
 라이프 블리지트? 생명력? 뭐, 뭐야.
 새로운 생명력?
 라이프가 뜻하는 건 생명력이다. 그럼 그 뒤에 붙는 블리지트는? 생전 처음 듣는 단어다. 도대체 뭘까?
 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당장 확인에 들어갔다.
 
 ―라이프 블리지트―
 레벨 1.
 상대방의 생명력을 흡수해서, 자신의 무기에 담는다.
 그 무기에 적중 시 생명력을 매개로 강한 폭발을 일으킨다.
 
 파괴력: 23,000 + 흡수한 생명력.
 마나 소모: 1,200
 
 ······!
 저, 정말 좋다.
 상대방의 생명력을 뺏는 것도 모자라서, 그 생명력을 이용해서 데미지까지 주다니.
 더욱 더 기본적인 데미지 역시 장난이 아니다.
 단점이라면, 지랄 맞은 마나량이라고나 할 까?
 체엣.
 그나저나, 이왕 본 거 스텟창도 확인해 볼까?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82
 HP/MP: 1,720/1,570
 힘: 362(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179(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지능: 84(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109(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120
 
 흐음, 틈틈이 사냥을 한 결과구나.
 그랜드 크룬까지 오면서 마냥 놀지만은 않았다. 튼튼해 보이는 몹들을 가르의 도움으로 잡기도 했기 때문에 레벨이 많이 올라간 상태였다.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82
 HP/MP: 1,720/1,570
 힘: 432(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229(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지능: 84(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109(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0
 
 됐다, 스텟 분배까지!
 크흐! 갑자기 강해진 느낌이다.
 특히 라이프 블리지트가 엄청 마음에 든다!
 하하하하!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난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스켈레톤 30마리를 잡은 이후 우리는 데인의 안내를 받으며 쭉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음침해질 뿐만 아니라 이상한 기운들이 진동을 했다.
 요약하면 사악한 기운이라고나 해야 하나?
 진짜 이 길이 맞는 거냐?
 그렇게 내가 의심의 눈초리로 앞에서 당당하게 걸어 나가고 있는 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네 갈래 길이 나왔다.
 “길이 갈라졌네요.”
 예은이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이런 경우 한 가지 길만 정답이고, 나머지는 함정이다. 책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니까.
 그때였다.
 “저에게 맡기십시오.”
 “······?”
 가르가 우리 앞에 당당히 섰다.
 뭐 하려는 거지?
 순간 가르가 갑자기 두 손을 모으더니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면서 말했다.
 “신이시여, 기적을!”
 내가 신이라도 안 나간다.
 참으로 어이없다. 고작 길 물어보는데 신을 부르다니. 저 녀석, 좀 더 효율적인 일에 신의 기적을 바라란 말이다!
 내가 그렇게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한 눈으로 가르를 보고 있을 때, 녀석이 눈을 번쩍 떴다. 그러더니 말했다.
 “맨 오른쪽이랍니다!”
 그러고는 그 앙상한 뼈만 남은 손가락을 뻗어 보인 것이다.
 근데 여기에는 신빙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난 반신반의하는 어조로 물었다.
 “확실하냐?”
 “저를 믿어 주십시오. 형제여,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
 “제발 저를 믿어 주옵소서!”
 “······.”
 나는 가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째 믿고 싶게 하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게 하는 사악함의 대명사 리치다. 하지만 저렇게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
 그런 걸 매정하게 뿌리치기에는 마음 여린(?) 나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 가자!”
 
 “으아악! 개자식!”
 내 이럴 줄 알았다.
 개뿔이 신의 기적이냐? 갖다 버려!
 가르가 가리킨 방향으로 가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주 산뜻한 독화살 세례였다. 그것도 수천 발 이상.
 “가르! 여기서 탈출하면 너 죽었어!”
 “······.”
 “으아악!”
 나는 절규하면서 메이스를 휘둘렀다.
 다른 자식들은 몰라도 예은만은 지켜야 했다.
 “오, 오빠!”
 필사적으로 자신을 지키려 하는 모습을 본 예은이 나를 부르자, 난 그 부름에 아주 당당히 외쳤다.
 “너만은 지킨다! 으아악!”
 발그레.
 그 말에 예은의 볼이 살짝 물들었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상황을 탈출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으아악!
 
 한편 예은은 윤현의 말에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미묘하게 그녀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내, 내가 왜 이러지?’
 예은은 약간 볼을 물들인 채, 화살비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메이스를 휘두르고 있는 윤현을 바라보았다.
 
 “헉, 헉, 헉.”
 살았다!
 살아남은 것이다.
 그 독화살의 세례에서 말이다.
 우리는 아까 전에 지나온 네 갈래로 갈라진 곳으로 되돌아와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기적이다. 진짜 완전 기적이다.
 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곳에서 살아남다니, 기적이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건 주의 보살핌······.”
 “보살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형제여.”
 “가르야.”
 “······?”
 “그놈의 신께서 참 길을 잘 가르쳐 줘서 이 모양이 된 건 생각 안 하는 거냐?”
 “그, 그건 신께서 저희를 강하게 키우시려고······.”
 “핑계는······. 흐흐흐!”
 “······!”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가르, 죽었어!
 
 “흐흑.”
 흐느끼는 리치 한 마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흐느끼는 소리에 전혀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자식 때문에 모든 파티원이 전멸할 뻔했으니까.
 그나마 자상한 나였기에 이 정도로 끝낸 것이다.
 “나도 밟아 주······지 마.”
 나는 또다시 밟아 달라 말하려는 데인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분위기상 안 좋은 타이밍이라는 걸 알았는지 말끝을 변경했다.
 그래, 지금 밟히면 넌 영어로 다이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동안 열심히 심호흡을 했고, 잠시 후 조금 흥분이 가라앉자 다시 네 갈래의 길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디가 정답이냐?
 “오빠.”
 “응?”
 “제가 정령을 다룰 줄 아는데, 바람의 실프를 불러서 살펴보고 오라고 할까요?”
 “······!”
 정령!
 그러면 예은이 정령술사였다는 거야?
 동행한 지 꽤 오래됐는데 처음 안 사실이다. 흠, 나도 꽤나 무관심했군.
 어찌 됐든 정령사가 있으면 편해진다. 미리 정령을 보내 정찰한 후 괜찮은 길이면 그냥 편안히 가면 되는 거다.
 “예은아, 부탁해.”
 “네, 오빠.”
 
 “저기래요.”
 “오케이!”
 예은이 왼쪽에서 세 번째 길을 그 고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에는 희끄무레한 바람의 정령이 머물러 있었다.
 “아, 그리고 저기에 보석이 보인다고······.”
 “보, 보석?”
 “네.”
 불끈.
 보석이라는 말에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보석이다! 보석이다! 보석이다!
 이렇게 쉽게 찾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으하하하!
 
 지, 진짜 보석이다.
 내 앞에 펼쳐진 보석들.
 진짜 보석이다······. 진짜다! 진짜! 우어어어어억!
 너무 흥분해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내 앞에 펼쳐진 수십 가지 종류의 보석. 갖가지 보석들이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반짝거리면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맞지, 맞지?”
 “맞구나!”
 사실 처음 이곳 던전 분위기가 음산하고 이상하기 그지없어서 많이 걱정했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약간 변태 같은 녀석이기는 하지만, 거짓말을 하진 않는구나. 데인 이 자식, 기특한데?
 “그럼 약속대로!”
 “······.”
 데인의 말을 들은 난 그제야 그와의 약속을 떠올랐다. 이 보석을 찾으면 ‘밟아’ 주겠다는.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이상한 취미 따위는 절대 갖고 있지 않다.
 미안하지만 데인, 너를 내팽개쳐 주마.
 크크크.
 나는 속으로 사악한 미소를 지은 채 데인에게 말했다.
 “잠깐. 보석 먼저 챙기고.”
 “알았어.”
 크크크! 보석 먼저 챙기고 잔인하게 내팽개쳐 주마. 하하하하. 왠지 모르게 내 속에 악마가 서식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의 착각이겠지?
 어찌 됐든 나는 거짓말 안 보태고 산처럼 쌓여 있는 보석더미로 다가갔다.
 양이 너무 많아서인지 고개를 쭉 빼도 꼭대기가 안 보인다. 그만큼 많은 양이었다.
 “이거 너무 많아도 곤란한데. 하하하하!”
 나는 그렇게 미소를 지으면서 보석을 만지기 위해 손을 뻗으려고 했다.
 “아, 안 됩니다, 형제여!”
 “······?”
 “만지면 안 됩니다!”
 “에이, 가르. 설마 이 많은 보석 나 혼자 가질까 봐? 나눠 준다. 크하하!”
 나는 그 말과 함께 보석 하나를 집었다.
 그런데!
 “으아아악!”
 그리고 다음 순간 내 몸은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추락이다. 갑자기 발밑이 휑하니 없어지더니 어둠만이 가득한 곳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일루전 마법입니다! 트릭이 걸린!”
 그제야 가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내 몸은 지금도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으아악!
 데인 자식, 무사히 돌아가면 진짜 죽여 버리겠어!
 
 스켈레톤 마스터라는 몬스터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대장 몬스터다. 외형은 스켈레톤과 다를 바 없는데 그가 사용하는 힘은 비범하기 그지없었다.
 스켈레톤 주제에 마법도 사용하고, 검도 사용한다. 그 뿐 아니라 활을 사용하기까지 한다. 이 정도면 말 다 했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왜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간단하다. 정답은! 바로 내 앞에 계셨으니까.
 데인 자식, 죽여 버리겠어! 으아악!
 내가 그 일루전 마법에 속아 떨어진 곳에는 이분이 대기 중이었다. 다행히도 착지를 잘해서 추락사는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내 앞에 이분이 대기 중인 걸 보고 더 놀라고 말았다.
 눈을 빛내고 계신 그분.
 마음 같아서는 ‘어딜 꼬나봐?’라고 묻고 싶었지만, 이분은 나보다 훨씬 레벨이 높으시다. 지난번 설인은 정말 운이 좋아 잡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비장의 스킬이라든가 이런게 부재중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상황을 요약하면 ‘대략 난감.’
 크윽.
 달그락!
 그 순간 스켈레톤 마스터가 한 발을 내딛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되도록 화사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원만한 대화는 어떻습니까?”
 달그락.
 “에, 영어로 아임 유월 스피킹?”
 맞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왜 말을 거는데 무시하느냔 말이다, 이 자식이!
 달그락!
 내 말은 무시한 채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다가오는 스켈레톤 마스터. 나는 느꼈다.
 그냥 가기는 글렀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조용히 허리춤에 매여 있던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크윽, 무기라도 강화해야 했어.
 상태 이상 능력을 너무 믿은 내 잘못이 크다. 이런 언데드류에는 통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게 반 좌절 중인 내 눈에 한 글자가 보였다.
 
 어둠보다 어두운 곳.
 
 스켈레톤 마스터의 바로 등 뒤에 있는 글자였다.
 그 문장은 푸른색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물론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저기에 담긴 뜻이다.
 어둠보다 어두운 곳.
 그렇다! 여섯 개의 유물 중 하나를 찾는 힌트인 거다. 그게 왜 여기에 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단 한 가지, 여기서 살아나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나는 맹독성 초보자 메이스를 꼭 잡으면서 말했다.
 “놀아 보자고!”
 
 “어, 어떡해!”
 예은이는 갑작스럽게 떨어진 윤현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물론 예은뿐만이 아니었다. 가르와 데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른 채 어쩔 줄 몰라 할 때였다.
 “야, 가르.”
 “왜 그러나, 친구?”
 “저 구멍 난 데로 들어가 봐.”
 “······?”
 “가 봐, 날 믿고.”
 그 말에 가르는 의아함을 느꼈지만 데인의 말에 따라 윤현이 빠져 버린 구멍 쪽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뻥!
 “으아악! 주, 주여!”
 “한번 탐험하고 와 봐, 가르.”
 “주, 주의 이름으로!”
 “······.”
 데인이 발로 가르를 밀어 차 버린 것이다.
 둘이 정말 친구 사이인지 의문스러운 상황이었다.
 
 “오, 주여!”
 헉, 헉, 헉.
 뭐야, 이 친숙한 바이브레이션은?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피하는 것이었다. 내 앞에 있는 스켈레톤 마스터는 그만큼 강력했다.
 멀리서는 마법과 활로 나를 괴롭혔고, 근접해서는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감히, 생각 외로 부실한 초보자의 메이스로 막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부서질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무기가 변해서 유니크급이 되었다지만, 강도는 어쩔 수가 없다.
 “오! 주여, 주여, 주여!”
 그때 또다시 들려오는 비명소리. 정말 친숙하다. 이 비명소리는 반갑기까지 했다.
 “오! 주여! 살려 주이소!”
 쿵!
 바닥에 아슬아슬하게 착지한 해골바가지 하나.
 외모 면에서는 내 앞에 계신 스켈레톤 마스터와 흡사하지만, 아군임은 틀림없었다. 왜냐, 해골바가지 주제에 ‘주여!’라고 외치는 녀석은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가르, 날 구해 주러 온 거냐?”
 왠지 감동스럽다.
 
 
 
 
 
 12장 다크 블레스 스트레션
 
 
 
 
 
 
 방금 전에 감동스럽다고 한 말, 전적으로 취소한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너 왜 왔냐?”
 “형제에게 떠밀려서.”
 “······?”
 형제에게 떠밀려서? 그럼 데인 그 자식이 가르를 밀어 넣었다는 건가? 그 녀석, 생각 외로 치졸하다. 천족 주제에 변태 마조히스트일 뿐만 아니라 친구도 마구 팔아먹는다.
 그나저나 내가 이렇게 가르를 탓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스켈레톤 마스터가 마법이 통하지 않는 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정확히는 마법 자체가 가까이에 가면 마치 흡수되듯이 사라져 버렸다.
 아무래도 안티 매직 셀을 응용한 기술인 것 같은데,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다.
 어찌 됐든 지금 가르가 이곳에 도착한 이후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고 있다. 이걸 한자풀이로 사생결단? 아닌가?
 뭐 대충 넘어가고, 어찌 됐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지원군이라는 것이 지금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제길, 역시 내 힘으로 끝내야 하나.”
 저 무지막지한 마법도 통하지 않는 스켈레톤 마스터를 무슨 수로 해치우냔 말이다.
 “오, 주여!”
 “왜, 그 신이라는 작자가 이럴 때 나타나서 도움을 주지 않는 거냐?”
 “힘듭니다.”
 “출장?”
 “아닙니다.”
 “그럼?”
 “해외여행 가셨습니다.”
 “······.”
 정말 대략 난감 그 자체다. 신이 장기 출장을 가는 것도 모자라, 돌아오자마자 해외여행이라니. 꽤나 심플하게 사시는 신인 것 같다.
 만약 가르의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제길, 어떡해.”
 “기도합시다.”
 “기도하면 저 스켈레톤 마스터가 ‘아, 네. 알았습니다’ 하고 사라져 주냐?”
 “그, 글쎄요.”
 “······.”
 “그럼 제가 교화를 시키겠습니다.”
 “교화?”
 “네, 하늘의 신성함을 알려 주면 깨달을 겁니다.”
 터벅터벅.
 그 말과 함께 가만히 있는 스켈레톤 마스터를 향해 터벅터벅 다가가는 리치, 아니 가르.
 그는 당당히 후드를 벗더니 물었다.
 “신을 믿습니까?”
 “······.”
 그렇지만 스켈레톤 마스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가르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신은 아름다운 분입니다. 신의 기적, 신의 영혼, 신의 아름다움, 신의 샴프리아(?)를 느끼신 적 있습니까?”
 “······.”
 “역시 없군요. 자, 제 손을 잡으십시오. 제가 신의 아름다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가르가 눈을 번쩍이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걸 본 스켈레톤 마스터는 잠시 후······.
 “헉!”
 스켈레톤 마스터는 검을 들고 당장이라도 그 손을 잘라 버리겠다는 듯 엄청 살벌하게 휘둘렀다.
 분명 감정적이었다.
 별 감정이 없어 보이는 스켈레톤 마스터가 잠시지만 흥분한 것처럼 보인 건 왜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저 가르 녀석 덕분이겠지.
 “가르야, 왜 더 흥분만 시키는 거냐?”
 “······.”
 “어느 의미에서는 용하다.”
 “······.”
 “죽······여······ 버······리······겠······다.”
 파파팟!
 헉! 말했다!
 저 스켈레톤 마스터가 말을 했다. 이 얼마나 신선한 기적인가?
 다음 순간 그 말을 끝낸 스켈레톤 마스터가 그대로 가르에게 달려들었다.
 왜 가르일까?
 “헉! 혀, 형제여. 원만한 커뮤니케이션······ 으아악!”
 하지만 가르는 말을 끝내지도 못한 채 열심히 뛰어다녀야 했다. 스켈레톤 마스터가 크게 흥분한 채 가르를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난 완전 무시당했다.
 하하하······.
 “으아악! 주, 주여!”
 한편 스켈레톤 마스터에게 계속 쫓겨 다니는 가르. 웬 리치가 저리 비실거리냐? 리치도 대장급 몬스터로 아는데 저 모습을 보면 전혀 아니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추. 하. 다.
 “혀, 형제여! 구, 구해 주시오!”
 그 순간 열심히 도망가던 가르가 나를 쳐다보고 외쳤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저 자식, 정말 왜 온 거냐?
 하아.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열심히 가르를 쫓고 있는 스켈레톤 마스터를 향해 말했다.
 “어이.”
 하지만 개무시였다.
 내 부름도 무시한 채 가르를 잡아먹으려고(?) 맹렬히 쫓고 있는 스켈레톤 마스터. 그것만으로도 저 스켈레톤 마스터가 얼마나 스팀 돌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아니, 사실 어둠의 언데드에게 신 이야기를 주절거리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열 받겠다. 크흠!
 “으아악! 주, 주여!”
 그 순간에도 가르는 열심히 주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네가 애타게 찾는 주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내가 너의 주가 되어 주마.
 “다크 스트라이크!”
 어둠의 구슬을 생성하는 마법이다.
 한마디로 파이어 볼과 비슷하지만, 그 힘은 어둠의 힘이라는 거다.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직접 한 방 먹여 줘야 말을 들어줄 것이다.
 퍼엉!
 내가 던진 어둠의 구슬이 가르를 열심히 쫓아가던 스켈레톤 마스터에게 직격했다. 그 공격에 스켈레톤 마스터는 그제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난 그런 스켈레톤 마스터에게 비릿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걸었다.
 “나한테 오라고.”
 달그락.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짜 나에게 달려오는 녀석. 오라고 했더니 진짜 오냐?
 한 번 정도는 거부해 주는 게 예의잖아!
 내 도발에 단숨에 달려오는 스켈레톤 마스터가 야속하기만 했다.
 달그락.
 눈을 빛내면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스켈레톤 마스터. 나는 놈을 보고 땀을 흘렸다.
 제길, 제길! 저 자식을 어떻게 하지? 이렇게 자문해 봤자 나오는 정답은 하나.
 저 자식을 부숴 버린다.
 그래, 최선을 다해!
 일단 저 자식에게 상태 이상 마법인 다크 큐어와 다크 블레스를 건다. 그런 다음 라이프 블리지트부터 시작해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다크프리스트의 모든 기술을 사용한다.
 그런 다음에는······ 모른다.
 제길!
 일단 상태 이상부터 걸고 보자!
 “다크 큐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치의 몸이 번쩍거렸다.
 그런데 이거 영 아니다.
 푸른색으로 빛나고는 있는데, 저게 의미하는 건 지속적인 데미지냐?
 대략 일주일 정도 세워 두면 뒈지는 상태 이상 마법이었다.
 으아악!
 절망했다. 아무리 랜덤 뽑기라고 하지만 이렇게 쓸모없는 마법이라니, 이건 정말 절망적이다.
 그나마 다크 블레스로 모든 능력치를 다운시키고 한번 해 보는 거다!
 “다크 블레스!”
 나는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스켈레톤 마스터를 향해 우렁차게 외쳤다. 그리고 순간!
 
 ―다크 블레스가 레벨 2가 되었습니다. 다크 블레스의 진화 형태인 다크 블레스 스트레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엥? 지, 진화?!
 스킬······ 진화?
 스킬도 진화하는 게냐? 생전 처음 듣는 말인데, 아마도 이 직업에 한해서일 것이다. 진화하는 스킬은 이 직업이 워낙 특별나기에 가능한 것인 듯했다.
 그나저나 다크 블레스 스트레션이라니, 도대체 뭐지?
 난 지금 전투 중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 슬쩍 빨리 보는 거다!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스킬창을 오픈했다.
 
 ―다크 블레스 스트레션―
 레벨 2.
 상대방의 모든 능력치를 50% 감소시킵니다. 그리고 방어력을 1,000% 하락시킵니다. 단, 3초 동안입니다.
 마나 소모: 200
 제한: 이틀에 한 번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방어력 1,000% 하락?
 그렇다면······?
 가능하다! 저 녀석을 이길 수 있다. 라이프 블리지트와 다크 블레스 스트레션이 제대로 먹힌다면 말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단 3초, 3초의 시간이 모든 걸 좌우한다.
 다크 블레스 스테리션을 걸고 3초 안에 저 녀석에게 라이프 블리지트를 먹여야 한다. 여기서 실패할 시 마나가 바닥난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해 봐야 한다. 최선을 다해.
 “라이프 블리지트!”
 파아앗!
 “크으······윽.”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내 메이스로 빨려 들어오는 스켈레톤 마스터의 생명력.
 얼마나 많은 생명력을 가진 건지, 빨려드는 양이 장난이 아니다.
 푸직!
 “크으윽!”
 나는 라이프 블리지트 시전에 집중하다가 스켈레톤 마스터가 쏜 화살 한 발을 보지 못했고, 그 화살은 어느 새 내 배를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쿠, 쿨럭.”
 제길, 너무나도 실제 지향적 게임이 이럴 줄 몰랐다.
 너무 아프다. 물론 각자의 의향대로 현실적인 효과를 조절할 수 있긴 하지만, 나는 더 리얼하게 즐기기 위해 민감도를 조절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너무 아팠다.
 사실 이 게임에는 고통을 없애는 설정도 있지만, 그 방법을 쓰면 전투 시 신체능력을 모두 끌어올리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이런 고통을 줄 줄이야······.
 “혀, 형제여!”
 가르의 다급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그것보다는 내 배를 관통한 화살이 더욱 신경 쓰였다.
 크윽!
 말만 프리스트지, 어째서 치료 마법이 없는 게냐.
 으아악! 정말 어이없다.
 나는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배의 상처를 손으로 막았다. 스켈레톤 마스터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거 정말 난감한 상황이다.
 다행히 라이프 블리지트의 힘은 이미 메이스 안에 담겼지만, 지금 난 상처가 너무 크다. 즉, 나를 주시하고 있는 저 놈에게 재빨리 다가가서 다크 블레스 스트레션을 걸 여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형제여! 내가 갑니다! 파이어 블레스터!”
 퍼엉!
 그 순간 내게 다가오던 스켈레톤 마스터의 발밑에서 치솟아 올라오는 푸른색의 불꽃.
 나는 당연히 저 마법조차도 스켈레톤 마스터에게 흡수당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마법은 스켈레톤 마스터에게 흡수당하지 않은 채, 스켈레톤 마스터 몸 전체를 뒤덮었다.
 어라? 왜 이번 마법은 흡수당하지 않은 거지?
 이런 의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가르의 자부심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의 힘이 더해졌습니다.”
 “······.”
 저, 정말 신의 힘이 더해져서 저런 효과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분명 마법은 스켈레톤 마스터를 뒤덮었지만, 스켈레톤 마스터는 데미지를 조금도 입지 않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정말 완벽히 그대로다. 완벽 완벽히!
 “큼큼.”
 가르가 살짝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신의 힘이 32년 분할로 더해지다니 보니.”
 ······.
 32년 분할 드립이라니.
 개드립도 저 정도면 기네스감이다.
 나중에 개인적이나마, 가르의 개드립 어록이라는 책 하나 출간해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죽······이······겠······다.”
 그 순간, 스켈레톤 마스터가 가르에게 한 마디 하더니 가르에게 달려들었고 가르는 비명을 내지르면서 열심히 도망 다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기회라는 걸 느꼈다.
 나에게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가르에게 시선이 집중된 이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능했다.
 가르.
 내게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다니 정말 고맙다고 속으로만 말해 주마.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상처를 막았던 손을 떼어 버렸다.
 어차피 일격필살이다. 실패하면 죽는데, 상처만 막아서 뭐 하냐?
 나는 라이프 블리지트가 걸린 강력한 메이스를 들고, 가르를 쫒아다니는 스켈레톤 마스터를 향해 그대로 뛰어들었다.
 “다크 블레스 스트레션!”
 파앗!
 내 주문이 끝나자, 스켈레톤 마스터는 하얀빛에 휩싸였다.
 걸렸다!
 3초다. 3초 안에 끝내야 한다. 그 말은 즉, 지금 이 공격이 통해야 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 몸이 하늘에 붕 뜬 채 그대로 스켈레톤 마스터의 머리를 향했다. 그런데!
 스켈레톤 마스터가 순식간에 검을 뉘어 위로 치켜들었다.
 젠장!
 이대로 가면 내 몸뚱이는 저 검과 부딪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공격은 실패로 돌아간다. 안 된다. 내 필살기가 이대로 끝나서는!
 나는 단 3초의 시간 동안 별별 생각을 다 했고, 한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검에 베이더라도 이 메이스만은 네 머리에 박아 주마!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추락하는 자세 그대로 스켈레톤 마스터의 머리를 향해 메이스를 겨냥했다.
 그런 다음!
 푸슈웅!
 그대로 메이스를 집어던졌다.
 퍽!
 순간 뼈와 메이스가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와 함께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앙!
 얼마나 강한지 폭발의 후폭풍에 내 몸이 날릴 정도다.
 털썩.
 나는 폭발의 후폭풍에 의해 그대로 땅에 내동댕이쳐졌고, 그대로 의식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제길, 또?
 하지만 한마디 하는 건 잊지 않았다.
 “가, 가르······. 여기 있는 거 다······ 챙겨.”
 털썩.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의식을 잃었다.
 
 
 
 
 
 13장 학교 축제
 
 
 
 
 
 
 
 으윽, 정말 할 일 없다.
 열흘간 게임 접속을 못하게 되니, 정말 말 그대로 할 일이 없다 못해 돌아가시겠다.
 지난번 스켈레톤 마스터를 해치우고 그 대가로 나는 뒈졌다. 영어로 아임 다이?
 뭐 그건 그냥 넘어가고 결론만 말하자면, 무지무지 심심하다.
 또한 예은의 얼굴을 못 봐서 심히 좌절 중이다. 물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간단히 접할 수 있지만, 그것과 실물은 엄연히 다르다.
 “야야, 이번 학교 축제에도 연예인은 안 부르겠지?”
 “우리 교장을 생각해 봐라.”
 “그렇겠지, 그 짠돌이 대마왕.”
 “키키키.”
 그때 내 등 뒤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축제라······?
 어느새 축제 기간이 되어 버렸다. 우리 학교는 6월 10일부터 6월 15일까지 축제를 한다. 어떻게 보면 휴식 기간인 것이다.
 그 대신 휴식 기간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시험 시즌이기 때문에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는 게 현실이다.
 “차예은 양이 우리 학교에 와 주었으면······.”
 “미쳤냐? 예은이가 여긴 왜 오냐?”
 “그건 그렇지. 난 그래도 축제니까 혹시나······.”
 “야, 걔 몸값이 얼만데! 짠돌이 교장이 잘도 하겠다.”
 “그렇겠지?”
 그때 내 귀에 들어오는 이름, 차예은.
 잘 나가는 최고의 아이돌이자, 천사 같은 성격에 천사 같은 외모를 가진 소녀. 지금은 리치 한 마리와 변태 천족 검사, 그리고 나와 같이 다니고 계신 분이다.
 그나저나 가르 그 자식, 잘 챙겼나 모르겠네.
 죽기 전에 일단 다 챙기라고는 했는데. 게다가 거기에는 다크프리스트의 여섯 개의 유물 중 한 개의 힌트가 있었다.
 괜히 걱정스럽다. 휴.
 “아, 그래도 기대된다. 이 칙칙한 남학교에서 여자를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그래, 그래!”
 내 등 뒤에서 계속 들려오는 칙칙한(?) 대화.
 미안하지만 나는 매일 보는데. 크하하하! 그것도 최고의 미소녀 아이돌 가수를 말이다. 사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예은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겨우겨우 참고 있는 것이다.
 “어이, 친구, 왜 그리 기운이 없나?”
 한편 게임을 못해서 축 처져 있는 나를 보더니 영현이 자식이 묻자, 난 그 물음에 힘없이 대답했다.
 “게임을 못해서.”
 “응? 왜 못하는데?”
 “전문용어로, 뒈졌다.”
 “하하하! 그 말은, 프리스트가 뒈졌다면 그 파티 전멸인 게냐?”
 “······.”
 “아이고! 이런 이상한 프리스트 만나서 모두 게임을 일주일이나 못하다니 정말 슬프겠구려. 하하하.”
 “웃지 마.”
 제길, 분하다.
 그런데 사실 난 프리스트도 아니다.
 다크프리스트다. 치료와 보호 마법을 걸어 주는 프리스트가 아니라, 오직 공격만을 위한 프리스트다.
 그리고 여기서 제일 중요한 점은 허접한 파티 사냥을 하다가 죽은 게 아니라 엄청나게 강한 보스급 몬스터와 1:1 맞장 뜨다가 죽은 거라는 사실이다. 물론 나 혼자도 아니고 놈과 같이 말이다.
 “이래서 프리스트는 잘 구해야 돼!”
 “······.”
 크윽, 정말 저 자식을!
 “하하하!”
 영현이 자식은 그렇게 얄밉게 한마디를 던지고 떠났다.
 크윽! 열 받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해를 하더라도 일단 죽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나는야 사랑······.
 그때 울리는 내 휴대폰, 누구지?
 나는 그런 의문을 안고 휴대폰 액정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딱 두 글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예은’이라는 글자가 말이다.
 게임에서는 못 만나는 사이지만 이렇게 거의 매일매일 통화하고 있다. 문자도 자주 주고받고 말이다. 사실 누가 보면 애인 사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난 지금 행복했다.
 후훗!
 나는 살며시 미소 지은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오빠.
 “응, 예은아. 무슨 일이야?”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전화해 봤어요.
 “으응.”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왜 이래, 이거? 갑자기 왜 이런 급 어색인 거냐. 헉! 미쳐 버리겠다.
 이상하게 머리에는 대화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지 정말 모르겠다.
 그렇게 내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허둥거리고 있을 때였다.
 “야, 축제 있잖아······.”
 주변에서 하는 대화가 내 귀에 들려왔다.
 그래, 축제다!
 “아, 예은아. 우리 학교 축제하는데 놀러 올래?”
 ―······축제요?
 나는 내가 말하고도 아차 했다.
 평범한 여자아이였으면 아무것도 아니었겠지만, 그녀는 연예인이었다. 그것도 최고를 달리는 연예인 말이다.
 그런 소녀를 일개 학교 축제에 부르다니, 나도 미쳤다.
 그래, 지금이라도 얼른 취소를······.
 ―갈게요.
 “엥?”
 ―오빠랑 같이 축제를 즐기고 싶어요.
 “······.”
 헉!
 나는 경악했다. 다른 것에 경악한 게 아니다. 예은의 한 마디 ‘오빠랑 같이 축제를 즐기고 싶어요.’라는 이 말이 나를 경악하게 만든 것이다.
 예은이한테 이런 소리를 듣다니, 정말 미쳐 버리겠다.
 ―오빠?
 예은이는 내 대답이 없자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고, 난 그제야 재빨리 정신을 차리면서 말했다.
 “아, 아냐. 근데 진짜 올 거야?”
 ―안······ 돼요?―
 “아니. 그게 아니고 네가 곤란할까 봐.”
 ―아, 괜찮아요. 확실하게 변장하고 갈 테니까요!
 
 윤현과의 통화를 끝낸 예은은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지난번 독화살 사건에서 무슨 일이 지켜 준다는 그 말을 들은 이후 윤현의 한마디 한마디에 심장이 떨렸다.
 물론 그전에도 윤현에 대한 좀 묘한 감정이 있긴 했지만, 그게 훨씬 심해진 것이다.
 “정말 내가 왜 이러지······.”
 어렸을 때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음악에만 몰두한 소녀였기에 이런 이상한 감정은 의아하기 그지없었다.
 
 아, 미치겠네.
 갑자기 일이 커졌다. 예은이 같은 톱스타 가수가 이런 비릿비릿한 학교에 온다니,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한편 충격적이었다.
 그나저나, 오면 무슨 수로 즐겁게 해 주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학교에서 재미있는 걸 발견해 내기 쉽지 않은데 말이다.
 물론 축제에서 다양한 볼거리가 많이 벌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도저히 예은이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뿐이었다.
 남자 녀석들이 스타킹을 신고 푸른색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춤을 추는 거라든가, 대본을 읽는 느낌이 강한 삼류 연극에도 끼지 못하는 100류 연극 따위를 한다든가, 남자 녀석들이 벨리댄스를 춘다든가······.
 이런 건 차마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으아악!”
 나는 절규했다.
 내가 왜 예은이에게 오라고 했을까.
 이상한 것만 잔뜩 보고, 오히려 나를 보는 시선이 이상해질까 봐 두렵기까지 했다. 그만큼 이놈의 학교 축제라는 게 정말 볼 거 하나도 없다는 거다.
 
 축제 당일.
 어느새 시간은 흘러 축제날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까지도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여기까지 온 예은이 즐거울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오빠.”
 “······아.”
 여전히 고민에 잠긴 채 예은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학교 정문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워낙 사람이 많아서 나를 부른 목소리의 주인공을 금세 찾지 못했지만, 머지않아 그 주인공을 알아볼 수 있었다.
 청바지에 녹색 티셔츠를 입고 청색 모자를 푹 뒤집어쓴 여자.
 여기서 여자라고 한 이유는 꽤나 긴 흑발 때문이다. 어찌 됐든 나를 부른 장본인은 바로 저분이셨다.
 “아, 예은아, 왔어?”
 “네에.”
 그녀는 내가 지난번 거의 실수로 초대한 예은이었다.
 그녀는 그때 나와의 통화에서 말했던 대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조금 커 보이는 청색 모자를 푹 눌러쓰니 진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오빠, 정말 기대돼요. 항상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된 학교 축제는 경험해 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
 그 말에 더욱 부담감이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놈의 학교는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되어 보이는 것이 없었는데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상한 것들을 보여 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최대한 정상적인 것만 보여 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나와 예은은 한참을 돌아다녔다.
 물론 말 그대로 정말 정상적인 행사들만 구경했다. 절대 남자들끼리 블루스를 추는 곳 따위는 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2시간 정도를 걷자, 예은이 조금 힘들어 하는 듯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보고 다소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좀 쉴까?”
 “네, 많이 걸어서 조금 힘들어요. 헤.”
 “크윽.”
 귀, 귀엽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귀엽다. 이런 현상은 도저히 어떻게 설명해야 된단 말인가.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나저나 아무도 없는 데서 쉬어야겠는데, 어디가 좋을까?
 나는 고민했다. 쉬려면 제대로 쉬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있는 자리는 역시 거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축제날에 사람 없는 곳이라니, 정말 찾기 힘들다. 하지만 그런 곳이······ 있다!
 순간 내 머릿속을 휙 지나가는 장소. 분명 축제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가자!”
 “······?”
 난 어리둥절해 하는 예은을 데리고 그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바로 학교 옥상!
 항상 비어 있는 곳이지만 오늘 따라 더욱 한적했다. 어떤 이상한 애들이 이런 축제날에 옥상에 올라와서 궁상을 떨겠는가?
 아니, 나와 예은이가 여기에 왔으니 우리가 그 ‘어떤 이상한 애들’의 범주에 들어가는 거냐? 그거 참 애매하군.
 옥상에 올라오자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고, 그제야 예은은 모자를 벗었다. 꽤나 더웠는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덥지?”
 나는 그렇게 물으면서 예은의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그런 내 행동에 예은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
 갑작스러운 이상 반응에 나는 의아한 마음이 들어 예은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예은이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 오빠. 여기 참 시원하네요.”
 왠지 황급히 말을 돌리는 느낌이 강했지만, 뭐 상관없었다. 말하기 싫은 걸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 여기 시원하지. 명당이라고, 명당.”
 나는 시원하다고 말하는 예은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진짜 명당이다.
 이곳은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낮잠 자기 딱 좋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장소인 것이다.
 “오빠, 즐거웠어요.”
 “으응?”
 “오늘 축제,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 그래?”
 “네!”
 나는 즐거웠다는 예은의 말에 활짝 미소 지었다.
 다행이다. 혹시라도 이 칙칙한 축제를 보고 크게 실망할까 봐 엄청 걱정했는데,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예상외로 이런 축제조차도 너무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 다행이도다. 다행이도다.
 즐거웠다는 예은의 말에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앗!”
 예은의 몸이 급격히 기울어졌다.
 아마도 걸으려다가 발을 헛디딘 듯싶었다. 난 넘어지려는 예은에게 다가가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낚아채 껴안았다.
 물론 불순한 마음으로 껴안은 건 아니고 지탱해 주려고 그런 것이다.
 “오, 오빠.”
 “미, 미안.”
 “아, 아니에요.”
 내가 사과하자 예은이 조심스럽게 내 품속에서 빠져나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아, 젠장. 이렇게 행복하면서도 고문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다니, 극과 극 체험이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머쓱한 모습으로 서 있을 때였다.
 “호오! 이건 완전 대박감인데?”
 “······.”
 “이름 차예은. 17살의 나이로, 한국 최대 아이돌 가수이자 최고의 미소녀께서 우리 학교 학생하고 데이트를 하다니 정말 축하할 일이네. 하하하!”
 “······.”
 “그리고 대담하게 안기까지, 멋진 청춘이야.”
 ······!
 제길!
 나는 그만 굳어 버렸다.
 나뿐만 아니라 예은이도 굳었다.
 우리 앞에 있는 한 존재 때문이었다.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젊었을 때 꽤나 잘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법한 단정한 이목구비를 가진 할아버지다.
 그런데 이분, 그냥 할아버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교장 선생님.”
 “우리 학교에서 유명한 윤현 군 아닌가. 허허허.”
 “······.”
 “너무 충격적인 장면을 봐 버렸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최고의 아이돌 미소녀 가수와 우리 학교 최고의 유명인 윤현 군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니!”
 “오해입니다, 절대적으로.”
 “하지만 안는 장면을 봤는데? 후후.”
 “······.”
 크윽! 저 사악한 할아범, 목적이 뭐야?! 목적이 뭐기에 그리 음침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게냐?!
 나는 놀라서 아예 굳어 버린 예은의 앞을 막아서면서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하하하! 난 타협을 좋아하네.”
 “용건을 말하세요.”
 “하하, 용건이라? 그래, 말하지. 내 목적은 단 한 가지, 차예은 양이 오늘 우리 학교 특별 게스트로서 노래를 좀 불러 줬으면 하는데.”
 “안 됩니다!”
 그 말에 나는 바로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오늘 이곳에 쉬러 온 예은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다니 말도 안 된다.
 “윤현 군, 그리 소리 지르면 연예통신에 들리나? 하하하.”
 “······.”
 “예은 양, 물론 그냥은 아니네. 자네가 노래를 불러 주면 윤현 군에게는 항상 특별 혜택이 따를 걸세.”
 “특별 혜택이요?”
 내가 특별 혜택을 받는다는 말에 예은이 반응을 보였다.
 안 된다! 이제는 나까지 끌어들이다니 저 망할 할아범 같으니!
 “그래, 특별 혜택 말이야. 후후후. 한마디로 편해진다는 거야.”
 “그, 그럼 할게요.”
 “아, 안 돼. 예은아, 나 때문에 괜히······.”
 “아니에요. 어차피 저는 노래하는 거 좋아하는걸요.”
 싱긋.
 내가 만류하려 하자, 그녀는 웃음 한 방으로 그런 나를 잠재웠다. 정말 무섭다. 크윽!
 “현명한 선택이네. 하하하. 그럼 가지!”
 빌어먹을 영감탱이! 으아악! 분하다!
 
 “모두 집중!”
 “······?”
 “······?”
 “······?”
 즐겁게 놀던 학생들과 사람들은 갑자기 운동장 무대 위에서 마이크로 큰 목소리를 내는 교장 영감탱이를 쳐다보았다. 교장 영감은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걸 느끼자, 말을 이어 나갔다.
 “커험! 사실 제군들에게 비밀리에 진행된 프로젝트가 있네.”
 “······?”
 “······?”
 교장 영감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망할 영감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영감이 말했다.
 “그 프로젝트란 오늘 축제에 유명한 게스트를 초대하는 거라네.”
 웅성웅성.
 “저, 정말?”
 “유명한 게스트?”
 “누구?!”
 “그런 게 있었어?”
 교장의 한마디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저 망할 영감탱이, 언제부터 비밀리에 그딴 프로젝트를 가동했다는 거냐? 한 마디로 요약하면 구라다, 100퍼센트 자연산 구라.
 교장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내 돈을 들여 초대했네. 하하하. 차예은 양을 말이야.”
 “······마, 말도 안 돼!”
 “차예은?”
 “우리의 아이돌 차예은!”
 “미친 거 아냐?”
 “진짜, 진짜?”
 차예은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엄청 흥분했다.
 특히 남자 녀석들, 거의 반쯤 미쳐 보인다. 쉽게 말해 미쳤다고 말해도 될 듯싶다. 그만큼 내 눈에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자, 즐기게. 예은 양, 나오게나. 허허허.”
 그 구라 영감탱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대 위로 서서히 올라오는 예은. 곧이어 폭발적인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꺅!”
 “지, 진짜다!”
 “으아악! 진짜 예뻐!”
 “나 돌아 버리겠다.”
 내 귀청 다 떨어지겠다.
 아, 예은아, 정말 미안하다. 너를 지켜 주지 못하다니······.
 한편, 다른 사람들이 난리를 칠 때 나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예은이를 바라보았다. 아까 하겠다는 걸 강제로라도 말렸어야 했는데. 크윽!
 이제야 후회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벌써 예은은 무대 위에 올라섰으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합니다!”
 “사랑해요!”
 “결혼합시다!”
 “저랑요!”
 예은이가 마이크에 대고 수줍게 한마디 하자, 일제히 난리치는 남자 녀석들. 특히 ‘결혼합시다’라는 말이 유난히 거슬린다.
 언제 봤다고 결혼이냐, 응? 안 그래도 그 망할 영감탱이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데 말이다.
 “그럼 노래 부를게요.”
 “으악!”
 “불러, 불러!”
 예은의 한마디 한마디에 버서커가 되어 가는 남자 녀석들.
 같은 남자지만 정말 징그럽다. 저 자식들, 크윽!
 그때 예은의 곱고 고운 음색의 발라드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의 차예은으로 만들어 준 노래, ‘영원한 사랑’이었다.
 
 사랑이라는 건 왜 이리 달콤한 걸까요.
 영혼이 되더라도 저는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그게 저니까요.
 사랑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제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나 하는 걸까요?
 나는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언제까지나. 그게 제가 이룰 수 없는 바람이라도요.
 
 확실히 다르다.
 평소 목소리도 너무나도 청아해서 듣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지만, 직접 부르는 노래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그녀의 노랫소리가 작살이라는 거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색과 너무나도 아름다운 목소리. 가히 천사라고 해도 될 듯싶다.
 다음 순간 노래를 부르던 예은이 살짝 내 쪽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고, 나도 그 미소에 응답하듯 웃었다.
 그런데······.
 “나, 나를 보고 웃었어?”
 “아니야! 나야!”
 “이 자식이 나라니까!”
 “뭔 개소리냐!”
 “너 죽을래!”
 “어쭈! 이 자식이!”
 “죽여 버리겠어!”
 ······분명 날 보고 웃은 것 같은데 괜히 옆에 있던 다른 녀석들이 흥분해서 서로 자신을 보고 웃었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심지어는 멱살까지 잡는다.
 아, 정말 난감하다.
 
 “미안해.”
 “아니에요.”
 나는 무대에서 내려온 예은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사실 무대 밑으로 내려온 뒤가 더 문제였다. 그녀의 사인 한 장이라도 받으려 몰려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나마 선생님들의 통제가 없었다면 예은은 지금 이곳 옥상으로 대피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미안.”
 “전혀 미안해 하실 필요 없어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걸요.”
 “정말?”
 “네.”
 싱긋.
 그 말을 하면서 나를 바라보며 웃는 예은. 정말 예쁘다.
 그리고 오늘따라 더욱 예쁘다. 그녀의 노래를 들은 직후라서 그런 걸까.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붉게 변해 가는 태양 빛에 물든 예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돌린 예은과 눈이 마주쳤다.
 난 그런 예은에게 나도 모르게 말했다.
 “예은아.”
 “네?”
 “나랑 같이 있어 줄 거지?”
 “물론요.”
 그 말에 나는 안심했다.
 그녀와 함께라면 게임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기도하는 리치와 맞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 천족 검사도 충분히 커버가 될 정도로.
 그런데 그 둘 말고 혹시라도 이상한 놈이 더 추가되면 어떻게 하지?
 나는 괜한 불안감에 온몸을 떨었다.
 
 
 
 
 
 14장 무기 개조
 
 
 
 
 
 
 
 
 나는 돌아왔다.
 드디어 말이다!
 크하하! 드디어 사망 페널티인 일주일 접속 금지를 풀고 게임에 접속했다.
 게임에 접속하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내가 스켈레톤 마스터와 혈투를 벌였던 그 제단이었다.
 물론 내 몸은 유령체의 모습이었고.
 이 게임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스템.
 이렇게 사망해도 시체가 제자리에 남고, 다시 그 자리에서 부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너무나도 실제 지향적인 게임 탓에 그런 시스템이 도입된 듯싶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나처럼 대장을 잡거나 몬스터를 잡다가 죽은 존재들은 죽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진 것이 유령 상태에서는 강제로 마을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설정이었다.
 즉 요약하자면, 죽으면 유령 상태가 되어 버리고, 그 상태에서 그 자리에서 부활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마을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선택할 방법은 한 가지,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어차피 이곳 스켈레톤 마스터를 내가 해치웠으니 별 상관없었다. 물론 리젠이 될 수도 있지만 대장급 몬스터의 리젠은 최소 못해도 몇 달 이상이다.
 파지짓!
 나는 곧바로 내 몸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붕붕 날아서 들어갔다. 그러자 마치 짜릿한 전류가 흐르듯 미세한 충격이 내 몸을 강타했다.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으아악!”
 하지만 나는 깨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웬 해골바가지가 내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형제여.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이건 신의 축복입니다.”
 가르냐?
 가르겠지.
 해골뼈다귀 주제에 신을 찬양하는 놈이라고 해 봤자 단 한 놈밖에 없다. 그 이름하여 가르.
 그나저나 내가 깨어난 게 신의 축복이라니······.
 “나는 시간이 다 돼서 깨어난 건데?”
 “아닙니다. 신의 축복입니다.”
 “······.”
 “신께서 잠든 형제를 깨우신 겁니다.”
 저 자식은 모든 걸 신과 연결시킨다. 하지만 저런 모습이 그리 싫지는 않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걸까? 크흠!
 그렇게 가르를 쳐다보던 나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야, 가르.”
 “왜 그러십니까?”
 “그때 내가 챙기라는 거 다 챙겼어?”
 “물론입니다!”
 내 말에 가르는 한 권의 책과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이 책은 저기 ‘어둠보다 어두운 곳’이라는 문구가 적힌 곳 바로 밑에 있었고, 목걸이는 형제가 처리한 스켈레톤 마스터가 떨어뜨린 물건입니다.”
 “오호!”
 난 그 말에 일단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렇다면 이게 그 자식이 뱉은 거라는 소리?
 그럼 당장 확인에 들어가야지.
 
 창―?????―
 감정사에게 가셔야 알 수 있습니다.
 
 역시 에픽 이상이다. 강력한 대장급 몬스터에게서 떨어지는 건 역시나 이런 좋은 아이템이다.
 크흐흐.
 그런 생각이 들자 내 입은 자연스럽게 찢어졌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속으로 웃은 뒤 이상한 문구가 적힌 곳 밑에 있었다는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펼쳤는데······.
 “이건 무슨 개뼈다귀 같은 글씨체냐?”
 말 그대로 마치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듯한 모양의 문자가 내 눈을 마구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런 해괴망측한 글자는 처음이다.
 “이런······.”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어이없는······.
 “번역가를 찾아가면 어떻습니까, 형제여.”
 “번역가?”
 “네, 그런 이상한 글씨를 번역해 주는 존재들이죠.”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애들이 있었지?
 그런데 가르 저 자식은 어째서 나보다 그런 걸 더 잘 아냐. 정말 신비한 인간, 아니 리치다. 크흠.
 그나저나 일단 이 알 수 없는 제단을 벗어나야지.
 그러고 나서 말이야, 데인 자식, 기대하라고······. 크하하하!
 
 “으아악! 그, 그만!”
 “닥쳐!”
 “으아악!”
 “왜, 때려 달라며?”
 “그, 그만! 스톱!”
 “조용히 해! 네 이상한 정보 때문에 나 죽을 뻔, 아니 죽었어. 이 자식아!”
 퍽! 퍽! 퍽!
 “크아악!”
 나는 정말 온몸의 힘을 모두 짜내 사정없이 밟아 댔다. 평소라면 아아, 하며 더 때려 달라는 이상한 대사를 내뱉을 텐데, 때리는 강도가 보통이 아닌지 아픔과 고통의 비명을 질러 댄다.
 그래, 질러라. 지르는 거다. 하하하!
 
 “훌쩍.”
 데인은 찢어진 옷을 여민 채 훌쩍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상한 장면으로 오해하겠다. 분명히 말하지만 데인과 나 사이는 아무런 이상한 것도 없었다.
 그냥 사랑의 어루만짐?
 “형제여.”
 한편 가르는 그런 데인을 안타까운 듯 바라보았다.
 나는 데인을 보면서 말했다.
 “야, 데인.”
 “훌쩍.”
 “대답 안 하냐?”
 “헉! 왜?”
 내 말에 다급히 일어서서 대답하는 데인. 군기가 바짝 들었군.
 나는 데인에게 천천히 다가가면서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 난 뒈졌거든.”
 “사, 살려 줘!”
 “거기 멈춰!”
 내 말에 데인은 나를 피해 달려가서 황급히 문을 열어 버렸다.
 문이 열리자, 밖에서 대기 중이었던 예은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길, 데인 자식!
 “오빠, 무슨 일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야. 하하!”
 “처, 천사 양. 제, 제발 나를 구해 줘요.”
 “······.”
 으윽! 저 자식을 그냥! 내가 이미지 관리만 아니었다면 당장······ 크아악!
 하지만 예은이 있었다. 이미지 관리가 필요하다. 제길,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네?”
 “번역이 불가능합니다.”
 “······!”
 우리는 곧바로 번역사를 찾았다. 하지만 그에게 들려온 대답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그건 바로 번역 불가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
 “이런 문자는 생전 처음입니다. 추측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문자네요.”
 “······.”
 그, 그럴 수가!
 지렁이에다 개 글씨로 보이는 이것이 그리 심오한(?) 글자란 말이냐?
 그렇게 내가 좌절에 빠져 들기 직전, 귀에 번쩍 뜨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하면 유니시스 님이 번역 가능할지도요.”
 “유니시스 님이요?”
 “네, 최고의 번역사로 알려진 분입니다. 그분이라면 어떤 번역도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에게 들려온 희망적인 소식.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어디 있는데요?”
 “잘 모릅니다.”
 “······.”
 “워낙 한 곳에 머무시는 분이 아니어서······.”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무슨 수로 찾아내느냔 말이다!
 그렇게 더욱 쓸모없는 정보에 좌절하는 나의 머릿속에 문득 한 단체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도둑 길드. 정보의 총 집합체라는 거기라면?
 
 “한번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내가 다시 찾아가자, 도둑 길드 마스터가 대뜸 저 말부터 던진다. 한번 찾아오려고 했다고? 왜?
 “저번에 드리지 못한 게 있거든요.”
 도둑 길드의 마스터는 그 말과 함께 은색으로 빛나는 배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예요?”
 “저희 도둑 길드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배지입니다.”
 “······.”
 “그게 있으면 모든 정보를 알 수 있고, 심지어는 길드원까지 동원할 수 있습니다.”
 헉!
 뭐, 뭐라고! 모든 정보를 알 수 있고 길드원까지 동원해 준다고? 그런 임팩트한 배지를 왜 나한테 주는 거지?
 그리고, 이거 얼마 받고 파는 거야?
 내 표정을 본 길드 마스터가 오히려 웃으면서 말했다.
 “무료입니다.”
 “저, 정말요?”
 “네.”
 “······.”
 크윽! 이 무슨 엄청나게 화려한 장땡인 것이냐!
 이런 걸 내게 주다니!
 “이유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그냥 드리는 겁니다.”
 안 물어요, 걱정 말아요.
 뭐 사실 묻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공짜로 이렇게 좋은 것을 주는데, 그 정도야.
 “아, 참.”
 “······?”
 “유니시스라는 번역사를 찾아 주세요.”
 “유니시스 님 말입니까?”
 “아시는 분이에요?”
 “물론입니다. 유명하신 분이니까요. 최고의 번역사로 알려진 분을 제가 모르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다. 최고의 정보력을 가졌다는 도둑 길드 마스터가 그렇게나 유명한 사람을 모르면 말이 안 되었다.
 그나저나 이야기가 쉽게 풀리니 정말 좋은데!
 “찾으실 수 있으시죠?”
 “한 이틀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야 상관없어요.”
 “그럼 최선을 다해 빠른 시일 안에 찾아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게 웬 떡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이런 엄청나고 판타스틱한 배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배지 덕택에 공짜로 정보도 얻었다. 이건 정말 대박이다.
 
 “그나저나 이틀 동안 뭐 하지?”
 다시 도둑 길드 밖으로 나온 나는 고민했다.
 이틀 동안 무엇을 할까에 대해서였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초보자 울트라 맹독 빙결 메이스 군과 지금까지 보스들에게서 먹은 아이템들······.
 그래!
 “예은아.”
 “네?”
 “무기 개조랑 아이템 감정 하러 가자!”
 
 “······왜 다크프리스트의 제거 소식이 들려오지 않지?”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화난 목소리로 말하자, 그의 부하로 보이는 존재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추적에 실패했습니다.”
 “고작 그딴 놈의 동태조차도 찾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정보력이 약한가?”
 “아, 아닙니다. 그, 그게······ 도둑 길드 놈들이 자꾸 방해해서······. 거짓 정보를 흘려서 찾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도둑 길드 놈들.”
 도둑 길드라는 말에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는 기분이 무척 나빠졌다. 그 자식들이 아직도 자신을 방해하다니······.
 “그래도 다크프리스트만은 게임을 그만두게 해야 한다, 다크프리스트만은. 다른 척살 대상이 게임을 계속한다면 크게 상관이 없지만, 이놈은 게임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 게임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한다. 알겠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크프리스트』 제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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