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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9.09.06 조회 1,013 추천 2


 Chapter 00. 영혼 탐색기 (1)
 
 
 
 -영주님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는 금발의 사내가 충고하듯 말했다.
 “하팔라 님, 이만 항복하시지요.”
 하팔라의 희고 풍성한 수염이 부르르 떨리며 노성이 터져 나왔다.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금발 사내는 하팔라의 꾸짖음에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대꾸했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제발 저에게 동료들까지 희생시키는 불행을 겪지 않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팔라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이놈! 누가 네놈의 동료란 말이냐!”
 “저를 욕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괜한 목숨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만 포기하고 항복하신다면 공작님께서 여러분을 크게 중용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그리언가의 가신이라면 이와 같은 난세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누구 하나 탐나지 않은 자들이 없다. 기사며, 마법사며, 행정관까지 하나같이 인재들이었다.
 하팔라만 보아도 그렇다. 비록 나이가 들어 병색이 완연해도 과거 대륙 제일의 마법사라 칭송받았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리언 가문의 기사들은 일당백의 용사들로 수많은 전쟁에서 그 용맹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렇게 소리치지만 마시고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이대로 전부 죽을 생각이십니까?”
 금발 사내의 회유에도 하팔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그 입 다물라! 네놈이 주군의 등에 칼을 박았을 때부터 그리언 가문과 롱플라미스 백성의 원수인 것이다. 그 간특한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거라.”
 상대가 전혀 항복할 기색이 없자 금발 사내는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리언 가문은 대가 끊어졌습니다. 이미 끊어진 밧줄을 어찌 붙잡고 놓지 않는 것입니까!”
 “육시랄 놈 같으니라고! 네놈의 주둥아리로 어찌 그리언 가문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이냐!”
 하팔라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마법을 펼쳤다.
 “파이어 스피어(Fire Spear)!”
 허공에 커다란 화염창이 생성되어 사방에 폭격을 가했다.
 콰르릉~ 쾅!
 거대한 불길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마법의 위력은 엄청났다. 불길에 휩쓸린 나무와 식물들이 순식간에 재로 변해 버릴 정도였다.
 “배신자 베누스여! 네놈을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주군께서 깨어나신다면 롱플라미스의 대지에 다시 그리언 후작가의 깃발이 펄럭일 것이다.”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주변에 큰 피해가 없는 것에 베누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수한 것인가?’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피해를 입은 곳을 찾기 어려웠다.
 베누스는 마법에 대한 위험이 사라지자 그리언 가문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하팔라의 외침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비록 하팔라가 노환으로 오늘내일한다지만 그의 말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베누스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악을 썼다.
 “헛된 망상입니다! 이미 죽어 버린 사람을 무슨 수로 다시 살려 낸단 말입니까!”
 “기다려라. 결코 나의 말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팔라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자 베누스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서 추적해!”
 마법사를 추격할 때는 마법사가 제격이다. 비록 하팔라의 실력이 출중하다고는 하지만 다수의 마법사가 뒤따른다면 어느 정도 상대가 가능했다. 하나 어디에도 아군의 마법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런, 당했구나.”
 하팔라의 마법은 애초부터 마법사만을 노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병사들은 멀쩡하고 마법사만 전멸될 리 없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마법사들을 인근에 숨겨 두었는데, 눈치 빠른 노인네가 그것을 알고 뒤통수를 쳤다.
 “젠장!”
 마법사가 없다면 깊은 산속에서 도망자들을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베누스는 피가 흘러내릴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살아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들을 잡아야 한다. 잡지 못한다면, 죽여야 해!’
 자신이 직접 그리언 후작의 등에 칼을 찔러 넣었다. 만일을 대비하여 칼에 맹독까지 발라 놓은 상태였다. 아무리 대륙 최고의 마법사라 할지라도 그리언 후작을 살려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심장이 멈추어 버린 사람을 어찌 다시 살려 낸단 말인가.
 분명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베누스의 귓가에 하팔라의 외침이 계속해서 메아리치며 떠나질 않았다.
 “추적해! 어서 흔적을 찾아라!”
 베누스는 가슴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불안감을 잊기 위해 부하들은 물론이고 자신까지 혹독하게 내몰았다.
 
  * * *
 
 베누스의 추적은 끈질겼다.
 하팔라의 공격으로 마법사들이 전멸당해 빠르고 효율적인 추적은 어려웠지만 많은 수의 인원을 동원해 조금씩 흔적을 찾아내며 뒤를 쫓았다.
 이틀이 지나자 드디어 적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을 수 있게 되었다.
 베누스는 결코 느슨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적을 사지에 몰아넣고 견제를 시작했다.
 이번에 놓치게 된다면 언제 다시 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몬스터 산맥은 무척이나 깊고 험하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종적을 놓친다면 추격이 어려웠다.
 베누스는 초조했다.
 ‘마냥 시간을 끌어 좋을 것이 없어.’
 대형 몬스터가 나타나면 병력을 물릴 수밖에 없다. 이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놓아주는 것과 같았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내야 한다.”
 베누스의 외침에 병사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조준!”
 병사들이 활시위를 당겼다.
 “발사!”
 퉁퉁~ 투투투퉁!
 날카로운 화살이 대지를 적시는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살은 단단한 방패에 막혀서 튕겨 나갔다.
 “이미 포위되었다. 그만 항복해라!”
 베누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전진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방패에 의지해 화살을 피해 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신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기에 대처가 늦어 그만 상처를 입고 만 것이다.
 숲속에 몸을 피하고 있어 비교적 피해가 적었으나 몇몇 동료들은 이미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이 끊어진 후였다. 방패로 겨우 막아 내고는 있지만 계속해서 몸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제가 이곳에 남겠습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볼 테니 서둘러 피하십시오.”
 방패로 화살을 막아 내고 있던 청년이 말했다.
 하팔라는 청년의 말에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남으려면 나이도 많고 마법까지 익힌 자신이 남아 적을 막아야 했다. 젊고 꿈 많은 청년을 허무하게 희생시킬 수 없는 일이었다.
 ‘겨우 이틀인가······.’
 적의 도발에 넘어가는 척하면서 마법사들을 몰살시켰지만 결국 이렇게 다시 적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 것이다.
 철컥! 철컥!
 청년은 온몸을 두르고 있는 갑옷을 바닥에 내던졌다.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면 무거운 갑옷은 짐이 될 뿐이다.
 이런 숲속에서라면 더욱더······.
 하나둘 갑옷을 바닥에 떨어트리는 사람이 늘어 가고 최종적으로 열 명이 되었다. 일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숫자였다.
 “어떻게든 막아 보겠습니다. 하팔라 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주군을 살려 주십시오.”
 다부지게 말하는 청년의 모습에서 언제나 웃음 짓던 그리스의 모습이 아련하게 배어났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베누스의 배신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목숨을 던져 주군을 구한 그리스, 이제는 그의 동생이 주군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려고 한다. 역시 형제는 닮는 모양이다.
 “어서 항복하십시오! 더 이상 저항해 보았자 희생만 늘어날 뿐입니다!”
 베누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기사들은 손에서 피가 배어 나오도록 주먹을 말아 쥐었다.
 “배신자 베누스!”
 “주군께서 그렇게 신임하였거늘,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기사들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배어 나왔다.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도망갈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배신자를 베어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모두 피해.”
 화살이 다시 한 번 쏟아져 내렸다.
 이번에는 방패와 지형을 이용하여 엄폐를 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러나 결코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꼭 살아남아야 하네.”
 하팔라는 목숨을 내던지려는 기사들의 어깨를 한 번씩 두드려 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언가의 기사는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베누스의 목을 꼭 베어 버리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신자를 처단할 것이니 서둘러 피하십시오.”
 목숨 걸고 시간을 벌려는 열 명의 결사대가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얼마 후 적이 있다고 짐작되는 장소에서 혼란이 일어났고 쉴 새 없이 날아오던 화살이 잦아들었다.
 결사대는 죽을 것을 뻔히 알고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몸을 내던졌다. 저들의 희생을 결코 헛되게 할 수는 없었다.
 하팔라는 눈물을 머금고 일행을 재촉하였다.
 “어서 이동하세.”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한다. 저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다.
 하팔라는 무거운 관을 짊어지고도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 제자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여자의 몸으로 관을 짊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녀는 손을 놓지 않았다.
 “힘들지 않느냐?”
 “괜찮아요. 영주님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성한 몸도 아니었다. 여러 차례 적의 공격에 적중되어 적지 않은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고집스럽게 관을 옮기고 있었다.
 안타까운 심정이 깊게 배어 나왔지만 제자 하나만 챙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힘들고 고단한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추격은 없는 듯합니다.”
 결사대가 끈질기게 적을 막아선 덕분인지 이후 적의 추격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몬스터 산맥이라고 불리는 곳이라 적들이 스스로 추격을 포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야 한숨 돌릴 수 있겠군.”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들의 고생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일행의 행보는 이후에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몬스터 산맥은 이름 그대로 몬스터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다. 원래 이름은 몬스터 산맥이 아니었지만 워낙 많은 몬스터가 서식하는 지역이라 원래의 이름은 잊힌 지 오래였다.
 일행보다 앞서 있던 척후병이 돌아왔다.
 그들의 옷은 여기저기 핏물로 얼룩져 있었다. 옷자락을 찢어 낸 헝겊으로 상처를 동여맨 모습을 보니 그간의 행보가 얼마나 고달팠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헉헉. 오, 오우거가 나타났습니다!”
 척후병의 보고에도 하팔라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재빨리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하팔라는 오우거의 위치를 확인한 후에 빠르게 마법 주문을 펼쳤다.
 마법을 쓸 만한 상태가 아니었으나 자신만 고생한다면 나머지 인원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기에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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