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아, 너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독립운동을 했을 거 같냐?”
독립유공자 후손이자 비정규직 시간강사인 석진에게 친구 녀석 한 명이 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다······ 후손들을 위해서라면 그냥 자기 영달을 위해 사는 게 나았을지도······ 어차피 독립이 우리 손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그래서 결국은 두 조각으로 쪼개진 거 아니겠냐?”
“그래도 네 성격에 그랬을 것 같진 않은데?”
“내 성격이 뭐? 다들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살았던 거야. 나라고 별반 다르겠냐?”
좁은 선술집에서 마주 앉은 친구는 석진이 왜 그렇게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했다. 여러 차례의 논문으로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인정받았지만, 몇 년째 정규직 교수 임용에서 떨어지고 있는 석진이었다.
“네가 겸임교수로 있는 학교 총장이 친일파 후손이라며? 정말 아이러니하다. 친일파는 물려받은 재산으로 잘 먹고 잘살고······ 이역만리에서 생고생한 독립운동가 자손은 이렇게 비정규직이나 전전하고 말이야······! 에잇! 한잔 마셧!”
병구는 친구인 석진 대신에 현실을 탓해주었다. 석진은 그런 병구가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이제는 정말 역사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만 같았다.
‘이제는······ 남들처럼 계산적으로 살자. 돈도 안 되는 거 한다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크으흐! 쓰다! 소주도 쓰고! 인생도 쓰고!”
“힘내! 몇 년 하다 보면 또 기회가 오겠지. 살다 보니까 기회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오더라. 다 그때를 위해 준비하는 거로 생각해······.”
병구는 술에 취해 엎어진 석진의 등을 두드렸다.
“기회······ 그래 기회는 항상 기회주의자들이 잡아 왔지! 암! 개새끼들······딸꾹!”
석진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까마득한 심연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깜깜한 사방. 순간 석진은 전혀 다른 세계에 떨어진 이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석진은 손끝의 감각이 현실 같지가 않음을 느꼈다. 마치 영혼이 된 듯 의식이 육체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아직 꿈속인가······아니면 현실인가?’
석진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딸각하는 소리와 함께 조명이 탁 켜졌다. 마치 3인칭 화면을 보는 듯 눈앞에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어! 왜 내가 저기 있지?’
낡은 나무 의자에 앉은 자신의 앞으로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시야를 가렸다.
“이석진 씨! 일어나시오!”
석진이 그런 상황이 가위눌린 거로 생각하고는 꿈에서 깨어나려 손가락을 움직였다. 하지만 의식은 고정된 채로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판결 시작하겠습니다. 피고 이석진은 반민족 행위자로서 선대로부터 받아온 작위를 이어받아 조선인들에 대한 학살과 경제수탈, 전쟁동원에 앞장선 죄가 인정된다. 고로 본 법정은 피고 이석진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한다!”
사형? 석진은 사형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이내 시야는 넓어졌고, 자신의 뒤에 수많은 사람이 분노한 눈으로 재판받는 석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곳은 법정이었다.
낯선 상황, 낯선 세계. 사람들은 전부 무채색의 어색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때 뒤쪽 방청객 중 일부는 피고인 석진에게 날달걀을 던졌다.
퍽! 퍼퍽!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뻔뻔한 인간!”
“배신자 이석진을 처단하라!”
“당장 끌어내! 민족반역자는 찢어 죽여야 해!”
땅! 땅! 땅!
판사는 법봉을 두드리며 방청객들을 진정시켰다.
“법정에서 소란을 일으키지 마세요!”
그제야 지켜만 보고 있던 법정의 수위는 날달걀을 던진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냈다.
“이제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문명국가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는 적합한 법 절차에 따라 반민족 행위자에 관한 법의 판결이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감정적인 대응은 다들 자제하세요!”
‘엥? 여기가 북한인가?’
역사학자인 석진도 북한에서 친일파들이 어떻게 처형됐는지 구체적으로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는 자신이 친일파로 몰렸다는 것이었다.
평행우주, 과거로의 회귀, 빙의? 석진은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했다.
죄명은 1급 반민족행위. 석진은 부친인 이완용의 아들로 1926년 이완용이 사망한 이후, 그의 작위를 이어받으면서 계속해서 친일행위에 앞장섰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완용의 아들이라고? 그리고 내가 친일을 했다고······젠장!’
석진은 입을 열어 변명을 해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의식은 3인칭 시점에 갇혀 있었다.
낯선 세계의 시간은 1950년 6월. 그리고 장소는 평양이었다. 절대 우호적이지 않아 보이는 국선변호사는 내게 그곳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이라고 했다.
석진은 점차 자신이 과거의 역사 속에 들어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근데 1950년 6월이라고······? 설마 6.25 전쟁 직전?’
“어이가 없네. 왜 내가 친일파냐고······! 제길!”
3인칭 시점 속에서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그건 마치 오래된 필름이 지나가듯 훅훅 지나갔고, 최종선고가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곳의 재판은 2심제였다. 내일 사형이 확정되면 정말 처형된다는 의미였다.
석진은 어떻게든 3인칭 시점의 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하지만 밤새 발버둥을 쳐봐도 의식은 3인칭 시야에 갇혀 있었다.
펑! 펑!
1급 반민족 행위자 이석진의 재판은 세간의 관심을 끄는 듯했다. 기자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었고, 언뜻 보기에도 몇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법원 건물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피고 이석진. 최후 변론하세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석진은 3인칭 시점의 세계에서 자신이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답답했다.
‘제대로 된 변명이라도 해보라고!’
“흠흠······그럼 최종 선고하겠습니다. 1급 반민족행위로 기소된 피고 이석진에게 본 법정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
판사는 냉정한 얼굴로 석진을 내려다본 후, 법봉을 세 번 두드렸다.
땅! 땅! 땅!
석진은 정말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의 의미를 실감했다. 판결 순간 석진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전 진짜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고요! 제가 누군지 알려주세요! 지문조회라도 해보라고요!”
석진은 힘껏 소리쳤지만, 3인칭 시점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외쳐지지 않았고 아무도 석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냥 친일파가 아니었다. 친일파의 대표주자 이완용! 그의 아들이자 그보다 더 악랄한 매국 행위에 앞장섰던 이석진이었다.
“내가 아니라니까요······.”
석진의 중얼거림은 아랑곳없이 3인칭 시점의 석진은 교도관들에 의해 독방에 감금됐다.
탕! 두꺼운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석진의 귓가에 메아리치듯 맴돌았다. 그렇게 석진은 자포자기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낯선 세계에서 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석진은 문득 꿈속에서조차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한번 누려나 봤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그때 귓속에서 이명이 들렸다. 마치 비행기의 기체가 상승할 때처럼 귀가 멍해졌고 그 안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이내 극심한 두통이 시작됐다. 석진은 외부의 무언가가 몸속으로 주입되는 듯 이질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불쾌감이었다.
기억의 동기화? 석진은 자신이 누군가로 빙의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었다. 왜냐면 얼굴이 원래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낯선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완용의 셋째 아들 이석진으로 살아왔던 부귀영화들! 그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과 고위관료들. 그리고 살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들었던 친일행각의 장면들.
석진은 여전히 3인칭 시점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그때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석진! 이석진! 일어나!”
희미하게 눈을 떠보니 누군가 석진의 앞에 서 있었다. 두꺼운 코트를 입은 그는 콧수염을 기른 장년의 남자였다.
석진은 그제야 자신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드디어 3인칭 시점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것이었다.
“누구세요·········?”
“누구긴 누구야. 네 할아비다.”
“네?”
석진은 한 번도 자신의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 앞에 자신이 조부임을 자처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네 놈이 하도 나를 원망해대서 저승에서 편히 쉴 수 있어야지. 내가 독립운동을 해서 자손들이 힘든 건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쿨럭! 봐라! 친일파 자손으로 태어난대도 무조건 영광만 있는 건 아니잖냐? 어쨌든 널 조선 최고의 친일파이자 현금 부자인 이완용의 서자로 보내줄 테니 한번 잘살아 봐라!”
“아니! 아니! 잠깐 만요!”
석진은 두 손을 내저으며 남자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니까 날 여기 이상한 곳으로 보낸 게 당신이고, 그런 당신이 바로 제 할아버지라는 건가요?”
“그래, 이놈아! 네 할아버지도 못 알아보는 게냐?”
“혹시 존함이······바다 해(海)에······벼슬 경(卿)을 쓰시는······.”
“맞다! 내가 이해경이다!”
장년의 남자는 석진은 바라보며 씩 웃었다.
“자식들 돌보지 못한 건 내가 정말 미안하구나! 하지만 내겐 조선의 독립이 우선이었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네 선택이니 다시는 조상 탓하지 말고! 알겠느냐, 이놈아!”
조상 탓이라는 말에 석진은 황당한 상황에서도 일순간 부끄러워졌다.
“아 참! 그리고 이건 내 선물이다. 그래도 독립운동가인 내 핏줄임을 흔적으로라도 남겨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역적 아들이라고 남들한테 손가락질당할 때 작은 소용이 있을 게다. 그럼······욕보거라!”
깊은 심연에서 일어난 석진은 식은땀을 흘렸다. 긴 꿈을 꾼 듯 석진은 아직 현실과 환영을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왼쪽 약지의 마지막 마디가 사라진 걸 발견했다.
“우와아악!”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꿈이 아니었다. 3인칭 시점의 의식은 이완용의 아들로서 어떤 최후를 맞을지를 미리 보여준 것이었다.
‘이완용의 아들이라니······.’
그때, 석진은 자신의 옆에 놓여있는 쪽지를 발견했다. 할아버지가 남긴 메모가 적혀 있었다.
-언제로 보내줄까 하다가 1918년 무오년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이듬해인 기미년에는 3.1운동이 일어나고 정식으로 임시정부가 세워진 해이니 네가 할 일이 많을 거로 생각한다. 친일이든 독립운동가든 부디 네 운명은 네가 스스로 개척해 보거라!-
석진은 순간 자신이 근대역사를 연구해오면서 얼마나 많은 아쉬움과 통탄을 해왔었는지를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이완용의 자식이라면······ 재력을 기반으로 조선 땅에서 뭔가를 해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1918년이라······갑시다! 어디로든!”
석진은 움직여지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혼란스러웠던 의식에서 완전히 깨어나려고 두 눈을 꾹 감았다. 그 순간 다시 몸을 제어할 수 없는 중력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석진은 천천히 의식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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