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아포칼립스의 고인물

프롤로그

2019.10.21 조회 230,920 추천 2,739


 ―토끼공듀 : 아···겜 개노잼. 할거 진짜 없네. 컨텐츠 하나도 없음.
 ―오리궁뎅이꽥꽥 : 망겜이 다 그렇죠 뭐.
 ―생존자1 : 그래서 다른겜하쉴?
 ―토끼공듀 : 이겜 맛들여서 다른겜못함.
 ―오리궁뎅이꽥꽥 : ㄹㅇ
 
 어느 게임이나 고인물들이 하는 행동이란 뻔하다.
 적당한 곳에 모여서 수다를 떠는 것.
 게임 컨텐츠는 죄다 소모해버렸고 뉴비는 들어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도시의 빌딩 옥상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 널린 강화형 구울과 대형 몬스터의 시체만 아니었어도 야경이 죽여줬을 텐데.
 이 게임에서 유저와 시체는 늘 붙어 다니는 거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이 게임이 뭐냐면···
 서바이벌 라이프라는 생존 VR게임이다.
 현실에 가까운 극한의 아포칼립스!
 무수히 쏟아지는 좀비와 몬스터!
 이 지옥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직 당신뿐!
 
 ···따위의 캐치프레이즈는 벌써 사라지고 없다.
 게임의 불지옥 같은 난이도는 뉴비의 진입을 철저히 차단했다.
 플레이에 전용 VR장비가 필요하다는 점 또한 허들을 에베레스트 산처럼 높였고.
 그리하여 게임이 오픈한지 몇 달 만에 동접이 수십 명으로 추락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말을 말자.
 
 ―토끼공듀 : 아···어디 신선한 뉴비 안 들어오나···
 ―오리궁뎅이꽥꽥 : 들어오면 뭐할거임?
 ―토끼공듀 : ㅎㅎ일단 튜토리얼 끝나면 소매넣기를 할거임.
 ―생존자1 : 님 면상보고 도망가지나 않음 다행이지. 거울 좀 보셈.
 ―토끼공듀 : 이 커마가 고인물의 상징인데 뭘 모르시네.
 
 그렇게 말하는 토끼공듀(30대,남)의 외형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전신을 분홍색 페인트로 칠했고 코에는 당근장식을 붙여놓았다.
 토끼 머리띠와 엉덩이의 하얀 꼬리는 혐오스러울 지경이다.
 물론 오리궁뎅이꽥꽥과 생존자1의 외형도 범상치 않다.
 그나마 내가 제일 낫지.
 최소한 뉴비가 보고 도망가지는 않잖아.
 뭐 팬티만 입은 건 마찬가지지만.
 그 때 누군가 전체 채팅을 날렸다.
 
 ―뉴비는늅늅 : ㅎㅇ
 
 아니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뉴비야.
 닉네임도 인사도 아주 곱구나.
 그런데 뒤에 PC방 태그가 붙었네.
 요즘 유행하는 VR방인가보다.
 그딴 거 신경 안 쓰는 고인물들이 달려들었다.
 
 ―토끼공듀 : 킁킁 이 냄새는?
 ―오리궁뎅이꽥꽥 : 야한 냄새당 ㅎㅎ
 ―생존자1 : 동접 5명 대흥겜!
 ―뉴비는늅늅 : 근데 님들 이겜 어케하는거에여?
 
 내가 나설 때로군.
 이 고인물들은 피지컬로 뚫고 나가라고 하는지라 도움이 안 된다.
 나는 몬스터의 약점을 분석하고 주변 상황을 이용하는 쪽이다.
 
 ―김밥조아 : 님 튜토리얼은 깼어요?
 ―뉴비는늅늅 : 아뇨 아직요. 그거 깨야 되는거에여?
 ―김밥조아 : 넵. 깨야 그 다음부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어요. 겜 제목이 서바이벌 라이프잖아요?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목표인데···
 
 내가 설명을 하려하자 고인물 셋이 쪼그려 앉아선 빈정대기 시작했다.
 
 ―토끼공듀 : 시작했네 시작했어.
 ―오리궁뎅이꽥꽥 : 나왔다 스피드왜건!
 ―생존자1 : 근데 김밥님이 도와주는게 맞음. 우리는 들이박으라는 쪽이잖음···
 ―토끼공듀 : 그건 인정이지
 
 젠장. 지방방송이 많아서 짧게 끊어야겠다.
 
 ―김밥조아 : 하여튼 튜토리얼은 깨야 해요. 그거 깨야 저희가 도와줄 수 있어요.
 ―뉴비는늅늅 : 넹. 그럼 튜토리얼 깨볼께여.
 
 얼마 만에 보는 개념 찬 뉴비란 말인가.
 고인물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난 튜토리얼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초반 좀비의 배치, 얻어야 할 아이템과 지형지물의 이용 등···
 다 들은 뉴비는 튜토리얼에 도전한다고 채팅을 중단했다.
 과연 잘 될까?
 우리는 뉴비가 무사히 무리에 합류하기를 빌었다.
 
 ―토끼공듀 : 제발제발제발···몇달째 넷이서 이지랄 하고 있다고! 한 명만 더 있음 재밌게 같이 논다고!
 
 나도 같은 생각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명만.
 
 .
 .
 .
 
 ―뉴비는늅늅 : 이겜 너무 어렵네여···저 포기할게여
 
 내 이럴 줄 알았다.
 뉴비의 챗이 뜨자 고인물들이 한탄했다.
 
 ―토끼공듀 : 안돼 가지마
 ―오리궁뎅이꽥꽥 : 아자아자 우리뉴비 할수있다 화이팅!
 ―생존자1 : 튜토리얼만 깨보셈 바로 뜨거운 지원 들어감!!!
 ―뉴비는늅늅 : 튜토리얼만 2시간째 하고 이서요···
 
 이 게임의 난이도가 지랄 같다는 걸 증명하는 대목이다.
 튜토리얼도 못 깨서 빌빌대는 유저가 속출하다니 말이 되는가 말이다.
 웃긴 건 이것도 많이 완화된 버전이라는 거다.
 런칭 때는 3일간 튜토리얼을 깨는 사람이 없었다.
 제발 접지 말라는 심정으로 챗을 날려본다.
 
 ―김밥조아 : 3시간 이상 걸리는 사람도 많으니까 조금만 더 해보셈
 ―토끼공듀 : 너 없으면 동접 4명이야 독수리 오형제는 만들어봐야지.
 ―오리궁뎅이꽥꽥 : 근데 백조는 누가함?
 ―뉴비는늅늅 : ㅂㅂ
 
 아···
 그걸로 끝이었다.
 뉴비의 챗은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리에 주저앉아 한탄했다.
 
 ―토끼공듀 : 이따위 좆망겜 확 망해라.
 ―오리궁뎅이꽥꽥 : 망한지 오래임.
 
 맞아. 우리가 망겜을 붙들고 있을 뿐이지.
 업데이트까지 부실했다면 우리도 일치감치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사는 꼬박꼬박 컨텐츠를 업데이트했다.
 업데이트 되는 즉시 우리가 바닥내서 그렇지.
 돈도 안 될 텐데 뭐 하러 유지하나 몰라?
 우리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유저만 많다면 이만한 게임도 없는데···
 토끼공듀(30대,남)이 오우거를 맨손으로 때려잡자는 헛소리를 했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귀찮았던 것이다.
 1년 동안 온갖 헛짓거리를 해댔으니 싫증이 날만도 하지.
 
 ―생존자1 : 먼저 갑니다 ㅂㅂ
 
 그를 시작으로 다들 일이 있다며 접속을 끊었다.
 나는 영상녹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자기 전에 잠깐 켠 거라 스트리밍은 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 편집하면 미튜브에 올려볼만 할 것 같은데···
 워낙 마이너한 게임이라 조회수는 많아봐야 1만이겠지만.
 나는 모니터만 끄고 침대에 누웠다.
 
 “슬슬 접을 때가 왔나···”
 
 20명은 되던 내 방송의 시청자가 최근 10명 이하로 줄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거기서 거기인 등장인물들 때문이다.
 날 포함해서 4명···
 가끔 겜 아직도 안 망했냐며 놀리러 온 전직 고인물과 트롤 몇 명이 전부였다.
 뉴비라도 유입되면 나을 텐데 튜토리얼도 깨지 못하고 접어버리기가 일쑤다.
 
 “이 게임도 꽤 오래했네.”
 
 1년 3개월쯤 됐나?
 무려 5천 시간을 서바이벌 라이프에 바쳤다.
 분식집을 운영하면서 VR게임을 방송한다는 건 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진 어떻게 후원으로 버텨왔지만 슬슬 힘들어지고 있었다.
 장사에 집중하기 위해 슬슬 접어야 하나.
 그나저나 곧 여름인데 신메뉴라도 내볼까?
 요즘 학생들이 팥빙수를 많이 찾던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감으니 거리에 좀비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녀석들이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쪼렙 좀비 주제에 감히?
 나는 좀비들 사이에서 무쌍을 펼쳤다.
 그러다 알람소리에 깨니 늦은 아침이었다.
 
 “···완전 개꿈이네.”
 
 나는 하품을 하며 세수를 했다.
 장사 준비할 시간이다.
 
 .
 .
 .
 
 그 후로 몇 개월이 더 지났다.
 서바이벌 라이프에 몇 가지 소소한 패치가 이뤄졌다.
 튜토리얼 난이도를 대폭 낮추고, 초반의 상황을 개선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고인물들에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너무 늦었음.
 ―외양간 고치긴 했는데 소가 없네.
 ―장비 문제나 좀 개선하지. 수십만 원짜리 사서 누가 이걸 한다고. 우리 같은 호구나 하지.
 ―음머어~
 ―아니 키보드 마우스로 플레이하게 하라고. 그럼 동접 엄청나게 늘어날 텐데.
 ―제작진들 고집 드릅게 쎔
 ―안할란다 ㅅㅂ
 
 몇 안 되는 고인물들의 접속이 뜸해졌다.
 아무래도 현실의 삶이 더 중요한지라.
 대형 업데이트도 있었지만 나를 제외하고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뉴비가 접속했지만 괴악한 난이도에 좌절하고 도망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더 지났다.
 난 게임을 자주 하진 못했지만 패치내역과 플레이 영상은 꼬박꼬박 저장해뒀다.
 나중에라도 고인물 친구들이 복귀하면 설명해줘야 하니까.
 하지만 그들은 접속하지 않았다.
 혹시 이 서버에 나 혼자 있는 거 아니야?
 
 ―김밥조아 : 지금 접속한 사람 있음?
 
 ···
 채팅은 올라오지 않았다. 뉴비도 없나보다.
 운영진은 정말 손을 놓은 걸까?
 그래픽과 현실감은 매우 훌륭한데 이대로 버려도 괜찮은 건가 싶었다.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김밥조아 : 노답겜 이번엔 진짜 접는다.
 
 채팅창에 한탄했지만 반응은 없었다.
 그 상태로 며칠이 더 지났다.
 나는 혼자서 새로운 컨텐츠를 즐겼다.
 기존의 좀비와 판타지틱한 몬스터가 아니라 기괴하게 변형된 괴물이 등장했다.
 녀석들과 싸우기 위해 분석하고 준비하는 것 또한 재미였다.
 새 컨텐츠에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이 내 방송의 시청자가 되어주었다.
 가끔 VR방을 통해 뉴비로 나타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얼마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브루트라는 몬스터와 싸우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느닷없이 공지가 떴다.
 
 ―system : 안녕하세요. 서바이벌 라이프 운영팀입니다. 공지에 앞서 그동안 서바이벌 라이프를 아껴주셨던 유저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거 좀 불안한데?
 얘네들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지?
 
 ―system : 일주일 후, 서바이벌 라이프의 서비스가 완전히 종료됩니다. 서비스 종료에 대해 개발진의 일원으로서 아쉬움 마음뿐이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은 서비스 종료 일정입니다.
 
 응?
 지금 뭐라는 거야?
 서비스가 종료된다고?
 서바이벌 라이프가 완전히 끝난다는 이야긴가?
 시스템은 저 혼자 일정을 쭉 내뱉고는 사라져 버렸다.
 하하···
 5천 시간 넘게 부은 결과가 이거라니.
 난 멀찍이에서 울부짖는 브루트를 바라봤다.
 저 놈은 꼭 잡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무리지만 고인물들이 합류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 다 끝난 거지 뭐.
 일주일 뒤에 서비스 종료라는데 정이 뚝 떨어져서 할 맘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녹화종료 버튼을 누르고 장비를 벗었다.
 
 “방송이고 뭐고···”
 
 갑자기 허탈해져서 미튜브에 올라가 있던 영상을 전부 지워버렸다.
 어차피 조회수 1만도 못 넘던 거니까 아쉬울 건 전혀 없다.
 내친김에 내가 쓰던 인터넷방송 플랫폼에도 들어가 공지를 올렸다.
 시청자는 10명도 안 되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지.
 그러고선 침대에 앉아 맥주를 꿀꺽 마셨다.
 
 다른 건 몰라도 고인물 친구들은 꼭 만나고 싶었는데.
 나이도 이름도 모르지만 1년 가까이 게임을 해왔다.
 행동 하나 잘못해서 몰살당해도 허허 웃었고 서로 밀고 끌어주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볼 일이 없겠지.
 종료까진 일주일이 남았지만 그 사이에 들어올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벌써 한 달째 접속하지 않았으니까.
 
 “그만하자.”
 
 현실에 충실해야지.
 난 맥주캔을 종량제 봉투에 던졌다.
 서바이벌 라이프에 투자한 5,500시간도 같이 사라졌다.
 이젠 서바이벌 라이프와는 끝이다···그렇게 생각했다.
 몇 달 후 자주 가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누군가가 글을 올리기 전까지는.
 
 ―나 상태창 생겼음.
 ㄴ뭔 개솔임? 설마 게임에 나오는 그거?
 ㄴㅈㄹㄴㄴ
 ㄴ아주 신박한 개소리를 들어보네.
 나는 가게 영업을 마치고 컴퓨터 앞에서 늦은 식사를 하고 있던 차였다.
 
 “상태창은 무슨 얼어 죽을···”
 
 뭐 웹소설에선 흔한 클리셰다.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특별한 힘을 얻어서 잘 나가게 되는 거.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은 없었다.
 당연하잖아?
 현실은 소설이 아닌데 상태창 외쳤다고 해서 나타날 리가 없잖은가 말이다.
 사람들이 공격을 퍼붓자 처음 글을 올린 그는 억울한 모양인지 다시 글을 올렸다.
 
 ―아 귀에 X박았냐? 상태창 한마디만 해보라니까? 그게 어려워?
 
 뭐 어렵지는 않지.
 나는 밥을 꿀꺽 삼키고 짧게 말했다.
 
 “상태창.”
 
 약속이나 한 듯이 시야에 뭔가가 나타났다.
 ···미친.
 진짜 상태창이 튀어 나왔다.
 뭔가 대단해 보이는 단어를 품은 채로.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슬리버입니다.

다시 달려보겠습니다.

꾸벅.

댓글(143)

Dovakin    
오 드디어 연재 시작하셨넹 응원하겠습니당
2019.10.21 15:14
글러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19.10.21 15:16
펩시맛콜라    
꾸벅
2019.10.21 19:30
이런닝겐    
고인물들 찾아서 빨대 꼽으려고 장난아닐듯
2019.10.22 17:13
Mep    
오호~
2019.10.25 13:52
판타지게임    
저걸 알아낸 사람은 소설 보거나 생각하다가 상태창이라고 말한 사람이겠지 혹시나 하며
2019.10.27 00:10
한예주    
저도 한때 토끼공듀였던 때가 있었죠
2019.10.27 08:01
크에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스팀의 닼소 느낌이네요 형형 색깔의 고인물의 소매 넣기
2019.10.27 11:56
Timesliper    
이 소설 보고 상태창 외친 사람 손들어봐1111111 그나저나 1년3개월에 5000시간이면 플레이시간이 하루평균11시간? 분식집 운영하면서 했다고? 사람ㅅㄲ인가?
2019.10.27 21:22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19.10.28 13:01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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