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럭!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에야 처음 알았다.
얼마나 많은 부상을 입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검을 움켜쥔 손가락에조차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며 핏발선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큭!”
눈길이 닿는 곳마다 피와 시체로 가득했다.
설마 내가 마지막으로 보는 풍경이 이럴 줄이야.
내가 충성을 맹세한 화룡검가를 무림의 정점에 우뚝 세우리라 다짐했건만.
눈앞의 참상은 내가 그려온 미래가 한낱 꿈에 불과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희미해지는 의식 너머로 지난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무능한 대공자를 보좌해 화룡검가의 가주로 만들었다.
그러나 대공자는 가주가 되고 나서도 바뀌지 않았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재산을 탕진했고 그에 반발하는 무인들은 모조리 내쫓았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충성을 바쳐 화룡검가를 지탱해왔다.
하지만 이젠 한계다.
나도. 화룡검가도.
그 사실을 선고하듯 중후한 음성이 들려왔다.
“서진혁이라 했던가. 주인 잘못 만난 개 치고는 훌륭했다.”
아아. 어떻게 잊겠는가.
사황의 일인이자 철혈성의 주인 철혈마제의 목소리를.
나는 화룡검가의 가신으로 그에게 맞섰으나 이제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능하고 방탕한 대공자를 주군으로 모셨을 때부터?
아니면 가문 내의 배신자들을 과감히 쳐내지 못한 시점에서?
어쩌면 가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가문에 충성을 바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지도.
꽉 깨문 입술에서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온다.
하긴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네놈은 내 손으로 직접 숨통을 끊어주마. 영광으로 알도록.”
철혈마제의 철혈수라장이 가슴을 강타했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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