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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액션스타 마춘동 [E]

액션스타 마춘동 1-1권

2019.10.22 조회 1,396 추천 8


 # 1. 무공을 얻다
 
 주말 저녁.
 왁자지껄한 소리를 뚫고 두 사람이 가게를 나섰다.
 “이 집 껍데기 죽이네.”
 찬바람과 상관없이 이미 불콰해진 한 사람과 술을 한 잔도 안 마셨는지 얼굴색 하나 안 변한 한 사람이 가게 안에서 계산하고 있는 일행을 기다렸다.
 “안 되네.”
 “불, 여기 있습니다.”
 “땡큐.”
 입김과 담배 연기가 섞이며 허공에 하얀 구름을 만들어 냈다.
 “동춘아. 넌 담배도 안 피우는 놈이 불은 왜 들고 다니냐?”
 “춘동이. 인마! 동춘이 아니고 춘동이! 마춘동! 몇 년을 보는데 아직도 동생 이름 하나 제대로 못 외우냐?”
 계산하고 나온 남자의 목소리가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릴 만큼 컸다.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뭘 또 소리까지 질러?”
 “그럴 수 있기는! 봄 춘, 동녘 동! 춘동이 할머니께서 인마! 새싹이 피어나는 봄과 아침 해가 떠오르는 동쪽처럼 생기 가득한 삶을 살아가라고 지어 주신 좋은 이름을 왜 멋대로 이상하게 만들고 그래! 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질러. 어휴. 귀 떨어지겠네. 하여간 동춘이 일이라면······.”
 “춘동이라고 이 새끼야!”
 “술 취하면 좀 잘못 말할 수도 있지. 진짜! 이러다 치겠네. 치겠어. 내가 너 춘동이 위하는 거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인마. 춘동이가 얼마나 착한 놈인 줄 아냐? 제 한 몸 챙기기도 힘든 액션 스쿨 수련 과정을 오히려 동기들 챙기면서 수석으로 수료한 놈이야. 첫 현장부터 기가 막히게 잘해서 장래가 기대되는 유망주였다고. 그런 놈이 후배 대타 뛰어 주다가······.”
 “아! 내가 잘못했어! 뭐 옛날얘기까지 다 꺼내고 그래!”
 “아 씨! 끊지 말고 들어 봐! 대타 뛰다가······.”
 “춘동아, 듣지 마, 듣지 마. 이놈 완전히 취했다.”
 “나 안 취했어 인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던 마춘동이 계산하고 나온 형의 팔짱을 꼈다.
 “잘 먹었습니다. 형님.”
 “잘 먹기는!”
 “매번 감사합니다. 형님.”
 “우리 착한 춘동이라면 내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사 줘야지.”
 “아닙니다. 다음엔 제가 사겠습니다. 형님이 계속 일도 주시는데 제가 한 번 사야죠.”
 “됐어 인마! 일을 주긴 누가 줬다 그래?”
 술기운이 확 올라오는지 이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형을 마춘동이 꽉 붙잡으려고 했다.
 “야, 춘동아 힘 빼라. 너 그러다 또 경련 올라. 내가 부축할게.”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아, 다리에 힘 좀 줘! 춘동이 춘동이 입으로만 챙기지 말고 이럴 때 다리에 힘 좀 빡 주라고!”
 “야 인마. 내가 언제 입으로만 챙겼다고······.”
 “힘 좀 주라고!”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 택시가 다니는 큰길로 나아갔다.
 형에게 강제로 밀려난 마춘동이 앞서가서 택시를 잡았다.
 “춘동아. 딴 데로 새지 말고 집에 곧장 들어가. 촬영 모레라고 더 놀지 말고.”
 “술 한 잔 안 마신 춘동이가 딴 데로 새겠어? 술 취한 니가 딴 데로 새겠어? 괜한 걱정 말고 얼른 가!”
 택시가 출발하고, 마춘동이 금세 택시 한 대를 더 잡았다.
 “들어가십시오. 형님.”
 택시에 타려던 남자가 몸을 돌렸다.
 “택시 타고 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마춘동이 한사코 손을 저었지만, 끝내 남자가 마춘동의 외투 주머니에 오만 원권 1장을 쑤셔 넣었다.
 “형이 주면 그냥 받아. 상범이한테는 잘도 얻어먹으면서.”
 “정호 형.”
 “시꺼 인마. 상범이가 다 계산해서 주는 거야. 원래 나갔을 돈이다.”
 마춘동이 대답할 틈도 없이 고정호가 택시에 탔다.
 “택시 타고 가라!”
 마춘동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택시가 출발하고도 마춘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 사람 뭐 해? 도롯가에서 위험하게.”
 도로를 향해 90도로 인사하고 있는 마춘동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후우······.”
 고정호가 타고 간 택시는 이미 한참 전에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마춘동은 여전히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진정하자.’
 복부에 경련이 일어났다.
 ‘심호흡하자.’
 경직된 근육에서 일어난 경련은 꽤 강한 고통을 동반했다.
 근긴장이상증.
 마춘동이 스턴트 도중, 충돌로 다친 이후 얻은 병명이었다.
 전신성 근긴장이상증에, 약도 잘 듣지 않는 케이스였다.
 특정 움직임에 따라 근육이 굳거나 경련이 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기도 했다. 격한 운동은 물론이고, 일상생활도 불편했다. 당연히 스턴트는 할 수 없었다.
 ‘곧 사라진다.’
 이젠 제법 익숙해졌기에 갑자기 찾아온 경련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후우······.”
 마춘동이 허리를 펴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갑자기 찾아온 경련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사라졌다.
 “제법 호전된 줄 알았는데.”
 약이 잘 듣지 않긴 해도, 근래 의사의 권유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가벼운 운동도 하고 있었다. 운동을 권하기에 생각보다 좋아졌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고.
 찬바람이 마춘동의 볼을 스쳐 지나갔다.
 몸이 괜찮아진 걸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확인한 마춘동이 잠시 갈등했다.
 ‘택시 타?’
 생각과 달리 자연스럽게 몸이 지하철역이 있는 방향을 향했다. 마춘동이 주머니에 꼬깃꼬깃하게 들어가 있던 오만 원권을 꺼내 바라봤다.
 “···아껴야지.”
 오만 원권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마춘동이 지하철역으로 걸었다.
 “야! 온누리!”
 “죽을래!”
 학생들이 낄낄거리며 지나갔다. 발끈하는 학생의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
 ‘오누리네.’
 이름 가지고 놀리는 학생들을 보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들이 그의 이름을 촌스럽다고 놀리기도, 술 취한 고정호처럼 거꾸로 부르면서 놀리기도 했었던, 이젠 추억이 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발끈했는지.’
 사주가 드세다며 할머니가 지어 주신 이름이었다. 부모님이 양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할머니의 주장이 강력했다고 했다.
 ‘그땐 이 이름이 그렇게 싫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도리어 좋았다. 한 번 얘기하면 사람들의 뇌리에 팍 박히니까.
 ‘커서는 이름 덕도 좀 봤지.’
 한 번이라도 함께 작업한 사람들은 마춘동의 이름을 쉽게 잊지 않았고, 감독들도 종종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었다. 비슷하게 잘하면 현장 사람들은 마춘동을 더 기억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할머니가 잘 지으신 것 같기도 하고. 순탄하게 살라며 지어주신 뜻대로는 잘 안 되었지만.’
 지하철 계단을 반쯤 내려온 마춘동의 눈에 새하얀 머리가 들어왔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역사였다.
 할머니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누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지나치는 사람들도 이해됐다. ‘요즘 같은 세상에’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야기들. 도움을 줘도 오해를 사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리는 세상 아닌가.
 ‘짐을 들어 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도둑으로 몰렸다고 했던가.’
 인터넷에서 봤었던 사연을 떠올리며 마춘동이 계단을 계속 내려갔다.
 그가 내려가는 동안, 할머니는 단 한 칸도 오르지 못했다.
 마춘동은 할머니의 옆을 지나,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후··· 할머니.’
 계속 눈에 밟혔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오늘은 아니었다.
 “할머니. 좀 들어 드릴까요?”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데가.”
 할머니가 자글자글한 주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경련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조심해서······,’
 순간 내 코가 석 잔데 누굴 돕는 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할머니 얼굴을 마주하니, 잘했다 싶었다.
 ‘재활 운동도 하고 있잖아.’
 마춘동이 조심스럽게 봇짐을 들어 올렸다.
 ‘어? 가볍네?’
 할머니가 힘겨워했던 것과 달리, 봇짐은 정말 가벼웠다. 한 손이 아니라 손가락 몇 개로도 들 수 있을 만큼.
 “고마워요. 고마워. 무겁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할머니는 마춘동이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고맙다고 말했다.
 ‘많이 불편하신가 보다.’
 짐을 들지 않아도, 계단을 오르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마춘동이 계단을 다 올랐다.
 “할머니··· 엇?”
 돌아보는 순간,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흘러내렸다.
 ‘박살 난다.’
 직감이 들었다.
 손을 뻗어서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움직이길 거부했다. 경련과 고통이 몸에 새긴 조건 반사였다.
 높지 않은 높이였지만, 폰이 계단으로 떨어지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허공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폰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데, 불쑥 거친 손이 등장했다.
 “어이쿠. 큰일 날 뻔했네.”
 할머니가 폰을 잡았다.
 “여기.”
 “감사합니다.”
 “젊은이 덕에 편하게 올라왔네요. 고마우이.”
 서로 감사 인사를 한 두 사람이 돌아서서 각자 가던 길을 다시 걸었다.
 ‘아, 계단을 내려가실 순 있을까?’
 두 계단이긴 했지만, 길거리로 내려서는 계단이 있었다.
 마춘동이 뒤돌아봤다.
 ‘어디 가셨지?’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없을 텐데, 수많은 인파 사이로 아무리 살펴도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
 
 “다 씻었니?”
 “네.”
 “와서 밥 먹어라.”
 “네.”
 마춘동이 식탁 의자에 털썩 앉았다.
 “조심히 앉아야지.”
 “괜찮아요.”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보던 신문을 반쯤 접었다.
 “네 엄마 걱정하시잖냐.”
 일부러 지은 아버지의 엄한 표정을 본 마춘동이 죄인처럼 목을 쭉 뺐다.
 “조심하겠습니다.”
 반찬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돌아가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등을 살짝 때렸다.
 아버지가 항의하듯 어머니를 봤지만, 이내 부릅뜬 두 눈을 마주하곤 고개를 돌렸다.
 “잘 먹겠습니다.”
 마춘동은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식사에 집중했다.
 조용하고 평온한 아침 식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간에 잠시 손과 팔에 경련이 왔지만 마춘동은 태연하게 행동했고, 마춘동의 부모님은 못 봤는지 별말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물 마셔.”
 “감사합니다.”
 “나도 물!”
 “당신이 떠다 마셔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춘동이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물을 마시고 있는데, 구세주처럼 방에서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으로 들어온 마춘동이 전화를 받았다.
 “상범이 형.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어. 잘 들어갔다. 뭐 또 잘 들어갔냐고 문자까지 남겼냐. 근데 나 어제 계산하고 나와서 바로 들어왔냐? 갑자기 필름이 뚝 끊긴 거 같은데······.
 살짝 덜 닫힌 방문 너머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픈 애 앞에 두고 뭐 하는 거예요?”
 “춘동이 마음 쓸까 봐 아무렇지도 않게 하자며!”
 “티 내지 말자고 했지. 그걸 그렇게······.”
 ―택시를 탔다고? 내가?
 김상범의 목소리에, 부모님의 목소리가 묻혔다.
 “네.”
 ―그 거리를 택시 타고 온 것도 모자라서. 내가 다 계산했다고? 아이고 두야······.
 기억이 끊긴 이후의 일들에 대해 들은 김상범이 하소연인지 푸념일지 모를 말을 주르륵 나열했다.
 ―내일 보자. 어후. 해장 좀 해야겠다.
 “네 형. 내일 봬요.”
 통화를 마친 마춘동이 폰을 내려놓다가 다시 들어 올렸다.
 “이게 뭐지?”
 처음 보는 어플이 화면에 있었다.
 “이런 거 깐 적 없는데.”
 혹시 바이러스인가 싶어서 지우려고 길게 누르려는 순간.
 “아!”
 손가락에서 경련이 일어났고, 어플이 실행되었다.
 마춘동의 두 눈에 연한 갈색의 바탕 화면을 가득 채운 세 글자가 보였다.
 “대환공?”
 
 
 # 2. 마춘동이 돌아왔구나!
 
 대환공(大還功).
 마춘동은 폰 화면 가득 떠오른 세 글자를 뚫어져라 봤다.
 “어?”
 터치는커녕, 화면 근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책장이 넘겨지는 것처럼 화면이 바뀌었다.
 “이게··· 뭐야?”
 오래된 고서 같은 배경 화면.
 일필휘지로 써 내린 것처럼 힘 있던 제목의 글씨체.
 뭔가 대단해 보이던 첫인상에 비해 지금 눈앞에 떠오른 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것이었다.
 “···체조 ···아니, 요가인가?”
 인터넷에 요가라는 검색만 해 봐도 나올 것 같은 자세들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고서 같던 첫인상처럼 그림체도 굉장히 예스러웠다.
 호기심이 동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
 화면을 밀어서 넘기려던 마춘동은 그제야 손가락 경련이 멈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놀래서 몰랐나.”
 스쳐 지나가듯 경련이 일어났다가 진정될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인지하지 못한 적은 처음이었다. 몇 번 경련이 일어났던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본 마춘동은 생각지도 못한 일 때문에 정신이 팔렸었다는 결론을 내곤, 다시 대환공으로 신경을 돌렸다.
 “진짜 요가 같네. 근데 인도는 아니고······.”
 그림에 묘사된 사람이나, 자세 등이 동북아시아, 거기서도 우리나라나 중국의 전통 무술과 닮은 점이 많았다.
 “신체에 막 무리가 가는 동작은 별로 없네.”
 대부분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동작들이었다.
 옆으로 넘기는 손가락이 빨라졌다.
 금세 마지막 장에 도달했고, 마지막 장에는 그림체가 아닌, 글이 가득했다.
 “대환공은 과거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위해 창안된 신공(神功)이다. 대환공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땐, 위로는 황제부터 아래로는 노비까지 누구도 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로 인해 혈겁이 일어났으며······,”
 장황한 대환공의 역사에 대한 부분은 때론 과하다 싶을 만큼 대환공을 찬양하는 표현이 즐비했다.
 “썩 믿음이 가진 않네.”
 과한 찬양에 신뢰도가 뚝뚝 떨어졌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혈겁 이후로 대환공의 행방은 묘연해졌으며, 현대에 와서는 한낱 구전설화나 지어낸 이야기 취급을 받고 있다. 또한, 애통하게도 현대에 이르러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자연지기가 흐트러져 내공을 쌓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우니 대환공을 통해 환골탈태를 이루기란 요원한 일이 되었다.”
 마춘동의 맥이 탁 풀렸다.
 “결국 옛날이야기라는 거네.”
 하지만 마지막 구절이 흥미를 잃어가던 마춘동의 눈길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아무리 내공을 모으기 어려운 현대라도 대환공은 대환공. 아픈 이가 대환공을 익히면 아픔이 사라지고, 어떤 병이라도 치유되며, 건강한 이가 익히면 몸이 강건해지고, 나아가 재능이 있는 자라면 내공을 쌓아 초인(超人)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마춘동이 마지막 구절을 눈으로 다시 읽었다.
 ‘아픔이 사라지고, 병이 치유되고 몸이 강건해진다.’
 내공이니 초인이니 하는 뒷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건강해진다.’
 시도 때도 없이, 이유도 없이 경련이 일어나는 마춘동에게 건강해지는 것보다 더 큰 소원은 없었다. 건강해진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절실했다.
 ‘스트레칭 정도일 뿐이잖아.’
 딱 봐도 어렵거나 무리가 갈 것 같은 동작도 없다. 동작에 따른 호흡법이 신기하긴 했지만, 숨 좀 다르게 쉰다고 몸에 무리가 갈 것 같지도 않았다.
 ‘재활 운동도 하고 있으니까.’
 마춘동의 손가락은 어느새 다시 어플의 첫 페이지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첫 페이지의 동작은 정말 간단했다. 목 돌리기, 앞으로 손 뻗기, 허리 펴기, 기마자세 등의 간단한 스트레칭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동작들이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하지만 간단한 동작이라도 정확히 해야 한다는 걸 오랜 운동으로 체득한 마춘동이었기에 동작 하나하나를 폰의 자세와 비교하며 집중했다.
 첫 페이지의 동작을 금세 끝내고, 이어서 두 번째 페이지의 동작을 행했다. 간단한 동작인데도 호흡법이 섞이자 높은 집중력을 요구했고, 전신에 상당한 힘이 들었다.
 “한 번 하기도 힘드네.”
 마지막 동작을 마치고 난 마춘동의 전신은 온통 땀에 절어 있었다.
 “괜찮겠지?”
 생각과 달리 이 정도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자 덜컥 겁이 났다.
 마춘동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을 풀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땀이 완전히 식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봤지만, 경련이 일어나진 않았다.
 “씻어야겠다.”
 긴장이 풀린 마춘동이 씻으려고 일어나려다 침대로 풀썩 쓰러졌다.
 “춘동아, 뭐 하니?”
 방이 조용한 걸 이상하게 생각한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왔다가, 침대에 엎드려 있는 마춘동을 발견했다.
 “춘동아?”
 혹시나 해서 빠르게 다가오던 어머니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르렁. 푸우. 드르렁. 푸우.”
 “춘동이 뭐 해?”
 “쉿. 춘동이 자요.”
 방 안으로 고개를 내민 남편을 조용히 시킨 어머니가 마춘동을 제대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정신없이 자네.”
 “피곤했나 보지.”
 “아침에 안 일어난 적은 있어도, 아침 먹고 잔 적은 없는데.”
 “원래 밥 먹으면 졸려. 나와. 애 자는데.”
 어머니가 커튼을 치고 방을 나갔다.
 문 닫힌 방 안엔 포근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마춘동의 몸을 불꽃처럼 붉은빛이 한 차례 훑었다가 사라졌다.
 
 ***
 
 “언제 잠들었지.”
 마춘동이 두 눈을 떴다.
 오늘은 스케줄이 없었기에 푹 자도 상관없었지만, 여전히 액션 스쿨에 맞춰진 생활 리듬을 가지고 있었기에 낮잠이 어색했다.
 “오래도 잤다.”
 커튼을 젖히니 노을에 물든 하늘이 마춘동을 반겼다.
 자신도 모르게 기지개를 켜던 마춘동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볍다?’
 마춘동이 기지개를 켜던 두 손을 내리고 몸을 살폈다. 늘 물먹은 솜처럼 묵직했던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근래 이렇게 개운했던 적이 있었나?’
 개운하게 일어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종종 이런 날들이 있었는데.’
 사고 이후론 단 하루도 없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스턴트맨 생활을 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몸을 단련했던 마춘동이었기에 자신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거, 사고 이후 처음이야. 아니, 사고가 나기 전에도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날은 몇 번 안 돼.’
 처음으로 현장에서 스턴트를 했던 날.
 카 스턴트를 기가 막히게 했던 날.
 맨몸으로 했던 낙하 스턴트를 한 번에 오케이 받았던 날.
 몸이 날아갈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던 날들을 떠올리던 마춘동이 전신 거울을 바라봤다.
 ‘착각이 아니야.’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가 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활력이 도는 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컨디션이 좋지?’라는 의문에 자동으로 시선이 폰으로 향했다.
 ‘겨우 한 번으로?’
 믿기 어려웠지만, 다른 이유도 찾기 어려웠다.
 ‘일시적인 건가?’
 아직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뛰고 싶다.’
 온몸이, 마음이 마춘동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디 가니? 저녁 안 먹고?”
 방에서 나오자마자 갑자기 현관으로 향하는 마춘동에게 부엌에서 요리하던 어머니가 물었다.
 “산책이요. 저녁 전에 올게요.”
 “불광천?”
 “네.”
 나가려던 마춘동이 무언가 생각난 듯 뒤돌아섰다.
 “이게 뭐야?”
 아들이 건네주는 오만 원을 받아든 어머니의 두 눈에 물음표가 떴다.
 “이번 달 가스비 많이 나왔다면서요.”
 “네가 돈이 어딨다고······.”
 “다녀오겠습니다!”
 마춘동이 도망치듯 현관을 나섰다.
 “무리하지 말고!”
 “네!”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당부를 뒤로하고, 집 밖으로 나온 마춘동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폐부 가득 들어오는 공기가 몸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었다.
 “오늘 미세 먼지가 없는 날인가.”
 상쾌한 기분에 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뛸까?’
 불광천에 들어서자, 조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괜찮지 않을까?’
 가벼운 달리기는 재활운동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주변에는 사람도 많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도와줄 테고··· 이거 너무 무책임한데.’
 마춘동 본인도 지금 자신의 생각이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었고, 이성적으로도 생각하면 안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점점 더 힘차게 박동하는 심장이 자꾸 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해도 될 것 같았다.
 ‘가볍게. 정말 가볍게.’
 빠르게 걷던 발이 뛰기 시작했다.
 바람이 볼을 스쳤다.
 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마춘동은 어느새 조깅이 아니라 인터벌 대시 하듯 전력으로 질주했다.
 바람이 땀을 훔쳐 갔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방망이질 쳤다.
 ‘진짜 얼마만이지?’
 오랜만에 뛴 마춘동의 질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멈춘 그의 몸이 떨렸다.
 하지만 그건 그동안 그를 지독하게도 괴롭혔던 원인 모를 경련이 아니었다.
 ‘살아 있다는 걸 느낀 게··· 정말 얼마만이지?’
 전율과 비슷한 흥분이 마춘동의 몸을 떨게 했다.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는 마춘동의 입가가 활짝 벌어졌다.
 “저 사람 왜 저래?”
 “기분 좋은 일 있나 보지. 취업 합격 문자라도 받았나?”
 “씨발. 부럽다.”
 “난 합격하면 저것보다 더 크게 웃을 듯.”
 “눈물까지 맺히는 거 보니, 오지게 고생했나 보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춘동은 세상이 떠나가라 웃었다.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와 함께.
 
 ***
 
 “컷! 오케이!”
 PD의 시원한 목소리가 촬영장을 가로질렀다.
 “강후 씨 고생했어!”
 “제가 고생은요. 피디님이 고생하셨죠!”
 싹싹한 미소와 함께 주연 이강후가 스태프들에게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주연 배우를 비롯한 연예인들이 모두 촬영을 끝내고 돌아갔지만, 촬영장은 여전히 밝았다.
 “자, 자! 무술팀, 보출 준비해 주세요! 오늘의 마지막 촬영입니다. 힘냅시다! 10분 후에 세팅 시작하겠습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마지막 촬영이 다가왔다.
 새벽 댓바람부터 나와서 딱 한 컷 찍고 다시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까지 종일 대기만 했던 마춘동도 다른 보조 출연자들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날이었다면 굳은 몸을 푸는 옆 사람들처럼 마춘동도 조심스럽게 스트레칭을 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하루 정도인가?’
 대환공의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대략 만 하루인 24시간 정도 효과를 보았고, 24시간에 가까워질수록 가벼웠던 몸은 다시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마춘동이 밝은 얼굴로 몸을 움직였다.
 ‘조금씩 하는 것도 효과가 있어.’
 몸이 다시 무거워지는 걸 느낀 이후, 마춘동은 대기 중간중간에 대환공을 펼쳤다. 스트레칭하는 것 정도로 보였기에 남들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되려 문제는 대환공을 모두 펼친 후, 혹시나 저번처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 버리진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많은 것 같다.’
 가벼워진 몸에 놀라 생각지 못했지만, 다시금 생각해 보니 필름이 끊기듯 잠든 것이 체력 소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동작씩 끊어서 해 보았고, 그 과정에서 한 동작씩만 해도 일시적으로 몸이 가벼워지는 효과를 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이후로 틈틈이 대환공을 펼쳤고, 덕분에 추위로 굳은 몸을 푸는 다른 이들과 달리 컨디션이 무척 좋았다.
 “각자 자리로 가 주세요! 곧 리허설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우. 갑자기 뭐 이리 찬바람이 불어 대냐.”
 보조 출연자들이 옷깃을 여미며 각자 자리로 움직였다.
 마춘동 역시 걸음을 옮겼다. 길거리를 평범하게 걷다가, 떨어지는 스턴트맨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 것만 하면 되는 간단한 역할이었다.
 “리허설 들어가겠습니다!”
 무술 감독과 조감독이 뭔가 불만 어린 표정으로 현장에서 멀어졌다.
 ‘응? 박스가 없나?’
 스턴트맨이 낙하할 지점에 깔린 매트리스가 마춘동의 눈에 들어왔다.
 ‘날도 추워져서 위험할 텐데.’
 “리허설 시작합니다!”
 마춘동과 보조 출연자들이 걷기 시작했고, 스턴트맨이 2층 높이의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퍽, 쿵!
 “성일아!”
 
 ***
 
 “성일아! 괜찮냐?”
 스태프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성일 씨. 괜찮아요?”
 조감독이 다가오자, 스턴트맨 박성일을 살피던 무술 감독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게 내가 매트리스는 위험하다고 했잖아요! 튕겨 나온다고!”
 “아니······.”
 조감독이 말을 하려다 다친 스턴트맨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추워져서 조금만 더 있다가 하자니까! 그걸!”
 애초에 사과나 듣자고 한 말이 아니었기에 무술 감독은 할 말을 다 한 후 다시 박성일을 살폈다.
 “어때? 심해?”
 “괜찮습니다.”
 “움직일 수 있겠어?”
 “괜찮··· 습니다.”
 박성일의 발목을 조심스럽게 만져 보던 무술 감독이 눈살을 찌푸렸다.
 “부러진 것 같은데.”
 조감독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부러졌다고요?”
 “최악의 경우요. 날이 추워서 통증이 잘 안 느껴지니까.”
 “최선의 경우는요?”
 무술 감독이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섰다.
 “어떤 경우라도 오늘 촬영은 더 못합니다.”
 “아니, 사정 다 아시면서.”
 “다쳤잖아요!”
 “감독님도 동의해서 리허설 한 것 아니었습니까!”
 “박스 구하자고 했죠! 아니면 조금만 시간 딜레이 해 달라고도 했잖아요! 갑자기 추워져서 몸이 얼어붙는다고!”
 무술 감독과 조감독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둘의 언쟁은 오래가지 않았다.
 “뭐 해요. 병원으로 옮겨요.”
 PD가 둘 사이를 불쑥 비집고 들어가서 박성일 앞에 쪼그려 앉았다.
 “성일 씨. 병원비 걱정 말고 치료받아요. 촬영 걱정도 하지 말고요. 알겠죠?”
 “피디님.”
 “검사 다 받아요. 뭐 해요? 어서 안 옮기고!”
 무술 감독의 지휘 아래, 박성일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 과정을 바라보던 PD가 조감독을 불렀다.
 “박성일이 대타 없어?”
 “당장은 없습니다. 오늘 무술팀이 최소 인원만 와서······.”
 “매트리스 잡던 인원들 있잖아?”
 “체격이 너무 다릅니다.”
 PD가 박성일을 제외한 무술팀원들을 떠올리며 체격들을 가늠했다.
 “오늘 촬영 마쳐야 하는 거 알지?”
 스케줄을 모를 리 없는 조감독의 표정이 어두웠다.
 “내가 듣고 싶은 건 해결책이야.”
 조감독의 눈동자가 좌우로 굴렀다.
 “시간을 좀 주시면 다른 스턴트맨을 수배해 보겠습니다.”
 “얼마나? 거리 통제 시간도 얼마 안 남지 않았어?”
 “최대한 빨리······.”
 “확실하게!”
 PD의 호통에, 조감독의 시선이 무술 감독을 찾아 촬영장을 훑었다.
 “아!”
 촬영장을 훑던 조감독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대타 있습니다!”
 조감독의 시선을 따라간 PD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진심이냐?”
 “네.”
 PD가 마춘동을 바라봤다.
 “상범이 오라 그래라.”
 
 ***
 
 김상범이 PD와 조감독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곤 자신과 동기인 조감독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돌았냐?”
 조감독이 김상범을 노려봤다.
 “아니면 미쳤냐?”
 “어쩔 수 없잖냐! 마춘동 씨 말고 더 좋은 방법 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 한 번 떨어지는 거로 어떻게 되겠냐고? 그게 말이냐? 어? 너 한번 아파 볼래?”
 “그럼 뭐 좋은 수라도 있냐?”
 “야이씨! 수가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아무리 촬영이 급하다 그래도 스턴트 뛰다가 다친 사람을 대타로 쓰겠다는 게 말이냐? 겉으론 멀쩡해 보이니까 괜찮은 것 같지? 저러다 순간 쓰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냐? 거기다 대타? 대타아? 쟤가 어쩌다 다친 거 다 알면서 그래? 춘동이가 후배 컨디션 안 좋아서 스턴트 대타 뛰다가 다쳐서 골로 갈 뻔한 거 몰라서 대타 소리가 나와? 어?”
 “알지. 상범아. 알아. 나도 사실 이러고 싶지 않다. 근데 방송 펑크 나면 그거 누가 책임질 거냐? 네가 질 거야? 어?”
 두 사람의 언쟁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PD의 미간 주름이 갈등만큼 점점 더 깊어졌다.
 “정호 있었으면 넌 지금 못 서 있어 인마!”
 “김상범! 일에 감정 넣지 마!”
 “넌 씨. 감정 안 들어가게 생겼냐? 성일 씨 다친 거 보고 아무 감정도 안 들디?”
 “다치니까! 위험하니까! 그러니까 무술팀이 있는 거 아니냐?”
 “야! 최두준!”
 “그만!”
 높아진 언성을 끊은 건 PD가 아니었다.
 “그만 하세요.”
 두 조감독 사이에 끼어든 마춘동이 PD와 눈을 맞췄다.
 “떨어지기만 하면 되는 거죠?”
 
 ***
 
 “춘동아. 이건 아닌 것 같다.”
 김상범이 분장하고 있는 마춘동을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야.”
 “보호대 다했습니다.”
 “성일 씨는 보호대 안 했다디? 매트리스도 그대로야.”
 마춘동이 미소를 보였다.
 거울을 통해 그 미소를 확인한 김상범이 잠시 멍하니 마춘동을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아무리 네가 성일 씨보다 더 베테랑이고! 스턴트도 잘했고! 그동안 쌓은 커리어에 비하면 간단한 스턴트라고 해도 다 지난 일이야. 네가 다치기 전의 일이라고! 너 그 뒤로 제대로 운동도 안 했잖아!”
 “못하겠다고 할까요?”
 “그래. 그러자. 나머지는 형이 다 알아서 할게.”
 마춘동이 고개를 저었다.
 “형님이 도와주신 게 얼만데요. 한 번에 끝내겠습니다.”
 “야! 그거 안 갚아도 돼! 아니, 그런 마음이면 절대 하지 마!”
 김상범이 펄펄 뛰었지만, 마춘동은 평온한 표정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형님께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아픈 마춘동이 계속 보조 출연자로나마 연기를 하며 지낼 수 있었던 건 김상범과 고정호를 비롯한 지인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커.’
 걱정하는 김상범에겐 미안했지만, 마춘동에게 이건 테스트이자 기회였다.
 “분장 끝났습니다.”
 “춘동 씨. 이쪽으로.”
 김상범의 바람과 달리,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창문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니, 무술 감독이 있었다.
 “필우 선배한테 들은 적 있어요.”
 송필우는 마춘동이 몸담았던 액션 스쿨의 감독이었다.
 “괜찮겠어요?”
 “괜찮습니다.”
 무술 감독이 마춘동의 몸을 스캔하듯이 아래위로 훑었다.
 마춘동이 씨익 웃었다.
 “저희에겐 흔한 일 아닙니까.”
 괜찮겠냐? 괜찮습니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몸을 던지는 게 스턴트맨이었다.
 “이런 일 하려고 존재하는 거고요.”
 최두준 조감독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무술 감독이 마춘동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액션 자체는 간단해요. 창문에서 떨어지면 됩니다. 그래도 조심해요.”
 마춘동이 창문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보다 더욱 추워진 바람이 열린 창문으로 들어와 몸을 굳게 만들었다.
 마춘동이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어 매트리스가 있는 아래를 바라봤다.
 ‘매트리스까지 깨끗하다.’
 아까 스턴트맨이 했던 리허설을 떠올린 마춘동이 무술 감독을 바라봤다. 무술 감독은 눈빛으로 괜찮겠냐고 다시 한번 물어오고 있었다.
 “매트리스에 닿는 순간 바짝 엎드리겠습니다.”
 “정말 괜찮겠어요?”
 “괜찮습니다. 수없이 해 봤던 액션이라.”
 무술 감독이 마춘동의 눈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무전기를 들었다.
 “잠깐만요. 몸 좀 풀겠습니다.”
 “그래요. 충분히 풀어요.”
 마춘동은 무술 감독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대환공의 동작을 하나씩 펼쳤다.
 ‘긴장해라.’
 대환공에 집중하면서도, 첫 스턴트 때를 떠올렸다.
 ‘바짝 긴장해라.’
 첫 스턴트 때, 마춘동의 선배이자 스승이었고, 무술 감독이었던 송필우가 그에게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흘러갔다.
 ‘여러 번 하면 너만 손해다.’
 ‘계속하다 보면 긴장 풀린다.’
 ‘한 번에 끝내라.’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해!’
 ‘그동안 연습했던 널 믿어!’
 송필우에게 들었고, 선배들에게 들었고, 다시 선배가 되어 후배들에게 해 줬던 말들이었다.
 대대로 물려받는 가보와 같은 문장들.
 “준비 끝났습니다.”
 대환공의 두 페이지에 해당하는 자세들을 끝내자, 일시적으로 몸에 활력이 솟았다.
 “정말 괜찮겠어요?”
 걱정스러운 눈빛을 받는데, 마춘동의 가슴은 도리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최근에 분명히 느껴 본 적 있는 느낌이었다.
 ‘살아 있다.’
 심장의 박동이, 불광천을 내달렸던 그때의 기억을 소환했고 이어서 다른 기억들도 떠올리게 했다.
 ‘훨씬 높은 곳에서도 뛰었었지.’
 비슷한 경험을 시작으로 스턴트를 뛰었던 기억들이 줄줄이 딸려 올라왔다.
 힘들었던 기억도,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당시의 감정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마춘동의 심장은 더욱 두근대기 시작했다. 아니, 심장을 넘어서 온몸이 두근거렸다.
 마춘동이 창문으로 다가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절로 미소가 입가에 맺혔다.
 ‘즐겁다.’
 그 사고를 당해 놓고, 그 아픔을 겪어 놓고도 지금 이 자리가 좋고 즐거웠다. 마주하면 눈이 부실 정도로 쨍한 조명과 촬영장에 있던 모든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집중된 시선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고, 걱정의 빛을 보내는 김상범을 향해 괜찮다는 눈짓도 보냈다.
 비록 대역일 뿐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의 촬영장은 오롯이 마춘동만의 무대였다.
 마춘동이 크게 호흡했다.
 차가운 현장의 공기에 정신이 맑아졌다.
 자신이 떨어질 곳을 확인한 마춘동이 창문에서 물러났다.
 “준비됐습니다.”
 테이프로 마킹된 지점에 선 마춘동이 집중했다.
 ‘긴장해라. 기회는 딱 한 번이다.’
 
 ***
 
 김상범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제발, 제발, 제발!’
 속으로 온갖 신에게 다 빌었다.
 마춘동이 스턴트를 하지 못하도록 발이라도 묶었어야 했다는 후회는 나중이었다. 일단 지금은 아무 일 없도록 빌기라도 해야 했다. 그게 김상범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이번 한 번으로 끝내자. 제발!’
 리허설이었지만 실전과 똑같았다.
 모든 세팅이 본 촬영과 같았고, 카메라도 돌아갔다.
 마춘동의 스턴트를 막을 수 없다면, 최소 시도로 끝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다.
 김상범의 귀에 준비됐다는 무전이 들렸다.
 “리허설 들어가겠습니다. 레디!”
 매트리스를 잡은 무술팀원들이 바짝 긴장했다.
 “액션!”
 김상범이 두 눈을 부릅떴다.
 ‘1, 2, 3.’
 시커멓던 창문에서 불쑥 마춘동이 나타났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창문틀을 뛰어넘은 마춘동이 떨어졌다.
 지켜보던 김상범의 오금이 저렸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탈 때, 아래로 뚝 떨어질 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날개가 없는 것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퍽!
 소리와 동시에 김상범의 다리가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아직 사인이 안 떨어져서 가만히 있는 것이겠지만, 김상범의 눈엔 미동도 하지 않는 마춘동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컷이야 오케이야? 뭐든 빨리 말하라고!’
 김상범의 두 눈이 PD를 잡아먹을 것처럼 번뜩이며 노려보았고, 거의 동시에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PD가 입을 열었다.
 “오케이!”
 김상범이 달렸다.
 최두준도 달렸다.
 PD도 헤드폰을 벗고 일어섰다.
 매트리스를 양쪽에서 잡고 있던 무술팀이 긴장한 눈빛으로 한 사람을 바라봤다.
 “수고하셨습니다!”
 죽은 것처럼 엎드려 있던 마춘동이 벌떡 일어났다.
 달려가던 최두준이 발을 멈추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고 있던 무술 감독도, 매트리스를 붙잡고 있던 무술팀의 입가에도 안도의 미소가 피었다.
 ‘한 번에 오케이 받았다!’
 희열 가득한 마춘동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기까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미친놈아!”
 하지만 김상범의 두 눈을 마주한 순간 마춘동은 다시 활짝 웃었다. 후회와 자책, 걱정으로 범벅된 눈동자 때문이었다.
 “형님. 그렇게 때리시면 멀쩡한 사람도 죽겠습니다.”
 마춘동이 김상범에게 맞은 등을 두 손으로 어떻게든 문질러 보려고 애썼다.
 손이 잘 닿지 않아 자기 자신을 끌어안은 모양새가 된 마춘동의 모습과 엄살이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미친놈. 웃음이 나오냐?”
 김상범이 마춘동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아픈 데 없어? 경련 일어날 것 같지 않아?”
 마춘동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김상범이 마치 도자기로 저글링을 하는 사람을 보듯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괜찮은데요?”
 “조심 좀 해라! 어휴. 심장 아파.”
 “형님. 어디 안 좋으십니까?”
 “너 때문에 인마! 너 때문에! 내 수명이 깎이는 기분이다. 알긴 하냐 인마!”
 매트리스에 나란히 걸터앉은 마춘동과 김상범의 대화가 촬영장에 울려 퍼졌다.
 “춘동 씨. 괜찮습니까?”
 “네! PD님.”
 최두준과 함께 다가온 PD가 일어서려는 마춘동을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곤 도리어 자신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마춘동이 PD의 두 눈을 마주했다.
 “미안합니다.”
 더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고르고 골라 이렇게 말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은 잘 나왔습니까?”
 PD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PD가 일어섰고, 동시에 최두준이 외쳤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멈춰 있던 스태프들이 철수하기 위해 현장 정리를 시작했다.
 “반장님한테 전달했어요.”
 최두준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직접 줄 것이지.”
 “절차라는 게 있잖아!”
 “절차라는 게 있어서 촬영을 이따위로 했냐?”
 “미안하다. 됐냐?”
 김상범과 최두준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무술 감독이 다가와서 마춘동이 보호대를 벗는 걸 도왔다.
 “정말 괜찮아요?”
 “네.”
 무술 감독이 마춘동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안심이 안 되는지 팔과 다리, 어깨 등을 주물렀다.
 “괜찮습니다.”
 무술 감독이 매트리스 위에 정리해 놓은 보호대를 주섬주섬 주웠다.
 “깔끔했어요.”
 “감사합니다.”
 “복귀해도 되겠던데요.”
 김상범과 최두준의 목소리가 뚝 하고 끊겼다.
 눈치가 보이는지, 무술 감독이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그만큼 잘했다는 소리였어요.”
 미소만큼이나 어색하게 돌아서는 무술 감독이 김상범과 눈이 마주치자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그 경험을 하고 돌아오기가 쉽지 않지. 부상 없는 게 비정상인 바닥인데.”
 무술 감독을 바라보던 김상범의 도끼눈이 풀렸다. 부상이라는 단어에 떠오른 한 사람 때문이었다.
 “성일 씨는 어떻게 되었답니까?”
 “부러진 건 아니랍니다. 자세한 건 검사 결과 나와야 안다고. 바로 가 봐야죠.”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식 전해 주세요.”
 무술 감독과 인사한 김상범이 마춘동에게 다가왔다.
 “좀만 기다려. 같이 가자.”
 “네.”
 분장을 지우고, 의상을 반납한 마춘동이 이젠 한산해진 거리를 바라봤다. 김상범의 일이 끝나려면 조금 더 시간이 남았기에 느긋하게 패딩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에 했던 스턴트가 떠올랐고, 시선이 자연스럽게 창문과 매트리스가 있던 바닥을 번갈아 향했다.
 꿈처럼 아득하게 떠오르는 것에 반해, 몸의 느낌은 당시처럼 생생했다. 다시 한번 온몸이 두근거리는 느낌에 전율이 일었다.
 주머니 속에서 주먹이 몇 번이고 꽉 쥐어졌다 펴졌다.
 ‘복귀.’
 무술 감독이 말했던 한 단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
 
 마춘동이 대환공을 멈췄다.
 이불 위에서도 선명한 폰의 진동음 때문이었다.
 “형님?”
 오늘은 촬영도 없는 날이었기에, 이른 아침 김상범의 전화가 의아했다.
 “여보세요? 네. 형님.”
 ―나와.
 “네?”
 ―지금 너희 집으로 가고 있으니까 나와.
 “오고 계시다고요? 무슨 일 있으세요?”
 ―너 병원 가야지 인마!
 “형님. 저 진짜 괜찮은데요.”
 빈말이 아니라 마춘동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두근거림에 쉬이 잠들지 못해 대환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차례 펼친 후 잠들었고, 개운하게 일어난 후에도 대환공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태어난 이후로 가장 컨디션이 좋은 날인데.’
 하지만 김상범에겐 마춘동의 상태가 전해지지 않았다.
 ―잔말 말고 내려와! 아니다. 내가 올라가마.
 일방적으로 끊어진 전화가 김상범의 의지를 대변했다.
 마춘동이 빠르게 씻었다.
 “아침 먹어야지?”
 “상범이 형 온대요.”
 “상범이? 새벽에도 데려다줬다고 하지 않았어?”
 촬영이 새벽에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김상범은 마춘동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퇴근했었다.
 “그러니까요.”
 “무슨 대답이 그래?”
 벨이 울렸다.
 마춘동이 현관 모니터로 김상범을 확인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김상범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새벽에도 왔다 갔다면서.”
 “어머니 얼굴 못 뵙기도 했고, 오늘 춘동이 병원 가는 날이라서요.”
 “어머, 그래?”
 왜 말 안 했냐는 어머니의 눈빛에 마춘동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몰랐던 내 병원 스케줄을 어떻게 말씀드리겠습니까.’
 할 말은 많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스턴트 뛰었다는 사실도 말해야 하기에 마춘동은 입을 닫았다.
 “가자.”
 “밥 먹고 가지 그러니?”
 “공복이 검사에 좋아요. 검사 끝나고 든든히 먹일게요.”
 “그러지 말고 집으로 오렴.”
 “제가 오후엔 방송국 들어가 봐야 해서요. 다음에 꼭 오겠습니다.”
 “매번 고마워서 어쩌니.”
 “아니에요. 어머니. 그럼.”
 김상범에겐 한없이 자애로웠던 어머니의 눈빛이 뒤돌자마자 변했다.
 “형 말 잘 듣고.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경과보고하고!”
 “넵. 다녀오겠습니다!”
 
 ***
 
 ―미친놈아!
 김상범이 한쪽 눈을 감으면서 폰을 귀에서 뗐다.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병원 복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슬쩍 고개를 숙인 김상범이 다시 폰을 귀에 댔다.
 ―내가 편집하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눈을 의심하는 걸 넘어서 안경 닦기로 눈을 닦을 뻔했다! 귀띔이라도 해 주던가!
 김상범이 말을 할 틈이 없었다.
 ―아니! 넌 안 말리고 뭐 했냐? 진짜 미친 거 아니냐? 예전에 동춘이 다쳤을 때, 그때 현장에 있었으면서······.
 “춘동이라고 이 새끼야!”
 ―지금 그게 중요하냐!
 “너도 현장에서 춘동이 표정 봤으면, 절대 못 말렸을 거다. 사고 이후로 단 한 번도 못 봤던 표정이었어. 스턴트할 때 행복해하던 그 표정. 기억나냐?”
 뭐라고 더 쏘아붙이려던 고정호의 입이 닫혔다.
 “잘하면 카메라에 담겼겠네. 앞뒤로.”
 촬영 원본을 돌려 보는지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마춘동이 재활 치료실에서 나왔다.
 “야, 나 춘동이랑 병원 왔거든. 끊어.”
 고정호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통화를 끝낸 김상범이 마춘동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가 모니터를 보곤 안경을 고쳐 썼다.
 “원인을 특정할 수 없는 병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완치 판정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그 말씀은······.”
 굳었던 의사의 표정이 달라졌다.
 “지속적으로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해도 되겠죠? 축하드립니다.”
 의사가 환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검사에서는 어떤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재활 치료사도 기존보다 훨씬 부하가 걸리는 운동을 했음에도 증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고요. 아니,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강인한 체력을 갖춘 상태라고 하던데요?”
 의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혹시 몰래 운동하셨습니까? 분명 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김상범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진짜 나았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마춘동 씨의 병은 완치라는 판정을 내리기 몹시 어렵습니다. 예전에 이미 완치되었던 골절, 근육 파열과 같이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병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진료 기록과 오늘 검진 결과로 미루어 보건대,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완치되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요.”
 “정말입니까?”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요?”
 김상범은 믿기지 않는 지 몇 번이고 확인했고, 의사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제가 계속 아팠으면 좋겠습니까?”
 “안 믿겨서 그러지. 넌 놀라지도 않냐?”
 의사도 덤덤한 마춘동의 표정에 의아해했다.
 “꼭 나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너 지금, 형님이랑 달리요, 라고 생각했지?”
 “아닙니다.”
 “눈빛이 딱 그런데?”
 “찔리시는 거 아닙니까?”
 잠시 마춘동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김상범이 팔로 마춘동의 목을 휘감았다. 투박한 축하에 마춘동은 엄살을 피우며 화답했다.
 “마춘동이, 돌아온 걸 축하한다.”
 “제가 어딜 갔었습니까?”
 김상범은 그저 미소 지었다. 괜히 그동안 풀이 잔뜩 죽은 채 좀비처럼 영혼 없던, 죽상과 다른 바 없던 표정에 대해 얘기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 말 들으면 더 미안해하겠지. 앞으로 괜히 표정 관리도 할 테고.’
 생기 가득한 표정을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형님. 이제 그만 풀어 주시면 안 될까요?”
 “응. 안 돼.”
 둘을 지켜보며 의사가 흐뭇하게 웃었다.
 “축하드려요. 그래도 당분간 꾸준히 병원 오셔야 합니다. 그럼.”
 의사가 둘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문을 가리켰다.
 “그만 나가 주실래요. 김 간호사! 다음 환자분 들여보내세요!”
 
 ***
 
 ‘복귀.’
 샤워하는 내내. 아니, 근래 계속해서 마춘동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단어였다.
 ‘다시 스턴트를 한다.’
 대환공을 통해 몸이 좋아진 것을 혼자 알았을 때와, 의사를 통해 확인받은 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확인받은 이후로, 복귀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다.
 샤워기를 끈 마춘동이 수건을 꺼냈다.
 몸을 닦는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이 보였다. 수술 자국도 있었고, 흉터도 제법 있었다. 흉터를 보니 다쳤던 그 당시가 떠오르며 아찔하기도 했고, 아픔이 되새김질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창 운동하던 때보다 좋은 것 같다.’
 보기에 좋다는 게 아니라, 운동 능력 자체가 업그레이드된 것 같았다.
 몸을 닦으며 이리저리 움직여 보던 마춘동이 옷을 걸치고 나왔다.
 “무슨 샤워를 그렇게 오래 하니? 너 출연한 드라마 한참 전에 시작했어.”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어머니가 물었다.
 “근데 오늘은 어디 어디 나와?”
 “아, 오늘은······.”
 마춘동의 대답이 끊겼다.
 TV 속에서 창문에서 마춘동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 3. 돌아오지 마라
 
 TV 화면 속에서 남자가 창문을 훌쩍 넘어 뚝 떨어졌다.
 주차되어 있던 차의 지붕에 떨어진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드라마의 주연, 이강후였다.
 창문에서 이강후를 쫓던 자들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오며 고함쳤고, 이강후가 몸을 굴려 차에서 내려섰다.
 “어휴. 위험해라. 저 장면 찍으신 분은 괜찮으시니?”
 “네.”
 마춘동이 머리를 말리려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머리를 툭툭 털며 말리다 왼쪽 옆머리를 마저 말리려 드라이기를 옮기자 선이 코드에서 빠졌다. 다시 코드를 꼽으려고 하는데, 바깥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춘동이가 저런 일 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가끔은 되려 춘동이가 저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니······.”
 마춘동이 코드를 꽂고 드라이기를 켰다. 들렸나 싶었는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급격히 작아졌기 때문이었다.
 ‘비밀로 하는 게 낫겠다.’
 저 장면을 자신이 찍었다는 걸 어머니가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했다.
 ‘검사 결과도 소용없을··· 아니, 더 불안해하시겠다.’
 상태가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좋아하시던 며칠 전 어머니의 표정이 마춘동의 머릿속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예 이쪽에 발도 못 붙이게 하실 수도.’
 부모 마음이란, 언제나 응원과 걱정이 줄다리기하는 법 아니던가.
 마춘동이 말리던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불효자식이지 뭐.’
 언제고 동기들끼리 너희 부모님은 스턴트 하는 거 뭐라고 안 하시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동기 하나가 했던 대답이었다. 다시금 스턴트를 하고 싶은 지금의 마춘동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고.
 방을 나서자, 어머니가 마춘동을 바라봤다.
 “무슨 머리를 그렇게 오래 말려? 드라마 다 끝나 간다.”
 “오늘은 제가 나온 부분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모니터링은 꾸준히 해야지.”
 지금은 응원이 걱정을 이긴 모양이었다.
 “잘했으면 기사 나겠죠.”
 마춘동은 별 뜻 없이 한 말이었는데, 어머니가 그 말을 덥석 받았다.
 “그러게. 잘하면 기사가 나야 하는데 기자들은 매번 주연 배우 기사만 쓰더라. 보조 출연자도 잘하면 기사도 좀 내 주고 해야 새로운 얼굴도 발굴하고 그러지. 안 그래요?”
 “음. 보조 출연자 기사 올라왔나 볼까?”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단이 잘 맞았다. 세상 어느 기자가 드라마 본방송이 끝난 직후 특정 보조 출연자의 기사를 올리겠느냐마는, 마춘동의 부모님은 기사를 보면서 오히려 기자들을 호되게 혼냈다.
 “이것 봐요. 주연 배우들 얘기밖에 없네. 매회 똑같은 것 같은 기사 질리지도 않은가 몰라.”
 “복사 붙여넣기를 하는 건가?”
 “맞죠? 그런 것처럼 보이죠? 매번 러브라인이 어떠니, 눈빛이 애틋했니, 연기가 좋았니, 액션이······.”
 무심코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어머니가 입을 닫았고, 아버지가 헛기침했다.
 “뉴스 안 하나.”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그럴래? 잘 자렴.”
 “안녕히 주무세요.”
 방으로 들어온 마춘동은 침대에 몸을 던지기 전에 폰으로 기사를 확인했다.
 ‘액션.’
 어머니가 무심코 읽을 정도로 수많은 기사의 중간에 이강후의 액션에 대한 기사가 섞여 있었다.
 기사의 다른 문장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액션씬으로 이강후는 그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여리여리한 이미지를 깨며 그 안에 상남자가 있다는 걸 시청자들에게 알렸다. 액션 중 창문에서 차 위로 떨어지는 장면이 가장 아찔하고 강렬했다. 스태프의 말에 의하면 창문을 넘어 떨어지는 장면은 촬영본을 편집 없이 그대로 내보낸 것이라······.’
 어머니의 말처럼 스포트라이트는 주연 배우가 받았다.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 일부러 저렇게 기사를 냈건, 기자가 멋대로 오해해서 저렇게 기사를 썼건, 충분히 분할 상황인데 자신의 액션을 빼앗긴 마춘동의 표정은 전혀 분하지 않았다.
 되려 웃고 있었다.
 밖에 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소리 질렀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한 스턴트가 최고였다.’
 기사는 이강후를 칭찬했지만, 마춘동의 눈에는 자신을 향한 칭찬으로 보였다.
 아무도 몰라줘도 스턴트맨들은 이런 기사, 현장의 칭찬, 동료의 엄지손가락 하나에 아픔과 두려움을 이겨 내고 멋진 그림을 위해 몸을 던진다.
 기사를 보는 와중에 폰이 진동하며 화면이 바뀌었다.
 “어?”
 걸려 온 전화를 바로 받아 버린 마춘동이 황급히 폰을 귀에 댔다.
 “감독님. 안녕하셨습니까.”
 ―안녕 못 하다. 누가 기사 보고 실실 웃고 있을 것 같아서.
 마춘동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피었다.
 “역시 감독님이십니다.”
 스턴트맨의 마음을 스턴트맨이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랴.
 ―몸도 좋아졌다며?
 “예.”
 마춘동이 어떤 소식도 전하지 않았건만, 송필우는 마춘동의 근황을 모두 꿰고 있었다.
 ―목소리 밝은 거 보니 진짠가 보네.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아닙니다.”
 ―언제 시간 되냐? 얼굴 한번 보자.
 “제가 맞추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에 어때?
 “됩니다.”
 ―그래. 그럼 액션 스쿨로 9시까지 와.
 “예. 내일 뵙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폰에 다시 기사가 떴다. 하지만 마춘동의 눈에 더는 기사가 들어오지 않았다.
 ‘액션 스쿨.’
 잠을 설칠 것 같았다.
 
 ***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나도 안 변했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고, 매일 같이 보던 풍경이었다.
 마춘동은 버스 차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짜 하나도 안 변했네.”
 버스에서 내린 마춘동이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공기에서 느껴지는 향기마저도 예전 그때와 같았다. 지나가는 곳곳마다 떠오르는 추억을 뒤로하고, 길을 걸었다. 생각지 않아도 발이 저절로 알아서 길을 찾았다.
 [PW action school]
 커다란 컨테이너를 연상시키는 건물 앞 현판을 마춘동이 감회에 젖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다신 못······.’
 “다신 못 올 줄 알았다는 눈으로 그만 쳐다보고 들어와.”
 안에서 들리는 송필우의 목소리에 마춘동이 입가 가득 미소 짓곤 들어갔다.
 “감독님 안녕하십니······.”
 반가움이 가득하던 얼굴에 연습용 목봉이 날아왔다.
 마춘동은 반사적으로 옆으로 물러서며 피했다.
 붕. 붕.
 양손을 번갈아 가며 목봉을 돌리던 송필우가 오른발을 크게 내질렀다.
 훙!
 고개를 살짝 틀어 피한 마춘동의 머리카락이 목봉이 일으킨 바람에 날렸다. 조금만 피하는 게 늦었어도 얼굴이 정통으로 목봉에 찍힐 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피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지도 않았다.
 ‘봐주고 계신 것 같은데.’
 마춘동과 송필우가 서로 대치했다.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던 송필우가 다시 움직였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목봉이 빠르게 마춘동을 노렸다. 찌르는 동작도 있었지만, 대다수 베기와 같이 휘두르는 동작들이었다. 화려하긴 했지만 효율적이진 않는 공격들.
 송필우가 봉술에 일가견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케이지!’
 영화 'CAGE'의 캐릭터가 펼쳤던 봉술이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봉술을 참고로 화면에 화려하게 보일 수 있도록 변형된 봉술이자, 상대역이었던 마춘동이 수없이 상대했던 봉술이었다.
 제법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한 동작도 빠짐없이 기억났다.
 ‘왼쪽 어깨 다음은 봉을 한 바퀴 돌린 후에 오른 무릎.’
 손발을 묶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정확히 어딜 노리고 올 것인지 아는 걸 피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 공격은 하단 쓸기. 내가 점프해서 피하면 그대로 찔러 오기로 했었지.’
 마춘동은 단순히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되었던 합을 그대로 재현하기 시작했다.
 마춘동이 자신의 발목을 쓸어 오는 목봉을 뛰어서 피했다.
 하지만 송필우는 목봉을 찌르지 않았다.
 “저기 있다.”
 마춘동이 송필우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거기엔 영화 CAGE에서 마춘동이 썼던 톤파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춘동이 톤파를 쥐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쥔 톤파의 촉감이 마춘동을 흥분시켰다.
 “다시 간다.”
 “넵!”
 송필우가 목봉을 휘둘렀다.
 들어오자마자 휘둘렀던 것과 같은 합이 반복되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마춘동이 톤파를 쥐었다는 것과, 목봉의 속도가 조금 전보다 빨라졌다는 것이었다.
 ‘점점 빨라진다.’
 찌르고 베어오던 목봉은 금세 조금 전 멈췄던 하단 쓸기까지 이어졌다.
 마춘동이 뛰어오른 순간, 이번에는 송필우가 망설임 없이 목봉을 들어 올려 마춘동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목봉의 속도가 처음보다 두 배는 더 빨랐다.
 하지만 마춘동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톤파를 교차하여 목봉의 찌르기를 막은 마춘동이 착지하자마자 송필우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오른 주먹, 왼 주먹, 오른쪽 톤파 돌려서 어깨 찌르기.’
 본격적인 마춘동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송필우는 공격을 피하면서 거리를 벌리려 뒷걸음질 쳤다.
 그때부터 마춘동과 송필우 두 사람은 넓은 액션 스쿨을 종횡무진 가로질렀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던 땀은 어느새 전신을 흠뻑 적셨다.
 “합!”
 기합을 내지른 송필우가 목봉을 중앙에서 양손으로 넓게 잡은 다음 빠르게 휘둘렀다. 길었던 목봉의 리치가 순식간에 짧아지며 근접전에서도 공격이 수월해졌다.
 마춘동도 지지 않았다.
 톤파를 적극 이용해서 목봉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시에 주먹과 발을 사용하여 송필우를 타격했다.
 따악!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송필우가 목봉을 놓쳤다. 정확히는 그 부분에서 목봉을 놓치도록 합이 짜여 있었던 것이었다.
 이어지는 액션이 있었지만, 마춘동은 액션을 이어 가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다.”
 두 사람의 몸에서 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호흡을 고르던 송필우가 고개를 까딱였다.
 “씻자.”
 
 ***
 
 “새끼. 배 나온 것 좀 보게.”
 송필우가 마춘동의 옆구리를 잡았다.
 머리를 감던 마춘동이 예상치 못한 손길에 배에 힘을 줬다.
 “힘줘도 안 들어가는 거 보소.”
 “그동안 근력 운동을 못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쩍쩍 갈라지던 그 몸이 이렇게 사라졌냐.”
 “감독님도 앉아서 먹기만 해 보십쇼.”
 송필우가 마춘동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움직임에 비해 몸이 너무 엉망인데?”
 대환공으로 인해서 운동 능력은 향상되었지만, 오랜 치료로 운동을 쉬는 바람에 늘어진 몸은 여전했다.
 “감독님에 비해서 그렇지. 이 정도면 평범한··· 아니, 직장인들의 워너비 정도 됩니다.”
 “워너비가 너무 소박한 거 아니냐? 직장인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너무 노골적으로 뜯어보시는 거 아닙니까?”
 “뜯어볼 몸이나 되긴 하냐? 완전 아저씨 몸이구만.”
 “전당포하던 아저씨 몸이요?”
 “이 아저씨 몸 말고, 그 아저씨 몸으로 아까처럼 움직였으면 내가 놀랄 일도 없지.”
 송필우가 다시 봐도 신기하다는 듯 마춘동의 몸을 살폈다.
 “어떻게 저 몸에서 예전 움직임이 나오지?”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송필우의 입을 막을 재간이 없었기에, 마춘동은 그저 샤워에 열중했다.
 “자.”
 씻고 나온 마춘동에게 송필우가 갈아입을 옷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너 근데 스턴트 다시 할 거냐?”
 몸을 닦고 옷을 입고 있던 마춘동이 송필우를 바라봤다. 질문했지만 마치 답을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네.”
 “하긴, 그러니까 창문에서 떨어졌던 거겠지.”
 송필우가 옷을 다 입은 마춘동의 옆으로 다가왔다.
 “몸은 완전히 나은 거냐? 지금까지 본 바로는 나은 것 같다만.”
 송필우가 유독 마춘동의 몸을 뜯어본 이유는 미세한 경련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마춘동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싶었으니까.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의사 얘기로는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기적이라.”
 송필우가 마춘동의 두 눈을 바라봤다.
 “기적을 경험하고도 스턴트를 하겠다.”
 마춘동이 대답하려는데, 송필우가 그의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돌아오지 마라.”
 
 ***
 
 ‘돌아오지 마라.’
 마춘동의 머릿속에서 송필우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감독님······.”
 “샤워실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지?”
 송필우가 문을 열고 대표실로 먼저 향했다.
 뒤따르는 마춘동의 표정이 복잡했다.
 ‘무슨 마음으로 하신 말씀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시 스턴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가슴은 송필우의 발언을 튕겨 냈다.
 대표실에 들어선 둘은 침묵했다.
 송필우가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내렸다.
 “감사합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자, 온기가 퍼지면서 머리가 맑아졌다.
 소파에 앉은 둘이 동시에 잔을 내려놨다.
 “감독님.”
 송필우가 일어서려다 다시 자리에 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마음으로 하시는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턴트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몸이 낫고 나니 더 간절해졌습니다.”
 진심을 전하는데 길고 화려한 언변은 필요치 않다.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이 마춘동의 마음을 송필우에게 정확히 전달했다.
 하지만 송필우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전화 오는 게 두려워. 특히 현장이 있는 날 느닷없는 전화는 더욱.”
 송필우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갑자기 울리는 전화를 받을 때면 늘 떨리던 그의 손과 눈을 똑똑히 기억하는 마춘동은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헤아렸다.
 “너 사고 났을 때, 현수 이름이 내 폰에 뜨는데 느낌이 오더라. 아, 이건 큰 사고다.”
 당시가 떠오르는지, 담담하던 목소리가 떨렸다.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춘동이 그랬던 것처럼, 송필우의 말 역시 길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너 괜찮아졌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리고.”
 기뻐했다던 사람의 표정이 아찔했다.
 “네가 스턴트 뛰었다는 소식에 심장이 내려앉더라.”
 “죄송합니다.”
 송필우는 고개를 저었지만, 마춘동은 고개를 푹 숙였다. 비단 송필우의 마음을 헤아려서만이 아니었다. 송필우는 그동안 마춘동이 나을 수 있도록 물적, 심적으로 최선을 다했었다. 그런 송필우에게 얼굴은커녕, 전화 한 번 하지 않고 스턴트 뛰었다는 걸 다른 사람을 통해 듣게 한 것이 미안했다.
 “그런데.”
 마춘동이 고개를 들었다.
 “네가 즐거워하고 있더라.”
 송필우의 입가가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네 말을 들어 보고 결정했다. 어차피 말릴 수 없다면.”
 송필우가 일어나서 서랍에서 대본 하나를 꺼냈다.
 “차라리 빛나라.”
 마춘동이 자신의 앞에 놓인 대본과 송필우를 번갈아 봤다.
 “난 네가 나은 게 액션 스쿨로 돌아오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동료가 다쳤어.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지. 누군가는 다시 돌아왔지만, 누군가는 두려움에 다른 삶을 찾아 떠났다. 그런 곳이다.”
 천운이 따라 나았지만, 언제고 다시. 아니, 더 크게 다칠 수 있다. 어쩌면 이번엔 다치는 것으로 안 끝날지도 모른다.
 마춘동도 각오했고 다시 각오한 삶이었다.
 “난 운명이란 걸 믿는 편이다. 이 대본이 나에게 들어왔고, 마침 네가 나았다.”
 하지만 송필우는 지금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시 잡은 기회를 여기다 쓰지 마라.”
 송필우가 대본을 가리켰다.
 “더 넓은 세상에서 빛나라.”
 마춘동이 대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까 돌아오지 말라고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았다.
 그러나 쉽게 대본을 잡을 수 없었다.
 대본을 잡을 이유는 수없이 많았다.
 송필우의 말처럼 어떻게 다시 잡은 기회인가.
 배우를 하면서도 스턴트를 할 수 있다.
 예전의 마춘동은 배우를 동경하지도 않았고 스턴트맨으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부상과 함께 보조 출연자의 삶을 경험하며 배우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부모님이 조금 덜 걱정하실 수도. 아니, 같은 일을 하더라도 조금 더 자랑스러워하실 수도.’
 팀이 아니라 홀로 겪은 음지는, 양지를 향한 강한 열망을 갖게 했다.
 ‘물론 성공한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지만.’
 스턴트맨이라고 성공이라는 전제가 안 붙는 것도 아니다.
 스턴트맨과 배우는 출발선도, 꿈꿀 수 있는 목표도 달랐다.
 더 많은 기회, 명예, 인기, 부.
 그걸 잡을 수 있는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으로 가는 문.
 그 문의 열쇠가 마춘동의 앞에 놓여 있었다.
 열쇠를 쥐고, 문을 열면 된다.
 하지만 마춘동은 쉽게 대본을 잡을 수 없었다.
 ‘어떻게 나만.’
 남들은 바보 천치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마춘동은 동료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들을 두고 배우의 길을 걷는 건 왠지 배신하는 것만 같았다.
 말없이 지켜보던 송필우가 고개를 저었다.
 “배신은 가당찮고, 의리도 충분히 지켰다.”
 마춘동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송필우가 대본을 들어 올렸다.
 “네가 그동안 지킨 의리가 얼만데. 누가 손가락질하겠냐. 설령 그런 손가락이 있으면 내가 부러뜨려 주마.”
 송필우가 마춘동의 뒤를 가리켰다.
 “네가 해야 할 건 의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저들의 등대가 되어 주는 거야. 액션 스쿨 출신의 스타.”
 대표실 문을 등지고 앉아 있던 마춘동이 뒤돌아봤다.
 “언제?”
 송필우와 둘이서 합을 맞추고 샤워하고 대표실에 들어올 때까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던 액션 스쿨 동료들이 대표실 유리문 밖에서 마춘동을 향해 웃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액션 스타 마춘동!”
 PW 액션 스쿨 동료들이 한목소리로 마춘동의 이름을 외쳤다.
 “무명 액션 배우 마춘동 씨.”
 송필우가 ‘저기서 누가 널 시기 질투할 것 같냐?’는 표정으로 대본을 내밀었다.
 마춘동이 동료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더니, 대본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감사는 무슨. 이제 혼자 헤쳐 나가야 하는데.”
 대표실 문을 열고 동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PW 액션 스쿨······.”
 “잘 지냈냐?”
 “너 스턴트 뛴 거 봤다. 이제 진짜 괜찮아?”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대답할 틈도 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반가운 얼굴들에, 마춘동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선배님······.”
 한 사내가 울먹이며 다가왔다.
 “현수야.”
 강현수.
 그는 마춘동이 사고가 난 스턴트를 원래 뛰기로 되어 있었던 후배였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그를 대신해 마춘동이 스턴트를 뛰었고, 사고가 났다.
 “선배님······.”
 마춘동이 강현수에게 다가갔다.
 “고생 많았다.”
 어깨를 토닥이자, 강현수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동료들이 괜스레 강현수를 놀렸다.
 “카리스마 현수 울보였네?”
 “너 울다가 웃으면 털 난다?”
 “후배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거늘.”
 “이런 건 기록으로 남겨야 해.”
 선배는 물론이고, 동기들에게도 놀림을 받자 강현수가 양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눈물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마춘동은 강현수의 어깨를 토닥여 준 후 뒤돌아섰다. 집중된 시선이 강현수를 더욱 울리는 것 같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함이었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성공 못 하면 뒤질 줄 알아.”
 “그럼 기회를 주시는 김에, 투자도 좀 해 주시죠.”
 “투자?”
 “네. 좋은 액션 스쿨 추천 좀 해 주십시오.”
 마춘동의 의도는 확실하게 먹혔다.
 다른 액션 스쿨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시선이 집중되었고, 강현수도 눈물을 뚝 그쳤으니까.
 “돌아오지 말라면서요?”
 마춘동의 장난기 어린 눈빛과 뻔뻔한 표정을 마주한 송필우가 장단을 맞추었다.
 “딴 데 가면 뒤질 줄 알아라.”
 송필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주먹을 들어 보이자, 마춘동이 바짝 쫀 신병처럼 차려 자세로 거수경례했다.
 “넵! 충성!”
 웃음이 터졌고.
 “야! 현수야! 너 진짜 그러다 거기에 털 난다?”
 다시 강현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
 
 새벽 댓바람부터 불광천으로 나와 대환공을 마친 마춘동이 천천히 걸었다.
 ‘상쾌하다.’
 첫날의 기억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 첫날을 제외하곤 대환공을 펼치고 나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 잠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되려 피로가 가시고 활기가 돋았다.
 멀쩡해 보이는 후드티와 달리, 안에 입은 티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마춘동은 찬바람에 땀이 식을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더욱 천천히 걸었다. 많이 좋아졌다는 진료 결과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노심초사였고, 가벼운 산책을 하러 나갔다가 들어온 마춘동의 티셔츠가 땀에 흠뻑 젖은 걸 본 이후로 신경이 더 곤두선 것 같았다.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걸 알기에, 마춘동도 나름대로 어머니를 배려하는 방법을 택했다.
 “여름엔 좀 힘들겠는데.”
 에어컨 빵빵한 편의점이나, 은행, 우체국 등을 이용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아직은 차가운 겨울 끝자락의 아침 바람이 마춘동의 티셔츠를 다 말렸다.
 “다녀왔습니다.”
 “밥 먹어야지?”
 “씻고 먹을게요!”
 “오늘도 세 그릇?”
 “네!”
 화장실로 직행한 마춘동이 옷을 벗고 물을 틀었다.
 ‘딱 봐도 운동 한 번 안 한 것 같은 백수인데, 알고 보니 고수다.’
 마춘동이 도전할 배역에 관해 송필우가 해준 부연설명이었다.
 “원래 김 감독님이 팀원 한 명 빼 달라고 요청했었는데, 지금 드라마 들어가고 있는 것도 있고 드라마 끝나고 바로 영화 들어가야 하는 것도 있어서 고심하던 차였다.”
 처음에는 부담가지지 말라는 뜻에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듣다 보니 상황과 캐릭터가 모두 마춘동을 지목하고 있었다.
 “보면 알겠지만, 살찐 상태에서도 고난도 액션이 많아. 그래서 감독님이 무술팀원부터 찾았어. 그런데 그 캐릭터 소화하려면 애들 살 좀 찌워야 하고, 연습도 따로 해야 돼. 다른 촬영은 당연히 못 하게 되고.”
 고사하려는 찰나, 마춘동의 스턴트 소식이 송필우의 귀에 들어갔던 것이었다.
 마침 운동을 쉬면서 불어난 마춘동의 몸과, 송필우가 확인한 운동 능력은 마치 이 배역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해 온 배우를 마주한 것 같았다.
 “내가 따로 연락 드리겠지만. 그래도 오디션 잘 봐야 한다. 알지? 김 감독님 성격.”
 송필우와의 대화를 떠올리던 마춘동이 어느새 습기로 뿌옇게 변한 거울을 손바닥으로 닦았다.
 ‘이 정도면 괜찮으려나.’
 송필우는 그냥 지금 딱 좋다고 말했었지만, 대본을 읽어 본 마춘동의 생각은 달랐다.
 ‘동네 백수가 뱃살 좀 있어야지.’
 슬쩍 늘어지긴 했어도, 나왔다곤 할 수 없었던 마춘동의 배가 거울 속에서 출렁였다. 그래도 역삼각형에 가까웠던 상체는 보기에 따라 원통이나 원뿔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ET형까진 오버겠지?’
 요구하는 대로 액션만 하다가, 외모, 감정, 과거 등의 캐릭터 분석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현장 경험을 떠올리며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영화 내 캐릭터의 포지션 포인트가 반전이었으므로, 운동이라고는 하나도 모를 것 같은 백수의 외형이 되기 위해 열심히 먹었다. 대환공으로 인해 신진대사가 높아졌다는 것도 살을 찌우는 과정에서 알았다.
 ‘당장 ET형까지 찌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높아진 신진대사는 한 끼의 양을 세 배로 늘리고서야 살이 붙는 걸 허락했다.
 ‘요구하시면 맞춰서 찌워 보지 뭐.’
 스턴트맨이 된 이후로, 가장 높은 몸무게를 찍은 마춘동이 자신의 모습을 어색하게 바라봤다.
 ‘대환공 덕분에 움직임은 전혀 둔해지지 않았으니까.’
 샤워를 끝낸 마춘동이 수건을 팡팡 소리가 나도록 털었다.
 ‘잘해 보자!’
 무술팀으로 부딪치던 세계에, 송필우의 말처럼 이젠 홀로 나아가야 했다.
 ‘할 수 있다!’
 샤워를 마친 마춘동이 옷을 입고 화장실을 나왔다.
 “밥 먹어라.”
 “넵!”
 오디션을 잘 보려면 역시 배가 든든해야 했다.
 
 ***
 
 “패션 희한하다.”
 “들릴라.”
 “이어폰 꽂고 있잖아.”
 “그래도.”
 지하철에 탄 학생들이 마춘동을 보고 수군거렸다.
 그 수군거림에 다른 승객들도 마춘동을 한 번씩 쳐다봤다. 대다수가 그냥 무표정하게 고개를 다시 제자리로 돌렸지만,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고, 고개를 돌리면서 웃음을 머금는 사람도 있었다.
 “어? 배우인가?”
 “배우?”
 “손에. 대본 아냐?”
 “아, 그래서?”
 눈썰미 좋은 학생의 지적에, 그제야 마춘동의 난해한 패션이 이해된 듯 학생들이 단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자마자 백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 형 백순데 저렇진 않아.”
 “나중에 엄청 성공한 배우 되는 거 아냐? 사진 요청이나 해 볼까?”
 “옷 저렇게 입는다고? 연기를 잘 해야지. 딱 보니 스타일리스트 이직 각이네.”
 “어? 내린다.”
 마춘동이 지하철 문 쪽으로 이동했다.
 도중에 스쳐 지나가듯 눈이 마주친 학생들이 황급히 폰을 들어 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아! 내가 알고 보면 진짜 대단하다니까?’
 ‘거 뭐 필요한 거 없어요?’
 ‘무슨 일 있어요?’
 학생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니, 같은 지하철 칸에 어떤 사람들이 탔는지 마춘동은 인식하지 못했다.
 ‘백순데요.’
 그의 귓가엔 오디션을 준비하며 녹음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가 좀 어색하다. 끝을 올려야 하나? 아니지. 무슨 상황인지, 어떤 캐릭터인지가 더 중요하잖아. 할 일 없는 동네 백수의 눈엔 세상 모든 게 신기해 보일까? 아니면 별 관심 없을까? 근데 주변에 관심을 안 주는 캐릭터는 아닌데. 그냥 여주한테만 관심 있는 건가?’
 자신이 분석한 캐릭터와 파악했던 상황을 떠올리면서도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좀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서 더 집중했다.
 오디션 보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응?’
 지하철 계단을 올라온 마춘동이 주변을 둘러봤다.
 “아······.”
 반대편으로 올라왔다.
 
 
 # 4. 이름만큼이나
 
 ‘건물 좋다.’
 영화사 로열필름.
 해당 영화사 작품 현장은 몇 번 뛰었었지만, 영화사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7층인가.’
 현대적인 빌딩엔 로열필름 영화사 말고도 많은 회사가 상주해 있었고, 출입 인원 통제를 위한 게이트가 있었다.
 ‘응? 전화를 해야 하나?’
 게이트 앞에 선 마춘동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내 데스크를 발견한 마춘동이 돌아서는데,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체격 건장한 경비가 마춘동을 아래위로 훑었다.
 “로열필름 영화사에······.”
 “영화사요?”
 경비가 안내 데스크 위에 있는 입주 안내도를 바라봤다. 마침 해당 입주 안내도가 마춘동의 정면에 있었다.
 “영화사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마춘동은 그제야 경비의 눈을 마주했고, 그의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빡세게 준비했나.’
 예상치 못한 문전박대 분위기였지만,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마춘동은 알고 있었다.
 동네 마실 나가기도 창피한 츄리닝.
 씻지 않아 꼬질꼬질한 피부.
 누런 이 사이에 낀 음식물.
 몸부림을 심하게 쳤는지 꼼꼼하게 눌러앉은 머리.
 누가 봐도 이 건물과 어울리지 않았다.
 해서 마춘동은 경비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경비가 점잖으시네.’
 시선이 어떻건 간에, 경비는 말투에서 예의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마춘동이 대답은 하지 않고 계속 두리번거리기거나 혼자서 끄덕이기만 하자, 점점 사라져갔다.
 “영화사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확실히 냉랭해진 목소리에, 마춘동은 즉시 대답해야 함을 깨달았다.
 “오디······.”
 “무슨 일이야?”
 체격 좋은 경비와 똑같이 Security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조끼를 입은 경비원이 다가왔다. 중년으로 보이는 새로운 경비원이 선배인지, 체격 좋은 경비원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분의 방문 목적을 여쭙고 있었습니다.”
 선배 경비원이 마춘동의 아래위를 훑었다.
 “영화사에 오디션 보러 오셨습니까?”
 이번에는 뜸 들이지 않았다.
 “네. 맞아요. 오디션 보러 왔습니다. ‘기필코 잡는다’ 오디션이요.”
 “영화 제목까지 맞네요.”
 선배 경비원이 후배에게 안내 데스크에 가서 방문증을 들고 오게 했다.
 “영화사가 있다 보니, 가끔 정말 악용하는 분들이 계셔서요. 저 친구가 신입이라 교육받은 지 얼마 안 돼서 FM대로 한 거니까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빈말이나 예의를 차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마춘동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경비가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로 제대로 된 백수 행색이라는 말이었으니까. 이미지 하나만큼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래 영화사 직원이 내려와 있었는데, 투자자인지 누가 왔는지 조금 전에 올라갔어요.”
 확실히 선배 경비원이라 그런지, 건물에 일어나는 일에 빠삭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사인 받을 수 있을까요? 괜찮으시면 사진도 한 장.”
 중년 경비원이 넉살 좋은 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스타 되시면 사진 찍기 힘들 거 아니에요.”
 예상치 못한 요청에 마춘동이 당황했다.
 그런 마춘동의 반응이 익숙한 듯, 중년 경비원이 폰을 들이밀었다.
 “영광입니다.”
 “아, 제가 더 영광이죠.”
 활짝 웃은 채 사진을 찍은 마춘동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죠. 오디션 파이팅입니다!”
 후배 경비원이 건네준 방문증을 목에 건 마춘동이 다시 한번 인사하곤 게이트를 통과했다.
 사진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이 얼떨떨하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마춘동은 조금 전 사진을 찍은 것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아··· 근데 나 흑역사 남긴 거 아냐?’
 생각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헛!”
 문이 열리며 내리려던 남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여자는 본인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마춘동은 자신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대본을 잘 보이게 가슴팍으로 들어 올렸다.
 ‘좀 창피하긴 하다.’
 ‘올라가서 갈아입을걸. 왜 이제야 생각이 났을까’라고 중얼거리는 마춘동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7층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
 
 “선배님. 사진은 왜 찍으셨어요? 사인도 받으셨네.”
 “내 별명이 뭐냐?”
 “선배님 별명이 있으셨어요?”
 “아, 넌 모르지. 내가 스타 판별기인 거.”
 “아, 그러셨습니까?”
 “이 구역의 스타 판별기인 내가 봤을 때, 저 사람은 된다. 내가 예전에 영화계에 잠시 발 담갔던 거 모르지? 그때의 경험과 내 비상한 촉에 의하면······.”
 후배 경비원은 동료에게 들은 선배 경비원의 몇 가지 특이점들을 기억해 냈다.
 ‘허풍이 좀 있고, 가끔 오디션 보러 오는 사람들과 사진 찍고 사인 받는다고 했지? 배우가 꿈이었다고.’
 후배 경비원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선배 경비원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렇게 준비한 사람 치고 안 되는 사람 난 본 적 없다. 사람이 저렇게 열정이 가득하면 안 될 일도 되게 해.”
 “이름이 뭐래요?”
 “몰라?”
 “사인 받고 사진도 찍었는데 이름도 모르세요?”
 “이름은 저 사람이 잘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데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겠냐?”
 맞는 말이긴 해서, 후배 경비원은 할 말이 없어졌고, 그 모습에 기세등등해진 선배 경비원이 무용담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내가 얘기 안 했나? 예전에 오유리랑 강석훈이 무명 때 방금 저 사람처럼 여길 왔었는데, 보자마자 삘이 아주 그냥 딱하고······.”
 “예. 그렇군요.”
 영혼 없이 맞장구치는 후배 경비원이 손목에 찬 시계를 봤다.
 ‘퇴근까지 30분 남았다.’
 
 ***
 
 마춘동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문이 닫힐 때까지 마춘동의 뒤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오른쪽을 보니 영화사 로열필름이라는 아크릴 문패가 보였다.
 유리문이 불투명해서 안이 보이진 않았다.
 ‘진짜 오디션이다.’
 연습할 때도, 집을 나서면서도 떨리지 않았는데 영화사 앞에 도착하니 떨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그동안 연습한 걸 믿고 숱한 면접을 통과해 온 날 믿자!’
 자신을 응원하기 위한 멘트는 수없이 많았고, 채찍질할 멘트도 많았다.
 ‘감독님이 주신 기회를 떨다가 날려 버릴 순 없잖아!’
 기합이라도 크게 한 번 지르면 이 떨림이 모조리 날아가 버릴 것 같았지만, 영화사 앞이라 마춘동은 참았다.
 ‘아니지. 도리어 강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으려나?’
 액션 스쿨 면접 때도 강한 기합으로 첫인상을 확실히 남겼던 마춘동이었다.
 ‘때와 장소가 다르긴 하지만.’
 사람의 행동은 경험이 근거가 되지 않던가.
 마춘동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하지만 기합은 나오지 않았다.
 “오디션 보러 오셨나요?”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가 마춘동의 앞에 섰다.
 그녀의 목에 걸린 사원증과 스태프라는 명찰을 본 마춘동이 대답했다.
 “넵! 마춘동입니다!”
 여직원이 들고 있던 파일에서 마춘동의 이름표를 찾아 건넸다.
 “복도 끝에서 오른쪽 꺾으면 정면으로 보이는 회의실이에요. 대기하시는 분들 계시니까 찾기 어렵진 않으실 거에요.”
 여직원이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이름표를 흔들었다.
 마춘동이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이름표를 목에 걸었다.
 “부디 현장에서 뵙길 바라요.”
 여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가운데 통로를 두고, 양쪽엔 파티션이 쳐져 있었다. 사무실 한쪽 벽면에 포스터가 붙어 있고, 그 옆의 장식장엔 트로피와 카메라가 진열되어있다는 걸 제외하면 일반 사무실과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무실의 풍경은 마춘동의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디션으로 인해 긴장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별론가.’
 여직원의 태도 때문이었다.
 ‘다들 놀랐었는데.’
 경비원도, 엘리베이터의 사람들도.
 모두 마춘동의 행색에서 눈을 떼지 못했었다.
 그런데 정작 제일 놀라 줘야 할 영화사 여직원은 무덤덤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가. 하긴, 영화계에 오래 있었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나도 별의별 사람 다 봤었으니까.’
 복도 끝에 다다른 마춘동이 오른쪽으로 꺾었다.
 오디션장으로 쓰이는 회의실이 보였고, 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깨달았다.
 여직원이 왜 자신을 보고 덤덤했는지.
 배역에 따라 정장을 말끔하게 입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춘동과 비슷하게 츄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끌고 온 이도 있었다.
 ‘저 사람은 정말 압권이다.’
 개중에는 백수가 아니라 거지라고 불려야 할 것 같은 분장과 의상을 입은 이도 있었다.
 ‘저건 좀 오버 아닌가?’
 자신의 복장은 생각지도 않고, 마춘동이 그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평범한 복장도 많네.’
 오디션 하나 보러 오는데, 뭐 그렇게 오버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캐릭터에 상관없이 그저 깔끔하게 입었을 뿐이었다.
 마춘동이 눈을 마주하자, 쳐다보던 시선들이 흩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눈을 마주한 마춘동은 깨달았다.
 ‘누구도 비웃진 않는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어떤 마음으로 오디션을 준비하고,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는지 다들 알기에. 자신도 예전에 저랬던 경험이 있었기에.
 응원까진 못하더라도, 비웃거나 폄하하지도 않았다.
 숱한 현장 경험에도 불구하고 처음 느껴 보는 영화 오디션 분위기에 휩쓸렸던 마춘동을, 직원이 일깨웠다.
 “오디션 시작하겠습니다. 이준규 씨.”
 “네!”
 “김태진 씨, 이영일 씨도 바로 준비해 주세요.”
 “네!”
 “예.”
 첫 번째 지원자가 오디션장으로 들어가자, 복도의 공기가 달라졌다. 목을 풀기도 했고, 목소리를 줄이지 않고 대사 연습을 하기도 했다.
 순식간에 복도가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러워졌다.
 ‘이렇게 시끄러워도 되나?’
 대사를 중얼거리던 마춘동의 눈에, 오디션장의 문이 다시 열리는 게 보였다.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직원은 마춘동의 예상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김태진 씨 들어오세요. 곽선 씨 준비하시고요.”
 “네!”
 “예!”
 오디션장 문이 다시 닫혔다.
 ‘뭐야? 이렇게 빨리 끝났다고?’
 첫 번째 참가자가 들어간 지 5분도 되지 않았다.
 마춘동의 생각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다들 같은 생각을 했고, 무의식적으로 서로 바라본 지원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 내가 모르는 일 따윈 없지! 이 동네에 내가 모르는 일 따윈 없지? 이 동네에! 내가 모르는 일 따윈 없지!”
 다시 도떼기시장이 된 복도에 마춘동도 한목소리 보탰다.
 오디션장의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복도의 도떼기시장도 열리고 닫히고를 반복했고.
 “마춘동 씨!”
 “네!”
 “들어오세요.”
 마춘동이 오디션장으로 들어섰다.
 
 ***
 
 “마춘동? 이름 한번 입에 착착 붙네요.”
 “처음 들었을 때 바로 뇌리에 박혔었죠.”
 영화 ‘기필코 잡는다’의 감독, 김명진의 말에 지원자 프로필을 확인하던 투자자가 의아한 눈빛이 되었다.
 “아는 사람입니까?”
 “예전에 같이 작품 했었습니다.”
 “아, 신인이 아닌가 보네요?”
 “신인은 신인입니다. 그땐 무술팀이었거든요.”
 투자자가 대충 확인했던 프로필에 다시 눈을 돌렸다.
 “PW 액션 스쿨?”
 투자자의 눈이 반짝였다.
 “스턴트맨이 조연 오디션을?”
 옆에 앉아있던 로열필름 대표가 대답했다.
 “사연이 좀 있는 친굽니다.”
 “사연이요?”
 “예. 컨디션 안 좋은 후배, 스턴트 대신 뛰다가 다쳤었거든요. 그게 꽤 됐지? 김 감독.”
 “그렇죠.”
 투자자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사연 있는 친구 좋죠. 영화 홍보하기도 좋고.”
 “확실히 그렇죠. 감동적인 면도 있는 사연이니까요.”
 투자자와 대표의 말에, 김명진 감독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춘동 씨입니다.”
 마춘동의 사연을 두고 한참 얘기하던 두 입이 멈췄다.
 오디션장은 거짓말이라도 한 것처럼 고요해졌다.
 “안녕하십니까! 마춘동입니다!”
 온통 초록빛인 크로마키 앞에 마춘동이 섰다.
 오디션 카메라 담당 스태프가 신호를 기다렸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화 주제의 당사자가 들어와서가 아니었다.
 마춘동의 모습이 백수 이미지에 꼭 들어맞아서도 아니었다.
 프로필의 사진과 마춘동의 현재 모습이 달라서였다.
 “···마춘동 씨 본인 맞습니까?”
 투자자가 프로필 사진과 마춘동을 번갈아 봤다.
 “네. 맞습니다.”
 마춘동의 대답에도 투자자는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몇 번 더 프로필 사진과 실물을 비교해보던 투자자가 김명진 감독에게 시선을 던졌다.
 “맞··· 습니다. 살을 찌운 건가요?”
 “예.”
 자신이 기억하는 마춘동의 얼굴을, 살찐 마춘동에게서 찾아낸 김명진이 물었다.
 “왜 찌웠죠?”
 “매일 놀고먹는 백수치곤 몸이 좋아서 찌워 봤습니다.”
 씨익 웃는 마춘동의 턱에 두터운 주름이 잡혔다.
 “드라마 스턴트 촬영한 게 얼마 안 되지 않았어요?”
 “맞습니다.”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김명진 감독이 대표와 잠시 눈빛 교환을 했다.
 “알겠습니다. 의상이랑, 분장도 직접 하신 건가요?”
 마춘동은 ‘안 씻은 걸 분장으로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마음가짐으로 대답했다.
 “예! 제가 생각한 영호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대답이 시원시원해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투자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대표와 감독은 무표정했다.
 “그럼 본격적인 오디션을 시작할까요?”
 마춘동을 마주 보고 있던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
 
 마춘동이 오디션장을 나왔다.
 ‘뭘 하고 나온 건지 모르겠다.’
 액션 스쿨 면접 때도, 번지점프나 다름없던 스턴트 때도 이렇게 떨진 않았던 같았다.
 ‘끝났지?’
 긴장이 슬쩍 풀리자마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마춘동은 한숨을 다시 삼켜야 했다.
 ‘뭐야?’
 처음 복도에 마주했을 때, 오디션장에 들어갈 때.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자신을 향한 시선이 많았으니까.
 오디션을 보고 먼저 자리를 뜬 사람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지원자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마춘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의미를 알 수 없었기에 마춘동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지퍼 열렸나?’
 복장은 이상 없었다.
 폰을 거울삼아 얼굴을 살펴도 특이한 점은 없었다.
 ‘꾀죄죄한 거야 처음부터 그랬고.’
 마춘동은 영문도 모른 채 복도를 빠져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영화사 문 앞에 서자, 아까 문을 열어주었던 여직원이 다가왔다.
 “이름표 저한테 주고 가시면 됩니다.”
 “아, 네.”
 마춘동이 이름표를 건네자, 여직원이 문을 열었다.
 “오디션 잘 보셨나 봐요.”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감독님, 대표님 질문이 많으셔서 오래 걸리신 거 아니었어요?”
 “오래 걸렸나요?”
 “네. 현재까지 지원자 중에 가장 길었어요.”
 그제야 마춘동은 복도에서 자신에게 집중되었던 시선들의 의미를 깨달았다.
 “저희 대표님이나 김명진 감독님은 아니다 싶으면 빨리 끝내시는 스타일이시거든요. 질문 많다는 건 좋은 징조죠.”
 여직원이 문을 열어 주며 두 손을 불끈 쥐어 보였다.
 “조심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여직원의 인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꾸벅인 마춘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직 합격된 거 아니잖아. 김칫국 마시지 말자.’
 층이 내려갈수록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
 
 “다음 지원자 들여보낼까요?”
 “잠깐만. 10분만 쉬지.”
 “예.”
 김명진이 조금 전 자신이 보았던 걸 다시 떠올렸다.
 ‘내가 아는 마춘동이 맞나? 분명 근긴장 뭐시기라는 병으로 운동도 제대로 못 한다고 들었는데.’
 기억이 조작된 게 아니라면, 분명 그렇게 들었다.
 ‘한데 방금 봤던 움직임은 뭐란 말인가.’
 놀란 사람은 김명진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살도 갑자기 찌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서서히 찌운 거 아닐까요?”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만, 그건 아닐 겁니다. 저도 얼마 전에 프로필 사진과 비슷했던 마춘동 씨를 TV에서 봤거든요.”
 “TV에서요? 아까 말씀하셨던 드라마 스턴트?”
 “예. 얼굴은 안 나와도, 체격은 가릴 수 없죠.”
 “CG 써서 깎은 거 아닐까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이 친구가 갑작스럽게 투입된 상황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현장에 배우가 입었던 의상과 같은 의상을 다른 사이즈까지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낮고, 만약 다른 사이즈가 있었다면 이 친구가 아니라 무술팀의 다른 스턴트맨이 대타를 뛰었겠죠.”
 말이 딱딱 들어맞았기에, 투자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네요.”
 “저도 놀랐습니다. 그동안 아파서 운동도 제대로 못 했을 텐데 텀블링까지 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황금보를 보는 줄 알았어요. 야, 이 친구 이름만큼이나 첫인상도, 액션도 여러모로 뇌리에 박히네.”
 투자자가 카메라 스태프를 향해 말했다.
 “아까 오디션 영상. 카피해 줄 수 있나요?”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투자자가 활짝 웃으며 일어섰다.
 “영화가 아주 잘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오길 잘했네요. 오디션 참관하게 해 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김명진 감독과 대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시려고요?”
 “저 눈치 없는 편 아닙니다. 이미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끝까지 보시죠.”
 “그랬다간 정말 눈치 없는 사람 될 것 같은데요?”
 한차례 크게 웃은 투자자가 대표를 바라봤다.
 “제작비 관련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아, 시간 괜찮으십니까?”
 “관람료는 내고 가야죠.”
 대표와 투자자가 오디션장을 나갔고.
 “다음 분 들어오시라고 해.”
 오디션이 재개되었다.
 
 ***
 
 ―조금 늦을 것 같다.
 “상범이 형이랑 정호 형 만나서 먼저 들어가 있겠습니다. 좌표 찍어서 문자로 보내 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시 전화가 들어왔다.
 “네. 상범이 형.”
 ―어디쯤이냐?
 “지하철역 도착해서 올라가는 중입니다.”
 ―우린 5번 출구 도착했다.
 “뛰어가겠습니다.”
 ―걸어와.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을 테니까.
 “넵.”
 전화를 끊은 마춘동이 사람들의 행렬에 섞여 개찰구로 향했다.
 ‘5번 출구가··· 저기네.’
 목적지를 찾은 마춘동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나 계단 앞에 서 있는 할머니를 본 순간, 마춘동의 발걸음이 멈췄다.
 ‘혹시?’
 머리가 새하얗고, 허리가 굽은 게 그때 그 할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 커다란 봇짐까지 들고 있는 것도 같았다.
 ‘대환공 할머니.’
 그날 자신 외에 자신의 폰을 만진 사람이라곤 할머니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춘동은 할머니를 찾기 위해 몇 번이고 지하철역을 가기도 했고, 지하철을 탈 때마다 주변을 유심히 살폈었다.
 아직 찾지 못했지만.
 찾으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궁금한 것도 있었고, 감사한 마음에 보답하고 싶기도 했다.
 지하철역은 물론이고, 호선도 달랐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 니시구나.’
 가까이 다가가니 그 할머니와 다른 점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할머니를 향한 걸음을 돌리진 않았다.
 “괜찮으시면 들어 드릴까요?”
 할머니가 고개를 들고 마춘동을 바라봤다.
 “뭐라구?”
 “계단 위까지 짐 옮겨 드릴게요.”
 마춘동이 조금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철 계단을 다 올라온 할머니에게 마춘동이 짐을 건넸다.
 “이거 가져가.”
 할머니가 품에서 사탕 하나를 꺼냈다.
 “손주들 줄 건데, 하나 남아.”
 “괜찮아요. 할머니. 손주들이랑 같이 드세요.”
 괜찮다고 해도 계속 주려는 할머니에게 꾸벅 인사한 마춘동이 뒤돌아 걸었다.
 “역시 착한 우리 동춘이.”
 “춘동이라고 인마!”
 “애칭 정도로 받아 주면 안 되겠냐?”
 “넌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헷갈려서 그러는 거잖아.”
 “아, 거 아직 한 잔도 안 먹었는데 꼬장꼬장하기는.”
 티격태격하는 두 형에게 마춘동이 인사했다.
 “오디션은 어땠냐? 안 떨었냐? 김 감독님이 아는 척하시든? 근데 넌 살을 어디서 가져다 붙였냐? 폭식증, 뭐 그런 거 아니지?”
 “야, 야. 어디 좀 들어가서 얘기하자.”
 질문을 쏟아내는 고정호에게 간단하게 대답하며 마춘동이 김상범을 따라 걸었다.
 “형?”
 “들어와.”
 김상범이 식당 입구에서 손을 까딱였다.
 “여기 꽤 비싸지 않아요?”
 “그래 봤자. 돼지고기지.”
 “웬만한 수입 소고기 값은 받는 덴데.”
 고정호가 마춘동에게 어깨동무했다.
 “동춘아. 너한테 돈 내라고 안 할 테니까 걱정 마라. 들어가자.”
 고정호와 마춘동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김상범이 주문을 마쳤다.
 “일단 3인분 시켰다. 먹고 더 먹어.”
 마춘동은 자꾸만 메뉴판이 눈에 밟혔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좀 먹어라. 두 개 하나로 퉁치려고 머리 좀 쓴 거니까.”
 “두 개요?”
 “너 몸 나은 거 축하, 오디션 축하.”
 “오디션은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잘 되겠지! 미리 축하하는 거로 하자. 우리 바쁘다.”
 김상범과 고정호만 하더라도 같이 모이기 힘든데, 송필우까지 스케줄 맞추기란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했다.
 “그러니까 잡생각은 접어 두고! 자, 오디션 어땠어?”
 “야, 야. 일단 축하주 한 잔 맥이고. 너 이제 술 마셔도 되지?”
 밑반찬이 나오자마자 김상범이 소주를 따서 따랐다.
 “춘동이 오디션 합격 축······.”
 “합격했습니까? 연락 왔어?”
 “어이쿠 감독님 오셨습니까.”
 “사석에선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피디님.”
 “감독님께서 저한테 매번 피디님, 피디님 하시는데 제가 어찌.”
 “전 이게 편합니다.”
 예의를 차리는 말투와 달리, 표정과 행동은 죽마고우를 만난 듯 편해 보였다.
 “그나저나, 연락 왔냐?”
 “아뇨. 아직이요.”
 어떻게 된 상황인지 마춘동이 설명했다.
 “잘 될 거다. 김 감독님 스타일 알잖아? 투자자나 제작사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만 아니면, 배우들도 액션 직접 뛸 배우들만 뽑는 거. CG 안 좋아하시는 분이시니까 나한테 대본 보내셨던 거고. 내가 보기에······.”
 우웅. 우웅.
 테이블에 올려 두었던 마춘동의 폰이 진동했고.
 꿀꺽.
 모두가 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액션스타 마춘동> 1-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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