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말년병장, 훈련병되다! <훈련소 편>
"크... 드디어 끝났구나!"
검은 색의 밤하늘 천장 위로 밝게 수를 놓은 별들 아래 기지개를 펴며 방탄모를 벗는 이도훈 병장. 속칭 '꼬장의 신'이라 불리는 이병장은 내일 전역을 앞두고 이제 마지막 외곽 근무가 될 위병소 근무를 마치고 복귀한다.
같이 근무를 나섰던 후임근무자가 피식 웃으며 이병장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도훈이 형. 전역 앞두니까 기분이 어때?"
"어쭈. 일병 주제에 감히 병장한테 반말을 까? 요즘 군대 편해졌다?"
"일병 김기찬! 죄송합니다!"
"야야야. 장난한 거 가지고 뭘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
"나도 장난한 건데?"
"어쭈?"
막사 내에서도 이제 도훈의 말을 제대로 듣는 병사는 아무도 없다. 얼마전에 막 전입한 신병 몇몇만 각을 차리고 도훈을 대할 뿐, 이제 내일 전역자라는 타이틀이 붙은 도훈에게 있어서 병장이라는 위엄보다는 사회에서 볼 형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었다.
이병장. 꼬장의 신.
말년 병장으로서 온갖 꼬장은 다 부렸지만, 그래도 다른 녀석들은 이병장의 꼬장을 고이 고대로 다 받아줬다.
참으로 고마운 녀석들이 아닐수가 없다.
"하~! 그나저나 막상 이 지긋지긋한 산골짜기를 떠난다고 하니까 섭섭하네."
총기를 반납하고 양쪽 사이드로 길게 늘어서 있는 구식 내무실 안에서 이병장이 나지막히 한숨을 내쉰다.
"섭섭하냐? 그럼 진작 꼬장 좀 부리지 말지 그랬어."
불침번 근무를 서고 있던 김병장이 도훈의 어깨를 툭 건들이며 말을 걸어온다.
두달 늦게 들어온 맞후임의 입장에서, 맞선임을 떠내보낸다는 후회감은 별로 들지 않는지 연신 웃음으로 도훈을 대한다.
"야. 너는 맞선임이 간다는데 감흥도 없냐?"
"감흥은 개뿔. 니가 나가야 내가 나갈 거 아니야."
"그래? 확 전역 안 해버릴까 보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말고 잠이나 자시지. 마지막 취침이잖아."
"그러니까 그게 아쉽다고."
활동복으로 갈아입은 뒤에도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도훈. 새벽 3시에 TV 리모콘을 붙잡으며 전원 버튼을 눌러보지만, 재미있는 티비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는다.
"이 리모콘도 상병 되고 나서야 겨우 잡을 수 있었지."
"뜬금없이 무슨 옛날 일 회상이야."
"그냥 감성적으로 변하게 되네. 이것도 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흰 눈. 추위에 대비해서 단단히 깔깔이를 챙겨 입은 도훈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내무실 바깥으로 나가려는 것을 불침번이 잡는다.
"어디 가려고?"
"담배피러 간다. 임마."
"통제관님한테 제대로 보고하고 가. 그냥 가면 내가 털리니까."
"넌 아직도 간부들한테 털리는 짬밥이냐?"
"시끄러워. 그러다가 모포말이 또 당할랴."
"그건 좀 봐줘라."
위병소 근무를 나서기 전. 9시 50분에 점호가 끝나자마자 후임 녀석들이 미친듯이 도훈에게 달려들어 난데없이 포단으로 싸매고 마구 발길질을 날렸다.
한 겨울에 모포도 아니고, 침낭도 아니고, 포단이라니!
덕분에 도훈의 허리와 허벅지는 시퍼런 멍이 들 정도였다. 이게 다 꼬장의 신이라는 타이틀에서 따라오는 부가적인 효과라는 것일까.
내무실을 나서자마자 행정반에 입성한 도훈.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통제관을 보자마자 대충 거수경례를 하며 말한다.
"병장 이도훈. 잠시 담배 좀 피고 와도 되겠습니까."
"...니가 언제부터 당직사관한테 제대로 보고하고 담배핀 적 있냐? 닭살돋게 왜 이래."
"마지막 날이니까 제대로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보고할 줄 알았다면 진작 좀 제대로 하던가."
"제가 다시 이등병으로 돌아간다면 제대로 하겠습니다."
"끝까지 밉상이구만. 퍼뜩 피고 들어와."
"넵! 행정반에 용무 마치고 돌아가겠습니다!"
과장된 각, 그리고 과장된 목소리를 내며 행정반 바깥으로 나온 도훈은 주머니 속에 있던 담배 한 개피를 꺼내며 불을 붙인다.
당직사병은 피곤한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상황. 혀를 차며 군대 참 편해졌다는 생각을 품던 도훈은 흰 눈과 섞여 더더욱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씨발... 산골짜기라 그런지 별은 드럽게 많구만."
GOP와 거의 근접한 전방에서 도훈은 20대의 2년이라는 청춘을 이 장소에 바쳤다.
155mm 견인곡사포 포병으로 주특기를 부여받은 뒤에, 사격지휘(통칭 FDC) 분과 인원이 부족하단 이유로 상병때부터 FDC로 분과이동을 하게 되었다.
죽어라 1,2번 포수만 하다가 이제 사수나 부사수 좀 달아보나 했더니 난데없이 사격지휘병이라니.
덕분에 사격지휘에 대해 죽어라 공부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땐 진짜 눈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는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다 추억이다.
이제 곧 전역을 앞두고 있는 도훈에게 있어서 사소한 기억은 전부 추억으로 남아 앞으로의 일생에 평생 각인될 것이다.
담배연기 한 모금을 깊게 내뱉는 도훈.
"군대라는 곳을 좀 더 잘 알고 있었다면, 후회없는 군생활을 했을 텐데."
인간은 언제나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고, 그리고 후회한다.
후회감.
도훈에게도 없을리가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 남자 인생에 단 한 번 뿐이라는 군생활이기에 좀 더 잘할걸 이라는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이등병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눈치있게 행동했으면 A급 병사라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제가 다시 이등병으로 돌아간다면 제대로 하겠습니다.'
아까 행정반에서 보고 도중 말했던 자신의 망언이 차가운 겨울 바람과 함께 떠오른다.
다시 이등병으로 돌아간다라.
"끔찍한 소리구만."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두려운 말이기도 하지만.
막상 전역이라는 날짜에 도달하니,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
"잠이나 자자."
날씨도 더 추워지고 있을 뿐더러. 눈도 점점 쌓여가고 있기에 도훈은 따스한 내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편히 잠을 청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야 내일 아침에 깔끔한 전역 기분을 낼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꼬장의 신이라 불리던 이도훈 병장의 최후였으니.
아쉬움을 달래고 내무실 마루에 누웠을 때.
"...음..."
머리가 깨질것 같은 통증이 도훈을 강타한다.
도대체 뭐지?
이 정도로 심각한 두통은 평생 처음이다.
식은 땀을 흘리며 상반신을 일으킨 도훈.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려본다.
"후우..."
길게 한숨을 늘이쉬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방울을 닦는다.
악몽이라도 꾼 것일까. 하지만 꿈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담배를 피우고, 날이 하도 추워서 내무실로 다시 들어와서 잠을 잔 것 까지는 기억하는데.
......
"어...?"
뭔가 이상하다.
난생 처음보는 사람들이 자신의 양 옆에 자리잡고 누워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자신이 누워있는 내무실의 내부는 여태 2년동안 생활해왔던 구식 막사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약간 신식처럼 보이긴 하지만, 내무실은 내무실. 고작해야 개인 옷장이 철제로 바뀐 것 빼고는 구식 막사와 전혀 달라진 점이 없는 괴상한 곳에 자신이 누워있다.
그리고.
"이, 이게 뭐야?!"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은 현재.
사복이다.
사복을 입고 내무실에서 잠을 자고 있다.
아무리 자신이 전역을 했다 해도, 전역 시기를 놓쳐서 부대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가는 일 따위는 계획하고 있지 않았다. 더욱이 사복을 가져오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때.
"아. 거 참. 잠 좀 잡시다. 아저씨."
"아저씨?!"
옆에서 단잠을 청하고 있던 또 다른 사복 청년이 까까머리를 선보이며 불만을 토로한다.
"점호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잠들었으면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건 또 뭐유? 아직 새벽 5시 밖에 안 됐다고요."
뭔가 이상하다.
분명 도훈은 위병 근무를 마치고 새벽 3시에 내무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점호가 끝나자마자 잠들어서 이제 막 일어났다고?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아저씨. 그보다 여긴 어디요?"
도훈의 말을 듣던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어디긴요. 군대잖아요."
"아니. 나도 아는데. 왜 내가 사복을 입고 잠에 빠졌는지... 그보다 이 사람들은 누구요?"
"아저씨랑 같이 입대한 사람들이외다. 기억 안나요?"
"......"
할 말을 잃고 있던 도훈이 황급히 자신의 관물대를 뒤지기 시작한다.
미친듯한 손놀림으로 관물대 안을 열자.
그 곳에는 이제 막 보급받은 듯한 새 군복과 다수의 옷가지들이 보인다.
특히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A급 전투화!"
단 한 번도 신은 적이 없는, 광 조차도 내지 않고 길도 들여지지 않은 완전 새삥 전투화가 도훈의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건 즉.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활동복을 꺼내본다.
역시 전투화와 마찬가지로 완전 새거. 게다가 자신의 이름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신병이 자대배채를 받고 전입을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해주는 건 신병의 물품에 관등성명을 적어주는 것. 그것이 도훈이 있던 부대의 전통이자 필수 코스다.
그런데 자신의 활동복에는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
게다가.
"활동화도 완전 새삥이잖아!"
세상에. 2년동안 닳고 닳았던 활동화가 방금 막 공장에서 나온 듯한 깔끔함을 자랑하고 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활동화의 깨끗함에 잠시 아찔한 정신이 들었던 도훈이었지만.
곧바로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사복을 입은 남자들과의 동침.
낯선 내무실.
그리고 새로 보급받은 듯한 군용품들.
이건 즉...
"내가... 정말로 이등병이 된 건가?!"
엄밀히 말하자면 이등병도 뭐고 아니다. 계급을 따지자면 이제 막 입대한 장정 수준.
"말도 안 된다고! 내가, 내가 이등병이라니!!!"
장난으로 말하긴 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꼬장의 신이라 불리던 말년병장, 이도훈.
그는 다시 이등병이 되고 말았다.
"말도 안 돼. 내가, 내가 이등병이라고?!"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이도훈의 눈에 무언가가 엇비친다.
손목에 차여있는 스포츠 시계!
입대하기 전, 멋도 모르고 훈련소 앞에서 샀던 싸구려 시계가 도훈의 손목에 차여 있었다.
게다가 그 손목시계는 도훈이 일병때까지만 하더라도 착용하던 브랜드명도 모를 무명의 시계였다.
"설마... 내가 과거로 돌아간 건가?!"
막 밀은듯한 까까머리가 도훈의 손바닥을 까칠까칠하게 자극한다.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확인하자, 정확히 도훈이가 전역하기 전 날보다 2년 전이 아닌가.
"틀림없다. 이건 분명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거야!"
원인이 뭘까. 도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졌기에 자신이 진짜로 과거로 회귀를 하게 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원인이 떠오르지 않는다. 간밤에 우연히 별똥별이라도 떨어질 때 장난삼아 이등병으로 돌아간다고 내뱉은 말이 실제로 벌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설마.
그거야말로 넌센스 중에 넌센스. 아무리 인생이 막장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고 한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아니, 있을지도 모르지만 왜 하필이면 자신한테 그런 불행이 벌어지게 된 것인가. 평상시에는 별똥별한테 소원을 주구장창 빌어도 이뤄주지도 않던 녀석이 왜 이런 진심도 담기지 않은 소원 따위를 들어줬는지 모르겠다.
"아, 진짜 미치겠네!!"
머리를 박박 긁으며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가서 아무나 붙잡고 말해볼까? 사실 자신은 2년 후 미래에서 온 인물이라고?
하지만 누가 믿어줄까. 믿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지금 당장에라도 가서 말이라도 해볼까. 안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전혀 가능성이 없을거란 생각에 도훈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든다.
어차피 말해봤자 아무도 믿지 않아준다. 믿어주는 건 오로지 당사자인 자신 뿐.
"... 그래. 일단 잠이나 자자. 혹시 자각몽일수도 있으니까 자고 일어나면 꿈에서 깨어날 수도 있잖아."
희망에 부푼 마음을 안고 잠을 청하기 위해 다시 눕는다. 훈련소라 그런지 베개는 축 늘어져 푹신한 감촉조차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꼬장의 신이라 불리며 A급 메트리스, 베개, 모포, 포단 등은 전부 자신의 것이었는데, 지금은 훈련소에서 닳고 닳은 썩어빠진 폐급을 사용해야 한다.
"냄새나 죽겠네."
짜증섞인 목소리와 함께 눈을 감으며 서서히 잠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말년병장 이도훈은 훈련병으로서의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이런 젠장!!!"
자고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내뱉은 첫마디였다.
빠빠 빠빠빠~...
익숙한 기상벨 나팔소리를 들으며 반사적으로 상반신을 일으킨 도훈은 거칠게 자신의 까까머리를 긁적이며 달력을 본다.
여전히 2년 전.
바뀐 건 하나도 없다. 꿈은 개뿔. 루시드 드림이니 뭐니 하는 건 개나 줘버려야 할 팔자다.
"이런 좆같은 상황을 봤나! 씨발!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 지랄이야!"
누구한테 불만을 토로하는지 본인도 모르지만, 욕지거리를 내뱉지 않고는 지금 이 상황에서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이등병도 아닌, 이등병 이하 계급인 장정이 되있을 줄이야.
이등병 마크조차 달지 못한 현역병으로서의 둘째날 아침이 밝아왔다.
부스스 일어난 훈련병들이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포단과 모포를 접는다. 이도훈은 123번. 자신의 옆에 있는 훈련병은 자연스럽게 124번이다.
"......"
명찰에 적혀있는 이름은 김철수.
흔해빠진 이름이라 기억을 하는 게 아니다. 이도훈이 2년 전 과거 훈련병 시절 때도 만났던 녀석이기에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덩치가 좋아보이지만, 의외로 체력이 약한 김철수란 녀석은 성격 하나는 정말 좋다. 그리고 은근히 전우애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이도훈 역시 훈련병 시절 때 친하게 지내던 동기 중 하나였기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녀석이기도 했다.
결론. 친해져서 나쁠 것 없는 동기.
"옆자리인데, 친하게 지냅시다."
도훈이 먼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지만, 철수는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어기적 어기적 군복을 갈아입으며 고무링을 발에 끼우는 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훈련병들도 마찬가지. 아직 군복이 익숙하지 않아서 헤매는 느낌이 생활관 내에 강하게 풍겨온다.
기상시간 이후로 10분이나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군복조차 입지 못한 녀석들도 있다.
이 생활관에서 유일하게 군복을 다 입고 전투화까지 신은 사람은 이도훈 뿐.
꼬장의 신이라 불렸지만 계급은 병장이다. 병장이면 짬밥생활만 1년 반을 넘겼다. 이미 사병 군생활에서 정점을 찍은 도훈이였기에 기상시간은 물론이오 점호같은 건 껌 씹는 것보다 쉽다.
다만 귀찮을 뿐.
"후아암."
악수를 청한 손을 거둬들이고 다리를 꼰 채 삐딱하게 전투모를 쓰고 바닥에 눕는다. 말년병장 그대로의 모습.
그러나 운이 나빴던 것일까. 마침 생활관 복도를 지나치던 조교가 도훈을 목격하게 된다.
"123번 훈련병! 지금 뭐하는 겁니까!"
"아 진짜. 일병 주제에 감히 뭐라..."
오히려 버럭 소리를 치려다 순간 말문이 막힌 도훈이는 머릿속으로 지금 이 상황을 재빨리 떠올린다.
자신은 계급도 없는 훈련병. 그리고 상대는 사병에 아직 짬밥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는 일병이긴 하지만 조교다. 훈련병에게 있어서 조교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분을 삭히며 어쩔 수 없이 각 잡은 자세로 돌아온 도훈이 최대한 목소리를 짜내며 외친다.
"죄송합니다! 조교님!"
"군인처럼 행동합니다.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도훈을 노려보다 이내 다시 소리를 버럭 지르며 다른 훈련병을 혼내기 위해 자리를 뜬다.
조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도훈이 속으로 피식 웃으며 '군생활 짬밥 헛수고로 먹은 거 아니다.'라는 시선을 던져준다.
짬밥으로 따진다면 저 조교보다 2배는 더 많이 먹은 도훈이기에 여유로운 대처가 가능했던 것이다.
"쳇. 일병 찌끄레기 주제에."
싸재 전투모도 아닌 걸 쓰려니까 몸이 절로 거부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니까 훈련병 생활에 따르는 수밖에.
가볍게 화장실에 들렸다가 연병장에 줄을 서고 점호를 받기 시작한다. 도훈이 속해있는 소대는 2소대 3분대. 운이 좋은 것인지 분대장과 부분대장은 떠맡질 않았다.
"2소대 보고!"
"보고!"
소대장이 거수경례를 하며 중대장에게 총원과 열외를 보고한다. 어제가 입소일이었고 오늘이 둘째날이기에 열외자는 무(無).
애국가를 부를 뿐만 아니라 국군도수체조까지 마치고 나서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온다. 식사집합을 하기 전에 간단하게 세면세족 시간을 가지고 식당을 향해 오와 열을 맞춰 간다.
간만에 발맞춰 가야 하는 도훈의 입장에서는 사실 다른 동기들과 발을 맞춰서 걷는 것 쯤이야 식은죽먹기지만, 문제가 있다면 도훈의 별명이 '꼬장의 신'이라는 것이다.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가득하고, 깔깔이만 입은 채 혼자서 식당으로 뛰어가서 가장 먼저 식사를 하고 싶은 기분이지만 현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짓을 하자마자 바로 간부들에게 무슨 욕을 먹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의 아침은 바로.
"구, 군대리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똥국에 맛대가리 없는 생김치만 나오는 것보다 그나마 먹을 게 있는 군대리아가 훨씬 더 좋을지도 모른다.
물론 말년 정도 되면 군대리아는 지겨워서 먹고 싶지도 않다. 패티 냄새만 맡아도 느글거려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니까 말이다.
"건플레이크라도 막고 싶은데."
꽁쳐놓은 건빵도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먹는 순간 군기교육대로 직행할 수도 있으니까.
익숙하게 달걀을 으깨고 샐러드와 패티를 얹어서 빵을 놓고 먹는 도훈과 다르게, 다른 훈련생들은 말로만 듣던 군대리아를 어떻게 조리해야 좋을지 몰라서 우왕좌왕이다.
"으아... 이게 뭐시다냐."
자신의 옆 번호인 김철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군대리아는 사회에서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정작 실물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제아무리 군대리아라 할 지라도 얕보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으휴... 아침부터 이 참 좆같구만."
빵봉지를 접으며 식판 위에 던져놓은 도훈은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우유로 마무리 원샷을 한다.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훈련소 1주차는 정신교육 주간일 터.
"졸음과의 싸움이다!"
몸이 가장 편하지만, 정신은 가장 피곤한 주간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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