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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의 신화 1-1

2019.10.30 조회 7,691 추천 75


 마제의 신화 1권
 
 목차
 제1장 환생
 제2장 회복
 제3장 피닉스길드
 제4장 시험
 제5장 면접
 제6장 백수 탈출
 제7장 태풍OR
 제8장 용인 던전
 제9장 정체
 제10장 스켈레톤
 제11장 비밀이 많아
 
 
 
 제1장 환생
 
 
 
 나는 ‘마제 혁련도’다.
 
 마도의 성지 천왕성의 대공자로 태어나 세 살 때 무공에 입문했고 ‘지학’에 출도했으며, 스무 살 약관이 되었을 때 천하제일을 바라보았다.
 
 스물셋에 마도십구패를 이끌고 전장에 나서, 당시 천하제일세를 다투던 정의맹과 사도련을 박살 낸 후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천하인들은 권좌에 오른 나에게 ‘마제’라는 칭호를 붙이며 오체투지로 절대 복종을 맹세했으니 천하가 나였고, 내가 바로 천하였다.
 
 하지만, 영원불멸할 것 같았던 나의 영광은 천하의 주인이 되었던 바로 그해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도화가 아름답게 흩날리던 어느 날.
 
 잔잔한 호수가 보이는 정자에서 마지막 떨어지는 도화를 바라보며 고즈넉한 심취에 젖어 있을 때, 문득 무극심법이 지천의 경지에 도달하며 정신이 육체를 이탈해 버렸던 것이다.
 
 내 나이 스물여덟에 벌어진 일이었다.
 
 ***
 
 지천의 경지에 도달해서 정신이 육체를 이탈했으니 당연히 선계에 간다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영원의 영면은 모든 무공 수련의 마지막 단계이자 꿈의 경지.
 이승에 더없이 큰 영광을 남겼어도 아쉬워할 이유가 없었다.
 
 기다렸다.
 
 눈을 감고 있으면 선계로 인도한다는 도선이 다가와 자신을 데려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감자 도선은 오지 않고 이상한 장면들이 정신없이 뇌리를 스쳐가기 시작했다.
 
 뭐지, 이 장면은?
 
 사내아이가 벌거벗은 채 바둥거리더니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그런 후 소년이 되었다가 어른으로 변해갔고, 마지막에 이상한 물체들이 가득 찬 관도를 걷다가 하늘로 붕 뜨는 것이 보였다.
 그게 마지막 장면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했으나 수많은 영상들이 빠르게 뇌리를 스쳐 지나갔는데 한 남자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찾아온 칠흑 같은 어둠.
 그 어둠은 순식간에 정신을 잠식해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머리를 괴롭히는 두통.
 천천히 어둠이 걷히며 끔찍한 두통이 찾아왔다.
 
 “으······.”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런 후 천천히 의식이 돌아왔다.
 천근같은 눈.
 눈을 뜨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겨우 힘들게 눈을 뜨자 온통 하얀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벽, 하얀 천, 시리도록 하얀 햇살.
 “간호사, 간호사. 이 친구 정신 차렸나 봐!”
 고개를 돌리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삐쩍 마른 몸, 누런 이, 흩어진 머리.
 마치 환자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먼저 상황을 살피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만 돌려 주변을 살피자 이상하게 생긴 침대에서 5명이 앉아 자신을 멀뚱거리며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전부 온전치 않은 얼굴.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이 분명했다.
 
 “이게 몇 개죠?”
 “손가락 치워.”
 “대답해 줘야 해요. 이게 몇 개에요?”
 “음··· 3개.”
 “이건요.”
 이 여자가 장난하나?
 어이가 없지만 또다시 대답을 해줬다.
 그러자, 조금 있다가 하얀 가운을 입은 자가 나타나 별짓을 다하기 시작했다.
 눈을 까집었고 이상한 것으로 가슴을 만졌다가 귀와 목 뒤를 살폈다.
 그런 후 다행스럽다는 얼굴로 웃으며 여자에게 뭔가 지시하더니 급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더 그를 당황스럽게 만든 건 의사라고 부르던 인간이 나간 후 들어온 늙수레한 여인이었다.
 “아이고, 정유야. 살아났구나, 살아났어. 흐윽······. 고맙다, 우리 아들. 난 믿었어. 네가 꼭 다시 살아날 거라는 걸. 정유야!”
 끌어안는다. 그러고는 하염없이 운다.
 환몽에서 본 여인이다. 바로 그놈의 기억 속에서.
 그놈이 어렸을 때부터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던 어머니. 여인의 정체다.
 
 그런데 내가 아들이라고?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저 조용히 여인의 눈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자신을 아버지라 칭한 늙은 남자와 여동생, 그리고 친구라는 놈까지.
 전부 환몽에서 봤던 얼굴들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아직도 그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상황파악을 하지 못했다.
 눈을 감았다.
 아직 머리엔 두통이 가득했기에 잠을 자고 싶었고 이 미친 상황에 대한 상황 파악이 필요했다.
 
 슬쩍 눈을 떠보자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처음 나타났던 여자만이 자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에 애잔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식에 대한 사랑.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저런 시선으로 자신을 봤었다.
 천고의 기환, 마상절맥을 지닌 어머니는 온몸으로 자신을 사랑하시다가 불과 일곱 살인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 어머니가 그리워 얼마나 울었던가.
 
 “저기······.”
 “응, 정유야, 깼어? 물줄까?”
 “저것 좀 주십시오.”
 맞은편 탁자에 놓여 있는 거울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나타나 괴롭힐 때부터 눈여겨보던 것이었는데 먼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한정유라 말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죽었다가 누군가의 몸으로 환생했을 가능성이 컸다.
 무림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기사를 들은 적이 있으니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은 지천에 도달되어 정신이 육체를 이탈했기 때문에 천상계에 이상이 생겼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여인이 가져온 거울을 본 순간 저절로 몸이 경직되었다.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해골처럼 변해 버린 얼굴, 앙상한 팔과 다리.
 천하 여인들의 동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내가 이런 괴상한 얼굴로 환생했다니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더불어 아직도 머리에서는 끔찍한 고통이 올라왔다.
 환생된 몸은 커다란 사고를 당한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입을 닫아버리자 여인이 일어나 조용하게 병실을 빠져나가는 게 들렸다.
 그러더니 교환하듯 친구라고 했던 놈이 들어왔다.
 
 “자냐?”
 “안 잔다.”
 “그런데 왜 눈을 감고 있어. 피곤해?”
 “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직 정상이 아닌 모양이네. 아무것도 기억 안 나?”
 “응.”
 “휴우······.”
 놈의 안색이 흐려졌다. 놈은 자신이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확신하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흘려냈다.
 “난 도철이다. 네 불알친구. 오늘 깨어나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좋아질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여긴 어디고?”
 “넌 교통사고를 당했어. 사거리에서 차에 치였다. 그래서 병원에 오랫동안 있었어.”
 “얼마나?”
 “3개월. 그동안 의식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우린 네가 식물인간이 된 줄 알았어.”
 “내 상태는 어때?”
 “뇌간손상이 크게 생겼대. 의사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라고 했어. 당연히 팔, 다리는 다 부러졌고. 문제는 허린데. 네가 움직이지 못하는 건 허리신경이······. 어쨌든 괜찮아.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까 천천히 재활하면 좋아질 거야.”
 
 괜찮은 게 아니다.
 놈의 잔뜩 흐려진 얼굴로 봤을 때 자신의 몸뚱어리는 최악 중의 최악인 게 분명했다.
 
 ***
 
 정신을 차린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상한 물체.
 병실 벽에는 이상한 물체가 걸려 있었는데 하루 종일 화면이 흘러나와 수많은 정보를 그에게 주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 사람들은 그것을 텔레비젼이라 불렀다.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날 뻔했다.
 작은 네모판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세상이 존재한단 사실은 무림의 그 어떤 기사보다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연한 것처럼 평온한 얼굴로 텔레비젼을 볼 뿐이었다.
 움직이지 못하고 꼼짝 못하는 상태에서 텔레비젼을 보며 자신이 환생한 이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이없게도 이 세계는 던전이라 부르는 곳에서 괴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엄청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오늘 뉴스에도 일산 어딘가에 던전이 열려 헌터들이 대거 투입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는데 현장을 찍은 화면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괴물이라.
 강호에도 있었지만 무림의 괴물들은 주술사들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처음부터 존재했던 영물, 또는 괴수들이다.
 근본부터 다른 존재란 뜻이다.
 던전이란 거대한 구멍, 그리고 거기를 통해 나타난 괴물들.
 또, 그 괴물들을 때려잡는 자들은 또 뭔가.
 
 “헌터가 뭐냐?”
 “괴물을 잡는 사람들이죠. 각성자들. 인간의 범위를 넘어선 초인들이 괴물을 잡아요. 괴물들이 총이나 미사일에는 안 죽기 때문에 헌터들이 사냥을 한답니다.”
 “그럼, 저 사람들이 헌터냐?”
 “그럼요. 저기 화면에 나온 사람이 김두성이잖아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헌터 중에 한 명이에요.”
 질문을 하자 옆에 누워 같이 텔레비젼을 보던 놈이 말했다.
 고등학생인 이철민은 백혈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었는데 밝은 심성을 가져 그와 친하게 지냈다.
 꼬박꼬박 대답해 준다.
 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뻔한 사실이었지만 한정유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걸 들은 후부터 당연한 질문에도 상냥하게 대답해 줬다.
 
 “던전이 생긴 이유는 뭐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머리 좋은 과학자들도 모르는데.”
 “쟤들은 어디 문파 소속인지 알아?”
 “문파라뇨. 그게 뭔데요?”
 “저기 헌터라고 부르는 애들도 소속이 있을 거 아냐. 그걸 묻는 거야.”
 “김두성은 피닉스길드의 골든헌터에요. 텔레비젼에 나오는 헌터들은 전부 길드소속이라고요. 우리나라에만 20개의 길드가 있고,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아마 1,000개는 있을 걸요?”
 “그렇구나.”
 
 길드가 뭔지 더 정확하게 알아야 되겠지만 이철민의 말은 틀렸다.
 자신의 눈에 들어온 장면.
 텔레비젼에 나온 놈, 피닉스길드의 골든마스터 김두성이 보여준 검법은 그가 무림에서 활동할 때 봤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팔짱을 끼고 있는 자. 놈의 손에서 흘러나온 광선.
 무림의 세계에서 구경조차 하지 못한 거다.
 장풍이나 권기라면 이해하겠지만 놈의 손에서 나온 광선은 그 근본이 다른 것이었다.
 이거 일이 점점 재밌어진다.
 이철민이 헌터들을 말하며 각성자라 칭했지만 자신의 눈으로 봤을 때 그들은 자신과 동류의 인간들로 보였다.
 아무래도 이 세계는 자신처럼 환생한 놈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병원에서는 자신이 의식을 차렸음에도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모는 그저 의식을 차려준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렸으나 그것이 고통의 시작이란 건 누구나 다 안다.
 기억상실, 거기다 반신불수. 병상에서 움직일 수조차 없으니 기억이 돌아온 게 오히려 더 커다란 고통일 것이다.
 더군다나 뇌 속엔 아직도 피가 고여 있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뚱어리였다.
 나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제 혁련도일까, 아니면 한정유일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떤 경로를 통해 자신이 한정유로 환생했는지 모르지만 새로 갖게 된 삶이었으니 지금부터 한정유로 살아가야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텅 빈 단전, 중요 혈도는 전부 막혀 있었고 관조된 몸은 온전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절망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다.
 자신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무극심법은 삼천 년 무림 역사에서 가장 신묘한 신공 중의 신공이었으니 몸을 정상으로 돌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하늘과 땅.
 천지에 담겨 있는 우주의 기운.
 그 기운을 빨아들여 인간의 신체에 담는 것이 무극심법의 요체였다.
 그 속에 담겨 있는 현묘한 묘리를 대성할 수 있었던 건 마제가 가지고 있던 천부적인 의지와 타고난 신체 때문이었다.
 
 우주만물의 변화에는 법칙이 있고 질서가 있는 게 분명하다.
 한정유는 자신의 몸이 엉망이었음에도 전생의 육체와 흡사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 환생된 몸은 전생의 몸과 거의 일치했는데 무극심법이 운용되자 천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공.
 내공의 증진은 익히는 자의 깨달음에 따라 그 속도가 비례하는 법이다.
 특히 마제는 무극심법을 지천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던 무인이었으니 그 증진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단전을 만드는 데 한 달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한 달 동안 한정유는 밥 먹는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무극심법을 운용하며 단전을 만들었다.
 
 내공을 익히는 데 가장 어려운 건 단전을 생성시키는 것이었는데 무림에서는 천재들도 심법운용을 시작한 후 3년이 지나야 겨우 성공시킬 수 있을 만큼 지난한 일이었다.
 단전이 생성되면 꾸준한 노력을 통해 내공을 채워 넣을 수 있고, 그 내공이 범위를 확장하며 다시 단전의 크기를 키워 나간다.
 
 단전을 만드는 동안 병실을 옮겼다.
 그가 있었던 곳은 중환자실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난 후 일반 병실로 옮겼다.
 상태에 따른 것도 있으나 더 커다란 이유는 병원비 때문이었다.
 자신의 부모는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인 한민규는 공사현장에서 일했고, 어머니인 김숙영은 식당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신의 병원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그들이 병원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여동생인 한미연은 명문대에 다닌다고 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학비를 충당하는 기특한 아이였다.
 
 단전을 만드는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부모는 물론이고 친구인 김도철, 여동생인 한미연까지.
 병원을 찾을 때마다 그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기억상실, 더불어 반신불수.
 뇌사는 면했지만 살아 있어도 산 게 아니다.
 정말 최악 중의 최악인 상황이었고 더불어 당사자인 한정유가 침묵으로 일관하며 대답조차 하지 않자 그들은 오래 병원에 머물지 못했다.
 
 ***
 
 조금씩 허리 쪽에 끊어진 신경을 이어붙였다.
 단전에 생성된 내공이 적었기 때문에 쉬운 작업이 아니었으나 꾸준히 노력하자 점점 신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달이 지나자 밤톨 같았던 단전이 확장되어 주먹만 해졌다.
 
 이젠 되었다.
 내공이 자리를 잡았으니 끊어진 신경을 이어붙이고 막혀 있는 혈도들을 하나씩 뚫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내공이 자리 잡은 이상 그 크기의 확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침없이 커질 것이다.
 단전의 크기는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면 측정을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단전의 크기가 인체 안에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제는 전생에서 우주만물을 그 속에 담을 만큼 무한한 단전을 가진 무인이었다.
 
 또다시 한 달이 지나자 끊어졌던 허리신경이 완벽하게 붙었고 움직임을 방해했던 혈도들이 관통되었다.
 처음 한정유가 꿈틀거리는 걸 본 간호사는 놀라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큼 최악의 몸이었고, 이런 상태의 환자가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기적.
 맞다, 그녀에게는 한정유의 상태가 기적이었을 것이다.
 병원이 난리가 났다.
 의사가 달려왔고 부모님과 친구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한정유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은 팔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 후였다.
 자신을 기쁜 눈으로 바라보는 한민규와 김숙영.
 전생의 정신을 고스란히 가지고 왔으나 환생한 이상 두 분은 자신의 부모가 분명했다.
 
 “아버지, 몸이 조금씩 움직이니까 퇴원해야겠습니다.”
 “안 된다. 이제 겨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퇴원이라니. 병원에서 재활훈련을 한 후 퇴원해도 늦지 않아. 병원비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라. 아버지 월급이 내일 나와. 충분히 견딜 수 있어.”
 “너무 오래 병원에 있었더니 힘들어서 그래요.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이유가 없어요.”
 
 강하게 주장하자 한민규와 김숙영의 시선이 부딪쳤다.
 현실적인 고통.
 말은 하지 않았으나 두 사람이 번 돈은 대부분 아들 병원비에 들어갔기 때문에 생활이 엉망진창으로 변한 건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버티고 버텨온 건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빠, 조금만 더 있어. 오빠가 언제부터 우리 집 살림을 걱정했다고 그래. 우린 충분히 버틸 수 있으니까 힘들어도 참아!”
 
 부모님을 대신해서 입을 연 건 한미연이었다.
 그러고 보면 참 못난 아들이고 오빠다.
 삼류대학을 졸업한 후 2년이나 백수로 놀며 게임에 미쳐 살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교통사고를 당한 건 여자 친구에게 차여 술에 잔뜩 취해 교통신호를 위반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발생한 일이었다.
 그를 친 차는 보험에도 들지 않았고 운전사는 무면허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 병원비도 받아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구제불능.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병실에 모여 있는 가족들의 마음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연민과 불안, 걱정과 고통이 상존하는 마음이다.
 이 자식, 인생을 뭐 이따위로 산 거야!
 
 ***
 
 반대하는 가족들과 김도철의 만류를 꺾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온전한 몸은 아니었으나 병실을 나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더없이 기분이 상쾌했다.
 전혀 다른 환경, 전혀 다른 세상.
 텔레비전을 통해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알았지만 직접 눈으로 보게 되자 감회가 새로웠다.
 
 집은 봉천동에 있는 18평짜리 연립주택이었다. 전세라고 했으니 그것마저 부모님의 소유가 아니다.
 부축을 받아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자 먼저 침대가 보였고 책상 위의 컴퓨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문쪽으로 놓여 있는 옷장. 그게 다였다.
 그때부터 한정유는 집 안에 틀어박혀 아직 막혀 있는 나머지 혈도들을 뚫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시 한 달이 지나자 몸을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던 혈도들이 모두 뚫렸다.
 참 오래 걸렸다.
 전생의 내공을 지녔다면 불과 몇 시간 만에 끝낼 일이 무려 4달 넘게 걸렸으니 고생도 이런 생고생이 없었다.
 가족들은 자신이 본래의 몸으로 돌아오자 기뻐하면서 점차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부모님은 일을 나갔고 여동생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보내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어차피 자신은 백수였으니 시간이 남아돌았다.
 우선 비쩍 꼴은 몸을 정상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었다.
 마른 멸치가 따로 없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해서 그렇겠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은 비쩍 마른 생선을 연상시킬 정도로 엉망이었다.
 
 신체의 균형을 맞추는 것 역시 그의 전공분야 중 하나다.
 사람들은 훌륭한 몸을 가꾸기 위해 헬스장에서 전문트레이너를 통해 훈련한다고 했으나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완벽한 몸을 지닐 수 있다.
 한정유는 사람이 찾지 않는 야산에 올라 신체를 단련하는 동시에 자신의 무공을 되찾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마제의 무공.
 섬전십삼뢰[閃電十三雷]와 단천열화권.
 이 두 가지 무공으로 마제는 강호에서 고금제일의 무적이었다.
 
 온몸이 삐긋거리며 투로를 방해했지만 한정유는 비 오듯이 땀을 흘리며 단천열화권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신체의 균형을 잡는 데 단천열화권의 투로를 연마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걷는 것과 비슷하다.
 엉망으로 변한 신체.
 단천열화권의 교묘하고도 패도적이며 웅장한 투로를 완벽하게 시전하기엔 그가 지닌 신체가 너무 엉망이다.
 그럼에도 점점 좋아진다.
 이대로 계속 연마를 한다면 전생에서 가졌던 완벽한 몸매를 되찾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오빠, 도대체 집에서 뭐 하는 거야. 엄마가 일하느라 집에 안 계신 거 오빠 눈에는 안 보여? 꼭 일하고 들어오신 아빠가 밥을 해야 돼!”
 한미연이 도끼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매일 무공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지만 오후 6시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집안일을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마제로 살아온 인생은 집안일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나, 그동안 정말 많이 참았어. 오빠가 아팠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집에서 하루 종일 놀면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나보고 설거지를 하라는 거야?”
 “응,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해. 아빠 돌아오시면 드실 수 있도록 밥도 하고. 백수가 그런 거라도 해야지. 양심이 있으면!”
 “난 그런 거 잘 못하는데.”
 “이씨,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정신 차린 다음부터 뭔가 달라진 것 같아 기대를 했더니 똑같잖아. 사람이 좀 변하면 안 돼? 어쩌면 예전과 그렇게 똑같아!”
 “음······. 미안하다.”
 “됐어. 비켜. 나 설거지해야 돼.”
 “저녁에 또 나가니?”
 “아르바이트 나가는 거 알면서 왜 물어. 저녁만 먹고 나가야 해.”
 “그거 하면 얼마나 벌어?”
 “왜, 용돈 떨어졌어?”
 “아니, 그게······.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받아. 백수도 돈이 필요하겠지. 월급 받으면 더 줄 테니까 일단 이걸로 버텨봐.”
 
 한미연이 주섬거리며 주머니에서 3만 원을 꺼내주었다.
 하아, 이것 참.
 그럼에도 한정유는 그녀가 내민 돈을 받아 챙겼다.
 그녀의 말대로 돈 쓸 일이 있긴 하다. 낮에는 가족들이 전부 집을 비우기 때문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이것 또한 난감한 일이다.
 전생에서는 돈에 대한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모든 게 내 것이었고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휘하의 제장들이 목숨을 걸고 구해 왔다.
 
 “고맙다. 나중에 꼭 갚을게.”
 “허이구,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네요.”
 
 
 
 제2장 회복
 
 
 
 3개월이 더 흐르자 몸이 완연하게 변했다.
 비쩍 말랐던 몸에 근육이 붙기 시작했는데 한정유는 정해진 식사 시간에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해서 몸의 회복을 가속시켰다.
 헬스트레이너들이 가지고 있는 굵은 근육들이 아니라 차돌처럼 단단하고 밀집된 근육들이라 벗겨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다.
 몸매를 회복시켜 놓고 보니 이놈도 꽤 그럴 듯하다.
 
 180cm에 75kg.
 
 정말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다.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몸무게가 60kg에 불과했으니 6개월 만에 무려 15kg이나 늘었다.
 아직 완성된 몸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미공자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그럭저럭 꽤 잘생긴 얼굴을 지녔고 제법 인상도 좋아 세상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며 몸도 변했지만 내공 회복 역시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이미 전생에서 무극심법의 현묘함을 깨달았던 경험이 있기에 내공이 빠르게 증진되고 있었다.
 물론 전생과 비교한다면 아직 멀었다.
 한정유의 몸은 이제 막 내공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기에 더 높은 경지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더불어 내공 증진을 가로막고 있는 혈도들이 아직 뚫리지 않았다.
 임독양맥이 모두 뚫려야 전생의 내공 수준으로 돌입할 수 있는데 아직 주요 혈도들을 뚫기에는 그의 내공이 부족했다.
 
 ***
 
 달그락, 달그락.
 
 왜 여동생이 설거지를 할 때마다 신경질을 부렸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
 먹으면 생기는 그릇들.
 먹는 건 간단했지만 만드는 것도 치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정유가 밥을 하기 시작한 건 한미연으로부터 잔소리를 듣고 난 후부터였다.
 의외로 밥을 하는 건 무공을 익히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하지만, 동생의 말은 진리처럼 훌륭하게 들어맞았다.
 역시 경험은 무섭다.
 계속 노력하자 점점 괜찮은 밥과 반찬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맛은 보장하지 못한다.
 어떨 때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일을 마치고 들어온 아버지와 여동생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면 그런 번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늘도 무공 수련을 끝내고 들어와 설거지를 했다.
 아버지가 오시기까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으니 설거지를 마치면 밥을 얹고 김치찌개를 만들 생각이었다.
 초인종 소리가 들려온 것은 설거지를 마치고 쌀을 씻을 때였다.
 
 “누구세요?”
 “여기가 한민규 씨 댁 맞습니까?”
 “그런데요?”
 “맞으면 일단 문 좀 열어. 싸가지 없게 구멍 사이로 쳐다보지 말고.”
 
 얼씨구.
 이 새끼들은 또 뭐야.
 그러지 않아도 문을 열어주려 했다. 아버지를 찾기에 손님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거친 말에 눈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강호에서도 하류배 사이에는 저런 말투를 쓰는 놈들이 흘러넘쳤다.
 문을 열어주자 세 놈이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후 천으로 만들어진 쇼파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마치 제 집처럼.
 
 “어이, 커피 한 잔 타와 봐.”
 “당신들 누구요?”
 “우리? 우린 빚쟁이지. 네가 이 집 아들이냐?”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감히, 내게 커피 심부름을 시켜?
 가만히 서서 지켜보자 놈들은 겁을 집어먹었다고 느꼈던지 비웃음을 흘려냈다.
 
 “그런데 한민규 씨는 아직인가. 대충 이 시간이면 집에 올 때가 되었잖아.”
 “아버지는 7시나 되어야 돌아오십니다. 무슨 일로 왔는지 말하면 내가 전해주겠습니다.”
 “전해주긴 뭘 전해줘. 그런다고 빌린 돈이 나오겠어. 오늘은 완전히 뿌릴 뽑을 생각으로 왔으니까 넌 가서 커피나 타와.”
 “돈을 빌렸다고 하는데, 얼맙니까?”
 “2천만 원.”
 
 제법 큰돈이다.
 아버지가 한 달에 버는 돈이 350만 원이라 했으니 거의 6달치 월급을 빚졌다는 뜻이다.
 놈의 말이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만약 아버지가 그런 빚을 얻었다면 분명 자신과 연관 있을 가능성이 컸다.
 성실한 아버지는 함부로 남의 돈을 빌릴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추측은 놈들의 입을 통해 정확하게 나타났다.
 
 “병원비 한다고 빌려간 게 벌써 1년이 다 되가. 빌려 달라고 찾아왔을 땐 간까지 빼줄 것 같더니 이젠 이자도 제대로 갚지 않네. 그러니 어쩌겠니. 우리가 찾아올 수밖에.”
 “음··· 알았으니 일단 돌아가세요.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상의해 보겠습니다.”
 “이 새끼가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 처먹네. 방금 말했잖아. 끝장을 보러 왔다고. 두들겨 패도 갚지 않는 놈에게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거든. 우린 그걸 하려고 온 거야.”
 “그 방법이 뭡니까?”
 “요즘 던전에서 괴물들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해치기 때문에 장기가 무척 귀해졌어. 너희 가족 중에 하나만 희생하면 돼. 간이나 콩팥, 아니면 각막. 어떤 것도 괜찮아. 어때, 네가 줄래?”
 
 대충 저간의 사정을 알겠다.
 아버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저녁조차 먹지 못했던 날이 놈들에게 얻어맞은 날이었던 모양이다.
 순간 순간, 불쑥 불쑥 지어졌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늘.
 가급적 자신 앞에서는 나타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썼지만 눈치 빠른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묻지 않았다.
 자신의 당면 과제는 최대한 빨리 몸을 원상 복구하는 것뿐이었으니.
 
 징그럽게 웃는 얼굴.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을 앞에 두고 이런 웃음을 짓는 자를 살려둔 적이 없다.
 
 “너 몇 살이냐?”
 “뭐라고?”
 “몇 살이냐고 물었다. 대충 봐도 나와 비슷해 보이는데 왜 보자마자 반말이야. 싸가지 없게.”
 “하아, 이 씨발 놈 봐라. 네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너희들 밥은 먹었냐?”
 “이 미친놈이!”
 
 맨 왼쪽 가죽옷을 입은 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런 후 위협적으로 한정유의 몸을 밀면서 험악한 면상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한정유은 놈의 협박에 가소로운 웃음을 지었다.
 
 “척 보니까, 너희들은 정상적인 빚쟁이가 아닌 것 같네. 그렇지?”
 “우리는 빌려준 돈은 완벽하게 돌려받는 해결사들이다. 그냥 빚쟁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야. 정신이 온전치 않다니까 이번엔 봐주지만 다시 엉까면 너부터 죽여 버린다.”
 
 중간에 앉아 있던 칼자국이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놈들은 한정유 정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콰악!
 
 계속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손가락을 꺾어버리자 가죽옷이 대롱거리며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남의 집에 왔으면.”
 
 왼쪽 수도가 놈의 명치를 찔렀고 곧이어 무릎이 올라가 놈의 면상을 갈겼다.
 
 “예의를 지켜야지.”
 
 가죽옷이 쓰러져 버둥거릴 때 한정유의 몸이 막 일어서는 두 놈 앞으로 귀신같이 날아갔다.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냐?”
 
 두 놈의 전신에 한정유의 주먹이 작렬했다.
 피한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주먹이 보여야 막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
 
 “어디서 다리를 쫙 뻗고 드러누워 지랄을 해. 겁도 없이!”
 
 복날 개패 듯 두들겼다.
 이런 놈들에게는 자신의 독문무공을 꺼낼 필요도 없다.
 급소만 골라 팼다.
 전생의 그라면 당연히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가 살던 강호와 달라 사람을 상하게 하면 돈을 물어줘야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되겠지.
 지금도 빚 때문에 허덕이는 부모님을 더 힘들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곡소리.
 
 사람이 죽어갈 때 지르는 비명 소리를 곡소리라 표현한다.
 
 “비명 정지. 즉각 일어나도록. 지금 안 일어나면 팔, 다리를 아예 분질러 버린다!”
 
 이 사이로 새어나오는 묵직한 저음.
 무적으로 강호에서 활동할 때 그의 목소리에 담겨 나온 명령은 공포 그 자체였다.
 거부할 수 없는 음성.
 쓰러져 비명을 지르던 자들이 겨우 겨우 일어나 한정유의 앞에 차례대로 섰다.
 사색으로 변한 얼굴.
 아직도 전신을 옭아매는 고통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들의 시선은 온통 한정유의 주먹에 가 있었다.
 
 “밥할 줄 아는 놈 손들어. 없으면 죽는다. 셋 셀 동안 대답하지 않아도 죽어.”
 “제가··· 할 줄 압니다.”
 “김치찌개는?”
 “그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좋아, 시간이 없으니까 서둘러. 30분 준다. 그때까지 전부 끝내놔. 그리고, 너!”
 “예. 말씀하십시오.”
 “넌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커피나 타 와!”
 
 지금까지 식충이로 살아온 건 무공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을 뿐.
 가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눈으로 보면서 외면한 건 단 하나의 이유, 엉망으로 변해 버린 자신의 육체를 원상태로 돌려놓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헌터, 특히 골든헌터에 속하는 강자들의 무공 수준을 따라가기엔 아직 자신의 회복 수준이 부족했기에 조금 더 수련을 하려 했다.
 하지만, 사채업자들이 집까지 찾아온 이후 그 생각을 접었다.
 삼류대학을 졸업한 후 2년을 게임폐인으로 지냈고, 교통사고를 당해 1년 동안 또다시 백수로 살아온 인생.
 이런 인생을 여기 사람들은 흙수저에서 태어난 기생충이라 칭했다.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고 살아가는 기생충.
 그게 바로 자신의 현재 모습이었다.
 
 ***
 
 청바지에 면티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취직 자리를 구하는 것보다 먼저 해결해야 될 일이 있었다.
 이쪽 세계의 법칙이 어떤지 몰라도 세상 살아가는 이치는 그리 다르지 않다.
 후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근본부터 뿌리 뽑아놔야 일이 말끔하게 처리된다는 것이다.
 집으로 찾아왔던 놈들에게 사채사무실의 위치를 확인했다.
 
 놈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아버지가 빌린 돈은 700만 원이었다.
 그 돈이 불과 1년 만에 2천만 원으로 탈바꿈했으니 고리도 이런 고리가 없다.
 이 세계는 대부분 사람들이 은행이란 곳에서 돈을 빌렸지만 아버지는 특정 직업이 없었고 지닌 재산조차 없어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썼는데, 그게 업계에서 제일 악질로 소문난 놈들이었다.
 
 한정유는 잠시 서서 눈앞으로 다가온 건물을 지켜봤다.
 건물은 최신식으로 지어진 5층짜리였다.
 악덕 고리로 사채놀음을 하는 놈들이라 그런지 제법 근사한 건물에 사무실이 있었다.
 빌딩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3층으로 향했다.
 
 곳곳에 보이는 거친 인상의 사내들.
 척 봐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놈들로 보이지 않았다.
 
 “뭔 일로 왔어?”
 
 이 새끼들은 전부 혀가 짧아.
 아니면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보이나?
 
 “빚 갚으러.”
 “호오,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봐야 돼. 스스로 알아서 빚 갚으러 오는 놈도 있네. 사무실이 어딘지는 알지?”
 “3층 맞나?”
 “응, 3층. 그런데 이 새끼가 계속 반말이네.”
 “네가 먼저 했잖아. 조용히 빚 갚고 갈 테니까 시비 걸지 마라. 벌써부터 이러면 내가 볼일 보기가 불편해져.”
 “하아, 이 씨발 놈. 정말 웃기는 놈일세. 좋아, 일단 올라가서 일부터 봐. 그러고 나서 우리 일 좀 해결하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두 놈이 뒤로 물러나며 길을 비켜줬다.
 그 사이를 통과하며 한정유가 입맛을 다셨다.
 
 3층으로 올라가 사무실 문을 열자 다섯 놈이 동시에 자신을 쳐다보는 게 보였다.
 일단 우두머리부터 확인했다.
 벽 쪽 책상에 있는 놈.
 여유 있는 자세로 책상에 걸터앉은 놈이 이곳의 대가리고, 쇼파에 앉아 있거나 거울 앞에서 지랄을 떠는 놈들은 부하들이겠지.
 한정유가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있던 올백머리가 눈을 치켜떴다.
 
 “어이, 젊은이. 어떻게 오셨을까?”
 “빚 갚으러.”
 “처음 보는 면상인데, 누구 빚?”
 “한민규 씨가 내 아버지야. 이곳에서 돈을 빌렸다고 하던데?”
 
 한민규란 이름이 나오자 순식간에 올백머리의 인상이 변했다.
 보고를 받았겠지. 그 정도로 얻어터지고 간 놈들이 보고를 안 했겠어.
 
 “아하, 네가 그 아들놈이구나. 그러지 않아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제 발로 찾아왔네. 네가 우리 애들을 팼다며?”
 “패긴, 그저 간단하게 손봐준 거지. 예의가 없어서.”
 “실력이 꽤 좋은가 봐.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기연이라도 얻으셨나?”
 
 올백머리가 빙글거리며 책상 위에 있던 인터폰을 가볍게 눌렀다.
 
 삐익. 삑. 삑.
 
 반응 좋고.
 자신의 정체를 알자마자 똘마니들을 소집한 게 분명했다.
 문이 열리며 다섯 놈이 더 들어왔다.
 그러자 올백머리가 허리춤에 있었던 단도를 꺼내 들고 빙글빙글 돌리며 다가왔다.
 
 “정말 빚 갚으러 온 거야?”
 “응.”
 “현찰로?”
 “아니.”
 “그럼?”
 “몸으로. 너희들이 내 아버지를 험하게 대했으니 그 빚을 먼저 받아야겠어. 돈 갚는 건 나중일이고. 그게 내 순서야.”
 “하아, 이 또라이 새끼가··· 아악!”
 
 이를 드러내며 단도를 앞으로 내미는 놈의 팔을 꺾으며 손바닥으로 면상을 갈겼다.
 그런 후 쇼파를 건너뛰며 일어나는 놈들의 전신을 향해 무영각을 펼쳤다.
 
 빠박!
 
 뼈가 부러지는 소리.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두 놈이 고꾸라지는 순간 탄력을 이용해서 한정유의 몸이 다시 날았다.
 거울 앞쪽에 있던 두 놈의 턱과 옆구리, 슬개골이 박살 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신호를 받고 들어온 놈들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순간 한정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왕이면 장검이나 대도 정도는 들고 오지 그랬어.
 그러면 화끈하게 팔, 다리를 잘라 버렸을 텐데.
 귀신처럼 움직이는 신형.
 공격의 빈틈을 한정유의 몸이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냥 빠져나간 게 아니다.
 
 “아이고, 악··· 커억······.”
 
 퍼벅! 빠악!
 
 비명 소리와 타격음이 난무하다가 갑자기 뚝 그쳤다.
 
 ***
 
 “야, 뱁새눈.”
 “으··· 말씀하십시오.”
 “내가 지금 너한테 3만 원을 빌려주고 싶은데. 빌릴 거지?”
 “예?”
 
 빠악!
 
 반문하는 순간 한정유의 발이 꿇고 있던 올백머리의 무르팍을 찍었다.
 
 귀곡성.
 
 얻어맞은 올백머리의 입에서 귀신 울음소리가 나왔다.
 
 “나는 두 번 말하는 거 극도로 싫어해. 다시 한번 묻는다. 빌릴 거지?”
 “예, 빌리겠습니다.”
 “이자는 하루 지날 때마다 원금의 100%야. 그래도 괜찮아?”
 “괜찮습니다. 무조건 빌리겠습니다.”
 “복리로 계산되는 건데?”
 “상관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급히 돈이 필요했거든요.”
 
 놈의 시선은 까딱거리는 한정유의 다리에 가 있었다.
 다시 한번 맞으면 죽을 것 같았기에 공포에 가득 질려 있는 시선이었다.
 
 “그럼 여기에 싸인해. 그리고 돈이 생기면 갚아.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돈이 생기면 갚으러 올 거야?”
 “아닙니다. 돈 쓸 일이 많아서 당분간 갚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것 참, 빌려준 돈은 빨리 받아야 되는 건데. 그래도 어쩌겠어, 사정이 급하다니까 내가 사정을 봐줘야지. 그런데 우리 아버지 빚은 어쩔래?”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떻게?”
 “워낙 신용이 좋으셔서 천천히 갚아도 됩니다.”
 “그래, 그럼 나중에 봐. 내가 조금 있으면 바빠질 거니까 돈 갚을 거면 시간 잘 맞춰서 와라. 알았지?”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함부로 돈 갚겠다고 오면 죽는다. 그건 지들이 자주 쓰던 수법이었으니 모른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사무실을 나와 버스를 타고 영등포로 향했다.
 사채업자들은 사무실을 나서는 자신에게 구십 도로 절을 하며 배웅을 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전생에 늘 받았던 대접을 오랜만에 받았다.
 오늘 오후 일정은 간단하다.
 그동안 무심하게 넘겨 버렸던 가족들의 일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일터가 영등포에 있다고 했으니 그곳에 가서 점심을 같이할 생각이었다.
 
 ***
 
 아파트 현장.
 
 한민규는 그곳에서 철근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중학교만 졸업한 후 고아원을 나와 세상을 전전하며 힘겹게 살았다.
 그러다가 아내를 만났다.
 아들과 딸.
 불우했던 자신의 삶속에서 아이들은 소중한 보물이었고 생명이었다.
 배운 게 없으니 타고난 몸뚱어리 하나로 버텨야 하는 세상은 더없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있기에 웃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로 지내는 걸 보면서 화를 내지 못했다.
 아들은 중학교 때까지 전교 1, 2등을 다투는 수재였으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내리막길을 걷더니 결국 삼류대로 진학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남들이 다 간다는 학원과 과외를 시키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딸과 다르게 아들은 다른 아이들과의 불평등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의 삶을 망치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런 아들을 향해 눈물을 보였다.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하지만 아들이 이대로 삶을 포기할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뇌사라는 판정을 받고도 기적처럼 살아난 아들.
 예전과 달라진 태도와 생활.
 비록 아직 취직을 못했지만 아들은 교통사고 전과 백팔십도로 달라졌는데 완전히 철이 든 것 같았다.
 
 사람이 철근을 들고 운반하는 건 보기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겉보기에는 가느다란 철근의 무게가 별로일 것 같지만 막상 들어보면 돌덩이보다 무겁다.
 겨우 힘들게 철근을 옮긴 후 잠시 휴식을 취할 때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본능일 것이다.
 자신을 아련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것은.
 거기에 아들이 서 있었다.
 
 “정유야,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
 
 아버지와 점심을 먹고 아파트 현장을 나섰다.
 힘든 모습.
 철근을 매고 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보였다.
 그럼에도 자신을 확인한 아버지는 햇살 같은 웃음을 해 보였다.
 
 주르륵, 흐르는 눈물.
 왜 울었을까.
 원래의 주인이 흘린 눈물일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흘렸던 눈물일까.
 
 1년 동안 지켜본 아버지는 아들을 철썩같이 믿으며 힘든 삶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셨다.
 그것의 의미.
 안다.
 백수가 되어 세상을 등지고 있는 아들에 대한 용기와 희망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번엔 노량진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본 후 마음이 무거워졌으나 이왕 나온 걸음을 되돌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식당에 들러 어머니가 일하는 장면도 한동안 지켜봤다.
 
 나서지 않았다.
 평소의 어머니는 아들이 식당에 오는 걸 끔찍하게 싫어해서 일하는 곳조차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음식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고, 손님이 식사를 마치면 그릇을 치워 주방으로 가져갔다.
 
 긴 한숨.
 자신은 이런 분들의 아들이다.
 
 ***
 
 대로 양쪽에 우뚝 서 있는 빌딩들.
 도로를 달리는 고급 승용차와 정장을 입고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수시로 괴물이 나와 혼란이 지속되었음에도 사회가 이렇게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건 던전이 주로 산과 평야지대에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던전이 생성되면 감지시스템이 곧바로 알아내어 일반인들의 피해를 발생하지 않도록 헌터들을 출동시키는 비상체계가 구축되어 있다고 들었다.
 던전을 통해 괴물들이 세상에 등장한 지 20년.
 그동안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괴물들을 효율적으로 처단하는 것이었다.
 
 빌딩 상단에는 수많은 광고판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중 상당수가 길드에 대한 광고들이었다.
 대한민국에는 20개의 길드들이 있었는데 점점 던전의 발생 빈도가 증가하며 최대의 호황을 맞는 중이었다.
 
 총과 대포, 미사일에는 죽지 않은 괴물들.
 한 달에 5, 6차례씩 나타나 도시로 접근하는 괴물들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헌터들에게 의지하는 것뿐이었다.
 정부에서는 그들이 한 번 출동할 때마다 거액의 비용을 지불했고, 괴물을 잡은 숫자에 비례해서 포상금도 준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겠지.
 사람이, 도시가 온전해야 국가가 무너지지 않을 테니 정부에서는 별도의 예산을 수립해서 길드를 먹여살릴 수밖에 없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한 후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바로 길드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현대문명에 문외한인 자신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무력 시행뿐이었으니, 길드가 가장 만만하게 여겨졌다.
 더불어 현재 길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꿈의 직장이었다.
 
 일단 길드에 가입하면 일반 회사원들보다 최소 5배의 연봉을 받는다고 하니 꿈의 직장이라 부를 만했다.
 혼기에 찬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 바로 길드원이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건 길드의 가입조건이 너무나 까다롭기 때문이었다.
 무조건 각성자여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괴물들을 상대할 수 없는 이상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도 각성자 양성 사관학교를 졸업한 자들에게 우선권을 준다고 했으니 일반인들이 길드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길드에서는 각성자의 클래스를 5단계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었는데 골든헌터는 1등급의 또 다른 명칭이었다.
 그 위로 클래스를 벗어난 마스터들이 있다고 들었다.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나 마스터들은 각 길드에서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였는데 던전에서 특별한 괴물이 나타났을 때만 출동할 정도로 귀한 몸들이었다.
 
 이제 마지막 한군데만 남았다.
 터벅터벅 걸어 시청 앞 사거리로 향했다.
 그곳 대형 까페에서 여동생인 한미연이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카운터 앞으로 다가가자 예쁘장한 아르바이트생이 뭘 마실 건지 물어왔다.
 힐끗 두리번거렸으나 여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의 질문에 저절로 주머니에 손이 들어갔다.
 전 재산 5천 원이 손에 잡혔다.
 커피 값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이다.
 그냥 돌아서서 나오려다 마음을 다잡고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혹시, 한미연 씨는 출근 안 했나요?”
 “미연이는 4시부터 근무해요. 아직 출근하려면 20분 정도 남았어요.”
 “그렇군요.”
 
 누구냐고 눈으로 묻는 아르바이트생의 시선을 뒤로하고 커피를 든 채 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창가로 향했다.
 그런 후 커피 향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냈다.
 
 “미연이 찾아왔다며. 누구래?”
 “그냥 휙 돌아서는 바람에 물을 새가 없었어.”
 “남자친군가?”
 “미연이 남자친구 없다.”
 “그 계집애 워낙 깍쟁이라 속을 알 수 없어. 남자친구가 있는데 없다고 그런 건지도 몰라.”
 “저 남자, 분위기 끝내준다. 저렇게 있으니까 꼭 영화배우 같아.”
 “침 닦아라.”
 “몸매가 환상이야. 비율이 완벽해.”
 “슬쩍 가볼까? 나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어.”
 
 정유미의 말에 홍선화가 어깨를 들썩였다.
 물론 까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기 때문에 잘생긴 남자를 하루에도 열두 번은 본다.
 그럼에도 저런 분위기를 가진 남자는 처음이었기에 저절로 가슴이 콩닥거렸다.
 
 “야, 미연이 들어온다.”
 “타이밍 봐라. 저것이 지 남자 안 뺏기려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들어오네. 아쉽다.”
 
 둘이 킥킥대며 웃는 동안 한미연이 다가와 옷을 갈아입었다.
 홍선화의 입이 열린 건 한미연이 카운터 쪽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미연아, 너 찾아온 남자 있어.”
 “어떤 남자?”
 “네 남자친구.”
 “까불지 마. 나는 남자친구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해.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런 거 키울 새가 없다.”
 “그럼 저 사람은 뭔데? 혹시 저 사람, 네가 좋아서 따라다니는 사람이니?”
 
 홍선화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궁금증으로 가득 찬 한미연의 고개가 창가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웬일이지. 여길 다 오고?”
 “누군데. 누구야?”
 “우리 오빠.”
 “헉, 대박. 정말 오빠 맞아?”
 “응.”
 “우와, 미연아. 우리 앞으로 더욱 친하게 지내자. 내가 앞으로 잘할게.”
 “얘가 갑자기 왜 그래?”
 “오빠 여자친구 있니? 없으면 난 어때?”
 “꿈도 꾸지 마. 우리 오빠 아주 훌륭하신 백수거든. 괜히 나 원망하지 말고 일찍 꿈 깨셔.”
 
 홍선화의 질척거림을 뒤로하고 한미연이 성큼성큼 걸어 창가로 다가갔다.
 그런 후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한정유를 바라봤다.
 이상하긴 하다.
 친구들이 왜 그렇게 난리를 피웠는지 이해가 될 만큼 지금 오빠의 모습은 제법 분위기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 뭐 해, 백수는 아무리 멋있어도 세상 천지에 쓸모가 하나도 없어.
 
 “여긴 왜 왔어?”
 “너 일하는 거 보려고.”
 “오빠, 돈 떨어졌니?”
 “그런 거 아냐. 내가 그 정도로밖에 안 보여?”
 “그 정도로 보이네요. 백수가 돈까지 없으면 서글퍼져. 얼마나 줄까?”
 “이 자식아. 아니래도!”
 “그럼 왜 온 거야. 심심해서 왔을 리는 없고. 빨리 말해. 나 일해야 돼.”
 “너무 놀았어. 3년 동안 놀았으면 충분하지. 너한테 백수 소리 듣는 것도 지겹고. 그래서 나도 취직할 생각이다.”
 “하아, 우리 오빠 왜 이러신대. 청년 실업이 백만이 넘었어요. 너무 놀다 보니까 노는 게 힘든 모양인데, 너무 큰소리치지 마. 취직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그래도 기특하긴 하네. 취직할 생각을 다 하는 걸 보니. 그래, 생각해 놓은 곳은 있어?”
 “응.”
 “어딘데?”
 “피닉스길드.”
 
 한정유의 대답에 한미연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너무 어이가 없어 차마 비웃지도 못했다.
 
 피닉스 길드.
 
 누구나 꿈꾸는 신의 직장.
 길드에서도 톱3에 들어가는 거대 길드가 바로 피닉스였다.
 더불어 직원 복지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기 때문에 각성자 양성 사관학교의 생도들이 꼽는 입사희망 1순위 길드였다.
 
 “오빠야, 커피 다 마셨으면 그만 가라.”
 “응?”
 “나 지금 슬슬 신경질 올라온다. 오빠 농담 받아줄 새가 없어요. 저기, 지배인이 눈치 주는 거 안 보여?”
 “보여.”
 “그 농담 집에서 마저 하고, 이젠 가. 나 일해야 돼.”
 
 
 
 제3장 피닉스길드
 
 
 
 각 길드는 동시에 입사시험을 치렀다.
 
 당연히 한 길드에서 인재들을 전부 독식하는 걸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양성되는 각성자 양성사관학교 숫자는 50개.
 
 거기서 매년 2,000명의 생도들이 쏟아져 나온다.
 
 문제는 길드에서 뽑은 신입길드원의 숫자가 양성되어 나오는 생도숫자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다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100여 명 안밖.
 
 5년동안 죽을 고생을 하면서 훈련에 매진한 생도들의 경쟁률만 따져도 20:1. 그러나 국내 최고의 길드인 탑3는 실제적으로 경쟁률이 50:1까지 치솟는다.
 
 문제는 길드의 신입사원 공채에 사관생도들 외에도 수천명의 일반각성자가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 떨거지 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많다.
 
 양성사관학교의 교수들은 대부분 각 길드의 마스터들과 골든클래스의 각성자들이었기에 사관학교 생도들이 월등하게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간혹가다 재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들이 나타나곤 했다.
 
 ***
 
 한정유는 인터넷에서 상반기 길드 공채시험 일정을 확인한 후 한숨을 흘려냈다.
 
 동생에게 당장 취직 할 것처럼 말해 놨는데 시험은 앞으로도 한달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가서 채용하라면 안 될까?
 길드가 원하는 건 어차피 강력한 힘을 지닌 각성자일테니 충분히 통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한정유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고 한숨을 길게 내리 쉬었다.
 여긴 그가 살았던 무림이 아니었고 이 세계의 법칙은 대단히 복잡해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니 그저 기다릴 수밖에.
 
 더군다나, 아직 그의 내공이 부족했다.
 최대한 빨리 임독양맥을 뚫어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한달이란 시간이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세계는 시간이 빨리 흐르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수련에 집중하느라 시간의 흐름을 잊은 것일까.
 
 한정유는 가족들이 전부 나간 방에 앉아 무극진기를 온 몸으로 돌렸다.
 
 단전이 점점 확장되면서 내공이 늘어나 주요혈도를 거의 다 뚫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임독양맥을 관통시키는 것.
 
 무극심법의 신묘함은 운용을 시작하면 스스로 움직여 전신을 관조해서 우주만물의 기운을 빨아들여 신체의 균형을 최적화 시킨다는 것이었다.
 
 단전에서 빠져나온 내공이 이미 개통된 혈도을 따라 한정유의 뜻에 따라 회음혈을 향해 진군했다.
 
 무리를 했다면 벌써 예전에 임독양맥의 구성혈도들을 깨뜨렸겠지만 그리하지 않은 것은 자칫 주화입마에 들어설수 있기 때문이다.
 
 과는 화를 부른다.
 
 임독양맥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그만한 내공이 뒷받침 되어야 중간에서 멈추더라도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다.
 
 강력한 내공이 회음혈을 순식간에 깨버리고 점차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기회, 중부, 중완, 천돌혈이 차례대로 관통되자 내공이 점점 거세졌다.
 
 혈이 깨지면서 신체의 기운과 통로가 넓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임맥중 남은 것은 염천과 승장혈뿐.
 
 하지만, 한정유는 솟구치던 내공이 간신히 염천혈을 깨트리는 순간 내공을 단전으로 돌렸다.
 
 본능적으로 안다.
 
 자신의 내공은 아직 임맥의 마지막 목적지인 승장혈을 깨트릴 능력이 없다.
 
 그랬기에 그는 내공을 단전으로 돌린 후 독맥의 경로에 있는 혈도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명문, 현추, 중추, 아문, 풍부까지 거침없이 달려갔다.
 
 혹자는 임독양맥의 타통이 거의 비슷한 난제를 가졌다고 알겠지만 임독양맥의 타통핵심은 독맥에 위치한 뇌호, 강간, 후정, 백회혈을 뚫는 것이었다.
 
 인간의 중추기운이 그곳에 다 몰려 있었고 주화입마의 원천이 그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무인들은 이 네곳의 혈도를 일러 즉사혈이라 불렀다.
 
 풍부까지 관통한 한정유는 뇌호를 향해 내공을 밀어 부쳤다.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뇌호를 뚫게 되면 내공이 한단계 진일보 한다는 걸 알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깨고 싶었다.
 
 철벽처럼 막혀 있는 뇌호혈을 향해 무극진기가 끊임없이 부딪쳤다.
 
 시간의 흐름을 잊었고 전신에서는 끝없이 땀이 흘러내렸다.
 
 ‘콰앙!’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전신이 떨렸다.
 
 그토록 강하게 버티던 뇌호혈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무극진기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거대한 강물이 도도하게 흘렀다.
 
 뇌호혈을 관통시킨 무극진기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용솟음 치듯 달려나갔다.
 
 온 몸에서 희미한 광채가 뿜어졌다.
 
 양광이현[陽光二現].
 
 내공이 단전에서 뇌호까지 관통하며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강간, 후정, 백회혈뿐이었으나 한정유는 천천히 내공을 거두어 단전으로 갈무리했다.
 
 임독양맥의 타통은 무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뇌호혈을 관통시키면서 무극심법의 경지가 칠성에 달했다.
 
 이 정도면 이 세계에 어떤 놈들이 환생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그 누와 붙어도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자신에게는 천고의 신기 섬전십삼뢰[閃電十三雷]와 단천열화권이 있기 때문이다.
 
 ***
 
 “이 자식아. 너, 너무한 거 아냐. 한번 만나자고 무려 20통이나 전화질을 해야 돼?”
 
 “그동안 바빴다.”
 
 “바쁘긴 뭐가 바빠. 백수가!”
 
 “원래 백수가 과로사 한다잖아.”
 
 “미친 놈.”
 
 김도철이 소주를 따라준 후 혀를 차며 아련한 눈으로 한정유를 바라봤다.
 
 고등학교 때 사귀었으니 벌써 13년이나 된 친구다.
 
 다른 놈들은 한정유가 백수생활을 할 때부터 하나씩 떠났고 교통사고로 입원한 후엔 아예 역락조차 끊었지만 오직 김도철만은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퇴원한 후에도 끊임없이 전화했고 계속해서 찾아왔다.
 
 다른 친구들도 있을 텐데 놈은 언제나 자신을 잊지 않았다.
 
 “도철아, 한 가지 물어보자.”
 
 “뭔데?”
 
 “넌 왜 날 버리지 않은 거냐. 다른 놈들은 다 버렸는데.”
 
 “네가 쓰레기냐. 버리게. 이 새끼야. 우린 친구야. 더군다나, 너는....관두자.”
 
 김도철이 또다시 아련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순간 한정유의 눈꼬리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뭔가 있구나. 자신도 기억하지 못했던 사연이. 그래서 이놈은 나를 끝까지 지키는 거였어.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어떤 이유로 자신의 곁에 남았는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김도철이 준 소주를 마시고 돼지갈비를 한 입 물었다.
 
 이 세계에서 그를 가장 기쁘게 만든 것은 음식들이었다.
 
 특히 이 소주는 가격에 비해 상당히 훌륭했다.
 
 주거니 받거니.
 
 벌써 소주가 3병이나 동이 났지만 한정유의 얼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백수가 술까지 잘 마시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으나 몸이 가진 주량 자체가 상당해서 쉽게 취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김도철은 달랐다.
 
 붉어진 얼굴. 놈은 한정유와 달리 술이 그리 쎄지 않았다.
 
 “이 새끼야. 다시 한번 물어보자. 너 백수주제에 왜 그렇게 바쁜거냐. 콧배기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잖아.”
 
 “그동안 운동했어. 워낙 몸이 약해져서 회복할 필요가 있었거든.”
 
 “그래, 몸은 좋아졌어. 모델해도 될 정도로 훌륭하네. 그런데 취직은. 너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이젠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될거 아냐. 네 나이가 벌써 29살이다. 이 새끼야.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도 해야지!”
 
 놈의 흥분에 저절로 입맛이 다셔졌다.
 
 김도철이라 할 수 있는 말이다. 더군다나 자신을 위한말이었으니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아는 놈이 그렇게 사냐. 제발 정신 좀 차려!”
 
 “그러지 않아도 취직하려고 입사원서 넣었다.”
 
 “허억, 정말로. 어딘데?”
 
 “피닉스 길드.”
 
 “미친 놈. 지랄 옆차기 하고 있네.”
 
 김도철의 반응은 여동생보다 더 했다.
 
 사람은 걱정 한 만큼 격한 반응을 보인다고 했는데 놈은 아예 술병을 든 채 아직 정신 못 차렸다며 춤을 춰댔다.
 
 ***
 
 을지로에 도착해서 역을 빠져나와 10분 정도 걷자 웅장한 건물이 나타났다.
 
 30층에 달하는 고층빌딩.
 
 그 곳 전체가 피닉스길드의 본사 사옥이었다.
 
 시계를 힐긋 보자 오전 9시 30분을 가리켰다.
 
 응시자는 10시 까지 본사로 오라고 했으니 아직 30분이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정장차림의 젊은이들.
 
 그중에 상당수는 붉은 제복을 착용했고 왼쪽 손가락에 옥반지를 꼈는데 양성사관학교 출신들이었다.
 
 날카로운 기세.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섬칫한 느낌을 받을 만큼 강렬했다.
 
 천천히 걸어 시험장으로 향했다.
 
 이번에 피닉스 길드에서 뽑는 신입사원 인원은 불과 5명.
 
 거기에 응시한 사람들의 숫자는 600명이었으니 120:1이다.
 
 역대 최고.
 
 언론에서는 이번 피닉스 길드의 응시생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며 대서특필 했는데 그 이유로 완벽한 복지를 들었다.
 
 쉽게 생각하면 별일 아니라고 여기겠지만 응시자들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질 일이었다.
 
 피닉스에 응시한 자들중 350명이 양성사관학교 출신이었고 나머지 일반응시자들도 훌륭한 능력을 갖춘 각성자들이기 때문이다.
 
 시험장으로 들어서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참여접수를 한 후 수험표를 받기 위한 줄이었다.
 
 참 별짓을 다한다.
 
 천하를 일통하며 권좌에 올랐던 남자가 입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다니 정말 한심한 일이다.
 
 줄을 선 자들을 확인하던 한정유의 표정이 슬쩍 변했다.
 내공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초고수의 반열에 이르면 내공이 갈무리되며 외부로 새어 나오지 않지만 중, 하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내공이 삐죽삐죽 튀어나온다.
 그것이 기세다.
 
 한정유는 즉시 그것을 알아봤는데 그중 상당수는 내공과 전혀 다른 기운이 감지되고 있었다.
 뭐지, 저 힘은?
 의문이 들었으나 더 생각하지 못했다.
 바로 옆에 있던 여자가 말을 붙여왔기 때문이다.
 
 “줄이 길어요. 접수하는 데만 10분 이상 걸리겠어요?”
 “그렇군요.”
 “처음인가요. 시험 보는 거?”
 “그렇습니다.”
 “사관학교 출신 아니시죠?”
 “맞습니다. 전 일반 응시잡니다.”
 “반가워요. 우리 이것도 인연인데 인사나 해요. 전 윤정혜라고 해요.”
 “한정유입니다.”
 “미안하지만, 전 사관학교 졸업생이에요. 이번에 사관학교 졸업생 중 우수 인재들이 대거 몰려서 합격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에요.”
 
 그때서야 여자의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무공을 익혔는지 몸매가 좋았고, 더군다나 얼굴도 무척 아름다워 한 송이 수선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한정유는 슬쩍 눈을 돌렸다.
 이번에 꼭 합격해야 된다.
 고생하는 부모님과 동생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반드시 합격해야 된다는 생각에 윤정혜에게 전혀 신경이 가지 않았다.
 물론 가족들과 친구 놈은 아예 기대조차 갖지 않았지만.
 그러나 윤정혜는 심심했던지 계속 말을 붙여왔다.
 
 “이번 시험 전형은 필기 20%, 면접 20%, 실기 60%라네요. 작년보다 실기 비중이 10% 높아졌는데 준비는 많이 하셨어요?”
 “안 했습니다. 기본 실력으로 볼 생각입니다.”
 “어머, 실력이 좋은가 봐요?”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어디 아팠던 모양이죠?”
 “교통사고를 당해서 오랫동안 병원에 있었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윤정혜가 안타깝다는 시선을 보내며 입술을 오므렸다.
 간혹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자들 중에서도 출중한 실력을 지닌 자가 있었기에 윤정혜는 살짝 기대를 하고 있었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으나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이라 자신도 모르게 말을 붙였는데 사정을 알고 나자 전혀 가능성이 없는 남자였다.
 한정유에게 걱정을 늘어놨지만 자신은 이번 시험에서 붙을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청하사관학교에서 수석졸업자였으며 전체로 따져도 탑10 안에 들어가는 인재였고, 환생되기 전에는 남궁세가의 비밀병기, 비검 남궁혜라는 이름을 지녔다.
 
 환생한 지 벌써 10년. 그러고 보면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사실을 말한 적은 없으나 사관학교 생도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존재했다.
 사관생도의 대부분이 환생자이거나 초능력자라는 사실.
 사관학교에서 5년이란 세월을 보냈지만 그 공공연한 비밀은 철칙처럼 깨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묻지 않았고,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자들.
 이 세계에서 말하는 각성자들은 대부분 어딘가에서 환생된 자들과 처음부터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뿐이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초인의 힘을 가질 수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각성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대부분은 무림과 다른 세계의 환생자, 그리고 초능력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환생자일까 초능력자일까?
 
 ***
 
 접수대의 남자는 까만 터틀넥에 양복을 받쳐 입고 있었는데 인상이 꽤나 날카로웠다.
 
 “이름?”
 “한정유입니다.”
 “사관생도가 아니시네. 여기 접수번호, 당신은 왼쪽으로 가시오.”
 
 시큰둥한 얼굴로 남자가 가리킨 곳.
 그곳에는 수십 명의 남녀가 있었는데 전부 사관생도가 아니었다.
 사관생도들은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붉은 제복과 반지를 끼었으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차별을 하는 거야?
 단박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피닉스길드에 입사 신청을 하면서 많을 것을 알아봤기 때문에 대부분의 합격자가 사관학교에서 나온다는 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작부터 편을 갈라놓은 것을 보게 되자 입맛이 썼다.
 
 예나 지금이나 하는 짓이 똑같다.
 무림에서도 정파 놈들은 언제나 출신 문파와 그 성분을 보고 정의맹에 가입시키는 짓을 했으니, 이놈들이나 그놈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난 후 먼저 시작한 것은 필기 시험.
 인터넷에서는 길드의 필기 시험이 그저 형식적인 것일 뿐 합격은 실기로 정해진다고 했으나 한정유는 시험지를 앞에 두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필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주천화부를 관통하고 양광이현에 도달하느라 무극심법의 수련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충은 기출 문제들을 확인하고 왔다.
 
 그러나 문제들의 내용은 생소한 것뿐이었다.
 괴물의 종류와 약점, 처리시의 후속 조치, 던전 발생시의 대응방안, 길드원이 가져야 하는 책임감 등등 머리 복잡한 내용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결하면 된다.
 
 자신이 있는 강당에 들어온 응시자의 숫자는 250명.
 전부 사관학교 출신들이 아니다.
 나이도 각양각색. 심지어 40대로 보이는 남자까지 왔다.
 
 역시 예상대로 어렵다.
 시헙지를 보다가 15도 각도에서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는 안경잡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모범생.
 놈은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길드의 필기 시험은 다른 일반 회사와 다르게 기본적인 상식을 묻는 것이기에 상당히 쉽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내공이 돌아오면서 가장 발달한 것이 눈이다.
 고수의 동체 시력은 날아가는 모기의 궤적을 파악하고 선점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다.
 이거 생각보다 쉽군.
 놈을 따라 볼펜을 움직여 정답을 체크해 나갔다.
 이렇게 남의 것을 보고 베끼는 걸 여기 사람들은 뭐라고 그러던데?
 
 ***
 
 필기 시험에서는 평온했던 응시자들의 표정이 오후가 되자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실기 시험이 오후 1시 30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밥은 구내식당에서 먹었는데 상당히 잘 나왔다.
 윤정혜가 다가온 것은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시고 있을 때였다.
 커피란 게 참 이상하다.
 처음엔 써서 이런 걸 왜 먹는지 몰랐으나 점점 향긋한 향기가 입 안에서 우러나와 이젠 중독이 되었다.
 
 “시험 잘 봤어요?”
 “대충.”
 “하기야, 필기시험은 그냥 통과의례에 불과한 거니까. 실기가 진짜잖아요.”
 “얼굴을 보니 그렇게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군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럴 리가요. 여기 온 사람들을 봐요. 무려 600명이에요. 이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한 사람들이 한둘이겠어요?”
 “그렇기도 하겠네요.”
 “내가 보니까 정유 씨가 더 여유 있어 보이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긴장해서 잔뜩 얼굴이 굳어져 있는데 정유 씨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아침에 청심환을 먹고 와서 그렇습니다.”
 “호호··· 농담도 잘하시네요.”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입술을 슬쩍 끌어올렸다.
 그녀의 웃음이 너무나 화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기는 어떻게 봅니까?”
 “어떻게 보다니요?”
 “방법을 물어보는 겁니다.”
 “설마··· 모르고 온 건 아니죠?”
 “말씀드렸다시피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되거든요.”
 
 어이없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또다시 입맛을 다셨다.
 반드시 합격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모집요강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 세계에 온 지 1년이 되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부분들은 대충 알았지만 전문적인 것까지는 무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모집요강에 나온 얘기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는데, 스페이스 비전과 섹션 프로그램 어쩌고 하는 것들은 아예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병원이라는 단어로 모든 걸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상냥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스페이스 비전에 10명씩 들어가요. 캡슐이 10개 준비되어 있으니 한꺼번에 100명이 시험을 볼 수 있는 거죠.”
 “음··· 캡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가상현실인 스페이스 비전에서 괴물들이 출현하는 전장으로 들어가요. 거기서 괴물들을 많이 잡거나 오래 버티는 사람이 좋은 점수를 받아요. 결국 600명 중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5명이 합격을 하는 거죠.”
 “어떤 괴물이 나옵니까?”
 “지금까지 던전을 통해 나왔던 괴물들이에요. 점점 난이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작년 최고 점수 합격자는 45분을 버텼다고 해요. 정말 대단하죠.”
 “그게 대단한 겁니까?”
 “그럼요, 대부분 응시자들이 채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탈락하거든요.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전장에서 혼자 45분을 버티는 건 기적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은 입사하자마자 3급 헌터 대우를 받았어요.”
 “더 버티면?”
 “절대 그럴 리는 없어요. 작년 합격자가 10년 동안 최고 기록 보유자에요.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난리가 나겠죠.”
 
 
 
 제4장 시험
 
 
 
 “이번에 최대 응시자가 몰렸다고 언론에서 난리가 났던데 어때요?”
 “꽤 좋아. 우리 쪽에 사관학교 우등생들이 대거 몰렸어. 톱10 안에 있는 애들 중 3명이나 왔고. 그중 전체 수석한 마종현도 있어.”
 “복지 때문이라던데, 맞나요?”
 “우리 회장님이 추진한 복지전략이 이제 빛을 발하는 거겠지. 다른 놈들은 손해 볼까 봐 전혀 하지 못하는 걸 우리 회장님은 과감하게 하셨잖아.”
 
 1급 헌터이자 골든헌터 김두성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옆으로 다가온 여자의 이름은 김가은.
 그녀 역시 피닉스길드가 아끼는 골든헌터이다.
 그들이 스페이스 룸에 나타난 것은 그 둘이 시험을 주관하는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룸에서는 응시자들의 시험 과정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마종현이 꽤 한다면서요?”
 “석종사관학교에서는 역대 최고의 천재라고 하더군. 5년 동안 내리 수석을 놓친 적이 없대.”
 “혹시 출신은?”
 “무림 쪽이야. 위원회 분석으로는 양가장 쪽이란 판단을 내리고 있어.”
 “양가창법?”
 “맞아.”
 “그렇다면 볼 만하겠네요. 또 다른 애들은요?”
 “이태천과 윤정혜?”
 “걔들이 톱10 맞죠?”
 “윤정혜는 남궁가 쪽이 확실해. 이태천은 서고문님 말에 따르면 마법 쪽의 테라 가문이 아닐까 하더군.”
 
 김두성의 말을 들은 김가은이 미소를 지었다.
 누구는 무림이 중국에 있고, 마법세계는 중세시대 유럽에 있는 걸로 생각하지만 그건 터무니없는 착각일 뿐이다.
 무림은 그저 무림일 뿐이고, 마법의 세계도 이 세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차원에 존재하는 곳이었다.
 
 “골고루 왔군요. 그게 좋아요. 한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이 맞지 않아요.”
 “그나저나 또 어떻게 버텨. 실기시험 전부 끝나려면 최소 4시간은 걸릴 텐데.”
 “그렇게는 걸리지 않아요. 프로그램 난이도가 작년보다 더 어려워져서 훨씬 줄어들 거예요.”
 “그런가?”
 “오랜만에 편하게 영화 본다 생각하고 즐기자구요. 어린애들 노는 거 보는 것도 꽤 재밌잖아요.”
 “그게 뭐가 재밌어. 초등학생들이 딱지놀이 하는 걸 몇 시간이나 보는 게 좋아? 어차피 합격할 놈들은 정해져 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누가 알아요. 혜성처럼 나타나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줄 응시자가 있을지?”
 
 ***
 
 한정유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 한숨을 흘려냈다.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칼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 그냥 왔는데, 모든 응시자들이 자신의 독문병기들을 소중하게 품고 있는 걸 보자 아쉬움이 묻어났다.
 사고는 싶었다.
 
 하지만, 병기를 파는 스토어에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쓸 만한 칼들은 무려 300만 원이 넘었고 자신의 내공을 견딜 만한 칼은 가뿐하게 천만 원이 넘었다.
 강철합금으로 만들어졌다는데 무림에서의 보도와 견딜 만한 훌륭한 칼들이 여러 개 전시되어 있으나 살 생각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백수가 그런 돈이 있을 리 있나.
 그럼에도 아쉽다.
 
 자신의 독문무공 섬전십삼뢰(閃電十三雷)는 적수를 찾아볼 수 없는 천하제일의 도법이었다.
 천하를 석권하면서 정의맹주와 사도련주를 꺾은 것도 섬전십삼뢰의 마지막 절초 천붕이었다.
 물론 단천열화권의 위력 또한 경천동지할 정도였으나 아무래도 괴물들을 상대하기엔 섬전십삼뢰가 더욱 효율적이란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고 어깨를 곧추세웠다.
 남자는 이미 엎질러진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법이다.
 사람들을 따라 천천히 움직여 광장의 중심으로 움직였다.
 
 광장에는 3m에 달하는 와이드비전이 10개나 설치되어 있었는데 응시자들의 시험 장면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흘러넘치는 긴장감.
 이제 곧 시험이 시작되기 때문에 캡슐 안에는 100명의 응시생들이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
 
 “작년보단 괜찮네요.”
 “그러면 뭐 해. 10분을 넘기는 놈이 없잖아. 아이고, 저놈은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결국 죽었군.”
 
 김두성이 입맛을 다시며 혀를 찼다.
 괴물 파이탄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사관생도의 온몸이 찢겨 날아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부터가 진짜잖아요. 우리 기대주들은 아직 한 명도 출전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실망하면 어떻게 해요.”
 “하긴, 가만 있어보자. 다음이 서진호가 출전하네. 이놈이 우리가 주목하는 기대주 중 하나지. 얘는 얼마나 버틸라나.”
 
 그들의 눈은 사관생도들이 출전하는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일반응시자들은 예상대로 초반 5분 안에 거의 전멸했기 때문인데, 그나마 사관생도들이 출전하는 전장이 훨씬 격렬하고 재밌어 시간이 지나자 아예 일반 응시자들이 출전하는 비전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드디어 서진호가 출전하는 캡술의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서진호는 대창사관학교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놈이다.
 이번 사관학교 졸업생 중 탑10 안에 들지 못했지만 상당한 기량을 가지고 있어 기대주로 손꼽히고 있었다.
 
 가상현실로 진행되는 스페이션 비전 프로그램은 실제의 싸움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생생한 영상을 전해주기 때문에 그 생동감이 대단했다.
 가동 시작.
 
 역시 기대주답다.
 마법 쪽에서 온 것으로 추측되는 서진호가 양손에서 파이어 볼트를 뿜어내며 거침없이 전장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맨 처음 덤벼든 9등급 괴물 구홀들이 그의 파이어 볼트에 속절없이 날아갔다.
 속도가 다르다.
 다른 응시자들이 그를 따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는 훨씬 빠른 속도로 전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합격의 기준이 괴물들의 처단 숫자와 이동 거리, 지속 시간이었기에 그는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속도는 8등급 괴물 키메라들이 나타나며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구홀들은 각성자라면 누구나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한 괴물이었지만 키메라들의 방어력은 구홀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키메라는 거대한 이빨과 발톱을 지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키메라의 포위 공격에 서진호가 이리저리 이동하며 겨우 빠져나갔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다시 발걸음이 멈추었다.
 
 이번에 그를 가로막은 건 3마리의 파이탄.
 7등급 괴물로서 2m에 달하는 체구를 지녔고, 철갑 같은 갑옷과 촉수를 지녀 기존 길드원조차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서진호가 파이탄에 걸려 고전을 못하는 순간, 2명의 사관생도들이 따라붙었다.
 그러자 개인당 3마리의 파이탄이 다시 생성되며 그들을 공격했다.
 
 프로그램이 참 정교하다.
 일정한 거리에 도착하면 그에 맞춰 괴물들이 생성되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2명의 사관생도들은 파이탄의 공격에 채 5분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지만 서진호는 파이탄의 약점인 눈을 파이어 볼트로 집중 공략해서 기어코 3마리를 처치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동료의 죽음에 광분한 마지막 파이탄이 죽는 순간 그의 몸을 껴안고 머리를 물어뜯었던 것이다.
 
 ***
 
 정말 이걸 계속 보고 있어야 하나.
 벌써 실기가 시작한 지 2시간째.
 500명이 캡슐로 들어가 시험을 보고 나왔으나 최고 점수를 얻은 자가 겨우 78점밖에 되지 않았다.
 그 점수가 어떻게 계산되는지 모르겠으나 10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결코 좋은 점수라 볼 수 없었다.
 
 캡슐에서 나오는 응시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었다.
 작년보다 난이도가 너무 높아졌다는 불만이었는데, 그 소리를 들으며 웃고 말았다.
 난이도가 높아졌다 해도 결국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었으니 불만을 터트릴 이유가 없다.
 결국 그들의 불만은 시험에 실패한 것에 대한 핑계에 불과했다.
 이제 남은 건 자신이 포함된 마지막 응시자 100명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합격 예상자들은 이곳에 포함되어 있었다.
 
 “다녀올게요. 정유 씨도 잘하세요.”
 “잘하시길.”
 “그런데 오늘 저녁에 뭐 해요?”
 “왜 그러십니까?”
 “그동안 시험 준비하느라 스트레스 만땅이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꼭 술 한잔이 필요해요. 어때요, 만난 기념으로 같이 마실래요?”
 
 왜라고 물을 필요가 있을까.
 여자가 남자에게 술을 마시자고 한다는 건 다른 뜻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죠.”
 
 ***
 
 캡슐 안으로 들어서자 진행요원이 선글라스처럼 생긴 안경을 주었다.
 그걸 써야 프로그램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와이드비전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 없이 받아들고 썼다.
 
 대단하다.
 안경 하나 썼다고 주위가 온통 밀림으로 바뀐다니 정말 대단한 기술력이다.
 밖에서 본 것과 달리 캡슐의 규모는 엄청 컸다.
 10명의 응시자는 5m 간격으로 배치된 타원형 홀로그램 안으로 배정되었는데,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귀를 통해 진행자의 음성이 들려온 것은 밀림 저쪽에서 괴물들의 숨소리가 감지되었을 때였다.
 
 “이번이 마지막 조군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위험해도 지급된 안경을 벗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홀로그램을 절대 벗어나지 마십시오. 안경을 벗거나 홀로그램을 벗어나는 순간 자동탈락이 된다는 걸 명심해 주세요. 대신 중간에서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조용하게 안경을 벗고 손을 들면 됩니다. 자, 그럼 전장으로 투입을 시작합니다. 건투하시길.”
 
 “이제 진짜네.”
 “그렇지. 진짜들은 여기에 다 모여 있으니 재밌을 거예요.”
 “마지막 5단계까지 가는 애들이 있을까?”
 “마종현이나 이태천, 윤정혜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걔들이 스켈레톤을 뚫을 수 있느냐는 거죠.”
 “작년 최고 점수로 입사한 이병웅도 스켈레톤에 갇혀서 버티다가 결국은 죽임을 당했지. 그래도 대단했잖아. 무려 45분을 버텼으니.”
 “정말 흥미로워요. 마종현도 이병웅 못지않다고 하던데, 나머지 애들도 만만치 않고. 혹시 다른 특이한 친구들은 없나요?”
 “모르지, 이번 조에 강한 놈들이 다 몰려 있으니까 툭 튀어나오는 놈들도 있지 않겠어?”
 “하여간, 그 말투 언제 바꿀래요. 남자가 항상 그런 식이야.”
 “신중한 거라고 좋게 봐줘.”
 
 김두성이 빙그레 웃으며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지막 조 100명이 긴장된 모습으로 출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시선이 묘하게 빛난 건 한정유를 확인한 후였다.
 
 “저놈은 뭐야. 왜 무기가 없어?”
 “무기가 없어요?”
 “쟤 봐. 빈손이잖아. 저 자식 뭐지?”
 “웃기네. 시험 보러 오면서 무기도 안 가져오는 게 어딨어. 이름이··· 아, 한정유네.”
 “얘가 한정유야? 필기시험 꼴찌한 놈?”
 “공동 꼴찌죠. 필기시험을 25점 받았네요. 얘들 뭐죠. 그냥 찍어도 그 점수는 받겠다. 이거 역대 최저점 아니에요?”
 “이것들 서로 보고 썼나?”
 “화면 띄워 봐요.”
 
 김가은이 흥미가 잔뜩 돋은 얼굴로 재촉했다.
 그야말로 필기시험은 그저 통과의례로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묻는 수준이었다.
 어차피 실기에서 합격자가 결정되기 때문에 기본 소양을 물어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김두성이 그녀의 재촉에 화면을 바꾸어 필기시험 보는 동영상을 스크린에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가은이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한정유가 사각에 위치한 놈의 답안지를 보고 있는 게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쯧쯧······. 하필 베껴도 저런 놈 걸 봤어. 저놈 참 재수도 없다. 안 그래?”
 “호호호······. 크큭. 아이고, 배 아파.”
 “그만해, 요원들 보잖아. 우리 모습도 찍힌다고.”
 “알았어요. 크크큭.”
 “쟨 아무래도 그냥 놀러온 건가 봐. 아니면 미친놈이든가.”
 
 ***
 
 한정유는 밀림에 들어서는 순간 정신없이 뛰어나가는 응시자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밖에서 본 결과,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이 시험은 마지막까지 생존해서 얼마나 멀기 가느냐가 가장 커다란 점수를 받는다.
 그럼에도 응시자들이 서두르는 것은 남들보다 먼저 가야 된다는 강박감과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타난 구홀은 1m 정도 크기에 불과했으나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달린 놈이었다.
 놈은 그 가시로 충분히 사람들을 위협할 만했다.
 가볍게 통과했다.
 다가온 구홀의 약점은 안면.
 구태여 전신에 달린 가시를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응시자들이 악을 쓰며 무기를 휘둘러 가시로 덮인 가죽을 찢어대는 건 주먹만 한 얼굴을 공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구홀은 한정유가 펼친 단천열화권에 피곤죽이 되어 날아갔다.
 닥치는 대로 때려잡고 앞으로 전진했다.
 
 대부분의 응시자들은 이미 구홀의 숲을 통과해서 키메라가 포진한 2단계 밀림까지 전진한 상태였다.
 자신의 구역으로 향했다.
 푸른 선.
 프로그램은 자신이 움직여야 하는 방향을 푸른 화살로 가리키고 있었기에 한정유는 빠른 걸음으로 키메라를 향해 다가갔다.
 
 자신의 구역을 가로막고 있는 키메라의 숫자는 일곱.
 왜 대부분의 응시자들이 여기서 탈락했는지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이빨과 발톱 공격은 스크린에서 보는 것과 달리 훨씬 빠르고 강력했다.
 더불어 지능이 있는 것처럼 포위 공격을 했는데 사방에서 협공을 가해오는 건 기본이었다.
 근접 박투에 가장 위력적인 현천보를 펼쳐 놈들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단천열화권으로 놈들의 목을 집중 공격했다.
 고수는 본능적으로 적의 약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더불어 바깥에서 줄곧 지켜봤기 때문에 키메라의 약점이 목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꽤액······. 꽥··· 꽥.
 
 순식간에 키메라의 협공을 피해 권과 슬격을 터트리자 돼지 멱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공격을 받은 키메라는 비틀거리며 전권에서 벗어났는데, 치명적인 충격을 받았는지 더 이상 덤벼오지 못했다.
 남은 키메라의 숫자는 넷.
 한정유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자 더욱 광포하게 덤벼오는 키메라였다.
 
 “역시 괴물이군. 대충 상대가 안 되는 걸 알면 도망가야지!”
 
 한정유가 웃었다.
 그런 후 오른쪽에서 덤벼온 놈부터 차례대로 주먹을 먹여주었다.
 
 제1초 격(擊).
 움직임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허공을 점하며 타격하는 수법.
 
 내공을 극으로 담아 시전하면 그 살상범위가 최소 일 장까지 확대된다.
 내공을 담지 않았음에도 단천열화권에 당한 키메라는 이전에 당한 놈들과 달리 아예 바닥에 쭉 뻗어버렸다.
 쓰러진 키메라들을 힐긋 바라본 한정유가 발걸음을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3마리의 파이톤이 자신을 노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
 
 “어머, 어머. 얘들 대단하네. 키메라까지 뚫는 데 불과 7분, 파이톤을 뚫는 데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나온 애들 중에 가장 빨라요. 작년에 이병웅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요.”
 “진정해. 진짜는 살라멘더부터니까.”
 “그래도 속도가 장난 아니잖아요. 다른 애들은 아직도 키메라에서 헤매는데 벌써 파이톤을 통과했어요.”
 “이거 정말 흥미진진해지는 걸. 어디보자 살라멘더를 어떻게 요리하는지 볼까?”
 
 김두성의 눈이 화면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마종현과 이태천, 윤정혜의 앞으로 각각 2마리의 살라멘더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중한 체구로 인해 움직임이 둔하다.
 하지만 한번 탄력을 받으면 그 속도가 어떤 괴물보다 빠른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놈의 몸에 나 있는 뿔들이 비수처럼 날아서 적을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갑주에 달린 삼각뿔들은 셀 수 없이 많았는데 한꺼번에 최대 20개씩 공격이 가능했다.
 더불어 쉽사리 깨지지 않는 가죽.
 놈들의 가죽은 웬만한 무기 가지고는 상처조차 내지 못할 만큼 대단한 방어력을 지녔다.
 
 김두성과 김가은이 꿀꺽 침을 삼켰다.
 자신들의 능력으로 살라멘더를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으나 막상 응시자들이 그 앞에 서자 긴장감이 스물거리며 올라왔다.
 약자들이 강한 괴물과 싸우는 걸 지켜보는 건 자신들이 싸우는 것과 전혀 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점점 그들의 눈이 커졌다.
 좋은 실력을 가졌다고 이미 알고 있지만 마종현과 이태천, 윤정혜의 실력은 자신들의 추측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워낙 흉포했기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세 사람은 살라멘더를 상대로 대등한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각각의 병기가 다르고 비기가 달랐으나 공통점은 하나.
 그들은 모두 이미 노출되어 있는 살라멘더의 배를 집중 공략하고 있었는데 그 위력에 괴물들이 수시로 공격을 멈춘 채 비틀거렸다.
 
 “우와, 대박. 얘들 진짜네. 이번 피닉스길드가 좋은 인재들을 얻겠는데요.”
 “우리도 보너스 좀 받겠다. 저런 좋은 인재들이 들어왔으니 회장님이 좋아하겠어.”
 “우겨야죠. 달라고. 우리가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가은 씨, 좀 뻔뻔하잖아. 내가 다 얼굴이 붉어지네.”
 “보너스를 받는데 뻔뻔한 게 대수겠어요. 보너스 받으면 차 바꿔야지. 새로 나온 차들이 예쁜 게 많다던데.”
 “휴우··· 조금 더 기다려 봐. 스켈레톤이 남았어. 우린 마지막에 나올 비참한 장면을 봐야 한다고.”
 “난 안 볼 거야. 비록 화면이라도 사람이 죽는 건 정말 보기 싫어. 더군다나 쟤들은 한 식구가 될 텐데 죽는 걸 보면 마주칠 때마다 생각나잖아요!”
 
 ***
 
 한정유는 3마리의 파이튼을 박살 내고 또 앞으로 나갔다.
 이미 그와 함께 들어와 미친 듯이 앞으로 튀어나갔던 놈들은 전부 죽고 오직 그만 남은 상태였다.
 2마리의 살라멘더.
 이놈들은 처음 본다.
 밖에서 응시자들의 시험 과정을 계속 지켜봤지만 이곳까지 온 놈들이 없었기 때문에 살라멘더에 대한 사전지식이 아무것도 없었다.
 
 육중한 체구.
 거기에 고슴도치처럼 삐져나온 가시들.
 가시가 맞나?
 가시라기보단 뿔에 가깝다. 그만큼 굵고 컸으니까.
 자신의 주먹이 무쇠처럼 단단해도 저렇게 날카로운 뿔들을 때릴 생각을 하니 주먹한테 미안해졌다.
 그럼에도 한정유는 거침없이 살라멘더를 향해 다가갔다.
 처음에는 황소처럼 어기적거리던 놈들이 한정유가 다가서자 발동을 걸듯 뒷다리로 땅을 차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천열화권의 제2초식 혼(魂).
 적의 숨통을 끊어놓기 전, 적의 대적 의지를 박살 내는 강맹한 권격.
 순식간에 쏟아져 나와 전신을 타격하는 혼(魂)이 양쪽에서 덤비는 살라멘더의 전신을 두들겼다.
 두들긴 놈들의 몸통이 마치 강철같았다.
 더불어 뿔들이 가득 덮여 있어 오히려 주먹이 은은하게 아파왔다.
 가급적 내공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얘들이 날 열받게 만드네.
 무극진기를 돌렸다.
 그런 후 다시 전면에서 돌진해 오는 살라멘더를 향해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
 
 김가은과 김두성은 정신이 홀딱 빠진 상태에서 세 사람의 결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흥미진진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각자가 펼치는 무공과 마법의 위력이 너무나 훌륭해서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이런 애들이 사관학교에서 썩고 있었다니 정말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과 상대하고 있는 살라멘더들은 이미 망신창이가 되어 연신 비틀거리고 있었는데 금방 쓰러질 것 같았다.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
 그러면 세 사람은 피닉스길드에서 준비한 마지막 관문, 스켈레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침을 꿀꺽 삼키며 그 장면을 기다렸다.
 입사시험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건 커다란 행운이었으니 한동안 동료들에게 자랑할 일이었다.
 
 그때 모니터를 보면서 시험을 진행하던 요원이 벌떡 일어나면서 급한 걸음으로 두 사람을 향해 뛰어왔다.
 그는 무척 놀란 눈을 하고 있었는데 목소리가 덜덜 떨려나오고 있었다.
 
 “팀장님, 아무래도 이쪽을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요원의 음성을 들은 김두성이 얼굴을 찡그렸다.
 신성한 관제실에서 소리를 지르는 건 결코 용납될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김두성은 굳어진 얼굴로 요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노기에 찬 음성을 흘려냈다.
 
 “뭐야. 왜 소란을 피워!”
 “팀장님, 일반응시자 쪽에서 살라멘더를 격파한 자가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요원의 말에 김가은과 김두성이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후 믿기지 않은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어디야?”
 “5번 캡슐입니다.”
 
 급히 채널을 돌렸다.
 물론 전체를 모니터할 수 있도록 작은 화면들이 있었지만 김두성이 5번이란 단추를 누르자 벽에 걸려 있던 대형화면이 바뀌며 새로운 스크린이 나타났다.
 거기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피떡으로 변한 살라멘더.
 그리고 당당하게 서 있는 인물. 바로 컨닝을 해서 필기 최저점수를 받은 한정유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화면을 돌려 보십시오. 저 사람은 두 주먹으로 살라멘더를 때려잡았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얼굴.
 세상에 어떤 놈이 살라멘더를 주먹만으로 때려잡아!
 그런 얼굴이다.
 
 물론 골든헌터 중에 권을 쓰는 자들은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놈들은 이제 막 입사하려는 신출내기들이잖은가.
 요원의 말에 김두성이 녹화된 화면을 뒤쪽으로 돌렸다.
 그런 후 한정유의 싸움을 바라보며 점점 입을 벌렸다.
 그건 김가은도 마찬가지였다.
 
 “권에 내공이 담겼어. 마지막 이거 보여?”
 “봤어요. 무려 10cm나 간격이 있네요. 대단한 내공이에요!”
 “어쩐지 무기 없이 왔더라. 저런 실력이 있으니까 그랬던 거구나.”
 “저 권법은 뭘까요? 눈에 보이지도 않잖아요.”
 
 연속되는 감탄.
 두 사람의 입에서는 한정유가 보여준 권의 흐름을 따라다니며 연신 감탄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죽하면 살라멘더에 작렬하는 타격을 다시 확인하느라 리와인드 버튼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오빠, 이젠 그만해요. 저 사람 스켈레톤한테 갔어요. 그걸··· 그걸 봐야 해요.”
 “아 참, 그렇지.”
 
 김가은의 외침에 김두성이 그때서야 충격에서 벗어났는지 급히 버튼을 조작해서 화면을 바꿨다.
 마침 한정유가 마지막 관문인 5마리의 스켈레톤이 버티고 있는 광야에 들어서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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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ㅇ
2019.11.01 18:26
Ginx    
개연성이 좀 부족하고 주인공이 초중딩 사고 방식임. 선발대님들 댓글 안 달아준 덕분에 낚임.
2019.11.04 04:00
서리꽂    
절대! 비추천.. 구매수 보고 왔다가.. 대여비도 아까워서 글적음... 1. 개연성 그 딴거 이소설 없음 2. 그냥 주인공 혼자 나대는 소설임 3. 이 글을 요약 하면 2군분량이면 충분 너무 질질 끌어서 가독성 1도 없음 수고.
2019.11.05 05:43
재미감별사    
내 개인적인 주의가 사채값는 이야기 나왔을때 원금을 값냐 안 값냐를 보는데 안값고 개박살 내는 장면 나오면 그냥 무조건 안봄..
2019.11.07 00:54
애니머스    
2-2까지 내가 봤는데 위에서 선발대가 말한거 외...어떻게 보면 사이다 같기도 하고 먼치킨 이기도 한데 던전이라는곳이 그 윗 단계로 넘사벽으로 나옴. 쥔공 및 주변인들을 다른 헌터물과 비교 하자면 거의 S급 이상들인데 던전 몹하나를 잡지를 못하는 헌터아닌 헌터로 나옴 얼마나 어마무시한 먼치킨을 만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듬. 마지막으로 대화를 보면 중간에 응? 누가이야기 하는거지? 이런게 많음. 서로 주고 받으면서 대화를 진행하려면 한줄씩 내리잖아 그런데 한놈이 두번씩 말하는지 무슨소리를 하는거지? 라며 흐름이 딱 끊어지는게 많음. 아무튼 결론은 무료까지만 읽으세요. 환생자위주로 컨셉 많이 부족합니다.
2019.11.27 06:08
나이트워크    
똥누다가 끊는 느낌 터무니없는 결론 없는 완결 역대급 최악 마물리 비추
2020.04.04 04:48
등골휜다    
환생은 뭐 요즘 죄다하니까...근데 헌터들 죄다 환생자래 ㅋㅋㅋㅋ
2020.04.04 16:25
너솔    
후회 개막심작
2020.04.10 03:12
ra******    
71% 시헙지 -> 시험지
2020.04.11 11:47
ra******    
선발대 글들 보니까 무료까지만 봐야할듯 망작이어도 일단 돈빨라고 사이트에 올리는건가
2020.04.1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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