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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망나니 1권 (1)

2019.11.04 조회 3,337 추천 12


 # 망나니 속으로
 
 
 “네, 다음은 특별 공로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삼성동에 위치한 카엑스 스폐셜 홀.
 드라마와 영화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는 남자 배우가 손에 든 큐시트를 흘끔 내려다본다.
 “백진 예술대상 특별상, 이진우!”
 빠바바밤.
 짝짝짝.
 축하 음악과 박수 소리 사이로,
 한 남자가 시상대 위로 덤덤하게 걸어 올라간다.
 중년과 노년의 그 어딘가 즈음.
 세월의 흐름이 얼굴 곳곳 잔주름으로 남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훤칠하고 잘생긴 모습이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탄탄한 몸매.
 군살 하나 없는 그의 슈트 핏을 보면 한평생 자기 관리 하나는 철저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진우? 이진우가 누구야.”
 “나도 몰라. 공로상이 그렇지 뭐. 나이든 퇴물한테 한 번씩 던져 주는 떡 같은 거.”
 좋아하는 가수들이 수상할 때마다 환호와 비명이 가득했던 객석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수군거리는 목소리뿐이었다.
 이진우의 귀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똑똑히 들렸다.
 그러나 이런 무관심은 이진우에게는 한평생 익숙한 일이었다.
 이진우가 시상대로 나가는 동안,
 사회자가 그의 이력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진우 선생님은 TMI 엔터테인먼트의 작사, 작곡가이자 보컬 트레이너로 수많은 가수를 육성시킨 한국 가요계의 거장입니다. 올해로 은퇴를 맞이한 이진우 선생님의 발자취를 기리는 의미로, 감사패와 함께 공로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거장?
 이진우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언뜻 보면 슬쩍 지은 웃음 같지만,
 그의 입술은 희미하게 뒤틀려 있었다.
 평생 이렇다 할 히트곡도 없었고,
 자랑스럽게 내놓을 만한 앨범도 없었다.
 그저 수십 년간 가요계를 주변인처럼 맴돌았을 뿐.
 그가 가진 유일한 장점은 하나.
 집념이었다.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을 비롯해 이진우가 못하는 작업은 없었다.
 하다못해 앨범 표지를 만드는 일러스트 작업조차 업무 스킬에 포함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무서운 집념만큼이나 상반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음악적 재능’이었다.
 이진우는 선천적으로 음악에 대한 소질이 없었다.
 제아무리 좋은 도구를 가졌다 한들,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 백치라면 소용이 없을 터.
 그의 음악적 영감은 대중의 기류를 타지 못했다.
 환갑이 넘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렇게 가요계에서 철저히 주변인으로 남았던 이진우가,
 마이크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가 첫 말을 뗀 순간,
 객석에서는 찡그린 표정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윽······. 목소리가 왜 저래.”
 “목이 쉬어도 저렇게 쉬었냐. 몸이 아프면 그냥 쉬지.”
 “생긴 건 멋있게 생겼는데 목소리가 영 꽝이네.”
 눈만 감으면 비호감,
 아니 비호감을 넘어 혐오스러운 목소리였다.
 눈부신 조명 때문에 객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진우는 주변 공기를 통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제게 이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한국 대중음악을 많이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진우는 소감을 짧게 끝냈다.
 남들 앞에서 말을 하는 건 이진우의 취향이 아니었다.
 내성적인 성격이나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감기에 걸렸거나 목이 쉰 게 아니라,
 지금 목소리가 이진우의 원래 목소리였다.
 이진우의 평생 트라우마이자,
 저주이기도 한 그의 목소리.
 그의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거부감이 느껴질 만큼 고약했다.
 이진우의 어릴 적 꿈은 가수였다.
 그러나 남들의 수십 배를 연습해도 이진우의 노래 실력은 단 1%도 나아지지 않았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이진우라는 서당 개는 십 년이 넘어도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발성이나 호흡, 스킬 같은 노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발전과 담을 쌓았고,
 가장 발목을 잡았던 것은 역시나 그의 목소리였다.
 단순한 대화에서도 혐오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데,
 누가 그의 노래를 들으려 하겠는가.
 수상 소감을 덤덤히 말하는 동안,
 이진우는 그간 피를 토하며 연습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작곡과 프로듀싱에 쏟았던 정성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노래 연습에 비하면 차라리 만만한 일이었다.
 이론이나 기계를 다루는 건 하면 할수록 조금이라도 늘었으니까.
 그러나 이진우의 성대는 태생적으로 결함이 있었고,
 그것은 그의 평생의 발목을 잡는 장애나 마찬가지였다.
 이진우는 꾸벅 고개를 숙여 시상대를 내려갔다.
 짝짝짝.
 그리고 수상을 발표했을 때보다,
 한참은 작은 박수 소리가 들렸다.
 말끔한 외모와는 다른 불협화음 같은 목소리.
 사람들은 그 소리에 기가 질렸던 것이다.
 “으,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야.”
 “야, 바로 앞에 있는데 들리겠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덤덤히 받아들이며,
 이진우는 시상식 종료 때까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 * *
 
 [헬퍼님, 부탁드립니다. 싸비 부근에서 자꾸 음정이 불안정한데 이유가 무엇일까요?]
 ‘음. 오늘은 이 녀석으로 할까.’
 회원 수 오십만 명.
 보컬 트레이닝과 관련한 온라인 카페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인원을 보유한 ‘헬퍼의 음치 탈출’
 이곳은 나의 공개되지 않은 무대다.
 ‘헬퍼의 음치 탈출’ 은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장수 카페였고,
 나는 그 세월 동안 줄곧 운영자로 활동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노래 영상이 올라오는 ‘헬퍼의 음치 탈출’
 어지간한 회원 레벨이 아니면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내가,
 신과 같은 존재였다.
 운영자 명 ‘헬퍼’가 댓글로 달아 주는 원 포인트 레슨.
 질문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핵심을 관통하는 나의 레슨에,
 수많은 음치가 구원을 받고 있었다.
 음치의 마음은 음치가 잘 안다고 했던가.
 타고난 이상 성대로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었던 나였다.
 열악한 조건에서 노래를 위해 발버둥 치는 방법은,
 국내가 아닌 전 세계를 통틀어 내가 탑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선생님, 말씀해 주신대로 한번 고쳐서 불러 보겠습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구~데~]
 보라.
 한 달 전만 해도 노래인지 타령인지 웅변인지 알 수 없었던 저 녀석도 이제는 제법 사람처럼 부르지 않는가.
 음치들에게 두성이니 흉성이니 하는 발성법은 걷기도 전에 날아다니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둔재에게는 둔재의 방법이 따로 있는 법.
 그들의 타고난 결함을 최대한 메꾸는 데 주력하다 보니,
 나는 온라인상에서 독보적인 음치 탈출 ‘헬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돼지 멱따는 소리를 사람의 목소리로 바꿔 준 데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지.”
 아 깜짝이야.
 목소리 진짜 끔찍하네.
 환갑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내 목소리에 내가 놀랄 때가 있다.
 음치 말기 환자에 새 생명을 구원해 준 ‘헬퍼’.
 그로 인해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단 한 번도 정체를 드러낸 적은 없었다.
 현업에 종사한다는 부담감?
 공인으로서의 피곤함?
 당연히 개풀 뜯어먹는 소리다.
 ‘헬퍼’의 정체가 실은,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들키는 게 싫었을 뿐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헬퍼’의 목소리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회원 수는 떡락하고 말걸?
 [하이라이트 부근에 숨소리를 들어 보면 평상시보다 호흡이 불규칙합니다. 긴장하셔서 평소보다 더 많은 숨을······.]
 몇 개의 답글을 달아 준 뒤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날렸다.
 풀썩.
 시상식을 다녀와서 그런지 몹시 피곤하다.
 내 목소리를 가지고 수군대던 녀석들이 떠올랐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데 도가 터서 그렇지만,
 사실은 나이를 먹어서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나쁜 놈들.
 사람을 겉 목소리만 보고 판단하지 말란 말이다.
 “아, 아아.”
 한편으로는 그들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사실 한평생 내가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온라인 게임의 언데드가 낼 법한 소리가 나오고 있으니까.
 사람들의 선입견이 바뀌는 걸 기대하는 것보다,
 다시 태어나는 쪽이 확률이 더 높았을 테지.
 피식.
 눈을 감고 잠들기 전 상상을 해 본다.
 만에 하나라도 멋진,
 아니 하다못해 일반적인 성대를 타고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정도만으로도 가요계를 주름잡는 가수가 되었을 거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노래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법만큼은 나를 따라올 자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아이돌 그룹과 솔로 가수들이 기획사를 막론하고 내게 자문을 부탁해 왔다.
 다른 건 몰라도,
 보컬 트레이닝 만큼은 업계에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상도덕 때문에 대부분 고사했지만,
 몇 번의 지도만으로 실력이 일취월장해 대박을 터트린 경우도 더러 있었다.
 아마 오늘 공로상의 이유 중 가장 큰 지분도 그것일 테지.
 ‘그럴 때마다 우리 소속사 대표의 눈치를 봐야 했지만.’
 입가에 띤 웃음이 점점 짙어진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매력적인 보이스를 내 볼 수만 있다면.
 그래서 내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발휘할 수만 있다면.
 이미 은퇴를 선언한 환갑의 나이.
 나는 신기루와도 같은,
 부질없는 상상을 하며 나는 잠이 들었다.
 
 * * *
 
 쿵쿵쿵쿵.
 세이에블바리!!
 호우!!
 쿵쿵쿵쿵.
 “으······.”
 전신을 구타당하는 느낌이다.
 망치로 머리를 때린 듯 골이 뽀개질 것처럼 욱신거리고,
 우퍼의 진동이 가슴을 울리다 못해 때리고 있었다.
 정신은 왜 이렇게 해롱거리는 거야.
 일단 일어나서 위층에 올라가야겠다.
 층간 소음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클럽 한복판에 있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쿵쿵쿵쿵.
 너무 시달려서 그런지 머리가 깨지도록 아프다.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본때를 보여 줘야겠어.
 층간 소음은 애들 장난처럼 느껴지는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말 테다!
 “으······!”
 그런데,
 신음이 좀 이상하다.
 ······ 야동 소리라는 게 아니다.
 글자 그대로,
 평소의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
 감았던 눈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는 놀라 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분명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는데,
 이곳은 정말로 ‘클럽’이었다.
 자고 있던 나를 누가 여기로 옮겼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잠귀가 밝은 편이었다.
 누가 현관문만 열어도 잠에서 깼을 터.
 대관절 누가 나를 이쪽으로 옮겨 놨단 말이야??
 “아 세이 호! 유 세이 후!”
 “호! 우! 호! 우!”
 룸 바깥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흥분된 목소리.
 고급스러운 룸 인테리어와 질펀하게 깔려 있는 술병들.
 확실히 이곳은 잘나가는 클럽 중 하나로 보였다.
 가끔 나를 ‘은사님’이라 칭하며 살뜰히 챙기던 남자 아이돌이 데리고 온 곳과 비슷했으니까.
 머리가 아프더니 이번에는 타는듯한 갈증이 몰려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물병을 향해 손을 내밀다,
 기절할 듯이 놀라고 말았다.
 이 퉁퉁이 저리 가라 할 비계 가득한 손은 뭐야.
 팔이 살찌다 못해 손톱까지 찐 것 같다.
 환갑을 넘어서까지 식스팩을 유지하고 있는 나였다.
 자기 관리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인 내 몸이,
 한순간에 이렇게 불었다고??
 이건 정말 꿈인 것 같다.
 나는 내 볼을 꼬집어 당겼고,
 고통과 함께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꿈이 아니라는 것과,
 볼의 탄력 또한 예전의 내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잔주름이 가득하던 푸석한 얼굴 가죽이,
 찰지고 야무진 피부로 바뀌어 있었다.
 이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 *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터라,
 이제는 어지간한 일에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은 그야말로 놀랠 노자였다.
 정황으로 보건대,
 분명히 이건 다른 사람의 몸이다.
 무엇보다,
 내 팔과 다리는 이렇게 뚱뚱하지 않다고!
 게다가 이 흘러내릴 듯 넘실거리는 뱃살은 또 뭐냐.
 “윽······!”
 그리고 나는 어딘가에서 나오는 악취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뭐야 대체 이 냄새는.
 이런 클럽 룸에서 날법한 냄새가 아닌데.
 잠깐 킁킁거리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냄새의 근원지는 바로 이 자식,
 이놈의 몸에서 나오는 체취였던 것이다.
 “아오! 이 새끼는 씻지도 않나!!”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몸이었다.
 신이시여,
 하필 골라도 이런 몸을 골라 주셨나이까.
 코를 막고 얼굴을 구기기도 잠시,
 벽에 달린 화려한 거울이 눈에 보였다.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오, 지쟈스······.”
 차라리 보지 말 걸 그랬나.
 눈앞의 살이 뒤룩뒤룩 찐 뚱보가 나라니.
 차라리 도로 수십 년을 늙더라도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중도 모자라 삼중으로 덥힌 턱.
 살에 파묻혀 주저앉아 버린 눈매.
 뭉툭한 코와 입술.
 거울 속의 슈퍼 뚱땡이는 그렇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서 있었다.
 “미치고 팔짝 뛰겠군.”
 고개를 가로젓기도 잠시,
 일단 사태 파악이 먼저였다.
 이 냄새나는 몸뚱이의 프로필을 확인해야,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을 테니.
 나는 품 안의 주머니를 뒤적거려 지갑을 찾아 펼쳤다.
 이름은 신지후.
 나이는 스물다섯.
 사는 곳은 대치동 토이팰리스.
 좀 사는 집 자식인가 보군.
 하긴 그렇지 않으면 딱 봐도 사치가 가득한 이런 곳을 올 수 없었을 테지.
 그리고 안쪽 깊숙한 곳에 명함도 하나 찾아내었다.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
 꿀이 발라진 황금색 별 문양 그림이 보였다.
 이건 낯이 익은 로고인데.
 오른쪽 하단에 글자를 확인해 보려는 순간,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넘어졌다.
 “으악!”
 “크으······!!”
 “와하하하!!”
 뭐가 그리 좋은지 넘어지고 나서도 그들은 한데 뒤엉켜 웃고 있었다.
 이 자식들은 누구지.
 쓰러진 한 명이 일어나 나를 확인하더니,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다.
 깡마른 말라깽이의 체형이었는데,
 광대가 심하게 튀어나와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저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라니.
 “오!! 우리 지후 행님!! 일어나셨슴까!! 항상 이때쯤 주무시면 못 일어나셔서 우리끼리 다녀왔슴다!!”
 내 이름을 아는 걸 보니 지인인 모양이군.
 그런데 이 새끼.
 확실히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단순히 술에 취해서라고는 볼 수 없는,
 위험한 눈빛.
 나는 예전에 이런 눈빛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담배 말고 다른 걸 하고 온 모양이군.”
 “예?? 하하하. 뭐 그런 걸 새삼스럽게. 그런데 지후 행님!! 말투가 왜 그리 무거워졌습니까!! 이거 동생들이 너무 무섭슴돠!”
 무섭다는 말이 무색하다.
 눈앞에 남자는 은근슬쩍,
 아니 대놓고 나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가식적인 표정 뒤에 보이는 비웃음 가득한 시선.
 원래의 어린 신지후라면 간파하기 힘든 속내를 담고 있었다.
 “야 인마!! 네가 똑바로 못 모시니까 지후 행님이 이래 심각하신 거 아냐!!”
 말라깽이 남자가 뒤늦게 일어난 안경잡이 사내의 뺨을 장난스레 때렸다.
 딱 봐도 안경잡이가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데······?
 그런데 뺨을 때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었다.
 찰싹 찰싹.
 이 새끼가 미쳤나?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손을 잡았다.
 “그만해라.”
 “예??”
 “그만하라고.”
 말라깽이 남자의 표정이 이상해지더니,
 갑자기 “아!” 하며 밝아졌다.
 “직접 손볼 생각이십니까 행님. 하긴 반석이 찰지게 때리는 건 행님 만하신 분이 없지요.”
 나도 수시로 때렸다 이건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됐고, 다 꺼져.”
 “······ 예?”
 “네 말대로 기분 잡쳤으니까 꺼지라고. 죽여 버리기 전에.”
 몸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내가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눈앞에 놈들은 모두 핏덩이에 불과했다.
 눈앞에서 낄낄거리며 폭력을 행사하는 놈들을 보자니 구역질이 났다.
 말의 내용 때문일까, 분위기 때문일까.
 눈앞에 깡마른 사내를 포함해 다른 녀석들 모두 당혹스러운 빛이 가득하다.
 그들은 ‘잘 놀다 말고 이 사람이 왜 이래?’ 하겠지만,
 나는 지금 꽤 불쾌한 상황이었다.
 지금 이곳.
 폭력을 낄낄대며 행사하는 그들.
 맞기만 하는 저 남자.
 그리고 내 몸뚱어리까지.
 뭐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뺨을 맞고 안경을 추스르는 반석이라는 사내가 제일 놀라워하고 있었다.
 “행님. 지금 실수하시는 겁니다. 저희가 행님 아니면 물주가 없을 줄 아십니까?!”
 말라깽이 사내는 빈정이 상한 듯 거친 동작으로 옷가지를 챙겨 나갔고,
 그 뒤를 따라 두 명이 함께 룸을 빠져나갔다.
 “물주라······.”
 저들의 행동과 말을 들어보니 이 몸의 주인은 같이 놀아 줄 사람도 없는 모양이다.
 저런 양아치 새끼들한테 돈을 쓰지 않고는 이런 곳도 오지 못하는 모양이지?
 어후.
 한심한 놈.
 “······.”
 그런데 저 양반은 왜 안 나가는 거야.
 뺨에 올라온 붉은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반석이라는 남자에게 물었다.
 “그쪽은 가시지 않고 뭐 하세요.”
 “그, 그쪽??”
 반석의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
 왜 뭐.
 ‘그쪽’이 그렇게 기분 나쁜 말은 아니잖아.
 “······ 집에 가는 거 아니었어?”
 “네?? 뭐······ 그렇죠. 보아하니 시간도 늦었고.”
 “그럼 같이 가야지. 우린 한동네에 살잖아. 매번 내가 데려다줬고.”
 음.
 그랬구먼.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순순히 맞춰 가는 게 순리지 싶었다.
 “아. 그랬지. 내가 술이 좀 취해서. 어서 가죠. 그럼.”
 “그래, 말투도 그렇고 확실히 취한 거 같긴 하다.”
 반석이 피식 웃으며 룸에 설치된 호출 벨을 눌렀다.
 얌전한 범생이의 모습 그 자체.
 반석이라는 남자는 표정과 외모에서 숨길 수 없는 순한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딱 봐도 형인 남자를 그렇게 때려?
 내 언젠가 단단히 혼을 내 줘야겠다.
 좀전의 양아치들을 향해 다짐할 무렵,
 매니저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여인이 들어왔다.
 “재밌게 노셨어요?? 신 사장님.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가셔? 물이 별론가?”
 매니저의 태도를 보니,
 한두 번 여기 온 게 아닌가 보다.
 반석은 말없이 카드를 꺼내 매니저에게 건네주었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나보다 형입니까?”
 “???”
 반석이란 남자의 얼굴은 순수하다.
 다시 말해,
 표정에 생각이 모두 드러난다는 거다.
 그는 지금 얼굴로 나와 대화하고 있다.
 ‘이 미친놈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라고 말이다.
 “내가 형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럼 앞으로 반석이 형이라고 부를게요.”
 반석이 형의 표정은 점점 혼란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새끼들한테 돈 내고 가라는 소리도 못 했네. 나중에 다 뜯어내야지. 근데 걔들. 나보고 물주라고 하더니, 계산은 왜 형이 하는 거요?”
 반석이 형이 아주 명료하게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방금 그거. 네 카드야.”
 “네?”
 “네가 술 먹으면 자주 잃어버려서 내가 가지고 있었잖아.”
 “아.”
 정말이지 정떨어지는 놈이군.
 신지후라는 놈 말이야.
 “너 그런데 정말 괜찮아? 말투며 표정이며 너무 달라서 걱정된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거 같죠?”
 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이 잠깐의 상황만으로도 신지후란 놈이 얼마나 개차반인지는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니야.
 이 몸의 주인은 내가 될 테니까.
 “지후야······.”
 반석이 형이 놀란 얼굴로 나를 부를 무렵,
 매니저가 영수증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반석이 형이 놀란 표정의 딱 백 배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미췬. 천삼백만 원?????”
 “네. 놀라셨어요?? 저번 주보다 훨씬 싸게 나왔죠??”
 영수증도 영수증이지만 매니저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식겁했다.
 이게 조금 나온 거라고??
 “도대체 우리가 먹은 양주가 뭡니까?”
 “어머? 말투가 왜 그래요? 호호홍. 오늘 만쥬르 세트 B로 시켰잖아.”
 만쥬르라니.
 세트 이름만 들어도 x라 비쌀 것 같긴 하다.
 어쨌거나 계산은 이미 치렀고,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는 없었다.
 눈앞까지 나온 직원들의 인사를 본체만체하고,
 반석이 형과 클럽을 빠져나왔다.
 반석이 형은 나를 부축하며 삐까뻔쩍한 에이다 R8 모델 앞에 섰다.
 “대리 아저씨 부르는 동안 잠깐 쉬고 있어.”
 쉬고 있으라니.
 어디서.
 나는 혹시나 해 주머니를 다시 뒤졌고,
 스마트 키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에이다 거네.
 혹시 그럼······?
 번쩍.
 스마트 키 버튼을 누르자 새빨간 R8 머신 헤드라이트에서 용맹스러운 불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우야.
 그럼 이 차가 내 거야?
 일단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보았다.
 운전석 세팅이 잘 맞는 걸 보니 내 것이 맞긴 한가 보군.
 신지후, 전부 마음에 안 었들지만 요건 좀 맘에 든다.
 “휴우-.”
 술기운인지 신의 장난 때문인지 아직도 정신이 해롱거린다.
 심호흡이라도 해서 술기운을 몰아내야지.
 나는 예전 몸에서 하던 것처럼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내뿜었다.
 “후우우.”
 어?
 그런데 이 녀석.
 폐활량이 꽤 좋다.
 예전 몸에선 수영을 배우고 나서도 불가능했던 호흡이 술술 나온다.
 “······ 켁켁.”
 아 근데 이 새끼 담배도 폈나 보네.
 호흡이 딸리자 절로 기침이 따라 나온다.
 내친김에 성량 한번 파악해 볼까?
 “아~~~~.”
 시끄러운 클럽을 벗어나 차 안에 있으니 목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내가 왜 이 몸에 들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의 목소리는,
 글자 그대로 압도적인,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폐활량, 성대 등,
 소위 ‘타고났다’ 싶은 재능이 이 몸 안 곳곳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럴 수가······.”
 더 이상 쇳소리 가득한 듣기 싫은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담배를 피워서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신지후라는 남자의 목소리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두근두근.
 갑자기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그릇’이라면 그동안 수없이 좌절했던 것들이 모두 해결될지도 모른다.
 이상 성대를 타고나 어쩔 수 없이 못했던 것들.
 그러나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게도 머얼리~.”
 차 안에서 조심스럽게 노래를 시작해 본다.
 확실히 예전 몸과 구도가 달라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포텐셜만 가득한 미완의 대기.
 그것이 지금 신지후의 상태였다.
 좋아, 집념 빼면 시체인 이 몸이 네 목을 혹독하게 단련시켜 주겠다.
 이전 생에서는 못했던 최고의 가수.
 그것에 도전해 보자고!!
 덜컹.
 “떠나갑!!!!!”
 갑자기 열린 문에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두 개의 숙취 음료를 손에 쥔 반석이 형이 조수석에 탔다.
 “뭐 하고 있었어? 갑? 은 또 뭐고.”
 “입을 급하게 닫는 중이었어요.”
 나는 숙취 음료를 받아들고 피식 웃었다.
 “대리 불렀으니까 금방 올 거야.”
 “네. 고마워요.”
 “뭐, 뭐라고??”
 왜 또.
 반석이 형의 얼굴에 또다시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매번 이런 식이면 곤란할 텐데.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왜 그래요 진짜. 지금까지 한 번도 고맙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
 반석이 형이 순수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설마 진짜냐.
 이렇게 살뜰히 챙겨 주는 형한테 고맙단 소리 한번을 안 했단 말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무렵,
 반석이 형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후야. 정말 오늘 아무 일도 없었어? 아까 방에 혼자 있을 때 이후로 정말 이상해. 꼭 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아.”
 아, 이거 참 둘러대기 어렵네.
 “그건······.”
 잠깐.
 나는 무어라 대답하려다 말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차라리 지금 상황을 이용하는 게 낫겠는데?
 “사실 조금 정신이 없어요. 아까 그 새끼들이 술에다 이상한 걸 탄 건지 어쩐 건지······.”
 “지, 진짜?”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으니 큰 걱정 말고. 대신 정신 좀 차리게 형이 좀 도와줘요.”
 “어떻게······??”
 형 말대로,
 신지후의 혼이 빠져나가긴 했지.
 대신 이진우의 혼이 들어왔고 말이야.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속 안에 삼킨 채 반석이 형에게 물었다.
 “하나씩 차근차근 말해 줘요. 신지후라는 사람에 대해서.”
 “신지후에 대해서······?”
 “네.”
 나는 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 대해서.”
 
 
 # 생각보다 더한 놈인데
 
 
 “너에 대해서?”
 반석이 형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하긴, 소크라테스도 아니고.
 밑도 끝도 없이 ‘내 자신에 대해서 알려 달라’고 하면 누구라도 이런 표정을 지을 테지.
 “형이 그랬잖아요. 내가 이상하다고. 술기운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정신 좀 차리게 도와줘요.”
 ‘술기운에 그랬다’는 말은 법원에서조차 통하는 말 아니던가.
 다행히 반석이 형도 슬슬 나의 이상 행동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언제······ 부터 말이야?”
 “예?”
 “너랑 나랑은 사촌지간이잖아. 언제부터 이야기해 줄까?”
 허.
 그럼 남도 아니고 사촌 형을 손찌검했단 말이냐.
 이 신지후라는 벌레만도 못한 놈은.
 그리고 이 망나니 자식은 그렇다고 쳐.
 이 집안의 어른들은 대체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대답했다.
 “출생부터.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기억나는 대로 다요.”
 “음······.”
 반석이 형이 한 손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숙취 음료 두 개를 사 온 거로 보아 이 형도 오늘 제법 마셨나 보다.
 “일단 너와 나는 다섯 살 차이야. 내가 스물다섯이고, 너는 스무 살이지.”
 얼레?
 나는 손을 들어서 반석이 형의 다음 말을 막았다.
 “잠깐.”
 “응?”
 “내 신분증에 보니까 00년생이던데. 그럼 스물다섯이잖아요.”
 내 말에 반석이 형이 실없이 웃는다.
 “그럼 나는 서른이게. 지금이 19년도니까, 정확히 네 나이는 스무 살이 맞아.”
 “엑.”
 아니 그러니까,
 몸만 바뀐 게 아니라 5년 전 과거로 돌아온 셈이구나.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숙취 음료를 따 단숨에 들이켰다.
 꿀떡꿀떡.
 어후.
 진정은커녕 속이 다 뒤집어질 것 같네.
 “계속해 보세요.”
 “네 아버지 이름은 신우혁.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지.”
 “신우혁이 내 아버지라고??”
 나는 진정으로 놀라 소리쳤다.
 신우혁이 누구던가.
 ‘올라운더 스타’로 불리며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로 명성을 쌓은 뒤 은퇴한 불세출의 스타가 아니던가.
 나 역시 환생하기 전에 신우혁의 노래를 종종 즐겼다.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렸다 했을 때,
 더 이상 그의 신곡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었지.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내 아버지라니.
 무엇보다,
 이 녀석하고 전혀 안 닮았잖아······!!
 “어머니가 안 계신 건 알고 있을 거고······.”
 그랬었나.
 신우혁의 개인사까지 모두 기억나지는 않는다.
 “너는 지금······ 놀고 있어.”
 ‘놀고 있네’ 같은 뉘앙스는 아니었다.
 특별히 대학도 다니지 않고 백수 신분이라는 의미렷다.
 반석이 형은 그밖에도 크고 작은 이야기를 덤덤히 이야기해 주었다.
 이 형.
 딕션이 좋네.
 그가 말하는 내용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런데······.”
 “응??”
 “중요한 거 하나가 빠진 거 같은데요.”
 진지한 얼굴로 반석이 형에게 질문을 던졌다.
 “형은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주는 거예요? 아무리 사촌 동생이라도 그렇지, 뺨까지 맞아가며 보살펴 줄 이유는 없잖아요.”
 “그건······.”
 반석이 형의 얼굴이 조금 붉게 변했다.
 뺨을 맞았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어쩌면 신지후란 몸으로 들어와서 제일 설명이 안 되는 사람은,
 반석이라는 남자였다.
 우웅.
 반석이 형이 우물쭈물할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궁금한 게 한가득이었으나,
 반석이 형은 대리 기사가 왔다며 차에서 내렸다.
 내일 연락한다는 말과 함께.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인 뒤 조수석으로 갈아탔다.
 “안녕하세요! 차가 아주 좋으시네요.”
 “아. 예.”
 “예전 등록지로 신청하셨죠? 출발하겠습니다.”
 예전 등록지는 아마도 집이겠지.
 골목에서 나와 표지판을 보니 이곳이 강남역 근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우웅.
 물끄러미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우선 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신지후라는 녀석의 몸으로 환생했다.
 이 녀석은 ‘관리’라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로 자신의 몸을 방치했다.
 기본적인 운동은커녕,
 초고도 비만에 술과 담배에 찌든 나날을 보낸 듯싶었다.
 어린놈의 자식이 뭔 짓을 하고 살아온 거냐.
 휴대폰에 등록된 사람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아버지와 반석이 형(그나마도 형이 아니라 ‘반석이’였다), 그리고 몇몇 이름들.
 업계 관계자들의 이름으로 빼곡하던 이전의 나와 비교하면 심각한 ‘아싸’ 라이프였다.
 하긴 그러니,
 돈을 대 주지 않고는 같이 놀 사람도 부족했을 테지.
 ‘차라리 잘 됐어······.’
 인간관계가 복잡할수록 주변 적응이 어려워진다.
 전후 사정을 종합하면 외모도 성격도 개차반인 녀석이기 때문에.
 신이 나를 신지후의 몸으로 보낸 것은,
 한평생 꿈꿔 왔던 ‘좋은 목소리’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술과 담배에 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의 보이스는 ‘진짜배기’였다.
 과거 내가 디렉팅 했던,
 국내 발라드 5대 천왕에 빛나는 ‘나울’ 정도?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수십 년을 트레이닝하고,
 또 지도를 해 봤기에 알 수 있다.
 이 녀석은 정말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잘만 만지면,
 레전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딴 식으로 몸을 망쳐 왔단 말이지······.”
 “예?”
 “아, 아닙니다. 계속 가 주세요.”
 아무튼,
 현재로서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좋든 싫든 기적 같은 상황에 놓였으니,
 일단은 신지후의 삶에 적응하는 게 먼저다.
 그리고.
 매일 밤 꿈만 꾸던 일들을 이루어야겠다.
 최고의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말이다.
 
 * * *
 
 띠로리리.
 신지후의 기억이 무의식중에 남아 있는 걸까.
 신분증에 표시된 주소의 도어 록을,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물론 당황했지만,
 저절로 머릿속에 비밀번호가 떠올랐다.
 지금 시간은 새벽 네 시.
 한창 클럽에서 술을 마시다 왔으니 불이 켜져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은 뒤 내방처럼 보이는 곳으로 찾아가 불을 켰다.
 “음?”
 생각보다 방이 너무나 깔끔하다.
 이 녀석의 체취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심지어 잘 때 입을 잠옷이 침대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아. 집에 가사 도우미가 있나 보구만.
 딱 봐도 어마어마한 빅 사이즈의 잠옷.
 예전에 나라면 아빠 옷을 입은 어린이의 모습처럼 보였을 테지만,
 잠옷은 현재의 나에게 아주 딱 맞는 사이즈였다.
 “하. 어디서부터 어떻게 뜯어고쳐야 하냐. 이 몸뚱어리를.”
 나는 답답한 마음에 양손으로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노래고 뭐고 일단 다이어트에 돌입해야겠다.
 지금 같은 모습으로는 천상의 목소리를 낸다 한들 무의미한 일이 될 터.
 나는 샤워를 아주 꼼꼼히 한 뒤 침대에 누웠다.
 “······ 예전과 같은 건 침대에 누울 때의 편안함 뿐이네.”
 이전 생에 결혼하지 않았으니 염려되는 가족은 없었다.
 걱정되는 사람들이라면,
 ‘헬퍼의 음치 탈출’ 카페 회원들 정도?
 나는 곯아떨어지는 와중에도 피식 웃었다.
 나름대로 충실한 인생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미련이라고 해 봤자 그 정도뿐이었던 것이다.
 
 * * *
 
 부시럭.
 아침이 되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매일 아침 정시에 일어나는 습관은 신지후의 몸이 되어도 유지되는 것 같았다.
 정말 다행이야.
 생활 패턴마저 신지후에게 잠식되어 버린다면 정말 큰 일일 테니까.
 침대 옆을 보니 서랍장 위에 담배가 놓여 있었다.
 나는 일단 그것부터 집어 들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설마 신지후라는 자식,
 술과 담배 외에 다른 몹쓸 짓도 하진 않았겠지.
 덜컹.
 “와우······.”
 녀석의 옷장을 살펴보니 명품으로 도배된 빅 사이즈 옷들이 즐비하다.
 이것만 다 팔아도 수입차 한 대는 살 수 있겠는데.
 금수저로 태어나서 사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글자 그래도 살고 싶은 대로 살았던 모양이다.
 “쯧쯔······.”
 옷장을 닫으며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제아무리 명품을 걸친들 주인이 이런 녀석이라면 무가치한 일일 뿐이지.
 덜컹.
 “꺄악!”
 “억!”
 왜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공포 영화를 보는데,
 나는 놀라지 않았어도 상대방의 비명에 놀라게 되는.
 지금이 딱 그런 경우였다.
 눈앞의 아줌마,
 아니 여성은 지가 노크도 없이 들어와 놓고 기절할 듯이 놀라고 있었다.
 “도련님?!”
 “······ 도련님이고 뭐고, 노크는 기본 아닙니까.”
 자기가 문 열어 놓고 비명을 지르는 건 대체 무슨 경우야.
 그런 눈빛을 담아 쳐다보자,
 눈앞에 여성이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어머, 죄송해요. 단 한 번도 이 시간에 일어나신 적이 없어서······. 옷은 가져가야 하고······.”
 “옷이요?”
 “네. 어제 입으신 옷이······. 어라?”
 “입던 옷은 어제 세탁기 앞 바구니에다 놨는데요.”
 “그, 그럴 수가.”
 눈앞의 여성은 망치로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니, 빨래를 빨래 놓는 곳에 갖다 둔 게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냐.
 “왜요. 다른 데다가 두어야 하나요?”
 “그, 그건 아니에요. 제가 매일 챙기는 게 일이었어서······.”
 아, 신지후에게는 충격적인 일인가 보군.
 만약 원래의 이진우처럼 집에 오자마자 세탁기를 돌렸다면 어땠을까.
 아마 눈앞에 저 여성은 졸도했을지도 모른다.
 “일어나셨으니, 아침 식사를 가져올까요?”
 배가 고프긴 한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밥을 방에서 먹는다구요? 거실 식탁이 아니고?”
 “네?!”
 환장하겠네.
 뭔 말만 하면 저렇게 놀라냐.
 일상적인 행동을 할 뿐인데,
 반석이 형도 그렇고 눈앞에 여성도 그렇고,
 상식을 비상식처럼 대하니 곤란한 게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돌연,
 여성의 눈빛이 슬프게 가라앉았다.
 “하긴······ 오늘 같은 날은 도련님이라도 대표님과 함께 밥을 먹고 싶으시겠죠.”
 “오늘 같은 날이 어떤 날······.”
 그러나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에 여성이 꾸벅 인사를 한 뒤 방에서 빠져나갔다.
 뭔가 남을 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개무시를 하는 것 같은 이중적인 느낌.
 요즘 같은 시대에 도련님이라 부르는 것도 그렇고,
 확실히 평범한 성격은 아닌 것 같다.
 곧 거실에서 요리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옷을 벗어 놓다가 주머니 속의 명함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기억이 났다.
 나는 명함을 집어 들어 적힌 글자들을 확인했다.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신우혁.
 왕년의 전국구 스타이자 굵직한 엔터테인먼트의 CEO.
 반석이 형이 이야기해 준 대로,
 나의 아버지는 신우혁인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한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는 그 기억이 또렷하지 못하다.
 이쪽으로 넘어오면서 기억이 없어진 것 같지는 않고,
 실제로 그 이름을 들어 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와 신우혁은 어떤 모습이었더라?
 “도련님. 식사 준비됐습니다. 대표님께서 기다리세요.”
 이번에는 정확히 노크를 한 가사 도우미가 나를 불렀다.
 “······ 네.”
 백문이 불여일견이렷다.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이제는 내 아버지이기도 한 신우혁.
 직접 얼굴을 보면 기억이 더 또렷이 날지도 모르지.
 일단은,
 그를 만나 보러 가야겠다.
 
 
 # 망나니, 결심하다
 
 
 터벅터벅.
 신지후의 아버지라고 해 봐야,
 예전의 나에 비하면 동생뻘 나이밖에 되질 않는다.
 그러나 어디 연예계 바닥이 버텨 내기 쉬운 곳이던가.
 한 업체의 대표를 향한 경외심 비슷한 감정이 나를 조금 두근거리게 하고 있었다.
 “지후야, 어서 와라.”
 이거다.
 예전에 즐겨 듣던 노래의 그 감미로운 목소리.
 은퇴를 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어 주는 보이스는 지금도 여전해 보였다.
 사람의 마음을 투영하는 것은 관상이나 손금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가수와 지망생을 만나다 보니,
 나에게는 목소리의 생김새만으로도 그 사람의 내면을 얼추 들여다볼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신우혁 이 남자는,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다.
 “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연예인에서 사업가로 변모한 왕년의 슈퍼스타.
 전성기 시절 수려한 이미지로 사랑을 받았던 신우혁은,
 이제 제법 중후한 모습이 묻어나와 있었다.
 체격이 원래부터 큰 편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눈앞에서 보니 정말 왜소하게 느껴진다.
 하긴, TV 화면이 원래 사람을 크게 보이게 하지.
 일상에서 말라 보이는 여자 아이돌도,
 통통하게 보이는 게 방송 화면이니까.
 “그렇게 인사를 받으니 좋구나. 여기 앉아라.”
 신우혁, 아니 아버지가 감동을 받은 듯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오 신지후여.
 너는 니 애비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는 녀석이었던 거냐.
 둘밖에 없는 식탁에서,
 우리는 침묵을 유지한 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주고받는 대화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기분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혼자서 수십 년을 차려 먹다 보니,
 누군가 차려 주는 밥상을 함께 먹는 것이 꽤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신우혁의 얼굴에 그늘이 보인다.
 아들 앞에서 애써 밝은 척을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그보다 더 많이 살아 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신우혁은 지금,
 꽤 커다란 근심에 쌓여 있었다.
 “이번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아스테르 법무팀에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하더구나.”
 순간적으로 돌을 씹은 기분이다.
 이번 일은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은,
 ‘신지후’가 분명히 무슨 사고를 쳤다는 의미렷다.
 그것도 개인 변호사가 아닌,
 엔터테인먼트 회사 법무팀에서 나서야 할 정도의 사고.
 “그래도 이런 일로 모처럼 얼굴 맞대며 밥도 먹고. 나름대로 좋은 일도 있구나. 마저 먹으렴.”
 신우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염색을 한 것인지 그의 머리 색깔이 유독 새까맣게 보인다.
 왕년의 스타답게,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와 머리를 정리하는 모습이 썩 멋지다.
 나는 불쑥 고개를 내려 내 육신을 바라보았다.
 살이 뒤룩뒤룩 찐 100kg이 넘는 거구의 몸.
 어쩌면 나는 신우혁이 입양한 자식은 아닐까.
 띠리리리.
 “다녀올게.”
 인터폰이 울리자,
 잠깐 지긋이 날 바라본 신우혁이 가사 도우미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 과정이 퍽 자연스러웠다.
 ‘다녀오세요’라는 자식의 인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처럼 말이다.
 “잘 먹었어요.”
 신우혁이 나간 뒤 나도 밥숟갈을 놓았다.
 음식이 계속 당기는 걸 보니,
 신지후의 평소 식사량은 꽤 많은 것 같았다.
 하긴, 이 꼴을 유지하려면 한 공기 가지고는 부족할 테지.
 가사 도우미가 눈을 말똥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들은 게 신기한 건지,
 아니면 평소보다 훨씬 적은 식사량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담배. 식사. 나태함. 기타 등등.
 이 녀석의 몸에 남아 있는 습관이 당분간은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혹에 굴복할 정신력이었으면 환갑이 넘어서까지 탄탄한 몸매를 유지할 수 없었을 터.
 나는 담배와 양주를 비롯한 악의 근원들을 보이는 대로 치우기 시작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악의 근원들을 이제 막 치워 냈을 무렵.
 가사 도우미가 커다란 받침대를 든 채 내 방으로 들어왔다.
 “뭐예요 이게?”
 “항상 드시던 디저트인데요······.”
 “이게 다 디저트라고요? 이 양을 내가 매일 먹었다고?”
 “매일이 아니라 매 끼니······. 평소보다 밥 양이 적어서 조금 더 많이 가져오긴 했어요.”
 “허 참······.”
 가사 도우미가 들고 온 받침대 위에는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젤리 등 종류도 다양한 고칼로리 간식들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먼저 물어보고 가져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앞으로는 제가 말하기 전에, 아니다. 제가 먹고 싶으면 알아서 꺼내 먹을게요.”
 내 딴에는 배려한다고 이야기한 건데,
 가사 도우미의 표정이 좋지 않다.
 “예전에는 꼭 말해야 아느냐면서, 눈치 있게 알아서 좀 행동하라고 하셨잖아요······.”
 “이런 x같은 망할 새끼······.”
 “네??”
 “아. 저도 모르게 그만. 그쪽한테 말한 게 아니에요.”
 당연히 내가 한 욕의 대상은 신지후였다.
 가사 도우미를 지 하인 부리듯 했나 보군.
 그녀의 잔뜩 겁먹은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신지후의 개차반적 성격이 훤히 보였다.
 “이전에 어떻게 했든, 지금은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앞으로 청소, 빨래, 간식. 전부 제가 직접 해결할 테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 정말요?”
 “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이제 좀 제대로 살아 보려구요.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가사 도우미는 여전히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분명히 오늘 아침부터 내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앞으로 하나하나 증명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가사 도우미의 다음 말이,
 제법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조금만 더 일찍······ 변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네?”
 “그랬다면 오늘 대표님이 거기 가지 않으셔도 되었을 테니까요.”
 거기라니.
 신우혁, 그러니까 아버지가 어딜 갔다는 거지.
 당연히 회사로 출근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어딜 갔는데요.”
 그러자 가사 도우미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과 함께.
 “검찰청에 가셨잖아요. 참고인 조사 받는다구요. 아스테르 클럽 미성년자 출입 폭행 건으로요.”
 “미성년자 출입, 폭행이라니. 아버지가?”
 신우혁이 그런 사람이었던가?
 기가 막혀서 물었는데,
 그녀의 표정이 더 가관이었다.
 “지금 그걸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이게 다 도련님이 자초한 일이잖아요.”
 “뭐??”
 엉겁결에 반말이 튀어나왔다.
 이진우의 입장에서는 딸뻘인 나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것도 신지후,
 네놈 때문이라는 거냐.
 최대한 표정을 숨겨 보지만,
 가사 도우미는 뿔이 단단히 난 모습이었다.
 “일단······ 알겠으니까 가지고 나가 주세요.”
 나는 침대에 앉아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받쳤다.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
 분명 낯이 익은 회사다.
 잘나갈 때는 신우혁의 이름값과 더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회사였으니까.
 그러나 그 업체의 이력을 낱낱이 기억할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직접 몸담은 회사도 아니었고,
 내게 프로듀싱이나 작업을 의뢰한 적도······.
 짝!
 “있구나!!”
 나는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기억의 저편에서,
 어떤 발라드 가수의 보컬 트레이닝을 의뢰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 분명······.”
 그 당시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의 상황은 확실히 좋지 않았다.
 사실 다른 소속사에게 레슨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이 아니던가.
 그만큼 자존심을 굽혀야 하는,
 절박한 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집중력을 극도로 발휘해 내 기억 속의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한 단어를 기억해 냈다.
 “흡수 합병······!!”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는 지금으로부터 2~3년 후 흡수 합병된다.
 그리고 신우혁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진우 때의 나’는 신우혁의 최근 근황을 잊은 것이 아니라,
 근황이라고 할 만한 소식 자체를 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억이 잘 나질 않았구나······.”
 우선 신우혁의 회사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해 보인다.
 나는 책상 위의 pc를 켜고는 검색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크고 작은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신우혁의 아들’과 관련된 추문이 생각보다도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유명 아이돌의 사적인 행사 동원.
 소속 레이블의 작업장에 깽판을 친 일.
 미성년자 신분으로 클럽에서 고가의 술을 마신 일 등.
 이 모든 것이 ‘신지후’가 아니라 ‘신우혁 대표의 아들’로 기사화되었다.
 최근에 친 사고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신우혁 대표가 최대 주주로 등재된 아스테르 클럽에 미성년자가 출입, 술기운에 다른 고객에게 중상을 입히고 기물을 파손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관계자에 따르면 용의자는 신우혁 대표 아들의 지인으로 추정되며······.]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최근 카톡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이런 염병할······.”
 그리고 보름 전,
 클럽 매니저 연락처를 알려 달라는 어떤 녀석의 카톡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마 매니저에게 무어라 명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 녀석은 자기 멋대로 내 이름을 팔아 클럽에 출입했을 것이고, 사고를 친 것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모든 정황을 다 알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 걸까.
 그러나 문제는 법의 처벌 뿐만이 아니었다.
 기자들이나 경쟁사의 입장에서는 이슈화하기 더없이 좋은 호재 아니던가.
 지속적인 추문 때문인지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꾸준한 하락세를 걷고 있었다.
 자식 농사를 잘못 지어 평생 이룬 업적을 말아먹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내 기억상 신우혁도 별반 다르지 않은 미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는 곧 잡아 먹힌다.
 그리고 신우혁은 쓸쓸히 공개 석상에서 사라진다.
 그것이 신지후,
 과거의 이진우가 기억해 낸 과거였다.
 “안 되지······ 안 되고말고······.”
 과거야 어쨌건,
 이제는 내 아버지가 된 사람이다.
 수없이 사고를 친 망나니 자식에게 그보다 더 따듯한 눈빛을 보내주는 아버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
 심지어 자식 때문에 검찰청에 나서야 하는,
 오늘 같은 날에도 말이다.
 “나였으면 두들겨 패서 반 죽여 놨다······.”
 자식을 낳아 본 적은 없지만 이 정도면 원수만도 못하다.
 일단 좋든 싫든 신지후가 되었으니,
 아버지와 아버지의 회사를 말아먹는 일은 막아야 한다.
 난 우리 아버지,
 신우혁이 마음에 들었거든.
 게다가 이제 막 최고의 가수가 될 수 있는 몸을 얻었는데,
 인프라가 훌륭히 갖춰진 회사를 흡수 합병되게 두고 볼 수야 없지.
 “서둘러야겠는데······.”
 이 뚱뚱한 몸부터 천천히 바꾸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려고 했는데,
 사정이 조금 급하게 됐다.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흥할 수 있는 요소는 하나뿐.
 소속 가수가 대박을 쳐야 한다.
 그러면 쓰러져 가는 회사조차 되살릴 수 있다.
 남의 입안에 넘어가기 전에,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를 궤도에 올려놔야 한다.
 “자, 어떻게 한다······.”
 안 그래도 신우혁의 사고뭉치 아들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상,
 아스테르에서 데뷔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저 망나니가 또 이상한 짓을 시작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급격히 이슈화되고,
 편견 없이 실력을 정당하게 인정받고,
 빠르게 가수가 될 수 있는 길.
 그런 게 뭐가 있더라?
 딸칵.
 그때,
 뉴스를 새로 고침 하던 내게 익숙한 배너 화면 하나가 보였다.
 마치 신이 내게 일부러 보여 주기라도 하듯,
 운명처럼 나타난 광고였다.
 ‘우주대스타K 시즌 15!! 가수의 꿈에 도전하세요.’
 “그래······ 이거라면······.”
 오디션 프로그램.
 이거라면 가능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딜 기회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 변화의 시작
 
 
 “어디 보자······.”
 올해로 15년째를 맞는 ‘우주대스타K’.
 그동안 숱한 스타들을 배출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바이블 같은 프로그램이다.
 비록 최근에는 인위적인 편집과 과도한 설정으로 한물갔다는 평이 있었으나,
 그래도 신인의 등용문으로서 이만한 프로그램도 없었다.
 딸칵 딸칵.
 배너를 클릭해 우주대스타K의 사이트에 들어갔다.
 예나 지금이나 선정 방식은 동일했다.
 말이 오디션이지 사실상 접수 단계나 다름없는 1차 전화 오디션.
 그다음 현장에서 무반주로 진행하는 2차 오디션.
 제대로 된 스튜디오에서 오디션을 보는 건 3차 오디션 이후였다.
 1차 전화 오디션까지 남은 시간은 1주일여.
 현재의 몸뚱이에 급격한 변화를 줄 순 없겠지만,
 발성의 근간을 닦는 밑 작업 정도는 가능해 보였다.
 무엇보다 1차 테스트는 동요만 똑바로 불러도 어지간하면 다 합격이니까.
 “좋아. 스케줄부터 짜 볼까.”
 신지후가 되기 전의 일로 내가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아버지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보니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눈앞에 목표가 보이자 새삼 활력이 돋기 시작한다.
 내가 가수로 성공하는 것이 곧,
 아스테르 엔터테인먼트의 도약일 테니까.
 거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지만,
 가수로서 자질만큼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훌륭하다.
 지이이잉.
 운동과 트레이닝으로 빼곡히 짜인 스케줄표가 완성되었다.
 프린터에서 앞으로의 일과가 출력될 무렵,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반석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아무래도 저 도련님이란 말이 입에 붙었나 보군.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네, 네!”
 가사 도우미가 말을 한번 더듬는다.
 보나 마나 이런 정상적인 반응에 놀란 것이겠지.
 평범한 일거수일투족에 상대방이 놀라는 일.
 이것이 신지후로 살면서 가장 먼저 적응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지후야. 일찍 일어났네. 조금 일찍 와서 걱정했는데.”
 “해가 중천을 넘겼는데 무슨 소리예요?? 일어난 지 세 시간도 넘었어요.”
 “진짜······?!”
 아 또냐.
 하지만 익숙해져야겠지.
 “그나저나 잘됐네요. 마침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나는 손을 뻗어 반석이 형에게 의자를 양보했다.
 여전히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반석이 형.
 클럽이 아닌 밝은 대낮에 보니까 똘똘하게 잘생긴 얼굴이 무척 호감형 인상이었다.
 조금 소심해 보이는 게 탈이지만,
 절대로 남의 뒤치다꺼리나 할 외모는 아니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헬스장이 어디예요? 오늘부터 운동 시작할 건데.”
 “뭐! 우, 운동을······!!”
 “잠깐.”
 적응이고 뭐고 도저히 못 참겠다.
 “뭐 살아온 날들이 있으니 힘들겠지만. 앞으로는 나를 그냥 평. 범.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줘요. 그냥 아주 노말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무슨 말만 하면 놀라지 말고.”
 “그게······.”
 반석이 형의 또랑또랑한 눈을 흐리멍덩하게 하는 건 오히려 나였다.
 내가 이런 개념 찬 발언을 할 때마다 눈앞에 남자는 패닉에 빠지곤 한다.
 이런 방법은 영 먹히질 않나 보네.
 그렇다면······.
 “안 그러면 확······ 예전으로 돌아가 버린다?”
 할 수 있는 최대한 악독한 표정을 지으며 반석이 형을 협박하자,
 반석이 형이 그제야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노력해 볼게!”
 좋아.
 지금부터 시작해 보자고.
 “그래서, 가장 가까운 헬스장이 어디예요?”
 “딱히 찾을 필요 없어 지후야. 여기 토이팰리스 지하에 동네에서 제일 큰 헬스장이 있으니까.”
 아.
 여기 겁나 쩌는 곳이지 참.
 “여기 살지도 않는 내가 소개하니까 좀 이상하긴 한데, 헬스장뿐만 아니라 수영장, 실내 체육관 모두 이 건물 안에 있어.”
 “오오······. 전부 공짜에요??”
 또다시 반석이 형의 표정이 흐리멍덩해진다.
 하긴.
 하루에 술값으로 천만 원 이상을 쓰는 놈이 헬스장이 공짜냐고 물어보는 게 더 이상하지.
 말 나온 김에,
 당장 등록하러 가야겠다.
 “가요 형.”
 “응? 나도?”
 “그래요. 이런 몸뚱어리로 할 소리는 아니지만, 형도 운동이 좀 필요해 보이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진우였던 자의 시선으로 한 조언이었다.
 기본적으로 날렵해 보이는 이미지이기는 하나,
 호리호리한 반석이 형의 몸에 근육이 조금만 더 붙으면 나무랄 데 없는 몸매가 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맞지는 않겠지만······.”
 나는 옷장을 연 뒤 씩 웃어 보였다.
 “여기 있는 옷 중에 필요한 거 있으면 다 가져가요.”
 “뭐??”
 “에헤이. 놀라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요.”
 뭐 이런 맞지도 않는 명품이 얼마나 보상이 되겠냐만,
 그동안 개차반 같았던 신지후의 현 주인으로서 뭐 하나라도 선물을 하고 싶었다.
 “다이어트의 기본은 원래 사이즈의 옷들을 버리는 데부터 출발하죠. 아 여기 신발은 좀 맞는 게 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신발은 살이 빠져도······.”
 “그런 말 하지 말고 발 좀 들어 봐요. 어디 보자. 잘 맞네. 크크. 이거 신고 내려갑시다.”
 “지후야······.”
 반석이 형에게 선물을 하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사실 이진우의 인생은,
 꽤 고독했다.
 비록 본인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가족 없이 수십 년을 살면서,
 가족의 품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식사도,
 반석이 형과의 이런 자리도 너무나 즐거웠던 것이다.
 “저희 운동 좀 하고 올게요!”
 “히익!”
 “와하하. 놀라지 말라고!!”
 그렇게 신지후는 다시 태어날 준비를 마쳤다.
 
 * * *
 
 “망할······ 그냥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르겠어······.”
 “하하하.”
 나는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채 절망에 빠져 있었다.
 헬스장의 어마무시한 규모에 감탄하기도 잠시,
 그 이후부터는 굴욕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살을 빼겠다’며 등장한 뚱보.
 헬스 트레이너의 입장이라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우선은 처음이니 월수금만 나오시는 게 어떨까요.”
 “저기, 그러니까. 저는 진짜로 빨리 뺄 거라니까요.”
 “네 회원님. 다들 그런 각오로 시작을 하시죠. 일단 인바디부터 확인해 보실까요?”
 수십 년 동안 식스팩을 유지해 온 나다.
 내 딴에는 확신에 차서 이야기한 거지만,
 접수를 담당한 헬스 트레이너는 ‘너 같은 놈들은 한 트럭도 더 봤다’는 듯,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를 측정 기계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이 새꺄, 이게 현실이야’라는 비웃음과 함께.
 삐삐삐삐.
 인바디 기계에서 실시간으로 만신창이에 가까운 데이터들이 추출되고 있었다.
 표를 받아 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하군······.”
 이상적인 수치의 정 반대.
 그것이 현재 내 몸의 상태였다.
 이런 거구를 가지고도 기초 대사량은 평균 이하이면서,
 체지방과 BMI 등 높아선 안 되는 수치들은 압도적으로 MAX를 찍었다.
 “이 정도면 신입 회원 중에서도 상위 1%겠는데요.”
 이진우의 경우라면 좋은 쪽으로 상위 1%겠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의미겠지.
 헬스 트레이너를 살짝 노려본 후 다시 데스크로 돌아왔다.
 “회원님 같은 경우에는 전문적인 트레이너가 옆에서 관리해 주는 게 필요합니다. 입주민에게 헬스장 이용은 무료지만, PT는 유료로 진행되구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PT는 안 합니다.”
 나는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수십 년간 매일같이 헬스장을 출퇴근해 온 나다.
 어지간한 트레이너 저리 가라 할 경험이 있는데,
 굳이 비싼 돈 주고 PT를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지금 제 몸이 이런데 강도 높은 중량 운동은 안 할 테고. 유산소와 스트레칭 위주로 한 달 동안 굴릴 거 아닙니까.”
 “아 그건······.”
 트레이너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고,
 그렇게 반석이 형과 나만의 특훈이 시작되었다.
 “일단 가볍게 속도 7로 5km만 뛰어 볼까.”
 러닝머신 앞에서 데이터를 입력하자 반석이 형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후야. 5km는 너무 힘들 거 같은데.”
 “걱정하지 마요 형. 한창때는 하루에 20km씩 뛰었으니까.”
 “네가 언제······.”
 이건 사실이다.
 단지 신지후의 몸이었을 때라고는 하지 않았을 뿐.
 나는 그렇게 여유만만한 얼굴로 러닝을 시작했고,
 “푸화학!”
 2km 만에 헬스장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저질이어도 이렇게 저질이라니!!”
 나는 ‘환갑 식스팩’의 마지막 자존심을 끌어모아 1km를 더 뛰었으나,
 다시 한번 러닝머신에서 굴러떨어졌다.
 아무리 몸이 형편없어도 설렁설렁 뛰면 5km는 갈 줄 알았는데,
 이건 내 생각보다도 훨씬 꽝이었다.
 예전 같으면 휘파람을 불며 뛰었을 거리가,
 지금은 마라톤 완주를 하는 것처럼 힘겹게 다가왔다.
 “젠장. 정도가 있는 거다. 망할 신지후 놈아.”
 나는 과거의 신지후에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5km 러닝도 정말 많이 봐준 건데,
 현재 신지후의 신체는 그조차 어려워 보였다.
 “하는 수 없지. 아쉬운 놈이 우물 찾는 거니까.”
 끄응, 하고 힘겹게 몸을 일으킨 뒤 짐 볼에 가서 몸을 눕혔다.
 체형과 유연성은 생각보다 연관성이 크지 않다.
 거구의 야구 선수들도 아무렇지 않게 다리를 찢곤 하니까.
 그러나 그건 운동선수의 경우고,
 나태한 삶으로 무장한 신지후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어어어어!”
 “조심하세요!”
 자칫하면 뒤로 넘어가서 정수리가 깨질 뻔했다.
 하지만 달리 할 운동이 없는 나는 진득하게 스트레칭을 반복했다.
 ‘그지 같은 몸이지만 반대로······.’
 이 녀석의 육체는 젊다.
 환갑이 넘었던 이진우가 노력한 시간의 절반,
 아니 그 이하로도 곱절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새로운 근육이 생기는 것도,
 방전된 체력이 충전되는 것도 금방일 터.
 나는 그렇게 열흘 내내 헬스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 * *
 
 “후우-”
 단지 내에 위치한 공원 주변을 걸으며 심호흡을 반복했다.
 발성에 앞서서 갖추어야 할 것이 호흡이고,
 신지후의 폐활량은 일반인에 비해 상당히 좋은 수준이었다.
 단, 담배에 절어 살았다는 게 문제였을 뿐.
 담배를 끊고 공원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기를 열흘째.
 조금씩 상태가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
 이제는 호흡이 달려도 기침이 나온다거나,
 평상시 가래가 쌓이는 일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좋아. 이 정도면 연습할 최소한의 상태는 됐어.”
 나는 주먹 쥔 손을 반대편 손바닥에 부딪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인 노래 연습은 지금부터다.
 우우웅.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 왔네.”
 [우주대스타K 1차 전화 오디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 2차 오디션 일정을 확인해 주세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음정과 박자를 조금 틀려도 ‘노래 비슷한 소리’만 내면 합격하는 게 1차 오디션이니까.
 별다른 동요 없이 링크를 눌러 내용을 확인했다.
 “3주 후라······.”
 2차 현장 오디션은 3주 후.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다.
 언제나 그렇듯 다른 어떤 지역보다 서울의 경쟁이 치열할 터.
 이제부터는 슬슬 날을 갈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
 화면을 끄려던 손을 멈춘다.
 우주대스타K에 나오는 심사 위원들이 확정되었기 때문.
 심사 위원은 총 세 명.
 늘 그렇듯 세 명 모두 한 가닥 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나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신지후가 아니라,
 과거 이진우였을 때의 인연 말이다.
 “······ 좋은 예감이 드는데.”
 그 얼굴을 확인한 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망나니, 연습실을 구하다
 
 
 우주대스타K 시즌 15의 심사 위원.
 소울파더(soulfather).
 본명 부재영.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인 소울에,
 자신의 성인 ‘부’를 ‘아비 부’와 연관 지어 네이밍한, 평범하지 않은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와 나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 *
 
 “나를 뚸놔취마호우 베이페~ 히두바리스룹”
 “그만.”
 언뜻 들어도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애드리브.
 그리고 그를 제지하는 기괴한 목소리.
 부재영과 나, 이진우는 그렇게 같은 공간에 있었다.
 “재영 씨.”
 “으흠?”
 오랜 유학 생활 끝에 한국에 돌아온 부재영은 간단히 말해 버르장머리가 없고 제멋대로인 녀석이었다.
 트레이너가 부르면 ‘네’라는 대답 대신 ‘아하?’, ‘으흠?’ 같은 허세 가득한 소리만 내던,
 한국 정서에 녹아들지 않은 흔한 외국인 연습생이었다.
 까슬까슬한 턱수염과 까무잡잡한 피부.
 곱슬머리에 툭 튀어나온 입술.
 외국에서 와서 혼혈로 오인받는 경우가 많은,
 그런 외모를 가진 사내.
 몸담고 있던 JT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부재영의 충만한 필과 재능을 보고 연습생으로 들였으나,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창법만을 고집했다.
 수많은 연습생을 가르치던 나로서도 부재영은 정말 다루기 힘든 친구였다.
 천성이 나쁘다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지만,
 자신의 노래에 대한 프라이드가 확실했다.
 ‘연습생 주제에 프라이드는 무슨’이라고 생각할 법하지만,
 그저 선생이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따라 하는 연습생보다는 이쪽이 나은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부재영의 감성과 노래 실력은,
 충분히 데뷔를 노릴 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놈의 지나친 감정 표현이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오열할 것 같은 표정으로 온 힘을 다해 감정을 표출했고,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 곡만 들었을 뿐인데도 피로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JT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는 내게 ‘너마저 부재영을 고치지 못한다면 그냥 집에 돌려보내라’고 했다.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
 그래서 이날은 어쩌면,
 부재영의 마지막 수업일 수도 있는 날이었다.
 “돌아서는 크대눈비체에에에~ 워우 베이베.”
 “그만.”
 “???”
 “그대 눈빛에 다음에 ‘베이베’라는 가사는 없을 텐데.”
 “죄송해요 숸생님. 노래에 취하다 보니 그뫈.”
 부재영은 사실 가사의 딕션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외국물 좀 먹고 왔다’는 느낌을 받는 친구였다.
 뭐, 어떤 가수들은 그게 매력으로 다가오니 무조건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지.
 일단 나로서는 오늘 할 수 있는 모든 어드바이스를 해 주어야 했다.
 대표도 포기한 연습생이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존재이니까.
 “몇 번을 말해도 고치지 않는군. 이봐 부재영.”
 “아하?”
 나는 꽤 진지한 얼굴로,
 씹어 먹듯 이야기했다.
 “네가 아하? 같은 덜 떨어진 대답을 할 때도 문제 삼지 않았지만, 노래는 달라. 네 필이 얼마나 충만한지 대중은 관심이 없어. 알아?”
 평상시의 모습과는 다른 날 선 모습에 부재영도 조금은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지. 감정이 지나치게 과몰입된 노래는, 단순히 소음일 뿐이야. 이를테면······.”
 꿀꺽.
 부재영이 다음 말을 기다리며 침을 삼켰다.
 “‘내 목소리’ 정도로 듣기 싫다는 말이지.”
 “오우 씻!!”
 이 새끼가.
 물론 충격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격한 반응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내 목소리가 ‘씻’ 한 건 나도 인정하지만,
 막상 저런 반응을 보니 썩 기분이 좋진 않군.
 “알겠어? 지금 네 노래는 그 정도의 느낌이야. 그러니 내 말을 따르고 조절을 하던, 하루 종일 길거리에서 베이베를 부르짖던 선택을 해야 할 거야.”
 “······.”
 
 * * *
 
 그 후로 부재영은 끝내 JT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고 말았다.
 태도를 고칠 기미가 보이긴 했으나,
 넘쳐나는 연습생들을 대거 정리하기로 대표가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부재영은 ‘소울파더’라는 이름으로 다른 소속사에서 대박을 쳤고,
 성공한 뒤에도 가끔 내게 연락을 해 왔다.
 그가 주로 내게 하는 이야기는 두가지였다.
 ‘아직도 JT 대표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느냐’는 말.
 그리고,
 내가 알려 준 몇 가지 ‘힌트’가 지금까지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었다.
 ‘취향 제대로 저격할 수 있겠네.’
 심사 위원 하나를 내 편으로 만든다는 것은 오디션에 있어서 크나큰 무기가 된다.
 소울파더는 신지후를 만나게 되겠지만,
 이진우를 만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진우는 소울파더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자 그럼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5년 전으로 돌아와 신지후의 몸으로 환생했다면,
 5년 전 원래의 나.
 이진우는 어떻게 되었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신지후의 몸이 되면서 이진우의 존재는 사라져 버렸다.
 클럽에서 잠이 깬 그 날 밤.
 이진우는 같은 시간 사고로 사망했다.
 그나마도 기사 귀퉁이를 통해 간신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미미한 이슈였다.
 더는 이 세계에 이진우란 남자는 없다.
 오 년을 더 살았다면 그래도 공로상이라도 받았을 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쓰게 웃었다.
 이진우의 사망 이후에도 ‘헬퍼의 음치 탈출’은 여전히 운영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헬퍼’가 이진우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니까.
 그러나 앞으로 ‘헬퍼’의 조언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이 카페는 점점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건 좀 아쉽네······ 내 자식 같은 사이트였는데.”
 띠리리리.
 입맛을 다시고 있을 무렵,
 신우혁이 집으로 돌아왔다.
 “오셨어요.”
 “그래. 저녁 먹었니?”
 “네. 산책도 하고 왔구요.”
 “산책이라.”
 새삼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
 이제는 이런 시선도 제법 익숙하다.
 “요즘 헬스장에 매일 나간다지? 그러고 보니 얼굴이 반쪽이 된 것 같구나.”
 “반쪽이 돼서 이 정도면 원래는 호빵맨이게요. 쉬세요.”
 나는 피식 웃으며 돌아서려다,
 이내 아버지를 다시 불렀다.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오, 그래. 지후야. 말해 보렴.”
 그동안 내게 연습실은 따로 필요 없었다.
 제대로 소리를 내지를 단계도 아니었고,
 1차 오디션을 위해 특별히 연습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2차는 다르다.
 내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방음 된 공간이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노래 연습을 시작해야 하니까.
 “노래 연습을 하고 싶은데, 연습할 공간이 필요해요.”
 그러자 신우혁의 눈썹이 하늘 높은 듯 치솟았다.
 개과천선한 모습에 흐뭇해하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지금처럼 놀란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드디어 노래를 해보기로 결심한 거니??”
 ······ ‘드디어’ 라.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게 처음은 아닌가 본데?
 그러나 이전 개망나니 신지후가 아버지랑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침묵을 유지한 채 아버지가 무어라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릴 뿐.
 다행히, 친절하게도 아버지는 내게 히스토리를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그래, 지후야. 잘 생각했다. 네가 이쪽 세계를 혐오하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만, 네 재능은 정말 남달라. 이건 단순히 아버지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연예계를 혐오하고 있었어?
 왜?
 과거의 신지후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대답을 들을 수는 없다.
 그저 내가 추론할 수 있는 건,
 이 녀석의 남다른 목소리를 신우혁 또한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기야 왕년에 가수로서, 또한 연기자로서 슈퍼스타로 군림했던 신우혁 아닌가.
 자기 자식의 탁월한 재능을 눈앞에 보고도 못 알아보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노래도, 그래서 추천한 것이겠지.
 나는 천연덕스럽게 모든 정황을 알고 있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네. 아버지 말씀 듣고 한번 도전해 보려구요. 연습할 공간이 있을까요?”
 “하하. 그 질문은 조금 이상하구나. 아버지의 직장을 잊은 거니?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가 연습실 하나 못 내어 주겠어?”
 신우혁은 나의 부탁이 사뭇 즐거운 듯 얼굴에 화색이 돋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아스테르 쪽 시설은 이용하지 않으려구요.”
 “응? 어째서 말이냐?”
 “아시다시피 제가 아스테르 엔터에 끼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잖아요. 더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에게요.”
 “······.”
 “최근에도 사고를 친 마당에 버젓이 그쪽 시설을 이용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그 건물을 같이 쓰는 연습생들도 편하지 않을 거구요.”
 그들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대표 아들이 노래 연습을 하겠다고 연습장을 찾는 게 절대 반갑지 않을 터.
 내가 사유를 이야기하자 신우혁에게 감탄의 빛이 서렸다.
 “지후야 너 정말······.”
 “네?”
 “생각이 많이 깊어졌구나. 이제 남을 생각할 줄 알게 되었어.”
 “아니, 이건 지극히 일반적인 사고방식······.”
 “아버지로서 기쁘구나. 너의 의견을 존중해 좋은 방법을 찾아보마.”
 퇴근한 직후임에도 신우혁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신지후와 관련된 주변인 중에서 가장 노래하기를 원했던 사람이 신우혁이었을 테지.
 자신의 재능을 이어받아 가수로서 성공하기를 염원해 왔을 것이다.
 불룩.
 비록 이런 형편없는 외모인 상태라도 말이야.
 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뻐 보인다고 하니까.
 그날 이후,
 나는 집에서 가까운 ‘스트로베리 스튜디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낡은 건물이었는데,
 사연을 들어 보니 가수 신우혁이 마지막으로 작업한 스튜디오라고 했다.
 와, 그럼 몇십 년 전이라는 이야기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업에서 쓰이는 장비들은 모두 최신식이었다.
 이 스튜디오는 낮에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다고 하니,
 연습하기로는 안성맞춤이다.
 이곳은 밤마다 아스테르 소속 작곡가.
 ‘딸기 큐티’가 혼자서 쓰는 작업실이라고 했다.
 “푸훗!!”
 처음 그 작곡가 명을 듣는 순간 먹던 물을 뿜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요즘 세상에 딸기 큐티가 뭐야.
 그럼 ‘스트로베리 스튜디오’란 건,
 그의 이름에서 따온 건가 보다.
 우습지만 생각보다 실력은 있다는 소리다.
 기획사에서 작곡가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를 내어 줄 정도라면 말이다.
 이름에 걸맞게 그가 작곡한 노래들을 보니 아이돌 노래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과거,
 이진우는 작곡가이기도 했으니,
 ‘딸기 큐티’가 만든 곡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부분 깔끔하게 잘 빠진 곡들이었는데,
 가끔 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재 감성이 느껴졌다.
 신기하군.
 언뜻 듣기엔 영락없는 아이돌 노래인데 말이야.
 띠리리리.
 도어 록을 열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아버지에게 듣던 대로 아무도 없었다.
 “······.”
 두근두근.
 갑자기 세차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노래 연습다운 연습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한 것이라고는 호흡과 발성 연습뿐.
 정 주변이 신경 쓰이면 차 안에서 문을 닫고 반복하면 되는 일들뿐이었다.
 신지후의 목소리와 이진우의 노하우가 결합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나는 부스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첫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해 질 무렵 바람 소리~ 몹시 거칠던 날~.”
 생각보다 음정이 불안정하다.
 처음 신지후의 몸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지 않았던 것처럼,
 성대를 통해 음정을 맞추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음정이 어떻고를 떠나,
 다른 부수적인 것들을 압도하는 아름다운 음색이 부스를 메우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바람에 몸을 기대~.”
 주륵.
 어설픈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얼마나 갖고 싶었던 ‘목소리’였던가.
 아름다운,
 아니 하다못해 평범한 목소리라도 가지고 싶다고 매일같이 꿈꾸어 왔다.
 신지후의 목소리는 미성이었으나 남성미를 겸비했고,
 아름다웠으나 카리스마를 내포하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음색을 지녔다.
 행복하다.
 신지후의 몸에 들어온 이래,
 아니 이진우로 살았던 그 어떤 순간보다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내친김에 제대로 한번 해 볼까.”
 나는 콘솔과 장비들을 모두 가동시켰다.
 최신식이라고 해 봐야 오 년 전 기준일 뿐.
 이진우가 이미 다룰 대로 다뤄 본 모델이었다.
 나는 마이크 앞에서 헤드셋을 끼고 MR에 맞추어 노래를 반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음정 또한 조금씩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
 이 정도면 2차 합격도 문제없겠어.
 만족스러운 얼굴로 부스에서 나올 무렵,
 나는 뜻밖의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삐삐삐빅.
 누군가가 도어 록을 여는 소리.
 숫자 버튼이 다급히 울리는 걸 보니 성격이 급한 사람인가보다.
 근데, 낮에는 사람이 없다며?
 내가 멍하니 서 있는 사이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그리고 한 여성이 들어와 나를 확인하고는,
 힘껏 소리 질렀다.
 “도둑이야!!!”
 ······ 도둑 같은 소리하네.
 
 
 # 상암 오디션
 
 
 “아아아아아아!!”
 참 길게도 외치는군.
 내가 정말 도둑이었으면 소리 지르는 사이에 튀었겠다.
 “뚱보 도둑놈!!!”
 이제는 도둑도 모자라 뚱보 도둑이란다.
 굉장히 모욕적인데.
 뭐,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하나,
 내 몸이 뚱보인 것은 팩트였다.
 도둑은 물론 아니지만.
 “저기요 아줌마.”
 “아줌마아??”
 그녀의 얼굴에 쌍심지가 짙게 세워졌다.
 아줌마지 그럼 뭐냐.
 적당히 부티가 흐르는 사십 대 중반의 얼굴.
 굴곡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딱 달라붙는 트레이닝복.
 그리고 대충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
 전형적인 헬스장 나가는 동네 부잣집 아주머니의 모습이었다.
 “나 아줌마 아니거든??”
 “저도 도둑 아닙니다.”
 “도둑이 ‘나 도둑이요’ 하는 거 봤어??”
 “아줌마는 보통 ‘그래도 나 아줌마 안 같지?’ 이러던데요.”
 “글쎄 아줌마 아니라니까!!”
 이건 무슨 대화가 뫼비우스의 띠도 아니고.
 나는 이 상황에서 오해를 풀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제 아버지 함자가 신. 우. 혁입니다.”
 “신 누구?? 어머, 신 대표??”
 “네. 오늘부터 낮에는 이 스튜디오를 써도 된다고 해서요.”
 그녀가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건 나도 들었어. 하지만 얌전히 방음 부스만 사용한다고 해서 수락한 거지, 내 물건들을 함부로 써도 좋다고 한 적은 없거든?”
 “제가 무슨 물건을 썼다는······ 아.”
 콘솔 기계들과 PC를 말하는 거구나.
 “그래. 이제 알겠어?? 카톡이 PC에서 로그인됐다길래 얼마나 놀랐는지. 정말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잖아.”
 흠. 그렇게 된 거군.
 “메신저가 자동으로 켜질 줄은 몰랐어요. 그저······ 제대로 연습해보고 싶어서. 함부로 사용한 건 죄송합니다.”
 “뭐, 됐어. 도둑이 든 게 아니라면 말이야. 그런데······.”
 “???”
 도둑으로 의심했던 상황보다 더욱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는 눈앞의 여인.
 이번엔 또 뭐.
 “신 대표의 아들이라면 그 개망나니 신지후, 맞지?? 상종 못 할 쓰레기라던데 제법 예의도 바르고. 소문이랑은 완전 딴판이네??”
 이 여자는 뇌를 별로 거치지 않고 바로바로 이야기하는 타입인 것 같다.
 “네, 제가 그 개망나니에, 쓰레기로 명성이 자자한 신지후입니다.”
 “어머. 미안. 꺄하하. 내가 실수했네.”
 기계를 사용한 걸 넘어가는 것도 그렇고,
 곧바로 사과하는 걸 보니 심성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
 게다가 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생기발랄한 웃음소리라니.
 꼭 사춘기 소녀 같네.
 “가만.”
 “??”
 “호옥시······.”
 사태를 수습하고자 내 정체를 말했을 뿐,
 아직 저 여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이 스튜디오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람.
 PC의 주인이자,
 나이에 걸맞지 않은 소녀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딸기 큐티?!”
 “헙!”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입을 막는다.
 누가 봐도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
 발갛게 달아오른 양 볼이 은근히 귀엽게 느껴진다.
 “어, 어떻게 알았어? 이건 일급비밀인데.”
 나는 양어깨를 으쓱 올리며 대답했다.
 “뭐······ 이 기계들을 ‘내 거’라고 하시는 것도 그렇고. 아버지가 직접 양해를 구한 것도 그렇고.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건······ 그렇네. 별로 남한테 알려 주기 싫은 이름이라, 조용히 왔다 갔다 했는데.”
 피식.
 역시 생각보다 순수한 구석이 있는 여인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큐티하시기도 하고.”
 “정말? 그치 그치?! 내가 그런 소리를 많이 듣걸랑.”
 수십 년간 연예계에서 잡초처럼 버텨 왔던 이진우.
 그의 기괴한 목소리는 비단 노래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관계에서도 상당한 악영향을 초래했다.
 궁여지책으로 그는 만나는 이들에게 ‘립서비스’를 익혀야만 했고,
 그 스킬은 신지후의 몸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네. 예명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이제 이해가 갑니다.”
 ‘딸기 큐티’가 작곡한 노래가 왜 그렇게 발랄한지,
 그러면서도 어째서 약간의 아재 감성이 묻어 있는지.
 눈앞의 여인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큐티하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경계를 풀어 버린 듯했다.
 “우리 정식으로 인사할까? 반가워. 딸기 큐티야.”
 “크읍.”
 “왜 그래?”
 “아뇨. 기침이 갑자기 올라와서.”
 그러나 역시 저 이름은 좀처럼 적응하기가 힘들다.
 스스럼없이 본인을 ‘딸기 큐티’라고 지칭한 여성 앞에서,
 하마터면 웃음을 뿜을 뻔했지 뭐야.
 “본명은 한정아야. 한 선생님, 정아 쌤. 편한 대로 불러. 물론 딸기 큐티로 불러도 좋고.”
 “크읍.”
 그녀는 윙크를 하며 배시시 웃었고,
 나는 다시 웃음 고문을 참아 내야만 했다.
 “자꾸 기침이 올라오는구나. 어머. 여기 공기 청정기를 안 틀어 놨네. 그러니 그렇지.”
 그래서가 아닙니다. 아줌마.
 어쨌거나 오해도 풀었고,
 연습도 적당히 마쳤다.
 이제 집에 돌아가서 2차 오디션에서 부를 노래를 선정해야겠다.
 “어머.”
 “??”
 “이거, 네가 세팅한 거니?”
 딸기 큐티 쌤이 콘솔에 마이크 이팩트를 걸어 놓은 것을 본 모양이다.
 본래 연습할 때는 순수한 목소리만으로 테스트를 하지만,
 신지후의 음색이 워낙 좋다 보니 마지막 곡을 부를 때는 내 느낌을 살려서 때깔을 입혀 봤었다.
 결과는?
 당연히 대만족.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당장 가수를 해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되게 능숙하게 설정해 놨네. 미리 저장된 걸 불러온 것도 아닌데. 어디서 배웠니?”
 “아. 그냥 이것저것 만져 본 거예요. 연습도 충분히 다 했고, 이제 가 보겠습니다.”
 벌써? 라며 물어보던 딸기 큐티 쌤이 시계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네 아빠의 목을 타고났으면 가능성은 충분할 테니까, 열심히 해 봐. 물론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는 어렵겠지만 말이야. 까르륵.”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현재의 체형으로는 사이버 가수, 혹은 얼굴 없는 가수로나 데뷔할 수 있겠지.
 근데 왜 저렇게 얄밉지.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스트로베리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 * *
 
 “흠흠흠~ 어디 오늘도 신나게 작업을 해 보실까.”
 작곡가 명 딸기 큐티.
 본명 한정아가 깍지낀 손을 높이 들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도둑이 든 줄 알고 헐레벌떡 온 터라 차림새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차피 독고다이로 작업하다 보니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늘 작업할 친구들이 누구더라······.”
 메일함을 뒤져보던 한정아.
 그녀는 문득 시선을 돌려 방음 부스 안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음악을 아예 모르는 친구가 세팅할 수 있는 이팩트가 아니었다.
 전문가들끼리만 알 수 있는,
 보이스가 매력적인 가수가 부를 때 최적의 결과나 나올 법한 설정이었다.
 게다가 현재 장비는 구매한 지 1년도 채 안 되는 최신형이었다.
 그런걸,
 신지후가 능수능란하게 다뤘다고?
 음악은커녕 사고만 치고 다니는 개망나니가?
 한정아는 신지후라는 남자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그는 예의가 있었고,
 최신형의 콘솔을 전문가처럼 세팅해 놓았다.
 ‘분명 ‘노래 연습’을 하기 위해 이곳을 이용한다고 했었는데······.’
 보컬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서 온 연습생이라기보다,
 차라리 전문 뮤지션이 테스트 차원에서 왔다 간 느낌이었다.
 “아······ 나 궁금한 것 못 참는데······!!”
 한정아는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굉장히 마초스러운 몸동작이었으나,
 글래머러스한 그녀의 신형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아, 혹시······!”
 한정아가 입을 동그랗게 만 채로 손을 바삐 놀렸다.
 별도로 작업물을 지우지 않았다면 녹음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을 터.
 갑작스럽게 자신을 맞닥뜨렸으니 데이터를 지울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있다. 있다!”
 한정아는 박수를 도도도 치며 기뻐했다.
 궁금한 것은 반드시 풀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그녀의 얼굴에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어디 들어 보실까낭.”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문득 든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었을 뿐.
 신우혁의 아들이니 포텐셜은 있겠지만,
 이제 막 노래 연습을 시작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잘 불러 봐야 그 수준은 뻔할 뻔 자겠지.
 “흐흐흠~.”
 재생 버튼을 누른 뒤 다른 기계들을 만지던 한정아.
 그러나 곧 그의 움직임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모진 세상이란 걸~ 모르고 있었는지~ 터지는 울음 입술 물어 달래며~]
 “······ 뭐야 이거?”
 한정아가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곱게 치켜 올라간 매혹적인 눈매는 어디로 가고,
 지금은 화등잔만 하게 커진 눈동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게, 이제 갓 노래 연습을 시작한 사람의 테크닉이라고?
 아니,
 테크닉은 둘째치고,
 목소리가 비현실적으로 좋았다.
 과거 ‘꿀 성대’라 불리며 수많은 여성의 밤잠을 설치게 만든,
 발라드의 황태자 신우혁.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신지후의 목소리는 미성을 넘어 차라리 마성(魔性)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혀를 빼꼼 내민 채 귀에 들리는 노래에 집중하는 한정아.
 그녀는 자신의 전화벨이 울릴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 신지후의 노래를 감상했다.
 “짱이다······ 진짜 개쩔어.”
 감탄에 젖은 한정아.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예전 사춘기 소녀 시절처럼 변해 있었다.
 
 * * *
 
 청명하고 푸른 하늘.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의 운동장.
 그리고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
 북적북적북적.
 “와, 지후야. 진짜 사람 겁나 많다.”
 “그러게요.”
 서울 상암 월드컵에서 진행되는 2차 오디션.
 이번 서울 지역에서 선발되는 인원은 40명이라 했고,
 경기장을 채운 참석자들은 무려 사천 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혼자 가도 된다고 했지만,
 반석이 형은 자기가 필요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강의를 째고 함께 있었다.
 웅성웅성.
 “이건 뭐 개미지옥이 따로 없네.”
 누가 우주대스타K 프로그램이 한물갔다고 했는가.
 시청률은 몰라도 참가자들의 열기는 전성기를 방불케 했다.
 전광판에는 오늘 이루어지는 참가 방식이 공지되었고,
 그라운드에는 수십 개의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어림잡아도 사십 개 정도는 되는 양.
 단순히 계산해 보면,
 저 부스를 통과하는 백여 명 중에 딱 한 명이 합격한다는 이야기다.
 신지후,
 아니 내가 할 수 있을까?
 스트로베리 스튜디오에서 살다시피 했던 최근이었다.
 미숙했던 음정 처리는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압도적인 인파 앞에서,
 확신이 조금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2차 심사자들이 백 번도 넘는 오디션을 보다 보니,
 경우에 따라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례도 있었다.
 추측이 아니라,
 이진우의 몸이었을 때 관계자들에게 직접 들은 내용이었다.
 “흠······.”
 살찐 체형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목이 조금 탄다.
 그러자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반석이 형이 물병을 꺼낸다.
 “이게 어디서 났어요?”
 “미리 가져왔지. 너 갈증 잘 나니까.”
 “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네.”
 반석이 형은 피식 웃었지만 나는 100% 진심이었다.
 의식하지 못했던 신지후의 습관이나 컨디션도,
 반석이 형의 손바닥 위였던 것이다.
 “푸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 거친 숨을 토해 냈다.
 까짓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이진우의 몸이었을 때는 누구 앞에서 노래를 불러 본 적조차 없었다.
 그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숨죽여 가며 고장 난 성대를 고쳐 보려 했을 뿐.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목소리가 내게 있다.
 장기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내 번호가 전광판에 보였다.
 “다녀올게요.”
 
 * * *
 
 간이로 세워진 수많은 부스.
 그중에서 23번이 찍힌 부스 앞에 줄을 선다.
 앞에는 다섯 명 정도 되는 지원자들이 서 있고,
 뒤로 속속들이 새로운 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타이틀답게,
 가지각색 기상천외한 사람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앙증맞은 체구로 춤 연습을 하는 여중생,
 벌써 목이 쉬면 어쩌나 열창을 하는 고등학생.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정장 차림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아저씨와,
 하얀 수염을 명치까지 기른 할아버지까지.
 우주대스타K보다는 기인열전이 어울릴법한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하긴.
 나도 별반 차이가 없나.
 신지후의 몸이 된 이후로 약 3주.
 그동안 무려 10kg 이상을 줄이기는 했지만,
 다이어트 속도가 더뎌지기 시작했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체중 감량이라는 것은 점진적인 페이스가 아니라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살을 빼다 보면 아무리 운동을 하고 굶어도 체중 감량이 더딜 때가 몇 번씩 찾아오는데,
 신지후는 최근 그 1단계 상태에 빠져 있었다.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일.
 그러나 2차 오디션까지 두 자릿수 체중을 찍기에는,
 예전 신지후의 몸이 너무나 비대했다.
 몇몇 일반적인 체형을 소유한 참가자들이 나를 흘끗 훔쳐보고 있었다.
 보나 마나 좋은 평가는 아닐 테지.
 ‘저런 애가 통과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짜식들.
 나중에 방송에서 보고 놀라지나 말아라.
 “다음 분 들어오세요!!”
 두근.
 점점 차례가 다가오자,
 인파에 둘러싸여 있을 때처럼 또 다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의 심장 박동은 아까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불안함이 아닌 기분 좋은 고양감.
 그것은 누군가에게 갈고 닦은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는 설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 다음 분!!”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후우-.”
 부스 앞에서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아담하네.’
 부스 안의 공간은 생각보다도 더 작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앞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심사 위원 두 명과 스탠딩 카메라뿐.
 이곳이 나의 첫 번째 실전 무대였다.
 “참가번호 3838번. 신지후입니다.”
 꾸벅 인사를 한 뒤 집중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오디션이라고 해 봐야 한 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몇 분 정도일터.
 그마저도 싹수가 보이지 않으면 노래 한 곡을 다 부르지도 못한 채 돌아가야 한다.
 몇 시간을 기다린 정성이 무색하게 말이다.
 
 * * *
 
 “시작하세요움.”
 김동석이 말을 하다 하품을 애써 감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빡세다.
 한 부스당 백 팀을 보면 된다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집중력을 지속해서 유지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백 장의 이력서를 훑어보는 것과,
 벽 명의 노래를 감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던 것이다.
 김동석은 우주대스타K 심사를 위해 특별히 초빙받은 케이블 방송사 PD였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방송 관계자들이 2차 오디션 현장에 투입되었다.
 예전에는 자체적으로 스태프를 구성했다고 하는데,
 이번 시즌은 어쩐 일인지 꽤 정성을 쏟아붓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름 열의를 가지고 신청자들의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오디션이 시작된 지 수 시간이 지나고,
 전체 대상의 절반 이상이 지나면서 초심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참가자들이 연이어 나올 때면,
 고뇌하는 척하면서 잠깐 졸기도 했다.
 다시는 심사 제안을 수락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옆자리에 앉은 방송 작가 김정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이미 아까부터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것은 열정이나 흥미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하품을 참느라 그런 것이었다.
 부스 안에 들어온 89번째 참가자.
 그들은 신지후의 외관을 보며 ‘이번에도 꽝인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심사를 봐 온 참가자 중에 점찍어 놓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
 그저 새로운 얼굴이 오면 노래나 한번 듣고 돌려보내면 그뿐이다.
 반복되는 오디션과 수준 낮은 노래에 지친 김동석과 김정란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을지 신지후는 너무나 잘 꿰뚫고 있었다.
 신지후가 2차 오디션을 준비하며 일찌감치 세워 둔 전략은 두 가지였다.
 속전속결.
 초전박살.
 신지후로 환생하기 전,
 이진우는 그야말로 연예계에서 수많은 경험을 해 본 자였다.
 이런 우주대스타K같은 굵직한 메이저 프로그램은 아니더라도,
 널리고 널린 게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그 말은 곧,
 이진우 역시 심사 위원으로서의 경험이 있다는 것.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이진우였으나,
 그 역시도 반복되는 오디션에 집중력을 잃은 기억이 있었다.
 잡생각에 빠져있던 그의 정신을 번쩍 뜨이게 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순수한 ‘노래’였다.
 다만,
 시작부터 강렬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노래.
 신지후는 복부 저 밑에서부터 호흡을 끌어올려 강렬한 에너지를 쏟아냈다.
 “그~대 내게 오지 마세요. 두 번 다시 이런 사람 만나지~ 마요.”
 확!
 듣는 건지 마는 건지 파악하기도 힘들었던 두 심사 위원의 고개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치켜 올라갔다.
 하품 때문에 초롱초롱하던 김영란의 눈가에 급기야 물기가 번지고 있었다.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머금고 있던 눈물이 조금 새어 나온 탓이다.
 반면 김동석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뭐지, 이 자식? 이건 너무······.’
 터무니없다.
 김동석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히 못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어떤 참가자의 목소리도 이렇게 부스를 가득 메우지 못했다.
 그들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던 졸음이,
 토네이도에 휩쓸려 가는 나무들처럼 신지후의 발성에 쓸려 나가 버렸다.
 목소리는 또 어떠한가.
 달콤하면서도 강단이 느껴지고,
 가득 차 있으면서도 공허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과 같은 보이스였다.
 결과적으로,
 신지후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처음부터 잔잔한 서두로 시작했다면,
 아마 이만한 임팩트를 주긴 어려웠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발성량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대번에 하이라이트부터 불러 매력을 어필한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해도오~.”
 노래는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신지후는 하마터면 곡 선정을 후회할 뻔했다.
 현재 신지후의 몸은 과거 이진우의 노하우가 약 20% 녹아든 상태였다.
 임팩트를 주기 위해 음역대가 높은 노래를 선정한 것은 좋았으나,
 부스를 가득 메울 성량을 뿜어내다 보니 고음 부분이 미세하게 흔들렸던 것.
 반대로 이야기하면 고작 20% 정도로도 두 심사 위원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마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눈치챘을까?’
 노래를 마친 신지후는 태연하게 서 있었다.
 마치, 내 노래에는 결점 따윈 없었다는 듯.
 부른 사람조차 긴가민가한 미세한 떨림이었지만,
 신지후는 아주 약간 불만족스러운 상태였다.
 “어 음······.”
 김동석이 약간의 침묵 뒤에 입을 열었다.
 칭찬일까 지적일까.
 그 대답을 지켜보는 잠깐이,
 신지후에게는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다른 곡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신지후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먹혔다.’
 더 이상 노래로 기대할 수 없는 참가자일 경우,
 보통은 춤이나 다른 장기를 소개해달라고 요구한다.
 적당히 함께 즐기는 척하다 돌려보내면 그만인 케이스.
 개중에 압도적인 개인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 2차 오디션을 통과하기도 하지만,
 ‘장기 자랑을 해 보라’는 이야기는 대부분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다른 노래를 들려 달라는 말은 사실상 ‘당신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의미와 진배없었다.
 “후우-.”
 신지후는 이전보다 훨씬 여유로운 상태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심사 위원들에게서 전해지는 뜨거운 눈빛에 얼굴이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확인 사살뿐.
 조금 전 불렀던 노래가 요행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시간이 되었다.
 “하얗게 피어나······ 고개를 들다가······.”
 앞서 부스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던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
 신지후는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성량으로,
 혼잣말하듯 담담히 서두를 부르기 시작했다.
 만약 이 노래를 처음 꺼내 들었다면,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이들에게 제대로 어필을 하지 못했을 터.
 그러나 신지후는 이미 제대로 한 방을 먹인 상태였고,
 심사 위원들은 어느새 그의 목소리 추종자가 되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스치는 바람에······ 얼굴을 내~밀어,”
 “햐······.”
 김동석이 참지 못하고 감탄의 목소리를 뱉었다.
 패기있 게 내지를 때도 좋았는데,
 지금 같은 파트도 좋았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더 좋았다.
 기본적으로 살살 녹는 달콤한 보이스였지만,
 이런 슬픈 분위기의 노래에서는 마치 비운의 주인공처럼 처연하게 들리고 있었다.
 수많은 감정을 함축한 듯한 목소리.
 김동석은 불현듯 신지후의 노래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예전에 들었던 노래 중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가수가 있었던 것 같다.
 ‘누구였더라······?’
 김동석은 옆에 앉은 김영란에게 신호를 주었지만,
 그녀는 이미 눈을 감고 신지후의 노래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잔잔한 파도 같은 신지후의 목소리에,
 몸을 완전히 맡긴 듯한 모습이었다.
 “바라본다~ 라라라 라~라라······.”
 “······.”
 신지후의 노래는 끝났다.
 그러나 노래의 여운을 느끼려는 듯 김정란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고,
 김동석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니 오히려 신지후가 어색할 지경이었다.
 “끝났는데요······. 들으셨다시피.”
 그제야 심사 위원 둘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눈빛을 마주쳤다.
 ‘얘로 해야겠지?’
 ‘무조건이요.’
 서로 간에 생각을 확인한 둘은 그때부터 신지후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혹시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워 본 적이 있나요? 입시 학원이라던가, 일반 아카데미라던가.”
 “아니요,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본인이 본인에게 가르쳤다고 해야 할까.
 신지후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은 느린 템포의 노래를 불렀는데, 나중에는 박자가 빠른 곡을 불러야 할 수도 있어요.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러야 할 수도 있구요. 가능하겠어요?”
 오디션에 나와서 불가능하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럴 때는 못 먹어도 고다’라고 생각하며,
 신지후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습니다.”
 김동석은 비치된 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한 뒤,
 신지후에게 짧게 이야기했다.
 “행운을 빕니다.”
 
 * * *
 
 집으로 가는 버스 안.
 “합격······ 할 것 같아? 지후야.”
 “결과는 한참 있다 나올 텐데요 뭘.”
 “아니 그래도,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 잘 될 거 같아?”
 본인이 오디션을 본 것처럼 반석이 형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행운을 빈다······ 라······.”
 “응?”
 김동석의 말을 곱씹어 본 나는 반석이 형에게 웃어 보였다.
 “빠른 템포의 곡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
 김동석 PD의 말도 의미심장했지만,
 결정적인 힌트는 김정란 작가의 말에 있었다.
 앞으로 빠른 템포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는 말,
 당연히 서두에 ‘만약 합격한다면’이라는 표현을 붙였어야 했다.
 그러나 김정란 작가는 가정을 붙이는 것도 깜빡한 채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정란 작가가 순진해서?
 천만에.
 그만큼 신지후의 노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방송을 타 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두고 보죠. 제 느낌이 정확했던 건지,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는지.”
 나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
 우우웅.
 우주대스타K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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