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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야망 1-1

2019.11.20 조회 6,000 추천 33


 재벌 야망 1권
 
 목차
 1. 절망
 2. 환생
 3. 종잣돈
 4. 교통사고
 5. 사업 개시
 6. 공장
 7. 대한건설
 8. 덤핑
 9. 말죽거리
 10. 퀴논항
 11. 경쟁자
 12. 수송
 13. 탄피
 
 
 
 *재벌 야망은 작가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작된 소설로서 실제 상황 및 현실 배경과 다른 내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 또한 본문에 등장하는 지명, 인명, 기관명 등은 소설 배경으로 사용될 뿐, 실제와 관련이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1. 절망
 
 
 
 한 남자가 비틀거렸다.
 
 -역시 술이 좋긴 좋구먼. 흐흐흐.
 
 질질 흐르는 침 같은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강철웅은 종일 어깨를 짓누르던 절망감을 떨쳐 버리기라도 하듯 머리를 좌우로 두어 번 흔들었다.
 해거름부터 마신 술이 세 병이 되고 말았다.
 소주 두 병이면 취하는 주량에 비해 과음한 게 분명했다.
 
 -그래 취했다. 그래서 뭐? 내가 취하는 데 보태준 거라도 있냐? 개~ 새끼들.
 
 누가 걸리기라도 하면 물어뜯을 듯이 시뻘건 적개심을 드러내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20년 넘게 운영하던 사무실을 오늘 자로 폐업하였다.
 말이 좋아 폐업이지 사실은 쫓겨났다. 임대료가 6개월이나 밀렸던 탓이다.
 
 「한국 재벌 문제 연구소」
 
 이것이 젊은 시절을 통째로 바쳐가며 온 힘을 쏟았고 현재 연구소장으로 있는 단체의 이름이다.
 
 -니미, 내가 연구한다고 재벌이 문제를 안 일으키나? 거기다 뭐 연구소장? 달랑 혼자 하면서 소장은 개뿔, 엿이나 처먹어라.
 
 속으로 자조 섞인 욕지거리를 뱉었지만,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은 여전했다.
 문득 울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으나 겨우 침과 함께 삼켰다.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아닌가.
 
 -제기랄, 벌써 그렇게나 됐나?
 
 강철웅의 뇌리에 여러 기억이 서서히 떠올랐다가 사라져 갔다.
 강물처럼 흘러가 버린 지난날의 일들이······.
 
 ***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에 심~ 어진 나무같~ 이 흔들리잖게.”
 
 일단의 학생들이 스크럼을 짠 채 교내를 돌며 동참을 호소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강철웅이 대학을 다니던 80년대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저항은 날로 격화되어 교문 앞은 최루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다.
 속강 때문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학생 식당으로 향하던 강철웅은 데모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이마를 찌푸렸다.
 오늘도 온종일 매운 냄새를 맡을 모양이다.
 
 이류 대학인 D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강철웅은 학생운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구멍가게를 하며 어렵게 학비를 대는 홀어머니를 생각하면 그쪽은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한술 더 떠 비싼 돈 내고 학교 다니며 매일 데모나 하는 녀석들이 그의 눈에는 한심하게까지 보였다.
 
 “쯧쯧.”
 
 혀를 두어 번 차고는 학생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식당 안에는 강철웅처럼 늦은 점심을 먹는 몇몇 학생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을 뿐 상당히 한산했다.
 450원짜리 오뎅 정식과 500원짜리 카레라이스가 오늘의 점심 메뉴였다.
 순간 좋아하는 카레라이스에 눈이 갔으나 오뎅 정식 식권을 끊었다.
 50원이면 도서관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 흔해 빠진 미팅을 잘 하지 않았던 이유도 돈이 없어서였다.
 신입생 시절 소개팅을 나갔다가 자신은 제일 값이 싼 500원짜리 커피를 골랐는데, 앞에 앉은 못생긴 년이 1,300원이나 하는 오렌지 주스를 시키는 바람에 하마터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길 뻔했다.
 그 후로는 미팅이든 소개팅이든 사절이었다.
 강철웅처럼 형편이 안 좋은 학생 중에는 방학 기간을 이용해 공사판에 나가 용돈을 벌기도 했다.
 
 -장학금을 받는 게 낫다.
 
 그 시간에 공부해서 장학금을 타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게 강철웅이 내린 결론이었다.
 구석 자리로 가서 밥이 수북이 담긴 식판을 내려놓고는 2시간 뒤에 들을 사회학 수업 책을 펼쳤다.
 밥풀 한 개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은 강철웅이 식당을 나오자 어느덧 5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가 교문 앞에 정렬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군부독재 타도하자.”
 “타도하자. 타도하자.”
 
 맨 앞에 선 학생이 하늘로 주먹질을 하며 구호를 선창하고 다 같이 복창하는 게 항상 보던 그대로였다.
 
 -이제 곧 최루탄을 쏘겠지.
 
 도서관을 향해 발걸음을 빨리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거의 공식처럼 굳어진 데모 양상은 안 봐도 머릿속에 다 그려졌다.
 
 “빠바바바방.”
 
 아니나 다를까 흰 연기와 함께 최루탄과 지랄탄이 터져 나왔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대며 얼른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렇게 강철웅은 데모니 낭만이니 하는 것들과는 담을 쌓고 오로지 강의실과 도서관만을 왕복하였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하니, 목숨 걸고 인제와 원통을 지키라는 국방부 특명이 내려와 12사단으로 갔다.
 칼잠을 자며 3년간 뺑이 친 끝에 5대 장성이 되어 무사히 학교로 돌아왔다.
 
 강철웅이 전방에서 삽질과 축구를 하는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영원히 빛날 것 같던 대머리가 더는 9시 뉴스 첫머리에 등장하지 않게 된 사실이었다.
 대신 보통으로 특별한 사람이 그 자리를 이어갔지만 말이다.
 복학한 강철웅은 더 공부에 매진했다.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는 연속으로 과 수석을 차지했다.
 ‘3저 호황’이니 뭐니 해서 강철웅이 다니는 별 볼 일 없는 대학 출신도 취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던 시절이었다.
 
 -그저 그런 회사는 안 돼.
 
 일반 회사보다 월등히 급여 수준이 높은 금융권으로의 진입이 목표였다.
 그렇게만 되면 어머니의 고생도 끝이 날 것이다.
 
 “야, 강철웅. 너 교수님이 오란다.”
 
 교수실로 뒤늦은 리포트를 내러 갔던 학과 친구가 지도 교수의 호출을 전했다.
 
 -뭘까?
 
 경영전략을 강의하는 지도 교수는 성적이 뛰어난 강철웅에게 평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분이었다.
 
 “강 군은 졸업 후 대학원으로 진학할 생각인가?”
 
 강철웅의 향후 진로 상담 때문에 부른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집안 형편도 그렇고 해서 취직할 생각입니다.”
 “음, 그래? 좀 아쉽군.”
 
 교수는 안경테를 살짝 고쳐 잡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서랍을 열고 서류 봉투를 하나 꺼냈다.
 
 “이건 대우증권 입사 추천서일세. 우리 과에 딱 한 장이 왔더군.”
 
 강철웅은 교수가 건네주는 서류 봉투를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면접 잘 봐서 꼭 붙도록 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방아깨비처럼 두 번이나 허리를 굽혔다.
 
 교수실을 나온 강철웅은 가슴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아무도 없는 산속이었으면 목청껏 소리쳤을 것이다.
 
 -대우증권, 대우증권이다. 이 야호~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 증권회사는 대부분 대졸자가 선망하는 직장이었고 그중에서도 대우증권은 단연 으뜸이었다.
 4년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흐흐흐”
 
 칼날같이 주름잡은 와이셔츠에 양복을 걸치고 거울 앞에 서자 강철웅의 입에서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첫 출근 날이었다.
 
 “아이고, 우리 철웅이 멋지네.”
 
 어느새 뒤에 와서 선 어머니가 입가에 함빡 웃음을 머금으며 자랑스러워했다.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배치받은 곳은 서울 변두리 어느 지점이었다.
 은근히 본사 근무를 바랐지만, D대 출신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진 않았다.
 
 “신입사원 강철웅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점의 선배들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
 다들 악수하며 한마디씩 격려의 말을 해주었는데 강철웅의 눈에는 그들의 몸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맡은 일은 시세를 묻거나 주문을 하는 고객들의 전화를 받고, 실물로 들어온 증권을 본사에 갖다 주는 가벼운 일이었다.
 제조업체에 취직하여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뺑이를 치는 친구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왜 그런 데를 가냐?
 
 증권회사는 출근 시간이 9시다.
 늦게 출근하는 대신 가자마자 빡세게 일을 시작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주식 시장이 열리는 10시까지 신문을 보며 여유 있게 커피를 한 잔 때린다. 이게 일이다.
 
 장(場)이 끝나는 오후 3시 반부터는 각자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퇴근을 준비한다.
 점심시간도 1시간 반이나 되어 사우나에 가서 늘어지게 낮잠도 잘 수 있다.
 거기다 빨간 날은 장이 안 열리니 휴일 근무라는 말 자체를 모른다.
 적어도 강철웅이 다니던 시절의 증권회사는 이랬다.
 이게 신의 직장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그러나 입사 2년 차가 되어 영업 업무를 맡는 순간 태평성대는 종말을 고했다.
 1989년 4월 1일에 정점을 찍은 한국 증시는 매일 하락의 연속이었으니 90년대 초의 지점 영업은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었다.
 지점의 생명은 약정이고 직원은 약정을 위해 존재한다.
 매일 술 처먹고 늦게 출근해도 약정만 잘하면 만고의 충신이고 아무리 근면 성실해도 약정이 시원찮으면 지점 실적을 깎아먹는 역적에 불과했다.
 어렵게 살던 강철웅에게 돈 많은 지인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족집게처럼 오를 종목을 집어내는 신기를 갖춘 것도 아니었다.
 
 “강 주임, 이번 달 약정 얼마 할 거야?”
 “그렇게 넋 놓고 앉아 있으면 손님이 알아서 오냐? 없으면 나가서라도 물어와!”
 “나도 강 주임처럼 얼굴이 두꺼워 봤으면 좋겠어. 어떻게 이런 실적 가지고 월급을 받지?”
 
 지점장은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임원이 되고, 나중에 대표이사까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으니 직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이런 씨발, 반도 안 남았네.”
 
 강철웅은 반토막 난 모찌 계좌 잔고를 확인하자 절로 욕이 나왔다.
 증권회사 임직원은 자기 명의로 주식 투자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당시는 대부분 차명으로 계좌를 만들어 자기매매를 했고 이런 계좌를 부르는 은어가 ‘모찌’였다.
 관리 고객이 별로 없으니 자기 계좌라도 열심히 돌려 약정액을 올려야 했다.
 약정용으로 연일 사고팔고를 되풀이하다 보니 먹을 때는 병아리 눈물이고 깨질 때는 조스에 한입 가득 물어뜯긴 것 같았으니, 은행에서 대출받은 계좌 잔고는 찬물에 뭐 줄어들듯이 연일 쪼그라들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하락장이 계속되었으니 갈수록 손님이 주는 건 당연했다.
 관리 고객 수가 줄어들수록 위에서 내려오는 압력은 숨이 막히게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강철웅이 양태수라는 학교 선배를 만난 것은 입사 4년 차에 접어들던 90년대 중반 무렵의 퇴근길이었다.
 
 “어이 강철웅이~”
 “어, 양 선배님 안녕하셨습니까?”
 
 학과 2년 선배인 양태수는 강철웅이 친하게 지낸 몇 안 되는 선배 중의 한 명이었다.
 둘 다 학생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난했던 강철웅이 취업을 목표로 다른 데 정신을 팔 겨를이 없었던 반면, 양태수는 여자 쫓아다니느라 그랬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헤어질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정이다.
 둘은 근처 골목 모퉁이에 자리 잡은 돼지갈빗집으로 향했다.
 
 “한국 재벌 문제 연구소가 뭐 하는 뎁니까?”
 
 양태수가 내민 명함을 받아든 강철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 재벌 문제 연구소 소장 양태수」
 
 거기에는 이렇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
 
 “이봐 철웅이 너도 알다시피 우리나라 재벌, 이것들이 좀 문제가 많은 족속인가? 지금 재벌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더 잘 알겠지. 은행 돈으로 사업은 문어발처럼 벌여놓고, 공사 대금 부풀려서 비자금 만들어, 그걸로 정치권 로비해, 따낸 이권으로 기업은 더 확장되고, 그래서 천년만년 누려보세 하는 놈들 아냐? 그놈들 눈에 너 같은 직원들이 어떻게 보일 것 같아? 노비야 노비, 알아듣겠어?”
 “······.”
 
 양태수는 열변을 토하면서도 강철웅의 잔이 빈 것을 보고는 가득 따라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너나 나나 시대의 아픔을 외면한 부끄러운 전력이 있잖아? 우리처럼 배운 놈들은 사회에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야. 노블레스 어쩌고 하는 말쯤은 너도 들어봤을 것 아닌가?”
 
 학교 다닐 때는 사회문제에 대해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던 양반이 갑자기 정의의 사도로 변한 모습에 강철웅은 좀 어리둥절했다.
 빌딩을 두 채나 가진 부모 밑에서 여학생 꽁무니만 쫓아다녀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던 양태수다.
 
 반면에 구멍가게를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던 자신을 동일시하다니!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눌러 삼켰다.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라 그런지 양태수의 주장에서 의외로 상쾌한 구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거니 받거니 소주잔이 오가며 탁자 위에 빈 소주병이 두 병, 세 병으로 늘어날수록 양태수가 조금씩 괜찮은 인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요새 힘들어 죽겠습니다. 지점장 새끼가 날 갈아 마시려고 해요. 약정 못 한다고. 씨발 놈이······.”
 
 술이 알딸딸해지자 신세 한탄이 쏟아져 나왔다.
 
 “증권사 지점장 놈들이야 뻔한 거 아냐? 밑의 직원들 갈궈서 자기만 잘돼보겠다는 새끼들이지.”
 
 ‘네가 말 안 해도 네 형편 다 안다.’
 양태수가 이런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갑자기 상체를 앞으로 디밀었다.
 
 “어때? 너도 재벌 밑 닦아주는 일 따위 때려치우고 나랑 같이 제대로 된 일 한번 안 해볼래?”
 
 돌연한 제의에 강철웅은 이마를 찡그리며 게슴츠레해진 눈에 힘을 주었다.
 
 “형이랑 같이 일하자고요?”
 “그래. 우리를 후원해 주시는 사회 저명인사들도 많아. 네가 들으면 놀라 자빠질 만큼 유명한 분도 있지. 우리 본부가 좀 더 커지면 앞으로 재벌 놈들도 우리 눈치를 보게 될 거야”
 
 어느덧 혀가 약간 꼬인 양태수의 허황한 말이 달콤하게 들리는 건 꼭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일 도살장 끌려가는 기분으로 출근해서 지점장 새끼한테 틈만 나면 깨지는 자신을 그는 필요로 하고 있었다.
 양태수를 쳐다보는 술 취한 강철웅의 눈길에는 어느덧 신뢰와 존경의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내일 퇴근하면 잊지 말고 우리 사무실에 들러. 꼭 와야 해. 알았지?”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다짐을 두는 양태수에게 강철웅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강철웅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다음 날 평소보다 더 기어가는 시곗바늘을 초조하게 바라보다가 장이 끝나자마자 일어나 옷을 걸쳤다.
 
 “손님 좀 만나러 갑니다. 늦어지면 거기서 바로 퇴근하겠습니다.”
 
 있지도 않은 손님 핑계를 대고 지점을 나섰다.
 
 ‘저 새끼 진짜 손님 만나러 가는 거 맞아?’ 하는 지점장의 따가운 시선이 뒤통수에 와 박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양태수의 사무실로 나는 듯이 달려간 것은 물론이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무실을 방문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소장님이 가장 아끼던 후배라고 들었습니다. 증권사에서 근무하신다면서요?”
 
 “아 네, 강철웅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다섯 명에 불과한 인원과 허름한 사무실 풍경은 적이 실망스러웠지만 악수하느라 맞잡은 직원들의 손은 따듯하고 힘이 느껴졌다.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는 직원들을 보자 매일같이 실적이나 쪼아대는 삭막한 현재의 직장이 더욱 견딜 수 없는 곳으로 느껴졌다.
 
 아! 이 가족 같은 분위기, 이런 게 사람 사는 곳이 아닌가!
 답을 못 찾던 생활에서 드디어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였다.
 
 “사직서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황당해하는 지점장의 면전에 사직서를 던졌다.
 「재벌문제연구소」라는 새 직장에서 전혀 새로운 일에 열정적으로 달려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재벌이라 불릴 만한 기업들은 태평양전쟁의 패전으로 자기 땅으로 돌아가게 된 일본인들의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생겨났다.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기업이라고는 경성방직, 천일고무, 유한양행, 화신 정도에 불과했다.
 당연히 이 적산(적국인의 자산) 불하를 둘러싸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며 정경유착의 싹이 텄다.
 
 6, 70년대는 우리나라 경제가 급성장했던 시기다.
 중소기업에 불과하던 기업들이 이때 몸집을 불려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삼성, 현대, LG, SK, 한화와 같이 오늘날에도 한국 경제를 주름잡는 대그룹으로 발전한 곳이 있는 반면 대우를 비롯해 국제, 동명, 화신, 율산, 제세, 명성 등 수많은 그룹이 세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갔다.
 이러한 부침들 속에서 숱한 부정과 비리가 벌어졌다.
 차관 할당의 불공정, 정경유착의 심화, 족벌 경영과 비자금 조성, 경영권 승계를 위한 편법 증여 등 일일이 꼽자면 한정이 없을 정도다.
 
 이런 문제를 파고들수록 강철웅은 재미를 느꼈다.
 때로는 그들의 비상한 사업 수완에 혀를 내두르기도 하면서 밤늦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료를 읽고 분석하는 일에 매달렸다.
 가끔 손님이 오는 날도 있었다.
 
 “강철웅 씨, 이리 와서 인사하지. 이쪽은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온 분들이고, 여기는 우리 연구소의 핵심 브레인 강철웅 씨.”
 “아, 현대차 노조! 어서 오십시오. 강철웅입니다. 지난번의 투쟁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렇게 봐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때 묻은 작업복에 짧게 깎은 머리, 핏기 없이 푸석한 얼굴이지만 눈빛만은 맑았다.
 
 “이번에 총파업에 들어가려는데 회사 측에서 우리 요구조건을 들어줄 수 없다면서 내민 근거입니다. 이걸 좀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끔 재벌 회사 노조로부터의 부탁을 들어주며 그들과도 유대를 쌓았다.
 재벌의 만행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정의로운 노조원들을 보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손님이야 손해를 보든지 말든지 약정액을 올리려고 거짓말도 마다하지 않았던 자신의 지난날이 떠올라서였다.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던 「한국 재벌 문제 연구소」에 문제가 생긴 것은 강철웅이 가입한 지 5년쯤 되었을 때였다.
 소장으로 이 단체를 이끌던 양태수가 돌연 그만두겠다고 나온 것이다.
 어느 연줄을 타고 여당의 모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가게 된 게 그 이유였다.
 지금까지의 시민운동단체 활동 경력을 교묘히 활용한 양태수의 변절이었다.
 
 “내가 간다고 아주 가는 것도 아니고 거기 생활을 하면서도 이곳 일은 계속 신경을 쓸 테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마치 잠시 여행이라도 가는 양 말했지만 제대로 된 동아줄을 잡은 마당에 영양가 없는 이곳으로 그가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 같아 영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으나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언변이 좋고 발이 넓었던 양태수의 부재가 주는 영향은 커갔다.
 무엇보다 재정이 금방 쪼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절반 가까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독지가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운영되던 단체였다.
 
 “공부를 더 하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형님이 하는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더는 못 하겠습니다. 월세가 넉 달이나 밀렸습니다.”
 
 사무실을 줄이고 급여마저 삭감을 거듭하자 직원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드디어는 강철웅 홀로 「한국 재벌 문제 연구소」 간판을 지키는 처지로 전락하게 되었으니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10년 전부터는 강철웅 혼자서 손바닥만 한 사무실에서 악전고투를 해왔다는 말이다.
 
 “철웅아 그만큼 했으면 이제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니?”
 
 이제까지 말없이 아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기만 하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증권회사를 때려치울 때도 ‘똑똑한 우리 아들이 하는 일인데······.’ 하면서 지지해 주신 분이다.
 
 “어머니,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사회적으로도 꼭 필요한 거라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절대 그만둘 수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다른 일을 찾는 게 좋을 거라는 주위의 충고와 어머니의 호소를 외면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이 싫어서 더욱 오기를 부린 측면이 강했다.
 
 -사회정의를 위해 열심히 뛰면서 운영도 잘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모양일까? 능력이 없는 걸까, 운이 없는 걸까, 아니면 둘 다 없는 것인가.
 
 송곳으로 쑤시듯이 때때로 떠오르던 의구심도 더는 의미가 없어졌다.
 모든 게 끝나버렸으니 말이다.
 
 “아 강철웅 씨, 잘 지내지요? 그런데 내가 지금은 바빠서 통화를 못 하겠는데······.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통화합시다.”
 “지부장님은 지금 회의 가셔서 연락이 어렵습니다. 어딘지 말씀해 주시면 전해 드리겠습니다.”
 
 도움을 청하며 굽실거리던 재벌 회사 노조원들도 이제는 소위 귀족 노조의 큼지막한 자리들을 차지해 연락도 안 되는 실정이다.
 이제 자신은 그들에게 귀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모든 지원이 끊기고 몇 달을 더 버티다 드디어 오늘,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사무실 문을 닫음으로써 오라는 데도 없고 갈 데도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예로부터 돈은 귀신도 부린다고 했거늘 그런 말을 무시하고 독야청청해 볼 거라 설레발을 치며 살아온 결과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제법 긴 회상에서 깨어난 강철웅이 술 냄새 팍팍 풍기며 입술을 달싹거리자 김도향의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언제부턴가 술만 취하면 흥얼거리는 노래다.
 1980년대에 나왔으니 옛날 옛적 노래인 셈이다.
 어느덧 쉰 살을 훌쩍 넘겨버린 상태.
 한 평도 안 되는 고시원 쪽방으로 향하는 자신의 신세를 어찌하면 이렇게도 잘 묘사할 수가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오는 노래였다.
 
 -아니야 뭔가 2프로쯤 부족해. 으~ 음.
 
 “난 참 등신처럼 살았군요. 난 참 등신처럼 살았어요.”
 
 -그래 좀 낫구먼. 세상일은 모두 밥그릇 싸움이라는 걸 모르고, 등~ 신같이.
 
 끝없는 자조 속에 빠지며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역시 한 병 더 마신 술에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가누기가 쉽지 않았다.
 
 “엇!”
 
 발을 헛디딘 강철웅이 허공에 두 손을 휘저으며 나무 계단이었으면 ‘우당탕’ 소리가 날 정도로 계단을 굴러 내려갔다.
 
 -이렇게 가는구나. 씨발.
 
 나름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개고생만 하다가 이따위 죽음을 맞다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순간 솟구쳐 올랐으나, 곧 바닥에 널브러진 채 의식이 끊기고 말았다.
 
 
 
 2. 환생
 
 
 
 강철웅이 깨어난 곳은 쓰러졌던 지하철역 바닥도 아니고 그렇다고 병원 응급실도 아니었다.
 좀 좁긴 하지만 아늑한 느낌이 드는 방안에서, 깔린 요 위에 베개까지 베고 한숨 잘 자고 일어난 모습이었다.
 
 -분명히 지하철역 계단을 굴렀는데······.
 
 벌떡 몸을 일으킨 강철웅이 자신의 팔다리를 살폈다.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희한하네. 아무튼, 다행이군. 그런데 여기는 어디지?
 
 낯선 방 안 풍경에 의문부호를 띄우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어마어마한 기억의 쓰나미가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아이고”
 
 터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에 양손으로 머리를 짓눌렀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머릿속에 새로운 기억이 하나하나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으으~ 이게 뭐냐?
 
 계속 지끈거리는 머리를 이리저리 눌러가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자신의 이름은 그대로 강철웅. 나이는 어처구니없게도 스물셋.
 내년 초면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는 혈기 왕성한 청년이란 사실이 차례차례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내가 스물세 살이라고?
 
 무엇보다도 스물셋이라는 어린 나이가 삼키려니 불안한 작은 생선 가시처럼 현실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분명 거무튀튀하고 주름투성이였던 손등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피부로 변해 있었다.
 일어나서 벽에 걸린 거울을 보니 젊디젊은 날의 얼굴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게 아닌가.
 직접 모습을 봤으니 더는 인정하고 말고가 없었다. 이미 환생이라는 것 자체가 만화 같은 일이 아닌가.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젊을 때는 확실히 잘생겼었군. 흐흐흐.
 
 거울 속에는 늘씬한 키에 현빈을 닮은 젊은 강철웅이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서울 상대를 들어갔어? 그 정도로 내 머리가 좋다는 얘긴가?
 
 자신이 나온 그저 그런 대학과는 비교가 안 되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들어갈 정도면 분명 보통 머리는 아닐 것이다.
 머리를 살짝 흔들어보니 예전보다 좀 맑아진 것도 같지만 잘 모르겠다.
 살다 보면 알 수 있겠지.
 
 5분쯤 더 지나자 드디어 모든 기억이 완전히 제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기억과 2018년까지 살았던 과거의 기억이 잠깐 섞인 것 같더니 곧 물과 기름처럼 또렷하게 분리되었다.
 때는 1960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었다.
 즉, 2018년에 쓰러진 강철웅이 눈을 떠보니 58년 전의 과거라는 말이다.
 
 -내가 계단을 구르면서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과거로 회귀했다는 것인데······.
 
 아니, 1960년이라면 살아본 적이 없는 시간대이니 ‘회귀’가 아닌 ‘환생’이라는 표현이 걸맞겠다.
 회귀냐 환생이냐 하는 그따위 단어가 뭐 중요하겠느냐마는.
 
 -굴러떨어지며 이런 식으로 억울하게 죽기는 싫다고 외쳤던 게 하늘에 닿았다는 말인가?
 -정말 신이라는 존재가 있어 날 가엽게 여겼다? 아니면 어떤 초자연 현상으로?
 -그럼 나는 여전히 예전의 강철웅인가······?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인 걸 보면 맞는 것 같긴 한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나 확실한 건 58년 전의 과거로 떨어져 스물셋이라는 청년의 몸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내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을까?
 
 내면 깊은 곳에서 슬슬 올라오는 희열을 느끼며 자문해 보았다.
 
 제대로 못다 한 재벌 비리 연구를 다시 한번 해보라고?
 
 아닐 것이다. 그건 망쳐 버린 지난 인생의 재탕에 불과하다.
 
 1960년대는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이 시작되는 초입이다. 이어지는 70년대까지 합쳐 ‘질풍노도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모든 게 급변하던 시기였다.
 
 기업에 있어 특히 더 그랬다.
 오늘날 떵떵거리는 대부분의 재벌이 ‘재벌’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몸을 불리며 자리를 잡는 시기가 이때라는 것을 20년 동안 연구한 강철웅이 모를 리가 없다.
 
 -나라를 흔든 사건들과 재벌이 어떻게 부를 형성했는지 훤히 알고 있는 내게 환생이라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는 찌그러진 전생과는 다른 멋진 생을 살아보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
 강철웅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용솟음쳐 오르는 환희에 몸을 떨었다.
 
 -죽도 밥도 아닌 인생을 보냈지 않은가. 그래, 또다시 그런 등신 같은 짓은 안 하리라. 지난 생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보겠다.
 -재벌 비리 연구? 개소리다. 그래, 차라리 욕을 먹고 손가락질받더라도 개같이 벌어서 내가 재벌이 돼버리겠다. 나라고 재벌이 되지 말란 법이 있나? 좋다, 두고 봐라. 이 두 손으로 온 세상의 부를 움켜쥐고야 말겠다!
 
 만세라도 부를 것 같은 얼굴이 되었을 때 밖에서 굵은 음성이 들렸다.
 
 “일어났냐? 어서 씻고 밥 먹어라”
 “예, 아버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저절로, 그것도 아주 쉽게 아버지라는 말이 나왔다.
 이미 새로운 기억이 자리를 잡았기에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현재 유일한 가족이었다.
 아내와 둘째 아들을 북에 두고 월남한 실향민인 아버지는 다른 대부분의 그런 사람처럼 언젠가 통일이 되어 북의 가족을 만나보는 게 소원이었다.
 
 돌아가신 홀어머니 대신 홀아버지가 생겼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바로 주방이 있었다.
 쪽문을 열면 아버지의 생활 터전인 중국 음식점 홀이 나온다.
 
 -음~ 중국집 아들이라······.
 
 아버지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밀릴 때 심한 감기에 걸려 신음하는 둘째 아들을 아내에게 맡기고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일단 맏이인 강철웅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당시 11살이던 둘째는 무사히 나았는지 아니면 기어코 명을 떨궜는지 알 수 없이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이후 해방촌에 겨우 터를 잡고 고생하다가 어찌어찌하여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에 시다바리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거기서 눈치로 요리를 배웠다.
 ‘삼팔따라지’답게 근면과 성실 하나로 돈을 모아 지금 이 가게를 얻었다.
 강철웅은 전쟁 때문에 중학교는 1년밖에 다니지 못했다. 물론 다른 또래 아이들도 별 차이가 없었다.
 대충 졸업 후 지금의 집과 가까운 서울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입학 후 3년 내내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고 서울 상대에 수석으로 들어갔다. 분명 머리는 좋다고 볼 수 있겠다.
 대학에서도 연애니 정치니 하는 데 일절 한눈을 팔지 않고 공부만 한 거로 봐서 전생과 현생의 강철웅은 성격이 다르지 않았다.
 
 이런 아들이 당연히 아버지에게는 자랑이자 삶의 희망이었다.
 아버지가 하는 중국집 이름은 「중화각」으로 서울 시청 뒤편의 무교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로 오는 손님은 근처에 있는 은행이나 여타 사무실 직원들이 절반쯤이고 시청과 상공부가 가까워 거기 근무하는 공무원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자, 무슨 일부터 손을 대야 하나? 뭘 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까?
 
 환생하며 온 세상의 부를 싹쓸이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뭔가 근사한 일을 벌여보고 싶은데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취직해서 월급을 모아 사업 밑천을 장만해야 하나? 아니야. 그건 바보 같은 짓이야.
 
 미래를 훤히 알면서 남의 밑에 들어가 월급쟁이를 하겠다는 건 롤스로이스를 가지고 택배 뛰겠다는 소리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폐결핵을 앓은 이유로 군대가 면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인제, 원통을 또 한 번 사수해야 하는 끔찍한 사태는 면했다.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은 강철웅은 집을 나섰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다.
 
 ‘김장철’
 
 같은 동네에 살았으며 중고등학교 동창인 단짝 친구다.
 이름 때문에 하도 놀림을 받아 김치를 아직도 좋아하지 않는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로 홍익대에 적만 걸어두고 몇 년째 놀고 있는데, 조만간 자퇴할 가능성이 크다.
 오늘도 보나 마나 음악다방에 종일 죽치고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을 게 틀림없다.
 
 명동의 「은하수」, 종로의 「돌체」와 「영보」 같은 음악다방이 1950년대 후반에 생겼다.
 전축과 레코드판이 귀했던 시절 많은 음악 애호가가 이런 다방을 찾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주린 귀를 채우곤 했다.
 천천히 걸어가는 강철웅의 눈에 골목에서 노는 꼬맹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잠잔~ 다.”
 “잠꾸러~ 기.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강철웅도 어린 시절 해봤던 놀이다.
 노는 아이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전생에 우리나라 전래 놀이인 줄 알았던 이게 일본에서 들어온 거라는 걸 지금은 알기 때문이다.
 
 ‘여우야, 여우야(きつねおとしきつねおとし).’
 
 일본에서 19세기부터 유행했던 놀이다.
 
 -그러고 보니 이것뿐만이 아니네.
 
 환생한 강철웅은 1937년생이다. 따라서 어릴 때 일제 강점기를 조금 겪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다루마상가고론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우리 집에 왜 왔니’ 그리고 ‘쎄쎄쎄’까지 전부 일본에서 들어온 놀이다.
 해방된 지 불과 15년,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걸은 강철웅의 발길이 닿은 곳은 충무로였다.
 
 「쎄시봉(불어로 매우 좋다는 뜻)」
 
 작년에 문을 연 본격적인 음악 감상실이었다.
 다른 데는 클래식만 틀어주지만 여기서는 팝송, 칸초네, 샹송 등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조영남, 이장희나 트윈폴리오를 보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한다.
 
 강철웅은 300환을 내고 입장권을 끊었다.
 들어가 음료수 한 잔을 받아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제일 앞줄에 고개를 젖히고 노래에 빠져 있는 김장철이 보였다.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슬쩍 옆자리에 앉은 강철웅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어? 네가 웬일이냐?”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뜬 김장철이 친구를 반겼다.
 
 “웬일은 인마, 나는 이런 데 오면 안 되냐?”
 
 친한 친구를 만나니 저절로 전생의 늙은 기억은 뒷전으로 가고 스물셋, 젊은 강철웅만 남았다.
 
 “그건 아니지만, 너야 맨날 공부만 하는 녀석 아니냐?”
 “공부? 이제 졸업만 남았는데 뭘.”
 “하긴, 너 상대 수석 졸업이라며?”
 “소문이 여기까지 났냐?”
 “우리 아버지가 그러더라. 하여튼 대단하다.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이라니, 쩝.”
 
 이 친구의 아버지와 강철웅의 아버지 역시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두 분 다 월남한 피난민으로 홀아비 신세인 것도 같다.
 김장철의 어머니는 피난 중 폭격에 맞아 돌아가셨다고 했다.
 
 “야, 나가서 얘기하자. 딴 사람한테 방해되겠다.”
 
 강철웅도 노래 듣는 걸 좋아하지만 이런 외국 노래가 아닌 가요다.
 전생에서는 구멍가게를 하는 어머니가 늘 라디오로 흘러간 옛 노래를 들었고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본 게 습관이 되었는지 재벌 문제 연구소를 혼자 하면서 강철웅도 항상 라디오를 틀어놓고 오래된 노래를 즐겼다.
 
 “잠깐만 이거만 마저 듣고”
 
 흘러나오고 있는 노래는 패티 페이지의 히트곡 ‘Changing Partners’였다.
 
 “넌 계속 이러고 있을 거냐?”
 
 근처에 있는 국밥집에 자리를 잡자 강철웅이 물었다.
 
 “글쎄 뭐······.”
 
 김장철이 우물쭈물한다.
 
 “아버지가 뭐라 안 하셔?”
 “이젠 포기했는지 아무 말 없다.”
 
 김장철의 아버지는 한의사다. 그 한의원은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비방이 있어 항상 손님이 들끓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가업을 이어줄 것을 바랐지만 허구한 날 음악에 미쳐 돌아다니는 바람에 처음에는 충돌도 잦았으나, 이제는 포기하고 한숨만 쉰다고 한다.
 
 “너, 나랑 같이 사업 안 해볼래?”
 “안 해”
 “이런······.”
 
 김장철이 숨도 안 쉬고 거절하자 강철웅이 혀를 찼다.
 일은 자신이 하고 사업 밑천은 잘사는 친구한테서 조달하면 어떨까 하는 계획이 일언지하에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그럼 계속 음악이나 들으며 살겠다고?”
 
 이렇게 물었지만, 강철웅은 김장철의 마음속에 가수의 꿈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아직 잘 모르겠다. 이러다 보면 뭔가 보이지 않겠냐? 그보다 너는 어쩔 생각인데?”
 “흠~ 글쎄 뭔가 벌이고는 싶은데 마땅한 게 없네. 그거참.”
 
 친구 앞이라 그런지 혼자 고민하던 게 쉽게 입 밖으로 나왔다.
 
 “너는 뭘 해도 잘할 거니까 서둘 필요 없다. 내가 잘 안다.”
 “흐흐흐, 똑똑한 녀석. 좋다, 네 말 믿고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지. 자, 잔이나 받아라.”
 
 강철웅은 김장철의 잔에 막걸리를 그득 따라주었다.
 
 
 
 3. 종잣돈
 
 
 
 강철웅은 고민 끝에 별수 없이 집안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아버지 내일부터는 볶음밥을 낼 때 짜장을 밥 옆에 얹어주세요”
 “짜장을 같이 내라고?”
 “네, 그리고 딸려 나오는 국물도 계란탕국만 주지 말고 짬뽕 국물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세요.”
 
 볶음밥에 언제부터 짜장이 같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다만 전생에서 강철웅이 대학을 다니던 8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으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즉, 1960년인 이때 짜장 얹힌 볶음밥이 나오는 중국집은 절대 없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짜장 없는 볶음밥을 파는 중국집 또한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짬뽕 국물을 추가한 이유야 느끼한 볶음밥에는 매콤한 짬뽕 국물이 더 어울린다는 걸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나로 세 가지 맛을 만끽할 수 있는 현대식 볶음밥이 만들어졌다.
 
 “여기 볶음밥 두 개요.”
 “여기도 볶음밥으로 네 개 주세요.”
 
 짜장면을 먹으러 왔던 손님들도 볶음밥을 시키기 시작했다.
 며칠 안 있어 볶음밥 주문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우리나라는 ‘밥심’이 아닌가.
 면은 한 끼를 ‘때운다.’라는 개념이지만 볶음밥은 제대로 된 식사다.
 짜장면이나 볶음밥이나 원가는 별 차이가 안 나지만 판매가는 볶음밥이 거의 두 배나 비싸다.
 수익이 부쩍 늘었고 가게를 찾는 손님도 많아져 점심때는 문밖에 줄을 설 정도가 되었다.
 과묵한 성격이라 말은 안 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이 좀 밝아 보였다.
 짱깨집 아들다운 일을 했다.
 
 가게 문을 닫은 늦은 밤, 텅 빈 테이블에 앉은 강철웅은 턱을 괴고 하염없는 생각에 잠겼다.
 환생까지 한 마당에 볶음밥만 팔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이다.
 뭔가 일을 벌이려고 해도 종잣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같이 해서 어느 천년에 재벌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짜장면, 우동, 짬뽕, 볶음밥, 야끼만두, 탕수육··· 멍하니 메뉴판을 쳐다보던 강철웅의 뇌리에 문득 한 단어가 떠올랐다.
 
 -샥스핀! 그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잘하면 길이 보일 것도 같았다.
 
 다음 날 아침을 먹기가 무섭게 인천으로 향했다.
 구로동으로 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을 타고 인천으로 갈 수가 있다.
 하지만 강철웅은 자신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이 시대의 풍경을 더욱 자세히 살피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기로 했다.
 국도를 따라 버스는 천천히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이 당시 버스의 좌석은 오늘날과 달리 정면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지하철 좌석처럼 옆으로 길게 만들어져 승객들이 서로 마주 보며 앉게 되어 있었다.
 거리의 풍경을 볼라치면 옆으로 비스듬히 앉아 고개를 돌려야 했다.
 다행히 승객이 별로 없어 창밖을 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거리에는 2층짜리 건물도 거의 없고 전부 단층의 허름한 가게들만 줄지어 있었다.
 
 「오류 공업사」, 「경성 자전차」, 「수복당」, 「풍년 쌀집」 등의 간판이 보였다.
 자동차 수리를 하는 공업사, 자전거 수리 전문 가게, 귀금속을 팔고 시계 수리를 하는 상점들이다.
 수리 가게가 유달리 많은 게 이 당시 사정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새로 살 돈이 없으니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쳐 써야 하는 시대였다.
 
 도로변에서 상고머리를 한 어린 계집애들이 버스가 뿜어내는 시커먼 연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무줄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조그만 입을 나불거리며 무슨 노래인지를 부르는 모습이 참 천진난만했다.
 
 또 몇 정거장을 가니 꼬맹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 애들 가운데에는 달고나 장수가 있었다.
 마땅한 군것질거리가 드물던 시절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는 달고나에 아이들은 환장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달고나에 찍힌 모양을 잘 잘라내면 한 개를 더 먹는 묘미까지 있었다.
 이런 풍경을 보는 강철웅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따사로운 감정인가.
 
 버스는 미소를 실은 채 열심히 달려 드디어 인천에 도착했다.
 강철웅이 찾은 곳은 인천의 어시장, 그중에서도 상어고기를 취급하는 곳이었다.
 한 늙수그레한 사내에게 다가갔다.
 
 “저기 말씀 좀 묻겠습니다.”
 
 멀뚱히 쳐다보는 사내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강철웅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접대용으로 넣고 다니기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필터 담배인 아리랑이었다.
 처음 말문을 틀 때 담배만큼 신통한 게 없었다.
 싸구려 가루담배를 신문지에 말아 피우기도 어려운 형편에 필터 담배라니······.
 담배를 받아 드는 사내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상어를 해체하고 나서 그 부산물 처리는 어떻게 합니까?”
 “저쪽에 처리장 보이지? 저기에 갖다 버리면 청소하는 이가 모아서 가져가지. 썩혀서 퇴비로 쓴다나, 어쩐다나.”
 
 사내의 말에 자기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한 강철웅은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머금었다.
 최고급 중국요리인 샥스핀의 재료는 상어지느러미다.
 오늘날 ㎏에 30만 원씩이나 하는데, 이게 1960년대 중반까지 귀한 요리 재료인 줄 모르고 그냥 버리거나 퇴비로 썼던 게 현실이었다.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상어지느러미가 비싼 값에 거래된다는 사실을 안 이가 처음 수출을 하여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는 기사를 예전에 봤던 것이다.
 수출할 상품을 찾았으니 이제 판로를 확보해야 한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앞으로 필요한 시설인 냉동 창고 역시 눈여겨 확인했다.
 
 “내가 전에 일하던 요릿집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 집 사장의 친척이 자유중국에서 큰 식당을 운영한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내가 한번 알아보마.”
 
 지금은 대만이라 부르지만, 우리나라가 중국과 국교를 맺기 전만 하더라도 중공(중화인민공화국)에 대비하여 자유중국이라 부르며 같은 반공 국가로서 대단히 친밀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띵호와, 띵호와, 우리 사람 얼마든지 산다 해”
 
 아버지의 말대로 대만에서 요릿집을 운영하는 친척은 자신들이 평소 사던 가격의 절반 값에 주겠다는 제안에 얼씨구나 하며 당장 가져오라고 연락해 왔다.
 그때가 해가 바뀐 1961년 초였다.
 자기들이 쓰고 남으면 다른 가게에 팔아도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
 
 “앞으로 상어지느러미는 전부 제가 살 테니 버리지 말고 저쪽 창고로 가져오세요.”
 
 다시 인천으로 간 강철웅은 한 상어 취급 업자를 조용히 만나 관(貫:3.75㎏)당 300환을 지급하겠다고 제의했다.
 당시 시내버스 요금이 30환이었으니 상당히 구미가 당길 만한 금액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냥 버리던 쓰레기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업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인천항에 들어오는 상어지느러미는 모조리 가져올 테니 다른 사람한테는 입도 뻥끗하지 말아요.”
 
 누가 들을세라 잔뜩 낮춘 목소리로 신신당부까지 했다.
 강철웅이 반값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수출하기로 한 이유는 이 사업을 결코 오래 못 하기 때문이었다.
 길게 잡아도 5년만 지나면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들 테니 낮은 가격으로라도 시장을 이른 시일 안에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매입 가격이 원체 싼지라 반값만 받아도 50배나 이익이 남는 장사였다.
 
 -3년, 3년만 바짝 땡기고 손 턴다.
 
 이것이 강철웅의 계획이었다.
 어차피 종잣돈을 마련코자 시작한 사업이다. 길게 끌 이유가 없다.
 첫 수출 물량 확보와 창고 임대료는 아버지에게 빌린 10만 환으로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수출 업무를 대행해 줄 성실한 인물이었다.
 강철웅이 전생에서나 현재의 생에서나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 수출입 실무에서는 백지나 마찬가지였다.
 
 “누구지? 여기는 무슨 일로 왔나?”
 
 중화각 근처 허름한 건물 2층에 걸린 「아세아 무역」이란 간판을 보고 들어가자 삼십 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사람이 의자에 앉은 채 고개 들어 강철웅을 바라봤다.
 삼성물산에서 5년간 수출입 업무를 하다가 내 사업을 한번 해보겠다며 오퍼상을 차린 최기대였다.
 그러나 아직 나라의 경제 규모가 워낙 작아 일거리를 잡기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돈도 안 되는 자질구레한 일감을 책상에 펼쳐놓고 한숨짓던 그의 눈에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사무실 문을 활짝 열며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틀림없이 신문 구독을 권유하러 온 청년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수출 업무를 대행하지요?”
 
 청년의 뜻밖의 말에 최기대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고, 이거 실례했습니다. 자자, 이리로 앉으십시오.”
 
 손님이란 걸 알자 최기대의 자세가 순식간에 공손해졌다.
 강철웅이 계획하고 있는 상어지느러미 수출 건을 자세히 설명하자 최기대의 얼굴이 훤해졌다.
 근래 보기 드문 큰 건이었다. 그것도 최소한 3년간이나 이어질 계약이었다.
 
 “염려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잘 처리하겠습니다.”
 
 일감이 없어 곧 문 닫을 처지에 놓였던 최기대의 아세아 무역은 상어지느러미 수출 업무를 맡게 되어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수출은 순조로웠다.
 장면 총리의 제2공화국이 고환율 정책으로 정책기조를 변경한 것과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저쪽에서 가능하면 물량을 늘려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한국산 상어지느러미는 품질이 좋아 인기가 높았다.
 인천 어시장에서 수거되어 창고에 쌓이는 즉시 배에 실려 대만으로 팔려 나갔다.
 수중에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꼼꼼한 성격의 최기대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수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강철웅은 눈여겨보았다.
 
 -이 양반 생각보다 잘하네. 성실하기도 하고.
 
 그를 언젠가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인연은 오래도록 이어지게 된다.
 
 ***
 
 상어지느러미 수출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지만 나라 안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작년, 학생들의 4·19 혁명으로 정권을 거저 넘겨받은 민주당은 정권을 쥐자마자 가장 먼저 벌인 일이 파벌 다툼이었다.
 이승만의 자유당이 무너지자 민주당은 윤보선 대통령이 중심이 된 구파와 장면 총리의 신파로 나뉘어 서로 물어뜯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결국, 2월이 되자 구파는 신민당을 창당해 딴 살림을 차리고 말았다.
 
 “나라 꼬라지가 어찌 되려고······. 참 큰일이다.”
 
 가게 앞을 지나는 데모대를 바라보면서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찼다.
 4·19혁명 일주년을 며칠 앞두고 거리는 온통 데모 물결로 가득했다.
 이승만의 12년 독재를 무너뜨린 학생혁명 이후 하루도 데모가 없는 날이 없었다.
 국민학생까지 거리로 나와 ‘담임을 바꿔 달라’는 데모를 벌일 지경이니 ‘데모로 해가 뜨고 데모로 해가 진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정권 인수의 정통성이 약했던 장면 정권은 이런 상황을 그저 수수방관만 했다.
 
 -아버지, 그런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세상이 뒤집힙니다.
 
 한 달 남짓 있으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런 사실을 떠든다고 믿어줄 사람도 없겠지만 역사적 사건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강철웅이었다.
 만약 자신이 고의든 실수든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면 그만이 알고 있는 미래의 지식이 쓸모없게 된다.
 절대로 피해야 할 일이다.
 
 “저러다 조용해지겠지요.”
 
 그저 지켜볼 뿐이다.
 
 ***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5월 16일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는 대한민국 국민은 전부 얼어붙어 버렸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하루의 오차도 없이 사건이 재현되는 걸 확인한 강철웅은 5월의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길을 나섰다.
 버스가 명수대 고개를 넘어 흑석동으로 들어섰다.
 차창 밖으로 아직 한강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당히 폭이 좁은 한강의 모습이 보였다.
 이 당시 한강의 강폭은 변화가 심해 최대 2,000m에 이르렀다가도 갈수기가 되면 50m에 불과할 정도로 줄곤 했다.
 이렇게 강 수위의 변화가 심했으므로 특히 지대가 낮은 강남 지역은 심심하면 물에 잠겼다.
 
 “남편이나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
 
 강남에 살던 사람들이 흔히 하던 말이다.
 일제 강점기 때 쌓은 제방이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영등포와 노량진 일대만 겨우 지킬 수 있었다.
 즉, 여의도, 마포, 뚝섬, 강남, 잠실 일대는 홍수가 나면 몽땅 물에 잠겼고 물이 마르면 모래사장으로 변하던 지역이었다.
 
 “종점입니다. 모두 내리세요.”
 
 오는 내내 ‘오라이’와 ‘스도뿌’를 번갈아 외치던 버스 차장의 말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몇 명의 승객과 함께 강철웅은 천천히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종점인 국립묘지 부근이었다.
 
 -다음부터는 시발택시라도 대절해서 와야겠구나.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무엇보다 오늘의 목적지인 말죽거리까지 버스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게 아쉬웠다.
 그렇지만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급할 것도 없는지라 슬슬 걷기로 했다.
 5월의 하늘은 푸르렀고 구름 몇 점만 한가롭게 떠 있었으니 봄 소풍 나온 기분이 절로 들었다.
 
 주변은 온통 채소밭과 배밭이었다.
 좀 먼 곳에는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전생에 보았던 풍경과 비교해 보려 해도 어디가 어디인지 짐작조차 어려웠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말죽거리였다.
 
 옛날에 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올 적에 한강을 건너기 전 여독을 풀기 위해 마지막으로 묵었다는 곳이다.
 넓게 펼쳐진 황량한 구릉지와 배추밭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았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까지가 대충 서울의 변두리에 속했다.
 바로 앞의 너른 밭이 자리 잡은 곳은 시흥구 신동면, 앞으로 서초구가 된다.
 그 옆의 광주군 언주면과 대왕면은 몇 년 후 신사, 압구정, 도곡, 대치, 역삼, 삼성, 청담동이란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얼마 있지 않아 금싸라기, 아니, 금덩어리로 변할 땅을 지켜보고 서 있자니 가슴이 설레었다.
 
 -반갑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상어지느러미를 수출해서 번 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세운 계획을 실행하는 데에 어림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강남 땅값 폭등의 신호탄은 제3한강교의 건설이다.
 
 땅이란 농사를 짓거나 살 집을 짓는 용도로만 알고 있던 게 지금까지의 인식이었다.
 그런 땅이 머지않아 마법을 부린다. 그리고 강철웅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
 
 강철웅이야 홀로 여유작작했지만 5.16쿠데타의 영향은 태풍 서너 개를 합친 강도로 온 사회를 강타했다.
 군사정권이 민심 수습 차원에서 깡패를 잡아들이더니 다음으로 언론사의 정리가 이어졌다.
 64개 중앙일간지 가운데 15개가 살아남았고 지방지 역시 반 넘게 사라졌다.
 통신사는 316개 중 11개만이 살아남았는데 지방 통신사는 모조리 폐쇄되었다.
 이는 당시 사회악의 하나였던 사이비 기자를 척결했다는 좋은 측면도 있었으나 언론 통제라는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또 삼천 명에 달하는 병역기피 공무원을 해임한 것도 거의 같이 해치운 일이었다.
 
 군사정권이 취한 이런 일련의 조치는 훗날 강철웅이 사업을 확대하며 인재를 구할 때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외상 명세를 신고하라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밤늦은 시각 마주 앉은 아버지가 의견을 물었다.
 
 상공부 장관의 보좌관으로 임명된 해병대령이 부패 척결을 한다고 상공부 인근 술집과 밥집을 대상으로 외상이 많은 공무원 명단을 제보받는다고 한다.
 
 “다른 가게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밀린 외상값을 받을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눈치더라”
 “······.”
 “우리도 이참에 신고해서 외상값을 받도록 할까?”
 “신고하지 않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언제나 믿어 의심치 않는 똑똑한 아들의 말이었다.
 그런 아들을 잠시 쳐다본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 하마”
 
 시간이 좀 지난 후 이 일이 소문이 났다.
 의리를 지킨 중화각으로 상공부 직원들이 연일 몰려와 인근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음식점이 되었다.
 날씨가 서늘해지자 부산과 목포의 상어지느러미도 인천으로 실어오게 했다.
 그쪽에서 잡힌 것이 품질도 우수했지만, 그보다도 ‘종잣돈 만들기’에서 ‘종잣돈 불리기’라는 제2단계 작전에 돌입하기 위한 자본 확보가 시급했다.
 조만간 지느러미 수출로 번 돈을 뻥 튀겨줄 획기적인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7억 환만 마련해 주면 내가 100억 환으로 만들어주지”
 
 윤응상의 말을 들은 중앙정보부 정책연구실 행정관인 강성원 소령은 입을 딱 벌렸다.
 
 “100억··· 100억 말입니까?”
 
 “아 글쎄, 그렇다니까”
 
 이 당시 연간 주식거래대금이 40억 환에 불과했으니 7억 환이면 증권시장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거금이었다.
 충무로의 한 다방에서 강 소령을 앞에 두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이는 곧 쉰 줄을 바라보는 윤응상이란 인물이었다.
 자유당 시절에 한일증권 사장을 지냈다가 1958년 국채 파동으로 쫄딱 망해 전세방을 전전하던 자였다.
 
 민정 이양을 앞둔 군사정권은 ‘부패 정치인 규제’라는 명목으로 기존 정치인의 정치 활동을 묶어놓은 상태에서 정당 조직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후에 「민주공화당」이 되는 「재건동지회」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수만 명에 이르는 조직원을 확보, 포섭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은 천문학적이었다.
 그렇다고 부정 축재자로 몰아 구속까지 해버린 재벌들에게서 돈을 뜯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건동지회 설립 전위대로 뛰던 강성원 소령은 그 자금을 증권투자로 만들 수 있다는 윤응상의 장담을 듣자 귀가 솔깃했다.
 어렵지 않게 상부의 허가를 받아낸 강성원은 한국은행에서 빌린 5억 환을 윤응상에게 건넸다.
 
 “여기 말씀하신 자금입니다. 실패하면 같이 죽는 겁니다.”
 “흐흐흐, 걱정하지 말라니까”
 
 통장을 받아 든 윤응상이 흰 이빨을 드러냈다.
 그 돈을 자본금으로 통일증권을 설립함으로써 단군 이래 최대의 증권 투기 작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대증(大證) 주(대한증권거래소 주식)를 닥치는 대로 사들여.”
 
 당시 증권회사의 자본금이 2천만 환 정도였다.
 무려 5억 환의 자본금을 마련한 윤응상은 작전 개시의 첫 일환으로 대한증권거래소 주식의 매집을 지시했다.
 대증 주 투기가 시작된 것이다.
 
 ***
 
 -자, 움직여라, 움직여라.
 
 상어지느러미 수출로 번 돈에다 요즘 장사 잘되는 아버지에게 빌린 2백만 환을 합쳐 1천만 환이라는 실탄을 확보했다.
 대증 주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주문을 외다시피 하는 강철웅이었다.
 
 1962년에 터진 증권 파동에 대해서는 증권회사 신입사원 연수 때와 증권 연수원 교육에서 두 번이나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밥상은 꾼들이 차릴 테니 숟가락 하나만 슬그머니 올려놓으면 된다.
 과연 1월 중순에 접어들자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 돈만큼 대증 주 매수주문 내주세요.”
 
 손톱만큼의 망설임도 없이 몰빵을 찍었다.
 2월로 넘어가자 주가는 무섭게 치솟았다. 올라가는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9환 20전이 되었습니다.”
 
 연초에 90전이었던 주가가 3월 말이 되자 9환 20전까지 올라 3개월 만에 10배로 뛰었다.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호가 올려서 더 사들여”
 “열 배가 넘게 올랐는데 더 사들여요?”
 
 부하 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멍청한 녀석 같으니, 이럴 때일수록 더 세게 밀어붙이는 거야. 잔말 말고 질러”
 
 윤응상은 거칠 게 없었다.
 이미 시장은 자신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사장님 20환이 넘었습니다.”
 
 4월에 접어들자마자 다시 두 배 이상 올랐다.
 객장이 술렁거렸다.
 
 “아니, 도대체 대증 주가 왜 이렇게 오르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무슨 선불 맞은 호랑이처럼 아주 난리구먼.”
 “자네 그 얘기 못 들었나?”
 “무슨 얘기?”
 “재일 교포들이 주식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거야.”
 “아니, 왜?”
 “일본의 주식가격은 우리나라보다 스무 배나 비싸다는구먼. 그래서 싼 우리나라 주식을 마구 사들이는 거래.”
 
 증권사 객장에 바글바글 몰려든 사람들 속에서 개인투자자로 보이는 사내들이 수군거리자 옆에 있던 다른 사내가 끼어들었다.
 
 “아니야, 내가 듣기로는 정부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증권시장을 육성한다나 봐. 이제 곧 발표할 거란 소문 때문에 가장 큰 수혜 주인 대증 주가 오르는 거라는데.”
 
 주가가 폭등하자 온갖 유언비어가 난리 블루스를 추었다.
 달콤한 유언비어는 사람들을 환상에 빠뜨렸다.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너도나도 추격매수 하느라 눈이 시뻘겠다.
 사채꾼, 기업인, 장사치, 일반인 할 것 없이 전부 아우성을 쳤다.
 시중의 유동자금이란 유동자금은 몽땅 증권회사가 밀집한 명동으로 몰려들었다.
 
 “드··· 드디어 50환을 돌파했습니다. 사장님”
 “그래? 그럼 지금부터 슬슬 풀어볼까?”
 
 회심의 미소를 지은 윤응상이 매집한 물량을 내놓기 시작했다.
 거래량이 폭주하며 월평균 거래대금이 20억 환에 불과하던 것이 무려 1,100억 환으로 치솟았다.
 꼭대기임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 계좌에 있는 주식 전부 매도해 주십시오.”
 “전부요?”
 “예, 몽땅”
 
 강철웅은 평균 단가 1환에 사들인 주식을 50환을 넘는 순간 모조리 팔아치웠다.
 4개월이 채 안 되어 50배의 수익을 달성했다.
 이로써 종잣돈은 5억 환으로 불어났다.
 대증 주는 4월 말에 60환이라는 최고점을 찍음으로써 피날레를 장식하고 폭락으로 돌변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150분의 1토막인 40전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작전세력은 수십억 환을 챙겼고 언제나 그렇듯 뒤늦게 달려든 일반 투자자들은 쪽박을 찼다.
 
 5억 환이 찍힌 통장을 보며 강철웅은 쓴웃음을 지었다.
 전생에 그렇게 욕했던 증권 투기, 땅 투기로 돈을 벌고, 또 돈을 벌 생각을 하는 자신의 지금 모습 때문이었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내 인생에 있어 어설픈 동정심이나 설익은 정의감 따위는 없다. 정승같이 쓸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개같이 벌어들이겠다.
 
 5억 환을 벌었다고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곧 있을 중요한 사건에 대비해야 했다.
 
 ***
 
 “아버지, 금을 좀 사놓아야 하겠습니다.”
 
 빌렸던 돈을 갚으며 강철웅은 자신이 가진 현금을 금으로 바꿀 계획을 밝혔다.
 
 “어느 정도나 사려고 하느냐?”
 “가진 돈 전부 다 살 생각입니다.”
 
 증권투자로 5억 환을 벌었다고 하자 아버지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 5억 환으로 몽땅 금을 사겠다고?”
 “그럴 계획입니다.”
 “5억 환씩이나 금을 사려면 보통 일이 아닌데 그렇게 하려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느냐?”
 “조만간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아직 확실치 않아서 자세한 말씀은 못 드리지만 돈보다는 금을 가지고 있는 게 좋아 보입니다.”
 
 한국은행 총재도 모르고 있었던 화폐개혁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알겠다. 그렇게 하도록 하마”
 
 천만 환을 가지고 5억 환을 만든 아들이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부터 아버지는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돌며 금을 사들였다.
 
 “금을 좀 살까 합니다.”
 
 가능한 한 규모가 큰 금은방을 골라 들어갔다.
 
 “어디 선물하실 건가요? 손님”
 “아니, 그냥 집에 둘 겁니다.”
 “그러시다면 여기 이 금두꺼비가 어떻습니까? 아니면 그 옆에 있는 거북이도 좋지요. 거북이는 천 년을 산다지 않습니까. 이런 거 하나 집안에 척 갖다 놓으면 복이 절로 오지요.”
 
 금은방 주인이 수다스럽게 입을 놀렸다.
 
 “이런 것 말고 금괴도 있습니까?”
 “금괴요?”
 “왜, 없습니까?”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없다니요. 많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금은방 주인은 비로소 범상치 않은 손님임을 깨달았다.
 어젯밤 꿈에 돼지가 얼굴에 똥을 싸더니 이런 손님이 오려고 그랬다는 생각에 입이 쫙 벌어졌다.
 이렇게 5억 환어치나 금괴를 사들였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새파란 나이의 강철웅이 이런 일을 했다가는 전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을 게 틀림없다.
 5월 한 달을 가게 일을 팽개치다시피 하고 돌아다닌 끝에 5억 환어치의 금괴가 안방 금고를 가득 채웠다.
 
 기다리던 6월 9일이 되었다.
 
 “10일 0시를 기해 기존의 10환을 1원으로 변경한다.”
 
 군사정권에 의해 화폐개혁을 단행한다는 발표가 터져 나왔다.
 구권의 사용을 일절 금지하고 가진 돈을 6월 17일까지 전부 은행에 예치하라는 정부의 강압적 조치가 떨어지자 난리가 났다.
 특히 이날은 통금 시간까지 앞당겨졌는데 귀가를 서두르던 시민들이 택시를 잡으려 해도 택시가 서지를 않았다.
 택시기사가 구권은 이제 소용없다며 승차 거부를 한 탓이다.
 
 쌀집이나 포목상에는 늦은 밤에도 현찰을 들고 와 쌀을 사거나 치마저고릿감을 끊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한 푼의 현금이라도 물건으로 바꾸어놓으려는 사람들이 서로 멱살잡이를 벌였다.
 일반인이 이 정도였으니 현금을 많이 들고 있던 부자나 사채업자들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었다.
 17일까지 예치하지 않으면 구권은 휴지 쪼가리가 된다는 정부의 발표에 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든 현금을 소진할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느냐?”
 “주식 투자를 하다가 우연히 들었습니다.”
 
 귀신도 몰랐던 정보를 알아낸 아들이 신통방통했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는데 더 물어볼 말도 없었다.
 
 “알겠다. 그럼 가보도록 하자.”
 
 가까운 금은방에 금을 좀 팔고 싶다는 말을 슬쩍 흘리자 득달같이 연락이 왔다.
 
 “이분께서 강 사장님이 갖고 계신 금을 전부 사시겠다는데 양이 얼마나 됩니까?”
 
 ‘금괴를 좀 가지고 있다’라고만 했는데 정확한 양도 모른 채 몽땅 사겠다고 한다.
 하긴 중국집 주인이 금을 가지고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할 만도 했다.
 거간을 맡게 된 금은방 주인은 복덕방 영감처럼 구문을 먹게 된 처지라 연신 아첨 끼 어린 웃음을 흘렸다.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무게를 잡는 아버지 대신 강철웅이 입을 열었다.
 
 “100냥짜리 금괴가 50개, 50냥짜리가 30개입니다.”
 
 마주 앉아 있던 중절모를 손에 든 사내가 상체를 세우며 눈을 크게 떴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물량에 놀란 모양이다.
 
 “전부 파신다는 말씀이지요?”
 “시세만 맞으면 몽땅 넘겨드리지요.”
 “김 사장, 그럼 전부 해서 얼마야?”
 
 중절모의 사내가 금은방 사장을 돌아보았다.
 
 “에~ 설라무네, 한 돈이 7,600환이니 100냥이면 7백60만 환이고 10환이 1원이니······.”
 
 싸게 사들이면 구문을 더 주겠다고 했는지는 몰라도 금은방 주인은 신이나 흥얼거리며 엉뚱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하아, 이 양반이 지금 장난하나?
 
 “아버지 일어나시죠. 상대할 가치가 없네요.”
 
 기가 찬 강철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아니, 왜 그러시나?”
 
 당황한 금은방 주인이 말을 더듬었다.
 
 중년의 사내도 돌발 상황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여실했다.
 
 “이것 보십시오. 100환 하던 찻값이 150환이 되었고, 250환이던 새나라 담배 한 갑이 400환을 줘도 구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런데 화폐개혁 전의 도매시세를 읊고 있다니, 지금 우리 불러다 놓고 장난하는 겁니까?”
 
 강철웅의 말에 찔끔한 금은방 주인이 고개를 숙였다.
 시세에 어두운 일반인으로 보고 거저먹으려다 한 방 먹었다.
 
 “우리 가게 단골이신 어떤 고위층의 부탁으로 하는 일입니다. 금괴값은 전부 해서 10억 환으로 단돈 1환도 에누리는 없습니다. 싫다, 좋다만 얘기하세요.”
 
 강철웅의 선언에 사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단 하루 만에 두 배의 값을 줘야 하니 속이 매우 쓰릴 터였다.
 
 “잠깐 전화 좀 해보고 오겠소이다.”
 
 사내는 상의해 보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상의하나 마나 당신네한테 선택의 여지는 없어.
 
 안으로 전화를 하러 가는 사내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강철웅은 고소를 머금었다.
 구권은 통용이 안 되고 시간이 지나면 휴지가 된다.
 은행에 예치한다 해도 고작 500원까지만 인출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집안에 짱박아놓은 현찰은 애물덩어리일 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알다시피 구권은 못 쓰게 될 텐데 어째서 구권을 받고 금괴를 팔려는지 말입니다.”
 
 통화를 마치고 나온 중년의 사내는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 궁금하기도 할 거다. 누가 봐도 미친 짓일 테니.
 
 “그건 우리도 모릅니다. 그 고위층 양반이 알아서 하겠지요. 우리야 부탁 들어주고 수수료만 챙기면 그만이니까요.”
 
 높은 놈이니까 남들이 모르게 빠져나갈 구멍이 있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흠~”
 
 제 코가 석 잔데 더 이상 남 신경 쓸 겨를이 있을까.
 강철웅이 부른 가격대로 매매가 성립되어 다음 날 금을 건네고 10억 환을 받아 은행에 입금했다.
 
 “돈이 불어난 것은 좋지만 찾지도 못한다는데 어쩌려고 그러느냐?”
 
 지금까지 말없이 아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걱정된다는 말투로 물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은행에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1인당 500원밖에 찾을 수가 없다지 않은가.
 집안에서 잠자고 있는 돈을 끌어내어 산업 자본화하려는 군사정권의 의도였다.
 
 “괜찮을 겁니다.”
 
 강철웅이 아버지를 돌아보며 씩 웃고는 힘차게 걸어갔다.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 없자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했다.
 게다가 화폐개혁을 미리 통보받지 못한 미국이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왔다.
 기존의 원조를 50%나 삭감하겠다는 미국의 협박은 가난하기 짝이 없는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군사정권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었다.
 결국, 군사정권은 시행 한 달 만에 항복하고 예금 동결을 전면 해제하고 만다.
 은행에 예금해 놓은 구권을 얼마든지 신권으로 찾게 되었다는 소리다.
 야심 차게 시행한 화폐개혁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지만, 강철웅의 ‘종잣돈 불리기’는 성공적으로 마감하였다.
 신권 1억 원을 손에 쥐었으니 오늘날의 가치로 볼 때 40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
 
 키가 껑충한 사내가 다방에 들어서자 강철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강철웅입니다.”
 “아, 예. 정만수라고 합니다.”
 
 정만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강철웅의 맞은편에 앉으면서도 얼굴에서 의아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하하, 정 기자님은 제가 너무 젊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네, 아닌 게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젊어 좀 놀랬습니다.”
 
 어제 강철웅이 5.16 직후 군사정권에 의해 해체된 언론사 중 하나인 경인신문의 기자였던 정만수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나왔는데 마주 앉은 이가 자신보다 적어도 네댓 살은 어려 보였으니 정만수는 좀 어리둥절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뭐, 그냥저냥 지내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실업률이 30%에 육박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마당에 다니던 직장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어버렸으니 마땅히 갈 곳이 있을 리 없다.
 신문기자는 상당한 지식 계층이다.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이런 지식인을 룸펜(Lumpen)이라 불렀다.
 이 당시는 룸펜이 허다했고 정만수 역시 룸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강철웅이 많은 실직 기자 중에서 정만수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쓴 기사들이 논조가 날카롭고 발로 뛰며 취재한 느낌을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기업체나 군부대를 찾아가 온갖 건수로 돈을 뜯어내고, 기사라고는 책상에 앉아 다른 신문을 슬쩍 베껴 써내는 여타 기자와는 확연히 달랐다.
 
 “실례지만 어떤 사업을 구상 중이신지요?”
 
 같이 일해보자고 불러냈으니 당연한 질문이다.
 
 “우선은 국채 수집하는 일을 할 생각입니다.”
 “국채라면?”
 “온 나라, 집안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지가증권과 건국국채를 사들이려고 합니다.”
 “네······.”
 
 잠시 말이 없는 모습을 보아 강철웅이 벌이고자 하는 사업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모양이었다.
 
 “그러려면 상당한 돈이 있어야 할 텐데요?”
 
 정만수는 강철웅이 계획하는 일이 대충 짐작은 되었다.
 전국을 대상으로 조직적인 사업을 벌여야 하는데 한두 푼 가지고 될 일이 아니었다.
 물음 속에는 나이도 얼마 안 되는 당신이 그만한 돈을 가지고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담겨 있었다.
 
 “그건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강철웅은 물 잔을 들어 가볍게 목을 축이고는 현재 보유한 1억 원의 자본금을 마련한 과정을 대충 풀어서 설명했다.
 
 “그···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아버지한테 빌린 1만 원(10만 환)을 불과 1년 반 만에 1만 배인 1억 원으로 불렸다는 말에 정만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 기자께서 믿든 안 믿든 전 사실을 말했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정만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20년 안에 이병철 회장의 삼성보다 더 큰 기업을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 최고의 기업을 한번 만들어보지 않겠습니까?”
 
 강철웅의 열띤 말에 정만수는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4. 교통사고
 
 
 
 60년대 초반인 현재 우리나라 최대 재벌은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거느린 삼성그룹이다.
 시중에는 오래전부터 ‘돈병철’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이병철 회장은 최고의 부를 과시하고 있었다.
 1970년대 들어 삼성그룹으로부터 재계서열 1위를 빼앗는 정주영의 현대는 아직은 미미한 존재였다.
 현대건설, 현대시멘트, 금강스테이트 이렇게 계열사가 달랑 세 개였으니, 감히 삼성과 견줄 형편이 아니었다.
 그런 삼성을 능가하는 기업체를 세우겠다고 한다.
 
 ‘이 친구 정신이 이상한 건 아니겠지?’
 
 곧 드러날 일을 가지고 속일 리는 없을 테니 과대망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돈을 번 재주가 예사롭지가 않다.
 그렇다면 그는 돈 버는 데 있어 천재적 감각이 있거나 아니면 하늘이 내린 재운을 타고난 사람임이 분명하다.
 사실 둘 중에 아무것이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삼성을 능가하겠다’라는 목표가 비록 미달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성취 가능성이 엿보였다.
 거기다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답지 않은 노숙함마저 풍겨왔다.
 윤기가 흐르는 얼굴을 보지 않았더라면 사오십 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정만수는 어느덧 자신의 심장이 힘차게 뛰는 게 느껴졌다.
 백수로 빈둥거린 지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운 좋게 다시 기자 생활을 하더라도 과연 이 정도 짜릿한 기대감을 줄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정만수는 강철웅이 내민 손을 잡았다.
 
 ***
 
 「대한물산」
 
 드디어 회사를 세웠다.
 
 ‘물산’이란 이름을 단 이유는 그 안에 금융, 무역, 건설 등 여러 가지 사업 부문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채권업무는 대한물산 내의 ‘금융사업부’에서 전담했다.
 금융사업부 사업부장 직책을 맡게 된 정만수는 젊고 똘똘한 후배 네 명을 영입하여 체제를 구축했다.
 
 ‘닭이 천 마리면 봉이 한 마리’라고 했다.
 해체된 언론사 안에도 쓸 만한 인재는 있었다.
 이들은 전국을 네 개의 권역으로 각각 나누어 맡았다.
 
 “개인들이 보유한 국채는 대부분 소액권입니다. 게다가 장기 분할상환과 낮은 이자율 때문에 만기까지 보유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반인들은 채권 투자수익률에 무지하다는 걸 명심하세요.”
 
 강철웅은 금융사업부 직원들을 모아놓고 핵심 사항을 주지시켰고 나머지는 정만수가 맡았다.
 
 “고물상으로 가던 걸 전부 우리 쪽으로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1할은 더 쳐줘야 할 텐데요.”
 “상관없어. 20%까지는 재량권을 줄 테니까 알아서들 사들여”
 
 당시는 채권을 엿이나 강냉이로 바꿔먹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이렇게 엿장수가 사들인 채권을 기존에 거래하던 고물상이 아닌 대한물산으로 넘기게 하라는 지시였다.
 외무 사원을 모집해 가가호호를 돌며 집안에 처박아둔 지가증권과 건국채권을 싸게 사들이게 하였다.
 
 지가증권(地價證券)이란 1949년 이승만의 제1공화국이 농지개혁법을 실시하면서 소작인들에게는 농지를 주고 지주들에게는 농짓값을 보상해 주기 위해 발행한 최초의 정부 발행 공채다.
 불행히도 농지개혁 시행 3개월 만에 한국전쟁이 터져버렸다.
 부산까지 피난 온 지주들은 먹고살기 위해 가지고 있던 지가증권을 헐값에 내다 팔았다.
 지가증권의 가격은 연일 폭락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휴지나 다름없던 지가증권을 정부가 액면 금액만큼 적산 불하 대금으로 사용하게 해주자 가격이 액면가의 50%까지 뛰어올랐다.
 가마니에 쑤셔 담아 거의 휴지값으로 무게를 달아 거래되던 지가증권이었다.
 싸게 사놓았던 지가증권으로 정부 정책을 적절히 활용하여 재벌의 기초를 닦은 이들이 있었다.
 선경의 최종건, 두산의 박두병, 그리고 한국화약 그룹을 세운 김종희였다.
 
 이와 달리 정부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량으로 발행한 게 건국국채였다.
 건국국채의 이율은 연 5%에 불과하여 이 당시의 엄청난 물가상승률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았다.
 정부는 애국 국채란 이름으로 강제로 할당해 팔아먹었다.
 
 ***
 
 대한물산의 외무 사원과 기존의 개인 영세업자 간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아니, 이보쇼. 가격을 그렇게 쳐주면 어떡하겠다는 거요?”
 “그게 무슨 말이오? 정당한 값을 지급하고 사들이는 건데 뭐가 문제요?”
 
 골목골목을 돌며 후한 값을 주며 채권을 싹쓸이하자 항의를 해온 것이다.
 
 “그렇게 비싸게 쳐주면 우린 뭘 먹고 산다는 말이오?”
 “어허~ 이렇게 줘도 많이 남는구먼, 무슨 엄살을 그렇게 합니까?”
 “아니, 그래도 상도의라는 게 있지.”
 “이보시오. 그러지 말고 우리 회사에 들어오시오. 그래서 함께 일하면 되지 않겠소.”
 
 이런 식으로 결국 경쟁에서 밀린 영세업자들은 대한물산의 외무 사원으로 흡수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물산은 우리나라 소액채권 시장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강철웅이 국채 수집 쪽에 먼저 손을 댄 데는 앞으로 벌일 여러 개의 사업을 뒷받침해 줄 ‘현금창출원(Cash cow)’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
 
 “아니, 저··· 저런.”
 
 대한물산의 사무실은 증권회사가 몰려있는 명동과 중화각 사이인 을지로에 자리 잡고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보고 나오던 강철웅의 눈에 골목길에서 사람을 치고 달아나는 차 꽁무니가 보였다.
 아직 서울 시내를 굴러다니는 차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교통문화 수준 또한 낮았다.
 보행자의 도로 무단횡단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음주운전은 단속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강철웅이 뛰어가 보았지만 차는 이미 사라졌고 치인 사람만 골목에 나뒹굴고 있었다.
 전형적인 뺑소니 사고였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채 쓰러져 있는 젊은이를 몇 번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 이거 어떡하나?
 
 119에 연락을 해야겠는데··· 순간적으로 주머니를 뒤졌지만, 핸드폰이 있을 리 없다.
 주위를 둘러봐도 마침 어두운 골목길이라 불 켜진 가게 하나 눈에 띄지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은커녕 개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이라 마음만 급해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둘러업고 근처 병원으로 달렸다.
 
 -내가 운 좋게 살아나서 이런 일을 겪는 건가? 한 번 살려줬으니 너도 누군가를 살리라고?
 
 업힌 부상자의 몸이 자꾸 옆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애써 추스르는데 이런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거리가 적어도 100m는 넘어 보이는 병원 간판을 향해 정신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이봐 정신 차려. 죽으면 안 돼!
 
 숨을 헐떡이며 뛰면서도 자신에게 부여된 시험에 실패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강철웅은 더욱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늦은 시간이라 혹시라도 의사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가슴을 조여왔다.
 
 “교통사곱니다. 여봐요? 의사 있습니까?”
 
 병원 문을 머리로 밀며 들어가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시내 병원이라 그런지 다행히 당직 의사가 있었다.
 
 “어서 여기에 눕히세요.”
 
 젊은 의사와 간호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피투성이 부상자를 침상에 눕혔다.
 밝은 빛 아래서 본 사내는 상당히 앳된 얼굴이었다.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의식이 없는 게, 의료 지식이라고는 거의 없는 강철웅이 보기에도 중상임이 분명했다.
 의사는 바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잠시 후 당직의로부터 연락을 받은 병원장이 급하게 달려와 환자 상태와 X-Ray 사진 등 검사결과를 자세히 살폈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고 있어서 바로 수술을 해야겠습니다. 보호자께서는 어서 수술 동의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보호자? 내가?
 
 잠깐 멈칫거리던 강철웅이 마음을 정한 듯 재빨리 서류를 써 내려갔다.
 늦은 시각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가족을 어떻게 찾겠는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 졸지에 보호자가 되어 동의서를 쓰고 수술 보증금을 냈다.
 
 “선생님 혈액이 부족합니다.”
 “어서 백병원으로 사람을 보내서 혈액을 가져오지 않고 뭐 하고 있나?”
 
 피가 부족하다는 간호원의 말에 얼굴을 굳힌 원장은 백병원으로 가서 혈액을 공수해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당시는 서대문 적십자병원, 서울대 부속병원, 성모병원, 백병원 등 서울 시내 9개의 대형병원에는 400원을 받고 380㏄의 피를 뽑아 파는 가난한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백병원이 이곳에서 가장 가까웠다.
 
 “제가 O형입니다.”
 
 옆에서 대화를 들으며 초조해하던 강철웅이 불쑥 말했다.
 
 “아, 그래요? 그럼 우선 급한 데로 피를 좀 뽑겠습니다.”
 
 반기는 의사의 말에 팔을 걷고 누웠다.
 젊은 친구가 아직 하늘나라로 갈 때가 아니었는지 수술은 잘 끝났다.
 
 -후유~ 이로써 빚을 얼마라도 갚은 셈인가······?
 
 회복실로 옮겨지는 환자를 보며 환생한 덕분에 사람 하나를 살렸다면 조금이라도 새 생명 값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처를 남긴 강철웅은 새벽 4시, 통행금지가 해제되자 집으로 돌아갔다.
 
 ***
 
 “지프는 아니고 분명히 승용차였습니다.”
 
 잠시 눈을 붙이고 늦은 아침을 두어 숟갈 뜨기가 무섭게 종로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서로 출두하여 목격한 내용을 진술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승용차라면 시발 세단 아니면 새나라 자동차일 텐데······.”
 
 진술을 듣던 나이 지긋한 형사가 중얼거렸다.
 
 “차폭이 좁았으니 새나라 자동차 같습니다.”
 
 강철웅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이 진술로 범위가 많이 좁혀졌다.
 시발 세단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최초의 세단형 승용차로 9인승이라 차폭이 넓었다.
 반면 수입 문제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나라 자동차는 일제 「블루버드」를 그대로 들여왔으므로 상대적으로 차폭이 좁았다.
 
 “이봐,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 자동차 수리상들 몽땅 뒤지고, 주소가 서울로 등록된 새나라 자동차 차주들 전부 조사해.”
 
 나이든 형사의 지시에 둘러섰던 여러 명의 젊은 형사들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이런 광경이 자신이 알고 있던 이 시대의 경찰상과는 판이하다는 생각에 강철웅은 은근히 놀랐다.
 60년대 경찰이 이렇게 열심히 일했던가?
 어쨌든 수사가 활기 띠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병원으로 향했다.
 환자의 상태가 궁금해서였다.
 
 “보호자님, 말씀드렸던 그분이 오셨습니다.”
 
 강철웅이 들어서는 것을 본 간호원이 병상 옆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던 사내에게 급히 다가가 알렸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큰일 났을 거라고 하더군요. 제 동생을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급히 일어선 사내가 강철웅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분이 환자의 형님 되시는데 다행히 환자의 소지품에 수첩이 있어 아침 일찍 연락이 닿았습니다.”
 
 간호원의 설명에 강철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요. 그런데 환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갈비뼈가 세 개나 부러졌지만, 다행히 머리 쪽은 이상이 없어 두어 달 고생하면 완치될 거라 합니다. 선생님은 제 동생 생명의 은인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중상을 입은 동생을 업고 와 자비로 수술까지 시켜준 데다 피까지 뽑았다는 말을 듣고도 감동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새나라 자동차를 탄 놈의 짓이라고 경찰서에서 온 연락을 받았습니다. 서울 시내, 아니, 전국을 뒤져서라도 그놈을 꼭 잡을 겁니다.”
 
 형이라는 사내가 붉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이를 악물었다.
 하나뿐인 동생이 장가도 못 가보고 하마터면 컴컴한 골목길에서 과다 출혈로 죽을 뻔했으니 뺑소니친 놈을 잡으면 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강철웅은 좀 전에 자신이 진술한 내용을 벌써 연락받았다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경찰이 이토록 빠르고 친절하게 피해당사자에게 연락을 주었다니, 21세기 경찰보다 낫지 않은가?
 
 
 
 5. 사업 개시
 
 
 
 “이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경황이 없어서··· 동생이 좀 나으면 바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사내의 얼굴에는 진정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었다.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 새 생명 값의 일부를 갚았을 뿐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건 제 명함입니다. 혹시라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연락 주십시오.”
 
 여전히 60년대 경찰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에 잠겨 있던 강철웅에게 사내가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동양화학 주식회사 관리과장 탁성호」
 
 탁씨가 드문 성씨라 병원에서도 쉽게 가족이라 판단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 네”
 
 의례적인 인사려니 하고 명함을 집어넣는 강철웅의 귓가에 탁성호라는 사내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정입니다.”
 
 순간 침을 삼킨 강철웅이 사내를 다시 쳐다봤다.
 중정? 중정(中情)이라면 중앙정보부가 아닌가.
 하늘 높이 나는 새도 ‘떨어져라’ 하면 떨어진다는 바로 그 중앙정보부였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종로경찰서에서 본 경찰들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와 탁성호에게 수사 진행 상황이 바로 보고된 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강철웅은 중앙정보부 요원이라는 탁성호를 주의 깊게 살폈다.
 말끔한 양복 차림에 포마드가 발라진 머리는 단정히 빗어 넘겨져 있었다.
 나이는 자신보다 조금 많은 듯했고 약간 각진 얼굴과 넓은 어깨가 군인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정보부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그의 눈빛이 대단히 강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동생분이 빨리 쾌차하기를 바랍니다.”
 
 병원 문밖까지 따라 나온 탁성호와 굳게 악수를 했다.
 이것이 중앙정보부 요원인 탁성호와 강철웅의 첫 만남이자 인연의 시작이었다.
 
 「현직 부장검사 뺑소니 혐의로 체포」
 
 그로부터 닷새 후 신문에 난 1단짜리 기사였다.
 강철웅은 불과 며칠 만에 현직 부장검사를 잡아들인 정보부의 힘을 새삼 느꼈다.
 
 “중앙정보부라······.”
 
 탁자에 신문을 내려놓은 강철웅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
 
 서울은행 명동지점을 향하는 강철웅의 눈에 곳곳에 걸려 있는 현수막이 보였다.
 거리는 온통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제5대 대통령 선거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공화당을 창당하여 결국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이에 맞서는 민정당의 윤보선은 가장 강력한 야당 후보였다.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박정희가 당선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강철웅은 입맛을 다시며 지점장실로 들어갔다.
 
 “대한물산의 장기보유 계정에 있는 채권과 새로 사들일 공장용지를 담보할 테니 5천만 원을 대출해 주십시오.”
 
 금융사업부에서 하는 국채 장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매월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어 구상하고 있는 차기 사업을 위한 자금 확보는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강철웅은 은행 돈을 끌어 쓰는 쪽을 택했다.
 대출 이자율보다 물가상승률이 높은 현 상황에서는 대출을 최대한 받아 실물에 투자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젊은 분이 사업을 크게 하시는군요. 말씀하신 대로 회사가 현재 수익이 잘 나고 전망도 좋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저희 은행과 거래실적도 없는데 5천만 원은 무립니다. 한 3천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습니다만.”
 
 지점장은 사십 대 중반 정도 돼 보였다.
 
 비대한 체구답게 9월도 보름이나 지났건만 이마에 맺힌 땀을 연신 훔치며 슬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철웅 역시 단번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 당시 은행 문턱이 얼마나 높으며 은행원이란 인간들이 돈 빌리는 사람에게 얼마나 고자세를 취하는지 익히 알고 있어서였다.
 
 “50만 원 넣었습니다. 약소하지만 직원들하고 식사나 한번 하십시오.”
 
 강철웅이 품에서 흰 봉투를 꺼내 탁자에 내려놓자 금세 방 안 공기가 달라졌다.
 
 “어이구 뭐 이런 거를··· 젊은 분이 성격도 화통하신 걸 보니 사업도 잘하시겠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보지요. 허허허.”
 
 지점장은 두꺼비 파리 삼키듯 얼른 챙겨 넣었다.
 2천 년대에도 별반 나아진 건 없지만 기름을 칠하지 않으면 잘 안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점장실 밖까지 환송 나온 지점장과 악수를 했다.
 그래도 밖에까지 나왔다 함은 쓸 만한 거래처라 판단했다는 뜻이다.
 시원찮다고 느꼈다면 점장실 안에서 그냥 빠이빠이 했을 터였다.
 
 물론 최고의 고객이라면 은행 문밖까지 나가서 조폭 저리 가라 식으로 허리를 꺾었을 것이다.
 
 -당신, 운수 대통한 줄이나 알아.
 
 우수한 거래처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는 지점장이 유능한지에 대한 판단의 척도다.
 앞으로 무한히 뻗어나갈 대한물산의 주거래은행이 된다는 말은 지점장의 출세 가도가 보장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근처에 서울은행뿐만 아니라 조흥은행, 제일은행, 상업은행 등 우리나라 은행이라는 은행은 다 모여 있는데 굳이 서울은행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강철웅이 구한 청년의 이름은 탁민호였다.
 그가 이곳 서울은행 명동지점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보부는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기관이고 탁성호는 내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뜻밖의 인연이지만 나쁘지 않다.
 강철웅은 이들 탁씨 형제와의 유대 관계를 더욱 다지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
 
 5천만 원을 대출받은 강철웅은 그중 2천만 원은 금융사업부로 돌렸다.
 채권의 경우 만기에 가깝게 보유할수록 수익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그만큼 돈이 잠기는 단점이 있으므로 추가 자금을 투입하여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이 나도록 조처했다.
 
 ‘가발’ 이것이 강철웅이 두 번째로 선택한 사업 품목이었다.
 1963년인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은 중석(텅스텐), 생사, 김, 전복, 오징어 같은 1차 생산물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공산품은 외국에 팔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럴 때 혜성같이 등장한 수출품이 바로 가발이었다.
 가발은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치 않고, 설비투자자금도 얼마 들지 않는다.
 값싼 인건비를 주 무기로 삼는 개발도상국의 전략산업에 딱 들어맞는 품목이었다.
 내년인 1964년에 서울통상이 1만4천 불어치를 미국으로 처음 수출함으로써 그 황금기가 시작된다.
 직원 10명의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서울통상은 이후 가발 수출 1위 업체로 성장하여 준재벌의 위치에까지 오른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강철웅이 선점을 위해 영등포에 공장터를 장만하였다.
 
 ***
 
 3년째로 접어든 상어지느러미 수출은 벌써 벌레가 꼬이듯 경쟁업자가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어 수출 물량 확보가 어려워졌다.
 이에 원래 계획대로 올해 말까지만 하고 이 사업은 접기로 마음먹었다.
 수중에 땡전 한 푼도 없었을 때야 지느러미 수출이 짭짤한 수입원이었지만 이제는 일 년 수입이라고 해봐야 금융사업부 한 달 치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최기대의 처지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아이고 사장님, 상어지느러미 수출을 종료하신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나마 수출대행 업무를 하며 근근이 버텨오던 최기대가 화들짝 놀랐다.
 
 “지느러미 수출은 접지만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최 사장님은 저보다 경험이 많으니 더 잘 아시겠지만, 무역만큼 매력적인 게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최기대도 그렇게 생각하였으니 잘나가는 회사를 뛰쳐나와 어렵지만, 무역 업무를 계속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 땅 넓이는 전 세계 면적의 0.07%에 불과합니다. 인구는 또 어떻습니까. 우리끼리야 바글바글하다고 느끼겠지만 고작 세계 인구의 0.68%밖에 안 됩니다. 국내시장보다 1,400배나 넓고 인구로는 150배에 가까운 거대한 시장을 상대로 하는 게 바로 무역 아니겠습니까?”
 
 전생에서 연구소 생활할 때 외운 숫자라 지금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까짓 게 무슨 상관이랴.
 중요한 건 최기대, 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앞으로 벌일 가발 사업은 전량 수출에 의존한다.
 최기대의 무역 실무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저와 함께 세계를 상대로 일해봅시다. 가발 수출을 책임져 주십시오.”
 
 이렇게 하여 최기대는 결국 아세아무역을 접고 강철웅의 사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댓글(1)

반길    
좀 답답한 부분들도 있고, 눈쌀 찌푸려질 정도의 꼰대 마인드가 녹아든 부분들도 있지만 글 자체는 무난한 환생 재벌물입니다. 하지만 결말이 너무 황당한 시점에서 나오기 때문에 추천하기는 애매한 느낌이네요...
2019.12.09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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