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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가드 : 전설의 시작 1권 (1)

2019.12.05 조회 1,882 추천 7


 - Prologue -
 
 
 보글보글
 그곳은 대단히 음침한 장소였다. 등불이 있었지만, 주변을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어두웠고, 거기에 있는 것 모두 결코 좋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실험실인지 수많은 플라스크가 있었는데, 그 모든 플라스크는 도마뱀이나 다람쥐 등의 시체를 담은 채 미약한 불에 의해 끓고 있었다.
 누구라도 보면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될 법한 그 장소에는, 놀랍게도 사람이 존재했다.
 “···상황은 좀 어떤가?”
 장소만큼이나 오싹하게 느껴지는 중후한 목소리였다.
 또한, 그는 마치 자신의 존재를 결코 세상에 알리기 싫다는 듯 전신을 검은 로브로 감싸고 있었는데, 목소리로 보아 아무래도 남성인듯싶었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밖으로 나간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남성의 옆에는 다른 남성이 한 명 더 있었다. 그 또한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헌데 그 목소리에 약간 난처한 느낌이 없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무언가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다.
 “그래···.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거라면 나갔다고 보는 게 맞겠지···.”
 처음에 상황을 물은 남성은 상대의 의견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면서 중얼거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수색은 중지한다. 지금 당장 전부 복귀시키도록.”
 “저, 정말로 그래도 괜찮을까요?”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보고를 올리던 이는 그의 명령에 말을 더듬으면서 물었다.
 명령을 내린 이가 그에게 말했다.
 “어차피 놈은 실패작···. 그 몸으로는 오래 못 산다. 행여 우리까지 밖으로 나갔다가 사람들에게 들키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지···. 너도 알다시피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지금 즉시 명령을 하달토록 하겠습니다.”
 보고를 올리던 이는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말하고는 그대로 그 자리를 이탈했다.
 어르신이라고 불린 이는 혼자 남았다.
 “살고 싶었던 게냐···. 그렇다면 더더욱 나가지 말았어야지···.”
 그는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그의 말투에서 일종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 * *
 
 “크윽···.”
 비척거리는 발걸음이었다. 지금 있는 장소가 은은한 달빛이 감도는 숲이라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땅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용케 쓰러지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모습이었다.
 스스로 왼팔로 오른팔을 움켜쥔 채 신음을 흘리는 그 소년은 그러했다. 검은색의 헝클어진 머리와 전체적으로 앳되게 느껴지는 그의 외모는 전형적인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전혀 좋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를 다친 건지를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팔과 다리, 얼굴 등등 신체의 모든 부위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지금 발걸음을 계속 옮기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로 인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피에 얼룩진 상태였다.
 또한, 표정이 확 일그러진 것으로 보아 역시 고통이 어마어마해 보였다.
 더 놀라운 점은 소년이 손에 검을 쥐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검 역시 군데군데에 피가 잔뜩 묻어 있어, 붉게 산화된 철로 만든 게 아닌가 착각될 정도였다.
 “조금만··· 더···.”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쫓기기라도 하는 것인지 소년은 그 이상 움직이지 않고 쉬는 게 훨씬 나을 터인데도 계속 앞을 향해 움직였다. 부상 때문인지 그 움직임은 매우 느렸지만, 일종의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렇게 계속 움직이던 소년은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보게 되었다.
 -으르릉···!
 -컹컹!
 그것들은 전신이 새카만, 묘한 생명체였다.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확실했다.
 그건 바로 그 생명체들이 소년을 향해 맹렬하게 울부짖으며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
 휙
 지금 나타난 것들과 마주하게 되리라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한 것일까. 충분히 놀랄 법도 한데 소년은 굉장히 침착하게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의 끝을 말없이 앞으로 향하게 했다. 아무리 무기가 있다고 해도 부상이 심했으니 도망을 꾀하는 게 좋을 텐데 전혀 그러지 않고 그냥 맞서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도망칠 수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소년과 묘한 생명체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거기에서 정말 놀라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푸욱
 서걱
 묘한 생명체들은 그 몸집이 상당했으며 다수였고, 소년은 혼자에 부상이 심하여 어찌 보아도 생명체들이 유리해 보였으나 그렇지 않았다. 소년은 조금 전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데에 무척이나 힘들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검을 놀려 순식간에 모든 묘한 생명체들을 도륙한 것이다.
 그 움직임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일종의 예술처럼 보였다.
 스르륵
 곧 더 괴이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소년의 검에 도륙이 난 묘한 생명체의 사체가 녹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스러져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거기에는 피가 한 방울도 없었다. 전신이 타기라도 한 것처럼. 검었던 부분까지 감안하면(?) 보통의 동물은 절대로 아니었던 것 같았다.
 “크윽···.”
 털썩
 소년은 압도적인 실력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역시 부상이 심했던 만큼 몸에 무리가 왔는지 그대로 검을 부여잡은 채 무릎을 꿇었다. 그 표정은 여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얼른··· 가야···.”
 그래도 소년의 의지는 매우 굳건했다. 몸의 상태를 고려하면 그대로 쉬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굴뚝같을 터이건만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다시 한번 몸을 일으켜서 앞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소년은 오래 걸리지 않아 볼 수 있었다.
 쏴아아
 “여기는···.”
 그곳은 거대한 폭포가 흐르고 있는 어느 강가였다. 새벽녘이라 은은한 달빛이 군데군데를 비추고 있는, 절경이었다.
 “내가···! 밖으로 나온 거구나···!”
 그러나 소년은 다른 점에 주시했다. 멍한 표정으로 폭포를 보던 그는 뒤쪽에 있는 숲을 돌아보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왜 그런 건지는 명확하게 알 수가 없었지만, 몸이 아픈데도 그러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상황이 어지간히도 기쁜 모양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지직
 “······!”
 암반이 약했던 것인지 소년이 서 있던 지대가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그로 인해 소년은 졸지에 강가로 추락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익···!”
 카앙
 그야말로 생존에 대한 본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소년은 연신 허우적거리면서 어떻게든 살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절벽에 꽂으려고 했으나,
 쨍강
 그 행동은 애석하게도 무의미했다. 이미 이가 빠져서 부러지기 직전이었던 검이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나고 만 것이다.
 “으아아아아-!”
 일개 인간이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물론 그것은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강으로 떨어지면서 비명을 지르는 게 전부였다.
 풍덩
 그게 소년의 마지막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향이 틀어져서 단단한 암반이 아니라 무사히 강에 빠졌다는 부분이었다.
 문제는··· 그 소년이 강에 빠질 때의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었다는 점이었다.
 
 
 - 어쩔 수 없지···. -
 
 
 다각다각
 그곳은 안개가 자욱한 어느 숲이었다. 안개가 너무 짙다 보니 보이는 게 없어서 되도록 출입을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았는데, 놀랍게도 그곳을 태연하게 마차를 끌고 지나가는 이가 존재했다.
 “어쩌다 한 번~ 오는 저 배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기에~.”
 단순하게 지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짙은 안개에 심취한 것 같았다.
 더 놀라운 점은 그 사람이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라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그 나이의 여자아이라면 지금 같은 상황에 지레 겁을 먹기 마련이지만 그 아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음, 여기에서 조금 더 가야 하는 것 같은데···?”
 마차를 끌고 안개가 짙은 숲을 지나가던 여자아이는 잠시 멈추어서는 지도를 꺼내 살피면서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리타 리타셜 님이 가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라~.”
 위와 같은 이어지는 혼잣말을 보면 알 수 있듯 여자아이의 이름은 리타 리타셜이었다. 한없이 어린 외모의 소유자답게 아직 17살밖에 되지 않았다.
 갈색의 짧은 단발을 소유하고 있는 그녀는 벨제루트 제국에 있는 마법학교 그리언트에 다니는 학생으로, 지금은 휴일을 틈타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마법약을 조합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채집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있는 안개의 숲은 대단히 위험하여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 재료가 서식하고 있는 유일한 지역이라 위험을 무릅쓰고 혼자 나온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몬스터가 서식하지 않는 장소라는 점이었지만 그래도 위험한 지역인 건 분명했다.
 “자, 다시 가자~.”
 -히히힝~.
 리타는 참으로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았다. 지금처럼 해가 서서히 뜨고 있는 매우 이른 시각에 안개 때문에 한 치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숲에 나왔으면 겁을 먹는 게 정상일 터인데 그녀는 그런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그저 손에 쥐고 있는 고삐에 힘을 주어 멈추게 했던 말을 다시 움직이게 할 뿐이었다.
 “배와 함께 날아온 그 새가 우는 마음~. 물론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다시 하는 건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리타는 조금 전에 흥얼거리던 노래를 다시 한번 흥얼거리면서 계속 마차를 몰았고, 그 덕분인지 그녀는 순조롭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음···. 여기가 확실하군.”
 리타가 도착한 곳은 바로 인근의 강가였다. 그녀가 이번에 찾고자 하는 재료는 바로 물에서 자라나는 풀이었다.
 몬스터가 서식하지 않는데도 그 지역이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 이유가 바로 그 강가 때문이었다. 멀리 있는 거대한 폭포와 이어지고 있는 그 강가는 수위가 상당하여 발을 잘못 내디디면 그대로 빠져 죽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리타처럼 지도를 보고 움직이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겠지만, 이미 일어난 인명사고가 꽤 많다 보니 출입을 금지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있을 텐데···.”
 자욱한 안개가 감싸고 있는 강가는 매우 아름다워 절경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리타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도 얼른 자신의 목적을 상기해내고는 행동에 나섰다.
 곧 그녀는 조심스럽게 인근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부스럭
 “찾았다!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이내 탄성을 내질렀다. 찾고자 하는 재료인 수초를 금방 찾아낸 결과였다.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라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고, 그만큼 오래 있을 수는 없는데 금방 찾았으니 기쁠 것이 당연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빠른 복귀인가···. 들키기 전에 얼른 가야지.”
 안개의 숲은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니만큼 제국에서 정기적으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이 하는 일이라 오전 9시부터였다. 리타가 지금처럼 이른 시간에 온 것도 전부 그 이유에서였다.
 다행히 수초는 금방 찾았으므로 이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어서 리타는 얼른 세워놓은 마차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터억.
 “응···?”
 수초를 챙겨 허겁지겁 마차로 돌아가려던 리타는 자신의 발끝에 느껴지는 감각에 의아함을 느꼈다.
 단단한 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힘이 전혀 없는 풀도 아니었다. 정말 묘한 감각이었다.
 그렇기에 리타는 자연히 발치를 내려다보았고,
 “우, 우와앗-!”
 동시에 그녀는 정말 크게 식겁했다. 거기에서 쓰러진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전신이 흠뻑 젖어 있었다. 주변에 물이 있는 곳은 강가를 제외하면 없었으니, 거기에 빠졌던 것 같았다.
 “음···. 저, 저기요···?”
 몰래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지금 상황을 무시하고 가는 건 여러모로 어려웠다. 그래서 리타는 잠시 고민하다가도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으나 거기에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행히 숨은 고르게 쉬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저기요, 정신 좀 차리세요~. 이러다가 들키면 끝장이라고요~.”
 군에서 순찰을 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이러고 있다가 적발되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닌 터라 리타는 동업자의 정신을 발휘하여 과감하게 엎어진 사람을 직접 흔들어서 깨우려고 했는데,
 주르륵
 “······!”
 그녀는 자신의 손에 묻어나오는 액체를 보는 순간 표정을 굳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바로 물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좋게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은 액체··· 피인 까닭이었다.
 ‘이건··· 상태가 심각한데?’
 동시에 리타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처음에 발견했을 때와 달리 허리를 숙여서 거리를 좁히니까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쓰러진 사람은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자신과 엇비슷하게 보이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 상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몸 곳곳에 무수히 많은 상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출혈이 심했다. 그 피가 몸에 묻은 물과 합쳐져서 거의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고도 아직 죽지 않은 게 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으음~.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겠지···. 영차!”
 의학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의 눈에도 소년은 조금만 더 가만히 두면 영락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그런 만큼 리타가 그 광경을 보고 판단을 내리는 데에는 짧은 시간이면 충분했다.
 “가자! 이번에는 서둘러야 해!”
 리타는 죽어가고 있는 소년을 안아다가 조심스럽게 마차에 싣고 그 자신은 앞에 앉아 고삐를 쥐면서 외쳤다.
 -히히힝~!
 주인의 명령을 알아들은 것일까. 사람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리타의 마차는 올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벨제루트 제국으로 향했다.
 
 * * *
 
 리타는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마차를 이끄는 말들이 힘을 내준 덕이었다.
 벨제루트 제국으로 돌아온 그녀가 가장 먼저 향한 장소는 그리언트가 아닌 병원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쿵쿵쿵
 “저기요~! 진짜 급한 환자인데요~!”
 그것은 바로 시간이 너무 이르다 보니 병원이 문을 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와, 이거 진짜 위험한데···? 이러다가 정말 죽는 거 아니야?’
 열심히 병원 문을 두드리던 리타는 마차에서 초주검이 되어있는 소년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렸다. 졸지에 꼼짝없이 사람이 죽는 걸 보게 될 판국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정말 위험하네. 지금은 구슬도 없는데···.’
 물론 지금처럼 언제 환자가 생길지 모르는 만큼 병원에 연락을 취하는 방법은 있었다.
 그게 바로 수정 구슬이었다. 메이지들의 마력에 반응하는 것으로, 그걸 이용하면 원하는 이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리타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려면 수정 구슬에 마력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구슬을 그리언트에 두고 온 까닭이었다.
 몰래 나가는데 그런 걸 챙길 이유는 없었다. 상당한 고가품이었고, 출입이 금지된 지역에 가는 만큼 도중에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고 말이다.
 “으윽···.”
 “······.”
 리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도 듣게 되었다.
 그것은 마차에 있는 피투성이 소년가 앓는 소리로, 지금 상황에서 그만큼 아찔한 소리는 없었다.
 ‘지금은···. 좋아. 그렇게 하자.’
 “가자!”
 -히히힝~!
 잠시 그 광경을 보던 리타는 속으로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그 즉시 병원을 나와 마차에 탑승, 다시 마차를 몰았다.
 그녀가 향한 곳은 바로 그리언트였다.
 
 * * *
 
 덜컹
 “후우···.”
 그리언트에 도착한 리타는 소년을 업고 기숙사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다른 학생이나 교수들에게 보이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겠지만 이른 시간이라 문제가 없었다.
 안개의 숲에 다녀오는 걸 누구도 모르게 하려고 했던 게 엉뚱한 데에서 도움이 되었다. 방 역시 유일하게 룸메이트 없이 혼자 사용하고 있어서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주르륵
 “어우···.”
 리타는 소년을 침대에 눕혔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피를 흘릴 수 있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선은 지혈부터···.”
 다행히 소년의 목숨은 아직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리타는 침착하게 자신의 서랍을 열면서 중얼거렸다.
 그렇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리타는 자신이 직접 소년에게 손을 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리언트에 돌아왔으므로 수정 구슬을 이용해서 병원에 연락하는 게 최우선이겠으나 그건 잠시 보류했다. 그 사이에 소년의 상태가 더 심각해진 까닭이었다.
 이대로 계속 두면 금방 과다출혈로 죽게 될 건 자명한 일인지라 우선 응급처치를 해서 한숨 돌린 다음 병원에 연락하겠다는 게 리타의 생각이었다.
 딱히 의학을 전문으로 공부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응급처치를 하겠다는 것이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리타는 마법약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만큼 약초학에 해박한 편이라 응급처치 정도는 무난히 해낼 수 있었다.
 “지혈에는 분명히 이 약초지···.”
 리타는 서랍에서 옅은 푸른빛이 감도는 약초를 한 묶음 꺼내서 침착하게 소년의 몸에 붙였다.
 그러나 그건 헛수고였다.
 주르륵
 ‘어, 어째서···?’
 효과가 전혀 없었다. 약초가 붙으면 나아지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더 보여야 정상인데 소년은 그 반대로 상태가 더 심각해졌다.
 그는 이제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있었다. 숨도 곧 끊어질 것처럼 약해진 상태였다.
 ‘어쩌지? 이건 어떻게 해야···? 우선 병원에 연락부터···? 아니, 분명 그 전에 죽을 거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리타는 혼란을 느꼈다.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지금의 상황에 크게 당황한 것이다.
 푸확
 “······!”
 그러다가 리타는 또 보게 되었다. 그것은 소년의 몸에 있는 상처가 오싹한 소리를 내면서 터지는 광경이었다.
 그로 인해 피는 더 많이 흘렀다. 그 양이 어찌나 많던지, 이제 죽었다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어쩔 수 없지···.”
 결국, 리타는 다시 한번 결심을 내렸다. 착잡한 표정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소년을 응시하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리타의 시선으로부터 일종의 비장함이 엿보이고 있었다.
 
 * * *
 
 스윽스윽
 ‘이건··· 뭐, 살인 사건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느낌이네.’
 리타는 자신의 방을 열심히 청소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리타는 걸레로 방을 닦고 있었다. 소년을 안으로 들이는 과정에서 여기저기에 묻은 피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대로 그냥 두었다가 누군가가 보게 되면 정말 설명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사실대로 모든 걸 말하면 되는 게 아니겠냐고 하겠으나 그렇게 되면 안개의 숲에 들어간 부분까지 전부 밝히게 되는 셈이라 그건 불가능했다.
 교묘하게 그 부분만 빼고 말하려고 해도 그리언트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 타인에게 알려지는 건 좋지가 않았다.
 가장 좋은 건 그 누구도 모르게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그 소년의 상태는 지금···
 새근새근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소년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극심하던 출혈 또한 지혈이 잘 되어서 멈춘 상태였다.
 ‘많이 좋아진 느낌이네. 다행이다.’
 리타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든 소년의 모습에 이마의 땀을 훔치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의 광경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듯 리타는 무사히 소년의 응급처치에 성공했다. 필사적으로 노력한 덕이었다.
 병원에는 아직 연락하지 않았다. 상태가 정말 괜찮아진 까닭이었다.
 소년의 상태는 단순한 응급처치를 넘어서 완전히 나았다고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또한, 발견했을 때의 상태를 고려하면 소년도 타인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랄 수도 있어, 리타는 지금 방을 치우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혹시 몰라 틈틈이 소년의 상태를 살폈다. 의사가 살핀 게 아닌지라 다시 악화할 수도 있었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서였다.
 ‘그나저나··· 정말 곱상하게 생겼단 말이지···.’
 자주 살피는 만큼 소년의 얼굴에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리타는 마치 천사와 같은 얼굴로 잠든 그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소년은 굉장히 귀엽게 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몸 역시 굉장히 연약했다.
 도저히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는 일과는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아직 본인에게 못 들었지만, 불의의 사고에 휘말린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리타는 잠시 다른 데에 생각이 팔려있는 걸 깨닫고 얼른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걸레로 여기저기를 열심히 닦은 덕인지 방은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어디에서도 핏자국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마차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아래에 아무것도 덧대지 않고 눕혔기 때문에 피가 묻는 것은 당연했다.
 마차는 밖에 두는 만큼 방보다 더 타인의 눈에 띌 우려가 있어 먼저 청소해야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소년의 상태를 살필 필요가 있어서였다. 방을 먼저 치운 건 그러는 겸이었다.
 ‘음···. 호흡 일정하고···. 잠깐이면 혼자 둬도 괜찮겠지.’
 덜컥
 아무리 지금은 많이 호전되었다고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절명 직전이었던지라 혼자 두는 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피로 범벅이 된 마차를 그대로 둘 수는 없기에, 리타는 마지막으로 신중하게 소년의 상태를 확인하고 괜찮은 느낌이 들자 양동이와 걸레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리타가 나가고 나자 그녀의 방에는 작은 변화가 존재했다.
 움찔
 그것은 바로 소년의 움직임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숨을 고르게 쉬는 걸 제외하면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인 것이다.
 
 * * *
 
 마차에 묻은 피를 제거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방을 나온 리타는 우선 바깥에 있는 수돗가로 향했다. 방에서 닦아낸 피를 깔끔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그래야 마차에 묻은 피를 싹 닦아낼 수 있는 것이다.
 뚜벅뚜벅
 ‘이크···.’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사람이 지나가면 몸을 숨겨야 했다.
 양동이에 걸레를 넣고 위쪽을 천으로 덮어놨지만, 안을 보이면 그 순간 바로 끝이기 때문에 리타는 거의 학교 안을 잠입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아직 시간이 일러서 지나가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는 점이었다. 지금 눈앞을 지나간 교수도 잠에서 제대로 깨지 못했는지 기지개를 크게 켜면서 하품을 했다.
 ‘음···. 좋아.’
 리타는 당연히 학생답게 학교 내부를 훤히 꿰고 있었다. 그녀는 가장 한적한 장소만을 골라서 빙빙 돌아, 무사히 목적지인 수돗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아무도 없구나.’
 수돗가에 도착한 리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학교 안에 있는 화장실이 아니라 더 멀리에 있는 수돗가를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수돗가는 바깥에 있는 만큼 접근성이 떨어져서 야외수업이 아니면 거의 쓰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이른 시간의 휴일에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었다.
 철퍽철퍽
 ‘···끔찍하긴 하네.’
 신속하게 물을 틀어서 걸레를 빨던 리타는 다시 한 번 얼굴을 찌푸렸다. 물에 적셔진 걸레에서 잔뜩 묻어나오는 피를 본 여파였다.
 오늘은 익숙해질 정도로 많이 봤다지만 평소에 쉬이 접할 수 있는 게 아닌 만큼 그걸 보고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좋아. 이제 마차로만 가면···.’
 그래도 리타는 꿋꿋하게 걸레를 깨끗하게 빤 다음 양동이의 물도 새로 가는 데에 성공했다.
 그렇게 리타는 마차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그녀는 곧 깜짝 놀랐다.
 “어? 여기에서 뭐해, 리타?”
 “브, 블레인···!?”
 돌연 뒤쪽으로부터 자신의 친구인 블레인 예클젠의 목소리를 듣게 된 까닭이었다.
 블레인은 붉은색의 긴 생머리와 동그란 안경이 눈에 띄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또한. 리타와 같은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여 대단히 절친한 사이였다.
 ‘···휴, 깨끗하게 다 처리했구나.’
 리타는 블레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연신 당황하다가도 수돗가 쪽을 곁눈질로 보고는 금방 안도했다. 수돗가에 핏자국이 일절 남아 있지 않은 걸 확인한 것이다.
 “마법약 실험하다가 내용물을 실수로 쏟아서 처리하느라고~. 밖에서 했거든~.”
 곧 리타는 블레인을 향해 천연덕스럽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자신이 지금 학교 내부에 있는 화장실을 두고 굳이 수돗가까지 나온 이유를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말이었다. 바깥에서는 수돗가가 더 가까웠다.
 “와, 이렇게나 일찍? 무슨 약인데 그래?”
 “그건 다음에 성공하면 알려줄게. 이번에는 실패해서···. 그럼 이따가 봐~.”
 리타는 해맑은 표정으로 묻는 블레인을 향해 두루뭉술하게 대답하고는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양동이를 들고 열심히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약간 초조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절친한 친구인 블레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저런 양동이를 꺼낼 정도면 혼자 치우기 힘들 텐데···. 그래. 나도 도와줘야겠다.”
 멀어지는 리타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블레인은 결심했다는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런 블레인의 표정은 여전히 해맑았다.
 
 * * *
 
 덜컹
 ‘어우···. 이건 진짜 누구 하나 죽었다고 해야겠어.’
 깨끗하게 씻은 양동이와 걸레를 들고 헐레벌떡 마차를 보관하는 창고로 이동, 거기에서 자신이 탔던 마차를 발견한 리타는 또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나 열심히 치웠던 방보다 더 지저분한 광경을 보게 된 결과였다.
 쓱싹쓱싹
 그래도 좌우지간 이제 마차만 닦으면 완벽하게 청소를 끝낼 수가 있는 만큼 리타는 얼른 마차를 닦기 시작했다.
 핏자국을 닦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리타에게는 비교적 쉬운 일에 속했다.
 치이익
 ‘음, 역시 깨끗해.’
 자신의 주특기인 마법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이었다. 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분을 담은 마법약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걸레로 닦으면 원래 뭐가 묻었는지를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금방 말끔해졌다.
 피로 범벅이 된 방을 빠르게 청소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 컸다. 더군다나 마차는 방에 비하면 그 크기가 훨씬 작아서 리타는 생각보다 빠르게 마차를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휴···. 이제 안심이다.’
 리타는 방금 새로 만든 것처럼 반짝거리는 마차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방에 이어서 마차까지. 말 그대로 증거 인멸을 끝낸 셈이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만 깨끗하게 하면 모든 게 끝이구나.’
 이제 남은 건 양동이와 걸레였다.
 헌데 피로 얼룩진 그것들을 응시하던 리타는,
 ‘···? 뭐지? 뭔가 잊은 것 같은데?’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를 까맣게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도대체 이 찜찜한 기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던 리타는 문득 볼 수 있었다.
 ‘아···. 저기에도 묻었구나. 하기야, 워낙 급하게 움직였으니···.’
 그것은 마차에서 내리는 부분에 묻은 핏자국이었다.
 업고 있던 소년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피를 흘린 만큼 묻지 않을 수는 없었으리라. 허겁지겁 움직였으니 분명히 복도 쪽에도···
 “···! 뜨아아!”
 그 순간 리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뭘 계속 잊고 있었는지를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복도···! 아, 진짜! 어떻게 그걸 잊을 수가 있지-!?’
 리타가 잊고 있었던 건 바로 복도였다. 상식적으로 소년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던 만큼 마차에서 내려서 방으로 이동할 때 거쳤던 복도에 피가 떨어지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묻은 양에만 신경 써서 방과 복도에만 치중했던 게 실수였다.
 ‘아, 아직 안 늦었어!’
 다행히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침착하게만 움직이면 복도에 묻은 핏자국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리타는 자신을 다독이며 얼른 양동이와 걸레를 챙겨서 마차에서 내렸는데,
 “리, 리타···.”
 “블레인···!? 네가 왜 또 여기에 있는 거야!?”
 거기에서 리타는 블레인과 또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는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무척이나 창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무서운 뭔가를 본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
 그 순간 리타는 블레인의 표정이 왜 그런지를 깨달았다.
 블레인은 수돗가에서 마차까지 자신을 따라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핏자국에 마법약을 떨어뜨리면서 열심히 청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저기···. 침착해, 블레인. 지금 상황이 정말 이상하게 보였을 거야.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어.”
 블레인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니만큼 설명하면 분명히 이해해줄 것이다.
 속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린 리타는 그녀를 향해 매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또 뜻밖의 전개가 이어졌다.
 “아···.”
 털썩
 “브, 블레인!?”
 블레인이 그 자리에서 미약한 비명과 함께 그냥 쓰러진 것이다.
 리타는 얼른 그녀를 안아 들어 살폈다.
 ‘기절한 건가···. 하긴, 피를 보는 건 처음이었을 테니까.’
 블레인의 상태를 살핀 리타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도 처음에는 굉장히 놀랐었던 만큼 그녀의 반응이 이해가 가는 것이다.
 ‘어쨌든 이건 또 다른 기회라고 봐야지. 좌우지간 복도부터 닦자. 블레인한테는 나중에 설명하면 돼.’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한 리타는 블레인을 조심스럽게 눕혀놓고 지금 최대의 난제로 급부상한 복도로 향하려고 했으나, 그 행동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으, 으악! 여기 웬 피가···!
 -교수님! 큰일 났어요!
 -피다! 피야!
 동요하는 목소리들을 통해 알 수 있듯 학교는 이미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방이나 마차와 달리 접근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복도여서 아무리 이른 시간이라고 한들 들키지 않는 건 무리였던 것 같았다.
 “······.”
 리타는 상황이 그렇게 되자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우려했던 상황에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 만큼,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 * *
 
 늘 그랬듯 평화롭게 시작되어야 하는 그리언트의 휴일에 순식간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리타가 소년을 데리고 방으로 이동할 때 복도 곳곳에 생겨난 핏자국의 여파였다.
 그로 인해 블레인처럼 기절하는 학생들도 다수 등장하고 말았다. 평소에 피를 볼 이유가 없었던 만큼 그 핏자국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사고를 쳤다고 볼 수 있었다. 당연히 그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인 리타는 즉시 기숙사 사감의 호출을 받았다.
 피가 묻은 걸레와 핏물을 담은 양동이를 들고 있었던 걸 블레인 말고도 다수의 학생에게 정면으로 목격당한 탓에 잡아뗄 수도 없었다.
 “리타셜 학새애애애앵-!”
 “드, 듣고 있습니다, 교수님!”
 교수대로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사감실로 이동한 리타는 그리언트의 기숙사 사감 엘런트 크로스미넬의 호통에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엘런트 크로스미넬은 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올곧은 성격의 여교수였다. 역사학을 담당하는 교수였지만 그 성격이 학생 관리에 참 잘 어울렸고, 본인도 거기에 굉장히 자부심을 느껴서 기숙사 사감도 함께하고 있었다.
 눈매가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처럼 굉장히 날카로워서 학생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껄끄러운 상대였다. 외모 역시 안경을 쓰고 있어서 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여담이지만 올해 나이가 서른인데 오가는 혼담은커녕 애인이 없어 원래도 그랬지만 특히 성격이 더 고약해진 상태였다.
 말하자면 걸려서 절대 좋은 게 없는데 오늘 리타는 제대로 걸렸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모든 걸 포기한 심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혼날 생각은 없었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겁니까, 리타셜 학생! 마법약의 재료로 야생동물의 생피를 쓰려고 하다니···!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 리타는 들킨 순간 두뇌를 최대한 가동해서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그것은 바로 복도에 묻은 핏자국은 자신이 이번에 마법약에 넣기 위해 준비한 야생동물의 생피라는 거짓말이었다.
 마법약에 그런 걸 넣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으므로 혼이 나는 건 자명한 일이겠지만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낫기 때문에, 리타는 매우 태연한 표정으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엘런트에게 거짓말을 했다.
 여기에서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리타가 평소에 그리언트에서 일종의 괴짜로 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이번에 마법약의 재료로 야생동물의 생피를 조달한 게 어이없게 들리지는 않는다는 소리였다.
 ‘좋아. 이건 먹히겠다···.’
 “저는 아주 진지해요, 교수님. 솔직히 피라고 해서 못 쓸 건 없지 않나요? 저는 바로 그런 부분을 고려한 겁니다. 말하자면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죠. 모든 일에는 그런 게 필요합니다! 어쩌면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어요!”
 침착하게 엘런트의 눈치를 살피던 리타는 능청스러운 어조로 마지막에는 거의 열변을 토하듯 외쳤다.
 리타의 그 모습에서는 순수한 열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거짓말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런트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제발 부탁이니 그럴 시간에 마법이나 공부하란 말입니다! 솔직히 저는 리타셜 학생만큼 걱정되는 학생이 없어요!”
 이처럼 리타를 또 한 번 큰 소리로 꾸짖은 것이다.
 열정적인 탐구심을 보이는 학생을 향해 너무 가혹한 말이 아니겠냐고 할 수 있겠으나, 정말 냉정하게 말하면 엘런트의 반응은 아주 당연했다.
 “리타셜 학생은 지금 마법약 제조 같은 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학교에서 마법을 쓰는 게 서투른 메이지는 리타셜 학생이 유일하단 말이에요!”
 엘런트의 이 말대로 리타는 그리언트에 재학 중인 메이지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중요한 마법을 쓰는 데에 굉장히 미숙했다.
 이론에서는 뛰어났다. 더 말할 것 없이 전교 1등의 최우수 학생이었다.
 거기에 각종 재료를 조합하여 마법약을 만드는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가르치는 교수보다 더 나은 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리타는 그리언트에서 거의 낙제생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실전에 너무나도 취약한 까닭이었다.
 리타는 마법을 쓰는 데에 필요한 마력을 모으는 게 매우 서툴러서 다른 학생들보다 최소 2배는 더 오랫동안 주문을 외워야 겨우겨우 마법을 쓸 수 있었다.
 이번에 피를 처리하는 데에 간편한 마법을 놔두고 직접 발로 뛴 이유도 사실 그게 컸다. 애초에 마법을 쓸 수 있는 메이지가 손에 걸레와 양동이를 드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윽···. 너무하십니다, 교수님. 자라나는 학생의 가슴에 갑자기 비수를 꽂으시다니···.”
 “리타셜 학생이 제 가슴에 꽂은 비수는 30개가 넘어요!”
 “네? 30개···? 저는 한 100개는 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적네요?”
 “리타셜 학새애애애앵-!”
 “농담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휴일 아침 댓바람부터 사고를 친 터라 분위기는 매우 험악했지만 대충 이런 식으로 적당하게 넘어가는 리타였다.
 그 나이대의 여자아이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특유의 능구렁이 같은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짜 리타셜 학생은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휴···. 이 정도면 싸게 넘어가는 거지.’
 엘런트에게 꾸중을 듣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평소에 1인분을 제대로 못 하고 있던 만큼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리타는 엘런트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리며 혼나고 있었음에도 속으로는 나름 안도했는데, 그 순간이었다.
 덜컥
 “허허, 그 정도로 해두게나, 엘런트 교수.”
 “로톤 원장님···.”
 사감실의 또 다른 사람··· 로톤 체르호 원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로톤은 전형적인 노인으로, 엘런트가 부른 호칭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리언트의 원장이었다.
 늘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푸근한 인상의 소유자였고, 실제로 마음이 대단히 넓어 드물게도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리타도 마찬가지로 그를 좋아했다. 영락없이 낙제생 취급을 받는 자신에게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이웃에 사는 친근한 할아버지처럼 대해 주는데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밖에서 살짝 들었는데, 나는 리타셜 학생의 의견에 동의하네. 확실히 야생동물의 생피를 재료로 넣는 건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지만··· 발상의 전환이지. 혹시 모르지 않는가. 그런 게 나중에 다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니 말이야.”
 “헤헤, 역시 원장님이십니다!”
 로톤의 말에 리타는 활짝 웃었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니 당연했다.
 “하, 하지만···.”
 설마 로톤이 리타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엘런트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으며 뒷말을 흐렸다.
 로톤이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허나··· 이걸 그냥 넘기기는 힘들겠어. 똑똑한 리타셜 학생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알겠지?”
 “그 부분은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어요···.”
 리타는 로톤의 말에 얼른 죄송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사죄하듯 중얼거렸다.
 모두가 평화롭게 지내야 하는 휴일에 아침부터 소동을 일으켰다. 그뿐만이 아니라 블레인을 포함하여 여러 학생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해도 미안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로톤이 말한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리타셜 학생도 사과하지 않는가. 이 정도에서 기분 풀게나, 엘런트 교수.”
 “후우···.”
 로톤의 말에 엘런트는 그저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게 전부였다.
 학교에서 가장 높은 원장인 그가 좋게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보다 아래인 자신이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만큼 지금의 상황에 현기증을 느낀 모양이었다.
 엘런트는 그러다가도 이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리타셜 학생은 1주 동안 3층 화장실 청소를 하세요. 물론 제가 매일 검사할 거고,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계속 연장할 겁니다.”
 “제가 또 청소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교수님!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좋아! 이 정도면 진짜 최상의 결과다!’
 리타는 엘런트의 말에 자신감을 내비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원장인 로톤의 개입 덕분인지 벌이 진짜 가벼워졌다. 학생에게 내릴 수 있는 벌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화장실 청소까지는 예상했고, 그 기간은 최소 3주라고 봤건만···
 그런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던 리타는 곧 멍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미안하지만 벌은 그게 다가 아닙니다. 리타셜 학생의 방을 검사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말이죠.”
 엘런트에게서 정말 뜻밖의 말을 듣게 된 여파였다.
 “네? 교수님, 그게 갑자기 무슨···?”
 당연히 리타는 그녀를 향해 의도를 물었다. 지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엘런트가 말했다.
 “리타셜 학생의 소지품을 검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가서 보고 불온한 것들만 골라내려는 생각이니까. 어쨌든 마법약은 리타셜 학생의 전문 분야니, 그걸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만약에 막아서 마법에 능숙해지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막겠습니다만···.”
 “아, 아니! 그건 아니죠, 교수님!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고요!”
 리타는 엘런트가 두통을 호소하듯 이마를 짚은 채 말하자 펄쩍 뛰면서 반대를 외쳤다.
 다른 때라면 모를까, 지금만큼은 그녀를 자신의 방에 들일 수가 없었다.
 ‘무, 무조건 막아야···!’
 그도 그럴 게, 방에 들어가도록 했다가 그 소년을 보게 되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셈이었다.
 몰래 안개의 숲에 다녀온 것도 모자라 멋대로 외부인을 들인 것까지 들키게 되면 최소 정학이었고, 운이 나쁘면 퇴학을 당할 수도 있었다.
 “워, 원장님···!”
 그렇기에 반대를 외치던 리타는 오늘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던 로톤에게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냈으나, 애석하게도 그것은 통하지 않았다.
 “음···. 엘런트 교수의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 정도야···.”
 로톤이 잠시 고심하더니 이번에는 엘런트의 손을 들어주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리타가 지금까지 마법약 관련으로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킨 만큼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대로 두었다가 더 큰 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 말이다.
 “얼른 갑시다, 리타셜 학생. 앞장서도록 하세요.”
 “으아아~! 원장님은 제 편이셨잖아요-!”
 결국, 뜻이 꺾인 리타는 엘런트의 소지품 검사에 협조하게 되었다.
 뭐, 엘런트에게 붙잡혀 비명과 함께 끌려가는 그 모습을 보면 절대로 협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음, 오늘도 보람찬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군···.”
 로톤은 그러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모습은 대단히 인자하게 보였다.
 
 * * *
 
 ‘여기는···.’
 소년은 침대에 멍하니 앉은 채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알고 있는 건 자신이 지금 어느 방에 와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또한, 이 방은··· 꽤나 호화로웠다. 굉장히 넓었으며 책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이나 고급스러운 책상, 수십 벌의 옷이 들어가도 남을 법한 거대한 옷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에 옆으로 이어지는 방이 하나가 더 있었다. 최고급 호텔에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윽···.”
 멍한 표정으로 지금 자신이 있는 방을 둘러보던 소년은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지독한 두통이 전신을 엄습한 여파였다.
 잠시 그렇게 있으니 두통은 금방 사라졌는데,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나는··· 뭐지? 내가 누구지?’
 그것은 바로 기억이 전혀 없다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 뭘 했었는지, 왜 자신이 지금 이 방에 혼자 있는 것인지··· 심지어 이름조차도. 기억이 전무 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백지가 된 느낌이었다.
 ‘침착하게···. 우선, 별로 좋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네.’
 눈을 뜨고 보니 기억이 전혀 없다는 건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도 계속 당황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게 없는 만큼 소년은 의연하게 상황을 분석, 스스로가 지금까지 어땠는지를 짐작했다.
 자신의 옷차림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피로 얼룩진 누더기 같은 옷이었다. 옷에 묻은 피의 양으로 보아 꽤 위험했던 것 같았다.
 신기한 건 조금 전까지 그랬던 거면 통증이 남거나 몸에 상처가 남는 게 정상일 터인데 그런 게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마치 아팠던 다른 누군가와 옷을 갈아입은 느낌이었다.
 ‘이 방의 주인이 나를 구해준 걸까?’
 아픈 사람과 옷을 갈아입은 것이라고 보는 데에는 지금 있는 방의 수준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침착하게 생각을 거듭한 끝에 가장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방의 주인이 구해주었다면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위험했던 자신을 구해준 것이리라.
 어디까지나 추측이므로 확실하지는 않으나 그랬을 확률이 가장 농후한 만큼, 지금은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게 나을 듯했다.
 속으로 이렇게 판단한 소년은 계속 침대에 앉은 채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을 기다리자 금방 들을 수 있었다.
 뚜벅뚜벅
 그것은 사람의 발소리였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 * *
 
 “제발 부탁입니다, 교수님~! 소지품 검사만큼은 제발···! 학생 하나 살린다고 생각해주세요! 그 대신에 제가 화장실 청소 1주일 더하겠습니다!”
 한편, 졸지에 엘런트에게 방을 수색하여 소지품 검사를 당하게 된 리타는 어떻게든 그걸 막기 위해 온갖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손까지 싹싹 빌며 조금 전에 받은 벌이 늘어나도 좋다고 간절하게 빌었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다.
 “1주일이 아니라 한 달을 더 한다고 해도 안 됩니다···. 제가 이러는 게 결코 부당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텐데요? 지금까지 리타셜 학생이 일으킨 사고를 잊은 건 아니겠죠?”
 이처럼 엘런트가 어림없다는 뜻을 고수하며 매우 도도한 자세로 매우 타당한 말만 골라서 대답한 것이다.
 “······.”
 ‘젠장, 반박할 수가 없네-!’
 리타는 엘런트의 대답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속으로 탄식했다. 지금 그녀가 한 말마따나 자신이 여태까지 저지른 사고가 스멀스멀 떠오른 까닭이었다.
 슬프게도 마법에는 재능이 없었지만 마법약 제조는 정말 뛰어났고, 자신도 그걸 가장 재밌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약간 주변에 지나치게 보일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을 뿐인데···. 지금의 태도로 보아 엘런트는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마법약을 제조하다가 갑자기 폭발이 일어난 것만 5번이었고 거기에 본의 아니게 주변 학생들을 휘말리게 하는 바람에 입원시킨 것만 8번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망가뜨린 비품의 가격만 해도 자그마치 학교를 1달 동안 여유롭게 운영하고도 남을 돈이었으니 엘런트의 반응은 냉정하게 말해서 정상이었다.
 사실 학교에서 유일하게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메이지이니만큼 그런 사고를 일으키고도 지금까지 퇴학을 당하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외부인을 멋대로 들인 것까지 들키게 되면 진짜 위험할 것 같은데···. 그러면 농담이 아니라 바로 퇴학이야···.’
 리타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엘런트의 심기는 굉장히 불편한 상태였다. 여기에 사실 저지른 게 하나가 더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정말 위험했다.
 솔직히 말해서 모든 걸 설명하면 결코 잘못한 게 아니었고, 사람을 구한 것이므로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 장소가 안개의 숲이라는 게 문제였다.
 사실, 문제는 하나가 더 있었지만···.
 ‘교수님이 내 방에 가는 걸 막아야 해···. 하지만 어떻게 막지? 어떻게 막기는! 그 방법을 생각하면 되잖아! 생각을···! 돌아라, 머리야! 마법만 제대로 못 쓸 뿐이지 머리는 꽤 좋잖아! 제발 좋은 해결책을 내다오!’
 이미 방에는 거의 다 온 상태였다. 이대로 엘런트를 방에 들여서 그 소년을 보게 되면 모든 게 끝이었다.
 그렇기에 리타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고, 결국 하나의 해결책을 떠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꽈악
 “교수님-! 제발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리, 리타셜 학생!?”
 고심 끝에 리타가 생각한 해결책은 바로 바짓가랑이 붙잡기였다. 그녀는 엘런트의 망토를 꽉 붙잡은 채 질질 끌려가면서 애절한 목소리로 외쳤고, 엘런트는 리타의 그 행동에 적잖게 당황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학생을 학대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주변에 지나가는 학생이 없었던 게 천운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아까도 말한 것처럼 딱히 리타셜 학생의 마법약 제조를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오늘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나면 곤란하니 소지품 검사를 통해서 미리 방지하겠다는 겁니다.”
 “그냥··· 저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요. 그런 걸 반기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교수님께서도 잘 아시잖아요.”
 “······.”
 침착하게 리타를 향해 설명하던 엘런트는 그녀가 잔뜩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말을 아꼈다. 리타의 말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처럼 그냥 벌만 내리고 유야무야 넘어가면 또 사고가 터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학생에게 각서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것을 납득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스스로 수긍하게 해야겠지. 어려운 조건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엘런트는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리타셜 학생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역시 교수님! 제가 남자였다면 교수님하고 결혼했을 거예요!”
 “실없는 소리 그만하시고, 소지품 검사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닙니다. 조건이 하나 있어요.”
 “조건···이요?”
 꼴사납게 망토를 붙잡고 빌었던 게 효과가 있었는지 엘런트가 철회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반색하던 리타는 그녀가 대뜸 조건을 운운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엘런트가 말했다.
 “1분을 드리죠. 1분 이내에 리타셜 학생이 마법으로 저 상자를 들어 올리는 데 성공하면 이번 소지품 검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아요. 말 그대로 뜨기만 하면 됩니다.”
 “마, 마법이요···?”
 엘런트의 말에 리타는 울상을 지었다. 그녀가 지금 내건 조건이 자신에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아는 것이다.
 “교수님, 그··· 제한 시간을 없애주실 수는···?”
 “리타셜 학생은 마력을 모으는 게 느릴 뿐이지, 마법을 전혀 쓸 줄 모르는 건 아니잖아요. 간절함을 담아보세요. 그러면 어렵지 않을 테니···. 사실 이것도 더 드린 겁니다. 원래는 30초로 하려고 했었어요.”
 어떻게든 협상을 해보려는 리타였지만 엘런트는 그런 그녀를 향해 딱 잘라서 말하고는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에 시선을 향했다. 시간을 재려는 행동이었다.
 “끄응···. 알겠습니다. 한번 해볼게요.”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니었다. 금방 그 사실을 깨달은 리타는 엘런트의 모습에 괴로움을 호소하듯 신음을 흘리다가도 이내 자세를 잡았다.
 리타는 자신이 왼팔에 착용하고 있는 팔찌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마력을 모으는 것이었다.
 리타가 왼팔에 착용하고 있는 팔찌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아티팩트였다.
 아티팩트는 메이지가 마법을 쓸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금 엘런트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나 통신에 쓰이는 수정 구슬처럼 다른 여러 편리한 물품의 동력원으로 쓰이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필수품이었다.
 “···시작!”
 엘런트는 리타가 자세를 잡자 날카로운 목소리로 짧게 외치고는 시계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의 의지에 따라··· 법칙을 거스르게 하리니···.”
 ‘리타셜 학생이 확실히 머리는 좋단 말이야. 하지만···.’
 시곗바늘을 주시하던 엘런트는 리타에게서 침착하게 주문을 외우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속으로 일종의 안타까움을 느꼈다.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주문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이론에는 뛰어나지만. 실전에서 맥을 못 추는 메이지를 오랜만에 다시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된 여파였다.
 “레, 레비테···! 레비테이···!”
 ‘제발···!’
 잡힐 듯 말 듯 한 묘한 감각에 의지하여 필사적으로 마력을 모으는 데에 집중하는 리타였다.
 실제로 그것은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으나,
 “그만. 1분 지났습니다.”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마법을 쓰려던 찰나에 엘런트에게서 상황 종료를 알리는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그것은 실패를 의미했다.
 “부탁이에요, 교수님! 30초만···! 아니, 10초만 더···!”
 “애초에 간단한 부유 마법을 쓰는 데에 1분은 너무 많은 시간입니다. 그만 고집부리세요, 리타셜 학생. 미리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너무하세요, 교수님! 교수님의 피는 도대체 무슨 색인가요! 그러니까 아직 혼자이신 거잖아요! 자고로 여자는 저처럼 마음이 넓어야 한다고요!”
 리타는 지극히 냉정하게 말하는 엘런트를 향해 온갖 막말을 쏟아내며 또 한 번 발버둥을 치려고 했으나, 그녀는 거기에서 말을 멈추게 되었다.
 퍼엉
 “다,시 말.해.보.시.죠?”
 엘런트가 자신의 바로 옆을 향해 폭발 마법을 날리면서 상냥함이 물씬 풍겨오는 미소를 짓는 걸 보게 된 까닭이었다.
 그것이 순수한 의도의 미소가 아니라는 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저,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리타는 얼른 꼬리를 내렸다. 지금 자신이 엘런트의 아킬레스 건을 제대로 건드렸다는 걸 뒤늦게 인지한 것이다.
 소지품 검사 하나 막으려다가 영락없이 죽게 될 판국이었으니 몸을 사리는 건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럼 이만 가죠, 리타셜 학생. 또 막으려고 하면 그때는 정말 퇴학입니다. 알아서 판단하세요.”
 “네, 네에···.”
 리타는 거기에 이어서 엘런트가 우려하던 퇴학을 직접 언급하자 그냥 거기에 따랐다.
 그녀는 더는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어서인지 매우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마력을 모으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리타셜 학생. 다행히 리타셜 학생은 머리가 좋은 편이니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1분 내에 부유 마법을 쓰는 데에 실패한 리타는 이 이상 방법이 없는 만큼 엘런트의 온갖 잔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제 어쩌지···?’
 당연히 리타는 그러는 내내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이대로 엘런트를 방에 들이게 되면 어떤 일을 초래하게 될는지는 너무나도 쉽게 예상되었다. 그나마 바랄 수 있는 변수는 소년이 깨어나서 밖으로 나오는 것인데,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외부인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는 만큼 엘런트에게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학생이 그 소년을 목격해도 마찬가지로 끝이었다.
 발뺌하면 그 순간은 괜찮아도 행적을 조사하면 들킬 터였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소년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금까지 조용한 거로 보아 밖으로 나오지는 않은 것 같네. 상태가 좋지 않았던 만큼 아직 자는 걸 수도···.’
 리타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금 생각을 멈추면 모든 게 끝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묘책이 없다면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
 ‘역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나?’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리타는 그러다가 하나의 결심을 내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자, 열도록 하세요, 리타셜 학생.”
 이윽고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긴 끝에 엘런트는 리타의 방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무리 사감이라고 해도 멋대로 학생의 방에 들어가는 건 엄연한 금기였기에 그녀는 옆에 있는 리타를 향해 문을 열 것을 명령했다.
 “네, 네에···.”
 찰칵
 마치 뭔가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던 리타는 엘런트의 말에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천천히 문을 열었다.
 엘런트는 그 광경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거기에서 이변이 일어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콰당
 리타가 혼자만 잽싸게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리, 리타셜 학생!?”
 찰칵찰칵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여세요!”
 물론 엘런트는 리타의 그 행동에 몹시 당황했다. 그녀는 그러다가 무의식중에 손잡이를 잡고 돌렸는데, 그게 돌아가지 않자 언성을 높였다.
 리타가 멋대로 혼자 들어간 것도 모자라 안에서 문까지 잠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방이 너무 엉망이라···!”
 -리타셜 학새애애애앵!
 ‘좋아!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수는 성공···!’
 가까스로 혼자 방에 들어오는 데에 성공한 리타는 노기가 가득한 엘런트의 목소리가 귓가를 거세게 때리자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좌우지간 엘런트를 막고 보는 것. 이게 바로 리타가 궁여지책으로 세운 작전이었다.
 나머지는 안으로 들어가서 생각하는, 정말 무모하지만 할 수밖에 없는 작전이었다.
 방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그냥 포기한 것처럼 있던 것도 전부 그걸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야 엘런트가 경계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쿵쿵쿵
 -얼른 여세요! 안 그러면 마스터키를 가져올 겁니다!
 ‘마스터키는 금방 가져올 수가 없어! 침착하자···!’
 거의 부술 것처럼 문을 세게 두드리며 계속 귀를 찌르는 엘런트의 목소리에 리타는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지금 엘런트와 리타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스터키가 있기는 있었다. 언제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구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단, 누구라도 그걸 마음대로 쓸 수는 없었다. 악용될 우려가 있어 학교의 모든 교수가 동의해야 열 수 있는 특수한 상자에 보관되어 있었다.
 리타가 믿는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낮에도 모든 교수를 모으는 건 쉽지 않은데 지금은 시간이 이른 편이었으니 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엘런트가 그냥 마법으로 문을 부수는 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쿵쿵쿵
 -이익···!
 지금 엘런트가 씩씩거리면서 그냥 문만 세게 두드리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그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명색이 마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인데 마법으로 문을 그냥 부술 수 있으면 보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마법 저항력이 높은 물질을 섞어 특수하게 제작한 문은 교수들은 물론 원장인 로톤조차도 냅다 부술 수는 없었다.
 쿵쿵쿵
 ‘시간은 많아! 생각하자!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시간을 버는 데에 성공했지만, 엄연히 위기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지금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리타는 좀처럼 행동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는데, 그녀는 그러다가 또 볼 수 있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그것은 바로 자신을 향해 머뭇거리면서 인사하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
 리타는 소년의 모습을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기는 했지만, 아직 자고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을거로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마주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쿵쿵쿵
 -리타셜 학생!
 “다행히 다 나은 것 같네! 설명은 나중에 해줄 테니까 이리로 와! 얼른!”
 “네, 네···.”
 리타는 허겁지겁 창가로 향하면서 소년에게 외쳤다.
 소년은 우선 리타를 따랐다.
 덜컹
 ‘윽···. 이렇게 보니까 진짜 높네. 여기에 숨어있으라고 하는 건 역시 무리겠지···?’
 엘런트가 돌아갈 때까지 소년을 창문 밑에 매달린 채 버티게 하는 게 리타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곧 그 생각을 관뒀다. 높이를 보게 된 여파였다.
 더군다나 막 부상을 털고 일어난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소년은 몸이 매우 가늘었다. 그런 힘을 바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쿵쿵쿵
 -리타셜 학생! 얼른 열어요!
 ‘옆방은··· 무리. 저쪽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으시겠지.’
 창가에서 시선을 거둔 리타는 이어서 비어 있는 옆방을 고려했으나 다시 고개를 저었다. 소지품 검사라면 말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조사할 터인데 문 하나만 열면 바로 떡하니 보이는 장소에 숨게 하는 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끄응···! 그래! 지금은 어쩔 수가 없지!’
 “이쪽으로! 얼른!”
 그러나 그건 냉정히 말하면 방법이라고 할 수가 없어 리타는 고민을 거듭하다가도 이내 결심하고는 멀리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소년에게 손짓해서 오도록 했다.
 “잠시 이 안에 숨어줄 수 있을까? 많이 혼란스럽겠지만··· 설명은 나중에 다 해줄게.”
 리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장소는 바로 장롱이었다. 그 크기가 상당하여 사람 한 명은 너끈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더군다나 소년은 나이가 어렸고, 체격이 왜소하여 더 수월했다.
 문제는 소년의 수락 여부였다. 초면인 사람이 다짜고짜 장롱에 숨으라고 하는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건 억지인 것 같았다.
 리타의 이 걱정은 다행히도 기우에 그칠 수 있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소년이 불평은커녕 그 말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롱 안으로 들어간 결과였다. 예상대로 그는 아주 쉽게 안에 들어갔다.
 “정말 고마워. 그리고··· 이제부터가 중요하거든. 들키면 안 되니까 진짜 조용히···. 알았지?”
 “네.”
 리타는 소년을 향해 당부했고, 소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둘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쿵쿵쿵
 -리타셜 학생!!!! 진짜 문 부서지는 거 보고 싶은 겁니까!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인데···. 으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엘런트의 목소리에 리타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엘런트에게 혼나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여태까지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뭐가 두렵겠는가.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히, 어쩔 수가 없었다.
 ‘제발 다음에도 구할 수 있기를···.’
 울상을 짓던 리타는 이윽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아까 청소할 때 치워서 다행히 어질러진 곳은 없었다.
 끼이익
 “헤헤, 교수님···.”
 따악
 “아야야! 머리 나빠져요! 가뜩이나 그게 유일한 장점인데, 너무하시네요!”
 조심스럽게 잠갔던 문을 다시 연 리타는 험악해진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헤실헤실 웃고 있었지만, 그 순간 머리에 충격이 느껴지자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방에 들어온 엘런트가 냅다 꿀밤을 때린 결과였다.
 “후우···. 정말 어이가 없군요, 리타셜 학생. 화장실 청소는 1주 연장입니다.”
 엘런트는 그러한 리타의 모습에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일을 겪어서 그런지 매우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 1주요? 헤헤, 2주 예상했었는데···.”
 “그래요? 그렇다면 2주일로 하죠.”
 “그, 그건 아니죠! 교수라는 분이 어찌 그렇게 막 바꾸실 수가 있나요!”
 뭐, 그래도 분위기는 이런 식으로 그럭저럭 금방 풀렸다. 애초에 리타가 흉악한 중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니 험악해질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분위기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 이제 시작하도록 하죠. 리타셜 학생의 말에도 일리가 있으니 제가 직접 손을 대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지시하면 그 안에 있는 걸 다 꺼내오세요.”
 “네, 교수님.”
 중요한 대목인 소지품 검사를 마침내 시작하는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리타는 엘런트의 말대로 그녀가 특정 장소를 지적하면 거기에 있는 모든 걸 꺼내서 대령했다.
 엘런트는 그 모든 걸 샅샅이 살폈다.
 “음···. 다행히 눈에 띄는 건 없군요.”
 “저만큼 깨끗한 학생은 찾기 어려우실 거예요, 교수님.”
 우선 그 출발은 리타에게 있어 꽤 만족스러웠다. 엘런트가 말한 불온한 물건이 하나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남은 장소가 있었다.
 그 장소는 바로···
 “그럼 이제 저 장롱이군요. 안에 있는 걸 다 꺼내오세요.”
 엘런트의 말처럼 장롱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장소였다.
 “네, 교수님.”
 ‘침착하게···.’
 심장이 떨려왔지만 지금 그걸 겉으로 드러내면 모든 게 끝이었다.
 리타는 엘런트에게 보이지 않도록 작게 심호흡을 하며 장롱으로 향했고,
 덜컹
 그 문을 한 쪽만 열어서 안에 든 걸 꺼냈다. 열지 않은 나머지 한 쪽 문의 뒤에는 소년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엘런트가 그 부분을 지적하면 정말 힘들었겠지만, 그녀는 리타가 순순히 물건을 꺼내 와서 그런지 딱히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검사는, 거기에서 끝이 났다.
 “···리타셜 학생, 이게 뭡니까?”
 마지막으로 장롱을 조사한 엘런트는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거기에서 뜻밖의 물건을 발견하게 된 까닭이었다.
 “네? 교수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리타는 엘런트의 물음에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은 전혀 모르겠다는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엘런트가 이내 말했다.
 “이건 안개의 숲에서만 자라는 수초입니다! 리타셜 학생! 설마 안개의 숲에 갔던 건가요!?”
 “네에에!? 이게 안개의 숲에서 자라는 거라고요!?”
 엘런트의 말에 리타는 무슨 경천동지의 대사건을 접하기라도 한 것처럼 거의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의 표정은 경악에 물들어 있었다.
 “확실하게 말하세요! 어디에서 구한 겁니까!”
 “며, 며칠 전에 시내에 나갔을 때 상인한테 샀던 거예요. 하지만 설마 그런 것일 줄은···.”
 엘런트의 추궁에 리타는 연신 말을 더듬다가도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은 전혀 몰랐다고 행동으로 함께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랬던 건가요···. 아무튼 이건 압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위험한 물건은 아니지만, 안개의 숲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이니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닙니다. 이 일은 비밀로 하세요.”
 “네, 네에···. 그렇게 할게요···.”
 엘런트의 말에 리타는 우울함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리타의 소지품 검사는 끝이 났다. 불온한 물건이 실제로 나오긴 했지만 모든 장소를 뒤졌으니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그나저나 정말 몰랐던 건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타셜 학생이 마법약의 재료를 못 알아봤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요.”
 이제 엘런트는 다시 사감실로 돌아가려던 엘런트는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슬쩍 말했다. 그것은 떠보려는 의도가 강한 물음이었다.
 “전부 저의 불찰이에요, 교수님.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할게요.”
 리타는 엘런트의 그 물음에 고개를 직각으로 숙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전부였다. 진심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지금 와서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남은 휴일 잘 보내시고, 화장실 청소는 내일부터니까 잊지 마세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교수가 그런 학생을 향해 변함없이 계속 모질게 말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곧 엘런트는 압수한 수초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엘런트의 퇴장으로 방에 혼자 남게 된 리타는···
 “아이고~! 진짜 죽다 살았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우면서 거의 소리를 질렀다.
 드러누운 리타의 표정에는 위기를 간신히 넘기는 데에 성공해서 그런지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이걸로 하자. 어때? -
 
 
 ‘후우···.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네. 어떻게 넘긴 거지?’
 리타는 방에 누운 채 생각했다. 그녀는 극적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데에 성공해서 그런지 아직도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임기응변과 노련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완벽한 작전이었다. 결국 엘런트는 소년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안개의 숲에서 조달한 수초를 잃게 된 건 아쉬웠지만 그건 엄연히 말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었다.
 사실 수초는 숨기려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었다. 소년과 달리 그냥 풀에 불과하니 어려운 게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들키게 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엘런트를 만족시켜 돌려보내기 위함이었다.
 엘런트는 자신의 방에 불온한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독한 마음을 품고 소지품 검사를 한 것이므로 그 결과에 순응할 확률은 적었다. 그러면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찾으려고 할 터이고, 결국 그렇게 되었으면 소년을 들키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래서 수초를 일부러 보였다. 안개의 숲에서만 구할 수 있는 수초는 학생이 가질 수가 없었고,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그러니 그만한 물건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걸 보이는 것도 꽤 위험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출처를 상인으로 해두었다. 상인에게 꼬치꼬치 캐물으면 금방 거짓이라는 걸 들키겠으나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으니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초는 새벽부터 나가서 구한 것이라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지금의 결과를 보면 그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참, 이럴 때가 아니지.’
 찰칵
 멋지게 엘런트의 마수로부터 벗어나는 데에 성공한 리타는 그 사실에 일종의 쾌감을 느끼다가도 얼른 몸을 일으켜 우선 출입문을 잠근 다음 소년을 숨게 한 장롱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그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터이니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덜컹
 “이야~. 미안, 미안. 고마워. 덕분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어.”
 “···이제 나가도 되나요?”
 “물론이지. 진짜 고생 많았어.”
 장롱을 연 리타는 소년이 조심스럽게 묻자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소년은 밖으로 나와 리타와 마주보고 앉았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서로 나눌 이야기가 정말 많은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해?”
 리타는 소년을 향해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자신이 그를 위해 의도치 않게 고생도 하고 희생도 한 만큼 일종의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곧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저기···. 죄송해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이처럼 소년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듣게 된 까닭이었다.
 “···진심이야?”
 리타는 그러한 소년의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도 이내 침착하게 물었고, 소년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모를 정도로 기억이 없는 만큼 지금의 상황이 불안한 것인지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흠···. 잠시 실례.”
 터억
 리타는 소년의 말에 사려 깊은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턱을 손가락으로 짚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돌연 소년의 얼굴을 붙잡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똑바로 응시했다.
 소년은 리타의 그 행동에 살짝 놀랐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시선이 불안정하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 거짓말은 아닌 것 같네.’
 리타의 지금 행동은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하는 것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맥박이나 호흡, 동공의 확대 정도를 살피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죽지 않은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지···. 그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다고 봐야겠네.’
 리타는 소년이 기억을 잃은 걸 이해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소년은 말 그대로 죽음의 문턱을 다녀왔다. 전신에 타박상을 비롯하여 상처가 심했고, 그건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다치는 과정에서 기억을 잃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이거야 원···.’
 “알았어. 그럼 우선 여태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말해줄게.”
 리타는 자신의 눈앞에서 주인을 잃은 강아지마냥 연신 불안함을 내비치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 두통을 느끼다가도 설명을 시작했다.
 
 * * *
 
 “그런 일이 있었던 거군요···.”
 “난 너 봤을 때 진짜 놀랐거든.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나?”
 “네···. 제 이름도 모르겠어요.”
 ‘아이고, 이건 꽤 심각하네.’
 모든 설명을 마친 리타는 소년이 여전히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머리를 긁적이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면 그것이 기억의 편린을 건드리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건만 그런 낌새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말에 놀라기 바빠서 진정시키느라고 혼이 날 정도였다.
 사실 리타가 소년의 기억상실증을 유독 안타깝게 여기는 건 이유가 있었다.
 동정의 시선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곤란한데. 이런 애한테 무작정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이럴 땐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함부로 내보낼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가진 건 연약한 몸뚱이 하나가 전부인 아이를 그냥 길거리에 내쫓는 건 정말 지독한 행위였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데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리언트는 그 특성상 외부인의 출입을 그 무엇보다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헌데 자신은 지금 그걸 정면으로 어기고 있었으니···. 엘런트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노발대발할 게 분명했다. 그럴 경우 퇴학은 기정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이런 식으로 고민에 잠겨 있던 리타는 그러다가 볼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리타셜 씨. 덕분에 제가 살 수 있었네요.”
 그것은 무릎을 꿇으며 감사의 인사를 하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지금 있는 방의 주인인 리타가 생명의 은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나름대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어···. 뭐, 그래.”
 얼떨결에 소년으로부터 인사를 듣게 되자 리타는 딱히 바라던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도 아닌지라 대충 대답했는데, 거기에서 그녀는 또 보게 되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것은 다시 한 번 공손하게 인사를 하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자, 잠깐만! 그, 그냥 가려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때문에 리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연신 말을 더듬으면서 소년을 향해 거의 외치듯이 물었다.
 소년이 말했다.
 “네, 더 이상 리타셜 씨한테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들한테 들키기 전에 얼른 가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래도··· 기억나는 게 전혀 없다면서. 그런 상태로 나가는 건 정말 위험하지 않아?”
 “괜찮을 거예요.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을 테니까요.”
 ‘죽을 수도 있거든-!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소년의 말에 리타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딴죽을 걸고 말았다.
 ‘나한테 조금만 더 여기에 있게 해달라고 말하지는 않네. 날 배려해서 그런 건가···. 어린 녀석이 뭐가 이렇게 생각이 깊대?’
 동시에 리타는 소년의 마음 씀씀이에 진심으로 반성했다. 그와 달리 자신은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음···.’
 또한 리타는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겼다.
 그것은 자신이 맞이하게 된 지금의 갈등을 누구 하나 울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저, 리타셜 씨. 죄송하지만 밖으로 몰래 나갈 수 있게 좀···?”
 소년은 그러한 리타의 모습을 보다가도 멋대로 나갔다가 학교의 관계자에게 들키면 그녀가 곤란할 수도 있는 만큼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는데, 그는 거기에서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윽
 리타가 말없이 손을 내젓는 모습을 보게 된 결과였다. 그것은 지금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소년은 그냥 가만히 있었고, 그렇게 둘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건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따악
 “···좋아. 그렇게 하면 되겠다.”
 스스로의 턱을 짚은 채 생각에 잠겨 있던 리타가 대뜸 손가락을 튕기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것이다. 그런 그녀는 마치 모든 근심이 해결된 것 마냥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기···. 리타셜 씨···?”
 소년은 리타의 그 모습이 이해가 어려웠던 터라 머뭇거렸는데, 그는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 당분간 그냥 여기에 있도록 해.”
 이처럼 리타로부터 상당히 파격적인 말을 듣게 된 여파였다.
 “그렇게까지 신세를 질 수는···. 무엇보다 외부인 출입금지라면서요. 절 여기에 있게 하면 리타셜 씨가 곤란하신 게···?”
 당연히 소년은 연신 허둥거리면서 리타를 향해 의문을 나타냈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느라 벌까지 받았다는데 갑자기 그러니까 이해가 어려웠던 것이다.
 “괜찮으니까 있어. 방법을 찾아냈거든.”
 “하지만···.”
 리타는 소년의 그러한 물음에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게 전부였고, 소년은 역시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니만큼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리타는 그러한 소년을 향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거 알아? 내 피는 빨간색이야.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오늘 아침에 열심히 치웠던 너하고 같은 색이란 말이지.”
 “······?”
 “나도 슬플 땐 울고 기쁠 때는 웃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소리야. 그렇다 보니까 아무래도 쉽지가 않아. 네가 잘 알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이 정말 험난해. 그렇다 보니 너처럼 어린애를 무작정 밖으로 내보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를 잘 알아···. 그러니까 그냥 나한테 맡겨. 지금 끝내주는 비책을 떠올렸으니 괜찮을 거야!”
 자신감이 넘치는, 정말 듬직한 모습이었다. 약간 궤변을 늘어놓는 것 같았지만 그녀에게서 진심이 느껴졌다.
 “···고마워요, 리타셜 씨.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부탁드릴게요.”
 그 모습을 보고도 뜻을 굽히지 않는 건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소년은 다시 한 번 리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리타는 그러한 소년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다가도 이내 말했다.
 “참, 내가 누나인 쪽으로 할게. 아무래도 그쪽이 더 말을 맞추는 게 쉽거든.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 겉보기에도 내가 연상인 것 같고, 괜찮지?”
 “네, 뭐···.”
 “그리고 호칭 조심해. 앞으로는 무조건 누나라고 불러. 이름을 붙이는 건 어색하게 느껴질 테니 그냥 누나라고 해.”
 “네, 리타셜··· 아니, 누나.”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해서 나쁠 건 없어 소년은 리타의 말에 그대로 따랐다.
 호칭을 친근하게 바꾸게 되어서 그런지 그의 표정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좋아. 다음은 이름인가.”
 “이름···이요?”
 “뭐, 기억이 나는 게 없으면 적당하게 짓기라도 해야지. 나도 널 편하게 부르고 싶거든. 계속 야, 너, 꼬맹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널 여기에서 지내게 하려면 꼭 필요하기도 하고. 혹시 붙이고 싶은 이름 있어?”
 “음···. 그냥 누나한테 맡길게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일까. 소년은 리타에게 그냥 그 부분을 일임했다.
 “······.”
 우선 묻기는 했다지만 소년에게서 그런 대답을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리타는 굳이 또 묻지는 않고 홀로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겼고,
 “닐 크라이시스···. 이걸로 하자. 어때?”
 금방 소년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시간이 극히 짧은 것으로 보아 소년이 기억상실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내심 생각을 해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좋아요, 누나. 마음에 들어요.”
 소년은 리타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가 지어준 이름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럼 가자, 닐. 날 따라오도록 해.”
 “네, 누나.”
 그렇게 리타와 소년··· 아니, 닐은 밖으로 나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방에서 나온 리타와 닐은 다시 마차를 타고 학교를 벗어나 시내로 나왔다.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계산에 의한 행동이었다.
 다각. 다각.
 “우와···.”
 “왜? 역시 신기하게 느껴져?”
 시내에서 천천히 마차를 몰던 리타는 옆에 있는 닐이 좀처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자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도 슬쩍 물었다.
 “네, 사람이 많아서···. 정말 신기해요. 시내에는 이렇게나 사람이 많았네요. 왜 누나가 저를 말렸는지 알 것 같아요.”
 닐은 리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의 말투나 표정으로부터는 순수한 감탄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반응은 미적지근하네···. 하기야, 기억이 무슨 빌려준 돈도 아니고 그렇게 금방 돌아올 리는 없나.’
 리타는 그러한 닐의 모습에 눈을 빛내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리타의 생각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녀가 지금 닐을 데리고 시내에 나온 이유는 작전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내심 잃었던 기억을 되찾게 되는 전개도 바라고 있었다.
 쓰러져 있던 장소는 확실히 안개의 숲이었지만 그 근처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활달한 장소는 지금 있는 벨제루트 제국의 수도 카를토였다.
 그런 만큼 직접 와보면 혹시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그건 너무 지나친 기대였던 것 같았다.
 ‘사람이 요행을 바라면 쓰나. 그냥 계획대로 하자.’
 리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이렇게 생각을 끝내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우선 지내려면 옷이 필요할 테니까 옷가게부터 갈게.”
 “옷가게요?”
 “응, 내 옷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난 여자라서 새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뭐, 보다시피 내가 남자에 가깝게 입는 편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입는 옷을 주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말한 리타는 고개를 숙여서 자신의 복장으로 시선을 향했다.
 현재 리타는 지금 한 말마따나 후줄근한 티셔츠에 평범한 바지 차림이었다. 또래보다 장신이었고, 그만큼 몸매가 받쳐줘서 제법 괜찮게 보인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 그게··· 제가 돈이···.”
 닐은 리타의 말에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우물거렸는데,
 “아, 괜찮아. 내가 꽤 있거든. 용돈을 간식 사먹는 데에만 써서 여유가 있어. 네가 입을 옷은 다 사고도 남을 거야.”
 마치 그러한 반응을 예상했었다는 것처럼 거기에는 리타의 개입이 존재했다. 나올 때부터 그럴 셈이었는지 그녀는 매우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닐은 이미 신세를 많이 졌는데 또 신세를 지는 게 부담스러운 것인지 좀처럼 물러서지를 않았다.
 거기에는 다시 리타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빌려주는 거로 할게. 나중에 벌면 갚아. 어쨌든 옷은 필수불가결이야. 그 누더기 같은 옷만 입고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피도 덕지덕지 묻어서 그거 입고 돌아다니면 다들 기절초풍할걸.”
 리타의 이 말은 일리가 있었다.
 닐이 이제부터 그리언트에서 지내게 된다면 다 벗고 지낼 수 없기에 옷은 꼭 필요했는데, 지금 옷을 준비하지 않으면 처음에 입었던 그 피범벅의 누더기를 계속 입어야 했다.
 그 차림으로 학교를 돌아다니는 건 확실히 무리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고마워요, 누나.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으게 되거든 꼭 갚을게요.”
 “그래, 그래~.”
 ‘사실 지금처럼 내 옷을 빌려주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리타는 다시 한번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하는 닐의 모습에 적당하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리타의 생각처럼 현재 닐은 부득이하게 그녀의 옷을 빌려서 입고 있었다. 그 피투성이의 누더기 옷을 입고 있으면 장소를 불문하고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차피 리타는 학생이므로 평일에는 망토를 두르는 형태의 교복을 입고 있었고, 평일에도 거의 학교에 있지 딱히 놀러 다니는 취미는 없어 닐에게 옷을 빌려주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더욱이 방금 스스로가 한 말마따나 남자처럼 입고 다니는 편이라 디자인에도 크게 상관은 없었는데, 그래도 문제는 존재했다.
 그건 바로 닐의 체격이 또래보다 왜소하다 보니 옷이 너무 헐렁하다는 점이었다.
 그게 리타가 지금 옷가게에 가장 먼저 가는 이유였다.
 어차피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결정한 이상 용돈에도 여유가 있었으니, 그 정도는 괜찮았다.
 
 * * *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덜컹
 “어때? 마음에 들어?”
 “네, 누나. 정말 고마워요.”
 리타와 닐의 옷가게 쇼핑은 매우 순조롭게 끝이 났다. 점원의 도움을 받은 덕이었다.
 아무래도 날씬한 사람이 뚱뚱한 사람보다 입을 수 있는 옷이 더 많은 법이었다.
 닐은 날씬한 수준을 넘어서 살짝 야윈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뚱뚱한 것보다는 나아서 여유 있게 마음에 드는 옷을 다량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럼··· 슬슬 갈까?’
 작전에는 지금 정도의 시간이면 적당했다. 고개를 들어서 시간을 살피던 리타는 그대로 닐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그녀는 거기에서 볼 수 있었다.
 “······.”
 그것은 바로 정신없이 주변을 구경하는 닐의 얼굴이었다.
 기억을 잃은 만큼 모든 게 생소하게 느껴진 까닭일까, 그의 표정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명백히 더 있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이걸 보고 학교로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는 건··· 역시, 너무 매정했다.
 “조금만 더 구경하다가 갈까?”
 “네? 그, 그래도 되나요?”
 그렇기에 리타는 슬쩍 운을 띄웠고, 바로 닐의 응답이 들려왔다.
 그는 자신이 바라마지않던 제안을 듣게 되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 어지간히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아무렴. 오늘은 휴일이니까 자유로워.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우리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씀이지.”
 리타는 닐의 물음에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듬직했다.
 “헤헤, 정말 고마워요, 누나.”
 닐은 리타의 그 말에 뛸 듯이 기뻐하며 세워둔 마차로 향했다.
 그 발걸음은 스스로의 지금 기분을 표현하듯 매우 가볍게 보였다.
 ‘하기야, 이렇게 시내를 돌아서 나쁠 게 없기는 하겠네.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고, 우연히 닐을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리타는 그러한 닐의 뒷모습에 속으로 생각하며 마차로 이동, 다시 고삐를 쥐고 천천히 마차를 몰아 시내를 돌기 시작했다.
 
 * * *
 
 리타와 닐은 옷가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내 구경에 나섰다.
 관광명소로 유명한 분수대와 거탑 등, 그들은 말 그대로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우와~. 누나, 저것 좀 보세요. 진짜 신기해요.”
 ‘으으···.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슬슬 지치네···.’
 그렇게 되자 리타는 서서히 체력에 한계가 왔음을 직감했다.
 딱히 허약한 체질은 아니었지만, 새벽에 일어나 안개의 숲에 다녀왔고, 그 과정에서 아무리 가볍다고는 하지만 남자아이 하나를 업고 허겁지겁 복도를 뛰어가는 것도 모자라 피를 닦는다고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난리를 피웠으니 지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기, 닐···. 슬슬 가야 할 것 같은데···.”
 때문에 리타는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다행히 거기에는 그녀가 바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네, 누나.”
 닐이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 표정에는 섭섭한 감정이 없지 않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름 참으려고 노력하는 듯싶었다.
 그걸 정면으로 보고 그냥 가는 건··· 역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면··· 닐, 마지막으로 저거 한번 보고 갈래?”
 -자~! 한번 보고 가세요! 싸게 드립니다!
 유종의 미를 장식할 수 있는 뭔가가 없을까 하여 적당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리타는 때마침 잡상인이 보이자 그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는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한 것인지 물건을 가득 풀어놓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나도 필요한 거 있나 보고 싶거든.”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닐이 잡상인에게도 그러는 건 당연했다. 리타는 조심스럽게 묻는 그를 향해 자연스럽게 대답하면서 마차를 몰아서 잡상인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두 분, 뭔가 찾으시는 거라도?”
 “아, 그냥 구경 좀 할게요.”
 ‘음···. 나는 딱히 끌리는 게 없네.’
 리타는 잡상인이 싹싹한 태도로 다가오자 딱 잘라 말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법약에 관심이 지대한 터라 온 김에 그쪽에 써먹을 수 있는 게 있는가 싶어 둘러봤건만 전부 허탕이었다.
 ‘닐이 다 보고 나올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게··· 응?’
 관심 가는 물건이 없어 뒤로 물러난 리타는 자연히 닐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그녀는 거기에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윽···.”
 닐의 명확하게 달라진 얼굴을 보게 된 결과였다.
 지금까지 구경을 하면 초롱초롱 눈을 빛내기 바빴거늘, 그는 지금 괴로운 것처럼 신음을 흘리며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닐, 왜 그래? 어디 아파?”
 뭔가가 있는 건 분명했다. 그렇게 판단한 리타는 얼른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닐이 대답했다.
 “그게··· 저 칼을 보니까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요···.”
 “뭐? 칼?”
 ‘뭐지, 저건?’
 약간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런 만큼 신속하게 닐이 언급한 칼을 향해 고개를 돌린 리타는 곧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 칼이 부러진 까닭이었다. 발견했을 때부터 부러졌는지, 아니면 가지고 오는 과정에서 부러진 것인지 손잡이와 검신은 다 있었다. 단지 두 동강이 났을 뿐이었다.
 ‘음···. 부러진 거니까 별로 비싸지는 않겠지.’
 “사올 테니까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 닐.”
 리타는 좌우지간 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거라고 판단, 그대로 혼자 잡상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저 칼 얼마예요?”
 그리고는 잡상인에게 닐이 말한 부러진 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격을 묻고는 거기에 맞는 돈을 꺼내기 위해 지갑을 열려고 했는데,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다.
 “300골드입니다. 참고로 흥정은 안 됩니다.”
 “엥? 3···300골드요?”
 잡상인으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을 듣게 된 여파였다.
 오늘 닐의 옷을 사는 데에 들인 돈이 15골드였다. 부러진 칼이 그 20배라는 건 비정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아···. 젠장, 그런 거였구나.’
 그 순간 리타는 어찌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잡상인이 자신들의 대화를 들은 게 분명했다. 행색은 둘째 치고 마차를 가지고 있으니 부유한 집안의 자제라고 판단하여 무작정 가격을 세게 부른 것이리라.
 그러다가 팔지 못해도 잡상인에게는 손해가 아니었다. 애초에 부러지면 쓸모가 없어지는 게 칼이었다. 거기에 가격을 매기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이거 난감하네. 그런 돈은 없는데···.’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둔 덕에 지갑은 오늘 옷을 많이 샀음에도 불구하고 여유가 있는 편이었지만 300골드는 없었다. 애초에 용돈인데 그렇게 많은 액수를 모으는 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보니 리타는 지금의 상황에 머리를 긁적이다가도,
 ‘별 수 없지. 이 아저씨가 자초한 일이니까.’
 “아저씨, 잠깐 저하고 이야기 좀 하시죠.”
 곧 의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꽤 당찼다.
 “헤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 칼은 300골드입니다.”
 잡상인은 봉을 잡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처음에 봤을 때처럼 싹싹한 태도로 리타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는 그 순간 흠칫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 솔직히 말해요. 안개의 숲에 다녀왔죠?”
 왜냐하면 이처럼 리타에게서 의표를 찌르는 말을 듣게 된 여파였다.
 “그, 그게 갑자기 무슨···!”
 “에헤이, 보면 다 알아요. 공교롭게도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제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짤랑
 “그 팔찌는···!”
 정곡을 찔린 탓에 좀처럼 평정심을 되찾지 못하던 잡상인은 리타가 작게 속삭이면서 팔에 차고 있는 팔찌를 슬쩍 들어 보이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걸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네, 맞아요. 이제 아셨겠지만 제가 그리언트에 재학 중인 메이지인데, 길을 가다 보니 안개의 숲하고 비슷한 감각이 느껴져서요. 그게 바로 저 칼이었다는 거죠.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서 조사를 좀 해보려는데···. 아저씨가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부르셔서 매우 난감하네요.”
 “2, 200···. 아니, 100···.”
 “어디 보자, 이대로 그냥 가면 치안대가 나오던데···.”
 “5, 50골드! 더 이상은 안 돼!”
 거의 비명을 지르는 잡상인이었다.
 하지만 리타는 그의 생각보다 더 악랄했다.
 “그냥 내놓는 걸 추천할게요. 저는 개인적으로 치안대에 끌려가는 대신에 부러진 칼 한 자루면 이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저씨가 어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리타 쪽이었다.
 잡상인은 결국 항복 의사를 내비쳤고, 그렇게 리타는 사고자 했던 부러진 칼을 얻을 수 있었다.
 “자, 닐. 받아.”
 “누나···. 이걸 어떻게···?”
 “네 사정 설명하니까 그냥 주시더라고. 착한 아저씨야~.”
 엄밀히 말해 협박이었던 만큼 닐에게는 적당하게 각색해서 설명하는 리타였다.
 동시에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했던 말인데···. 아무래도 이 칼은 닐이 쓰던 것 같네.’
 그것은 바로 지금 잡상인을 협박해서 강탈한 칼에 대한 생각이었다.
 닐은 안개의 숲에 쓰러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소지품도 그 주변에 있었다는 게 되었다.
 그 말은 즉, 칼 역시 거기에 있었다는 게 되므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해본 말이었는데 그게 정확하게 먹혀들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건 아주 컸다.
 ‘닐은··· 기억을 잃기 전에 칼을 쥐고 있었다···.’
 리타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연약하다 못해 잘만 꾸미면 여자아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소년이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는 건,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까닭이었다.
 
 * * *
 
 ‘흠, 이제 다들 깼구나.’
 닐에게 입을 옷과 칼을 사준 리타는 그를 데리고 학교로 복귀했다.
 그런데 거기에는 작은 변화가 존재했다.
 이제 점심때라 그런지 한적했던 아침과 달리 교내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많아진 상태였다.
 덜컹
 “조심해서 내려, 닐.”
 “네, 누나.”
 마차를 창고에 세운 리타는 닐과 함께 내려 학교로 들어갔는데, 그녀는 그 순간 들을 수 있었다.
 “어, 리타. 엘런트 교수님한테 들었어. 오늘 아침부터 또 사고 쳤다면서?”
 복도에 있는 창가 근처에서 돌던 리타와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친근하게 말을 붙인 것이다. 그 말투나 외모로 보면 알 수 있듯 친구였다.
 “에이, 사고는 무슨~. 교수님이 오해하신 거야.”
 “오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진짜라니까. 이번엔 뭐 터트린 것도 없거든~.”
 리타는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낄낄거렸다.
 허나 그 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저기···. 그런데 리타, 저 애는 누구야? 본 적이 없는 얼굴 같은데?”
 친구가 뒤쪽에 조심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닐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리타와 같이 있어서 그런지 그녀는 닐에게 금방 관심을 나타냈다.
 리타가 대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네. 얘는 내 사촌 동생이야. 이름은 닐 크라이시스. 방금 시내에서 만났어. 인사해, 닐. 내 친구인 리안느 크로튼이야.”
 “아, 안녕하세요···.”
 “이야~. 너한테 사촌 동생이 있었어? 귀엽게 생겼는데?”
 닐은 리타의 소개에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리안느는 그러한 닐의 모습에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그렇다. 지금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듯 리타는 닐을 자신의 사촌 동생으로 위장시켜서 지내게 할 심산이었다.
 일부러 아침부터 시내에 나가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적당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도 그 사이에 만나서 온 것처럼 꾸미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사촌이라고 해도 엄연히 따지면 외부인이므로 지내는 건 어려운 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으나, 거기에도 다 방법은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수도 있어. 집안 사정으로 당분간 여기에서 일하게 될 것 같거든.”
 이어지는 이 말처럼 리타는 닐에게 학교에서 지내게 하면서 잡일을 도맡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셈이었다. 가계조사를 하면 들통날 가능성이 높겠으나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니 그럴 확률은 극히 낮았다.
 말 그대로 일꾼 하나가 그냥 늘어나는 셈인데 그걸 나쁘게 생각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현재 그리언트는 전체적으로 일손이 부족한 편이어서 누구든 오기만 하면 무조건 환영이었다.
 당연히 그런 만큼 채용하는 과정에서 과거를 세세하게 묻지도 않았고, 일을 하면 급료도 나오니 어떻게 보면 지금 닐에게는 안성맞춤인 환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문제를 굳이 꼽자면 과연 닐이 잡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인데, 리타는 시내를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자신이 세운 작전을 설명하며 닐의 의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속행하기로 결정했다. 그에게서 어떻게든 하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보게 된 결과였다.
 “어, 그래? 앞으로 보면 잘 부탁할게, 크라이시스.”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크로튼 누나.”
 아무튼 이렇게 닐은 무사히 리타의 친구인 리안느와 인사를 나누면서 어렵지 않게 그리언트에 녹아들 수 있었다.
 헌데 리타의 친구는 리안느가 전부가 아니었다.
 -어~! 리타! 이야기 들었어!
 -하하! 엘런트 교수님한테 또 혼났다면서!
 -교수님도 힘드셔! 적당히 해!
 말 그대로 리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닐을 데리고 복도에 나타나면 모든 학생들이 학년을 막론하고 말을 걸기 바빴다.
 덕분에 닐은 덩달아서 자기소개를 하느라 무던히도 힘을 빼게 되었다.
 “누, 누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네요···.”
 그렇다 보니 닐은 진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여러 학생들에게 시달려서 그런지 -귀엽게 생겼다면서 지나치게 관심을 표현하는 학생이 꽤 있었다- 지쳤는지 다소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기도 했다.
 “음, 그런가? 딱히 바란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더라고. 내가 좀 특이한 점이 있어서 그런가···.”
 리타는 닐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면서 중얼거렸다.
 “특이한 점이요?”
 가만히 리타의 말을 듣고 있던 닐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이해가 어려운 말을 듣게 된 까닭이었는데, 닐은 이어지는 리타의 말에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아, 말하지 않았었나? 사실 내가 마법을 잘 못 쓰거든. 간단하게 말하자면 낙제생이라는 거지.”
 이처럼 리타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낸 여파였다.
 기억을 깡그리 잃은 만큼 모든 걸 세세하게 아는 건 아니었으나 지금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이해가 가능했다.
 마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마법일 터였다.
 하지만 리타는 메이지임에도 불구하고 마법이 서툴렀다.
 그 말은 즉,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는 게 되는 것이다.
 “죄송해요, 누나. 제가 잘 몰라서···.”
 아무리 몰랐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사과하는 게 도리였다. 그렇게 판단한 닐은 면목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는데,
 “괜찮아. 나는 딱히 그걸 슬프게 생각한 적이 없거든.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나는 마법 쓰는 것만 빼면 완벽해. 거기에 맞게 진로도 이미 다 정한 상태야. 내 실력은 이미 봐서 알지?”
 리타는 피식 웃으며 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전부였다.
 그것은 결코 가식적인 웃음이 아니었다.
 그러한 리타를 향해 계속 우울하게 있는 건··· 명백한 실례였다.
 “그럼요. 누나 덕분에 제가 여기에 있는걸요.”
 그렇기에 닐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미소로 화답했다.
 그것 또한 가식이 전혀 없는 미소였다.
 
 * * *
 
 “저, 누나.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여러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며 리타와 함께 복도를 돌아다니던 닐은 그녀를 향해 물었다.
 학교에 대해 모르는 터라 들어도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들어서 나쁠 건 없을 거라고 판단한 물음이었다.
 리타가 말했다.
 “아, 교수님한테 가는 거야. 네가 여기에서 지내게 하려면 교수님의 허가가 필요하거든.”
 “교, 교수님이라면 혹시 그···?”
 닐은 리타의 대답에 약간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그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것으로 보아 방에서 보았던 엘런트를 떠올린 듯싶었다. 장롱에 틈이 있어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하하, 다른 교수님한테 가는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엘런트 교수님도 그렇게 무서운 분은 아니야. 그건 내가 잘못한 것도 맞거든. 멋대로 문을 잠그고 밖에서 기다리게 했으니···.”
 리타는 그러한 닐의 반응에 웃으면서 졸지에 악귀로 군림하게 된 엘런트를 두둔했다.
 뭐, 마지막에 한 말마따나 충분히 맞을 짓을 했으니 맞는 건 당연했다.
 “그렇군요···. 어떤 교수님인가요?”
 닐은 리타의 대답에 호기심을 나타냈다. 어쨌든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이니 일종의 기대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리타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여기가 꽤 넓잖아? 그렇다 보니 너처럼 잡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 그 사람들을 관리하는 분이셔. 알테르 고스넌트 교수님이라고, 교양 과목을 가르치는 분이야.”
 “고스넌트 교수님이군요. 그분은 어디에 계신가요?”
 닐은 리타가 팔을 크게 벌리면서 말하자 알테르의 호칭을 정리하면서도 그가 있는 곳을 물었는데,
 “불렀나요? 학생은 누구죠? 처음 보는 얼굴인데요?”
 “······!”
 닐은 그 순간 깜짝 놀라면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뒤쪽으로부터 생소한 목소리가 들려온 까닭이었다.
 닐은 거기에서 볼 수 있었다.
 “오~. 알테르 교수님, 마침 찾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젊은 남성이었다.
 엘런트와 비슷하게 망토를 두르는 패션이나 방금 스스로가 건넨 말, 지금 리타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그가 알테르인 듯싶었다.
 “리타셜 학생이 그런 말을 하니까 두려운데요···. 무슨 일로 그러시는 건가요?”
 “괜찮아요, 교수님. 이번에는 단순하게 그냥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거든요.”
 리타는 알테르가 살짝 경계하듯 말하자 얼른 그를 안심시켰다. 지금 알테르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부탁이라···. 무슨?”
 알테르는 리타를 향해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그 모습으로 보아 지금의 이야기에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리타가 말했다.
 “네, 이 애는 제 사촌 동생인 닐 크라이시스라고 해요. 인사해, 닐. 이 분이 알테르 고스넌트 교수님이셔.”
 “아, 안녕하세요···.”
 우선 리타는 닐에게 알테르를 소개시킨 다음 계속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얘가 지금 집안사정 때문에 지낼 곳이 필요해서 그런데, 당분간 여기에서 일꾼으로 지낼 수 있게 해주실 수 없을까 해서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리언트에서 일꾼은 환영받는 존재였다. 그들을 관리하는 알테르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심지어 닐은 자신의 소개로 위장이긴 하지만 신원까지 보장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리타는 내심 수락을 예상했으나.
 “아···. 미안하지만 그건 좀 힘들 것 같네요.”
 알테르는 뜻밖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 왜요? 어째서? 일꾼은 무조건 환영 아니었어요?”
 당연히 리타는 그러한 알테르의 대답에 납득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유를 물었고, 거기에는 알테르의 침착한 대답이 존재했다.
 “사실은 최근에 학교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인력을 보강했거든요. 물론 아직 자리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공교롭게도 힘이 필요한 일이라···. 리타셜 학생의 사촌 동생이라는 점은 환영이지만 그래도 이 친구는 어려울 것 같아서 말이죠.”
 ‘으···. 이건 곤란한데···.’
 리타는 알테르의 대답에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닐은 누가 봐도 힘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나이도 그랬고, 체격은 더 그랬다. 그를 힘쓰는 데에 두는 건 누가 봐도 다른 의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교수님, 저는 그 일을 꼭 해야 합니다. 달리 갈 곳이 없기 때문이에요. 필요하다면 증명하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닐이 알테르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말을 마친 그의 표정은 지금 한 말마따나 그리언트에서 지내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 그런지 굉장히 진지했다.
 “뜻은 잘 알겠지만 내게도 입장이라는 것이 있어서···. 최소한 저 정도는 들 수 있어야 가능할 것 같네요.”
 알테르는 닐을 향해 창가 쪽에 장식되어 있는 거대한 동상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 동상은 건장한 성인 남성도 간신히 들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워서 학교에서도 마법으로만 옮기는 물건이었다.
 “···알겠습니다.”
 “야, 야! 닐! 너 그러다가 허리 다쳐!”
 작전은 다시 세우면 그만이었다. 때문에 리타는 닐이 알테르가 말한 동상 쪽으로 다가가자 황급하게 그를 말리려고 했으나, 거기에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이어졌다.
 덜컹
 “아니···?”
 “어, 얼레?”
 놀랍게도 닐이 동상을 드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족히 세 배는 되어 보이는 동상을 아무렇지 않게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그것이 별로 힘들지도 않았는지 호흡이 격해지기는커녕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설마 리타셜 학생···. 아니,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타셜 학생이 마법을 썼을 리는 없을 테니···.”
 “교수님, 그거 엄청 실례라는 건 알고 계시나요?!”
 일반적으로 닐과 같은 체격의 소유자가 지금처럼 괴력을 선보이는 건 말이 되지 않아 순간적으로 리타의 마법을 의심하던 알테르였으나 그는 곧 스스로 그 의심을 거두었고, 리타는 알테르의 그 말에 발끈했다.
 자신이 아무리 학교에서 낙제생으로 통한다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웃을 수는 없는 것이다.
 “흠···. 알겠습니다. 즉시 연락을 해두죠. 오늘 내에 여기에 인적사항을 적어서 식당으로 가져가면 될 겁니다. 그럼 전 이만···.”
 어쨌든 힘이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좀처럼 구하기가 힘들었으며 학생인 리타의 사촌이라면 신원도 보장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 알테르는 닐에게 채용서류를 건네면서 말하고는 그대로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발걸음은 본의 아니게 리타에게 무례한 말을 해서 그런지 다소 빨랐다.
 “후우···. 뭐, 어쨌든 좋게 끝났으니···. 그나저나 대단하다, 닐. 네가 힘이 그렇게 셀 줄은 몰랐는데. 이걸 어떻게 들었어?”
 “그게··· 그냥 하니까 되더라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음~! 그런 자세 아주 좋아! 칭찬해줄게!”
 이렇게 닐은 무사히 그리언트에서 일꾼 노릇을 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 * *
 
 정말 많은 일이 벌어졌던 휴일은 그럭저럭 마무리가 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밤이 깊어졌고, 그로 인해 그리언트의 모두가 숙면에 빠졌다.
 단, 거기에는 예외가 존재했다. 그 사람은 바로 리타였다.
 리타는 현재 방에 밖으로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등불을 약하게 켜두고 밤을 지새우는 중이었다. 원체 잠이 적은 편이기도 했지만 반드시 조사하고 싶은 게 생겨난 까닭이었다.
 지금 리타가 조사하는 건 바로···
 덜컥
 ‘음···.’
 오전에 닐과 함께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우연찮게 발견한 잡상인으로부터 손에 넣은 부러진 칼이었다.
 닐에게 양해를 구해서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돋보기로 그 칼의 구석구석을 조사하는 중이었다.
 ‘꽤 험하게 쓴 것 같네.’
 리타가 첫 번째로 찾아낸 부분은 칼이 꽤 오랫동안 쓰였다는 점이었다.
 돋보기로 천천히 살펴보니 알 수 있었다. 칼은 손잡이를 비롯하여 부러진 검신 쪽에도 무수히 많은 흠집이 존재했다.
 그걸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단순하게 장식하는 용도로 쓰인 게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서걱
 ‘진짜 날카롭네···.’
 돋보기를 치우고 날 부분에 종이를 살짝 갖다 댄 리타는 그것이 말 그대로 대기만 했을 뿐인데 여지없이 깨끗하게 잘려나가자 그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지금의 광경을 보면 알 수 있듯 리타가 두 번째로 찾아낸 부분은 바로 절삭력이었다.
 흠집만큼이나 이가 빠진 게 돋보기를 통하지 않아도 보이는데, 그럼에도 정말 날카로웠다. 동일한 재질인 철조차도 너끈히 잘라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제작 과정에서 마법으로 강화된 듯싶었다.
 이윽고 리타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알아내고자 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포옹
 리타는 부러진 칼의 검신과 손잡이를 눈앞에 두고 작은 병 하나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잠시 그것을 보고 있다가 천천히 그 안에 담긴 액체를 손잡이와 검신 모두에 끼얹었다. 그 액체의 색은 물을 끼얹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투명했다.
 그런데 거기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스르륵
 액체가 묻은 손잡이와 검신에 푸르스름한 형광색이 강렬하게 나타난 것이다.
 ‘···! 정말로 드러날 줄이야···.’
 리타는 자신이 예상했던 그 광경을 실제로 보게 되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리타가 지금 칼과 손잡이에 끼얹은 액체는 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마법약이었다. 마법으로 세척한다고 해도 새로 만드는 게 아닌 이상 아무리 열심히 닦는다고 한들 그 성분은 미량이나마 남기 마련이었다.
 닐이 기억을 잃기 전에 쓰던 칼처럼 보여 혹시 몰라 조사했던 건데, 정답이었다. 안개의 숲에서 발견되었다고도 하니 이 부러진 칼은 닐이 쓰던 게 확실했다.
 단순하게 피가 묻어서가 아니었다.
 그 방향을 살핀 결과였다.
 ‘이 칼로 다른 누군가를 죽였다면 끝에서 손잡이 쪽으로 피가 묻어야 정상이야. 하지만 여기에는 말 그대로 피가 덕지덕지 묻었을 뿐이지···. 닐이 이걸 품에 안고 있었다면 딱 맞아떨어져.’
 리타의 이 생각처럼 부러진 칼에는 피가 역으로 강하게 튄 흔적이 없었다. 그냥 검신과 손잡이 쪽에 잔뜩 묻은 게 전부였다.
 이게 의미하는 건 하나를 제외하면 없었다. 닐이 기억을 잃기 전에 소지하고 있었다는 게 되는 것이다.
 강물에 빠지고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피를 흘린 그였다. 그 전이라면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냥 몸에 지니고만 있었어도 피가 묻었으리라.
 ‘쩝···. 기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리타는 우선 거기에서 조사를 마쳤다.
 사실 많은 걸 바라고 한 건 아니었다. 고작 부러진 칼 한 자루를 조사한다고 해서 모든 걸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닐의 기억이 돌아오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좌우지간 당사자인 그가 직접 말을 해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이어서 리타는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사실 리타는 닐에게서 칼을 그냥 빌린 게 아니었다. 조사 겸 부러진 걸 완벽하게 복원시켜주겠다는 구실로 가져온 것이었다.
 전문적으로 대장간의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마법을 능숙하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리타에게 있어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토옥
 리타는 부러진 칼의 손잡이와 검신의 단면을 정확하게 맞춘 다음 그 사이에 마법약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파지직
 그러자 거기에는 또 다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약이 그 틈새에 스며들더니 완벽하게 똬리를 튼 것이다.
 지금의 광경을 보면 알 수 있듯 리타가 믿은 건 바로 마법약이었다. 교수와 맞먹을 정도라는 평가를 받는 실력의 소유자답게 부러진 게 붙도록 하는 게 어려울 리가 없는 것이다.
 완성도가 어마어마하게 뛰어나, 솔직히 말해 학생들 수준에서는 마법으로 고치는 것보다 훨씬 나을 정도였다.
 부웅
 휙
 ‘확실히 가볍단 말이야~. 진짜 누가 만든 걸까?’
 마법약으로 칼을 복원시키는 데에 성공한 리타는 잘 고쳐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것을 손으로 들어서 휘둘렀고, 그 과정에서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금처럼 여자아이인 자신이 무난하게 휘두르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닐의 칼은 흔히들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전설의 무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가벼웠다.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 길이가 족히 1m는 되어 보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더욱이 닐은 체격에 비해 힘이 굉장히 강한 편이었으니, 지금의 칼을 쓴다면 본격적으로 검술을 배울 경우 대단한 실력자가 될 것 같았다.
 ‘엇?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잠시 닐의 칼을 휘두르며 마법약이 제대로 효과가 나타났는지를 확인하던 리타는 그러다가 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하고서는 얼른 외출을 준비했다.
 오늘부터 다시 수업이 있는 평일이었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장소가 있었다.
 ‘그나저나 닐은 잘 잤을지 모르겠네~.’
 닐의 칼을 비롯하여 모든 짐을 꾸린 리타는 그대로 방을 나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녀가 향한 곳은 바로 창고였다.
 
 * * *
 
 덜컹
 ‘조심조심···.’
 방을 나온 리타는 그대로 복도를 돌고 돌아 밖으로 나왔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휴일에 일찍 돌아다녀도 좋은 소리는 못 듣기 마련인데 평일에 그러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교수들에게 들킨다면··· 특히 엘런트에게 들킨다면 그 즉시 끝장이었다.
 사실 리타도 평소에 낙제생 취급을 받는 만큼 지금처럼 교수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는 행동은 되도록 자제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다음 휴일까지 기다리는 건 너무 멀지···.’
 지금의 생각처럼 리타는 오늘 닐을 데리고 안개의 숲에 가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그를 발견한 장소였으니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순찰을 피하기 위해선 어제처럼 수업이 없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휴일에 가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이다. 가장 좋은 선택지는 다음 휴일까지 기다리는 것이었으나, 그러기에는 다음 휴일까지 너무 많은 날이 남아서 그냥 오늘로 정했다.
 사실 어제도 닐이 안개의 숲에 적지 않은 관심을 나타냈었지만 못 갔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지금 가려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게 목적이니만큼 늑장을 부려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었다.
 ‘우선 닐부터 깨워야겠네.’
 무사히 밖으로 나오는 데에 성공한 리타는 그대로 마차를 세워둔 창고로 다가갔다. 닐을 깨운다면서 왜 거기로 가는 것이냐면, 그가 어제 거기에서 취침한 까닭이었다.
 아무리 지금이 초여름이라 더운 시기라지만 사람을 밖에다가 재우는 건 썩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리타도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 닐을 자신의 방에 재우려고 했었다. 어차피 남는 방이 있으므로 별로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닐이 그걸 거부했다. 그는 또 신세를 질 수는 없고, 다 큰 남녀가 그렇게 지내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닐이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해도 급히 들어온 인력이라 아직 숙소가 마련된 건 아니어서 잘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서 리타도 그냥 괜찮으니 다시 한 번 방에서 자라고 설득하려고 했지만 닐은 그걸 또 다시 거부하며 그냥 마차에서 자는 수고로움을 택했다.
 리타는 어린 동생처럼 보이는 닐이 자신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을 걱정하자 그냥 허허 웃으며 그 뜻을 존중하며, 덮고 잘 수 있게 담요를 빌려주는 쪽으로 타협했다. 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신세를 졌는데 또 신세를 지는 셈이었고, 주변에 사촌이라고 둘러댔다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상대가 같은 남성이라면 모를까 엄연히 이성인 여성···.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보시오~. 일어나시오~.”
 바깥에 나오는 데에 성공했으므로 딱히 소음을 조심할 필요는 없었다.
 창고에 도착한 리타는 유쾌한 목소리로 닐을 부르면서 마차로 다가갔고, 거기에서 볼 수 있었다.
 “······.”
 ‘우와, 천사가 따로 없네.’
 물론 리타가 마차에서 보게 된 건 구석에서 담요를 덮고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닐의 모습이었다.
 어제 침대에 재웠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평소에도 대단히 얌전해서 그런지 닐이 자는 모습은 굉장히 귀여웠다. 단순하게 귀여운 수준을 넘어서 괴롭혀주고 싶은 마음이 은근히 샘솟을 정도였다.
 “닐~. 이제 가야 하는데~.”
 리타는 잠시 흐뭇한 표정으로 닐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한 번 그를 깨웠다.
 휴일이 아닌 평일에 나가는 만큼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돌아와야 하므로 시간에 그렇게까지 여유가 있는 게 아니니 서두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
 허나, 응답이 없었다. 어지간히도 피곤했었는지 닐은 깨어나지 못 했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는 만큼, 리타는 결국 행동에 나섰다.
 쭈우욱
 “일어나라~. 이 잠꾸러기야~.”
 그녀가 취한 행동은 개구쟁이처럼 닐의 볼을 손가락으로 잡아서 양쪽으로 쭉 늘리는 것이었다.
 “으···.”
 아무래도 볼을 꼬집어서 늘리는 것이라 그런지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닐은 약간 괴로운 듯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잘 잤어? 억지로 깨워서 미안해, 닐.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늦을 것 같거든.”
 “아···. 죄, 죄송해요, 누나. 느, 늦지 않게 일어나려고 했는데···.”
 눈을 뜬 닐은 리타가 볼을 긁적이며 사과의 뜻을 밝히자 화들짝 놀랐다. 말을 더듬는 것이나 그 표정이 다소 붉어진 것으로 보아 지금의 상황이 약간 창피한 모양이었다.
 “엇차, 그럼 여기에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말들 데리고 올게. 그리고··· 이거. 고쳤어. 아마 또 부러지는 일은 없을 거야.”
 “매번 신세만 지네요···. 고마워요, 누나.”
 리타는 닐에게 빌렸던 칼을 돌려주고 그대로 마차에서 내려 마구간으로 가서, 말 두 필을 데리고 창고로 돌아왔다.
 ‘오···.’
 그런데 리타는 거기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휘익
 휘리릭
 창고에서 정말 예상치 못한 구경을 하게 된 결과였다.
 그것은 칼을 두 손으로 쥐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닐의 모습이었다. 그 모든 움직임은 대단히 유려하여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짝짝
 “우와~. 닐, 대단한데? 칼 쓸 줄 아나 봐?”
 리타는 그러한 닐의 모습에 박수를 쳐주었다. 돈을 내도 아깝지 않을 법한 걸 보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냥 하니까 되더라고요. 뭔가 익숙한 느낌이에요.”
 닐은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으로 보아 뭔가를 알고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익숙한 느낌이라···. 기억이 없는데도 그럴 정도라는 건 그만큼 많이 써봤다는 말이겠지. 이번에 안개의 숲에 가면 뭔가 알 수 있으려나?’
 리타는 닐의 그 대답에 속으로 생각했다. 평일인 오늘 움직이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결과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혼날 걸 각오하고 움직이는 만큼 부디 지금 움직이는 게 헛수고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푸르르륵···.
 “그럼 슬슬 가자, 닐. 떨어지지 않게 꽉 붙잡고 있어.”
 “네, 누나.”
 곧 리타와 닐은 마차를 타고 움직였다.
 물론 그들의 목적지는 첫 만남의 장소인 안개의 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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