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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고장 난 퍼즐(1)

2019.12.23 조회 3,179 추천 47


 도미노를 만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바꾸어 버린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
 내 말 한마디, 작은 손짓 하나로 세상의 크고 작은 사건을 뒤집을 수 있게 됐다.
 
 나비들을 날려 보내 날갯짓을 일으키자,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태풍을 일으키는 권능자가 됐다.
 
 내 맘대로 현실을 직접 조작한다.
 내가 인과 관계, 사건, 그리고 현실의 주인이다.
 
 ***
 
 안두현은 평생 두통에 시달렸다.
 태어날 때부터 고3이 되기까지.
 극심하진 않지만 분명히 인지할 수 있는 두통. 마치 뇌 곳곳에 잡음이 끼어 꿈틀거리는 거 같았다.
 그 때문에 안두현은 사지가 멀쩡하고 지능이 높음에도, 평생 불구처럼 살아왔다.
 늘 뒤처졌고, 어느 것에도 뛰어나지 못했다.
 의학적인 이상점도 발견하지 않았고, 정신병이라 치부하기엔 이상 소견이 없었다.
 그저 잔잔한 두통만 평생 따라다녔다.
 하루 6시간, 간신히 약을 먹고 자는 때가 아니면 늘상 잔잔한 두통이 가득했다.
 “으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안두현은 등교 중이었다.
 이제 수능이 다가옴에도 그의 머릿속엔 전혀 쌓인 지식이 없었다.
 1초도 집중하기 힘들 만큼 언제나 정신엔 잡음이 가득했으니.
 “왜 나만······ 왜 나만!”
 안두현이 습관처럼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알 수 있었다.
 안두현 자신만 항상 고통스럽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편안한 정신으로 늘상 웃고 떠들었다. 즐거워 보였고, 고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편안해 보였다.
 심지어 슬프고 화나는 감정도 순도 높게 누리는 거 같았다. 그조차 안두현에겐 사치였다.
 “근데 왜 나만.”
 안두현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원인도 모를 빌어먹을 두통 때문에 인생을 송두리째 망친 거 같았다. 부모는 이제 안두현에게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떠안은 짐이었다.
 “으으.”
 가장 끔찍한 것은, 앞으로도 쭉 이렇게 잔잔하게 고통스러울 거 같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죽어 버릴까. 죽으면 편하지 않을까.’
 안두현은 맘속으로만 끔찍한 소망을 중얼거렸다.
 그에게 희망이란 없어 보였다.
 툭.
 “아이, 씨발!”
 그러다 안두현은 체구 좋은 학생 하나와 부딪혔다.
 “어?”
 안두현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부딪힌 게 아파서도, 부딪힌 학생이 학교 최악의 일진 최두식이어서도 아니었다.
 ‘어, 없어졌다!’
 최두식과 부딪힌 순간 평생을 옥죄던 잔잔한 두통이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 숨겨진 스위치를 꺼 버린 것만 같았다.
 게다가 한순간 맑아진 정신으로, 1초 만에 방대한 양의 말이 안두현의 머릿속에 쏟아졌다.
 ―두현아.
 안두현이 보고 있는 것은 거대한 대저택에서 아늑하게 앉아 있는 노인이었다.
 백발의 노인은 수천 평이 넘어가는 자기 소유의 대정원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부와 명예, 권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의 구현. 그리고 네 가치관의 실현까지. 모두 네 것이다. 세상은 아주 심하게 뒤틀려 있어. 네 스스로가 풀어져야 할 매듭이다. 이제부터야.
 그 모든 말이 단 1초 만에 안두현에게 전해졌다.
 “이 새끼가 어디서 멍을 때려!”
 콰작!
 “악!”
 그다음으로 들어온 것은 최두식의 쇠주먹이었다.
 키 190cm에 몸무게 110kg. 그럼에도 체지방률은 10%대였다.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무기. 그럼에도 얼굴은 잘생겼고 비율은 아름다웠다.
 스펙만 보면 엘리트 격투기 선수였지만, 최두식은 강남 인문계 고등학교의 전교 1등을 거머쥐고 있는 엘리트 일진이었다.
 고급 과외와 부자 집안 덕분에 공부에는 항상 능숙했다. 게다가 유전자가 좋아서 머리는 물론 신체가 우월했다.
 단지, 가정 교육에는 실패했는지 최두식의 인성은 악하다 못해 지독했다. 그는 학교에서 왕처럼 군림했다. 성군이 아닌 폭군으로서.
 “이 개새! 야, CCTV 없는 곳으로 끌고 가.”
 안두현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최두식의 부하들에게 끌려갔다.
 질질 끌려가는 중에서도 안두현은 맑은 정신으로 생각했다.
 맑은 정신은, 마치 평생 사막에서 말라붙은 목에 쏟아붓는 시원한 얼음물 같았다.
 그 강력한 맑음 속에서, 뒷모습만 보이는 노인은 안두현에게 정답을 속삭여 주었다.
 ―이제부터 당분간은 집요하게 최두식에게 당해 주어야 한다. 왜 그런지는 매일 밤 알게 될 거야. 하지만, 끝내는 최두식이 무릎을 꿇게 될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기 위해선 네가 당해 주어야만 해.
 “하하! 이게 뭐지?”
 안두현은 처음 느끼는 편안한 정신과 함께, 미래에서 전해지는 확신에 웃음을 터뜨렸다.
 “허! 쪼, 쪼개?”
 “오줌 지렸나 봐라. 맞을 생각에 신나나 보다.”
 “어? 이 새끼, 항상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는 그 삐구 새끼네?”
 “아는 놈이냐?”
 “그냥 굴러다니는 찐따. 공부도 못하고 집안도 거지야. 장애인 같던데? 항상 구부정하게 걷고, 머리를 쥐고 있어. 자폐 같진 않던데.”
 “그럼 제대로 아침 운동 좀 해야겠네. 모의고사 날인데 개운하게 시작해야지.”
 “좋지.”
 안두현의 손이 일진 중 하나의 교복에 스쳤다.
 현재 일진들은 안두현을 구석진 골목에 끌고 가는 중이었다.
 ‘헉!’
 안두현은 잠깐이나마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개처럼 두들겨 맞아 온몸이 피떡이 된 자신을.
 결국엔 병원 신세를 지다가 장기 파열로 불구 같은 삶을 살게 된다. 물론 학교 측이나 법원 측은 최두식의 손을 들어 준다.
 ‘안 돼!’
 처음으로 얻은 맑은 정신이 안두현을 간절하게 만들었다. 그의 생존 본능을 자극했다.
 ‘이, 이런 정신이라면 뭘 해도 잘할 것 같고 뭘 해도 즐거울 거 같아! 게다가, 어느 정도 당해 주다가 결국 무릎 꿇리게 된다고 했어!’
 안두현은 스스로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차이가 자신을 살고 싶게 만들었다.
 “이익, 놔!”
 “닥쳐, 이 새끼야!”
 “커헉!”
 애석하게도 안두현은 생각한 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약해 빠진 몸은 도저히 일진들을 당해 내지 못했다.
 “건방진!”
 “새끼!”
 일진들이 구석진 곳에서 안두현을 밟기 시작했다. 최두식은 자기 주먹이 아깝다는 듯, 가까이 서서 안두현에게 침만 찍찍 뱉어 냈다.
 “더, 더.”
 안두현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며 최두식은 무표정하게 웃었다.
 자신의 우월감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감히 누구랑 부딪혔는지 평생 후회하며 살아라.”
 최두식은 느긋하게 전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곤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안두현을 주시했다.
 ‘안 돼. 그만!’
 안두현은 어떻게든 지금의 고통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겨우 잔잔한 두통이 사라졌는데, 그보다 훨씬 심한 고통이 온몸에 퍼부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익!”
 안두현이 이를 악물었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맞아서 불구가 된 자신의 미래마저 보았다.
 섬뜩할 정도로 선명한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미래의 노인은 자신에게 당해 주라고 했다.
 ‘어!’
 바닥에 굴러다니던 돌 한 조각이 안두현을 불렀다.
 “악!”
 안두현은 맞는 중에서도 손을 뻗어 작은 돌을 집었다. 그리곤 그걸 손이 이끌리는 대로 일진 중 하나의 발밑에 두었다.
 “꿈틀거리지 말, 악!”
 일진이 발을 치켜들려다가 작은 돌을 밟았다. 그리곤 홱 뒤로 넘어졌다.
 그 바람에 옆에 있는 일진 역시 몸을 휘청거렸다.
 “아, 조심 좀.”
 카강!
 휘청거리던 일진이 골목에 쌓여 있던 짐을 등으로 툭 쳤다. 그 바람에 짐이 일진들 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또.’
 안두현은 다시금 볼 수 있었다.
 짐과 멀찍이 있는 일진 중 하나의 무릎이 빛나는 것을.
 안두현은 벌떡 일어나 툭 그 일진의 무릎을 밀었다. 그 바람에 일진은 전에 축구를 하며 무리가 갔던 무릎에 픽 힘이 빠져 버렸다.
 콰각!
 결국 일진 셋이 짐에 깔리게 됐다.
 반면 안두현은 오묘한 자세로 짐에 닿지조차 않은 상태였다. 그는 얼른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뭐야!”
 “씨, 씨발! 찬준아!”
 일진들은 혼란에 빠져 짐을 들어내는 중이었다.
 한데 짐 안에는 금속 자재가 들어 있었는지 그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다.
 “저, 저 새끼 도망친다!”
 그 사이 안두현은 골목에 나 있는 작은 문을 열어젖혔다.
 본래는 잠겨 있었지만 낡은 문을 고정하는 녹슨 나사를 빼니 툭 문이 열렸다. 마찬가지로 무색(無色)의 빛을 본 덕분에 행동할 수 있었다.
 “얼굴 봐 놨으니 내버려 둬! 일단 이 새끼들부터 살려야지!”
 “구급차 불러야 하나?”
 딱!
 “빨리 부르라고! 뭘 처물어?”
 최두식은 부하들의 뒤통수를 치며 닦달했다.
 귀찮은 일들을 도맡아 해 주는 부하들이었다. 하나도 아끼는 맘은 없었지만, 귀찮고 거슬리는 건 질색이었다.
 셋이 줄면 그만큼 자신의 수족이 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입맛에 맞게 부하들을 조련하는 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존의 부하들이 아까운 것이었다.
 “하아, 씨! 이게 무슨 일이냐.”
 최두식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에 간단히 즐기려던 유희가 한순간 망가져 버렸다.
 ‘그 새끼는 나중에 마무리해야겠네. 그래 봤자 교복 보니 우리 학교던데. 내 손아귀지.’
 최두식은 도망친 안두현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여유를 부렸다. 학교는 자기 손바닥 안이라는 것이었다.
 “후.”
 반면 안두현은 죽을힘을 다해 도망친 상태였다. 내부 건물을 헤매서 번화가로 나왔다.
 그리곤 공중화장실로 가 터진 입술과 먼지투성이가 된 몸을 닦았다.
 “하악, 학!”
 가쁜 숨을 몰아쉬자 미소가 지어졌다.
 온몸이 아픈데도 정신이 맑으니 기분이 좋았다.
 “진짜 없어진 건가?”
 안두현은 눈을 껌뻑거려 보았다.
 맑은 정신은 선명하게 온몸의 고통을 잡아냈다.
 ‘그 장면도 없어진다.’
 그와 함께 불구가 되어서 병원에 누워 있던 안두현의 미래가 사라졌다.
 안두현은 급한 맘에 변기에 앉았다.
 그리곤 문을 걸어 잠갔다.
 ‘그 노인은······ 나였어.’
 안두현은 뒷모습만 보고도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람 중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특별한 감각을 지닌 안두현이 본인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대체 뭘까.’
 최두식과 부딪히며 모든 게 시작됐다.
 단순히 두통이 없어지고 최두식과 악연이 시작된 것뿐 아니라, 환상을 보고 현실적인 빛을 보게 됐다.
 ‘그 빛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니 일이 잘 풀렸다. 불행 중 다행 수준이긴 했지만!’
 안두현은 한참 동안 고민했다.
 지각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학교에는 맘이 없었으니.
 중요한 것은 살길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길이 평범한 거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뭘까.’
 안두현은 찬찬히 일진들이 짐에 깔리게 된 과정을 되짚어 보았다.
 모든 것은 작은 돌 하나에서 시작됐다.
 안두현이 한 것은, 작은 돌의 위치를 바꾼 것뿐이었다.
 한데 결과는 엄청났다. 굳이 안두현이 다 때려눕히지 않아도, 주변 지형지물이 그를 도왔다.
 인과의 연쇄 작용으로 일진들은 알아서 고꾸라지고 짐에 깔렸다.
 결국 그 결과는 또 다른 혼란을 불러왔고, 안두현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었다.
 ‘분명히 내가 일으킨 일이다. 중간중간 단계도 다 내가 간섭했어.’
 안두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본래는 끔찍하게 결론지어졌을 사건이, 안두현이 개입함으로써 바뀌었다.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들어 냈다.
 ‘그냥 정신이 맑아진 것만이 아냐!’
 안두현은 화장실을 나섰다.
 그리곤 다시 학교로 향하기 시작했다.
 본래는 공포에 질렸어야 맞는 것이었다.
 안두현은 학교 최악의 일진인 최두식에게 찍혀 버렸다. 배경으로나 힘으로나 성적으로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반면 안두현은 가진 게 하나도 없는 학생이었다. 평소 비틀거리며 돌아다녀서 장애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런데도.’
 안두현은 떳떳하고 당당했다.
 두렵지 않았다.
 그는 곧장 교문에 들어섰고, 상처 난 얼굴을 추궁하는 선생에게 그저 넘어졌다고만 했다.
 “그래, 조심하렴.”
 선생은 아닌 걸 알면서도 문제 삼기 싫어서 안두현을 그대로 보내 주었다.
 안두현은 교실에 앉아 펜을 꺼내 들었다.
 ‘아 맞다, 모의고사 날이었지.’
 안두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공부 따위 했을 리가 없었다. 한데 안두현의 눈에 광채가 깃들었다.
 ‘보인다.’
 펜 뚜껑으로 시험 문제를 짚으니, 틀리고 맞히는 미래가 순서대로 보였다. 즉, 답을 짚기만 해도 어느 것이 오답인지 정답인지가 보였다.
 물론 작은 차이였다.
 하지만 분명 문제 문제마다 틀리고 맞는 미래가 따로 다르게 보였다. 디테일의 극치였다.
 ‘설마.’
 안두현은 빠르게 정답지를 마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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