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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아포칼립스의 유일한 건물주

EP1. 건물주가 되었다

2020.01.17 조회 95,841 추천 1,329


 아포칼립스의 유일한 건물주 001화
 
 
 건물주가 되었다
 
 
 “이쪽입니다. 김기도 씨.”
 “아. 네네.”
 “소똥 냄새 때문에 그래요?”
 
 내 앞을 성큼성큼 걸어가던 남자가 웃으며 묻는다.
 도로마다 개구리 시체가 납작하게 찍혀 있는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양복 차림.
 나랑 비슷한 나이인 것 같은데, 때깔이 참 다르구나.
 
 “이 정도는 애교죠.”
 
 전에 살던 반지하 곰팡이 냄새에 비하면, 그건 정말이지. 숨 쉴 때마다 폐가 썩어가는 기분이었으니까.
 나는 뒷말을 애써 삼키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저 건물인가요?”
 
 손가락으로 길 끝을 가리켰다.
 드문드문 난 이층집들 사이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건물, 회색 벽돌 사이사이를 녹색 덩굴이 감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모리 빌딩이죠.”
 “이름 참. 예쁘네요.”
 “그렇죠? 여기 웅덩이 조심하세요.”
 
 청명리. 경기 남부 외곽에 붙어 있는 작은 시골 동네.
 이십칠 년을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곳이었으나, 이제는 내 인생의 포인트를 찍어줄 것이다.
 
 “근데 진짜 제가 유일한 상속인이에요?”
 “하하. 네. 서울에서 내려올 때까지 벌써 몇 번이나 물으셨잖습니까. 상속에는 문제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요.”
 
 돈,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게 ‘가족’이 남아 있냐는 것이었다.
 얼굴조차 기억 안 나는 아빠. 스무 살 때 사고로 돌아가신 엄마. 이 둘이 내 인생에 있어 유일한 혈육들이었으니까.
 
 “혹시 친척이 있다면 만나고 싶어서요.”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곡해해서 들었군요.”
 “아니요. 죄송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내가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남자는 방긋 웃었다.
 
 “안타깝게도, 저희 측에서는 다른 분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네. 그럴 것 같았어요.”
 “그래도 여기가 땅값은 싸지만, 건물값이 있어 쏠쏠하니 나올 거예요. 얼마 전에 담보 소액 대출받으셨죠?”
 
 남자는 시계를 보며 물었다. 고급 명품 시계와 세련된 액세서리들.
 비슷한 시간을 살아왔을 텐데, 그와 나는 어쩜 이리 다른지.
 나는 흙 묻은 운동화를 털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래 하려 했던 공부, 다시 시작하려고요.”
 “와. 그거 정말 좋네요. 여기가 조용하지, 물 좋고 공기 좋지. 공부하기에는 안성맞춤이죠. 부럽습니다.”
 “부럽기는요.”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공부 하세요?”
 “경찰이요. 어렸을 때, 지금도 어리긴 하지만. 조금 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관뒀거든요.”
 
 스무 살.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나는 어른 고아가 되었다.
 엊그제만 해도 열아홉의 철부지였는데, 고작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세상의 짐을 짊어져야 했지.
 이 남자와 만난 것도 요즘 다니던 공사판이었다.
 
 “이제 돈 걱정은 없으실 겁니다. 건물이 연식에 비해 깨끗해요. 할아버지께서 관리를 잘하셔서.”
 
 남자는 가까워지는 모리 빌딩을 보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할아버지라, 나는 아직도 그 단어가 어색하다. 엄마가 분명,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고 했으니까.
 
 “어떤 분이셨는지는 모르죠?”
 “네. 저도 돌아가신 후, 유언장으로만 뵈어서. 그래도 주민분들이랑 얘기하시면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평판이 좋으셨던 것 같거든요.”
 
 할아버지가 얼마 전까지 살아 있었다는 것도 모자라, 내게 건물을 남겼다니······ 나는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벌써 수십 번째였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짤랑-
 
 남자는 열쇠 뭉치를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내게 고개를 돌린다.
 
 “할아버님이 사셨던 곳은 오 층 꼭대기고요. 그 아래층들은 다용도 목적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해 뭐하냐는 듯이.
 저 멀리, 하나 있는 민박집이 시끌벅적하다. 대학생들이 놀러 온 모양이다.
 
 “여기서 세입자를 찾기는 힘들죠. 오랜 시간 비어 있었어요. 저렇게 대학교에서 단체로 올 때 갑자기 몇 번 묵었던 거. 그 정도가 다일 거예요.”
 
 젊은 웃음소리가 조용한 시골을 들쑤신다. 그래. 즐길 수 있을 때 놀아라. 나처럼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오지 말고.
 
 “할아버지가 지으신 건가요?”
 “아아. 아니요. 매입하신 거예요.”
 “그건 그거대로 놀랍네요.”
 “그죠? 저도 사실 그래요. 지나가던 젖먹이가 봐도 여긴 아니잖아요. 동네에서 2층 넘어가는 건물이라곤 마을회관뿐인데.”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했다. 대체 누가, 오 층짜리 건물을 여기에 지었는지.
 
 “저도 건너건너 들었는데요. 원래 절친한 친우 분 건물이었다고 해요. 사정이 있어 헐값에 매입했고, 투자나 수익 목적이 아닌 그냥 거주용으로 쓰셨어요.”
 
 철컥-
 
 남자는 제일 커다란 열쇠를 꺼내더니, 현관문을 열었다. 건물 특유의 서늘한 기운이 올라온다.
 
 “일 층이나 이 층은 주민분들 창고로 쓰게 열어주셨고요. 으차! 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
 
 ‘모리 빌딩’이라 적힌 명패. 빌딩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조촐하다. 나는 계단 끝에 달린 세입자 보드를 지나쳐 올라갔다.
 
 끼이익-
 
 오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았던 아래와 달리, 위쪽은 온기가 그대로였다.
 
 “여기가 현관. 방은 총 세 개입니다. 부엌이랑 화장실은 저쪽. 반대쪽은 마당이 있어요.”
 “마당이요?”
 “발코니라고 보면 되는데, 넓어서 마당이나 마찬가지예요. 평상도 있거든요.”
 “와아.”
 
 나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들어섰다. 정갈하고 소박한 살림살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할아버지가······ 사셨던 곳이란 말이지.
 
 “김기도 씨. 거주는 어떻게 하기로 하셨나요?”
 
 나는 방을 하나씩 돌아보며 말했다.
 
 “당분간 여기서 살려고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할아버님 물건도 정리해야 하니, 그게 편하실 거예요. 아 참. 짐은 미리 보냈다고 하셨죠?”
 “네. 일 층 창고에 넣어두셨대요.”
 
 ······정리고 뭐고, 그 반지하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쥐와 바퀴벌레가 집구석을 돌아다니고, 취객들의 오줌발이 가끔 들어오는 그런······ 끔찍한 곳은 이제 사양이다.
 
 “인터넷은 잘 되나요?”
 “설치하셔야 할 거예요. 미리 신청하면 내일 올 겁니다. 시내에서 들어오는 거라, 오늘은 힘들 것 같군요.”
 
 그가 시계를 보며 웃었다. 여기서 시내까지는 차로 삼십 분 거리. 근처의 상권이라 해봤자, 동네 슈퍼와 그 조그만 민박집이 다일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지.
 
 “괜찮아요. 천천히 하죠. 뭐.”
 
 건물을 담보로 받은 소액 대출. 당분간 그걸로 생활하며 공부하고, 합격하면 다 팔아버린 후 서울 가야지. 그 돈으로 작은 아파트 정도는 살 수 있을 거야.
 
 “풍경 좋죠?”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짙은 붉은 색으로 저무는 노을과 울창한 숲. 멀리 반짝이며 흐르는 강까지.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다 보니, 시야가 탁 트였다.
 
 “······정말 감사하네요.”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하루하루, 그저 버티던 삶에서 미래를 그리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내 인생을 살리라! 정말이지,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진심으로요!
 
 “그럼 이제 열쇠 주인은 김기도 씨고요.”
 
 남자는 내게 열쇠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방 번호가 붙은 수많은 키.
 내일 하나씩 열어보며 청소해야겠군.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어후. 감사는요. 제 일인데. 근처 슈퍼, 일찍 닫으니까 사실 게 있으면 곧 나가셔야 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나와 그는 가벼운 악수로 인사를 대신했다. 언젠가, 짧은 시일 내에 팔 건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남자와 계속 얽힐 거라는 말이지.
 
 “그럼. 건물주가 되신 걸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달칵-
 
 남자의 묘한 인사. 나는 소파에 앉아 곰곰이 되새겼다.
 건물주가 된 건 환상적이지만······ 차라리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저 살아만 계셨어도······.
 
 “하하하! 야! 장난치지 마!”
 “어쭈. 이게?”
 “아악! 진짜! 옷 다 젖는다고!”
 
 나는 밖에서 들리는 소란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대학생 애들이 봉지를 들고 가며 놀고 있었다. 물을 뿌려대며, 티 하나 없이 웃는 애들.
 
 꼬르륵-
 
 고기라도 구워 먹을 셈인지, 손에는 온갖 야채들이 들려 있었다.
 그때,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 못 했는지, 화들짝 놀란다.
 
 ‘에.’
 
 위에서 훔쳐본 게 되나. 나는 민망하게 턱을 긁적이며 신발을 신었다.
 배가 고프니, 빨리 슈퍼를 털어와야겠다. 일 층 창고에 있다는 짐도 풀고.
 
 “어서 오세요.”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슈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살갑게 웃으며 맞이한다.
 
 “뭐 또 까먹었어?”
 “네?”
 “방금 친구들 나갔는데.”
 “아아.”
 
 그쪽 애들이랑 친구인 줄 아는 모양이지. 나는 라면이랑 물, 음료수 따위를 종류별로 쓸어 담으며 웃었다.
 
 “저 오늘 이사 왔어요. 저기, 모리 빌딩이요.”
 “어머머머! 세상에! 총각이?”
 
 빌딩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건물이지만······.
 어쨌거나 내 인사에, 아주머니는 호들갑을 떨어대며 내 어깨를 두드린다.
 
 “할아버지 손주구나. 그래. 어째 외국에 있다더니 늦었네.”
 
 에? 이건 무슨 말이야? 내가 말없이 눈치만 보자, 아주머니는 하하 웃으며 내 등을 토닥인다.
 
 “뭐라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아이고. 할아버지랑 눈코입이 똑 닮았네!”
 
 나는 계산하려다가 멈칫거렸다. 그냥······ 한번 살 때 많이 사서 여기 오는 횟수를 줄여야겠다.
 그저 몇 분 마주했을 뿐인데, 이렇게 기가 빨리나.
 
 “아주머니. 잠시만요. 저 이것도 살게요.”
 
 나는 즉석 밥은 물론이고, 과자, 술, 휴지, 칫솔, 치약 등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카운터에 올려놨다.
 그나저나 외국이라니. 할아버지는 내가 외국에 있었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그냥 둘러대느라?
 
 “어후. 많이도 사네. 오늘 매상 폭발이야. 폭발! 호호호! 자주 와. 알겠지?”
 “네. 잘 부탁드려요.”
 “그래.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점심쯤에 저쪽 느티나무 쪽에서 새참 먹는데. 민박 언니가 그러더라고. 학생들이랑 다 같이.”
 “아. 늦잠 잘 수도 있어서요. 감사합니다.”
 “그래? 알겠어! 조만간 환영회는 하자고. 청명리에 온 모리 할아버지 손주! 아 참. 이름이?”
 “기도요. 김기도.”
 “그래. 푹 쉬어!”
 
 나는 두 손 가득 짐을 챙겨 들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민박집을 지날 때, 마당에 쪼그려 앉아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아까 봤던 그 여자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서둘러 건물로 돌아왔다. 해가 지니 놀랄 정도로 어둡다.
 
 “응?”
 
 무심코 오 층으로 향하려는데, 우편함에 카드가 꽂혀 있었다. 분명 아까는 못 봤던 것 같은데.
 
 “이게 뭐지?”
 
 [드디어 ‘그날’이 내일입니다. 식량과 생필품을 든든히 준비해 놓으세요. 그게 당신에게 힘이 될 테니. 일 년 후에 봅시다. 024239-2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아까 건물을 보여준 그 남자인가?
 
 “생긴 거와 달리 시답잖은 장난을 좋아하네.”
 
 나는 종이를 요리조리 둘러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날이 대체 뭔데? 뉘앙스로 봐서는 지구 멸망이나 전쟁인데······.
 
 “에라이. 뿡이다.”
 
 이제 겨우 인생 제대로 살아볼까 하는데, 뭐? 지구 멸망?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나는 종이를 대충 구겨서 던져 버렸다.
 
 ‘어차피 내일 대청소할 거니까.’
 
 터벅- 터벅-
 
 그러나 다음 날. 나를 깨운 것은 새의 지저귐도, 쨍한 아침 햇살도 아니었다.
 
 “아아아아악-!”
 “꺄아아악!”
 
 찢어질 것 같은 사람들의 비명이었지.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46)

김퉤메    
ㅋㅋㅋㅋㅋㅋㅋ 이 주인공도 경찰 되려는데 안타깝게도 지구멸망 ㅋㅋㅋㅋㅋㅋ 전작 재밌게봤어요 신작도 같이 달립니다
2020.01.18 10:09
ㅈㄱㄷㅂㅇ    
건투를
2020.01.19 01:44
달탄양    
시작. 느낌 젛아
2020.01.19 23:02
표절작뒤져    
표지는 작가님 조카가 그린건가요?
2020.01.24 19:59
만초    
제목이 진짜...사탄도 울고 가겠다
2020.01.26 13:01
흰색고양이    
표지 진짜 웰케 귀엽나요?
2020.01.26 15:20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0.01.30 18:11
탄산수정    
표지에 홀려서 일단 왔습니다 ㅋㅋㅋ
2020.01.31 04:51
keraS.I.S    
경찰된다음 멸망했으면 초반에 뒤졌을지도 모름...
2020.02.06 19:31
keraS.I.S    
총은 있지만 못쓰게하지 시민들이 때리면 때리는대로 맞으라 하지 여경들은 뒤에서 오또케오또케 이러고나 있지.....
2020.02.0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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