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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구슬 (1)

2020.01.23 조회 1,109 추천 9


 검은 구슬 (1)
 
 
 
 네온사인에 휩싸인 도시의 야경은 사람들에게 밤을 잊게 하였다. 사람들을 유혹하는 간판의 불빛과 거리를 오가는 생기발랄한 젊음의 조화는 도시를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생동감 넘치는 야경과 달리 누군가 한적한 도로를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술에 취한 듯 흔들리는 몸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지만, 절묘하게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커억! 어질어질하네.”
 청년은 몸을 바로 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 천우는 많이 취한 상태였다. 정신을 잃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이 마셨지만, 천우는 강한 정신으로 의식을 붙잡고 있었다.
 ‘깡촌’ 출신인 천우는 농어촌 특별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갔기에 동기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는 정신력으로 버텼지만, 술자리를 파하자 갑자기 올라오는 알코올 기운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사나이 갑빠가 있지. 술, 넌 죽었어.”
 천우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주먹을 쥐며 흔들었지만 몸은 심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천우는 정신을 차리고자 했지만 올라오는 땅과 달려드는 전봇대를 피하는 일만 해도 쉬운 게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 덕분에 천우는 아직도 바닥에 쓰러지지 않았다.
 흔들흔들!
 흔들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천우가 갑자기 발을 잡고 튀어 올랐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발을 잡고 펄쩍거리며 천우는 그 자리에서 뱅뱅 돌았다. 발에서 전해지는 아픔에 눈을 찔끔 흘릴 만큼 엄청난 고통이었다.
 “아악! 으아악!”
 오른발을 쥐고 폴짝거리는 천우의 모습은 들판을 달리는 캥거루처럼 보였다. 그렇게 폴짝거리며 발을 주무르던 천우는 사나운 눈길로 바닥을 노려보았다.
 “넌 뭐하는 녀석이냐?”
 사나운 천우의 시선에 묵직한 크기의 검은색의 구슬이 잡혀 왔다. 그것은 구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큰 돌덩이 같은 검은 무엇이었다. 손안에 들어오기에는 조금 컸지만, 짙은 검은색 때문에 언뜻 쇳덩이처럼 보였다.
 “이걸 그냥! 아니지. 발로 찼다간 아플 거야.”
 검은 구슬을 발로 차려던 천우는 슬며시 발에서 힘을 뺐다. 잔뜩 취한 상태였지만 본능적으로 발이 아팠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전해진 아픔은 뇌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휴우, 다행이다.”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천우는 몸을 떨었다. 정말이지 조금 전의 아픔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짜릿했다. 아픔이 가시면서 천우의 머릿속에 호기심이 피어났다.
 스르르! 척!
 천우는 자신도 모르게 검은 구슬을 손으로 쥐었다. 천우는 손안에 착하고 감기는 검은 구슬의 느낌에 미소를 지었다. 서늘한 날씨로 인해 차가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검은 구슬은 따스했다. 온몸을 녹이는 따스함에 천우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빠~앙!
 도로를 질주하던 자동차의 경적이 아니었다면 천우는 검은 구슬을 안고 길바닥에서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검은 구슬은 천우에게 편안함과 따스함을 주었다.
 “허억!”
 검은 구슬을 안고 있던 천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휘청거렸다. 검은 구슬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웠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무게감에 천우는 다급하게 양손으로 검은 구슬을 잡았다.
 천우는 엄청난 무게감에 자신도 모르게 씩씩거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크윽! 사나이 갑빠가 있지.”
 비틀! 비틀!
 이전보다 더욱 위태로운 걸음으로 천우는 검은 구슬을 양손으로 부여잡고는 걸음을 옮겼다.
 “씨이, 엄청 무겁잖아.”
 온몸에 힘을 잔뜩 주면서 비틀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술 때문에 정상이 아닌 천우는 진땀을 흘리는 사투를 벌이면서도 검은 구슬을 놓지 않았다. 마치 운명처럼 놓치면 안 된다는 듯이 천우는 팔에 힘을 주었다.
 “씨이, 엄청나게 무거운 놈이네.”
 입으로 연방 투덜거리면서도 천우는 검은 구슬을 포기하지 않았다. 천우는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목표를 정하면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었다.
 그리고 비록 농어촌 특별 전형을 통해 중위권 대학인 한국대에 입학했지만, 고향에서는 나름대로 추앙받은 인재였다. 물론 시골 학교의 인재지 전국적인 인재는 아니었지만.
 덜커덩!
 문을 열고 들어간 천우는 검은 구슬을 품에 안고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진 천우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깊은 잠이 빠져들면서 그는 고집스럽게 검은 구슬을 쥐고 있었다. 마치 승리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는지 천우는 검은 구슬을 세차게 움켜쥐고 있었다.
 
  * * *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골면서 자던 천우는 눈부신 햇살을 느끼며 눈을 떴다. 따스한 햇볕에 얼굴을 찡그린 천우는 주변을 살피다 익숙한 풍경에 저절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너무 많은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혹시나 실수한 것이 아닌가 하고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시골 출신에 키도 185센티가 넘는 천우는 깡촌 출신답게 약간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어리바리한 청년이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흑곰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실제로 흑곰처럼 한번 성질이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다.
 “으가가! 으악!”
 기지개를 켜면서 몸을 일으키던 천우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온몸의 근육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동과 농사일로 다져진 천우에게 이런 근육통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뭐야? 왜 이리 삭신이 쑤신 거야.”
 간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천우는 온몸의 통증에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이라도 움직일라치면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통에 온몸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천우는 전신의 근육통에 미간을 좁히며 기억을 더듬었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깡촌에서 자란 천우의 몸은 무척이나 튼튼했다. 그래서 지금의 근육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자 조금은 잦아든 근육통이 머리를 강타했다. 고통을 참으며 걸음을 옮기던 천우는 발에 전해지는 충격에 비명을 질렀다.
 “으악!”
 단지 툭 하고 건드린 것뿐인데 강한 아픔이 전신을 휩쓸었다. 강렬한 아픔에 천우는 발가락을 잡고 토끼처럼 폴짝거렸다.
 “뭐, 뭐야?”
 아픈 발을 주무르며 고개를 숙이던 천우는 검은 구슬을 발견했다. 눈에 힘을 주며 검은 구슬을 노려보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넌 뭐하는 놈이냐?”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천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도 검은 구슬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검은 구슬의 정체를 알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동안 아랫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꼬르륵!
 “고민은 나중에 하고 일단 배부터 채우자.”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 천우는 물을 끊이며 라면을 찾았다. 혼자 사는 남자의 향기를 진하게 풍기며 라면을 찾아낸 천우는 파를 송송 썰어서 냄비에 넣었다.
 잠시 후 냄비에서 뿌연 수증기를 올라오며 진한 향기를 풍겼다.
 “역시 라면에는 계란이지.”
 냄비를 열고 계란을 푼 천우는 서둘러 젓가락을 휘저었다. 집 안에 있는 유일한 젓가락을 휘젓는 천우의 표정은 엄숙하기 그지없었다. 라면은 타이밍이 중요한 먹거리였기에 시간을 놓치면 맛이 달라진다. 당연히 적당한 시점에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라면 맛의 비밀은 타이밍이야.”
 감각적으로 불을 끈 천우는 즉시 라면 냄비를 식탁에 올려놓고는 뚜껑을 열었다. 뚜껑이 열림과 동시에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후각을 괴롭혔다.
 후루룩! 쩝쩝!
 면발을 폭풍처럼 흡입하며 배를 채운 천우는 얼큰한 국물로 술병으로 쓰린 속을 달랬다. 더불어 라면 국물에 식은 밥을 말아 배를 채우자 포만감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뜨거운 물에 봉지 커피를 넣고 휘젓자 달콤한 커피 향이 행복을 만들었다.
 “카아! 커피 한잔의 행복!”
 달콤한 커피를 빨면서 천우는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은 행복감에 젖었다.
 커피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던 천우는 빠르게 부엌과 집 안을 정리했다. 혼자 사는 남자는 더욱 부지런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아, 이놈의 습관이 무섭다니까.”
 혼자 살면 게으름을 피우기 마련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 천우를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빠르게 방 안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마친 천우는 수건으로 손의 물기를 닦았다.
 “뻐근한 몸은 즉시 풀어야 해.”
 집 안을 정리한 천우는 몸을 풀기 위해 뜀박질을 했다. 매일 하는 달리기였지만 오늘은 유난히 땀을 흘리며 헉헉거렸다. 어제 술을 너무 마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천우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몸이 찌뿌둥해도 한바탕 땀을 흘리면 개운하기 때문이다.
 “헉! 헉!”
 어린 시절부터 학교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덕분에 천우에게 달리기는 또 하나의 습관이었다. 익숙한 습관임에도 몸의 근육이 아우성을 치자 천우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아이고, 삭신이야.”
 천우는 집에 들어오자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몸 하나는 튼튼하다 자부하던 천우였지만 오늘은 아닌 것 같았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천우는 바닥에 눕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드르렁! 쿨!
 평소에 골지 않는 코까지 골며 잠이 든 천우는 하염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천우가 잠이 들자 검은 구슬이 싸한 기운을 풍기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구르! 휙!
 바닥을 구른 검은 구슬은 장애물을 피하듯 뛰어올라 천우의 품에 사뿐히 안겼다. 천우의 품에 안긴 검은 구슬은 마치 애완동물처럼 천우의 품을 파고들었다.
 천우의 품속을 파고든 검은 구슬은 이내 요상한 기운을 피워 올렸다. 이런 광경을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자신의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헉, 귀신들린 구슬이다!
 보통 사람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면서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검은 구슬을 응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은 구슬의 움직임을 보아야 할 천우는 지금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 * *
 
 싸한 느낌에 눈을 뜬 천우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그는 습관처럼 벽에 걸린 시계에 시선을 주다가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엥! 열 시?”
 열 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을 보면서 천우는 창문으로 시선을 주었다. 환한 창문으로 보아 오전 열 시가 분명했다. 뭔가 뒤통수를 간지럽게 하는 느낌에 천우는 핸드폰의 폴더를 열었다.
 “헉! 월, 월요일?”
 토요일 오전에 달리기를 하고는 집에 들어와 잠이 들었지만, 설마 일요일을 건너뛸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순간적으로 멍해진 천우였지만 역시나 본능은 위대했다. 정신없이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천우는 책을 챙기고는 강의실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헉! 헉!”
 평소에는 즐기던 달리기였지만 오늘은 극기 훈련이 따로 없었다. 특히나 힘이 없어서 그런지 숨이 턱 밑까지 올라왔다.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천우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헉! 헉”
 계단을 헐떡거리며 올라간 천우는 강의실을 나오는 학생들을 보자 근육이 저절로 풀렸다. 30분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헐떡거린 보람이 없게 된 것이다.
 “천우, 이게 무슨 일이냐?”
 “현수, 강의가 벌써 끝났냐?”
 “오늘은 조금 일찍 끝내시더라. 그보다 왜 이리 늦었어?”
 “늦잠을 자는 바람에.”
 “부지런한 녀석이 무슨 일이래.”
 “나도 잘 모르겠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말이야.”
 “주말에 이삿짐이라도 날랐어?”
 “술 때문에 주말에 일을 쉬었어. 금요일부터 몸에 찌뿌둥했거든.”
 천우의 대답에 현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천우가 대학교에 와서 유일하게 사귄 현수는 천우와는 많이 달랐다. 어벙한 천우와 달리 현수는 차분하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서로 많이 다르기에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친해졌다.
 “천우야,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데, 힘이 하나도 없다.”
 “식은땀을 흘리는 것은 보니 몸이 좋지 않은가 보다.”
 “그러게 말이야. 정말이지 죽겠다.”
 현수는 천우의 창백한 안색에 이마에 손을 얹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수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천우는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늦잠을 잤으면 아침도 걸렀겠네?”
 “일어나자마자 달려오느라 속이 비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밥이나 먹자. 다음 강의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러자. 배부터 채워야 할 것 같다.”
 현수는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는 천우를 데리고 학교 식당으로 향했다.
 저렴하고 맛도 좋은 학교 식당은 넓은 면적을 자랑했다. 하지만 조금 이른 시간인지 학교 식당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여기 앉아 있어라.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고맙다. 부탁 좀 하자.”
 “쉬고 있어.”
 천우는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힘겨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몸 하나 만큼은 튼튼하다 자부하던 천우는 어린 때 백 년 근 산삼을 먹은 귀한 몸이었다. 산삼을 먹은 덕분인지 지금까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던 천우였지만, 지금은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특별하게 아픈 곳도 없는데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큰한 육개장이다.”
 “현수야, 고맙다.”
 “친구끼리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말자.”
 “자식이 까칠하기는. 역시 현수다운 말이네.”
 “아프면서도 입을 살아 있네. 역시나 천우답단 말이야.”
 “크크크!”
 빈속에 얼큰한 국물이 들어가자 속이 조금 진정되었다. 온몸에 힘은 없었지만 천우는 열심히 손가락을 놀렸다. 몸에 힘이 없는 이유가 배가 고프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루하고 반나절 동안 잠만 퍼질러 잔 덕분에 위가 텅 비었다. 덕분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쳤지만 천우의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주체할 수 없는 배고픔에 천우는 매점에서 빵을 열 개나 먹는 괴력을 발휘했다.
 “며칠을 굶은 것 같다.”
 “하아, 이제 좀 살겠네. 말도 마라. 토요일부터 내리 잠만 잤다니까.”
 “엥, 그게 무슨 소리야?”
 “금요일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 토요일에 잠깐 일어났다가 가볍게 운동을 하고는 다시 잤는데, 글쎄 월요일 아침 열 시잖아.”
 “하아, 사람이 그렇게도 잘 수 있구나.”
 “나도 믿기지 않는다.”
 배에 먹을 것이 들어가자 천우의 빈약했던 기운도 서서히 올라왔다.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한 천우의 안색은 이전보다 조금 나아졌다. 덕분에 창백했던 얼굴도 조금은 원래의 색을 회복했다.
 “강의를 못 들어서 그러는데 내용 좀 복사해도 돼?”
 “당연한 것을 물어보고 그러냐.”
 “고맙다. 오늘은 여러 가지로 신세만 진다.”
 “신세를 졌으면 나중에 꼭 갚아라.”
 “알았다, 친구!”
 현수의 노트를 빌려 복사를 마친 천우는 벤치에 앉아 강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천우가 비록 농어촌 특별 전형을 통해 한국대에 입학했지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도우며 강원도 산골에서 전교 1등을 할 만큼 집중력이 뛰어났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가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천우는 집중력 좋고 인내심이 강한 시골 출신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때보다 중학교 성적이 좋았고 중학교 성적보다 고등학교 성적이 좋았다. 덕분에 서울에 위치한 한국대에 농어촌 전형으로 당당히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우가 서울에 있는 많은 대학 중에 한국대를 택한 것은 장학금 혜택과 한국대를 설립한 한성그룹 때문이었다. 한성그룹에선 한국대 졸업생에게 약간의 가산점을 주었다. 때문에 한국대 졸업생들은 한성그룹에 입사하는 데 유리했다.
 “천우, 너는 왜 기계공학과에 들어왔냐?”
 “나? 그냥 기계 만지는 게 좋아서. 집에 있는 농기계 고치는 것을 도와주다 보니 재미있더라. 그런 너는 왜 기계공학과에 들어왔냐?”
 “아버지 일을 도울 생각으로 기계공학과에 들어왔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데?”
 “기계를 만드는 공장을 하시거든. 나중에 졸업하고 아버지 일을 도울 생각이야. 나이가 드셔서 그런지 요즘 들어 부쩍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말이야.”
 “어쭈, 생긴 것은 뺀질인데, 이제 보니 효자였네.”
 “곰이 인간에게 험담을 하네. 형님을 씹으면 나중에 인간은 못 된다.”
 “형님? 어쭈, 이제는 아주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네.”
 “이제 좀 살 만하다 이거지.”
 “생일은 내가 빠른 것으로 아는데.”
 “생일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연령이 문제다.”
 “정신연령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힘밖에 없는 무식한 놈이 까불고 있어.”
 “남자는 머리보다 힘이다.”
 “웃기고 있네.”
 티격태격하지만 둘은 정말 친한 친구였다. 알고 지낸 지 몇 달에 불과하지만 서로에게 잘 맞았다. 천우는 시골 깡촌 출신이고, 현수는 서울에서 자란 전형적인 도시 남자였지만, 둘은 이상하게 죽이 맞았다.
 천우는 떡 벌어진 어깨에 강한 인상, 185센티에 달하는 키를 자랑했다. 피부도 조금은 검어서 산적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의리도 있고 힘도 좋은 천우는 은연중에 주변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런 천우에 비해 현수는 키가 175센티에 곱상하게 생긴 전형적인 ‘차도남’이었다. 안경은 그런 현수를 더욱 냉정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그런 두 사람을 가리켜 사람들은 페르시안 고양이와 흑곰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바탕 투탁거린 천우와 현수는 강의를 듣기 위해 벤치에서 일어났다.

댓글(1)

n3************    
작가님 다음 작품에는 혼잣말좀 줄여주세요~ 연극도 아닌데 무슨 혼잣말을 저렇게 많이 하는건지.. 딱 조현병 걸린 사람처럼 혼자 중얼중얼~~
2020.05.2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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