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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개정판] 각성! 북경각

프롤로그-너 중화요리나 한번 배워 볼래?

2020.02.03 조회 368 추천 2


 프롤로그-너 중화요리나 한번 배워 볼래?
 
 
 
 4년 전, 2010년 3월 29일.
 대봉 고등학교 1학년 3반 교실.
 학기 초의 설렘이 있어야 할 공간에 오직 적막만이 떠돌고 있었다.
 경묵이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힘껏 바닥으로 내리치자, 교탁 앞에 선 체육 선생이 크게 소리쳤다.
 “이 자식이!”
 경묵이 뒷문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자 교실 안의 모든 이들은 숨죽인 채 상황을 지켜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 이 자식아! 너 뭐 하는 짓이야?”
 경묵은 뒷문을 세게 열며 외쳤다.
 “좆같아서 진짜, 이깟 학교 안 다니면 될 거 아냐!”
 그렇게 성큼성큼 교실 밖으로 나섰다.
 학교 밖으로 나선 경묵은 정문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하나 꺼내 물어 불을 붙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간 그렇게도 그만두고 싶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지만, 막상 교문을 나서고 나니 뭘 해야 하는지 통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다. 차라리 잘됐지, 뭐.”
 경묵은 천천히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허름한 외관의 빌라, 방 2개짜리 반지하 집.
 여름이면 벽에 곰팡이가 끼고 겨울이면 창틈을 넘어오는 칼바람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할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는 경묵은 중학교 시절부터 아주 이름난 문제아였다.
 그의 아버지는 본래 공직 생활을 오랫동안 해 왔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빠진 노름 탓에 빚을 크게 진 후로 그 빚을 퇴직금으로 메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경묵의 어머니는 집을 떠난 후 등기우편으로 이혼 서류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도 연락이 두절되었다.
 졸지에 혼자가 된 경묵은 인근에 살던 할머니의 짐이 되었다.
 불편한 다리로 아파트 청소 일을 하는 할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을 해서 오후 4시가 되어야 다리를 절뚝이며 집으로 돌아온다.
 할머니의 월급? 80만 원. 남는 돈은 거의 없다.
 아버지는 최후의 승부를 보려고 하셨던 것일까? 할머니의 유일한 재산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현재 그 이자만 한 달에 20만 원씩 메우고 있다.
 원금을 조금씩 갚으며 이런저런 공과금을 내고 나서 남는 생활비로 할머니와 경묵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차라리 잘됐지, 뭐. 제대로 된 일을 한번 해 보자.’
 문제가 되었던 것은 체육복이었다.
 체육복을 도둑맞은 탓에 체육 시간이면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맞아야 했다.
 처음엔 한 대, 다음엔 다섯 대, 그다음엔 열 대. 이번엔 스무 대였다.
 그러나 차마 할머니에게 체육복을 새로 사 달란 말을 하지는 못했다. 할머니의 주머니 사정이야 자신이 제일 잘 알지 않던가?
 오늘 체육 수업은 실내에서 진행된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였으나, 체육 선생은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체육복 검사를 시작했다. 졸지에 스무 대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더 이상 교실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일전에 선배들에게 배달을 하면 돈을 제법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던 경묵은 그길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지금 경묵의 직장 ‘북경각’에 취직하게 된다.
 
  * * *
 
 2014년 12월 8일.
 검은색 코트를 입은 경묵은 제일 먼저 출근해 가게의 문을 열고는 카운터의 포스 PC 전원을 켜고 음악을 틀었다.
 음악 소리에 고개를 조금씩 까딱거리며 탈의실로 향해서 옷을 갈아입고, 조리모를 쓰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반죽 기계에 밀가루와 물을 붓고는 섞기 버튼을 누르고, 반죽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오늘 사용할 재료들을 해동시키기 시작했다.
 경묵이 일하고 있는 ‘북경각’은 테이블 8개짜리 협소한 가게다.
 사장님과 사모님이 홀에서 전화를 받고 손님 접대를 맡고 있고, 배달 직원이 3명, 주방장, 주방 이모 한 분, 경묵이 주방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경묵은 4년 전 이 가게에 배달 직원으로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이야, 오늘도 제일 먼저 출근했네, 경묵이.”
 말을 건넨 이는 주방장 최정혁이다.
 중국집 배달 직원, 속칭 ‘짱깨’였던 경묵을 양지로 꺼내 주신 은인이다.
 “야, 경묵아, 오늘 일 끝나고 뭐 하냐?”
 “일 끝나면 집에 가서 쉬어야죠.”
 최정혁이 경묵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익살스러운 투로 물어보였다.
 “이 자식, 딱딱하기는. 오늘 일 끝나고 연래춘 염탐하러 갈까?”
 “형님, 우리가 옵저버도 아니고, 오버로드도 아니고, 염탐을 왜 한답니까?”
 “야, 인마! 연래춘이 장사가 잘되는 비결을 파악해야 될 거 아냐?”
 연래춘은 인근에 위치한 중국집으로, 월 매출이 몇천이라는 소문이 도는 가게였다.
 24시간 운영되는 중국집이었고, 블로그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에도 수없이 소개되고 있는 맛집 중의 맛집.
 최정혁은 경묵의 목에 두른 팔에 힘을 주어 조르며 협박하듯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너 이 자식! 같이 염탐하러 가겠다고 하지 않으면 오늘 점심 장사는 못 하는 거다! 안 놔줄 거야!”
 “켁! 켁! 아, 형!”
 “너 갈 거야, 말 거야?”
 경묵이 얼굴이 붉어진 채로 힘겹게 대답했다.
 “갈게요! 갈게요! 같이 갈 테니까 좀 놔줘요, 형님!”
 최정혁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고는 경묵을 놔주었다.
 “그래, 녀석아. 진작 그럴 것이지!”
 “아, 형! 옷 먼저 갈아입어요! 짜장 안 볶을 거예요?”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냐!”
 최정혁이 크게 웃으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가끔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게 유일한 단점인 주방장 최정혁은 경묵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정말 친형 같은 사람이기도 했고, 배달 직원으로 일하던 경묵에게 손수 중화요리를 가르쳐 준 사람이기도 했다.
 경묵이 농담처럼 ‘저는 형만 따라다닐 거예요. 버릴 생각 하지도 마세요.’ 하며 으름장을 놓으면, 최정혁은 질색이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나는 사내놈한테는 관심 없으니 인연을 찾으려거든 저기 이태원 쪽으로 가 봐라.’ 하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애초에 3년 전 경묵을 주방에 들인 것도 정혁이었다.
 경묵이 배달 직원으로 일한 지 반년이 좀 넘었을 때의 일이다.
 
  * * *
 
 갑작스레 배달을 나선 경묵은 신호를 기다리며 배달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기가 내렸다.
 ‘아, 씨······ 비가 갑자기 오고 지랄이야.’
 거센 빗방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길이 미끄러워 평소보다 저속으로 주행을 하고 있었다.
 배달지에 도착해서 철가방을 들고 내렸을 때는 완전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했다.
 ‘어디 보자, 802호. 온 김에 6층 들러서 그릇 가져가야겠다.’
 배달지를 확인한 경묵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거울을 보며 이런저런 표정을 지어 보는 사이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802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른 지 한참이 되었지만 안에서 나오지 않자, 경묵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쾅-쾅-쾅-!
 ‘어휴, 진짜 배달시켜 놓고 문 늦게 여는 것들은 뭐 하는 것들이야?’
 이윽고,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속옷 차림의 남자가 표정을 잔뜩 구긴 채로 문을 열었다.
 경묵은 현관으로 들어서서 철가방을 열고 음식들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1만 8천 원요.”
 남자가 들은 체 한번 안 하고 앞에 선 채로 아무 말 없이 카드를 건네 보이자, 경묵은 카드를 받아 들지 않고 올려다보며 말했다.
 “손님, 카드 결제는 미리 말씀하셔야 되는데요.”
 “어휴, 씨발.”
 못마땅하다는 듯 욕지거리 섞인 탄식을 뱉어 내 보인 남자는 인상을 잔뜩 쓴 채,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고는 큰 소리로 물었다.
 “야, 지영아! 너 현금 있냐?”
 그리고 그때, 집 안쪽에서 익숙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 잠깐만 기다려 봐.”
 이윽고 여자가 총총걸음으로 나왔고, 경묵과 눈이 마주쳤다.
 안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손에 쥔 채 걸어 나온 여자는 경묵과 3년째 교제 중이던 여자 친구 지영이었다.
 경묵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묵은 자신의 돈주머니에서 1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어 돌려주며 말했다.
 “거스름돈 2천 원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경묵은 문을 열고 나서서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거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다시 봐도 정말이지 초라했다.
 눈물이 흘렀다. 배신감.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지영이 아니던가?
 재빠르게 오토바이에 올라탄 그는 바로 시동을 걸고 가게를 향해 달렸다. 빠른 속도로 가게를 향해 달리고 달렸다.
 그때, 비보호 좌회전 신호 앞에서 좌회전을 하던 경묵의 오토바이가 빗물에 미끄러졌다.
 쿠당탕탕탕-!
 제법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던 터라 경묵은 한참을 굴렀다. 바지가 찢어지고 무릎이 까졌고, 팔꿈치는 깨질 듯 아팠다.
 충격의 여파로 짬통에 들어 있던 빈 그릇들이 바닥에 흐트러졌다.
 정신을 차린 경묵은 눈물을 흘리며 오토바이를 일으키고는, 빈 그릇들을 주워 짬통 안에 넣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경묵은 다시 오토바이 위에 앉아 시동을 걸고 천천히 가게를 향해 달렸다.
 가게 앞에 도착한 그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쭈그려 앉아 큰 소리로 울었다. 처음엔, 사장이 나와서 경묵에게 소리쳤다.
 “야, 인마! 배달 잔뜩 밀렸어! 거기 앉아서 뭐 하냐!”
 이윽고 경묵의 행색이 심상치 않다고 여긴 사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좀 쉬다가 들어와라.”
 가게 안으로 들어선 사장은 주방에 있던 정혁에게 말했다.
 “야, 정혁아.”
 “예, 사장님.”
 “앞에 좀 나가 봐라.”
 그러자 정혁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한창 바쁠 때에 사장이 또 허드렛일을 시킨다 생각한 탓이었다.
 “왜요?”
 “앞에 나가 봐, 인마.”
 사장이 때리기라도 할 기세로 팔을 들어 보이며 단호하게 말하자, 정혁은 투덜거리며 자신의 옷에 젖은 손을 닦고는 주방에서 나왔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경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자식 봐라?”
 옷에는 흙탕물이 잔뜩 묻어 있고 바지의 무릎 부분이 찢어져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 정혁은 경묵의 한쪽 어깨에 손을 얹고 물었다.
 “경묵아, 너 중화요리나 배워 볼래?”
 눈물을 흘리던 경묵이 고개를 들어 북경각의 주방장인 정혁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정혁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말했다.
 “오늘부터 9시에 가게 문 닫고 나면 시작하는 거다.”
 이어 미친 듯 쏟아지는 빗물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다 울고 들어와, 인마.”
 경묵은 가장 슬프던 날, 가장 좋은 사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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