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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즐거운 아포칼립스 생활

즐거운 아포칼립스 생활 001화

2020.03.02 조회 83,656 추천 940


 헉헉-
 집에 들어와 현관문을 잠그고 나서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20층까지 걸어 올라오니 오래달리기를 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혀끝이 아렸다.
 
 후-
 숨을 고른 후 메고 있던 가방을 거실 바닥에 내려놨다. 그리고 생수통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꿀꺽-
 극심한 갈증에 물 한 통을 전부 마셔 버리고 싶었지만 한 모금만 마시고는 다시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발소리가 안 나게 조심스럽게 베란다로 걸어가 창밖을 내다봤다.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염병...”
 
 전부 빌어먹을 ‘염병’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맹물처럼 싱거웠던 나의 인생 장르가 ‘공포’로 바뀌었다.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했으니 외출을 삼가라는 뉴스가 며칠 동안 전 채널을 도배하더니, 갑자기 모든 게 먹통이 돼버렸다.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전화도 쓸 수 없게 됐다. 대정전(BLACK OUT)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온 거리가 ‘좀비’들의 차지가 됐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람들은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좀비라 불렀다. 왜냐면 그들의 흉측한 몰골과 난폭한 행동이 영화나 드라마 속의 좀비들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끊기기 전, 누군가 실제 상황이라며 올린 짧은 동영상을 봤다. 어떤 여자가 좀비들에게 무참하게 물어뜯기는 장면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주작이라 여기고 웃어넘겼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베란다 창밖으로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봤으니까.
 좀비들은 평상시엔 굼뜨게 움직이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냄새를 맡으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물어뜯긴 사람 역시 좀비로 변했다.
 공포 영화 같은 탈(脫) 현실적인 상황에 나는 패닉에 빠졌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불도 안 들어오고 물도 안 나오는 집 안에서 무작정 버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외부의 소식을 일절 접할 수 없는 완전한 고립 속에서 끝도 없이 커지는 공포에 짓눌려 수일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있던 물과 음식이 모두 바닥났다. 그러자 목마름과 배고픔의 고통이 좀비에 대한 두려움보다 커졌다.
 생존에 필요한 물과 음식을 조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운 좋게도 매번 무사히 귀환하여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나는 그렇게 87일을 버텼다.
 
 나는 눈으론 창밖을 살피며 손으론 하나밖에 없는 무기를 정비했다. 쇠파이프에 부엌칼을 매달아 놓은 ‘창’이었다.
 찌지직-
 칼 손잡이 부분에 젓가락을 덧대서 청테이프를 칭칭 감았다.
 
 휙-
 허공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무기를 들고 그럴싸하게 폼을 잡아 보지만 제대로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천만다행인 게 만약 좀비들을 상대로 이런 허접한 무기를 써야 할 일이 벌어졌다면 나는 지금쯤 좀비가 되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건 그저 밖으로 나갈 때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트리기 위한 부적일 뿐이었다.
 나의 유일한 생존 방법은 누군가에게 구조될 때까지 좀비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다.
 
 
 <S.O.S>
 
 <살려주세요!!>
 
 <생존자가 살고 있어요^^>
 
 
 베란다와 다용도실 창문에 구조를 요청하는 글자들을 크게 써서 붙여 놓았다. 그리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창밖을 살피며 구조대를 기다렸다. 경찰이든 군대든 좀비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힘이 들고 지쳤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일주일에 한 번 목숨을 건 외출로 식료품을 조달하며 악착같이 연명하고 있다.
 
 가방 속에서 참치캔 하나를 꺼냈다.
 대정전이 일어나고 냉장 보존이 필요한 식품들은 전부 썩어 문드러졌다. 요구르트나 생막걸리, 김치 같은 식품은 어쩌면 다시는 먹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나마 장기 보존이 가능한 것들 덕에 살았다. 참치캔이나 스팸 같은 통조림이 없었다면 진작에 굶어 죽었을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
 
 참치캔 뚜껑을 따서 안에 있는 국물(?)부터 들이켰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참치를 퍼먹으며 오늘 가져온 수확물을 살폈다.
 면봉, 헤어스프레이, 여행용 세면도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얼마 남지 않은 물건들을 손에 잡히는 데로 쓸어왔는데 당최 쓸만한 게 없다. 지금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과 식량이니깐.
 아쉬운 마음에 가방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터니 라면 수프만 한 조그만 봉지가 떨어졌다.
 
 
 <재미있는 수경 재배/방울토마토 씨앗>
 
 
 ‘초등학교 실습 준비물’로 여겨지는 토마토 씨앗이었다.
 봉지를 뜯어보니 아몬드만 한 씨앗 한 개가 나왔다. 토마토 씨앗이 원래 이렇게 크나?
 그냥 버리려다 문뜩 이걸 잘 키우면 토마토를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은 한 번도 키워 본 적이 없지만, 혹시라도 성공한다면 신선식품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수경재배라니 흙도 필요 없는 거고.
 근데 비료 같은 건 필요 없나? 모르겠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주방에서 밥그릇 하나를 가져와 생수통의 물을 부었다.
 마실 물도 부족한데, 나도 미쳤지.
 될 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씨앗을 물속에 퐁당 담갔다.
 다음엔 어떻게 하지? 햇빛이 잘 드는 곳에 그냥 놔두면 되는 건가?
 나는 밥그릇을 베란다 창가에 놓았다.
 솔직히 토마토를 수확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1도 안 하지만 괜히 마음이 설렜다.
 싱싱한 녹색 줄기에 빨간 토마토들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연상되며 살짝 마음이 풍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허허허, 이 깠게 뭐라고.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일종의 힐링이랄까?
 나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베란다에 놓인 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힐링의 효과인가? 갑자기 노곤함이 밀려왔다.
 그대로 다리를 펴고 소파에 누웠다.
 
 쿨-
 오랜만에 꿀잠에 빠져들었다.
 
 
 **
 
 
 어둠 속에서 깨어난 민혁은 양초에 불을 붙이고는 아연실색했다. 정체불명의 나무 덩굴이 베란다 창문을 빽빽하게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이거!’
 
 도저히 눈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잠깐 잠들어 있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민혁은 나무 덩굴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잎사귀를 만졌다.
 
 ‘진짜 나뭇잎 같은데.’
 
 느껴지는 질감이 인조(人造)나무는 아니었다.
 툭-
 나뭇잎 한 장을 떼어냈다. 그러자 잎이 떨어진 가지에서 수액이 스며 나왔다.
 확실하게 진짜 나무 덩굴이었다.
 하지만 진짜라는 걸 알았다고 사태 파악이 되는 건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게 갑자기 솟아난 건가?
 
 ‘혹시?’
 
 물속에 담가 뒀던 토마토 씨앗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건 절대 토마토 넝쿨로는 보이지 않았다. 덩굴의 굵은 부분이 어른의 허벅지보다도 굵었으니깐.
 
 ‘토마토는 나무에 달리는 게 아니잖아!’
 
 도시 촌놈이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혹시 밖에서 자라서 안으로 들어온 건가?’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식물이 아파트 벽을 타고 초고속으로 성장하여 기어올랐을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이 좀비로 변해 버리는 마당에 그런 일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호기심에 밖을 살펴보고 싶은데 잎과 줄기가 베란다 창을 완전히 덮고 있어서 밖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민혁은 덩굴 안으로 손을 욱여넣었다. 그러자 밖에서 밝은 빛이 새어 들어왔다.
 
 ‘지금 낮인가?’
 
 민혁은 손목시계를 봤다. 정전 이후 전자제품은 아무것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손목에 차고 있는 전자시계만큼은 잘 작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지금은 새벽 두 시다. 혹시 시계의 배터리가 방전돼 시간이 틀리게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방에 들어가서 창밖을 내다봤다. 칠흑처럼 어두웠다. 지금은 밤이 확실했다.
 
 ‘뭐지?’
 
 다시 베란다로 돌아와 나무 덩굴을 헤쳤다. 그리고 팔을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러자 손끝에서 봄볕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덩굴을 헤쳤다. 그러자 머리통을 집어넣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생겼다. 민혁은 덩굴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믿지 못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맙소사!’
 
 민혁은 나무 덩굴을 해치며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 덩굴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기어 나왔다.
 툭툭-
 옷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밝은 빛에 눈이 부셨다. 그리고 천천히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와!’
 
 그는 태양이 내리쬐는 광활한 들판에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멀리 아름다운 산맥이 보였고 멀지 않은 곳에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었다. 언덕 아래로 반짝이는 강과 호수도 보였다. 하늘도 호수도 진한 파란색을 띠고 있었다. 동서남북 사방이 모두 컴퓨터 바탕 화면으로 써도 될 만큼 멋진 풍경이었다.
 민혁은 고개를 돌려 자신이 기어 나온 나무 덩굴을 바라봤다.
 
 ‘신기하네.’
 
 나무 덩굴을 경계로 한쪽은 아파트 20층의 베란다고 다른 한쪽은 드넓은 대지라니,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좀비에게 위협당하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이 꿈이길 기도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판타지만큼은 꿈이 아니길 간절히 소망했다.
 민혁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아프다.’
 
 그때였다.
 
 띠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그의 눈앞에 큼직한 반투명 창이 떴다.
 
 
 [메인 퀘스트! 전설의 땅의 영주.]
 
 -마법의 강 ‘앙가라’ 북쪽에 있는 벨라토 영지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당신은 모험가 중의 모험가입니다. 당신은 이 비옥한 땅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영주가 되어 이 땅을 풍요롭게 가꾸어 보세요.
 퀘스트를 수락하겠습니까? (Y/N)
 
 
 “허허허.”
 
 너털웃음이 나왔다.
 그의 인생 장르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말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32)

쇠망치스프    
아니 아포칼립스라면서요
2020.03.13 13:56
동동이돌    
재미 있습니다.~^^
2020.03.22 07:41
노란꼬리    
나니아연대기 컨셉?
2020.03.23 23:33
OTlL    
표지 너무 귀욥네
2020.03.24 18:41
아봉    
오호 이런 발상이 ㅋ
2020.03.24 18:58
IIIIIIIIII    
전설의 땅의 영주 로 수정좀
2020.03.27 04:08
퍄퍄퍄퍄    
요즘 뭐 이리 아포칼립스에서 하는게 많은지... 만약 아포칼립스에서 행복하다면 다른사람이 받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지 못하는 공감능력부족입니다 깔깔깔
2020.04.01 20:59
용가리22    
공감능력 타령 좀 그만해라;; 일단 자기부터 챙기고 남을 챙겨야지,자기도 못챙겼는데 주위 신경쓴다는게 말이냐 빙구지;; 호구물에서는 공감능력 뿜뿜한 주인공 나와서 발암 천지였는데,차라리 이기적이거나 자기부터 챙기고 주위 챙기는 주인공이 훨씬 좋음.싫으면 보지말던가.
2020.04.03 01:01
용가리22    
작가님,매 화 제목을 신경써서 다는게 좋지 않을까요.1화,2화,,,10화 이런식으로 다는 것보단 화마다 어그로 끄는 제목 있으면 훨씬 조회수가 높던데.
2020.04.03 01:04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0.04.0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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