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B급 빌런의 인생 2회차

사형 [Ending]

2020.03.27 조회 113,901 추천 1,708


 “이름 이시국.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2005년 5월 1일. 나이 37세. 초인 등급 B급.”
 
 일본인 교도관이 기계적인 말투로 사형수의 정보를 읊었다.
 그것을 유리벽 너머에서 듣는 당사자, 사형수 시국은 담담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조직범죄 193건, 국제마약거래 122건, 살인 324건, 방화 252건으로 2041년 9월 9일 일본국 오사카부 간사이국제공항에서 국제초인협회 초인범죄수사국 요원과 일본국 초인협회 요원에 의해 체포. 2041년 12월 3일 일본국 초인범죄재판소 최고재판부 만장일치로 사형 선고. 2042년 5월 1일 사형 집행 결정.”
 
 일본인 교도관이 말을 멈추고 시국을 바라봤다.
 시국은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교도관의 말에 시국은 피식 웃었다. 그가 교도관을 바라봤다.
 이런 일에 익숙한 듯, 교도관은 마치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과 같은 표정으로 시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담배나 한 개비 주쇼.”
 
 시국의 입에서 능숙한 일본어가 흘러나왔다. 교도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국의 곁에 있던 정장을 입은 일본 초인협회 요원 하나가 담배를 들고 와 시국의 입에 물려준 후 불을 붙였다.
 타오르는 담배의 불빛을 바라보다 시국은 눈을 감았다.
 
 ‘왜 할 말이 없겠냐? 새끼들아.’
 
 매캐한 연기 속에서 시국은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멍청한 러시아 새끼. 괜찮다고 한 잔만 처먹는다더니 보드카 세 병을 까 잡숴서······.’
 
 간사이국제공항에서 사살된 러시아인 C급 빌런, 막심을 떠올리며 시국은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8개월 전인 2041년 9월 9일.
 시국은 일본에서 일을 마치고 위조여권을 이용해 간사이국제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공항의 경비는 삼엄했다. 야쿠자 조직에 침투한 일본 경시청 측 스파이로부터 일단의 빌런들이 간사이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할 것이란 첩보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템으로 마력을 숨긴 상태였기에 첩보에서 이야기한 당사자인 두 사람은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두 사람은 공항 곳곳에 대기 중이던 요원들에게 별 관심을 받지 않은 채 검색대까지 갈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순조로웠다. 위조여권 자체가 러시아 극동정부를 통해 발행된 것이었던 만큼 검색대에 잡히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그와 함께 출국하려던 막심이었다.
 
 『쑤까 블럇!』
 
 자신의 가명인 알렉산드르 일리치 이바노프를, 술에 취한 막심은 기억하지 못했다.
 
 『막심 프란델로비치! 이게 내 이름이다, 이 원숭이 새끼들아!』
 
 당장에 공항 검색대는 난리가 났고 대기 중이던 일본국 초인협회 요원들이 달려왔다.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알렉산드르 일리치 이바노프 씨가 맞으십니까? 아니면 막심 프란델로비치 씨가 맞으십니까.』
 
 요원의 물음에 막심은 대답 대신 거대한 파이어 볼을 날려주었다.
 불덩이는 정통으로 요원의 몸에 맞고 폭발했다.
 순식간에 공항 검색대는 아수라장이 됐고, 협회 요원들은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야! 까레예츠! 이 쑤까들이 우리를 몰라보고 설친다.』
 
 그리고 막심은 몰래 빠져나가려던 시국을 불렀다.
 요원들과 시국의 눈이 마주쳤고, 시국은 칼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막심은 마법 계열 초인이었기에 원거리에서 파이어 볼을 날리며 협회 요원들을 괴롭혔다.
 시국은 근접 딜러 계열의 초인이었기에 막심의 원거리 지원을 받으며 요원들을 하나둘 쓰러뜨렸다.
 
 전투는 순조로웠다.
 아무리 일본국 요원들의 실력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B급 근접 딜러와 C급 원거리 딜러의 협공을 이겨낼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시국의 스킬인 사안(蛇眼)의 영향으로, 요원들의 움직임이 느려지기까지 했다.
 
 『우라!』
 
 문제는 막심이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마법을 난사하던 막심은 그만 시국의 등을 향해 파이어 볼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배후의 아군에게서 날아온 공격이었기에 시국은 미처 대비할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끄억!』
 
 파이어 볼은 그대로 그의 등에서 폭발했고, 순식간에 시국의 생명력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집중력도 80% 선을 유지하던 것이 순식간에 40% 선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 시국의 스킬인 사안이 풀렸고, 요원들이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쑤까 블럇!』
 
 막심은 욕을 했지만, 시국은 욕조차 할 수 없었다.
 완전히 등판이 익어버렸고, 내상도 상당했기에 마력의 출력이 약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국제초인협회 초인범죄수사국 소속 요원들까지 가세했다.
 삽시간에 전황이 뒤집혔다.
 
 서걱-!
 
 마침내 마법 계열 요원이 날린 바람의 칼날이 막심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 자리에서 막심은 죽었고, 혼자가 된 시국은 체포당했다.
 
 「국제지명수배 B급 빌런, 일본에서 긴급 체포!」
 
 그것은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등급도 B급이었고, 비록 시국의 활동 무대가 동아시아와 러시아 극동지방에 국한됐지만, 그가 떨친 악명이 제법 높았던 만큼 전 세계의 이목이 일본에 집중됐다.
 
 재판은 공개 재판으로,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펼치는 취재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어째서 B급이면서 빌런 생활을 하신 겁니까?』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항상 묻던 말이었다.
 당연한 질문이었다.
 B급이면 전 세계적으로 1만 명뿐인 고급 인력이었다.
 그런 B급 초인이 빌런으로서 악명이나 떨쳤으니, 그 질문은 비단 기자 개인의 궁금증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을 포함, 모든 기자의 물음에 시국은 입을 열지 않았다.
 질문뿐만이 아니었다. 시국은 체포된 이후 선고를 받을 때까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시국이 묵비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일본국 초인범죄재판소 최고재판부는 단 3개월의 심리 끝에 만장일치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자국민임을 이유로 시국을 한국으로 송환할 것을 요청했지만, 일본국 정부는 간사이국제공항이 자국 관할권임을 이유로 가볍게 묵살했다.
 그리고 오늘, 사형이 선고된 지 채 6개월을 못 넘기고 이렇게 초인 전용 사형 의자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하필 생일날 죽이고 지랄들이야.’
 
 시국이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하긴, 5월 1일이 고아원 앞에서 발견된 날이니 생일은 아니긴 하다만.’
 
 시국이 허탈하게 웃었다.
 
 ‘결국 못 물어봤네.’
 
 기껏해야 서른여덟, 만으로는 37세에 불과한 나이지만 시국에게는 평생의 질문이 하나 있었다.
 
 날 왜 버렸냐.
 
 철이 들 무렵부터, 빌런이 된 이후로도, 그리고 이곳 오사카 제3초인형무소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때에도.
 항상 그 질문은 시국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차라리 낙태나 시키지. 그랬더라면······.’
 
 324명, 비공식적인 살인까지 포함하면 대략 400명 정도의 사람이 죽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가 밀수한 수백 kg 상당의 마약으로 셀 수 없는 가정과 개인이 파괴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그에게 협박과 갈취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범죄 조직이 경찰권을 위협할 정도로 자라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 B급이면서 빌런 생활을 했냐고?’
 
 문득 시국의 뇌리에 그의 첫 살인이 떠올랐다.
 
 ‘스물한 살 때였나? 그래, 그때 각성했으니까. 맞겠네.’
 
 2025년 12월 3일.
 시국은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30대 초반의 주부가 그 피해자였다.
 살해 이유는 단순했다.
 
 『너 자꾸 늦잠 자고 유치원 늦고 하면 커서 저렇게 돼.』
 
 그날 아침,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공공근로를 하던 시국을 가리키며 그녀는 딸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시국은 똑똑히 들었다.
 그 순간 시국은 이성의 끈을 놔버렸다. 온갖 설움이 폭발하며 그를 극도의 흥분과 광기로 몰았다.
 그는 그대로 편의점으로 가 소주 두 병을 사서 아파트 단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술병을 비웠다.
 취기가 올라왔고, 그 상황에서 시국의 이성은 설움과 분노, 억울함이란 감정이 뒤섞인 극도로 부정적인 그 무언가에 사로잡혔다.
 술에 취한 시국은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막간을 이용해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던 주부와 말싸움을 벌였다.
 시국이 원했던 것은 단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억울함과 분노를 토해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막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까먹어버린 그녀의 태도에 시국은 결국 폭발하였고, 그 자리에서 그녀의 목을 졸라 죽여 버렸다.
 
 『으아아아아!』
 
 멍하니 여자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시국을 보고 경비는 비명을 질렀다.
 주민들은 패닉에 빠졌고,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긴급 출동했다.
 
 『꼼짝 마! 두 손 들어!』
 
 경찰은 시국을 향해 총을 겨누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시국은 순순히 따랐다.
 그리고 경찰이 그의 양팔을 뒤로 꺾고 수갑을 채웠을 때, 시국은 초인으로 각성했다.
 각성한 초인의 힘 앞에서 수갑은 그저 거추장스런 물건일 뿐, 그를 억제하는 도구가 되지 못했다.
 
 힘으로 수갑을 끊은 시국은 그 자리에서 경찰들을 때려눕힌 후 도주했다.
 그때부터 시국의 빌런 라이프는 시작됐다.
 그리고 얼마 뒤 주한 미국 대사 테러 사건에 연루되고, 그 때문에 국제초인협회 초인범죄수사국에서 시국을 빌런으로 선포하고 지명 수배를 내리면서 그는 더 이상 양지로 나올 수 없게 됐다.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살았겠냐. 더러운 새끼들아.’
 
 시국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담배는 서서히 꽁초가 돼 가고 있었다.
 
 ‘내가 만약 그때······.’
 
 초인은 선천적이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그것에 따르면, 그때가 아니었더라도 언젠가 시국은 각성을 했을 터였다.
 그랬더라면 그는 B급 헌터로서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사회의 상류 계급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최소한 이렇게 사형 의자에 앉아 죽기만을 기다리는 꼴은 안 됐겠지?’
 
 문득 부질없는 상상이란 깨달음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피식 웃었다.
 담배는 꽁초까지 다 타버렸다.
 곁에서 그를 지켜보던 요원이 담배를 그의 입에서 빼냈다.
 
 “하아······.”
 
 시국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요원은 유리벽 너머 교도관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사형실 밖으로 나갔다.
 
 “2042년 5월 1일 16시 24분. 일본국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본 오사카 제3초인형무소는 미집행 사형수 이시국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다.”
 
 일본인 교도관의 기계적인 음성을 끝으로 유리벽은 시커멓게 변했다. 그리고 곧 사형실의 모든 전원이 꺼졌다.
 시국은 담담한 표정으로 어둠을 바라봤다.
 이제 약 1분이 지나면 그의 생명력이 모두 바닥날 것이고 그는 죽을 것이다.
 그가 살아왔던 시간이, 생명의 역사가 무로 돌아갈 것이다.
 이 세상에 남긴 것이라곤 B급 빌런이라는 악명과 인터넷상에서의 비난,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언론이나 법조계에 언급될 사례로 남을 재판 기록뿐인 삶.
 그것이 이제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푸욱-!
 
 사형 의자에서 바늘이 나와 시국의 척추 깊은 곳을 찔렀다.
 뜨끔한 통증과 이물감이 그의 감각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상태창.’
 
 시국이 속으로 상태창을 불렀다.
 그의 눈앞에 일련의 문자와 숫자의 나열이 홀로그램처럼 나타났다.
 
 생명력 : 3300/3300, 마력 : 2400/2400, 집중력 : 100%
 스킬 : 전투 감각(B), 사안(C), 살인검(B)
 
 B급 초인으로서 나쁘지 않은 수준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능력은 한 줌 재가 돼 사라질 것이다.
 
 시국의 눈에 빠르게 감소하는 생명력 수치가 들어왔다.
 
 생명력 : 2670/3300
 생명력 : 1700/3300
 생명력 : 900/3300
 
 초인과 일반인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이 생명력이다.
 일반인의 경우 총칼에 맞으면 한 방에 죽지만 초인은 그렇지 않다.
 초인은 저 생명력의 수치가 0이 돼야만 죽음을 맞이한다.
 즉, 총에 맞더라도 한 방에 즉사하는 경우는 E급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랬기에 초인의 사형 집행도 일반인과는 달랐다.
 교수형이나 총살형은 그들에게 무의미했다.
 
 초인의 사형은 이렇게 초인용 사형 의자라는 특수기구에서, 초인이 지닌 생명력을 지속해서 빼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생명력 : 98/3300
 
 생명력이 100 아래로 떨어지자 시국의 모든 감각은 마비됐다.
 이제는 상태창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뇌만이 살아남아 생의 마지막 사유를 하고 있었다.
 
 생명력 : 32/3300
 
 죽음은 마치 잠과도 같이 몰려왔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허우적거리던, 기면증마저 의심될 정도로 아무 데서나 아무 때에나 잠들었던 어린 시절처럼.
 그렇게 시국은 몽롱한 상태에서 마지막 호흡을 내뱉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의미한 생각을 끝으로 시국은 의식을 잃었다.
 
 2042년 5월 1일 16시 26분.
 동아시아에 악명이 자자했던 한국 출신 B급 빌런 이시국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댓글(196)

양선호    
잘 보고 갑니다.
2020.03.28 11:57
멍한찰리    
다시 태어난다면 그땐 지금보다 더 악명을 쌓겠어!
2020.03.29 13:59
흑돌이    
잘 보고 갑니다.
2020.04.03 11:58
나노[nano]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거의 모든 사람이 합리화하며 살죠. 모두가 합리화를 하지않고 양심대로 살면 그런 세상이 유토피아~!! 살인 옹호 발언 절대 아님...ㅋㅋ
2020.04.05 14:32
집무관    
사정없는 범죄자가 어딨나ㅋ
2020.04.12 03:28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0.04.12 18:26
와리질러슬    
사이코패스인데 그냥ㅋㅋㅋ
2020.04.12 20:02
걀걀    
원한살인이나 착취당한류도 아니고... 그냥 인근에서 들린말한마디에 살인....그냥 자격지심덩어리였네요. 고아라고 다 저렇고 형편 어렵다고 다 저럴까..
2020.04.13 07:56
mjy03262    
막심센세 재평가 ㅋㅋ
2020.04.13 15:17
keraS.I.S    
근데 솔직히 빡쳐서 죽일수도 있지.... 너님도 저기 서울역 가서 노숙자한테거서 왜 그렇게 멍청하게 살다가 노숙자 됐냐 그러면 소주병 날아옴
2020.04.1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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