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헉, 헉.”
어두운 밤.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산을 올랐다.
발을 헛디딜 때도, 넘어질 뻔 할 때도 종종 있었지만, 달려나가는 속도는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품 안의 죽간만은 수시로 확인했다.
이것이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철퍽!
미처 보지 못한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가을 새 잔뜩 쌓인 낙엽 덕에 상처는 없었지만, 밤이슬을 잔뜩 머금은 낙엽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걸까.
터는 거로는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낙엽들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이제는 너무 먼 과거가 되어버린 그때를 회상했다.
섬서 제일의 부잣집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성화로 새장가를 드신 후엔 완전히 망나니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버지도 어머니를 잃은 나를 측은히 여겨 여러 번 편의를 봐주셨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망나니로 지낸 지 얼마나 됐을까.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는 시종의 말에 아버지의 침소로 찾아갔다.
근 1년간 없던 아버지의 부름에 뭘 이제야라는 탓 반, 내게 가문의 중책을 맡기실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기대 반을 간직한 채 그를 찾아간 그 날, 아버지는 내게 명령했다.
“감숙의 신창양가(神槍陽家)로 가서 무공 수련을 쌓아라. 만약 가지 않겠다면 집에서 나가라.”
더는 나로 인해 아버지의 이름과 가문의 이름. 그리고 무엇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걸 참지 못한 아버지의 마지막 통보였다.
처음에는 반발했지만, 아버지의 단호한 태도와 시종의 말에 그 생각을 바꿨다.
“이러나저러나 쫓겨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가주님의 말씀대로 무림 문파로 가서 열심히 수련해서 금의환향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내 화려한 미래를 상상했다.
일검(一劍)으로 산을 가르고, 일장(一掌)으로 강물을 막는 절대 고수!
가문에서도 구하기 힘든 귀한 비단옷을 입고 아름다운 여인을 데리고 돌아오는 나의 모습을!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감숙으로 향한 나를 맞이한 건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이었다.
아낙네를 희롱하다 넘어온 놈부터 도벽이 있는 놈들까지.
정상적인 이유로 찾아온 놈은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사형제로 여기며 열심히 수련했다.
그렇게 3년간 열심히 수련하던 어느 날.
사부님이 우리 중 몇 명을 은밀히 불러모으고선 말했다.
“너희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다.”
공? 갑자기 무슨 소리지?
영문 모를 소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있던 우리에게 그가 말했다.
“최근 신강에 있는 마교의 행동이 수상하다. 그들에게 침투해 정파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빼 온다면, 너희에게 영약과 상승 무공을 주겠다.”
마교! 그 두 글자에 우리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린아이의 심장을 뽑아 먹고, 처녀의 피를 마시며 살아간다는 괴물들!
그런 괴물들이 있는 소굴에 침입해 정보를 빼 오라니!
사부님의 끔찍한 명령을 거절하려는 찰나, 옆에 있던 대사형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그런 영광스러운 임무를 저와 사제들에게 맡겨주시다니, 기대에 걸맞게 훌륭히 완수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게 바로 흐름이라는 걸까. 대사형의 대답에 우리는 하나둘 사부님의 명령을 받아들였고, 며칠 뒤 남은 사형제의 열렬한 환호와 함께 마교로 향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짓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교에 들어가며 놀란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의 인간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인간이 이토록 악해질 수도 있다는 점.
우리가 알던 마교는 없었다. 어느 누구 하나 어린아이의 심장을 빼먹지도 않았고, 처녀의 피를 마시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뿐. 그들은 충분히 ‘마교’라는 이름이 붙여질 만큼 악했다.
약자는 유린당하고, 강자는 군림한다.
그 한 줄의 문장에 우리는 철저히 유린당했다.
3년간 열심히 익혀온 무공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우리의 콩알만 한 내공은 진짜 무림인의 내공과 비교하면 호랑이 앞의 벌레와도 같았고, 3년간 익힌 창법은 마교의 기본 수련법보다도 못했다.
그렇게 함께했던 사형제의 소식이 하나, 둘 들리지 않게 됐을 무렵, 나는 마교의 정보부로 들어가게 됐다.
물론 나를 의심하던 자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원래 교도가 아니었을뿐더러 과거가 불투명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보부에 있던 누군가의 한 마디에 그 말도 쏙 들어갔다.
“첩보 질을 시킬 거면 좀 더 무공을 잘하는 놈을 쓰겠지, 이런 놈을 쓰겠냐?”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정론이었다.
그 후 12년을 그곳에서 썩었다.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힌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20년간 제대로 된 수련도 하지 않고 이상한 창법만 익혔던 내 육신은 완전히 망가졌고, 길가에서 파는 기공법보다 못한 내공심법을 익힌 내 육신은 마교의 기본 심법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가만히 썩어가던 내게 들어 온 특급 정보.
[곧 마정대전이 벌어진다!]
혼란한 정국 속에서 힘을 모아 온 우리 마교가 드디어 가증스러운 정파를 향해 힘을 뿜어낼 때가 온 것이다!
그 정보를 알아낸 그 날, 나는 마교를 뛰쳐나왔다.
내 원래 임무를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영약과 상승 무공?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다.
평범한 삶.
보통의 인생.
더 이상 무엇에도 엮이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헉, 크흡, 헉, 여, 여긴가?”
12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때의 기억은 선명했다.
중요한 정보를 얻으면 오라던 산. 그리고 정상에 올라서 불라던 자그마한 피리.
내가 마교에 떠나던 그 날. 반드시 중요한 순간에 불라며 대사형이 건네준 피리를 꺼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피리. 이걸 분다고 정말 누군가 찾아올까?
아냐, 의심하면 안 돼. 이미 마교를 나온 이상 내 목숨은 이제 여기에 달렸다.
누군가에게 들릴까 조심스레 피리를 불자, 피익,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부서졌나?
12년간 제대로 관리도 못 하긴 했지만, 설마 정말로 부서진 건가?
혹시나 하는 심정에 이번에는 온 힘을 다해 불어본다.
피익!
하지만 내 간절한 심정을 배신하기라도 하듯 뿜어져 나오는 헛바람 소리.
나는, 겨우 이 부서진 피리를 불기 위해 이렇게 마교에서 도망쳐 나온 건가?
차라리 돌아갈까? ···아냐, 지금 가봐야 늦었다. 마교는 이미 날 찾고 있을 거야.
안 그래도 규율을 중시하는 마교다. 하물며 정마대전 직전인 이 순간에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다?
나 첩보 요원이니 죽여주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절망하던 내 귀로 한 줄기의 바람이 불어왔다.
마교 밖을 나설 때도, 산에 올라올 때도, 정상에 올랐을 때도 불지 않았던 바람이.
“너냐? 날 부른 사람이.”
휙! 뒤에서 들려 온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올라오는 기색도, 인기척도 없었는데? 대체 누가···!
그리고 내 눈 안에 들어온 그의 얼굴은.
“대, 대사형?”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내의 얼굴이었다.
12년 전 사부님의 명령에 제일 먼저 손을 들었던 바로 그. 마교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연락이 끊겼던 바로 그. 아직 사형제들과 연락이 됐던 때에는 매일 추모했던 바로 그.
그가 12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얼굴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대사형? 나는 너 같은 사제 따위···아, 혹시 신창양가의 사람인가?”
꿀꺽. 대사형?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마른침을 삼켰다.
이상하다.
이상해.
12년간 마교에서 살아오면서 발달한 위기감지능력이 지금까지 제일 크게 울리고 있었다.
12년 전과 다를 바 없는 그의 젊은 얼굴부터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뒤를 차지하는 그 무공.
거기에다가 마치 남처럼 ‘신창양가의 사람’이라고 나를 부르는 말투까지.
“다, 당신은···누구요?”
“쳇, 1년 만에 다 죽은 줄 알고 재활용 좀 했더니 설마 12년 전에 죽은 귀신이 살아 돌아올 줄이야. 운도 참 없어.”
찌이익. 도저히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말과 함께 그의 얼굴 가죽이 벗겨진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스스로 벗겨낸다.
그렇게 벗겨낸 얼굴 안의 얼굴 또한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따지자면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그 얼굴만은 알았다.
“마, 마멸검(魔滅劍) 청진(淸進)?”
“호오, 내 얼굴도 아나?”
어찌 모를까. 정파에 소속된 절정 이상의 고수는 마교의 정보부 요원이라면 누구나 알았다.
특히 그 중 마멸검은 그 별호만큼이나 마교를 혐오해 절대 마주치면 안 될 사람 중 하나였기에 아주 달달 외웠다.
“다, 당신이 어떻게···왜 그의 얼굴을···대체 왜···.”
“정보는?”
“아, 저기, 그···.”
“정보.”
더 말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히 말하는 그에게 나는 더 질문하지 못하고 챙겨 온 죽간을 내밀었다.
촤라락. 그것을 바로 그 자리에서 펼쳐 본 그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이 정보가 사실인가?”
“적힌 대로요.”
“흐음, 좋아. 좋은 정보를 얻어왔군.”
촤르륵.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죽간을 품 안에 감췄다.
좋아, 좋은 징조다. 처음 그의 얼굴을 봤을 땐 충격적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만족했다면 내가 원하는 걸 얻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젠···.”
“돌아가라.”
“···뭐요?”
뭐라고? 내가 잘 못 들었나?
“못 알아들었나? 마교로 돌아가라고. 이제 정마대전이 벌어지면 이제부터 이것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정보가 생길 텐데, 너는 그걸 내게 보내줘야지.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요!”
잘 못 들은 게 아니다. 그는 정말로 내게 명령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저 사지로 다시 돌아가라, 그리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마교를 떠났소! 그런 상황에서 다시 돌아가라고? 그런다고 저기서 날 살려줄 것 같소?! 나는, 나는 이제 뒤가 없다고! 약속했잖아! 내가 중요한 정보를 가져온다면 보상해주기로 약속했잖아! 근데, 왜, 대체 왜···!”
“하! 아직도 모르겠나? 마교의 정보부 요원이라더니 참으로 멍청하군.”
번쩍! 그가 날카로운 살기가 담긴 눈으로 날 희번덕거리며 바라봤다.
달빛 한 점 없는 어두운 산 정상에서 오직 그의 두 눈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넌 원래 거기서 죽어야 했다고.”
“뭐, 뭐요?”
“20년간 망나니처럼 굴다가 겨우 3년 무공을 수련한 놈을 마교로 보낸 진의를 아직도 모르겠냐? 넌 그때 죽었어야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에 찾아왔을 때부터 죽을 운명이었지.”
“내, 내가 죽을 운명이었다고?”
“너도 정보부 요원이라면 알겠지. 신창양가라는 이름의 문파 따위 더는 없다는 걸.”
꿀꺽.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랬다. 정보부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난 후, 나는 제일 먼저 감숙의 문파들을 확인했다.
하지만 거기에 내 사문의 이름은 없었다.
내 표정을 읽은 그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파에도 돈은 필요하지. 아니, 돈이 필요한 정도가 아니야. 마치 구멍 뚫린 둑처럼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계속해서 새어나가지.”
그 이야기라면 나도 알고 있었다. 마교의 정보요원 모두가 어떻게든 파헤쳐내려고 노력하는 게 바로 정파의 수익처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걸 알아낼 수 없었다.
“겨우 객잔이나 주점의 수익 일부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지. 그래서 네놈 같은 망나니를 잠시 맡아놓는 그런 이름뿐인 문파를 만들어 놓는 거야. 물론 조금의 기부금 정도는 받지만 말이야.”
“잠시 맡겨놓는다니···그, 그럼 우리를 왜 마교로 보낸 것이오?! 그 말대로라면 우리를 살려놨어야 할 텐데···!”
내 격분에 가득 찬 목소리에 그는 큭큭, 하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더니 내게 말했다.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그걸로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아. 겨우 누구 하나 맡겨놓는다고 얼마나 벌 수 있겠어? 안 그래?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기부금을 조금 더 뜯어내는 거지.”
“다른 방법이라니···설마······.”
마교의 정보요원으로 살아가면서 여러 끔찍한 광경과 정보를 여럿 접했다. 그 때문일까. 내 머리는 그 방법에 대한 답을 금방 꺼냈다.
도저히 알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 정보를.
“···차도살인(借刀殺人)?”
“바로 맞췄군. 과연 정보요원다워.”
비웃음 가득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 안 되는 내공과 근력으로 산을 오르느라 힘이 빠졌던 내게 그 정보는 남아있던 힘까지 모두 빼앗아갔다.
나를 죽이려 들었다고? 내 가족이? 내 부모가? 내 형제가?
그럴 리 없어! 큰 목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내가 겪어온 과거와 눈앞에 있는 그의 비릿한 웃음은 그걸 부정하는 것조차 막아섰다.
나는 정말로 버려졌다.
내 가문에.
내 사문에.
그리고 이젠 마교에까지.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는 어느새 허리춤에 있던 칼집에서 검을 꺼낸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살아갈 가능성 따윈 없다는 걸.
그가 내게 정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정보를 알려준 이유가 뭐겠는가.
살인멸구(殺人滅口). 내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가망 따윈 없었다.
“대부분 마교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 죽어버리는데, 그런 점에서 네놈이 숨는 재주는 꽤 좋았던 모양이야. 설마 12년이나 마교에 숨어서 살 줄이야.”
내 가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칼끝을 응시했다.
마교로 들어왔던 그 날 이후, 매일 내 인생의 끝을 생각했다.
첩자임을 들켜 마교에서 고문을 받다가 죽을 수도 있고, 억지로 전쟁터로 끌려 나와 칼받이로 죽을 수도 있었겠지.
무림에서 떠나 어느 시골에서 조용히 잠들다 죽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설마 아군이라 믿었던 정파의 손에 이렇게 목숨을 잃게 될 줄이야.
아니, 사실 아군도 아니었지만.
“이제 그 운도 오늘로 끝이군.”
푸욱. 마멸검의 칼끝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화끈한 통증과 반대로 차갑게 식어가는 손과 발.
이것이 죽음인가? 이것이 정말로 내 인생의 끝인가?
“정보는 고맙게 쓰지. 크큭, 설마 다른 임무를 하러 왔다가 12년 전에 죽은 줄 알았던 인간에게 이런 정보를 얻을 줄이야. 덕분에 큰 공을 세우게 됐어. 아까 말해준 건 그 대가로 생각해라.”
그 말을 끝으로 마멸검은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몸을 숨겼다.
점점 느려지는 심장 박동과 가빠오는 호흡. 이제 내게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나무에 상체를 기댄 채 품을 뒤적여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황색 바탕에 알아볼 수 없는 붉은 글씨가 어지럽게 그려진 손바닥만 한 부적.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유품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내가 죽을 일은 없다고 하셨지.”
나를 제외한 사형제 모두가 1년 사이에 목숨을 잃은 마교에서 12년간 살 수 있었던 건 정말로 이 부적 덕분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부적조차 이제는 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긴, 나 같은 삼류를 그 지옥 속에서 12년간 지켜줬으니, 그 정도면 있던 신기도 다 떨어질 만 하지.
털썩.
가슴 위로 떨어진 팔과 그사이에 낀 부적을 바라보다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쏟아질 듯 무수히 많은 별이 촘촘히 박혀있는 밤하늘에 그려지는 한 사람의 얼굴.
“어머니···.”
세상에서 유일하게 날 진심으로 사랑해줬던 그녀를 부르며 눈을 감았다.
그렇기에 난 알 수 없었다.
번쩍!
내 가슴팍에 있던 부적의 붉은 글씨가 미약한 빛을 뿜어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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