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삼국지 공손찬 아들이 되었다

프롤로그.

2020.05.17 조회 32,835 추천 449


 역경루의 높은 전각.
 그중 가장 거대하고 높은 전각이 화염에 휩싸였다.
 검은 연기가 치솟고 그 안에 갇힌 자들은 연신 기침 소리를 내었다.
 
 콜록. 콜록.
 
 하지만 타닥거리는 불꽃 속에서도 처연하게 선 한 남자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만. 그만하여라.”
 
 그의 입에선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조금 전 애첩과 시동들을 죽인 그의 칼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공손찬.
 살려달라고 빌던 후처와 애첩들을 죽였다. 그리곤 마지막 남은 나와 내 가족들. 바로 그곳으로 한 발짝 다가서며 말하고 있었다.
 
 “이리 오너라. 이제 너만 남았다.”
 
 작지만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 하지만 한사코 고갯짓으로 거부했다. 그것에 공손찬의 입꼬리가 씰룩인다.
 
 “그만하자. 이제 끝내자.”
 
 난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지금도 나만 믿고 있는 내 식구들을 위해서라도.
 
 “아버님. 저도 자식입니다. 아무리 배다른 자식이지만, 그래도 공손찬의 아들입니다.”
 “안다. 네놈도 나의 자식이지.”
 “저, 정말. 그리 생각하십니까?”
 
 처음으로 공손찬에게 자식이란 소리를 들었다.
 뼈저리게 듣고도 싶었던 이야기.
 나는 천기(賤妓)의 자식.
 하지만 그런 출생의 비천함으로 모른 척할 때는 언제고. 이제야 자식이라 부른다. 그것도 죽이려고 가까이 오라고 부른다.
 
 “공손혁, 이리 오너라. 그만 끝내자.”
 
 난 그 말에 학을 뗐다. 두려웠다. 도저히 있을 수 없었다.
 
 “싫습니다. 이대로 끝낼 순 없습니다.”
 “부질없는 미련.”
 
 공손찬의 눈에선 불꽃이 피어올랐다. 저 시뻘건 화광보다 더 붉은 광기. 비틀린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누런 송곳니를 드러냈다.
 
 “원본초. 그자의 손에 죽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아버님!”
 “아니! 놈의 노리개로. 전리품으로 남기지 않을 것이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살아보았자. 네놈과 네 가족은 굴욕만 당할 뿐.”
 “살려주십시오.”
 “그만. 그만하여라. 살아서 무엇 하랴. 네놈이 산다면, 공손백규의 이름을 더럽힐 뿐이다.”
 “아버지....”
 
 피하기 힘겨웠다. 체념 섞인 한숨이 나왔다. 내 한숨에 공손찬의 입꼬리는 비틀렸다.
 붉어진 얼굴.
 핏발선 눈동자.
 지금의 공손찬은 정상이 아니다. 약에 취한 광인에 불과했다. 한때는 능력이 출중한 자였지만, 역경에 처박힌 후로는 이리 변했다.
 하지만 나는 버텨야 했다. 가장으로써 내 가족을 지켜야 했다.
 끝까지.
 
 “아버지. 저를 데려가시고 처와 어린 자식만이라도.”
 “아니. 안 된다.”
 “그들은 아버지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제발! 놓아주십시오. 보내주시면, 촌부로 살겠습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벽촌에서 살겠습니다.”
 
 처음으로 열변을 토했다.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던 내가.
 공손찬의 눈을 보고 항변했다.
 
 하지만 공손찬은 지글거리는 화마를 뚫고 천천히 걸어왔다. 분명 살갗이 타들어 가는 고통일 텐데. 개의치 않았다.
 
 공손찬의 칼날.
 시뻘건 검날에서 혈흔이 떨어진다.
 
 뚜둑!
 
 저 칼에 죽어간 이복형제의 얼굴이 지나쳤다. 모두 다 억울하다고 말하고 죽었다. 그리고 광인은 내 앞에 섰다. 뜨거움의 고통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두려움에 처자식을 부둥켜안았다.
 
 “여보. 미안하오.”
 “아가, 이 아비를 원망하여라.”
 
 내 말에 어린 여아가 울었다.
 
 “으아아아. 할아버지 나빠.”
 “태희야.”
 
 다독일 수 없었다.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딸아이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저 미친 할아버지를 보지 않게 하려 눈을 가려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에 처음으로 슬픈 표정을 지은 공손찬이 말했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억울함은 너희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 공손백규가 품어야 할 마음.”
 그 말과 동시에 검이 움직였다.
 배다른 형제들을 죽였던 그 검이 다시금 휘둘러졌다.
 
 서걱-
 “크악!”
 비명이 나왔다. 가슴이 베어져 오장육부가 보일 지경이었다.
 
 흐릿한 시야에 어둠이 몰려왔다.
 어둠이. 하지만 내가 먼저 가면 내 가족은 어찌하랴. 나는 눈을 부릅떠 아이들을 보았다.
 
 조막만한 손.
 어린 딸 태희.
 그리곤 강보에 쌓인 갓난이까지.
 
 아내는 끝까지 자식을 보호하려 웅크리지만, 광인의 칼날은 자비가 없었다.
 
 “더럽구나. 가여운 인생아...”
 
 감기는 눈동자에 힘을 내어 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칼날.
 
 서걱-
 
 시야가 뒤집혔다가 떨어진다. 툭! 초라한 내 수급이 발아래로 굴렀다.
 
 ***
 
 “크아아악!”
 
 정신없이 손짓 발짓을 했다. 방안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공손찬, 이 새끼야 제발!!!”
 
 불쾌한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른다.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된 꿈인지.
 어둡고 침침한 이 방안에서 매번 만나게 되는 공손찬이다.
 
 “빌어먹을.”
 
 이마에 식은땀으로 즐비했다. 그 식은땀으로 만들어진 셔츠를 벗어 던졌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곤 침대 옆에 올려둔 물컵을 붙잡았다.
 
 벌컥벌컥. 그리곤 방안을 둘러본다. 도대체 몇 년이나 이 생활을 했는지?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쳤다.
 
 내 이름은 공손혁.
 공손찬과 같은 공손씨이다. 하지만 그자와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여겼다.
 그냥 성씨만 같을 뿐.
 그런 나와 무슨 관계라고 이토록 꿈으로 보이는 것인지...

댓글(19)

ha*******    
이분 마초전 작가님 아니신가..
2020.05.17 14:05
마거스    
앞으로더나은내용의글부탁드립니다그리고빠른연재도요
2020.05.18 10:13
tn*****    
다른삼국지물 에서 다른군웅들을 주인공으로 했어도 공손찬 세력은못 봤는데 기대해봅니다
2020.05.18 10:19
lo*********    
이 소설은 방향이 정사삼국지인가요? 아니면 연의 참고로 쓴 글 인가요?
2020.05.23 09:57
양마루    
건필
2020.05.24 20:05
남궁쑈    
설xx 역사강사가 손찬이형이라고 부르던!!
2020.05.30 23:39
황혼의검    
공손찬은 동탁과 겨를만큼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워낙 성격이 더러워서 아들 말도 안 들을 것 같은데. 이건 조조 밑에서 독립하는 것보다 난도가 높다.
2020.06.07 18:00
대구호랑이    
잘보고 갑니다~^^
2020.06.17 00:31
던롭    
공손찬진영 시점에서 쓴 글은 거의 처음 보는것 같은데 기대가 되네요ㅎㅎ
2020.06.17 08:31
OLDBOY    
잘 보고 있습니다.
2020.06.1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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