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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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럼 여기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안무가, 태현 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얀색 배경의 깔끔한 스튜디오.
리포터처럼 보이는 여자가 멘트를 마무리 지으며 인터뷰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태현 씨. 인터뷰에 되게 능숙하신데요?”
여자의 말에 쑥쓰러운지, 안무가 태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런데 우리나라 최고의 안무가라고 하는 말은 역시 듣기가 쑥쓰럽네요.”
“아유, 왜요? 지금까지 만들어내신 히트곡 안무만 해도 몇 개인데. 전혀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죠.”
“사실 저희 안무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안무가는 따로 있거든요. 아마 먼저 인터뷰 요청이 갔을텐데, 그 형이 거절해서 제가 하게 된 걸 거에요.”
“어...”
여자가 어색한 얼굴로 촬영팀을 쳐다봤다.
카메라 아래에 앉아 있던 캐스팅 담당 작가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끄덕.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작가.
태현의 말이 맞다는 의미였다.
“괜찮아요. 제가 대타라거나 그런 생각을 하진 않으니까. 전 이렇게 인터뷰 하는 것도 재밌거든요.”
어떻게 보면 대타로 왔다는 말과 같은데도, 태현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하하 웃고 있었다.
하지만 리포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질문지들을 뚫어질듯 쳐다봤다.
“태현 씨가 만든 안무가 이렇게나 많은데. 이것보다 더 뛰어난 안무가가 있어요?”
“아유, 말도 마세요. 그 형이랑 저는 비교가 안 돼요. 아이돌 ‘블랙세븐’ 알죠. 혹시 걔네들 노래 중에 제일 히트곡...”
“Jump up?”
“네! 그 노래. 포인트 안무로 전국 각지에서 댄스 챌린지니, 뭐니 하면서 난리가 났잖아요. 또 있다. 리버티가 빵 뜨게 된, 인생 역전한 노래...”
“너에게 건네는?”
“그쵸! 그 노래도 단체 안무 대형이랑 군무로 한동안 난리였죠. 그런 노래들의 안무를 전부 ‘그 형’ 이 담당했던 안무들이거든요.”
“아아...”
리포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현을 바라봤다.
“노래랑 안무 다 알고 있었는데, 정작 만들었던 사람은 몰랐네요.”
“하하하! 업계에선 유명한데, 일반적인 대중들은 모를 수 있어요. 더군다나 그 형은 TV나 이런 인터뷰에 절대 안 나오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그 정도로 실력이 있으시면 방송 같은 곳에 나올 법도 한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 리포터의 말에 태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형은 아마... 절대 카메라 앞에 설 일 없을 거예요.”
“절대로요?”
리포터가 놀라서 되물었다.
“왜요? 그런 실력 있는 안무가라면, 방송이나 잡지에 출연하는 게 업계의 활성화를 위해서 도움이 될 텐데요.”
“그건, 형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가 난감하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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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또 인터뷰 출연 제의 거절했어?”
“...”
차가운 색감의 네온 인테리어가 가득한 술집.
그런 가게의 한 가운데.
한 남녀가 마주보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연우 오빠!”
두 사람 모두 인상 깊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특히나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남자였다.
그는 결코 못 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만약 고개를 돌리고 오른쪽 얼굴만 본다면, 당장 아이돌이라고 해도 될 만큼 잘생긴 모습.
하지만 그의 외모를 특이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끔찍한 화상자국 때문이었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볼 수밖에 없는,
왼쪽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커다란 화상 자국이 얼굴 전체의 밸런스를 망쳐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크으-.”
남자가 입에 술을 들이붓듯 마시자, 여자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흘겨봤다.
[끝까지 숨어봐! 내가 널 찾을 테니♬]
“야 이 노래 그거 아니냐? 골반 댄스?”
“맞아.”
가게 안은 시끌벅적한 손님들의 대화와 노랫소리로 가득했다.
그러던 중, 옆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렇게? 이렇게?”
“푸하하하! 개 웃기네. 야, 영상 찍어라, 동영상!”
“낄낄낄!”
우스꽝스러운 모습.
취기가 오른 남자들이, 흘러나오는 걸그룹 노래에 맞춰 안무를 춰대고 있었던 것이다.
연우가 그 모습을 힐끔 보고는 중얼거렸다.
“좋겠다.”
“...왜?”
“저렇게 유진이 네가 만든 춤을 사람들이 다 춰주잖아.”
“무슨 소리야?”
유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저거 오빠가 만든 안무잖아?”
“저게 어떻게 내가 짠 안무야, 너희들이 짠 거지.”
“하, 오빠 진짜 왜 그래? 우리 팀에서...”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대차게 말하던 유진은, 곧바로 보이는 연우의 모습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
그녀의 눈앞에 장갑을 벗은 연우의 손이 보였다.
마치 그의 얼굴처럼.
끔찍한 화상 자국이 문신처럼 그의 왼손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연우가 움찔움찔, 왼손을 향해 힘을 줬다.
하지만 그의 손은 그가 생각한 의지대로 움직이지가 않았다.
“이렇게 손도 제대로 못 움직이고. 내가 만든 안무를 내가 출 수도 없는데... 대체 그걸 어떻게 내 안무라고 할 수 있겠어?”
연우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장갑을 꼈다.
우리나라 굴지의 안무 팀이라고 평가 받는 ‘Lidit Sinne’.
그리고 그 중에서도 최고의 안무가, 연우.
하지만 그의 안무 작업은 다른 안무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연우가 휘말렸던 끔찍한 화재 사고.
그것 때문에, 연우는 자신이 생각하는 안무를 100% 표현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
오랫동안 움직이면 곧바로 통증을 호소하는 다리...
춤을 출 순 있었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결국 조금씩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들로, 그가 맡은 역할은 안무의 대략적인 모습과 아이디어 구상 뿐.
실제로 춤을 춰서 데모 영상을 만들어 보내는 등의 일은 다른 팀원들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춤을 못 출 뿐이지, 아이디어는 전부 오빠가 낸 거잖아.”
“그만 해. 괜찮으니까.”
“괜찮은데 왜 지금 이렇게 술을 퍼 마시냐고!”
유진이 연우의 손에 있는 술병을 탁! 낚아채고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야야, 너무 그렇게 몰아붙이지 마.”
“?”
그때였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다가온 훤칠한 미남이 다가와, 유진이 들고 있던 술병을 자연스럽게 집어 들었다.
드르륵- 덜컹.
옆자리에 앉는 그를 향해 연우가 놀란 눈으로 올려다본다.
“...대주 형.”
“팀장 님.”
김대주.
연예계 5대 기획사 중의 한 곳인, HY 엔터테인먼트의 아티스트 1본부 팀장.
“지금 한창 바쁘지 않아?”
“괜찮아. 술 한 잔 할 시간 없겠냐?”
대주와 옛날부터 알고 지낸 형 동생 사이이자,
최근 들어선 얼굴 볼 길이 없었던 아주 바쁜 인물이었다.
오늘 역시, 혹시나 시간이 되면 오라곤 했지만.
정말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지금 HY의 1본부는 회사에서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이돌, 블랙 세븐의 컴백을 계획하느라 한창 바쁠 시기였으니까.
“...”
연우가 가만히 대주의 얼굴을 바라봤다.
한창 바쁠 시기.
그런 상황에서 1본부의 팀장이 시간을 내서 이곳에 왔다는 건...
“연우야.”
자리에 앉자마자, 대주가 연우를 은근한 목소리로 불렀다.
“이번에 우리 회사 블랙 세븐 알지. 걔네 새 앨범 들어간다.”
“...”
역시.
아무런 용건 없이 그가 술자리에 찾아왔을 리 없었다.
대답 없이 다시 또 술잔을 채우는 연우에게 대주가 재차 말했다.
“타이틀 곡 맡아주라. 저번에 했던 것처럼.”
댄서의 꿈을 가지고 있던 연우의 인생이 화재 때문에 좌절 되었을 때, 안무가라는 직업을 제안한 것이 바로 대주였다.
그리고 연우는 창작 안무가로서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연우에게 곡을 의뢰하고, 끝내 업계의 최고의 안무가라고 평가받기까지...
어떻게 보면 대주는, 사고 이후 좌절감에 빠져있던 그에게 길을 열어 준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우가 대주에게 가진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10년 전에 닥쳤던 화재.
대주를 볼 때면, 연우는 항상 그 사고가 떠올랐다.
‘내가 그때 제안을 받지 않았다면...’
당시 대주가 제안했던 회사로의 영입 제안.
둘이서 보기로 했던 약속 장소. 한참을 지각한 김대주를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커다란 화재가 일어난 그 상가 건물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자마자 곧바로 뛰쳐나왔더라면...
화재의 이유가 대주의 탓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연우는 그렇게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할거지?”
“...”
[Jump! Jump!]
한편 어느새 술집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바뀌어 있었다.
노래의 제목은 블랙 세븐의 Jump Up.
연우가 담당한 곡 중 가장 히트 친 노래였다.
노래가 들려오자, 연우는 오히려 가슴이 더욱 갑갑해져오는 것 같았다.
“블랙 세븐이면 안 할 이유가 없잖아. 오빠, 해! 도와줄게.”
옆에서 유진은 눈을 빛내며 재촉했다.
“후우.”
하지만 연우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가만히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
“으으...”
술에 잔뜩 취해,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속이... 메스꺼워...’
잠깐 잠이 들었던 걸까.
정신을 차리자, 세 명이 앉아 있던 테이블에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술 좀 깨자.’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아니지.”
털썩.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취하려고 술을 마셨는데, 정작 취했더니 술을 깨려고 한다니.
그럴거면 술을 왜 마시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푸흐흐... 우...”
어딘가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바보 같은 생각에,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이 취기를 즐기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지만...
“우욱! 아니. 아, 안되겠다.”
더부룩한 속과 지끈거리는 머리는 도저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덜컹.
“후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정신이 조금은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디 갔지?’
그러고 보니 정신을 차린 지도 꽤 됐는데,
같이 술을 마시던 유진이랑 대주 형이 보이지가 않았다.
“...는게 제일 좋아.”
“그렇겠죠?”
그런 내 귓가에 조용한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대화가 들리는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지금이 제일 적당해. 너네 안무 팀들한테 적당히 빚을 지운다는 생각을 하게하고. 회사에서는 곡 받아서 연우한테 맡기고.”
멈칫.
하지만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춰 섰다.
“솔직히 연우 얼굴을 봐라. 걔가 인터뷰 같은 걸 하면, 그게 바로 민폐 아니겠냐? 사람들이 그런 얼굴을 보게 하는 게 민폐라고.”
“팀장님!”
“내 말이 너무하다고 느껴지겠지만, 이게 현실이야. 연우가 막 유명해지는 것도 좋지 않다고.”
대주 형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그냥 너무 우울해한다 싶으면, 이렇게 술이나 좀 마셔 줘.”
“...그런데, 오빠가 갑갑해 하는 것 같던데.”
“그러니까 네 역할이 중요한거야. 자살 같은 거 안 하게 잘 챙기라니까?”
“그런 소리 좀 하지마세요.”
유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대주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대화를 이어갈 뿐이었다.
“존나 예민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실력 하나는 좋잖아.”
“...”
“알겠지? 별 거 없잖아. 너, 나, 우리. 모두 윈-윈이라고.”
“알겠어요.”
탁.
그가 바닥에 담배를 던지고는, 발로 비벼 껐다.
“가자.”
대화를 끝낸 두 사람이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려는 것 같았다.
여기 있다간 꼼짝없이 마주치게 될 수밖에 없다.
‘...안 돼.’
들키고 싶지 않았고,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 아무렇지 않게 두 사람의 얼굴을 볼 자신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타다닥!
도망뿐이었다.
“헉, 헉...”
달리다보니 다다른 이름 모를 공원.
새벽 기온을 머금은 차가운 벤치에 주저 없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아아...”
후, 하고 한숨을 내쉬니 새하얀 입김이 터져 나왔다.
알고 있었다.
내가 이기적이고, 연약한 사람이라는 걸.
하지만 그러면서도 언제까지나 주변 사람들이 그런 내 유리멘탈을 보듬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나는 평범하지 않으니까.
털썩.
벤치에 길게 가로누워 힘 빠지는 소리를 내뱉었다.
“억울해...”
눈물이 차올랐다.
차디찬 바람. 벤치에 누워 있는데도 몸의 왼쪽 절반에는 감각이 없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너무나 시리게 느껴지는, 변하지 않는 현실.
그게 너무 억울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이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나는 다르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으니까.
당장 눈을 감으면 나는 것만 같은, 타는 냄새.
정신 차려보니 몸을 덮고 있던 화마(火魔).
벤치에 누워 있으니, 달리느라 억눌러져있던 술기운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우욱...”
가슴 속 깊은 곳.
답답하디 답답한 심장 부근에서 역겨운 무언가가 역류해서 올라왔다.
푸왁.
벤치의 옆으로 참을 수 없는 토사물을 뱉어댔다.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씨발...”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욕이 터져 나온다.
반쯤 감고 있는 눈에, 입김이 보였다.
쌀쌀하다.
...그러면서도 이상했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졸음 속에서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4월.
입김이 나기엔 너무 따듯한 날씨 아닌가?
피부에 와 닿는 쌀쌀함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화재가 일어났던, 그 날 아침의 날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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