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하아...-
성난 불처럼 하늘을 태워나가던 노을이 스산하게 다가왔다. 그 노을에 붉게 물들어가던 오기는 거칠어진 숨을 억지로 삼켜내며 입을 열었다.
“...하늘이 원망스럽군.”
귀를 가까이 대지 않는다면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원통함은 능히 하늘에 닿을 만큼 큰 것이었다.
지난 9년. 전장을 떠돌았던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였다.
첫 전장에서 한 쪽 귀를 잃었고, 다음 해 눈 하나를 잃었다. 하나같이 칼을 든 무인이라면 치욕스러운 상처들이었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것으로는 그가 세운 뜻을 막을 수 없어서다.
그런 그의 모습은 3년 전 팔 하나를 잃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그 팔이 검을 다루었던 오른팔이었음에도 그러했다.
“다행히 팔 하나가 남았다.”
웬만한 이라 해도 절망에 빠질 상황에서 그는 왼팔로 다시 검을 잡았고, 3년이 지나 과거의 신위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만 보아도 그의 성정이 얼마나 담대(膽大)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격정(激情)에 휘말리고 있었다.
악몽 같은 전장에 발을 들이게 했던 전검(戰劍)을 손에 넣었으나, 모순적이게도 이를 검에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장에 갑자기 뛰어든 괴물과도 같은 절대자. 그가 펼친 검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9년의 그 치열했던 고난도 그의 뜻을 꺾지 못했건만, 절대자가 장난처럼 펼친 한 수에 그는 하잘것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마냥 쉬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악운에 강하다고 해야 할지? 검기는 그에게 닿기 전 앞서 다섯의 무장을 꿰뚫었고, 덕분에 그 위력은 크게 반감했다.
-까앙!-
더불어 그가 휘두른 검에 검기는 다시 한 번 위력이 감쇠했다.
그럼에도 오기는 자신이 살아날 확률은 전무하다고 보았다. 그도 그럴 게 위력이 약해졌다고 해도 검기인데다, 무엇보다 그 검기가 향한 곳은 그의 머리였기 때문이다.
-픽!-
바람 빠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그의 귓가를 울렸고, 이후 그의 몸에 힘이 쭈욱 빠졌다. 열병에 걸린 듯 지독한 현기증이 뒤를 따르며, 오기는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을 마주했다.
육신이 뇌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생긴 일로, 이는 어느새 사지뿐 아니라 오장육부 쪽에도 이어졌다.
그의 숨이 거칠어진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숨을 쉬어야 한다는 뇌의 신호를 육신이 점차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자연 호흡이 딸릴 수밖에 없었다.
점차 격하던 호흡조차 느려지더니 이내 그의 의식이 무너져 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번쩍-
죽은 물고기처럼 변해가던 그의 눈에서 광채가 일어난 것은.
그것은 회광반조(回光返照) 따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보기에 그의 안광은 너무도 찬란했기 때문이다.
하나, 그와 같은 안광을 보인 것과 별개로 오기의 얼굴에는 혼란스러운 기색이 완완했다. 마치 이해하지 못한 터무니없는 것을 마주한 모양새인데, 더욱 기괴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무언가 마음을 굳힌 듯 굳어진 얼굴로 오기는 입을 열었고.
“.....&@$%!^#”
이후 어떤 것으로도 표현되기 어려운 기괴한 음절들이 그의 입에서 내뱉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음절에 다다른 순간 거짓말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마치 본래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그는 그렇게 전장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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