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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1. 동수에서 슈린으로

2020.06.25 조회 399 추천 2


 나는 떨리는 손에 들려 있는 담배를 바라보았다.
 담배라고는 하지만 여느 담배와는 모습이 달랐다. 깔끔하게 포장된 것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조잡해 보였다. 담배라면 있어야 할 솜으로 만든 필터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인다.
 하얀 종이에 둘러싸여 있는 그것이 매혹적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어서 입에 가져가 깊게 빨아들이라고, 달콤하고 황홀한 속삭임이 계속 귓가에 아른거린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벗어나야 한다!’ 외쳤다.
 움직이는 손을 보고 발버둥치고 싶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나는 그 담배 같은 것을 손에 쥐고서 입에 가져가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온갖 욕을 퍼붓고 나서야 손이 멈췄다.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겨 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부풀어 올랐다.
 이젠 벗어날 수 있으리라.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가득 차 올랐다.
 그러나 희망은 잠시뿐이었다.
 손이 움직이지 못하자 상체를 수그려 그것을 빨아들였다.
 한심했다. 이렇게 무너지는 내 모습에 회의감에 빠져들면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하얀 연기가 목구멍을 넘어서 몸속으로 퍼지는 순간 입꼬리가 올라갔다.
 “흐흐흐~!”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퍼져 나가는 찌릿찌릿한 희열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나는 공간을 이동하여 익숙한 곳에 도착해 있었다.
 멋진 집과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싶어 하는 값비싼 외제 차, 연예인이라 해도 그러려니 할 아름다운 애인들까지.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처음부터 내 인생이 이렇게 멋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부모도 모르는 고아로 태어나 여러 시설을 전전하다가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학교를 중퇴했다.
 중학교를 나와서 할 일을 찾아보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그저 알바 자리나 전전하면서 매일 생활고에 시달리는 게 나의 삶이었다.
 이런 나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술집 웨이터로 일하다가 만난 여자 친구 덕분이다.
 여자 친구의 헌신적인 내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녀가 가지고 있던 문제로 삶의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여자 친구의 문제는 바로 마약이었다.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적에는 크게 놀라 그녀를 다그치고 달래 마약중독에서 벗어나기를 종용했지만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부탁으로 마약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마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마약을 줄여 가는 여자 친구를 보며 희망에 부풀어 심부름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평소 눈치가 빠르던 나는 마약을 거래하던 현장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이러한 사실을 마약 중개상에게 알렸다.
 처음에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내가 몇 군데를 집어서 간단히 설명하자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경찰의 손길을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나는 마약 조직의 주목을 받게 되어 정식으로 스카우트되기에 이르렀다.
 나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당시 여자 친구를 재활 센터에 보낸 상태였기에 큰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결국 나는 돈 때문에 서울에서 활동하는 거대한 마약 조직인 신종로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후 나의 성공 가도는 놀라웠다.
 마약을 판매하는 조직원에서 일정 지역을 담당하는 책임자가 되었고, 이후에는 지방으로 대규모 마약을 공급하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외국과의 커다란 거래도 성사시키기에 이르렀는데, 대표적으로 일본과 중국이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노력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처음에는 여자 친구를 위해서 돈을 벌었지만 어느새 이러한 목표는 변질되고 말았다.
 어쩌면 누군가가 나의 능력을 인정해 준다는 사실에 도취되어서 그렇게 열심히 움직였던 것일지도.
 나의 노력은 눈부셨다.
 짧은 시간 만에 일본어와 중국어를 익혀 외국과의 거래를 주도적으로 처리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조직 내의 나의 입지는 갈수록 커져 갔다.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어느 정도 여유를 찾으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나는 신종로파라는 거대한 마약 조직의 3인자가 되어 있었다.
 “으~!”
 정신이 몽롱하고 몸에 있는 뼈가 모두 빠져나간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약 기운이 서서히 사라진 것인지 흐릿한 시야에 차츰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정면에 거울을 가져다 놓았다. 약에 취해 있는 몰골을 보고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였다.
 흐리멍덩한 눈빛과 눈두덩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다크서클, 말라붙은 것으로 모자라 하얀 살갗이 일어난 입술, 뼈에 살가죽만 붙어 있는 몰골에 나는 그만 눈길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다시 약을 찾았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나는 주사기를 찾아서 두 번 세 번 팔뚝에 꽂았고, 이어서 입에 조잡한 담배를 다시 물었다. 너무나 많은 약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시, 실수였지.”
 입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 속으로 두목이 소개한 여자가 그려졌다.
 그녀가 내가 잠든 사이에 수차례 약을 주입하여 중독에 이르게 한 것이다. 모두 두목의 음모였고, 이후 나는 이룩했던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
 차라리 나를 죽여 버렸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두목은 일부러 나를 살려 주었다.
 중독이 골수에 파고든 것을 확인하고서 말이다.
 더욱 지독한 것은 약을 지속적으로 보내 준다는 사실이었다.
 “이, 이, 이······ 이렇게 살긴······ 시, 싫어.”
 나는 약의 효과가 오르면서 묘한 기분에 휩싸이는 와중에도 손을 이리저리 뻗어서 주사기를 들어 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이대로라면 언젠간 죽을 것이다.
 개 같은 두목에게 내 목숨을 맡겨 둔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 한 가지 선택은 남아 있었다.
 중독에서 그리고 지독한 두목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은······.
 ‘내 손으로 끝내자.’
 
  * * *
 
 이른 왕국, 아니 미레반 대륙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체이런 가문의 명성은 소속된 이른 왕국을 넘어선 지 오래다.
 황금의 체이런.
 미레반 대륙에서 이른 왕국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황금의 체이런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른 왕국은 물론이고 미레반 대륙 전체에서 황금의 가문이라 불리는 만큼 체이런 가문의 영지인 에스테럴은 그야말로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비옥한 농지와 넘치는 인구, 잘 정비된 가도를 통해 수많은 물품이 쏟아졌고, 이와 동시에 엄청난 숫자의 이주민들이 찾아왔다.
 체이런 가문은 에스테럴을 찾는 이주민들을 환영했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사람이 곧 경쟁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 지역에 있던 빈민들은 희망의 땅 에스테럴로 모여들었고 이 행렬은 수십 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그 자유로운 이주는 결국 끝을 보게 되었다.
 이주 초창기에는 이주민의 대다수가 빈민, 노예, 화전민이었으나 이들이 에스테럴에 자리를 잡고 풍요롭게 살아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주 중반기엔 일반 백성들까지 이주 대열에 합류하였다.
 에스테럴 이주는 유행처럼 대륙 전체로 번져 나갔고, 결국 이른 왕국과 인접한 나라들이 강력하게 국경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각국의 국경 통제가 이루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이른 왕국은 이를 강력히 비난했다.
 이주민이 많아질수록 왕국에 이익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른 왕국의 귀족들이 들고일어났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사건은 체이런 가문과 인접한 남작 가문의 영지민들의 조직적인 이주였다.
 일견 영주가 오죽했으면 영지민들이 단체로 도망가겠느냐고 할 것이나 이 경우는 달랐다.
 해당 가문의 영주가 영지민들을 억압하거나 착취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인자하고 자비로운 영주도 아니었다. 그저 지극히 일반적인,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영주였다.
 굳이 평가해 보자면 괜찮은 영주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지민들이 에스테럴로 이주를 했고 최종적으로 이주를 선택한 영지민 숫자가 해당 영지 영지민의 90퍼센트에 달했다.
 영지민이 없이 어찌 영지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해당 가문의 영주는 억울했을 것이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 발악으로 전쟁이라도 일으키고 싶었을 것이나 군사들까지 이주한 마당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영주의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체이런 가문에서 상당한 금액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체이런 가문에 들어설 적에는 죽을상이었지만 떠날 적에는 웃음이 가득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이른 왕국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체이런 가문과 인접한 곳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영주들의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이른 왕국의 국왕은 칙령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평민들에게 주어지는 거주이전의자유를 박탈한다는 내용이었다.
 몇몇 강경파는 체이런 가문에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큰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체이런 가문은 황금의 체이런이라 불리기 전부터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곳이다.
 무엇보다 체이런 가문은 강력한 군사력과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외부 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중앙 정계로 진출해 세력을 구축할 수 있음에도 영지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막강한 군사력과 황금의 가문이라 불릴 정도로 막대한 부를 쌓고 있는 곳이니 중앙에 진출하지 않는다고 권력에서 소외되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가지게 한다.
 체이런 가문이 중앙으로 진출하면 얼마나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될까?
 저들이 마음먹고 돈을 뿌려 대면 넘어갈 놈들이 얼마나 많을까?
 현재의 권력 구도가 어떻게 변할까?
 중앙에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체이런 가문을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비주류라 할지라도 체이런 가문과 손을 잡는 순간 단번에 주류로 편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설프게 체이런 가문을 견제하고자 했다가 그들이 중앙으로 진출하게 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왕국의 권력 구도에는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서, 주류에 속한 대귀족들이 체이런 가문에 대한 논의를 중단시키고자 했다.
 잠들어 있는 드래곤은 굳이 깨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주류에 속하는 중소 귀족들은 어떻게든 권력 구조를 흔들어 보고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저런 주장이 혼재되어 가는 와중에 체이런 가문에서 의견이 담긴 서신이 도착했다.
 전반적으로 정중하게 적혀 있었지만 체이런 가문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적당히 해라. 계속해서 자극한다면 무역량을 절반으로 줄일 것이다.
 이에 화들짝 놀란 왕실은 황급히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체이런 가문에 대한 논의를 중단시켰다.
 왕실은 체이런 가문과의 무역으로 통해 지금까지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
 무역량을 절반으로 줄인다면 왕실 재정은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돈 따위에 굴복해서야 되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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