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개정판] 뉴 라이프

001회

2020.07.15 조회 2,316 추천 6


 중년 사내가 술잔을 기울인다.
 반복적으로 휴대폰 액정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숨. 그가 원하는 문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의 나이 45세.
 문학박사.
 KCI 등재지 논문 40여 편 게재.
 그리고 시간강사 17년차라는 타이틀이 그가 가진 유일한 재산이었다.
 사내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라이터를 눌러 보았지만 제대로 불이 붙지 않는다. 10여 회를 넘게 탁탁거려야 겨우 불이 붙었다.
 “후우······ 틀렸나?”
 사내는 자조했다. 이번 지원은 정말 기대를 많이 했었다.
 백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 교수 지원서를 넣고 1차 합격을 했다.
 2차 시범 강의, 학부장 앞에서 멋지게 강의를 펼쳤다.
 3차 총장 면접. 떨렸지만 학과장의 조언에 힘입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오늘이 최종 통보일이었다.
 그런데 밤 10시가 되도록 문자 한 통이 없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직원들은 저녁에 모두 퇴근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마 내일이 되어도 연락은 오지 않을 것이다.
 “역시 틀렸구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는 소위 ‘자대생’이었다. 백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었다.
 누구보다도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국내 최고 명문인 한국대학교 국문과 출신들이 몇몇 최종 면접까지 올라오긴 했지만, 그간 공들였던 것들을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지도교수를 위해 대신 써준 논문만 10여 편, 학과장 눈치를 보느라 대필한 논문도 수 편이나 된다. 학부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교수 대신 발품을 판 적도 셀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은 자신 때문이 아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세월 동안 자신만을 믿고 기다려 준 아내와 두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언제까지 시간강사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아내는 10년 전에 샀던 옷을 아직까지 입고 있다. 아이들은 늘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지만, 장난감 한번 제대로 사준 적이 없었다.
 게다가 곧 바뀌게 될 강사법은 나이든 자신의 목을 더 옭아맬 수도 있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무엇이든 해야 했다. 지도교수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들어 주었고, 학과장은 물론 학부장, 대학원장까지 라인을 만들었다.
 심지어는 관심도 없었던 교회까지 나갔다. 학교가 미션 스쿨이고, 총장이 매주 대학 내에 있는 교회에 출석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했다.
 하지만 끝내 총장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주지 못했다. 돈을 찔러줘야 기억할 거라는 주변의 조언은 듣지 않았다. 돈도 없었지만 썩기는 더욱 싫었기 때문이다.
 “후우······.”
 담배가 쓰다.
 한숨을 내쉬며 연기를 뱉어낸 사내는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어느새 눈물을 머금고 촉촉해져 있다.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사내, 김윤우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마 10년여 전, 지도교수가 갑작스레 한국대학교로 적을 옮기면서부터 틀어진 것 같다.
 지도교수 서광필은 학계에서 매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2류 대학인 백은대학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그는 모교인 한국대학교 국문과로 자리를 옮겼고, 백은대학교에 있는 인연들을 깨끗이 청산했다.
 대학원에서 그의 지도를 받던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그건 지도교수만 믿고 대학원에 진학했던 윤우도 마찬가지였다.
 윤우는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학부 시절부터 학생회장을 역임했고, 각 행사마다 교수들과 친하게 지내며 교수의 꿈을 키우던 사람이었다.
 교수들도 윤우의 재능과 노력을 인정해 주었다. 학부 수업 때는 우수한 리포트를 써와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겠냐는 제의도 받았다. 학생회장 시절 받은 칭찬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학부 시절부터 교수들의 주목을 받던 그는 한국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해 보라는 권유도 받았었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대로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타 학교 학생들을 배척하는 한국대학교에서 버틸 자신도 없었지만, 특히 모교가 자대생을 많이 채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년 후, 믿었던 지도교수가 한국대학교로 떠나 버렸다. 그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었다.
 “내가 미친놈이었지. 그 새끼를 믿었던 내가 미친놈이었지.”
 윤우는 술잔을 가득 채워 한 번에 들이켰다. 벌써 빈 소주병이 네 개째였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흐릿해진 시야 너머로 주름이 가득한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사랑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죄책감이 들어 견딜 수가 없다.
 가장이라는 무게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갚아야 하는 빚들이 기도를 막아 숨을 가쁘게 했다. 윤우는 다시금 소주를 들이켠다. 아무리 취하고 취해도 그 무게를 이겨낼 자신이 없다.
 결국 윤우는 품에서 약병을 꺼내 들었다. 흰색 액체가 들어 있는 통이었다.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 연구원 친구에게 어렵게 구한 독약이었다.
 뚜껑을 열면서도 윤우는 고민했다.
 사실, 자살을 시도하는 건 이번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십, 아니 수백 개의 대학에 교수 채용 원서를 넣을 때마다 했던 짓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유혹과 충동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가족들에겐 미안했다.
 그러나 미안했기에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보다 좋은 옷을 입혀주는 것, 보다 좋은 음식을 먹게 하는 것. 그 어느 것도 해내지 못했다.
 그 죄책감이 하나둘 모여 윤우의 팔을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윤우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움직여 병을 입에 대었다.
 그때, 몸서리칠 정도의 한기가 쏟아졌다. 깜짝 놀란 윤우는 병을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이번에도 실패다.
 “잠깐.”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목소리였다. 윤우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가 가련한 눈빛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술은 창백했고, 두 눈은 날카로웠다.
 “누구십니까?”
 “예상대로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가까이 다가온 사내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병을 발로 힘차게 차버렸다. 그렇게 독병은 강물에 빠져 사라졌다.
 “이 친구야, 인생은 길어. 그만큼 달곰씁쓸하지. 왜 그리 쉽게 포기하려고 그러나?”
 “참견하지 말고 갈 길 가시죠!”
 뜻을 이루지 못한 윤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창백한 사내가 씨익 웃었다. 그 미소가 마치 악마 같았다.
 “갈 길이라. 재미있군. 내가 갈 길은 이곳인데?”
 “뭐라고요?”
 “자네한테 볼일이 있다 이 말이야.”
 윤우는 입을 다문 채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왠지 오싹한 미소여서, 이내 고개를 돌리고야 만다.
 “죽을 기운이 있으면 그 기운으로 열심히 살면 될 것을. 인간들이란 한심하군.”
 왠지 ‘인간들’이라는 단어가 이질적으로 들렸다.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그런 교과서적인 말씀은 그만두시죠. 당신 같은 사람들은 모릅니다. 궁지의 몰린 자들의 비참한 인생을요.”
 “비참하긴? 네겐 아내도 있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자식들도 있을 텐데. 서울역에 굴러다니는 노숙자들보단 나은 처지가 아닌가?”
 “잠깐, 그걸 어떻게······?”
 윤우의 눈이 커졌다. 처음 보는 사내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신비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 눈은 깊어 그 깊이를 짐작할 수가 없을 정도다.
 윤우는 그 사내를 보면 볼수록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치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러지 말고 기왕 죽을 거면 나랑 계약이나 하자고.”
 “계약?”
 “그래, 계약. 아주 좋은 계약이지. 난 자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어.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 있지.”
 사내는 소리 내어 웃었다. 악마의 웃음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덕분에 윤우는 소름이 돋음을 느꼈다.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신다고요? 헛소리는 그만두시죠. 가족에 대한 얘기는 우연이라고 칩시다.”
 “교수. 자네가 원하는 건 교수직이지.”
 윤우는 뒤통수를 후려 맞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그걸?”
 “자세한 건 묻지 마. 골치만 아플 테니까.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나와 계약하면, 아주 달콤한 인생을 맛보게 해 주지.”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내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본능이 강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윤우의 지성은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계약이라면, 대가는 무엇입니까?”
 “대단한 건 아냐.”
 “어느 대학인지는 모르지만 관계자인 모양이군요. 계약 조건이 명시되지 않은 계약은 성립이 안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도 말씀을 안 해주실 겁니까?”
 사내는 박수를 쳤다. 그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역시 박사는 다르군. 멋져. 예리해. 뭐, 난 네가 교수가 되도록 만들어 줄 생각이야. 그럼 넌 교수가 된 것에서 그치지 말고, 더 큰일을 해 보도록 해.”
 “예를 들면?”
 “넌 교수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지?”
 “개 같은 동네죠.”
 “말이 험하군. 꿈을 못 이뤘다고 해서 그렇게 폄하하지는 말게. 아무튼, 자네가 교수가 되면 그 썩어 문드러진 사회를 바꿔보란 말이야. 아주 재미있는 방식으로.”
 “고작 그게 다입니까?”
 “고작이라니? 그게 쉽지 않은 일인 건 자네가 더 잘 알 텐데?”
 윤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윤우는 술기운에 이 미친 놀이를 끝까지 해 보기로 했다.
 “하겠습니다. 하지요! 계약서를 보여주시죠.”
 “그런 건 없어.”
 사내가 손을 뻗었다. 피처럼 시뻘건 빛이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사방으로 쏟아진 빛이 윤우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으윽!”
 신음을 흘린 윤우는 정신을 잃었다.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