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권성 이무해

1화

2020.07.24 조회 29,098 추천 405


 #1장
 
 
 
 하남 개봉부.
 하남 동쪽에 자리한 고도로, 과거 오대십국 시대의 오대와 북송이 수도로 삼았던 곳이다.
 한때는 수백만 명이 살며 불야성이라는 말을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세월의 무상함 속에 쇠락하여 이제는 그저 그런 도시가 되었을 뿐이다.
 
  * * *
 
 “핫!”
 “헛!”
 넓은 연무장에서 수련하는 수십 명의 문하 제자가 내지르는 기합성이 넘쳐 난다.
 앞에 서서 문하생들을 지도하는 대제자 범량.
 예리한 눈으로 문하 제자들을 훑어보며 자세와 동작의 허실을 살핀다.
 한데.
 “이렇게.”
 “이렇게요?”
 “그래그래.”
 범량이 우측에서 들리는 대화에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봤다.
 눈에 들어오는 꾀죄죄한 노인과 일고여덟 살 어름의 소동.
 ‘끄응.’
 범량이 속으로 앓는 소리를 흘렸다.
 권왕 조창운.
 한때 강호오대고수의 반열에 오른 최절정 고수다. 하지만 무리한 무공 수련으로 주화입마에 들었다.
 노망!
 노쇠한 노인들이 걸리는, 이른바 치매에 덜컥 걸려 버렸다.
 수발을 드는 시녀들이 벽에 똥칠이 된 것을 보고 기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명색이 스승의 스승, 사조라 뭐라 말을 할 수도 없다.
 지금도 그렇다.
 들어온 지 몇 달 되지 않은, 이제 여덟 살 된 소동 이무해를 붙잡고 무공을 가르친다.
 지금이야 정신이 비교적 온전하지만, 언제 정신이 나갈지 모른다.
 “헤헤헤.”
 소동 이무해가 권왕 조창운이 가르쳐 주는 대로 동작을 펼치며 웃는다.
 철없다.
 한데.
 “우히히히히.”
 돌연 권왕 조창운이 히죽해죽하더니.
 “이렇게, 이렇게.”
 무해의 동작을 따라 하며 위맹하기 짝이 없는 권초를 시전한다.
 범량이 그 광경을 보곤 기겁했다.
 “피, 피해에에!”
 주화입마로 노망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권왕이다.
 주화입마 탓에 단전이 망가져 내공을 쓸 수는 없지만, 평생 수련해 온 권왕 조창운이다. 내공이 없는 육체를 기반으로 한 권초라도 무시할 순 없다.
 무엇보다도, 다른 이라면 피하기라도 하지, 함께 있는 소동은 이제 겨우 여덟 살이다. 권왕 조창운의 권초를 피할 수 없다.
 범량이 황황급급히 달려갔다.
 다다다다!
 혹여 노망이 든 권왕 조창운이 무해를 어떻게 할까 봐 내심 기겁한 그다.
 
  * * *
 
 한편.
 “어, 어?”
 무해는 권왕 조창운의 권초에 급히 뒷걸음질 쳤다.
 권초를 시전하는 권왕 조창운이 움직이는 공간이 급격히 넓어지며 무해가 서 있는 공간을 잠식해 온다.
 뒷걸음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무해가 뒷걸음치는 동안.
 범량이 당도하고, 연무장에서 한창 수련하던 문하 제자들이 수련을 중단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범량과 권왕 조창운을 바라보았다.
 “사조님!”
 범량이 소스라치는 목소리로 사조 권왕 조창운을 소리쳐 불렀다.
 
  * * *
 
 “휴우우우.”
 팔괘문 문주 양건위가 길게 한숨 쉬었다.
 앞에 서 있는 범량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마터면 무해가 크게 다칠 뻔하였습니다.”
 “넌.”
 “······.”
 “괜찮은 거냐?”
 “네에.”
 대답하는 범량.
 실은 괜찮지 않다.
 내공을 쓰지 못하지만, 권왕 조창운의 권초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부상을 입는 것은 필연이다.
 하지만 스승이 걱정할까 봐 이를 감추는 범량이다.
 “휴우우.”
 양건위가 재차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좋단 말이냐? 사부님이 저리되셨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으니.”
 “그간 사부님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말끝을 흐리는 양건위다.
 심중의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고 훤히 드러냈다.
 “한데······.”
 “응?”
 “사조님께서 유독 무해를 예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스승님이 말이냐?”
 “네. 다른 제자들도 있는데, 정신이 온전하실 때 유독 무해를 데리고 이것저것 가르쳐 주십니다.”
 “스승님께서 말이냐?”
 “네.”
 “허허, 스승님이 어쩐 일로?”
 양건위가 의아해했다.
 “다른 아이들도 있는데 무해가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드시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범량이 그런 속내를 밝혔다.
 “무해는?”
 “그 아이도 사조님을 잘 따릅니다. 다른 아이들이 질시할 정도로.”
 “하지만 오늘과 같은 일이 혹 다시 생겨 무해가 크게 다친다면······.”
 양건위가 말끝을 흐렸다.
 주화입마로 치매에 걸린 스승 권왕 조창운에게 당한 문하 제자가 서너 명 된다.
 다행히 자신이나 범량이 때마침 있어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범량이 없을 때 문하 제자들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하아아아아!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양건위가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더불어 손을 들어 이마를 받쳤다.
 머리가 몹시 아프다!
 그런 속마음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범량은 스승 양건위를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범량은 무해를 생각했다.
 어디가 그리도 좋은 걸까?
 사조 권왕 조창운은 정신이 온전할 때면 어김없이 무해를 찾았다.
 다른 제자들은 무해가 노망난 권왕 조창운에게 무공을 배운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혹 잘못 수련하지 않을까, 무해의 수련을 지켜봤다.
 하지만 잘못될 수가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팔괘문의 기본 무공인 팔괘공과 팔선수.
 간단하고 간결하여 예의 잘못의 가능성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 * *
 
 “그러니까 팔괘공하고 팔선수만 수련하란 말씀이시죠, 사조님?”
 끄덕끄덕.
 노망난 권왕 조창운이 어린아이처럼 말했다.
 “둘만 대성하면, 너도 권왕이 될 수 있어.”
 “권왕이요?”
 반문하는 무해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선망의 눈빛이다.
 “응. 팔괘공, 세! 팔선수, 무지 강해! 익히면 권왕이다, 히이!”
 “네에.”
 아무것도 모르는 소동 무해가 힘주어 대답했다.
 결기에 찬 얼굴이다.
 “다른 무공 익히면, 안 돼!”
 “그래요?”
 무해가 반문했다.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권왕 조창운.
 “무조건 팔괘공하고 팔선수! 열심히 수련하면 나중에 권왕 된다, 히!”
 “네에에에!”
 무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노망이 뭔지 아직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다만 이름난 고수인 권왕 조창운이 하는 말이니 액면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뿐이다.
 노망난 권왕 조창운이 멀쩡한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닌지······.
 멋모르는 소동 무해는 권왕을 따라 히죽해죽 웃었다.
 모든 것을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권왕 조창운에게 푹 빠졌음을 모를 수 없다.
 
  * * *
 
 흐르는 세월을 유수와 같다 한다.
 이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권왕 조창운이 생을 달리했다.
 그럼에도 열 살 무해의 수련은 멈춤이 없었다.
 권왕 조창운의 말을 여전히 철석같이 믿고 오로지 팔괘공과 팔선수만 죽어라 수련했다.
 문하 제자들이 그런 무해를 두고 그들끼리 쑥덕였다.
 “쟤 왜 저래?”
 “그러게 말이야. 도대체 기본공을 몇 년 동안 수련하는 거야?”
 “쟤하고 대련하면 재미가 없어.”
 “너도 그래?”
 “나도 그래. 뻔하다고.”
 “노망난 권왕 영감탱이가 애 하나 완전 버려 놨어.”
 “아니, 어떻게 죽어라 기본공만 수련하면 권왕이 된다는 거야? 야아아,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게 말이 되면 내가 이미 권왕이 되어 있을 거야.”
 “나도.”
 “나도.”
 문하 제자들 모두 은연중에 무해를 비웃었다.
 몇몇 호의를 가진 문하 제자가 넌지시 무해에게 말했다.
 “무해야, 그 정도 하고 넘어가.”
 “이제 그만 팔괘신공을 익혀.”
 “다들 몇 달만 익히는 기본공을 무려 이 년이나 익혔으면 됐어.”
 진전이 없는 무해를 생각해 주었다.
 하지만 무해는 말을 듣지 않았다.
 “괜찮아, 난!”
 무슨 생각에서인지 고집을 부렸다.
 그 때문에 호의를 가졌던 문하 제자들도 질린 듯, 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심히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 * *
 
 아직 날이 밝지 않은 늦가을의 새벽.
 세상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만물이 밤이 주는 잠에 취한 듯 깨어날 줄 몰랐다.
 또한 밤의 어둠이 온 세상을 가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침침하기만 했다.
 끼이이이.
 주변의 고요와 정적을 깨뜨리는 나직한 소리와 함께 작은 문이 살며시 열렸다.
 빼꼼.
 틈새로 얼굴을 내미는 소년.
 앳된 티가 역력하다. 이제 열대여섯 남짓 되었을까?
 꽤 귀여운 외모다.
 두리번두리번.
 문밖을 둘러보던 소년이 이내 소문을 마저 열었다.
 끼이이이.
 천천히 문이 밀리고 소년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한 노인이 싸리 빗자루를 손에 들고 뒤따라 걸어 나왔다.
 “공자님.”
 “응.”
 소년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노인이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꺼냈다.
 그러자 소년이 활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녀올게.”
 “예에.”
 노인의 대답을 뒤로하고 소년이 고개를 바로 했다.
 한데······.
 정자세를 잡는가 싶더니, 소년이 이내 두 다리를 벌렸다.
 -마보세.
 말을 탄 양 허리를 낮추고 양손을 말아 주먹 쥐더니, 양 옆구리에 척 붙였다.
 “후, 후우우.”
 소년이 두어 번 심호흡하더니 앞으로 힘차게 우권을 내질렀다.
 쉬익.
 힘껏 창을 내지르듯이.
 마보충권을 시전하며 아직 어두운 대로를 나아가는 소년을, 소문을 등지고 서 있는 노인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동자에 정감이라는 이름의 따뜻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허허, 잠깐 할 듯싶었는데 벌써 팔 년이나······.”
 노인의 중얼거림에서 놀랍고 대견하다는 마음이 묻어난다.
 세월이 참으로 무섭도록 빠르게 흘렀다.
 
  * * *
 
 처, 척.
 소년이 대로를 지나가며 권을 펼치는 아주 작은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지고, 바라보는 노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진다.
 손자를 바라보는 듯, 소년을 향한 노인의 각별한 마음이 묻어나는 모습이다.
 노인은 시야에서 소년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마냥 서 있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권을 펼침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꽤 빠른 속도로 대로를 지나갔다.
 지난 팔 년 동안 매일같이 빠트리지 않고 행해, 이젠 떨쳐 낼 수 없는 버릇처럼 몸에 붙은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권을 펼치며 대로를 지나가는 것이 그리 쉽진 않은 듯, 언제부터인가 소년은 땀에 젖었다.
 송골송골.
 이마와 귓가에 땀방울이 몇 맺혔다.
 땀방울은 이내 소년의 뺌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점점이 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땀방울에 소년은 초연했다. 신경 쓰지 않았다.
 떨어지는 땀방울들을 뒤로하고, 권을 시전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 * *
 
 얼마 후.
 소년이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며칠 전부터 돌연 시작된 변화에 심중 의문을 품었다.
 ‘왜 이런 거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뭘 잘못했나?’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실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 팔 년 동안 매일 해 오던 일이다.
 이상을 느낀 것은 며칠 전부터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일고, 그 느낌은 어김없이 팔로 전해져 시전하는 초식에 영향을 주었다.
 변초!
 그리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생소한 초식을 시전하고 말았다.
 본래 없던 초식이 생겨나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다.
 하여 답을 찾고자 하였으나,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댓글(17)

상머핀    
느낌이 좋아요
2020.07.30 09:37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0.08.01 15:30
雲祖    
정통 시작!! 아님 접죠
2020.08.12 21:10
효녹    
무협보면 경지 설명이 애매모호 한부분이 많은데 이무협 세계관에서 최절정은 어느경지임?
2020.08.14 00:55
독자777    
잘 보고 갑니다. 강호오대고수면 절대고수가 어울릴 것 같은데... 최절정이라... 이 소설의 고수 등급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2020.08.14 04:03
학교    
좋습니다..
2020.08.15 11:00
si*****    
빼앰~!
2020.08.17 04:12
musado0105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2020.08.22 16:26
도지680층    
건투를
2020.08.25 14:48
물물방울    
2000번째로 선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연재시작을 축하합니다. 시작은 미미해도 끝은 창대하리라. 화이팅하세요.
2020.08.28 15:08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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