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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무림을 가다 (1)

2020.07.27 조회 967 추천 10


 1화. 무림을 가다 (1)
 
 
 
 “아······ 이게 뭐야!”
 박무훈은 휴대폰을 침대에 집어 던졌다.
 그는 씩씩대며 던진 휴대폰 화면을 노려보았다.
 화면에 떠 있는 것은 소설 플랫폼.
 장난을 쳐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결말을 저따위로 내는 소설이 다 있을까.
 천향무후(天香武后).
 이 소설의 조회수와 추천수는 별것 없었다. 랭킹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그저 그런 소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에게는 가장 끌리는 소설이었다.
 우연히 발견해서 기를 쓰고 본 그도 이상한 놈이라 한다면 마찬가지긴 하다만······
 “근데······ 이게 뭐냐고!”
 무려 일여 년을 봐왔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소제목에 완결이라고 뜬 글자를 보며 그는 눈을 의심했다.
 지금 한참 재미있는 상황. 즉 정마대전(正魔大戰)이 발발해서 뭔가 벌어지려는 찰나 완결이라니? 직감적으로 정상적인 결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마지막 편은 대실망 그 이상이었다.
 히로인이 죽어 있었다.
 전쟁 중에 상대편 나쁜 놈과 대적하다 장렬히 전사했다.
 그리고 그 틈에 아군인 히어로가 나쁜 놈을 칼로 베어 승리. 그렇게 끝이 났다.
 “주인공을 죽일 수도 있나?”
 울컥 화가 치밀었다.
 작가를 향한 응원과 지지가 180도 바뀌어 비난과 원망으로 교체되는 순간이었다.
 화가 난 박무훈은 다시 휴대폰을 들어 마지막 편 아래에 댓글을 달았다.
 - 씨입새야! 이게 소설 완결이라 쓴 거냐? 내가 발로 써도 이것보다 잘 쓰겠다. 개연성은 어디에 말아먹고 글이 안 풀린다고 캐릭부터 죽이고 완결을 때리냐? 띠불! 넌 앞으로 믿거다. 이건 쓰레기 작품이야.
 이어서 씨······ 라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는데, 금지어라고 입력마저 안 된다. 하! 열 받아.
 막상 보내려니 너무 심하게 감상을 한 것 같다. 그는 댓글을 삭제하고 다시 썼다.
 - 그동안 열심히 읽어왔던 독자입니다. 오늘 마지막 완결편, 솔직히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히로인을 죽였어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옵니다. 제발 다시 써주세요.
 그렇게 하소연을 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으, 그래도 내일 출근은 해야하니······”
 어떻게든 찝찝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누우려는 순간이었다.
 카톡-
 - GOD 작가 : 그동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 편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군요.
 어? 이게 뭘까. GOD 작가라? 방금 댓글을 달았던 소설 천향무후의 작가가 ‘GOD 작가’란 필명을 쓰고 있긴 하지만 어떻게 톡이 날아오지? 설마 신상정보를 캤나?
 갑자기 오한이 밀려왔다.
 - 진짜 천향무후 작가입니까? 설마 사기 치는 것 아니겠지요?
 - GOD 작가 : 진짜입니다.
 - 아! 반갑습니다. 정말 그러시면 안 됩니다. 히로인을 죽이지 마세요.
 - GOD 작가 : 역시 천향무후가 죽은 결말이 문제입니까?
 - 그뿐입니까. 개연성은 더 이상하잖아요. 애초에 무재(武才)라던 히로인이 그렇게 노력했는데 무공이 고작 그 정도라면 말이 됩니까. 남주와 비교해보세요. 허구한 날 여자나 후려치고 다니던 놈이 기연은 혼자 독차지하고.
 - GOD 작가 : 주인공이니까요.
 - 그러니 개연성이 폭망이란 소리를 듣는 것 아닙니까!
 순간 톡의 반응이 시들해졌다. ······너무 나갔나? 대답이 사라졌다.
 잠시 기다리다가 잠을 잘 생각으로 휴대폰을 던지려는 순간이었다.
 - GOD 작가 : 리메이크를 원하십니까?
 - 개연성 살리려면 반드시 해야죠.
 - GOD 작가 : 알겠습니다. 혹시 리메이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그는 눈을 의심하며 머리를 굴렸다.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의심이 들었으나 만약 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더 나은 작품으로 탈바꿈시킬 자신이 있었다.
 - GOD 작가 : 좋습니다. 명작을 위해 당신의 도움을 받겠습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톡 창에 링크 하나가 떴다.
 갑자기 걱정이 팍 됐다.
 저 링크를 누르는 순간 소액결제 되어 몇만 원 사기당하면 어떡하지?
 바이러스에 왕창 감염되는 것은 아닐까. 링크 주소는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어째 이 녀석이 살살 꾀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몇 만 원쯤은 그냥 감수하자는 생각으로 링크를 눌렀다. 어떤 프로그램이 깔린다는 메시지가 뜨더니 휴대폰 바탕에 천향무후라는 아이콘이 생겼다.
 녹색 아이콘이다.
 그가 주저하지 않고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쿡 누르자 곧장 프로그램이 실행됐다.
 숱한 게임을 해봤지만 이렇게 허접스러운 그래픽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배경 음향도 없었다.
 「소설 천향무후 세계로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화면을 보고 캐릭터를 고르세요.」
 메시지를 읽는 순간 화면에 캐릭터 세 개가 떴다.
 이류고수, 일류고수, 절정고수. 무식하게 생긴 사내의 얼굴이 아바타랍시고 그려져 세 가지 캐릭터로 구분되어 있었다.
 대체 뭐하자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기왕 시작된 것이기에 절정고수라 적힌 캐릭터를 눌렀다.
 메시지가 떴다.
 「조회수가 부족하여 선택이 불가합니다.」
 그럼 일류고수.
 「조회수가 부족하여 선택이 불가합니다.」
 ······지금 놀리는 건가?
 순간 화가 난 박무훈은 잠시 휴대폰 화면을 누르다가 슬쩍 마지막 남은 이류고수를 보았다.
 싸구려 장검을 들고 캐릭터 옆에는 보유 무공이라는 글자 옆에 삼재검법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었다.
 누가 봐도 허접해 보이는 모습이다.
 차마 누르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었지만 남은 거라곤 이거 밖에 없기에 박무훈이 이류고수를 누르는 순간이었다.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무림으로 들어갑니다.」
 그냥 눌렀을 뿐인데 선택되다니!
 순간 휴대폰에 뜬 글자를 본 박무훈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황당한 상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주위가 순간적으로 암흑에 휩싸인 것이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리메이크에 성공하면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끝까지 히로인이 살아남으면 당신이 원하는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집니다.]
 어떤 소원이든? 백억을 달라고 해도?
 순간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지나갔지만 이어지는 상황에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어느새 다시 주변이 밝아지더니 그는 주위가 울창한 깊은 산속에 서 있었다.
 “여, 여기가 어디야?”
 앞뒤로 오솔길이 쭉 뻗어 있었고 좌우로는 끝도 모를 숲이 이어져 있었다. 갑자기 문명을 벗어나 원시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며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상현실 게임인가?”
 단지 게임이라 하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나무 잎사귀를 만져보니 실물 그대로였다. 절대 가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진짜 생생하네. 요즘은 기술도 좋지.”
 그는 그제야 입고 있는 복장을 살폈다.
 옅은 푸른색의 무복. 무협 영화에서 흔히 보던 그런 무사 차림이다.
 선택했던 캐릭터가 이류고수였던가. 고수는 무슨, 이류면 하수 중의 하수지. 이류보다 아래쪽이 삼류라지만 선택에 삼류가 없었으니 최하임이 분명했다.
 “하! 미치겠군.”
 씁쓸한 현실 때문에 쓴맛이 났다.
 문득 허리에 찬 싸구려 검이 눈에 들어온 박무훈은 재미삼아 검을 뽑아 보았다.
 “이게 검이냐?”
 좋은 검인지 나쁜 검인지 볼 줄 아는 눈은 없다.
 하지만 그런 그가 보기에도 지금 그가 들고 있는 검이 싸구려 중 싸구려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문득 함께 있던 무공인 삼재검법이 떠올랐다.
 ······이런 싸구려 검하고 같이 있던 무공이니 해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내심 한탄을 하며 검을 다시 집어넣는 중 문득 자신의 왼쪽 소매 안쪽에 무언가 적혀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에 소매를 걷자 흐릿한 문자가 마치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99:55:27.
 그가 보는 사이에도 끝부분의 숫자가 계속 줄어들었다.
 뭔지 몰라도 시간을 표시하는 것 같은 표식에 박무훈은 잠시 인상을 찡그리며 그걸 바라보았으나 해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내 그의 시선은 숫자 옆에 있는 작은 글씨로 옮겨져 갔다.
 거기에는 삼재검법 5/12라는 표식이 보였다.
 12성이 완벽한 경지니 절반 정도의 숙련도를 얻었다는 말이겠지. GOD 작가가 이 모든 것을 의도한 것이라면 그 능력은 정말 상상 초월일지도 모른다.
 근데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라고?
 “이 자식, 작가가 아니고 게임사 직원이었어? 가상현실 체험 게임을 이렇게 현실처럼 만들어 놓고······. 아니, 여기가 정말 소설 속이 맞을까? 설마 그 자식은 이름처럼 GOD?”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혔다.
 어쨌든 주변을 더 둘러봐야 할 것 같다.
 박무훈은 경계심을 끌어올리며 조심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시계가 0이 되면 분명히 돌아가겠지?”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박무훈은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GOD 작가 녀석이 의심스러웠으나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솔길을 걷는 도중이었다.
 “무흔아?”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툭 치는 느낌에 박무훈은 기겁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의 앞에는 눈을 떼기 힘든 미녀가 서 있었다.
 딴에는 머리에 두건을 질끈 동여매고 평범한 무복을 걸쳐 여자임을 숨기려고 노력했으나 타고난 미를 감추지 못했다. 전혀 꾸미지 않은 상태에서도 웬만한 탤런트 정도는 가볍게 압살할 미모였다.
 그가 눈동자만 굴리고 있을 때 미녀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무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며 조심스레 묻는 미녀의 목소리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마치 미녀의 표정과 말투가 이상한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무흔이라······ 이 몸의 이름이 무흔인가? 생각해보니 여태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일단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해 놓고 어설프게 웃어줬다.
 “아······, 그냥······.”
 “토끼 잡아 오겠다더니 여기서 놀면 어떡하니.”
 그녀의 말에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보다 좀 건졌어?”
 꾀꼬리 같은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자니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하긴, 잡았으면 무흔이 아니지. 돌아가자.”
 자신을 익숙하다는 듯 대하는 말투에 아마 안면이 있는 사이라고 짐작한 무흔은 앞서 나가는 그녀를 따라 걸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계곡물이 나오고, 그 주변에서 턱수염 남자가 무언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우선 옆구리에 장검을 꿰찬 모습은 그와 같았다. 무복을 입은 행색도 마찬가지. 다만 차이라면? 떡 벌어진 어깨와 굵은 허벅지, 기골이 장대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그가 슬쩍 박무훈, 아니 무흔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좀 건졌냐?”
 그의 물음에 무흔이 아무런 말을 못하자 미녀가 주변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으며 대신 말했다.
 “아니.”
 “하긴, 잡았으면 무흔이 아니겠지.”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무흔은 순간 울컥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턱수염 남자는 힘을 꽤 쓰게 생겼다.
 슬그머니 턱수염의 허벅지와 자신의 허벅지를 비교해보니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 얼추 준비해놨으니 불부터 피워라. 부싯돌은 행낭 속에 있다.”
 드디어 발생한 난감한 임무에 부싯돌을 노려보았다.
 이깟 돌조각이 라이터나 성냥도 아니고 무슨.
 부싯돌을 부딪쳐 보았으나 틱틱 소리만 날뿐 불이 붙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 뭐 하냐?”
 고개를 들어보니 턱수염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이그, 아가씨 수발만 들어서 그런가? 백가상단에 너 같은 녀석도 없을 거다.”
 “백가상단!”
 그제야 모든 사실이 명확해졌다. 소설 속이 확실했다.
 왜냐하면 백가상단(白家商團)은 바로 소설 속 히로인인 천향무후의 가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눈이 돌아가는 이 미녀가 천향무후?
 히로인인 천향무후는 백가상단의 딸로 이름은 백단영이었다. 확실히 그녀는 소설 속에서 중원 삼대 미녀로 통할 만큼 미모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녀의 가문인 백가상단은 하남 일대에서 손꼽는 상단으로 재력으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가문이었다. 하지만 무가가 아니라서 무력에서는 매우 약했다. 그러던 차에 의외로 백단영이 무재(武才)를 타고난 것이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무림명숙이 그녀를 무림맹 후기지수가 모인 용비봉무대, 즉 용봉대에 들어가라고 추천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부푼 꿈을 안고 무림맹으로 떠난다.
 모든 내용이 떠오르자 그는 전율을 일으켰다.
 소설 천향무후 속에 들어온 것이 확실하다는 충격보다 그토록 좋아하던 히로인 백단영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감격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무흔아, 뭐해? 무백 아저씨를 도와야지.”
 상념에 잡힌 무흔을 백단영이 재촉했다.
 “아, 예.”
 어느새 턱수염은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고 놋그릇을 걸치고 있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그의 이름은 무흔이고 턱수염은 무백이다. 무흔은 어릴 때부터 백단영과 함께 자라면서 그녀의 시중을 들었던 머슴이자 서동이다.
 나이는 백단영과 동갑.
 점차 소설 속의 장면이 구체화됐다.
 지금은 초반부로 백단영은 먼 거리 여행에 식솔 둘을 대동했고 그 식솔이 바로 무흔과 무백 아저씨란 건데······.
 가만······. 개봉으로 가다가 무슨 일이 발생했더라?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 어떤 장면이 머릿속에 잡히려는 순간이었다.
 “멈춰라!”
 난데없이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흉악한 모습의 사내 대여섯이 출현했다. 칼로 얼굴에 문신을 그렸고 한 녀석은 검은 안대를 찬 애꾸. 딱 봐도 흉악한 인상. 이건 볼 것도 없네, 산적이다.
 “으하하! 가진 것을 몽땅 내놓아라!”
 녀석들이 커다란 반월도를 겨누며 위협했다.
 바위에 앉아 있던 백단영이 아미를 찌푸렸다. 만사를 때려치우고 급히 검을 든 무백이 백단영의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런 모습에 무흔이 가만히 지켜보려는 순간이었다.
 “무흔아, 너 뭐하냐? 너 호위무사잖아?”
 “예? 제가요?”
 호위무사?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오늘 처음으로 칼을 잡았는데 바로 실전 투입이라니. 막상 검을 들고 보니 장난이 아니다. 절로 땀이 삐질 거리고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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