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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신의 조각 [송재일 작가-판타지 소설]

신의 조각 001화

2020.07.30 조회 406 추천 3


 신의 조각 001화
 
 
 괴검, 새로운 미래에 태어나다
 
 
 서기 2045년.
 대한민국 청양산 정상.
 휘잉!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 산 아래로부터 시원함과 함께 공포를 느낄 만큼 바람 소리가 세차게 들려왔다.
 탁탁!
 진운은 긴장을 풀려는 듯 헬멧을 쓴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몇 번의 경험이 있는 듯 익숙한 동작이었다.
 두드림으로 인해 머리가 맑아지면서 긴장이 약간이나마 풀렸다. 뛸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고개를 들어 먼 하늘 저편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쉰다.
 “휴우!”
 앞에 먼저 출발하여 이미 산 아래로 신 나게 날아가는 영수의 파란색 패러글라이더가 보였다. 신이 난 영수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바람이 약하게 누그러지면 자신이 뛰어내릴 차례였다. 세차게 흔들리던 붉은 깃발이 조금씩 움직임이 멈추고 있다. 뺨을 스쳐 지나가는 촉각으로 보아 조금씩 약해지는 바람이다.
 그때 무엇인가 머릿속에서 이상함이 느껴졌다.
 찌잉!
 ‘뭐지? 또?’
 최근 들어 가끔씩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늘 무엇인가가 머릿속을 울리는 게 느껴졌다. 최근 들어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웅웅!
 고개를 돌려 보았다. 뒤에서 빨간 모자를 쓴 교관들과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느린 화면에 나오는 소리처럼 늘어지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 또한 TV에서 보는 것같이 슬로모션으로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귀가 멍해졌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왜 이러지?’
 바람이 거짓말같이 고요해졌다. 옆에선 교관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출발! 고!”
 붉은 깃발을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리치는 모습을 보았다. 진운은 발을 들어 바닥을 강하게 박차며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진운의 발이 마지막 지면을 박차고 뛰어오를 때 절벽 아래에서 순식간에 바람이 솟구쳐 왔다.
 “스톱! 멈춰!”
 뒤에서 급하게 그만 멈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내 가속도가 붙어 멈춰 설 수 없었다.
 ‘젠장! 죽었다.’
 순간 뭔가 잘못된 것을 느낀 진운이었다. 사전 교육을 받을 때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바로 이것이었다.
 완전히 펴지지 않은 패러글라이더가 강하게 솟구쳐 오른 돌풍에 뜨지 못한 상태에서 진운을 감싸는 순간, 그의 신형이 산 아래로 구르기 시작했다.
 “아악!”
 진운의 비명은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신형과 반대로 산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삐보삐보!
 
 -여기는 청량산 모 대학의 엠티 현장에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늘······.
 
 * * *
 
 청양산에서 사고가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병원 휴게실 한편 가장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문 밖을 내다보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다.
 머리에는 흰색 붕대가 칭칭 감겨 있다. 오른쪽 귀 윗부분에 쓴 글자가 눈에 띈다.
 
 파이팅! 힘내자! 아자!
 
 그리고 검은색 매직으로 쓴 글자 옆에는 작은 모양으로 하트가 붉은색으로 색칠까지 되어 있다.
 흰색 바탕에 푸른 줄무늬 위에 병원이라는 글이 적혀 있는 환자복을 둘둘 말은 채로 앉아 있다. 청년의 어깨는 복도 휴게실 바닥에 붙을 정도로 아래로 축 처져 있다. 환자라고 하지만 마치 인생을 다 산 늙은 노인처럼 의욕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청년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건 무엇이지? 저것은 또······?’
 그가 창문 너머 바라보는 세계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이었다.
 쓰윽!
 세상이 보이는 곳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려 창문을 짚어 보았다. 의문에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에게 무슨 일이······?”
 얼핏 창문에 자신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이건 누구이지?’
 생전 처음 보는 청년의 얼굴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유리창에 잠시 비친 얼굴이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들어 올린 손으로 얼굴을 만져 보았다. 감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꿈은 아니었다.
 “허허!”
 청년의 짤막한 웃음엔 어이없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고진운이었다. 낭인이지만 운이 좋게도 중원인들 사이에서 기인괴검이라 불리며 무림을 내 집 삼아 강호를 떠돌던 무인이었다. 그 당시 아니, 마치 어제 같았다.
 천하문 녀석들에게 쫓겨 그놈들에게 죽느니 차라리 스스로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는데······.
 깨어나 보니 창문 너머 보이는 세상은 중원 무림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세상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도 없는······.
 다만 한 가지 그대로인 것은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현재 자신이 들어와 있는 젊은이의 이름도 진운, 고진운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예전 몸의 주인이 가지고 있던 기억이 하나 둘씩 깨어나면서, 그 기억들과 중원에 있던 기억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몸에 두 개의 기억을 가지게 되자, 고진운의 정신은 혼돈 그 자체였다.
 “대체 난 누구지?”
 유리 창문에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의 청년이 비치고 있었다.
 아무리 두 개의 기억이 동시에 공존을 하더라도 과거의 무림인 고진운과 현재의 청년인 고진운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찌잉!
 아직 어설프지만 살기 위한 본능적인 감각이 움직였다.
 ‘음!’
 기척이 느껴졌다.
 자신의 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진운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발이 보였다.
 슬리퍼라고 했나?
 얇은 천으로 만든 신발로 발등 부분만 싸서 간단하게 만들어 놓았다. 슬리퍼 아래의 바닥은 반짝거리는 돌로 만들어져 있다. 맨발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신발을 신더라도 딱딱한 바닥으로 인해 몰래 다가올 수 없다.
 따각따각!
 누군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감각이 살아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자신의 몸은 무림인 고진운의 감각에 따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다가오는 여인의 모습이다.
 ‘누님!’
 이 몸의 옛 주인과 아주 연관이 많은 그녀였다.
 기억 속에 내장된 정보에 의하면 올해 나이가 스물세 살로 자신보다 한 살 위다.
 고연정, 나이 스물세 살 한국교육대학교 4학년.
 무림에 있을 당시 고진운의 나이는 마흔이 넘었다.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가득하다. 더구나 한참이나 어린 나이다.
 가장 고민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녀는 하나밖에 없는 누나인 고연정이었다.
 진운의 앞으로 다가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 가득 미소와 함께······.
 “여기서 뭐해?”
 “······.”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지 않도록 뒤로 묶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단정하다였다. 머리를 묶은 위로 엄지손가락만 한 보석이 붙어 있는 머리띠가 유난히 반짝거려 눈에 띈다.
 ‘여인의 노리개로 저 정도면······. 우린 부자인가?’
 머리띠 위에 달린 보석이 진짜가 아니라 이미테이션 즉 가짜라고는 알지 못하는 진운이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다가선 그녀에게서는 어떻게 설명하기 어려운 향기가 피어나듯 코끝으로 살며시 다가와 자극시키고 있었다.
 그녀의 향수에 취하고 있을 때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일주일 동안 말없이 멍하니 있는 동생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사고 소식을 들은 후 병원으로 달려왔을 때 의사들은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비웃기라도 하듯 하루도 되기 전에 의식을 차린 동생이었다.
 의식을 차렸을 때 산 정상에서 굴러 떨어진 환자치고 상태가 너무나 말짱했다. 병원에서는 모두들 기적이라 했다. 다만 후유증으로 사람을 못 알아보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해리기억상실증. 쉽게 말해 충격으로 인해 일시적인 기억상실을 뜻하는 것이다.
 깨어난 후 진운이 약간 달라진 느낀 그녀였다.
 진운은 항상 명랑하고 활발한 동생이었다. 가족의 기대대로 대한대학교 최고의 인기 학과인 우주농과학과에 입학을 한 진운이다.
 이번 사고가 난 그곳은 항상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 대학에서 준비한 단체 수련을 하는 장소였다. 올해도 역시 친구들과 갔다가 사고를 당한 동생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담당의사가 신기하듯 진운의 몸 상태를 보며 말을 했다.
 산 정상에서 굴러 떨어진 상처치고는 천만다행이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원상태로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는 기억에 문제가 있었다.
 진운이 깨어나자마자 보인 첫 반응은 한마디로 기억상실이었다. 충격에 의해 잠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가족들은 의사의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돌아온다고 알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하나씩 기억을 되찾았는지 어느 정도 가족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사뿐!
 그녀는 힘없이 앉아 있는 진운의 옆에 바싹 다가앉았다. 갑작스럽게 나온 그녀의 행동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흡! 이건 좀!’
 진운의 얼굴에 난색한 표정이 바로 나타났다.
 아무리 현세에서는 같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같이 자란 누나라고 하여도 몸 안에 든 의지의 주인은 무림인으로 한평생을 살은 기인괴검 고진운이었다.
 몸이 생각보다 더 빠르게 반응을 보였다.
 스윽!
 진운의 몸이 살짝 움찔하면서 엉덩이를 끌며 옆으로 비껴 앉았다.
 고연정은 평소와 다르게 한 발짝 물러서는 동생을 보며 서운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조용해진 동생이었다.
 보통 때는 오히려 장난을 치느라 더 달라붙을 만큼 친근한 행동을 하는 진운의 본 모습이다.
 슬쩍!
 고연정은 엉덩이를 들어 살짝 움직였다. 진운이 움직인 만큼 옆으로 붙는 그녀였다.
 진운의 눈이 커지며 말없이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씨익!
 자신을 보며 밝게 웃는 그녀의 눈웃음이다. 근데 어째 느낌이 이상하다.
 그리고 눈가에 장난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여인이!’
 진운은 다시 한 번 더 엉덩이를 들어 움직였다. 여자라 부끄러워서 두 번은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을 했다면 오산이었다.
 ‘이제는 따라오지 않겠지?’
 하지만 그건 진운의 생각이었다. 그녀의 두툼한 엉덩이는 진운이 움직인 만큼 다시 따라붙었다.
 그러기를 딱 세 번.
 끝이다. 세상의 끝이라도 되는 듯 의자의 맨 끝에 도달한 진운이다.
 쩝! 왜 이리 집요해?
 더 이상 움직일 곳이 없었다.
 히죽!
 고연정의 환한 미소가 보였다. 그녀의 미소에는 마치 내가 이겼다는 표정으로 한가득했다. 엉덩이가 바싹 붙은 상태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기도 그렇다.
 “몸은 어때?”
 “괜찮소이다, 소저. 아니, 누님.”
 벌써 적응이 될 리가 없다. 누님이 아니라 누나다. 또한 소저란 말을 이 세계에서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쓰는지 안 쓰는지 어떻게 알아.
 ‘젠장!’
 한참을 둘 사이에 한강 같은 긴 침묵이 흘렸다.
 덥썩! 척!
 “헉!”
 진운의 깜짝 놀란 신음이 자신도 모르게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연정은 두 손을 들어 진운의 얼굴 양옆을 잡아당겼다. 얼굴이 길게 늘어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그 앞으로 들이밀고 있었다.
 ‘소저, 뭐 하시오? 어서 놓으시오.’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오려다 말았다.
 째려보는 그녀의 시선이 겁이 났다. 절정의 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림에서는 이름 깨나 날렸는데······.
 이 순간만은 자신이 무림의 기인괴검 고진운이라는 사실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진운의 눈을 보며 빤히 쳐다보는 고연정이었다. 사고 난 이후 말투가 완전히 바뀐 동생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수호천사란 무협 가상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좀 심하다.
 이 정도의 중증으로 완전히 빠져들 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매서운 눈초리로 변한 그녀의 시선이다.
 “으음! 넌 누구냐?”
 “······!”
 ‘설마 나의 정체를!’
 그녀의 말에 놀란 가슴이 한층 더 두근거렸다.
 ‘진짜 동생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단 말인가?’
 재차 목소리를 낮게 내면서 진운의 두 눈을 보며 바짝 다가서는 고연정이었다.
 서로의 이마와 콧등이 부딪힐 정도였다.
 꿀꺽!
 목에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참 미치겠네.’
 꽃다운 처녀와 이마가 맞닿은 상태로 온몸이 옴짝달싹하지 못한 진운이었다.
 진운은 자신이 실수한 사실을 알았다. 여기 이 세계에서는 무림에서 사용하는 말투를 쓰지 않는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40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을 일주일 안에 바꾸기가 쉽지는 않았다.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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