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타임 러너

1화

2020.08.26 조회 436 추천 6


 #001화
 
 
 
 
 
 제1장 태양 폭풍
 
 
 
 
 
 점심을 먹은 민수는 근무하는 마트 옥상에 올라갔다.
 철조망 너머 세상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우뚝 서 있었다.
 화려하고 멋진 인생이 펼쳐진 곳.
 자신은 몰라도 후일 여동생만은 저곳의 일원으로 살게 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힘이 필요했다.
 민수는 빈 종이컵을 위로 던졌다.
 쓰레기통이 있는 방향이 아닌 허공에다.
 ‘멈춰!’
 그 순간,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떨어지던 종이컵이 압핀으로 허공에 고정한 듯 우뚝 멈추었다.
 마법 같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종이컵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온 세상이 멈추어 버렸다.
 마트 옥상으로 올라오던 도시의 소음, 쇠를 긁어 대며 높이 날아가는 까마귀, 담뱃불을 끄는 사람들 역시.
 세상은 마치 비디오 리모컨의 정지 버튼을 누른 듯했다.
 민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1, 2, 3······ 15······ 60!’
 땡.
 정지했던 모든 것들이 60초가 지나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음이 올라오고 까마귀가 울어대며 빌딩 숲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던 애연가들이 하나둘씩 옥상을 떠난다.
 세상을 정지시킨 순간 민수는 이 세계의 왕이 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고작 60초! 1분이 한계다.
 사람들에게 1분이란 시간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민수에게 정지한 세상에서의 1분은 남다른 것이었다.
 ‘초능력이 실재하고, 그 능력자가 바로 나라는 걸 나연이가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민수는 시간 정지 능력이 생긴 원인이라 추측되는 1년 전 그 당시를 회상했다.
 외국계 모 의약품 연구소에서 국내 임상 실험자를 모집하는 인터넷 광고를 보게 됐다.
 당시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던 반 백수였던 민수에게 일당 30만 원은 커다란 유혹이었다.
 일주일간의 임상 실험으로 그는 210만 원이란 큰돈을 벌었다.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판명을 받은 민수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후 그는 극심한 두통에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고통을 받았다.
 임상 실험을 한 제약 회사를 찾아가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처방을 받으려고 했지만, 당시엔 지금의 직장인 마트에 수습 직원으로 채용된 상태라 시간이 없었다.
 하루라도 빠지면 잘릴 것 같아서 그는 이를 악물며 두통을 참았다.
 끔찍했던 두통은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잊고 일에 매달렸던 민수는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밤 퇴근하다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다.
 그때 민수는 자신에게 초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
 ‘······혹시 그 실험 때문이 아닐까?’
 
 ***
 
 “일어나라. 셋까지 센다.”
 민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돌돌 말고 웅크린 여동생 나연의 방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은 남매는 천애 고아였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넓은 천지에 오직 둘뿐이다.
 남매의 부모님 모두 고아였기에 이들에겐 그 흔한 일가친척도 없었다.
 한창 혈기 왕성하고 예민한 고 2의 여름.
 민수는 어린 여동생을 돌봐야 하는 비운의 소년 가장이 되었다.
 “제발 5분만! 딱, 5분만. 응, 오빠.”
 이불 번데기 속에서 들려오는 잠기 가득한 여동생의 애원.
 하지만 민수는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았다.
 ‘부모 없는 것들’이란 세상의 차가운 눈초리와 평가 그리고 무시.
 자존심이 강한 민수에게 이보다 더 큰 치욕과 욕설은 없었다.
 때문에 그는 부모 없는 자식이란 소릴 듣지 않기 위해 자신은 물론 여동생 나연의 일상까지 스파르타식으로 밀어붙였다.
 “하나, 둘······.”
 “으아아아아아!”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이불을 찢을 듯 튀어나오는 나연의 모습.
 머리는 소대급 까치가 둥지를 틀 만큼 엉망이었고, 눈은 밤새 무엇을 했는지 핏발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너는 누구냐?”
 늘 단정하고 과묵한 민수의 일과는 시계의 초침처럼 정확하다. 그보다 세 살 어린 자유분방한 나연과 민수는 그래서 이것저것 부딪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남매 모두 인물과 몸매는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우월한 유전자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연을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태산고교 3대 여신 중 하나인 김나연.
 그녀를 흠모하는 남학생들이 지금의 이 모습을 보았다면 과연 여신으로 추앙할지 의문이 든다.
 ‘녀석들, 눈이 삐었지. 휴우.’
 예쁜 여동생을 둔 오빠에겐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더욱이 그 오빠가 가장인 경우 필요 이상의 제약을 가하게 된다.
 나연에게 민수가 바로 그런 오빠였다.
 “내 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랬지. 남녀칠세부동석도 몰라!”
 “정신이 미성숙한 너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다. 빨리 씻고 밥 먹어.”
 “그놈의 밥, 밥, 밥! 전생에 굶어 죽은 귀신이 씐 거야! 만날 밥 타령이야! 아침 안 먹는다고 안 죽어!”
 꿈틀.
 여동생의 반항이 민수의 심사를 건드렸다.
 일장 연설을 준비하는 오빠의 분위기에 놀라 후다닥 일어선 나연은 곧장 화장실로 내달렸다.
 아주 놀라운 속도로 그녀의 뒷덜미를 붙잡은 민수.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나연은 언제 짜증을 부렸느냐는 듯 헤실헤실 웃으며 애교 모드로 돌아섰다.
 “나 잠결인 거 알지? 사람이 잠에 취하면 부모도 못 알아본다잖아, 헤헤.”
 “난 내 여동생을 부모님의 얼굴도 못 알아보는 그런 망나니로 가르친 기억이 없다.”
 “또, 또 그 표정! 제발 그런 표정 짓지 마. 오빠는 이제 스무 살이야. 누가 오빠를 보고 스무 살 꽃띠 청년으로 보겠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설교는 그만해! 나 주번이라서 늦으면 안 된단 말이야!”
 민수의 한쪽 입꼬리가 샐쭉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았다.
 “급할 때면 주번을 찾는구나.”
 “지, 진짜야. 나 이번에 주번 맞아!”
 덥석.
 자신의 말이 안 통할 때 자주 이용하는 나연의 필살기!
 민수는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늘어지는 귀여운 강아지 같은 여동생의 애교에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알았으니까 이거 놓고 가서 씻어. 두말하지 않게. 알았어?”
 아침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
 이때가 아니면 민수는 여동생의 얼굴을 볼 시간도 없었다.
 가난했던 부모님은 작은 연립주택 한 채와 약간의 돈만 남매에게 남겨 놓았다.
 먹고 살기 위해,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민수는 새벽마다 신문과 우유를 돌리고 학교를 끝마치면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충당했다.
 민수의 고교 시절 대부분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사였다.
 오빠가 한발 물러설 기미가 보이자 나연은 부리나케 화장실로 내뺐다.
 쾅!
 “아! 오빠, 휴지 떨어졌어. 휴지 갖다 줘!”
 화장실 문틈으로 나온 여동생의 손에 휴지를 올려놓은 민수의 잔소리가 나왔다.
 “화장실 휴지는 네 담당이야.”
 “깜빡했어. 미안해-!”
 탁.
 페인트칠이 벗겨진 초라한 화장실 문,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여동생의 낡은 운동화.
 한창 멋을 부리고 부모님께 애교 부릴 사춘기 여고생에게 이곳은 어떻게 비칠까? 이런 생각이 들자 오빠로서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가슴 한편이 아릿하게 아파 왔다.
 ‘이번 휴일에 애 운동화 한 켤레 사고, 문짝도 좀 손봐야겠군.’
 자신의 낡고 오래된 운동화보다 여동생의 운동화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오빠의 씁쓸한 마음이다.
 
 ***
 
 “뭐야? 또 계란말이야?”
 민수네 식탁은 단골인 계란찜, 계란말이, 계란 프라이가 번갈아서 아침상을 차지했다.
 마트에서 근무하는 민수는 일반 고객들보다 저렴하게 물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계란 역시 식품 매장 아줌마와 친해진 덕분에 일대일 행사가로 사곤 했다.
 빠듯한 월급에서 생활비를 빼면 거의 모두 여동생의 대학 입학금을 위해 적금을 붓는 민수에게 있어 계란은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이를 매일 먹는 나연은 늘 불퉁한 얼굴로 위장에서 병아리들이 뛰어논다며 투덜거렸다.
 “반찬 투정은 유딩(유치원생)도 안 한다.”
 “유딩이 아니니깐 하지.”
 도도한 표정에 샐쭉거리는 모습 이면에 담겨 있는 여동생의 슬픔을 알고 있는 민수다.
 “너 알바 그만둬.”
 “싫어. 내 용돈은 내가 벌어서 쓸 거야. 그러니까 오빠나 신문 배달 그만둬. 젊은 사람이 말이야, 인생을 즐길 줄도 알아야지. 투잡이 뭐야, 투잡이!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해서 대학에나 가. 개나 소나 다 가는 대학이잖아. 안 나오면 사람 취급도 못 받아. 오빠, 여친도 없잖아. 그게 다 오빠가 빡빡하게 살아서 그래. 사람이 좀 느슨한 맛도 있어야 여자가 붙지.”
 오빠의 미래를 걱정하는 여동생의 마음이 잔소리를 가장해 쏟아져 나왔다.
 “그런 거 필요 없다. 공부는 나중에 해도 돼.”
 “그 나중이 언제야? 지금이라도 일 하나는 줄여서 공부해.”
 “너나 잘해.”
 “여기서 어떻게 더 잘해? 나 전교 10등이야. 설렁설렁해도 말이지.”
 나연의 말에 민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가 운동신경이 탁월하다면 여동생은 공부 머리가 비상했다.
 그녀의 말처럼 설렁설렁해도 전교 10위권 밖으로 밀린 적이 없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밥만 퍼먹는 오빠를 본 나연은 낮게 한숨 쉬며 반찬을 내밀었다.
 “맨밥이 맛있어? 이것도 먹어.”
 “챙겨 주는 거냐, 이 오빠를?”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민수의 얼굴엔 장난기가 다분했다.
 낡고 오래된 연립이지만 남매에게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그럼, 못난 오빠 내가 챙기지 누가 챙겨!”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좀 보여 봐라. 내가 많은 걸 바라냐? 그냥 제시간에 재깍재깍 일어나라. 그게 날 챙기는 거야.”
 “이 미모를 지키려면 충분한 수면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야. 미녀는 잠꾸러기란 말도 몰라? 봐봐, 눈 밑에 있는 다크서클 보이지? 이게 다 오빠가 내 수면을 방해해서 생긴 거야.”
 여동생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건가 싶어 민수는 그녀의 얼굴을 걱정스레 쳐다봤다.
 진지한 오빠의 시선에 나연은 고개를 내저었다.
 “농담이야, 농담!”
 “나도 장난으로 본 거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알아먹음 되지. 그만 떠들고 밥 먹어. 학교 늦겠다. 그리고 내 누차 말하는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먼저 먹는다. 사람은 부지런해야 해. 알았어?”
 나름 근엄한 표정으로 내린 오빠의 훈계에 나연은 새 주둥이처럼 입술만 삐쭉거렸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먼저 총 맞는 세상이야. 사람이 요령이 있어야지, 요령이.”
 민수는 양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항복을 선언했다.
 나연은 우쭐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참! 저번에 이상한 놈이 명함 준 거 버렸지?”
 나연이 그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책가방을 무의식적으로 흘끔거렸다.
 이런 일엔 귀신처럼 눈치가 빠른 민수였다.
 그는 곧장 일어나 여동생의 책가방을 뒤졌다.
 “뭐야! 왜 숙녀의 가방을 함부로 뒤지는 거야!”
 “나에겐 네가 숙녀 아니거든, 꼬맹이지.”
 “이건 개인 프라이버시라고!”
 나연의 표정은 불안감으로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긴장한 여동생의 표정을 슬쩍 쳐다본 민수는 인상을 확 구겼다.
 ‘이 녀석, 안 버린 거야?’
 얼마 전 여동생은 연예 기획사 매니저에게 픽업됐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세상일이 실력이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뒤를 받쳐 주는 백그라운드가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민수는 여동생에게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어줄 수 없는 고졸 사회 초년생에 불과했다. 집에서나 가장이지 밖에 나가면 밑바닥 인생이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지금은 약하지만 이 초능력을 좀 더 키우면 녀석을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어!’
 스윽.
 민수의 손에 금테가 둘린 명함 한 장이 잡혀 나왔다.
 사나워진 오빠의 표정과 명함을 본 나연은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그의 눈치를 슬슬 살피며 목을 움츠렸다.
 “나연이 너!”
 “으아아아아아-! 학교 늦었다. 오빠, 나중에 봐!”
 후다다닥, 쾅!
 명함을 구겨 버린 민수는 그것을 버리려다 멈칫했다.
 ‘알바 하는 데 이 사람이 세 번이나 찾아왔다고 했지.’
 이대로 넘겨 버릴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민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 휴일은 바쁘겠군.”
 
 [하늘기획사 과장 박태일]
 
 이를 두 눈에 아로새긴 민수의 눈이 참으로 매섭게 반짝거린다.
 
 ***
 
 민수는 명함에 있는 하늘기획사를 찾아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휴일을 이런 일에 써야 하는 게 못마땅했지만 여동생에게 닥칠 불행을 막는 일이다.
 연예 기획사를 사칭한 사기꾼들이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오곤 했다. 또한 연예인 성 접대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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