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검공무쌍(종료240628)

1화

2020.08.28 조회 764 추천 1


 인언(引言)
 
 
 
 
 
 고금오대협(古今五大俠)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다섯 명의 협객이 있어 후대에까지 길이 칭송되었다.
 그 다섯 협객은 각기 개성이 뚜렷했다.
 누군가는 도협(刀俠), 누군가는 마협(魔俠), 누군가는 신협(迅俠)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괴협(怪俠)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을 뒤로하고, 협의지심 하나로 고금제일이라 불린 협객이 있었으니.
 역사는 그를 일컬어 검공(劒公) 혹은 인의검협(仁義劍俠)이라 했다.
 지금부터 풀어 놓을 이야기는 바로 그 인의검협 고준의 이야기이다.
 
 - 강호비록(江湖秘錄)
 제7장 고금오대협 중
 ‘인의검협 고준’ 편에서 발췌
 서(序)
 
 
 
 
 
 푸확!
 붉은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검을 들고 있던 인영 하나가 썩은 고목처럼 뒤로 넘어갔다.
 그의 가슴은 쩍 벌어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펄떡거리던 심장이 두 개로 쪼개져 싸늘히 식어 가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후읍!”
 격하게 토해지는 숨을 달래며 고준은 전방을 쏘아보았다.
 ‘일곱······.’
 남아 있는 적의 숫자.
 고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삼십 명까지는 어찌어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일곱 무인은 이제껏 쓰러뜨린 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이 고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여기······까지인가?’
 고준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꾸우욱!
 대답 대신 쥐고 있던 검을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우웅!
 검이 나직이 울었다.
 아직 아니라고.
 여기서 쓰러질 순 없다고.
 검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에 화답하듯 고준의 몸에서 싸늘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스으으으!
 질세라, 고준의 앞에 있던 무인들에게서 가공할 기세가 흘러나왔다.
 파칫! 파치칫!
 기세와 기세가 뒤엉키고 기음이 터졌다.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된 양 고준이 지축을 박찼다.
 기다렸다는 듯 일곱 무인들 또한 신형을 날렸다.
 일 대 칠.
 경천동지할 대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세상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절세의 고수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제1장
 호랑이 우화등선 하는 날
 
 
 
 
 
 “허억, 허억!”
 단내 섞인 숨이 토해져 나왔다.
 볼썽사납게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어지러웠다.
 토할 것만 같았다.
 단전에 남아 있던 내공은 모조리 고갈되었다. 순수한 육체의 근력으로만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용케 목숨을 부지한다 싶었다.
 “대단하군.”
 적이 말했다.
 묵빛의 장포로 온몸을 감싼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라 불릴 만한 것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다만 두 눈 주위로 싸늘한 살기가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고준이 씁쓸하게 웃었다.
 얼마 전까지 고준은 그를 동료라 불렀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심 중얼거린 고준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고준을 향해 적이 천천히 다가왔다.
 하지만 고준은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의 뒤로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서너 걸음만 물러선다면 그대로 추락해 버릴 터였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고준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적이 검을 아래로 천천히 늘어뜨렸다.
 여유 있는 동작.
 이어 적의 검에서 시퍼런 광망이 번들거렸다.
 고준이 그 광망을 인지한 순간 적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그렇게 흐릿해지기 무섭게 적이 고준의 코앞에서 불쑥 솟아올랐다.
 적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고준의 등줄기로 소름이 쫘악 돋았다.
 피해야 한다!
 고준의 뇌리로 경고음이 울렸다.
 하지만 고준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체력과 내공이 고갈되기도 했거니와 상대의 움직임이 고준이 예상한 것보다 배는 빠른 탓이었다.
 쉬아악!
 독사가 내뱉는 숨소리처럼 고약한 음향과 함께 적이 검을 찔러 왔다.
 ‘피할 수 없다!’
 검이 지척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고준이 떠올린 생각이다.
 순간, 고준의 시야로 하나의 선이 보였다.
 그 선의 끄트머리는 적의 목에 닿아 있었다.
 고준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선이 적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검로(劍路)라는 것을.
 그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고준이 반 토막 난 검을 앞으로 뻗었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공격을 하리라.
 쑤욱!
 검을 있는 힘껏 찔렀다.
 고준의 검은 적의 공격과는 달리 아무런 소리도 만들어 내지 않았다. 공기의 파동조차 생성되지 않았다.
 그저 시야에 보이는 검로를 따라 차분히 움직일 뿐이었다.
 검을 쓰는 무인들은 이러한 경지를 두고 견로(見路)라 불렀다.
 신검합일(身劍合一)보다 위에 있는 경지. 모든 검수들이 꿈꿔 마지않는 이상향인 탈검(脫劍)의 바로 전 단계.
 그것이 바로 견로의 경지였다.
 고준은 이 견로의 경지를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맞이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사실을 곱씹을 겨를이 없었다. 죽음의 위협이 코앞까지 닥쳐왔기 때문이다.
 퍽퍽!
 두 개의 파육음이 울렸다.
 그와 함께 고준과 적이 서로 두어 걸음씩 물러섰다.
 적이 경악에 찬 음성을 흘렸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그의 복부에 반 토막 난 검이 틀어박혀 있었다.
 ‘분명, 분명 먼저 검을 찔러 넣었건만······!’
 적이 내심 중얼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느닷없이 자신의 목으로 날아드는 검을 피하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그 덕에 목이 아닌 복부를 내줄 수 있었다.
 더불어 고준의 왼쪽 가슴을 노리던 검공의 궤도가 제대로 틀어져 버렸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이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나는 적이다.
 그의 몸에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가공할 기세가 폭풍처럼 피어올랐다.
 그 기세에 묵빛 장포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이에 반해 고준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쪽 가슴에 적의 검이 꽂혀 있었다.
 피 묻은 검신이 고준의 등 뒤로 삐죽 튀어나온 상태였다.
 적이 고준에게 다가갔다.
 방금 전까지 아무런 표정도 없던 그였건만, 지금은 흉신악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광기 어린 음성과 함께 적이 고준의 가슴에서 거칠게 검을 뽑았다.
 푸슈욱!
 기다렸다는 듯 붉은 피가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적이 살기와 광기가 뒤범벅된 눈빛을 흘렸다.
 적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적은 고준의 목을 한 치 앞에 두고 검을 멈춰 세웠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고준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많은 상처를 입었기에 이대로 놔두면 알아서 죽을 터.
 더 이상 손을 쓸 필요가 없다.
 그는 고준에게 무언가 더 지독한 고통을 선사해 주고 싶었다.
 이대로 목을 자르거나 심장을 찌르는 것은 고준에게 좀 더 빠른 평안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적이 싸늘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더니 들고 있던 검을 치켜들어 자신과 고준의 사이에 경계선을 긋듯 휘둘렀다.
 쩌어어억!
 기이한 소리와 함께 고준이 누워 있던 지반이 그대로 갈라지며 적이 서 있던 곳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그러고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밑으로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적이 신형을 돌렸다.
 고준이 찔러 넣은 검이 복부에서 덜렁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평소처럼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네놈 같은 살귀(殺鬼)에게 무덤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걸음을 옮기며 차갑게 읊조렸다.
 “차디찬 어둠 속에서,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곳에서 천년만년 지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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