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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떠오르는 달이 항상 만월滿月일 순 없다 (1)

2020.09.14 조회 501 추천 1


 서문
 
 
 제 첫 작품 ≪군왕전기≫는 온라인 조아라에서 ≪워-로드≫라는 제목으로 연재했었습니다.
 처음엔 출판을 생각하고 진행한 글이 아니었기에 출판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단지 오랫동안 글을 읽으면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몇 번의 습작을 거치면서 판타지에서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첫 작품을 시작했고, 이야기 전개 도중 FBI의 VICAP(강력범죄 대응 시스템)이라는 수사 기법과 지리적 프로 파일링, 건축 공법과 고대 건축 기술, 그리고 고대 기독교에 기댄 얄팍한 종교 지식을 넣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나름 열심히 썼다고 자부도 했습니다. 글의 마침표를 찍고 난 후 혼자 1권부터 마지막 권까지 정독해 보았습니다. 부끄럼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분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 지면을 통해 전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도 전에 두 번째 작품을 들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글의 모티브는 아들입니다.
 매번 글을 쓰는 동안 이제 열한 살 난 아들이 옆에서 지켜보고는 합니다. 아들 녀석의 이름은 운, 구름 운雲 외자고 성은 나라 조趙, 조운입니다. 삼국지 상산 조자룡의 본명과 같고 다분히 무협지적인 발상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물론 그 이름은 제가 지어 주었습니다.
 이 아들 녀석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제 엄마에게 용돈을 탑니다. 몇천 원에 불과한 용돈이지만 얼마는 저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제게 와 평소 같지 않게 만 원을 달라고 하더군요.
 직장과 글을 쓴다는 핑계로 나쁜 아빠에서 벗어나지 못한 저는 미안한 마음에 대수롭지 않게 그 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삼사일이지나 제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매주 손자와 목욕탕을 가는데 그제는 운이가 목욕비를 계산했다고요.
 아들은 매번 할아버지가 돈을 내는 것이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새삼 아들 녀석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지더군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던 중 가족애에 대해 써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족 간의 신뢰와 사랑을 얻기 위한 노력과 그것을 지키려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써 보았습니다.
 판타지란 장르에 따스한 마음을 심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모쪼록 제 글을 읽는 가운데 따스한 마음이 가슴 한쪽에 머물렀으면 합니다.
 참고로 이 글의 주인공 이름은 제 아들 운雲이와 같은 클라우드입니다. ^^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길······.
 전북 전주에서 德珉 조대길 올림
 
 
 떠오르는 달이 항상 만월滿月일 순 없다 (1)
 
 
 크로서스 제국력 2987년 10월 11일 오후.
 산울림이 겨울 크로서스 산맥을 흔들어 놓았다.
 크 르르. 르······. 쾅······.
 온 천지를 하얀색으로 도배하고 있던 크로서스 산맥.
 주봉 쿨란 산, 그 정상에서 화려한 폭죽과 같은 폭발이 일어나 화산재를 뿌려 댔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볼케이노(분화구)에서 마그마가 분출되지는 않았다. 헤밀튼 백작령이 직접 피해를 입진 않았다. 그러나 무려 2주간 백작령을 덮은 화산재의 간접 피해는 세상을 암흑으로 만들었다. 그 후 영지 전체에 가라앉은 화산재는 곡물을 고사시켜 갔다.
 
 같은 날 몇 시간 전 오전, 헤밀튼 백작령 주도 콜롬 시
 크라이스 양식으로 건축된 영주 성은 직선과 직각으로 이루어진 실용성을 강조한 건축물이었다. 크로서스 제국에서 5대째 백작령을 이어 온 헤밀튼 가문의 직설적이고 허례를 따지지 않는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영주 성은 둥근 회랑을 중심으로 우측을 따라 행정관실, 기사단장실, 영주 집무실을 두고 있었고, 50미터 공터를 건너 이어지는 회랑 끝엔 영주 가족이 모여 사는 영주관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 영주관의 2층 두 번째 방 안에서는 여인의 신음성이 두 시간째 이어지고 있었다.
 “아-. 아-. 악······.”
 방 안 침상에는 20대 초반의 산모가 산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침대 옆에서 50대 후반의 미드와이프(산파)가 산모를 달래고 있고, 뒤에는 30대 초반의 기품 있는 여자가 서 있었다.
 “작은 마님, 조금만 더 힘써 보세요······. 머리, 머리가 보입니다.”
 “미드와이프 길레스, 트리웰의 하혈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백작 부인 세린느는 오른쪽 눈썹을 찌푸렸다.
 “큰 마님, 작은 마님의 양수가 너무 일찍 터졌습니다. 그래서 하혈이 심합니다.”
 “그럼 신관을 불러야 하지 않는가.”
 “작은 마님의 청백에 누가 될까 저어되어······.”
 “이런 한심한 인사를 봤나!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헤밀튼 백작령의 안주인 세린느는 급히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 체스를 불러들였다.
 “너는 급히 백작님께 여기 상황을 아뢰어라. 그리고 라의 신전에서 메그넘 신관님을 뫼시고 오시라 전해라.”
 체스는 허둥대며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눈만 휘둥그레졌다. 그러자 세린느는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다, 내 직접 가야겠구나. 너는 이곳에서 미드와이프 길레스를 도와라.”
 백작 부인 세린느는 급히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처음 맥컬트 백작이 트리웰을 후처로 맞아들일 때엔 질투심에 눈에 불이 들어앉았었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며 트리웰의 심성에 세린느가 감복해 마지않은 면이 있었다. 그래서 현재 세린느는 트리웰을 친동기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세린느는 회랑을 급히 지나 영주 집무실 앞에 섰다.
 영주 집무실 앞에 있던 30대 초반의 기사 휘튼이 백작 부인을 맞아 고개를 숙였다.
 “영혼의 안주인을 뵙습니다. 백작님과 총관 투스 남작님이 자리하고 계십니다.”
 “기사 휘튼, 한시가 급하오.”
 휘튼은 쿨란 산의 화산 폭발 문제로 백작과 총관이 숙의 중인 것을 알렸지만, 백작 부인 세린느는 그의 제지를 제치며 들어갔다.
 영주 집무실은 좌, 우측 벽에 책장과 투박한 옷장 하나가 있고 업무용 책상 앞으로 회의 탁자와 소파가 놓여 있는 단출한 구조였다.
 맥컬트 백작과 총관 투스 남작은 이 회의 소파에 마주앉아 있었다. 그들은 평소와 달리 급하게 들어오는 세린느의 바라보았다.
 “부인, 무슨 일이 있는 것이오?”
 백작 부인 세린느는 맥컬트 백작의 말에 투스 남작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잠시 후 다시 오겠습니다.”
 투스 남작은 백작가 내부의 일로 부인이 급히 들어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눈치가 없지 않아 백작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래, 무슨 일이기에 평소 부인답지 않게 이리 내 집무실까지 찾아온 게요.”
 “트리웰이, 트리웰이.”
 백작 부인 세린느는 여인의 깊은 이야기라 말하기가 난처했다. 백작은 그 모습에 안색이 바뀌며 급히 물었다.
 “부인, 무슨 일이오? 혹여 그녀가 애를 낳는 중에 일이라도 생긴 것이오?”
 “그와 비슷합니다. 트리웰의 양수가 일찍 터지는 바람에 출혈이 심합니다. 미드와이프 길레스의 능력으로는 힘들 것 같습니다. 신전의 메그넘 신관님을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백작은 난색을 표하며 말을 이었다.
 “부인도 쿨란 산이 화산 폭발의 조짐을 보이는 것을 알 것이오. 그 일로 메그넘 신관이 일주일 전에 쿨란 산에 갔었소. 그는 이제야 돌아왔단 전갈이 있었소.”
 “그럼 신전의 다른 누구라도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알겠소. 어째 당신이 나보다 더 그녀를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미안하구려. 일단 예서 안정을 취하시오. 신관이 오면 나와 같이 갑시다.”
 백작은 기사 휘튼을 불러 라의 신전의 부신관 라이진을 불러오게 했다.
 
 영주관 2층에서는 헤밀튼 백작과 백작 부인 세린느의 걱정과 달리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백작 부인 세린느가 나간 지 10여 분이 지나지 않아 트리웰이 검정 머리에 눈, 코, 입 등 오관의 선이 굵은 아이를 낳은 것이다.
 그녀는 해산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방금 전 자신이 낳은 핏덩이를 바라보았다.
 ‘아가야, 나를 참 힘들게 했구나. 하지만 사랑한다, 사랑해.’
 트리웰은 산고로 힘겨웠던 몸을 일으켜 아기를 안아 들고, 침대를 벗어나 방을 나서려 했다. 마침 산후 정리하러 밖으로 나섰다 산모를 돌보려 돌아오던 길레스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이고, 작은 마님, 어디를 가십니까?”
 “내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우선 비켜서시게.”
 트리웰은 평소 길레스가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눈에서는 올곧음이, 다문 입술에서는 의지가 깊게 내비쳤다.
 길레스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 옆으로 비켜섰다.
 트리웰은 그 길로 내처 영주관을 나섰다.
 그녀는 방금 전에 탯줄을 끊은 핏덩이를 안고, 영주 성의 망루 역할을 하는 첨단으로 향했다. 그녀는 길레스와 체스가 안절부절못하며 뒤따르는 것을 무시하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먼 선조가 그랬듯 산고에 지친 몸을 이끌고 말이다. 이는 그녀가 판테온[萬神殿]을 통해 자연신을 믿던 동대륙 샤롤러니아의 옛 발키리[巫女]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첨단에 오른 그녀는 파수하는 병사를 내려보내고, 핏덩이 아이를 두 팔로 받쳐 하늘을 향해 치켜들며 읊조렸다.
 “만신의 으뜸 라를 잊혀 가는 옛 발키리의 이름으로 경배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받쳐 든 채 천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맞추어 굴신을 했다.
 “옛 종의 하나인 발키리가 만신의 으뜸 라에게 지아비보다 먼저 첫 아이를 뵈옵게 하오니, 빛으로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러곤 트리웰은 성전의 열왕전 중 왕의 탄생 축가를 노래했다.
 “하늘의 높은 자리에-. 계신이 라께서······.”
 그녀가 노래하기를 한참,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이 밀려나며 한 줄기 빛이 핏덩이 갓난애를 비추었다.
 작은 마님 트리웰의 말림에도 뒤를 쫓은 길레스는 그 광경에 놀라 같이 있던 체스를 백작에게 보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트리웰과 같이 왕의 탄생 축가를 읊조렸다.
 잠시 후 구름이 하늘을 채우며 빛줄기를 감추어 갔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 트리웰은 북쪽으로 돌려 갓난애를 양팔로 뻗어 내밀고 만신의 어머니이자 지혜의 신 하루나에게 고했다.
 “모든 어머니와 지혜의 신 하루나께 삼가 제 아이의 이름을 올립니다. 이 아이는 클라우드라 불릴 것이며, 이후 모든 어머니가 자녀를 대하듯, 이 아이가 타인을 대할 때 자애롭고 지혜로움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트리웰은 몸을 돌려 남쪽을 향해 방금 전과 같은 행동을 취했다. 판테온의 불의 신 로디곤에게 고한 것이다.
 “대지를 딛고 선 종족 중 인간에게 한없는 따사로움을 내리신 로디곤께 이 아이의 마음을 올립니다. 매사를 행함에 있어 불과 같은 정염과 정열의 심장으로······.”
 
 체스가 급히 서둘러 백작 집무실에 도착하였을 때는 라의 신전에서 부신관 라이진이 막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그녀는 집사 페로를 통해 백작 부인 세린느에게 트리웰이 사내아이를 낳은 것과 현재 망루에서 동방의 무녀가 행한다는 전설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전했다. 첫 아이를 여러 신께 알리는 의식을 작은 마님이 행하고 있음을 말이다.
 맥컬트 백작은 중앙 대륙 트론델리의 여러 제국과 왕국에서 주신 라를 섬기는 것과 달리, 트리웰이 판테온[萬神殿]에서 만신을 섬김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동방의 무녀인 발키리의 후손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깜짝 놀랐다.
 맥컬트 백작과 부인 세린느는 급히 영주 성의 첨탑으로 향했다.
 그 순간 신전의 부신관 라이진은 영주 집무실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우연하게도 체스의 이야기 일부를 집무실 앞에서 들었다.
 “뜻하지 않게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백작님.”
 부신관 라이진이 오히려 당황한 듯 이야기를 꺼냈다.
 “라이진 님, 우선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백작가의 여자가 난산 후 밖에 나와 있으니 자비를 보이십시오. 그 밖에 일은 백작 성이 이사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으니, 다음으로······.”
 백작을 대신해 부인 세린느가 나섰다. 그러나 라이진은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듯 머뭇거렸다.
 맥컬트 백작은 라이진이 체스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들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디까지 들은 것이 무슨 상관이리오.’
 라이진은 아직 20대 중반이지만 그리 허술한 위인이 아니었다. 신전이 개입하면 그의 둘째 부인이 동방 무녀의 후예라는 것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잠깐 동안 궁리했지만 결론은 두 가지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부신관 주변의 몇을 죽여 입막음하거나 나에게 끔찍한 일이 생기거나.’
 그때 예상치 못한 라이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작가의 작은 마님의 몸과 정신이 이상해 동방의 무녀 발키리의 행사를 하고 있다 하니,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겠군요, 백작님.”
 방금 전 라이진은 발키리의 행사라는 말을 들으며 두 눈이 반짝였다. 그가 주신 라를 섬기는 것과 별개로 동방 샤롤러니아에서 여러 신을 모시는 신관 역할을 하는 발키리의 행사가 자못 궁금했다. 그는 맥컬트의 심사를 꿰뚫고 눈감아 주겠다는 의사를 비쳤다.
 그렇게 백작 내외는 부신관 라이진, 총관 투스와 기사 휘튼을 대동하고 트리웰이 있는 첨단으로 올라섰다.
 
 백작 일행이 첨단을 오르는 계단 중간에 이르렀을 때 트리웰의 의식은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주신 라와 천지 네 곳에 머무시는 신들에게 청하옵니다. 제 첫 아이가 만방의 빛과 신 들의 축복으로 거듭나게 해 주소서.”
 트리웰은 의식을 마무리하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샤롤러니아 발키리의 특유의 주문은 그녀의 신체를 공명시켰다. 주문은 자연과 가까운 파장을 유발시켰고, 신과 가까이 가기 위한 인간의 원초적 언어와 같았다. 그 모양이 격렬하고 주문의 초성에서 종성으로 이어지는 언어 체계가 6성에 가까워 괴이하고 사이해 보이기까지 했다.
 “afskfas sffsd sfsdfs······.”
 그러한 트리웰의 몸짓이나 주문과 상관없이 정교에서 주장하는 주신 라의 축복과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나온 빛줄기가 핏덩이 갓난아이에게 내려앉아 안온함을 주었다. 그리고 사방에서는 푸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첨단에 도착한 백작 내외와 부신관 라이진의 귀밑머리를 살짝 말아 올리고 지나갔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기를 한참, 부신관 라이진은 트리웰이 동대륙의 발키리임에도 주변을 인식치 못하고 성호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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