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말보루 아이스블라스트 하나요.”
삑-
“4,500원입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점원이 내민 푸른 담배 한 갑을 나는 특공무술 스파링을 할 때보다 빠른 속도로 낚아챘다.
그대로 몸을 돌릴 찰나, 점원이 나를 멈춰 세웠다.
“손님?”
“······?”
“계산······.”
“아, 죄송합니다.”
아, 이런 깜빡했네.
나는 황급히 핸드폰 케이스를 열어 카드 하나를 내밀었다.
“카드 받았습니다.”
삑-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예, 감사합니다.”
나는 미안함을 담아 점원에게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한 달씩 산속에 처박혀 있다 보면 이런 당연한 걸 가끔 잊어버린다.
딸랑-
“캬~ 날씨 한번 좋구만.”
드높고 청명한 6월의 하늘과 뜨거운 햇살이 탑팀으로 선발돼 파병 갔던 이라크를 떠올리게 한다.
치익-
“후우······.”
폐부를 휘도는 담배 기운과 나른한 휴가 첫날의 일상이 사람을 센치하게 만들어서일까? 지금까지의 고생이 머릿속을 채운다.
10년 전, 끔찍한 교통사고가 있었고, 부모님이 동시에 돌아가셨다. 18살 몸만 큰 나와, 12살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인 여동생을 두고.
유산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넉넉하진 않았다. 더군다나 챙겨야 할 사람도 있는 상황. 나에게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게 군대였다. 숙식이 제공되고, 명예도 있고. 나쁘지 않았다. 마침 운동깨나 하기도 했었으니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특전 부사관으로 지원했고, 8년간 국가를 위해 헌신해 왔다. 탑팀이라고 알려나 몰라? 내가, 어? 태양의, 어? 그런 거야!
몇 년 전 방영됐던 특전사를 배경으로 한 말도 안 되는 드라마를 떠올리며 피식 웃음 지은 나는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바로 며칠 전 있었던 천리행군에서 얻은 영광의 상처······ 는 개뿔.
하, 벌써 8년이나 군생활을 했는데도 이 빌어먹을 통증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행군 좀 그만하고 싶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아 집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눈앞에 이상한 글귀가 떠올랐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존재 가치를 시험하겠습니다. 증명하십시오.]
이건 뭐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걸음을 멈춘 채 눈을 비비고 손을 휘저어 봤지만, 눈앞에 선명히 빛을 발하는 글귀는 제 모습을 꼿꼿이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순간, 메시지가 바뀌었다.
[재능에 따라 능력을 부여합니다.]
그 메시지를 제대로 읽기도 전에, 갑자기 엄청난 두통이 찾아왔다. 가끔 느꼈던 숙취로 인한 두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고통.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끄아아악-!”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허억, 허억······.”
비명밖에 나오지 않는 고통은 다행히도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 채웠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스로가 지금 변화했다는 것을.
새로운 감각이 깨어났다.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것 같았다.
문득 스파링을 할 때마다 상급자를 때릴 기회는 지금뿐이라며 인정사정없이 날 후려갈기던 김 중사가 떠오른다.
이젠 내가 쥐어팰 수 있겠는데?
몸속 깊은 곳에서 고양감이 끓어올랐지만, 그 느낌에 취해 있을 시간은 없었다. 눈앞에 떠올라 있던 메시지가 다시 한번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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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스테이지, 침공이 시작됩니다.]
[목표: 섹터 키퍼 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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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가 바뀜과 동시에 시야 좌측 하단에 붉은색 숫자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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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0:0]
[335:59:59]
[335: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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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시간이라는 건가? 이게 며칠이지?
하지만 계산해 볼 시간은 없었다. 어느새 저 멀리 적갈색 피부의 거인이 아른거리고 있었기에.
오크. 실라스티엘 차원의 지배종 중 하나. 2m에 달하는 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강인한 근육, 빠른 번식 속도 등등 수많은 정보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미친, 오크라니.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게 왜 여기 있는 거야!
평소 웹소설을 즐겨 읽기도 했고, 거기서 나오는 주인공들의 행동을 욕하고 품평하기도 했지만, 그게 현실이 되는 것을 바라진 않았다.
그저 자신은 특전사니까, 상상 속에서만 나라면 더 잘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을 뿐.
그 순간, 나를 발견한 오크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아아아-!”
“시발!”
아무리 특전사여도 맨손으로 칼 든 괴물을 어떻게 이기라고!
하지만 신기하게도 귓가에 누군가 나의 승리를 속삭이고, 내 머릿속엔 놈의 공격 루트가 훤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 다리로 이어지는 사선 베기.
본능에 이끌려 몸을 움직인다. 어떤 동작을 취해야 할지, 저놈과 나의 승패가 마치 미리 입력된 데이터처럼 내 신체를 통해 나타난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고, 혈류가 약동하는 소리.
왼쪽으로 한 걸음 움직이는 것으로 놈의 공격을 손쉽게 피해 낸 뒤,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퍼억-
머리는 내 카운터펀치가 놈의 턱에 정확히 적중하는 비현실적인 광경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콰직-
비틀거리는 놈의 오금에 내 로우 킥이 작렬했고, 그대로 벌렁 넘어지는 놈의 머리에 나는 정확히 사커 킥을 먹였다.
콰앙-
굉음과 함께 놈이 옆으로 나가떨어지고, 단단한 두개골과 부딪힌 맨발이 통증을 호소한다. 하지만 온몸을 휘도는 기이한 열기는 나에게 통증을 참아 내고 계속해서 움직일 힘을 허락했다.
비록 놈이 나가떨어졌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엎어진 놈의 등에 타고 올라 오른손을 꺾고 손목 안쪽을 후벼 팠다.
“크아아악-!”
놈은 괴성을 지르며 버둥거렸지만, 결국 무기를 놓치고 말았다. 특공무술 훈련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구만.
형이 인마, 특공무술 2단이야!
챙강-
머리가 실없는 생각을 하는 것과 달리 몸은 재빠르게 움직여 그 칼을 낚아챘다.
그사이 놈은 일어나 다시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그대로 서서 칼을 휘둘렀다가는 제대로 피해도 주지 못하고 놈의 태클에 넘어져 마운트를 당할 터.
대도를 두 손으로 움켜쥔 나는 좌전방으로 크게 전진 스텝을 밟으며 놈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다뤄본 적 없는 대도가, 마치 오랫동안 함께해 온 K-1 소총같이 편안하다.
촤악-
“크악!”
“허억···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싸움에서 한번 넘어온 승기를 놓치면 그것이야말로 패배. 지금이 바로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다.
촤악- 촤악-
“크아아아악-!”
“뒤져, 이 새끼야-!!”
완전히 자세가 무너진 놈에게 나는 미친 듯이 대도를 휘둘렀고.
쿠웅-
마침내 놈이 쓰러진 순간, 기이한 기운이 내 몸속을 타고 들어왔다. 그 기운은 방금 전까지 온몸을 잠식하던 전투의 흥분을 순식간에 몰아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엄청난 쾌감이 휘몰아쳤다.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순간 모든 것이 멍해지고, 손아귀에 힘이 풀리며 움켜쥐고 있던 대도가 땅바닥에 떨어진다.
챙그랑-
다행히도 나는 그 소리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후우······.”
정신을 차리자 나는 전신이 붉은 피투성이가 된 채 오크의 시체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그 순간 퍼뜩 뇌리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 동생 강정민.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지켜야만 하는 나의 가족, 나의 자랑.
나는 떨리는 손으로 뒷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냈다. 다행히 겉으로는 이상 없이 멀쩡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세상의 소리들이 귓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비명 소리.
콰아앙-
뭔가 거세게 충돌하는 소리.
평온했던 일상은 순식간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를 당연하다는 듯 비일상이 채우고 있었다.
손에 묻은 붉은 피에 순간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니다. 간신히 그것을 되삼킨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핸드폰으로 가져갔다.
처음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 안에서 바닥을 바라볼 때, 이보다 더한 긴장감은 평생 느끼지 못할 줄 알았는데.
핸드폰 덮개를 여는 그 1초도 안 되는 시간이 마치 영겁과 같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덮개를 열고 전원 버튼을 두드렸다.
하지만, 핸드폰을 제 빛을 밝히지 못했다. 분명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풀 충전 상태였는데······.
“젠장!”
침착하자, 강소민. 지금 일분일초가 소중하다.
먹통이 된 전화기를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 대도를 움켜쥔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대학생인 동생은 기말시험 공부를 위해 학교에 갔다.
서울대 의대가 위치한 혜화까지, 차로는 금방이지만 과연 도로 상태가 운전이 가능한 상태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파트 입구로 달려가던 중, 시야 우측 상단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2]
녹색으로 빛나는 2라는 숫자가 어째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는지 이상할 정도로 선명히 빛을 발하고 있다.
이건 뭐지? 아니, 아니다. 지금은 다 필요 없다. 차 키부터 찾아야 해.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억지로 무시한 채 계단을 뛰어올랐다. 3층, 저층에 산다는 것이 이토록 다행이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쾅- 쾅-
“이런 좆 같은!”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손으로 눌러봐도 도어 록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먹통이 된 핸드폰처럼, 도어 록도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게 됐다.
막막한 기분에 대도를 휘둘러 봤지만 생채기만 날 뿐 문은 굳건히 그곳에 자리했다.
이럴 시간이 없다. 차선책은?
나는 황급히 다시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트렁크에 둔 자전거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사이클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샀던 자전거. 몇 번 타고 나서 찬밥 신세로 버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광명이 비치는 듯했다.
타다다닥-
나는 숫제 구르는 듯 내달려 애마 앞에 도착했지만, 내 기대는 다시 배반당했다.
“하······ 화낼 힘도 없다.”
차 키도 없는데 트렁크가 열릴 리 만무했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잊다니······.
하지만 차 키가 있었더라도 트렁크를 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빛을 발할 수 없게 된 핸드폰, 미동조차 없는 도어 록. 마치 누군가 인간의 문명을 거둬 간 것만 같다.
그야말로 소설 속에서나 펼쳐질 법한 상황이, 현실에 펼쳐졌다.
스스로가 내던져진 비일상에 소름이 돋아 한숨을 내쉴 찰나, 감각이 미친 듯이 경종 소리를 울려댔다.
나는 감각이 알려주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미친······.”
어떻게 올라갔는지 모르겠지만, 오크 한 마리가 정자 지붕에 오연히 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치자, 놈은 더욱 진한 웃음을 지으며 정자에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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