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날개 달린 황녀님

프롤로그(1)

2014.07.11 조회 1,745 추천 36


 그날따라 환한 보름달이 신비로워 보였다. 시리도록 눈부신 달빛은 마치 누군가가 하늘에서 은청색의 고운 보석가루를 가득 가득 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천장 전체가 투명한 크리스털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커다란 방은 그 독특한 구조 덕분에 아름다운 은청색의 빛 가루를 고스란히 방 안 가득 받고 있었다.
 그 커다란 방 한가운데에는 두꺼운 털가죽을 깔고 위에는 형형색색의 수많은 쿠션을 배치해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놓은 커다란 원형의 단이 있었다.
 털가죽의 크기와 때깔 좋은 모양새, 그 위에 있는 쿠션들의 윤기 반드르르한 외관과 비까번쩍한 문양들을 보자니 모두 범상치 않아 보인다.
 그렇게 범상치 않은 물품들로 꾸민 단 위에 있는 거라면 뭔가 대단하거나 희귀하거나 중요한 것일 텐데, 어째 단 위에 있는 건 그냥 하얗고 둥그런 공이었다.
 표면이 거칠거칠해 보이고 약간 타원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크기만 작았다면 평범한 오리알로 여겨졌을 거다. 아니면 신선한 왕란이거나.
 그러나 다행히도(?) 이 알은 지름이 1m는 충분히 넘어 보일 정도의 크기였다.
 외모(?)는 평범해도 크기로 평범함을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커다란 오리알(?)이 고이 모셔진 공간은 너무나 고요해서 마치 시간마저 멈춰져 있는 곳 같았다.
 오직 크리스털 천장 너머의 보름달만이 밤하늘을 유유히 가로지르며 아낌없이 은청색 보석 가루를 뿌려주고 있던 그 어느 순간,
 빠직~!!
 주변이 아주 조용했던 터라 그 소리는 방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커다란 오리알(?)을 고이 모셔놓고 있던 단 근처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벌떡 일어났다.
 달빛 아래 모습이 드러난 그 존재는 180은 충분히 넘긴 키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성이었다.
 단 위에 있는 커다란 오리알(?) 위로 몸을 슬쩍 숙인 상태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덜미까지 짧게 자른 단정한 머리는 검은색이었다.
 그는 실내용의 검붉은색 가운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가운의 윤기와 색깔, 테두리에 수놓인 우아한 문양 등등이 방 안의 다른 물품들 못지않게 무지 고급스러워 보였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갑자기 등장한 그 검은 머리의 남자가 이 방의 주인인 모양이다.
 방에는 그만 있었던 건 아닌지 검은 머리 남자의 뒤를 이어 또 다른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목소리로 질책을 던지면서 말이다.
 “필립, 뭐하는 거냐? 너 때문에 달빛이 가려지잖아!”
 확실히 필립이라고 불린 검은 머리의 남자가 몸을 기울이고 있는 바람에 그림자가 지긴 했다.
 하지만 그건 커다란 오리알(?)의 아랫부분에 살짝 드리워진 정도라 얼핏 보면 그림자가 드리워졌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필립이라 불린 남자는 얼른 한 걸음 물러서며 뒤의 검은 그림자에게 말을 건넸다.
 물론 그 또한 거의 속삭이는 수준이었다.
 “나이젤, 아까 알에서 소리 나지 않았어? 분명히 깨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래, 나도 들었어.”
 나이젤이라고 불린 남자는 필립이라는 남자에 비해 4,5㎝ 정도 작은 키에 약간 마른 체격을 가진 밝은 갈색 머리의 남성이었다.
 그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필립과는 달리 하얀 셔츠 위에 짙은 색의 재킷까지 차려입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로 보아 단 위에 고이 놓인 커다란 오리알(?)이 진짜 알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알에 금이 보이지 않아. 다른 쪽에 있나?”
 초조한 목소리로 말하며 알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필립이 이제는 단 주위를 돌며 알에 생겼을 금을 찾기 시작했다.
 “그냥 기다려. 안쪽에서부터 깨지는 바람에 아직 바깥까지 금이 생기지 못한 걸 수도 있어.”
 “그런가?”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니까. 내 주먹만 한 크기의 알을 깨고 나오는 데도 열 시간 가까이 걸린다더라.”
 나이젤의 말에 필립이 기겁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열 시가안~? 헛, 그럼 우리 애는? 설마… 며칠씩 걸리는 건 아니겠지?”
 덕분에 필립의 얼굴이 달빛 아래 드러났는데, 굵고 살짝 각진 턱 선에 뚜렷하고 시원시원하게 생긴 이목구비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조각미남… 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외모다.
 하지만 그 괜찮은 외모 중에서도 그의 은보랏빛 눈동자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무언가 신비한 느낌을 풍기는 것 같기도 했고, 달리 보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냉엄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순간,
 빠그직, 빠직, 빠직, 빠지지직~
 아까보다 좀 더 길고 뚜렷한 소리에 두 남자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알이 있는 곳을 향했다.
 그러자 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도 흔들림도 멈춘 채 침묵을 지켰지만, 남자들의 한결같은 시선이 견디기 어려웠던지 잠시 후 다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빠직, 뿌직, 뽀직~
 빠지직, 뿌지직, 뽀지직~
 다양한 음향이 한참 동안 연이어 흘러나오는 폼이 뒤이어 본격적인 뭔가가 있을 거라 예고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과연,
 뽀그자악~ 퍼억!
 지금까지 들려온 소리 중 가장 큰 소리가 나더니 곧바로 그 뒤를 이어 시원한 한 방(?) 소리와 함께 알 하단 부분에서 하얗고 오동통한 짧은 다리 하나가 알을 뚫고 쑥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본 두 남자의 얼굴에 반가움이 피어올랐다.
 “오오, 발이 나왔어. 나이젤, 발이야! 이게 내 아이의 발이라고!!”
 필립은 감격에 찬 얼굴로 나이젤의 팔을 붙들고 흔들었다.
 그는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만약 여기가 정숙해야 하는 장소만 아니었다면 방방 뛰면서 크게 환호작약할 태세였다.
 나이젤은 다 이해한다는 듯 피식피식 웃으며 자신의 팔을 붙들고 있는 필립의 손을 툭툭 두드렸다.
 대략 12개월 전후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한쪽 발은 밑에 깔린 부드러운 털가죽 위로 털썩 떨어지더니 잠시 후 앙증맞은 발가락들을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고, 예뻐라. 나이젤, 이 녀석이 아무래도 제 엄마를 닮은 거 같아.”
 그 모습을 감동에 찬 표정으로 지켜보던 필립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나이젤이 헛웃음을 흘렸다.
 “발가락이 닮았다는 것도 아니고, 넌 발만 보고도 애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냐?”
 “훗훗훗, 날 한눈에 반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얘 엄마밖에 없거든. 그런데 발이 저렇게 예뻐 보인다는 건 나머지도 제 엄마를 쏘옥 빼닮았다는 거지.”
 “헐~ 논다.”
 “어허, 형님의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둘이 놀고(?) 있는 동안 발가락만 꼼질꼼질하던 아기의 발이 힘이 생겼는지 뒤꿈치로 바닥을 탁탁 내려치기 시작했다.
 “후후후, 우리 아가, 힘도 좋지.”
 “팔불출 나셨군.”
 감동을 넘어 이제는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필립의 얼굴에 나이젤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필립은 들은 체도 안 했다.
 아기는 안에서도 힘을 쓰는지 다시 알이 앞뒤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흔들거림이 점점 커지는 것이 까딱 잘못하다가는 넘어질 것 같았다.
 “어어? 나이젤, 저거 그냥 둬도 되는 거야? 잘못하면 넘어지겠는데?”
 그 모습이 걱정스러웠는지 필립이 나이젤을 돌아보며 물었지만, 나이젤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 글쎄?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하던데…….”
 “뭐야? 그럼 뒤로 넘어져도, 데구루루 굴러가도 가만둬야 한다는 거냐? 그러다가 저기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해?”
 당장 뭐라도 해주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필립에 비해 나이젤은 그나마 조금은 침착해 보였다.
 “주변에 쿠션 깔아놨으니 떨어질 일은 없을 거고, 알이 구를 공간도 없으니 걱정 마. 게다가 뒤로 넘어지는 것 정도는 크게 위험할 거 같지 않고.”
 그런데 그의 말이 필립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게 왜 안 위험해? 너, 네 아이 아니라고 그렇게 쉽게 말해도 되는 거냐?”
 “얼씨구?”
 둘이서 툭탁거리는 동안에도 앞뒤로 크게 흔들리던 알은 결국 데굴~ 하고 뒤로 넘어갔다.
 “헛! 아가!!”
 그 모습에 필립이 반사적으로 알을 향해 손을 뻗자 나이젤이 막아섰다.
 “건드리면 안 된다니까.”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냐?”
 “여차하면 내가 나서면 되잖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던 둘의 다툼은 다시금 들려오는 알 깨지는 소리에 즉시 중단됐다.
 빠그지이익~ 퍽!!
 송판이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알 속에 있던 나머지 다리 한쪽도 밖으로 튀어나왔다.
 알이 뒤로 넘어가 있는 상태라 두 발이 바닥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달랑거리자 나이젤이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댓글(7)

향도    
깜짝 놀랐네요 남자 둘이서 엄마 아빠인줄.. ㅎㅎ
2014.07.15 21:57
여우배    
으앗! 신애님이시네요! 선애야선애야 이후로는 처음 뵙는것 같아요.
2014.10.01 19:07
Na.    
오오오 신애님!!!
2014.10.15 21:28
황금스카이    
잘 보고 갑니다.
2014.10.21 14:32
마가마가    
초등학교6학년때 제일 처음 접한 책이 아린이야기였는데
2015.03.26 07:11
꺄하하    
아니 딱 5화만 무료 입니까 ? 헐 ...
2016.07.18 22:57
이노스    
정령왕의 딸 잼썼는데
2017.04.20 02:26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