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유우웅—, 퍼엉! 퍼벙, 퍼어엉!
하늘을 향해 쏘아진 폭죽 소리가 요란했다.
한 해간 묵은 꺼풀을 벗어내고,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하는 소망이 담긴 폭죽들이 하늘 곳곳을 수놓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간에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혹은 친구들끼리 모여 새로 맞이 할 한 해를 기대하겠지.
아무도 없는 적막함 가운데 부모님의 묘비를 찾은 강진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아버지, 어머니. 또 새해네요.”
꼴꼴꼴—.
아버지의 성함이 적힌 묘비 앞에는 소주를, 어머니의 앞에는 국화차를 내려놓은 진호는 음울한 얼굴로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반대편에서 터지는 폭죽에 상대적으로 더욱 어두워보이는 자신의 머리 위 밤하늘.
30대를 넘고, 이제 40대가 된 진호는 회상에 젖었다.
아무것도 모를 중학생 때, 미국으로 부모님 손을 붙잡고 이민왔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미래가 없는 아들 놈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영어라도 가르치겠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결정한 부모님의 숭고한 선택이며 희생이었다.
한 평생을 한국에서 먹고 사셨던 분들이 왜 모든 걸 포기하고 갑자기 미국 이민을 결정하셨겠는가?
공부도 안하고, 학교에선 싸움질만 하던 아들 놈의 미래가 걱정된 게 아니라면 그런 선택을 내릴 이유가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부모님의 선택은 다행히도 잘 맞았다.
미래가 없던 꼴통이 대학까지 진학하고, 번듯하게 자기 사업을 시작할 정도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성장해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보니 알 수 있었다.
그 분들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하지만 나는···, 그저 먹고 사는데 바빴지.’
치열한 삶이었다.
어중간하지만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서야 세상을 겪은 나는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으고, 연애를 하고, 인맥을 만들고···.
비로소 제대로 된 사업체를 시작했을 때, 이민 1.5세 출신으로 뉴욕에서 손으로 꼽는 장사꾼이 되었을 때, 이제야 제대로 된 한 사람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슴에 지금껏 느낄 수 없었던 구멍이 뚫렸다.
갑작스런 부모님의 죽음.
오래된 차를 끌고 장을 본 후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트럭과 충돌, 그 자리에서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시는 변을 당하신 것이다.
사고 현장을 찾아간 진호는 헛웃음과 함께 눈물을 쏟았다.
경찰은 사고 당시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 사고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것이 사망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부모님께서 한평생을 타셨던 20년 가까이 된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종잇장처럼 찌그러져 뭉개진 부모님 차와 자신이 타고온 신형 자동차가 한 눈에 비춰진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좋은 차를 타셨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잘해드렸다면···. 조금만 더 살아계셨다면···.’
뒤늦은 후회로 부모님을 보내드린지도 오늘로 5년 째였다.
지난 5년도 열심히 살았지만, 공허하게 비워진 마음을 채울 순 없었다.
그저 내 성공이 부모님의 기쁨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지금와 돌이켜보니 그건 단순히 내 욕심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니, 오래 걸렸다. 부모님을 떠나 보내고 나서야 느낄 수 있는 후회였으니까.
—퍼엉, 펑!
또 다시 고음과 함께 터진 폭죽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이번에도 역시, 진호가 서있는 자리는 제외됐다.
덕분에 세상의 불빛에 가려져 칠흑처럼 어두운 암흑으로 주변이 깜깜했다.
눈을 가리는 고독감에 진호가 나지막이 고백했다.
이제야 간신히 뱉을 수 있는 소중한 고백이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어머,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래?”
“진호야, 괜찮냐?”
“예?”
“학교 준비하다 갑자기 무슨 사랑 고백이래? 오호호, 오늘 라이드 해달라는 거지? 여보, 나가는 길에 진호 좀 학교까지 데려다 줘요.”
“하하하! 그럼, 물론이지! 아들 녀석이 사랑한다는데,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
“어? 어?!”
눈을 가리던 어둠이 걷히자 새로운 풍경에 진호가 당황했다.
진호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연신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를 흔들어 주변을 살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지금 그에게 벌어진 탓이다.
계속해서 좌우을 살피던 진호가 눈앞에 서있는 두 분께 물었다.
“정말 어머니랑 아버지···?”
“얘가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소릴하네. 그럼 우리가 가짜겠니? 그보다 낯간지럽게 어머니랑 아버지가 뭐라니?”
“설마 나도 죽은 건가? 여기가 천국?”
“어제 이상한 거 보고 잤어? 뭐, 천국이라면 천국이지. 우리 가족이 다함께 사는 곳이 천국이 아니면 어디가 천국이겠냐? 하하하!”
“어머머, 시간 좀 봐! 여보, 늦겠어요!”
“어, 그러네. 진호야, 가방 챙겨서 얼른 내려와라! 새학기 첫 날부터 지각하진 말아야지!”
아직까지도 상황을 바로 이해할 수 없었던 진호는 부모님께 등을 떠밀려 몸을 움직였다.
가방을 어깨에 걸고, 툴툴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공용 주차장 한 곳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발견한 진호는 또 한 번 몰아치는 감정에 휩쓸렸다.
그 때 그 차였다.
트럭에 치이면서 폐차된 부모님의 차.
그때와 비교하면 제법 멀쩡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차에 아버지가 시동을 걸면서 재차 소리쳤다.
“강진호, 얼른 타! 오늘부터는 학교 잘 다니기로 어제 아빠랑 약속했지? 어제 한 약속 잊으면 안 된다!”
***
“그럼 저녁에 보자!”
자신을 학교 앞에 데려다주고 떠나는 아버지의 차를 바라보면서 진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된 일인지, 이게 꿈이 아닌지, 여러 고민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지만, 생생한 현실감은 이 모든 게 꾸밈없는 진짜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호는 자신이 다녔던 학교로 시선을 옮겼다.
포트 레이몬드 고등학교.
미국 공립 고등학교로 이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문제아들만 모인 고등학교다.
거주 지역별로 학교가 나눠지는 미국 시스템에서 진호를 받아준 유일한 학교였으며, 그만큼 과거의 진호도 답이 없는 꼴통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학교였다.
‘철들기 전까지 부모님 속을 정말 많이 속을 썩였지. 그나마 정신을 차린 것도···, 부모님이 떠나신 이후구나.’
새삼 감회로 젖어들던 진호는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다졌다.
신께서 주신 두 번째 기회였다.
이번 기회의 삶에선 반드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겠다.
그런 다짐으로 마음을 잡은 진호가 이제 학교로 들어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고,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냈다.
용돈으로 받은 20불과 함께 들어있는 학생 신분증을 손에 쥐고 학교 안으로 들어서자 역시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와글와글!
“존! 똑바로 서서 들어와!”
“요, 와썹!”
“왓츠 굿, 마이 니거!”
“아이디 확인했으면 교실로 들어가! 너희들 첫 수업 어떤 거야? 아까부터 왜 자꾸 여기 서있는 거야?”
“헤이, 헤이, 헤이! 건드리지마요! 알아서 간다고요!”
흡사, 정글.
카페테리아로 연결된 학교 입구로 들어서자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공항에 있을 법한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 들어서는 학생들을 인도하는 선생님들과 새학기 첫날부터 불량함을 과시하고 싶은 것인지 선생님들과 시비를 붙는 학생들.
전형적인 포트 레이몬드의 등교 풍경 속에서 진호는 나름 조용히 아이디 검사를 받고 새학기 스케쥴을 전달 받았다.
그리고 빽빽하게 찬 프로그램 일정에 헛웃음을 흘렸다.
‘분명 10학년 스케쥴이어야 하는데···, 대체 작년에 몇 개나 낙제를 받아 먹은 거야?’
미국의 고등학교는 학점 제도다.
졸업을 하려면 이수해야 하는 학점들이 있고, 따라서 공부를 잘한다면 월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반대로, 교과 이수에 낙제한다면 똑같은 수업을 또 다시 들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평범한 10학년 학생이라면 9학년 때 기본 수업 레벨 1, 2를 통과해 이제 레벨 3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진호가 받아든 수업표에 적힌 교과 레벨은 2.5였다.
작년에 2레벨 수업을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을 모아놓은 수업에 배정됐다는 의미였다.
‘영어, 과학, 사회···. 죄다 2.5냐. 그나마 수학만 레벨 3이네.’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12점이라는 기록적인 점수를 기록한 진호였지만, 미국의 수학은 모든 이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진호도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보통 이만큼 낙제했다면 학년 자체를 낮췄겠지만, 진호가 그나마 10학년에 진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온전히 수학 덕분인 것이다.
그 외에 예체능으론 기타와 체육이 등록된 것을 확인한 진호는 과거의 자신에게 혀를 차다가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학교에 등교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받는 교과 첫 번째 수업을 듣기 위해서였다.
‘옛날엔 이 수업만 듣고 땡땡이도 참 많이 쳤지.’
그렇게 진호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모아놓은 수업, ESL이 진행되는 교실에 들어갔다.
***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즉, 영어가 제 2언어인 학생들을 모아놓는 수업인 ESL.
첫 수업으로 ESL을 진행하는 몰리나 선생은 교실로 향하기 전 지끈거리는 두통에 머리가 아팠다.
‘다들 어쩜 이렇게 말들을 안 들을까.’
포트 레이몬드에서 등교 시간은 전쟁이었다.
뭉쳐있으면 사고를 치는 학생들을 한 시라도 빨리 교실로 보내고, 혹시라도 이상한 물건을 들고온 학생들이 있다면 압수하기 위해 신경전을 펼치는 포탄 없는 전쟁터가 바로 이곳, 포트 레이몬드 고등학교였다.
이곳에서 벌써 4년차를 맞이한 몰리나 선생은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학교에서도 그나마 숨을 고를 수 있는 수업이 있다면 바로 ESL이었다.
아직은 영어가 서툰 학생들이 모여있어 서로간의 친목이 굳어지지 않은 수업 환경이 그나마 이곳 포트 레이몬드의 청정구역인 것이다.
그렇게 교실 문으로 안으로 들어간 몰리나는 대략 20명정도 되는 학생들에게 반가운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다들 안녕!”
“할로, 티처.”
“올라(Hola)~”
“봉쥬르!”
역시나 각양각생의 인사들로 학생들도 몰리나를 반겼다.
다른 수업들에선 느낄 수 없는 소소한 평화.
‘하지만 이런 애들도 내년 정도에 물이 들면···, 에휴.’
잠시 떠올린 참담한 미래에 속으로 한숨을 삼킨 몰리나는 일단 자리에 앉아 출석을 불렀고, 새학기를 맞아 학생들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 후 바로 시험지를 꺼내들었다.
“다들 첫 수업에 뭘 하는지는 잘 알고 있지? 그럼 오늘은 능력 테스트를 볼 거예요!”
“오, 노!”
“와이, 티처! 와이!”
시험이란 말에 학생들이 보인 반응은 뻔했다.
아무리 수준을 확인하는 능력 테스트일지라도 시험은 시험.
그 부담감에 학생들은 짧은 영어로 반발하며 하나같이 울상을 지었고, 몰리나는 부담갖지 말라며 다시금 학생들을 타일렀다.
“얼마나 실력들이 늘었나를 확인하는 시험이니까, 점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들 편하게 풀어요! 그럼 지금부터 시···, 작!”
시험이 시작되자 교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다른 포트 레이몬드 수업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고요함에 몰리나는 의자에 앉아 시험을 보는 학생들을 살폈다.
‘문제들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ESL 학생들이라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후우, 그럼 애들이 시험을 보는 동안 나는 못 마셨던 차라도 한 잔···.’
“선생님.”
“응?”
간신히 찾은 여유에 텀블러에 담아둔 찻물을 삼키려던 몰리나 선생.
그녀는 뚜껑을 열었다가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자신을 찾는 것에 고개를 들었고, 진호는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몰리나를 향해 대답했다.
“시험 문제들 다 풀었는데요. 이러면 오늘 수업은 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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