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유강현? 아, 그 유리몸?”
유리몸.
쿠크다스.
종합병동.
만신창이.
한 때, 대한민국 최고의 유망주로 불렸던 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해준 별명들.
만 16세 소년 유강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힘들었던.
미친듯이 울부짖어도 엉망이 된 몸은 돌아오질 않았다.
매일 생각했다.
온 몸을 뜯어고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커스터마이징을 시작하시겠습니까?]
* * *
삑! 삑! 삐익-
“강현아, 오늘도 고생했다.”
“2골 1어시. 해외파 실력 어디 안 간다니까.”
“고생하셨습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조기 축구 경기가 끝나고 나면 같은 팀 형들에게선 극찬이 쏟아진다.
경기 내내 혼자 상대 진영을 휘저어놨으니 그럴 수밖에.
반면에, 같은 팀의 극찬이 끝난 후에는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이 이어진다.
“저 새끼 뭐야? 선출인가?”
“쟤, 걔잖아. 카전드 유강현.”
“카전드? 아, 그 세비야 종합병동?”
빌어먹을.
카데테 + 레전드.
카전드는 내 축구인생이 끝난 후에도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별명이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세비야 FC의 유소년 팀에 속해 있던 나는 동나이대 최고의 재능으로 불렸었다.
일찌감치 국내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떠난 축구 유학.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세비야 FC의 유소년 팀에 입단해 차근차근 내 실력을 입증했다.
알레빈에서 인판틸, 인판틸에서 카데테로 올라가는 동안, 나는 팀은 물론이고 리그 내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자연스럽게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스페인 언론에서도 유강현이라는 이름 세글자에 주목했고, 새로운 스타의 탄생에 모두가 기대했다.
우습게도, 나도 내 자신이 너무 기대됐었다.
후베닐로 올라가고, 더 나아가 프로 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말이다.
매번 내 플레이가 담긴 짤막한 동영상 클립들이 온갖 커뮤니티를 떠돌아다니며 화제를 끌었으니 어린 마음에 그럴 수도 있지.
그 모든 관심이 내가 후베닐로 올라간 후 성적이 개차반이 되면서부터는 조롱으로 바꼈다는 게 문제였지만.
높은 관심에 마음이 붕 떠 나쁜 길로 빠진 건 아니었다.
단언컨대, 난 정말 축구에 미친놈이었니까.
어떤 유혹이 날 괴롭히더라도 내 축구 실력에 방해된다면 과감하게 뿌리칠 의지마저 갖춘 놈이었다.
말 그대로 근본을 갖춘 놈.
다만, 이 근본있는 놈도 부상 앞에선 한낱 어린 애에 불과했다.
저주라도 걸렸는지 후베닐에 올라간 순간부터 크고 작은 부상들이 줄을 이었으니까.
외적으로, 내적으로, 내 몸은 점차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결국 마지막 부상을 끝으로 세비야 FC에서 방출 통보를 받고, 내 축구 인생도 거기서 끝이 났다.
“스페인 물도 먹은 놈이 조기 축구에서 왕노릇하고 있는 거야?”
“쿠크다스도 조기 축구에선 안 부러질 자신 있나보지.”
“유리현, 쨍그랑!”
킥킥거리며 내 옆을 지나치는 상대 팀.
한창 인터넷에서 나를 조롱할 때 들었던 드립들이 이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멱살을 잡고 흔들었을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내게 손해라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얄궂게도 어린 시절 잠깐 쌓아놓은 명성이 이런 자잘한 시비에서는 결국 불리하게 작용됐으니까.
그 명성을 제대로 누리기나 했으면 말이나 안 하지.
난 정말 미친 듯이 축구를 한 죄밖에 없었는데.
“강현아, 우리 감자탕이나 먹으러 가자.”
“아, 전 오늘 점심 약속이 있어서요. 죄송해요.”
“그래? 그럼 다음 주에 보자! 오늘 고생했어.”
형들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사실 점심 약속은 없었지만, 그냥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후우······.”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두근두근-
거칠게 뛰는 심장 쪽을 살짝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오늘도 버텨줘서 고맙다, 이 빌어먹을 심장아.”
쓴웃음을 지은 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빵빵-
“이 시간에 길이 왜 이렇게 막혀.”
꽉 막힌 도로에 여기저기서 클락션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답답한 마음에 라디오를 틀었다.
- 안녕하세요, 사커뉴스 청취자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을 위해 따끈따끈한 축구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부드러운 디제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오늘이 바로 세비야 FC의 내한 경기가 있는 날이죠? K리그의······.
오늘이었나.
- 세비야 FC하면 생각나는 이름이 있으실 텐데요. 바로 유강현 선수죠?
내 이름이 거기서 왜 나와?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아직까지도 스페인 리그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내 이름이 빠지질 않는다.
- 현 세비야 FC의 명실상부 에이스 훌리오 멘데즈 선수가 바로 그 유강현 선수와 유소년 팀 생활을 함께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저희 취재진이 직접 물어봤다고 하는데요!
“아, 제발 좀!”
그 놈의 ‘두유노 캉현 유?’ 좀 그만 할 수 없냐고.
두유노 클럽은 나 같은 놈이 들어갈 자리가 아닌데.
- 캉현 유? 아, 어릴 때 함께 뛰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기억나겠지.
훌리오 멘데즈.
지금은 세비야 FC의 에이스가 된 이 녀석은 유소년 팀 시절 내 백업 멤버였다.
정확히는 내가 카전드였던 그 시절까지 말이다.
- 강한 임팩트가 있었던 선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크게 기억에 남진 않는다.
지랄은.
나 때문에 출전 못한다고 부모님까지 감독님께 찾아와서 찡찡거렸던 거 기억 안 나냐?
“하긴, 그러면 뭐 하냐. 저 놈은 프리메라리가에서 뛰고, 난 고작 조기 축구에서 왕노릇이나 하고 있는데.”
- 아,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자기 관리가 많이 부족한 친구였다. 자기 관리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미친 새끼.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나는 손에 쥔 핸들을 꽉 부여잡아야만 했다.
내 선수 생활의 숨통이 완전히 끊기고, 한참을 재활 운동에만 전념해야 했던 그 마지막 부상이 저 개자식의 고의적인 태클 때문이었으니까.
- 청취자 여러분, 운동선수에게 부상으로 인한 은퇴는 참 잔인한 거 같죠?
맞는 말이다.
신체의 한계 때문에 꿈이 좌절된다는 게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니까.
내가 제일 잘 알지.
- 그 신체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 있다면 도전하시겠나요?
도전해야지.
못 다 이룬 꿈이 있는데.
건강하게, 몸 걱정 없이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유강현 씨?
“응? 방금 내 이름이······.”
빵빵!!!
내 시야에는 역주행 중인 트럭이 들어왔고, 내 기억도 거기까지였다.
끼익- 쾅!
- 청취자 여러분, 회귀는 트럭이 국룰이죠?
.
.
.
축축한 느낌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따뜻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 맛은,
짜다.
“눈물?”
미간을 좁히고 눈을 몇 번 껌뻑 거렸다.
사고가 난 게 아니었나?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배경.
“여기··· 세비야 아니야?”
헛것이 보이나 싶어 눈을 비벼 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을 서 있다가 내 손에 꼬깃꼬깃 접힌 종이가 들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종이를 펼쳐보니 스페인어로 무언가 쓰여 있었다.
이 역시도 뭔가 익숙한 상황이다.
“희귀난치성 심장질환······.”
다시 고개를 돌려 풍경을 바라보고 손에 든 종이를 양손으로 완전히 구겨버렸다.
“옘병!”
나는 동그랗게 구겨진 종이를 바닥에 내던졌고 통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봤다.
어리다. 어린 모습을 한 나였다.
쉽게 말하면.
회귀했다.
* * *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익숙한 세비야의 거리를 걸어 다니며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신체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 있다면서, 뭐냐고 대체.”
트럭에 치이기 전, 디제이가 읊조렸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그 신체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 있다면 도전하시겠나요?
-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유강현 씨?
소설 속 주인공처럼 회귀한 것 까진 좋았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클리셰는.
“아주 싱싱한 시절로 돌아가던지, 아니면 강철 같은 몸을 가진 놈으로 환생을 하든지 해야지. 왜 하필 사형선고를 당한 오늘의 유강현이냐고!”
훌리오 멘데즈에게 태클을 당하기 전.
나는 구단에 숨기고 있던 심장질환을 갖고 있었다.
병명조차 내릴 수 없는 희귀병.
의사 선생님은 심장에서 혈액이 뿜어져 나가야할 유출로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의 폐쇄됐다고 했다.
비슷한 케이스의 심장질환들은 수술이라도 가능했지만, 내 경우에는 정확한 원인을 찾기 힘들어 그것도 불가능하단다.
- 최대한 약물 치료로 버텨봐야 합니다. 그리고 과격하게 움직여야 하는 운동은 이제 사실상 불가능해요.
어느 순간부터 조금만 뛰기만 해도 숨이 벅차오르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던 게 체력 때문이 아니라 병 때문이었다니.
엉망이 된 몸을 체력으로라도 비벼보겠다고 꾹 참고 훈련해왔던 게 머저리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몸속까지 엉망이 됐다는 진단을 받고 혼자 하루 종일 질질 짜며 돌아다녔던 날.
그 날로 회귀한 거다.
“이 몸으로 뭐 어쩌라고?”
기껏 과거로 돌아왔건만 달라질 건 없었다.
여전히 내 몸은 종합병동이고 똑같은 과거가 되풀이 될 거다.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냐고.
오랜만에 세비야 구경이나 하라는 거야?
- 신체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 있다고 했지, 누가 처음부터 싱싱한 몸을 준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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