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헉······ 헉······!”
한 남자가 어두컴컴한 산속에서 거친 숨결을 토해내고 있었다.
남자는 금세라도 쓰러질 것처럼 다리를 비틀거렸다.
뚝뚝.
찢어진 이마 사이로 흐르는 붉은 체액.
땀과 피가 섞여 남자의 왼쪽 뺨을 적셨다.
박건우.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째서.
“왜 저에게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제발!”
몽둥이와 나이프로 무장한 남자들이 박건우를 둘러쌌다.
그 한 가운데에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남자.
김치열이 한쪽 입 꼬리를 스윽 말아 올렸다.
“아버지의 명이시다.”
“김한교 의원님께서······ 요?”
“그래.”
치익!
담배에 불을 붙인 김치열.
후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낸 그가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빠르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어떤 기자 놈이 우리 아버지의 비밀을 교묘하게 빼갔더라고. 너도 뉴스 봐서 알겠지?”
공금 횡령.
그리고 기업들과의 유착 관계.
온갖 의혹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물론 전부 다.
“사실이라서 더 골치 아프지.”
후우우-!
아까보다 더 길어진 담배 연기.
“박 팀장. 너도 알고 있었지? 아버지한테서 지금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 말이야.”
경호팀장 역할을 맡고 있는 박건우였기에 김 의원이 외부 일정을 소화할 때에도 거의 그의 곁에 붙어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은 통화 내용.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원님의 약점을 함부로 외부에 퍼뜨리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이때.
김치열이 이렇게 대답했다.
“믿어.”
“······예?”
“귀 먹었냐? 그러니까. 박 팀장, 믿는다고.”
말은 믿는다고 하지만.
보여주는 행동은 달랐다.
언행불일치.
김치열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떨군 채, 구두 끝으로 그것을 짓밟아버렸다.
“그래서 박 팀장을 고른 거야.”
“고르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김치열은 가지고 있던 A4 용지 다수를 박건우에게 던졌다.
촤락!
여기저기 흩날리는 종이들.
그 위에 새겨진 문구들이 박건우를 자극했다.
[박건우 경호팀장이 김한교 의원 몰래 기업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유착관계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조서 꾸밀 것.]
[관광사업 프로젝트 외 총 12건, 박건우 경호팀장이 한 것처럼 꾸며서 기사 내보내도록 하라.]
[기사 나가기 전에 내용 미리 검수할 것.]
“······!”
김한교 의원의 모든 죄를 박건우에게 뒤집어씌울 의향이었다.
마지막 문구가 가장 신경이 쓰였다.
[박건우 경호팀장 자살 기사 작성해서 기자들에게 배포, 유서 준비할 것.]
그제야 박건우는 갑자기 김치열이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김치열은 떨어진 종이 다발 중 한 장을 집어 들면서 말했다.
“저승길 떠나기 전에, 내가 박 팀장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그가 손짓하자, 무기를 든 남자들이 박건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개새끼들아!!!”
결국 박건우의 분노가 폭발했다.
자그마치 10년이다.
그때까지 박건우는 김한교 의원을 충실히 보필했다.
자신의 몸보다도 더 소중히, 그리고 더 안전하게 모셨건만.
돌아오는 건 이딴 식이었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10년의 정성이 배신당한 기분.
그건 당해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면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휘익!
좌측에 서 있던 남자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박건우는 몸을 뒤쪽으로 빼면서 남자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냈다.
몽둥이를 쥔 손목을 잡고 비틀자, 남자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뻐억!
발로 남자의 옆구리를 강하게 후려찬 박건우.
떨어진 몽둥이를 들고서 김치열을 향해 뛰어들었다.
“반드시 죽인다, 반드시!!!”
그러나.
박건우의 시도는 미수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방에서 달려든 남자들이 박건우를 강제로 찍어 눌렀다.
“놔! 씨발 새끼들아!!!”
쭈그려 앉으면서 박건우를 내려다보는 김치열.
그는 다시금 씨익 웃었다.
“10년 동안 고생 많았어, 박 팀장. 이제 그 목숨, 마지막으로 우리 아버지를 위해 희생해줘야겠어.”
“······!!!”
“시작해.”
“예!”
일순간 나이프가 달빛에 반짝였다.
잠시 후.
푸욱-! 푹! 푹!
나이프가 박건우의 옆구리에 수차례 박히더니, 반짝이던 날에 붉은 선혈이 묻어나왔다.
흐려지는 의식.
정신줄을 붙잡으려고 했으나.
죽음의 순간은 성큼, 성큼. 박건우에게 다가왔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박건우는 김치열을 올려다봤다.
“너······ 내가 언젠간 복수한다. 네놈 애비까지······ 반드시······!”
“어련하시겠어.”
이내 밤하늘보다도 짙은 암흑이 박건우를 덮쳤다.
***
“으윽······.”
입에서 흘러나오는 옅은 신음소리.
박건우는 자신의 신음에 서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여보세요~? 일어나세요. 지금 시간 없어요.”
낯선 여성의 목소리에 박건우는 강제로 눈을 뜨게 되었다.
그 순간, 박건우는 눈을 의심했다.
밑도, 끝도 없이 펼쳐진 무의 공간.
위, 아래를 구분할 수 없는 낯선 장소에서 박건우는 여러 차례 눈을 깜빡였다.
“여, 여긴 어디야!”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이프를 여러 번 찔렸음에도 불구하고 옆구리에선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대체······.”
“아아. 저 보여요?”
긴 머리에 한복을 입은 20대 초반의 여성이 박건우를 향해 오른손을 흔들었다.
“누구냐, 넌!”
정체를 묻는 박건우의 말에 여성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승사자랍니다.”
“저······ 뭐?”
“시간 없으니까 빨리 설명해드릴게요.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어흠!
한번 헛기침을 하면서 목소리를 가다듬은 여성.
“축하합니다, 박건우 씨! 천재일우의 기회로 당신은 딱 한번, 회귀할 수 있는 자격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으시네요.”
“회, 회귀할 수 있다고? 내가?”
“네! 하지만 이를 어쩌나~? 회귀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제가 방금 확인해보니까 박건우 씨는 작성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더라고요. 고작······ 30초?”
30초.
그 말에 박건우의 정신이 번뜩 들었다.
가만히 보니, 자신의 앞에 어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여성이 말했던 대로, 종이 위에는 ‘회귀신청서’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설문지 같은 항목들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이제 20초 남았네요.”
“나, 나보고 뭘 어쩌라고!”
“간단해요. 그걸 빠른 시간 내에 작성하시면 돼요. 그나저나 안타깝네요. 만약 박건우 씨가 살아생전 착한 일 좀 많이 하신 의인이었더라면, 그만큼 추가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졌을 텐데. 30초밖에 안 주어진 걸 보니까, 박건우 씨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보네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여성.
그러나 박건우는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었다.
“젠장!”
급하게 펜을 들었다.
회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려선 안 된다.
복수.
이 두 글자가 박건우의 마음속에 불을 지폈다.
빠르게 항목을 확인하는 박건우.
[회귀하고픈 시간대를 적어주세요.]
[과거의 기억을 전부 가진 채로 회귀하고 싶은 경우, ‘네’ 칸을 채워주세요. 해당 사항이 없을 경우, ‘아니오’를 선택해주세요.]
이밖에 수십 개의 세부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씨발, 이걸 언제 20초 안에 다 해!’
아니, 이젠 20초가 아니었다.
“10, 9, 8, 7······.”
“천천히 세라고! 망할!”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급하게 칸을 채워갔다.
하지만.
“3, 2, 1. 땡!”
여성의 ‘땡!’ 선언과 동시에, 갑자기 박건우가 서 있던 바닥이 푹 하고 꺼졌다.
“으아아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순식간에 사라진 박건우.
그가 작성한 회귀신청서를 확인하던 저승사자의 입에서 ‘어머나’라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이를 어쩌나.”
과거로 돌아가도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겠습니까?
네.
회귀하고 싶은 시간대는?
15년 전 여름.
하지만 그는 정작 중요한 항목을 체크하지 못했다.
다시 한번 ‘박건우’ 본인으로 회귀하시겠습니까?
“이걸 체크 안 하셨네.”
***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처음에는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몸이 적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박건우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몸으로 돌아와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건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티비 소리.
마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구오제철이 재정난에 시달린 끝에 결국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오제철이······ 파산?’
정확히 2010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얼핏 회귀신청서 내용을 떠올린 박건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말로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고?’
솔직히 반신반의 했었다.
그러나 그 빌어먹을 김한교 부자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심정을 회귀신청서를 작성했었던 박건우다.
그게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에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겨우 상반신을 일으켰을 때.
그제야 박건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여긴······ 어디지?”
혼잣말.
그러나 들어본 적 없는 음성이었다.
틀림없다.
이것은 ‘소녀’의 것이었다.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축 늘어지는 긴 머리카락들.
그제야 박건우는 마지막에 자신이 체크하지 못했던 항목을 떠올렸다.
‘설마······!’
책상 위에 놓인 거울을 다급하게 집어 들었다.
뒤늦게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처음 보는 10대 여고생의 얼굴이 보였다.
“씨바아아알-!!!”
시원스런 욕지거리가 작은 집 내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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