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컹!
끼이이익!
육중한 철문이 열린다.
앞선 몇몇 사람들이 힘없이 걸음을 옮긴다.
차례를 기다리며, 그들의 뒤를 따른다.
낯은 매우 익지만, 친분이라곤 없는 이들과 잠시 눈을 맞췄다.
단정한 제복 차림을 한 그들이 애써 내 눈빛을 피한다.
멋쩍은 마음에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눈을 부시게 했다.
···.
철문 밖.
십여 명 남짓의 사람들이 몇 개의 무리를 지어 서 있다.
짜기라도 한 듯, 시커먼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있는 것도 보인다.
안에는 네모반듯한 두부가 들어 있으리라.
뭐, 보지 않아도 안다.
무조건이다.
“아이고, 이것아···.”
“어, 어머니···. 흑흑!”
눈물겨운 모자의 상봉이 이루어진다.
그것을 시작으로 남은 무리도 하나둘 애틋한 만남을 이어 간다.
···.
사람들을 지나 한적한 곳으로 나왔다.
이내 등 뒤로 여러 개의 발자국이 거리를 좁혀 왔다.
애써 돌아보거나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던 탓이었다.
“형님!”
하나의 외침.
그리고 이어지는 수십 개의 함성.
주변의 공기가 흔들린다.
···.
나는 건달이다.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인 실전 깡패.
활동하던 지역에선 ‘미친개’로 불렸다.
내가 뜬다는 소리만 들려도 웬만한 것들은 죄다 숨기 바빴다.
하던 짓거리가 그러하니, 삶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스물다섯 나이에 7년 형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
출소했다.
···.
걸음을 멈추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세웠다.
바짝 따라붙었던 건장한 사내가 대뜸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넙치야···.”
사내를 부르는 호칭이다.
얼굴이 넓적하고, 눈 사이가 멀어 그리 불린다.
내 부름에 녀석이 허리를 크게 숙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네, 형님! 말씀하십쇼.”
잠시 말을 잇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녀석이 뭔가 알았다는 듯, 곧장 품 안을 뒤진다.
그러고는 공손한 자세로 양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형님!”
녀석의 손에는 비닐도 뜯지 않은 담배가 들려 있었다.
빵에 들어가기 전, 내가 즐겨 피우던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내민 담배를 받지 않았다.
3년 전에 끊었으니까.
좀 더 틈을 주다가는 말을 이었다.
“나 말이다.”
“네, 형님!”
“이제 니들 형님 안 하련다.”
“에? 그게 무슨···.”
녀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희미한 미소를 남기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
철창 안에서는 그리도 더디던 시간이 오늘은 좀 빨리 흐르는 듯했다.
그러나 조바심 같은 건 없었다.
이래저래 시간은 많았다.
기차와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어릴 적 살던 고향이었다.
“여기도 많이 변했구나.”
교도소에 수감됐던 7년을 포함, 10년도 넘게 찾지 않았다.
변한 게 당연했다.
그래도 3층을 넘지 않는 건물이 즐비하다.
여전히 촌구석이란 얘기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익숙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매우 낡은 분식집.
제대로 된 간판도 없고, 손님도 없다.
아니, 아예 주변 자체가 조용하다.
“후우우.”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온다.
어떤 먹먹함과 그리움 때문이다.
울컥한 기분에 눈가도 뜨거워졌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불도 켜지 않은 홀.
자그마한 체구의 노파가 파를 다듬고 있다.
사람이 들어왔는데 쳐다보지도 않는다.
“할매···. 나 왔···.”
지랄 같이 울컥해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제야 고개를 들고 날 보는 할매.
눈이 침침한지 몇 번을 끔뻑거린다.
그러고는 대뜸 소리친다.
“아이고, 이 썩을 놈아!”
힘도 없고, 가래가 끄는 거친 음성.
그러나 그 안에 깃든 반가움.
그리웠었다.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 할매···.”
“아이고, 아이고···. 이놈아···.”
절뚝이며 다가오는 할매를 끌어안았다.
원망처럼 등을 두드려대는 손길에 더욱더 진하게 통곡했다.
***
“일단 이거 먹고 있어.”
눈물겨운 상봉을 마치고, 할매가 내준 것은 떡볶이 한 접시였다.
보고 있자니, 또 눈물이 나오려 했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 질리도록 먹었었다.
그리고 그게 싫어서 도망치듯 고향을 떠났었다.
‘여전하네.’
기억에 박힌 떡볶이의 비주얼 그대로다.
빨갛다기보다는 주홍빛에 가까운 색.
투박한 쌀떡과 오뎅의 싼 티 나는 조화.
체인점이 즐비한 요즘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초라하다.
포크로 떡과 오뎅을 동시에 찍었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갔다.
익숙한 고추장의 향과 맛이 전해진다.
묵직하면서도 오래된 그런···.
질겅질겅.
쫀득쫀득.
오래도록 끓여서 진득해진 떡의 식감.
오뎅 또한 불고 불어서 흐물흐물하다.
맵기보다는 달달함이 더 강한 맛.
역시, 요즘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맛있다.
내 지난 시절의 향수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맛있다.
아닌 것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좋은 것.
그런 느낌이다.
쩝쩝짭짭!
하나를 음미하고는 나도 모르게 허겁지겁 입에 쓸어 넣었다.
“천천히 먹어. 뭐가 그리 급해서는···.”
핀잔과 함께 할매가 오뎅 국물을 내 앞에 내놓는다.
색도 그렇고, 떠다니는 부유물도 그렇고, 절대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확 하고 풍겨 오는 후추 향과 진한 육수 냄새에 침이 고인다.
이미 알고 있는 맛이라 더 그런 듯하다.
숟가락도 필요 없다.
그릇째 들고는 호호 불어 한 모금 마신다.
입안에 달라붙은 떡볶이 소스를 씻어 내며, 개운하면서도 진한 맛이 가득 차오른다.
“더 먹을 텨?”
나를 물끄러미 보던 할매가 묻는다.
이미 손에 들린 커다란 국자에는 떡볶이가 가득 담겨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접시를 앞으로 내밀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엄청 맛있네?”
“썩을···. 말은 잘 헌다.”
“근데,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
“손님이 왜 없어?”
“??”
“아직, 때가 아닝 게 그러지!”
어째 자신감이 넘치는 할매의 말투.
어깨를 으쓱하고는 접시에 얼굴을 묻었다.
***
왁자지껄.
소란소란.
분주하기가 시장 통이 따로 없다.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그리 조용했건만···.
가게의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나이 어린 것들의 난입이 끊이질 않는다.
“삼촌! 여기 떡볶이 좀 더 주세요.”
교복 차림의 단발머리 여자애가 소리친다.
언제 봤다고 삼촌이란 호칭인지···.
게다가 생글생글 웃기까지 하며, 친한 척을 한다.
“어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버벅거렸다.
곧장 할매의 목소리가 날아든다.
“뭐 하러 인나. 그냥 거기 앉아 있어.”
그러면서 떡볶이가 가득한 접시를 내게 내민다.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할매에게 받은 접시를 들고는 테이블 곁으로 다가갔다.
옹기종기 앉은 4명이 동시에 소리친다.
“감사합니다.”
귀가 따끔해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러고는 멋쩍게 돌아섰다.
툭!
등 뒤로 무언가가 와 닿는다.
화들짝 놀라선 다시 돌아섰다.
날 올려다보는 단발머리의 커다란 눈이 느릿하게 껌뻑거리는 중이었다.
“머, 뭔데?”
대답 대신에 눈빛이 아래로 내려간다.
따라서 시선을 옮겼다.
손에 들린 빈 그릇이 보인다.
“국물?”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아아···.”
나직하게 한숨을 내 쉬고는 할매를 돌아봤다.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할매는 이래저래 정신이 없는 듯했다.
다시금 고개를 돌려 단발머릴 쳐다봤다.
그러고는 굵직한 소리로 말했다.
“네가 떠다 먹어라!”
“네?”
“알아서 떠다 먹으라고”
“왜요?”
의아한 듯 계속 되묻는다.
이내 머릿속에 익숙한 문구가 떠올랐다.
“물은 셀프란 말도 몰라?”
“??”
“국물도 물이다. 그러니 셀프다.”
***
“후아아···.”
전쟁 같은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진이 빠졌다.
솔직히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할매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매일 이래?”
“뭣이?”
“늘 이렇게 북적거리냐고”
“핵교 끝나는 시간이면 늘 그렇지.”
“안 힘들어?”
“왜 안 힘들겄냐? 그래도···.”
“??”
“잊지 않고 찾아 주니, 힘내서 해야지.”
덤덤한 할매의 말 속에는 어떤 자부심 같은 게 깃들어 있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도 잘 끝냈으니 됐다.’
심신이 고단했다.
나름으로 보람은 있었다.
이제 마무리를 하고, 푹 쉬면 될 터···.
정녕, 그러면 될 줄 알았다.
***
저녁 7시.
예상치 못했던 저녁 장사가 시작됐다.
“에···.”
큼직한 떡볶이 판이 걷히고, 새로운 철판이 자리를 차지했다.
오랜 시간 불과 기름에 길을 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오뎅 국물 통 옆으로도 커다란 통 하나가 추가됐다.
통 속에 든 것은 물.
강력한 화력에 금세 팔팔 끓는 물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번엔 죄다 성인들이었다.
“여기, 국수 두 그릇이랑 소주 하나요.”
“파전도 하나 줘요.”
익숙한 뉘앙스의 주문이 밀려든다.
손님들을 대하는 할매도 여유롭다.
그냥 봐도 수년간 해 온 티가 난다.
낮에는 떡볶이를 파는 분식집.
밤에는 국수와 전, 술을 파는 술집.
어째 매치가 안 되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별다른 변화 없이도 가능하다.
‘그냥 할매라고만 생각했는데, 대단하네.’
낮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썰렁하기 그지없는 가게를 보고는 어떻게 먹고 사나 걱정했었다.
그런데, 이건 뭐···.
괜한 걱정에,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된장찌개 하나 주세요.”
메뉴에 없는 주문이다.
순간, ‘어라?’ 했다.
근데, 할매의 반응은 덤덤하다.
“좀만 기다려요. 내 이거 부치고 줄 테니···.”
“예, 칼칼하게 팔팔 끓여서 부탁해요.”
된장찌개를 시작으로 꽤 다양한 음식들의 주문이 이어졌다.
물론, 모두 콜이었다.
탕탕탕!
촤르르륵!
보글보글!
할매는 주문된 음식을 척척 만들어 냈다.
낮에도 그랬지만, 전혀 느릿하지 않았다.
손님들의 평도 한결같다.
“역시, 할매표 된장찌개는 일품이라니까?”
“소주 한잔에 제육 한 점. 크, 죽인다.”
“일 끝내고, 여기 오는 게 내 낙이야!”
“누가 아니래? 나도 그렇다고.”
단골이라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얼굴과 말투에 진심이 묻어 있다.
볼수록 할매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들어갑니다.”
“고마워요. 또 오세요.”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
드디어, 진짜, 완전히 하루가 끝났다.
“아이고, 힘들다.”
할매가 앓는 소리를 흘리며 의자에 앉는다.
고단함이 물씬 풍겨 왔다.
그런 할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는 할매가 묻는다.
“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냐?”
“아, 아니···.”
“그럼, 왜 그리 빤히 보냐?”
“그, 그냥···. 대단해 보여서···.”
“별것이 다 대단한가 보네.”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한다.
그리곤 작은 손으로 어깨를 토닥인다.
“어깨 좀 주물러 줄까?”
“아서···.”
이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다가는 은근슬쩍 돌아앉는다.
곧장 할매에게 다가갔다.
할매가 흐뭇한 투로 말을 잇는다.
어떤 장단이 들어 있는 것도 같다.
“어디, 오랜만에 울 손주 새끼 손맛이 어떤지 좀 볼까나.”
한껏 기대하는 투에 슬쩍 긴장이 인다.
손을 한 번 털고, 꺾어 긴장을 풀고는 가녀린 어깨를 조물조물 주무른다.
“어이구, 시원해라. 어이구 좋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마사지 업소에서 받았던 노하우를 토대로 열과 성의를 다해 안마를 이어 나갔다.
“아예 내려온 겨? 아님, 또 가는 겨?”
할매가 무심히 물었다.
오래 생각지 않고, 바로 답했다.
“안 가! 이제 할매랑 살 거야!”
내 대답에 할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먹먹하고, 애틋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괜히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장하다. 이시우!’
속으로 스스로를 격려하고, 칭찬했다.
7년간의 교도소 생활.
그 안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저지른 죄들을 깊이 반성했고,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기를 기도했다.
‘나가서는 깨끗이 손을 씻는다. 그리고 새 출발 하는 거다.’
출소하자마자, 고향과 할매를 찾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 와서 확실히 깨달았다.
열심히 사는 할매의 모습과 행복해하는 손님들을 보면서 말이다.
마음이 든든해졌다.
계속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를 하든,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먹을 꼭 쥐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자, 아자!’
할매가 그런 내 손을 슬쩍 잡았다.
쭈글쭈글하지만, 친근한 온기가 느껴진다.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다시금 잘 왔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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