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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트킹 1화

2014.08.26 조회 3,509 추천 51


 1화 현재 : 광란의 학살자(Demoniac Massacre)
 
 
 퀘에엑!
 날카로운 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여 피하며 사내는 단검을 꺼내 들고 앞으로 쭈욱 찔러들어 갔다.
 푸후욱!
 상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사내는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왼손을 들어 단검의 끝을 더욱 밀어 넣었다. 단검의 손잡이까지 완벽하게 상대의 심장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죽엇!”
 또다시 들려오는 광폭한 외침. 사내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닝스타. 사내는 급했는지 심장 깊숙이 찔러 넣은 단검을 놓아버리고 그대로 앞으로 굴렀다.
 푸칵!
 애꿎은 모닝스타가 간발의 차로 사내가 있던 자리를 파고들었다. 진득한 핏물과 섞인 축축한 흙이 튀어 올랐다.
 “이런, 썅!”
 공격이 실패했음을 알았는지 육두문자를 내뱉는 자. 앞으로 굴러간 사내를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듯 땅에 박힌 모닝스타를 다급하게 끌어올렸다.
 하지만 쉽지 않은지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앞으로 굴러간 사내가 글라디우스를 잡고 자신의 옆구리를 향해 쇄도해 오고 있었다.
 “이익!”
 푸각!
 모닝스타를 든 사내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옆구리에는 글라디우스, 등에는 큼지막한 도끼, 그리고 복부에는 날카롭게 빛나는 창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한 사내의 몸에 세 개의 무기.
 그 무기의 주인공들은 서로를 확인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 턱짓으로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글라디우스를 든 사내는 이내 재빠르게 그것을 잡아 빼고 단검 역시 회수했다.
 “크아아악!”
 “죽어! 죽으란 말이닷!”
 “크하하하! 이거야, 이거!”
 “크허어엉! 무, 무서워.”
 사방에서 들려오는 함성, 울음, 그리고 비명 소리. 6월의 뜨거운 햇빛에 타들어가던 대지는 전장에서 흘리는 피로 인해 질척하게 변한 지 오래였다.
 기사들은 햇빛에 반사되는 영예로운 풀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하고, 병사들과 용병들을 썩은 밀짚 베어내듯 베어내며 돌격하고 있었다. 용병들과 병사들은 이 무지막지한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며 창을, 검을, 때로는 떨어져 나온 팔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었다.
 “돌격하라!”
 기사들의 외침이 사방에서 웅웅거리면서 들려왔다. 거친 말발굽 소리가 전장을 휘어잡고 있다. 그러한 기사들의 외침에 용기를 얻은 병사들과 용병들이 다시 전의를 불러일으키며 적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내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전혀 병사나 용병 같지 않은 사내는 덥수룩한 수염과 조금은 비대해 보이는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둥글둥글한 얼굴은 두툼한 목살로 인해 어깨와 딱 붙어 보여 단단함을 느끼게 했다. 레더 메일을 입긴 했으나 어깨와 팔 부분은 훤히 드러나 있고, 손에는 두툼한 건틀릿이 끼워져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를 비대해 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두툼한 뱃살 탓이 컸다. 전투를 하는 용병이나 기사들은 절대 뱃살이 나오면 안 되었다. 그만큼 둔해지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뱃살을 인격, 혹은 부의 상징이라 생각하지만 전장에서 두툼한 뱃살은 저승으로 가는 특급 팔두마차를 탄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사내는 살아남아 있었다. 단검, 장검, 팔치온, 글라디우스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활용해 상대를 제압했다. 심지어는 부러진 화살을 쓰러진 적병의 눈알에 찍고 목에 구멍을 내면서 확실하게 사살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내는 살의(殺意)로 번들번들해 감히 두 눈을 뜨고 마주 보기조차 겁이 났다.
 “후욱! 후욱!”
 사내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결코 지쳤다는 기색을 볼 수 없었다. 옆집 아저씨 같은 푸짐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표정은 지극히 냉랭했다.
 “쓰벌, 열라게 많네.”
 그의 입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찌나 악마같이 날뛰었는지 적병들조차 그 기세에 눌려 주변에 약간의 공간까지 생겨났다.
 “카악! 퉤엣! 덤벼, 이 새끼들아!”
 한 손에는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도끼를, 또 다른 한 손에는 도끼 못지않게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은 해머를 들고 득달같이 적병을 향해 쇄도했다.
 “어이! 아이언! 살살 좀 하자, 살살 좀!”
 그때 한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사내는 아이언이라 불리는 사내보다 조금, 아니, 많이 컸다. 대략 2미터 정도? 조금 크긴 크다. 하나 몸매는 아이언이라 불리는 사내와는 전혀 달랐다.
 얼굴 생김새로 보아 나이는 비슷한 듯했다. 그는 커다란 할버드를 들고 있었다. 아이언과 같이 그 역시 주변에 조그마한 공간이 생기고 있었다. 커다란 키와 거대한 바위 골렘처럼 보이는 체구 덕분에 오히려 아이언이라는 사내보다 더 무식하게 보였다.
 “스톤, 너나 살살 해라.”
 그러면서 이가 빠진 가운데 진득한 핏물이 흘러내리는 도끼를 거침없이 휘두르는 아이언이었다.
 콰지지직!
 무언가 부서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손으로 전해지는 둔중한 느낌. 왠지 모르게 쾌감이 드는 아이언이었다. 불현듯 드는 그 생각에 아이언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안 든 탓이다. 사람을 죽이는데 쾌감을 느끼다니. 비릿하고 역겨워야 할 피 냄새가 향긋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염병.”
 아이언은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그런 행동에 스톤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전투에만 투입되면 말이 많아지는 아이언이었다.
 “죽엇!”
 누군가가 창을 찔러들어 왔다. 스톤은 슬쩍 몸을 비틀었다. 도저히 거대한 체구를 지닌 자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리고 무려 4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할버드를 마치 가벼운 나무 방망이 휘두르듯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렸다.
 쩌어억!
 사방으로 피와 함께 뇌수가 튀어 올랐다.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대치하고 있던 병사들과 용병들은 입을 벌렸고, 걸음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
 “스톤 오빠! 그러지 말랬지!”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뾰족한 목소리. 167센티미터 정도의 늘씬한 체구에, 드러난 복부에는 11자 복근과 짝짝 갈라진 대퇴근이 선명한 여전사였다. 가슴 부위가 단단하고 두터운 비늘 모양의 쇠미늘 갑옷과 연결된 견갑을 하고 복부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 있다.
 엉덩이 부위 역시 쇠미늘 갑옷을 걸쳤고, 쭈욱 뻗은 늘씬한 다리와 두툼한 쇠미늘 장화를 신고 있었다. 자신의 키보다 두 배는 큼직한 양손검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적병들의 목을 가볍게 잘라낸다.
 “이게 뭐야, 더럽게?”
 “아하하! 크, 크리스탈. 뭐… 거기 있었냐?”
 “흥! 끝나고 봐!”
 그 가녀린 여전사의 말에 그저 뻘쭘하게 입맛을 다시는 스톤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아이언은 아무 말 안 하는구만.”
 “아이언 오빠는 나하고 거리가 멀잖아!”
 빽 소리를 지르는 크리스탈이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적병을 향해 거침없이 양손검을 휘둘렀다. 여자에게는 버거운 양손검이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무게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
 
 아이언, 스톤, 크리스탈이 싸우는 이곳은 프리스톤 왕국과 켈로만 왕국이 무려 100년에 걸쳐 영토 전쟁을 벌이고 있는 칼데쉬 평원이었다. 칼데쉬 평원은 참으로 오묘해 프리스톤 왕국은 칼데쉬 평원으로, 켈로만 왕국은 브로네스 평원으로 부르고 있었다.
 프리스톤 왕국과 켈로만 왕국이 이 한 평원을 두고 100년 동안이나 싸우고 있는 이유는, 바로 칼데쉬 평원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아틸로스 강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홀리 아일랜드 때문이었다.
 물론 켈로만 왕국에서는 이를 시에로스 강, 그린 아일랜드라 불렀다. 한 지역을 서로 지명을 달리해 부를 만큼 두 왕국의 집착과 애증은 상당히 심했다.
 홀리 아일랜드가 중요하긴 했다. 그만큼 영토가 늘어났으며 상대 왕국의 바로 턱 밑에 비수를 들이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섬이었다.
 전략적인 입장에서 보아도 분명 중요한 지역이기는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두 왕국 간에 존재하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아니, 두 왕국 간의 역사적인 사실 때문인지도 몰랐다.
 프리스톤 왕국과 켈로만 왕국은 원래 하나의 왕국이었다. 과거 제국을 압도할 정도의 무력을 가졌던 바이마르 왕국 말이다.
 판노티아 대륙은 5제국, 203왕국, 27공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5제국은 카르뮨, 히르센, 록센티르, 슐레만, 록턴 제국이었다. 그리고 왕국 중 군사력이나 경제력 면에서 다섯 제국에 버금가는, 제국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라가 열 개 정도 됐다.
 강한 순서부터 정리하자면 프린츠, 브리튼, 쥬만, 켈로만, 캐로틴, 아틸라, 스파르탄, 인트라네스, 탄키스, 프리스톤 왕국 순이다. 물론 열 개의 왕국이 모든 면에서 제국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했다면 5제국이 아니라 15제국이 되었을 것이다.
 이 왕국들은 제국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반드시 하나씩은 존재했다. 그중 상위 네 개의 왕국은 영토나 인구적인 면에서만 제국에 뒤처질 뿐,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인 면에서는 근접하거나 그들보다 앞선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판노티아 대륙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섯 개의 제국이 동, 서, 남, 북, 중앙을 나누어 패권을 차지하는 가운데 수없이 많은 고만고만한 왕국과 공국이 탄생되었다 사라져 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중 중부 대륙은 히르센 제국이 중심을 잡고, 켈로만 왕국과 프리스톤 왕국이 주변 왕국을 선도하고 있었다. 켈로만 왕국은 끊임없이 확장에 확장을 거듭했고, 두 개의 왕국을 집어삼키고도 성이 차지 않는지 프리스톤 왕국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이 무려 100년간 이루어지고 있었다.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가끔은 오히려 켈로만 왕국을 궁지에 몰아붙이기까지 하는 프리스톤 왕국.
 전대 국왕은 아틸로스 강 너머까지 세력을 확장했으나, 당대의 국왕인 비스마르크 국왕 대에서는 켈로만 왕국에게 아틸로스 강을 내주고 칼레쉬 평원에서 전쟁을 하고 있었다.
 현 비스마르크 국왕이 즉위한 지 12년. 첫 5년은 아틸로스 강 너머의 칼레쉬 평원을 선점했으나, 7년 만에 홀리 아일랜드와 아틸로스 강 이남까지 내어주고 칼레쉬 평원의 3분의 1 지점까지 밀린 상황이었다.
 하나, 서서히 국정이 안정되어 보급이 원활해지고 병력이 신속하게 보충되자 조금씩 켈로만 왕국을 밀어 올리고 있는 프리스톤 왕국이었다.
 아이언과 스톤, 그리고 크리스탈이 속한 곳은 프리스톤 왕국 북부방면군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측의 겔러웨이 전선 방어 및 수복을 명 받은, 제5용병여단 직할 돌격대대 선봉중대 소속의 1소대 4분대의 일원이었다.
 가장 말단인 분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것은 아이언이었고, 부분대장은 스톤, 선임 병장은 크리스탈이었다. 세 명이 이끄는 분대는 105대대 선봉 제1중대 내에서 나름 유명했다.
 아니, 상당히 유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05대대의 대대장조차 인정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이언은 105대대에서 무려 30년간 복무한 자였다.
 그의 나이가 이제 마흔다섯. 30년이라고 하면 열다섯 살 때부터 종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이언은 1중대 1소대 4분대장을 무려 10년간이나 연임하고 있었다.
 가장 치열한 전선 중의 하나가 5군단의 작전 지역이다. 승작, 혹은 명예를 위해서는 5군단의 작전장교, 혹은 선봉돌격대장을 거치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나름 날고 긴다는 용병조차 고작 3년을 버티면 잘 버틴 것이고, 귀족, 혹은 기사가 5년을 버티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그런 군단이었다.
 그러한 곳에서 30년을 생존했다. 그리고 스톤과 크리스탈 역시 무려 20년을 버텼다.
 100년 동안 이어져 온 전쟁의 10분의 3을 담당한 아이언과 스톤, 크리스탈은 실로 대단한 인물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름보다 오히려 별칭으로 더 유명했다.
 아이언은 귀족들 사이에서는 광란의 학살자, 데모니악 매서커(Demoniac Massacre), 병사들 사이에서는 미친 멧돼지라 불렸다. 스톤은 할버드로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 버린다는 뜻의 골렘 브래이커(Golem Breaker), 혹은 미친 골렘으로 불렸다. 크리스탈은 언제나 피 칠갑을 하고 있으며, 그러함에도 그 모습이 고귀하고 아름다워 블러디 카운티스(Blood Countess)라 불렸다. 물론 그냥 미친년이라고 불릴 때도 있었다. 그러한 별칭을 가지고 있는 세 사람을 모르는 이는 지극히 드물 수밖에 없었다.
 켈로만 왕국의 병사들은 그 세 사람을 뭉뚱그려 미친 삼인방이라 부르며 피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그것이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군대는 까라면 까는 곳이었다. 상명하복은 조직의 질서를 지키는 데 절대의 군령이었으니 20년 동안 그들 세 사람에게 죽어간 기사와 병사만도 수백, 수천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말로, 그러니까 귀족들이 하는 지극히 유화된 말로는 죽음의 삼인조였고, 병사들에게는 한마디로 미친 개새끼요, 상종하기도 싫은 연놈들이었다.
 그들 덕분인지 105대대는 이번 전투에서도 본전은 하고 있었다. 아니, 본전 정도가 아니었다. 용맹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은 미친놈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전투라는 것이 혼자 잘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마스터라고 불리는 존재가 있는 왕국이나 제국이 판노티아 대륙을 평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전쟁이라는 것이 결코 한 사람에 의해서, 우월한 병력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압도적인 켈로만 왕국의 5군단 소속 용병대대의 병력에도 불구하고 105대대는 미친 듯이 돌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봉에는 예의 세 명의 혈인이 존재했다.
 아이언은 달리고 있었다. 아니, 무식하게 뚫고 나가고 있었다. 좌우에는 적들에게 치가 떨릴 정도의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크리스탈과 스톤이 있었다.
 이 전장에는 105대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8용병연대와 함께 23용병연대, 22용병연대, 20용병연대 등 총 네 개의 용병연대가 투입되어 있었다. 제5용병여단을 구성하는 용병 연대는 18, 23, 22용병 연대였고, 20용병 연대는 이웃한 제8용병여단에서 지원된 용병 연대였다.
 그것은 켈로만 왕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켈로만 왕국은 자그마치 두 개의 용병여단이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거의 두 배나 되는 병력으로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형적으로 프리스톤 왕국이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기에 이점이 있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두 배나 되는 켈로만 왕국의 병력을 감당해 내기는 어려웠다.
 “쐐기 대형!”
 아이언의 입에서 커다란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에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있던 크리스탈과 스톤이 곁으로 다가왔고, 여기저기 흩어져서 산발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던 십인대의 대원들이 모여들었다.
 “행크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적병을 간단하게 해머로 쳐 죽인 아이언은 뒤에도 눈이 달렸는지 보지 않고 외쳤다.
 “뒈졌수.”
 가장 후미에 있던 제이지가 가래침을 탁 뱉어내면서 말했다.
 “그 외에는?”
 “엘런도 갔수.”
 열 명 중 여덟이 살아남았다.
 “스톤, 후미로 가.”
 “오~ 케이!”
 아이언의 말에 진형에 변화가 생겼다. 쐐기 대형 가장 앞에 아이언이, 그 뒤로 두 명씩 좌우로 자리를 잡고 마지막에 스톤이 섰다.
 “전지인!”
 아이언이 도끼와 해머를 풍차처럼 돌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학살자 매서커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가 움직이자 전혀 뚫릴 것 같지 않던 전장에 구멍이 생겼다.
 “막아!”
 켈로만 왕국군의 중대장처럼 보이는 자가 외쳤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것이다. 중대장쯤 되면 전장에 대한 안목과 병사들을 다루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백 명 이상의 병력을 다루는 중대장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소니 말이다. 물론 지금 켈로만 왕국 중대장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고, 그 승리 속에서 자신의 소소한 전과를 올릴 상대를 찾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그에 딱 포착된 것이 바로 아이언이 이끄는 분대였다. 보기에도 무지막지하고, 아이언이 이끄는 분대 주변으로 상당히 많은 병사의 시체가 있는 것을 보면 꽤 하는 분대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켈로만 왕국의 중대장의 외침에 그가 이끄는 중대 병력이 아이언이 이끄는 분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솔직히 수월하지가 않았다. 서로 얽히고설킨 전장에서 전진한다는 것 자체가 수월할 리 없었다.
 “퉤! 퉤!”
 아이언은 조금 흘러내리는 레더 메일을 추켜올리고는 양손에 침을 탁탁 뱉어내더니 저돌적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악!”
 아이언은 오른손에 든 도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병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콰아앙!
 병사는 방패를 들어 아이언의 도끼를 막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이언의 도끼는 병사의 방패에 그대로 박혀 버렸다. 하나, 아이언은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방패에 박힌 도끼를 그대로 잡아 당겼다.
 “이익!”
 병사는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자 힘을 빼더니 이끌리는 대로 주욱 미끄러졌다. 들고 있던 장검을 아이언의 가슴을 향해 쑤셔 넣었다.
 실로 지근거리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쇄도해 오는 병사의 장검. 그에 아이언의 얼굴에 득의만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보통이라면 겁에 질릴 만한데 오히려 미소 짓고 있는 것이다.
 장검이 아이언의 레더 메일에 닿았다. 아니, 힘을 주어 찔렀다. 하나 아이언의 레더 메일은 뚫리지 않았다.
 “이거 레드오크 가죽이야!”
 그렇게 이죽이며 아이언은 왼손에 들고 있던 해머를 그대로 쓸어 올렸다.
 퍼걱!
 비명도 없었다. 단 한 방에 머리가 으깨져 버리는 병사였다. 켈로만 왕국의 병사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굉렬하게 쏟아져 나오는 아이언의 기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켈로만 왕국의 병사들이 아니었다.
 전장이란 것이 그렇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것이다. 방어구가 일반 병사와는 다른 비싼 레드오크 가죽이라고는 하지만 찌르다 보면, 혹은 베다 보면 찔리고 베어지게 마련이다.
 켈로만 왕국의 병사들은 장창을 움켜쥐고 거침없이 아이언을 향해 찔러들어 갔다. 죽이기 위해 찌르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찌르는 것이었다. 무섭지만 적을 죽여야만 자신들이 살 수 있으니까.
 슈슈슉!
 수 개의 창이 아이언을 향해 쇄도했다. 아이언은 도끼날을 아래로 돌려 마치 추가 움직이듯 쓸어 올리면서 빙글 회전했다.
 따다다당!
 한두 개의 창이 부러져 나가고 또 한두 개의 창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부러지거나 잘려 나가지 않은 창은 교묘하게 도끼에 걸어 그대로 잡아당기고 있는 아이언이었다.
 “어! 어?”
 순간 병사들이 중심을 잃고 끌려왔다. 그때 또 다른 날카로운 음성이 끌려오는 병사들의 귓등을 때렸다.
 “죽엇!”
 커다란 양손검이었다.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크고 자신보다 무거울 것 같은 양손검을 휘둘러 병사들을 단번에 베어 넘기는 여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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